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치료에 응용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21. 12. 25. 03:07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치료에 응용

 

프로이트의 대명사가 오디프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이다. 콤플렉스라는 말은 거대한 집합의 뜻으로 오디프스라는 아이디어의 거대한 집단, 단지(團地) 라는 뜻이다. 프로이트는 중상류층의 성인 신경증 환자를 약물이 아닌 대화로 치료를 했다. 인간의 기억의 한계가 3이다. 정신분석에서 3세 이하는 유아 기억상실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는 3세 이하의 경험은 꿈의 분석을 통해서 유아기억의 상실에 접근해 나갔다. 그래서 정신분석 발달 심리학에서는 3세-5세의 기간을 구분할 때 오디팔 단계, 오디팔 기간이라고 부른다(구순기, 항문기, 오디팔기, 잠재기 그리고 성기기의 5단계).

오디프스 이야기는 그리스 4대 비극의 작가인 소포클래스(Sophocles)의 오디프스 왕의 신화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아래에서 소상한 설명을 보라). 이번 블로그에서는 오디프스 콤플렉스가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에서 어떻게 응용이 되는가? 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오디프스 콤플렉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프로이트의 가족에 대해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오디프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자신의 어린시절에 가족관계에서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에서 기술: 프로이트의 전기, 제 1 권 1953, p. 14를 보라).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40세 때 부인의 사망으로 재혼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아버지는 이미 본처에서 태어난 2명의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은 21세의 엠마누엘, 그리고 둘 째는 17살의 필립이다. 큰 아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1살된 아들이 있었다. 존은 프로이트보다 1살 위로 늘 서로 경쟁자이자 협력자였다 라고 프로이트는 자신의 자아의 분석에서 밝히고 있다.

아버지는 재혼으로 20세의 프로이트의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 프로이트의 어머니는 남편의 첫 아들의 부인(남편의 며느리)과 동갑이었다. 어머니는 장남으로 프로이트를 출산하고 2.5세 때 여동생을 출산했다. 어머니는 3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출산을 했다. 프로이트가 장남으로 사랑을 독점을 했다. 프로이트는 둘째 형님인 필립(20세)과 엄마(23세)관계를 질투를 했다고 스스로 자아 분석에서 밝히고 있다.

프로이트는 초, 중고 시절에 수재였다 그는 독서광으로 책벌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다락방이 그의 연구실로써 어머니는 여동생들이 오빠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피아노를 팔아버렸다고 프로이트의 여동생이 쓴 프로이트의 오빠에 한 글에서 밝히고 있다. (Ellenberger, 1970에서 인용).

프로이트는 17살 때 비엔나 의과대학 신경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비엔나 대학교(1362년 창설)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1386년)보다 21년 그리고 조선건국(1392년)보다 27년 그리고 조선 태조 5년에 등장한 성균관(과거에 급제한 양반들의 교육기관)보다 32년이 앞선다. 1 차 세계대전 이전의 유럽에서 최고의 강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의 수도로써 세계 최고의 대학이었다(2021, 12, 11: 위키피아 참고).

프로이트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60대의 노인으로 경제력의 상실에 가까웠다. 고로 프로이트는 대학 2학년 때 스스로 학비조달에 나서게 된다. 비엔나 대학에서는 세계에서 최초로 흑해의 아드리해(Adriatic) 해변에서 해양생물학 연구소가 설립되었을 때 동물학 교수인 카루소(Claus)의 연구 조교 모집에 응시해서 연구조교로 합격으로 6개월간 첫 연구 조교가 되었다.

그 연구소에서 그는 칠성장어의 성기구조의 연구를 했다. 그는 400여회의 장어의 현미경 실험을 했다. 그러나 장어의 성기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해서 선임 연구원(Syrski의 논문)의 결론으로 막을 내린 것에 대해서 스스로 연구의 실패로 실망을 했다. 그러나 지도 교수는 그의 철저한 과학적인 현미경의 조작과 관찰에 만족해서 극찬으로 논문을 출판시켜주었다(Ernest Jones, 1953).

대학 3학년 때 부케(Brucke) 해부학 연구소에 연구 조교로 입사하게 된다. 그 당시 비엔나 의과대학에서는 5년째로 졸업할 수 있었으나 3년을 더 연구조교로 남아서 해부학에 대한 철저한 공부를 했다. 그는 부케 교수의 조수로 대학교수를 희망했으나 부케는 이미 10년 이상의 선배가 두명이나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가 없으니 의사로 전향하라고 조언을 해서 그는 의사가 되기로 하고 레지던트 과정을 밟으면서 세계 최고의 비엔나의 뇌 과학 연구 소장인 메이너트(Meynert) 교수 밑에서 연구 조교로 3년을 근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는 선배이자, 친구로, 후원자이자, 스승인 브로이어(Breuer)를 만나게 된다. 브로이어는 14살 연상으로 비엔나 의과대학 신경학과를 졸업하고 유태인 의사로 개업해서 명의(名醫)가 되어있었다. 그는 유태인인 프로이트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을 한 후원자로 그에게 경제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새로운 학문을 소개한 사람이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로부터 그가 2년 동안 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인 안나 오(Anna O)라는 가명의 여성 환자를 소개를 받게 된다.

그녀는 유태인 백만장자의 딸로서 5개 국어(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하는 인텔리전트한 여성으로 5개의 증세들(모국어인 독일어를 한번씩 말을 하지 못해서 영어로 대화, 한 번씩 오른 손이 5개의 머리를 가진 뱀으로 환각, 스트레스 시에 눈이 보이지 않음, 오렌지 주스를 마시지 못함, 오른 손에 바늘로 찔러도 감각이 없음)을 가진 여성으로 그녀는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프로이트가 그녀를 치료를 하고 있는 브로이어에게 그 병의 이름과 어떻게 치료를 하는가? 를 물었을 때 그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병으로 최면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스테리아는 그 당시에 모든 정신병의 총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프로이트의 삶의 방향이 180도로 바뀌게 된다. 그는 최면학과 히스테리아에 연구에 뛰어들게 된다.

그가 레지던트 4학년 때 비엔나 의과대학에서 처음으로 3명의 우수한 학생에게 6개월의 해외 유학의 기회를 부여하는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으로 프로이트는 프랑스에서 세계적인 히스테리아의 나폴레옹이라는 별칭을 가진 가르코트(Charcot)에게 최면학을 공부하게 된다.

가르코트는 의과대학 내과 교수로써 그가 최면학을 연구를 해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3번의 거부 후에 4번째 몽유병에 대한 최면의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1882, 2, 13)하게 되면서 최면이 과학으로 인정받게 된다. 1882-1893년까지 10년간 프랑스는 최면학의 열풍으로 세계적인 최면학 연구의 중심지가 된다. 프랑스에서는 가르코트 최면학교와 낸시 최면학교가 쌍벽으로 전문가들을 배출을 하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1885, 10월에 그의 약혼자인 마샤(Martha)와 함께 프랑스로 6개월간 유학을 떠나게 된다. 가르코트가 매주 화요일에는 세계의 명사들이 보는 가운데서 히스테리아 환자의 최면 치료를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최면에 걸린 환자가 최면으로 어린시절의 기억을 하는 것과 최면에서 깨어나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본 프로이트가 여기에서 인간의 기억의 한계에서 의식무의식의 이론 그리고 어린시절의 기억은 망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뇌 속에 저장된다 라는 그의 연구의 핵심이 등장하게 된다.

가르코트는 최면 치료에서 프로이트에게 히스테리아(정신병)의 원인은 근친상간과 강간 그리고 학대와 폭력이 원인(심리학적인 상처)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었다(프로이트의 섹스 심리학의 등장). 가르코트가 프로이트에게 히스테리아의 원인에 대한 과정을 연구해서 규명해 보라는 언질에서 프로이트가 이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다(Ellenberger, 1970의 무의식의 세계를 보라).

프로이트는 귀국해서 최면으로 히스테리아 환자를 치료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그가 파리에 가르코트 한데서 최면을 공부한다는 것은 신경학 전공이 최면학으로 전환을 의미했다. 그는 40세 연상의 부케(아버지의 나이와 동갑)교수 그리고 메이너트 교수로들단절되어진다.

그들이 과학자와 의사로 양성한 프로이트가 일종의 미신(그 당시에 과학계)과 같은 것으로 전향한 것에서 프로이트는 메이너트 뇌 과학 연구소에서 쫓겨나서 가소위츠(Kassowitz) 어린이병원에서 기억상실증을 연구하게 된다. 반쯤 장님(盲人)9개 논문으로 35개의 개인적인 증세, 병리학, 해부학적인 진단과 치료를 한 논문이 1891년에 출판되어 유아 뇌의 연구의 최고의 논문으로 인정받고 있다(Ernest Jones, 1953).

프로이트가 히스테리아를 최면으로 치료를 하면서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최면과 유사한 방법을 사용해서 카우치(수평인 침대와 달리 허리와 어깨의 부분에 부드러운 접촉으로 제작된 곡선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최면에서는 반드시 눈을 감긴다) 머리 속에 떠 오르는 것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는 자유연상 그리고 환자와 눈을 맞추기 않고 카우치 뒤에서 의자에 앉아서 노트를 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면의 방법을 사용한 최면의 변형이었다. 브로이어가 안나 오(Anna O)를 그리고 프로이트가 4명의 여성 히스테리아와 환자들 중에서 2명은 최면으로 그리고 2명은 최면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카우치와 기억의 회상인 자유연상으로 환자를 치료한 그들의 공동 작품이 1895년에 출판됨으로써 드디어 정신분석이 탄생하게 된다.

그 시점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스스로 최면에 걸려 봄으로써 최면의 과정이 어떤 것인가? 를 규명하게 된다(정신분열증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는 스스로 최면에 걸려 실험을 한 장본인)(Ellenberger의 1970년, 무의식의 세계를 보라). 브로이어 역시 최면이 최면사의 제시에 의한 카타르시스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라는 것을 발표함으로써 최면학의 신비의 베일이 벗겨진 후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최면학으로부터 독립된 학문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프로이트의 카우치에서 자유연상의 효과? 에 대한 실험연구들이 등장하게 된다. 62개의 버턴을 머리에 쓰고 뇌파를 연구한 결과 카우치에서 누어서 눈을 감고 자유롭게 연상을 하는 방법이 긴장이 이완되어 뇌의 휴식이 최고의 상태로 그 상황에서 기억이 최대가 되는 효과적인 방법임이 증명이 되었다(정신분석가인 볼라스(Christophe Bollas)의 대상의 그늘(1987를 보라)(정신분석 안에서 아직도 정통파 정신분석(5개의 정신분석 학파로 분파)에서는 126년이 지난 이후에도 지금도 카우치와 자유연상을 그대로 사용).

여기에서 잠깐 최면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최면을 걸 때는 반드시 눈을 감게 유도한다(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최면사의 제시에 따라서 몸과 마음의 일치를 유도). 정면으로 내 눈을 쳐다보거나 진자의 추를 응시하세요? 라고 할 때 최면에 걸리는 사람은 최면사의 제시에 따르게 된다. 한참 동안 응시를 하면 눈꺼풀이 무거워질 것입니다. 그러한 눈을 감으세요 라고 말을 한다 얼마후에 눈을 감게 된다(정면 응시는 눈에 힘이 들어가서 눈을 감게 된다).

이 때 최면사가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내가 이야기를 하는 대로 따라오세요 라고 한다. 지금 우리는 푸른 하늘이 보이는 잔디밭에서 멀리 파도가 없는 잔잔한 조용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원하고 싱그러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내가 어린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4살 혹은 5살 때의 내 눈에 어린 꼬마가 보입니다. 얼굴에 따뜻한 바람이 감미롭게 느껴집니다 ------- 이와 같이 상상과 이미지들을 세분화로 조그만 단계로 이어져 내려갈 때 최면에 걸리게 된 사람은 자신의 어린시절의 모습으로 이어져 내려간다. 이 세분화된 미세 단계는 최면사와 최면에 걸리는 사람의 호흡과 마음의 상황이 일치가 된다.

최면에 걸리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상황이 최면사의 이야기에 의해서 서로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 그 시점에서 어린시절의 경험들이 재생으로 떠오르게 된다. 즉 외부의 자극들이 차단되고 몸과 뇌안에서 모든 기능들이 최면사의 제시대로 진행되어지면서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연결되어져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가 진행된다---- 마지막에 최면사는 하나 둘, 셋에 눈을 뜨세요 라고 지시를 하면서 하나 둘, 셋이라고 카운터를 해서 최면에 깨어나게 된다.

최면은 최면치료사의 제시에 최면에 걸린 사람의 마음을 최면사가 제시하는 하는 지시에 따르는 것으로써 긴장을 풀고 정신을 최면치료사가 지시하는 대로 마음을 한 곳에 모으게 하는 것이다(Powd& Frzedberg, 1987. 최면치료: 현대적인 접근을 보라: 주㈜: 참고).

최면은 부응적인 순응적인 사람인 군인, 농부들이 잘 걸리고 자아가 강한 최면사는 절대로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치료자(필자)는 최면사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이 과정은 최면사의 지시에 따른 서로의 마음의 일치로 몸과 마음이 하나됨으로 정신분석에서 이 과정은 너와나의 하나됨이라는 용어로 등장하게 된다 – 최면의 단점은 최면사의 제시에 환자의 몸이 부응으로 거짓된 상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라는 것이 프로이트가 알게 된다 여기에서 최면의 포기의 또 한가지 이유이다)(Ellenberger, 1970).

최면으로부터 독립된 학문으로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은 1905년에 섹스에 대한 3개의 논문(프로이트 자신이 공언한 그의 3개의 대표작의 하나: 1900년에 꿈 해석, 1905년에 섹스에 대한 3개의 논문, 1914년에 토템과 터부)이 출판되면서였다. 그는 가르코트가 보여준 히스테리아의 원인은 근친상간, 강간의 어린시절의 섹스의 상처라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 논문은 유아 성욕이론, 청소년의 제 2차 성징(성적인 징후) 그리고 변태성욕에 대한 논문의 3개가 바로 이 논문의 핵심이다.

이 논문은 프로이트의 섹스학과 심리학을 통합한 섹스심리학의 핵심으로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리비도(libido) 이론의 핵심이다. 이 첫 논문은 1,000부가 출판되었으나 매진에는 5년이 걸렸다. 그러나 1910-1915년에 두 번째 출판에서 출판 즉시 매진되었고 6개의 국어로 번역되었다. 원본인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체코어, 그리고 일본어이다. 프로이트의 생전에 6번이나 재출판이 되었다(Ernest Jones, 1953).

프로이트의 섹스의 논문은 빅토리아 시대(우리나라의 조선시대)의 보수주의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 논문을 읽었다는 이유로 호주의 장로교 목사인 도날드 프라이저(Donald Frazer)가 목사직에서 사임을 했다. 스위스에서 신부이자, 정신분석가인 피스트(Oska Pfister)가 승진에서 걸림돌로 재심사를 당했다. 그리고 청교도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이 논문이 이상심리학 논문지에 실렸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소를 당했다. 프로이트의 섹스심리학 논문은 영국의 왕립의학회에서 자위행위의 진실에 대한 연구조사를 실시했지만 의학회에서 인정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분석에서는 이 논문이 전문가에게만 국한 하라고 왕립의학회에서 제한을 가했다(Ernest Jones, 1953를 보라).

유아 성욕론을 요약하면 유아들은 3세-5세 나이에 섹스 욕구가 표면화된다. 이 시점에서 성기가 발기를 한다, 부모님이 성관계를 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게 된다. 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기 놀이를 한다. 의사놀이 배꼽놀이, 오줌 멀리보내기 경쟁 등을 통해서 섹스에 대한 호기심이 등장한다. 아버지와 경쟁을 하려고 하고, 아버지를 능가하려고 한다, 아버지를 멀리하고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와 가까워지려고 한다. 어머니를 독점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동생이 태어나게 되면서(3살 터울) 그는 엄마로부터 쫓겨나서 되면서 자신의 방으로 내몰리게 된다(딸의 경우에는 반대). 1살, 2살 때 어머니의 품에서 등에서 옆에서 어머니와 가장 가까운 자신이 아버지가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엄마와 아빠가 한 방에서 잠을 자는 대신에 자신은 엄마 품에서 쫓겨나는 것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이다 라는 것을 깨닫고 엄마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를 닮아가게 된다.

이 때 태어나는 여동생을 보면서 자신의 페니스와 다른 모습에 아버지의 처벌로 여동생의 페니스가 사라진 것으로 오인(2살혹은 3살의 어린이의 상상)하게 된다(거세불안의 등장),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처벌을 받아서 페니스를 잃어버리게 된다 라는 불안으로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된다.

1살과 2살의 시점에서는 원하는 것을 부모님 다 해주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나르시즘의 피크), 3세의 시점에서는 걸어 다니면서 주변환경의 탐색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생각으로 부모님은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로 특별히 아버지를 동일시해서 자신도 아버지처럼 강하게 되면 어머니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유치원과 학동기가 되면서 동료들과 어울리고 경쟁하고 배우는 기간이 된다 .

사춘기(13-19)가 되면서 제 2의 섹스 욕망의 등장(고환과 정자와 정액의 생산의 시작)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섹스 욕망(딸의 경우는 반대로) 때문에 깜짝 놀래서 엄마를 담은 이성으로 향하게 된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화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된다. 이성 부모님과 닮은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프로이트의 성기기는 성숙과 출산으로 인간의 발달은 어른이 됨으로써 끝나게 된다(프로이트의 발달 단계는 5단계가 마지막).

이러한 정상적인 과정의 발달에서 왜곡되거나 일탈이 된 것이 변태성욕이다. 부모님의 섹스 장면을 보게 되면 너무 일찍 과도한 섹스 자극으로 섹스 욕구에 집착하게 되거나 혹은 부부 사이에 갈등으로 섹스가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단절된 모습에서 나이에 적당한 섹스 요구의 발달에 장애가 되는 경우들이 변태성욕의 원인이 된다. 정신분석에서는 부모님의 섹스 관계의 장면원시적 장면(primal scene)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가 초반기에 최면학에서 독립된 학문으로 등장한 리비도 이론은 3세-5세의 어린이들이 섹스 욕구의 표면화로 이 나이의 기간에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섹스로 유혹을 하면 쉽게 끌리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유혹 이론으로 이름을 붙였다. 어른의 유혹으로 섹스의 상처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히스테리아의 원인을 유혹이론으로 본 것에 대해서 이것에 반대한 브로이어(Breuer)와 갈등을 빚게 된다. 고로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자아분석에서 14살의 선배인 브로이어 그리고 40세의 아버지의 동갑인 부케 교수 그리고 유사한 나이의 메이너트 교수결별을 하게 된 것은 그의 어린 시절의 엄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경쟁 그리고 아버지를 능가해서 어머니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유아기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원인 때문으로 항상 아버지 나이의 스승들과 결별을 자신의 결함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아 성욕론은 이후에 오디프스 콤플렉스로 이론화되면서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의 핵심인 리비도 이론으로 그리고 욕구 이론의 핵심이 된다 즉 섹스욕구의 정신분석학적인 발달과정이 등장하게 된다. 인간은 엄마의 배속에서 태어날 때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은 출생 초기부터 엄마와 하나된 관계에서 시작해서 경험이 머리속에서 기억으로 흔적이 남고 그 기억들이 모여서 경험으로 남게 된다. 이것을 프로이트가 발달의 단계로 재구성한 것이 바로 섹스심리학의 정신분석 발달학이다 즉 0세-1세의 구순기, 1세-3세의 항문기, 3세-5세의 오디팔기, 6세-12세의 잠재기 그리고 13세-19세의 성기기(사춘기)이다.

구순기 단계입과 입술이 주체가 된다. 모든 에너지가 입과 입술에 집중이 된다, 먹고 마시고 대소변을 가릴 줄 모른다. 유아는 태어나면서 즐거움과 불쾌감을 구분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은 입으로 수용하고(입사) 그리고 싫어하는 것은 뱉아낸다(투사). 이러한 과정에서 기억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 경험들이 모이게 된다.

항문기 단계는 기고 서고 걷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먼저 내 몸의 컨트롤 그리고 주변 환경의 컨트롤을 통해서 내 몸의 컨트롤과 주변 세상에 대한 컨트롤로써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해 나간다.

오디팔 단계는 엄마, 아빠 그리고 아기 사이에 세 사람 관계의 복잡한 단계이다. 섹스 욕구의 표면화로 부모님의 섹스 관계를 어렴풋이 알게 되고 엄마와 밀착에서 아버지의 처벌의 두려움이 엄마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닮아간다. 선과 악의 구분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구분이 생긴다.

잠재기 단계는 학동기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에 된다. 동성 친구들과 놀이를 통해서 어울리고 서로 경쟁하고 동료들과 친밀한 관계를 배우고 그리고 학습을 통해서 생활 기술들을 습득하게 된다.

성기가 단계(사춘기)는 제 2 차 성징의 등장으로 이성부모에 대한 섹스 욕구의 재등장으로 자녀들(아들과 딸)은 깜짝 놀래서 이성부모를 포기하고 이성 부모를 닮은 이성 친구 쪽으로 향하게 되고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회로 향하게 되고 결혼으로 인간의 성숙은 끝나게 된다.

위의 각각의 단계를 통과하면서 욕구의 만족은 정상적인 발달로 이어진다 그러나 욕구불만족이 신경증의 근원이 된다 구순기에 욕구불만족은 입이 중심이 되는 신경증들 즉 먹고 마시는 것에서 등장하는 문제들 즉 알코올중독, 습식장애들(거식증, 폭식증)으로 항문기의 욕구불만족은 대소변 훈련에서 오는 결백증인 강박사고 강박행동, 정리정돈, 과도한 청결 등의 신경증으로 그리고 오디팔 단계에서 욕구불만족은 다양한 변태성욕들의 섹스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

여기에서 욕구이론의 등장으로 각각 단계별로 충족되어 지지 못한 욕구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평생동안 그 욕구에 집착으로 삶의 과정에서 모든 중요한 다른 것들이 희생되고 오직 그 욕구 충족에 매달리게 된다. 이것을 우리 나라말로 하면 ()이 맺힌다 가 된다. 예를 들어서 사랑에 한이 맺히면 평생동안 사랑 타령, 학업에 한이 맺히면 자식들을 공부에 강압으로, 돈에 한이 맺히면 돈을 모으는 수전노 가 된다.

치료에서는 욕구불만족을 치료사가 채워 넣어주는 것이 아니고(욕구의 충족은 밑 빠진 독에 물붙기이다) 그 욕구의 근원을 밝혀내서 그것을 깨닫게 하고 그 욕구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길어주게 된다.

이것이 최면학에서 등장한 유혹이론으로부터 완전히 정신분석학으로 이동을 완료하게 된다. 이 욕구 이론은 원시적인 욕구가 중심이 되는 이론이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등장하게 된다. 드디어 1923년에 현실적 자아(ego)와 원초자아의 논문으로 심리적 구조이론이 등장한다. 즉 몸의 주인은 마음으로 인간은 3개의 자아가 끌고 나는 삼두마차이다. 타고 나는 본능인 원초자아(id), 양심인 초자아(superego) 그리고 현실적 자아인 ego이다. 뇌 속에서 컨트롤 센터에는 ego, id, superego 라는 3개의 자아가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고 조정을 한다.

세 개의 자아는 서로 견제와 균형으로 평행으로 나란히 존재할 때 건강한 사람이 된다. 0세로 타고나는 원초자아가 좌지우지하면 양심이 없는 범법자들이 된다. 3세-5세의 기간에 등장하는 초자아가 좌지우지하면 우울증이 된다. 모든 것이 내 잘못으로 초자아(부모의 목소리) ego를 공격하면 자신감이 감소되고 자아가 왜소하게 된다. 가장 늦게 완성되는 현실적 자아 즉 ego19이 걸린다. 합법적인 성인의 나이가 19세이다(법적인 성인) 고로 19년 동안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 기간을 미성년자라고 부른다. 고로 부모가 보조 ego 가 되는 것이다.

현실적 자아는 학습기능, 방어기능(자아보호), 조정기능, 적응기능, 갈등해결기능, 선택하고 판단하는 기능, 문제해결기능 등등의 중요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원초자아는 즐거움의 원리를 따른다. 현실적 자아는 현실의 원리를 따른다. 원시적인 욕구를 바로잡고 길들이는 기능은 ego가 담당한다(원초자아가 있는 곳에 ego가 있다).

인간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음식을 통해서 몸이 성장을 한다 여기에 더 붙여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아도 성장을 한다. 우리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사람을 미성숙한 사람으로 지칭을 한다. 미성숙하다는 말은 나이에 알맞은 자아로 행동하지 못하고 그 나이 이전의 성숙하지 못한 자아의 행동을 말한다 즉 ego가 나이에 알맞게 기능을 하도록 치료에서 초점을 맞춘 것이 바로 ego 심리학이다.

프로이트의 마음의 구조이론은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오게 된다. 마음 속에서 3개의 자아의 견제와 균형(국가의 입법, 사법, 행정의 기구들이 서로 견제와 균형과 유사). 이것은 내면의 마음(intrapsychic)에서 대인관계(interpersonal)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여기에서 마음 밖에서 외부의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로 확대되어 지게 된다. 즉 관계라는 말이 등장해서 대인관계, 대상관계, 가족 관계 이론들이 등장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신경증 치료에 초점이 맞춰진 중상류층의 성인 어른들이다. 유아들의 치료에서 완전히 치료 기법이 달라지게 된다 이것이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의 대상관계엄마와 아기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지는 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셀리번(Sullivan)의 대인관계이론으로 생물학적인 본능에 초점이 맞춰진 프로이트 이론에 문화와 사회적 영향력이 결여된 것을 지적하고 문화와 사회적 요소를 첨가한 대인관계 이론이 신프로이트 학파(셀리번, 에릭 프롬(Eric Fromm), 호르니(Horney) 등)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ego 심리학은 에릭슨(Erikson),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 마가레트 몰러(Margaret Mahler) 등의 ego의 기능의 촉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프로이트의 한 사람 심리학이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의 심리학으로 이어져서 두 사람 심리학으로 확대 성장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경증 치료에서 성격장애와 정신증 치료의 길을 열러 놓게 된 관계 이론이다.

프로이트의 섹스심리학은 환자들의 치료에서 등장한 이론이다 고로 실험실에서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에서 잠깐 섹스학의 실험실 등장을 고찰해 보자.

1930년대 미국에서 실험실의 섹스학이 등장하게 된다 그것을 연구한 학자가 바로 하버드 대학에서 곤충학 박사학위(심리학을 부전공)을 받은 알프레도 킨제이(Alfred Kinsey)로서 그는 인디아나 대학에서 곤충학 교수로 있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의 혹말벌의 연구로 3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 때문에 40대의 나이로 그의 제자와 늦깎이 결혼을 하면서 첫 날 밤에 발기가 되지 않았다(발기부전), 고로 그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 연구 논문을 찾았으나 섹스에 대한 연구 논문이 전무했다(Masters& Johnson, 1985).

이것이 그를 섹스학 연구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는 0 - 6까지 측정 스케일자를 만들어서 설문조사를 했다. 미국 전국에 남자들의 표본으로 섹스의 설문 조사를 10년의 연구 과정을 통해서 1948년에 인간 남성의 섹스 행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을 때 미국전역에서 베스트셀러로 폭풍을 몰고 왔다. 록펠러 재단의 연구 자금으로 인디아나 대학의 재생산 연구소를 설립하고 섹스 연구에 열풍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 그는 여성의 섹스 행동의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때는 컴퓨터가 등장 이전이었다. 그는 전 세계의 여성들의 표본으로 여성 성기의 사진으로 연구를 통해서 연구를 하면서 여성의 음부의 사진을 전 세계로부터 수집하게 되었다 그런데 세관에서 여성성기의 사진들이 발각되었고 대학 교수가 섹스 포르노 사진수집가로 알려져서 미국의 신문, 잡지에 보고되면서 치명타를 입게 된다. 1953년에 출판된 여성의 섹스 행동참패를 당했다. 록펠러 재단의 연구 자금 단절로 그의 연구소에서 약 70여명의 연구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이 충격의 화병으로 3년 만에 사망하게 된다(Master & Johnson, 1985).

킨제이의 연구는 센트 루이스 대학에서 산부인과 교수인 윌리엄 마스터(William Masters)가 계승하게 된다. 그는 센트 루이스의 워싱턴 대학에서 인간 재생산 연구소를 설립하고 여성의 질 속에 컴퓨터 칩을 넣어서 자위행위와 오르가슴 시에 자궁과 질의 연구를 밝혀내게 된다. 그가 신문의 광고에 여성의 질 속에 컴퓨터 칩을 삽입할 실험 대상의 모집 광고를 냈다 이것을 보고 찾아온 용감한 간호사가 바로 버지니아 존슨(Virginia Johnson)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모든 책과 논문은 마스트와 존슨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게 된다.

그는 실험대상여성들 382명과 남성들 312을 대상으로 1만여회의 실험을 통해서 인간의 섹스 반응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다. 그는 1959년에 워싱턴 대학에서 인간 재생산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1964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섹스 치료를 시작을 했다. 1966년에 그들의 저서인 인간의 섹스 행동은 4월달 출판에서 매진으로 첫 달에 2판을 연속으로 찍어냈다 그리고 10년 동안에 매년 2회씩 21번의 출판을 했다. 1980년에 단행본(반탐 북: 필자의 소지)을 6월달에 출판했을 때 1개월 만에 4번째 연속 출판이 매진되었다(Masters & Johnson,1970, 1980: 주㈜: 참고).

뉴욕에서는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헬렌 카플란(Helen Kaplan,1974, 1975, 1979, 1987: 주㈜: 참고)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그리고 정신분석가의 3개의 학위를 가진 카플란이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의 교수로 1970년에 페이네 휘트니 정신의학 치료센터(Payne Whitney Psychiatric Clinic)에서 섹스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에서 베르니 질베르젤드(Bernie Zilbergeld, 1979: 주㈜: 참고)와 바르바크(Barbach, 1984: 주㈜: 참고)가 1971년에 섹스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이들의 연구를 통해서 이제 섹스에서는 밝혀질 것이 거의 없다는 시대로 1960년대와 1980년대를 섹스 혁명의 시대로 불리게 된다.

프로이트가 1905년에 섹스 치료를 시작한지 59년만에 마스트와 존슨이 그리고 65년만에 뉴욕에서 66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섹스 치료가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프로이트 이후에 반세기가 지난 후에 섹스 치료가 시작되어 섹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50년의 세월이 흘러간 이후에 섹스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과 열풍을 비교해 볼 때 프로이트의 천재성이 입증된 것이 아닌가?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 과학이 되기를 갈망을 했다. 특별이 독일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실험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프로이트의 자신의 머리 속에서 나온 상상으로 과학이 아니고 소설에 가깝다고 혹평을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기술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나온 데이터에 못지않게 실험실에서 실험을 할 수 없는 사실들을 기술할 때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기술을 한 결과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똑 같은 결과로 기술되어질 때 진실된 사실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Moor, 1998: 주㈜: 참고).

여기에서 어른 환자의 최면으로 밝혀진 어린시절의 상처가 오리지널의 기억인가? 라는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기억 학자들의 논문들과 그들의 조언으로 어린시절의 기억이 오리지널로 남아 있지 않고 변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아가 가필과 정정을 거치는 것처럼 오리지널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변화되어지고 수정되어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유혹 이론에서 벗어나서 어린시절의 상상력으로 바뀌게 된다는 오디프스 콤플렉스가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상처 이론을 따르는 즉 오리지널 유혹이론을 따라가는 학자들과 가필과 정정으로 변형된 오디팔 상상의 상처를 따라가는 학파들로 나눠지게 된다. 프로이트는 항상 자신의 이론의 모순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갔기 때문에 그 이론들을 따라가는 제자들 사에서 수많은 갈래의 연구들이 확산되어 지게 된다.

첫 번째 유혹이론의 포기를 거부하고 실제 상처의 이론을 고수한 사람이 프로이트의 수제자인 샌도르 프랜치(Sandor Ferenczi)이다. 그는 오디프스의 상상의 상처도 중요하지만 실제 상처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라는 주장으로 밀고 나갔다. 그의 뒤를 이어서 정신분석가로써 가족치료를 고안해 된 가족치료사들이 실제 가족구성원들 사이에 상처 이론을 들고 나왔다(Slipp, 1991: 주㈜: 참고). 더 붙여서 정신분석가들 중에서 그의 지지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주디 허만(Judith Herman, 1997:(주㈜: 참고)으로 그녀의 저서인 상처와 회복이다.

그리고 뉴욕의 아달피(Adelphi)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조디 데이비스(Jody Davis)와 마리 프라웨이(Mary Frawley)(1994: 주㈜: 참고)의 저서인 어린시절에 성적 학대를 당한 어른의 치료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프로이트의 성인 환자 치료에서 나온 어린시절의 근친상간, 강간 그리고 학대와 폭력의 주장은 피해자들의 주장이 가해자들의 고소고발로 이어져 증명할 길이 없다는 문제에 부딪쳐서 프로이트가 판도라의 상자를 받아버렸다고 주장을 한다(Herman, 1997). 이것이 유혹이론에서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상상이론으로 발전한 한 개의 원인으로 본다.

그런데 약 100년이 지난 이후에 1970년대에 뉴욕에서 시작된 인권운동의 영향으로 미국의 사회학자로 여성운동의 대부(代父)인 베티 프레디언(Betty Friedan)이 여성운동의 앞장에 섰다. 그녀는 버클리 대학에서 심리학 전공으로 에릭슨(Erikson) 밑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여성정신분석가로써 프로이트의 남근 질투심(pennies envy)에 반기를 들고 여성해방운동에 리더가 된다. 그녀는 여성들에게 호소를 했다. “여성 들이어! 깨어나라, 가슴 속에 근친상간, 강간의 상처들을 내면 속에 쌓아 두면 곪아 터지게 된다. 폭로해서 해방시켜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여성들의 자각운동을 주장하면서 여성 운동의 리더가 된다.

이들이 중심으로 근친상간과 강간 폭로 운동을 뉴욕에서 전개하게 된다. 이것이 첫 번째 미투(Me too) 운동이었다. 1970년에 형성된 여성전국 연맹에서 뉴욕주에서 강간을 성폭력으로 개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후에 10년 만에 미국의 50개주가 강간의 용어를 사용하는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강간은 글자 그대로 강제로 성관계를 말한다.

강간을 당한 피해자들을 치료를 하면서 많은 분석가들이 아무리 치료를 해도 그들의 마음 속에서 “나는 더러운 여자이다”, “나는 순결을 잃었다,” “나는 처녀가 아니다”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러한 치료의 과정에서 정신분석가들이 순결을 잃은 것이 아니고 성기에 폭력을 당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확대되어 강간의 피해자는 성기에 폭력을 당한 것이다. 성기의 상처가 아물면 순결함도 회복이 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1972년에 보스턴 시립병원의 정신과 간호사인 엔 브르게네스(Ann Burgess)와 임상사회복지사인 린다 홀스톰(Lynda Holmstrom)이 강간에 대한 심리적 상처의 연구는 강간당한 후에 불면증, 메스꺼움, 구역질, 놀람반응, 악몽과 해리(기억의 단절), 그리고 플레쉬백(상처장면이 한번씩 피드백)으로 나타나는 강간 증후군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연구들과 사회적 운동들이 드디어 1980년대에 심리학자인 워커(Walker)의 가정폭력과 매맞는 여성 증후군, 매맞은 어린이 증후군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으로 학자들이 가족과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연구가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의 전국에 쉼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Herman, 1997).

그 단초는 영국의 작가인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걸작품인 더버빌가의 테스(1891년작품)(1979년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테스에 나스타시아 킨스키 주연)에서 시작되었다.

테스의 아버지는 명문가 더버빌 가문의 명예 때문에 하찮은 천박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게으름과 알코올 중독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의 책임을 진 장녀로 가족의 책임을 등에 짊어지게 된다 그녀는 더버빌 가문이라는 명예를 돈을 주고 산 한 부유한 집에 양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하인으로 집안일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그 집의 친척인 난봉꾼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하게 된다. 집으로 쫓겨와서 미혼의 처녀가 아기를 낳게 된 것이다. 그녀의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음식의 부족으로 아기에게 젖이 나오지 않고 병에 걸려 아기가 사망하게 된다 그녀는 미혼모가 된 것이었다.

동료들 중에서 가장 앞장서서 미래가 창창한 테스는 이웃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서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한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목사 지망생인 엔젤이라는 청년으로 테스에게 열정으로 구혼을 하면서 결혼을 요구를 했다. 테스에게 행운의 여신의 미소가 보였다. 테스는 임신해서 아기를 출산했다는 전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양심 때문에 엔젤에게 결혼을 허락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의 전후좌우의 사정과 상처들을 편지로 썼다 그리고 엔젤의 하숙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엔젤은 외출을 하고 방에 없었다. 그녀는 그 장문의 고백편지를 도어문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엔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엔젤은 아무런 내색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엔젤이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것으로 수용하고 결혼을 허용했다. 신혼 여행 후에 엔젤의 방으로 들어오면서 도어 문을 열었을 때 테스의 편지가 방안에 깔아 놓은 양탄자 밑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양은 방안에 양탄자를 갈고 신발을 신고 침대를 사용한다 도어문까지 깔린 양탄자가 도어문에 밀착되어져 도어문 밑으로 밀어 넣은 편지가 그 양탄자 밑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었을 때 엔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기겁을 한 테스는 그 편지를 꺼내서 엔젤에게 보여주면서 솔직하게 실토를 했다. 그러나 엔젤의 태도는 돌변했다. 엔젤은 자신의 마음이 돌아가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남아메리카로 이민을 떠났다.

테스는 다시 불행의 원점에서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녀는 먹고 살기 위해서 그 난봉꾼의 첩으로 들어가서 술과 담배와 타락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서 까맣게 잊어 던 엔젤이 어느 날 찾아온 것이었다. 엔젤은 테스를 용서하겠다고 하면서 결혼을 요구를 했다. 그러나 엔젤은 거부를 했다. 이미 몸과 마음을 타락을 해서 망가져버렸으니 더 이상 함께 살 수가 없다고 실토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엔젤은 눈물을 흘리면서 떠나갔다.

테스는 꼼꼼히 자신을 회상을 해 보았다. 그 난봉꾼에게 강간을 당한 이후에 테스의 삶을 풍지박산이 난 것이다 그녀는 도저히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분기탱천해서 칼로 가해자를 살해하고 그녀는 엔젤이 저녁 xx 시간에 정거장에서 런던 행 기차를 탄다는 것을 알고 정거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엔젤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하고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려 올 것이니 그 시간까지 함께 지내 달라고 애원을 했다. 엔젤과 테스는 산으로 도망을 쳤다. 우연히도 인근 산에 한 빈 별장을 발견하고 꿈같은 하루 밤을 보내게 된다. 아침 일찍 그 산장의 관리인이 낯선 사람들이 잠을 잔다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다. 테스와 엔젤은 부라부라 산속으로 도망을 갔다. 그 산 속의 한 고인돌 무덤 옆에서 하루 밤을 보내면서 새벽에 기마 경찰의 추격으로 붙잡히게 된다.

경찰에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테스는 마지막으로 엔젤에게 그녀가 엔젤과 3일 동안의 꿈 같은 시간이 그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과 함께 세상을 떠나갔다.

토마스 하디는 그 소설의 제목에 부재목으순결한 여인(pure woman)이라는 부재를 달았다. 여기에서 문제가 폭발을 했다. 빅토리아 시대에 미혼모가 아이를 낳은 것이 순결하다는 말인가? 처녀가 임신으로 아기를 출산한 것이 순결하다면 결혼하지 않는 소녀들이 섹스와 출산을 부추기는가? 라는 비판에 하디는 글쓰기를 포기했다.

이후에 100년이 흘러가서 뉴욕에서 폭로 운동으로 여성해방 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하디가 테스를 순결한 여성이라는 암시에서 시작되었다. 정신분석가들이 강간은 섹스가 아니고 성기에 가해진 폭력이다 라는 정의에서 가해자를 섹스가 아닌 폭력으로 처벌해야 한다. 얼굴에 폭력을 당한 사람은 그 얼굴의 상처가 아물면 더럽혀졌다고 하지 않는다 순결한 상황의 몸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성기에 다한 폭력은 세월이 지나가고 상처가 아물면 순결하게 회복되어진다는 이론은 치료에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치료자는 성폭력을 당한 여러 명의 미혼 여성들을 치료를 하면서 그들의 상처를 회복해서 좋은 건강한 결혼을 하도록 도와준 사례들이 있다(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 사례들을 보라: 성폭행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분류).

여성 폭로 운동에서 셀리라는 여성은 대중 앞에서 베트남 참전 용사인 아버지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딸을 강간한 근친상간을 폭로하면서 이 운동이 강간의 폭로 운동 그리고 근친상간의 폭로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운동은 1975년에 미국의 국립정신건강 연구소(NMHI) 내에서 성폭력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어서 브랏셀에 국제여성범죄 재판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80년에 사회학자이자 인권 운동가인 심리학자인 다이아나 럿셀(Diana Russell)의 900명의 미국의 건강한 여성들 중에서 5명중에 1명이 강간4명중에 1어린시절에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연구보고서가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다시 가족치료에서 실험실 연구들은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실제 심리적인 상처가 그 원인이라는 유혹이론이 다시 부활하게 된다(Slipp, 1984).

반대로 어린시절의 상처의 기억들은 오리지널로 보존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상장의 과정에서 첨가되고 수정되고 변형이 된다는 기억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다. 대표적인 분석가는 하버드 대학의 영문학 전공으로 정신분석가가 된 뉴저지 주립대학인 락터대학(Rutgers)의 토마스 스펜스(Thomas Spence, 1982: 주㈜: 참고)의 저서인 역사적 진실과 서술적 진실에서 어린시절의 심리적 상처인 역사적 진실과 어른이 되어서 서술하는 서술적 진실은 다르다. 기억은 오리지널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고로 오리지널 상처를 분석할 때는 그 환자의 상처 기억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고 오리지널을 찾아내기 위해서 꿈 분석 혹은 다양한 실마리로써 알맹이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하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학파들의 갈래는 실제로 어린시절에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하는 사건에서 증인으로 두 학파들의 분석가들이 재판의 증인으로 나란히 참석하는 아이로니한 사건들이 있었다(Moor, 1999).

이제 오디프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오디프스는 그리스의 소포클래스의 극작품인 오디프스 왕(Oedipus King)의 신화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테베라는 나라에 라이루스 왕은 예언자가 아들이 태어나면 그를 살해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아들이 태어나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인은 아기를 안고 산으로 가서 죽이려고 했지만 죽일 수가 없어 칼로 발을 찌른 후에 산에 내려 놓고 왔다. 마침 인근을 지나가는 한 목동이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인근의 토호(부유한 귀족의 집)의 집 앞에 업동이로 내려 놓고 떠났다. 오디프스라는 말을 그리스 말로 발등이 퉁퉁부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디프스는 자신의 양모를 친모로 알고 성장을 했다.

그는 청년이 되어서 모험을 떠나게 되었다. 어느 날 외나무 다리에서 한 노인과 시비가 벌어져서 그 노인을 살해하게 된다. 그 때 테베에서 왕의 사망으로 새로운 왕을 선발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왕의 선발은 스핑크스(테베의 신)의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에게 왕의 자격을 준다고 했다. 대신에 맞추지 못하면 목숨을 내 놓아야 했다. 오디프스가 용감하게 도전을 하게 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질문은 바로 네 개의 발로 다니다가 두 개의 발로 그리고 마지막에 세개의 발로 다닌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오디프스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사람이 어린시절에는 손과 발로 네개로 그리고 어른이 되면 두개의 발로 걸어다니고 그리고 노년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3개의 발로 다니게 된다. 그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정답을 맞추면서 테베의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남편을 잃어버린 왕후인 자카스타와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을 하게 된다. 그 후에 훌륭한 왕으로 통치를 잘 해 나가다가 기근과 흉년이 7년 동안 계속되자 오디프스 왕이 예언자에게 왜 흉년이 계속되는가? 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 예언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는 말에 오디프스가 죽인 그 노인이 바로 그의 아버지이고 결혼한 왕비가 바로 그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디프스는 눈에 있어도 보지를 못한 것에서 분노해서 두 손으로 눈을 빼고 황야를 방황하다가 고통속에서 죽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프로이트가 이 오디프스 왕의 이야기를 인용해서 오디스프 콤플렉스로 이론화한 것이다. 엄마의 배속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은 엄마와 품에서 등에 업혀서 자라난다 엄마의 분신으로 엄마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다 점차적으로 엄마의 품에서 내려와서 엄마의 인근에서 기고 서고 걷게 되고 주변 환경을 탐색하는 3세의 시점에서 거인인 아버지가 엄마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기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경쟁을 하게 되지만 여동생의 태어나면서 엄마의 방에서 쫓겨나서 자신의 방으로 가게 된다. 페니스가 없는 여동생이 아버지가 거세시킨 것으로 오인하게 된다(2살 어린이의 상상으로 왜 페니스가 없는 여동생이 태어났는가? 를 이해할 수가 없다)그는 거세불안으로 아버지의 처벌을 두려워하고 엄마와 함께 잠을 자는 아버지처럼 행동하게 되면 엄마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상상 속에서 거인인 아버지의 전지전능함에 아버지를 닮아가려고 동일시를 하게 된다.

3세-5세의 오디팔 기간에 어린이는 아버지를 동일시하고 딸은 어머니를 동일시하게 된다. 6세-12세까지는 유치원과 학동기로 섹스의 욕구를 잊어버리고 동료들과 어울리고 경쟁하고 학습에 몰두하게 된다. 13세-19세의 사춘기의 등장으로 섹스 호르몬과 정자와 정액의 고환이 가동되어지면서 섹스 욕구가 재 등장하게 되고 이성의 부모에 섹스 욕구에 놀란 사춘기들은 부모와 닮은 이성으로 향하게 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회의 넓은 품으로 활동의 범위가 확대되어 결혼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면서 발달이 완료되어진다.

이러한 발달의 과정에서 정상적인 발달은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그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하고 오디프스처럼 근친상간에 걸리게 되면 그 결과 오디프스가 눈을 빼고 황야에서 고통속에서 죽어간 오디프스의 비운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라는 것이 프로이트의 신경증 이론의 핵심이다.

엄마의 배속에서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보호와 품 속에서 어떻게 독립된 사회인으로 건강하게 엄마의 품을 떠나갈 수 있는가? 의 핵심이 인간의 본성과 발달의 핵심이 된다. 프로이트가 가르코트의 최면학으로부터 인간의 심리적인 상처 중에서 가장 최악의 상처는 근친상간이고 그 다음에 강간이고 폭력과 학대가 정신병의 근원임을 알게 된 것이다.

오디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이론화한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엄마와 근친상간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이삼각관계가 3-5세에 등장하게 된다 이전에는 엄마와 아기는 하나됨의 몸에서 엄마와 아기의 친밀관계로 밀착된 관계이다 이 관계에서 아버지와 삼각관계의 갈등에서 어떻게 그 갈등관계를 잘 극복하는가? 하는 그 과정의 진화가 그 속에 숨어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어린이가 아버지로부터 위협을 당할 때 어머니가 아기를 아버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한다. 아기가 성장해서 건장해지면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엄마를 보호하는 것은 성장한 아들이다. 엄마와 아들과 아버지의 삼각관계이다.

근친상간의 금기는 유일하게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계약이다. 문화인류학자들이 지구상에 약 250여종의 부족들 사이에서 부모와 자식사이에 성관계를 허용한 부족이 하나도 없었다(Meiselman, 1990). 근친상간의 금기는 인간됨을 떠 받드는 마지막 보루이다. 이것이 깨어지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사라진다(Rychlak, 1981).

섹스심리학자들은 심리적 상처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근친상간, 강간이고 각종 정신이상의 밑바닥에는 근친상간의 문제들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도덕은 인간 사회의 진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인간들 사이의 약속이다. 즉 일종의 사회 계약이다. 이 근친상간에 도덕이 어떻게 진화되었는가? (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153).

프로이트의 인간의 진화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서 최초의 인간가족을 기술하고 있다. 토템과 터부(1913)에서 인간의 새벽의 원시인의 최초를 고고학과 인류학으로 복원을 시도를 했다. 인간의 새벽에 포유동물인 인간 역시 집단생활로 가장 강한 아버지의 보호아래서 자녀들은 성장을 한다. 아버지가 그 그룹의 가족들을 보호하면서 섹스를 독점을 하고 가족의 보호를 한다(포유동물 가족들처럼)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는 노쇠하고 자녀들은 특별히 아들들이 건장하게 성숙해지면서 섹스 욕구가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된다.

가족구성원들에 위협이 되는 아들들은 아버지가 강할 때는 폐각추방 혹은 살해처벌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점점 노쇠한 아버지에게 건장한 아들이 공모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가족을 차지하게 된다. 아버지르 살해하고 아버지를 잡아먹었다. 아버지가 몸 안으로 들어와서 아버지처럼 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기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일시이다 아버지의 몸이 자신의 몸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이 아버지처럼 강자가 된 것이다. 그 아버지는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쇠약해지면서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바로 어린시절에는 아버지의 처벌 때문에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심리적 거세와 거꾸로 아버지가 나이를 먹아가면서 아들의 건장함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심리를 프로이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시절에 아기의 가장 두려운 존재는 아버지이다.

사자의 가족은 아버지 사자만 생존하다. 수놈 사자들은 모두 3살이 되면 추방을 당한다 혼자서 야생에서 살아남아서 강자가 되거나 약자로 소멸하는 것이다. 강자가 된 수놈을 다른 수놈의 약자의 아버지를 몰아내고 새끼들을 물어 죽인다 고로 사자의 어미는 강한 수놈이 아니면 새끼들을 양육할 수가 없다. 사자 새끼들은 가장 두려운 존재가 아빠 사자이다. 자신의 아빠가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오디팔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와 그리고 인류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의 연구와 탐사에게 나온 것이다. 하늘의 신 크로노스(Cronus)는 부인인 레아(Rhea)가 낳은 자식들을 예언자가 그를 죽일 것이라고 해서 모조리 잡아먹었다. 레아는 막내 아들 우라누스(Uranus)를 숨겼다 그가 성장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신이 되어 농업의 신 우라누스가 되었다. 그는 지구의 신 가이야(Gaia)와 결혼을 해서 태어난 자식들을 역시 모조리 잡아먹었다. 어머니 지구의 신인 가이아가 막내 아들인 제우스를 숨겨서 키웠다 그가 성장을 해서 아버지 우라누스의 성기를 낮으로 잘라 살해를 하고 그가 왕들의 왕으로 그리스의 왕이 되었다. 제우스는 어린시절에 엄마의 보호를 받아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 155).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이 아버지가 되면서 아들의 건장함을 두려워해서 아버지는 성장해가는 건장한 아들들과 사회적 계약을 하게 된다. 즉 가족구성원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대신에 아들들에게 다른 토템의 가족과 결혼으로 섹스의 길을 열어주게 되고 그들의 혼인으로 새로운 가족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서는 추장인 아버지가 사망하면 아버지를 화장에서 그 가루를 밥 속에 넣어서 먹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버지처럼 강력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다(남태평양의 원시부족 삼비아 족의 문화인류학 연구를 보라, Herdt & Stoller, 1990: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주㈜: 참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오른팔인 이방원은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약속 받았다 그러나 두번째 부인인 강비(姜妃)의 소생을 세자로 책봉이 되면서 이방원은 아버지의 힘을 두려워했다. 강비가 죽고 아버지가 노쇠하면서 이방원이 왕자의 난으로 세자를 죽이고 아버지는 함흥으로 철수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태종이 아닌가?

유사한 이야기는 바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이다. 영조는 아들 사도 세자의 힘을 두려워해서 학대하고 뒤주속에 가두어 굶어 죽였다. 사도 세자는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학대와 박해에서 어머니의 보호를 위해서 아버지에게 항의하다가 영조가 왕위의 위협으로 세자의 세력을 제거한 희생물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어린시절에 엄마와 아기와 그리고 아버지와 삼각관계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장애물에 걸려서 비극으로 끝이 난 역사의 한 개의 사건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의 가족 생활에서 지금도 생생하게 등장하고 있다. 언론과 TV의 매체들에 의해서 지금도 사흘이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사건과 사고들을 소개한다.

 

아래의 사건 사례들은 2021년에 일어난 사건과 사고들이다 지금도 우리의 주변에서는 이러한 사건과 사고들이 수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위에서 소개되어진 소설과 신화처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이야기들이다.

 

[아시아경제 황수미 입력 2021. 11. 01. 00:10 수정 2021. 11. 01. 06:33 댓글 56개

"넌 내 아내. 다른 남자 못 만나" 의붓딸 9살때부터 12년간 성폭행한 50

의붓딸을 12년간 성폭행한 50대가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의붓딸이 미성년자인 9세일 때부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7일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강동원)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등) 등 혐의로 기소된 A씨(54)에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의붓딸인 피해자 B씨가 9살이던 지난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약 12년에 걸쳐 지속해서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2년부터 피해자 B씨의 어머니인 C씨를 포함해 2남 1녀의 의붓아버지로 피해자 B씨를 돌봤다. 이후 A씨와 C씨 사이에 4명의 자녀를 출산해 총 7명의 자녀를 양육했다.

그러나 A씨는 B씨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특히 피해자 B씨를 유독 심하게 괴롭히며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가 자신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가족 모두를 죽이겠다 거나 여동생을 성폭행하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2009년 당시 9살이었던 피해자 B씨가 집에서 자고 있자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해라. 사랑해서 그러는 거다"라며 성폭행했다. 이때부터 2021년 8월까지 총 343회에 걸쳐 성폭행 또는 강제 추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B씨는 14살의 나이에 임신했다가 낙태를 해야 했고, 수년간의 범행 과정에서 임신과 낙태가 한 차례 더 반복됐다.

하지만 A씨의 범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A씨는 B씨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도록 B씨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앱을 설치해 감시했다.

또 A씨는 B씨에게 "너는 내 아이를 임신했으니 내 아내다. 내 아내처럼 행동해라"며 "다른 남자 만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 사건은 성인이 된 피해자 B씨가 올해 8월 한 지인에게 A씨의 범행을 털어놓으면서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성관계를 거부하면 피해자가 정신을 잃게 할 정도로 피해자의 뺨 등을 사정없이 때리는 등 폭력으로 피해자를 제압 후 강간했다. 이를 피해자 친모는 방관했다"며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는 14세 때 처음 임신한 것을 포함해 2차례나 임신과 낙태를 반복했다"고 전했다.

이어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혼자 오롯이 감내해야만 했다"며 "피해자는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면서도 현재까지 피고인이 출소하면 자신에게 보복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동종 또는 벌금형을 초과해 처벌받은 전력이 없지만 이사건 범행은 입에 담거나 떠올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범행"이라며 "피해자에게 평생토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가한 점 등을 고려하면 중형이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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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친딸 속옷에 손 넣어 추행한 아빠."아내로 착각했다"

중앙일보, 장구슬 입력 2021. 10. 31. 21:57 수정 2021. 11. 01. 06:06 댓글 565개

술을 마시고 귀가한 뒤 집에 있던 초등생 딸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친부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의정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문세)는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A씨에게 2년간 보호관찰을 받을 것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도 명령했다.

A씨는 2016~2017년 사이 술을 마시고 귀가한 뒤 안방 침대에 누워 있던 9세 딸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강제로 만지고, 2020년 3~4월에도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누워 있는 딸을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강제추행 당시 A씨의 딸이 “하지 말라”라고 저항했지만 A씨는 계속 추행했다.

A씨의 이 같은 행각은 딸의 상담교사를 통해 드러났고, 이후 경찰 조사 등을 받은 뒤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정에선 “술에 취해 아내인 줄 알았고 고의가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세 식구가 함께 자거나 자신은 혼자 잤다”라는 A씨 아내의 진술 등을 토대로 “피고인이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이 피해자임을 알 수 있었다”고 판단해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나이 어린 피해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고 양육할 책임이 있는 피고인이 의무를 저버린 채 범행한 것은 죄질이 나쁘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피해자 및 피해자의 어머니와 합의했고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제출한 점 등 여러 조건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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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여동생 성폭행하고 촬영까지 한 친 오빠. 검찰, 징역 8년 구형

중앙일보 하수영 입력 2021. 11. 05. 23:49 수정 2021. 11. 06. 00:15 댓글 231개

미성년자인 여동생을 성폭행하고, 카메라로 촬영까지 한 20대 남성에 대해 검찰이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5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21)에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아울러 신상정보 공개 고지 명령과 함께 취업제한 명령 10년·전자발찌 부착 명령 10년·보호관찰 5년·피해자 접근금지 명령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 재판장 문병찬)에 요청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6년 7월 당시 13세였던 피해자 B씨의 가슴 등 신체 부위를 만지고, 지난해 10월에도 B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또, A씨는 지난 1월 잠을 자던 B씨를 성폭행하고, 성관계 동영상까지 촬영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A씨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며 “피해자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과 수치심을 줬다는 생각에 후회스러운 마음과 죄책감에 사과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고 있다”며 “피고인이 사회 나가서 피해자에게 사죄와 보상을 하고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해달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A씨는 최후변론에서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다. 어른스럽게 자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다음에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힘쓰겠다. 선처해주신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먼저 알려졌다. 청원을 올린 사람은 피해자인 여동생인 B씨(18). B씨는 지난 7월 올린 청원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 오빠에게 상습적으로 끔찍한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했다. 2019년 경찰에 친 오빠를 신고했지만, 친 오빠는 재판 중에도 추행을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B씨는 “부모님은 오히려 나에게 ‘네가 오빠한테 살갑게 대하지 않아서 그렇다. 오빠 한번 안아주고 그래라’라고 꾸짖었다”라고도 주장했다.

B씨는 또 “더는 남매가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었음에도 살가움을 요구하는 부모님 밑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인지. 이 사건이 공론화가 되지 않으면 처참하게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야 하므로 마지막 시도라 생각하고 글을 올리게 됐다”며 “부모님은 가해자인 오빠 편에 서서 사설 변호사를 여럿 선임했고, 저는 국선 변호사 한 분과 재판을 준비 중이다. 접근 금지 처분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친 오빠와 한집에서 지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청원은 최종적으로 29만 명이 넘는 국민의 동의를 받았다. B씨는 청원 접수 이후 본인 의사에 따라 정부지원 시설에 입소했고, 정부로부터 맞춤형 보호지원 조치를 받았다.

한편 A씨에 대한 다음 공판기일은 12월 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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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인 두 딸을 200차례 넘게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30년이 선고됐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장찬수)는 16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48)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출소 후 5년간 보호관찰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10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A씨는 2012년 9월부터 지난 5월까지 제주시 내 주거지 등에서 당시 중 고등학생이었던 두 딸을 200차례 넘게 강간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2007년 부인과 이혼하고, 자신이 원해 두 딸을 키워온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두 딸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두 딸 명의로 대출까지 받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A씨의 범죄 행각은 두 딸로부터 피해사실을 전해 들은 A씨 전 부인의 고소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날 “피해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피고인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성적 욕구 수단으로 사용했다”며 “이 사건 범행은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반인륜적으로 가정의 가치를 무너뜨린 것이다. 사람이 이래도 되느냐”고 호통쳤다. 이어 “피해자가 현재까지도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점, 피해자들이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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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의 심리치료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밝혔기 때문에 상세한 치료 과정을 원하는 독자는 치료자의 블로그인 인격살인 혹은 불안장애의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들어가 보라)(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 사례들을 보라: 성폭행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분류).

아래의 글에서는 오디프스 콤플렉스가 어떻게 치료에서 응용되어지는가? 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직접 오디프스 콤플렉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에서 모든 장애들의 첫 단추가 주로 0-5세까지의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위에서 강조한 것처럼 인간은 출생 시에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0세에서 2세까지는 아기와 엄마의 밀착관계가 중심이 된. 3세의 시점에서 아버지가 등장하게 되고 엄마, 아빠, 아기의 세사람의 복잡한 관계가 어린이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심각관계의 첫 등장이 이 기간이다.

감정들이 분화되어 나타난다 분노는 2개월, 불안은 6개월, 겸연쩍음, 수줍음, 수치심, 죄의식은 2.5에 등장한다 그리고 질투심, 시기심, 경쟁심이 3세에 등장하고 그리고 4세 6세 사이에 비밀, 거짓말, 사적인 자아가 등장하게 된다(Mearles, 2005: 주㈜: 참고).

이러한 복잡한 감정에 더 붙어서 출생 직후 빠르면 3개월 혹은 4개월에서 등장하는 옹알이이다. 옹알이는 원시적인 언어이다(에딘버러 대학의 옹알이 연구의 트레바덴(Trevarthen, 1987)을 보라). 언어의 사용의 첫 시작되는 낱말들의 사용이 1.5세에서 약 12개가 2세에 250에서 300개의 낱말들로 확대되어진다(Anisfeelt, 1985의 연구가 Mearles, 2005: 놀이의 은유에서 인용: 주㈜: 참고).

3세-5세의 오디팔 기간 동안에 언어와 사고와 감정에 엄청난 빅뱅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제 부모의 결혼에서 시작해 보자. 성숙한 남자와 여자는 서로 사랑해서 연애로 결혼을 하게 된다.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가?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우연한 기회에 서로가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프로이트는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프로이트의 결정론), 연인들이 서로 만나는 것은 서로의 무의식적인 욕구에 의해서 만나게 된다고 본다 여기에서는 배우자이 선택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간다(원하는 사람은 부부 치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보라).

여기에서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서 시작해보자. 그 사랑의 결실로 자녀들이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자녀는 엄마, 아빠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경험이 기억으로 형성되고 그 경험의 집합들이 자아가 된다. 부모님과 자녀의 상호관계가 자녀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첫 번째 단추가 바로 엄마, 아빠인 남편과 부인의 자아의 구분화 정도가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Bowen, 1985). 부부는 각자가 독립된 심리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면 No라고 분명히 거부를 해야 한다. 갈등을 서로가 의견의 조정을 통해서 대화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남녀가 독립된 인격체로써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각자의 자치심이 인정을 받고 서로 갈등이 생기면 말로써 갈등을 해결하고 사랑에 의해서 맺어진 부부관계는 사랑을 몸으로 전달하는 섹스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자녀가 출생하게 된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데이비드 만(David Mann, 1997: 주㈜: 참고)은 에로틱한 관계: 심리치료라는 저서에서 부부사이에 섹스는 가장 신성한 것으로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된 결합으로 정의를 한다. 서로의 사랑을 몸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고로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 섹스는 창의적인 산물로 자녀가 탄생을 한다. 사랑이 인간의 가장 창의적인 생산물을 창조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과도하게 예민하거나 섹스에 긴장과 불안에 과도한 예민함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임신에서 어려움들을 경험하게 된다. 자궁은 인간 심리에 예민해서 심리적 불임이 40%로 알려져 있다. 신체적인 이상이 없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임신 후에 유산이 잦은 것은 부부 사이에 스트레스와 관계한다. 또한 불임의 부부가 출산을 포기하고 입양을 한 경우에 입양 후에 2년정도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요청한 한 부인의 경우에는 그녀가 온갖 방법으로 임신을 노력하다가 할 수 없이 입양을 했는데 2년 후에 자녀가 출생한 것이다 여기에서 입양한 자녀와 실제 자녀 사이에 심리적인 차이로 입양된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 때문에 상담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 부인은 실제로 입양아와 친아들 사이에 똑 같은 심리적인 차이가 없이 관계를 하려고 하는데 시어머니가 내 자식의 핏줄에 대한 차별을 함으로써 문제가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유사한 문제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몇몇이 있다.

부부의 자아의 기능 수준이 비슷한 건강한 부모의 자아의 비율이 25% 정도로 본다(Bowen, 1997). 그런데 어느 한쪽이 자아의 구분화 수준이 낮게 되면 불안하고 의존적인 배우자가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부부 관계가 의존적인 배우자가 자아 구분화 수준이 높은 배우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문제가 남편과 부인의 균등한 부부 관계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남편)와 딸(부인)과의 관계 혹은 어머니(부인)와 아들(남편)과의 역할 관계가 된다. 이러한 관계는 자녀들의 자아 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치료자의 부부의 홈페이지에 아들처럼 살고, 딸처럼 살고 있는 부부의 치료 사례들을 보라).

치료자에게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A부인의 아버지는 결혼 후에 자녀가 출생하면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을 직장을 포기했다. 아버지는 무능력해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다. 어머니가 경제적인 책임을 지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를 늘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괴롭혔다. 어머니에게 언어폭력으로 욕설을 하고 어머니는 남편과 감정적으로 이혼을 한 것으로 일체 반응행동을 하지 않았다. 3살 위의 언니와 A부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결혼 후에 12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에 그녀 자신의 부부 문제로 심리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두 번째감정의 표현의 유형이다. 결혼 이후에 남편과 부인은 부부싸움을 한다 그러나 말로써 서로의 갈등을 정당하게 표현을 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정신분석학에서 이것을 acting out이라고 부른다(Abt & Weisman, 1996: 주㈜: 참고).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는다. 심한 경우에는 1주일 혹은 2주일 동안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화가 나면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집어 던지거나 주먹을 휘두르거나 욕설을 한다(언어 폭력), 삐치면 눈맞추기를 피한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다. 두문불출한다(문을 잠그고 출입을 금지), 극단적인 경우는 가출한다.

이러한 감정의 표현 방식은 무의식적으로 자녀들이 배우게 된다. 치료 과정에서는 이것을 행동이 아닌 말로써 표현하게 한다. 28세의 청년으로 10년 동안 조현병으로 2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한 B씨가 지금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늘 부부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결국 부모님은 B씨가 17살에 이혼을 했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1주일 동안 말을 하지 않고 눈을 맞추지 않고 피한다고 했다. B씨 역시 아버지를 닮아서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되면 대인관계가 망가지게 된다.

세 번째로는 어머니의 불안의 정도가 어린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머니의 과도한 불안과 예민함을 유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머니가 너무 과도하게 주변환경에 예민하게 되면 너와나의 하나됨의 거울반사에 의해서 아기의 마음에 반사되어 아기가 예민하게 된다. 아기를 스트레스에 반응할 반응행동의 기재가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어머니가 흡수해서 긴장을 풀어주어야 한다. 어머니의 과도한 예민함과 긴장은 아기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어 아기를 외부적인 환경적인 스트레스를 몸으로 표현하게 된다 울음으로 아토피, 비염, 천식과 같은 질병으로 표현하게 된다. C양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과도하게 예민하다, 새로 전학 와서 동료들과 친밀관계를 만들 수가 없다 주변의 동료들의 반응에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행동을 한다, 그녀의 귀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게 되어 심리치료를 요청을 했다, 그녀가 5살 때 외할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C양은 얼굴에 안면이 뒤틀리고 입이 옆으로 돌아가아사병(입이 돌아가는 병)을 앓은 경험이 있었다.

네 번째로 부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은 부부 사이에 감정적 단절에 이어지게 되면 남편에 실망한 엄마가 자녀들과 과도하게 밀착해서 자녀들에게 나는 너희들만 보고 살고 있다. 너희들 때문에 이혼을 할 수가 없다, 너의 아버지에게 실망해서 희망이 없다 라는 식으로 남편을 비난하게 된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엄마와 밀착이 된다. 이러한 관계에서 자녀는 과도하게 엄마에게 밀착으로 엄마에게 의존하게 되면 자녀들의 자아 기능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35세의 나이로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3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닌 D씨가 치료를 요청했다. 그는 아버지가 장애인으로 지인의 소개로 어머니를 만난 이후에 어머니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자살 위협으로 결혼을 했다.

2명의 누나들이 태어나고 막내로 D씨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무기력해서 경제적인 능력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서 가족경제를 책임을 지게 되었다. 아버지를 술을 마시고 늘 이웃사람들과 시비로 싸움이 잦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이혼을 했다. 어머니는 나는 너의 아버지를 1%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실토를 했다. 아버지는 가정의 가장으로써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엄마와 가까운 아들을 어린시절부터 호통을 치고 처벌을 했다. 조그만 실수에도 노발대발했다. 아버지는 D씨가 대학 1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직장의 상사가 아버지처럼 경직되고 처벌적인 상사에 분노해서 3 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니고 있었다.

다섯 번째남편과 관계에서 실망한 어머니가 그녀의 불평과 불만족을 친밀한 친구들에게 호소하고 하소연을 해야 하는데 동료들과 친밀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면 자녀들에게 호소하게 된다. 그녀의 고통을 자녀에게 털어놓고 자녀의 위로를 구하려고 한다(부모가 자녀의 고민과 고통을 수용하고 흡수를 해야 하는데 거꾸로 된 것) 자녀들이 사춘기 시점에서 가족 밖으로 사회생활로 나가야 하는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가정 안에서 갇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이 부모님의 문제에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E군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대인관계 때문에 휴학계를 내고 3년 동안 대학 심리상담소에서 3년 동안 심리상담을 받고 있었지만 효고가 미미해서 치료자를 찾아왔다. 그는 아버지와 갈등에서 실망한 어머니가 아버지와 불평불만과 삶의 어려움들을 초등학교 4학년의 시점에서 그에게 호소를 했다.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에 휩쓸린 D군은 자신의 문제에다 어머니의 호소에 뒤엉켜서 두개의 짊을 짊어진 것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숨기고 동료들과 다른 자신의 단점을 감추기 위해서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하고 고립속에서 살아온 것이 분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영화 조커는 조현병 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내용을 그린 영화이다(우리나라에서 500만 관객동원). 조커의 엄마는 심각한 신경증으로 아들 조크가 이름난 유명인사의 아들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실제 그녀는 임신 시점에서 그 유명인사의 아들이라고 소문을 냈다가 소송을 당한 경력이 있었다.

조크는 그 사람의 아들로 인식되어 성인이 되어서 그를 찾아갔다고 망신을 당하게 된다. 병원의 기록에서 엄마의 정신과 기록을 보게 되었고 이후에 엄마가 정신적인 문제를 깨닫게 된다. 엄마는 친구들과 친밀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대신에 조크와 밀착으로 지내게 된다, 그러한 밀착 관계로 조크는 사춘기 시점에서 동료들과 친밀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조크는 학교생활에서 동료들과 제대로 친밀감을 형성할 수가 늘 외톨이로 혼자서 생활을 했다. 이후에 현실의 어려움을 상상으로 달래면서 상상 속에서 스스로 살인 사건들을 만들어내서 유명인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여섯 번째아버지의 과도한 좌지우지와 권위주의가 자녀들에게 처벌과 엄격함과 도덕주의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긴장 해소 대신에 오히려 거꾸로 긴장을 들어 올리게 만들 수 있다. 자녀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동료들과 갈등들 그리고 학업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에게 마음대로 하소연하고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긴장이 방출되고 휴식으로 에너지가 재충전이 되어야 한다. 학교나 직장에서 쌓인 긴장들은 집에서 가족 구성원들과 웃고 떠들고 장난침으로써 해소되어져서 재충전으로 다시 직장과 학교생활에서 에너지로 보충되어져야 몸과 마음이 긴장과 방출의 사이클로 순환하게 된다

그러나 학교, 직장에서 긴장과 불안과 스트레스가 집에 와서 부모님의 부부갈등이나 혹은 장난치고 웃고 떠들면서 방출이 차단되면 오히려 거꾸로 집에서 생활이 불안을 들어올리게 된다 특별히 게임에 빠진 자녀들은 게임 속에서 즐겁지만 뇌의 활동이 300배 빨라지면서 긴장이 풀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쌓이게 된다 이것이 오래 지속되면 신체적인 규제활동이 습관적이 되어서 몸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자체균형 유지가 익숙하게 되면서 치료실에서 대화로써 풀린 긴장이 치료실 밖으로 나가면 원위치로 되돌아가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내지 않으면 장기가 치료를 해도 별로 효과가 없다. 이것을 환자가 깨닫고 스스로 습관화 된 신체적 적응 기능을 바로 잡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 부인은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 불면증으로 새벽 4시에 잠이 들게 된다고 호소를 했다. 그녀는 치료실에서 그녀의 불평과 불만들 털어놓음으로써 치료 초반기에 긴장이 해소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치료가 1년으로 진입하면서 거꾸로 치료 효과가 사라졌다. 이러한 불평을 분석하면서 치료자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저녁 시간 때 10시 이후에 그녀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주로 재난사고와 자연재해 등 즉 홍수와 사고들을 즐긴다 라고 했다. 그것은 그녀가 과거에 신체적으로 습관화된 자체 규제 기능, 혹은 항상성 (homeostasis)때문에 치료실에서 긴장 해소가 습관화된 흥분의 자극 때문에 원위치로 되돌아간 것을 분석으로 밝혀내고 이것을 깨닫게 하고 수면준비 시간에는 자극적인 TV와 영화와 재미있는 책들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해결된 사례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과도하게 권위주의로 혹은 어머니가 결백증인 경우에 자녀들은 매사에 조심해야 하고 웃고 떠들고 마음대로 긴장의 방출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아니고 부부 사이에 지나친 냉전과 불화는 자녀들을 긴장하게 만들게 된다. F군은 대학 2학년 휴학생으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치료차를 찾아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F군은 아버지와 갈등에서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계급장을 떼고 일대 일로 이야기를 해 봅시다”라고 대화를 요청했다가 노발대발한 아버지로부터 뺨을 얻어맞았다고 호소를 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8살에 아버지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어머니는 재혼을 하지 않고 아들을 양육을 시켰다. 아버지가 결혼을 하면서 2명의 누나와 막내로 F군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어린시절에 아버지와 관계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사춘기 자녀들과 관계를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권위적이고 도덕적이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부인으로 하여금 평생을 아들만 보고 살아온 어머니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고 해서 부인이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면서 효도를 강요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좌절과 분노가 막내인 F군에게로 흘러간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과도하게 긴장과 불안의 항상성은 치료의 과정에서 자유롭게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내고 그리고 관계이 갈등들을 해결하고 친밀감을 만들어가는가? 를 배워야 한다.

일곱 번째는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부모님의 순종과 복종의 강압은 의사소통으로 자신의 표현이 억제되고 눈치 비위를 보게 만들게 된다. 어린시절부터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표현하도록 해서 어떤 이야기도 부모님 앞에서 마음 대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말로써 표현하는 능력이 향상되어져서 생각에 생각을 하는 은유적인, 추상적인 능력이 배양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프로이트의 신경증 환자들은 카우치에 누워서 자유연상 사용한다. 프로이트의 제자인 어네스트 심멜(Ernest Simmel)은 프로이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열증 환자(조현병)의 치료에 뛰어들어 개척자가 되었다. 그는 카우치 사용을 반대를 했다. 카우치의 사용은 신경증 환자들에게는 적당하다 그러나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는 부정당하는 것을 알고 마주보고 앉아서 대화를 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고안해낸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이다.

신경증 환자들은 은유와 추상적인 생각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 혹은 자신을 미행하고 도청한다고 생각하는 환청과 환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고로 그들이 카우치에 누워서 눈을 감으라고 하면 뒤에 앉아 있는 분석가, 치료사를 의심하고 자신의 몸을 훔쳐보거나 성폭행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된다. 고로 카우치보다는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대화를 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심멜은 나치의 박해로 미국에 이민을 와서 1930 년대 캔사스 시티에서 메닝거 클리닉에서 치료를 하다가 1940년에 L.A. 정신분석학교를 창설한 장본인이다 그의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하는 치료 기법이 뉴욕의 정신분석가들이 수용을 해서 유행을 하게 된 것이다(Stone, 1983: 주㈜: 참고).

F양은 대학 1학년 학생으로 환청이 들리는 조현병으로 아버지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어머니와 함께 치료자를 찾아와서 컨설팅을 받게 되었다. 치료 시작 때 치료자가 컨설팅 비용을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가 펄쩍 뛰었다. 치료자는 아버지와 통화해서 120분의 컨설팅 비용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치료자이 이야기를 듣고 컨설팅 지유용지불하고 부모님은 치료실 밖으로 나가고 F양과 분석 상담이 시작되었다. 치료자가 F양에게 어려움이 있을 것인데 어떤 것이 어려움인지?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F양이 환청이 들린다고 했다.

그 때 치료실 밖에서 어머니가 도어문을 노크를 했다. 치료자가 도어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가 선생님이 혼자서 상담치료를 하는가? 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딸과 선생님이 한 방에서 단 두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안심을 할 수 있는가? 성폭행이 일어날 수 있지 않는가? 라고 놀랬다. 어머니는 자신의 언니에게 상담자와 딸이 단 둘이서 방안에 120분간을 있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는가? 라고 말을 할 때 전화 속에서 언니가 믿을 수 없다 라는 대답을 듣고 아연실색을 했다. 치료자는 지금 오전 12시로 낮이고(12시 - 2시까지) 치료자는 대학의 교수로써 안심하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대학교수도 믿을 수 없다는 말에 컨설팅 비용을 돌려주고 컨설팅은 중단되었다. 부모의 불신이 딸의 조현병으로 연결된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소통의 불통이 드러난 것이었다.

최근에 프로이트가 시작한 정신분석학에서 핵심 기법인 자유연상의 기법들은 언어적인 표현에 어려움이 없는 신경증 환자들에게 적당하지만 정신증 환자들 즉 정신분열증(조현병, 편집증, 조울증)과 심각한 성격장애자들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어의 사용이 콘크리트하고 추상적인 생각들 생각에 생각을 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은유적인 사용의 능력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로써 자유연상을 할 수가 없다(프로이트를 이것을 전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치료에서 배제) 고로 그러한 환자들을 위해서 대화를 이끌어내도록 언어 훈련이 필요하다.

G군은 고교 1학년 때 부모님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미국 유학을 갔다. 그는 4년간 미국 생활에서 고교 졸업을 할 수가 없었다. 환청으로 결국은 귀국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병원에서 입원 치료 후에 10년 동안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홈 페이지를 본 아버지에 위해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치료 회기 시간에 G군은 치료자의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묻는 질문에 몇 마디 대답이 전부였다.

6개월의 치료 과정에서 그에게 대화를 하도록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대화 훈련이 시작되었다.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가? 라는 질문에 기억이 아니 않습니다. 지하철을 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를 해 보세요 라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는 대답이 고작이었다. 6개월이 치료 과정은 대화를 하도록 시도를 하고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이었다.

그는 40시간의 치료 회기에서 어린시절인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의 가르침에서 회초리로 매를 맞아서 팔에 멍이 들어 학교에 가서 동료들로부터 왜 팔이 멍이 들었는가? 라는 질문에 어머니로부터 매를 맞았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거짓말로 넘어져서 다쳤다 라는 기억을 회복할 수 있었다. 고교 1학년때 미국유학 열풍에 동료들과 어려운 관계 때문에 친밀관계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80%의 부모님의 강압과 20%의 자의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 학교에서 30명의 한국 유학생과 단절하고 혼자서 고립속에서 생활한 것이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또 한가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핵심인 빈스크린의 기법(Blank Screen)은 환자의 상상과 생각과 느낌이 비치게 해서 분석가의 생각과 느낌이 혼합되어 지지 않아야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다른 주장으로 분석가들은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고 최대한 환자의 느낌과 상상과 지각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치료 기법들은 정신증 환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보고서들로써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정신증 환자들은 구두어 표현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눈치 비위에 천재적인 사람으로 주로 비구두어로 다른 사람들과 눈치를 보고 비구두어로 비위를 맞추는데 눈치가 100단인 사람들로 예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분석가, 치료사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그들의 약점을 찍어내는데 귀신 같은 사람이다 고로 분석가와 치료사들의 약점을 자극해서 화를 도발하는데 천재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도발에 화를 내지 않고 참아야 한다는 신경증 치료는 반전이에 걸려들어가게 된다. 여기에서 1950년에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폴라 헤이만(Paula Heiman)에 의해서 등장한 반전이(countertransference)이다.

반전이의 연구에서 분석가, 치료사는 환자와 의사 소통에서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감정을 말로써 분노, , 짜증을 표현하는 쪽으로 흘러가면서 빈공간의 스크린 기법을 포기하게 된다. 정신증 환자는 분석가가 감정을 숨기지 말고 표현을 하라고 하면서 정작 분석가 자신은 환자 자신이 도발한 감정을 참고 억압하고 있다모순을 보면서 분노하게 된다는 것을 분석가들이 알고 감정에 스스로 정직해야 환자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된다는 치료의 가장 큰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하는 새로운 치료의 기법을 고안해서 장애물을 뚫고 나가는 방법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Stern, 1997, Bromberg, 1998: 주㈜: 참고).

치료실에서 치료사, 분석가는 너와나의 하나된 몸과 마음의 상황에서 편안하고 서로가 불편함이 없는 껄끄러움이 없는 안정된 편안한 마음이 환자에게 전달되어 불편함이 없는 편안한 마음의 상황에서 서로 긴장이 없고 편안한 마음의 상황에서 마음대로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상상을 이야기를 하도록 해야 한다(Kohut,1971,1984: 주㈜: 참고). 어떤 말로 어떤 생각과 상상도 표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웃고 떠들고 마음대로 생각을 표현하도록 해서 긴장이 해소되고 말을 하는 동안에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다 라는 대화의 패턴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덟 번째는 현대적인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친구가 되고 안내자가 되고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여러 개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도하게 권위주의 도덕적인 아버지는 자녀들이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무시한다 아버지를 비판한다 자녀들의 말과 행동을 꼬투리를 잡아서 처벌하게 된다.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자녀들에게 존경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겉으로는 존경을 표현을 할지 몰라도 자녀들은 내면으로 아버지를 무시하고 경멸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진실된 존경은 마음 속에서 우르르 나오는 존경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마음대로 장난을 칠 수 있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때 아버지. 어머니를 존경하게 되고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부모님 앞에서 마음대로 분노와 짜증 화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대화 속에서 긴장이 방출되고 불안과 스트레스가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실존주의 정신분석가인 롤로 메이(Roro May)의 명언으로 부드럽게 장난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친밀감에 놀라지 않는 사람, 권위주의 적인 사람 앞에서 싫어하는 것에 No라고 말을 할 수 있을 때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일어설 수 있을 때 통합과 내면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라고 말을 했다.

아홉 번째로 부모님이 지나치게 자녀들을 도덕과 규칙에 따르도록 즉 착한 자녀가 되도록 정직과 착한 행동을 강요하면 정형화된 자녀가 되기 쉽다. 정직과 착함이 나쁜 것은 아니고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유연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마음대로 표현하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대로 나누어야 건강한 마음이다 지나치게 도덕과 규칙과 정직함을 강요하게 되면 긴장하고 말과 행동을 마음 속에서 걸러서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긴장을 달고 다니게 되면서 긴장과 불안이 해소에 장애물이 된다.

35세의 회사원인 H씨는 어머니가 3살 때 산사태도 온 동네가 묻히면서 부모님을 잃고 고아원에서 성장해서 17살에 독립해서 사회생활에서 취업으로 살아오다가 결혼을 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어린시절에 고아원에서 정해진 룰과 규칙과 도덕에 부응해서 순종적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린시절에 부모의 양육을 박탈당했다 고로 어떻게 자녀를 양육을 하는지를 몰랐다 그녀의 성장의 경험으로 H군을 양육을 할 때 도덕과 규칙에 벗어나지 않는 착한 어린이로 성장을 하도록 했다.

H군은 정직하고 착하고 그리고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지원을 해주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H군으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 지나치게 규범적으로 모범적이로 정직한 착한 사람으로 부모님과 가족구성원(2명의 누나)들로부터 착한 모범생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유연하지 못하고 늘 경직된 태도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영감(할아버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신체적으로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에 직장생활에서 상사들로부터 상대하기 어렵다 라는 불평을 많이 들었다고 호소를 했다. 치료실에서 자유롭게 유머 혹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가능하다 라는 인간관계의 편안함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열 번째로 프로이트가 남긴 가장 위대한 공헌전이(transference)이다. 전이는 부모님과 관계가 치료 회기 동안에 분석가, 치료사와 관계에서 재연되는 것을 말한다(Racker)의 일치 동일시와 보상동일시를 보라)(Obrach, 2000: 주㈜: 참고).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 전이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전이는 그 환자의 대인관계의 패턴이다. 부모님과 그 환자의 관계의 패턴이 친밀한 장기적인 관계 안에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관계의 패턴을 찾아내서 깨닫게 하고 수정하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관계의 패턴의 영향력은 그 환자의 부모로부터 그리고 조부모로부터 대물림 대는 경우도 있다. 고로 3대 분석이 필요하다. 부모님의 문제는 그 부모님이 어린시절에 그들이 그들의 부모님(환자의 조부모)의 대인관계 패턴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다. 아버지의 친부모와 관계 그리고 어머니의 친부모와 관계에서 부모님들의 관계의 패턴의 분석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계의 분석이 치료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치료자 한데서 1년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J씨는 35세의 회사원으로 부인과 결혼에서 3살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5년년전부터 심각한 공황장애호흡곤란과 갑작스러운 심장박동, 심장급발진으로 심장마비, 현기증 그리고 메스꺼움 때문에 여러 명의 정신과의사들의 약물 치료, 한의사의 치료, 그리고 최면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전무(全無)해서 인터넷을 보고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의 분석 과정에서 그는 4명의 아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아들로 법대를 졸업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결혼 후에 장모님의 아버지의 사망으로 장례식에 참석해서 옆방에 시신이 누워(옛날에는 가정에서 장례절차를 했다)있는 방에서 잠을 잔 이후에 죽음에 대한 공포증으로 공황장애가 등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심장마비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유서를 작성해 두었다고 실토를 했다. 한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고 기억이 나지 는다고 호소를 했다.

어린시절의 분석에서 결정적인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할아버지가 암으로 고통속에서 2년동간 죽어갈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손자를 할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도록 해서 할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할아버지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수 없는 무기력함에서 스스로 기도를 하면서 모든 고통을 내가 대신 짊어지도록 해 달라할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동일시로 스스로 몸으로 공감으로 동일시를 한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시골에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불치병에 진통제를 주사해서 고통을 들어주도록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2년 동안 방치한 것에서 그리고 할머니는 남편 옆에서 자신이 남편의 고통을 들어주거나 위로를 해주지 않고 손자가 대신하도록 한 것에 대한 할머니에 대한 분노와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에 대한 고통을 분석으로 밝혀내면서 그가 받는 분노와 죽음에 대한 공포의 억압들을 풀어 내면서 J씨는 공황장애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추적 연구에서 2년 후에 더 이상 공황장애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 보자,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는 3세 -5세의 엄마, 아빠, 자녀의 심각관계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감정의 분화들과 생각과 사고의 확대 재생산으로 친밀감과 갈등들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에서는 오디프스 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급변하는 과학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인 복잡성으로 대인관계의 어려움들이 심리치료의 핵심으로 등장하면서 부모님의 행동들이 자녀들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쳐서 자녀들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분석해서 자아 결함을 수정하고 자아이 발달이 중지된 시점을 찾아내서 발달을 재개시키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영국의 세계적인 정신분석가인 위니코트(Winnicott)는 그의 스승인 제 1세대 분석가인 독일어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한 제임스 스트라취(James Strachey)에게 11년 동안 개인분석을 받고 나서 다시 3년 동안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에게 개인분석 그리고 영국의 첫 여성분석가인 조안 리비에(Joan Riviere)에게 개인 분석을 받는 소아과 의사로써 분석가들 중에서 가장 많이 개인분석을 받아서 정신분석의 대가가 된 사람이다.

그가 신조어로 만든 유명한 용어들 즉 안아기기 환경(holding environment), 대리 대상(transitional object)(엄마를 대신하는 물건으로 자아의 달램), 충분히 좋은 양육(good enough mothering), 참 자아(true self)와 거짓 자아(false self)등의 용어들 그리고 외과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비용(Bion)의 포용, 컨테이너(containment)는 엄마가 유아에게 소화 가능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제공해야 한다. 엄마는 아기의 충격과 불안을 흡수해주어야 한다 라는 유명한 신조어들은 엄마와 아기의 양육환경이 치료이 초점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엄마와 아기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양육환경으로 가족치료가 등장하게 된 것을 감안하면 0세-5세까지의 양육의 과정이 한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치료의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부모와 자녀의 상호작용의 분석으로 치료가 흘러가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아래의 3개의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 사례를 소개한 것은 위와 같은 어린시절에 부모와 자녀의 갈등들이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부모가 자녀 사이에 어떤 어려움들이 자녀들의 조현병(정신분열증)에 공헌했는가? 를 주의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 바란다.

 

첫 번째 사례: 25년 전에(1997) 30대 초반의 O군은 치료자에게 환각 때문에 1년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아서 약물복용이 없이 환각이 깨끗하게 사라진 치료 사례이다.

 

앞 동의 중년부인과 그녀의 딸은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망상, 환각)이었다. 그의 분석 과정에서 환각의 등장은 사춘기의 등장으로 섹스의 욕구(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정보가 차단)에 깜짝 놀래서 자아가 살아남기 위한 보호로써 중년의 여성(어머니의 상징)와 16세의 딸(O군의 이성에 관심)을 등장시켜서 다른 사람이 나를 유혹하기 때문에 나의 섹스 욕구의 등장은 내 잘못이 아니고,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 증거로써 그가 몽정을 했을 때 그의 팬티를 벗어서 세탁기 속에 넣은 것을 어머니가 그의 팬티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에 기절초풍해서 이후에 그는 몽정을 해도 팬티를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입고 다녔다(초반기에 그는 자위행위를 하는 것을 몰랐다) 실토를 했다.

어머니는 컨설팅에서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림을 그렸을 때 페니스가 엄청나게 큰 소년을 그린 그림을 회상을 했다. 그의 섹스와 욕구와 이성에 관심은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2명의 동료들이 O군이 벙어리다 아니다 라는 시비를 하는 것에서 쓴 웃음을 지었다고 토로했다. 역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말을 하지 않으면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겠다 라고 이야기를 한 것에서 그는 동료들과 가족 구성원들과 관계에서 말이 없었다. 특별히 가족구성원들과 관계에서 대화가 없고 눈인사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와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포기했다고 그녀 스스로 밝혔다.

 

앞 동의 중년 부인이 성적으로 나를 유혹한다

대상: 30대 초반의 미혼의 젊은이 O군은

증세: O군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바로 앞 동에 사는 중년의 부인이 20대 초반의 자신의 딸과 함께 O군의 아파트를 내려다보고 성적으로 유혹한다

진단: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진단되어 한 달 가량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음

연결: O군이 정신과의 약물 치료 한가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어머니가 치료자의 홈페이지에서 주소를 확인해서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해 왔음

치료 기간: 치료 시간 때문에 첫 1달가량은 1주일에 1회로 2시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다가 2달 째부터 1주일에 3회로 1회에 2시간씩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4개월째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점차로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수면 혼란으로 밤에 잠을 깨면 쉽게 잠들지 못해서 고통스러워 했는데 수면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이 되었고 점차로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찾아가고 있음

 

치료의 과정

O군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바로 앞 동에 살고 있는 40대 중반의 중년 부인이 20대 초반의 자신의 딸과 함께 자주 O군의 아파트를 내려다 보고 성적으로 유혹을 해서 O군을 괴롭힌다고 분개했다. O군 자신이 그 부인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까 긴장되고 예민해져서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 부인이 딸과 함께 O군의 아파트를 내려 다 보기 시작했느냐 는 치료자의 물음에 O군은 약 1년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O군은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당한다고 분개해서 그 부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몰래 가서 아파트 도어 문에다 "화냥년의 소굴, 우리는 걸레이다. 젊은 남자들은 어서 오세요"라고 붉은 매직 글씨로 크게 욕설을 낙서로 써 놓은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되자 O군은 그 부인의 아파트의 도어 문에 붙어있는 마이크로 폰에 라이타로 불을 붙이려고 시도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불이 붙지 않아서 화재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O군은 그 이외에도 부인의 아파트에 가서 초인종을 몇 번이나 눌러서 분노를 표현하였으나 직접 부인을 대면한 적은 없다고 했다. 1년 동안 계속해서 시달리면서 지내다가 5개월 전에 그 부인의 아파트에 또 다시 라이타로 마이크로 폰에 불을 붙이려고 하다가 바로 이웃에 사는 주민에게 발각이 되었 붙잡히게 되었고 경찰에 연행되어 구치소에 수감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O군의 부모님이 피해자의 집에 가서 사죄하고 손해를 변상한 후에 O군을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킨 것이었다.  1달가량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약물로 치료를 받아 마음이 안정이 된 후에 퇴원을 해서 8명으로 구성된 집단 치료 프로그램에 1주일에 2회씩 1회에 5시간씩 진행되는 그룹 상담 프로그램에 다니다가 O군의 어머니가 그룹 치료 프로그램이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는 너무 형식적이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고 또 정신과의 약물치료 만으로는 O군의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알 게 되었고 전화로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해 오게 된 것이었다.

O군과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자는 O군이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을 해서 대화를 하는데 문제가 심각함을 느끼게 되었다. O군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기억나는 일들을 이야기해 보자고 했을 때 O군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화 기술에 심각한 결함이 있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 듣고 이해는 잘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연결해서 상대에게 명료하게 전달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신분열증이라는 장애의 특징이 생각이나 상상의 연결이 쪼개진 즉 끊어져서 연결이 안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의 욕구를 어느 정도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데 O군은 자신의 욕구 자체를 표현하지를 못했다. O군의 이러한 대화 결함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온 것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O군은 유치원 때부터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초등학교 3학년 때쯤에 학급 동료 두 명이 한 학생은 O군이 말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학생은 O군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회상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자 담임 선생님이 O군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겠다고 한 것을 기억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느냐? 는 치료자의 질문에 O군은 선생님이 O군에게 거짓으로 강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걱정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2 3일의 사회성 훈련 캠프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준 적이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3개월 동안 스피치 훈련 즉 언어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었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O군이 말을 잘 하지 않는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온 문제임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O군은 로또 복권이 시작되면서 약 4년 동안 주일 마다 복권을 한 장씩 사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계속해 왔음이 밝혀졌다. O군이 병원에 입원한 후에 어머니가 O군의 책상을 정리하다가 O군의 책상 위에 로또 복권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금액으로 계산해보니 약 150만원이나 되었다고 했다. 치료 과정에서 치료자가 O군에게 복권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복권에 당첨된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O군은 1만원 짜리가 몇 번 당첨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복권에 당첨되면 얼마 짜리가 되었으면 하고 소망하느냐는 질문에 5천만원 짜리에 당선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복권에 당첨되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 는 물음에 O군은 컴퓨터를 한 대 사고 싶다고 다음에는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이 좋지 않아서 안경을 하나 사고 싶다고 했다. O군이 매주 마다 복권을 한 개씩 산 것은 복권에 당첨되고 싶다는 것보다 O군의 취미생활이었음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O군은 집에서 자신의 방 안에 갇혀 지내면서 유일하게 1주일에 한번씩 외출해서 복권을 구입해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그 복권이 당첨되었는가?를 체크해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정신병원에 입원 후에 어머니가 노발대발해서 절대로 앞으로 복권을 사지 말라고 경고를 했으나 퇴원 후에 몇 장을 산 것이 발각되어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에게 당분간 복권 사는 것을 그대로 못 본체 해달라고 했다. O군이 다른 취미 생활을 가질 때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취미를 없애 버리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이해시켰다.

O군은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표현해 본 적이 없었다. 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에 흥미를 느끼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3대의 컴퓨터를 샀지만 O군은 컴퓨터를 한 대로 사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동생이 명문 대학 법대에 합격해서 집을 떠난 후에 동생이 쓰던 그 컴퓨터를 O군이 지금까지 13년 동안이나 사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겨우 그 컴퓨터를 O이 컴퓨터 책을 보고 업 그레이드 시켜서 전자 오락 게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치료자가 O군에게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당장 컴퓨터를 사 달라고 이야기를 해 보자고 했을 때 O군은 자신은 컴퓨터가 필요 없다고 했다. 이후에 치료자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와 동생이 컴퓨터를 사주려고 했을 때 O군은 자신은 지금의 컴퓨터로 충분하다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컴퓨터를 가지고 싶다고 몇 번이나 자신의 소망을 치료자에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O군은 정작 부모님이 물었을 때는 부모님의 눈치만 보고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정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론적 근거

치료자는 O군의 핵심 문제가 "중년 부인이 성적으로 유혹을 한다"는 섹스 문제로 보지 않았다. 섹스 문제는 증세일 뿐이고 핵심 문제는 대인관계가 안되어 혼자서 고립되어 외톨이로 방 안에 갇힌 문제로 보았다. 물론 O군은 그 문제의 중년 부인을 한번도 밖에서 본 적이 없으며 그 부인의 딸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직접 만나서 대면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앞 동의 아파트에서 내려 다 보는 중년 부인과 그 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O군은 부인은 나이가 40대 중반으로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딸도 얼굴이 엄마와 닮았다고 했다. 실제로 앞 동의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의 얼굴은 O군이 말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묘사되어질 수 없다.

O군은 에로틱 망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료자는 O군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로써 표현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상상을 자유스럽게 대화로 표현할 수 있게 될 때 자신의 내면 상상을 다룰 수가 있기 때문이다. O군은 겨우 묻는 말에서 몇 마디 대답을 하는 정도여서 대화로 자신의 상상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O군은 친구가 한사람도 없었다. , , 고등학교, 전문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립되어 혼자서 생활해 왔고 관계를 해도 상대의 눈치만 보고 분위기를 파악해서 대응해 온 것이었다. 전투 경찰로 군복무를 했고 2년째 전문대학에 복학해서 졸업은 했으나 이후에 2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3년 전부터 집 안에 틀어박혀서 두문불출하고 컴퓨터 오락 게임을 하루 종일 하면서 3년 동안 자신의 방 안에서 고립되어 버린 것이 분석되어졌다.

집에서 가족 구성원들과 이야기가 아예 없었다. 외출해서 집에 돌아와서 현관에 초인종을 눌리면 어머니가 나와서 문을 열어줄 때도 서로 눈맞추기나 인사가 없고 그냥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을 O군의 이야기를 분석함으로써 알 게 되었다. 치료자는 어머니를 두 번이나 면담 요청을 했고 어린 시절부터 O군의 문제점과 양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O군에게 몇 마디를 물어도 일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10여년이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O군이 치료자와 분석 상담을 마치고 집에 오면 20분이나 30분 정도 어떤 내용을 이야기했는지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치료자의 조언에 어머니는 한번 시도를 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고 했다.

O군에게 왜 어머니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와는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O군의 동생을 편애한 사실을 시인하였다. O군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보다 덩치가 큰 동생에게 항상 짓눌리고 시달리며 살아왔다고 했다. 지난 명절 때는 대학생으로 자치를 하고 있는 동생이 모처럼 1년 만에 집에 왔는 대도 서로 한 마디도 이야기가 없었다고 했다. 동생은 O군보다 10cm나 키가 크고 덩치로 월등히 컸다. 3살-4살 때 O군이 마당에서 놀다가 동생의 머리를 벽돌로 찍어서 피가 쏟아지는 동생을 어머니가 병원으로 안고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했다.

어머니는 O군이 어린 시절부터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물어보거나 미주알고주알 상세하게 있었던 일을 별로 물어보지 않았음이 분석되어졌다. 자극을 주지 않아서 대화를 하는 기술과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회상하고 정리하는 기술에 결함을 초래하여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 O군의 가장 큰 핵심 문제였다.

 

치료 결과

O군은 약물을 복용하면서 앞으로 수년간의 장기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치료 4개월 때에 지금까지 O군이 몇 년 동안 고통을 받아온 수면 혼란이 깨끗하게 해결되었다는 점이었다. 퇴원해서 늘 고통속에 시달려왔던 수면 문제가 해결된 것을 O군이 기뻐했다. 밤 중에 자고 일어나면 다시 잠들기 어렵고 각종 불안에 시달려왔음을 늘 이야기해 왔다. 이 문제 때문에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수면제 약물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이제 O군은 수면제 약물을 제외시켜 달라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요청을 했다. O군은 치료자의 끊임없는 대화 시도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고 있음이 눈에 띄었다. 어느날 O군이 치료 세트 장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으면서 치료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선생님 조금 전에 어떤 부인이 선생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부인이 선생님의 사모님 같았습니다."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치료자가 깜짝 놀랐다.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었다.

치료 초반기 보다는 O군은 자신의 표현이 쉽게 술술 입에서 나오는 것에 즐거워했다. 과거의 회상도 좋아져가고 있다. 정신분열증은 생각이나 느낌이 분열되어 쪼개져 있는 것이 특징이어서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이것을 통합하는데 치료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O군은 계속해서 치료자 한데서 치료를 받아서 치료가 1년을 넘어갈 무렵에는 치료 3개월 정도에서 그가 복용하던 약물을 끊어 버린 이후에 지속적으로 보이는 환각이 사라졌다. O군의 치료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두 번째 사례: 12년 전(2009)에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3년 동안 시달리다가 인터넷으로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치료 사례를 읽어보고 치료를 요청한 24세의 여성으로 6개월 치료 계약을 위반했다가 치료에 실패한 사례이다.

부모님은 아버지의 외도사건 이후에 서로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저녁 11, 12가 되어야 귀가를 했다. C양이 3살어린 남동생을 보살피고 양육을 한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집을 방문했을 때 손자손녀를 보고 통곡한 것을 회상을 했다(그것을 본 조부모가 양육을 도와주지 못한 것은 아쉬움). 사소한 조그만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세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신체적 한계점을 넘어가서 과도한 긴장속에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자해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선생님 안락사 할 수 있는 약물을 주세요

대상: 24세의 대학 휴학생 C

증세: 3년동안 정신 병원에 드나들고 있었음

연결: 인터넷의 정신분열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신분열증의 치료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난 후에 치료자에게 전화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음

치료 기간: 1주일에 4회로 1회에 2시간씩 1주일 동안 심리분석 치료를 받았음

치료 결과: 1주일 치료 후에 치료자에게 분노하여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음. 치료 실패 사례임

 

치료의 과정

치료 접촉: C양은 전화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치료 비용과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후에 C양은 자신은 돈이 없어서 6개월 계약을 3개월로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심리치료에서는 최소 기간이 6개월이라고 이야기를 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치료자는 심리치료에서 3개월 동안의 치료는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적어도 5개월-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야 치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치료 계약을 6개월로 한다고 설명을 했다. 그러나 C양이 자신은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싶은데 먼저 3개월로 계약을 하고 그 후에 다시 계속해서 치료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 라는 보챔 때문에 일단 치료를 시작해보자고 허락을 했다.

C양은 약속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 치료실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심리치료가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C양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졸라서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C양이 정신분열증으로 3년동안 시달리면서 정신병원에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다고 소개를 했다.

치료자는 처음에 C양이 정신분열증 인줄 몰랐기 때문에 보통 6개월의 치료 계약 기간을 3개월로 하기로 했으나 정신분열증이면 3개월로는 효과가 없으니 6개월로 해야 한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딸인 C양과 함께 막무가내로 졸랐다.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 비용을 마련해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정신분열증이면 1주일에 1회로는 다음 1주일 동안 참기 어렵다고 했으나 아버지와 딸의 요청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3개월 동안에 1주일에 1회로 치료 계약서를 작성했다.

치료 제 1회기(Session 1): 치료자는 C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지 좋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라고 했다. 순서는 관계없이 논리적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C양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지금은 재활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재활 치료가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보라고 했더니 약 34명의 환자들이 모여서 첫 시간에는 서로 아무나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고 그 다음 시간에는 강의실에 모여서 치료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대인관계 기술에 대해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곳에 다니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3개월 정도 되었고 하루에 6시간 정도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아침 10시에 가서 오후 4시까지 모여서 같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C양에게 어떤 문제가 제일 힘이 드느냐는 치료자의 물음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린시절의 성장 과정: C양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이 나는 것은 엄마가 유흥업소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엄마는 새벽 1-2시 경에 집에 들어왔으며 아버지는 집에 늘 들어오지 않았고 아버지가 바람(외도)을 피운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도 바람을 피운적이 있고 지금도 부모님은 서로 말을 잘 하지 않고 지내며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2살 아래인 남동생을 C양이 늘 보살펴주었으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남동생과 C양이 늘 같이 붙여다녔고 집에 같이 있었던 기억 박에 없다고 했다. 남동생에게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돌보아주었으나 남동생에게 화풀이를 하고 언제나 남동생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C양 자신이 남동생에게 권위적이고 위압적이고 처벌적이었고 남동생이 고등학교 학생이 되면서 남동생의 신체가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커지게 되고 힘이 C양보다도 강하게 되면서 남동생이 이래라 저래라하는 C양의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남동생과 힘겨루기가 시작되었고 남동생을 자신의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남동생에게 화풀이를 해왔다고 했다.

남동생이 한번은 자살하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동료들과 관계가 늘 좋지 않아서 따돌림 비슷하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고 집에서는 남동생과 신경전 때문에 늘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했다. 남동생은 1년 전에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권유로 둘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남동생이 군 입대 직전에 화해를 하라는 부모님의 명령으로 진심이 아닌 피상적으로 작은 소리로 화해를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에 늘 집안에는 남동생과 자신 두 사람만이 웅크리고 부모님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집에 와서 C양과 남동생이 둘이서 있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과거에 공무원으로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엄마와 함께 아버지가 근무하는 관청의 정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기억이 있고 한번은 아버지가 가구와 집기 등의 살림을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하다가 그 살림들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C양은 대학 1학년 때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살림을 돕다가 알바를 하게 되었고 그 때 편의점에서 1달 동안 일을 할 때 편의점 주인에게 일을 야무지게 잘 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많이 받게 된 것에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후에 어머니와 함께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3개월 정도 하게 되었고 그 때 어머니와 의사 소통이 잘 되었고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와 의사 소통이 잘 안되어 엄마와 대화를 기피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 제 2회기 (Session 2): 1주일에 1회씩 2시간 치료 시간을 약속하고 갔으나 그 다음날에 1주일에 2회로 늘리고 싶다고 다음날에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전화 연락이 왔다. 치료자는 시간을 정해서 좋다고 허락을 했다. 치료 시간에 올 때마다 아버지가 함께 동행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왜 혼자 올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C양은 불안해서 혼자 다닐 수가 없고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동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불안으로 인한 공황 장애가 분명했다.

C양은 재활 치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치료자에게 오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약 30분 빨리 오게 되었고 치료자는 C양을 치료실로 안내해서 인터넷으로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하고 있으니 5분 정도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으나 치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불안해서 미치겠습니다. 저에게 안락사 할 수 있는 약을 주세요."라고 치료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끝없이 위의 말을 반복했다.

치료자는 컴퓨터를 끄고 C양을 치료실에 데리고 와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C양은 오늘 재활 치료 시간에 34명의 환자들 가운데 아무나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40대 중반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저씨가 "나하고 결혼할래" "나하고 사귀어 볼래?"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 감정 때문에 불안 속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불안하면 견디기가 힘들고 심하게 불안이 오면 손 바닥으로 팔을 내리치고 머리를 벽에다 대고 방방 박거나 딩군다고 했다. 지금 이대로는 집에 가면 또 불안에 휩싸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저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불안 때문에 집에 갈 수 없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C양의 불안이 극도에 달해서 긴장감이 한계선에 도발해서 참을 수 없어 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최근에 극도의 불안 때문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면 불안이 감소된다고 C양을 위로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라고 격려를 했다. C양은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집에 가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C양은 데리고 인근에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C양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면서 잔소리를 했고 불쾌했다고 했다. 할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하루 밤을 자게 되었는데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불안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날밤을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 집에 와서 손목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다 찧고 몸을 딩굴고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불안이 조금 감소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C양의 손목에는 멍든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전에 비슷한 이벤트가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C양은 2주일 전에 사촌 언니가 C양에게 시내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외출을 하자고 해서 따라 나갔다고 불안이 오는 것 같아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고 사촌 언니를 보내고 극도의 불안 상태에서 딩굴고 머리를 찧고 손목을 때리고 했다고 했다. 심하면 구토가 나오고 위가 쓰리고 소변이 잦아진다고 했다.

또 재활 치료 1달쯤에 같이 치료를 받고 있던 어떤 언니와 대화 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그 언니가 C양의 등을 때리고 도망을 가는 바람에 분노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불안이 엄습해서 다른 환자들은 모두 강당에서 대인관계 기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는데 C양은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를 걸어다니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다가 정신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했다.

정신병원에서 1주일간 입원한 후에 퇴원한 후에 지금까지 2개월 동안 재활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C양은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으나 집에 돌아가면 그 불안이 두려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치료자에게 어떤 마술적인 방법을 요구했다. 치료자는 C양이 대인관계가 안되기 때문에 친척이나 동료들을 만나면 긴장하게 되고 그 긴장이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가면 극도의 불안에 휩싸여 몸을 딩굴거나 손목을 때리거나 머리를 방방 찧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극도로 불안에 휩싸이게 되면 C양은 부모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안락사 시켜주세요. 안락사하는 약물을 주세요."라며 부모님에게 보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C양이 위기 시에 되풀이하는 행동 패턴임을 알 게 되었다.

C양은 몇 년 전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런 패턴이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사소한 일에도 이런 패턴이 연속되어 1주일에 한번 두 번 정도로 늘어났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치료자는 C양에게 불안에 대한 응급 처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긴장 이완 훈련을 30분 동안 하기로 하고 눈을 감고 긴장을 풀고 팔과 다리를 펴고 호흡을 천천히 들어쉬면서 마음 속에 잔잔한 호수만 생각하게 하였다.  30분 후에 C양은 긴장이 풀리고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 훈련을 하면서 치료자는 C양에게 "손님은 긴장이 되면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긴장이 되면 손목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다 방방 거리며 찧고 몸을 딩구는 행동은 긴장을 증폭시키는 행동입니다. 긴장이 되면 온 몸이 극도로 근육에 힘이 들어가서 참을 수 없게 됩니다. 고로 호흡을 천천히 하고 몸에 긴장을 빼고 호수를 생각하면서 조용히 앉아서 긴장 이완 훈련을 해 보세요. 오늘부터 매일 같이 치료가 끝나는 시간 30분 전에 이 긴장 이완 훈련을 할 것입니다.

극도의 긴장 때문에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므로 생리적으로 긴장이 되면 소화가 안되고 구토가 나오고 소변이 잦아집니다. 긴장을 이완하게 되면 극도의 불안은 찾아오지 못하게 됩니다."라고 호흡에 맞추어서 조용히 일러주었다. 치료자는 C양에게 그 다음날에 시간을 내어 줄 터이니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극도의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응급 초치가 시급함 때문이었다.

치료 제 3회기 (Session 3): 다음 날 치료 시간에 C양은 어머니와 함께 왔다고 했다. 어머니를 치료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C양과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C양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다. C양은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3년 전에 인터넷 채팅으로 어느 오빠를 알 게 되면서 그 오빠와 만나서 여관에 가서 성관계를 하게 되었고 그 오빠에게 자신의 문제점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완전히 자신의 성격과는 다른 사람의 흉내를 냈다고 했다. 어떻게 흉내를 냈느냐고 물었을 때 성격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려고 하고 자신의 대인관계 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애교를 떨고 그 오빠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고 했다.

그 오빠가 군에 입대해서 서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지내다가 휴가를 왔을 때 만나서 3회에 걸쳐서 성관계를 했고 그 때 오빠가 옷을 선물로 사주겠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사 주겠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오빠가 돈을 쓰면 돈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오빠를 배려해서 돈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말로써 상세하게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오빠를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으나 오빠는 그 후에는 연락이 없었고 그 오빠와의 관계는 끝이났다고 했다.

C양은 그 이후에 자신의 자아를 바꾸려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했다. 방의 벽에 낙서를 하기도 하고 귀신이 C양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실제로 귀신이 눈에 보였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귀신이 천장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상상이 들었다고 했다. 환청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귀신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서 미칠지경이었다고 했다.

칼로 베개를 찌르고 방의 벽에 낙서를 하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인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 후에 몇 번의 정신병원을 드나들 게 되었으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님이 깨닫게 되었고 XX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에 갔더니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C양은 환청이나 환각을 없고 지금은 약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 대인관계 훈련을 받드시 받아서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고 XX 동에 있는 재활 센터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C양은 재활 치료에 거부감을 많이 느끼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게 되었으나 부모님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재활 센터에 나가야 한다고 매일 같이 그곳까지 데려 다 준다고 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C양의 정보를 분석해본 결과 재활 치료가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인관계를 하는 기술을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냥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라는 것은 마치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물에 풍덩 집어던져 넣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설명을 했다.

먼저 수영을 하는 방법을 알 게 한 다음에 물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순서임을 강조하면서 대인관계가 되지 않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강제로 관계를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C양은 더욱 긴장감을 유발하고 불안을 쌓는 것임을 알고 당분간 치료자로부터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가를 어느정도 익숙함을 배울 때까지 재활 치료를 당분간 중지해줄 것을 같이 온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아버지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서 당분간 친척을 만나는 것도 친척 집을 방문하는 것도 재활 센터의 치료 등도 중지해줄 것을 부탁했다.

어느 정도 자기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어 대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때 다시 대인관계를 시도하는 것이 C양에게 도움이 되고 우선 응급 조치로써 C양의 극도의 긴장 상태에 응급 조치를 하는 것이 우선임을 이야기했다.

C양의 이런 패턴은 몇 년 전에 명절 때 친척 집에서 3일 정도 지내게 되었는데 그 때 나이 어린 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실제로는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따돌림을 당한 것처럼 괴로웠던 것에서 시작되었고 그 때 두번째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몇 주일 전에 사촌 언니와 나들이가 가다가 껄끄러워서 되돌아와서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불안증세로 자학적 자기 패배적 행동을 되풀이 했고 그 다음에 재활 센터에서 치료를 시작한지 1달 만에 어떤 언니로부터 원하지 않는 불쾌한 공격을 받고 정신병원에 1주일 입원한 것.

그리고 지난 주일에 할아버지 집에서 1박하면서 잠을 자지 못해서 집에 와서 극도의 긴장에 따른 신체적 불안으로 자혜 적이고 자기 패배적 행동을 한 것 등의 분석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C양에게 주말인 토요일 오후에 치료 시간을 내어 줄터이니 우선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불안을 완화시키는 응급 조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승낙을 받았다.

치료 제 4회기 (Session 4): 치료가 시작되면서 치료자는 C양에게 목요일, 금요일에 급성 신체적 긴장에서 오는 극도의 불안 때문에 자해적 행동 패턴이 있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런 행동 패턴은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패턴을 피할 수 있었느냐? 는 질문에 C양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난 3회기 동안에는 공감이 잘 형성되어 진행이 잘 되었으나 오늘 치료 4회기에는 분위기가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치료자가 감지하고 치료자에 대한 분노, 불쾌감이 있는 것 같은데 불평이나 불만이 있으면 말로써 표현해보라고 했다. C양은 태도가 돌변해 있었다.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했다.

치료자는 목요일 저녁에 C양이 장문으로 메일로써 자신의 문제점등을 상세하게 보낸 것에 대답을 하지 않아 치료자가 미워졌고 금요일 새벽에 전화로써 자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호소했을 때 치료자는 그 대답으로 아침에는 부모님과 산책을 가거나 저녁 때 부모님와 운동을 가는 방법으로 나들이를 하고 낮 시간에는 혼자서밖에 나갈 수 없으면 긴장을 풀고 마음을 안정 시키는 긴장 이완 훈련을 해보라고 했다.

치료자에게 언제라도 전화를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치료자는 대학에 강의나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있을 동안에는 치료자에게 전화를 하지 말도록 했다. 이러한 것 때문에 C양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치료자가 허용해주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만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했드니 시인을 했다.

메일을 보내면서 치료자가 돈 때문에 치료를 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고 돈과 관계없이 진실되게 치료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평을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났다. 치료자는 지난 3일 동안은 치료가 잘 진행이 되었으나 치료 4회기에는 C양의 분노, 미움이 폭발해서 치료자를 처벌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드니 그렇다고 했다.

C양은 말문을 닫아 버렸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치료자는 C양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면 치료자 되지 않는다고 조용해 이야기를 했다. 환자는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자는 정해진 그 시간에 환자에게 정성을 다해서 그 시간 동안에 주의 과심을 가지고 최선을 대해서 봉사하는 것이 치료의 과정임을 이야기했다. 치료자가 대학에 강의를 하거나 다른 환자들과 치료를 하고 있을 동안에는 C양이 원하는 대로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음을 이야기했다.

치료가 끝날 시간이 되어서 치료자는 C양에게 "오늘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침묵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치료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이러한 일은 다른 환자의 경우에는 1달에 1회 정도로 나타나서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C양의 경우에는 1주일에 1회씩 나타나면 치료 기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2-3배로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치료 비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만약 부모님이 그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치료 초반기에 치료를 그만두는 것이 치료 비용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 효과적일 것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으니 집에가서 다시 꼼꼼히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하세요. 만약 치료를 계속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월요일에 전화로 시간을 예약해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끝내고 그날 치료를 마감했다.

치료 실패의 원인: C양은 월요일에 전화로 치료 예약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C양의 아버지께서 전화가 왔다. C양이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치료자는 상세하게 왜 C양이 치료자에게 분노하는가? 의 이유를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C양이 원하는 대로 치료자가 들어주지 않는다는 분노 때문임을 지적했다. C양이 원할 때마다 전화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과 C양에게 치료자는 치료 보다는 돈에 관심이 많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치료 시간에 맞추어서 와야하고 치료 시간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 것이 기계처럼 느껴져서 너무 신경이 쓰인다는 것 등이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C양은 지금까지 3년 동안 집안에서 소일해서 시간 개념이 없다는 것과 관계 있었다. C양은 정해진 치료 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이 돈과 관계되는 것 같다고 치료 3회기 때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다.

치료 실패의 근본 원인은 치료의 룰을 위배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치료 초반기에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한다는 룰을 위배한 것 그리고 치료 비용이 3개월 분 밖에 없어서 치료 기간을 3개월로 허락해준 것이 문제의 시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치료 4회기 때 C양이 이야기를 하기를 거부했을 때 치료자의 마음 속에는 분노, 적대 감정이 느껴졌다. C양의 분노가 치료자에게 전달되어 투사 동일시로 느껴 짐을 알 수 있었다. 전문 용어로 반전이를 느낄 수 있었다. 치료자는 C양을 달래고 어루만져서 이야기를 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치료자는 만약 C양이 초반기부터 반전이를 느끼게 하면 치료 기간에 엄청나게 길어질 수 있음을 생각했다. 이미 1주일 만에 4회 치료 회기로써 총 24시간의 치료 시간 중에 이미 8시간을 사용했고 3주일 즉 한달이 안 되서 24시간이 다 사용되어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3 주일 동안에 치료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있었다. 만약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부모님은 치료 비용은 지불했는데 치료 효과가 없다는 불평을 하게 될 것이고 치료자는 원망 불평을 당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C양은 치료를 계속하면 확실하게 치료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치료자는 환자와 치료자가 서로 마음이 맞아야 즉 공감이 형성되어야 치료가 잘 진행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분노와 미움이 겹치면 치료 기간은 몇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C양의 부모님이 치료 비용을 걱정하지 않도록 지원해준다면 반전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에는 반전이가 등장해도 잘 극복해나갈 수 있었지만 C양의 경우에는 치료 비용 문제가 걸려 있었다.

치료 비용을 6개월을 지불한 사람들은 1주일에 3회 정도로 6시간이나 4회로 8시간을 사용해도 적어도 2개월내지 3개월은 견딜 수 있으니 그 때는 어느 정도의 치료 효과를 느낄 수 있게 된다. C양의 경우에는 48시간 정도 즉 6개월의 치료 비용을 지불했다면 극도의 긴장으로 인한 불안에 대한 응급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으나 한달도 안되는 3주일 동안은 별로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 않았고 그 와중에 반전이 즉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고 말 문을 닫아 버리면 3주일의 효과도 절반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있었다.

C양 역시 부모님의 치료 비용 때문에 처음부터 6개월을 할 돈이 없어서 3개월만 하자고 했다. 치료자는 그 때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허락을 한 것이었고 C양도 치료를 6개월까지 계속하면 부모님이 그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결국 치료자의 잘못된 치료 룰의 파괴와 C양이 치료자를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루겠다는 무의식적인 태도가 치료를 파괴 시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C은 자신이 부모님을 성질부리기로써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있는 것처럼 치료자도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하려고 하는 부모님과의 관계 패턴이 재등장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으나 치료자는 이것을 해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치료가 이미 중단되었버렸기 때문이었다.

C양의 치료 실패 케이스는 심리치료에는 반드시 치료의 룰(rules)이 있고 그 치료의 룰(rules)을 따르지 않으면 치료는 파괴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좋은 교훈이었다.

 

세 번째 사례: 10년 전(2012)에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6개월 간 심리치료를 받은 51세의 여성X씨로 그녀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50대에 결혼, 직장, 사회생활에 실패한 여성이었다.

7명의 딸 중에서 4번째로 자매들과 어린시절부터 관계단절로 스스로 고립되어 대인관계를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xx 대학 사범대학 영문과 합격해서 1학년 때 휴학하고 재수를 해서 우리나라의 최고의 명문 대학에 입학을 한 재원이었다. 그러나 동료들과 관계를 하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졸업 후에 xx 여성신문사에 여기자로 2년 동안 근무했으나 이후에 그만두고 고시에 뛰어들어 10년동안 매달렸지만 제 1차 시험(개관식)에도 한번도 통과한 적이 없었다(고시는 제 2 차시험이 주관식으로 어렵다고 정평).

그녀는 자신의 실패를 사회적 불평등(여성 차별주의)의 탓으로 돌렸기 때문에 자신의 뛰어난 지적인 능력을 살리지 못했다. 자신의 실패는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고 사회적인 불평등 때문 으로 편집증(사회를 의심) 특징이었다. 치료의지가 없어 6개월 치료 이후에 치료가 종결되었기 때문에 치료에 실패를 한 사례이다.

 

내 귀에 가족을 죽이겠다고 하는 협박의 소리가 들립니다

대상: 51세의 미혼 여성 X

증세: X씨는 환청으로 두 번이나 문제를 일으켜서 정신병원에 두 번째로 입원을 하고 있는 환자였음

진단: 정신분열증, 대인공포증, 회피적 성격 장애

연결: X씨는 작년 10월 달에 환청으로 생긴 문제 때문에 xxx 정신병원에서 2달간 입원 한 후에 환청이 사라져 퇴원을 하고 약물을 계속해서 복용해 왔으나 올해 5월 달에 다시 환청 문제로 사건을 일으켜서 두 번째로 이번에는 zzz 정신병원에 2달 째 입원을 해 있다고 그녀의 언니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녀의 언니는 정신분열증에 약물 치료의 한계를 절감하고 약물 치료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음

치료 기간: X씨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치료자의 사무실을 방문을 했다. 치료자가 2시간 동안 인터뷰 상담을 받아 보고 나서 결정을 하시겠는지 아니면 막 바로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하고 심리치료에 들어갈 것인지를 그녀의 어머니에게 물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치료 비용을 즉각 지불하고 치료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6개월의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음의 분석 치료는 X씨가 1주일에 4회로 1회 치료 회기에 2시간씩 분석 상담을 시작하면서 치료 3회기 즉 6시간의 분석 상담의 결과를 가지고 분석을 한 내용이다.

 

치료의 과정

X씨는 치료자와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초조하고 불안해했다. 분석 치료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녀는 치료자에게 조금 전에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들어보니 2시간 인터뷰 상담을 할 경우에는 2시간분의 치료 비용만 지불하고 상담은 끝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자신도 그렇게 해 달라고 여러 번 사정을 했다. 치료자는 언니한데서 특별한 부탁을 받고 동생을 치료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6개월분의 48시간의 치료 비용을 이미 지불 받고 치료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를 했다.

정신분열증의 경우에는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대부분이 자신들은 문제가 없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압을 한다면서 심리 치료실에 오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가 심리 치료를 거부하고 심리 치료실에 오기를 원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치료실에 오게 할 수가 있느냐? 라고 하소연을 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치료자는 이러한 경우에는 환자에게 심리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하지 말고 그냥 부모님과 한번 "부모님이 잘 아는 대학의 교수님이 한 분이 있는데 한번 가서 심리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겠으니 함께 가자" 라고 이야기를 해서 같이 오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을 한다.

사전에 부모님과 계획적으로 짜고 환자를 치료실에 데리고 오면 부모님이 환자가 보는 앞에서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자에게 "선생님 우리 자녀를 잘 부탁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마치고 부모님은 치료실을 나가서 밖에서 분석 치료의 2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한다. 치료자는 이미 치료 비용이 6개월 분이 지불이 되었으니 치료자와 함께 환자 자신의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보자 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만약에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치료 비용은 절대로 환불하지 않는다는 말도 더 붙인다. 이유는 한번 2시간의 분석 상담을 받아보고 나서 환자로 하여금 치료를 받겠는지를 결정을 하라고 하게 하면 다른 정신 장애자들의 경우 즉 불안증, 우울증, 성격장애 등의 경우에는 그러한 선택이 가능하지만 정신분열증 환자는 절대로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이나 정신 장애들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는 그들이 심리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외부적으로 절대로 자신이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조를 하면서도 일단 치료가 시작되면 자신의 문제점을 한번 생각해 보기 시작하기 때문에 정신분열증의 경우에도 한번 치료실에 와서 치료 비용을 부모가 지불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리고 첫 인터뷰를 끝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X씨의 경우도 그렇게 해서 치료를 받게 하는데 성공하게 된 경우이다. 치료자는 이미 여기에 온 이상 마음 속의 고통들을 어떤 것이든지 간에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해 보게 했다. "손님께서는 이곳에서 말을 논리적으로 하려고 하거나 예의를 따지거나 치료자에게 존경이나 예절에 신경을 쓰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순서 없이 어떤 것이든지 이야기를 해 보세요"라는 치료자의 권유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치료자에게 털어 놓기 시작을 했다.

 

환청으로 인해서 생긴 이벤트들

첫 번째 이벤트: X씨는 작년 10월 달에 환청 때문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xxx 정신병원에서 2개월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떤 환청을 가지게 되었느냐? 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그녀의 귀에 "당신이 고발을 하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라는 협박, 위협의 말들이 들려서 두려웠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위협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를 해 보라는 치료자의 권유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우연히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서 어떤 수행 단체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단체에서 모임이 있어서 한번 참가를 하게 되었는데  1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를 했다고 했다. 그 단계에 가서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들이 유체 이탈을 하고 사람이 공중 부양을 한다는 말과 그들의 단체에 와서 느낀 느낌들을 그들이 말하는 "() 회로도"라는 것을 만드는데 직접 참가를 해 보라고 해서 그들이 요구를 하는 설문지에 표시를 해서 그 결과를 이후에 인터넷 까페에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 다른 회원들이 그 기() 회로도에 올려진 X씨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글에서 X씨는 그 수행 단계의 진실성에 의문표(?)를 붙여 놓게 되었는데 그들이 그녀의 글을 읽어보고 그녀를 헤꼬지를 할까 두려워했었다 라고 했다. 이런 두려움 속에서 어느 날 그녀의 귀에 "고발을 하면 너와 너의 가족들을 그냥 두지 않고 죽여 버리겠다"라는 협박의 말들이 귀에 들리게 된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녀가 평소에 불교에서 늘 존경하던 대행 스님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받으려고 그 대행 스님이 거주하고 있는 사찰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각종 마구미들(불교에서 이 용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마귀들이라고 X씨가 더 붙여 주었음)이 나타나서 그녀를 가지 못하게 싸우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대행 스님이 그녀에게 나타나서 지하철 안에 있는 소화기를 안고 있으면 마구미들이 달려들지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지하철 안에 있는 소화기를 끌어 안게 되었고 이것을 본 지하철 손님들이 경찰에 연략해서 119 구급차가 달려 오고 그녀는 구급차에 실려서 xxx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 이벤트: X씨가 xxx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2달이 지나가면서 병원에서 약물 복용으로 환청이 사라지자 퇴원을 하게 되었고 집에서 약물을 계속해서 복용하고 있던 올해 4월 말 쯤에 다시 두 번째로 환청으로 인한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었다고 했다. X씨는 그녀의 귀에 "xx 수행 단체를 고발하게 되면 너희 가족과 너를 가만 두지 않겠다"는 소리가 다시 들려와서 이번에는 xxx 경찰서로 달려갔다고 했다. 경찰서에 가서 "나를 구해 주세요, 그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세요."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당신들도 위험합니다. 그들이 당신들도 죽일 것입니다." 라고 호소를 하게 되었다.

xx 수행 단체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죽이려고 위협을 한다고 고발을 하게 된 것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리 속에 대행 스님이 그녀에게 "내가 감독이고 너는 배우이니 우리 두 사람이 합세해서 나쁜 무리들을 처벌하고 사회를 정화하자"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말을 하면서 그 경찰서에 있는 경찰관들이 그 순간에는 원효, 의상 대사 등의 유명한 대사들이 환생한 불교 신자들로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에 그녀 자신이 대행 스님이 말하는 제자가 되어서 경찰관들의 머리를 때리면서 "너희들은 유명한 스님들의 환생한 불자들인데 너희들이 모두 좋은 것들을 독점해서 너희들만 나누어 가지면 되겠느냐?"라고 경찰관의 머리를 때리면서 꾸짓었다. 경찰서에서 그녀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 게 되었고 그녀의 언니가 xxx 경찰서로 와서 그녀를 데리고 이번에는 zzz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서 약 2개월간 지내다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함께 받고 싶다고 호소를 해서 어제 정신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오늘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서 치료자의 사무실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성장 배경과 역사

X씨의 가족 관계: X씨의 아버지는 약 80대 중반의 나이로 10년 전에 중풍으로 지금은 집에 누워계시고 어머니는 약 80세로 집에서 살림을 하고 있으며 딸이 7명으로 큰 딸인 언니가 50대 중반인 독신으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 언니는 결혼을 해서 가정 주부로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또 한 명은 대학에 재학 중이고 세 번째가 X씨이고 네 번째는 결혼을 해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부부가 대학에서 강사로 있으며 다섯 번째는 의사로 개업의로 있는 독신이고 그리고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둘 다 공무원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그녀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큰 언니, X씨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인쇄업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 일을 도와주느라고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했음을 이야기를 했다. 형제들이 많아서 서로 돌보아주지 않았느냐? 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런 것 같지 않다고 회고를 했다. X씨는 어린 시절에 둘째 언니와 많이 싸웠다고 회고를 했다. 아버지에게 세 번 크게 처벌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가 유치원 시절에 둘째 언니와 싸우다가 아버지가 처벌로 그녀를 소파 위로 집어 던졌는데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에 둘째 언니와 싸우다가 아버지에게 엎드려 뻗쳐를 하고 회초리로 맞았던 기억을 회상을 했다. 둘째 언니와 싸우게 되면 언제나 둘째 언니는 아버지로부터 처벌을 받지 않고 세 번째인 그녀가 처벌을 받았다고 회고를 했다.

세 번째 이벤트는 그녀가 40대 초반에 아버지의 친구 분의 소개로 그녀보다 12살이나 많은 노총각과 결혼을 하라고 하는 것에 반대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혀서 벽에 쳐박힌 기억을 회상을 했다.  노총각은 고시 공부를 하다가 혼기를 놓친 사람으로 나이가 이미 50대로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이 때문에 그녀가 거절했었다 고 했다.

그녀는 , ,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잘해서 별다른 어려운 문제들은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xxx 사범 대학 영어 교육학과에 들어가서 2학년 때 그녀는 학교와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1년 동안 재수를 해서 우리 나라에서 최고 명문 대학인 xxx 대학교 xxx 학과에 들어갔다고 했다. 대학 시절에 그녀는 동료들보다 나이가 3살이나 많아서 학과 동료들과 별로 어울리지 못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대학 시절에 남자 친구들을 사귀어 보았느냐? 는 질문에 남자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 불교 동아리에 가입을 해서 약 3년 동안 활동을 했는데 그 때 불교 동아리 회장인 정치학과에 재학중인 한 살 많은 오빠를 짝사랑했으나 제대로 말도 한번 해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가 가족들에게 그 회장 오빠를 짝 사랑한다고 말을 했을 때 가족들이 "짝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회고를 했다.

그 후에 그녀의 집 주변에서 자치를 하고 있던 4살 아래의 법대 학생과 이야기도 나누고 도서관 앞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도 나누었던 것이 남학생들과 주고 받은 유일한 이성 관계였으나 X씨가 이야기를 하는 쪽이 아니고 주로 그 학생이 그의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이었으며 서로 친밀하게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 학생은 시골 출신으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을 했으나 그녀는 별로 남자들을 사귈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졸업 후에 행정 고시에 2년간 매달릴 시점에 그 법대 학생이 졸업 후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왔으나 그녀는 그 당시에 직업도 없었고 자존심 때문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행정 고시에 매달려 2년을 보내다가 포기하고 그녀는 xxx 여성 신문사에 신문 기자가 아닌 사무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 회사에서 2년간 근무를 하면서 그녀는 그 회사에서 정식으로 여성 신문 기자 채용을 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상사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녀도 정식으로 여기자 시험을 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승낙을 받았으나 이후에 그녀의 상사가 같은 직장에서 직원으로 있으면서 여 기자 채용 시험에 응시를 하는 것은 좀 어색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듣고 포기를 하고 그 신문사에게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 여성 신문사에 근무를 할 때 그녀의 동료 직원이 그녀의 상사에게 핸드백을 들고 다니고 그녀에게 아부를 하고 아양을 뜨는 한 동료 여직원이 틀림없이 그녀의 상사에게 X씨를 여 기자 시험에 부적합한 인물로 그녀를 나쁘게 이야기해서 그 상사가 그녀에게 처음에는 여기자 채용 시험에 응시를 허락해 놓고 이후에 그녀가 응시하는 것이 보지 좋은 것이 아니라고 거부를 했을 것이라고 중간에서 그 동료가 방해 공작을 했을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를 했다.

이후에 그녀는 경실련에 들어가서 약 2년 동안 봉사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경실련에 들어갈 때는 이력서나 학력 등을 받지 않고 그냥 일을 하고 싶은 분들은 함께 일을 하자는 권유에 그곳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었으나 실제 봉급은 교통비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녀는 당당하게 봉급을 받고 있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한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경실련에 있으면서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직장 동료들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나 몇몇 회원들과는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여성으로 그녀보다 7살이 많은 사람이었고 사교성이 있어서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회원으로 그녀보다 1살 많은 은행원 남자 분이 사회성도 있고 유머도 있어서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결혼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경실련에서 2년 후에 나와서 그녀는 다시 xxx 재활원에서 1 6개월 동안 일을 했다고 했다. 그곳은 고아원으로 초, , 고등학교에 다니는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을 돌보아 주는 곳으로 어린이들을 컨트롤하기가 어렵고 또 그들이 그녀에게 반항을 하는 일이 잦아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결국은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때 그녀의 나이가 벌써 40대 초반기를 넘기고 있었다고 했다.

이후에 그녀는  10년 동안 사법 고시에 매달리게 되었다고 회고를 했다. 처음  3년동안은 열심히 노력을 해서 평균 0.0079점으로 1차 시험에 낙방을 했다고 아쉬워했다. 일본어에서 점수를 많이 못 얻은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사법 시험이 일본어가 빠지고 영어 토익 점수가 일정한 점수가 이상 되어야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바람에 영어 때문에 고전을 하게 되면서  7년의 세월 속에서 1차 시험에 응시도 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갔다고 했다. 그녀가 2년전부터 사법 시험을 포기하고 공무원 9급과 7급 시험을 공부를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왔다고 씁쓸해 했다.

그녀는 사법 시험 준비로 첫 3년간 몰두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작은 원룸을 하나 사 주는 바람에 가족들과 독립해서 집에서 나와서 혼자서 7년 동안 준비를 해 왔다고 했다. 처음에 나와서는 몇 년 동안은 어머니가 생활 비용을 부담을 했 주었으나 이후부터는 생활비를 끊어 버리는 바람에 일자리를 찾다가 학교 급식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 급식소는 하는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파, 김치가 되는 바람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실토를 했다. 그녀는 학교 급식소에서 몇 개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어머니가 그녀의 집에 들렸다가 방에 걸려 있는 앞 치마에 쓰인 글자를 보고 그녀에게 물어보게 되어 그녀가 학교 급식소에서 일을 한다고 하자 어머니가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형제들이 월 50만원씩을 지원해 주다가 최근에는 월 70만원 정도로 지원을 받고 있다가 환청으로 정신병원에 두 번째 입원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어머니, 아버지와 큰 언니와 함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혼은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 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결혼은 직장을 구하고 나서 33세 쯤에 생각해 보겠다고 결심을 하고 몇 차례 중매로 선을 보았으나 같이 만난 상대와 몇 분 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그냥 가라고 말을 해서 대화 관계를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33살이 넘어 가면서 이제는 중매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세월이 흘러서 40대가 되자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40대 초반기에 아버지의 친구의 아들로 사법 고시에 매달리다가 혼기를 놓치고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번 50대 초반의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는 아버지의 강요에 나이 때문에 반대를 했다가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벽에 쳐박힌 사건을 회고를 했다. 지금 생각에 보니 그녀가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바보 같이 살아온 것 같다고 쓸쓸하게 회고를 했다.

 

분석의 결과

X씨는 어떻게 해서 위와 같은 환청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것을 6시간 동안에 모아진 자료들을 바탕으로 분석을 해 보고자 한다. X씨는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동료들과 관계도 친밀하지 못했다. 친밀관계와 대인관계에 어린 시절부터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분석되었다. 그녀는 초, , 고등학교 시절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친밀한 친구들이 없었다. 그녀의 어려움들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할 친밀한 친구가 거의 없었다. 대학 시절에 재수를 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는 있었으나 대학 시절에도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나이가 재수 때문에 3살이 많은 이유 때문에 동생과 같은 학과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근본적으로 친밀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항상 외톨이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불교 동아리에서 정치학과 선배를 짝 사랑한 것이 그녀의 처음으로 이성 관계를 생각한 것이지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이성 관계였다. 그녀는 여자는 직장이 있아야 남자들과 대등하게 결혼을 할 수 있다는 특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부는 맞벌이를 해야 하고 부인도 반드시 직장을 가져야 남편과 대등하게 관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올바른 직장을 가지려고 노력을 했으나 그녀가 졸업한 대학에 걸맞는 올바른 직장을 가질 수가 없었다고 강조를 했다. 그녀는 여자는 사회 생활에서 남자들에게 차별을 받고 있으며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여러번 강조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불교에 심취해서 대학 1학년때 대학 불교 동아리에 가입을 해서 3년 동안 활동을 했으나 그녀는 어느 특정한 사찰에 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비구니 여성 스님으로 이름이 난 대행 스님 이야기를 했다. 그 대행 스님은 수행을 많이 해서 이름이 난 여성 스님으로 책도 쓴 것을 X씨가 여러 권 읽어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법 고시를 준비하는 후반기 7년 동안에 많은 서적들도 읽어보았다고 했다. 대행 스님의 서적 중에서 어느 한 구절에 마음이 걸렸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라는 구절에서 여자 스님인 수행을 많이 한 대행 스님마져도 여성들과 남성들을 차별하는 말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그 대행 스님을 찾지 않았다고 했다.

이 전에는 그 대행 스님이 거주하고 있는 안양 근처에 사찰에 한번 들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그 대행 스님에게 실망을 해고 다시는 찾지 않았지만 그녀는 혼자서 불교 서적을 읽거나 한 달에 한번 정도로 그녀가 거주하는 인근 사찰에 들려서 기도를 하거나 절을 둘러 보면서 조용하고 공기가 맑는 자연 속에서 몇 시간씩 지낸다고 했다.

대행 스님이 쓴 책의 글귀 때문에 대행 스님도 역시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그녀의 실망스러운 생각과 그리고 또 그녀가 환청에서 들리는 목소리 속에서 경찰관을 보고 머리를 때리면 "너희는 과거 이름난 대사들이 환생한 불자로써 너희들만 모든 것을 독차지 하고 너희들만 돌아가면서 독식을 해서 되겠느냐?"라는 말과 "너희들만 독식을 한다"고 말을 하면서 "사회 정화" "사회 정의"의 실천을 하려고 한 것을 보면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녀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은 사회의 여성 차별 때문에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일자리를 제대로 가질 수가 없었다고 모든 문제들을 사회의 여성차별주의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사회에 여성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은 인정을 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그녀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니고 그녀의 대인관계, 친밀관계 때문에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할 수 없는 문제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여동생들은 다 공무원, 의사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녀의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도 유독 그녀만이 우리나라의 최고 대학을 나왔다는 그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여동생들은 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녀는 그녀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주의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그렇게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대 기업에 채용에 응시를 해 보지 않았느냐? 라는 질문에 그녀는 삼성 회사에 응시를 해서 1차 시험에 합격을 했으나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면접에서 낙제를 한 것이었다. 요즘은 대기업의 입사 시험에서 성적 순으로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니고 자기 표현과 자신감과 대인관계와 팀웍들을 중시한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평생 동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세월을 흘러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편집증적으로 한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다. 일자리를 행정 고시, 사법 고시 등에 국한시켜서 이것에 대학 졸업 후 처음에 2년을 행정 고시로 보내고 40대 초반부터 10년 간을 사법 고시에 흘러보낸 것이 이것을 증명해 준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교감해서 정보를 얻고 자신의 지식을 통합하는 능력에 결함이 있었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하면서 의사 소통으로 서로의 정보를 나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을 피드백을 받아서 내 생각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을 통해서 내 자아를 통합해 나간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의 생활이다.

X씨는 이러한 관계에 결함이 있었다. 그녀는  10년 동안 사법 시험 공부를 준비를 해 왔으나 겨우 1차 시험에 근소한 차로 한번 낙방을 한 적이 있었다. 나머지는 1차 시험에 통과를 한 적이 없었다. 사법 시험은 1차는 대부분이 좀 공부를 한 준비생들이 다 통과를 하는데 더 어려운 시험은 2차 시험으로 주관식 시험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그녀가 알면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무능력 함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 최면으로 사법 시험에 10년 동안 허용 세월을 한 것이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빨리 뒤로 물러서서 다시 재 정비를 하고 자신의 결함을 살펴보고 어디에 맹점이 있는가를 알고 대비를 해 나가야 하는데 이런 문제들에 결함 때문에 세월만 10년을 허송 세월을 해 버린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사회가 두렵고 겁이 나고 사회 생활이 공포로 다가온 것이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생활 비용을 지원해준 지가 4-5년이 넘어가고 일자리를 제대로 된 그녀의 학력에 걸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녀는 그녀를 차별 대우를 해서 그녀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싶었다. 그녀의 무의식 속에는 부조리한 불평등한 사회에 항의를 하고 사회에 부조리가 근절되면 그녀에게 일자리가 주어질 것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무의식의 마음 속에 사회에 대한 두려움, 공포가 쌓이면서 그것이 그녀의 마음 속에 사이비 수행 단체가 그녀를 위협하고 그녀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것으로 반사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즉 그 사이비 수행 단체는 바로 불공평한 사회를 상징한다. 이것이 바로 환청으로 나타난 것이다. 환청 속에 숨겨진 은유는 그녀가 사회에 적대감정을 가지고 사회를 정화시켜야 하겠다는 마음 속의 결심 때문에 그것이 반사되어 그녀의 마음 속에 비치면서 그러한 적대 감정이 바로 그녀의 자아를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신성한 단체인 종교계에서 마도 불공평하다.  대행 스님에게 실망, 불교 내에서도 여성 차별과 여성들에게 일자리 찾기를 도와주지 않고 불자들만이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좋은 것을 독식하고 있다는 그녀의 생각이 환청 속에 나타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일자리를 구하고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데 우리나라에서 최고 대학을 나온 그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졸업장에 걸맞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 환생한 유명한 불자들이 그들 만이 혼자서 일자리를 독식한다는 환청으로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또한 사회에 대한 두려움 속에는 그녀의 가족 구성원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 불안스러움, 죄스러움이 함께 섞여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서 특히 80대의 어머니에 대해서 염려하고 걱정이 대단했다. 치료자의 사무실에 X씨와 함께 온 어머니가 치료실 밖에서 2시간동안에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서 그녀는 이야기 도중에 많은 걱정들을 했다. 혹시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다가 치료 시간이 끝나는 시점에 어머니가 치료실 밖에 계시지 않는 것을 알고 놀래서 불안에 떨었다. 얼마 후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2시간 동안에 주변을 구경 삼아서 둘러보았다는 말에 안도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매일 같이 X씨를 대동하고 같이 왔다. 이유는 또 다시 X씨가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X씨가 강조를 했다.

그녀는 4-5년 동안 형제들에게서 생활 비용을 지원받고 있어서 그들에게 미안하고 빨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죄스러움과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은 것이라는 것 등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스러움이 그녀의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줄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치료에 방향

X씨의 치료는 앞으로 그녀가 사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들을 스스로 알 게 하고 이것을 수정해 나가는데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사회의 불평등은 존재하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점은 X씨의 잘못된 생각  대인관계가 잘 안되고 친밀관계가 안되고 특히 이성 관계는 아예 되지 않고 있음을 그녀가 알고 이것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에 대한 적대 감정이 사회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고 있음을 그녀가 알 게 한다. 그녀의 심층에 쌓인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적대 감정을 것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녀로 하여금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서 그녀의 내면 속에 쌓여 있는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데 두려움, 공포, 불안들을 쏟아내게 해야 한다. 그녀의 사회에 대한 불평 불만들을 토해내게 해서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면 대인관계를 하는 방법, 대인관계에서 친밀감을 쌓아나가는 방법들을 다시 배우게 해야 한다.

그녀는 직장이라면 무조건 행정 고시, 사법 고시, 7, 9급 공무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주변에서 찾아보면 혼자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들이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 게 되어 사회생활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삶을 즐겁게 살 수 있게 되어야 그녀의 정신분열증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신의 자아와 앞으로 많은 투쟁을 해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다행히도 X씨는 환청으로 정신분열증의 진단을 받은 지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점 즉 정신분열증을 가지게 된 시점이 불과 1년 미만이라는 점과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입원해 있으면서 처음에는 그녀의 환청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신병원에서 환청은 그녀의 귀에만 들리는 것으로 실제 외부 대상이 그녀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대화로 그녀의 생각을 표현을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드라고 그녀가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만 강하다면 앞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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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으니 치료자정신분석 심리치료 홈페이지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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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 참고:

치료자의 전화 번호: 010-4512-1275

김종만, e-메일: jongmankim@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psychclinic.pe.kr/

정신분석 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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