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나요? 2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7. 4. 11. 05:26

정신분열증(조현병)이 치료될 수 있나요? 2

 

우울증과 조증은 고대로부터 등장했지만 정신분열증은 고대와 중세에는 없었던 정신병이었다. 우울증의 역사적인 흔적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을 하고 있다. 2명의 자녀를 가진 아폴로의 부인 리토(Lito)에게 14명의 자녀들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하다가 리토의 처벌로 14명의 자녀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돌로 변한 니오베(Niobe)의 인물에서 그녀의 돌로 변한 표정이 없는 얼굴의 묘사에서 우울증의 기록을 찾고 있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The Iliad)에서 아가메몬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면서 조증(mania)를 사용하고 있다. 조증이라는 mania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분노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어의 mania는 영어로 분노(wrath)이다(Georgotas & Cancro, 1988).


정신분열증은 현대 사회의 부산물로 본다. 정신분열증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반기에 등장을 했다. 정신분열증은 1898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크레펠린(Kraepeline)에 의해서 편집증으로부터 분리되어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 라는 이름으로 등장을 했다. 정신분열증의 발병은 주로 사춘기에 등장을 했기 때문에 젊은이가 치매와 유사한 정신혼란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독일어로 조발성 치매로 등장하게 되었다(Ellenberger, 1970).


 그러나 젊은이들의 치매가 아니다 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세계에서 최초로 1860년에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유럽에서 제일 먼저 대학 정신병원인 부르고졸리(Burgholzli) 정신병원을 세워서 정신과적인 질병의 연구를 시작했던 윌헬름 그레이싱거(Wilhelm Griesinger)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부르고졸리 대학정신병원의 제 3 대 총장이었던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 10년 동안 부르고졸리 대학정신병원에서 조발성 치매 환자들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1911년에 출판한 저서에서 조발성 치매가 아니고 정신분열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을 하게 되었다. 정신분열증이라는 schizophrenia라는 용어는 분열이라는 그리스어의 schizo라는 말에 마음이라는 그리스어 phren에다 질병(illness)라는 그리스어가 조합으로 마음, 정신이 분열이 되는 질병이라는 말이 탄생을 한 것이다(Ellenberger, 1970). 블루러(Bleuler)의 정신분열증이라는 신조어와 그의 4가지 증세기술들의 특징은 지금도 기초적인 진단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즉 연상(사고과정의 분열(association), 양면가치들 즉 모순의 분열(ambivalence), 감정(affect)의 분열 그리고 내면 세계로 철수(autism)라는 영어의 첫째 글자들인 A자를 따와서 4 A로 통용되고 있다(Bootzin et al, 1980).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분열증 대신에 조현병으로 마음의 여러 가지 기능들이 현악기의 현들이 서로 조율로써 조화를 이루지 않고 분열되어져서 따로따로 제각기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조현병으로 사용되고 있다.


쥬리히의 부르고졸리 대학 정신병원에서 치료 국장으로 있던 칼 융(Carl Jung)이 프로이트의 꿈 해석(1900)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프로이트에게 서신을 보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매료되어 비엔나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룹에 가담을 하면서 정신분석학이 부르고졸리 대학병원의 블루러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수용이 되어 대학 정신병원의 모든 스텝들이 의무적으로 정신분석학의 학습에 열기를 보여준 일화는 유명하다(Ellenberger, 1970). 이후에 융은 스위스 정신분석학회 회장으로 그리고 국제 정신분석학회 초대 회장으로 활동을 했지만 정신분석 이론들을 문화와 종교적인 분야로 확대 너무 광범위 하게 확대 해석을 하게 되면서 비엔나 그룹과 스위스 그룹의 갈등으로 1913년에 융 학파는 비엔나 그룹과 결별하고 말았다.


정신분열증의 치료에 정신분석학의 응용은 많은 연구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정신증(편집증, 조울증과 정신분열증, 성격장애)에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신경증 치료에만 사용할 것을 강조를 했다. 그 이유는 정신증에서는 전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정신분석학을 개량하고 개선해서 이론적인 수정을 가하게 되면서 정신분열증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핵심 인물이 프로이트의 제자로써 비엔나에서 1923년에 영국으로 소아정신분석학을 강의를 초대받아서 영국으로 건너가서 귀화하게 된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이다. 그녀는 소아 정신증 어린이들을 치료를 하면서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꿈 분석 대신에 놀이 치료를 고안해서 유아들의 상상의 세계를 정신분석이라는 마음의 현미경으로 소상하게 밝혀내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그의 이론을 프로이트와 다른 이론으로 편집성-자아분열 유형과 우울한 유형이라는 신조어로써 자아(ego)는 출생 시부터 작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ego의 분열과 쪼갬에서 시작해서 통합으로 자아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기술한 유형 혹은 위치(posi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ego의 발달 위치가 어디에서 머물러 있는가?를 기술하면서 편집증, 정신분열증 그리고 성격장애의 치료에 길을 열어 놓게 되었다. 그녀의 제자로써 정신증 연구에 참석을 하게 된 세 사람의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정신분열증에 대한 정신분석학의 응용이 시작되었다. 폴랜드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영국에서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획득하고 크레인 밑에서 공동 연구를 시작한 한나 세갈(Hana Segal), 독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되었으나 나치의 박해로 영국에 돌아와서 정신분석가의 자격증을 획득하고 크레인의 연구에 동참한 하버트 로렌필드(Hebert Rosenfeld) 그리고 영국의 의사 출신으로 정신 분석가가 되어 그녀에게 가담한 비용(Bion)에 의해서 본격적인 정신분석학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연구에 박차가 가해지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로써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고 분석가가 되고 나서 생물학적인 이론에서 탈피해서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셀리번(Sellvian)의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수정해서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대인관계 정신분석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프로이트 이론을 수정하게 된 신 프로이트 학파(neo-Freudian)들인 셀리번,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 독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정신분석가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온 호르니(Horney) 들이 정신분열증에 대한 연구와 치료에 착수하게 되었다.


셀리번의 제자로써 레이크만과 하놀드 실(Harlod Searles)이 미국의 체스트 낫트 롯지(Chestnut Lodge) 정신병원에서 입원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약물 치료가 아닌 순수한 정신분석적인 치료의 응용으로 성공적인 치료 사례들이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에서 정신분석가들이 정신분열증 치료에 뛰어들게 되었다.


1950년데 이후에 미국에서 정신분열증의 연구에 탁월한 이름을 올리게 된 학자들이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사무실 통원 치료를 시작을 했다. 이 시쯤에서 성공적인 치료 연구서인 정신분열증의 해석이라는 저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펜실바니아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아리에트(Arieti, 1950)를 비롯해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일 의과 대학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교수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교수인 정신분석학자 브라이스 보이어(Brice Boyces) 그리고 일리노이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지오바치니(Giovacchini) 등이 정신분열증 환자에게도 전이가 형성되어질 수 있다는 연구 논문과 저서들이 출판되기 시작을 하면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정신분석학적인 치료가 확대되고 활기를 띄기 시작 했다.


치료자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대학, 대학원, 전문의 대학원(인턴 과정)을 졸업하고 귀국해서 총 35년 동안 심리과학과 정신의학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위의 학자들의 이론들과 치료 기법들을 적용해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많이 치료를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들 중에서 대부분이 부모님들의 정신분열증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정신분석 치료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초반기에 성공적인 치료 효과를 보여주면서도 장기적인 치료를 계속하지 않아서 치료가 무산된 안타까운 경험들이 많다.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그 환자의 증세들 그 자체 즉 환각과 환청인 증세들의 그 자체를 다루지 않는다. 자아의 결함을 분석으로 찾아내고 그 결함을 다루어 나가다가 보면 환청과 환각을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정신분열증은 뇌의 이상으로 보는 신경정신과 의사들과의 약물 치료는 환청과 환각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지만 약물로써 장기간 치료를 하게 되면 결국은 감정을 죽여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무감각으로 기계적인 둔감한 사람으로 변해버리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초반기에는 약물 치료로써 환청과 환각을 제거한 후에 그 환청과 환각들의 근원을 찾아내서 그 환청의 조각들이 어떻게 서로 퍼즐처럼 맞추어지게 되었는가?를 분석으로 환자가 이해를 하도록 하면서 약물을 줄여 나가면서 자아의 결함을 수정해서 약물의 힘이 아닌 자아의 힘으로 갈등과 긴장을 그리고 감정들을 스스로 통제하고 컨트롤하도록 만들어주는 과정이 정신분열증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치료의 핵심이다. 고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근본적인 자아 수정으로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부모님들은 정신분열증의 초반기에 약물로 환청과 환각이 사라지면 치료가 다 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리고 환자가 조용해지고 감정이 무디어지는 것을 치료가 잘 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결국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스트레스와 갈등이 등장하게 되면 재발이 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약물 치료가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쯤에서는 벌써 정신분열증의 진행이 5년 혹은 10년으로 흘러가버리게 되고 자녀들은 사회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평생 동안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게 된다.


치료자는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치료를 해 본 경험으로 성공적으로 치료를 하게 된 세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 사람은 31세의 젊은이로써 그는 군대 복무 후에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두문불출로 집안에서 칩거하던 중에 그의 아파트 앞 동에서 40대 초반의 한 부인과 그녀의 10대 딸이 그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거실에서 그의 활동을 쳐다보고 감시하고 조롱하고 비웃음을 당하면서 6개월 동안 견디다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아파트의 도어문 벽에다 --xxx 같은 년!--- 이라는 섹스적인 욕설들을 스프레이로 휘 갈려 몇 번을 썼다가  계속해서 감시와 조롱과 비웃음에 참을 수 없어서 두 번이나 그녀의 도어 문에 신문지로 불을 지르려고 하다가 앞 동의 주인에게 적발되어 경찰서로 끌러갔다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청년으로 그의 아파트 거실을 훔쳐 보았다고 주장을 했던 그 중년 여성과 10대의 딸은 그 아파트에 살지 않는 그의 환청임이 드러나면서 그의 어머니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요청하게 되면서 정신분열증에 대한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는 3개월간 입원 치료 후에 퇴원해서 약물이 그의 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약물 복용을 거부하고 1주일에 3회씩 1회에 2시간의 치료 회기로 치료를 시작해서 약 2년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은 결과 약물의 복용 없이 환청이 깨끗하게 사라진 치료 사례였지만 아버지가 IMF로 사업에 부도가 나면서 치료를 지속하지 못한 안타까운 치료 사례였다.


 두 번째는 50대 초반의 부인으로 10년 동안 환청과 환각으로 정신병원에 3년마다 한번씩 재발로 입원한 정신분열증 환자로써 그녀의 아들이 불안장애로 치료자에게 6개월간 심리치료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분석 치료 4년 후에 그의 어머니가 잠에 잠을 잘 수 없는 불면증으로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의뢰하게 되면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아서 1주일에 2회로 1회기당 3시간으로 6개월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은 결과 정신분열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상처의 고통이 그녀를 정신분열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환청과 환각은 어린 시절의 상처의 부산물로써 조각조각으로 퍼즐들이 맞추어지면서 불면증과 환각과 환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 번째 환자는 27세의 청년으로 5년간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청년으로 3번이나 1달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그는 군대에서 처음으로 정신분열증의 진단으로 의병 제대를 하고 대학에 복학 후에 세 번이나 학업을 중단한 청년으로 지방에서 서울까지 3시간 30분으로 왕복 7시간의 교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시간 심리치료를 1주일에 5회씩 시간 당 2시간으로 1주일에 10시간을 그리고 두 번째 주일부터는 1주일에 1회로 3시간 분석 치료 회기를 가지게 되면서 2017 3월에 대학에 새로 입학을 해서 지금은 환청과 환각에서 해방되어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대학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조울증과 조현병으로 진단된 27세의 T


증세: T군이 군 복무 중에 처음에는 조울증으로 그리고 의병 제대 직전에는 조현병으로 진단이 되었음


진단: 조울증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되어 군에서 2달 그리고 1년 전에 한달 가량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음, 대인공포증, 회피적 성격장애로 추가 진단됨


연결: T군이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조현병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를 해서 T군의 아버지와 통화 후에 치료자에게 2기간 컨설팅을 받게 되었음


치료 기간: 컨설팅 이후에 1주일에 5일로 하루에 2시간씩 1주일에 10시간씩 집중적인 치료를 받기로 했음


치료 결과: 아래의 분석은 첫 2시간 컨설팅의 결과를 요약한 것임


치료의 과정

치료자는 며칠 전에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27세의 대학생으로 조현병으로 약물 복용을 하고 있는데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겠는지? 문의 메일이 왔고 치료자가 정신분열증은 스스로 치료를 받겠다는 자아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치료 비용과 6개월 치료 계약을 이야기를 하면서 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는지?를 설명을 하는 메일을 보내고 나서 아버지가 치료자에게 아들이 서울로 혼자 올라가서 2시간 컨설팅을 받아보고 치료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T군은 첫 컨설팅 시간인 월요일 오후 3시에 정확하게 어머니와 함께 도착을 했다. 토요일 휴대전화 통화에서 T군의 아버지가 치료자와 통화를 하면서 지방의 대 도시 xx 시에 살고 있는 T군이 서울에 있는 치료자의 사무실에 혼자서 올라와서 치료를 받겠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치료자는 T군이 혼자 올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에게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2시간을 컨설팅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별 다른 할 이야기가 없으니 그냥 밖에서 2시간의 치료 회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아들인 T군과 1시간 30분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머지 30분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드님과 같이 문제의 핵심과 앞으로 치료의 방향등을 이야기를 할 것이니 연락이 가면 치료실로 오시라고 이야기를 해서 치료실 밖으로 내 보냈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T군은 큰 키에( 190cm 정도로 보였다) 핸섬한 미남자로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이곳에는 예의 범절을 따지지 말고 그리고 말을 앞과 뒤로 가리지 말고 편안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치료자가 눈을 자주 감는데 혹시 듣기 싫어서 오해를 하지 말고 치료자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경청하기 위해서 눈을 감고 듣는데 T군도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해도 되고 뒤에 반쯤 머리를 기대고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것을 시작 전에 이야기를 하고 치료가 시작되었다.


T군은 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했다. 치료자는 사람들과 관계의 어려움이 있지 않는가?라고 물었을 때 T군이 시인을 했다. 언제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느꼈는지?를 물었을 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중학교 시절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T군은 중학교 시절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점에서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반에서 10등 정도 유지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심화 반에서 5등 혹은 6등 정도 하다가 성적이 향상되어 특수 반에 들어가서 반에서 3-4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치료자가 심화 반과 특수 반에 몇 명 정도가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T군은 20 여명 정도가 된다고 했다. 치료자가 특수 반에서 3-4등정도 라면 전교에서 3등 혹은 4등 정도가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했다.


고교 시절에는 대인관계는 일종의 시간 낭비라고 생각을 해서 T군은 공부에 전념을 했고 대학은 다른 지역에 있는 이름있는 xx 대학에 들어갔다. 그 대학은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 지방에서 온 T군이 기숙사에 들어갔다. 기숙사에는 3명이 함께 했는데 두 명은 2학년 학생들이었다. 그 시점에서 T군이 14살 위의 한 누나를 짝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를 혼자서 짝 사랑을 하다가 여름 방학 직전에 기도원에서 그 누나의 전화 번호를 알 게 되었다. 그 누나는 기독교 교인이었다. T군은 그 누나의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소개를 하면서 너무 작은 목소리여서 누나가 "네가 지금 피곤하느냐?"라고 물었고 T군이 ""라고 대답을 하면서 "누나도 잠이 오느냐?"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 후에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면서 껄끄러움을 느꼈다. 하루 이틀 이후에 누나에게 문제 메시지로 전화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나서 기숙사의 선배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면서 그들의 T군의 뒷담을 하는 것을 느끼고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아버지에게 호소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그 대학에 와서 휴학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다음 해에 다시 복학을 해서 또 다시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T군은 이번에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선배가 두 명이고 나머지 한 명은 1학년이었는데 선배와 관계보다 후배와 관계가 어려워졌다. 다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서 휴학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해 T군은 공군에 입대를 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서울에서 xx에 일을 하고 있는 누나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누나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써 T군에게 신앙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공군에 입대해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끝내고 자대에 배치를 받아서 군복무를 하면서 선임들과 갈등 관계로 힘들어지면서 선임들에게 폭력의 위협을 가하려고 한 것 때문에 대화를 하기로 하고 대화를 시도하다가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 서로 칠판에 A4 용지에 서로 글을 써서 대화를 하자고 했으나 선임들이 거부를 하는 바람에 내무반 원사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그 원사에게 T군 자신을 북한에 스파이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다.


북한은 먹고 사는 것이 어렵고 남한은 스트레스가 심한 나라임을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북한 스파이로 보내주면 자신이 김정은의 후계자가될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때 그 원사는 같이 병원에 가보다고 해서 군 병원에서 진단 결과 양극성 장애(조울증)로 진단이 나왔고 2개월 동안 병원에서 약물 복용으로 병원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슴을 찌르는 통증 때문에 병원에 호소를 했고 검사 결과 신체적 이상은 발견되어지지 않았다. 계속된 통증 때문에 퇴원 시켜달라고 떼를 썼을 때 담당 정신과 의사가 2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2주일 후면 퇴원 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2주일 후에 T군은 조현병의 이름으로 의병 제대로 군복무를 면제 받고 귀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때부터 약물은 복용을 하고 있는데 한번씩 약물을 빼 먹기도 한다고 했다. 1년을 쉰 후에 다시 대학에 2학년에 복학을 했다. 1학년 때는 전공이 없이 교양과목을 받다가 2학년이 되면서 전공을 영문학으로 선택을 했다. 이번에는 동아리 가입을 위해서 댄스 동아리에 신청을 했는데 인터뷰에서 떨어졌다. 억울해서 회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간청을 했고 들어주지 않자 학교 알림 카페에서 댄스 동아리의 부적당한 평가에 항의를 했고 회장과 인터뷰자와 T군이 대화를 가졌는데 회장과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가입은 거부되었다. 그 다음 동아리인 그 대학의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동아리를 신청을 했는데 그 동아리의 인터뷰에서 낙방을 했다.


 이후에 T군은 그 대학의 부정비리를 제보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xx 방송사에 저녁 늦게 찾아갔다. 그리고 경비원에게 방송사로 들어가도록 허락을 요구했다. 그 경비원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시비가 붙어서 옥신각신 하다가 경찰이 출동해서 파출소로 연행이 되었다. 그 파출소에서 부모님에게 연락이 갔고 부모님이 근처에 사는 친척의 집에 연락을 해서 그 친척집에 자고 그 다음 날 인근에 있는 xx 병원의 정신 병동에 2달 가량 입원을 하고 나서 집으로 복귀를 했다.


1년의 쉬고 나서 그 해 6월 달에 필립핀에 선교활동 겸에 그곳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필립핀으로 갔다. 필립핀은 기후가 덥고 습기가 찬 곳으로 그리고 필립핀은 영어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토착 언어를 배우다 보니까 어려움이 발생했다. 그 시점에서 T군은 유체 이탈을 경험을 했다. 몸 안에서 자신의 영혼이 빠져 나오는데 뚱뚱한 피부가 검은 여성이 화가 난 표정으로 자신의 영혼을 몸으로 집어 넣어 버리는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나서 한국에서 온 교회 선교 팀에 합류해서 1달 만에 귀국을 했다.


작년에 T군은 대입 수능 공부를 초기부터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작년 12월에 그의 고향에 있는 xx 대학교 화공과에 합력을 하고 2017 3월에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가족 관계를 물어 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T군은 모태 신앙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지 T군의 이름이 xx 군으로 치료자는 예수의 12제자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인 것을 보고 캐토틱 신자로 알았으나 개신교 신자라고 했다. 어머니가 전업 주부로 양육을 했고 4살 아래인 여동생이 지방의 xx 대학에 다니고 있고 셋째가 여동생으로 서울에 있는 xx 대학에 그리고 막내인 남동생이 이번에 대학에 합력해서 3월달에 대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치료자가 T군에게 지금까지 신경정신과 혹은 한의사 혹은 심리상담 혹은 심리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신경정신과에서 약물을 3주일마다 방문해서 저녁 시간에 한 알씩 복용을 하고 있고 그리고 작년에 4월 달에 시작해서 8월 달까지 4개월 정도 한의사의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물어 보았을 때 T군이 소음인으로 매운 음식과 짠 음식을 먹지 말고 식단을 짜 주면서 매일 침을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심리상담 혹은 심리치료를 받아온 적이 있는지 물었을 때 그의 집 근처에서 마음 사랑 심리상담을 4개월 정도 받았다고 했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추천으로 그의 지역에 xx대학교 교수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려고 인터뷰를 하고 나서 T군이 거부를 해서 서울에 있는 치료자에게 컨설팅을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T 군에서 1시간 50분 동안 이야기를 듣고 나서 T군의 핵심 문제를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정신분열증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T군도 시인을 했다. T군이 기숙사에서 3명 혹은 4명의 룸메이트들과 생활을 할 때마다 갈등으로 휴학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3번 복학해서 동아리 활동을 하려고 했을 때 갈등이 폭발한 것 그리고 군에 입대해서 내무반 생활에서 그룹 활동 시에 정신분열증으로 폭발한 것 그리고 필립핀 선교 유학을 할 때 적응에 어려움으로 폭발한 것 등을 그 예로써 증거로 지적을 했을 때 T군이 인정을 했다.


치료자는 T군이 동료들과 만나게 되면 긴장이 올라가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관계를 해야할찌?를 몰라서 긴장이 한계선을 넘어가서 갈등으로 폭발하게 된 것을 지적을 하면서 치료에서 과거의 상처들을 전부 재연해서 그 시쯤에서 다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고 의사 소통을 하고 관계의 갈등을 풀어 나가는 것을 치료 회기 시간에서 재연하고 다시 배우고 자아의 결함을 찾아서 수정해 나가는 것이 심리치료임을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리고 T군에게 약 1시간 50분 동안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T군은 마음이 안정되고 치료자 선생님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치료자는 치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연결해서 T군과 어머니와 함께 T군의 핵심 문제가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치료에서는 과거의 심리적 상처들을 재연하고 의사 소통과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훈련과 관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들을 새로 배우고 자아의 결함을 찾아서 수정해나가는 치료를 하게 될 것을 강조를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에게 3가지 방법을 제시를 했다. 올해 3월에 입학을 앞두고 남아 있는 약 1.5개월을 1주일에 5일씩 2시간씩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해서 입학 전에 약 40시간의 심리치료를 받아서 심리적 원리를 알고 대인관계를 하는 방법과 훈련을 받아서 일종의 준비 운동을 하게 해서 입학 후에 1주일에 1회씩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학교에서 생기는 갈등들을 다루어 나가는 방법을 이야기를 했다.


두 번째는 그냥 1주일에 1회 혹은 2회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치료를 계속해서 받아 가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는 입학을 9월 달로 미루고 1주일에 1회 혹은 2회로 심리치료를 받아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된 다음에 올해 9월 달에 입학을 하는 것을 가족구성원들과 의논해 보고 결정을 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생기는 갈등들을 풀어나가는 것을 강조하면서 심리치료는 입학 후에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라는 의견을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입학 후에 생기는 갈등을 지금 조용할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과거의 갈등의 상처들을 다시 재연해서 훈련을 받고 나서 입학 후에는 계속해서 동료들과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지적을 했다.


어머니는 서울의 인근에 xx 시에 살고 있는 이모가 T군과 애착 관계가 잘 되어 있으니 이모 집에서 1주일에 5일 동안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아서 3월 입학 전에 약 40시간 정도의 심리치료를 통해서 준비 운동을 하게 되면 입학 후에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면서 동료들과 갈등들을 해결해 나가는 쪽으로 T군과 어머니가 동의를 해서 내일 화요일부터 당장 심리치료를 받기로 하고 내일 오후 5시에 도착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아들 T군이 토요일에는 과외 지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귀뜸을 해 주었다. 치료자는 좋은 현상으로 입학 후에 토요일에 시간이 어려우면 일요일에 부산으로 와도 되고 주 중에 서울에 올라와서 치료를 받으면 되는데 그 문제를 입학 후에 의논해서 조정을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신경정신과의 약물 치료, 한의사의 침술 치료와 음식 치료 그리고 3개월 동안 심리 상담 치료를 받았으나 실패를 했고 또 지방에서 이름난 xx대학 교수와 인터뷰를 해 본 결과 T군이 치료자와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마음의 결심이 선 것을 강조를 하면서 아들 T군의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6개월 계약을 하기로 했다.


T군과 어머니가 치료실을 나가고 나서 약 30분 후에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을 때 치료자가 지금 입학 전까지 집중적으로 치료를 해서 입학 후에 생길 갈등을 사전에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아들 T군과 어머니가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결정을 한 것을 이야기를 해서 아버지가 동의를 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서는 T군이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5일간 1회에 2시간씩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하게 되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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