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하는 고질병들 2
질병을 크게 분류를 하면 신체적 질병과 정신적 질병으로 나눌 수 있다. 신체적인 질병은 몸에서 생기는 질병들로써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을 총칭한다. 우리 나라의 의학 수준은 선진국 수준이어서 해외에서도 우리 나라에서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서 외국 사람들이 관광을 겸해서 치료를 받으러 온다는 소식들은 이미 신문, TV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해서 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신적 질병은 신체적 질병과 나란히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 질병 혹은 정신 질환 등의 용어들은 1980년에 미국의 정신의학 학회에서 매년 10년 마다 새로 등장하는 정신적인 문제들 혹은 사라져 가는 정신적인 문제들을 종합해서 재 분류를 하고 있는 DSM-Ⅲ의 세 번째 개정 분류 지침서에서 정신병 혹은 정신 질병, 정신 질환 등의 용어들이 정신장애, 정신이상, 정신 혼란이라는 말로 바뀌어져서 사용되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이 바뀌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정신장애들은 신체적인 종합 검사를 하면 그 결과가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기 때문에 질병이라는 말이 빠지고 장애, 이상, 혼란이라는 말로 대체되어진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정신병, 정신질환 등의 용어들을 사용해서 정신적인 문제와 신체적인 질병과 혼돈해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조금씩 이런 용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동안에 유럽에서 한 때 유행을 했던 최면에서 시작되었다. 메즈머가 최면을 발견을 해 놓고도 그는 그가 새로운 발견을 한 것을 모르고 죽었다고 정신의학의 역사가들이 기술을 하고 있다. 자신이 위대한 발견을 해 놓고 정작 자기 자신은 그것이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은 역사적인 인물이 두 사람이 있다고 소개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최면학을 발견하고서도 그것이 새로운 학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었던 메즈머(Mesmer)이고 또 한 사람은 아메리카라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을 해 놓고도 모르고 죽은 콜럼버스가 있다. 이후에 아메리코 베스풋치가 콜럼버스가 발견한 대륙이 인도가 아니고 신대륙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역사에서 기록이 되어져 있다(Ellenberger, 1975).
메즈머는 18세기의 계몽주의의 아들로써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을 그리고 법률가 되기 위해서 법학을 나아가서 철학을 공부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그는 의사로써 그 당시에 유행을 했던 신부님이 신부 복장을 하고 성격 책을 들고 십자가로써 귀신에 씌인 사람들 혹은 악령에 사로 잡힌 사람들을 치료를 하는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 퇴마의식을 보고 나서 신부복장, 십자가, 성경책 등이 없이 손가락 하나로 똑 같은 귀신을 쫓아 내는 현상을 하겠다고 장담을 하면서 실제로 그가 사람들에게 퇴마의식과 똑 같은 현상을 재연해 냄으로써 인기가 하늘로 치솟게 되었다. 그는 의사로써 그의 이론들과 과정들을 책으로 논문으로 출판을 했다. 그의 설명이 바로 동물 자장이론, 자석 치료였다. 귀신에 홀린, 악령에 사로 잡힌 것을 정신병이라는 개념인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 정신병을 치료 하는 치료 기법으로 자석 치료가 등장하게 된 것은 계몽주의 발달에 따른 시대 정신의 산물이라고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Ellenberger, 1975).
그 당시에 메즈머가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에 펴져나갔다. 프랑스 혁명의 전후 시대에 사회적 불안과 혼란으로 어려운 시대에 메즈머의 이론이 쉽게 먹혀 들어간 것이었다. 계몽주의는 무지, 미신, 맹목적인 종교적인 믿음의 중세 시대로부터 인간이 지식적으로 깨어나는 이성의 시대로 과학의 시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즉 중세의 귀신 이론으로부터 정신병이라는 치료의 개념으로 바뀌게 된 시발점이 메즈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메즈머는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로써 자신의 연구들을 이론화 해서 책을 출판하고 군중들 앞에서 귀신에 흘린 사람들을 직접 치료를 하는 시범을 보여주는 자석 치료를 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었다(Ellenberger, 1975).
이후에 메즈머의 제자들이 자석으로 치료를 하는 원리가 자석 때문이 아니고 잠과 유사하지만 잠과는 달리 환자와 자석 치료사가 서로 말을 주고 받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과 깨어나서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인공 몽유병 혹은 인공잠 이라는 용어로써 사용되어 오다가 1843년에 영국의 외과 의사인 브레이트(Braid)가 잠과 유사하지만 잠이 아니라는 용어로 최면(hypnosis)라는 신조어를 등장시켰고 자석 치료는 최면 치료로 바뀌게 되었다. 최면의 용어인 hypno는 그리스의 잠의 여신에다 i라는 그리스의 illness 질병, 병이라는 용어가 합쳐져서 잠을 자는 것과 유사한 병을 치료 한다는 용어가 된 것이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최면학을 과학으로 의학으로 인정을 해 주지 않고 있었다. 세 번이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신청을 해 왔으나 거부당하다가 의과 대학의 내과 교수이나 왕의 주치의였던 가르코트(Charcot)가 1883년에 네 번째의 신청이 수용되어져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최면학을 통한 몽유병 환자의 치료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된 이후에 10년 동안 가르코트는 히스테리아라는 정신병을 최면으로 치료를 하는 세계적인 대가로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가르코트는 히스테리아의 황태자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최면학이 의과대학에서 강의 되어지고 교과서로 출판되어지고 치료의 이론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1885년에 히스테리아라는 병을(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병) 최면으로 치료를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프로이트가 카르코트의 학교(최면 치료 학교)에 유학을 가게 되어 이후에 무의식 이론과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창안해 냈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1890년에 심리학의 원리라는 책을 출판해서 세계적인 명사로써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가 된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가 카르코트를 방문해서 가르코트로부터 최면학을 배워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19세기 말기에 최면 치료는 많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에 의해서 잠을 효과가 아니고 과거의 상처의 재연으로 카타르시스 효과라는 것이 밝혀졌고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치료 되어질 수 없는 반쪽 치료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프로이트가 최면을 사용하지 않고 최면과 유사한 방법으로 무의식의 기억을 의식으로 끌어 올려서 카타르시스 적인 감정 방출과 감정 표현 방법(감정 정화 방법)을 고안해 내서 1895년에 히스테리아의 연구라는 책을 출판하게 됨으로써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게 된 것은 정신분석의 역사에 기록되어져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적인 문제들 즉 히스테리아 이후에 신경증의 문제에만 국한 해서 연구를 해서 치료 기법으로 최면이 아닌 정신분석 치료를 고안해낸 것이다. 프로이트는 신체적인 현상으로부터 심리적 현상을 분리 시켰다. 심리적 현상과 신체적 현상은 서로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그는 심리적 현상들은 신체적으로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을 했지만 심리적 현상을 다루면 신체적 현상들이 따라 오는 것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1차적으로 중요시했다. 그는 몸의 주인은 마음 즉 자아임을 강조를 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이성의 나체를 상상을 하면 즉각 1초 만에 성기가 발기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놀래면 심장이 벌떡거리고 눈이 동그래지고 얼굴이 빨갛게 혹은 새파랗게 질리고 홍당무가 되는 현상들은 마음이 몸에 직접적으로 즉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러한 현상들의 연구에 집중해서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신경증 이론과 신체적인 질병의 교집합 즉 상호작용으로 겹치는 부분들의 질병(신체적 질병)들을 연구하게 되면서 심인성 질환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신체적인 질병에 그 원인이 심리적인 것이어서 심리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재발이 되고 결국은 고질병이 된다는 것이다. 신체적인 질병들은 약물로 치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약물을 복용해도 완치가 되지 않고 위기가 지나가면 재등장하는 질병들을 정신분석가 들이 치료를 하면서 그 질병의 심리적인 면들을 제거하면 몸의 질병이 완치가 된다는 것을 발견을 하게 되면서 그것의 이름을 심인정질환 즉 심리적인 원인으로 질병이 생기는 것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50년에 시카고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정신분석가로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프란츠 알렉산더(Franz Alexander)가 시카고 세번(Chicago seven, 7)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7개의 신체 질병들의 원인이 대부분이 심리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었다. 신경증 두통, 기관지 천식, 루마티스 관절염, 소화성 궤양들, 과민성대장염, 신경증피부염들, 본태성 고혈압이 바로 심인성 질환에 해당되는 질병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항가리 태생의 의사로써 캐나다에 귀화한 한스 셀리(Hans Seyle)가 스트레스 이론을 발표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전기 쇼크로 고통을 받은 실험 쥐들이 위궤양을 개발하는 것을 의대 실험실에서 관찰하고 나서 그 문제를 연구해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장기간 받게 되면 신체적인 호르몬 변화로써 질병이 발생한다는 스트레스 이론을 내 놓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이제 스트레스가 질병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질병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든 질병 들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 나라에서도 일반화가 되었다. 암 질병, 심장 혈관 질병, 당뇨병에 스트레스가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현대 사회는 스트레스로 과중화 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 되었다. 스트레스라는 말 자체가 심리적인 용어가 아닌가? 심리적인 요인들이 신체적인 질병의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입증이 된 것이 아닌가? 신체적인 질병을 다루는 의사 선생님들은 약물을 처방해 주면서 되도록 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더 붙여서 1960년대부터 새로운 학문의 등장이 바로 면역학이다. 현대 의학의 특징인 컴퓨터의 등장으로 의학계에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뇌의 작동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MRI(자기 공명 영상 기법), PET(양전자 단층 촬영 기법)등이 등장하고 여기에다 면역 조직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병균이 몸에 침입을 하면 우리 몸의 세균 감지 작동 기능들과 퇴치 기능들이 작동을 하는 원리와 과정들이 하나씩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면서 심리 치료와 정신분석에 또 하나의 힘이 실리게 되었다. 즉 PIN(심리신경면역학)이라는 연계된 학문이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1967년에 뉴욕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 치료자인 아들러(Adler)가 심리신경면역학이라는 신조어를 등장시켰다. 그는 면역 기능들이 심리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기술을 함으로써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의학 심리학(medical psychology), 행동 의학(behavioral medicine), 심리 의학(psychological medicine) 등의 용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부신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로이드가 방출되어지고 이 호르몬이 과도하게 지속적이 되면 면역 기능이 떨어져서 신체적 질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러한 원리들이 최근에 등장한 고질병들에 적용이 되어지게 되었다. 즉 아토피, 천식, 비염 등의 알레르기 질병들이 약물의 치료로써 완치가 어렵다는 인식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에는 일반 의사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가 실망을 하게 되자 한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실망한 환자들이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절망감에서 사이비 의술들에 현혹되어 질병들 가중시키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TV 신문 등에 등장하고 있는 뉴스를 보면서 치료자가 이들에게 심리적인 치료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치료자는 사람들이 심리적인 면들을 너무 모르고 있고 심리적인 문제들을 병(장애)이 아니라고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심리적인 면들의 중요성을 알리는 마음의 전도사가 되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해게 된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요악하면 심인성 질환의 등장에다 스트레스 이론과 면역학의 이론들이 접목이 되어져서 심리적인 요소들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어져 가면서 신체적 질병의 치료에서 고질병을 치료되어질 수 없는 질병으로 알려진 질병들이 심리치료, 정신분석 치료 등으로 새로운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치료자(필자)는 이미 30년 전에 미국에서 대학에서 심리치료학과 대학원에서 가족치료 학에서 그리고 인턴 과정에서 정신분석학을 접하게 되면서 신경증 치료와 정신분열증 치료 그리고 성격장애 치료와 심인정질환 치료 등으로 범위를 넓혀 가면서 35년 동안 심리치료의 이론과 치료기법의 연구로써 치료를 소상하게 알 수 있는 한가지 방법으로 직접 치료를 한 환자들의 치료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심리치료 치료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32세의 간호사인 부인 A씨
증세: 편두통으로 20년 동안 고통받고 있다가 대인관계 치료를 하면서 편두통이 드러나게 됨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대인공포증, 심인성질환으로 편두통을 앓고 있음이 밝혀짐
치료 기간: 부인 A씨는 5년전에 치료자에 의해서 1년간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 후에 치료자의 권유로 지방 소 도시 간호사로써 생활하고 있다가 서울에 와서 정착하게 되었고 작년에는 결혼을 했다. 부부 갈등과 과거에 남아 있는 대인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작년 12월에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다시 치료를 재개하여 1년 동안 심리치료를 계속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 편두통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으나 대인관계 문제로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의 과정
A 부인은 결혼 후에 다시 치료를 재개해서 분석 치료를 해 나가는 도중에 과거에 등장하던 편두통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5년 전에 치료자에 의해서 분석 치료를 1년간 받은 후에 편두통을 증세가 완화되어 이제는 미약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과거에 그녀는 약 20년 동안에 편두통에 시달리면서 초반기에는 신경 정신과에서 약물로서 치료를 받았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고 한 의사에게 한약을 복용해 보았으나 편두통을 사라지지 않았다. 편두통이 오려고 하면 올오라(증세가 예측되는 증세 행동)가 온다고 했다. 먼저 현기증이 느껴지고 구역질, 메스꺼움이 따라오면서 한쪽 머리가 찢어지는 것처럼 통증이 오면서 변소에 가서 대변이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 증세 이후에 편두통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한쪽 머리 부분에서 양쪽 머리 부분으로 통증이 전파되면서 온 머리가 찢어지는 고통이 몇 시간 계속되다가 사라진다고 했다. 이러한 편두통 증세는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계속되어 왔다고 했다. 빈도수가 점점 많아져서 한 달에 3회-4회 정도로 늘어나서 지속 시간도 2시간-3시간 정도로 계속 되어왔다고 했다. A부인의 5년 전에 심리 치료의 과정을 상세하고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A부인의 편두통의 증세와 올오라는 전형적인 편두통의 증세였다. 그녀는 초반기 분석 치료를 1년간 받으면서 편두통을 다루어 왔기 때문에 지금은 편두통이 완전히 느껴지지는 않고 단지 올오라만 느끼고 약간의 통증은 지속되고 있지만 편두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편두통을 다루기로 했다.
편두통이 등장하는 날짜에 그 편두통이 등장하기 직전의 이벤트와 편두통을 다루는 과정과 편두통 이후에 연결되는 행동을 분석해서 연결 시켜본 결과 어떤 스트레스 이벤트 뒤에는 반드시 편두통이 따라온다는 것을 분석해서 A부인이 알 게 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얻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A부인은 2008년 10월에 결혼을 했다. 결혼 초반기 배우자와의 심리적 갈등에서 감정의 차단이 있고 난 후에 직장에서 동료들과 혹은 직장 상사에게 부당한 대우나 불만족스러운 관계가 편두통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A 부인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한지 4년 정도가 흘러가면서 그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직책에서 자신감의 부족 때문에 또 대인관계에서 오는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 즉 직장 상사나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것 때문에 자신의 의사 표현이 미진해서 항상 마음 속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불만족스런 마음 속의 갈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고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도록 치료에 초점을 맞추어 가고 있었다.
몇 개월 전에 직장에서 스트레스적인 한 개의 이벤트가 있었다. 직장 보스에게서 A부인에게 과도한 책임에 대한 비난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직장에 보스가 심기가 불편해서 그녀에게 그녀의 직무에 벗어난 것까지 그녀의 책임으로 추궁을 듣고 화가나서 말로써 직접 표현을 하지를 못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그녀는 그녀의 부하 직원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었고 이후부터 직원들은 그녀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사람이 변했다"는 비아냥과 함께 일종의 무시를 당하게 되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집에 가서 남편과도 심하게 싸움을 했다. 그 날 저녁에 올오라가 느껴지고 편두통이 오는 것을 감지를 했고 과거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현기증 이후에 구역질이나 메스꺼움은 없었지만 한쪽 두통이 옴을 느꼈다. 그러나 과거처럼 대변을 보지는 않았다. 편두통이 엄습하는구나! 하고 본인이 스스로 느낄 수는 있었다. 직장에서 보스로부터 자신의 직무에 벗어난 과도한 책임 추궁에서 말로 한마디 하지 못했고 집에 남편에게 그 분노가 방향이 바뀌어 흘러간 것을 분석해서 A부인이 알 게 되었다.
마음 속에 쌓이 분노가 편두통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부인 A가 알 게 되었고 이러한 분노는 관계를 하는 대상한데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써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훈련이 계속되면서 자신의 갈등을 행동으로 acting out하는 것이 아니고 말로써 상세하게 표현하는 빈도수가 점점 증가하게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을 부부가 서로 알 게 했다.
남편과 갈등 관계의 수정: A 부인은 남편과 함께 외식을 하거나 외출을 하게 되면 반드시 서로 티격태격 싸우게 되고 서로 감정이 상해서 집에 돌아올 때는 한 사람은 먼저 오고 다른 사람은 뒤에 쳐져서 오게 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는 함께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고 했다. 최근에 A부인은 남편과 토요일 오후에 외식과 쇼핑을 하기로 하고 xxx 지하철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에 다가가면서 A부인은 남편의 휴대폰이 울리자 받았으나 지하철안의 소음 때문에 정확하게 들리지 않아 전달이 잘 되지 않았고 그 문제로 걱정을 했다. 남편의 성질이 전화를 빨리 받지 않거나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A부인은 약속 장소에 나갔을 때 A부인을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화를 내면서 토라져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화난 표정을 읽고서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고 인근에 버스 정류장과 택시 정류장의 중간 쯤에서 남편에게 버스를 타자고 하려다가 택시를 잡아 타게 되었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버스를 탔으면 돈을 절약할 것인데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부인 A가 화가 나가 되었다. 두 사람은 택시에 내려서 음식 점에 들어가서 식사 주문을 하고 나서 남편은 말이 없이 고기만 굽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라서 말을 하기가 싫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고기를 구워서 먹는둥 마든 둥 해서 음식 점을 나왔고 집에 올 때는 서로 떨어져서 따로 따로 집에 왔다고 했다. 오면서 이번에도 과거처럼 외출이나 외식을 할 때마다 A부인의 부부는 서로 싸우고 결국은 외출을 다시는 함께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집에 왔다고 했다.
부인A의 부부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치료자는 A부인이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남편이 고기를 구우면서 말이 없이 고기를 굽는 것에 열중해 있고 서로 말이 없는 침묵의 껄끄러운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과거에 A부인이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때 집이 학교 근처에 있어서 점심을 먹으려고 집에 오면 아버지가 점심 때 집에 있어서 자주 아버지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때 아버지가 아무 말이 없으시고 초등학교 학생이던 A부인이 아버지에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아버지 눈치만 보고 껄끄러워했던 시절이 회상이 연결 되면서 바로 남편이 그 시절의 아버지와 관계가 다시 남편과의 관계에서 재연되고 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남편은 아버지와 유사점이 많았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었고 늘 부인 A가 아버지의 눈치와 비위를 맞추면서 시키는 것에만 복종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서로 관계를 할 때 말이 없고 눈치만 보는 것임을 그녀가 알고 있었다.
남편 역시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 외톨이로 자랐고 대인관계에서 말이 별로 없는 사람임을 결혼 후에 알 게 되었던 것이다. 외출이나 외식에서 부부가 서로 만나서 서로 즐거운 시간이 되어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는 것인데 A부인의 부부는 너무 사소한 것 즉 버스를 타느냐 택시를 타느냐 어디에서 서로 만나는가? 등의 너무 사소한 문제 때문에 서로 마음이 상해서 기분을 다치고 정작 만나서는 즐거움이 없는 껄끄러운 관계로 집으로 돌아 온다는 것이 분석되어지면서 이것을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커뮤니켸이션 훈련을 하게 했다. 남편과 껄끄러운 관계는 서로 몇 마디 말을 하게 되면서 서로 풀어진다는 것을 서로 알 게 되면서 서로가 집에서 저녁에 만나게 되면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서로 들어주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 관계는 점차로 줄어들어가게 되었다.
치료의 결과: A부인의 부부 관계와 대인관계의 분석에서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지금 현재의 관계에서 재연되고 있음을 분석해 내면서 A부인의 관계 형성과 관계의 과정에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최근에 여름 휴가 때 A부인은 가족들이 여름 휴가로 모이게 되는 이벤트가 있었다. A부인은 친 어머니는 치료자에게 치료를 처음 받았던 5년 전 시점에서 치료를 시작하기 5개월 전에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했고 A부인은 그 당시에 감정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 후에 몇 개월 만에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재혼한 양 어머니는 성장한 자녀들이 두 사람은 결혼을 이미 했고 한 사람은 미혼으로 있었다. 혼합 가족이 되면서 A 부인은 그 당시에 새로운 가족과 관계가 많이 껄끄러워했었다. 이번에는 새 어머니 가족과 아버지의 가족 즉 A부인의 가족이 여름 휴가로써 같이 모이게 된 것이었다. 새 어머니의 초대를 받고 나서부터 A부인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억지로 아버지의 체면 때문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여름 휴가가 알맞지 않아서 혼자 가게 되었고 결혼한 언니네 가족은 다른 일 때문에 합류를 하지 못했다. 그녀는 여동생 부부와 미혼인 남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새 가족과 합류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새 가족들과 별로 말이 없이 껄끄러워 보였고 새 엄마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억압하고 따르고 있는 모습과 부인 A역시 새 가족과 말이 없이 껄끄러웠다. 여동생 가족 그리고 남동생도 역시 말이 없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새 어머니 가족들은 기고 만장해서 즐겁게 즐기는 것을 보고 부인 A의 가족은 하나같이 말이 없고 외톨이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재 확인을 하게 된 셈이었다.
부인 A는 새 어머니가 가족에게 화나난 것보다도 오히려 아버지와 자신의 가족들에게 화가 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냥 1박 2일의 여정을 고통 속에서 끝내고 서울에 올라왔다. 그날 저녁에 남편과 관계가 역시 갈등을 일으켰다. 남편은 부인의 화가난 모습을 수용하지 못하고 화를 냈다. 그날 저녁에 편투통이 느껴졌다. 올오라가 느껴지면서 편두통이 오는 구나 했으나 더 이상 편두통은 전개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편두통은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편두통을 깨닫고 그녀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고 달래는 행동을 해서 자아를 달랜 덕분에 편두통은 가라앉았다.
치료의 과정에서 A부인은 직장에서 그녀 자신이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말을 하게 됨으로써 소속감이 느껴지고 동료들이 그녀 자신의 기대대로 배려해주고 돌보아주게 됨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대인관계에서 혼자서 속 마음으로 자아와 대인관계를 해 왔음을 분석에서 알 게 되었다. 직접으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고 늘 마음 속에서 그 사람에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고 있구나! 나를 피하고 있네!" 등의 생각으로 직접 그 사람을 평가하고 관계를 피해 왔다는 것이 분석되어졌다. 실제의 관계에서 정작 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의 자아와 대상과 관계를 속으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있음을 분석에서 알 게 된 것이었다. 고로 현실적으로는 직접 관계를 하고 있으나 결국은 상상 속에서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직접 마음 속에 대화들을 그 대상에게 표현을 하도록 하게 되면서 능동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로써 표현을 한 결과 관계가 개선되어짐을 깨닮을 얻은 것이었다. 이러한 대인관계 패턴을 바로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온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아버지는 늘 근엄했고 금기와 금지로써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아니고 명령과 지시로써 이야기를 해 왔고 자녀들은 항상 "예"로써 부응해 왔음을 알 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한번도 자신의 의견을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항상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려고 했고 자신의 욕구를 한번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늘 아버지에 대한 불만족이나 하고 싶은 말들은 마음 속에서만 되풀이 하면서 혼자서 아버지와 내면 속에서 아버지라는 대상과 말을 해 왔음이 바로 대인관계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지금까지 모르고 관계를 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직접 관계가 아니고 상상 속에서 혼자서만 관계를 해 온 사살을 알 게 되면서 이제까지는 직접 대화를 하지 않고 있음을 알 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A부인으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관계를 재연해서 아버지에게 말로써 그녀가 하고 싶었던 내면 속의 이야기들을 직접 표현을 하도록 했다. 부인의 내면 속에 쌓인 분노를 직접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그녀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정을 쏟아내게 했다. 가족 여름 휴가에서 양모의 가족과 A부인의 가족들이 함께 하면서 양모 한데서 이래라 저래라하는 빈잔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 표정이 우울해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의 주장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직장에서 동료들이나 상사들과의 관계에서 바로 A부인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을 치료자가 지적하자 깜짝 놀랬다. 남동생과 여동생들과 A 부인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의 대물림임을 깨닫고 그 대물림의 틀을 깨려고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분석 이후에 부인 A는 대인관계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직접 관계를 해야 하고 자신의 내면의 혼자서 하는 대화는 직접 그 사람에게 말을 함으로써 점점 혼자서 하는 말들이 줄어들어간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남편과의 갈등은 서로 갈등을 화풀이로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써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의사 소통이 개선됨으로써 갈등이 줄어들어가기 시작했고 이후부터는 편두통을 아직도 몇 개월 동안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음을 부인의 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A부인이 이후에 계속해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생각과 행동이 수정되어 대인관계에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알고 싶으신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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