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인성(성격) 분석과 치료 1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일반 사람들에게 심리치료(psychotherapy)라는 말이 생소한 낯선 단어가 아니고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말로써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심리치료라는 말은 1892년에 런던에서 개최된 제 2 차 국제 심리학 총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가는 밝히고 있다(Ellenberger, 1975). 심리학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이 증가하게 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이 연구를 하면서 서로서로 연구들을 나누고 교환의 필요성 때문에 첫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제1차 국제 심리학 총회는 1889년에 파리에서 개최) 후부터는 3년-4년 마다 한번씩 국제 심리학 총회가 개최되어지게 되었다.
제 2차 총회에서 등장하게 된 특이한 사건은 네절란드의 헤이그에서 프랑스의 낸시 학교(최면 학교)를 방문하고 영향을 받아서 최면 치료를 하고 있던 의사이자 시인인 에덴(Eeden)과 렌트게르헨(Renterghem)이 최면 치료를 포기하고 심리치료라는 간판을 걸고 심리치료를 시작한 것이 최초의 등장이었다. 그들은 심리치료라는 말을 “마음에 의한 몸의 치료”라고 정의를 했다.
이 시쯤에서 프로이트와 브로이어(Breuer)가 공동 작품으로 1895년에 “히스테리아에 대한 연구”라는 책을 출판을 한 것이 정신분석의 탄생으로 기록되었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2명의 환자는 최면으로 그리고 최면에 걸리지 않는 2 명의 환자들에게는 최면과 유사한 방법으로 치료를 하게 된 것이 정신분석의 탄생이었다. 이후에 프로이트는 최면을 완전히 포기를 했다. 그 시쯤에서 이미 최면 치료는 과거의 잊어버린 기억의 회복으로 과거의 사건에 관계된 심리적인 상처의 핵심 감정들을 말로써 표현하는 카타르시스 효과라는 것이 거의 밝혀져 있었다.
프로이트는 과거의 기억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무의식으로 접근해 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을 해냈다. 그것이 바로 자유연상의 기법과 꿈 분석이었다.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져 갇혀 있는 마음의 상처를 의식으로 끌어 올려서 그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개발되어지면서 20세기 초반기에 등장하게 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전 세계로 산불처럼 펴져나갔다. 그 증거로써 1900년에 꿈 해석의 등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곧 에들러와 스타켈 등의 제자들이 몰려들어서 정신분석 학회가 조직이 되었다. 1908년에는 살츠부르그에서 제 1 회 국제 정신분석학 총회가 열렸다는 점과 그리고 1909년에 미국 클라크 대학에 창립 기념일에 프로이트와 융이 초빙을 받아서 정신분석에 대한 강의를 했다는 것이 그 증거로써 이미 1910년경에 정신분석의 전성기가 열리게 되었다고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기술을 하고 있다.
이 시쯤에서 정신분석은 전 세계에서 주목 받는 신경증의 치료 이론으로 치료 기법으로 널리 알려지고 그 이론적 기반이 단단하게 개발되어져 갔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질병의 연구와 치료 기법의 개발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신경증의 치료에만 국한 시켰다. 그 이유를 정신증 환자들 즉 정신분열증, 편집증, 조울증, 망상증의 경우에는 전이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치료가 정신분열증과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치료로서 사용되어지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제자들에 의해서 많은 연구와 치료의 진화를 기다려야 했다. 프로이트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영국으로 망명을 한 시점에서 영국에서 정신분석학의 씨앗이 뿌려지게 되었고 영국에 망명한 프로이트의 제자인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에 의해서 소아 정신분석으로 유아 정신증(자폐증을 포함)과 편집증과 정신분열증에 대한 연구와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들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서 개발된 치료와 이론이 대상관계 이론의 등장이다.
비슷한 시기인 1933년에 독일의 정신분석가인 윌헤름 레이크(Wilhelm Reick)가 “인격, 인성(성격) 분석(Character Analysis)”이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분석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정신분석 치료를 확대 하면서 신경증의 치료에서 인격, 인성(성격)에 대한 치료의 필요성과 정신분석의 저변 확대를 강조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이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를 하면서 신경증 환자들이 순수한 신경증 증세보다는 인격, 인성에 대한 문제들이 드러나게 되면서 점점 신경증적 인격(성격)(neurotic character)라는 말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격, 인성에 대한 치료 이론으로 개발되어져 갔다.
또 한 갈래는 1938년에 미국의 정신분석가인 아돌프 스턴(Adolph Stern)이 신경증 환자들보다는 심각하고 정신증 환자들보다는 덜 심각한 신경증과 정신증의 중간 지역에 있는 환자의 치료라는 이름으로 보드라인 장애(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말을 신조어로 등장시켰다. 그 시점에서 프랑스의 작가 겸에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 폴 싸르트르가 “구토”라는 소설을 발표한 것이 새로운 인격, 인품 혹은 자아 장애로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싸르트르는 구토의 주인공 R군이 늘 가던 카페에서 어느 날 익숙한 카페가 낯설게 느껴지는 방향 감각의 상실과 메스꺼움,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느낌들을 표현한 것이 과거의 신경증과는 다른 그리고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증과는 다른 새로운 심리적인 장애의 등장을 발표를 한 것이었다.
낯설게 느껴지고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 자아의 장애는 이후에 1950년에 프로이트의 제자인 에릭슨이 주체성 혼란으로 자아 장애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청소년기의 장애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 이론은 시카고의 정신분석학자인 코호트(Kohut)에 의해서 자아 장애 치료와 자아 심리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1970년 대에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학자인 컨버그(Kernberg)가 정신장애의 분류를 신경증 그룹, 정신증 그룹 그리고 그 중간에 보드라인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장애의 분류를 3 그룹으로 세분화 시켰다. 여기에서 보드라인 그룹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1980년에 미국 정신의학 학회에서 매년 10년마다 정신장애에 대한 분류를 수정하고 보완해서 재 분류하는 DSM-Ⅲ(제3차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달 분류 지침서)에서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학자인 건드슨(Gunderson)에 의해서 자아 장애, 인격(인성) 장애 그리고 브도라인 장애들을 한데 묶어서 통합된 용어로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라는 말로써 10개의 성격장애로 통합되고 분류되어져서 사용하게 되었다.
인격, 인품, 인성 혹은 성격 장애자들은 신경증 환자들보다는 심각하다는 점에서 신경증 치료 이론으로써 치료되어질 수 없다는 이유로 새로 등장한 대상관계 이론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1950년대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실험실에서 직접 실험 관찰로써 등장한 마가레트 몰러(Margaret Mahler)의 ego 심리학의 등장으로 인격, 인품의 장애자들이 치료를 받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인격, 인품 장애들은 신경증 보다는 치료에서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이론적인 견해가 더욱 더 복잡하다 그러나 정신분열증 환자들 보다는 쉽다는 점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사고와 감정이 유아기 상태로 퇴행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더 많은 치료 기술이 필요하다고 보면 된다.
보통 신경증 치료는 프로이트가 1주일에 3회 이상으로 1회기 당 1시간으로 카우치에 누워서 최소 3년 - 최고 5년 정도로 치료를 하는 것으로 이것을 정통파 정신분석 치료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격, 인품, 인성 장애는 정신분석 이라는 이름 대신에 정신분석 심리치료 혹은 역동적 정신 치료 혹은 집중적 심리치료라는 이름으로 1주일에 1회로 1시간 혹은 2시간의 치료 회기로 치료자와 환자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치료를 하는데 6년-7년 정도로 치료에 시간이 걸린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의식의 의식화라는 치료 기법 보다는 어린 시절에 발달 단계에서 자아의 결함의 분석과 그 결함을 수정하고 새로운 건강한 자아의 형성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즉 성격의 결함을 고치고 새로 배우고 관계를 하는 방법과 의사 소통과 감정 표현 방식을 다시 재 개발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심리적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한다. 심리적인 문제는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된다. 심리적인 문제는 병이 아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면 멀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의 발상은 조선시대적인 농경 시대의 사고 발상이 아닌가? 지금은 21세기로 하루하루 세상이 변해가는 급속도의 과학 문명의 발전으로 그리고 부부가 맞벌이 시대로 자녀들이 1명-2명으로 유아기 때부터 영아원과 유아원에 맡기는 것이 보편화 되면서 또한 영아원, 유치원 시절부터 각종 학원에 학습을 하는 과외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삶이 복잡해지고 스트레스가 가중되어져서 어린 시절부터 심리적인 문제들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다 인터넷 게임과 휴대 전화 등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면서 심리적인 문제들이 더욱 더 복잡하게 되었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들 즉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배 고픔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북한의 경우는 제외). 그러나 자녀들이 게임에 매달려 있거나 대인관계가 잘 되지 않아서 그리고 동료들과 갈등으로 자주 문제를 일으키거나 외톨이로 혼자서 지내는 자녀들이 점점 늘어나서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이미 상식화 되어버렸다.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거나 자퇴를 하는 중, 고교 생들이 늘어나고 폭력적이고 폭발적인 행동에 부모가 컨트롤할 수 없는 자녀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신경정신과의 약물 치료 혹은 한의사의 약물 치료로 별로 효과가 없는 장애들이 인성, 인격 장애로 새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은 젊은이들 특별히 중, 고등학교 학생들 혹은 대학생들 중에서 전교에서 몇 등을 하던 인재들이 대학에서 휴학을 하고 복학을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방 안에 콕 처박혀 두문불출로 가족들과 대화를 거부하거나 밤과 낮이 거꾸로 되어서 밤에만 활동을 하고 낮에는 잠만 자는 부엉이 족속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속수무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이 사회 생활에서 일으키는 사건들이 이미 문제시 되어버린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군대 생활에서 관심 병사들이 늘어나고 있고 (군인들의 약 20%가 관심병사라는 신문 보도) 따돌림과 구타와 폭력으로 총기 사고가 늘어나고 있고 학교에서는 왕따 혹은 학교 폭력이라는 문제들이 등장을 하고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혼밥족(혼자서 밥을 먹는 학생들) 혹은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학생들이 그리고 등교 거부로 검정고시를 하겠다는 학생들(영재로 월반은 제외)이 늘어나고 자퇴로 집에서 놀고 있는 무방비 학생들이 20만 명을 넘어간다는 통계 보도 등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중요한 것은 신경정신과를 찾거나 한의사를 찾아서 치료를 받아 보고 나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인성, 인격 문제의 치료에 대한 전문가의 양성과 치료가 성공적인 결과를 보고 하고 있고 이제는 신경증 치료에서 인성, 인격 장애(성격장애)의 치료로 그리고 정신분열증의 치료로 확대되어졌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것에 대해서 무지하고 모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심리학의 전도사 역할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치료자는 30년 전에 미국에서 이러한 심리치료에 대한 공부를 10년 동안 공부해서 귀국에서 25년 동안 대학 강의와 심리치료를 병행을 하면서 인격, 인성, 인품 장애 즉 성격장애에 대한 심리치료 홈 페이지를 3개나 운영하고 있다. 첫 번째는 성격장애 치료 홈페이지(http://www.therapistkim.pe.kr/newfile1.html), 두 번째는 성격장애의 정신분석 심리치료 홈페이지(http://www.disorder119.pe.kr/), 세 번째는 자아(인격) 장애 홈 페이지(http://www.psytherapist.pe.kr/), 그리고 네 번째는 보드라인,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해리 장애의 홈 페이지(http://www.borderline119.pe.kr/)을 운영하면서 많은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
아래의 치료 사례의 소개에서는 다양한 인격, 인품,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치료 사례들과 그들의 증세와 특징들과 그리고 어떻게 치료가 진행되어지고 있는가?를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로 하기 바란다.
대상: 40대 초반의 대학 교수 A씨
증세: 우리나라의 최고의 명문 의과 대학병원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xxx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 과장으로부터 약물 치료와 그 정신과 소속 심리치료사로부터 7년 동안 우울증으로 약물과 심리치료(약 2년간의 목회 상담 심리치료)를 병행해서 받았으나 치료 결과에 불만족한 부인의 추천으로 치료자를 찾게 되었음
접촉: 인터넷에 치료자의 우울증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치료 사례들을 읽어 본 부인의 추천으로 치료자를 찾아 오게 되었음
진단: 심한 우울증이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으나 조울증 관계 약물을 복용해 왔었고 약물 치료 효과에 불만족으로 최근에 약물을 끊었음, 보드라인 성격장애로 진단.
치료 기간: 6개월 간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3회씩 (1회기에 1주일에 2시간으로 월, 수, 금 요일) 치료 회기로 심중적인 심리치료를 시작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과정은 A씨가 치료를 시작한지 제 2회 치료 회기(4 시간의 치료)에서 드러난 그의 7년 동안의 약물과 심리치료의 헛점을 분석하고 앞으로 치료자 한데서 받게 될 치료 계획과 치료에서 핵심 초점을 소개한 것이다. 4시간의 이 분석에 A씨는 전적으로 치료자의 분석에 동의를 표시하고 이제 희망이 보인다고 적극적인 치료 동기 의식을 보여 주었음
치료의 과정
A씨는 반 바지 차림으로 소탈해 보이고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찍하게 털어 놓았다. 올해 9월부터 그는 연구년(안식년)으로 1년 동안 대학으로부터 휴가를 받아서 강의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오로지 그 자신의 문제에 몰두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현재 그는 휴식 기념으로 xxx 산 기슭에 텐터를 한 개 쳐 놓고 혼자서 그곳에서 지내는데 주말에는 사람들로 분주하지만 주중에서는 조용해서 좋다고 말을 하면서 지금의 문제는 너무나 "공허하고, 외롭고, 사는 것에 즐거움이 없다"고 말을 했다. 한마디로 살고 싶지 않는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그의 부인과 이혼을 한 상태이고 이혼한 지는 3개월 정도 되었고 이제는 다시 재 결합을 할 생각이 들어서 부인이 친정 어머니 한데로 갈려고 하는 것을 아파트를 한 개 사줄 터이니 친정 어머니 한데로 가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는데 정작 부인은 남편이 심리치료를 받아서 호전이 되면 그 때가서 다시 재 결합을 고려해 보겠다고 결정을 미루어 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7살된 딸이 한 명이 있고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로 딸을 관리하기가 어려워서 친정 어머니 한 대로 가려고 하는 것 같으며 만약에 부인이 딸을 데리고 친정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다시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부인에게 아파트를 한 개 사주겠다고 해서 지금 붙잡아 놓은 상황이라고 그의 현재의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A씨의 과거의 역사
A씨는 치료자와 치료가 시작되면서 "선생님, 나는 심리치료 경험이 10년 정도 됩니다."라는 말에 치료자는 깜짝 놀랬다. 나는 그 말에 처음에 A씨가 심리치료사라고 생각 되었다. 심리치료사로써 자신을 치료 받으려고 온 것으로 알고 다시 심리치료 경험이 10년이라고 했는데 지금 심리치료를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그 자신이 심리치료를 받은 경험이 10년이라고 다시 정정을 해서 말을 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서울 대학에 응시를 했으나 낙방하고 재수와 3수로 다시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xxx 대학에 들어가서 1년을 마치고 군대에서 복무를 끝내고 대학에 복학을 하기 전에 어학 연수로 미국의 동부 지역에 6개월간 연수를 갔다고 미국 유학을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복학해서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L.A.에 사립 명문 대학 xxx 대학에 가서 석사, 박사를 7년 동안 끝내고 귀국에서 대기업에서 1년 6개월 정도 근무를 하다가 xxx 대학에 전자 공학 교수로 채용되어 지금 현재 6년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가 7년의 안식년을 맞아서 지금은 학교 근무를 스스로 멈추고 산 기슭에 텐트를 치고 혼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한국인 교회에 들어가서 교회 활동에 열심이었고 그곳에서 목사님 겸에 목회상담을 하시는 xxx 목사님에게 무료로 3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심리치료 덕분에 그는 그곳에서 석사, 박사 7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지 않았겠느냐?로 담담하게 말을 했다.
한국에 귀국 후에 그는 대기업에서 근무 중에 현재의 부인을 소개로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 식 날에 있었던 엄청난 에피소드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부인을 만나서 3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임신을 하게 되었고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 결혼에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다. 유산을 시키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종용을 했다. 그러나 그는 독실한 기독교 인으로써 유산을 반대했다. 그 때가 임신 3개월 정도로 태아를 유산, 낙태를 시키는 것을 살인 행위라고 극구 반대했고 결혼을 강행을 할 것을 주장했다. 아버지는 완강했다. 그러나 결혼 식 날에 문제가 터졌다.
그의 가족 상황: 그는 그보다 6살 많은 형님이 한분 있었고 그리고 4살 많은 누나가 한명 있었다. 아버지는 A씨가 어린 시절부터 음주와 폭력으로 가족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형님은 어린시절부터 반항아, 문제아로 학교에서 공부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하는 일에 모두 반대하는 불량 청소년이 되었고 고등학교를 겨우 야간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고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고 했다. 누나 역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형님은 이후에 끝임없이 아버지와 충돌을 했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와 형님을 폭행을 했다. 그는 아버지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점했고 아버지로부터 한번도 손찌검이나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형님으로부터 초, 중, 고등학교 때까지 폭력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형님으로부터 얻어 맞아서 앞 이빨이 4개가 부러져서 아버지에 의해서 병원으로 옮겨지고 지금은 앞 이빨이 임플란트 이빨이라고 그의 이빨을 보여주었다. A씨는 공부에 전념했고 항상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점한 탓에 형님으로부터 시기, 질투를 받아서 형님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A씨가 어린 시절부터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고 결국은 두 사람은 A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혼을 하겠다고 서로 약속을 했고 정말로 A씨가 고등학교를 졸업 하는 날에 두 사람은 정식으로 이혼을 했다. 아버지는 지금 현재 1000억대의 부자로 혼자서 살고 있고 아버지는 자수 성가한 사람으로 부동산, 중고 자동차 판매, 동대문 시장에서 천막, 텐트, 등산 장비 등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다가 돈을 벌어들인 사람으로 지금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은 고리채 사업(A씨의 표현)를 하고 있으면 엄청난 돈을 모은 사람으로 돈을 모으는 일밖에 모르는 수전노, 노랭이(A씨의 표현)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모았지만 정작 돈을 쓸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버지를 혹평했다.
아버지는 돈이 생기면서 외도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어머니와 갈등의 불씨가 되어 화가 난 어머니가 맞불 작전으로 어머니도 역시 바람을 피워서 아버지와 삼촌에게 모델 현장에서 어머니가 외간 남자로 간통을 하는 것을 적발해 내고 그 후 어머니는 위자료 한푼 받지 못하고 자기 발로 집에서 쫓게 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술술 거침없이 이어나갔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귀국 후에 어머니와 둘이서 살 게 되었고 결혼의 날짜가 잡히고 결혼식이 다가오자 아버지의 반대 속에 형님이 그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찾아와서 협박으로 결혼을 포기할 것을 위협을 하게되자 어머니가 A씨에게 아무래도 너의 신변이 위험하니 혼자 집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는 혼자서 나와서 살 게 되었는데 정작 결혼 식 날에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 A씨는 결혼식날에 형님이 A씨의 친지들에게 전화로써 결혼 식이 취소되었다고 연락을 해서 결혼 식장에는 A씨의 가족은 어머니 한 사람 뿐이었다고 했다.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신랑과 신부가 주례 앞에서 서서 주례사를 듣고 있는데 난데없이 입구 쪽에서 A씨의 이름을 부르면서 "xxx 개 새끼야! 이 결혼 식은 무효야!" 하는 고함 소리가 들렸고 주례 쪽을 쳐바고고 서 있는 그에게 달려온 형님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서 결혼 식장은 난장판이 되었 버렸다고 했다.
결혼 식장에 참석한 축하객들을 깜짝 놀라서 신랑인 A씨한데 버림받은 어느 여성이 자신을 버리고 비밀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알고 그 여성의 오빠가 결혼 식장에 와서 깽판을 놓는 것으로 알았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형님과 맞붙여서 형님을 죽이려고 달려 들었으나 신부측의 부모님의 만류로 다른 곳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아버지와 형님과 관계를 끊어 버리고 7년 동안에 한번도 전화나 접촉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 사건 이후에 인터넷에서 심리치료를 알아본 부인의 추천으로 우리나라의 명문 의과대학 대학병원에 정신과 과장이었던 xxx 박사님에게 약물 치료와 그 정신과의 부족 심리치료사인 xxx 박사의 심리치료를 1주일에 1시간씩 최근까지 7년간을 받아 왔었으나 얼마 전에 그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 A씨는 부인과 7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불만족을 이야기를 하면서 부인과의 이혼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결혼 7년 동안에 두 사람의 관계는 대단히 좋았다고 했다. 그들은 결혼 초반기에는 주말이되면 두 사람이 가까운 해외 즉 홍콩, 필립핀, 중국, 싱가폴, 태국 등으로 여행을 자주 다녔고 우리나라의 이름난 곳은 자주 주말 여행으로 가보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진작 부인은 섹스 시에 섹스를 거부해서 A씨는 괴로웠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7년 동안 부부 생활이 유지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부인은 술을 마시면 섹스 문제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자주 술을 마시게 되면서 최근에 부인은 1주일에 4일-5일을 하루에 소주 1병씩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장인 어른은 술 때문에 암으로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부인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섹스 시에 통증으로 섹스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치료를 받아보지 않았으냐?는 질문에 그는 그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xxx 심리치료 사에게 부인이 3번을 방문하고는 심리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섹스 문제 이외에서 부인은 A씨를 모욕하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동으로 A씨가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번은 A씨가 TV를 보면서 땅콩을 먹고 있는데 부인이 다가 와서 그가 먹는 땅콩을 쓰레기 통에 집어 쳐 넣어 버리는 일이 있었고 이러한 사건들이 한번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남편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는 행동에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월 달에 부인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가 xxx 연극 공연을 보고 싶으니 그 연극을 보고 오겠다고 허락을 받아서 연극을 보고나서 6시 경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인이 A씨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짐을 싸는 것을 보고 "무슨 이유로 짐을 싸느냐?"고 물어보아도 아무 말이 없는 것에 분노해서 그가 노발대발로 차라리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짐을 싸서 집을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그 이후에 지금까지 그는 다시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것이 이혼으로 연결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부인에게 왜 그날 집을 나가려고 했느냐?라고 물어 보았을 때 부인은 대답이 걸짝이었다. "그냥 한번 땡깡!(난폭하게 성질을 부리는 것을 표현한 말)을 부려본 것이었다!"라고 하는 대답을 들었다고 어이가 없어 했다.
그 이후에 그는 두 가지의 이유로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를 했다. 첫 번째는 섹스의 거부였고 두 번째는 남편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부인의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더 붙여서 이 두 개의 요소들은 법정에서 이혼의 요소로 충분 조건이 된다고 강조를 했다. 부인은 이혼에 반대를 했다. 그러나 그는 부인이 반대하면 법정으로 소송으로 가겠다고 맞섰다. 결국 부인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A씨는 지난 1월 달에 그 사건 이후에 지금까지 혼자서 원 룸에서 혼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혼 이후에 연구년(안식년)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 않고 휴식을 하면서 공허감, 외로움이 몰려오게 되자 다시 부인과 결합을 생각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부인이 반대로 부인은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접한 후에 A씨에게 치료자를 만나서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제의를 했고 만약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아서 A씨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때 가서 재 결합을 고려하겠다고 조건을 붙였던 것이고 A씨는 치료자를 찾아 오게 되었다고 지금까지의 그의 이야기들을 일사천리로 이야기를 술술 해 나갔다.
세 번째 에피소드: 그는 결혼 전 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이후에 어머니가 암 수술로 병원에 가게 되면서 그에게는 한 마디로 없이 이혼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을 시킨 점에 분노했다. 아버지와 이혼을 한 상태에서 왜 그에게 한마디도 상의 없이 아버지 한데 도움을 요청했느냐? 라고 이후에 어머니에게 물어 보았을 때 어머니는 A씨가 돈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듣고 이 이후에 어머니와 관계도 완전이 단절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그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보살펴줄 충분한 돈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고 그렇게 원수처럼 사이가 나쁜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에 모욕감을 느낀 것 같았다.
최근의 상황: 그는 지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과 7년동안 관계를 단절하고 전화 한 통화도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는 부인과 이혼으로 7살된 딸과 부인을 잃어 버렸다. 그가 지금 하소연하고 있는 문제는 "공허함", "허무함", "외로움", "삶에 의미를 느끼지 못함"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림" 이라고 그 자신의 지금 현재의 문제를 표현을 했다. 치료자는 그에게 그가 7년 동안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으로 받았는데 병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우울증은 분명한데 그 신경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에게 조울증으로 다시 중간에 변경을 해서 조울증 약물인 "리디움"(Lidium)을 최근까지 복용하다가 지금은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그 신경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찾아 가서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중단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치료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는 부인이 처음에 추천한 xxx 대학 병원 신경 정신과와 심리치료사에게 7년동안 치료를 받아 왔으나 그 치료사 선생님들과 무엇인지 모르게 서로 핀트가 맞지 않은 것 같으니 이번에는 치료자 한데 가서 심리치료를 받아 보든 것이 좋겠다는 부인의 추천에 그가 치료자를 찾아오게 된 것이라고 지금까지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했다.
7년 동안 정신과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치료자는 A씨에게 7년 동안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하면서 어떤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이 드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뚜렷하게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도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긍정적인 생각에는 치료자도 동의를 했다. 치료자는 더 붙여서 물어 보았다. 그런데 지금의 A씨의 상황은 아버지, 어머니, 형님과 관계가 단절되었고 결국 부인과 7살된 딸과의 관계 단절로 나타난 것을 지적을 하면서 분명히 약물 치료는 제외한다고 해도 7년 동안의 심리치료는 무엇인가? 핀트가 맞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자 A씨는 그제서야 분노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그 전문가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치료에 효과가 없는 것으니 그만 두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지적을 했다. 그 심리치료사 한데서 치료 비용을 얼마나 지불했으며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는 시간 당 6만원으로 심리 역동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정신분석 치료로써 그냥 자신의 생각들과 현재의 고통들을 이야기로 표현을 해 온 것으로 A씨는 그것이 심리치료의 전부 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그의 상황을 보면 한가지도 문제가 해결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해소되어 삶에서 즐거움과 자신감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현재의 문제가 "공허함, 외로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림"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것은 우울증의 특징임을 알 수 있었다. 한가지 눈에 띄는 효과는 A씨가 "자신의 문제점을 술술 숨김없이 털어 놓는 것"이었다. 치료자가 그것을 지적을 했을 때 그는 처음에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갔을 때는 제대로 자신을 표현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현재의 느낌들과 자신의 문제점을 솔찍하게 털어 놓는 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한가지도 해결된 것이 없고 오히려 관계가 모두 단절 되어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그에게 그 심리치료사 선생님께서 어떤 치료 목표로써 치료를 하고 있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은 심리치료사 선생님은 목회 상담사로써 기독교에 바탕을 둔 심리치료였고 그리고 그는 그 치료사 선생님이 시키는 데로 한 것 뿐이고 무엇을 해결하려는 목표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그녀 심리치료는그렇게 하는 것인줄 알고 그냥 치료를 받았던 것이라고 했다.
A씨의 문제점 분석과 앞으로 치료에서 초점을 맞출 치료 계획
치료자는 A씨에게 치료자의 치료 방식을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로써 정통 정신분석에서 문제 해결 쪽으로 초점을 맞춘 치료임을 강조를 했다. A씨는 신체적으로는 나이에 알맞제 성숙, 성장을 했으나 그리고 지식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공부, 학문적으로 성장, 발달을 해서 그 부분에서는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말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부분,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부분,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부분, 갈등이 생기면 끊어 버리고 단절로 나는 부분들이 유아기 상태로 머물러 있어니 이 부분에 성장이 중지된 자아의 결함들을 수리하고 수정하고 성장을 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단 그렇게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을 예고를 했다. 그는 그것들이 해결되어질 수 있을찌?에 대해서 의문을 표현을 했다.
치료자는 A씨에게 조금 전에 지적한 부분들은 부모님과의 양육의 과정에서 결함이 생긴 부분으로 A씨는 부모님의 결함적인 양육 때문에 살아 남기 위해서 부모님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살아 남을 수는 있어지만 그가 자아 소멸을 막기 위해서 방어를 사용한 것(복종, 부응, 착한 아들) 때문에 성인이 된 지금은 아버지, 형님, 어머니에게 한번도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A씨도 시인을 했다. 치료자가 왜 형님이 결혼 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그 심리치료사 선생님과 그 문제를 분석한 것을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의 복심을 읽은 형님이 아버지의 분노를 대신해서 그에게 복수로 화풀이를 한 것임을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분명했다.
그는 형님은 37세까지 아버지가 결혼을 하라고하는 것에 반대해서 만약에 아버지가 동대문 시장에 등산 장비 점포를 자신에게 넘겨주면 결혼을 하겠다고 졸라서 그가 그 점포를 인수하고 결혼을 했고 1000억대의 돈을 가진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그가 유산을 물러 받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A씨가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A씨에게 그런 행동을 한 형님과 아버지에게 A씨 자신의 분노, 억울함, 모욕과 수치심을 직접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그는 한번도 아버지, 형님, 어머니에게 자신의 내면의 고통,분노, 적대 감정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만약에 그가 지금도 형님,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칼로 그들을 찔러 죽일 것 같아서 직면을 하기를 피했왔다고 했다.
치료자는 A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분노, 적대 감정, 노여움를 보라고 지적을 했다. 당장 내일 찾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말로써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고 우선 A씨의 내면에 있는 분노, 적대감정, 미움을 끄집어 내서 풀어 내고 감정이 어느 정도 빠져 나가면 자신의 분노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부모님, 형님 앞에 나가서 자신의 마음을 말로써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아버지, 형님, 어머니의 문제들을 직면해서 뚫고 나가서 갈등을 해결하고 그들과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이 치료의 핵심임을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A씨는 그가 xxx 지금 현재의 직장에서 근무를 할 때 아버지와 유사한 직장 상사에게 분노해서 참다가 참다가 마침내 폭발을 해서 걸상을 들고 그 직장 상사를 내리 찍으려고 했던 경험을 이야기를 했다. 그 시점에서 그 원로 교수님이 걸상을 들고 그를 만류해서 조용하게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 대학에 머물고 있게 되었을지만 만약에 그 교수를 걸상으로 찍었다면 그는 해고되어 지금쯤은 그 대학에 근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A씨에게 부인과 사소한 갈등이 결국은 집을 나와서 이혼으로 연결된 것을 지적을 했다.그러자 A씨는 부인이 자신에게 1년 중에 10개월은 무난한데 당신은 2개월 정도가 폭발적인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했다.
그는 반신반의로 형님과 아버지에게 그러한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는 아버지를 냉혈 동물, 피도 눈물로 없는 파렴치한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 노랭이로 그리고 형님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거부하는 쓰레기로 표현을 했다. 치료자는 그가 아버지와 형님에 대한 분노, 미움, 적대 감정을 지적을 했다. 그는 그것을 인정을 하면서도 그는 그러한 인간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만 분통이 터지고 대화가 되지 않고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소 귀에 경 읽기"가 아닙니까? 하고 반문을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아버지, 형님, 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을 하는 것을 아버지, 형님을 바꾸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A씨 자신의 자아를 위해서 하는 것임을 지적을 했다. 그러한 이유로 피해 온 결과는 A씨는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을 즉 자신의 분노, 미움, 적대 감정 즉 A씨 자신의 내면 감정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을 해서 관계가 단절로 이어진 것을 지적을 했다.그것은 부인과의 7년간의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임을 지적을 했다.
갈등을 피해서 결국은 관계 단절로 지금 A씨 자신의 처지가 고립 무원이 된 것을 지적을 했다. 부모님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자기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는 쓰레기 같은 형님을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치료자는 인간은 100% 완벽한 사람도 없고 100% 나쁜 악인도 없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단지 단점이 장점을 압도해서 단점이 좌지우지하는 사람이지만 그들로 내면에 보면 약간의 좋은 점은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A씨는 형님은 아버지의 등산장비 점포를 인수를 해서 지금은 그는 잘 살고 있다고했다. 치료자는 그러한 사람들의 단점을 가진 자아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장점의 자아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한 것은 형님, 아버지,어머니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마음이 어떻게 즉 내 자아가 어떻게 작동을 하는가?를 배운 후에 그러한 사람들의 자아와 대화를 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 치료의 일 부분임을 지적을 했다.
더 붙여서 치료자는 인간의 내면 마음 즉 자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자아는 우리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얻은 경험들의 총합이 자아임을 강조했다. 이자아는 유아기 자아, 학동기 자아, 사춘기 자아, 성인기 자아, 노년기 자아 등으로 집합으로나눌 수 있고 그 자아는 나이에 따라서 성장, 발달, 성숙해 나가는 것으로 신체적 발달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성숙해 나지만 정신적 자아는 성장이 멈추거나 발달이 지연되거나 발달에 결함이 생길 수 있고 A씨의 경우에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기 주장, 대인관계 갈등,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자아에 결함으로 이 자아가 유아기에서 성장이 멈추었기 때문에 다시 그 자아로 되돌아 가서 그것을 수정하고 다시 발달을 시키는 것이 치료자가 하는 심리치료의 과정임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러한 치료자의 지적에 대해서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다시 재차 물었다. 치료자는 그것은 단 시일에 가능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끝없는 훈련이 필요하고 치료의 과정에서 과거의 상처들과 부모님과의 양육의과정이 치료에서 재연되어지고 그것을 다시 잘못된 것을 수정해서 바로 고치는 작업이 치료의 과정으로 고로 심리치료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앞으로 치료는 부인과 갈등 관계, 아버지, 형님 그리고 어머니와 갈등들을 풀고 관계를 다시 연결해서 복원을 하고 A씨 자신의 내면에 쌓이 분노, 적대감정, 미움 등을 토해내고 마음을 수리를 하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심리치료의 목적은 우리의 내면 마음 속에 있는 상처를 딲아내고 씻어내고 수리를 해서 끊어진 관계들을 복원하고 다시 원위치로 되돌리는 작업이고 여기에서 다시 내 경험의 폭을 넓히고 관계를 확대해서 삶의 경험들을 넓게 만들어가는 삶의 과정임을 지적을 하자 A씨의 반신반의하는 의문이 A 씨의 만족스런 표정으로 바뀌면서 그가 치료자의 치료 방식이 마음에 흠족하게 마음에 와 닿아서 앞으로 희망이 보이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만족해하면서 다음 치료 회기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표현으로 치료실을 나갔다.
A씨는 그 다음 주일부터 1주일에 5회(월, 화, 수, 목, 금)로 2시간씩 1주일에 10시간씩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요구를 했다. 그 다음 제 5 회(치료 10 시간)에서 A씨의 대인관계 패턴이 분석되어졌다. A씨의 대인관계 패턴을 상세하게 알고 싶은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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