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의 한 수(手)
“신의 한 수”라는 말들은 이제 일상의 용어가 된 지 오래이다. 특별한 한가지의 묘책으로 위기에 몰려서 불리하게 된 전세를 한 방에 거꾸로 역전시킨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인데 치료자(필자가)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은 삼국지에서 조조가 자신의 아들 조비를 위기(危機)에서 구해내는 사마위 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 사용한 이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이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과 사마위는 유비의 촉나라와 조조의 위나라에서 책사로써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써 그들은 오늘날의 정신분석가들과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각자가 위기 시에 지혜와 전술과 전략으로 그 위기를 뚫고 나가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오늘 날 개인들이 삶에서 위기를 느껴서 그 문제의 해결사를 찾아와서 자신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문의하고 공동으로 문제 해결을 해 나가는 것이 유사하지 않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오늘날 정신분석가와 다른 점은 그들이 인간의 행동과 마음뿐만 아니라 천문, 지학, 비, 바람의 기후 등의 모든 분야에 능통한 박식한 대가라는 점에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정통한 정신분석가와는 다르지만 그들 한 국가의 정치적인 위기(정신분석가 혹은 심리치료사는 개인의 위기)를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신의 한 수라는 말을 쓰게 된 조조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이 이야기는 2017년 9월 22일부터 방송되기 시작한 중국의 사마의에 대한 연속극인 “미완의 책사 사마의” 에서 중국에서 방영한 드라마의 제목은 “대군사 (大軍師) 사마의”의 42 부작에서 지금까지 제갈공명에 조명을 맞춘 것을 사마의에 초점을 맞춘 연속극에서였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80만 대군을 잃고 위기에서 더 이상 조만 간에 삼국을 통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위 나라를 세우고 황제로 등극하게 될 때 부하들은 모두가 축하를 하는데 단 한 사람인 그의 최고의 책사인 순욱이 조조의 야심을 알고 직언으로 부당함을 이야기를 하면서 한(漢) 나라의 재건을 위해서 서로 뜻을 모았던 초심에서 벗어나서 조조가 드디어 황제로 자청함에 실망했다고 직언을 했을 때 조조가 분노해서 그에게 빈 찬합을 보내면서 그 뜻을 간파한 순욱은 자살을 하게 된다. 순욱의 자살로 그의 모든 서적들과 유품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순욱의 서재에서 조조의 황제 등극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은 글이 발견되면서 그 글을 쓴 사람이 바로 조조의 둘째 아들인 조비(첫째 아들은 전쟁에서 전사)란 것이 밝혀지면서 조비가 즉각 구속되었다, 조비는 자신이 그 글을 쓰지 않았고 누가 자신을 모함해서 쓴 글이라고 항의를 했으나 그의 결백을 밝혀낼 수가 없었다.
이 사건 직전에 또 한가지 사건이 있었다. 사마의 형님인 사마량이 사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입문 하면서 조조의 셋째 아들인 조식의 문하에서 비서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조식이 변방에서 근무를 하다가 오래 만에 어머니를 문안 하기 위해서 허도(조조의 수도)에 들어와서 조비와 조식이 먼저 만나서 함께 축하연에서 과도하게 술을 마셔 취한 상태에서 어머니를 뵙기 위해서 지름길로 가기 위해서 사마문을 통과하게 된 것이었다. 사마문은 황제만이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말렸지만 술에 취한 조식이 강압으로 통과하게 된 것을 조조가 알고 노발대발 했다. 조식의 책사인 양수의 책략으로 조식은 술에 취해서 어떻게 행동을 했는지 모른다고 발뺌을 하게 되면서 결국 그의 비서실장 격인 사라량이 감옥에 가게 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사마의가 형님을 구하기 위해서 순욱을 찾아갔을 때 순욱이 그 이전에 사마의가 아버지인 사마방을 구제한 것에 탄복해서 천재임을 인정한 것을 칭찬하면서 하는 말이 “자네가 머리가 천재적인 것은 인정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들이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힘을 합쳐서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는 조언을 배우게 되었다. 순욱은 사마의의 형님이 사마량이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조식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내일 자신을 찾아오면 그 해법을 알려주겠다고 했고 사마의가 그를 찾아 갔을 때 순욱을 자살하고 만 것을 알게 되었다.
사마의는 형님의 구하기 위해서는 조비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조비를 구할 아이디어를 찾아야 했다. 사마의는 누군가가 조비를 모함해서 조비의 필적을 모방해서 조조의 야심을 비판한 것을 밝혀내기 위해서 필적 감정을 하기 위해서 순욱의 서재에 있는 모든 문서들과 지방에서 올라오는 항소장 들을 필적 감정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 당시에 위 나라에서 가장 정직한 법률가이자 감옥소의 형무 소장으로 재직을 했던 종묘를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를 했을 때 종묘를 손 사례를 쳤다.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그러한 시도를 조조가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했으나 역사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부탁에 조건을 달아서 만약에 조조가 그에게 그 임무를 맡긴다면 응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사마의는 조조에게 찾아가서 그 문제의 필적 감정을 의례 하면 범인을 찾을 수 있다고 호소를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사람이 그 일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지금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조식의 책사인 양수와 그의 조직이 이 일을 해결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공정하게 의심받지 않을 인물을 천거해서 종묘에게 맡기도록 한 것이었다. 종묘는 자신의 천재적인 아들인 종오와 함께 단 두 사람이 필적 감정으로 똑 같은 글씨 채를 찾아 내기로 하고 밤을 세우게 되었다. 사마의는 여기에 자신의 상서방의 부하들을 동원에서 종묘의 집을 둘러싸고 외부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고 막았다.
종묘와 그의 아들은 그 글을 쓴 장본인이 조식의 장인 어른인 한 나라의 최고의 충신 집안으로 정평이 난 최염 임을 밝혀내고 그로부터 범죄를 인정하는 진술서를 받아냈다. 사마의의 부탁으로 종묘는 그 수사 내용을 그의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외부의 방문객을 막고 있는 선비들에게 발표를 해 버렸다.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조조는 즉각 그 소식을 외부에 알려지지 못하게 사자를 보냈으나 이미 수가 결과가 발표된 이후였다.
결국 최염은 구속이 되고 조비와 사마의의 형님인 사마량은 석방이 되었다. 조조는 조비를 석방하면서 그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한 아이디어를 누가 창안했는가?를 물어 보았고 조비가 사마의의 묘책임을 이야기를 했을 때 조조가 “신(神)의 한 수(手)”라고 격찬을 했고 이후에 사마의는 조조의 책사로 전격적으로 발탁이 되었다.
이야기를 여기에서 정신분석의 문제 해결로 되돌아가보자. 심리치료사 혹은 정신분석가로써 문제의 해결을 하다가 보면 기가 막히게 한방에 증세의 해결을 가져오게 되는 극적인 순간이 있기 때문에 내 뒤의 정신분석 이라는 발자국을 따라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극적인 증세가 한방에 해결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소개를 할 사람은 치료자에게 11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39세의 청년 Z씨 이다. 그가 초반기에 치료자에게 정신분석을 받기 위해서 찾아 왔을 때 그는 이번에 실패하면 자살을 하겠다고 고백을 했다. 분석의 과정에서 Z 씨는 자아가 없었다. 부모님 특별히 어머니의 언어 폭력에 한 마디도 말을 못했다. 그렇다고 그가 벙어리는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자아를 성장시키는 과정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서 10년의 치료 과정이 지나가게 되었다.
2007년에 심리치료를 시작해서 2017년 2월 달에 치료를 시작한지 10년이 되면서 Z씨의 부모님이 치료자를 찾아왔다. 그 동안 아들의 치료에 대한 인사를 한번도 하지 못했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치료자는 내심 크게 걱정을 했다. 10년 동안 심리치료를 했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치료를 했는지 틀림없이 물어 볼 것인데(물론 Z씨의 자아가 성장을 한 것을 부모기 이해해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 그들이 틀림없이 10년 동안 심리치료를 명목으로 최면을 걸어서 치료 비용으로 돈을 빼먹은 사기꾼이라고 몰아 세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부모님은 두 사람이 같이 치료실에서 컨설팅을 한 것이 아니고 처음에 10분 동안 같이 하고 나서 어머니는 2시간 동안 그리고 아버지를 1시간 동안 따로 컨설팅을 했다(핵심은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로 컨설팅 겸에 아들 심리치료에 대한 인사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따로따로 첫 인사로 아들 Z씨를 치료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이제 아들이 불안하지 않고 마음이 안정된 것에 감사를 표현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눈빛에서 자신감이 보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것 때문에 이제를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해했다(아버지와 어머니는 70대 후반의 나이).
다시 Z씨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지난 주일에 Z씨는 11년 동안에 처음으로 공황 장애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호소를 했다. 어떤 증세였는지?를 이야기를 소상하게 해 달라고 했을 때 Z씨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고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 땀이 나면서 오한이 생기고 눈 앞에 깜깜해지고 오금이 졸리면서 쓰려질 것 같은 현상이 3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는데 1주일 만에 4번이나 경험을 했다고 두려워 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1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한번도 공황 장애가 온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틀림 없이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문제들과 이 공황 장애가 연결되어져 있다는 것을 직감을 하고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분석을 진행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치료사는 그 환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금 현재의 문제들을 소상하게 연결해서 실마리를 찾는 것이 치료사의 능력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치료의 초반기에는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긴장을 방출시키고 마음을 안정시킨 이후에는 자아의 성장과 결함의 수정으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다른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의 차이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Z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Z씨의 지난 주일에 11년 만에 처음으로 등장한 공황 장애는 지금Z씨가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인 전시회 작품전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직감으로 느껴졌다. 치료자는 Z씨에게 최근에 하고 있는 일인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전시회는 작년 12월 달부터 준비를 해 온 전시회로 Z씨는 지금까지 한 동양화 학원에 5년 동안 꾸준히 다니면서 그가 지금까지 약 14년-15년 동안 공부를 하고 습작을 하고 있는 만화와 일루스트레이트 (삽화) 전문가로 습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이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것과 관계되어진 전시회를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이번에 하고 있는 전시회는 공식적인 전시회로써 지금 현재 광화문 근처에 있는 한 공식적인 전시회 장 안에서 전시되어지고 있었다. Z씨는 그 전시회를 하면서 부모님을 초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이전의 치료 회기에서 많이 다루었다.
치료자는 2년 전인 2016년 12월에도 전시회를 했는데 그 전시회는 어떤 까페를 빌려서 무료로 작품을 전시한 비공식적인 전시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는 공황장애가 등장하지 않은 것을 지적을 하면서 이번에 전시회는 공식적인 정규 전시회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정규적인 공식적인 전시회가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공식적인 전시회와 관계된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Z씨는 다시 그의 대학 1학년의 시절에 되돌아갔다. Z씨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점에서 어머니가 Z씨를 다짜고짜로 끌고 장애인 판정을 하는 검사관 앞에 데리고 가서 우리 아들이 장애인이니 판정을 해달라고 졸랐다. 이 이야기는 수십 번 들어가 치료자가 잘 알고 있었다. Z씨는 사실은 장애인이 아니고 자아가 약해서 항상 주눅이 들어 있고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해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왕따를 당한 경험들이 있지만 신체적인 장애나 결함은 없었다. 그 검사관이 이 학생은 장애인이 아니라고 해도 어머니는 정신적인 장애인을 내세우면서 막무가내로 장애인 판정을 받아 냈다. 그 혜택으로 그는 명문 xxx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장애인 특례를 이용한 입학이었다.
Z씨는 대학 입학 후에 경영학에는 관심이 없었고 취미도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xx 대학에 경영학과에 다닌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그러나 Z씨는 경영학과 동료들과는 어울리지 않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만화 동아리에 찾아갔다. 그 당시 선배들을 학생 운동 시절이어서 선동 선전 만화를 그리라고 강압을 하는 것에 질려서 동아리를 탈퇴하고 인근에 있는 개인 만화 교습소에 다니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약 3년 동안 만화를 그리고 습작을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Z씨에게 신문에 만화 지망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여 주면서 해볼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었고 Z씨가 알아 보니 대한 만화 협회의 지원으로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모집해서 1년간 만화 그리기를 배울 수 있다는 광고였다. Z씨는 즉각 응시를 했다. 그냥 선착순이 아니고 자신이 그린 만화들을 가지고 와서 인터뷰를 해서 선발하는 과정이었다. Z씨는 자신이 3년 동안 열심히 그린 만화들을 가지고 가서 인터뷰를 받고 나서 기다렸으나 연락이 없었다. 고로 불합격했다고 포기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 않느냐? 라고 물었고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을 때 나와서 등록을 하라고 했다. Z씨는 1년 분 등록금으로 그 당시 100만원을 어머니가 지원해주어서 등록을 하고 1년 동안 6명의 전문 만화가로부터 만화를 배웠다.
그 만화가 지망생들은 모두 6명의 지도 교수들로부터 강의와 실습들을 배웠는데 첫 번째 선생님은 해부학의 만화 전문가 그리고 두 번째는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전문가로 세 번째 선생님은 무대 감독처럼 조명과 구도와 보는 각도 등을 네 번째 선생님은 주인공들과 동물들을 만화로 그려내는 전문가로 다섯 번째는 음산한 공포적인 표정과 조명 등을 그리고 6번째는 감정 표현들과 얼굴 표정들을 전문적으로 교육을 하는 선생님들로써 그들은 영화보다 더 어려운 것이 만화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종합 예술로써 영화는 배우들과 무대들을 종합해서 지휘라고 통제를 하면 되지만 만화는 한 사람이 조명과 구도와 스토리 탤링을 모두 맡아서 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제 7 의 예술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그가 받은 1년 동안 만화 수업을 끝내고 졸업 작품전을 만들어서 대한 만화 협회의 전용 전시관에서 전국적인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위와 같은 내용의 이야기들은 치료자가 Z씨와 치료 회기 도중에서 소상하게 밝혀내어 알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 역시 이번에 공황 장애로부터 이러한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11년 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내용들을 이야기들을 Z씨로부터 들어서 알게 되었다.
치료자는 Z씨가 7 편의 만화를 출품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그 이야기의 스토리 탤링의 내용을 물어 보았다. 한 젊은이가 그의 연인과 사랑을 하는 관계에서 그 젊은이는 보름달이 떠 오르면 늑대 인간으로 변모하는 청년인데 그녀와 저녁 늦게 이야기를 하다가 보름달이 떠 오르면서 늑대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놀래서 도망하는 그 연인에게 그 이유를 자초지종으로 이야기를 해주려고 잡으려고 하다가 그녀가 뿌리치는 손에 얼굴을 맞아서 흐느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의 만화였다고 했다.
그 출품작에 대한 지도 교수들의 평가는 아이디어가 좋았다는 말과 좀더 세부적인 습작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로써 1년 동안 정규 전문가들에게 받은 공부와 습작으로는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Z씨는 어머니에게 수 차례 지원을 요청을 했으나 부모님은 만화로써 혹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밥 먹고 살기 어려우니 취업을 해서 그림 그리기는 취미로 해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거부했다. 할 수 없이 Z씨는 자신의 만화 그림을 출품을 해야 하는데 표구와 제작에 대한 비용 때문에 스티로폴을 사와서 잘라서 그 위에 만화 그림을 붙이고 유리 대신에 비닐을 덮어서 포장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들어와서 그 작업을 보고 기겁을 하면서 노발대발 했다. “이 썩어빠질 새끼야!(어머니의 상투적인 언어 폭력임) 너는 돈을 벌어올 궁리는 하지 않고 돈을 쓸 궁리만 찾아서 하느냐?”라는 언어 폭력이 시작되었으나 Z씨는 한 마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언어 폭력을 퍼 붙었지만 한 마디를 하면 10마디의 공격이 따라온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온갖 욕설을 퍼 붓고 화풀이를 했다. 조금 있다가 아버지가 들어와서 Z씨의 작업을 보고 하는 말이 “너는 언제 철이 들 것인가?” “너의 친구들은 대학 4학년 학생들로써 취업 준비에 바쁜데 너는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서 쓸데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도대체 정신이 빠진 것이냐? 정신이 있는 것이냐?”라고 노발대발 했다. 더 붙여서 아버지는 Z씨에게 “다른 것은 해도 좋은데 만화를 절대로 하지 말라, 그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만화로써 만화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주인공과 사람들을 그리는 것, 조명, 무대 장애 등을 연출하는 것까지 혼자서 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분야이다”라고 지적을 하면서 Z씨의 만화 제작 출품작의 그림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함을 질러냈다 그러나 Z씨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Z씨는 스티로폴에 그림을 붙여서 비닐로 덮은 그림 7 장을 전시회에 출품을 했다. 그 시점에서 부모님에게 전시회 장에 초대를 할 수가 없었다. 초대를 한다고 해도 올 사람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다 유리 액자에 포구를 한 작품들을 전시를 했는데 Z씨처럼 스티로폴을 사용한 사람이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전시회 개장 첫날에 친구들과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두 와서 축하해주고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서 Z씨는 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는 그의 그림 앞에서 초라해진 자신을 감추고 숨기기 위해서 벽에 그림 쪽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회고를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Z씨에게 스티로폴로 그림을 포구로 만들고 있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Z씨가 하는 그 작업을 보고 노발대발 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하면서 그 때 그 순간에 부모님이 그 그림 작품들을 박살내어 망가트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라고 질문을 했을 때 Z씨는 깜짝 놀래면서 그 당시에 부모님이 그 그림을 박살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로 가슴이 졸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고 등에 식은 땀이 흘러내리고 오금이 졸리면서 눈 앞이 깜깜한 그 상황과 지난 주일에 느낀 공황장애의 공포감이 100% 일치 한다고 기술을 했다.
즉 Z씨는 이번에 두 번째 공식 전시회를 개체 하면서 첫 번째 전시회인 만화 작품 전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위협과 두려움이 이번의 유사한 전시회에서 재 등장한 과거의 상처의 반복을 지적을 했을 때 무릎을 쳤다. 틀림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여기에 또 한가지의 깨달음이 있다. 몇 주일 전에 전시회에서 비번 즉 당번으로 2주일 동안 전시회장 개체 기간 동안에 직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한 사람이 교대로 하루 동안 일직을 하는데 Z씨가 1월 9일 날 화요일에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일직을 하고 귀가 하면서 인사동 거리를 거릴 때 곳곳에서 전시회를 하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 왔다고 그 주일 치료 회기에서 호소를 했다. 즉 우울했다고 고백을 했다. 미래가 캄캄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밥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수 많은 그림을 그리는 후보생들과 지망생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름도 없는 Z씨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의 그림을 누가 사주어서 밥 먹고 살겠는가?를 생각하니 미래가 캄캄해져서 우울해지고 불안해져서 1주일 동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 습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치료 회기에서 호소를 했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 치료자는 수 많은 그림 지망생들과 인사동의 거리에서 화구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한 곳에서 산책을 하면서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불안해진 것이 그 원인임을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Z씨가 그리고 있는 그림의 스타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Z씨는 거의 없다고 했다. 자신의 그림은 판타지 형식으로 신비의 마법사와 신령님이 등장하는 삽화 형식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로 그러한 자신의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수에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가? 독특한 자신 만의 그림의 스타일은 누군가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많은 사람이 자신이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고 지적을 했다.
사실은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혼자서 외톨이로 살아오고 있는 것을 아버지가 알고 부모님이 Z씨를 위해서 원룸에 투자를 해서 그리고 몇 군에 부동산에 투자를 해서 Z씨의 통장으로 한 달에 180 만원씩의 월세가 들어오기 때문에 그 돈으로 지금까지 Z씨는 일을 하지 않고 심리치료 비용과 생활비용과 그림을 그리는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고 심리치료가 시작 되면서 치료자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Z씨를 독립해서 나오라고 해서 지금은 10년 동안 Z씨는 고시원에서 혼자서 살고 있다. 치료자는 그가 고시방이지만 그의 스튜디오로 개인 화실로 24시간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생계 비용과 치료 비용을 걱정하지 않고 살고 있고 그리고 마음대로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그의 전시장에서 일직을 하던 한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었다. 이번에 출품한 Z씨의 그림 중에 한 점에 한 나이 많은 신사가 와서 그림을 보면서 이 그림을 구매하고 싶으니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어 보았고 그녀가 그 가격을 체크해 보았더니 비매품인 것을 알고 실망해서 한참 동안 그 그림 앞에서 서성거리면서 아쉬움을 표현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지난 치료 회기 시간에 치료자에게 들려 주었다.
이전의 치료 회기에서 Z씨는 두 점의 그림을 출품을 했는데 한 개는 중년 여성의 누드 스케치 작품이고 다른 한 점은 학을 타고 가는 신선의 그림인데 그것은 24편의 동화의 한 편으로 제작된 것을 이번에 출품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서 치료자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학을 타고 가는 신선의 동양화가 채색을 사용한 Z씨의 응용으로 된 작품인데 그 작품을 그 늙은 신사가 그 작품을 사고 싶어서 가격을 물어 보고 비매품에 안타까워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만약에 그 작품의 가격표를 붙였더라면 얼마를 책정했을 것인지 물었을 때 그는 70만원 정도였다고 했다. 이미 치료자와 전시회 이야기에서 다른 출품 자들은 가격을 250만원, 혹은 150만원 등으로 가력을 붙였는데 Z씨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그들에게 물어 본 결과 그들이 하는 말이 높은 가격을 붙이는 것은 팔리 않으면 최면을 구기지는 않겠지만 낮은 가력을 붙였다가 팔리지 않으면 최면을 구긴다는 이유로 높은 가력을 붙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자신은 가격을 붙이지 않고 비매품으로 했다는 말을 들었었다.
치료자는 그 노인 신사의 예를 지적하면서 수 많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 틈에 섞여서 이름 없는 자신의 존재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는가? 자신의 독특한 그림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예가 바로 이번의 사례 안에서 증명되어진 것이 아닌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Z씨도 시인을 했다.
이번 주일 치료 회기에서 치료자는 Z씨에게 지난 주일에 4번이나 3시간 등장한 공황 장애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Z씨는 이번 주일에는 더 이상 그 공황장애는 등장하지 않았다고 기쁘게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지난 주일에 그 공장 장애의 원인을 분석으로 설명을 해 주었는데 왜 그 공황 장애가 다시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Z씨는 정확하게 대답을 했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등장한 그 공황 장애는 이번 정규 전시회를 개체 하면서 첫 번째 정규 전시회 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심리적인 상처가 마음 속에 억압되어져서 무의식 속에 갇혀 있다가 유사한 상황에서 재연으로 등장한 것으로 그것이 왜 등장한 것인가를 정확하게 깨닫게 되면 그 공황장애에 대한 두려움의 원천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기 않고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라고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번 주일 치료 회기에서 Z씨는 한 개의 꿈을 보고를 했다. 꿈 속에서 Z씨는 50대의 출판자의 사장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자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을 보여 주면서 설명을 더 붙이고 있는데 그 중년 남자가 Z씨에게 처음의 그림과 지금 현재의 그림들을 비교해 보면 Z싸가 일취월장으로 많은 발전을 한 것이 확실하게 증명이 되었다고 극구 칭찬을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 꿈을 깨었다고 기뻐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러한 꿈을 한번도 꾼 적이 없는데 이번에 그러한 꿈을 꾸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치료자는 이 꿈이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핵심 문제인 자아의 성장과 관계된 것을 지적해 주었다. 지금 Z씨는 자신의 그린 그림을 보고 “이것을 그림이라고 그렸느냐?”라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다루고 있다. 그는 2년 전에 그리고 몇 번 그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그림들을 보고 출판사에서 그림을 그려 달라고 의뢰가 왔었는데 자신의 그림을 보고 이것을 그림이라고 그렸느냐?란느 비판과 비난 때문에 스스로 자신이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다루고 있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과거에 그가 그림 공부를 시작할 때 부모님이 목소리임을 여러 번 지적해서 알고 있으나 Z시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수용하지 못해서 아직도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제 Z씨의 심층에 있는 무의식 속에서 자아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칭찬을 해주는 시점에 왔다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이번 주일에 치료 회기를 끝마칠 수 있었다.
한가지 더 붙이고 싶은 것은 대학 졸업 만화 전시회를 끝으로 Z씨는 아버지의 폭언을 듣고 만화를 포기하고 삽화 쪽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을 해서 14년-15년 동안 습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치료 초반기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첫 작품 전 때 부모님이 Z씨의 만화 작품에 노발대발해서 어머니가 당장 그림을 그만 두고 장애인 등록을 하고 일자리를 신청해라 라는 명령에 굴복해서 장애인 복지국에 가서 등록을 하고 그 때 소개를 받는 곳이 인조 안구(눈 알)를 만드는 개인이 하는 조그만 가내 공업으로 보수 없이 기술을 배우는 곳에서 3월 동안 일을 하다가 취미가 맞지 않아서 그만 두었고 아버지의 명령으로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복지사가 되라고 해서 그림을 포기하고 사회 복지자 등록을 해서 1년간 복지사 자격을 공부하는 마지막 달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신청했고 그리고 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나서 그의 소망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복지사도 노인들을 돌아주는 어려운 대인관계임을 알고 그 일을 그만 두고 치료사의 지원으로 자신의 소망인 그림 그리기 즉 삽화 그리기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전력투구하고 있다.
Z씨가 10년 전에 처음 치료자를 찾아 왔을 때의 치료 회기를 아래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심하게 불안한 27세의 남자 Z씨
증세:불안해서 물건을 사기 어렵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고 특히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 머리 속에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새벽 2시-3시까지 잠을 잘 잘 수가 없음
접촉: 치료자의 저서"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보고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겠다고 연락이 옴
진단명: 심한 불안장애, 대인공포증, 자아가 너무 약한 자아 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 2시간씩 1년 6개월간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자아가 점점 자라나고 있고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서 분가해서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혼자서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결정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게 되었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1주일에 1회-2회 정도로 많이 감소되었으나 아직도 대형 백화점에서 가서 물건을 사는데는 망설임이 많다.
치료의 과정
Z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자아가 거의 없었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잡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MP 3를 사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이것을 정작 사는데는 7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어떤 것을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학교 시절에는 친구를 거의 사귀지를 못해서 외로웠다고 했다.
Z씨는 장남으로 그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명퇴해서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교사로써 명예 퇴직을 하시고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아래로는 결혼해서 출가한 여동생이 한분이 있고 둘 째 여동생은 몇 개월 전에 결혼해서 출가를 했고 지금 막내 여동생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별히 부모님 중에서도 어머니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아서 지금도 어린 시절에 받은 언어 폭력들이 마음 속에 떠올라서 잠에 잠자리에 들면 계속해서 그 생각들이 침투를 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놀릴 것 같아서 얼굴을 똑 바로 들도 다닐 수가 없고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Z씨의 마음의 상처는 어린 시절에 유치원 시절로 거슬여 올라갔다. Z씨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왜소하고 허약해서 항상 어머니의 걱정과 불안의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유치원에서 점심 시간에 빵과 우유를 주었는데 그는 그것을 다 먹지 못하고 집에 가져와서 먹고 있으면 어머니가 "너는 그것도 빨리 먹지 못하느냐, 그렇게 해서 몸이 건강해지겠느냐?"고 빈잔을 주었다고 했다.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2살 어린 여동생은 항상 자신의 몫을 먼저 먹고 오빠의 빵과 우유를 빼앗아 먹었다고 했다. 유치원 때 그가 좋아하던 이웃집 여자 어린이가 있었는데 그 여자 어린이가 좋아서 뒤에 졸졸 따라다니다가 그 여학생이 왜 자꾸 따라다니느냐에 빈잔을 주자 말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뒤에 따라다녔다고 했다. 속으로는 "너가 좋아서 같이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 올랐으나 차마 입밖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Z씨가 7살이 되었을 때 하루는 어머니가 그에게 종이 쪽지에 메모를 해서 어머니 친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했다. 그는 심부름을 가다가 길 모퉁이에서 약장사가 원숭이를 데리고 재주를 부리면서 약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보고 있다가 원숭이가 둥글 게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여자 어린이의 손을 활퀴어 손에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심부름 쪽지를 잊어 버리고 집으로 오다가 어머니를 만났고 어머니에게 원숭이가 여자 어린이 손을 활퀴어 손에 피가났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심부름을 잊어 버리고 온 아들을 보고 "야이 썩발이 자식아! 너는 심부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느냐?"라고 심하게 야단을 치는 것을 보고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그렇게 심하게 야단을 치느냐며 나무라자 "저 자식 때문에 내가 내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야"는 무서운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Z씨는 그 말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종종 희상이 된다고 했다.
Z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어머니는 3명의 여동생들을 모아 놓고 "너희 오빠는 나중에 혼자 살아가기 어려울 것인데 너희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의 이런 말은 이후에 여러번 계속되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그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이 어른이 되면 혼자서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늘 마음 속에서 불안해 했다고 했다. 이 불안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나는 커면 거지가 될 것이야, 나는 거지가 되어서 남에게 얻어먹고 살아야 돼!"라면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에 떨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그 불안한 "거지 공포증"(Z씨의 표현)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지금도 괴로워했다.
Z씨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오줌을 싸는 오줌싸게였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정작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항상 부모님의 처벌이 두려웠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집에서 친척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먼 친척 아주머니가 그와 이웃 친구와 둘이서 놀고 있는데 들어와서 친구의 바지를 벗기고 꼬치를 만지며 놀리자 친구가 울면서 자기 집으로 가 버려 그가 화가 나서 그 아주머니에게 왜 내 친구를 화나게 해서 집으로 쫓아 버렸느냐고 따지자 그 아주머니가 잠시 후에 혼자서 놀고 있는 방에 찾아와서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데 너는 태어나서 그렇게 너의 어머니를 고생하게 만드느냐?"라고 하면서 질책하는 바람에 자신이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이었다고 지금까지도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 먼 친척 아주머니한데 그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에게 그런 언어 폭력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Z씨는 그 초등학교 4학년 쯤에 어느날 그가 길거리에서 팔고 있던 병아리를 세 마리를 사서 집에 가지고 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Z에게 병아리는 병이 들어 살 수가 없으니 내다 버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부지런히 키우기 시작했고 한 마리는 얼마 후에 죽었고 두 마리는 잘 자라나서 알을 낳은 암탉으로 커게 되었다. 그는 시간이 있으면 닭을 품에 안고 친구처럼 지내면서 학교에서 방과 후에 집에 오면 닭을 제일 먼저 챙겼다. 어느 날 가족들의 계 모임에서 먼 친척 고모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 닭을 잡아 먹자고 해서 Z에게 허락을 받지도 않고 몇 푼의 돈을 주면서 그 닭을 잡아 먹기로 했다고 했다. Z군은 어머니에게 항의를 할 수 없었다. 그날 그 닭을 잡아서 닭 죽을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 것을 보고 자신을 그 닭 죽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후에 Z씨는 지금까지도 닭 죽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했다. 닭 죽을 보면 그가 애지중지 키우던 닭 생각이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Z씨가 중학교 2학년 때 쯤에 어느날 길거리에서 버림받아서 돌아다니는 개가 한 마리 Z씨를 졸졸 따라오는 것을 데리고 와서 집 안에 줄을 메어 두었으나 찾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그 개를 키우기로 했다. 방과 후에 집에 오면 그는 늘 개와 함께 쓰다듬어 주고 같이 노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날 먼 친척 고모가 와서 그 개를 잡아 먹겠다고 끌고 갔다고 했다. 지금도 그 고모는 제사를 지내려 Z씨의 집에 자주 드나들지만 그 고모를 미워하고 원망한다고 했다. 그 고모만 보면 욕심쟁이로 Z씨의 집에 오면 어떤 것을 가지고 갈 것만 찾는다고 했다.
Z씨가 중학교 1학년 때 쯤에 여동생이 걸 스카웃으로 단체 야영을 갔다와서 어머니가 그 여동생의 야영 훈련에 따라가서 찍은 사진을 집에서 보면서 그에게 "너는 이런 수련회에 갈 수 있겠느냐고 빈잔을 주면서 여동생이 얼마나 사진이 잘 나왔는지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고 Z씨 자신에게는 한마디도 칭찬을 하지 않는 어머니가 여동생들은 자신과 다르게 대우를 하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이후에도 그는 어머니가 유별나게 아들인 자신만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을 자신보다 여동생들에게는 어떤 것이든지 칭찬을 하면서 왜 Z씨 자신에게는 그렇게 항상 험한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Z씨를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은 어머니 뿐만 아니었다. 아버지도 언제나 Z씨를 보면 항상 비난이나 못한다는 말만 늘어 놓았다고 했다. 대학 때 아버지와 함께 일찍 성당에 같이 가면서 아버지는 Z씨에게 아침 일찍 우유 배달을 하는 사람을 보고 "저런 사람들은 저렇게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일하는데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니?" 또 신문 배달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너는 저렇게 할 수 있겠니?" 언제나 아버지는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가 입에 따라 다녔다고 했다.
Z씨의 아버지는 강박증이 있었다. 집에 오면 항상 물건이 제자리에 가지런히 있으냐 하고 비가 오면 우산들 한데서 떨어진 빗물들을 Z씨에게 걸레로 깨끗이 닦아라고 시켰다. 타올이 가지런지 놓여있지 않으면 Z씨가 바로 놓아라고 호출이 떨어졌다. 여동생을 시키면 코방귀를 끼고 하지 않으니까 Z씨의 몫이 되었다. 한번은 화장실에 타일 바닥이 더럽다고 아버지가 걸레로 깨끗하게 닦으면서 Z씨에게 같이 닦자고 했다. 여동생들은 모두가 아버지가 "결백증"이라고 빈정되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지만 Z씨는 거절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시키면 두 말하지 않고 하지만 속으로는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했다.
이론적 근거
Z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심한 학대와 편애를 받았다. 부모님은 두 사람 다 심한 불안증이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결백증 즉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불안장애에 속한다. 어머니는 IMF 때 명퇴하실 때까지 교사로 근무를 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특히 Z씨에게 아껴쓰고 절약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특이하게 어머니는 교사로 명퇴하실 때까지 "누룽지만 먹고 살았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치료자가 물었을 때 그는 어머니는 식구들이 밤을 남기면 아깝다고 늘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다른 식구들이 남긴 밥만 먹었기 때문에 평생동안 누룽지만 먹고 산 셈이었다고 했다.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네로 반찬이 남거나 밥이 남으면 절대로 버리지 않고 모아서 끓인다음 먹었다, 그래서 별명이 누룽지였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어느날 백원짜리 동전으로 껌을 한 개 사서 씹다가 어머니에게 들키게 되자 어머니는 Z씨에게 "땅을 파 보아라 100원짜리가 나오느냐? 나는 한푼이라도 절약하는데 너는 절약할줄도 모르느냐"고 야단을 첬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Z군에 걸핏하면 "너는 돈먹는 기계이다"라고 언어 폭력을 했다. Z씨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서 늘 약을 먹고 지냈고 또 자주 병원에 드나들면서 어머니가 돈을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항상 너는 돈먹는 기계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지금도 물건을 사거나 돈을 쓸 때 자신이 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곰곰해 생각하다가 보니까 물건을 제대로 살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의 편애는 Z씨의 외가집에 대한 어머니의 하시는 말씀들을 모아서 분석해 본 결과 Z씨의 어머니가 아들을 미워하고 딸을 편애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보통 어머니들은 아들 하나에 딸이 셋이면 아들을 편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들 관계는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딸을 더 좋아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Z씨의 가족은 달랐다. 하나뿐인 아들을 내내 미워하고 딸을 예뻐하는 어머니를 Z씨는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왜 나만 특히 아들인 나만 엄마가 미워할까 하는 것을 알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Z씨를 통해서 분석해 본 결과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아들 한사람과 딸 4명을 두고 있었고 외아들인 큰 외삼촌만 편애해서 학교에 다닐 때도 언제나 오빠인 큰 외삼촌을 도시락을 쌀 때 달걀과 맛잇는 쌀밥을 그리고 나머지 딸들에게는 멸치 뽂음이나 콩나물만 넣어 주었다고 불평을 했고 재산도 큰 아들에게만 물러 주는 사람이 오빠를 미워해왔으며 지금도 오빠 가족들과는 내왕이 거의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자라면서 아들에 대한 편애를 당한 것에 대한 부모님에 대한 적대감정과 분노와 노여움이 지금은 자신의 아들 한데로 흘러가고 있음을 어머니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부모님의 문제가 자신의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Z씨의 부모님은 둘 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항상 불안한 마음을 마음이 불안한 아들인 Z에게 방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엄마, 아빠는 너 때문에 죽을 때 제대로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말을 늘 해 왔다고 했다. Z씨가 불안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아들만 보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늘 말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너만 보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지금도 이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을 하고 있구나! 나는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이었는데"라고 자신을 질책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분노와 불안을 즉 스트레스를 Z씨에게 풀어온 것이다. Z씨가 부모님의 분노와 적개심을 방출 시키는 피뢰침 역할을 해 온 것임을 부모님과 Z씨도 모르고 있었다.
Z씨는 대학에 다닐 때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것을 전공으로 하지 못하고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자신의 취미에 맞지 않고 재미가 없어서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신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해오던 만화그리기 동아리에 가입해서 대학 4년 내내 만화를 그려왔고 동료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만화 그리기에 몰두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은 만화를 그려서 밥먹고 살 수 없으니 다른 것으로 바꾸어라고 강압을 해서 제대로 마음 놓고 만화를 그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이 만화를 그리는 것만 보면 분노해서 처벌적인 언어 폭력 때문에 부모님이 다 주무실 때 혼자서 밤새도록 만화를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면 부모님이 노발대발 하시면서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제촉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그는 졸업 후에 만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회사에 약 1년 동안 다녔으나 IMF로 인해 만화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결국 집에서 프리랜스로 만화를 그리기로 하고 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나 부모님의 간섭과 강압 때문에 아버지의 권유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실습을 1달 동안 하려고 하든 시점에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치료 결과
Z씨는 자아가 너무 약해서 거의 자아가 자라질 못했다. 치료자는 Z씨가 어린 시절에 학대받은 상처의 말 때문에 늘 생각이 침투해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음을 알고 마음대로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말들을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도록 했다. 내면 속에 묻혀 있는 상처들을 토해내게 했다. 그는 학교 시절에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집에 오면 부모님에게 학교에 가기 싫어요, 동무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아요? 라고 하소연을 했으나 부모님은 "네가 참아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지 해결책을 주거나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학교에서 늘 혼자서 상상 속에 살았다고 했다. 한번은 학교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를 하면서 자신은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서 신기해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등을 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운동장에 혼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다. 부모님의 말씀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들었으나 그러나 마음 속에 한가지는 늘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점에서 치료자가 쓴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부모님이 잘못된 것을 알 게 되었고 치료자에게 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Z씨는 부모님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언제나 짜증 분노, 노여움, 스트레스를 Z씨에 방출 시켜온 것을 알 게 이제는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했다.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치료 시간에 재연 시키면서 부모님에게 잘못되었음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 재연이 8개월쯤 계속되었을 때 Z씨는 밤에 잘을 편안하게 잘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한데서 독립하고 싶다고 했다. 방을 얻어서 나오기로 했다. 문제는 Z씨가 부모님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번도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방을 하나 얻어달라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연습을 몇 개월 한 후에 드디어 Z씨가 어느 날 부모님에게 오피스텔 하나를 얻어서 혼자 살겠으니 돈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Z씨가 독립을 원하는 밑바탕에는 자신이 원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고 이제 더 이상 부모님 밑에서 자신을 위축시켜고 학대 받으며 살지 말고 자아를 성장시키는 것이 급선무임을 알 게 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승낙을 하면서 한 달에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Z씨는 한 단계씩 일을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먼저 원하는 지역에서 오피스텔을 확인하고 가격을 알고 보고 자신이 살고 싶어하는 장소를 물색하도록 했다. 중개소를 방문하는 연습과 중개소 직원에게 이야기를 하는 연습을 한 다음에 실행에 옮겨졌고 자신이 원하는 오피스텔을 점찍어 놓게 되었다. 가격은 5천만원 정도가 되었고 한 달에 50만원 정도 생활비용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게 했을 때 부모님은 거절했다. 그만한 돈이 없다고 했다. 사실은 부모님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근무를 해왔고 어머니가 교사로 맞벌이 부부로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틈틈이 부동산에 투자를 해서 몇 개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 앞으로 어머니 앞으로 Z씨 앞으로 몇 개씩 등기로 이전을 해두고 있었다는 것을 Z씨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생활비용도 줄 수 없으니 네가 돈을 벌어 이사를 가라고 했다.
처음에 했던 말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해서 이야기했으나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2단계로 전략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고시방을 구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고시방의 위치를 알아본 후에 4개 정도 점을 찍어서 다시 직접 현장을 확인하게 했다. Z씨는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고시방으로 최근에 지은 건물로 내부 시설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달에 37만원에 밥은 늘 제공해주고 부식도 한 두가지는 제공해준다고 했다. 에어컨과 히타가 가동되고 책상과 TV도 제공된다고 했다. 월 37만원과 한달에 약 40만원의 생활비용을 조달하면 되겠다고 했다. 다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다. 집을 다음 주일에 집을 나가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돈을 아버지가 세를 준 점포에서 Z씨의 통장으로 한달에 약 70만원이 입금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도 그것을 사용하라고 인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Z씨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둘 째 여동생 자가용으로 집을 옮겨서 혼자서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Z씨는 이제 독립된 생활을 혼자서 하게 된지 6개월 정도 세월이 흘러갔다. 처음에 부모님은 혼자 나가서 한달도 못되서 짐을 싸들고 집에 들어올 것이라고 했으나 Z씨는 혼자서 사는 것을 치료자로부터 한가지씩 배워가면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운동을 1시간-2시간 하면서 체력을 다니고 남은 시간에는 만화를 그리면서 실력을 높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배우면서 1주일에 1회 2시간씩 치료자에게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자아를 키우는 것을 한지 1년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매일 밤마다 침투되는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하던 것이 이제는 1주일에 1회 혹은 2회 꼴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편해졌다. 그는 최근에 자신이 사고 싶은 옷 몇가지를 혼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아직도 물건을 살 때 내가 이 물건을 살 자격이 있는가? 부모님에게 야단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고 있지만 강도는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이제 혼자서 살 수 있게 되었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지금까지 6개월간 지내온 고시 방에서 여자 분들만 거주하는 고시방으로 만든다고 나가달라는 요청에 다시 인근에 고시방을 구해서 이사짐을 혼자서 용달차를 불러서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해나가고 있음에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만화 그리기로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이 되면 나머지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심리치료를 끝내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Z씨가 처음 1년 6개월 과정의 치료를 마친 후에 다시 1년 동안의 재 계약으로 이후에 2년 6개월 동안의 치료의 과정을 상세하고 알고 싶어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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