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자아(self)의 힘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21. 10. 23. 18:12

자아(self)의 힘

 

독일의 분트(Wundt)에 의해서 실험실에서 심리과학이 탄생(1879년)한 후 142년이 지나갔고,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Freud)에 의해서 정신분석학이 출생(1895년)한 후 126년이 흘러갔다. 심리과학과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별이 정신분석학은 의식의 세계(10분의 1)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10분의 9)를 상상, 지각, 감각, 생각, 사고, 인지상호관계를 어린시절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역동심리학의 정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을 마음의 현미경이라고 부른다(Maroda, 1999: 주㈜: 참고). 지금까지 치료자(필자)는 정신장애, 정신병 즉 병든 마음(자아)에 대해서 6년동안(2015년부터 시작) 378개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종교학의 전도사가 아니고 심리학의 전도사로써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여러 번 밝혔다.

이번 글의 주제는 과거와 달리 병든 마음이 아니고 건강한 마음(자아)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인종의 진화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깜짝 놀랜 구절이 있다. 그것이 바로 마음(자아)의 진화라는 말이었다. 다윈이 1859년에 종의 기원으로 인간의 기원은 원시인이다 라는 것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마음이 진화가 된다는 말인가? 마음은 뇌이다 뇌가 마음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마음을 자아라고 부른다. 신경학자인 프로이트가 뇌의 신경생리학을 심리학적인 용어로 설명한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다(Moore, 1999: 주㈜: 참고) 프로이트는 마음을 3개의 자아 즉 원초자아(Id), 현실적 자아(ego), 그리고 초자아(superego)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는가?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판할 때 뇌도 진화가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논쟁을 한 것이 알려지고 있다. 진화 이론의 공동 저자인 월레스(Wallace)는 뇌의 진화에 반대를 했다. 원시인의 뇌와 현대 영국인의 뇌가 크기가 비슷하다고 주장하면서 추상적인 생각은 진화론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Edelman, 2004). 다윈의 주장은 1972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는 에델만(Edelman, 2004, 2000: 주㈜: 참고)이 그의 저서 “하늘 보다 넓은 의식의 세계”라는 저서에서 신경세포의 진화, 뇌의 자연도테, 뇌의 적자생존을 발표를 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몽골이 징기스칸불안과 두려움이 없이 세상을 정복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세상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 그리고 심각한 경우에는 정신병원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한 사람과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 왜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마음대로 활보하고 자신의 소망을 충족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다른 사람은 불안, 두려움, 우울함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가? 두 종류의 사람들의 차이점은 도대체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글에서는 건강한 사람들의 자아의 진화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아래에 등장하는 고고학, 인류학, 종교학 등에 대해서는 정신분석가들의 글들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필자가 미국에 가기 이전에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영국의 문학사와 미국문학사 더 붙여서 미국에서 학부에서 받은 교양과목인 서양의 역사(고대와 중세), 미국문학 탐색, 미국의 역사학과 정치학(2과목은 필수과목), 중세 문학 등의 교양과목으로 39년 전의 이수한 교과목의 지식에 근거한 것이다.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조상을 직립 보행인간, 호모사스피언(Homo Sapiens)으로 보고 있다. 그 발생지로 프랑스의 크로마뇽(Cro-Magnon) 지역에서 발굴된 크로마뇽인과 독일의 네안델탈(Neanderthals)지역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으로 보고 있다. 4만년 전에 등장한 이 두 종족 중에서 네안데르탈인종은 멸종을 했다. 그 이유는 엄마의 자궁보다 큰 태아의 뇌 때문으로 보고 있다. 크로마뇽인들은 엄마의 자궁경부와 태아의 뇌가 일치하는 것으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던 것으로 본다(Acredolo & Goodwyn, 2000: 주㈜: 참고).

원시인들은 체구도 작고 힘도 약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나약하고 연약해서 동굴 속에서 살았다. 그들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동굴의 벽화들에서 나온 그림과 조각들은 그들의 일상의 생활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보다 그들의 예술품으로 본다.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모델(Modell, 1985: 주㈜: 참고)은 그의 저서 “대상 사랑과 현실”에서 원시인들의 벽화들은 그들의 상상력(이 부분의 진화에 주목하라)에서 나온 예술작품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들 원시인들은 연약하고 나약했기 때문에 자연 환경에서 힘이 센 강한 동식물들(곰, 호랑이, 코끼리, 거대한 나무 등등) 혹은 자연환경의 거대하고 웅대한 무생물들(산, 바다, 바위 등등)를 숭배를 했다. 이것을 토템이라고 부른다(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1913)을 보라). 토템이라는 말은 동물 혹은 자연숭배 신앙이라고 부른다. 원시인들은 그들의 힘을 동일시한 것이다. 그들처럼 자신들도 강하게 되고 싶은 바램(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모든 종족들은 토템들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어린시절에 어른들이 늘 이야기를 하는 말들 중에서 산에는 산신(山神), 바다에는 용왕(바다신), 거대한 나무에는 목신(木神), 거대한 바위에는 석신(石神), 땅에는 지신(地神), 하늘에는 하느님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을 숭배사상이 아닌가? 특이한 날에는 제사를 지냈다(비가오지 않고 가물 때는 기우제, 혹은 거대한 바위, 나무 앞에서 소망을 기원(아들을 기원)하는 제(祭)를 올린다), 이것을 범신론으로 불리운다, 자연의 거대한 모든 것의 힘에 압도된 인간의 자연숭배 사상이 아닌가?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단순 신화가 있다.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이 아버지 환인천제에게 탄원으로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홍익인간) 하겠다 라는 말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서 태백산의 신단수(신시)에 내려와서 제(祭)를 지낼 때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 기도를 하면 인간이 될 수 있다 라고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100일 기도를 올리다가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포기를 했고 곰은 참고 기도를 해서 여성(웅녀)으로 환생을 했다. 환웅과 웅녀가 결혼을 해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단군이고 단군조선의 시조가 되었다 라는 단국신화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져 있다 (2021, 10, 9: 다음 백과 참고). 신화라는 말은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사실로 믿고 있는 것이다(신화의

가장 많이 인용되어지고 있는 신화는 그리스 신화이다. 그리스 신화는 평범한 인간들이 신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들의 신(The God of Gods)인 제우스는 바람을 피운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는 질투심으로 제우스와 바람을 피운 여성을 붙잡아서 처벌하라고 하다가 에코의 능란한 이야기에 취해서 그녀가 도망친 것에 분노해서 복수로 에코(Echo)의 목소리를 없애 버린 이야기(에코는 메아리)는 정신분석에서 단골로써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가 아닌가(나르시우스의 신화를 보라). 프로이트는 신화가 때때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데 때때로 필요하다고 쓴 글에서 볼 수가 있다.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그리스의 신화를 연구하고 인용을 하고 있다(Ernest Jones, 1952, 1955, 1957: 주㈜: 참고). 오디프스 콤플렉스 나르시즘 이론그리스의 신화에서 나온 이론들이 아닌가? 다시 원시인들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우리 조상들은 동물들 중에서 곰을 숭배를 했다. 곰은 가장 힘이 센 동물이고 그리고 끈기와 인내심이 있다. 곰은 북극과 남극의 빙산 위에서도 살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곰의 힘과 끈기와 인내심을 동일시한 것이다. 우리가 그 힘과 끈기를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모방한 것으로 본다. 토템들은 힘이 강할 때는 신으로 모셔졌다 그래서 존중하고 숭배를 했다 그런데 힘이 약해지면 잡아먹었다 왜 잡아먹었는가? 그 이유는 바로 곰을 잡아먹었을 때 곰의 살과 힘이 고기를 먹은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와서 스스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를 보라).

이러한 현상은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사는 부족들의 추장(리더)이 사망했을 때 화장을 해서 뼈의 가루를 밥에 섞어서 막는 것이 문화 인류학자들에 의해서 보고되었다(뉴기니와의 남부의 한 부족인 삼비아 족)(Herdt & Stoller,1990: 주㈜: 참고).

다시 원시인들로 되돌아가보자, 그들은 자연신들을 숭배하면서 그들의 힘과 능력을 상상력으로 흡수해서 동일시로 자신이 강한 힘을 가진 것으로 동굴 속에서 점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석기시대의 구석기와 신석기가 이것을 말해준다. 연약한 동물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외부의 침입에 대항을 했다. 그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점점 부족들이 커지게 되고 군집을 이루게 되면서 물이 풍부한 강가에서 모여 살게 되면서 문명사회를 이룩하게 된다. 이집트의 나일강, 중국의 황허강,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그리고 인도의 갠지스강이 인류의 4대 문명의 발생지가 된다.

토템의 사상들은 특별히 이집트의 문명에서 보면 두드러진다. 이집트인들은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는 다신교였다. 예를 들어서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의 오디프스 왕의 이야기에 등장한다(그리스의 4대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소포클레스의 작품, 오디프스 왕은 프로이트가 인용해서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의 핵심). 스핑크스는 여성의 얼굴과 사자의 몸과 독수리의 발톱으로 구성되어져 있다(Shengold, 1999: 주㈜: 참고).

이처럼 이집트인들은 많은 신들을 만들어서 숭배를 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모세가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1939년 마지막 작품으로 모세와 유일신의 논문에서 모세는 유태인이 아니고 이집트인으로 노트를 했다. 모세는 신은 하나뿐이다 즉 유일한 신이어야 한다 라고 주장을 했다 이것이 이집트인들과 갈등을 초래했다. 그들이 룰과 지배에 균열이 생기면서 이집트인들을 모세를 추방을 했다. 모세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탈출을 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이다. 모세는 신의 산(시메산)에 가서 십계명을 새겨서 인간의 룰과 질서를 지키게 했다. 모세가 쓴 글이 바로 구약성서가 된다. 그런데 예수(Jesus)가 등장하게 된다. 예수는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라고 부른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구세주, 구원자라는 말이다, 구원자 예수가 된다.

그런데 유태인들은 예수를 구원자로 보지 않았다. 예수가 유태인들의 지도자인 랍비(종교의 지도자인 동시에 법률가)들의 경직된 권위주의와 일반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특권과 맹신을 비판을 했다. 유태인들은 예수를 비난하고 조롱해서 로마의 총독에게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고자질해서 예수를 십자가의 형틀에서 사형을 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예수의 12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기록을 해서 마가가 기록한 마가복음,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 요한복음 등으로 이것을 집대성한 신약이 등장한다. 예수와 12제사들의 예수의 복음으로 로마 카톨릭이 등장하게 된다. 유태인들은 구약만 성경으로 본다, 카톨릭에서는 구약과 신약을 성경으로 본다. 카톨릭에서 유태인을 미워하는 것은 예수가 유태인이지만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비난해서 예수를 죽인 장본인으로 보기 때문에 유태인들을 미워한다.

유태인들은 유대교로써 그들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선지자로 숭배한다. 선지가는 인간으로써 성인에 도달한 지도자를 말한다. 이것은 동양에서 인도에서 석가모니(불타), 중국의 공자, 맹자처럼 인간으로써 위대한 지도가를 말한다. 이것은 원시인들이 초반기에 토템 사상에서 한층 더 발전해서 군집으로 모여 살게 됨으로써 리더의 필요성과 규칙과 질서의 등장과 함께 한다. 그들의 리더를 모방하고 배우고 따르게 되는 사회적 동물로써 질서와 규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의 신학자들 즉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그리고 성 오그스틴(St. Augustine)의 참회록 등에 의해서 인간 예수는 삼위일체설로써 성부(하느님 아버지), 성자(아들인 예수), 성령(신성한 믿음)은 하나로써 예수가 하느님으로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속죄를 대신하게 되는 신학 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2021, 10, 9: 위키피아).

모세의 유일신에서 시작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의 신의 존재는 카톨릭에서 그 신은 바로 하느님이자 예수인 전지전능한 신의 믿음으로 발전하게 된다. 모르는 것이 없는 전지(omniscience) 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전능(omnipotence)이 함께 합쳐져서 전지전능함이 된 것이다. 고로 유일신은 한 사람의 신으로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모든 세상의 일들을 알고 있고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중세의 1000년를 지배를 하게 된다 중세는 기독교시대이다. 로마의 문란한 섹스와 낭비와 무절제가 반동형성으로 기독교에서 근검과 절제 금욕으로 바뀌게 된다. 기원전 500년과 기원후 500년을 고대시대, 그리고 기원후 500년에서 1500년까지를 중세시대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본산지인 로마 카톨릭은 전 세계의 중심지가 된다. 유럽의 왕들은 카톨릭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교황 앞에 선서를 하고 왕관을 썼다. 이것을 신성 로마제국이라고 부른다(Hollister, 1982).

로마 교황은 절대적인 권력자로 등장하게 된다. 1095년에 교황 우반 2세(Urban Ⅱ)에 의해서 예수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이교도(회교도)의 지배하게 있는 것을 탈환하기 위해서 유럽의 왕들에게 십자군의 동원을 명령하게 된다. 중세는 기사도의 시대이다. 정의와 정직과 종교적인 신념으로 말을 타고 칼로 무장한 무사들이 바로 기사(Knight)들이었다. 유럽의 왕들이 기사들을 모아서 십자군을 편성하게 된다.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의 성지를 회복했다 그러나 얼마후에 살라딘의 회교도에 의해서 빼앗기게 되면서 이후에 제 7차 십자군의 원정(1228)까지 한번도 다시 예루살렘의 성지를 회복하지 못했다. 제 3차 십자군의 원정으로 등장하는 유명한 영국의 왕이 바로 사자의 마음을 가진 사자심왕 리차드 Ⅰ세(Lionhearted)이다, 그는 영국의 왕 헨리 Ⅱ와 프랑스의 아키텐의 엘러너와 결혼에서 5명의 아들 중에서 3번째의 왕자였다. 2명의 형이 병사함으로써 영국의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영국은 놀만디와 아키텐의 영토로 프랑스의 영토의 3분의 2를 지배하게 된다. 그는 영국에 거주하기 보다 프랑스에서 필립 Ⅱ로부터 그의 영토를 지키는데 전쟁으로 그의 시간을 다 보냈다(2021, 10, 9: 위키피아 참고).

3차 십자군의 원정에 영국왕으로 리처드 1세와 프랑스 왕인 필립 Ⅱ와 대립과 갈등으로 십자군의 원정은 실패하고 귀국 중에 오스트리아의 왕인 레오폴드에 의해서 포로로 붙잡히게 된다. 레오폴드는 영국 왕실의 연간 수입의 3-4배의 몸값을 요구했다. 그의 동생인 존(John)이 형의 부재로 대리로 영국의 왕과 왕가에서 이러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 귀족들에게 과도한 돈을 차용해서 리처드가 풀려났지만 얼마후에 죽었다 그러나 존 왕은 귀족들의 차용금 때문에 왕의 권한을 제한을 당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1215)로 대헌장이다 영국의 의회정치의 시발점이 된다.

이 시점에서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이태리의 베니스인으로 실크로드를 통해서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17년 동안 외교 사절로 환대를 받게 된다. 원나라의 공주가 페르샤의 왕(지금의 이란)과 결혼으로 중동으로 출발할 때 그녀를 동반해서 목적지에 도달 후에 그는 고국인 베니스로 24년 만에 귀환하게 되었다. 그는 문명으로 글을 몰랐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재담가인 루스티첼로에게 받아쓰게 했다. 그 책이 바로 마르크 폴로의 이야기: 동양의 신비한 나라의 이야기였다(1300). 이 책이 바로 동방견문록이다. 그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순방하면서 금관, 금목걸이, 금팔찌, 금귀걸이 등으로 금으로 가득 찬 나라로써 기술을 했다(2021, 10, 9: 위키피아 참고).

중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람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동방견문록을 애지중지했다. 그는 이태리 제노아 사람으로 선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포르투갈에 가서 항해를 위한 공부를 하게 된다. 드디어 포르투갈의 왕에게 간청을 했으나 실패하고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의 허락을 얻어서 1492 83일에 서인도를 향해서 출발하게 된다. 그는 산타마리아(Sant Mara), 니나(Nina), 핀타(Pinta) 3 척의 배로서 우여곡절 끝에 70일 만에 14921012(컬럼버스 날 기념일)에 쿠바의 인근의 한 섬에 도착을 했다. 컬럼버스는 이 섬을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금은 없었다. 그는 원주민 몇 명과 토산물들을 가지고 왔지만 대 실망이었다. 그 이후에 그는 5번의 항해를 통해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와 멕시코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북부 지역들을 탐색을 했지만 그가 기대했던 금과 은의 발견은 실패를 했다(캘리포니아 주의 국정 교과서인 미국의 탐색, 1954년: 주㈜: 참고).

컬럼버스의 유산으로 정신의학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매독이다. 원주인으로부터 매독을 옮겨와서 전 세계에 퍼트린 장본인이 바로 컬럼버스이다. 컬럼버스는 매독 때문에 만년에 길거리에서 정신이상자로 사망했다. 매독균의 보균자인 숙주는 원래 영향이 없다 대신에 숙주와 접촉한 이방인은 치명적인 된다.

매독이 1909년에 독일의 세균학자인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파울 에들리히(Paul Ehrlich)에 의해서 매독균이 발견되어 살바르산의 (Salvarsan)약물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약 반세기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다. 매독에 희생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다. 그는 만년에 장님과 귀머거리였다. 매독의 3기는 매독균이 뇌세포막을 뚫고 뇌에 침범해서 뇌 세포를 파괴시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매독이 정신의학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매독이 뇌세포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정신병이 병균, 바이러스 등에 의해서 생기는 질병이 아닌가? 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신병은 외부의 침입자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제외되어지게 된다.

매독균은 임산부의 탯줄을 타고 태아에 침범해서 태아의 뇌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태어난 아기를 선천성 매독이 된다. 정신의학에서 매독의 희생자가 바로 철학자 니체이다. 니체는 만연에 정신이상자로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니체의 정신의학에 공헌은 아래를 보라). 매독 대신에 1983년에 등장한 AIDS(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면역세포가 파괴되어 결국은 사망한다, 섹스, 수혈, 정액과 점액으로 전염되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치료약물은 아직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역사가들은 중세시대, 밀레니엄의 1000년을 암흑의 시대(Dark Age)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간의 욕구의 억압, 통제, 복종, 금기, 금욕, 절제 등의 과도한 본능들의 억제 그리고 맹목적인 믿음이다, 그리스의 정신의학(히포크라테스)의 정신, 심리가 중세에서는 영혼으로 정신병이 악마, 마귀, 귀신으로 바뀐 것은 이미 정신병의 역사에서 수차례 다뤘다.

컬럼버스는 자신이 신대륙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자신이 위대한 발견을 하고도 그것을 모르고 죽은 2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컬럼버스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최면학을 발견한 메즈머(Mesmer)이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중세는 서서히 현대로(1500-1945년까지, 1945년 이후는 후기 현대)로 접어들어가면서 다양한 인간성에 변화들이 따라온다 이것에 의해서 인간의 본성이 깨어나게 된다. 계속해서 세계사들의 사건들이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친 것을 다뤄보자.

14세기-16세기에 일어난 문예부흥, 르네상스(Renaissance)는 인간성의 회복에 획기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태리를 중심으로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역사적인 사건은 로마제국이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양분되어지고 서로마제국은 외세의 침범에 몰락(AD 476)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비잔티움으로 이름이 바뀌고 콘스탄티노플의 수도를 중심으로 약 1000년 동안 번창하게 된다. 그러나 1453년에 오스만 터키에 의해서 함락되면서 로마의 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로마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탈리아로 피신하게 되면서 그들이 가져온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과 지식들이 르네상스의 시작을 촉발시켰다(2021, 10 9: 위키피아 참고).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의 3대 작가가 단테, 페트랄카 그리고 복카치오이다. 중세 문학을 공부하면서 단테의 신곡복카치오의 데카메론 읽고 깜짝 놀랬다. 데카메론은 7명의 여성들과 3명의 남성들이 흑사병으로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서 플로렌스의 한 빌라에 모여서 제 각각 이야기를 해서 100여개의 이야기를 모는 소설이다. 이 책은 영국의 문학의 시조인 초서(Chaucer)의 캔터베리 성당에 순례를 가는 순례자들의 제각각 이야기의 모음인 캔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에 영향을 미쳐영국의 현대 문학에 공헌을 했다(인디아나 대학의 무사(Musa)교수에 의해서 21개의 이야기를 번역한 데카메론, 1977: (주㈜: 참고).

잠깐 시선을 돌려서 데카메론에서 생생한 한 개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기술해보자. 한 사이비 신부가 어느 마을에 돈이 많은 과부가 살고 있다 라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유혹하기로 한다. 그는 심방을 핑계로 그녀를 만나서 하늘에 가브리엘 대천사가 그녀가 가장 이쁘고 귀엽다고 칭찬을 하면서 한번 만나볼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고 전한다. 그녀는 흔쾌히 승낙을 하고 xx 날짜 저녁 xx 시에 몸을 정결하게 하고 기다리기로 약속을 한다. 그 날에 그 사이비 신부가 날개 옷을 입은 천사로 변장을 해서 그녀를 방문하고 꿈 같은 하루 밤을 보내게 된다. 천사는 이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예쁜 여성이라고 칭찬을 하고 그녀와 동침을 했다. 그 다음에 또 만나기고 약속을 한다. 몇 번 만난 이후에 그 여성은 그녀의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하늘의 가브리엘 대천사가 그녀를 방문해서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자랑을 하자 그녀의 친구들이 언제 또 방문을 하는가? 를 물어보았고 그녀가 사순절 날인 xx 일 xx 시에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그 시간에 두 사람이 만나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 그 시각에 왈칵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어떤 천사인지 우리도 한번 보고싶다 라고 큰 소리를 쳤다. 깜짝 놀란 사이비 대천사가 옷을 벗은 알몸으로 문을 열고 아래에 있는 호수에 뛰어들었다. 헤엄을 치면서 물가로 나왔을 때 사순절 축제로 온 마을 사람들이 풍악을 울리면서 지나가는 그 행사에 그는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개처럼 기어가면서 멍멍 소리를 냈다. 마을 사람들이 이상한 개가 있다고 호통을 치면서 그의 목에 새끼줄로 걸어서 끌고 가면서 그의 몸에 꿀을 발라서 벌들 한데 쏘이게 했다.

위의 이야기는 지금도 필자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야기로 20년 동안의 대학의 강의에서 자주 인용을 했다. 데카메론은 인본주의 정신(인간의 섹스 본능을 포함)으로 중세의 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풍자한 내용의 이야기로 그 당시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베스트 셀러가 된 소설로 소개되어져 있다.

또 하나의 르네상스의 결정적인 공헌은 1493년에 독일인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의 등장이다. 종이 인쇄물의 출판이 르네상스의 부흥과 확대에 한몫을 하게 된다. 르네상스는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 건축, 과학, 수학, 철학. 신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들인 정치 철학자인 마키아벨리군주론, 인본주의자, 신학자, 철학자로 종교개혁에 영향을 미친 화란의 에라스무스자유 의지 그리고 인본주의의 선언서로 인정받고 있는 인간 존엄이 웅변을 쓴 미란도라(Mirandola)가 있다. 특별히 예술과 건축과 과학분야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la Vinci), 미켈란젤로(Michelangelo) 와 라파엘(Raphael)이 있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상상력의 부활이었다. 원시인들의 토템사상의 상상력이 고대와 중세로 이어지면서 유일신인 전지전능으로 그리고 르네상스에서 인본주의의 부활로 인간의 상상력이 꽃을 피우게 된다.

이제 역사적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중세의 기독교의 로마 교황의 힘은 이제 왕권에 의해서 서서히 약화되어 지게 된다. 로마 교황이 제 7차에 걸친 십자군의 원정으로 유럽의 왕들에 부과한 지원금의 마련 그리고 로마 교황청의 증축으로 인한 재정적인 부담으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 면제부의 발급으로 인한 부정, 그리고 승려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이어지면서 여기에 대한 왕들의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대표적인 왕이 영국의 헨리 8이다 그는 1509년에 즉위해서 1549년 사망 때까지 7번의 결혼 했다. 로마 카톨릭은 이혼이 금지되어 있다. 고로 그는 로마 카톨릭과 독립으로 영국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캔터베리 대 주교를 헨리 왕이 임명하게 된다. 그는 몇 척의 군함을 50척으로 증강시간 해군력의 군주로 기록되어져 있다(2021, 10, 9: 위키백과 참고).

이 시점에서 로마 카톨릭의 경직된 교리와 무조건적인 맹목적 믿음에 면제부로 인한 부정과 부패에서 반기를 들고 등장한 것이 바로 독일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의 종교 개혁이다. 1517년에 면제부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공개적인 토론의 핵심인 95개의 항목에 항의서를 성당의 대문 위에 부착한 행동으로 로마 카톨릭에서 파문을 당했다. 그가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해서 일반 신도들이 직접 하느님의 믿음에 접촉의 길을 열어주었고 이것이 영국의 제임즈(James)왕의 성서 번역에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그는 성서의 어디에도 성직자의 결혼을 금지한 조항이 없다는 점을 들어서 수녀였던 보라(Vora)와 결혼으로 개인교의 목사들에게 결혼의 길을 열어 주었다. 루터의 개신교는 루터란개신교(Lutherans)로 이어지게 된다.

또 한 사람의 프랑스의 종교 개혁가가 존 칼빈(John Calvin)(1509-1564)이다. 그는 인본주의 변호사로써 로마 카톨릭에서 탈퇴하고 종교 개혁에 뛰어들었다. 1530년에 프랑스에서 개신교에 대한 폭력의 위기에서 탈출해서 스위스의 바젤로 피신을 해서 이후에 제네바에서 개신교 학교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종교 개혁에 앞장서게 된다. 그는 두명의 자녀를 둔 한 미망인과 결혼(1540, 8)을 했다. 몇명의 자녀가 태어났으나 모두 유아기 때 사망후에 그들은 자녀가 없었다. 그의 종교는 칼빈주의로써 이후에 통합교회, 개혁교회 특별이 장로교의 등장에 공헌하게 된다(2021, 10, 17: 위키피아).

개신교의 종교개혁에서 성서의 번역은 영국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국의 제임즈 6세는 영국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영국에서 최고의 영어학자들을 47명을 소집해서`1604년에 시작해서 7년간 작업으로 1611년에 히브리어로 된 구약그리스어로 된 신약 영어로 모두 번역하게 된다(구약 39권, 신약 27권). 이것을 제임즈 왕의 성경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영국의 최고의 영어로 평가되어져서 영어학의 백미로 불린다. 영문학에서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제임즈왕 영어성경은 필독서로 알려져 있다. 치료자가 영문학도로써 영어사전을 옆에 놓고 영어성경을 완독 한 경험이 있다.

컬럼버스가 발견한 서인도는 기대에 대한 실망으로 일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나 항해사, 탐험가들에게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컬럼버스의 항해술은 많은 탐험가, 항해사들에게 자극을 제공했다. 개척 항로를 발견하려는 유럽의 군주들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탈리아의 항해사로 그리고 탐험가인 아메리코 베스푸치(Americo Vespucci)(1451-1512)가 2회에 걸친 항해지도의 탐색에서 서인도가 아니고 새로운 대륙이다 라는 것을 보고를 했다. 1532년에 공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로 명명되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포르투칼의 탐험가인 바스코 다가마가(Vasco da Gama)(1460-1524)가 아프리카의 남단 희망봉을 경유해서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을 했다. 이것이 유럽의 상선들이 인도, 중국에 이르게 되는 신항로의 개척이 되었다.

또 한 사람이 마젤란(Magellan)(1460-1521)이다. 스페인 국왕의 지원으로 1519년, 9월에 5척의 배로 270명의 선원을 대동하고 2년 계획으로 남아메리카의 남단을 경유해서 거대한 새로운 바다에 직면을 했다. 새로운 바다는 이전의 폭풍의 바다와 달리 너무나 평화로운 조용한 바다였다 그는 이 바다의 이름을 태평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마젤란은 필리핀에서 원주민에게 살해되고 남은 18명의 선원들이 4년간의 항해 끝에 1522년에 귀국하게 된다. 이것이 마젤란의 세계 일주 된다(캘리포니아주 국정교과서, 미국의 탐색, 1954).

신세계의 발견에서 유럽의 국왕들은 새로운 항로의 개척으로 향료사업(그 당시에 주요한 수입원)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왕실의 재정 수입으로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성경의 번역과 출판으로 성서가 개인의 손에 들어가면서 각 개인들의 종교에 대한 하느님과 직접적 소통이 새로운 대륙에 대한 삶의 열정과 종교의 자유를 통한 유토피아를 꿈꾸게 되었다.

영국의 일부 개신교의 종교인들이 카톨릭에 반대한 영국 교회의 죄의식 때문에 영국 교회에서 일탈해서 좀더 자유로운 네덜란드로 이동해서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새로운 그들 만의 자유를 위해서 드디어 1620년에 102명이 메이 플라우어(Mayflower)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향하게 된다. 이들을 미국에 입국한 첫 순례자들로 불리운다. 그들은 10주일의 항해 끝에 매사추세츠 주의 플레이마우스(Plymouth)1111일에 도착하게 된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절반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해를 넘기면서 그 다음 해 가을에 그들이 살아남은 것에 대한 그리고 추수한 가을의 곡식들을 감사를 올리는 축제가 바로 추수 감사절이 되었다.

1630년에 영국의 1000명의 청교도(Puritan)들이 드디어 다시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그들이 미국 땅의 개척자가 된다. 그들은 인디언들과 평화 조약을 채결하게 된다 그들의 조약은 이후에 50년 동안 지켜지게 된다 그러나 인디언의 추장이 점점 청교도들의 수가 많아지고 자신들의 영토가 좁아져서 전쟁을 선포하면서 인디언들과 전쟁이 시작되었고 결국 인디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내 몰리게 된다. 그들이 이주하면서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이 된다.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과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은 장로교 대학이다. 시카고의 노스웨스턴 대학감리교 대학이다.

이 시점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해외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된다. 유럽이 아시아의 대륙에 그리고 북미와 남미의 식민지 개척에 뛰어들게 된다. 스페인이 컬럼버스가 탐험한 지역들 그리고 영국이 북미의 개척지의 식민지의 확보에 뛰어들게 된다. 스페인은 원주민과 결혼을 허용해서 남미와 멕시코 지역에서는 혼혈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은 혼혈을 금지했기 때문에 미국은 앵글로색슨 백인 청교도가 미국의 성골이 된다.

컬럼버스가 탐험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스페인의 식민지인 멕시코의 땅이었으나 멕시코로부터 독립하면서 미국에 가입 그리고 미시시피 지역은 프랑스가 식민지로 개척한 지역이었다.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의 승리로 독립하게 되면서 미국이 미시시피 인근의 주들을 프랑스로부터 매입으로 그리고 알래스카는 러시아로부터 매입으로 하와이가 미국에 합류함으로써 미국의 50개 주가 형성된다.

이제 과학의 시대로 들어가 보자. 인간의 자존심에 치명타를 가한 최초의 과학자로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있다. 그는 카톨릭 교회에서 하느님의 섭리로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그리고 태양이 움직이고 있다 라는 지금까지의 천동설의 믿음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 바로 지동설이다. 이것은 이후에 1859년이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간이 원시인의 후손이다. 여기에서 또 한번의 충격이 인간의 자존심을 강타하게 된다. 드디어 1895년 프로이트가 인간은 자유 의지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원시적인 욕구에 끌려 다니는 불쌍한 존재이다 라는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자존심에 충격을 가한 3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져 있다(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p. 618-620).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성은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로 이어져서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면서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움직인다 라는 논문으로 로마 교황청의 분노를 사게 된다, 교황청은 마틴 루터존 갈빈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1633, 6월에 유제판결로 가택연금, 출판금지를 내렸다. 재판장을 떠나면서 지금도 지구가 돌고 있는데 라는 그의 말을 명언이 되었다. 그가 사망 후에 350년이 지난 1992, 10, 3일에 교황 요환 바오로 2세가 교회의 인정을 잘못하고 사과를 했다.

이어서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인 데카르트(1596-1650)가 등장한다. 데카르트는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그는 3세 때 엄마를 잃었다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을 했다 그는 예수회의 기숙사 학교로 보내졌다. 그가 12살에 외할머니의 부고를 받고 충격으로 우울증이 심각했다.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심사숙고해서 스스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생각으로 그 자신의 우울증에서 빠져나왔고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공주를 치료를 해주었다. 그가 인지치료의 시조가 된 것이다(Stolorow & Atwood, 2002: 주㈜: 참고).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인 파스칼(1623-1662)이 있다 그는 사망후에 1670년에 글모음인 팡세(생각)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은 연약하다 그러나 생각하기 때문에 강하다. 데카르트와 파스칼은 한번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두 사람의 강조가 바로 생각, 사고이다. 이것이 이전의 상상력사고, 생각 첨가되어 지게 된 것이다.

드디어 뉴턴(1642-1726)의 물리학이 등장한다. 만류인력 그리고 뉴턴의 1 법칙 정지한 물체는 정지하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해서 움직이려고 한다. 2 법칙가속도의 법칙, 3의 법칙 작동반작용의 법칙이다. 정신분석가들 중에서 비엔나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라파포드(Rapaport)가 정신분석가가 되어 물리학의 이론들이 정신분석학에 스며들어오게 된다. 물리학은 글자 그대로 만물의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우주 만물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가 시작되게 된다.

과학의 등장으로 시작된 자연연상인간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에서 시작된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이다. 이 계몽주의 운동은 전 세계로 확대되어진다. 학교가 설립되고 학문의 연구가 전 분야로 확대되어지면서 중세의 미신, 무지,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생각)은 날개를 달게 된다.

계몽주의가 한창 무르익어가던 1775년에 신부인 가스너(Gassner)가 신부복장을 하고 십자가성경책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굿(exorcism)인 퇴마의식을 했다. 군중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것에 온 나라가 소동이 일어났다(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유행했던 계몽주의 후반기). 그 당시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국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로 안정된 사회였다. 그 지역 카톨릭 주교는 신부가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서 신부의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카톨릭에서 퇴마의식은 지정된 교구 안에서 오래전부터 수행) 때문에 4명의 조사위원회를 조직을 했다.

4명의 조사위원의 한 사람인 의사인 메즈머(Mesmer)가 가스너가 수행하는 퇴마의식을 보고나서 신부복, 십자가, 성경책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내 손가락 하나라고 똑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라고 언명을 했다. 참가자들이 한번 해 보라고 했을 때 그는 귀신이 씌인 한 여성을 똑 같은 현상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가스너는 귀신, 악마, 마귀, 악령이 침범한 귀신이론으로 보았다 그러나 메즈머는 신학을 전공했다가 다시 법학을 그리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귀신에 씌인 것이 아니고신이 병든 것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정신병으로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치료 기법이 바로 자석 치료였다. 메즈머는 계몽주의의 아들이다. 그는 과학적인 지식으로 건강한 사람의 에너지가 구리막대기(레포, rapport)를 통해서 병든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이론으로 과학의 전기이론자장이론으로 그의 현상을 설명을 하는 여러 권의 책을 출판을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가서 프랑스 전역이 그의 치료 열풍에 열광을 하게 된다. 50년 후에 1843년에 영국의 외과의사인 제임즈 브레이드(James Braid)에 의해서 자석의 힘이 아니고 잠자는 것과 유사한 수면의 한형태 라는 뜻으로 그리스의 잠의 여신인 히포(Hypnos)의 이름으로 최면(Hypnotic)으로 신조어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이 50년 후에 프랑스의 가르코트(Charcot)가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연설로써 과학계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최면학이 치료에 공식적으로 도입되고 최면학교가 설립이 된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혔다(역동적정신의학의 역사를 보라)(Ellenberger, 1970: 주㈜: 참고).

이번에는 의사이자 물리학자가 등장하게 된다.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 라이프지그(Leipzig)대학에서 철저한 실험물리학자구스타브 페크너(Gustav Fechner)(1801-1887)이다.

그는 개신교 목사의 아들신학을 전공했다가 다시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으나 포기하고 다시 실험 물리학을 전공한 박학다식한 학자로써 그가 리이프지그 대학에서 강사로 재직할 때 많은 글들을 써서 백과사전으로 통한 인물이었다. 정작 교수가 되어 6년 만에 붕괴로 방안을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봉인을 하고 3년 동안 두문불출이 된다(오늘날 조울증으로 그 당시에는 병명도약물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문을 열고 나오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 라고 말을 하면서 털고 일어난 것이었다.

그는 이후에 몸과 마음의 공식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10년 동안 연구를 해서 드디어 신체()와 마음(지각)의 비율을 신체(분모)의 마음(분자)의 비율을 R 분의 R은 비례상수 K라는 수학 공식을 찾아냈다. 이것이 비로 감각의 최저 한계점으로 감각과 지각 심리학 안에서 공식으로 남아있다. 그는 이 공식을 그의 스승인 웨버(Weber)의 공식으로 천명을 했다.

그의 스승 웨버(Weber)(1795-1878)는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그러나 그는 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인간의 몸의 각 부분들의 감각을 느끼는 지각을 예민함의 정도로 수학적으로 측정을 해서 심리생물학의 책을 출판한 사람이었다. 페크너는 그가 실험한 내용들을 책으로 출판을 해서 심리물리학으로 이름을 붙였다.

드디어 페크너의 제자인 윌헬럼 분트(Wilhelm Wundt)(1832-1920)가 등장을 한다. 그는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그러나 그는 독일의 의사이자, 생리학자, 수학자, 심리학자인 허만 헤몰츠(Hermann von Helmholtz)의 조수로 있었다. 헤몰츠는 눈의 색깔의 원리를 규명한 과학자로 그가 수학, 화학, 물리학으로 모든 학문을 연구해야 한다 라는 주장으로 독일의 물리학회를 조직한 장본인으로 독일이 세계적인 과학의 선두주자가 된다. 분트가 의학을 포기하고 라이프지그 대학에서 철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그의 스승들의 연구를 이어받아서 인간의 마음을 수학적으로 측정을 하게 된다 즉 감각과 지각의 측정 실험들을 실험실에서 그리고 강의를 했다. 그는 심리학 교과서를 출판을 했다. 여기에서 1879년에 실험실에서 심리과학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1919년까지 184명의 심리학 박사들을 배출하게 된다. 그 중에서 70명이 외국인 학생들로써 18명의 미국인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첫 심리학 교수가 된 사람이 펜실바니아 대학의 제임즈 카텔(James Cattel) 그리고 그의 조수로 대학원 실험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의 추천으로 분트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처음으로 1896년에 심리치료 센터(Psychology Clinic)를 설립한 사람이 라이터 위티머(Lightner Witmer)가 있다(치료 심리학은 그의 신조어에서 시작).

위의 3명의 학자들은 모두가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고 그리고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프로이트 역시 유대교의 아들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다. 의사들이 심리과학을 창설한 사람들이다 라는 것은 흥미롭다.

여기에 목사들이 등장하게 된다. 구스타브 페크너와 유사한 기간에 덴막의 코펜하겐 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루터교의 목사가 된 소렌 키에르키에골(Sorn Kierkegaard)(1813-1855)이다. 그는 목회자가 되었다가 신학자, 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연구를 했다 여기에서 실존주의(Existentialism)가 등장하게 된다.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이 있는 그 존재 자체 즉 being-in-the world를 연구하는 것이 실존주의이다, 그는 인간의 존재는 태어날 때 불안하다 불안의 시작은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는 시점인 7개월-9개월 사이이다. 이 불안 때문에 인간은 의존을 찾게 된다. 원시시대의 유인원들은 불안해서 동물의 신들을 찾았다. 인간이 문명사회를 형성하면서 선지자, 지도자들을 찾았다 중세에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찾았다.

키에르키에골이 등장한 후에 40년 만에 등장프레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1844-1900)가 실존주의를 계승을 했다. 그는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서 그는 그리스 어학을 전공해서 바셀 대학에 24세에 최연소 교수가 된 천재이다. 그는 쇼펜하우엘의 영향으로 철학자가 되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우화는 그가 직접 쓴 것으로 필자가 여러 번 소개를 했다.

어느 날 미친 모습을 보이는 한 젊은이가 한 마을에 등장을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God)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신은 이민을 가고 없다, 신은 없다 라고 말을 했다. 신이 왜 없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다. 왜 신이 없어졌는가? 를 증명해 보이겠다 라고 말을 하면서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하느님의 계시가 아니다, 하늘에 무지개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과학이 발달)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일찍 왔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그 마을을 떠나갔다(May의 자아를 찾아서를 보라, May 1953, 주㈜: 참고).

니체는 과학의 발달로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과학의 힘으로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그리고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라고 예견을 했다. 니체는 1900년에 정신병원에서 사망을 했다.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1914년에 1 차 세계대전에서 13백만명이 희생되었다. 1939년에 2차 세계 대전에서 8배가 많은 8천만명이 희생이 되었다. 니체는 1890년부터 1910년까지 유럽의 젊은 지식인들을 열광시킨 장본인이었다(May의 자아를 찾아서를 보라, May, 1996: 주㈜: 참고).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시대인 전지전능한 신의 믿음인 중세로 되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니체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자아를 찾는 것이다, 자아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렵다 라는 그의 명언은 유명하다. 니체는 현대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키에르키에골의 등장 후에 50년 만프로이트가 등장을 한다. 프로이트는 키에르키에골의 글에 대한 인용은 없지만 쇼펜하우엘과 니체의 인용은 정신분석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불안증에 대한 연구였다. 그가 10년 동안, 히스테리아(모든 정신장애의 통칭), 불안장애, 신경쇠약증, 강박신경증을 10년 동안 연구를 해서 20세기의 역동학적인 정신의학의 견인차가 된다. 정신분석가들이 불안은 바로 엄마의 젖꼭지에서 시작된다. 성장의 과정에서 양육의 환경이 인간을 불안하게 혹은 자신감의 인간으로 양육되어진다는 것을 밝혀내게 된다.

역시 목사가 등장하게 된다. 독일의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목회학을 전공해서 목사가 되었다. 그는 신학자, 현상학, 해석학, 실존철학자의 대가가 된다. 그는 어린시절에 가난해서 교회의 지원을 받아서 공부를 했다. 목회학으로 목사가 되었지만 철학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철학심리학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는 성서 해석학에 대한 연구를 해서 이것이 프랑스의 언어학과 해석학으로 철학적 해석학으로 연결되어 가담어(Gadamer), 리코에르(Ricoeur) 등의 언어 해석학의 꽃을 피우게 된다. 히이데거는 데카르트의 사고의 중심에다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프로이트를 이어서 정신분석가들이 사고와 감정의 상호작용으로 신경증 치료를 개발하게 된다(Stolorow & Atwood, 2002: 주㈜: 참고).

실존주의는 니체에서 싸르트르(Sartre)로 그는 작가이자 실존철학자로 현실에서 일반 대중에게 실존주의를 알리게 되었다. 그는 1938년에 구토라는 작품을 출판하면서 현대인들이 신경증 보다 심각하지만 정신증보다 약한 새로운 정신과적인 장애를 보고를 했다. 이것은 1937년에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아돌프 스턴(Adolph Stern)에 의해서 신경증 보다 심각하고 정신증보다 약한 그 경계선에 있는 정신장애보드라인장애의 이름이 붙어지게 되었다.

목회학을 전공해서 목사가 되었다가 다시 컬럼비아대학의 치료 심리학으로 심리치료가 된 사람이 롤로 메이(Rollo May)이다. 그는 정신분석가인 에들러(Adler) 밑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나서 실존주의 철학을 그리고 인본주의 심리학자가 되었다. 그의 불안에 대한 연구와 자아에 대한 저서가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에 정신분석가가 된 에릭 프롬(Eric Fromm)이 정신분석학에 실존주의를 첨가해서 실존적 정신분석학을 보급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목사 직책을 강압을 했던 아버지에 반대해서 정신과의사가 된 (Jung)이 있다. 그는 유럽의 최초의 현대적 대학정신병원으로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 조현병)의 연구와 치료를 했던 부르고졸리(Burgholzli)병원에서 치료 국장으로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했다가 독립 융(Jung)이 1 회 국제정신분석학회의 첫 논문으로 조발성 치매에 대한 연구 논문은 그의 정신분열증 논문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그의 논문에서 프로이트의 제안을 거부하고 조발성 치매를 뇌의 질병으로 보았다. 고로 이후에는 더 이상 조발성 치매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신경치료 그리고 특별히 종교학을 연구를 했다. 그는 하느님의 힘과 인간의 자아의 힘을 비교해서 인간의 자아의 신비로움을 밝혀낸 장본인이다.

그에게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예일 대학 출신의 백만장자의 아들인 L씨가 융(Jung) 밑에서 성공적으로 치료를 받은 이후에 재발해서 융(Jung)을 찾아갔을 때 융은 그 당시 정신의학(1930년대)으로 알코올중독 정신증을 치료할 수 없으니 종교 단체인 옥스포드 그룹에 가 보라고 소개를 했다. L씨가 옥스포드 그룹에 참가해서 금주에 성공하게 된다. 그가 다시 알코올 중독으로 뉴욕의 알코올 중독 병원에 3번이나 입원경력이 있는 W씨에게 전도를 해서 금주에 성공하게 된다 그가 4번이나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치료에 실패한 B씨에게 그리고 B씨가 외과의사인 R박사에게 전도를 해서 11번이나 알코올중독 병원과 요양원에 입원 경력이 있는 외과의사가 금주에 성공해서 B씨와 R박사가 이름없는 알코올 중독자: 100명의 금주의 성공이야기1939년에 책으로 출판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이 책이 위대한 책(Great Book)으로 알코올 중독자에게 성서와 같은 책이 되었다(2021, 10, 16: 위기피아 참고).

여기에는 융의 유명한 명언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L씨에게 조언으로 옥스포트 그룹에 참가해서 필수적인 심리적인 경험을 권유를 했다 그것이 반드시 하느님(God)일 필요는 없다. 하느님의 힘과 같은 힘을 느껴보라고 조언을 했다. 예일대학의 L, 법대중퇴의 B 그리고 의과대학을 졸업한 외과의사 R박사융의 뜻을 간파를 했다.

그들이 만든 AA그룹탈종교, 탈교리, 탈이념을 내 세우고 알코올 정신증의 치료에 성공을 했다. AA 그룹에는 전문가가 없다. 그들은 순수한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이다. 융은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의 신의 힘과 같은 자아의 힘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전수를 해 주었고 그들은 정신분석이 신경증 치료에 국한된 1930년대에 (Jung)의 조언으로 정신증인 알코올 중독의 치료에 순수한 알코올 중도자들이 스스로 치료에 성공한 것이다.

심한 성격장애정신증 치료1950년대 이후에 프로이트의 이론의 수정하고 보완한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1950년대에 신경증과 정신증의 약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알코올 중독의 정신증 치료는 획기적인 치료였다. 전문가의 도움이 없는 스스로 개인들의 자아개발 치료가 된 것이었다. 그들은 12개명을 가지고 있다 그 계명에 따라서 AA 그룹의 구성원들이 따라가면서 서로서로를 치유를 내 나가는 것이다(상세한 것은 치료자의 음주(술): 심리상담과 치료를 보라).

자아는 뇌이고 뇌가 자아이다는 것을 이글의 초반부에서 언급을 했다. 뇌의 힘(자아의 힘)에 대한 유명한 시가 등장한다. 그녀가 바로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1830-1886)이다 그녀는 미국의 초반기 서정시인을 대표하는 3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다. 월터 휘트만, 에드가 알란 포우에밀리 디킨슨이다. 그녀는 매사추세츠주의 유명한 대학인 엠네스트(Amnest)대학의 창설자가 그녀의 할아버지였고 아버지는 재무이사 그리고 오빠는 재무로 70년간 봉사를 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워싱턴 D.C와 보스톤에 늘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조우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심각한 불안증세로 다락방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시를 썼다. 그녀의 시는 생전에 7편만 출판되었다. 대부분이 사후에 출판된 것이다(미국문학의 탐색: 1980: 교양과목 이수에서). 그녀의 시는 죽음, 사망, 불멸, 아름다움에 대한 시들이었다. 그녀의 뇌에 대한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Edelman의 저서 하늘보다 넓은 의식의 세계에서 인용, 2004: 주㈜: 참고)

 

는 넓이로 하면 하늘 보다 넓다

나란히 놓은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한다

 

는 깊이로 하면 바다보다 깊다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다.

 

는 무게로 치면 하느님의 무게와 같다

뇌의 힘하느님의 힘만큼 강하다

 

-Emily Dickinson--1890

 

인간의 뇌는 신비롭다. 3파운드 무게의 뇌가 가진 힘의 수수께끼가 3000년의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원시인들은 나약하고 불안해서 자연상태의 힘센 강한 동물들을 동일시했다. 그룹으로 문명사회를 이루면서 선지가들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가르침과 질서와 규율을 배우고 동일시했다. 유일신이 등장하면서 중세의 1000은 기도교의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을 동일시했다. 계몽주의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의학, 물리학과 과학의 등장으로 목사의 아들들과 의사들에 의해서 심리과학이 등장한다 그리고 목사들에 의해서 자아의 존재의 연구로 그리고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자아의 성장과 발달의 과정들이 하나씩 구체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3파운더의 인간의 뇌 안에서 지금까지 모든 발견들과 발명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뇌의 신비는 아직도 크게 밝혀진 것이 없다. 예일 의과대학의 신경학자이나 정신의학자 그리고 생리학자인 파울 멕글레인(Paul MacLean)은 뇌를 3층으로 진화된 것으로 보았다. 제 1 층은 파충류 시대에 진화한 뇌로 파충류이 뇌 그리고 두 번째는 포유동물의 뇌로써 태반에서 태어나는 동물들로써 감정의 뇌라고 불렀다 감정의 동물들은 사회생활로 그로 집단생활로 새끼들을 보호하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공동 대응을 한다 세 번째로 마지막에 진화한 것이 고등동물의 뇌발견, 발명의 뇌라고 불렀다. 이것이 대뇌 피질이다 이것을 뇌의 회백질이라고 부른다 대뇌를 알코올에 넣으면 회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Diamond, 1999: 주㈜: 참고).

죽은 사람의 뇌는 연구를 할 수가 없다 그냥 밝혀진 대로 대뇌의 굴곡된 부분들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뇌의 연구는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에 생각과 감정들을 전달하는 뇌파의 움직임인 EEG와 그리고 MRI(자기공명장치), PET(양전자 단층 촬영) 등으로 연구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뇌에 저장된 기억들이 어떻게 하나로 통합되어지고 분류가 되어지는 것은 프로이트가 밝힌 자아의 이론에서 설명되어지고 있다. 대뇌는 신비롭다 그러나 아직도 미개척의 분야로 남아있다. 단지 크기만 알려져 있는 정도이다. 곤충들의 대뇌는 크기가 우표 한다 그런데 인간의 대뇌는 테이블 보자기만큼 크다(Eliot, 1999).

시카고 대학의 뇌과학자인 엘리옷(Eliot, 1999: 주㈜: 참고)이 쓴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저서에서 그녀는 임산 1개월 째의 태아의 모습물고기, , 토끼, 원숭이,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촬영해서 소개하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위의 그림의 왼쪽에서 임신 1개월 때 물고기, , 토끼, 원숭이 그리고 인간의 그림이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자궁의 양수는 바닷물의 농도와 비슷하다 라는 점을 들어서 생물체는 바다에서 진화를 했다고 본다 그리고 태반 안에서 모양들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원숭이와 인간의 실제 게놈의 유전자 분석에서 2%만 차이가 있다, 98%는 유사하다는 연구들의 발표가 있었다.

과학자들은 위와 같은 진화의 과정에서 결과한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진화한 과정이 태반의 태아 안에서 그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개통발생학(Phylogenetic)으로 불린다 즉 인간의 유전적인 요소들을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진화를 닮아 있다 고로 우리가 태어날 때 그러한 유전자는 타고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후에 양육의 과정에서 발달이 첨가되어진다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개체발생학(ontogenic)이라고 부른다.

융(Jung)은 인간의 타고나는 유전적 요소 아치타입(archetypes)이라고 불렀다. 모든 인간들은 태어날 때 컴퓨터의 하드코어를 장착하고 태어난다(자폐아들을 임신의 과정에서 5감각의 분열로 태어난다: 프란시스 투스틴(Francis Tustin, 2004: 주㈜: 참고)의 자폐아를 보라). 다시 말해서 계통발생학과 개체발생학이 상호작용으로써 생후에 인간의 발달이 양육으로 결정이 되는 것이다. 버클리 대학의 신경과학자인 다이아모드(Diamond, 1999)는 그녀의 저서 “마음이라는 신비한 마술의 나무”라는 저서에서 타고나는 것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로 이 곳에 어떤 것을 집어넣는가? 하는 것은 재단사의 가위 끝이고 그리고 조각가의 칼끝에 달려 있다는 명언을 사용하고 있다. 부모와 신생아 사이에 상호작용이 인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알렉산더, 징기스칸 정복자가 되거나 혹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 오그스틴과 같은 신학의 대가가 되거나 혹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의 대가가 되든지 혹은 니체, 프로이트, 분트와 같은 철학자 혹은 과학자가 되거나? 반대로 정신이상자로 정신병원에 드나들게 되는 정신장애인, 범죄자, 살인자가 되는가? 하는 것은 바로 어린시절의 양육의 과정에서 부모와 아기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는 것이 심리과학의 142년과 정신분석의 126년의 연구 과정에서 밝혀지게 된 것이다.

뇌의 힘은 무한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발견과 발명들이 등장할 것인가? 는 아무도 모른다. 3파운드의 뇌의 힘은 무진장하다 그리고 이것을 정신분석가들이 뇌의 잠재력 혹은 자아의 잠재력(potentiality of self)이라고 부른다 즉 바로 자아의 힘이 아닌가?

 

이야기의 방향을 약간 돌려서 심리상담과 치료의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교적인 문제로 인한 갈등들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자주 이런 질문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생님은 교회에 나가십니까?”라고 물어본다. 치료자는 나는 어린시절에 교회에 다녔습니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치료를 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할 때 치료자는 나는 정신의학심리과학으로 치료를 합니다 라고 소개를 한다, “만약에 손님께서(나는 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을 손님으로 지칭- 나는 방문하는 사람) 종교적인 치료를 원하시면 목회상담이 있습니다. 목회상담 전문가를 찾아보세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치료자가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옆 방에 거주하는 한 젊은이가 목회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목회상담학 과목을 공부하고 있는 그의 교과서를 본적이 있다. 그 교과서는 심리상담과 치료의 교과서와 똑 같았다. 치료자가 깜짝 놀래서 목회 상담과목에서 사용하는 이 교과서는 우리가 심리상담과 치료의 과목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와 똑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교과서는 심리상담과 치료 과목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 같은데 그 위에 목회학을 첨가하게 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더 붙여서 어떤 사람들은 치료를 진행하다가 손님들이 “선생님 나는 모태 신앙인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 내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왜 심리치료를 받는가? 시간과 돈 낭비이다, 하느님에게 열심히 기도를 하면 병을 고칠 수 있는데 굳지 심리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는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그래서 내가 계속해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라는 의구심으로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치료자는 그 손님에게 “그렇다면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선생님 저는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심리치료를 찾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치료자는 그러한 손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만약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다면 연세 의과대학 그리고 이화여대 의과대학개신교 단체에서 세운 병원이 아닙니까? 그리고 카톨릭 의과대학카톨릭 교회의 단체에서 세운 학교가 아닙니까?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대학들 예를 들어서 뉴욕에 컬럼비아 의과대학과 뉴저지의 프린스턴 의과대학들장로교회의 재단에서 세운 의과대학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준다.

연세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장로교 신자인 언더우드 박사가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세운 연희전문학교로 시작되었고 그리고 미국의 오하이오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알렌(Allen)이 이듬해 의료선교사로 파견되어 중국상해에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그 때 갑신정변(1884)으로 인한 민영익(민 비()의 조카)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것을 성공적으로 치료를 해준 덕분에 고종황제의 신임을 받아서 우리나라에서 첫 의료원으로 왕실 의료원인 제중원으로 설립되어 이후에 일반 백성들을 치료해주는 민간 병원이 광혜원으로 개칭했다가 오하이오주의 스탠다드(Standard Oil) 오일회사의 백만 장자인 박애주의자세브란스(Severance)에 의해서 2회에 걸친 기부금에 의해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설립된 이후에 같은 장로교 재단에서 연희대학과 세브란스 병원이 통합해서 연세대학이 탄생한 것입니다(2021, 10, 23: 위키피아 참고).

믿음은 종교에서 그리고 질병은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합리적 것이다 라고 설명을 더 붙인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명언인 과학으로 종교를 증명하려고 하지 말고 종교로써 과학을 증명하라고 하지 말라 라는 문구를 소개를 한다.

치료자는 지인의 입원으로 세브란스 병원을 몇 번 방문을 했을 때 그 병원의 입구에 새겨진 유명한 명언을 종교적인 갈등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손님들에게 소개를 한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여기에 더 붙여서 치료자는 하느님께서 좋은 의사 선생님을 저에게 인도해 주셔서 나를 치유하게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하라고 일러준다.

치료자는 기독교에서 자주 인용되어지는 명언들을 소개해준다. 카톨릭 교회에서 옛날부터 사용하고 있는 고해성사(告解聖事)(신자가 세례 뒤에 범한 죄에 대해서 사제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받는 일: 다음백과)는 심리상담과 치료에서 하고 있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고통스러움과 단점과 결함들을 치료실에서 이야기하면서 치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닌가?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명언들 즉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내 문에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한 열릴 것이다

또 한가지 유명한 명언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구절은 지금까지 성경에서 따온 문구로 생각했다 그러나 위키피아에서 이 문구가 성경에서 나온 문구가 아니고 그리스의 4대 비극의 작가인 소포클래스(Sophocles, B.C. 409) 가 한 말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포클래스는 오디프스 왕의 작가로서 프로이트가 오디프스 콤플렉스로 이론화 것이다. 이 명언은 하늘은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Heaven never helps the men who will not act)라는 말로써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작가인 유리피테스에 의해서 먼저 너 자신이 스스로 노력하라 그리고 신의 도움을 요청하라 로 사용되어 지기도 했다. 이후에 로마의 시인 오비드(Ovid, A.D. 8세기)(나르시우스의 신화를 프로이트가 인용한 나르시즘 이론) 신은 도전하는 사람을 도와준다(God himself those who dare) 그리고 중세와 현대까지 이 명언이 이어져온 것으로 노트 되어져 있다.

위키피아에서 알게 된 것은 성서에는 유사한 문장들이 10개나 등장한다(골로새서 323, 신명기 238절 등등). 한 연구 보고서는 미국인들의 81%가 이 명언이 성서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되었다(2021, 10, 23: 위키피아).

이와 유사한 문장은 회교의 코란(Quran)(13: 11)에서도 유사한 명언들이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언자인 무하마드(Muhammad)가 낙타를 묶지 않고 가는 한 신도에서 낙타를 묵으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신도는 나는 알라 신만 믿습니다 라고 말을 했다. 이 말에 더 붙여서 무하마드는 “알라 신에게 기도를 하고 낙타도 묶어라”하고 이야기를 했다. 중국의 고전에하늘은 부지런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는 4자성어로 천도수근(天道輸勤이라는 용어가 있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진인사대천명(䀆人事待天命)으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라는 용어들이 있다.

또한 이와 유사한 용어로써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There is a way there is a will). 뜻을 세우고 노력하면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면 길이 보이게 된다 명언 역시 치료에서 많이 사용된다.

위와 같은 명언들은 종교적인 갈등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사용하는 명언들이다.

이제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종교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들의 치료 사례 쪽으로 이동해 보자. 종교를 통해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잘못된 종교적인 믿음으로 삶이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치료자가 치료를 몇 개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21년 전에 2000101일부터 1주일에 일요일을 제외하고 6일 동안 1회당 2시간으로 1주일에 12시간으로 2년 동안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받게 된 2세의 한 지방 명문대학 휴학생이었다. 그녀는 초, , 고교 시절에 반장과 부반장을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교 부회장으로 그리고 그녀의 반에서 1, 2등을 한 재원이었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3학년 초에 SKY 대학의 한 사범대학 영문과의 모의시험에서 70명의 모집에 30등 정도로 충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고교 3학년 때 여름방학에 혼자서 공부를 하다가 주의집중의 실패로 성적이 하락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희망은 영어 교사가 꿈이었다. 그녀는 지방의 명문 사범대학 영문과를 지원하려고 하다가 불안해서 영문학과에 지원해서 합격을 했다. 영문과에서 상위 14%의 학생들에게는 교육과정 이수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에 영어 교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영문학과에 지원을 했었다. 그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정문에서 나눠주는 어떤 교회의 팜플렛에서 한 여자대학생의 간증을 읽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깊은 관계를 하고 나서 그 남자 친구가 떠나가버리는 바람에 하느님에게 깊은 정욕죄를 지었다 라는 문구에게 깊은 정욕 죄”라는 말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었다. 그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게 되자 인터넷으로 그 뜻이 남녀의 섹스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학식 이후에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남자들의 성기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그녀의 표현). 그녀는 버스를 타고 남자들의 성기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3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기도 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알게 영문과로써 교사 지망생인 3명의 여자친구들과 처음에는 함께 다니다가 자신의 비밀이 탄로날까 두려워서 혼자서 외톨이가 되었다. 그런데 대학의 한 과목의 젊은 교수가 강의를 할 때 그의 성기가 눈에 띄는 것 때문에 그녀는 그 과목에 출석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그 과목을 수강 취소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방치한 것이었다. 1학기 성적에서 그녀가 참석하지 않는 그 과목에서 F 학점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영문학과에서는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한 과목만 F가 나와도 교직과목 이수에서 제의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녀의 3명의 친구들과 단절로 친구들로부터 그러한 정보를 몰랐던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좋은 성적으로 계속 승승장구를 하는데 그녀는 탈락으로 희망이 사라졌다. 그 때부터 문제가 더욱 더 악화되었다. 그녀는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그녀가 어떤 생활정보지로부터 안수기도로 무료 치료를 한다는 문구를 발견하고 그 교회를 찾아갔다. 그 교회는 개척 교회로 신도수가 적었다. 그녀처럼 치료를 받으러 오는 몇 명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녀는 목사님에게 남자들의 성기가 눈에 띈다 라고 실토를 했다. 젊은 목사님은 음란귀신이

씌었으니 안수기도를 하면 고칠 수 있다고 했다.

1년 동안 안수기도를 받았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그녀의 유방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거부하지 그 목사는 음란귀신을 쫓아내는데 필요하다고 해서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불쾌하고 기분이 상했지만 잠을 수밖에 없었다. 1년이 지나가면서 효과가 전무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젊은 여성의 유방과 몸을 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를 그 교회에서 떠나라고 했다. 그 목사님은 안수 기도로 유명한 한 대형 교회 목사님을 소개를 해 주었다. 그녀가 그 교회를 찾아갔다. 그 교회의 목사님의 사모님이 그녀와 면담을 했다. 그 때 그녀가 입에서 그녀 자신도 모르게 섹스적인 낱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개 불알, 개좇, 개년, 원수 마귀, 더러운 년”등의 욕설들이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 목사님 사모님은 그녀를 “음란귀신, 원수 마귀가 붙었다”라고 질책을 했고 담임 목사님을 소개시켜주지 않았다.

이후에 그녀는 7년 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기도를 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늘 음란한 만들, 오빠가 엄마와 근친상간, 남동생이 엄마와 근친상간 등의 강박증적인 섹스 용어들이 환청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교회에 가면 더욱 더 환청과 이상한 행동들이 악화되는 것 때문에 교회를 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를 붙잡으러 경찰이 온 것으로 착각하고 2층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었다.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으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좀더 구체적인 망상과 환각과 환청의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서 그녀의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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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분석을 통한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의 치료

29세의 여성환자로 병원에서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받아 4개월동안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로 지금도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지방 명문대학 영문과 3학년 휴학 후에 9년간 정신장애와 싸우고 있다. 병원에서 진단은 정신분열증 중에서도 "심한 퇴행성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진단되었다. 9년 동안 두문불출로 방 안에 갇혀서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살아왔음. 최근에 4개월간 두 곳에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입원하여 있다가 환청으로부터 빠져나온 후에 심리치료를 받게 됨, 가족 관계는 부모님, 오빠, 남동생 등 5명의 가족과 함께 생활해 왔음.

치료의 시작: 2000 10 1일부터 1주일에 일요일을 제회하고 6, 하루에 2시간씩 심리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Session 1.

29세의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미성숙해 보였다. 이제 중학교 3년이나 고등학교 1년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남자의 성기에 눈이 자주 가서 사람들을 피한다"는 것이 자신의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초에 남자들의 성기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대학 입학 후에 새내기 때 신입생 환영 모임에 참석한 후에 학교 앞에 있는 한 기독교 전도 모임에 갔다가 간증집을 보게 되었고 그 속에 어떤 여성이 쓴 글에서 "깊은 정욕 죄"라는 말에 발목이 잡혀서 "정욕"이라는 말에 계속 끌려 들어가 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후 교회의 서점에서 성()에 대한 잡지, 글 등을 강박적으로 읽게 되었다. 이후에 지금까지 마음 속에 성욕구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살고 있으며 대학 3학년 때 휴학계를 제출하고 집에서 칩거를 하고 있다. 초경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정상적으로 시작하였다고 했다.

환자의 표면적인 증세는 분명히 섹스와 관련된 문제였다. 환자는 자신이 "눈에 남자들의 성기만 띄지 않는 다면 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남자 성기가 눈에 띄는 문제 때문에 학교를 휴학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환자는 지금 생리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을 정신과에서 주는 약물 탓으로 알고 있고 성 욕구를 억제하여 성 욕구 자체를 거부하고 있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악마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얼굴이 어린아이 얼굴처럼 나이가 적게 보인다는 말에 친구들이 동안(童顔)이라고 불러주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환자는 어린이가 좋다고 했다. 이유는 어린이는 근심, 걱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목소리도 어린아이 목소리이고 이성 친구는 지금까지 가족 중에 오빠와 남동생 이외에는 대화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환자가 사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춘기는 어른이 되는 준비 기간이다. 이성을 사귀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대인관계를 원만히 해서 사회에 나가서 성인으로써 살아가는데 대한 준비를 배우는 시기인데 환자는 이것을 거부하여 어린이로 되돌아 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Session 2.

성은 더러운 것이 아니다. 각종 신문에 난 자위행위 기사, 정신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들이 쓴 기사 모음을 읽어보게 했다. 자위행위를 한다는 것을 알 게 된 나이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나체로 거울 앞에서 몇 번 자신의 몸을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대학 새내기 때 "깊은 정욕 죄"에 걸려서 자신의 몸을 손으로 만지면서 감각적 즐거움을 느낀 것에 엄청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자위행위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말끝마다 자위행위를 하기 싫다고 되풀이했다. 머리 속에 남자 성기 생각이 들면 남자의 성기가 눈에 자주 띈다. 그래서 피한다. 머리 속에 그러한 생각이 없으면 조용해져서 편해진다는 것이었다. 머리 속에 남자의 성기 모습을 지우려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 생리 현상과 사춘기의 과정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 고등학교 때 반장, 부반장을 하고 고등학교 때는 학급에서 1등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방 명문대의 영문과에 합격했다.

친한 친구가 없었다. 마음 속을 털어 놓고 지내는 친구가 없었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이자 같은 대학 미술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가장 친한 유일한 친구였다. 그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가서 그 친구로부터 각종 잡지를 보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남자의 성기가 보인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남자를 한 사람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 일본어 강좌 시간에 그 친구가 소개한은 남자를 멀리 서서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소개받지 않고 나와 버렸다.

 

Session 3

여자 친구가 "나도 중학교 2학년 때 남자의 성기가 눈에 띄어 혼이 났다",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가 그 여자 친구의 유일한 대화의 전부였다.

1. 환자의 대화의 내용은 전부 짧은 문답식이다. 묻는 말에만 간단하게 대답을 하는 대화 스타일이다.

2. 공부만 중요시해서 공부만 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친구와 사귀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라고 생각해 왔다. 그 시간에 책을 하나 더 보겠다고 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왔다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3. 초등학교 때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은 있으나 자기 집에 데리고 온 경험은 없었다. 친구의 집을 방문하면서 "우리 집은 이층 집으로 부자'라고 거짓말을 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빈민촌에 달 동네 대문 앞에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음 날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면서 비밀을 지켜주었다. ,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놀러 간 적이 거의 없었고 초, 중 고등학교 때까지 자신의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고 했다.

4. 자신의 자존심이 꾸겨질까 봐서 철저히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내왔다. 마음 속을 친구가 알까 봐 두려워하면서 지내왔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어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있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 들과의 관계는 대화가 없다. "밥 먹었냐, 공부 잘 했냐, 옷 갈아 입어라"가 고작이고 그 외의 대화는 없었다. 정보만 전달하는 표면적인 대화가 고작이다. 환자로 하여금 감정을 넣어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상담의 스타일이 대부분 치료자가 설명을 하고 환자는 이해는 스타일로 변해갔다. 마칠 때가 되어가자 정신병원에 약을 타러 가야 하는데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를 걱정했다. 중학교 수준의 정신연령 수준이었단. 어린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 느냐? 라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Session 4.

최초에 남자 성기에 눈이 간 것은 수능 시험 후에 졸업까지 조용한 기간이 12월 달쯤이었다. 젊은 수학 선생님과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면서 수학 선생님의 성기에 눈길이 갔다. 그 때는 내가 여자이고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성욕구를 받아들였다. 그 때는 문제가 없었다.

대학 입학이 결정되고 새내기 때 학교 앞에 있는 선교 단체에서 준 간증집에 어느 여대생의 간증이 실려 있었고 "깊은 정욕 죄"라는 구절에서 그 여성이 남자 친구를 자신의 방으로 유인해서 깊은 정욕 죄를 지었고 그 남자 친구는 다른 여성과 결혼을 했다는 내용에서 "깊은 정욕죄"는 섹스 관계이고 남자 성기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으나 이 간증을 한 그 여성은 저주를 받았고 성욕은 더럽다고 거부하게 되었다.

대학 1 2학기 동안 남자 성기가 자꾸 눈에 띄어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기 어려웠다. 버스에서 남자 성기가 눈에 띄는 바람에 차를 5번이나 갈아타게 되었다.

강의를 하는 교수들의 성기가 눈에 자주 들어왔다. 교수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았다.

3학년 대 학교를 휴학하고 1년 동안 개척 교회에서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았다. 목사님이 사모님 앞에서 자신을 반듯하게 눕게 해 놓고 자신의 유방을 옷 위로 만지면서 귀신이 붙어서 그러하니 더러운 생각을 하지 말도록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사모님에 자신을 더럽게 보고 남편인 목사가 처녀의 유방을 만지는 것을 보고 사모님의 거부감을 느꼈다. 이 교회에서 떠나라는 말을 사모님으로부터 들었다.

1년 후에 효과가 없자 목사님은 다른 교회를 소개해 주었고 그 교회에 가서 동료들에게 "남자의 성기"가 눈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새 교회에서 목사님 사모님을 소개받았고 사모님과 같이 기도 중에 자신의 입에서 "개 같은 년, 원수 마귀, 개 불알, 개 좆----"등의 말들이 컨트롤할 수 없이 새어 나와서 사모님이 "원수 마귀가 붙었다"고 질책을 했다. 이후 몇몇 동료들은 위로를 해 주었으나 다른 동료들은 자신을 피해 다녔다. 이 때가 대학을 휴학한지 1년쯤 되는 시점에서 최악의 상태였다. "개년, 개 불알, 개 쫒, 원수 마귀"라는 환청이 귀에 들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는 "더러운 년, 개 년"이라는 말 소리가 직접 귀에 들려왔다. 가족들이 자신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말리기 위해서 붙잡으려 온 줄 알고 교회의 2층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xxx 종합 병원에 입원을 하여 1달간 외고 치료와 정신과 치료 약물을 먹었다. 약물 복용을 중지하고 기도하면 회복된다고 기도에 의지해서 지금까지 그 교회에 7년째 다니고 있었다.

환청으로 들리는 말은 늘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말들인 "원수 마귀, 개 같은 년, 개 불알, 개 좆"이 대부분이었다.

간증집에서 읽은 "깊은 정욕 죄" 사건 이후에 자신의 마음 속에 남자의 성기가 생각이 났고 남자 성기가 눈에 띄어 "내가 대학에 공부하러 왔지 남자 성기를 보러 왔냐?"라고 자신을 질책했다. 남자 성기의 생각을 억제하면 할수록 입에서 섹스에 대한 욕설이 튀어나온다(뉴턴의 제 3의 법칙인 작용, 반작용의 법칙)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엿보고 듣고 있다는 두려움의 생각이 지각으로 바뀌고 이것이 다시 청각 감각으로 바뀌어 자신의 귀에도 환청으로 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개 같은 년, 개 불알, 개 좆"는 내가 마음 속에 평소에 늘 내 자신을 질책할 때 사용한 말들이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생리적 현상은 마음으로 막을 수 없다. 강의 도중에 오줌이 누고 싶을 때는 시계만 쳐다볼 뿐 교수님의 강의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예를 들어서 생리와 욕구 사이에 관계를 설명했다. 오줌을 누고 나면 오줌 눈다는 생각은 사라진다는 것을 알 게 했다. 섹스 욕구도 누적이 되면 자위행위로 풀어야 한다. 2-3회 자위행위를 하라, 자위행위를 하지 않고 있으니 머리 속에 온통 섹스 생각으로 가득하게 차 있다. 이것을 방출하고 나면 성욕구가 당분간 사라진다는 것을 알 게 했다.

환자는 기도를 하면 머리 속의 생각을 지울 수 있다고 믿고 이것을 위해서 7년간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많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 "남자 성기의 생각"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원수 마귀의 소행이니 원수 마귀를 제거하면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7년 동안의 시도는 실패했다. 고로 그것이 원인이 아니다 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생리적 욕구를 받아들이면서 자위행위를 하면 그 욕구가 방출된다. 그래서 머리 속의 생각이 제거된다. 욕구가 없으면 생각이 안 난다. 심리 과학과 정신 의학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 게 했다.

종교에서 기도로 모든 병을 고친다고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있어서 심리치료의 필요성을 외면하고 있었다. 환자의 믿음이 옳다면 카톨릭과 기독교 계통의 의과대학, 고신 의과 대학 등은 왜 의사를 양성하는가? 기도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면 기독교 단체에서 의과대학을 왜 세우고 치료를 받게 하고 있는가? 환자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도록 했다.

 

Session 5.

30분 마다 10번의 부정적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10시간 동안을 계산하면 하루에 200번의 부정적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고 한 달로 계산하면 6000번이 되고 이것을 1년 동안 계산하면 72000번 그리고 7년 동안 계산하면 504000번의 자기 학대를 하고 있는 셈임을 알 게 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지 믿음이 습관화된 것이었다.

정신분열증의 핵심은 사고 장애이다. 생각의 분열, 감정의 분열, 행동의 분열에서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통합할 수가 없다. 정신분열증은 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핵심 요인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부모의 강한 치료 동기가 필수적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환자와 치료자의 치료 동맹, 치료자와 부모와 신뢰 및 가족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2. 커뮤니케이션의 수정이 필요하다

3. 대인관계의 결함 수정이 필요하다. 동성 친구와 이성 친구를 사귀게 해야 한다

4. 감정을 표현하고 방출시킨다

5. 자긍심 즉 자신감을 기르고 나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한다

6.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가진다.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알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한다

7. 자기 주장 훈련을 한다

 

session 6.

어제 저녁에 환자 한데서 전화가 왔다. 성기를 거울로 보고 있으나 클리토리스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어디를 자극하면 자위행위를 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자신의 스타일 대로 하라고 일러주었다. 상담 시작 4일 만에 자위행위를 시도한 것이었다.

5일째 상담에서 자신의 몸을 만져보니 즐거웠지만 클라이맥스에는 오르지 못했음을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어떻게 자위해위를 하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자위행위에서 오르가슴을 느껴야 한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환자의 말 속에서 자기 자신을 "개 같은 년, 가족들에게 짊만 된다. 원수 같다" 등의 말들이 자주 나왔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좋게 보느냐? 라고 물었을 때 10%라고 대답을 했다. , , 고등학교 때 자아는 90% 정도 되었으나 지금은 자신을 학대하고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고 자아를 처벌하고 있는 것을 중지시키도록 했다. , 고등학교 때는 교회에 열성적이지 못했고 대학 새내기 때 교회 선교 간증집을 일고 "깊은 정욕 죄"에 걸려 들었고 휴학 후에 1년 동안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으면서 악화되었고 xxx 교회에서 7년간 "염려 걱정 없이 성령으로 문제를 해결해 준다"라는 말 그대로 믿고 머리 속에서 근심, 걱정을 제거하려고 시도를 했을 때가 최악의 상황이었음을 인식하도록 했다.

 

자아 감각을 높이기 위해서 자아를 칭찬하도록 했다. 환자는 부모님의 기대에 실망을 주었고 가족들에게 짊이 되고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진작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운 것이 아니고 부모님을 위해서 운 것을 지적했다. 부모님 중에서 자기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 사람은 어머니라고 했다. 염려 걱정을 항상하고 있는 어머니 때문에 자신도 염려 걱정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자동차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오빠는 이런 이야기에 화를 내는데 자신은 사랑스러운 말로 들렸다고 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는 길을 건널 때 자동차를 조심하라는 말이 합당한 말이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가 자동차를 조심하라는 말은 엄마가 환자를 믿을 수 없는 미성숙한 아이로 보고 있음을 알 게 했다. 환자는 자신이 지금도 어머니의 그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앞으로도 병에서 회복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함을 고통스러워했다. 심리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어린이로 남아 있기를 원하고 있다고 해석해주었다. 사춘기의 성을 거부하고 근심 걱정이 없는 순수한 어린이는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듯이 지금도 정신병원에 다니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음을 알 게 했다.

환자는 부모님을 위해서 울었다.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회복되어 돈을 벌면 방 4개의 전세를 구해서 가족들이 행복하고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 오빠와 둘이서 살고 있는데 기분은 좋으나 행복하지는 않다고 했다. 이유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님을 우선시하고 자신은 뒷전이었다.

정상 발달은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독립하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이 되면 집에서 독립해서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환자는 발달이 거꾸로 가고 있다. 섹스 거부, 사춘기 거부, 성인이 되는 것을 거부, 독립 거부로 어린이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의존해 가고 있었다. 부모님보다 내 문제가 우선해야 한다. 내가 잘 살아야 부모님에게 효도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중간 부분 생략----

 

Session 12

마음 속에 있는 나쁜 상처들과 분노, 적대감, 미움, 섹스는 더럽다. 나는 근친상간을 했다 등을 표현하게 했다. 내 마음이 깨끗해지도록 말이다. 옛날에 좋지 않는 생각들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나쁜 마음은 닦아 내야 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카타르시스를 의미한다. 내 마음 속에 더러움을 담아 두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마음 속의 생각을 이야기해 본 사람이 없었다. 이제부터 치료자에게 쏟아내야 한다. 마음 속의 생각들을 정화시켜야 한다. 나쁜 생각들이 물러 나간 텅 빈 자리에 사랑,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마음이 좋으면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1. 부모님의 섹스 문제들을 환자가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와 3명의 자녀가 한 방을 사용했다. 가난해서 방이 없었다. , 고등학교 때 3개의 방에서 엄마와 여동생,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이 각각 사용해 왔었다.

2. XX 교회 목사님의 영향력이 컸다. 중요한 기도를 할 때에는 부부가 섹스를 금지하고 각자가 방을 사용하라고 설교를 하고 있고 어머니는 이 설교를 듣고 딸을 위해서 지금도 남편과 각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3. 3 말기 때 환자의 담임 목사가 신도인 여 집사와 섹스 스캔들로 교회에서 쫓겨난 사건이 있었다. 그 목사님을 따라서 30여명의 신도가 교회를 떠났다. 그 목사님은 잘못을 고백하고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사라졌다고 했다. 그 사건 후에 30대 후반의 새 목사님이 왔을 때 섹스 문제로 상담을 할 수가 없었다.

4. 학교 휴학

5. 벼룩 신문의 광고를 보고 안수 기도로써 무료로 병을 고쳐준다는 말에 1년 동안 안수 기도를 받으면서 목사님이 환자의 유방을 만지면서 성적 흥분을 주었다. 원수 마귀가 몸 안에 있다고 마음의 병을 더욱 악화시켰다.

Session 13. 증세가 심했을 때를 시기별로 분석해 보면

1차 시기: 목사님에게 1년간 안수 기도를 받고 나서 효과가 없자 다시 xx 교회를 소개받아 교회의 담임 목사님의 사모님과 면담 시에 음란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개 좆, 원수 마귀, 개 불알, 개 년, 더러운 년" 등의 말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후에 환청이 들려왔다. 그 환청의 내용은 환자가 한 바로 그 욕들이었다. 이후 오빠와 아버지, 남동생은 교회에 나가면서 병이 더욱 악화된 것을 보고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교회에서 기도 후에 가족들이 자신을 붙잡으러 온 것을 알고 2층에서 뛰어내렸다. 골절로 xx 종합 병원에 입원하여 정신과 치료를 한달간 받았다.

종합 병원에 골절로 입원해 있을 때 계속해서 환청이 들려왔다.

-고모가 주스를 컵에 부어주는 것을 오줌을 주는 것으로 보였다.

- 종군 위안부 뉴스를 듣고 병원이 위안부들이 들끓고 있는 야전군으로 사람들이 환자 자신을 성폭행하려고 하고있다 라고 믿고 있었다.

- 환자인 자신에게 성 관계를 강압하고 있는 것으로 들렸다. 그래서 강간당하지 않기 위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밤새도록 잠을 쫓으려고 했다.

2차 시기- 퇴원 후 7개월-8개월 사이, XX 교회에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엄마와 함께 기도회에 참석했다. 머리 속에서는 섹스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고로 기도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 후 1달 간 교회 소속 XX 기도원에서 집중 기도에 참석을 했다. 마음을 정화시키려고 기도회에 참석했다. 기도원에서 죄의식과 섹스 억제를 더욱 강화시킨 것이었다. 머리 속에서 엄마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생각이 떠 올라서 기도원에서 퇴출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가 나를 죽이려고 하니 나를 보호해주세요"라고 파출소에 찾아갔다. 파출소에서 정신 이상으로 전화가 와서 오빠와 남동생이 데리고 왔다.

엄마에게 불효하고 있다고 죄스러워했다. 엄마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환자는 열심히 기도를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환자는 정신 집중이 안 되었고 기도 중에 잡념이 많아서 기도를 할 수 없었다. 기도 중에 남자 성기만 생각이 났다고 했다. 집에 온 후에 환청이 들렸다. 내용은 오빠와 엄마의 간음 상상, 남동생과 엄마의 간음이 상상되었다. 환자에게는 오빠, 아버지, 남동생이 관심을 보이면 성적 접근으로 상상되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간음으로 생각이 연결되었다. 이것은 가족 관계에서도 긴장되고 편안하지 못해서 환자가 가족들로써 두려워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환자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반드시 날씨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기분이 나쁠 때 천둥과 번개가 쳤다. 내 기분에 따라서 날씨가 변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느님이 나에게 특별한 힘을 주어서 내 기분이 우울할 때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게 된다고 믿고 있었다. 망상이 생긴 것이었다. 이것을 설명하자면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이 외출을 많이 한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 못 나가고 있는 나는 내 자신을 더욱 의식하게 된다. "멀쩡한 사람이 할 일이 없이 집에만 처박혀 있다고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해서 나를 쳐다본다"고 불안해 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환자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환자는 사람들의 시선에 더욱 신경을 많이 써다 보니 내 자신을 더욱 의식하게 된 것이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내가 오면 사람들은 집 안에 있게 된다. 환자는 집에 있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외출하지 않고 집에 있으니까 나를 보고 왜 집에 처 박혀 있는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환자의 왜곡된 생각 즉 망상적 사고에서 생겨난 것임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웃의 시선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있고 비웃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낮에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낮에 샤워를 하지 못했다. 이웃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불 속에서 옷을 가라 입었다. 낮에는 이불 속에 누워있고 밤에는 세수하고 옷을 가라 입는다. 낮과 밤이 거꾸로 되었다. 낮에는 두문불출하고 밤에는 활동을 하니 가족들이 놀면서 낮에는 무엇하고 있다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게 시끄럽게 만든다고 눈총을 주었다.

지난 여름 이후 올해 5월까지 완전히 가족들과는 단절된 속에서 혼자 방에 틀어 박혀 살아오고 있었다. 환자는 창문에 담요로 커튼을 치고 햇볕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방문을 잠그고 혼자서 갇혀 지내온 것이었다.

 

Session 14. 2000년 10 16

환자는 교회에서 기도를 할 때 옆에 있는 사람이 통성으로 기도를 하거나 옆 사람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면 자신이 훌륭한 위대한 인물이 되지 못하도록 질투해서 방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은 엄마가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자신보다 1살이 적은 아가씨가 "원수 마귀"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그 아가씨에게 "너는 공장에 다니는 공장 떼기이니까 그런 말을 한다"고 분노해서 욕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의 기도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다. 환자는 교회에서 초기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많이 사랑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눈물도 매말라서 기도도 마음이 집중되지 않고 잘 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고 있었다.

1. 환자는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착각하고 있다. 하느님이 자신에게 큰 힘을 주어서 기후가 내 기분대로 맞춰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신분열증적 사고 방식이다. 교회에서 통성 기도를 할 때 하느님에게 "하느님께서 큰 인물로 쓰시려고 이러한 시련을 주고 있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환자는 자신이 이 말을 자주 듣게 되었고 자신이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시기 질투해서 방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투서시켜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었다.

2.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고 산다. 환자는 파출소에 가서 자신의 집 2층에 죽은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경찰이 환자의 정신 이상을 눈치를 채고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고 아버지에 의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래 층 아주머니가 "2층에 죽은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정신 이상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었음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더욱 많이 쓰게 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의식이 되어 옷을 바꾸어 입지도 못하고 낮에는 이불 속에 숨어살고 밤에만 활동을 하였다.

3. 자신의 약점과 단점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까 부끄러워서 자신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단점을 보고 자신을 싫어할 것이다. 욕을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 질투를 해서 환자의 기도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한다. 다른 사람이 시기 질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이 투사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옆에 오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막아 주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4. 거짓 관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친구들에게 단 한번도 자신의 집안의 사정이나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혹은 4학년 때 친구에게 우리 집은 부자이고 2층 집에 산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다. 자신의 단점, 수치심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인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친구 관계는 진실한 관계에서 오랫동안 계속이 가능하다. 상대가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되면 관계는 끊어진다. 환자는 위의 요인들을 잘 알고 생각을 바꾸도록 했다. 성적 억압의 심층에는 대인관계의 문제가 있음을 환자는 모르고 있다. 성기가 눈에 보이는 것은 증세에 불과하다. 핵심 문제는 대인관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성 친구와 친밀 관계가 잘 되었더라면 성기의 문제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Session 16: 2000sus 10월 18: 죄의식 걷어 내기, 나를 사랑하기

-나는 근친상간을 하지 않았다

- 나는 깊은 정욕 죄를 짖지 않았다. 대학생 성격 읽기 모임에 간증을 한 여인은 직접 성 관계를 했으므로 죄를 지었지만 나는 죄를 짖지 않았다.

- 내 몸에 원수 마귀가 들어있지 않다.

- 안수 목사님에 분노를 표현하게 했다. 목사님은 나를 흥분 시키고 내 생각을 없애려고 했으니 병을 주고 약을 준 꼴이 되었다.

- 나는 xx 교회 목사님은 7년 동안 교회에서 기도를 하게 했다. 한번도 나를 대면한 적이 없었다. 사모님을 대리로 내보내서 나를 죄인으로 취급을 했다. 내가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정신병이 들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 내 몸은 깨끗하다.

- 나는 잘못된 믿음으로 병이 생긴 것이다.

-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면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 92년 대학에 입학

- 94년에 대학 휴학

- 94년-95년에 1 6개월 동안 목사님의 안수 기도

- 95년 xx 교회에 입적

- 신문 배달을 시작하다 환청으로 그만 두었다

- 96년 2층에서 뛰어내림, 골절상으로 병원에 입원

- 96년 병원에 한달 동안 입원

- 97년 xx 교회에 매일 같이 나가게 되었다.

- 99년 8월 달에 기도원에 입사한 후에 1달 후에 퇴출

- 2000년 4월까지 집안에서 두문불출

위의 노트는 환자 자신이 기록한 일지의 내용이다.

 

Session 16: 2000sus 10월 19

문 밖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신경 전이 벌어졌다. 지나가는 사람으로부터 "더럽다"라는 말이 들린다. 환자는 창문을 열고 나의 프라이버시에 간섭하지 말라고 고함을 쳤다. 계속해서 말을 안 들으면 경찰에 연락한다고 외쳤다. 그 사람들은 그냥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그냥 지나갔다. XX 교회 목사님 사모님과 면담 후에 신문 배달이라도 하면서 교회에 헌금을 하기 위해서 동아일보 배달 첫날에 신문을 인수받아서 들고 나갔는데 어떤 젊은 남녀가 지나가면서 환자를 보고 "개 같은 년, 개 좆 같은 년, 원수마귀"라고 욕을 하는 것을 듣고 (환청) 그 사람들에게 "왜 욕을 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실제로 그 사람들이 욕을 한 것이 아니고 지나가면 사람에게 신경이 쓰여서 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욕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문사에 신문을 도로 갖다 주면서 "다른 사람들이 욕설을 해서 경찰에 고발을 해야 하겠다" xx에서 xxx 경찰서까지 걸어서 가는데 뒤에서 "원수마귀, 개 같은 년, 더러운 년" 이라는 말들이 계속해서 들려 왔다. 지하철 역에 숨어 있는 데에도 계속 그 소리가 들려와서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우고 자신을 파출소에까지 데려가 달라고 했고 파출소에서 집으로 전화를 해서 오빠와 아버지가 와서 환자를 데리고 왔다. 그 후에 2층에서 뛰어내려 정형 외과에 입원 일 만에 기부스를 한 체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 나는 더러운 년, 원수마귀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꽉 차 있다.

- 다른 사람들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더러운 마음을 알면 나를 욕할 것이다. 나를 피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다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과민하게 신경을 쓴다.

- 지나가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하니까 예를 들어서 2층에는 쓰레기가 사방에 늘려 있어서 더럽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른 말들은 거두절미 되고 더럽다는 말만 귀에 번쩍 띈다.

- 그 사람들이 나를 욕한다고 단정 짖는다.

- 그 사람의 표정이 약간만 찡그려지거나 자신의 찡그린 얼굴 표정이 피드백 되어 상대가 기분 나쁜 표정을 보이면 나를 더러운 년으로 욕한다고 단정한다.

- 이것이 심하면 내 귀에 내 말이 들린다.

- 환청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과민 반응을 한 이유를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

 

Session 17: 2000년 10 20

1. 환자는 중, 고등학교 때 공부만 했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성에 대해서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2. xx 교회 하나만 고집한다. 다른 교회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5년 동안 xx교회에 다니면서 목사님과 직접 면담을 한 반도 한 적이 없었다.

3. 9년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기독교 서적만 골라서 경운기에 실으면 한 차 정도를 읽었다고 했다. 한 번은 읽은 책은 XXX 헌책 방에 갖다 팔았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았다. 정신 의학이나 심리치료에 관계된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았고 무관심했다.

4. 시립 도서관 이외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한가지만 고집한다. 처음에 시립 도서관에 가지를 못해서 오빠가 데리고 갔다.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지금은 익숙해졌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불안, 두려움 때문에 피하려고만 한다. 자꾸 부딪쳐서 익숙해질 때까지 시도해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학 교양 과목의 다양성이 왜 있는가? 다양한 분야를 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라는 것을 알 게 설명을 했다.

5. 실제로 교회 친구들도 한 사람도 깊이 사귄 사람이 없었다. 삶에서 다양성이 부족하면 경험의 폭이 좁아진다. 대학생들이 해외 배낭 여행의 목적이 다양한 경험을 얻기 위함이 아닌가? 를 이해하도록 했다. 경험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대인관계 기술이 없다.

2개월 간 약물을 복용하면서 집중적 심리분석 치료를 받은 후에 남자의 성기가 눈에 보인다는 망상은 70%가 제거되었다. 나머지는 대인관계가 개선되면 없어질 것이다 라고 확신을 주었다. 환자는 대학에서 남자 동료들과 마주치면 자신감이 없어서 정면으로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다. 이것은 자신이 성기만 보려고 하는 더러운 년이라는 죄의식 때문에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는 것도 있고 대인과계 기술이 없어서 사람을 대할 때 아래를 쳐다보는 것이 남자들의 하복부에 눈이 갔고 그것이 성 욕구 억제로 억제해 온 성적 욕구에 연결이 된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환자는 대인관계 기술을 익히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리는 장시간의 치료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치료를 종단했다. 치료 비용의 문제도 있었다.

2년 후에 환자는 대학에 복학할 수 있었다. 2개월 동안의 집중 치료 후에 성기가 눈에 보이는 문제와 환청 문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이 두 문제는 100% 제거되었다는 말을 오빠를 통해서 들었다. 환자가 심리 분석 치료 과정에서 한 심리 분석 내용을 소화하는데 2년이 걸렸다는 뜻이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개월의 집중 분석 치료 결과 9년 동안 칩거해 왔던 환자를 방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고 가족 구성원들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후에 환자는 혼자서 방을 얻어서 따로 독립된 생활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환자는 휴학 후 11년 만에 다시 학교 생활로 되돌아 갔다. 이것은 환자가 성장을 거부하여 어린시절로 10년을 퇴행한 것 즉 정신연령이 10년 늦어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이후에 재발로 더 이상 심리치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에서 실패를 했다. 그녀는 치료 동기가 약했다. 그녀의 오빠의 권유로 2년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종교적인 문제에 너무 고착이 되어서 하느님의 기도로 문제 해결을 하려고 했다. 그녀가 표현한 것처럼 병마에 시달리면서 7년 동안 기독교 서적을 손수레로 한 수레 정도를 읽었다는 말에서 기독교 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치료 사례는 29세의 간호사로써 조울증으로 20년 전에 2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던 여성으로 그녀가 종교적인 망상으로 휴거를 한다고 4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입원해서 6개월 후에 다시 심리치료를 재개해서 성공적인 치료를 한 사례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상: 29세의 물리치료사 Y양

증세: 7년 동안 불안증과 가벼운 우울증에 시달림

진단: 불안증, 대인공포증, 조울증:

연결: 심리적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던 중에 여성의 전화에 전화 상담을 하면서 그 상담원으로부터 치료자를 소개받고 치료를 받으러 찾아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2 6개월 동안 심리분석 치료를 받음

치료 결과: 처음에는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진단을 받았으나 나중에 조울증으로 판명이 났고 치료자의 치료 결과 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던 것을 풀 타임으로 일하게 되었고 동료들과 갈등이 줄어들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게 되었음

 

치료의 과정

치료의 초반기: Y양은 대학을 졸업 후 3년 동안에 직장을 무려 6번이나 옮겨 다니고 있었고 한 직장에서 일한 기간은 불과 2개월 – 3개월에 불과 했다. 가장 많이 근무한 기간이 고작 8개월이었다. 직장은 풀 타임 직장으로 하루 8시간을 근무한 것이 아니고 파트 타임 직장으로 하루에 3시간 – 4시간 정도로 오전이나 오후에 근무를 해 온 것이었다. 중간에 직장 생활에서 지속적인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자 몇 개월 씩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가 또 근무를 했다 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면서 직장에 근무할 수 없게 된 동기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Y양의 생육사: Y양은 초, 중등학교 시절에 전교에서 1등 – 2 등을 다투어 온 수재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학교를 드나들며 Y양의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Y양은 학급에서 지도 위원을 역임했고 성적도 언제나 1등을 차지 했다. 친구들도 많아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과도하게 Y양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서 문제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중학교 때 Y양이 전교에서 3등을 했으나 어머니는 친구의 딸이 전교에서 2등을 한 것을 보고 “너는 왜 1등을 하지 못했느냐?”고 비교를 당하고 3등에 만족하지 않는 어머니의 성격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Y양은 그 때의 고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항상 집안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부부 싸움에서 자주 구타가 있었고 어머니의 불평과 불만은 점점 쌓여 갔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조용하게 집안에서 살림만 하고 바깥에 출입을 자주하는 것을 싫어했고 어머니는 집안에서 조용하게 있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로 끝임 없이 치마 바람을 일으키며 Y양의 학교 일에 열성을 보이면서 Y양의 공부에 간섭하는 것을 아버지는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살림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사회 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회상했다.

Y양은 어린시절에 아버지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기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폭행으로 옷을 발가벗기고 집에서 매를 맞고 쫓겨난 것을 기억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하게 싸운 후에 어머니의 가출로 가정은 박살이 났다. 어머니는 그 후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공백으로 Y양이 2명의 남동생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아버지에게는 부인의 역할을 해 왔음이 밝혀졌다. 발을 짓고, 빨래를 하고, 동생들을 챙기는 일을 하나 둘 씩 맡게 되면서 Y양의 학업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학교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불안이 서서히 표면화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험에 지나치게 불안함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성적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Y양의 공부가 밀리면서 동료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서로 접근을 하며 몰려왔으나 성적이 하락하면서 동료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Y양의 성적하락을 수군거리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고 또 어머니의 가출을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서 일부러 친구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는 그 때부터 서서히 시작된 것이었음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아버지의 결벽증에 시달리면서 성적을 점점 하락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식사에서부터 집안 청소, 빨래에 이르기까지 자녀들을 못살게 했다. 조그만 일에도 간섭을 했고 항상 방안이나 부엌이 깨끗하게 않으면 잔소리가 흘러나왔다. 행주를 매일 뜨거운 물에 삶아서 소독을 해야 하였고 책상 위에는 항상 정리 정돈이 되어 있어야 야단을 면할 수 있었다. 공부에 신경을, 가정 일에 신경을, 동생들을 신경을,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을 해도 아버지의 마음에는 차지 못했다. 결국 고등학교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는 갈 수가 없었고 1년 동안 재수를 해야 했다.

아버지와 면담: 아버지와 4시간 동안 면담이 있었다. Y양을 위해서 치료자가 아버지와의 면담을 요청했고 아버지는 기꺼이 응해 주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형님과 자신이 외롭게 자랐다고 했다.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아버지를 뒷바라지를 해 주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일찍이 사회에 나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눈을 다쳐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을 중매로 만나고 결혼을 하면서 서로 간에 갈등 때문에 부부 생활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부동산을 하면서 상당한 돈을 모았다고 했다.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직업이 공무원인지 부동산인지 빈정대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이러한 돈을 사업한다고 치마바람을 일으켜 다 날려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부인은 통이 크고 동료들에게 과시적이어서 항상 돈이 많은 사람으로 행세했고 학교에서도 육성회 이사 등으로 남편과 늘 마찰을 일으켰다. 남편의 불안증과 강박증 즉 결벽증이 부인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잦은 마찰은 부인이 남편과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며 집을 나가면서 끝이 난 것이었다. 이후 이혼으로 법정까지 갔고 남편은 이혼을 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의 반대로 지금까지 법적으로 이혼은 되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어머니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그 후에 다시는 집에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분석 및 해결 과정

조증의 발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면서 Y양은 가벼운 우울증의 상태에 있었다. 사회 생활의 출발에서 삐끄덕거리기 시작했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고 아버지와 동생들과 마찰도 심각했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직장에서 자꾸만 자아를 意識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에게 욕을 한다 거나 상대방이 자신을 비웃는다 거나 자신을 해코지한다는 생각 때문에 대인관계를 해 나갈 수가 없었다. 자연히 미래가 우울해지고 과거의 화려 했던 초, 중등학교 시절이 대비되어 과거 속에서 살게 되어갔다.

과거에 상처받은 생각에 몰입이 잦고 현재가 발이 묶이고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지면서 점점 우울증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치료 3개월 만에 Y양이 어느 날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갑자기 자신감이 회복되어졌다고 기뻐했다. 이제는 회복되었으니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없어졌다며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Y양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머니의 가출 직후부터 친구들의 소개로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치료자는 치료를 계속할 것을 권유했으나 회복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더 이상 치료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치료가 중단되었다. 그 후에 1달이 지나면서 Y양의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Y양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치료자가 Y양의 집을 방문한 결과 Y양은 조증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 하면서도 자신은 내일 하늘로 승천하는 휴거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제 곁에 오지 마세요! 불에 타 죽습니다. 선생님 저는 내일 저녁 9시에 하늘 나라로 휴거를 합니다. 예수님이 저에게 내가 이 나라 백성들을 구제하라고 하는 계시를 들었습니다. 그것에 나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지금 내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구원해서 내일 휴거 할 때 데리고 가야 합니다. 나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해 주세요!

Y양은 가족들이 자신을 집안에 감금하는 통에 심하게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Y양이 계속 저런 행동을 보이면 내일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고 동생들에게는 누나가 밖에 나돌아 다니지 못하게 하고 방안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날 저녁 10시경에 동생으로부터 치료자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가 3층에서 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했다. 다음 날 치료자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Y양은 기부스를 하고 정신병원의 폐쇄 병동에 입원을 해 있었다. 약물을 투입하면서 Y양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그 후에 병원에서 3개월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하면서 본격적인 심리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의 중반기: Y양은 약물을 복용하면서 심리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 후에 정신과 의사들 그리고 대학병원의 저명한 교수들을 면담하고 조울증에 대해서 상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 만으로 행동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치료자의 말에 수긍을 했다.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고 마음 속에 쌓인 적대감정에서 빠져나와야 하고, 성격의 결함을 수정해야 함에 동의를 하고 치료를 다시 재개하였다.

우울증에서 조증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분석되어졌다. Y양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대학생이었을 때 친구의 소개로 미팅을 하여 만난 파트너의 얼굴이 떠 올랐고 그 후에 자주 만나서 차를 마셨던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교회에서 자주 그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는 결혼을 해서 xx시에서 살고 있는 것이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그 남자의 부인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이것이 하느님의 계시이다 라는 생각이 나면서 그 남자를 만나서 자신이 부인이 되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계시를 말하면 그 남자가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해줄 것이다 라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전형적인 조증의 증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남자 친구는 Y양의 전화를 받고 횡설수설하는 전화에 놀라서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당장 Y양은 다급 해져서 그 남자를 찾아가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고 이것이 하느님의 계시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그 남자가 살고 있는 xx시로 가는 기차를 집어 탔다. 기차는 xx시로 가는 기차가 아니었으나 하느님이 시키는 계시라고 생각해서 그 곳에 가면 다시 xx시로 가는 길을 인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기차를 탔다고 했다.

종착역에 내려서 다시 xx시로 가는 기차를 물었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택시 기사가 Y양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알고 Y양의 집 전화 번화를 물었고 아버지에게 연락이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택시 기사에게 집으로 데려 다 달라는 요청에 무사히 집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의 방문 후에 Y양은 밖으로 나가서 자신이 휴거 하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 휴거 하겠다는 생각에서 밖으로 나가려 다가 동생과 아버지가 현관 문을 지키고 있는 통에 창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Y양은 왜 자신이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 심리로써 반대행동 형성이 된 것임을 알게 했다.

마술적인 생각에서 오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차단시키는 인지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자신의 병든 자아에 그러한 마술적인 생각이 떠 오르면 그 생각을 차단시키는 훈련을 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하나씩 들추어 내어 재연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시절에 아버지에게 옷을 발가벗기고 집에서 쫓겨난 장면을 다시 회상하도록 했다. 그 때 느낀 수치심과 분노를 표현하도록 했다. Y양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 빈 의자에 아버지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분노를 표현하게 했다.

아버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인 저를 옷을 발가벗길 수 있습니까? 아버지에게 받은 수치심으로 제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 줄을 아버지는 모르실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딸이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아버지 너무 하십니다. 그냥 잘못을 이야기를 해 주면 제가 알아들을 수 있을 터인데 왜 옷을 발가벗기는지요?” 울면서 Y양은 하소연을 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수없이 그 장면을 되풀이하게 했다.

Y양은 분석 과정에서 아버지 앞에만 서면 벌벌 떨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증세가 그 사건 이후에 생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아버지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앞에서 NO라고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NO라고 말을 못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직장에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비웃거나 멸시를 하면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서 상대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강압을 당하는 그 순간에 Y양은 아버지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것임을 알게 했다.

자신의 자아에게 이야기하는 자아와 대화의 훈련이 첨가되었다. “나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아니냐, 지금 나는 대학을 졸업한 성인이야, 내가 어린이처럼 아버지 앞에 서 있어서는 안 돼! 나는 어른이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라고 자신의 자아에게 이야기하게 했다. “내가 지금 대면하고 있는 이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옛날의 초등학교 4학년이 아니야!”를 수없이 스스로 반복하게 됨으로써 Y양은 점차로 다른 사람들 즉 직장 동료들과 관계에서 자기 표현이 늘어가면서 대인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나가면서 Y양은 파트 타임에서 풀 타임으로 하루 8시간 정상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 생활에서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기 주장 훈련이 첨가되었다. Y양이 치료자에게 오기 몇 년 전에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벽에 쥐어 박힌 기억이 떠 올랐고 다시 그 장면이 재연되었다. 이제 아버지에게 자신의 욕구와 자신의 소망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어 갔다.

아버지 이제 저는 어린이가 아니예요. 아버지 저는 이제 성인이 되었어요. 제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저를 치료하는 선생님이 아버지 앞에서 자신 있게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말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제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제 이야기를 들고 난 다음에 아버지의 의견을 말해 주세요. 저를 어른으로 대우해 주세요.” 수많은 연습과 훈련이 치료실에서 재개되었다. “아버지, 제가 다른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어서 말한 마디 하지 못하고 비웃음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으셔요? 아버지, 제가 당당하게 내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을 보고 싶으면 아버지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세요.”

Y양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6개월 정도 훈련을 하면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조용하게 아버지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론적 근거

아버지로부터 분리 독립: 치료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Y양은 이제 아버지가 무섭지 않게 되어갔다.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불안해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갔다. Y양은 지금까지 직장 생활에서 봉급을 타면 모두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고 자신은 아버지가 주는 최소한의 용돈으로 생활을 해 나간다고 했다. 항상 차비 정도만 주기 때문에 돈이 궁하면 가끔씩 아버지의 지갑에서 몇 만원을 살짝 끄집어 내 쓴다는 것이었다. 그 때 Y양은 자신에게 “이것은 내 돈이야,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내 돈이야” 라면서 자신의 양심을 달랜다는 것이었다.

풀 타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하나씩 해소되어 갔다. 이제 아버지로부터 분리, 독립할 수 있게 된 시점이 왔음을 Y양이 알게 했다. 처음에 Y양은 그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허락보다도 자신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이 없었다. 방을 전세로 얻으려면 몇 천만원이 필요할 터인데 돈도 아버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용돈 박에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아버지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큰 대학교 주변에 있는 자치를 할 수 있는 방은 한 달에 20만원 – 30만원 정도이고 Y양이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서 독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학기말에 되면 큰 대학교 주변에 가서 스스로 방을 찾아 보라고 했다. Y양은 드디어 자신이 괜찮은 방을 찾았고 한 달에 23만원을 주기로 하고 방을 예약해 놓았다고 했다. 이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갔다. “아버지 저도 이제는 어린이가 아닙니다. 저의 삶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아버지 밑에서 어린이 취급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홀로서기를 해야 할 나이가 넘었습니다. 방을 얻어서 자취 생활을 하게해 주십시오.

이 말에 아버지는 더 이상 딸을 강제로 붙잡지는 않았다. 결혼 자금으로 저축을 해 주겠다며 매월 월급을 아버지에게 갖다 달라고 처음에는 딸을 설득하려고 하였으나 딸이 완강하게 나오자 아버지는 딸을 내보내면서 “어려우면 언제든지 집으로 다시 돌아 오너라”고 위로해 주었다. Y양은 이제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은 자유인이 되었다. 대인관계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직장에서 갈등이 점점 줄어들어 갔다.

치료의 중간 단계에서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면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 어머니가 한번 찾아와서 다방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때 어머니는 어느 절에서 식사를 도와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는 아버지와 결합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자식들을 버리고 갈 수 있었느냐? 라는 말에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Y양이 병원에서 퇴원해서 심리치료를 받고 혼자서 독립해서 집을 나와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Y양에게 같이 살면 어떻겠 느냐? 고 연락을 해 왔으나 다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신들의 삶에 간섭하지 말고 부모님의 삶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부모님의 문제는 부모님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임을 강조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문제에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연락은 끊지 말도록 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길 만이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했다.

근무 시간 이외에 남는 시간을 자아 개발에 투자하도록 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던 영어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서 영어 학원에 등록을 하고 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였다. 동료들과 모임에도 참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옛날에 끊어졌던 친구들과 관계도 회복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지 2년 6개월 만에 치료는 종결이 되었다.

아직도 남자 친구들과 친밀관계를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었으나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의 집에서 나온 이후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치료가 더 붙여 졌음은 말할 나이도 없다.

치료는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과 관계나 동료들과 관계를 연결시켜서 환자의 삶이 풍부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알게 했다. 2년 6개월 동안에 조울증이 재발은 없었다. 환자는 조울증을 글자 그대로 좋아졌다가 우울해지는 병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간호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즐거움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알게 되었고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고치게 하였다.

우울증은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장애임을 깨닫게 하고 망상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단호하게 차단시키게 했다. 삶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고 이것은 망상적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했다.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그리고 삶을 살아가면서 희망을 성취하고 성장해 가는 즐거움이 삶에서 필수적임을 알게 하고 스스로 그러한 즐거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치료 결과

치료 종결 1년 후에 치료자에게 한번 크리스마스 때 고맙다는 안부 전화가 왔었고 치료 종결 2년 후에 2년 동안 다니던 병원을 그만 두고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는 전화가 왔었다. 병원이 문을 닫게 되어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고 했다. 약간 불안을 느낀다는 말에 치료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누구나 3개월 정도 적응기간이 걸린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이라고 위로해 주면서 Y양이 잘 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말을 해 주었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다시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 Y양은 더 이상 전화가 없었고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세 번째 치료 사례는 3년 전에 치료자에서 6개월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은 48세의 미혼여성으로 그녀가 고교 시절에 노래와 춤으로 인기를 모아서 대학에 진학 후에 그녀를 포섭한 한 종교 단체의 목사님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서 삶이 완전히 붕괴된 한 48세의 미혼여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제 1회, 2회의 치료 회기를 제외하고 제 3회기 120분간의 치료 과정을 소개하기로 한다. 기독교 교인으로써 최악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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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소화성 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48세의 미혼 여성 M

증세: 8년 전부터 변비에서 소화성 문제가 악화되어 지금은 설사로 여러 곳의 한의원을 전전하면서 약물 복용에 지쳐 있음.

접촉: 어머니의 친구가 M양의 어머니에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오빠의 친구가 미국에서 심리치료학을 전공해서 37년 동안 심리치료를 통해서 다양한 질병을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치료자의 지인의 소개로 딸과 함께 치료자를 방문하게 되었음

진단: 소화성 궤양, 과민성 대장염, 공황장애, 대인 공포증 : 심리신체 질병

치료 기간: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로 치료자와 2시간 컨설팅을 가지게 되었음,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제 2 4.5 시간의 치료를 시작( 6.5 시간)

치료 결과: 그녀는 토요일 2시간 컨설팅을 한 후에 다음 주일 월, , 수요일 3일 동안 4개월 동안 문을 닫아 놓았던 사무실 문을 열고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목요일에 한약 때문에 다시 붕괴로 문을 닫았음

 

치료의 과정

이번 주일 치료 회기에서 M양은 토요일 오전 10시에 도착을 했다. M양은 이곳의 지하철 역에서 2번 출구가 맞는지 문자 전화가 왔고 그렇다고 대답을 했고 오전 10시에 도착을 하면서 오늘은 어머니가 이곳의 지하철 역에서 M양을 데려도 주고 어머니는 돌아가고 처음으로 M양이 이곳에 왔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몇 번 출구인지? 를 물어보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48세의 중년 여성이 지금까지 3번 동안에 어머니를 대동하고 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M양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지난 주일에 어떻게 지냈는가? 라는 질문에 M양은 xx 한약을 먹고 나니 공황 장애가 올 것 같아서 다시 공황 장애 약물을 먹고 있다고 지난 주일과 똑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작년 하순부터 위와 장이 좋지 않아서 한약의 독한 그리고 센 한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공황 장애가 느껴졌기 때문에 12월 달에 xx 종합 병원에서 1 달가량 입원을 해서 한약을 복용하게 되었는데 점점 더 한약이 몸에 맞지 않아서 이번에는 제일 먼저 찾았던 xx 한의원 약물을 복용하면 위가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아서 그 한약을 복용중인데 이번에는 공황 장애가 와서 공황 장애 약물을 복용중이라고 지난 주일과 똑 같은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지난 주일에 집에 가서 어떤 일을 하라고 한 이야기를 기억이 나는가? 라고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기억이 아니 않는다고 했다. 치료자는 성경의 필사를 해서 주의집중을 외부로 돌려보라고 했고 그리고 사무실에 나가서 어떤 일에 주의 관심을 돌려 보라고 했는데 기억이 아니 않는가? 라고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집에 가면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은 오지 않아서 아무 일도 못하고 그냥 쉬지도 못하고 약물 복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한약 복용을 중지하고 공황 장애 약물로 중지하고 힘들어도 필사 성경에 책을 읽거나 다른 것에 주의 관심을 집중해 보라고 했는데 M양이 치료자의 말에 한 개도 수용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M양은 공황장애 약물도 역시 8년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에 다니는 xx 한의원에는 늘 중간에 자주 다녔기 때문에 너무 심한 약물을 처방해 줄 수 없다고 했는데 위와 장이 좋지 않다고 했을 때 약물을 지어주면서 그 약물이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는데 점점 효과가 없으면서 공황 장애가 와서 신경정신과의 공황 장애 약물을 복용하게 되었는데 공황장애가 심하면 약물을 복용하고 심하지 않으면 복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 8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8년 전에 공황장애가 처음으로 오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M양은 27살 때 유엔 묘지에서 박람회 관계로 대학의 지도 교수 밑에서 동료들과 일을 하다가 황령산 터널 안에서 자동차가 뒤에서 추돌하는 바람에 승용차를 운전해 가던 후배 동료와 옆자리에 탄 M양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2개월가량 입원을 해 있었는데 그 때 사귀던 남자가 계속 찾아와서 병원에 스텝들을 괴롭히는 바람에 불안해지게 되면서 공황 장애가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M양은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서 2개월간 치료를 하면서 그 때 심하게 불안해서 힘들어 했었는데 소화가 계속해서 문제가 생기면서 내과 의사들에게 약물을 치료받았으나 계속해서 위와 장이 소화가 안되고 힘들어서 대학 병원에 가서 종합 검사 결과 요로 결석 때문에 오줌이 나오는 요로에 요석으로 돌이 생겨서 몇 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허리 디스크가 사라지지 않았고 요로 결석을 제거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위와 장의 고통은 계속되었는데 그 때부터 한의원에서 위와 장 때문에 한약을 복용하기 시작을 했고 그리고 그 시점에서 공황장애가 가끔씩 한약 복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고 했다.

그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그 남자 친구는 M양이 고등학교 학생의 영어 과외를 하게 되었는데 그가 수능을 치고 나서 M양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해서 저녁 시간에 만나기로 해서 xx 대학교 인근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중에 그 남자 친구가 우연히 옆에서 같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라고 그의 친구와 함께 접근을 했는데 옷차림도 노동자 차림이고 말을 하는 것이 첫 만남의 여성에게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라는 말에 호감이 가서 남자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같이 동석을 하게 되면서 그 학생을 만나서 4명이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서 그 남자를 알 게 되었다고 했다.

그 남자는 이 이후에 M양을 좋아한다고 따라다녔다고 했다. 시점에서 M양은 조그만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학원에서 저녁 10시에 강의가 끝나면 그 남자가 학원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녀와 함께 새벽 1시 혹은 2시까지 같이 놀다가 그가 집으로 데려 다 주게 되었고 이러한 생활이 약 3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그 남자와 좋은 관계였는데 계속해서 그러한 생활에서 부자연스러움과 구속적인 생활에서 점점 그 남자의 강압이 느껴져서 3개월 이후에는 그 남자를 멀리하려고 시도를 하면서 나머지 3개월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 남자는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오전 12시에 학원이 시작되면 학원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저녁 10시에 학원이 끝나면 같이 그와 함께 놀아 달라고 하는 것에 스토커로 느껴지면서 그를 멀리 하려고 만난 후에 3개월은 좋은 관계가 3개월 후에는 지옥으로 변화 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는 M양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면서 여왕처럼 받들지만 술이 취하면 그녀에게 언어 폭력을 일삼고 그를 피하려고 하면 언어 폭력과 머리 채를 쥐어 잡고 흔들면서 위협을 가했다고 했다. 그를 만난 6개월의 시점에서 그 남자가 집으로 찾아와서 M양의 부모님을 귀찮게 하려는 것에 놀래서 집에서 독립에서 나와서 전국으로 그를 피해서 돌아다녔지만 그가 그녀의 친구에게 귀띔으로 그녀의 주소를 알고 찾아오게 되면서 그와 숨바꼭질이 계속되면서 불안하게 긴장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남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그 남자는 그녀보다 3살이 많은 사람으로 처음에는 체대를 나왔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검정고시 출신이었다고 했다. 고교 중퇴로 검정 고시를 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조폭의 멤버로서 본 부인 이외에 4명의 여성과 살림을 차린 사람으로 그의 집에 가서 그의 어머니를 만나보았을 때 그녀는 너무 힘이 없는 나약한 여성으로 남편을 빼앗기고 사는 것이 형편이 없었다고 했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는데 여동생은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는데 남동생은 형님을 닮아서 사회 생활이 어려워 보였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의 집을 방문을 했는데 아버지는 다른 여성과 좋은 집에서 잘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 남자는 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스토커처럼 사람을 질식시키는 것에 질려서 도망을 다녔고 그 남자가 손목을 면도날로 그어서 그녀에게 매달리는 것에 질리게 되었다고 했다. 2년 동안 그녀를 괴롭히다가 결국은 그 남자는 절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었다고 했다. 그 남자는 수도를 하는 스님이 되었고 그리고 그는 불교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불교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그 후에 가끔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과를 한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남자와 섹스 관계를 가졌는지? 물어보았을 때 그 남자와 섹스 관계를 가지면서 M양이 어느 남자와 첫 섹스 관계를 가졌는가? 를 알 게 되면서 M양을 화냥년으로 술을 마시면 섹스 관계를 끄집어 내서 언어 폭력을 행사했다고 했다.

남자가 술을 마시면 언어 폭력으로 너는 섹스가 난잡하고 어느 남자와 섹스 관계를 했는지? 를 따지면서 다른 남자와 섹스 관계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남자에게 이야기를 한 첫 사랑의 섹스 관계를 그 남자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실토를 했다고 했는데 그것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M양은 그녀가 19살 대학 1학년 때 xxx 종교에 빠져서 그들의 그룹에 들어가서 황은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황은을 입었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라고 물었을 때 M양은 xx 종교의 교주인 xx씨가 재림 예수로서 섹스로써 여성들을 치료한다는 속임수에 넘어가서 그와 섹스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왜 그 종교에 빠지게 되었는지? 를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M양은 대학 시절에 서클활동을 하게 되면서 그 종교에 빠진 동료들이 이미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에게 그 종교에 가압하자고 해서 가입을 했다고 했다. 그 종교에 빠지게 된 것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 특별히 어머니와 관계가 갈등 적이어서 어머니는 매사에 M양을 순종적으로 컨트롤하려고 간섭하고 강압하는 것에 반대를 해서 갈등이 심했는데 그 종교에서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대우를 해주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지역의 리더로서 급상승하면서 그녀는 교주이 은총으로 섹스 관계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종교에서 리더로 인정을 받았다면 왜 그 종교에서 나오게 되었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녀와 같이 은총을 입었던 여성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섹스를 통해서 인간을 올가미로 낚아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4년 동안 그 종교를 추종하다가 결국은 그 종교로부터 빠져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종교에서 빠져나오게 되면서 그 남자 친구를 만났고 3개월 동안 서로 좋은 관계를 보냈으나 그 남자의 스토커 기질 때문에 헤어지면서 2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그 남자가 술을 마시면 화냥년이라고 언어 폭력을 행사한 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정신의학적인 용어를 알고 있는가? 라고 물었을 때 M양은 모르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스토커는 정신의학적 용어로 편집증이라고 부르는 장애이고 섹스로 부인을 의미하는 사람은 의처증, 의부증이라는 심각한 편집증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몇 개월 전에 4년 전에 이혼을 한 전 남편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 부인을 칼로 찔려서 살인을 하고 구속되었을 때 그녀의 3명의 딸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아버지를 영구적으로 사회에 나오지 못하게 처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사건을 기억을 하는가? 라고 물었을 때 사건을 뉴스에서 보았다고 했다. 그러한 사람이 의처증이라는 무서운 정신과 장애로써 그들은 이혼을 해도 끝까지 해코지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1980년대의 줄리아 로버츠의 주연으로 적과 동침의 영화를 이야기를 했을 때 M양은 소상하게 그 영화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치료자는 M양이 편집증 남자와 2년 동안 받은 고통을 고려해보면서 지금 M양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고통들을 100%로 본다면 그 남자와 상처가 몇 %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 남자와 2년 동안의 숨바꼭질에서 받은 심리적 상처가 50%라고 대답을 했다. 이번에는 xx 사이비 종교가 M양의 삶에서 몇 %의 영향을 미쳤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M양은 30%라고 대답을 했다.

그 두 개의 상처가 80%의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치료자는 M양에게 그녀가 19세의 소녀 시절에 4년간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섹스 학대를 당한 것과 그리고 그 남자 친구를 만나서 2년 동안 시달린 상처가 50%의 영향을 미쳤고 그리고 교통 사고로 허리 디스크로 그리고 요로 결석으로 요석의 돌을 몇 개 수술로 제거하면서 그 시점에서 요석의 돌을 제거했지만 그 수술과 그 시점에서 각인된 심리적인 상처는 계속해서 8년전부터 한약과 공황 장애 약물을 번갈아 사용해 오다가 작년 10달 시점에 심한 독한 한약물이 위와 장을 더욱 더 심각하게 악순환으로 반복된 것을 지적을 했다.

M양은 위와 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약을 독하게 처방 받아서 복용할 때 공황장애가 동반하게 되었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다시 자율신경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자율 신경은 우리 몸에서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신경조직으로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 조직이 있다는 것을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몸에서 자율적으로 작동이 되는 것을 여러 번 회상을 해 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위와 장의 소화 기관, 심장 박동 그리고 호흡과 맥박을 지적을 했다. 치료자는 정확하다고 칭찬을 하면서 M양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인체의 기관을 내면의 자아가 그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위와 장을 그리고 심장 박동과 호흡을 자아 관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율 신경 조직을 자연스럽게 스스로 작동하도록 하지 않고 관찰하고 의식하고 내가 치유를 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깜짝 놀랬다.

치료자는 한약을 복용하면서 위와 장의 소화기관을 들여 다 보고 자율신경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관찰을 하면서 마음대로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자율신경을 인위적으로 컨트롤하겠다는 자아 때문에) 불안이 올라가면서 긴장하게 되고 그 결과 공황 장애가 따라올 것 같아서 공황장애 약물을 복용하고 나면 다시 소화가 되지 않음에 놀래서 한약을 복용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치료자는 집에 가서 치료자가 이야기를 한 것처럼 자율신경을 들려 다 보지 말고 필사 성경 혹은 흥미있는 일에 주의집중을 하면서 한약과 공황장애 약물을 중지하고 내면의 자아 관찰로부터 방향을 바꾸어서 외부의 일에 주의집중을 하도록 주문을 했다.

대신에 치료 회기 시간에는 50%의 그 남자와 갈등을 그리고 30%의 사이비 종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풀어 내면서 내면에 억압되어져 있는 분노와 짜증과 불안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면서 신체적 긴장을 풀어내고 자율신경 조직을 자연스러운 작동으로 돌리는 치료가 앞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2시간이 넘어가서 2시간 30분 동안 치료 회기를 가진 것을 카운터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내일 일요일에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나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M양이 오후 2시쯤에 치료자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녀는 목소리가 밝아지고 힘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서는 M양이 토요일 치료 회기를 끝내면서 내일 일요일 교회의 예배가 끝나면 오후 3시에 집에 도착해서 4-6시에 치료 회기를 가지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시간 약속을 하고 전화를 걸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 3시에 전화를 걸어서 그녀가 4-6시에 치료 회기를 가지고 싶다고 했고 오후 4시에 도착을 했다. 이후의 치료 회기는 생략합니다.

그녀는 6개월의 48시간의 치료에서 공황장애와 수면혼란 그리고 과민성 대장염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일상으로 복귀한 수 있었다. 치료의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은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위와 유사한 종교적인 문제들의 갈등 치료사 약 11개의 사례들이 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이 섹스 문제가 가장 문제가 많다는 점이다. 특별히 남성들의 경우에는 자위행위 때문에 자위행위 강박증의 환자들이 많다. 이것은 센트루이스에서 미국에서 섹스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한 마스터와 존슨(Master& Johnson, 1980: 주㈜: 참고) 부부의 인간 섹스의 기능 부진이라는 저서에서 그들이 기독교인들 특별히 청교도 교인들 한데서 섹스 문제가 심각했다 라는 보고와 일치 된다.

섹스의 욕구는 본능적인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로 자위행위는 자신의 섹스 욕구를 컨트롤하는 것이다. 결혼으로 합법적으로 섹스가 허용될 때까지 자신의 섹스 욕구를 컨트롤하는 것이 건강한 이다. 그런다고 매춘부 집에 들락거리는 것은 에이즈의 위험과 있고 그리고 매춘부와 섹스는 사랑이 없는 섹스 욕구의 방출이기 때문에 조루증에 걸리기 쉽다는 점을 들어서 자위행위를 죄의식이 없이 하도록 한다. 그들의 치료 사례들은 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섹스 심리치료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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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참고):

마로다(Maroda). 반전이의 힘(1991), 유혹, 항복 그리고 변화(1999)

무어(Moor, 1999). 정신분석 안에서 현실의 창조

에델만(Edelman). 하늘보다 넓은 의식의 세계(2004), 의식의 우조(2000)

아크돌(Acredole & Goodwyn, 2000). 유아의 마음

모델(Modell).사적인 자아(1996), 다른 시간 다른 현실(1996), 상상과 의미깊은 뇌(2006), 맥락 안에서 정신분석(1984), 대상사랑과 현실: 정신분석 안에서 대상관계(1985)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1권(1953), 제 2권(1955), 제 3권(1957)

스톨러(Stoller). 쪼갬: 여성의 남성상의 사례(1973), 변태성욕: 미움의 에로틱한 형태(1975), 섹스의 흥분: 에로틱한 상상의 역동학(1979). 고통과 열정(S & M의 세계)(1991)

스톨러와 헤드트(Herdt & Stoller, 1990).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세계: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

메이(May). 자아를 찾아서(1953), 불안의 의미1996), 실존 치료(1960)

엘리오트(Eliot, 1999). 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다이아몬드(Diamond, 1999). 마음이라는 마술의 나무

센골드(Shengold). 영혼의 살인(1983), 영혼의 살인 재방문(2000), 일상생활에서 망상(1992)

투스틴(Tustin). 자폐증 어린이의 신경증(1975), 신경증 안에서 자폐증적 장애물(1986)

마스터와 존슨(Master & Johnson). 인간의 섹스 행동(1980), 인간 섹스의 기능부진(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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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으니 치료자정신분석 심리치료 홈페이지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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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 참고:

 

치료자의 전화 번호: 010-4512-1275

김종만, e-메일: jongmankim@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psychclinic.pe.kr/

정신분석 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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