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우울증 완전 정복 4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6. 12. 15. 09:11

우울증 완전 정복 4

 

우울증은 미국의 정신의학 학회에서 발간되는 DSM-(1980년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 지침서 제 3차 수정본)에서부터 지금까지(2013년 제5차 수정본(DSM-)까지) 무드 장애(감정 장애)로 분류되어져 있다. 우울증은 감정 즉 기분이 다운되어 에너지 고갈, 의욕 상실, 의기소침, 두문불출, 입맛 상실, 잠만 자거나, 미래가 없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자살 생각, 죄의식에 사로 잡힘, 흥미와 취미의 상실, 무감각, 무능력, 무기력으로 소금에 절여 놓은 파김치처럼 에너지 고갈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삶에서 즐거움을 상실한 심리적 패배감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정신장애 중에서 사람의 정신을 시들어가게 만드는 가장 고약한 마음의 병이다.


우울증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Niobe)의 돌과 같은 표정의 얼굴에서 우울증의 기원을 지적하고 있다. 14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다고 아폴로의 어머니인 니토(Nito) 앞에서 자랑을 하다가 자녀가 2명뿐인 니토(Nito) 보복으로 자녀를 모두 잃어버리고 돌로 변한 니오베의 이야기에서 그 기원을 들고 있다(Georgaota & Cancro, 1988).


의학적 기록은 B.C. 4세기 그리스의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에 의해서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melancholia)를 쓸개 즙의 과다로 생긴 질병으로 진단을 하면서 의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Georgaota & Cancro, 1988).


우울증의 연구로 평생을 보낸 하버드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봄페드(Bemporad, 1978)와 그의 스승인 펜실바니아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로서 정신분열증 연구로 세계적인 명저를 남긴 정신분열증의 해석의 저자인 아르에티(Arieti)의 공동 저서인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 심리치료적 접근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심한 우울증은 생리적인 질병으로 고려했다. 1904년에 스위스의 의사로 미국에 이민을 간 미국의 정신 의학의 대가로 불리는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는 삶에서 심한 연속적인 이벤트들이 심한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았다. 생리적 원인으로 본 멜랑꼴리아에서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우울증으로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신체적 질병의 개념에서 정신장애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신체적인 요인으로써 보다 개인적 심리적인 요인이 우울증의 핵심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Arieti & Bemporad, 1978).


19세기 말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창설로써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서 프로이트의 제자인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이었던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1911년에 우울증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로 정신분석가들의 우울증에 대한 심층 연구가 시작되었다(Arieti & Bemporad, 1978).


불안증의 연구 때문에 뒤 늦게 연구를 시작한 우울증에 대해 프로이트가 1917년에 애도와 멜랑꼴리아”(Mourning and Melancholia)라는 심층 분석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 우울증의 심층 연구 논문은 우울증의 연구의 백미로써 100년이 지난 지금도 수 많은 학자들의 부가적인 연구로 설명을 더 붙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명쾌한 이론적인 걸작으로 남아 있다고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5)은 극찬하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애도와 멜랑꼴리아의 차이점은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써 외부 세계가 공허한 반면에 심한 우울증은 내면의 세계가 공허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프로이트는 강조를 한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대상의 그림자가 ego 위에 떨어졌다라고 표현을 했다. 이 경구는 우울증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을 하는 정신분석가들의 경구가 되었다.


쉽게 말해서 애도에서는 텅 빈 세계가 있다. 세상이 텅 비고 초라하고 빈약한 세상이 있다. 외부 세계가 텅 비고 초라 하지만 내면의 세계는 이상이 없다. 이것은 사랑 하는 대상(사람 혹은 물건)의 상실 이후에 애도의 기간을 거치는 정상적인 애도를 말한다. 정신 의학에서는 상실 이후에 약 2년 동안 대상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의 아픔을 거치는 자연 치유의 기간을 말한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에서는 텅 비고 초라한 자아(ego)가 있다. 내가 무가치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해서 어떤 것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 자아를 욕한다. 자아가 상처 받기를, 내동댕이쳐 던져지기를 기대한다. 자해, 자학으로 자아 비판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낮춘다. 어떤 사람과 연결된 것에 대해서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자기 자신과 관계를 불쌍하게 여긴다. 고로 정신 장애 중에서 가장 자살 비율이 높은 심각한 질병으로 치료를 요구하는 중병으로 본다(Ogden, 2005).


정신분석에서는 심한 우울증 속에다 조증을 포함시킨다. 조증과 우울증은 정 반대이다. 우울증의 과도한 수면, 두문불출, 에너지 고갈, 흥미 상실, 의기소침 등과 대조적으로 조증은 잠이 없는 불면, 에너지의 홍수, 과대 과장, 이상 행동 등을 보인다. 조증은 그 기원을 우울증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분노가 억압되어져서 내면 속에서 자아로 향한 것을 우울증으로 본다. 이 우울증이 자아 밖으로 나타난 것으로 우울증에 대한 방어가 조증으로 보고 있다. 조증은 그리스어로 분노라는 뜻이다. 즉 그리스어의 조증(mania)은 영어로 분노(wrath)라는 뜻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합쳐진 것이 조울증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교대로 나타나는데 우울증의 기간이 약간 긴 것이 특징으로 보고 되고 있다(Georgaota & Cancro, 1988).


우울증은 흔히 정신장애에 감기라고 표현을 한다. 그 만큼 모든 심리적인 사건 사고 들은 그 사건의 결과가 부정적일 때 사람은 우울하게 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Freud)은 인간의 마음을 정신분석 이라는 현미경(은유적 표현)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하면서 인간이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이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것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즐거움 보다는 고통스런 감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은 제 1차 우울증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 혹은 사고들의 결과로 생기는 우울증을 제 2차 우울증으로 본다. 성폭행의 결과로 우울해진 40대 중반의 부인 A, 고교를 자퇴하고 2년 동안 개인교수를 받아서 열심히 노력했으나 수능에서 9등급을 받은 B, 7년 동안 남편의 외도를 모르고 있었던 부인 C, 연인으로부터 버림 받은 D양 등, 고교 시절에 선배들로부터 폭력의 대상이 된 E씨 등이 우울해진 것은 제 2 차 우울증으로 본다. 2차 우울증은 우울증 그 자체를 치료해서는 효과가 없다. 성폭행, 실패, 외도, 실연, 동료들의 폭행 등의 문제를 다루고 극복하게 될 때 우울증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우울증을 약물로써 치료하지 않는다. 약물의 치료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정신 장애에서 사람들이 약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위기적 상황 즉 기절, 졸도, 어지러움, 현기증, 심장마비 등의 공포적인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주로 사용한다고 토로 한다. 그러나 약물은 부작용뿐만 아니고 급박한 순간을 차단시키기 때문에 그 증세의 근본 뿌리를 드러나게 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고로 정신과적인 약물은 증세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증세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정신분석에서는 약물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붙여서 약물은 증세를 완화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자아의 취약점 자체를 수리해주지 못한다. 그 환자는 그 증세가 드러나기 이전에 이미 자아의 취약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자신감 결여, 의사 소통 결함, 감정 표현의 미성숙함, 갈등 해결의 회피 등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촉진 요인들에 의해서 증세가 표면화 된 것이다. 고로 그 촉진 요인들을 찾아내고 그 자극들에 대처해 나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자아의 결함을 수정 하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그래야 이후에 그 환자는 이전의 상처와 유사한 문제들을 피하지 않게 되고 혼자서 직면으로 뚫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즉 자아의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핵심이다.

 

아래의 우울증의 치료 사례들은 어떻게 우울증을 치료 하는가? 하는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우울증을 제거해 나가는 치료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들을 자아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지 않는가?

 


대상: 50대 중반의 중년 여성 H


증세: 바람피운 남편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불신 때문에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음


접촉: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던 아들이 어머니의 우울증을 알고 치료자에게 연락해서 치료를 받게 되었음


진단명: 심한 우울증, 회피적 성격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씩 1회에 2시간씩 분석치료 상담을 6개월 째 받고 있음


치료 결과: 대인관계에서 문제점을 알고 부인의 내면 속에 갇히 분노와 적대 감정을 쏟아내고 있음


치료의 과정

부인 H씨는 50대 후반의 중년 여성으로 치료실에 아드님과 같이 들어서면서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드님이 돌아간 후에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지금까지 이곳에 오게된 경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부인 H씨가 남편의 외돌를 눈치채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에 남편이 휴대폰에 전화 벨이 울리자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거나 전화받은 내용을 숨기면서 부인이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부인 H씨는 과거에는 남편이 전화가 왔을 때 숨기는 일이 없었고 전화 내용도 숨기려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의 휴대폰을 살짝 검사한 결과 방금 조금전에 온 전화 번호가 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증거를 댈 수가 없어 참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6개월 정도 시간이 흘러간 후에 부인H씨는 남편이 전화가 오자 당황하며 전화를 받고 나서밖에 볼일이 있다면서 나갔다고 몇 시간 후에 들어왔을 때 남편에게 솔찍하게 이야기하라고 따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절대로 그런 사실이 없다면서 시치미를 딱 땠다.부인 H씨는 남편에게 경고를 했다. 절대로 바람을 피우는 것은 용서할 수 없으니 조용하게 그 여성과 관계를 빨리 끊는 것이 좋다면서 경고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과 남편은 동 부인으로 계 모임에 나가서 남편이 다른 여성을 데리고 같이 동료들의 모임에 자주 나왔다는 말을 친구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 친구로부터 남편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자주 나타났다는 말에 흥분이 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적어도 남편은 같은 고향의 친구들이 모이는 계모임에는 부끄러워서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부인의 기대감이 산산히 부서진 것 때문이었다.

 ​부인은 남편이 적어도 동향의 고향 친구들에게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여기에다 부인이 남편이 사귀는 여자 친구가 고향의 동향 사람이라는 것과 그 부인의 이름을 알 게 된 것이었다. 남편은 고향의 향우회에 간사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 사람과 외도를 할줄 몰랐다는 점이 부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미 다른 계모임 친구들은 그 사람을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부인에게 귀뜸이라도 해주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부인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나서 남편의 한 친구에게 그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남편의 친구는 모로쇠로 자신을 잘 모른다고 한 것이 나중에는 부인 H씨 자신만 빼고 모두들 다 알고 있으면서 부인 H씨게에 알려주지 않았다는 배신감에서 남편의 친구들을 모두 믿을 수 없고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신뢰해 왔는데 부인의 기대감이 박살이 난 것에 더욱 분노했다.


 부인 H씨는 남편에게 사실대로 고백을 하라고 다그쳤다. 이미 어떤 여성을 데리고 계모임에 부인을 대신해서 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 한번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친구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들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이실직고 하라고 다그쳤다. 남편은 누가 그 이야기를 해 주었는지 그 여성의 이름을 대라고 화를 냈다. 부인은 누가 화를 내야할 사람인데 오히려 가해자가 화를 낸다고 분기탱천했다.

  남편에게 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 여자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 여성의 이름을 쓰고 다시는 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 달라고 했다. 남편은 화를 내면서 "당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다 물러 주고 몸만 나갈 것이니 이혼을 해 달라"고 했다. 부인은 어이가 없었다. 아들들에게 면목도 없고 지금 이 상태에서 이혼을 해서 무엇하겠느냐면 남편을 달래기 시작했다. 사업도 어려운데 이런 일로 신경을 쓰다보면 사고의 확률이 높으니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지 말고 이쯤에서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남편을 달랬다. 남편은 각서를 써 주었다. xx를 더 이상 만나지 않고 관계를 끝내겠다고 했다. 부인은 그것으로 남편의 외도가 종결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 터진 문제는 남편이 관계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였다.


 남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유통업이 경기가 좋지 않아서 창고를 하나 얻는 것이 좋겠다면서 부인 H씨에게 돈을 은행에서 융통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부인 H씨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남편에게 주었다. 그러나 이후에 남편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는 창고를 남편이 사귀고 있는 그 여성의 집 앞에 얻었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더욱 분기탱천하게 되었다. 부인은 우연히 남편의 휴대폰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게 되었고 그 여성 한데서 온 문자 메시지를 발견하게된 것이었다. 남편은 오히려 이제 일하는 곳도 그 부인의 집 코 앞에서 창고를 얻었고 더욱 더 밀착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은 작년 1월 달이었다.

 ​부인은 남편에게 첫 번째 외도 신호를 알고 나서도 남편에게 좋은 말로 관계를 끊을 것을 종용했고 남편에서 지금까지 정성스럽게 식사를 제공하고 밤에 침실도 같이 사용하면서 남편을 믿어왔던 자신이 부끄럽고 바보 같아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에 남편은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이 오히려 그 여성과 같은 장소에서 매일 같이 만나면서 일을 한 것에 분개했다. 이제 남편이 더럽고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더 이상 남편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부인 H씨는 이 사실을 두 아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유는 부모의 문제를 조용하게 수습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부인 H씨는 남편과 머리채를 쥐고 뜯어면서 대판 싸움을 하게 되었고 이 것을 둘 째 아들이 알 게 되었다. 큰 아드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둘 째는 대학 34학년으로 집에 들어올 시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바빠서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둘 째 아들은 아버지와 집밖에 나가서 담판을 했고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대화를 하라고 같이 집 주변의 공원으로 보냈다. 부인 H씨는 남편으로부터 다시는 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인은 이제 남편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분노해서 칩거하면서 두문불출로 매일 같이 울고 지내는 우울증이 된 것이었다.


 부인 H씨는 더 이상 분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여자의 전화 번호를 알아내어 그 부인의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부인의 외도 사실은 차마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부인이 혹시 늦게 집에 들어온적이 없었느냐고 물었으나 남편은 이상한 전화라고 끊어 버렸다. 부인 H씨는 그 상대방 부인에게 전화를 시도했으나 상대는 현장을 보았으냐며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부인은 참을 수 없어서 그 부인의 집을 처들어 갔다. 대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열어라 열지 않으면 부셔 버리겠다고 대문을 꽝꽝 손으로 발로 찼다. 그 부인은 문을 열어 주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남편을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달라고 했다. 부인은 조용하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부인 H 씨 자신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이니 다시 이곳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 줄 것이니 그 부인에게 남편을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이 서로 각서를 써서 교환하고 나오다가 그 상대 부인의 20대 후반의 딸이 있는 것을 보고 그 딸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다시는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불륜을 저질르지 말도록 엄마를 잘 보살피라는 말을 하고 나오면서 분해서 그 부인의 머리 채를 끌고 몇 번 흔들어서 화를 표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 날에 하루 종일 부인은 분노해서 그 생각의 침투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부인 H씨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써 놓고 그 부인의 집 코 앞에다 창고를 얻어서 사업을 해 온 것이 벌써 일년이 넘는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무시하고 그 여자의 말을 고위한 것으로 높이 평가하는 남편이 미워서 참을 수 없어서 어제 써 준 그 각서를 펴 보았다. 그 각서는 그냥 종이에 낙서 모양으로 글자로 삐뚤어져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삐뚤삐뚤하게 나열되어있었다. 남편이 그런 여성 즉 하찮은 여성, 인물도 좋지 않는 그 여자에게 빠져서 바람을 피우 것도 분한데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인은 다시 그 여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딸이 각성까지 써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해 놓고 왜 또 왔느냐며 항의를 했다. 부인은 그 각서가 마음에 들지 않고 분노해서 참을 수 없다면서 다시 각서를 정서로 잘 써달라고 했다.


이론적 근거

부인 H씨는 이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무 의미가 없고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분노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고 내매 눈물을 흘렸다. 집에서 며칠 전에 자동차 안에서 잠을 자다가 실식사 했다는 뉴스를 듣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나서도 친구나 친척이나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비밀로 해 왔고 조용하게 해결하려고 했으나 더 이상 비밀로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미 계모임의 친구들은 모두 몇 년 전부터 부인 H씨를 제외하고 다 알고 있었고 자신만 바보가 되었다고 분개했다.

 ​부인 H씨는 지금까지 살림만 알뜰하게 살아온 전형적인 전업 주부였다. 지금까지 아끼고 절약하면서 남편과 자식들의 뒤바라지로 외출은커녕 제대로 옷도 하나 해 입지 못하고 화장품도 제대로 사서 쓴 적이 별로 없는 주부였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 하루 아침에 남편의 배신으로써 무너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제는 남편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고 했다. 작년 여름에 남편과 갈등이 있을 때 친정 어머니를 집에서 한달 가량 모시고 있었을 때 부인은 이런 남편의 외도 사실을 친정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지금도 친정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부인은 자신의 고통을 혼자서 마음 속에 넣고 싸아두는 유형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친구들과 관계도 거의 없었다. 학교 친구들의 모임에는 참가 했다가 그냥 식사만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고 했다.


 자신과 비슷한 문제로 고통을 받은 한 친구에게 전화로 외도 사실을 얼마 전에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 만큼 부인은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온 것이었다. 이것이 쌓이면서 누적이 되어 이번의 남편의 외도로 폭발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인은 친정 어머니가 남동생이 30대 후반에 자동차 사고로 죽는 비운을 겪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부인 H씨는 큰 아들이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서울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아들의 독립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서 남편 문제와 겹쳤다고 스스로 진단을 했다. 자녀와 밀착 관계 때문에 자녀의 독립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다는 말이 자녀들을 부인 H씨의 자신의 자아의 확대로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로 자식을 내 보내기가 어렵다는 문제를 의미한다. 둘 째와의 관계에서도 부인 H 씨는 남편의 외도 문제를 최근까지 숨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가족 관계에서 친밀한 대화가 끊어져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문제 해결 과정

 앞으로 부인 H씨는 자신의 마음 속에 쌓여있는 분노와 적대 감정을 모두 방출해야할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부인 H씨는 자신의 내면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솔찍하게 전달하는데 문제 있었다. 대화를 할 때 자신의 내면 감정과 상세한 설명이 부족했다. 그냥 큰 문제점들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치료자가 이점을 지적하면서 상세하게 이야기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빈도수가 많아지면서 점차로 대화의 패턴이 수정되어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인 H씨는 치료자가 아드님에게 상세하게 지금까지 치료자에게 한 것처럼 둘 째 아드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영향을 받아서 당장 그 다음 주에 아느님에게 이야기를 했으나 결과는 아드님이 화를 내는 바람에 오히려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을 하고 후회를 했다. 이것으로 볼 때 자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음이 입증이 된 것이다. 제대로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치료자는 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래도 치료자의 의도를 읽고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했다.

 ​부인 H씨는 지금 와서 남편과 이혼를 하고 남편을 다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루 종일 이 생각 때문에 머리가 터져 나가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특히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를 하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침투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고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끝임없이 내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부인 H씨에게 이제는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서 살아왔으나 부인 H씨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이혼으로 잃는 것보다는 내 자신의 문제를 차고 일어나서 가족도 구하고 내 삶을 다시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이야기를 했다.


 부인 H씨는 치료 과정에서 내내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참지 말고 싫도록 울도록 장려해주었다. 내면 속에서 갇혀있는 목이 졸린 감정들이 쌓여서 내 마음을 갈아먹고 있는 것이니 이것들을 토해내야 함을 강조했다. 부인은 지금까지 취미 생활이 전혀 없었다. 친구들과 계모임이나 학교 동료들과 동창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사회생활의 단절에서 소외감, 나이들어서 중년을 넘어가면서 중년기 위기가 남편의 외도로 표면화된 것이었다.

 ​친정 어머니가 노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도 부인에게 뚫고 나가기 어려운 문제였다. 남동생의 자동차 사고 역시 부인에게 상처로 애통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남아있었다. 부인은 앞으로 과거에 있었던 상실들 즉 남편의 신뢰 상실, 남동생의 사망으로 인한 상실, 큰 아들의 독립에 대한 상실, 남편의 계모임 친구들의 배신에 대한 상실 등을 뚫고 나가야 하고 부인 자신의 자아를 위해서 취미를 살리고 운동도 하고 즐거운 삶의 패턴으로 바꾸어나갸야 할 것이다. 부인 H씨가 이렇게 자신을 찾아서 우울증에서 빠져 나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대상: 회사에 다니는 20대 초반의 여성 Y


증세: 악몽을 자주 꾸며 친구가 별고 없고 우울해서 사는 의미가 없다

접촉: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후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음


진단명: 가벼운 우울증, 불안증


치료 기간: 1주일에 1 2시간 분석 상담 치료를 6개월간 받음


치료 결과: 우울증은 사라졌음, 친구관계가 개선되고 삶에서 에너지를 회복해서 활동적인 일상생활로 되돌아감


 Y양이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치료자에게 보낸 메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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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13일 일요일, 오전 00 47 50 +0900

 

 

 

<jongmankim@hanmail.net>

 

안녕하세요.. 저는 전에 몇번 전화만 하고

치료받으러 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름은 xxx 이구요.

사는곳은 충주입니다..

사실 조금 갈등이 있어서요... 제가 치료 받아야겠다 하고 결정하기 몇달전에

마음에 관한 워크샵을 하는 곳에 갔다 왔고 책들을 보고 제 나름대로

좋은생각들을 하려 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했지만 그런 저의 모습이

자연스럽지고 못하고 왠지 억지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한약도 지어보고 침도 따보고 단전호흡도 해보고 한약을 지어주는 곳에선

홧병이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가슴이 답답한것이니 스트레스를 풀면

바로 없어진다며 좋은 생각, 행동을 많이 하면 많이 좋아진다고 하고..

워크샵에서는 마음에 관한 강의와, 운동, 축복메세지, 좋아하는일, 아침

일찍일어나기, 명상등의 과제를 내며 꾸준히 하면 좋아진다고 했지만요..

한달동안 해봤는데 효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속적으로 되지 않다라구요.

고민 끝에 심리치료를 받겠다 결심을 하고 전화를 드려서 가겠다고 했지만

마음 한켠에선 심리치료 비용이 저를 꽉 잡아버리더라구요..

솔직히 너무너무 답답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왜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의지력이 없고 자신감이 없는것 같아요..

이곳 사이트의 글을 보고 공감이 가는 글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성격장애 부분의 글도 저와 맞는 글들이 많구요..

아무튼 저는 정말 변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렷을때 상처를 받고 저스스로가 그대로 방치를 해버렸습니다.

왜그랬는지 저도 잘 이해가 안가네요.. 많이 놀란것이 장기간 지속되면

무기력해진다고 하죠. 제가 그랬습니다. 기억력도 많이 상실된것 같고...

너무 짜증나고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되네요..

이러면 안되고 나에게 상처를 주게된다는걸 알면서도 제가 제자신을

컨트롤 못하겠어요..

그럼 답변 부탁드립니다....

치료의 과정

 Y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해서 2년 정도 다니고 있으나 자주 삶에 의미가 느껴지지 않고 왜 사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특이한 것은 그녀는 자주 악몽을 꾼다고 했다. 악몽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어 오는 것으로 내용은 유사하다고 했다. 꿈 속에서 아버지가 무서운 얼굴로 하고 잡으려고 하고 Y양은 비명을 지르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을 가다가 아버지가 가까이 오면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는 꿈이라고 했다. 지금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가끔 꾼다고 했다.


 Y양의 꿈의 내용은 단순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적대 감정이 원인이라는 것은 Y 양도 알고 있었다. Y양의 아버지는 Y양이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와 이혼을 하고 지금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인근에 혼자서 살고 있다고 했다. Y 양의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Y 양과 고등학교를 이번에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남동생이 한 명이 있고 이제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이 한명 이렇게 5명의 식구들로 구성되어있었다. Y양의 부모님은 Y양이 어린 시절에 늘 사흘이 멀다하고 자주 싸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는 날은 여김없이 싸움이 있었다. 아버지는 무능력자로 지금까지 생계는 어머니가 다양한 일을 하시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자식들의 양육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고 Y양이 회고를 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화나 가면 집안에 집기들을 집어 던지는 버릇이 있어서 부모가 싸우면 Y 양과 2살 어린 남동생은 늘 방 한쪽으로 도망을 가서 구석에 숨어서 바들바들 떨며 지냈던 기억들을 회상하면서 고통스러워했다.


 Y양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싫어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Y양의 유치원 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면 유치원 어린이들이 야외로 소풍을 갔는데 다른 어린이들은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다른 곳에서 혼자서 놀고 있어서 유치원 선생님이 데리고 있는 사진이 지금도 앨범에 꽃혀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외톨이로 지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괴로워했다. 또 하나의 유치원 사진은 수영장에 갔는데 모두들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다른 곳에서 혼자서 놀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들을 치료자에게 가지고 와서 같이 그 사진들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고통, 외로움, 분노를 이야기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유치원 사진 중에서 그녀가 잊지 못하고 있는 사진은 소풍을 가서 윗도리 옷을 잃어 버리고 위통을 벗고 동무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사진이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와 아버지의 무능력 때문에 어머니가 생계 유지 때문에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아주지 못하고 자랐던 환경 때문이었다.


 Y양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식당 일이나 호떡 장사 혹은 국수 장사 등을 전전하면서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반면에 아버지는 늘 어머니가 하는 일을 방해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가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해방꾼으로 기억되어있었다. 아버지는 늘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명절날이 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큰집에 제사를 지내려 가면 아버지는 언제나 큰집의 인근에 가면 가족들을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자신은 늦게 들어왔고 형제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들이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다른 사람들이 버린 고물들을 주워와서 집에 쌓아두어서 가족들이 쓸데없는 물건이니 내 버리자고 하면 고쳐서 쓸 수 있다고 하면서 집 안에 쌓아 두었다. 나중에 온 집안이 고물 단지가 되어 버리곤 했다. 결국은 아버지는 고물상을 운영하게 되었고 그나마 어머니가 주로 운영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는 이혼 후에 따로 분가해서 인근에서 고물상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Y양은 아버지의 옷차림은 늘 초라해서 몰골이 말이아니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고물상을 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명절이나 추석 때에는 옷차림을 단정히하고 정상을 했으면 하고 기대를 했으나 아버지는 큰집에 갈 때도 별로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늘 아버지는 Y양의 기대에 미흡한 아버지였다. 지금도 회사에 오가면서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 인근을 지나가게 되면 혹시 아버지와 만날까봐 모자를 눌러쓰고 아버지를 만나면 못 본체 하고 지나갈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Y양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어머니가 방에 놓아둔 지갑에서 돈을 몇 만원 꺼내서 가지고 가서 동무들에게 과자나 전자 오락으로 사용했던 기억이 몇 번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눈치를 채신 것같았지만 Y양을 다그치거나 처벌을 하고 않고 모르는체 하고 넘어갔었다고 했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서 왜 그 때 돈을 훔치게 되었는지는 그 때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돈을 가지고 과자를 사주거나 돈을 주면 Y양을 좋아하고 놀이에 끼어넣어주었기 때문에 돈으로 환심을 산 것 같았다고 했다. 동무들 관계의 어려움을 돈으로 환심을 사려고 했던 것은 분명했다. 이후에 어른이 되어 엄마에게 왜 그 때 모르는체 했는지 물었을 때 엄마는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체 해서 다음에 또 습관이 되면 혼내주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고 했다는 말을 들어면서 그 때 몇 번 그런 일이 있다가 이후에 사라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만약 그 때 엄마가 그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처벌이나 강압을 사용했더라면 그 문제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고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라고 해석을 해주었다. 어머니가 현명하게 대처를 한 것이었다. 어린이들은 한 두 번 실수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참고 견디면서 그 어린이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관용을 배푸는 것이 문제의 해결에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Y양 스스로 인정을 했다.


 Y양은 가족들이 오손도손 정답게 같이 식사를 해 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늘 아버지는 으르렁거렸고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를 피해서 도망을 다녔다고 했다.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어색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Y양의 기억에 1 - 3세 사이에 아버지는 그래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늘 시간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 이것을 사진 첩으로 여러 권을 만들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때의 사진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판으로 싸운 뒤에 서로 이혼을 한다는 합의가 있고 나서 아버지는 사진 첩을 끄내서 일일이 가족들의 사진들을 가위로 오려찢어 버리면서 나는 이제 이혼을 하고 영영 떠난다는 말을 하면서 사진을 찢업리는 것을 보면서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왜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애정으로 찍어준 사진들을 가위로 찢어면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습니까? 그렇게 사진을 자녀들에게 없애면서 정을 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녀들의 마음에 심어진 이미지를 지워 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Y양은 치료 시간에 울면서 아버지에게 대들 듯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는 그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서 아버지의 눈치만 보면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자신있어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는 직접적인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Y양이 힘들었던 것은 어린 시절에는 남동생이 늘 자신과 같이 어울려 놀았으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누나에게 대들고 누나를 하인 부리듯이 하는 행동이 시작되면서 Y양은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남동생이 자신을 괴롭히고 폭력을 휘두른다고 호소를 했으나 어머니는 남동생을 제재를 하지 않았고 남동생은 누나에게 자주 폭력적이고 명령적이고 시키는 것을 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서로 몸싸움으로 자주 싸웠으나 남동생이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또 태권돌를 배운 이후부터는 누나가 힘에서 이길 수가 없어 폭력을 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고등학교까지 연장되면서 Y양의 고통을 가중되어갔다.


 Y양의 남동생 역시 Y양처럼 대인관계가 좋지 못하고 자신이 학교 공부와 동료들 관계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누나에게 화풀이 풀었던 것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남동생이 화를 내면 아버지의 행동 스타일과 유사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부정적 감정들과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과 유사했다. 결국 Y양이 남동생의 스트레스 해소의 표적이 된 것이었다.


 Y양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고통스런 마음을 제대로 틀어놓고 이야기할 친구들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남동생의 보호자로써 Y양이 남동생을 다독거려주고 챙겨주었으나 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서로 말을 별로 하지 않고 둘 다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론적 과정

 Y양은 학교에서 친구가 별로 없었다. 동무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를 부모님한데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유아기 때 부모님은 생계 유지 때문에 Y양과 신체 접촉을 많이 하고 대화를 시도했으야 했었으나 먹고 대소변하고 입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정작 이야기를 주고 받고 서로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상대에게 알리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과 상상들을 상대에게 미주알 고주알 알리는 커뮤니케이션에 결함을 초래한 것이 이것이 사춘기와 사춘기 이후에 대인관계 형성에 결정적인 결함으로 작동하게 된 것이었다.


 Y양은 가끔씩 차를 타면 차밖에 차창에 환상적인 상상을 본다고 했다. 그것이 혹시 환청이 아닌가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들은 혼자만의 독특한 괴로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상상 속에 빠져서 자아의 조각남을 막으려는 자아 해체를 막으려는 ego의 방어적 노력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해석에 Y양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Y양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에서 스스로 자신이 창조한 상상을 눈으로 보는 마술적 상상들을 만들어낸 것임을 인정했다. 그 상상 속에 빠져 있으면 어떤점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즐겁다고 했다. 그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되어 기쁘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그런 환상에 빠져있었던 것이 밝혀지면서 실제 환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그 문제는 사라졌다.


 치료에서 Y양은 5살 때 남동생과 같이 놀다가 주차장에서 Y양의 구두가 한 짝이 주차장 지하에 떨어진 것을 남동생이 누나의 신발이라고 주워준 것이 회상되면서 어린 시절에 남동생과의 친밀했던 관계를 회상했다. 과거의 상처들을 하나씩 재연해서 그 때 표현하지 못한 느낌들을 하니씩 표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기술을 배우게 했다. 내 생각과 느낌과 상상들을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하는 과정에서 신체의 긴장이 방출되고 불안이 감소하고 긴장을 해소 시키는 과정이 심리치료의 핵심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 속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였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편안하게 마음대로 이야기하게 했다. 그녀는 마음 속에 아버지의 적대 감정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싶은 분노, 노여움들이 아버지나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되지 못하고 억압되면 그것이 자아로 향하게 되어 자신을 미워하는 우울증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두려움이 꿈 속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잡으려 오고 자신은 잡히면 죽게된다고 두려워 해서 도망을 가는 꿈의 내용은 Y양의 무의식을 그대로 반사시켜주고 있음을 알 게 했다.


 Y양의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로부터 박탈과 학대의 피해자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Y양의 분노는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아버지 자신은 정작 그의 부모들로부터 무력한 사람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인 것이 바로 아버지 자신의 자아가 아닌가! 가난이 대물림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심리적 문제도 역시 자식들에게 대물림됨을 알 게 했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왜 다른 사람은 가정을 가지고 화목하게 살고 있는데 자신은 가족들과 이혼을 하고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Y 양은 서러워했다. 그 대물임을 이제는 그녀가 끊어 버리고 자신은 부모님처럼 바보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어린 시절에 특히 1-3세 사이에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한다. 자녀들을 안전하고 마음의 안정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형성하고 자아가 강한 세상을 상대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자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이 내 세상인 된 것처럼 두려움이 없이 모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실제로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자녀들을 막아주고 내면적으로 걱정 근심이 없이 불안이 끼어들지 못하고 보호해주어야 하는데 Y 양의 부모님은 오히려 자녀들에게 불안, 근심, 걱정을 집어 넣어준 꼴이 된 것이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하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가 되어야 하는 시기에 아버지가 Y양에게 오히려 폭력의 근원이 되었으니 꿈 속에서 아버지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을 치는 장면은 아버지에 대한 Y양의 내면 심리를 그대로 잘 반사 시켜 표현해주고 있었다.


 Y양이 어린 시절에 자신이 학대 받고 공포 속에서 살아온 경험들을 털어놓고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악몽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Y양은 표정이 밝아지고 회사에서도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고 칭찬을 듣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남동생을 이해하게 되면서 남동생과의 거리감이 좁혀졌다. 과거에는 집 안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기를 어색해 했었는데 지금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남동생의 문제를 이해하게 되면서 남동생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동료들과 갈등 때문에 많은 시달림을 받았고 한번은 학교에서 옷에 똥을 씬 적이 있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한 것을 기억해 냈다. 남동생이 군에 입대하기 몇 일전에 Y양이 가족들을 모이게 하고 같이 식사를 하자고 제안해서 한 턱을 쏘았다고 했다. 맥주를 몇 병 사 가지고 안주를 놓고 어머니와 남동생들과 Y양이 같이 앉아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동생의 군입대를 축하는 가족 모임을 오래간 만에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남동생은 이제 밝은 표정으로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의 결과

 Y양은 치료자와 치료 시간에 나눈 이야기들을 집에가서 어머니에게 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 방출에도 좋고 대화를 하는 대화 기술에도 도움이 된다고 권장했다. 그녀는 치료를 받고 나서 그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소상하게 하게되면서 점점 표졍이 밝아져갔다. 어머니는 Y양이 치료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고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엄마는 너희들이 어린 시절에 밥을 굶지 않고 헐벗지 않고 돈으로 학비만 보태주면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으로 알았다"고 미안해했다. 어린 시절에 같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사랑을 어떻게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자식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지금까지 몰랐다고 아쉬웠다.

 

 Y양은 지난 해 여름 휴가 때 혼자서 식장 생활 3년 만에 처음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그녀는 다른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았서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혼자서 유명한 휴양지에 가서 1 2일로 다녀와서 심신을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기뻐했다. 이제 친구들도 사귈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과거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연락에서 한번씩 만나는 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표현하면서 신체적 긴장이 많이 해소되면서 어깨절림 현상과 소화 불량은 사라졌다.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는 나이 많은 언니들과의 관계도 갈등이 많이 해소되면서 서로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되어갔다. Y양은 이제 경제적 문제가 허용되면 자신이 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미술 시간에 만들기와 디자인 분야를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 비치기도 했다. 이제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성 문제에 관심도 가지게 되었다. 남동생은 몇 개월 전에 군에 지원해서 육군에 입대했고 군에 가서 보낸 편지가 집에 도착해서 누나로써 답장을 보내야겠다고 했다. 아버지 문제는 언젠가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상처 받았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