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정신분석학: 과학인가? 예술인가?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22. 2. 21. 12:35

정신분석학: 과학이냐? 예술이냐?

과학문명은 하루가 무섭게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특별히 컴퓨터 분야는 더욱 더 그렇게 보인다. 필자가 휴대폰, 삼성 갤럭시 3을 사용해 오다가 휴대폰의 속도가 느린 것 같아서 2년 전에 최신형으로 갤럭시 10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번(2022, 2, 5)에 체크를 해 보니 2년 만에 갤럭시 22가 출시되어 팔리고 있었다. 1년에 6개씩 2년 만에 12개가 출시된 것이었다. 또 한가지는 삼성에서 첫 프린트기로 사진(편집 인쇄), 스캔(디지털로 전환), 그리고 복사(흑백, 컬러)의 3개를 혼합한 복사기(MyJet Combe)(2005, 2, 26)를 구입해서 사용하다가 몇 년 전에 고장으로 서비스를 신청했더니 그 품종은 단절되어 수리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최신형 프린트기인 레이저 복사기를 구입한 적이 있다.

이러한 유추를 학문에 연결시키면서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필자가 정신분석에 매달리는 것을 보고 정신분석이 등장한지 127(1895에 등장)이 지나갔는데 아직도 고물전에 가 있을 법한 정신분석에 매달리는가? 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대학생이 메일로 선생님 정신분석은 실험을 할 수 없는 학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라는 말에 컴퓨터가 등장한 이래 실험실에게 나온 몇 가지 이유를 들어서 과학적이라는 설명으로 답장을 보내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대답이 미흡해서 씁쓸해 한 기억이 있다.

이 블로그에서는 정신분석이 과학인가? 증명해 보라 라는 말에 더 붙여서 그렇다면 정신분석이 예술인가? 라는 말에 대해서도 아울러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에 도전하는 젊은 세대들이 정신분석은 실험을 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학문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에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모든 학문들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과학자들의 검증을 받게 되어있다. 그 당시는 실험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프로이트의 핵심 이론인 오디프스 콤플렉스) 비과학적이다 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인으로 모국어인 독일어로 정신분석을 썼다. 그런데 특별히 독일에서 정신분석을 실험을 할 수 없는 개인의 머리 속에서 상상으로 나온 소설과 같다 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Ellenberger, 1970). 그러나 프로이트가 사망 후(1939, 10, 23) 20년이 지나가면서 1950년에 등장한 컴퓨터에 의해서 정신분석이 실험실의 도마위에 오르게 된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프로이트라는 인물은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가 살고 있던 그 시대적인 흐름을 타고 난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아무리 천재적인 인물이라도 그 시대 정신에 부합되지 않으면 사장(死藏 )되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조발성 치매(조현병)의 신조어의 등장을 아래에서 보라). 프로이트는 모국어인 독일어의 낭만주의프랑스의 계몽주의를 통합한 시대적인 천재였다. 프로이트가 등장한 시대적인 흐름을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역사적으로 볼 때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경쟁적이면서 적대적인 앙숙(怏宿)관계(앙심을 품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였다(다음 백과).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 “마지막 수업”이라는 글에서 프랑스의 알사스 로랑 지역이 독일에 의해서 점령되어 독일의 영토가 되는 바람에 밖에서는 독일의 시학관(장학사)이 학교 인수를 하기 위해서 둘러보고 있는 동안에 프랑스어의 마지막 수업을 하는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글자 한자 한자에 애정이 담긴 글을 읽는 긴장된 분위기의 장면이 기억으로 회상이 된다(알폰소 도태의 소설). 프로이트의 모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유럽의 최강국이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되면서 1 차 세계대전(1914, 6, 28)이 발발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이 가담을 했다. 여기에 이태리가 가담하면서 3국 연맹으로 그리고 프랑스, 영국, 러시아가 3국 동맹으로 전쟁이 확대되어 유럽과 전 세계가 이 전쟁에 가담하게 된다(2022, 2, 5: 위키피아). 오스트리아는 이 전쟁에 패배해서 영통의 8분의 1만 남게 되었다. 제 1 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이 독일에 과도한 전쟁보상금에 대한 불만으로 정권을 잡은 히틀러가 복수를 외친 것이 독일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해서 제 2 차 세계대전으로 발발로 이어지게 된다(Ellenberger, 1970).

프로이트는 계몽주의낭만주의와 관계 되어있다. 계몽주의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칸트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2022, 2, 5: 위키피아) 즉 1700-1800의 100년이 계몽주의 시대로써 프랑스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반면에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1800-1850년까지 50년 동안 번창을 했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서로 반대가 된다.

계몽주의의 특징이성논리, 합리주의, 종교와 국가의 분리, 개인의 행복 추구의 권리 인정 그리고 사회적인 가치가 우선 등이 특징이다. 이 계몽주의 기간에 프랑스 혁명(1789)이 등장한다. 프랑스 혁명은 귀족계급의 몰락을 가져왔다 대신에 새로운 중산층으로 부르주아가 등장하게 된다. 학교가 설립되고 과학의 등장으로 중세 1000년의 미신과 무지에서 깨어나게 된다, 반면에 낭만주의는 비합리주의, , 상상, 예술, 문화, 개인의 가치가 우선한다.

낭만주의의 대표자가 세계적인 대 문호인 괴테(Goethe)(1949-1832)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에 발표)은 필자가 즐겨 불렀던 노래,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에 편질 읽느라---" 라는 노래 속에서 그리고 파우스트는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인 국어 선생님이 여름 방학 숙제로 파우스트를 읽고 독후감을 써 오라고 한 것 때문에 읽었지만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그냥 책의 서문에 소개한 한 젊은 법대학생이 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욕망의 노예가 된다는 내용을 그대로 베껴서 적어낸 기억이 난다. 악마의 이름인 메피스토펠에스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파우스트는 프로이트가 애지중지한 작품으로 영혼을 잃어버린다, 영혼을 팔아먹는다 라는 이 용어는 정신분석에서 자주 등장을 한다. 낭만주의의 또 다른 인물들이 바로 철학자 칸트(Kant)(1724-1804)이다. 그의 유명한 순수이성 비판철학(필자는 읽어보지 못했다) .

그리고 철하자 헤겔(Hegel)(1770-1831)이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정신분석에서 단골이다. 프로이트의 갈등 이론의 해결책으로 변증법은 정신분석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헤겔의 주인과 노예 관계정신분석에서 친밀감과 독립심에서 역시 핵심 단골이다. 철학자 셀링(Schelling)은 프로이트가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로써 자연의 양극 현상(해와 달, 남자와 여자)을 프로이트가 수용해서 삶의 본능과 죽음 본능, 자아와 대상(나와 너), 즐거움과 불쾌감의 이론으로 이원적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 620).

독일의 낭만주의가 낳은 문학, 예술, 철학에 반기를 들고 과학 혁명을 몰고 온 사람이 바로 허만 헤몰츠(Herman Helmholtz)(1821-1894)이다. 그는 내과의사, 철학자, 생리학자, 심리학자로써 색깔 비전(눈의 색체 비전의 규명)과 지각 이론으로 그리고 물리학자로써 열역학과 에너지 보존이론으로 또한 철학자로써 과학 철학과 심리미학(aesthetics)으로 알려진 명사로써 독일의 과학화 운동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그는 동료들을 규합해서 모든 학문을 물리, 화학, 수학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조직을 만들어서 독일 물리학회의 탄생시켜서 독일의 과학 교육에 선봉장이 된다. 그 시점에서 프랑스인으로 사회학자로써 사회과학은 실험실에서 증명해야 과학이 될 수 있는 프랑스인 꽁트(Comte)(1798-1857)의 실증주의(positivism)(1848년에 등장)가 한몫을 했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헤몰츠는 이 영향으로 모든 학문에서 과학을 주장하고 그의 영향력으로 독일은 과학계의 선두주가가 된다. 독일에서 번창하던 문학, 철학, 예술은 20세기 후반에 모순적으로 프랑스로 이동해서 꽃을 피우게 된다.

프로이트와 관계된 또 하나의 시대적 흐름은 바로 정신병이다. 중세 1000년 동안 정신병은 귀신의 빙의현상으로 인식되어 퇴마의식이 유행을 했다. 계몽주의의 아들인 의과대학 출신의 의사인 메즈머(Mesmer)가 귀신이 씌운 것이 아니고 정신병이다 라고 선포를 하고 치료법으로 자석으로 건강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유체를 병든 사람으로 이동을 시키는 자석치료 들고 나온 유체이론이다. 자석치료가 등장한 50년 후에 자석의 힘이 아니고 최면의 현상으로 밝혀져서 내과의사인 가르코트에 의해서 1882-1893년까지 10년 동안 프랑스 파리가 정신병의 치료의 메카가 된 그리고 프로이트가 스승인 브로이어에게 안나 오(Anna O)의 치료과정에 매혹되어 가르코트에게 최면학을 공부한 것은 역시 수차례 소개를 했다.

반면에 독일의 신경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빌헬름 그리싱어(Wilhelm Griesinger(1817-1868)가 독일어 정신과 교과서를 쓰면서 최면학의 치료 사례를 인용하면서 앞으로 정신의학은 최면의 연구가 아니고 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라는 교과서를 출판을 했다. 이 교과서는 1862년에 2판으로 출판되었다. 그 시점에서 독일의 정신과의사인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이 그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독일의 정신의학 교과서를 집필해서 제 7으로 이어졌다. 고로 독일의 정신의학은 뇌가 중심이 되었다 그는 1896년조울증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 조현병)를 서로 다른 질병으로 분류를 발표를 하면서 조울증은 감정 장애이고 조발성 치매는 사고 장애이다 라고 천명하고 치료 비율이 2%라고 발표를 했다. 조발성 치매라는 말은 독일어로 dementia praecox로서 dementia는 정신병이고 praecox는 젊은이라는 뜻으로 젊은이의 뇌의 질병이란 뜻이다(우리나라 영어 사전에 치매로 번역한 것은 치매는 뇌의 세포가 죽어가는 뇌의 질병이기 때문에 잘못된 번역).

그런데 조발성 치매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신조어로써 사용한 사람은 1853년프랑스의 내과의사인 베네틱 오그스트 모넬(Benedict August Morel)이었다 그는 젊은이의 뇌의 질병을 demence precoce라는 이름으로 그의 교과서에서 신조어로 발표를 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그의 용어는 시대적 흐름을 타지 못하고 사장되어 있다가 50년이 지난 이후에 독일의 정신과의사인 크레펠린에 의해서 다시 재 등장하게 된 것이다(Ellenberger, 1970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를 보라).

이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프로이트는 헤몰츠의 친구이자 독일의 물리학 열풍을 일으킨 비엔나 의과대학의 해부학 연구소장인 부케(Brucke) 밑에서 8년 동안 연구 조교로 그리고 뇌의 연구에서 세계적인 대가인 뇌 연구소메이너트(Meynert)밑에서 3년 동안 철저한 과학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레지던트 4학년 때 프랑스의 카르코트 한데서 최면학으로 전향을 했다. 프로이트는 메이너트의 뇌 연구소에서 뇌의 실어증 연구를 하다가 메이너트의 뇌과학이 철저한 사이버학문으로 기계론적으로 영혼이 빠진 것을 감지하뇌의 생리학과 신경학을 심리학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었다(Moore, 1999: 주(주): 참고). 그가 최면학으로부터 독립을 해서 독립된 정신분석학을 설립하면서 철저한 객관적인 과학화로, 과학자로써 정신분석을 쓰게 된다.

그는 정신분석의 치료와 기법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환자로부터 데이터를 모으고 치료의 과정을 과학화 했다. 그는 모든 학문이 실험실에서 실험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고 실험할 수 없는 학문들도 있다고 썼다. 그래서 그는 그의 심리학을 메타심리학(metapsychology)이라고 불렀다. 즉 큰 심리학으로 실험실에서 태어난 분트의 심리학구분을 했다. 물리학에서 실험을 할 수 없는 학문을 메타물리학(metaphysics)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메타물리학은 다음 국어사전에서 형이상학으로 번역되어진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으나 영어에서 메타라는 말에 물리학(met+ physics)의 용어로 실험을 할 수 없는 물리학이라는 말이 형이상학이라는 뜻으로 명쾌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사실을 기록할 때 즉 데이터를 모을 때 객관적인 자세로써 분석가는 중립으로 그리고 익명으로 그리고 절제의 정신으로 기술을 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다른 사람이 똑 같은 방법으로 기술을 해서 똑 같은 데이터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진실이다 라고 썼다. 그의 방법은 지금도 사용되어지고 있다.

정신분석의 치료 기법에서 빈 공간(blank screen)이라는 말은 분석가의 주관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분석을 받는 사람(환자)의 마음이 그 빈 공간 속에 등장하도록 한 프로이트의 강조로 등장한 것이다. 고로 분석가는 중립적으로, 익명으로, 분석가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철저한 절제된 억제로서 그리고 애착회피로 감정이 배제된 냉정한 자세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마음만 비치도록 해서 빈 공간 혹은 거울반사라고 표현을 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는 카우치를 사용을 했다. 분석을 받는 사람이 수평 침대와 달리 반쯤 누워있는 편안한 카우치 침대를 고안을 해서 자유롭게 연상으로 자신의 마음 속에서 흘러가는 생각, 상상, 감정, 지각 등을 빠짐없이 표현하도록 하는 자유연상 기법을 사용을 했다(Aron, 1996: 주㈜: 참고).

프로이트가 왜 카우치에 누워서 자유롭게 표현을 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는가?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그는 분석을 받는 사람(환자)이 분석을 하는 분석가의 눈을 마주치면 분석가의 마음을 읽고 분석가의 눈치를 보는 것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분석가는 환자의 카우치 뒤에 앉아서 환자가 분석가를 보지 못하게 하고환자가 표현하는 것을 따라가면서 실마리를 모으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노트를 했다.

카우치의 사용이 효과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과학이라는 검증을 받게 된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실험실에서 62개의 버턴을 머리에 장치를 하고 뇌파의 움직임을 검사를 했다(EEG검사). 그 결과 카우치에 누워서 눈을 감고 연상을 할 때 뇌의 긴장이완이 최대가 되어 뇌의 회전능력이 최고가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Bollas, 1987: 주㈜: 참고).

여기에서 또 한가지는 자유연상이 역시 과학자의 실험실의 도마위에 오르게 된다. 프로이트는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의 이유를 밝혔다. 인간은 연상으로 배운다. 물과 불, 해와 달, 책상과 걸상, 남자와 여자 등의 서로 반대되거나 유사한 낱말들이 연결되면 인간이 더 쉽게 빠르게 배울 수 있다 라는 그리스 시대부터 널리 알려져 있던 연상의 법칙을 사용을 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이 연상학습이 증명된 것은 1905년에 러시아의 생리학자인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의 개의 실험에서였다. 그의 조건학습은 이미 수차례 소개를 했다. 그는 개의 위에 구멍을 뚫어서 위액과 입의 침을 데이트로 측정을 했다. 개는 고기를 보면 침을 흘린다. 이것은 본능으로 선천적인 것이다. 그런데 고기를 주기 0.5초 전에 빛이나 혹은 벨소리 이후에 고기를 주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한 후에 빛()에 개가 침을 흘리게 된 것이다 즉 개는 빛(벨 )에 고기가 나온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이것을 조건학습이라고 부른다. ()과 고기가 서로 짝이 되어 소화액인 침과 위액이 나온 것수학적으로 데이터화 한다.

파블로프는 학습이라는 것이 뇌의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서로 짝으로 연결되어져서 이것이 기억으로 인간이나 동물들이 경험으로 배우게 된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증명한 것이다(Hall, 1982: 학습과 기억 심리학). 그는 이 연구를 1904년 세계의학 총회에서 발표를 했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된다.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자극과 반응(S-R 심리학)의 실험 심리학이 된다. 심리과학은 독일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분트(Wundt)에 의해서 1879년에 탄생을 했다. 모든 과학은 수학, 물리학, 생물학을 사용해서 실험실에서 데이터와 해야 한다 라는 과학 운동의 장본인인 헤몰츠의 조수였던 분트가 독일의 두번째 오래된 라이프지그(Leipzig)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있을 때 1879년에 감각과 지각의 측정으로 실험실에서 등장했다. 여기에 파블로프의 조건학습이 첨가되어 1950년까지 미국의 심리학의 주축이 된다.

조건학습은 유사한 두개의 낱말 즉 ()과 고기이다. 이것이 바로 연상의 법칙을 실험실에서 증명함으로써 뇌의 회로에 경험의 흔적을 증명한 것이 아닌가? 두개의 낱말이 서로 짝지어져서 연결되어지는 것은 바로 뇌의 신경세포 회로가 연결되어진다는 것이다 즉 학습은 뇌의 신경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된다는 것은 이후에 1950년대애 등장한 컴퓨터로써 파블로프의 조건학습은 또다시 정확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어린이가 글(낱말)을 배울 때 한쪽에 연필, 공, 책 등의 글자와 반대 쪽에 그 모양들을 나열 해놓고 서로 연결하도록 줄긋기로 글자를 배우는 과정이 바로 연상으로 배우는 조건학습이다. 우리가 어린시절에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웠던 글자, 낱말을 서로 줄긋기(낱말의 연상 즉 연결)를 하면서 배운 것을 회상해 보라.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심리적인 상처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모든 동물과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취한다 라는 프로이트의 즐거움의 이론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에피쿠리우스(Epicurus)의 쾌락의 법칙을 사용해서 프로이트는 심리적인 상처는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잊어버리게 된다. 과거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억을 했다가 잊어버리는 것은 영원이 기억속에서 사리진 것으로 망각으로 표현을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상처받은 기억은 망각이 아니고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어서 기억하지 않게 된 것으로 설명을 했다. 즉 연상 (association)으로 배운 것이 심리적 고통으로 인해서 서로 연결이 단절된 즉 연상의 반대말로 해리(disassociation), 분열, 쪼갬(splitting)이 된다는 상처이론을 등장시키게 된다(정신분열증(조현병)은 생각과 감정과 같은 인지와 정서사이 그리고 사랑과 미움과 같은 양면가치의 분열이다).

자유연상의 방법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옛날부터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은 시골의 편안하고 조용한 자연속에서 자유롭게 경험들을 모아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창의적인 작품의 생산 과정이 바로 자유연상이 아닌가?

상처는 그 환자가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이지만 무의식 속에서 저장이 되어져 있다. 고로 긴장이 이완된 최고의 안정된 마음의 상태에서 머리 속에서 생각을 떠 올리게 해서 서로 연결을 시키는 방법처음에 학습으로 배울 때보다 한층 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이미 한번 경험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 과정을 고고학에 비유를 했다. 문명이 사라진 과거의 흔적들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서 그 원형을 복원을 하는 것이다. 고로 자유롭게 이리저리 생각을 하게 되면 유사한 과거의 연결되었다가 단절되었거나 억압된 기억들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Jung)은 세계 최초 현대적 정신병원인 스위스의 부르고졸리(Burgholzli)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 조현병)의 치료를 하고 있을 때 제5대 총장인 유진 블루어(Eugen Bleuler)의 제안으로 실험실에서 단어 연상법이라는 기법을 고안해서 사용을 했다. 즉 물, 불, 자동차 등의 단어들을 30여개의 리스트를 환자에게 제공하고 환자들로 하여금 읽어보라고 하면서 그들이 말을 할 때 평균속도를 측정을 하는 것이다. 그 때 환자가 물에서 멈칫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물에 관계된 상처기억을 회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시절에 상처를 받은 낱말들은 놀램과 거부감을 보이게 되다는 원리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부르고졸리 병원을 사직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회에 가입하면서 (Jung)은 단어 연상법보다는 자유연상을 채택을 하게 된다. 단어 연상법은 정해진 단어의 수자 속에 포함되지 않으면 찾기 어렵기 때문에 제한이 따라온다. 그러나 자유 연상은 흘러가는 생각들을 이리저리 사용해서 연결하기 때문에 효과적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Ellenberger, 1970).

카우치와 자유연상은 127년이 지난 지금도 정통과 정신분석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과학인 증명 때문이 아니겠는가?

프로이트의 대명사인 오디프스 콤플렉스는 어린시절의 3세-5세까지의 오디팔 기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이 어린시절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이 등장하게 된다. 어린이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월리엄 워즈워더(William Wordsworth)(1770-1850)이다. 그는 그의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썼다. 모든 어른들은 어린시절을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어린이 시절의 중요성을 학문적으로 이론화 한 사람은 프로이트이다.

오디팔 기간은 엄마 품에서 분신으로 자라나는 어린이가 아빠라는 인물을 인식하고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이 사이에서 최초의 삼각관계로 엄마의 사랑의 경쟁자가 된다는 이론에서 왜 어린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인가? 를 설명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린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게 된다. 스위스의 신경학자, 심리학자가 된 에도와르 클라파르데(Edouard Claparede)가 어린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어린이 연구에 박차가 가해지게 된다 그는 제네바 의과대학 졸업후에 가르코트의 살폐트리아(Salpetirere) 병원에서 1년 동안 취면학을 연구했다 이후에 제네바 대학에서 실험심리학자가 되었다. 그는 스위스 정신분석학회의 회원으로 있다가 융(Jung)이 정신분석학회에서 탈퇴하면 스위스의 정분분석학회도 함께 탈퇴하면서 클라파르데도 함께 탈퇴를 했다 그러나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의 논문과 몇 개의 정신분석 논문들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정신분석을 소개한 장본인이다(2022, 2, 13: 위키피아).

프로이트가 최면학을 포기하고 욕구 이론으로 독립된 정신분석학을 창조하면서 어린이의 성장 과정을 기술한 것이 바로 정신분석의 발달이론이다. 구순기(0-1), 항문기(1-3), 오디팔기(3-5), 잠재기(6-12), 성기기(13-19)인간의 발달을 5단계로 기술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청년기를 통과하면서 이성과 결혼으로 어른이 되면서 발달이 끝난다고 보았다.

여기에 에릭슨(Erikson)이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이 생물학에 초점을 맞춘 것 때문에 단점으로 비판을 받고 있던 사회, 문화적인 요소를 첨가해서 성인기, 중년기, 노년기를 포함하는 8단계로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심리사회학(psychosocial)적인 이론으로 확대시켰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발달학으로 정신분석의 발달이론이 심리학 안에서 발달심리학으로 확대되어 등장하게 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진 피아제(Jean Piaget)가 어린이의 인지발달(생각의 발달) 이론을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로렌스 콜베르(Lawrence Kohlberg)가 도덕의 발달 등으로 확대되어지면서 어린이들의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의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게 되면서 오디오(녹음)와 비디오(녹화) 그리고 16mm 영화 촬영기 등으로 실험실에서 각종 실험들을 통한 발달심리학이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실험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과하게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컴퓨터의 등장으로 신경과 세포의 개수들을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들이 하나씩 실험이라는 검증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의 소아학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다니엘 스턴(Daniel Stern, 1977: 주㈜: 참고)이 16mm 영화 촬영기로 신생아를 6개월동안 24시간 촬영으로 분석한 “최초의 첫 번째 관계라는 그의 저서에서 유아는 출생 직후에 계속해서 먹고자는 핏덩어리가 아니고 능동적으로 스스로 지각을 통해서 주변환경을 탐색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특별히 엄마의 품에 안겨 엄마의 젖을 빨 때 8cm의 거리가 유아가 엄마의 얼굴을 가장 정확하게 본다는 것을 밝혀냈다. 더 붙여서 아래의 실험실에서 나온 유아들의 실험은 김종만(1999)의 저서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에서 인용한 것이다(김종만, 1999, pp. 130).

모러와 살라페틱(1976)은 유아에게 엄마의 얼굴과 낯선 사람의 얼굴을 특수 유리기술로 조정하여 사람 얼굴이 유아의 눈 앞에 비치도록 특수 컴퓨터 장치를 하여 유아의 눈 알의 움직임을 특수 카메라로 촬영해서 분석을 하였다. 그 결과 1개월 된 유아의 눈알의 움직임은 얼굴 전에 중에서 몇몇부분, 특히 머리 부분의 두 곳과 턱 부분을 스캔할 수 있었다(부분지각). 그러나 2개월된 유아는 얼굴의 넓은 윤곽(전체지각)을 상세하게 탐색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동시에 1개월 된 유아는 얼굴 바깥 부인에 집중했다. 이 실험으로 유아는 단순한 형태뿐만 아니라 인간의 얼굴 모습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프로이트는 신생아는 즐거움과 불쾌감을 구분할 수 있다고 썼다. 좋은 것은 삼키고(입사) 불쾌한 것은 뱉아낸다. 0세-1세까지의 중심은 입과 입술이다. 모든 에너지가 입과 입술에 집중이 되어 먹고 마시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기술했다. 이것이 바로 0세-1세의 구순이 이론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스(Davis)에서 유아연구실의 아크(Acrdolee)와 굿윈(Goodwyn(2000: 주㈜: 참고)은 그들의 저서 “유아의 마음”에서 신생아의 혀의 맛 봉오리가 어른보다 3배로 많다 그리고 신생아는 단맛을 좋아한다. 모유, 우유, 물을 젖병에 넣어서 제공했을 때 모유를 가진 깊게 많이 빨았다는 것으로 신생아는 엄마의 모유를 구분할 수 있다. 임신 7개월 때 엄마의 목소리를 녹음을 해서 규칙으로 들려준 이후에 출생직후에 신생아가 엄마의 녹음된 목소리와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엄마의 목소리의 녹음에 울음을 그쳤다 즉 엄마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라는 것이 밝혀졌다. 신세대 부모들이 임신한 아기의 태명을 짖고 아기와 대화를 하는 유형들을 이런 발달학에 근거해서 인기를 모으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의 욕구 이론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는 엄마의 유방을 통해서 엄마의 젖을 빨면서 엄마의 얼굴을 그리고 엄마의 유방을 만지면서 감각적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엄마와 아기 사이에 너와나의 하나된 거울반사를 통해서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마음 속에 비쳐서 아기의 마음이 된다. 아기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신체적인 감각으로 사랑을 느낀다 이것이 감정 언어이다. 인지적 언어는 1살 이후에 뇌의 하이포켐프스라는 기억의 뇌에 저장되지만 0세-1세의 감각적인 감정 언어는 아미그달라(amygdala)라는 감정의 뇌에 저장이 된다. 아미그달라 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알몬드 라는 낱말로 알몬드 만한 크기인 감정의 뇌에 신체접촉을 통한 사랑의 기억이 저장이 된다.

신생아들이 엄마의 유방과 안아주는 신체적인 접촉을 통한 감각적인 즐거움의 충족이 수유(우유)보다 더 중하다 라는 것이 프로이트의 욕구 이론이고 어린시절에 욕구불만족으로 욕구만족의 발달 단계가 그 지점에서 성장이 중지된 것이 고착 이론이다. 어린시절에 신체접촉을 박탈당한 학대받은 어린이 혹은 열악한 고아원에서 성장한 유아들은 심리적 상처로써 사랑에 고착이 되고 평생동안 사랑에 집착하게 된다. 고로 이러한 고착의 치료가 정신분석의 치료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여러 번 강조되어 지적이 되었다.

여기에 대한 발달심리학에서 실험실은 이러한 신체접촉과 피부 접촉에 대한 실험실의 증명으로 정확하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생아들이 피부접촉 다시 말해서 안아주기 눈길주기 쓰다듬어 주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5감각 중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피부접촉이라는 것이 실험실에서 증명이 된다. 즉 500원자라 동전의 크기의 피부에 세포가 300만개, 땀샘이 100만개, 신경촉수가 50만개, 15족의 신경길이(12 feet)그리고 3족의 혈관 길이(3 feet)로 구성되어져 있기 때문에 특별히 어린이는 피부접촉을 좋아한다 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Acrdolee, Goodwyn, 2000: 주㈜: 참고).

정신분석가이자 발달 심리학자인 베베(Beebe)와 라크멘(Lachmann)(1988: 주㈜: 참고)은 신생아들에게 엄마의 얼굴 표정들놀람, 기쁨, 공포, 두려움 등의 표정을 보여주면서 신생아들의 표정을 촬영을 했다. 그 결과 신생아들은 엄마의 얼굴 표정을 반사시켜서 엄마의 감정표현과 유사하게 감정의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거울반사에 대한 증거가 바로 2003년에 이태리의 신경학자인 지오코모 로잘레티(Giacomo Rsolatti)가 그가 실험실에서 바나나를 먹고 있는 것을 원숭이가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그가 연구 중에 있던 뇌의 특정 부분이 작동하는 것을 밝혔 냈다. 즉 뇌 속에 거울산사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Mearles, 2003: 주(주):참고).

2015년에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할리우드의 영화를 통해서 뇌의 컨트롤 센터 안에서 5개의 의인화된 감정이 서로 대화로써 갈등과 조화를 이루는 장면들을 통해서 인간의 행동을 뇌와 연결해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가 등장하면서 프로이트의 3개의 자아 즉 원초자아, 현실적 자아, 초자아가 다시 한번 각광을 받게 되었다.

프로이트은 인간은 3개의 자아로 구성된다 라고 가설화 했다. 출생시에 타고나는 원초자아(0) 그리고 오디팔 기간에 선과 악의 구분(잘 잘못의 구분)과 미래를 위한 희망과 이상화의 능력의 중심이 되는 초자아(3-5) 그리고 현실적인 자아인 ego는 사회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기능으로 성숙한 어른으로 19년의 장기간이 걸리지만(법적인 어른의 인정) 부모의 ego 보조의 도움으로 성숙하게 된다.

고로 5세-6세의 기간에는 인간의 3개의 자아의 골격이 형성되어지기 때문에 세부적인 기능들이 부과되어 지지만 그 본질은 크게 변함이 없다 라고 이론화했다. 여기에서 과거에 우리 부모님들이 3살 버릇 여든까지 라는 금언과 일치된다.

이 이론에 대한 검증이 등장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의 컴퓨터의 발달은 과거의 신경생리학이라는 이름을 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시카고대학의 뇌과학자인 엘리옷(Eliot, 1999: 주㈜: 참고)의 저서 “뇌 속에 무슨 일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버클리 대학의 뇌 과학자인 다이아몬드(Diamond, 1999: 주㈜: 참고)의 저서 “마음이라는 마술의 나무”라는 저서에서 그들은 신경세포의 숫자들을 카운터를 했다. 유아는 출생직후에 모든 신경세포들이 24시간 365일 동안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게 되면서 0세-3세의 짧은 기간에 시각 신경세포의 1개가 1800배의 증폭으로 이것이 전체 신경세포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카운트를 해서 빅뱅 현상(대폭발)(우주이 빅뱅현상에 유추해서)이로 이름이 붙여졌다. 그 결과로 3세-5세 경에 어린이들의 신경세포가 어른신경 세포보다 3-4배가 많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여기에서 사용하지 않고 사장되는 불필요한 신경세포는 가지치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신경세포의 전정(가지치기)으로 표현을 했다. 그들이 밝혀낸 어린이들의 신경 세포의 숫자들과 성인 어른의 신경세포의 숫자들을 카운트를 해서 비교한 한 결과 5세의 어린이들의 뇌 신경세포의 숫자어른 신경세포의 90%에 그리고 7세에 어른 신경세포의95% 그리고 10세에 어른 신경세포의 97%가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3개의 자아가 5세-6세의 오디팔 기간에 인간 성격의 골격이 완성된다는 이론을 증명한 것이 아닌가?

여기에 또 한가지는 뇌 속에서 자아의 위치를 밝혀내는데 성공을 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컴퓨터 영상학으로 자아를 연구하고 치료를 하는 심리영상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포르투칼 출신의 미국인 신경학자, 심리학자, 철학자로써 남 캘리포니아 대학에 신경학교수로써 마음에서 나온 자아(self comes to mind)(2010)라는 저서로써 뇌의 영상학을 통해서 뇌 속에서 자아의 위치를 밝혀냈다. 그는 뇌의 에너지들이 움직이는 장면을 색깔로 표시되는 양전자 단층촬영의 기기(PET)를 통해서 자아의 위치를 시각전 전두엽의 앞부분이라는 약자로 Pb3a, Pb3b라고 이름을 붙였다(Mearles, 2003).

발달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의 이론들은 제자들에 의해서도 실험실에서 실험들로써 증명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정신분석가가 바로 독일에서 소아과 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마그리트 몰러(Margaret Mahler, 1976: 주㈜: 참고)이다. 그녀가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의 지원으로 뉴욕에서 마스터 어린이센터를 설립하고 4명의 유아들을 3년 동안 실험실에서 그들의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을 녹음기와 비디오를 동원해서 기록하고 관찰하고 분석을 해서 1975년에 “인간 유아의 심리적 탄생”이라는 저서를 출판을 했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인간 발달에 대한 정신분석이 실험실에서 정확하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을 했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구순기 항문기 오디팔기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대신에 자신의 전문용어를 사용해서 분리-개인화 하는 용어를 사용을 했지만 그녀의 실험에서 프로이트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부분을 살펴보자.

프로이트는 출생직후에 유아는 자신의 자아속에서 갇혀 있다. 병아리가 달걀 속에서 자생분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유아는 자궁속에서 10개월동안 엄마의 영양분의 공급으로 살다가 출산 후에 자궁 박으로 나왔을 때 몇일 동안 외부의 세계보다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기술하면서 이것을 1 차 나르시즘으로 불렀다.

이 시점에서 외부에서 돌봄과 먹는 것이 공급되는 것을 지각하고 양육자 쪽으로 항하게 된다 라고 노트를 하면서 이 단계를 제 1 차 나르시즘 단계라고 불렀다. 몰러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이것을 밝혀내고 그녀는 이것을 정상적 자폐아 기간으로 이름을 붙였다. 몰러는 소아과 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으로 어린이들의 정신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치료를 한 장본인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제 1 차 나르시즘으로 자폐증의 원인을 설명하고 치료를 하는데 공헌한 사람이다.

필자는 1999년에 쓴 저서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자아의 성장과 발달)에서 자폐증의 치료를 간단하게 소개한 바 있다(김종만, 1999, pp. 328-330를 보라).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학의 소아과 교수이자 정신과의사, 정신분석가인 그린스핀(Greenspan, 1997: 주㈜: 참고)이 자폐증에 대한 치료를 하면서 안아주기 눈기주기 신체접촉 피부접촉을 통해서 처음으로 자폐증 어린이를 70% 정도 성공적으로 치료를 한 것을 소개를 했다.

이후에 필자가 영국의 자폐증의 세계적인 대가인 정신분석가인 프란시스 투스틴(Francis Tustin, 1975: 주㈜: 참고)의 저서인 “자폐증과 어린이 정신증” 그리고 “신경증 안에서 자폐증적인 장애물”의 저서를 구입해서 그녀가 프로이트의 제 1 차 나르시즘으로 이론화한 것을 알게 되었다.

자폐증 어린이들은 5감각의 분열로써 특이한 감각에서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영화 레인 맨(더스틴 호프만 주연)에서 숫자에 천재적인 능력, 말아톤(조승우 주연)에서 달리기 능력) 마음이 없는 빈공간으로 딱딱한 물건에 집착을 한다, 그녀는 자폐증 어린이는 마음이 없는 블랙홀로써 기술하고 있다.

자폐증 어린이는 유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안아주기, 눈길주기, 피부접촉을 가장 싫어한다. 이것을 5감각의 분열로 인한 원인으로 보았다. 한 개의 물건을 하루 종일가지고 있다,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자아가 없기 때문에 몸의 모든 내용들이 피부 밖으로 빠져가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자아 대용으로 사용한다 라는 가설로 그녀는 자폐증 어린이가 가장 싫어하는 안아주기, 눈길주기 피부접촉의 감각을 집중적으로 느끼고 감각하는데 치료의 초점을 맞추어서 성공적 자폐아의 치료를 보고하고 있다.

1 차 나르시즘의 상황에서 엄마에게 실망한 신생아는 나르시즘의 꼬투리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고 그 속에서 갇힌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1943년에 존 홉킨스 의대 소아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레오 케너(Leo Kanner, 1943)는 11명의 특이한 어린이의 보고서에서 학계에서 최초로 자폐증을 보고한 학자로써 11명의 어린이들의 엄마의 특징을 지식 수준은 높지만 감정적으로 반응이 빈약한 냉장고 엄마로써 표현한 것과 일치된다(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83세의 할아버지까지 포함한 모든 정신장애들을 치료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단치 자폐증은 제외: 자폐증은 놀이치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카우치에서 자유연상으로 신경증 환자를 치료를 했다. 그러나 정신증(조현병, 편집증, 조울증)그리고 심각한 성격장애는 전이(치료 동맹의 형성)가 형성이 되지 않기 때문에 치료효과가 없다고 금시 시켰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제자인 독일의 정신과의사로 정신분석가가 된 칼 아브라함이 1909년 제 1차 국제정신분석학 총회에서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 조현병)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연구”라는 논문으로 정신분석가들의 정신증과 성격장애 치료에 길을 열어놓게 된다.

드디어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정신증, 성격장애 치료에 뛰어들게 된다 그 중에 한 사람인 어네스트 심멜(Ernest Simmel)이 신경증 환자들은 언어 능력이 풍부해서 은유와 추상적인 상징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정신증 환자들은 대화를 할 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을 하고 싶지 않고 그리고 충동적이어서 대화 도중에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의 스타일이 콘크리트한 용어가 많다고 노트를 했다 고로 카우치를 사용하는 장 유연상보다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하는 방법을 발표를 하면서 뉴욕의 정신분석가들이 마주보고 대화를 나는 방법을 채택하게 된다(Stone, 1983: 주㈜: 참고).

여기에서 자유연상을 하든지 혹은 마주보고 주고받는 문답식으로 하든지 간에 45분-50분으로 대화를 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프로이트는 약물치료를 하지 않았다(약물은 1950년대에 등장). 그의 치료기법을 대화치료(talking cure)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대화 치료가 효과가 있는가? 라는 문제가 역시 실험실의 도마위에 오르게 된다. 영국의 언어학자로, 문화인류학자로 그리고 사회학자, 기호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 가족 치료학자인 제이 헬리(Jay Haley), 정신과의사인 단 잭슨(Don Jackson), 정신분석가인 존 위클랜드(John Weakland) 그리고 심리치료사인 위즐위크(Paul Watzlawick)가 한 팀으로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Palo Alto)에서 정신건강 연구소(MRT)를 설립하고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가족구성원들을 전체를 모아서 치료 연구를 했다

(MRT는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와 다른 기관이다. NIMH는 미국의 급격한 산업화에 대한 부산물로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 때문에 1943년에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서 유일하게 국립으로 정신건강 연구소를 설립해서 미국 전체 정신건강의 연구와 치료를 지원하는 국가 기관으로 27개의 분과로 구성: 2022, 2, 13: 위키피아).

그 결과 대화 치료의 우수성이 실험실에서 입증된다 그것이 바로 1956년에 발표된 이중 구속, 이중 속박 이론이다(Double bind 이론) 즉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본격화하게 된다. 인간의 대화가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것은 녹음기와 비디오, 영사기의 등장으로 말을 하는 대화를 녹음, 녹화로 분석이 가능하게 되면서 대화의 중요성이 드디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모든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것은 없다. 말을 하지 않는 것, 침묵, 묵언 커뮤니케이션이다. 노려보는 응시, 눈길주기를 피하는 것대화이다. 커뮤니케이션에는 구두어와 비구두어로 나눌 수 있다. 말로써 표현하는 구두어표정어제스처, 자세, 태도 등의 비구두어로 대화를 한다.

인간은 구두어(30%)보다 비구두어인 표정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70%). 구두어와 표정어의 모순일 때 사람들은 표정어를 따라간다. 신경증 환자들은 구두어가 잘 발달해서 은유, 상징, 추상적인 능력에 어려움이 없지만 정신증 환자들은 언어 표현 능력이 부족해서 주로 감정을 행동으로 많이 표현을 한다(정신분석에서 acting out). 화가 나면 주먹이 먼저 올라가거나 충동적이거나 폭력적이 된다. 욕설(언어 폭력) 혹은 비난, 비판, 부정적인 언어들을 많이 사용한다 라는 이러한 대화의 스타일들이 속속 밝혀지게 된다(치료 커뮤니케이션을 보라, Wachtel, 1997: 주㈜: 참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안에서 가장 큰 공헌으로 각광을 받는 것이 1905년에 프로이트가 16세의 소녀(Dora)의 치료 과정에서 밝혀진 바로 전이(transference) 치료이다. 도라는 분석가인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로 인식하고 충동적인 분노를 표현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이것을 전이 치료로 이름을 붙였다.

전이는 어린시절에 부모님과 관계의 습관화된 관계패턴이 가족 밖에서 친밀한 다른 사람들 관계에서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할 때 가족들과의 관계 행동 패턴이 무의식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왜곡된 잘못된 관계의 패턴이 갈등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태어날 때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 부모님과 상호작용의 관계의 경험들이 입력이 되고 생각으로 행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부모님과 잘못된 대화 패턴(커뮤니케이션)과 행동패턴이 관계하는 패턴(전이)이 된다.

예를 들어서 치료자에게 한 아버지가 조현병의 증세를 호소를 하는 대학 1학년 딸의 컨설팅을 약속(12시-2시)을 하고 치료실에 A양과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도착을 했다. 부모님은 간단하게 딸의 소개를 하고 치료실 밖을 나갔다. A양과 컨설팅이 시작되었다. A양은 대학 1학년으로 그녀에게 비난을 하는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를 했다.

그 때 다시 도어 벨 소리에 치료자가 누구인가? 확인을 했을 때 A양의 어머니가 되돌아와서 다짜고짜로 치료사 선생님이 치료실에서 혼자서 딸을 상담을 하는가? 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노발대발하면서 남자 치료자와 딸이 한방에서 상담을 할 때 치료자가 딸을 성폭행을 하면 어떻게 하는가? 라고 항의를 하면서 딸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지금 12시로 낮이고 그리고 치료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니 안심을 하라고 했지만 A양의 어머니는 대학교수 혹은 목사라로 믿을 수 없다고 막무가내였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자신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담사와 딸이 한 방에서 상담치료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안심할 수 있겠는가? 라고 확인 전화에 그 언니는 믿을 수 없다고 맞장구를 치는 것을 보면서 컨설팅 비용을 환불하고 A양은 부모님과 함께 치료실을 나갔다.

치료자가 지금까지 그렇게 불신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A양은 스스로 편집증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었다. 이러한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이 세상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 남자들은 모두가 사기꾼이니 믿지 말라고 교육을 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심한 경우에는 자녀들에게 부모님도 믿지 말라 오직 너 자신만 믿어야 한다 라고 교육을 받았다 라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A양의 어머니는 그녀의 언니와 생각이 유사한 것을 보면 그녀들이 성장하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내 자신이외에는 절대로 믿지 말라 하는 부모님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딸의 양육과정에서 반복된 것이 틀림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전이이다.

부모님 한데서 배운 관계의 패턴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A양은 다른 사람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특별히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을 하는 대인관계 패턴이 바로 편집증 조현병으로 연결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 패턴들이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써 전이의 스타일이 분석되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잘못된 대인관계 패턴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갈등과 고통을 생산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 패턴을 분석하고 수정하는 것이 대화 치료의 핵심이 되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아기가 7개월-9개월 시점에서 아기는 엄마와 엄마가 아닌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낯가림이다. 이 시점에서 엄마가 아닌 사람을 두려워하고 엄마에게 매달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분리불안이다 즉 아기에게 최초의 인식을 엄마의 인식이다. 엄마의 얼굴이 아기의 마음 속에 새겨진 것으로 아기의 최초의 인식은 자아가 아닌 엄마의 얼굴이다.

현실적 자아(ego)항문기인 1-3세 사이에 등장하게 된다. 이 기간에 어린이는 기고 서고 걷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젖가슴 수유에서 이유식으로 엄마가 먹여주는 음식을 스스로 먹겠다 라고 한다. 어머니에게 No라고 말을 하게 된다. 내가 먹겠다 라고 하면서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서툴어서 코로 입가에 가져 가려다 음식이 엎질러진다.

대소변 훈련을 하면서 내가 내 몸을 컨트롤하려고 한다. 주변환경을 내마음대로 이리저리 컨트롤하려고 한다. 이 시점에서 현실적 ego가 등장하게 된다, 지금까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 이제는 점점 더 No라는 말과 내가, , 내 마음대로 등등으로 나라는 현실적 ego가 등장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소아학과 교수이자 정신과의사인 베리 브레즐턴(Barry T. Brazelton)은 프로이트의 ego의 등장에 대한 실험을 했다. 그는 1살된 아기의 조끼에 막대기를 달아서 그 막대기 꼭대기에 모자를 씌었다. 거울 앞에서 아기가 움직일 때 모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아기는 자신이 움직일 때 모자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브레즐턴은 아기의 코에 빨간색 입술 루즈(립스틱)를 칠을 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게 했다. 1.5세 혹은 2세의 아기들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코에 빨간색 루즈가 묻혀진 것을 알고 손으로 만지면서 자신의 얼굴의 변화를 인식을 했다 그러나 1살된 어린이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것은 아기가 자신의 얼굴의 인식이 형성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아기의 마음 속에 현실적인 ego가 새겨진 것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바뀐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의 자아 인식은 지능이 높은 고릴라의 경우에는 3세 정도의 어린이의 지능이 유일했다. 다른 동물들은 자아 인식이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서 꿩의 경우에 숲 속의 한 개의 1층 건물위에 그물을 치고 그 건물의 한쪽 벽면을 비치는 유리로 만들어서 한 마리의 꿩을 그 그물 속에 가두었을 때 그 꿩은 거울에 비친 꿩을 보고 다른 꿩이 자신의 영역을 침해한 것으로 오인해서 그 거울 속의 꿩을 공격을 하기 시작을 했다(Edelman, 2004: 주㈜: 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아기가 엄마를 찾는가? 라는 이유에 대해서 엄마가 젖(우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출생직후에 아기는 감각적 구분을 할 수 있다. 즉 즐거운 것과 불쾌감을 구분할 수 있다. 좋은 것은 입으로 삼키고 싫어하는 것은 뱉아 낸다. 고로 이러한 감각적 즐거움의 욕구 충족이 우선되어야 한다(욕구 이론)라고 노트를 했다.

프로이트의 제자인 정신분석가인 볼비(Bawlby)가 엄마와 아기의 애착이론을 내 놓았다. 아기는 엄마 품에서 안기고 매달리고 쓰다듬어주는 감각적 즐거움이 단순이 수유와 대소변 혹은 먹어주고 입혀주고 돌보아주는(예를 들어서 유아원, 영아원의 돌봄)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을 했다. 모든 동물의 새끼들은 엄마를 찾고 엄마에 매달리고 엄마의 등에 업힌다(원숭이), 포유동물은 새끼의 출산 후에 새끼를 핥아준다. 새끼의 몸에 피가 약탈자의 냄새를 없에주는 것도 있지만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손 대신에서 새끼를 혀로 핥아주는 것이 신체접촉처럼 많이 핥아준 새끼들이 빨리 일어서서 걸을 수 있었다(Edelman, 2004: 주㈜: 참고).

여기에 대해서 위스콘신 대학의 동물심리학 교수인 하리 하알로우(Harry Harlow)의 인공 엄마 실험은 유명하다. 하알로우는 신생 원숭이를 엄마로부터 분리시켰다. 원숭이는 엄마를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엄마를 모른다, 하알로우는 철사 엄마와 폭신폭신한 헝겊 엄마를 만들었다. 철사 엄마에게는 우유병을 달아 놓았다.

즉 엄마의 신체접촉, 피부접촉우유(먹은 것)를 분리시킨 것이다. 신생 원숭이는 폭신폭신한 헝겊 엄마에게 매달리고 안기고 비비고 쓰다듬었다. 위험한 소리에 놀라서 헝겊 엄마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배가 고플 때는 철사 엄마에게 가서 우유만 빨아먹었다. 아기에게는 젖보다 안아주기 업어주기 쓰다듬어 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어린시절에 충분한 신체접촉, 피부접촉 그리고 눈길주기의 중요성이 입증된 것이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모유를 제공할 때는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다.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서 엄마의 유방을 빨면서 신체접촉, 피부접촉 그리고 안아주기 쓰다듬어 주기 그리고 눈길주기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 엄마의 피부접촉을 통해서 아기는 사랑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아기의 수유는 모유로부터 우유병으로 엄마의 등에서 업히고 안기고 매달리는 것으로부터 유모차로 승용차의 안전벨트로 이동이 되면서 엄마와 신체적인 감각적 접촉이 줄어들고 보육원, 유아원으로 이동하면서 엄마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아버지의 경제적은 능력의 부족으로 어머니들이 맞벌이로 뛰어들면서 아기와 엄마의 신체접촉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더 붙여서 과학의 발달이 편리함을 제공해주는 것은 확실하지만 인간을 반드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님을 엄마들이 알아야 한다(이러한 실험의 강조는 과거로 되돌아가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엄마들이 이것을 알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프로이트의 꿈 분석 역시 과학의 검증 위에 오르는 것에 예외는 아니었다.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라고 했다. 정신분석과 꿈분석과의 관계는 바늘과 실과 같다.

스탠포드 대학의 수면 연구소에서 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옛날부터 금언으로 거위는 옥수수 꿈을 꾸고 황제를 전쟁의 꿈을 꾼다 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프로이트는 모든 동물들도 꿈을 꾼다는 말을 그의 저서 꿈의 해석이라는 책 속에서 노트를 했다.

꿈 연구소에서 나온 연구의 결과들을 살펴보자, 뇌파검사를 통해서(EEG) 인간은 4 단계로 잠을 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수면이 순환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1 단계에서 제 2단계로 그리고 제 3 단계로 마지막으로 제 4 단계의 잠으로 점점 수면이 깊어지게 된다. 제 1 단계의 수면은 가벼운 수면으로 잠이 들락말락 하는 수면이다. 제 2 단계 수면은 약간 깊은 수면이고 제 3 단계는 좀 더 깊은 수면으로 그리고 제 4 단계는 깨워도 깨어나지 않는 깊은 수면이다. 이 수면이 다시 4 단계로 그리고 3단계2단계로 그리고 1 단계로 순환을 하는데 90분이 걸린다 라는 것이 밝혀졌다(Kalat, 1981 생리심리학을 보라).

그런데 꿈을 꾸는 것은 제 1 단계와 제 2단계에서 꿈을 꾼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이것을 모순잠이라고 불렀다. 꿈을 꿀 때 뇌파인 EEG가 깨어나서 활동할 때처럼 완만하게 활동을 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꿈 속에서 ego가 살아있을 때처럼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꿈을 꿀 때 눈의 알이 움직이기 때문에 눈꺼풀이 움직인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이것을 REM 잠이라고 부른다(Rapid eye movement의 약자). 특이한 것은 첫 번째 수면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순서대로 1단계에서 4단계 그리고 거꾸로 3단계와 2단계 그리고 1단계로 순환을 하는데 새벽에는 주로 1단계에서 2단계 그리고 2단계에서 1단계로 순환을 하면서 꿈을 많이 꾸게 된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밤새도록 1234-4321 단계로 되풀이되지 않고 새벽에는 12-21단계를 되풀이된다 라는 말이다(Kalat, 1981).

REM 수면의 특징은 뇌의 세포들이 깨어 있을 때 가벼운 생각을 하는 정도의 뇌의 활동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즉 꿈을 꿀 때 사람들은 꿈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가? REM 잠은 전체 수면의 4분의 1 정도였다. 그런데 REM 수면은 모든 동물들 한데서도 다 나타났다 고로 동물들도 꿈을 꾼다 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REM 잠이 나타날 때 꿈을 꾸는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꿈을 꾸지 못하도록 깨웠다. 이렇게 계속해서 1주일 동안 꿈을 꾸지 못하게 깨웠을 때 피실험자들이 미친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밝혀졌다(Kalat, 1981).

이것은 과거에 범죄자들을 신문을 할 때 잠을 자려고 할 때 잠을 자지 못하게 깨워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실토를 하도록 한 수사기법에서도 엿볼 수 있다.

꿈을 꿀 때 피로가 회복된다 라는 것이 밝혀졌다. 근육이 움직이고 눈의 활동을 한다는 것으로써 프로이트가 기술한 꿈을 꿀 때도 현실적 자아인 ego가 활동을 하면서 뇌 속의 갈등들을 해결하려고 한다. 꿈을 통한 무의식의 분석을 통해서 자아가 문제들을 해결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라는 것이 입증이 된 것이다.

꿈과 관계된 한 개의 에피소드를 더 붙이고자 한다. 필자는 대학에서 20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학생에게 중간 고사 혹은 기말 고사를 강의시간에 강의를 한 필기시험을 선택하거나 프로이트의 꿈해석을 읽고 나서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한 그 과정에 맞춰서 자신의 꿈을 분석해오라 라고 하는 과제를 제공했다(꿈분석은 특강을 제외하고는 self study이다). 조건은 반드시 프로이트의 꿈해석의 책에서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한 형식을 따르게 했다. 우리나라의 꿈 해몽은 0점처리한다. 대신에 인터넷으로 글자크기 10으로 A4 용지 최하 10페이지에서 15페이지 최대 20페이지 이하로 과제물을 제시를 했다,

여기에서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한 서론과 본론과 결론의 논술의 형식을 특강(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는 논술시험이 부과된다. 이 시험에 통과해서 졸업이 가능하다, 필자는 학부는 CSULB와 대학원은 CSUL에서는 약 2년 동안 논술시험을 준비를 하면서 글쓰기, 논술을 배웠다)으로 2시간 특강으로 논술 쓰기를 강의를 제공한다(심리학 강의는 3학점으로 1주일에 3시간 강의). 그리고 반드시 몇까지 조건을 숙지할 것을 예고한다. 꿈을 꿀 때 1단계와 2단계 사이에서 꿈을 꾸기 때문에 새벽에 꿈을 많이 꾼다 그리고 쉽게 깨어날 수 있다 고로 꿈을 꾸고 나서 일어나서 금방 꾼 꿈을 상세하고 노트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면 날아가 버리고 몇 조각만 남게 된다. 두 번째로 한 개의 꿈으로 10페이지 이상의 연구물(과제물)을 작성하기 어려우니 꿈을 모아야 한다. 여러 개의 꿈을 모았다가 그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의 꿈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즉 꿈 1 분석, 꿈 2 분석 등으로 분석의 내용을 이어가는 것이다. 더 붙여서 꿈 해석은 가볍게 읽는 책이 아니고 정독으로 읽어야 한다. 프로이트의 꿈분석은 호락호락한 책이 아니다 고로 하루에 조금씩 분량을 정해서 읽어야 한다,

그 책의 4분의 1 정도는 프로이트 이전의 학자들의 꿈들을 분석 연구한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자신의 환자인 일마(Ilma)의 꿈을 꾸고 나서 자신의 꿈을 분석한 일마 주사의 꿈을 분석한 그 꿈부터 정독해야 한다 라고 특강 때 강조를 한다. 한 학기가 4개월 정도이기 때문에 중간고사 대신에 꿈을 분석해서 제출하려고 하면 2 개월만에 읽고 제출해야 한다. 연구물의 레드 라인은 중간고사 시간까지 제출을 하는데 중간고사 시간이 넘어가면 하루씩 늦어지면 5점이 감점으로 처리한다. 대신에 빨리 읽고 빨리 제출하면 중간 고사까지 몇번의 수정보완을 거칠 수 있다.

자신의 무의식을 찾아내면 100 그리고 연구물(레포트: 미국학생들을 레포트(report)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연구물로 사용)이 서론과 본론과 결론으로 잘 정리된 과제물은 5점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고로 최고점이 105이 된다. 중간고사에서 필기 시험을 한 학생은 기말고사 때 자신의 꿈 분석을 제출해도 된다.

더 붙어서 중간고사에서 꿈을 분석학 학생은 기발고사에서는 연구물을 제출하려고 하면 영화(심리문제들의 과정을 다룬 영화들(샤인(Shine),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블랙스완, 세비지 그레이스 등등 그리고 작품들(신의 아그네스, 에쿠우스, 피아노를 치는 여자 등등)(필자의 홈 페이지의 영화속의 주인공의 심리분석을 보라) 중에서 한가지 선택해서 A4 용지로 10페이 이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꿈에 대한 상세한 것은 치료자의 홈페이지 꿈분석을 보라).

강의는 대 성공이었다. 부경대학(과거 부산수산대학과 공업대학의 통합)의 학보사에서 대학 창립 기념일에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강의를 한 교수와 연구물이 도움이 되었던 교수들의 강의평가에서 필자가 1위로 선정되어 대학신문에 소개가 된 적이 있었다.

한 학생이 자신의 꿈의 분석을 기말고사로 제출을 한 학점이 A 학점이 아니고 B학점이 나온 것에 불만족해서 항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 학생은 중간고사에서 필기 시험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는데 기말고사에서 꿈 분석의 연구물을 제출했는데 A학점이 아니고 B 학점이 나왔기 때문에 어디에서 꿈분석이 잘못되었는가? 를 해명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가 제출한 꿈 분석 연구물을 다시 읽어본 결과 그의 꿈 내용이 특이했다. 그의 꿈 내용은 교수님에게 연구물을 제출을 했는데 2%가 부족해서 점수가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라는 내용의 꿈 보고서였다. 치료자(강의자)는 학생은 자신의 꿈이 2% 부족하다 라는 경고를 했는데 빨리 수정보완을 해서 다시 제출하지 않고 데드라인 날짜에 연구물을 제출했기 때문에 자신의 무의식이 경고를 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꿈만 분석했기 때문에 자신의 무의식을 알지 못한 것이다. 즉 자신의 꿈에서 무의식적인 자아가너는 지금의 그 연구둘에 2%가 부족하다”라고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꿈만 분석한 것이었다. 즉 자신의 무의식이 무엇을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를 알고 그것을 깨달어서 자신의 자아의 수정을 해야 100점을 제공할 수 있는데 무의식이 알려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실천을 하지 못했으니 점수가 낮게 제공한 것입니다 라고 메일을 보냈다 그 결과에 대해서 학생은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감사해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실험실에서만 검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모든 물리학자들이 다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는 실증주의의 지지자들은 아니다. 물리학자들 중에서도 양자 물리학자들 특별히 양자의 구조를 발견한 코펜하겐 대학의 닐 보아(Niels Bohr)(1922년에 노벨상) 그리고 독일의 양자 물리학자인 워너 헤이젠베르그(Werner Heisenberg)(1932년에 노벨상)는 물리학자이면서 철학자가 된 사람들이다.

뉴턴의 물리학은 측정 기준이 빛이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은 빛으로 측정할 수 없는 파동이기 때문에 한번으로 측정할 수 없다(2022, 2, 14: 위키백과) 그리고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이자 장애인인 스테판 호킹(Stephen Hawking)은 우주물리학은 실험할 수 없는 이론 물리학이다 라고 천명을 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물리학 석박사인 토마스 쿤(Thomas Kuhn)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패러다임(paradigm)(습관화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라는 유행어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물리학이 모든 것을 실험실에서 실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험할 수 없는 진실로 있다 라는 주장으로 과학의 역사가인 철학자가 된 사람이다(2922, 2, 14: 위키피아). 위의 물리학자들의 주장에서 프로이트의 관점이 충분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의 실험실 연구를 살펴보자. 프로이트는 어린이들은 3세-5가 되면 섹스 욕구가 표면화된다. 남자 어린이들을 스스로 발기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섹스관계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떻게 섹스관계를 하는지는 모른다. 남자 어린이는 엄마에게 여자 어린이는 아빠에게 더욱더 가까워진다 서로 보상적이기 때문이다 즉 엄마는 페니스가 없다 고로 아들을, 딸은 페니스가 없기 때문에 아빠와 더욱 더 가깝게 된다 이것은 동서양에 공통적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경쟁을 한다 그리고 엄마를 소유하려고 한다.

 

0세-2세까기는 어린이는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된다. 모든 것을 부모님이 다 해주기 때문에 안되는 것을 없는 착각의 상황이 된다 그래서 전진전능 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나르시즘의 피크가 된다. 2세-3 사이에 주면 자신의 몸과 주변 환경의 탐색에서 어린이는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나약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부모님은 안되는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로 부모님이 최고가 된다.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여동생이 페니스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3세 정도의 어린이는 상상 속에서 그리고 부모님이 말을 듣지 않으면 꼬치를 따 버리겠다 라는 농담에서 처벌을 받아서 거세된 것으로 착각을 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두려워한다(거세불안) 여기에서 동생이 태어나면서 자신은 다른 방에서 혼자서 잠을 자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잠을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고 아버지이다 고로 아버지처럼 행동하면 엄마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 고로 아버지를 동일시하게 된다 아버지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이것을 프로이트가 거세불안 그리고 딸은 남근 질투(penis envy)라고 불렀다.

프로이트는 빅토리아 시대의 정상적인 가정은 남자는 가족구성원들을 먹여 살리는 부양능력인 경제력 그리고 여성은 자녀들을 양육하는 능력으로 보았다. 자녀들은 엄마의 분신으로 태어난다. 어린시절에 아들은 엄마의 분신으로 엄마와 가깝다 그러나 오디팔 기간에 엄마보다 아빠를 닮아서 남자다워져야 한다 즉 남성적이 되어야 가족의 부양과 경제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된다. 여자 어린이는 엄마를 닮아서 엄마가 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남자 어린이가 어떻게 분신인 엄마를 포기하고 남자다워져야 하는가? 라는 이유를 섹스 욕구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잠재기(6세-12세) 동안에 또래집단들 즉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동성의 동료들과 학습과 동료들 관계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그런데 사춘기인 13-19세에 진입하게 될 때 제 2차 성적인 성숙으로 섹스 욕구가 재등장하게 될 때 엄마(아빠)에 대한 섹스 욕구는 근친상간을 놀라게 한다 고로 엄마(아빠)를 닮은 여성(남성)으로 이성으로 향하게 되고 좁은 가족 사회로부터 넓은 사회생활로 향하게 되어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게 된다.

여기에 대한 실험실의 연구들을 살펴보자.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은 샌도르 프렌치(Sandor Ferenczi) 한데서 13년동안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개인수련을 받았다. 프렌치는 프로이트가 유혹이론을 포기하고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으로 이동할 때 유혹이론을 포기하지 않고 병행으로 실제 상처이론으로 크레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크레인이 어린이들을 심리치료에 도전하게 되면서 어른의 신경증 치료가 어린이들에게 적용하기 어려움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적당한 치료의 개발대상관계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프로이트의 3세-5세의 아들과 아버지의 강조가 0세-3세의 엄마와 어린이의 강조로 방향이 바뀌게 되면서 한 사람 심리학이 두 사람의 심리학으로 흐름이 바뀌게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노트를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신경증 치료이다. 정신분열증의 치료에 대한 도전으로 정신분석가들이 정신분열증 환자의 엄마와 환자 사이에 연구가 가족 구성원들을 포함하는 가족 전체의 연구로 이어지면서 1950년대 이후에 가족 치료가 등장하게 된다(가족치료와 정신분석의 연결은 스리프(Slipp, 1984를 보라).

가족 치료의 시작은 정신분석가인 나탄 아크만(Nathan Ackerman)에 의해서 뉴욕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 전체가 참가하는 치료에서 시작된다. 이후에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메리 보웬(Murry Bowen)이 조지 워싱턴 의과대학에서 7가구의 정신분열증 가족이 4개월에서 33개월의 치료 과정에서 모든 가족들이 함께 참가하는 가족 치료를 그리고 정신분석가인 데오도어 리즈(Theodore Litz,1985: 주㈜: 참고)가 예일대학 의대병원에서 17명의 정신분열증 가족과 그리고 17명의 건강한 가족의 연구를 7년 동안 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가족 치료가 결정적으로 열풍을 띄게 된다.

살바도라 미누친(Salvadore Minuchin, 1992: 주㈜: 참고)이 아크만(Ackerman) 한데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뉴욕의 정신분석학교(William Alanson White Institute)를 졸업하고 소아정신분석가가 되었다가 가족 치료로 전환하게 된다. 그는 1965년 10년동안 필라델피아 어린이 가이던스 치료소 소장으로 가족치료의 연구와 치료를 하게 된다. 그는 프로이트의 오디스프 콤플렉스에서 근친상간의 섹스 욕구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를 동일시하게 된다는 이론을 실험실에서 가족들의 관계를 비디오와 녹음기 그리고 일면경으로 분석하고 실험을 하면서 새로운 가족 치료 이론으로 구조적 가족치료 이론을 개발하게 된다.

아버지의 무능력함과 엄마의 과도한 좌지우지, 동생이 형님을 능가해서 역할의 바뀌는 것들을 수정하고 고치는 치료 작업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 치료를 통해서 성공적인 치료 결과를 발표를 했다.

그는 엄마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의 기능들을 조정해서 무능한 아버지의 능력을 개발해서 가족의 경제력을 책임지게 하는 가족의 구조를 바꾸고 가족구성원들의 역할과 기능을 재조정하는 치료를 했다. 필라델피아 어린이 가이던스 치료소는 이후에 미뉴친의 제자들에 의해서 가족 치료의 중심지가 된다. 그들의 치료 프로그램은 입원아파트의 프로그램으로 6명의 환자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서 200명이 환자들이 입원할 수 있는 가족 치료소로 운영되고 있다(Breadler et al., 1991, 미침, 혼란, 폭력을 보라: 주㈜: 참고).

여기에서 방향을 돌려서 실험심리학과 행동학에서 나온 이론과 치료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자. 하버드 대학에서 치료심리학과 정신병원에서 정신의학을 연구한 존 만이(John Money, 1993: 주㈜: 참고)는 존 홉킨스 의과대학의 소아학과 교수로 그리고 의학심리학 교수로 주로 실험실에서 연구와 치료를 병행한 학자이다. 그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 태아가 발기를 하는 장면의 사진으로 찍어냈다. 그리고 3세-5세의 어린이들이 섹스 욕구가 표면화된다는 것을 관찰을 했다 그 이점에서 어린이들이 의사놀이와 배꼽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발기된 모습을 그리고 여자 어린이들의 치마를 들추는 놀이를 해서 섹스 놀이를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은 발달 심리학 교실에서 오디팔 기간에 남자 어린이와 여자 어린이는 자신이 남자 혹은 여자임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남자 어린이는 병정놀이 여자 어린이는 소꿉 놀이를 통해서 성별의 구분이 그리고 남자 옷과 여자 옷을 입게 됨으로써 성별의 구분이 확실하게 된다는 것을 통해서 이미 발달 심리학에서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이 일부 증명이 된 것이다.

프로이트의 변태성욕의 이론과 치료만이(Money)의 실험실의 연구를 살펴보자. 프로이트는 3세-5세의 오디팔 기간에 부모의 섹스 장면(primal scene)이 어린이에게 노출되어지면 너무 일찍은 나이게 섹스에 과도한 자극으로 섹스에 몰두해서 변태성욕으로 발전할 수 있다(정신분석에서 부모의 섹스 장면을 원시적인 장면(primal scene)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발달의 기간에 적당한 섹스 욕구의 표현을 부모가 심한 처벌과 강압을 하게 되면 섹스 욕구의 발달이 늦어지거나 왜곡되어 역시 변태성욕이 될 수 있다 라고 경고하면서 자녀들이 3세-5세가 되면 자신의 방으로 보내도록 장려하고 있다(13가지 변태성욕은 치료자의 섹스 홈페이지를 보라). 변태성욕은 타고나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섹스 본능은 타고 나지만 섹스의 대상을 찾는 것은 후천적이다 라고 노트를 했다.

여기에 대해서 만이(Money, 1993)는 그의 저서 사랑의 지도(lovemaps)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섹스 행동 역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고 노트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부모님과 관계에서 섹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통해서 머리 속에서 사랑에 대한 애착패턴이 그림으로 그려져서 사랑의 지도가 생기게 된다 라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영장류의 동물들이 어린시절에 나이 많은 동료들로부터 섹스 행동을 통해서 배운다 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원숭이 고릴라들이 어린시절에 자연스러운 섹스놀이를 부모로부터 혹은 동료들로부터 섹스 놀이를 통해서 배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의 왜곡이나 차단이 변태성욕이 된다고 보고를 하고 있다.

그는 실험실에서 나온 한 개의 예를 들었다. 신생아들이 가끔 기형적인 성기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애매할 때 의사 혹은 부모이 부여한 성별에 따라서 남자와 여자가 된다 라는 사례를 들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남자(XY)와 여자(XX)는 섹스 염색체로 구분이 된다. 그런데 남자인 신생아가 성기가 기형으로 애매해서 여자로 구분을 했다 그 결과 그 어린이는 남자(XY)로 태어났지만 여자 어린이로 분류가 되었기 때문에 여성으로 성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목소리, 태도, 성격의 특징이 여성이 된다 라는 여러가지 사례들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는 후천적으로 양육이 과정에서 결정되어진다는 것을 노트를 했다.

만이(Money)는 프로이트의 변태성욕의 기간은 3-5세로 본 것과 달리 그는 5세-8세로 변태성욕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원인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을 했다. 그는 40개의 변태성욕들을 분류하고 그 원인들을 분석으로 밝혔다. 그는 섹스 에로틱은 인간과 동물의 즐거움 중에서 가장 큰 즐거움으로 인간과 동물들을 그 즐거움을 타고 나기 때문에 이것에 방해(부모들의 처벌)과 섹스의 상처를 받았을 때 이것이 왜곡으로 변태성욕이 된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나온 데이트로 기술을 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에서 섹스는 출산을 위해서한 허용되어야 한다 라는 엄격한 섹스 교육 때문에 3세-5세에 표면화되는 자위행위에 처벌을 받는 자녀들이 섹스의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이 경험에 대한 속죄의식으로 자아를 처벌하는 마소키즘을 설명하고 있다. 섹스시에 자신을 묶어 놓고 목을 조르거나 물어뜯도록 요구하는 변태성욕이 섹스 마소키즘이 아닌가?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변태성욕에 대한 이론과 치료는 1930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섹스에 대한 연구를 실험실에서 시도한 사람이 바로 알프레도 킨제이(Alfred Kinsey)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곤충학을 전공해서 인디아나 대학의 곤충학 교수로 여러 권의 저서를 출판을 했다 그리고 늦깎이 결혼에서 발기부전으로 연구 논문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 인디아나 대학에서 재생산 연구소를 설립하고 10년 동안 섹스의 실험실 연구를 시작을 했다.

그는 1948년에 남성의 섹스 행동을 출판해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컴퓨터 등장 이전이어서 여성의 섹스 연구에서 전세계로 일반화를 위해서 여성의 음부의 자신을 전 세계에서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 사진의 수집이 미국의 세관에서 발각이 되면서 포르노 작가로 오인되어 1953년에 여성의 섹스 행동의 출판에서 미국의 모든 언론매체들의 혹평을 받고 화병으로 사망을 했다.

그의 연구를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센트 루이스의 워싱턴 대학의 산부인과 교수윌리엄 마스터(William Masters & Johnson, 1980: 주㈜: 참고)이다 그는 센트 루이스 대학에서 인간 재생산 연구소를 세우고 실험실에서 컴퓨터 칩을 여성의 질 속에 삽입해서 오르가슴 시에 질내부의 움직임을 찍어내서 연구를 했다. 그는 312명의 남자들382명의 여자들을 포함해서 1만여회의 실험을 통해서 1966년에 인간의 섹스 행동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이미 1964년에 섹스 치료를 시작을 했다.

또 한 사람이 바로 심리학, 정신의학에서 각각 박사학위와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한 정신분석가가 된 헬렌 카플란(Helen Kaplan: 1987: 주㈜: 참고)으로 그녀는 뉴욕 코넬 의과대학에서 섹스 치료 센터를 개설을 했다. 서부에서는 1971년에 질레르젤드(Zilbergeld, 1979: 주㈜: 참고) 그리고 바르바크(Barbach, 1984: 주㈜: 참고)가 샌프란시스코 의대에서 섹스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섹스에 대한 이론과 치료는 196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섹스 혁명으로 불리게 된다. 프로이트의 사망 이후에 60년이 지난 후에 마스트와 존슨이 그리고 6년 후에 카를란 그리고 7년 후에 질베르젤드와 바르바크 섹스 치료를 시작함으로써 프로이트의 섹스 이론은 이제 실험실과 치료에서 증명된 것이 아닌가?

이제 정신분석이 과학인가? 하는 문제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방향을 바꿔서 정신분석이 예술인가? 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자.

정신분석이라는 저서를 출판하면서 예술이라는 말을 함께 쓴 두 사람의 정신분석가가 있다.

첫 번째는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의 전기를 쓴 폴란드에서 와르소 의과대학 출신의 의사로써 영국에 귀화에서 정신분석가가 된 한나 세갈(Henna Segal, 2004: 주㈜: 참고)이 있다. 그녀는 영국정신분석학회의 회장과 국제정신분석학회의 부회장을 역임한 여성분석가로써 영국의 BBC 방속에서 “우리시대의 가장 지적 심리학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은 사람이다. 그녀의 저서 “꿈과 예술과 정신분석”(1991)이 있다.

두 번째는 예일대 의과대학의 정신과 출신으로 영국의 대표적인 정신분석학교인 런던 타비스톡 크리닉(Tavistock Clinic in London)대학에서 정신과 부교수를 역임한 정신분석가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5)의 “정신분석과 예술”이라는 저서가 있다. 그들의 저서들을 중심으로 정신분석의 예술적인 면들을 고찰해보자.

프로이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신분석 치료를 어떻게 하는가? 를 직접 시범을 보여주고 표준화시키지 않았다. 그냥 계속해서 논문을 쓰고 발표를 했다. 정신분석의 제 1 세대 제자들은 프로이트의 논문들을 보고 듣고 각자가 스스로 정신분석을 수행하면서 개척해 나갔다.

(Jung)의 제안으로 정신분석학교가 설립되어 제자들의 양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1918년에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정신분석학 총회에서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허만 넘버그(Hermann Nunberg)의 제의에 의해서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한 분석가들이 자신의 스승 밑에서 개인분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 통과되면서 정신분석의 전통이 되었다(Stone, 1983: 주㈜: 참고).

고로 2세대 정신분석가들은 자신의 스승 밑에서 수년동안 정신분석의 수련을 받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위니코트(Winnicott)이다. 그는 영국의 소아과 의사로써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분석가인 제임즈 스트라취(James Strachey)에게 11년 동안 그리고 소아정신분석가인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에게 3년 동안 그리고 조안 리비에(Joan Riviere)에게 2년 동안 개인분석을 받았다. 그는 영국의 정신분석학회가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의 정통파 정신분석학파와 멜라니 크레인의 대상관계 학파 사이에 분열이 되었을 때 그는 어느 쪽에도 가입하지 않고 애착 이론의 볼비(Bowlby)와 함께 독립학파를 세우고 중립을 시켰다(정신분석학 소개를 보라, Anthony & Holmes, 1985: 주㈜: 참고).

크레인에게 개인분석을 받은 한나 세갈(Hanna Segal), 허버트 로젠필드(Herbert Rosenfeld), 윌프레드 비용(Wilfred Bion)은 크레인학파로써 정신분열증 연구에 뛰어들었다.

고아들과 비행청소년들을 치료페비안(Fairbairn)의 자아분열이론하리 건튜립(Harry Guntrip)이 수련을 받아서 대상관계 이론에 합류하게 된다. 헝가리에서 정신과의사로서 위니코트에게 개인수련을 받는 마이켈 벨린트(Michael Balint)는 위니코트 밑에서 수련을 받고 자아결함 이론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위니코트화 함께 독립학파에 소속이 된다.

한편 미국에서는 1911년에 아브라함 브릴(Abraham Brill)이 뉴욕정신분석학회를 세우고 의과대학 출신에게만 정신분석을 개방해서 정신분석가들을 배출하기 시작을 한다. 비엔나 의과대학 정신과 출신으로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밑에서 수련을 받은 제 2세대의 헤인즈 하트만(Heinz Hartmann)이 뉴욕에서 뉴욕정신분석학교에서 ego심리학을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에릭 에틱슨(Eric Erikson)이 하버드 대학에서 ego 심리학을 함께 개발하게 된다.

독일에서 소아과의사로서 샌도르 프렌치(Sandor Ferenczi) 한데서 정신분석을 소개받고 비엔나의 여성정신분석가 1세대인 헬렌 도이치(Helene Deutsch) 한데서 분석치료를 받아서 정신분석가가 된 마가레트 몰러(Margret Mahler)가 뉴욕 정신분석학교에 함께 합류함으로써 이들에 의해서 개발된 ego 심리학이 1950년대와 1960년에의 미국을 주름잡게 된다(Aron, 1996: 주㈜: 참고).

한편 1943년에 뉴욕에서 하리 스틱 셀리번(Harry Stick Sullivan)과 에릭 프롬(Eric Fromm)과 클라라 톰슨(Clara Thompson)의 신프로이트 학파가 세운 정신분석학교(William Alanson White Institute)의 출신들이 대인관계 정신분석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헤인즈 코호트(Heinz Kohut, )가 비엔나 의과대학 정신과 출신으로 제 1 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고아들과 비행청소년 정신분석가오그스트 아치혼(August Aichhorn)에게 수련을 받고 시카고로 이민,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에서 자아심리학을 창설하게 된다. 그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서 제외시켰던 알코올중독자, 마약 중독자 그리고 폭력적인 성격들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를 성공적으로 해서 나르시즘 치료 기법을 개발을 하게 된다. 그의 제자들이 자아심리학의 정신분석을 계승하게 된다.

이제 정신분석은 정통파 정신분석, 대상관계 정신분석, 대인관계 정신분석, ego 심리학, 자아 심리학으로 그리고 뉴욕대학원의 박사 후 정신분석과 심리치료 학과 출신들이 대인관계와 대상관계를 통합한 관계의 정신분석(Relational psychoanalysis)의 6개의 학파로 나눠지게 되었다(Aron, 1995).

여기에서 프로이트는 유럽의 분석가들에게는 의과대학 출신이 아닌 다른 전문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정신분석을 개방을 했다 고로 고고학, 사회학, 교육학, 물리학, 예술학, 언어학, 철학, 영문학 등의 분야와 결합해서 광범위한 학문으로 개발되어졌다 각각의 정신분석가들이 개개의 특징들로 개발되어지면서 한 정신분석가들이 한 분야를 평생동안 연구를 하면서 개인적인 독특한 장르로 개발되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한 평생을 개발한 예술적인 분야를 장인으로 인간 문화제로 지적되어 보호되어지는 것처럼 정신분석은 같은 정신분석의 학파라고 해도 개개인의 독특한 기법과 이론은 바탕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근거를 한 것이지만 다양한 기법과 이론으로 개인적인 독특한 분야가 되었다 고로 정신분석은 예술에 가깝다고 이야기를 한다.

프로이트가 정작 예술적인 면이 없었는가 를 살펴보자. 프로이트는 마샤 버니(Martha Bernays)5년 동안 약혼 기간 동안에 800여통의 편지를 교환을 했다(Ernest Jones, 1953,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을 보라: 주㈜: 참고). 그는 한 개의 편지를 최대로 38페이지를 썼다. 그는 글쓰기에 달인으로 1930년에 독일의 최고의 문학상인 괴테 상을 수상했다. 나치의 독일에서 정신분석이 유태인 학문으로 추방되고 프로이트의 책들과 논문들이 라이프지그에서 불태워지고 소멸되어 불모지가 되었다. 그러나 1964년에 독일 아카데미에서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 즉 예술가, 과학자, 역사가, 사상가, 신학자, 언어학자 등등의 전문가들 중에서 독일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에게 1년에 1명씩 선발해서 시그문드 프로이트(Sigmund Freud) 상을 수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름을 딴 상이 프로이트가 만든 것이 아니고 독일 아카데미가 독일어의 산문체에서 프로이트가 가장 멋진 독일어를 구사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의 수상자 중에서 필자의 눈에 띈 사람이 1970년에 수상한 양자 물리학의 하이젠베르그(Heisenberg)와 그리고 1979년의 해석학과 철학자인 한스-게오르그 가담어(Hans-Georg Gadamer)가 있었다(2022, 2, 15: 위키피아).

프로이트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미 20세기를 이끌어 나갈 3명의 대표자로 선발되었다. 첫 번째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로서 그는 1890-1910년 사이에 유럽의 지성인의 세계에 불을 지핀 사람이다. 두 번째가 칼 마르크스(Karl Marx)이다 그는 공산주의 이론으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세 번째가 시그문드 프로이트(Sigmund Freud)였다.

 

20세기 마지막으로 가면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시들어져 갔다. 니체의 철학의 인기는 역시 잠잠해졌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1999년 329일에 TIME지에 20세기 100년의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가장 업적을 훌륭한 공헌을 남긴 사상가, 과학자, 철학자 등의 100명의 선발에서 프로이트가 1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2로 선발되어 프로이트가 카우치에 누워있는 아인슈타인을 정신분석으로 치료를 하고 있는 장면이 만화로 소개가 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과학자들과 제자들에 의해서 실험실에서 그의 이론들이 하나씩 검증되어 그의 이론이 과학적이다 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동시에 개개의 분석가들에 의해서 평생동안 치료기법으로 개발되어지면서 누구든지 한 평생동안 스스로가 개발한 치료 기법들이 똑같이 흉내를 낼 수 없는 한 개의 예술로써 승화한 것이다.

필자의 발자국을 따라오는 젊은 세대의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에 흥미를 가진 젊은이들에게 정신분석에 도전을 권유하고 싶다, 정신분석은 몇 년의 공부로 전문가의 지식을 습득되어 지기가 어렵다 라는 점을 필자의 경험으로써 노트를 하면서 앞으로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한 평생을 도전할 수 있는 학문으로 그리고 치료기법으자신의 삶에 도전장을 제출할 수 있는 용감한 젊은이들에게 정신분석을 과학으로써 그리고 예술로써 자신의 삶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감이 이야기를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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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Moore(1999). 정신분석학 안에서 현실의 창조

Ellenberger(1970). 무의식의 발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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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1983). 정신분열증치료: 정신분석학적인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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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mes & Anthony, 1985). 정신분석 소개

Aron(1996). 마음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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