의학, 건강

동성애 치료할 수 있나요? 1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7. 5. 6. 04:24

동성애 치료될 수 있나요?

 

 동성애 즉 호모섹스(homosexuality)는 정신분석의 출발 시점부터 프로이트의 핵심 관심이 되어 있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그 스스로가 그의 심리학을 섹스심리학(Psychosexual, 1910)이라고 명명한 것처럼 변태성욕의 연구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동성애는 변태성욕의 한 부분임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상세한 변태성욕의 역사들과 그리고 호모섹스에 대한 심층 연구는 치료자의 변태성욕의 원인과 치료의 호모섹스와 레즈비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라, http://www.jongmankim.pe.kr/newfile7.html).


프로이트는 1911년에 독일의 연방 법원 판사로 재직 중에 정신분열증으로 자신이 여성으로 변했다는 자서전을 쓴 스케레브(Schreber) 판사의 자서전 나의 신경증 질병의 회고록(Memoirs of my Nervous Illness)(1903)을 읽고 그의 핵심 문제가 동성애라고 밝힌 바 있다. 스케레브 판사는 1903년에 그의 연방 판사 직책에서 조발성 치매(조발성 치매는 1911년에 유진 블루러(Eugene Bleuler)에 의해서 정신분열증으로 이름이 바뀜)로 진단되어 두 번째 재발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라이프찌그(Leipzig) 대학의 프레체시그(Flechsig) 교수에 의해서 최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1903년에 그의 회고록을 출판했고 그 회고록에서 그는 그의 주치의 의사인 프레체시그 박사가 그에게 뇌파를 조종해서 그를 여성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망상을 기록한 것을 프로이트가 그 자서전을 읽고 스케레브 판사의 편집증 정신분열증의 원인은 그가 동성애의 방어를 위해서 프레체시그 박사에게 투사한 것으로 분석을 했다. 프로이트의 스케레브 사례의 분석은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의 핵심 연구 지침서가 되었다.


이후에 미국의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였던 메세너(Meissner)가 그의 저서 편집증의 과정”(The Process of Paranoid, 1978)에서 의처증과 의부증(DSM-Ⅴ에서 에로틱 망상 장애로 분류) 환자들이 남편을 의심하거나 혹은 부인을 의심하는 핵심이 섹스적인 본질임을 지적하고 있다. 치료자에게 의부증으로 치료를 받은 한 20대 후반의 부인은 남편이 지나가는 어떤 여성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는 이유로 남편의 섹스적 욕망에 분노해서 남편을 다른 도시의 외딴 곳에서 그를 승용차에서 내리게 한 후에 혼자서 승용차를 타고 귀가 해버렸다는 에피소드 혹은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았던 의처증을 가진 50대 중반의 한 남편이 부인이 남편 몰래 외도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 의심해서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지면서 외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의 이면에는 즉 부인이 다른 남자와 섹스 행동에 관계된 것으로 의심을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서 메세너는 자신의 동성애가 들통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그 섹스 의심을 파트너에게 투사해서 자신의 동성애의 본질을 방어하려는 방어기재로써 프로이트의 이론을 뒤 받침하고 있음을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이후에 동성애 연구와 치료는 정신분석가의 단골 메뉴로 치료 사례의 연구와 분석이 간간히 정신분석 논문집에 발표되어져 왔다. 그러나 평생을 동성애의 연구와 치료에 전 생애를 바친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찰스 소카로이드(Charles W. Socarides)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본격적인 연구에 뛰어든 사람이 없었다.


 소카로이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매혹되어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 의과대학의 박사 후 정신분석 대학원을 수료하면서 정신분석학자가 되었다(참고로 뉴욕에는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에 그리고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후 프로그램으로 정신분석학교가 있다, 그 이외에는 각각 미국의 대도시에는 2개 혹은 3개의 단독 정신분석학교들이 있다). 그가 본격적인 동성애의 치료를 위해서 뛰어들었을 때 동성애의 연구 논문들은 그때까지 간간히 몇 개의 사례들만 산재해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랬다. 대부분의 연구들은 1930년대 이전의 논문들로 헬렌 도이취(Helen Deutsch),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샌도르 프렌치(Sandor Frenczi), 마리조리 브레리(Marjorie Brerley), 구스타브 비코워스키(Gustave Bychowski) 등의 논문이 전부였음을 알고 실망하면서 1958년에 정식으로 미국의 정신분석학회에서 동성애 분과를 창설했다. 그 핵심 분과 위원으로 소카로이드가 취임을 하고 1960년대부터 호모섹스에 대한 연구 보고서들이 제출되어지기 시작했다(Socarides, 1989).


 소카로이드는 이후 호모섹스 연구에 평생을 바쳐다. 그는 1992년에 호모섹스의 연구와 치료를 위한 국제 학회의 회장에 취임을 했다. 그는 미국 의학 학회, 미국 정신의학 학회 그리고 국제 정신분석 학회, 미국 정신분석학회 그리고 영국 왕립의학 학회 회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대표적인 저서인 동성애: 그 연구와 치료”(1989)을 출판했고, “호모섹스: 너무 많은 자유”(1995)의 를 출판을 했다.


 치료자는 소카로이드의 대표적인 2 권의 저서들을 읽고 연구를 하면서 동성애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유전적인 질병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어린 시절에 섹스 욕구의 발달 과정에서 섹스 이미지의 왜곡에 의해서 생긴 정신장애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변태성욕의 연구(호모섹스라는 동성애는 변태성욕의 일부분)에서 변태성욕은 신경증이 꺼꾸로 된 신경증이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신경증과 변태성욕은 둘 다 완전히 반대가 된다. 신경증과 변태성욕의 공통점은 둘 다 어린 시절에 섹스 욕구의 상처로 전자는 과도한 섹스 욕구에 놀랜 사람으로 후자는 과도한 섹스 욕구에 자극을 받은 사람으로 전자는 오르가슴이 없는 섹스 공포증 환자로 후자는 오르가슴에 중독된 섹스 중독증 환자로 전자는 섹스 욕구의 과도한 컨트롤로 섹스 욕구 자체를 죽여버린 사람으로 후자는 섹스 욕구에 좌지우지 되는 섹스 욕구에 휘둘리는 사람으로 구분을 했다.


 여기에서 동성에인 호모섹스에만 초점을 맞추어보기로 한다. 치료자는 1999년에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변태성욕들의 11개들의 심층적 연구와 분석에서 동성애와 레즈비언의 원인과 특징들을 밝힌바 있다. 그 후에 18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치료자의 동성애에 대한 연구와 치료도 많은 질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치료자의 변태성욕과 동성애 홈 페이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가 치료되어질 수 있는지? 질문을 해 오면서 그들의 이구동성으로 하는 질문이 동성애가 치료되어질 수 있습니까?”였다. 치료자가 여러 가지 이유들을 틀어서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서 섹스 욕구에 상처로써 생긴 신경증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들의 두 번째 질문은 선생님은 동성애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습니까?”였다. 첫 번째 질문은 치료자가 그 동안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고 치료를 해 오면서 많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동성애는 치료되어질 수 있다고 대답을 할 수 있는데 두 번째 질문에는 대답이 막히게 되었다.

 치료자는 작년 2016 4월 이전에는 동성애를 단 두 명을 치료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들은 동성애 치료를 위해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은 대인공포증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에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그가 동성애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는 우울증과 대인공포증(불안증)을 치료하고 나서 동성애 치료는 뒤로 미루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동성애 치료를 하지 못했고 두 번째는 25세의 우울증과 성격장애의 여성으로 그녀는 그녀의 파트너가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의 이름)으로 그녀와 동성애 관계를 여러 번 시도한 것 때문에 치료의 과정에서 분석으로 밝혔지만 그녀는 정작 진실된 여성 동성애자는 아니었다. 고로 정직하게 말을 하자면 동성애 환자를 치료를 해 본 경험이 없었다. 고로 치료자는 정직하게 나는 동성애들을 목적으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동성애자 환자를 치료를 한 경험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실망해서 치료를 받으러 오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동성애 치료의 질문을 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약 10명 정도가 되고 있다. 그런데 작년 2016 4월 달에 한 명문 대학생인 25세의 대학생이 용감하게 자신이 동성애임을 밝히고 본격적인 동성애 치료를 요청함으로써 동성애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의 치료 직후에 또 다른 한 사람의 동성애 치료를 문의한 21세의 청년이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동성애의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변태성욕의 연구과정에서 정신분석가들이 치료 사례들의 연구에서 밝힌 변태성욕과 그리고 동성애의 원인과 치료 과정을 소카로이트의 연구들과 비교 하면서 치료자에게 동성애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는 두 명의 젊은이가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에서 강조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섹스 욕구의 발달 과정에서 섹스 이미지가 왜곡이 되었다는 사실 즉 프로이트는 섹스 욕구는 본능적으로 타고 나지만 섹스 행동을 선택하는 파트너의 선택은 후천적으로 배운 행동이다라는 것을 확인하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의 섹스 심리적인 발달 과정에서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관계에서 섹스 관계가 왜곡되어져 있었다. 25세의 A군은 그가 중학교 시절 이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은 침대를 사용하고 같이 잠을 자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21세의 B군은 2살 아래의 여동생과 함께 부모님의 침대에서 어린 시절부터 고교 1학년 때까지 같은 방에서 잠을 잔 것을 이야기를 했을 때 치료자가 대경실색을 했다. 부모님의 섹스 무시에 깜짝 놀랬다. A군과 B군의 부모님은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고 하이트 칼라의 고급 직업을 가진 지식인들이었다. 대학 교육을 받는 사람들로써 섹스에 대해서 무지한 것에 깜짝 놀랐다.


 A군과 B군의 어머니는 둘 다 남편들을 좌지우지 하는 여성들로써 아버지의 권위와 가장으로써 능력을 무시하는 치마를 입은 남성으로 불릴 정도로 가족 내에서 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있지만 무기력하고 힘이 없는 아버지로 부인으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된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실제 아버지의 직업과는 대조적으로 부인이 남편을 거세시킨다는 점을 강조). 정신분석학에서 늘 거론하는 남편을 거세시키는 어머니로써 두 명의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관계에서 아버지를 동일시를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동일시한 것이 특징으로 드러났다. 아버지의 권위가 작아지면서 아들들은 아버지를 무시하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고 어머니의 지시 명령에 따라서 부응한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3-5세의 남근기 시점에서 아들들은 아버지의 위협과 권위에 거세 불안(처벌)을 느끼고 어머니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동일시해서 나도 아버지처럼 강자가 되고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라가는 것이 정상적인 발달 과정인데 이들 두 명의 젊은이들은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서 아버지는 돈만 벌어다 주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아버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A군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직장에서 늦게 귀가 할 때마다 아버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비난을 했다. “너희 아버지는 다른 xx 년들의 품에 안겨서 외도를 즐기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기 때문에 A군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싫어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TV에서 화려한 속옷 차림의 모델 여성들이 등장할 때마다 남자들을 유혹하는 더러운 년들!”로 욕을 했기 때문에 A군은 섹시한 여성들을 보면 고개를 돌리고 양심에서 불결한 사람으로 더러운 사람으로 인식을 했다고 고백을 했다.


B군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소에 스킨십을 하는 것을 지금까지 21년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유일하게 B군이 중학교 1학년 때 온 가족이 3 4일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버스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처음으로 부부가 서로 몸을 맞대는 첫 장면으로 회고를 했다. 치료자는 B군의 어머니를 섹스 공포증을 가진 사람으로 진단을 했다.


 A군은 오디팔 기간 동안에(3-5) 아버지를 싫어하고 미워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멀리하고 어머니에게 밀착을 했다고 토로 했다. 그러나 그는 섹스 욕구가 표면화 되는 기간에 소년다움(boyhood)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고 남자다운 신체적 성장을 거부하면서 어머니 앞에서 남성다워지는 것을 억제 했다고 틀어 놓았다. 그는 어머니 앞에서 어린 시절부터 옷을 벗는 것(팬티 차림)을 거부하고 항상 어머니 앞에서 정장 차림이었고 밤에 잠을 잘 때에도 항상 정상 차림으로 잠을 잤다고 털어 놓았다. 그 이유를 물어 보았을 때 그는 어머니가 언제 자신의 방에 쳐들어 와서 자신을 섹스 적으로 강간하거나 희롱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회고를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가 남편 쪽으로 향하는 섹스 욕구를 차단 당하게 되면서 남편으로부터 아들 쪽으로 섹스 욕구가 방향이 바뀌면서 A군이 어머니의 섹스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두려워하게 되어 어머니 앞에서 팬티 차림을 억압하고 어머니 앞에서 남성다움을 억압해버렸다고 해석을 했을 때 A군이 시인을 했다.


 A군은 자신이 남자다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소녀들처럼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A군을 너는 계집에 같다 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고로 항상 그는 여학생들과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자신의 남성다움을 스스로 억압해버린 것이었다. B군의 성장 과정의 분석도 A군과 비슷했다. B군은 어린 시절에 동료들 혹은 인 친척들이 B군을 보고 여성스럽다고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A군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남자 동료들과 거리감이 생기면서 남자들과 어울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항상 그들은 A군은 계집애 라고 놀리고 그의 별명을 하리수라고 불렀다.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여성이 된 모델 배우의 이름인 하리수를 A군의 별칭으로 부르면서 A군을 놀리는 것에 참을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사춘기에 진입하는 고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A군은 자위행위를 하게 되었는데 누워서 성기를 방바닥에 문질러서 자위행위를 하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데 그는 자주 인터넷에서 포르노 동영상들을 보면서 발기된 남성 성기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과 섹스 관계를 상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A군이 남성 성기의 발기된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자신이 자위행위를 할 때 누워서 엎드리고 자위를 했기 때문에 발기된 성기가 아닌 상황에서 사정을 했기 때문에 남성들의 발기된 성기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려고 한 것으로 해석을 했다.


 B군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 야외 학습을 다녀와서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모습을 어머니가 보면서 너의 유방이 왜 그렇게 튀어 나왔느냐?”라고 질문을 했을 때 B군의 여동생이 울면서 엄마! 아빠 한데서는 비밀로 해 주세요! 다시는 그러한 짓을 하지 않을게요!”라고 울면서 이야기를 한 것을 회고를 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물어 보았을 때 B군은 여동생과 엄마와 아기 놀이를 하면서 B군이 엄마가 되고 여동생이 아기가 되어서 엄마의 젖을 빠는 놀이를 했는데 여동생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고백을 한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아들이 사춘기에 접근을 해서 유방이 커지고 음모가 나오고 성기가 커진다는 것을 어머니가 눈치를 치지 못하고 유방이 볼록한 것을 지적을 함으로써 B군이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B군은 이후에는 여동생과 엄마와 아기 놀이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유방을 자극하면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감지하고 계속 유방을 만지면서 자위행위를 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정작 흥분을 하게 되었지만 사정을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자신이 여성이다, 자신의 유방을 빨아주거나 마사지를 해 주는 남자를 상상 하면서 섹스 흥분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자신이 여성이고 그리고 남성이 자신의 유방을 애무하고 발기를 시키는 상상 속에서 20세까지 지내온 것으로 정작 사정을 하는 곳을 모르고 있었다.

 

작년 2016 2월 달에 B군은 서울에 와서 비뇨기과에 가서 성기 확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성기가 너무 작아서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서 성기 확대 수술 비용으로 150만원을 얻어서 서울에 가서 비뇨기과에 가서 성기 확대 수술을 했다. 그런데 정작 성기 확대 수술을 하고 나서 실망을 했고 그리고 다른 비뇨기과에 가서 자신이 남성스럽지 못함을 호소 했을 때 비뇨기과 의사가 정자와 정액 호르몬 검사를 해 보자고 하면서 자위행위로 정자와 정액을 시험관계 받아 오라고 했을 때 놀래서 기절을 할 뻔 했다고 털어 놓았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20년 동안 한번도 자위행위를 하면서 사정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정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이상한 남자로 볼 것을 두려워해서 그 비뇨기과를 도망치듯이 나왔다고 했다. 그 이후에 그는 자위행위를 할 때 사정이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지금까지는 자위행위를 잘 해 오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B군의 사춘기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사정을 하지 못했다면 몽정을 한 경험이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몽정은 1달에 2회 정도 해 왔다고 해서 섹스 욕구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A군과 B군은 두 사람이 다 친밀한 친구관계가 단절되어져 있었다. 사춘기들은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섹스 욕구들을 털어 놓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섹스 욕구를 컨트롤하는 것을 배우고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가는데 두 사람은 친밀한 친구 즉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할 친한 친구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고로 혼자서 상상 속에서 자위행위로 흥분을 하고 인터넷에서 잘못된 섹스 정보로써 섹스 이미지가 왜곡되어져 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춘기들은 자위행위를 할 때 어머니, 누나 혹은 오빠 아버지 등을 상상을 하면서 자위행위를 하기 때문에 자위행위를 하고 나서 양심 즉 초자아(superego)의 처벌로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면서 자아 감각이 낮아지고 자신감이 약해지게 된다는 것을 본인들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자위행위를 하는 것은 나쁜 행동으로 그리고 자신들처럼 자위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불량 학생들로써 모범생들은 자위행위를 하지 않고 스포츠나 공부에 에너지를 투자해서 자위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교 시절에 A군은 전교에서 1 2등을 하면서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기 때문에 섹스 욕구와 남성다움에 대한 열등감은 잠재되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면서 한 친구와 친밀관계를 4개월 정도 하면서 그에게 처음으로 지금까지 소망을 했던 친밀관계를 느끼고 있을 때 그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가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때 그는 그 남자 친구의 손을 잡았을 때 섹스 욕구를 느끼게 된 것이 동성애의 첫 시발점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남자 친구를 여자 친구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질투심 때문에 A군의 자아가 자신을 여성으로 그 남자 친구에게 이성으로 느끼게 되면 그 남자의 여자 친구로부터 그를 보호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자아의 방어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그 후에 그 남자 친구와 결별로 A군은 본격적으로 동성애 파트너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 그는 군 입대 전에 한번 남자 파트너를 만나서 동성애 섹스를 가졌고 그리고 군 전역 후에 1년 만에 5번의 동성애 관계를 가졌다고 실토를 했다. 동성애는 남자와 남자들이 섹스 관계를 하는 것으로 남성은 버자이너가(여성의 음부) 없기 때문에 항문으로 섹스를 하거나 혹은 오랄 섹스(입으로 빨아주는 섹스)를 하는데 대부분이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남성다움의 부족을 남성다움의 남자들에게 섹스 흥분을 느끼면서 그들로부터 남성다움을 수혈 받는 것을 무의식적인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A군은 시인을 했다. 그는 스트레스 시에는 동성애 욕구가 급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그들과 동성애 섹스 관계를 하고 나면 남성다움이 증가하고 자신감이 올라간다고 인정을 했다.


 치료자는 A군의 분석에서 그가 남학생들과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생활에서 남자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고 남자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얼굴과 몸매가 남성답지 못했기 때문에 남자들이 싫어한다고 신체적 매력을 1차적 원인으로 생각을 한 것을 지적을 하면서 신체적인 외모와 남자다움이 대인관계의 어려움의 원인이 아니고 대인관계 기술 들 즉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 즉 자아의 노출, 의사 소통 능력,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능력 그리고 단점을 숨기지 않고 비밀을 감추려고 하지 않는 것 등과 같은 대인관계의 기술이 부족한 것이 남자들과 관계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의 원인임을 지적을 했다.


 B군 역시 사춘기 시절인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과천에 있는 과학 공원에 수학 여행을 갔을 때 B군이 친구와 함께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다가 옆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자신보다 키가 작고 왜소한 친구의 성기가 자신의 성기보다 큰 것을 보고 나서 자신의 성기가 너무 작다는 열등감에 사로 잡혀서 화장실에 가면 절대로 서서 소변을 보는 남자들과 함께 소변을 보지 않고 대변을 하는 칸막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서서 소변을 지금까지 보고 있다고 실토를 했다. B군 역시 대인관계가 잘 안 되는 것은 자신의 성기가 왜소하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너무 커서 그의 별명이 큰 바위 얼굴이기 때문에 그리고 머리카락이 곱슬 머리이기 때문에 남자동료들이 거리감을 두고 실어 한다고 인식을 하고 있었다. 치료자가 신체적 외형적 모습 때문이 아니고 대인관계 기술들 즉 위에서 언급한 대인관계 기술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기 때문에 내 자아는 그 원인을 외모에서 찾고 있는 방어임을 깨닫게 했다.

 

더 붙여서 치료자는 B군이 화장실에서 자신보다 왜소하고 작은 동료가 성기가 크게 보였던 것은 남자들은 섹스 흥분으로 발기가 된 상황에서 소변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B군이 하필 그 친구가 발기가 된 상황에서 소변을 보는 것을 평소의 그의 남근의 크기 라고 오인을 한 것이 아닌가? 지적을 했을 때 B군은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궁금함과 그의 열등감을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시점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을 했다.


 정신분석에서는 동성애 남자들은 여성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로써 여성의 버자이너(음부)에 잡아 먹힌다 혹은 페니스가 잘려 나간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로부터 과도한 질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적을 했을 때 A군은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 적대감정(미움이 습관화 된 것)이 엄청나다고 시인을 했다. 여성의 버자이너를 두려워해서 남성은 항문을 안전한 버자이너로 인식하기 때문에 항문 성교를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밀착으로 질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을 때 A군은 동의를 했다.


 B군은 고교 1년을 자퇴하고 검정 고시로 고교를 졸업하고 필리핀에 유학을 갔다가 1개월 만에 실패하고 귀국해서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방안에 갇혀서 지내다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동성애 치료를 보고 치료자를 찾아온 사람이었다. 상상 속에서 자신의 신체 이미지가 왜곡되고 섹스 욕구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을 때 B군도 시인을 했다.


 A군은 1년 동안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왜곡된 부분들을 수정하고 정상적인 발달 관계로 괘도 수정으로 지금까지 심리치료 이후에는 동성애 관계가 없었다. 이제 이성을 보면 섹스 흥분이 느껴지고 그녀를 혼자서 짝 사랑을 하는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음이 표면화 되고 있고 이것을 지적을 했을 때 스스로 인정을 하고 있다. 그는 이성과의 섹스 욕구의 싹을 개발하고 이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섹스 욕구가 느껴지고 이성과 친밀관계가 형성되어지는 발달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임을 스스로 깨닫고 있다.


 특별히 A군이 남성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주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면서 자신의 자신감이 올라간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그 기분이 좋은 감정을 연장하려고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즉 심장이 뛰고 호흡이 빨라지고 맥박이 빨라지는 기분이 좋은 상황이 섹스 흥분 상상으로 오인해서 섹스 욕구를 느끼는 신경 회로가 잘못 연결되어진 것을 깨닫게 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어떤 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감동해서 행복한 눈물을 흘리게 될 때 그리고 부모가 돌아 가시고 슬퍼서 눈물을 흘릴 때가 있는데 생리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똑 같은 느낌이지만 뇌가 한 개는 행복감으로 한 개는 슬픔으로 해석을 한다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A군이 남자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관심을 받을 때 남성다움을 인정받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서 그 기분을 연장하기 위해서 들떠 있는 생리적 현상을 뇌가 섹스 흥분으로 해석을 했기 남자들에게 관심을 받으면 섹스 흥분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고 이러한 관계를 빨리 인식하고 브레이크를 걸어서 연결 관계를 끊어야 함을 깨닫도록 했다.

 

 B군은 2개월 째 분석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동성애 섹스를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고 그리고 그는 상상 속에서 자신이 여성의 유방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어떤 남자가 자신의 유방을 애무하고 섹스 자극을 함으로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서 그가 걱정을 하는 성 주체성 장애(수술로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남자가 아닌 여자가 되고 싶다고 소망해 본 적이 없고 그리고 여성이 되기 위해서 수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고 했다. B군의 경우에는 섹스의 흥분의 상상을 하는 이미지를 건강한 이미지로 바꾸면 그리고 이성에 대한 건강한 관계를 개발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임을 잘 알고 있어서 둘 다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다.


 아래의 치료 사례는 치료자가 지금까지 치료를 한 4명의 동성애자(한 사람은 레즈비언)들의 치료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28세의 우울증 여성 환자 P


증세: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정신과 약물을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 했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회복


진단: 대인공포증, 회피적 성격장애, 우울증, 레스비언(여성 동성애) 파트너에 참가


연결: 인터넷으로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메일로 연락이 옴


치료 기간: 1주일에 2회 씩 1 2시간 분석 상담으로 1년동안 치료를 받았음


치료의 결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충동적 관계에서 회복되어 지금은 방송 통신대학에서 영문과에 재학중이고 어학 연수를 준비중

 

치료의 과정

 P양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보살핌의 부족 때문에 대인관계를 제대로 배우지를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만나서 행상을 하다가 힘들어져서 부인이 사는 고향으로 낙향을 해서 결혼 초반기에는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소작농으로 힘들어서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P양은 위로 오빠가 한사람이 있고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명씩 있었다. 부모님은 돈을 모아서 이후에 과수원을 경영하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젊은 시절에 아버지는 늘 술에 찌들려 살았고 아버지의 음주 때문에 어머니와 잦은 가정 불화들이 자녀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부모님은 자녀들을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냥 먹는 것과 입는 것 학교에 보내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고 했다. 자녀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자녀들과 놀이를 한느 미주알 고주알 의견을 나누는 것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P양의 오빠는 장남으로 부모님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서 P양이 어린 눈으로 볼 때도 오빠는 아들이고 장남으로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졌으나 P양은 부모님에게 제대로 요구를 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착한 딸로 자라나서 부모님이 알아서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으로 믿었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착한 딸이었다. P양은 두 남동생과 여동생에게는 어머니 대신 엄마 노릇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바빠서 P양에게 자녀들을 대신 맡기고 엄마는 일을 해서 돈을 벌기에 신경을 썼다. 고로 P양은 동생들을 돌보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 보냈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오빠는 종교 모임의 한 가족이 이민을 뉴질랜드로 가는 바람에 그곳에 가서 1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다고 했다. 오빠는 뉴질랜드에서 1년 동안 유학을 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은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했고 이후에 오빠는 고등학교는 검정 고시로 대학 영문과에 합격해서 졸업 후에 미국 시민권을 가진 미국 여성과 결혼을 해서 5년 동안 한국에 생활하다가 지금은 미국에 다시 들어갔다고 했다.


 P양은 초, , 고등학교 때는 그런대로 공부를 잘 해서 부모님의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냈고 가족 구성원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와 많이 싸웠으나 몇 년 전부터 건강 때문에 술을 끊고 지금은 종교 생활을 하면서 과수원 일에 몰두 하고 있다고 했다. P양은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술 마시는 행동과 가족들을 괴롭히는 행동 때문에 아버지를 경멸하고 미워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P양이 아버지를 공격해서 아버지의 술 마시는 버릇을 고칠려고 많이 노력을 했으나 갈등만 양산했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인문학교에 갈 성적이 되었으나 굳지 인문학교를 고집하지 않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자 회사에 2년 정도 다닌 후에 개인 사업을 하는데 사원으로 일을 하면서 문제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자 회사에 다니면서도 문제가 된 것은 친구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개인사업체에서 경리 사원으로 있으면서도 동료들이나 주인과의 갈등을 제대로 뚫고 나가지 못해서 1 6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 두고 부모님의 과수원 농사일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과의 잦은 충돌로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부모님은 P양이 학교 시절에는 온순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인정을 해주었으나 P양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마 후에 그만 두게 되자 P양의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다른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돈도 많이 벌고 결혼도 잘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라고 구박과 압력을 넣게 되면서 P양이 부모님과 갈등이 계속되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죽어도 하지 못하겠다고 끊임없는 불평을 했다. 부모님은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농사일을 조용하게 하든지 아니면 직장 생활을 해서 독립해서 나가든지 하라고 요구를 했으나 P양은 사실은 사회생활에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떻게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가?를 어린 시절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농번기 때는 P양을 데리고 과수원 일을 시켰으나 P양을 가만히 내 버려두지 않았다. 언제나 옆에서 잔소리를 늘어 놓거나 일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간섭을 했다. 고로 그렇지 않아도 하기 싫은 농사일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녀는 몇 번을 가출 아닌 가출을 했다. 일을 하다가 잔소리를 하면 그대로 집에 돌아와서 자가용 차를 몰고 드라이버를 했다고 몇 일씩 외박을 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인터넷에 빠져서 밤새도록 전자 오락을 하다가 너무 늦게 전자 오락을 하는 아버지와 갈등으로 아버지에게 죽도록 폭력을 당한 것도 여러번 있었다.


 P양은 처음에는 자신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잘 몰랐다. 왜 사람들은 자신만 보면 피하고 자신을 뒤에서 욕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관계를 가지는 사람마다 결국에는 서로 적으로 원수처럼 되어가는 것을 자신의 문제 때문이 아닌 상대방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 곳에 오래 정착을 할 수 없었다. 친밀감정이 생기면 오히려 그녀에게 불편해졌다. 상대방의 눈치만 보고 좋은 말만 가려서 하고 절대로 상대방의 기분을 다치게 않게 하다고 보니 정작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모두가 자신이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약 5년 동안 끊임없이 몸부림을 친 것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그녀는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알 게 된 남자들을 찾아 만나기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으나 편지를 주고 받을 때는 그런대로 서로 잘 통하는 면이 있었는데 막상 만나고 보면 갈등이 생겨서 해어지고 마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자살 시도 후에 할 수 없이 그녀는 종합 병원에 정신과에 입원을 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간 모범 환자로 병원의 스텝들에게 인정을 받고 병원에서 도우미로 잘 해나가다가 40대 중반의 언니 뻘 되는 알콜 중독자와 친밀하게 되면서 레즈비언 관계로 발전해서 병원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 사실이 부모님에게 알려지게 되고 부모님의 멸시와 학대를 받게 되면서 레스비언 언니와 함께 가출해서 약 1년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레스비언 언니와 헤어지고 갈 곳이 없어 집에 전화를 걸어서 부모님이 자동차를 가지고 서울에서 P양을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 P양의 5년 동안의 고통스런 세상 경험을 한 그녀의 오디세이의 끝이었다.


 이후에 부모님 집에 같이 지내면서 갈등을 계속하고 있던 중에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인터넷에서 접하고 난 후에 심리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이론적 근거

 P양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대화가 별로 없고 부모님의 눈치만 보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늘 외톨이었고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부모님이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하루는 학교에 가지 않고 도중에서 놀다가 집에 되돌아온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동료들과의 큰 갈등은 없었다. 부모님의 체벌이나 폭력은 없었다. 오빠는 유치원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고 했다. 어떤 것을 사고 싶어면 사달라고 해서 가졌으나 P양은 부모님이 사주면 받았지 스스로 이것을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빠는 유치원에 다녔으나 P양은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그런 요청이 없는 P양을 보내주지 않았다. P양은 오빠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왜 자신을 다니지 않았느나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딸이니까 그런가 보다"라고 늘 생각해 왔다고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에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학교 생활이 안된 것은 아니었다. 성적은 그래도 상위권이었고 따돌림은 받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기면 피하는 방법을 선택해서 항상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욕구를 전달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이 불쾌하면 상대에게 알리고 이것을 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하지 못하고 항상 마음 속으로는 상대를 비난하고 상대와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되면서 사춘기를 지나면서 외톨이로 굳어진 것이었다. P양은 대인관계를 갈등이 없고 너와 나의 하나된 마음의 관계가 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 관계는 갈등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피하지 말고 뚫고 해결해나가게 되면 친밀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치료에서는 과거에 그녀가 갈등을 일으켜서 상처를 받은 이벤트들을 한가지 한가지씩 끄집어 내어서 재연하면서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연결된 감정들을 표현하게 하는 치료의 과정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치료 시간에 늘 울었다. 울면서 마음 속에 쌓인 마음의 독소들을 뽑아냈다. 옛날에는 학교 시절에는 그런대로 다른 동료들보다 못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회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고 다른 동료들은 결혼을 해서 아기도 가지고 남편과 결혼 생활로 독립된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고통스러워했다.


 P양은 자신감과 자가 존중감이 낮았다. 그녀는 자신의 자아를 60점 정도 주겠다고 했다. 늘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듣고 핀잔을 들어서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자신을 처벌해 온 것이 밝혀졌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 후에 사회생활에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그녀는 자신을 미워하고 자기 학대를 일삼았다. 그녀는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는 것은 밝혔지만 그녀 자신의 종교 이름을 끝내 치료자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끝내는 밝히지 않고 가명을 썼다. 이유는 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 있었다. 처음에는 믿었던 사람들 한데서 발등을 찍히고 나니까 이제를 아무도 절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자신에게 늘 타일러 왔다고 했다.


 치료의 과정에서 자신의 대인관계의 문제점은 부모님의 양육의 결함에서 온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분노를 마음 속에 담아 놓지 말고 표현하게 했다. 그녀는 특히 어머니를 미워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양육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냥 밥 굶기지 않고 헐벗지 않고 학교에 다니게 학비를 대 준 것만으로 부모의 구실을 다했다고 큰 소리를 치는 부모님이 미워죽겠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양육에서 상처를 많이 입었던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사춘기 때 공부를 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자신의 아버지가 학비를 대주지 않았고 공부를 하는 것에 반대해서 제대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 역시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갈등이 많아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왜 자신과 동생들을 그렇게 제대로 돌보아주지 않했느냐고 항의를 했을 때 어머니는 "나도 그렇게 양육하는 것이 문제가 될 줄을 몰랐다"고 시인을 했다고 했다. 이러한 분노들이 빠져 나오면서 점차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이제 조용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공부를 해서 반드시 전문가가 되겠다고 했다. 노동자로 노동만 하다고 평생을 허송 세월하며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아동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집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공부를 하고 있던 방송통신 대학 중국어 학과에서  방송 통신 대학 영문과에 전과를 했다.


치료의 결과

 P양은 치료를 해 나가면서 대인관계의 갈등은 좋은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갈등을 해결하지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 바람, 기대를 상대방에게 명료하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불쾌감을 말로써 표현해서 다시는 그렇게 자신을 대하지 않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 대인관계임을 알 게 되었다. 대인관계는 생각, 느낌, 상상 등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치료는 1주일에 2회씩 계속되었다. 거리가 멀어서 서울에 와서 저녁 때 치료를 받고 인근에서 잠을 자고 그 다음 날에 다시 2시간을 받고 집으로 귀가하는 것으로 약 1년을 계속하면서 치료 시간에 많이 울고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일깨우고 스스로 자아를 일으켜 세우고 자신감을 기르게 하는 과정을 계속해 나갔다. 1년의 치료 기간이 지나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를 계속해서 더 받아야 한다는 치료자의 권유에 집에서 치료 비용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조금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여동생이 심한 대인공포증으로 가족 구성원들과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부모님에게 심리치료를 받도록 알선해 준 후에 동생의 치료 비용 때문에 6개월 정도 쉬기로 했다.


 P양은 이후에 다시 치료를 재개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에 자신의 여동생을 통해서 치료가 중지 되고 난 후에 6개월 동안 부모님과의 갈등은 많이 해소되어 지금은 부모님에게 반항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은 방송 통신 대학 영문과에 입학에서 집에서 영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을 대견스럽게 받아들여서 일체 과수원 농사일을 시키지 않기로 했으며 앞으로 6개월 후에 외국 어학 연수를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했다. P양은 이제 공부를 해서 자신감을 쌓아서 자신을 자학하고 자해하는 자기 파괴적 행동에서 벗어난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아직도 대인관계는 원만하게 되지 않고 있으나 자신의 충동 욕구를 컨트롤하게 된 것은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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