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의 진실과 거짓 Ⅰ
이제 심리치료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적인 용어로 인식되어져 가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들 혹은 TV 등에서도 심리치료라는 말이 계속해서 등장하게 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하게 많이 사용되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xxx 성범죄자가 출소할 날이 2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출소하면 보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언론에서 보도 되면서 그가 심리치료 전문가가 근무하고 있는 xxx 교도소로 이송되어졌다는 기사에 대해서 사건 사고를 소개해주는 패널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리치료와 정신치료가 다르다는 설명이 더 붙여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심리치료 라는 말에 대한 첨가된 부가적인 설명에서 심리치료 라는 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치료자(필자)가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했던 1992년에 치료자가 심리치료라는 홈 페이지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심리치료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염려를 많이 했었다. 일반적으로 정신치료라는 말은 익숙해져 있다. 신문과 TV 등에서 각종 사고들이 터질 때마다 사고를 친 그 사람이 얼마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혹은 받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늘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한층 더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정신과 치료 혹은 정신치료라는 말과 심리치료라는 말은 완전히 다르다. 정신과 치료 혹은 정신치료는 신경정신과 의사들 한데서 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산재해 있다. 정신과 치료는 신경정신과에서 치료하는 약물치료를 의미한다. 정신적인 문제 혹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신경정신과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물을 처방 받아온다. 초반기에는 주로 1주일에 한번씩 이후에 증세가 개선되면 2주일 혹은 3주일 분의 약물을 처방 받아서 전문의들의 지시에 따라서 아침, 점심 혹은 저녁에 정해진 처방에 따라서 약물을 복용을 하게 된다.
신경정신과 의사들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고작 2분 혹은 3분 혹은 최대로 해도 10분 정도 넘어가지 않는다. 만약에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면 그 시간에 대한 상담 비용은 최소 10만원 혹은 최대 20만원 정도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경정신과의 의료 보험에는 상담을 하는 시간의 비용이 포함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치료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40분 혹은 50분으로 1시간 동안 대화로써 이야기를 하는 치료를 말한다. 치료자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정신분석은 심리치료의 한 형태이다. 프로이트는 심리치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정신분석 혹은 심리분석이라는 말을 사용을 했다. 심리치료라는 말은 영어로 psychotherapy 라는 말로써 psych라는 그리스어의 심리, 정신이라는 말에 치료라는 therapy라는 말이 합쳐져서 심리치료 혹은 정신치료가 된 것이다. 정신분석이라는 말은 psychoanalysis 로써 이 글자는 그리스어 psych에다 analysis라는 말 즉 분석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정신분석 혹은 심리분석이 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비엔나 의과대학에서 신경학을 전공한 의사였지만 신경증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40분 혹은 50분간 이야기를 하는 대화치료를 개발했고 스스로를 신경학자보다 심리학자(psychologist)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Ernest Jones, 1950, 1955, 1957 : 주㈜: 참고).
오늘날의 심리치료라는 말은 상담치료를 하는 치료를 말한다. 1주일에 1회기 당 40분 혹은 50분으로 1회 혹은 2회 혹은 3회 정도로 치료를 받는 사람과 치료를 하는 사람이 서로 계약을 하고 치료실에서 만나서 대화로써 치료를 지속적으로 최소 몇 개월에서 최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해 치료를 해나가는 것이다. 증세 자체의 제거에 초점을 맞춘 치료로부터 자아 결함의 치료 쪽으로 치료를 하는 치료들까지 다양한 치료들이 있다. 이러한 상담 치료의 규정과 규칙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정신분석을 창안한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가 왜 신경증 치료를 위해서 이러한 방법들과 용어들을 사용을 했는가? 하는 것은 정신분석을 소개한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에 대한 이야기에서 소상하게 밝혔었다(프로이트에 대해서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 1-19 까지를 보라).
심리치료라는 말 속에는 정신분석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부부치료, 섹스 치료, 최면치료, 게스탈트 치료, 자아 치료, 대상관계 치료 등등의 수 많은 치료들이 포함되어져 있다. 즉 40분 혹은 50분 동안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1시간 동안 대화를 통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치료를 모두 포함을 해서 심리치료라고 부른다. 심리치료 라는 낱말 자체가 등장한 것은 제 3회 국제심리학 총회 때인 1893년도였다. 그리고 심리학 이라는 학문 자체의 등장도 1889년에 제 1 차 국제 심리학 총회가 파리에서 열렸다. 다시 말해서 심리치료라는 말은 20세기에 등장하게 된 용어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떤 정신장애와 어떤 치료가 있었는가?
20세기 이전의 정신장애는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정신장애였고 그들을 치료한 사람들은 최면을 사용해서 치료를 한 최면사였다. 의과대학 레지던트 4년 차인 프로이트가 1885년 10월에 29세의 청년으로 프랑스의 가르코트라는 세계적인 최면학의 대가가 있는 파리에 6개월간 유학을 간 것은 수없이 밝혔었다.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암 제임즈 역시 프랑스의 가르코트 학교를 방문을 했었다. 최면학의 초반기 시절에는 치료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치료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히스테리아 라는 정신병을 치료를 한 최면사 이전에는 어떤 치료가 있었는가? 그 이전에는 히스테리아를 치료를 한 사람들이 자석치료사였다. 자석치료사가 등장한 것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였다.
그 이전의 시대 즉 고대, 중세 그리고 18세기까지 인간의 정신병은 귀신들린 병으로, 빙의 현상으로 그들을 치료를 한 사람들이 바로 사먄들(무당)들이었다. 정신병은 악마, 악령, 귀신에 사로 잡힌 사람들로써 인식되었고 그들이 바로 마녀로 인식되어 14세-17세기까지 유럽에서 귀신에 씌인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식 때문에 유럽에서 10만 명의 사람들이 처형되었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정신병으로 인식되어 치료를 시작한 것은 불과 300년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인식과 연구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했는가!를 설명해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인간의 머리 속을 들려다 볼 수가 없다.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지만, 사람의 한길 마음 속은 알 수가 없다”는 말이 그것을 말해준다. 마음은 형체가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고로 우리는 마음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지 않는가? 형체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가? 형체가 없는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유치원 어린이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바람이 아닌가! 바람(風)을 보라.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한다. 바람은 힘과 방향을 가지고 있다. 바람이 집을 날리고 자동차를 들어올리는 것을 보라. 태풍, 헤리케인, 토르네이도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바람의 위력을 보라!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그의 시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라는 유명한 시에서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아무도 바람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네! 바람이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나뭇잎이 살랑거릴 때 바람이 지나감을 안다”라고 시로써 노래를 했다.
인간은 사람의 마음을 들려다 볼 수 없기 때문에 행동으로 판단으로 추론을 한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한다. 목소리가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평소의 그 사람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행동으로 횡설수설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영혼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그 사람을 지배하고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빙의 현상, 귀신들린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는 꿈을 꾸면서 꿈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소망을 성취하는 경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음 즉 영혼이 몸을 빠져나갔다가 다시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몸은 파괴되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천국으로 혹은 지옥으로 혹은 떠돌아다니는 것의 이야기는 이미 최근에 “신과 함께”1, 2편의 영화가 모두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이야기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기원전 1000년의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시대와 기원 후 2000년의 지금까지 약 3000년의 인간의 삶에서 불과 300년 전에 비로소 정신병이 등장하고 정신병의 치료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어렵고 긴 진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귀신 이야기와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 무당 즉 퇴마사들의 이야기들을 미신으로 무시해왔다. 그러나 역사가들과 문화 인류학자들은 그들의 풍속과 종교와 의식(儀式)들을 기록하고 보존한 자료들을 다행히도 남겨 놓았다. 그들의 자료들을 근거로 해서 역동적 정신의학의 발자취들을 더듬어 올라가서 오늘날 심리치료의 근원의 뿌리들을 밝힌 학자들이 있다. 그들의 연구들을 통해서 역동적 정신의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우리의 조상을 모르고 우리가 하고 있는 심리치료의 근본을 모른다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될 수 있다. 장님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기둥처럼 생겼다라고 말을 하거나 코끼리의 배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벽 모양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이제 심리치료의 근원을 찾아보고 그들의 어떻게 오늘날의 인간의 마음을 들려다 보는 심리치료, 정신분석으로 진화를 했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심리치료는 20세기 초반에 최면학에 불만족해서 등장한 것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 그러나 심리치료 혹은 정신분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라는 점이다. 그들이 새로운 치료기법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과거의 불합리한 것에서 진화와 수정을 통한 뿌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스위스 출생으로 프랑스에 귀화한 헨리 엘벤버그(Henri Ellenberger)는 심리치료의 기원인 역동적 정신의학의 뿌리를 추적해서 12년 동안 무려 엄청난 량으로 총 2622권의 논문들과 저서들과 책들을 분석해서 드디어 1970년에 “무의식의 발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라는 총 900페이지의 걸작품을 출판을 했다. 치료자는(필자)는 그의 책을 번역을 해서 1999년에 치료자의 저서인 “나”: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의 출판 때 많은 인용을 했었다. 그러나 이후에 그 자료들이 머리 속에는 있지만 정리되어진 자료가 분실되어 2년 전에 다시 새로 완전히 번역을 했고 그리고 지금까지 성서의 바이블처럼 수 없이 수시로 읽고 인용을 했었다.
엘렌버그는 프랑스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분석가인 라깡과 함께 성 안나 병원(Sainte Anna Hospital) 에서 같이 연구와 치료를 한 사람으로 1941년에 다시 스위스로 가서 스위스 정신분석 학회 회장인 오스카 피스트(Oska Pfister)신부(프로이트의 제자가 된 유일한 신부)로부터 1949년부터 1952년까지 4년 동안 개인분석을 받아서 정신분석 훈련 과정을 통과하고 스위스 정신분석 학회 회원이 된 사람이다. 이후에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에서 메닝거 크리닉(Menninger Clinc)에서 정신의학 서비스 국장으로 있다가 캐나다의 몬트리올 대학교 범죄학 교수가 되어 범법자와 피해자 사이에 역동적 정신의학의 개척자로 범죄의 피해자 학문(victimology)의 개척자가 되었다(2016, 1.7 위키피아에서 인용). 그는 한 개인으로써 광범위한 자료의 수집과 분석으로 역동적 정신의학의 뿌리인 퇴마와 퇴마의식에 관계된 자료들에 대한 참고문헌으로 무려 280권의 문헌들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역동적 정신의학 즉 심리치료가 어떠한 과정으로 진화를 했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간은 고대 그리스 시대를 제외하고는 중세의 1000년을 거치면서 무지하고 미신적이고 종교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중세는 기독교 시대로 그리스 시대의 마음이 영혼으로 바뀌고 귀신과 마녀, 악마와 악령들의 시대가 되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이름난 유명한 학자들을 집으로 초대를 해서 자녀들이 가정교사를 통해서 교육을 받게 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들어오면서 프랑스에서 시작된 18세기의 계몽주의가 세계로 확대되어갔다. 기독교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시작된 학교가 이후에 공립 학교로 확대되어지면서 사람들이 무지와 미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 계몽주의의 시작이 되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시점에서 인류학자들이 원시적인 의술인들의 치료의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한 문헌들을 통해서 어떻게 샤만인 무당이 환자를 치료를 했는가?를 살펴 보자. 독일의 인류학자인 아돌프 바스테(Adolf Bastes, 1894)가 두통과 열병으로 의술인에게 찾아가서 구아나(Guyana) 지역에서 현장에서 치료를 받은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Ellenberger, 1970).
의술인은 그에게(비스테) 담뱃잎 몇 장과 걸이 침대(줄에 매달린 천을 나무 가지 사이에 걸치고 잠을 자는 간이 침대 형식)를 지참하고 의술인 오두막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곳에서 물그릇 속에 담뱃잎을 집어 넣으라고 했다. 약 30명의 원주민들 앞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창문도 없고, 도어문이 닫혀있었다. 어둠이 비쳤다. 의술인은 그에게 손과 머리를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땅을 발로 밟으면 위험하다고 경고 했다. 영어를 할 줄 하는 꼬마 소년이 통역을 했다. 악마를 불러 왔다 -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서 조작들이 느껴졌다. 날개가 푸드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악령이 날아다닌다고 느꼈다(그것은 대나무 가지를 흔들 때 나는 소리와 느낌이었다). 6시간 동안 최면의 잠에 빠졌다. 깨어났을 때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마리의 풀벌레를 이마에서 떼어내서 보여주면서 질병이 빠져나갔다고 했다. 이러한 인류학자들의 기록을 분석해서 바르텔(BArtel, 1893)는 위와 같은 자료들을 모집하고 분석을 했다. 그는 원시의학을 해석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존재하는 원시적인 의술을 5가지 유형의 형태로 분류를 했다. 1) 질병의 침범이다. 치료는 질병을 몸으로부터 외부로 추방을 하는 것이다. 2) 영혼의 상실이다. 잃어버린 영혼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3) 약령의 침투이다. 악령을 쫓아내는 굿(exorcism)을 하는 것이다. 4). 금기의 위배이다. 고해, 참회, 속죄를 하는 것이다. 5). 주술, 마법에 걸린 것이다. 마법을 푸는 것이다.
질병의 침범은 외부에서 침범한 질병을 추방하는 것으로 문화 인류학자인 비스테의 치유의 과정에서 밝혀진 것처럼 숨겨 놓은 벌레를 그 환자에게 보여주면서 몸으로부터 질병을 쫓아냈다고 안심을 시키고 마음을 안정을 가져오게 해서 심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두통과 복통과 급체 등은 심리적인 불안 때문(과도한 몸의 긴장으로 자율신경 조직에 불균형)에 오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의 안정으로 신체적인 기능을 되찾는 방법이어서 속임수로 벌레들 잡아서 몸 안에서 제거했다는 믿음은 일부 안정 효과가 있었다. 이러한 효과는 옛날 우리의 엄마들이 자녀들이 소화불량, 복통으로 고통을 받았을 때 엄마 손이 약손이다 라고 하면서 어린이들의 배를 만지고 쓰다듬어주면서 위로와 안정을 제공해주었을 때 신기하게도 배가 아픈 것이 사라지는 심리적인 효과와 비슷하다. 오늘날 치과 의사가 몸에서 제거한 이빨을 보여주거나. 수술 후에 제거한 신체 부위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도 유사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영혼의 상실과 회복에 대한 퇴마사들의 치료 과정을 살펴보자. 영혼이 우연히 혹은 사고로 몸을 떠날 때 혹은 주술, 마법에 의해서 영혼을 빼앗겼을 때 치료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다 그리고 데리고 와서 영혼을 회복하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유령에서 찾았다. 이러한 영혼의 분실을 회복하는 샤만들은 세계 곳곳에서 있었다. 시베리아지역, 서부 아프리카, 인도네이아, 뉴기니아, 오세아니아, 멜라네시아 등등에서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샤만(무당)들은 살아 있는 세계와 죽은 세계를 연결하는 중개자 역할을 했다. 지하의 세계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다른 망령들의 도움으로 악령과 싸움을 벌리는 것이 샤만의 치유과정이다. 그들은 훔쳐간 망령, 유령들과 거래를 한다. 영혼을 찾아서 데리고 온다. 이러한 치유의 과정은 치유하는 샤만들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그 환자의 샤만에 대한 신뢰, 믿음이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치유를 하는 샤만들은 사회에 명망이 있는 사람으로 훈련, 교육, 엄격한 룰, 비밀요원들, 모임들을 가지고 한 개의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악령, 귀신의 침투는 퇴마의식으로 몸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냈다. 환자가 갑자기 주체성을 상실하고 변장된 목소리, 평소와는 다른 말씨, 낱말들을 사용하거나, 의식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된 것을 귀신이 침투를 해서 좌지우지 하는 것으로 보았다. 지중해 지역, 시베리아 지역, 고대 그리스의 델피 신전에서 무당들이 대표적이었다. 샤만들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로써 절제적이고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침범자에게 엄숙하게 경고하고 개인에게 용기를 주어서 칩입자의 위협을 막아주었다. 침범자가 말을 하도록 유도하고 그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거래(바겐)가 이루어지도록 했다(그 사람의 소망 충족이 이루어지도록). 약령과 샤만의 투쟁은 수일에서 수개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귀신을 쫓는 굿 즉 퇴마의식의 한 예를 죠안 크리스토프 블룸하드(Johann Chistoph Blumbart, 1805-1880) 목사(B 목사)가 G양의 퇴마의식을 어떻게 하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28세 G양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3명의 동생들(2명은 여동생, 1명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1842, 4월에 G양이 2년 전에 죽은 여성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그 집에 죽은 여성이 출몰해서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이웃사람들이 그녀의 집 안에서 테러적인 소리를 들었다. B 목사가 그 소문을 듣고 확인을 하기 위해서 접촉해서 G양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B목사 앞에서 G양은 목소리가 변했다. 죽은 여성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이 세상에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두 명의 살해 당한 어린이가 있다. 악마의 힘들 안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B 목사는 계속해서 G양을 만났다. G양은 점점 악화 되어져갔다. 3명의 악마가 7명으로 그리고 14명으로 불어났다. 그녀의 입을 통해서 더러운 저주들이 쏟아져 나왔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었으나 B 목사는 무사했다. B 목사는 기도와 금식으로 무장을 했다. 1843, 2월에 G양은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지진을 예언했다. 서부인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1843년 크리스마스 때 그녀는 모래, 유리조작, 옷들을 토해냈다. 일부 피를 토했다. B 목사가 G양의 집에 같이 쉬도록 허용해주었다. G양은 B목사의 말을 수용했다. 그 때부터 악마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악마가 G양을 고문해서 남동생과 여동생까지도 악마의 피해자가 되었다. 남동생은 곧 회복이 되었다. 여동생은 심하게 공격을 받았다. 1843, 12. 28일에 B 목사와 악마 사이에 투쟁이 시작되었다. 여동생 K양이 밤새도록 비명을 질렀다. 새벽 2시에 “예수님이 승리를 했다.”라고 고함을 쳤다. 아침 8시에 영혼이 사라졌다. K양은 회복되었다. G양 역시 악마들의 영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B 목사는 그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을 했다. G양은 깊은 종교적인 가정에서 성장을 했다, G양은 미신적이었다. G양은 두 번이나 강간을 당했고 출산으로 2명의 자녀가 사망을 했다. 엄마가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다. G양의 한 아주머니가 마녀로 그녀를 악령으로 인도를 했다. B 목사는 독실한 기독교 가문출신으로 12살 때 성경을 2번이나 통독한 사람이었다. 학생 때는 신학을 연구해서 기독교인의 의무와 역사의 글을 썼다. 1838, 7월에 33살로 몬텔리엔 지역의 목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질병의 뿌리는 죄악으로 보았다. 신경안정제는 악령에 위험으로 보았다. 지식적이고 영웅적인 용기를 가지 사람이었다. 한 개의 복음에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지역은 숲 속에 있는 지역으로 마녀, 미신이 유형을 했다. B 목사의 전임자인 바덴(Barth) 목사가 맹신주의자여서 종교 운동에 실패를 했었다. B 목사의 임명은 그 지역 사회에 구원자로 인식되었다. 2년 동안 퇴마의식을 지역 사람들은 생생하게 보았고 마음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악마의 축출은 그 지역 사회에 승리였다. 그 지역 사회 사람들이 B 목사에게 그들의 죄를 고해하고 축복을 요구했다. B 목사는 그 지역에서 명예와 존경을 받았다. 군중들이 달려가서 죄를 고해했다. 설교, 병자 치료, 기도의 힘으로 질병으로부터 구원을 받도록 했다.
G양은 오늘 날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이다. 2년 동안 B 목사를 집으로 초대한 것은 그녀의 강력한 치료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 B 목사의 치료 의지 즉 자신감이 통합되어 쌍방 관계로 상호간에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었다. G양은 B목사의 가족이 되었다. G양의 마음 속에 악마적인 자아와 B 목사와 타협이 악마의 철수 즉 치료로써 회복이 된 것이다. B목사는 기도와 금식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G양에게 호소를 했고 G양이 수용해서 B 목사의 기도를 따라간 것이다. B 목사는 G양이 악마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해서 악마의 세계를 탐색을 했다. 그 시점에서 G양은 증세가 악화 되었다(3명의 악마가 14명으로 급증). G양의 마음 속에 피하자의 영혼과 악마의 영혼을 분리시키고 악마에게 반대투쟁을 하도록 하고 건강한 마음에 힘을 강화시켰다. G양의 무의식 속에 갇혀있는 2번의 강간과 2번의 유아 사망의 상처를 끄집어 내서 의식으로 표면화 시켰다. G양에게 그녀가 다양한 조건에 직면해서 그 조건들을 뚫고 나가도록 해서 자아의 힘을 키우게 했다. G양의 억압된 고통을 토해내고 속죄, 참회로써 죄악에서 해방시켜주었다.
금기의 위배로 병이 들게 된 것은 고해를 통한 치유를 했다. 음주와 간음은 죄악의 뿌리가 되고 그것이 병의 원인으로 보았다. 오늘 날 케토릭에서 고해성사가 대표적인 것이다. 옛날 신라시대에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이다 라는 우화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발사가 임금님의 머리를 손질하다가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의 귀라는 것을 발견했다. 임금님은 자신의 귀에 대한 비밀을 지킬 약속을 했고 어길 경우에는 죽일 것이라고 한 말에 참다가 참지 못해서 숲 속의 갈대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다라고 말을 한 것이 그것이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게 되면 억압되어져서 병이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고해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있었다. 고해에는 긴 죄악의 리스트가 따라온다 이것을 훈계와 참회로써 약화 시키는 것이다. 아들이 병이 나면 아버지가 고해를 했다. 부인이 병이 들면 남편이 고해를 하고 참회를 했다. 잉카인들은 한 사람이 병들면 모든 주민들이 참회를 했다. 고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의 재난은 황제와 왕이 고사를 지내면서 고해, 참회를 했다. 죄들은 질병의 뿌리가 된다는 개념이었다. 도덕과 종교의 법칙에 위배되면 자발적인 처벌과 자해로 이어진다. 자위행위는 죄악으로 자아처벌로 이어졌다. 오늘 날 정신 의학에서는 죄악은 죄의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죄의식의 느낌이 신체적 질병이 된다는 개념은 지금도 살아 있다.
알덴호벤(Aldenhoven, 1957)(A 박사)의 저서에서 한 개의 치료 사례를 소개한다. 42세의 부인이 폐렴 5일 만에 병원에 입원을 했다. 심한 호흡 곤란과 청색증으로 맥박이 120, 항문 온도가 40도였다. X-선 촬영 결과 왼쪽 가슴에 볼록 부분이 폐염의 증세를 보여주었다. 약물 복용은 증세가 더욱 악화 되었다(항생제 등장 이전). 질병 6일 때 맥박이 150까지 상승했다. 청색증 증세가 심해지고 호흡이 약해졌다. 식은 땀을 흘렸다. 그녀는 그녀가 조만간 죽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A 박사가 저녁에 그녀를 방문을 했다. 혈액 체혈을 하고 귀농방지를 위해서 주사를 놓았다. 맥박과 호흡이 악화 되었다. A 박사가 그녀의 침대 옆에 가서 위로를 하면서 내일 아침에 여동생이 방문을 올 것이다 라고 했다. 환자는 내일 아침까지 버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벌? 어떤 벌?을 말합니까? 라고 A 박사가 말을 했다. 남편이 전쟁 포로로 감금되어있는 동안에 그녀가 외도를 해서 죄를 지었다고 했다. A 박사가 “땅 위에서는 죄를 지었지만 지하에서는 죄를 짖지 말라”라는 말에 그녀는 참회와 용서를 고해를 했다. 몇 기간 후에 청색증, 맥박, 호흡에서 완전히 회복으로 부인은 퇴원을 했다.
좌절은 욕구 만족을 통해서 치유를 했다. 좌절과 불만이 질병으로 간다고 보았다. 소망의 실현은 욕구 충족으로 질병을 치유를 했다. 마우리 족은 마음 속에 불만족의 샘이 있기 때문에 화, 불안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향수병, 상사병으로 서서히 시들어가는 병이 그것이다. 향수병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백일몽이고 상사병은 사랑이 좌절된 남녀의 젊은이들이 걸리는 병이 아닌가? 사랑의 대상과 통합의 실패로 죽음으로 가는 예들은 수 없이 많다.
예수회 선교사 라구에난(Raguenan, 1899)(R 신부)의 후론 족과 생활에서 예를 들어 보자. 그들은 3개의 질병의 원인들 즉 자연의 원인, 주술의 원인 그리고 충족되지 않는 소망의 원인이었다.마지막의 충족되지 않는 소망을 치유하는 것은 그 부족의 꿈 축제였다. 꿈을 꾸고 나면 대중 앞에서 축제로써 그 꿈을 실현시켜주는 축제들이었다. 한 지역을 방문 중에 한 부족 인이 프랑스인을 살해하는 꿈을 꾸었다. 그 축제에서 그 프랑스인의 옷을 사람 대신에 살해하는 축제를 했다. 또 한 사람의 꿈에 엘크 사슴 20 마리의 머리를 가지고 잔치를 하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꿈의 축제에서는 엘크 사슴 대신에 빵 20개로 대체 하는 축제를 했다. 치료자는 유사한 치유의 사례를 징기스칸의 후예들(원나라를 창설한 쿠빌라이 칸의 드라마)이라는 중국 드라마에서 쿠빌라이가 인재 초빙을 위해서 한(漢)족으로 재능을 가진 유명 인사인 유병춘을 5번이나 찾아가서 같이 위대한 제국을 만들어보자고 애걸복걸했으나 그의 어머니가 몽고족에게 살해당한 원한 때문에 거부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쿠빌라이의 옷을 쿠빌라이 대신에 칼로 살해를 하는 연출을 통해서 몽고족에 대한 복수를 대신하고 마침내 그의 허락을 받아내는 특이한 해결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섹스 불만족으로 생긴 병을 해결하는 한 개의 예는 이집트의 자르(Zar)라는 종교 의식(儀式)에서 볼 수 있었다. 낮은 신분의 계급의 사람들은 그들의 섹스불만족을 쿠디아(Kudya)라는 여성이 3명의 도우미의 도움으로 북과 템버린을 흔들면서 노래, 춤, 황홀함에 빠지는 축제에 참가를 했다. 섹스에 불감증을 가진 여성들이 신부 복장을 하고 방 안에 인도되어진다. 옷을 벗고 흰 셔츠를 입고 황홀함에 춤을 추는 쿠디아의 연인으로 마루에 쓰러진다. 악마의 초대를 받은 디진(Dkinn)들에게 섹스 관계를 통해서 오르가슴을 회복하는 종교적인 축제였다. 불감증을 가진 여성들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치료를 통해서 그들에게 섹스 욕구 만족을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거부된 실패와 좌절은 박해 받음의 편집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이티(Haiti) 족 안에서 환자는 동정적인 주의와 관심을 받게 되고 능력의 적당한 위치가 제공되어진다. 혼란한 개인은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되어지는 것이다. 소속감의 부재로 생긴 병들은 사회의 인정과 소망의 충족으로 해결되어지는 것이다.
의식(儀式)을 통해서 치유를 하는 것이다. 원시적인 치유는 한 개의 의식, 예식으로 수행이 되어진다. 의식은 그 핵심에 치유의 요인들이 있다. 의식, 예식은 분장들, 음악들, 춤 등으로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효과를 낸다. 의식 안에서 상처에 초반기 원인을 재연한다. 켈리포니아 인디언 포모(Pomo)족의 경우에는 의술인이 가족들과 컨설팅을 했다. 그리고 환자가 병이든 원인의 본질을 추적을 했다. 귀신, 유령의 옷으로 분장을 하고 괴물의 모델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환각, 시각을 재생산하는 것이었다. 상처적인 장면을 환자에게 소개를 하면서 그 상처에 노출을 시키는 것이다. 이 직면에서 두려움, 놀램을 피하지 말고 체험하게 된다. 놀래면 정확하다는 증거로 인정을 했다. 시련에 연속적으로 직면을 계속하게 해서 이후에 그 분장을 벗고 그 환자에게 그 분장을 파괴하게 했다. 그 의식에는 그 사회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참가해서 집합적인 의식을 거행을 했다. 그 환자는 마음 속으로부터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노래와 춤, 불쾌한 감정의 방출과 분장한 가면의 유령들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을 파괴시키면서(분장을 불태운다) 소속감을 회복하고 악을 분장에 이전시키고 회복과 사회에 소속감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인큐베이트 즉 잠복과 부화를 통한 치유를 했다. 환자들은 신선한 장소를 찾아서 멀리서 온다. 금식을 포함한 순수한 신성한 물을 마신다. 카우치가 제공되고 -----신탁을 받고 꿈을, 환각들을 가진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신성한 동굴인 아스캠피리아가 그러한 치유의 대표적인 것이었다. 마술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의 동굴로써 그 안에 있는 망각의 샘에서 물을 마시고 과거의 죄들을 속죄한다. 그리고 기억의 샘에서 샘물을 마시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을 했다. 환각과 테러에 붙잡히면 사제들이 그들을 방문해서 기억의 의자에 데리고 갔다. 과거의 죄들을 회상하도록 연상으로 연결 시켜서 고해와 고백으로 유도를 했다.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 과거 회상으로 자유연상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도원을 방문해서 참회와 금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마술과 마법으로 치유를 하는 것이다. 마법에 걸린 사람들에게 마법을 푸는 방식으로 마술로써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마술사들이 마술을 보여주면서 눈으로 보고 사람들을 믿도록 만드는 것과 유사했다. 인간의 5감각 중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것이 시각 감각임을 옛날부터 이용을 한 것이다. 마술사들이 사람들의 눈의 속임수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실제로 믿게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러한 원시적 의술은 의학의 발달의 전반기 단계였다. 목욕, 찜질방, 마사지, 기초적인 외과 수술, 약물 등이 사용되었다. 약물들은 원시적인 의학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200여 개의 식물들이 외술인에 의해서 쯥, 탕의 형식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원시적인 치유를 하는 사람들은 그 지역 사회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복지에 관계를 하는 추장, 사제, 승려들이었다. 그 지역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음유 시인들이었다. 그 치유자들의 성격의 제 1 차적인 요인은 구세주의 원형이었다. 자아를 일깨우고 개발하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다. 어려운 훈련을 통해서 신분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비밀적인 지식과 전통을 이전시키는 그룹의 멤버들이었다. 영감으로 혹은 의식을 통한 귀신에 사로 잡힘을 감내하고 자아 최면으로 황홀한 감정, 금식, 술과 약물에 의해서 유도되어진 황홀함으로써 망령들과 맞섰다. 심한 질병의 감내 이후에 스스로 무당이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오늘날과 유사하다.
위와 같은 미신적인 퇴마의식은 계몽주의시대를 거치면서 귀신, 악령, 악귀, 마녀 등의 인식에서 정신병으로 그리고 치료를 하는 치료 기법으로 진화를 하는 획기적인 사건이 역사에 기록되어져 있다. 엘렌버그가 소개한 그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1775년에 오스트리아 대 제국(그 당시 유럽은 작은 도시국가들로 구성되어져 있었고 오스트리아는 제 1 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유럽의 최대의 강국으로 12 개 이상의 국가들을 통치하고 있었다)의 웨텐부르그 안에 있는 조그만 읍내로 알려진 엘와겐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골의 사제인 신부 가스너(Gassner)가 캐토릭의 권위자들, 의사들, 모든 계층의 귀족들과 보르죠아(중, 상공인들) 구성원들, 회의주의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인 광장 앞에서 귀신을 쫓아 내는 굿을 즉 퇴마의식을 군중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것이었다. 그의 말과 제스처 하나하나는 공중 서기가 기록을 했다. 공식적인 기록들은 이름있는 증인들의 서명을 받았다. 가스너는 의식(儀式)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신부 복장, 십자가, 그리고 성경책을 들고 등장을 했다. 아베 신부(Abbe) 신부가 그 대화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을 했다. 환자들은 그 교구에서 귀신이 씌여서 추방 명령을 받는 2명의 수녀들이었다.
첫 번째 수녀가 가스너 앞에 부축을 받으면서 나타났다. 가스너는 그녀의 무릎을 꿇게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녀의 귀신들림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그녀의 이름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가스너의 굿을 진행하는 것에 동의를 하는가? 를 물어 보았다. 그녀는 동의를 한다고 대답을 했다. 가스너가 엄격한 라틴어로써 “만약에 이 질병에 초자연적인 것이 있다면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 하노니 그것이 즉각 형체를 나타남을 보이라”라고 명령을 했다. 그 환자가 즉각 발짝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을 했다. 그 발짝이 악령에 의한 원인임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가스너는 악마를 다스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악마에게 라틴어로 몸의 다양한 부분에서 발짝 증세를 보이라고 명령을 했다. 즉 죽음의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라 라고 명령을 했다. 악마와 거래를 한 것이다. 그녀는 발짝 증세를 보이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수십 분 동안 보여주었다. 가스너가 십자가와 성경책을 그녀의 가슴에 갖다 댔다. 그녀는 발짝 증세들을 더욱 더 심하게 보여주었다. 30분-40분이 지나가면서 발짝 증세가 완화 되었다. 그녀는 털털 틀고 일어나서 걸어나갔다.
두 번째 수녀가 등장해서 위와 똑 같은 과정을 반복을 했다. 집회가 끝난 후에 아베 신부가 그녀에게 고통스러웠는지?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많이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대답을 했다. 세 번째 환자인 신분이 높은 숙녀가 나타났다. 과거에 멜랑꼴리아(심한 우울증)로 고통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가스너는 그녀에게 극복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 보았고 그 숙녀에게 고통을 심하게 받을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가스너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그는 오스트리아의 한 산악 지역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1750년에 신부 서품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신부 직책을 수행하고 있던 도중에 격렬한 두통과 현기증과 혼란을 고통을 경험을 하고 나서 미사, 고해, 고백을 했을 때 더욱 더 악화 되었다. 고로 악마가 작업을 한다고 인식하고 퇴마의식에 하소연을 해서 고통이 사라진 것을 경험을 한 사람이었다. 이후에 그는 귀신을 쫓아내는 굿을 스스로 배우고 이것을 통해서 여성 백작을 치유하고 책을 출판을 했다. 그는 치유의 방법을 설명을 했다. 자연적인 질병은 의사에게 그리고 초자연적인 질병은 악마가 원인이 된다고 주장을 했다. 그는 치유의 핵심을 퇴마사에 퇴마의식을 하는 것에 동의를 하는 것을 제 1 차적인 조건으로 제시를 했다. 질병의 증세들을 분명히 나타내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일반 의사들에게로 보냈다.
가스너의 명성이 전국에 널리 펴지게 되었다. 그는 전국에서 요청을 받게 되었다. 지역의 추기경들의 협조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퇴마의식을 거행을 했다. 환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를 둘러 싼 논쟁이 격화 되었다. 반대파들도 많았다. 목사, 신학자, 청교도 신학자,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자들이 그들이었다.
그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은 옛날의 봉건주의시대로부터 군주국가의 왕권시대로 옮겨가고 있었다. 유럽의 대륙은 오스트리아의 군주가 좌지우지 하는 시대로 12개 이상의 국가들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는 과학과 예술의 도시였다. 교회가 중, 상류층들을 통치를 하고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해서 무지, 미신, 맹목적인 믿음에서 서서히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고 있었다. 교회 안에서 계몽주의가 싹이 트고 자라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그 가의 마리아 테레사가 섭정을 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케스린 대제가 그리고 프러시아는 프레드릭 Ⅱ세가 통치를 하고 있었다. 전 유럽 대륙에 걸쳐서 악명 높은 마녀 사냥이 계속되고 있었다. 마녀들이 악령을 전파한다는 믿음 때문에 그들을 잡아서 불태워 죽이는 마녀 사냥이 유행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치유를 하는 귀신을 쫓아내는 퇴마의식은 인기가 있었다. 논쟁이 격렬해지고 사회가 찬반 양론으로 격화되고 혼란과 불안을 동반하면서 리젠부르그의 주임 주교가 1775년의 가스너의 사건에 대해서 조사위원회를 소집을 했다. 4명의 조사위원들이 구성되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메즈머(Mesmer)로 명망 있는 의사였다. 그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의 종소리가 울려 펴지게 된 것이다. 그는 가스너를 방문해서 퇴마의식의 시범을 보고 나서 그 자리에서 퇴마의식인 신부 복장, 성경책, 십자가가 필요 없이 자신의 손가락 하나로 똑 같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고 장담을 했다. 그는 케네디 신부가 발짝 증세를 보이자 그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로써 시범을 보이고 발짝 증세를 사라지게 한 것이었다. 그 조사 위원회의 결과로써 가스너는 지역 교구의 작은 마을로 보내지고 로마 교황의 명령에 의해서 퇴마의식은 교회의 법칙에 띠라서 지역구 안에서 수행하도록 제한을 받았고 퇴마의식은 이 시점에서 역사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제 메즈머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프란츠 안통 메즈머(Franz Anton Mesmer, 1734-1815)는 최면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최면인줄 모르고 죽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 자신이 위대한 발견을 하고도 그것을 모르고 죽은 2명의 위대한 사람이 역사에 기록되어져 있다. 그들이 바로 최면을 발견한 메즈머와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신대륙이라는 것을 몰랐던 컬럼버스가 바로 그들이었다. 둘 다 실망으로 죽은 불행한 삶을 마감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져 있다고 엘렌버그(Ellenberger, 1970)가 그의 저서 무의식의 발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인 그의 저서에서 노트를 하고 있다. 메즈머는 제자들을 양성하지 않고 혼자서 자신의 유체이론을 독점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의 삶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자스틴 케르네(Justine Kerner, 1856)(후반부에서 소개되어질 것이다)가 그의 삶을 추적해서 정보를 모은 것이 전해지고 있다.
메즈머는 1734, 5. 23에 콘스탄틴 호수의 독일의 해변가에서 탄생을 했다. 9명의 자녀들 중에서 3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콘스탄틴의 주임 주교의 수렵 감시인이었다. 18세의 나이에 예수교 신학교 입학 3년 후에 예수회 대학교의 법학과에 등록을 했다. 그는 신학과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다가 다시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사람으로 33살의 나이에 의학 박사가 되었다. 그는 인간의 질병에 대한 우주의 영향을 논문으로 썼다. 부유한 귀족의 미망인과 결혼을 해서 풍족한 생활을 한 사람으로 1776년에 비엔나에서 의사로써 출발을 했다. 그는 화려한 저택에서 생활을 했다. 모짤트, 하이든 등이 그의 사설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15세 이전에 심각한 증세들로 고통을 받고 있던 27세의 여성 환자인 오스틴을 성공적으로 치료를 했다. 그는 영국의 의사들이 자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40세 때 자석 치료의 고안으로(몸에 철분을 이용한다는 한 영국 의사의 자석 치료에 영향) 자장 이론과 유체이론으로 무장을 해서 등장을 했다.
그 당시에 등장한 과학의 도움으로 자장, 자석, 전기의 흐름의 이론으로 당당하게 그의 유체이론, 동물 자장이론으로 된 저서들을 출판을 했다. 그는 항가리의 귀족인 조르카(Jorlca) 남작이 그를 성곽 안으로 초대를 해서 2주일 동안 치료를 받도록 했다. 그 남작은 비엔나의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메즈머가 그 남작의 발짝 증세를 예고를 했다. 발짝이 일어날 때 메즈머가 가까이 갈 때 증세가 감소되고 멀어질 때 증세가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관찰자들은 메즈머의 주변에 가면 잠이 온다고 노트를 했다. 주변에 환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 그 남작의 성곽으로 모여들기 시작을 했다. 한 노래를 하는 숙녀가 목소리를 상실했다, 그녀가 메즈너 앞에 왔을 때 메즈머가 손가락으로 제스처를 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6주일 전에 청각을 상실한 한 농부가 그를 찾아와서 치료로서 회복이 된 것을 보여주었다.
메즈머의 이러한 치료는 고대와 중세 귀신 이론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퇴마의식에 종지부를 찍는 결과를 가져왔다. 메즈머는 사람이 혼란한 것은 귀신에 씌인 것이 아니고 즉 빙의 현상을 정신병으로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신체적인 질병처럼 정신도 병든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중세의 미신과 무지와 맹목적인 종교적인 믿음 속에서 사람들이 배움을 통한 지식으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그 시점에서 등장한 과학으로부터 귀신의 장난은 정신이 병든 것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치료 기법으로 자석 치료가 등장한 것이다. 무지와 미신에 대한 이성의 승리였다. 메즈너는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아닌가? 메즈머의 자석 치료는 동물 자장이론으로 무장을 해서 반세기 동안 전 유럽을 휩쓸게 된다.
다시 메즈머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오스트리아에서 전국에서 자석치료의 열풍이 거세게 밀어 닥쳤다. 황실에서 마리아 테레사가 이러한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고로 메즈너를 초빙을 해서 그녀의 몸종으로 악사인 장년 소녀를 치료를 받도록 요청을 했다. 메즈머는 자신의 발견이 뉴톤의 만유인력에 버금가는 발견으로 새로운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 공언을 했다. 그는 과학적인 이론으로 무장해서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이론을 책으로 출판을 했다. 그것을 읽어본 지식인들이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로 오스트리아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되었다. 초청을 받은 메즈머는 18세의 장님 소녀를 자석으로 치료를 해서 그녀가 희미하게 눈에 물체가 보인다고 환호를 했다. 그러나 몇 일 후에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메즈너가 실패를 한 것이 증명이 된 것이다. 메즈너의 인기를 추락을 했다. 그는 그가 발견을 한 자석 치료가 만병통치약으로 오인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인기가 떨어진 메즈너는 오스트리아에서 파리로 건너갔다. 43살의 메즈너는 파리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당시 프랑스는 연약한 왕, 경솔한 여왕으로 불안한 정부였다. 재정난 때문에 왕실이 흔들리고 있었고 사회는 불안하고 반종교적인 경향에 그리고 귀족들의 특권에 매달려 있었다. 메즈머는 프랑스의 의사들과 접촉을 하고 그리고 프랑스의 상류층과 귀족들에게 접근을 했다. 귀족의 주치의인 델슨(D’Eslon)이 자석 치료에 매혹이 되었다, 자석의 사용과 전기의 사용을 응용을 해서 몰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집단 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알미늄으로 만든 반쪽의 구인 바퀘(Baquet)를 만들었다. 전기를 저장하는 라이덴 병의 원리를 사용해서 평소에 건강한 사람의 유체를 그곳에 저장을 풍부하게 저장을 하도록 고안을 한 것이었다. 치유를 할 때 그곳에서 저장된 유체를 다시 몸으로 이동을 시켜서 이것을 라포, 레포(rapport)라는 구리 막대를 이용해서 병든 사람에게 전달해서 몸 속에 건강한 유체를 회복 시킨다는 유체이론을 내 놓았다. 변호사인 베르가세(Brgasse)가 가담을 해서 저작권의 보호를 책임지게 했다. 그리고 은행가 코르만(Kermann)으로 하여금 재정적인 면을 담당하면서 그들도 역시 자석 치료 이론과 자장 이론을 배우게 되었다.
메즈머의 인기가 치솟았다. 프랑스 전국에서 뉴톤의 만유인력에 버금가는 새로운 유체이론을 배우겠다는 유행이 산불처럼 번져갔다. 의사들, 변호사들, 귀족들이 이것을 배우겠다고 몰려들었다. 그는 미묘한 물리적 흐름이 우주를 지배한고 그것이 인간, 지구 그리고 인간의 신체, 인간과 인간을 지배한다는 이론으로 무장을 했다. 인간의 유체가 불균형이 되면 결과적으로 질병으로 결과 한다 그리고 그 불균형의 회복이 치유로 간다고 역설을 했다. 인간은 동물적인 자장을 소유하고 있고 건강한 사람은 많이 소유하고 병든 사람은 적게 소유해서 그 유체가 미약하기 때문에 힘이 빠지고 무기력하게 되고 매사에 흥미가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몸이 쇠약해져서 정신병에 걸리게 된다는 이론이었다. 그는 유체는 저장하고 저축할 수 있다.
물리학의 이론을 도입을 해서 합리적으로 설명을 한 것이 일반인들과 지식인들에게 통하게 되었다. 자석 이론과 에너지 이론과 뉴톤의 만유인력을 이용해서 몸의 전기의 저장, 유체의 전달로 이어지게 했다. 우주를 침투하고 있는 한 개의 우주 인력은 태양, 달, 위성의 인간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 전도체, 전기의 흐름, 방전, 방출, 도체와 절연체 그리고 축전기의 원리를 이용을 한 것이었다. 양극과 음극의 중화 그리고 위기 상황이 질량의 생산의 증거로써 이용을 했다. 그리고 반복된 위기로 발짝 증세를 증가시켜서 방출을 하면 증세가 작아지고 완화되고 회복이 된다는 이론을 폈다. 약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환자들이 감각을 느끼고 위기를 느끼도록 했다. 집단 치료를 통해서 약 200명의 환자들이 메즈너의 집을 찾았다. 그는 델슨의 자석 치료는 메즈머 자신의 이론을 훔친 것으로 비난을 했다. 변호사들, 의사들, 지식인들이 메즈머의 판권을 사려고 집단을 형성을 했다. 메즈머의 교리를 출판을 하고 독점적인 소유권의 가지려고 했다. 여기에서 메즈너의 제자들의 분노를 촉발 시켰다.
프랑스의 왕이 이러한 사회적인 소동에 대해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와 의학 아카데미에 감사원을 구성하도록 명령을 해서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천문학자인 베일리(Bailly), 화학자 라보아제(Lavoisier), 의사인 킬로틴(Gaillotine) 그리고 프랑스 주제 미국 대사인 벤자민 플랭클린(Benjamin Franklin)(그는 연의 꼬리에 구리줄을 매달아서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증명한 과학자이자 정치가) 등이 조사위원회의 멤버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들의 핵심 초점은 메즈너가 뉴톤의 만유 인력에 버금가는 유체 이론을 발견을 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조사 결과 유체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이 났다. 그러나 치료의 효과의 일부는 인정을 했다, 상상의 탓으로 인정했다. 예민한 여성들은 치료사와 관계에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를 했다. 메즈머는 반발을 했다. 그가 조사위원회의 조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조사위원들은 델슨에 가서 조사를 한 것이 부당하다고 호소를 했다. 동시에 과학자들은 메즈머에 대해서 비판적이었고 회의적이었다. 자장 이론에 반대하는 저서들이 출판이 되었다. 메즈머가 오스트리아와 황실에서 장님 소녀였던 마리아가 파리를 방문해서 장님으로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에 메즈너는 충격과 수치심으로 1785년에 파리를 떠났다. 그 이후에 메즈머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메즈머는 신비스런 힘을 이용한 고대 마술사에 가깝다고 역동적인 정신의학의 역사가들은 평가를 하고 있다. 그의 교리는 현재 역동적 정신 의학의 곳곳에서 기초적인 교리로 사용되고 있다. 환자와 레포, 라포의 형성의 중요성과 그리고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증세의 위기를 노출시켜서 치료를 하는 것과 그리고 집단 치료는 지금도 사용되어지고 있다. 현재의 역동적 정신의학은 메즈머의 동물 자장 이론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엘렌버그는 그의 저서에서 기술하고 있다.
메스머는 계몽주의의 아들이었다. 그는 신학, 철학, 법학과 의학을 공부한 다재다능한 의사로써 고대와 중세의 귀신 이론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병으로 전환하는데 촉매 역할을 한 사람으로 그리고 정신병을 치료를 하는 자석 치료기법으로 정신장애를 치료를 시작한 장본인으로 그의 공로는 인정을 받고 있다.
메즈머의 유체 이론과 동물 자장 이론은 그의 제자인 포병 대장 푸이세이크의 형제들에 의해서 계승되어져서 자석 치료는 최면학으로 밝혀지고 이후에 프랑스가 전 세계의 최면 치료의 본산지가 되고 귀신병과 빙의 현상은 히스테리아라는 정신병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그리고 현대적인 치료로써 탈바꿈하게 되는 역사의 진화를 거치게 된다.
심리치료의 진실과 거짓 제 Ⅱ부에서는 히스테리아라는 정신병과 그것을 치료하는 최면 치료사들과 그의 이론들의 개발을 통해서 그리고 최면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들을 통해서 최면의 진실과 거짓이 밝혀지게 되면서 드디어 현대의 역동적인 정신의학의 탄생으로 20세기에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와 같은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개발되어져서 진화되어져 가는 과정이 기술되어져 소개될 것이다.
-------------------------------------------------------
주㈜: 참고: 헨리 엘렌버그(Henri 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역사: 역동적 정신의학의발달과 진화. 이 900페이지의 방대한 저서를 읽지 않고서는 역동적 정신의학 즉 심리치료를 논하지 말라.
: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1 권(1953), 제 Ⅱ권(1955), 제 Ⅲ 권(1957). 이 책은 프로이트의 탄생과 죽음까지의 그의 삶에서 그 시대적인 흐름과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의 탄생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한 전기로써 심리치료를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이다.
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책의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역이 되어 보관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있는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
치료자는 한 때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미국 유학 열풍으로 중, 상류층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본의 아니게 미국 유학을 가도록 해서 정신분열증인 조현병에 걸린 자녀들에 대해서 부모님이 치료자에게 전화로써 컨설팅을 요청하는 전화를 약 50건 이상 받은 경험이 있다. 부모님들은 친구 혹은 이웃의 자녀들이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한 열등감에서 자녀들을 미국 유학을 보내는 것이 그 자녀들에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하기 위해서 이 컨설팅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녀들이 초, 중학교 시절에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한 자녀들은 절대로 유학을 떠밀어서 보내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유학을 보낸다면 거의 100% 조현병에 걸린다는 것을 명심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미국의 생활은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부모님들이 모르고 있다. 필자가 미국에서 10년간 공부를 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미국의 사회는 쉴 시간과 틈이 없는 생활로써 만약에 필자가 그 때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돌 아이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종종 이야기를 한다. 미국에서 10년간 공부를 끝내고 귀국을 하면서 치료자는 그 기분이 마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온 기분”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래의 치료 사례는 부모에게 떠밀리어서 본의 아니게 미국 유학을 가서 정신분열증(조현병)을 가지게 된 한 여대생이 여름 방학 동안에 한국을 방문해서 컨설팅을 받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미국에서 유학 중인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F양
증세: F양은 그녀의 귀에서 "너는 바보이다" 등의 환청이 귀에 들리게 되어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진단되어졌음
진단: 정신분열증(조현병), 대인공포증
연결: F양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학생으로 여름 방학 때 한국에 귀국해서 그녀의 귀에 환청이 들린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신경 정신과에 가서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을 받고 약물을 1주일간 복용 하다가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요청을 해 왔음
치료 기간: 아버지와 F양이 함께 치료자를 찾아서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심리 치료사들은 상담 시간을 한 시간(40분 혹은 50분)으로 하지만 치료자는 2시간으로 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2시간 동안 인터뷰를 끝내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F양의 환청의 내용을 정신분석적으로 분석한 것임
치료의 과정
인터뷰 신청: F양의 아버지가 전화로 미국에 유학 중인 딸이 환청이 들리는 정신분열증 같은데 약물 치료 하나만 받기 보다는 약물과 함께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한번 받아 보았으면 해서 전화를 했다고 연락을 해 왔다. 아버지는 딸이 여름 방학 때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그녀의 귀에 환청이 들린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래서 이웃에 있는 xxx 신경 정신과에 데리고 가서 그녀가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정신분열증 약물을 1주일 째 복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아버지는 아직도 F양에게 환청이 들리는 것이 정신분열증이라는 그 의사 선생님의 말을 그녀에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에 환청이 들리는 것이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을 하게 되면 딸이 충격을 받을까서 걱정이 되어 신경 정신과에서 처방한 정신분열증 약물은 복용을 하고 있지만 그녀가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서 이 병명을 딸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언을 요청했다.
치료자는 전화로써 간단하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딸의 정신분열증에 대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결정하든지 혹은 결정하기 전에 한번 방문을 해서 2시간 동안 인터뷰 상담을 해 보고 나서 치료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를 했다. 아버지는 아직 딸이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딸을 데라고 와서 한번 2시간 동안 분석 상담을 받고 보고 나서 딸이 그녀가 분석 치료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에 아버지와 F양이 함께 치료자를 xxx 요일 xxx 시에 2시간 동안 방문 할 것을 약속을 했다.
약속한 시간에 아버지와 F양이 함께 치료자의 치료실로 들어오게 되었고 아버지는 2시간 동안의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몇 마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머지 시간을 치료자가 F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동안에 치료실 밖에서 기다리게 했다. 가족이 함께 오는 경우에는 치료자는 환자와 가족 구성원이 함께 2시간 동안 상담 치료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가족 구성원 앞에서 자녀가 마음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하기 어렵고 또 가족 구성원이 자녀 앞에서 자녀의 문제점들을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실정을 감안한 것이다.
F양과 2시간 동안의 치료 상담: F양은 아버지가 퇴실하고 난 후에 치료자와 F양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치료자가 F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지 좋으니 이야기를 해 보세요"라고 했을 때 F양은 "저는 할 이야기가 없는데요!"라고 당돌하게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투로 거만하게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이곳은 내면의 심리적 고통에 대해서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학생이 틀림없이 심리적 고통이나 갈등들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그러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나는 그러한 것을 여기에서 이야기를 하기가 싫습니다"라고 상담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가 "아버지가 따님이 환청이 들린다고 해서 이곳에 따님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환청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보세요"라고 했을 때 그녀는 그제서야 환청이 들리는 것에 대해서 조금식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귀에 "너는 바보이다"라는 말이나 그녀를 "비하"하는 말들이 들린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러한 환청이 들리는가를 물었을 때 작년 여름부터 환청이 들리게 되었다고 했다.
언제 미국에 공부를 하려 갔는냐?는 질문에 3년 전에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를 이번 학기에 끝내고 지금은 미국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특수 프로그램을 받으려고 계획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학교 생활이 어떠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최근에 있었던 한 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를 해 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미국 여학생이 그녀의 친구와 함께 F양의 옆을 지나가면서 F양에게 "너는 xxx 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이 말을 영어로 했기 때문에 치료자가 "xxx"라는 영어 단어를 몰랐기 때문에 조금 전에 한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F양은 깜짝 놀라서 "선생님은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아버지 한데서 들었는데요? 정말로 미국에서 공부한 것이 맞습니까?"라고 거만하게 물어왔다.
치료자는 "내가 미국에서 약 10년간 공부를 했지만 미국 말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전에 한 말의 마지막 단어를 내가 못 알아 듣겠으니 우리나라 말로 해 보세요." 라고 하자 그녀는 그것도 모르면서 미국 유학을 했느냐는 말투로 그 영어 단어는 우리나라 말로 "바보, 멍청이"라는 말이 아니냐 라고 한심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너는 바보, 멍청이이다"라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F양에게 그 말은 "비어" 즉 나쁜 말로 "욕"이 아닌가? 내가 미국에 가기 전에 영어 회화를 배울 때 굳이 "욕"을 배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욕"이나 "비어", "속어" 들은 지금도 내가 잘 모르고 있고 또 알 필요가 없지 않느냐? 라는 말에 그녀가 이해가 된다는 듯이 얼굴 표정이 변했다.
그 이벤트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F양은 계속해서 그 이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미국 여학생의 이러한 욕설에 화가 난 F양이 그 미국 여학생의 등을 손으로 때리게 되었다. 이것을 그녀의 오빠가 알고 F양을 카운셀러 선생님에게 여동생이 얻어 맞았다, 폭력을 당했다고 학교 당국인 카운셀러 선생님에게 고발을 하게 되었고 F양이 카운셀러 선생님에게 불려 가게 된 것이었다.
카운셀러 선생님에게 F양이 그 미국 여학생이 먼저 F양에게 욕설을 했기 때문에 손으로 등을 친 것이라고 설명을 하자 그 미국 여학생은 그녀가 F양에게 그렇게 욕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증거로 그녀와 함께 가던 그녀의 친구도 F양에게 그러한 욕설을 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결국 F양은 학교 당국에 벌칙으로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졸업 시기였기 때문에 커운셀러 선생님과 타협으로 정학 처분을 받게 되지만 학적부에는 기록를 하지 않기로 하고 며일 후에는 졸업이기 때문에 학교 수업과는 무관하게 되어 그 정학 처분을 달 게 받기로 한 사건이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러한 이벤트는 한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여름부터 그녀를 비하하고 욕을 하는 말들이 그녀의 귀에 들리게 되었고 처음에는 동료들이 진짜로 욕를 하는 줄 알고 그들에게 항의를 하거나 따지게 되었으나 그들은 그러한 욕이나 비하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 게 되면서 이러한 욕설이 그녀의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환청 때문에 동료들과의 갈등이 많았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러했다고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환청이 들리게 되자 그들에게 따지고 항의를 했으나 모두가 그러한 말을 하지 않았는 말에 그녀가 그녀의 귀에 들리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아니고 그녀 자신의 귀에만 들리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가 미국에 유학을 하게 된 것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하자 그녀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어서 미국 유학이 이제 3년이 되었고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름 방학으로 한국에 귀국을 한 것임을 그녀가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치료자는 F양이 다니는 그 고등학교가 미국의 어디에 있으며 그 학교에 한국인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F양은 펜실바니아 주에 거주하고 있고 미국에는 친척이 없고 한국인 가정에서 하숙을 하고 있고 그 한국인 아주머니가 부모 대신으로 그녀를 돌보아주고 있으며 그녀의 학교에는 5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F양에게 그 한국인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느냐고 물었을 때 F양은 한국인 학생들과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고 거리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녀에게 미국인 친구들이 많이 있느냐? 미국에 가서 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미국인 친구들이 거의 없고 혼자서 주로 지내왔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 허가는 받았으냐? 즉 대학 입학은 했느냐? 라는 질문에 그녀는 고등학교를 이번 학기에 졸업을 했으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서 지금은 미국에서 대학 준비 시험인 SAT 시험을 준비하고 있으서 이것을 준비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이번 여름 방학 후에 시작을 할 것이라고 했다. 대학은 어느 대학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펜실바니아 주립대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치르는 우리나라의 수학능력 시험 즉 수능 시험과 같은 것을 준비를 하고 있고 여기에다 또 토플(TOFEL)도 함께 준비를 해야 하는데 토플(TOFEL)의 준비로 xxx와 xxx를 같이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자가 토플 시험에서 xxx와 xxx 시험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자 이번에도 또 F양이 난색을 하면서 그것도 모르면서 미국 유학을 했느냐라고 한심한 듯이 물었다. 치료자는 미국 유학 때 토플(TOFEL)은 준비를 했기 때문에 알겠는데 xxx와 xxx는 그 시절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요즘은 토플에 xxx와 xxx가 함께 포함이 되어 있으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F양에게 내가 미국 유학을 할 시즘은 30년 전으로 그 시즘에서는토플 시험 하나만 있었지 토플 시험에 xxx와 xxx와 같은 시험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세월이 많이 흘러서 토플 시험도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F양은 그제서야 왜 치료자가 xxx와 xxx 시험을 모르는지 이해가 된다고 했다.
치료자는 F양에게 환청이 어떤 병인지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F양은 환청이 병명이 아닌가요?라고 되물어왔다. 치료자는 환청은 증세이지 병명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환청은 "정신분열증" 이라는 정신장애에서 가장 심각한 장애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F양은 정신분열증이라는 병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나는 조울증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피해 망상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자랑스러운 듯이 병명들을 줄줄이 달아붙였다. 치료자는 조울증이라는 병이 무슨 병인지를 알고 있느냐 라고 묻지 F 양은 조울증은 감정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돌변하는 병이 아니냐 라고 되물어 보면서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말이 없고 침울해서 기분이 가라앉아 버린다고 더 붙였다.
병원에 가서 심리검사 결과 조울증이라는 병명을 얻었느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그냥 그녀가 그렇게 알고 있는 것으로 직접 병원에가서 검사를 해 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다 그녀는 자신이 피해 망상을 가지고 있다고 더 붙였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그녀에게 욕를 하거나 그녀를 비하라는 말들을 해서 직접 물어 보면 그들은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녀를 해꼬질 하거나 그녀를 괴롭히거나 그녀를 차별를 할 것이다라는 생각에 늘 빠져 그녀가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뺘져 있다고 언급을 했다.
작년 여름부터 환청이 들렸다고 했는데 미국에서는 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해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미국에서는 의료 비용이 엄청나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에 나와서 병원에 가 보려고 미국에서는 환청 때문에 병원이나 진료를 받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F양에게 환청이 들릴 때 공부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환청 때문에 공부에 집중이 잘 되지 않고 고통스러웠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환청을 가지고 다시 미국에 돌아가는 것을 화약을 지고 불에 뛰어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한국에서 정신분열증 치료를 받고 나서 정신분열증에서 회복되어 다시 미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하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F양은 난색을 표시하면서 이번 8월 초순에 미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치료를 받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치료자는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받게 되지만 정신분열증 같은 경우는 1주일에 4회 혹은 5회 정도가 되어야 하고 지금부터 치료를 시작하면 1주일에 4회로 1회기에 2시간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8월 초순까지 하면 6개월, 48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으나 그녀는 그러한 마음이 없다고 잘라서 말을 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은 그녀의 마음을 잘 모른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녀는 일반 교과목보다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부모님은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다고 푸념을 했다. 미국에서 부모님을 대신해서 하숙을 하는 한국인 아주머니가 그녀를 "천재"라고 말을 했다고 하면서 그녀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다른 과목에 공부를 하고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털어 놓았다. 미국에서 환청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 보다는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한국에 귀국해서 치료를 받고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떻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불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현을 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미국의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갈 것이라고 그녀의 야심을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F양에게 이제 분석 상담을 2시간 해 보고 나니 심리치료를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라고 물었을 때 F양은 약간 그러한 생각이 든다고 대답을 했다. 처음 인터뷰 때는 "나는 할 말도 없고 이러한 치료를 받을 필요도 없다"고 한 말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녀에게 이곳에 한번 가보자는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오게 되었다고 처음 인터뷰 시에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인터뷰의 2시간이 흘러가면서 치료자는 아버지를 치료실에 들어오라고 해서 지금까지 F양을 인터뷰를 했던 내용들을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고 F양에게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을 이야기를 했다고 알려 주었다. 환자는 자신의 병명을 알아야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는 말을 더 붙이면서 최근에 암에 걸린 환자들에게 의사들이 병명을 알려주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더 붙였다. 아버지는 딸에게 " xxx야! 네가 가진 병이 정신분열증이란다" 라면서 난치병임을 인지 시켜주었으나 F양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그러한 병을 가진 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반응을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에게 딸을 미국에 보내지 말고 한국에서 약물과 심리치료를 병행해서 치료를 해서 정신분열증에서 회복이 된 후에 미국에 보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여기에서 2시간 동안 F양과 인터뷰 상담이 끝났다.
왜 F양이 그러한 환청을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F양이 그러한 환청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 환청이 의미 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2시간 동안의 F양의 자료로 도움을 받아서 F양의 환청을 분석을 해 보기로 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설자인 프로이드(Freud)은 이미 100년 전에 "환자의 증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분석해서 그 환자가 그것을 알 게 된다면 그 증세는 사라진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환청이 왜 생기게 되었고 그 환청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가? 를 심리치료에서 얻은 자료를 통해서 분석해서 그 환자가 그것을 알 게 만들어주는 것이 정신분석 치료이다.
그러나 증세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장애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증세를 가지게 된 동기를 알고 그리고 그 동기가 가져다 주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서 그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그 장애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경 정신과에서 처방해 주는 약물을 복용하게 되면 대부분의 환청, 환각은 사라진다. 증세가 사라졌다고 그 병이 치료가 되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 환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 때문에 즉 환자가 가진 어려움들 때문에 그 결과로 증세(환청)가 나타난 것이다. 고로 그 환자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그 문제들을 찾아내어 생각을 수정하고 행동을 고쳐서 그 환자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해주어야 환자는 그 장애로부터 해방이 된다 즉 치료가 된다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왜 F양이 그러한 환청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먼저 분석해 보기로 한다. F양이 인터뷰 시간에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치료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로는 그녀가 중학교 시절에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했다고 귀뜸해 주었다. 치료자와 F양의 2 시간 동안의 면담에서는 F양은 중학교 시절에 왕따를 당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이야기를 해 준 것으로 볼 때 F양은 대인관계에 이미 한국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그녀가 귀국에서 환청을 이야기를 하면서 중학교 2학년 때 학급에서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 왜 치료자와 2시간의 인터뷰 시간에 F양이 그러한 왕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질문은 2시간 동안의 분석 상담 동안에 그러한 이야기들이 다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들은 직접 치료를 받게 되면 치료 회기가 누적이 되면서 그리고 어린 시절의 양육과 학교 생활을 다루게 되어 있는데 그 때에 다 나오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러한 간단한 짧은 2시간 동안에 모든 자료들이 다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알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대인관계에 문제 즉 동료들과 친구 관계를 만들거나 친밀관계를 하는데 문제가 있었지만 이것을 부모들이 몰랐고 그리고 F양 본인이 문제 해결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미국 유학을 가면서 그것을 문제 삼지 않고 미국에 가게 된 것이었다. 또한 미국의 생활은 우리나라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부모님이 모르고 있었다. 미국의 생활은 복잡하고 분주해서 그 스스로가 어떤 일들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다. 즉 F양이 미국에 가서 미국인 친구들을 만들고 주변에 있는 한국인들과 친구관계를 만들고 그녀 자신의 어려운 문제들을 이야기를 하고 누적된 스트레스들을 털어 놓고 방출 시키고 어려운 문제들을 학교 카운셀러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등등의 일에 적극적이지 않으면 미국 생활은 어려워지게 되어있다.
F양이 미국에 유학 갈 때 그녀는 대인관계 때문에 두려움을 이미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생활 그 자체가 두려움이 많았다. 고로 항상 옆에서 다른 사람들의 미국인들이거나 한국인 동료들이거나 간에 눈치만 보고 자신의 단점, 결정을 숨기고 상대의 비위만 맞추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F양이 그녀의 미국 고등학교에서 5명의 한국인 동료들이 있었는데 친하게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는 것과 미국인 친구들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F양은 한마디로 해서 어떻게 친구를 만들고 어떻게 그들에서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할찌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 말을 사용해서 어떻게 친구를 만들고 어떤 내용들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미국에 갔으니 미국에서 영어로 친구들을 사귀고 영어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F양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짐각이 갈 것이다. 고로 여기에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혹시 나쁜 말을 하지 않을까 혹은 그녀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을까 하는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는 편집증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고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는 그녀가 치료자와 대화에서 치료자가 "바보, 멍청이"라는 영어 단어를 모른다고 치료자의 미국 유학을 의심하고 치료자가 토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불신을 하는 것에서 잘 나타나있다. 그러한 오해들은 치료자와 F양과의 대화 속에서 그 문제가 풀어졌지만 그러나 F 양은 정작 미국의 생활에서는 그러한 오해를 풀어야 할 대인관계를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의심을 하면 그 대상과 이야기를 해서 자초지종을 서로 나누게 되면 오해가 풀리는 것이 인간 지사인데 F양은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대화 기술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오해는 그녀의 생각 속에서만 맴돌고 직접 해결을 해야 할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로 오해는 더욱 쌓여가게 되고 이 문제가 확대되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고 비하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녀를 욕하고 비하하는 말들은 그녀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그녀가 미국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 비위만 보고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불신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좋지 않게 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바보라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등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잘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 즉 공부나 학교 생활, 학교 성적, 동료들과의 관계, 대인관계 등을 알고 있어서 그녀를 비웃고 욕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F양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F양은 미국 생활에 부적응을 그녀가 이미 알고 있었고 이것을 그녀의 열등감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 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녀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녀 자신의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마음을 알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로 마음 속에 숨겨 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열등감들이 탄로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로 이것에 미국 생활이 2년이 되어가면서 표면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다른사람이 그녀를 비웃고 욕을 한다는 환청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이다.
미국 생활에서 친구들과 친밀관계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누적되어가다가 보니 공부에 집중은 잘 되지 않고 책만 보면 동료들의 욕하는 소리가 신경이 쓰이고 고로 학업 성적인 좋지 않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들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2년 동안 쌓이다가 결국 2년 만에 즉 작년 여름부터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는 F양의 말은 미국 생활 2년 만에 환청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환청은 그녀에게 그녀가 미국 생활에서 쌓이는 어려움을 해결하라는 F양에게 경고 신호를 그녀의 마음인 자아가 경고 신호를 그녀에게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그냥 환청이 들린다는 것을 하소연하고 있을 뿐이다.
왜 F양이 환청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큰 문제가 아닌 대수롭지 않는 문제로 여기고 여기에다 그녀가 "조울증"도 가지고 있고 "피해 망상"을 가지고 있다고 심각한 정신 장애들을 자랑스럽게 더붙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치료자가 F양에게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미국에서 한국에 나오도록 하고 한국에서 정신분열증을 치료를 받으면서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떻하겠느냐? 고 물었을 때 그녀는 불가능하다고 대경실색으로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다. F양은 부모님은 그녀의 마음을 모른다 라고 더 붙였다.
그녀는 만약에 한국에 귀국을 하면 그녀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한국에 오면 대학에 가려고 하면 다시 수능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것을 미국의 교육과정이 우리나라와는 다르고 공부의 내용도 우리나라의 수능과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하려고 하면 한국에서 다시 처음부터 고등학교 공부를 다시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그녀에게 불가능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에서 대학에 입학을 해야 하는데 그녀의 성적은 너무나 부족했다. 이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대학에 입학 원서를 내지 못한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입학하기가 어려운데 만약에 공부가 어려워서 한국에 나오게 되면 먼저 미국에서 대학에 입학 허가서를 받아야 즉 미국 대학에 입학을 해야 그것을 가지고 한국 대학에 전학을 올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생활에서 환청으로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고 성적이 좋지 않고 또 계속해서 미국에서 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름난 대학에 입학을 하기란 F양에게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은 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덫에 걸린 격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고로 F양은 이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한국에 오지도 못하고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녀는 부모님이 매달 학비와 생활 비용으로 엄청나게 유학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미안하고 볼 낯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을 방어를 해서 그녀 자신을 변명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환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조울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피해망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부모님에게 변명할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 자신의 자아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방어가 결국은 그녀 자신을 정신분열증으로 몰고 간 것임을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다. F양은 그녀가 왜 그러한 정신분열증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본인이 모르고 있다. 그것을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그녀가 시도를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인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모르고 있다. 그녀는 증세로써 그녀의 자아의 해체를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증세가 그녀에게 필요하다. 그것이 있어야 미국에서 그녀의 공부를 부모님에게 변명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그녀가 환청을 제거하면 그녀는 부모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빨리 대학에 입학을 하고 대학 졸업장을 따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한국에 와서 좋은 일자리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라라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부모님의 기대는 그녀에게는 엄청난 압력, 압박으로 그녀를 짖누르고 있다. 그녀는 부모님의 심리적 압박에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환청을 그녀를 방어 하는 그녀 자신을 보호하는 변명거리고 만들고 있는 것이다.
F양이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 그녀의 대인관계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과 사귀는 방법을 그녀가 배우게 하고 그녀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녀가 일상생활에서 부디치는 갈등들과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게 해야 한다. 치료는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만약에 그녀가 대인관계를 잘 해 나가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점들을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녀의 감정을 잘 표현을 해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을 방출시킬 배출구를 찾아야 하고 취미 생활을 발견하고 생활을 즐겁게 풀어나갈 수 있게 될 때 환청은 필요가 없게 되고 정신분열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얼나나 시간이 걸리겠느냐고 묻지를 말기 바란다. 대부분의 정신 장애들은 최소 6개월 이상에서 몇 년이 걸린다. 정신분열증은 정신장애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심각한 장애이다. 얼마나 치료를 받아야 정신분열증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심리적 믿음 관계가 돈독하게 개발이 되고 환자가 치료자의 치료 방식을 잘 따르고 치료자와 협력으로 환자 자신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해 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느냐에 치료 기간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의학,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리치료의 진실과 거짓 3 (0) | 2019.01.26 |
---|---|
심리치료의 진실과 거짓 2 (0) | 2019.01.19 |
새롭게 등장한 21세기 정신장애들 5:자아 치료? (0) | 2018.12.17 |
관심 병사의 허와 실 (0) | 2018.12.16 |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랑이 아닌 것? (0) | 2018.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