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우울증 완전 정복 10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7. 1. 13. 06:36

우울증 완전 정복 10

 

우울증은 미국의 정신의학 학회에서 발간되는 DSM-(1980년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 지침서 제 3차 수정본)에서부터 지금까지(2013년 제5차 수정본(DSM-)까지) 무드 장애(감정 장애)로 분류되어져 있다. 우울증은 감정 즉 기분이 다운되어 에너지 고갈, 의욕 상실, 의기소침, 두문불출, 입맛 상실, 잠만 자거나, 미래가 없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자살 생각, 죄의식에 사로 잡힘, 흥미와 취미의 상실, 무감각, 무능력, 무기력으로 소금에 절여 놓은 파김치처럼 에너지 고갈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삶에서 즐거움을 상실한 심리적 패배감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정신장애 중에서 사람의 정신을 시들어가게 만드는 가장 고약한 마음의 병이다.


우울증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Niobe)의 돌과 같은 표정의 얼굴에서 우울증의 기원을 지적하고 있다. 14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다고 아폴로의 어머니인 니토(Nito) 앞에서 자랑을 하다가 자녀가 2명뿐인 니토(Nito) 보복으로 자녀를 모두 잃어버리고 돌로 변한 니오베의 이야기에서 그 기원을 들고 있다(Georgaota & Cancro, 1988).


의학적 기록은 B.C. 4세기 그리스의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에 의해서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melancholia)를 쓸개 즙의 과다로 생긴 질병으로 진단을 하면서 의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Georgaota & Cancro, 1988).


우울증의 연구로 평생을 보낸 하버드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봄페드(Bemporad, 1978)와 그의 스승인 펜실바니아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로서 정신분열증 연구로 세계적인 명저를 남긴 정신분열증의 해석의 저자인 아르에티(Arieti)의 공동 저서인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 심리치료적 접근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심한 우울증은 생리적인 질병으로 고려했다. 1904년에 스위스의 의사로 미국에 이민을 간 미국의 정신 의학의 대가로 불리는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는 삶에서 심한 연속적인 이벤트들이 심한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았다. 생리적 원인으로 본 멜랑꼴리아에서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우울증으로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신체적 질병의 개념에서 정신장애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신체적인 요인으로써 보다 개인적 심리적인 요인이 우울증의 핵심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Arieti & Bemporad, 1978).


19세기 말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창설로써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서 프로이트의 제자인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이었던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1911년에 우울증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로 정신분석가들의 우울증에 대한 심층 연구가 시작되었다(Arieti & Bemporad, 1978).


불안증의 연구 때문에 뒤 늦게 연구를 시작한 우울증에 대해 프로이트가 1917년에 애도와 멜랑꼴리아”(Mourning and Melancholia)라는 심층 분석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 우울증의 심층 연구 논문은 우울증의 연구의 백미로써 100년이 지난 지금도 수 많은 학자들의 부가적인 연구로 설명을 더 붙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명쾌한 이론적인 걸작으로 남아 있다고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5)은 극찬하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애도와 멜랑꼴리아의 차이점은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써 외부 세계가 공허한 반면에 심한 우울증은 내면의 세계가 공허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프로이트는 강조를 한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대상의 그림자가 ego 위에 떨어졌다라고 표현을 했다. 이 경구는 우울증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을 하는 정신분석가들의 경구가 되었다.


쉽게 말해서 애도에서는 텅 빈 세계가 있다. 세상이 텅 비고 초라하고 빈약한 세상이 있다. 외부 세계가 텅 비고 초라 하지만 내면의 세계는 이상이 없다. 이것은 사랑 하는 대상(사람 혹은 물건)의 상실 이후에 애도의 기간을 거치는 정상적인 애도를 말한다. 정신 의학에서는 상실 이후에 약 2년 동안 대상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의 아픔을 거치는 자연 치유의 기간을 말한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에서는 텅 비고 초라한 자아(ego)가 있다. 내가 무가치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해서 어떤 것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 자아를 욕한다. 자아가 상처 받기를, 내동댕이쳐 던져지기를 기대한다. 자해, 자학으로 자아 비판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낮춘다. 어떤 사람과 연결된 것에 대해서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자기 자신과 관계를 불쌍하게 여긴다. 고로 정신 장애 중에서 가장 자살 비율이 높은 심각한 질병으로 치료를 요구하는 중병으로 본다(Ogden, 2005).


정신분석에서는 심한 우울증 속에다 조증을 포함시킨다. 조증과 우울증은 정 반대이다. 우울증의 과도한 수면, 두문불출, 에너지 고갈, 흥미 상실, 의기소침 등과 대조적으로 조증은 잠이 없는 불면, 에너지의 홍수, 과대 과장, 이상 행동 등을 보인다. 조증은 그 기원을 우울증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분노가 억압되어져서 내면 속에서 자아로 향한 것을 우울증으로 본다. 이 우울증이 자아 밖으로 나타난 것으로 우울증에 대한 방어가 조증으로 보고 있다. 조증은 그리스어로 분노라는 뜻이다. 즉 그리스어의 조증(mania)은 영어로 분노(wrath)라는 뜻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합쳐진 것이 조울증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교대로 나타나는데 우울증의 기간이 약간 긴 것이 특징으로 보고 되고 있다(Georgaota & Cancro, 1988).


우울증은 흔히 정신장애에 감기라고 표현을 한다. 그 만큼 모든 심리적인 사건 사고 들은 그 사건의 결과가 부정적일 때 사람은 우울하게 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Freud)은 인간의 마음을 정신분석 이라는 현미경(은유적 표현)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하면서 인간이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이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것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즐거움 보다는 고통스런 감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은 제 1차 우울증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 혹은 사고들의 결과로 생기는 우울증을 제 2차 우울증으로 본다. 성폭행의 결과로 우울해진 40대 중반의 부인 A, 고교를 자퇴하고 2년 동안 개인교수를 받아서 열심히 노력했으나 수능에서 9등급을 받은 B, 7년 동안 남편의 외도를 모르고 있었던 부인 C, 연인으로부터 버림 받은 D양 등, 고교 시절에 선배들로부터 폭력의 대상이 된 E씨 등이 우울해진 것은 제 2 차 우울증으로 본다. 2차 우울증은 우울증 그 자체를 치료해서는 효과가 없다. 성폭행, 실패, 외도, 실연, 동료들의 폭행 등의 문제를 다루고 극복하게 될 때 우울증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우울증을 약물로써 치료하지 않는다. 약물의 치료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정신 장애에서 사람들이 약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위기적 상황 즉 기절, 졸도, 어지러움, 현기증, 심장마비 등의 공포적인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주로 사용한다고 토로 한다. 그러나 약물은 부작용뿐만 아니고 급박한 순간을 차단시키기 때문에 그 증세의 근본 뿌리를 드러나게 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고로 정신과적인 약물은 증세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증세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정신분석에서는 약물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붙여서 약물은 증세를 완화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자아의 취약점 자체를 수리해주지 못한다. 그 환자는 그 증세가 드러나기 이전에 이미 자아의 취약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자신감 결여, 의사 소통 결함, 감정 표현의 미성숙함, 갈등 해결의 회피 등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촉진 요인들에 의해서 증세가 표면화 된 것이다. 고로 그 촉진 요인들을 찾아내고 그 자극들에 대처해 나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자아의 결함을 수정 하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그래야 이후에 그 환자는 이전의 상처와 유사한 문제들을 피하지 않게 되고 혼자서 직면으로 뚫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즉 자아의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핵심이다.


아래의 우울증의 치료 사례들은 어떻게 우울증을 치료 하는가? 하는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우울증을 제거해 나가는 치료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들을 자아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지 않는가?


 


 

대상: 20대 후반의 교사 O


증세: 우울증, 대인 공포증


접촉: O씨가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접촉한 후에 아버지에게 심리치료를 받아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후에 아버지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인터뷰 상담을 받아본 후에 마음에 들면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해왔음. 아버지와 O씨가 치료자와 치료 시간을 약속하고 2시간 인터뷰 상담을 받은 후에 즉각 치료를 받고 싶다고 그 자리에서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하게 되었음


치료 기간: 1회 치료 회기에 2시간씩 1주일에 4회로 1주일 8시간씩 집중적 심리치료로 3주일 째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치료 시작 후 2주일 16시간이 지나가면서 소금에 절인 파, 김치처럼 되었던 O, 그는 눈에 초점이 없고, 기운이 없고, 목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작은 소리와 띄엄띄엄 묻는 것에만 대답을 하던 O씨가 기운을 차리고 생기가 돌아와서 이제는 정상적인 마음 가짐으로 목소리가 또렷해지고 눈에 초점이 생기고 걸음걸이가 정상적으로 되돌아 오고 치료자와 대화를 정상적으로 나누고 있음


치료의 과정

O씨는 삶에서 의욕을 잃어 버렸다고 치료자가 묻는 질문에만 몇 마디씩 대답을 했다. 대답이 단답형으로 간단했다. 치료자는 O씨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을 조각조각으로 모아서 그가 성장한 배경 환경과 그가 우울증에 걸리게 된 이유를 대략 다음과 같이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성장 배경: O씨는 2 1남 중에 막내였다. 누나는 두 사람으로 큰 누나는 O씨와 6살 차이로 지금은 시집을 가서 남편과 함께 부부가 맞벌이 공무원으로 살고 있고 4살 차이가 나는 둘 째 누나도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맞벌이 부부 공무원으로 살고 있었다. 그는 이제 교육 대학을 갖 졸업한 새내기 교사로 3년 전에 대학 졸업 후에 xxx 초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다가 군에 복무해서 2년간 군 복무를 끝내고 다시 xxx 초등학교에 복직 후에 2개월간 교사로 복무하다가 우울증으로 붕괴되어 지금은 2개월간 병가를 내고 집에서 신경 정신과 약물로 1.2개월 동안 집중적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봄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실토를 했다. 어머니는 신체 질병으로 늘 방에 누워있었던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O씨는 특별히 유치원 시절에 그리고 그 이후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 시절에 기억들이 희미하고 별로 기억나는 것이 많이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유치원 시절에는 xxx 미술 유치원이라는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 특별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 쯤에 골절로 부상을 입고 학교를 중퇴 했으며, 아버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일을 해 온 사람으로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같이 놀이를 하고 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했던 기억은 없었다고 했다.


4살과 6살 위인 누나들과 별로 같이 어울려 놀았던 기억도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는 유치원 시절에 혼자서 동네 몇몇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전부라고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기억 나는 큰 이벤트는 없었고 부모님으로부터 신체적 처벌이나 심리적 상처를 받은 것은 거의 없었다. 유치원 시절에 찍은 사진들이 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사진들은 몇 장 있으나 그 시절에 특별히 기억 나는 이벤트들은 희미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반장, 부반장을 도 맡아서 했으나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일부러 반장, 부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고 공부만 했다고 했다. 공부는 늘 반에서 1, 2등을 해서 학교 생활에는 큰 문제점은 없었다고 했다.


대학 시절에는 공과 대학을 가려고 마음을 먹고 문과 반을 선택하지 않고 이과 반을 선택해서 공부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수능을 치고 나서 좋은 성적이 나오고 대학을 선택하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교육대학을 가라고 했고 외삼촌이 교육대학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안정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바램 때문에 경쟁이 심한 xxx 교육대학을 선택하게 되었고 무난히 입학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 시절에 큰 어려움이 없이 4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학 재학 중 3학년이 되면서 그는 교사 임용고사 시험에 매달리게 되었고 철저한 공부로써 준비를 약 1년간 한 덕택으로 졸업 시쯤에서 1차 필기 시험인 교육학과 교육 과정 그리고 논술 시험에 패스를 하고 2차 시험인 영어 말하기 시험과 인터뷰 시험에 통과 해서 2월 말에 졸업을 하면서 그 해 3월 달에 교사로 xxx 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임용 고사는 상당히 치열해서 약 2.5 1의 경쟁을 뚫고, 한해 졸업생 약 500명 중에서 임용고시에 떨어진 약 150명을 제외하고 그 해에 임용고사에 통과한 모두가 졸업과 동시에 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는데 그 시점까지는 O씨는 큰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우울증의 등장: O씨가 처음으로 우울증을 가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서 1학기를 근무하고 2학기가 시작되는 9월 달이었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느냐 고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대답을 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임명을 받고 그 학교에 부임을 했을 때 처음에는 설래 임과 희망으로 그 학교에 부임을 했다고 했다. 그 학교는 오랜 전통을 가진 학교로 건물이 오래되어 좀 낡고 우중충한 변두리 공업 지대에 속한 학교로 약 50명의 교사들이 근무를 하는 큰 학교였다고 했다. 6학년을 맡아서 담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내기 교사로 약 1달이 지나가면서 문제점들이 생기게 되었다.


학생들이 제대로 말을 잘 듣지 않고 공부가 재미 없다고 투덜거리고 그리고 특히 수학 시간에 학생들이 재미 없어하는 것이 눈에 띄게 되었다. 몇몇 학생들이 담임의 말을 듣지 않고 주의 경고를 주면 말대꾸를 하는 바람에 교직에 실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O씨는 그럴 때마다 그 자신을 탓을 했다. 그가 가르치는 교육 기술이 부족해서 학생들을 즐겁게 가르치지 못한다고 자신을 비난을 했다.


특히 체육 시간에는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교사로써의 령(명령)이 먹혀 들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체벌이 금지되어 학생들을 벌을 줄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을 컨트롤하는데 문제가 등장하게 되고 수업을 잘 진행시키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O씨는 스스로 괴로워하기 시작한 것이 교사 생활 1달이 지나가면서였다.


동료 교사들과도 별로 접촉이 없었다. 같은 6학년 선생님들이 8분이 있었는데 4명은 남자이고 4명은 여자였다. 남자 선생님들은 모두가 40대 이후의 선생님들로 20대 초반인 그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아서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했다. 학부형들은 학교를 방문하는 것이 금지 되어 있었기 때문에 큰 갈등은 없었다고 했다.


교사 생활이 시작 된지 2달째부터 학교에 가는 것이 신경이 많이 쓰이고 불안하고 두렵기 시작했다. 하루 5시간, 6시간씩 수업이 끝나면 O씨는 완전히 파, 김치가 되어 버렸다고 회고를 했다. 이렇게 생활을 한지 1학기가 지나가면서 여름방학이 왔고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되는 9월 달에 우울증으로 완전히 붕괴가 된 것이었다.


1번째 등장한 우울증: 교사로 부임한지 6개월 만에 그는 우울증에 항복을 하고 말았다. 결국 병가를 내고 2달간 쉬면서 신경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 약물을 복용을 했다. 2개월 후에 다시 기운을 차려서 학교에 복직을 했고 그런대로 2학기를 마치고 미루어 두었던 군 입대를 선택해서 공군에 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는 육군 보다는 공군을 택해서 신체 검사와 간단한 인터뷰에 합격을 해서 공군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2번째 등장한 우울증: 공군에 입대해서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를 받아서 컴퓨터 관계 일을 맡고 있는 중에 두 번째 우울증이 등장한 것이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없고 삶이 재미가 없고 무미건조하고 고통스럽고 불안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의 중대장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고 군에서는 한달 간 집에서 병 치료 겸에 휴가를 내 주었다. 집에 와서 1달간 우울증 약물을 복용하고 다시 군에 복귀해서 근무를 했으나 우울증이 완화되지 않아서 다시 군 병원에서 2달간 입원을 했고 신경 정신과 약물을 복용을 했다. 그는 군 병원에서 퇴원을 해서 다시 자대에 복귀해서 일반 업무를 맡게 되었으나 우울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제대 때까지 약 2년간을 우울증 약물을 복용했다고 했다. 아침에 2, 저녁에 2알씩 우울증 약물을 제대할 때까지 복용을 했고 군 복무를 무사히 끝낼 수 었었다.


3번째 등장한 우울증: O씨는 군복무를 끝내는 즉시 그 해 3월 달에 학교에 복직을 하게 되었고 xxx 초등학교에 부임을 하게 되었다. 그는 담임을 맡지 않고 영어와 음악을 전담하게 되었으나 선생님들이 음악 대신에 체육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5학년 영어와 4학년 체육을 전담으로 맡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 새로 부임을 한지 2개월 만에 다시 우울증으로 붕괴되었다.


다시 학교에 병가를 내고 2개월간 신경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경 정신과에서 심리검사 결과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불안증 약물을 아침에 2알 점심 때 2알 그리고 저녁에 2알씩 먹고 있었고 우울증 약물을 저녁에 1,5알씩 복용을 하고 있었다.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러 올 시점에는 그는 약물에 저려서 에너지가 고갈되고 매일 같이 잠만 자는 생활이 거의 1달 가량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2개월의 병가의 끝이 다가오면서 초조하고 불안해서 약물로는 치료의 한계를 느끼고 심리치료 쪽으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가 치료자의 우울증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한 후에 아버지와 함께 치료자를 찾아 온 것이었다.


치료의 과정: O씨는 1주일에 1회기로 2시간씩 치료로는 치료 시간의 인터벌이 너무 길 것 같아서 처음에는 1주일에 2, 혹은 3회 치료 회기로 하기로 했으나 2회 치료 회기가 끝난 후에 하루를 건너 뛰면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버지가 아침에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 와서 아들인 O씨가 상태가 더 좋지 않는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심장이 떨리고 손발이 저리고 호흡이 거칠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치료자는 아버지에게 O씨로 하여금 치료자에게 즉각 나오게 하고 치료 회기를 1주일에 4회로 연장을 했다. 치료자는 O씨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자신의 답답하고 갈등적인 마음을 치료자에게 말로써 표현을 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편안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했다.


치료자는 O씨의 우울증의 핵심이 그의 학교 생활에서 오는 갈등들 즉 학생들의 컨트롤에 어려움과 학교 수업에 대한 그의 자신감의 상실, 그리고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긴장이 누적되면서 결국은 신체적으로 붕괴된 것으로 보고 우선 그의 내면에 갇힌 감정들과 갈등들과 고통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하는데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론적 근거: 치료자는 O씨의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을 체크를 해 나가면서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으나 중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만 몇몇 친구들은 있었으나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거나 친구 집에서 잠을 자고 온 기억이 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거의 없었다고 했다.


대학 때도 친한 친구가 2-3명 정도가 있었으나 자신의 고민이나 고통 등을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대인관계에서 불안을 느껴왔었다고 실토를 했다. 늘 대인관계가 잘 안 된다는 것을 느꼈고 그러나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를 해 보거나 심리치료 등을 고려해 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학생들과의 관계를 체크를 해 보았을 때 그는 수업 시간은 고통스러웠으나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 학생들과 어울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문제는 동료 교사들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 그는 첫 부임 학교에서 어려움들 특히 학생들의 컨트롤 문제, 수업에 자신감 결여 등을 동료 교사나 원로 선배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고 고민, 고통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동료 교사들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었고 학교 생활에서 누적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적당한 취미나 기술이 없었다.

 

그는 첫 부임 학교에서 6개월 만에 누적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붕괴 되었고 그리고 두 번째 군복무를 끝내고 부임한 두 번째 학교에서 2개월 만에 우울증에 항복을 한 것이었다. 그는 근무지인 학교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도 해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분석되었다. 집에 오면 부모님과는 어린 시절부터 별로 말이 없었고 서로 대화는 거의 없었다. 형식적인 몇 마디 말만 주고 받고 그는 그의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나 인터넷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냈고 머리 속에는 내일 학교에서 가서 어떻게 학생들을 다룰까?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까? 하는 걱정, 불안, 근심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던 것이었음이 분석되어졌다.


이것은 그가 첫 부임지인 xxx 초등학교에서 1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 때 쉬는 1달 간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트레스가 해소 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2학기 시작인 9월 달에 우울증으로 붕괴가 되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늘 그는 학교에서 받은 고통들로 괴로워했고 그리고 내일에는 그 다음 날에는 학교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까? 하는 고민들로 쉴 틈이 없었다. O씨는 긍정적인 마음보다 늘 부정적인 마음이 많았다. 그는 부정적인 마음이 70% 정도 이고 30% 정도가 긍정적인 마음인 것 같다고 치료자의 물음에 간신히 대답을 했다.


치료의 결과: O씨는 말을 미주알 고주알 표현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겨우 묻는 질문에만 대답을 하는 스타일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자기 표현이 별로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묻는 질문에만 대답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학교에서는 공부는 잘 했으나 이것이 자신감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분석되어졌다.


늘 그는 자신을 별볼일 없는 대인관계를 잘 못하는 사람으로 늘 자신을 자학하고 자책하는 사람으로 자기 처벌적인 사람임이 분석되어졌다. 치료자는 O씨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O씨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번도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감정 표현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O씨 역시 아버지를 닮아서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화나 나거나 갈등이 생기면 동료들과 거리감을 두고 빠져서 말을 며칠 동안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자기 주장이 없고 매사에 소극적이고 삶을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부진한 사람이었다.


1주일에 1회 치료 회기에 2시간씩 1주일에 4회 치료 회기로 8시간씩 집중적 심리치료를 한 결과 2주일이 지나가면서 O씨는 약물의 찌들 린 효과로부터 점차로 벗어나는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의 표현이 또렷해지고 힘이 생기고 걷는 걸음걸이가 흐느적거리지 않고 똑 바로 서고 얼굴 표정이 찡그린 에너지 고갈 상태에서 생기가 돌고 눈동자가 흐릿하지 않고 초점이 잡히는 것을 O씨도 스스로 인정을 했다.

 

그는 2개월의 병가가 끝나는 7 2일에 학교에 복직을 하는 문제로 갈등을 하고 있었다. 치료자가 앞으로 남은 2주일 동안에 학교에 정상 근무로 돌아갈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그는 10% 정도라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그에게 학교 당국과 교육청에 문의를 해서 휴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도록 했다.


그는 다음 날 치료 회기에서 학교에 휴직이 가능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복직 후 2주일 후면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데 여름 방학을 합쳐서 2달간 휴직계를 내고 2학기인 9월 달에 복직을 할 수 있도록 휴직계를 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치료자가 약 6개월 정도 휴직계를 내고 내년 3월 달에 복직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에 집에 있는 것도 힘들어져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빨리 복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하는 일이 잠만 나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무기력해지고 희망이 없고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치료자는 O씨가 에너지 고갈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나가고 있고 에너지가 회복되면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을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대화를 하는 기술이 부족해서 자기 표현이 부족하고 자기 주장이 없고 삶을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고 수동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으로 갇혀 지내왔음을 분석하고 이것을 바꾸어서 성격을 고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O씨는 그가 신경 정신과의 약물 만으로는 그의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직감하고 인터넷에서 스스로 그가 심리치료를 선택하고 아버지에게 심리치료를 받아 보겠다고 한 것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바꾸는데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있음을 높이 평가를 했다. 고로 치료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O씨의 문제 해결은 해결될 것으로 희망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