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해는 또 다시 떠 오른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8. 1. 6. 14:07

해는 또 다시 뜬다

 

위의 제목은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작품에서 따 온 것이다. 치료자(필자)는 이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작품의 제목을 통해서 현대인의 정신과적인 문제들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을 해 보고자 한다. 그 작품이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평가를 하고 논의를 하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의 자유가 아닌가!


헤밍웨이는 많은 이름 있는 작품들을 썼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등등의 작품들은 영화로도 나왔고 앞의 두 편은 작품들을 읽고 또 영화를 통해서 본 기억이 있다. 이들 중에서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 는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서 중세 유럽에서 케토릭 교회 시절에 마을 사람이 죽었을 때 조종을 울리면서 그 죽음의 애도를 표현하는 풍습에서 제목을 따온 것으로 영국의 고전주의 시인인 존 딘(Jone Donne)의 시에서 조종을 울리는 것을 듣고 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지 말라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죽음을 위한 조종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의 시에서 따 온 것으로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느냐?고 그 작가에서 묻지를 말아라!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 울리는 조종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 한 평론가의 글을 읽은 것이 있다.

 

헤밍웨이는 그의 대표 작품인 바다와 노인”(The Old man and Sea)으로 1953년에 퓰리처 상을 그리고 195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너무나 유명해서 그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노년의 한 어부가 평생 소원이었던 거대한 고기(청 새치)를 잡아서 그와 사투를 벌리면서 끌고 오는 데는 성공을 했으나 결국은 상어에게 다 뜯어 먹히고 뼈만 남은 고기를 건져 올리는 내용의 소설로써 일부 평론가들은 대어(大漁)와 사투는 삶과의 투쟁을 의미하고 뼈만 남은 것은 삶의 허무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헤밍웨이는 만년에 몇 번의 사고로 인한 신체적 부상과 그의 고질병인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을 받아오다가 엽총 자살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가 역시 엽총 자살을 한 것으로 그가 대물림 한으로 알려져 있다(2018, 1, 6, Wikipedia).


치료자는 헤밍웨이가 노벨 문학상을 타고 나서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에 강박적인 된 것으로 본다. 많은 명사들이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나서 그것 이상을 기대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전전긍긍 대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자신의 자아를 구박하고 압박을 해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게 되는 사례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은 그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해서 새로운 것을 구상하려고 하는 강압이 불안을 야기 시켜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갈시키게 되었고 그들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해서 알코올과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유추 되어진다.


 그 증거로써 치료자는 그의 저서인 해는 또 다시 뜬다를 지적하고 싶다. 해는 어제도 떠 올랐고, 오늘도 떠 올랐고 그리고 내일도 똑 같이 떠 오를 것이다. 해는 몇 백 년 전에도 똑 같이 떠 올랐고 그리고 몇 천년 전에도 똑 같이 떠 올라고 또 몇 백 년 후에도 그리고 몇 천년 후에도 똑 같이 떠 오를 것이다. 올해도 작년처럼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그리고 겨울이 오고 간다는 이 자연의 진리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의 자아의 모습은 어떠한가? 를 비추어 보면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최근에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서 찾아온 한 젊은이가 그의 핵심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하소연을 했다. “선생님, 삶이 너무 지루합니다, 매일 같이 되풀이 되는 나날의 삶들에서 내가 마치 다람쥐가 채 바퀴기를 돌리듯이 매일 같이 똑 같이 되풀이 되는 삶을 경험하면서 삶이 무의미하고 재미가 없고 왜 이렇게 똑 같이 매일 같이 반복해서 되풀이되는 변함없는 삶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신경정신과 선생님은 약물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물이 나를 변화시켜주기는커녕 잠을 자게 만들고 오히려 더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힘이 없고 밖에 나가기가 두렵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특별히 가족 구성원들이 너는 밥벌레라고 비웃는 것 같아서 만나기가 싫어집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잠을 자고 나서도 오히려 피곤하고 긴장이 풀리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하소연하는 21세의 젊은이를 만났다.


그의 하소연에서 치료자는 문득 니체가 경고한 유명한 글귀가 생각이 났다. “당신이 심연(깊은 우물)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 그 심연이 역시 당신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이 경고의 말을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 오면서 자신이 세상을 컨트롤하고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된 것처럼 기고 만장하고 우쭐대다가 어느 한 순간에 추락하고 몰락한 우리들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이러한 예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예들을 보라! 이전의 정권에서 권력의 정점에서 서 있는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서 그들이 하루 아침에 감옥으로 수감이 되는 경우들을 보라! 이것은 니체가 했던 경고의 말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내가 삶을 컨트롤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삶에 컨트롤 당하고 있는 모습에서 자아가 놀란 것이 바로 21세의 젊은이가 호소한 바로 심각한 우울증의 예가 아닌가? 그는 초, , 고등학교 시절에 전교에서 몇 등을 하던 젊은이였다. 그런데 대학 생활에서 역전이 된 것이었다. 자신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약물 치료에 실망해서 근본적인 그의 문제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정신분석 치료를 찾은 것이었다.


핵심은 바로 내 자아와 관계된 문제였다. 다시 일상의 생활로 되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12 25일을 크리스마스 날로 그리고 1 1일을 신년으로, 또 다른 추석으로, 설날로 이름을 붙이고 그 날이 되면 서로 축하를 하고 연하장을 보내고 신년사를 하고 보신각 종을 울리고 새해의 해맞이로 바닷가로 해변으로 산등성이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환희와 즐거움을 만끽 하는 것을 본다. 이것이 일상이고 이러한 무리들에 어울리지 못하면 나는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비치고 무시당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날들의 이름들은 모두가 내가 붙인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붙인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축제로 만든 것들이 아닌가? 정작 이러한 날들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내 삶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 속에서 어울려 다니는 것은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만약에 내가 그 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이 그 날에 나에게 의미가 있는 날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냥 그들의 무시 속에서 진심으로 울려 나오는 것이 아닌 함성과 타성에 젖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역동적 정신의학에 새로운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로이트가 졸업을 했던 비엔나 의과 대학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세계에서 최고의 의과 대학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고 그의 수도 비엔나가 유럽의 최고의 도시였고 문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비엔나 의과 대학을 졸업한 세 사람의 세계적인 유명한 인간 정신을 탐색한 역동적인 심리학의 대가들이 있다. 물론 첫 번째가 프로이트로써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를 했고 그의 인간의 내면의 어두운 세계를 정신분석이라는 촛불로써 그 이전에는 아무도 탐색해 보지 못한 어두운 내면의 세계를 정신분석 이라는 현미경으로 들어다 볼 수 있게 한 공로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두 번째가 프로이트보다 14살 어린 알프레드 에들러(Afred Adler)이다. 그는 역시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일반 의사였다. 1903년에 프로이트의 꿈 해석(1900년에 출판)을 읽고 감명을 받았고 그 해에 합류를 해서 1911년에 결별할 때까지 8년 동안 프로이트와 함께 했다. 그가 자신의 심리학을 개인주의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개척해 나간 사람이다.


세 번째가 빅토 프랭클(Viktor Frankl)로써 역시 비엔나 의과대학 신경학의 전공으로 정신과 의사가 된 사람이었다. 세 사람 다 유태인으로 에들러는 일찍 미국으로 가서 화를 면했고 프로이트는 그의 제사들의 의해서 영국으로 망명을 갔다 그러나 프랭클은 나치에 의해서 폴란드의 아슈비치 수용소에 끌려가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아슈비치에서 살아 남은 비결을 책으로 썼다. 이후에 그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그리스의 이름을 따서 독특한 심리치료 기법을 로고 치료법(Logo therapy)(logo는 그리스어로 의미를 찾는다는 뜻)(주㈜: 참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이론은 많은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주장해 오던 것을 뒤 받침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생리학자인 월터 케논(Walter Cannon)이 주장한 부두의 죽음(Voodoo Death) 이라는 용어로 심리치료 학 책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인디언들의 한 부족에서 샤만(무당이)이 터부를 위반한 한 인디언에게 사망이라는 부적을 써 붙였다, 이후에 그 인디언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은 사망을 했다.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본 한 문화 인류학자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을 했다. 그 죄인은 그의 종족으로부터 폐각추방을 당했다. 고로 그의 이름이 부족의 구성원들로부터 삭제되어지고 모두가 그를 죽은 사람으로 무시하고 대면을 하지 않게 되면서 그는 소속감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소외되어지면서 자아를 상실한 것으로 해석을 했다.

또 한가지 유사한 사례는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로 붙잡힌 미군들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 같이 생활을 한 미국 군인이 그가 유독 희망에 차서 곧 석방될 것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가 베트콩의 고위 장교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조만 간에 석방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면서 기고만장을 했다. 그런데 그가 얼마 후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의 보호자였던 그 고위 관리의 베트콩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갔기 때문에 희망이 사라졌고 절망감으로 무력감 때문에 건강하던 군인이 사망한 것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위의 두 개의 사례들을 통해서 인간이 절망 상대에서 희망이 없을 때 그것이 신체적인 호르몬의 변화로 연결되어 사망할 수 있다는 사례들을 심리 치료에서 자주 거론하고 있다.


프랭클은 열악한 수용소에서 매일 같이 가스실에 실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쇠약하게 보이게 되면 노동력의 상실로 가스실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는 살아 남기 위해서 하루하루 삶에서 의미를 부여해서 그 자신의 삶을 자신이 컨트롤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을 스스로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고 삶에서 살아 남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고로 치료법을 개발을 했다.


치료자는 그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의 로고 치료법은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확대시켜서 개발한 자아 심리학에서 삶에서 컨트롤 당하는 것이 아니고 내 자아가 삶을 컨트롤하도록 하는 자아 심리학과 일맥상통 된다는 것을 발견을 했다. 내가 삶에 컨트롤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삶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치료자는 이러한 의미를 일상 생활에서 찾는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스케줄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즉 12 25, 1 1, 815, 추석, 설날 등등의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스케줄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하루 일과를 내가 기획하고 내 삶을 살아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치료자(필자)는 오래 전부터 하루의 일과를 내 스스로 짜고 내가 기획하고 내 삶을 살아가도록 하고 있다. 즉 아침 식사를 내가 만들고, 저녁 식사를 내 가 만들어서 내 건강에 적당한 영양소들과 식품들을 고려해서 식단을 만들고 슈퍼마켓에서 그들을 손수 구매를 하고 그리고 운동 스케줄을 내가 만들어 매일 같이 정해진 시간에 산책과 운동으로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산책을 하면서도 어제는 오늘과 다르다는것을 오늘은 나에게 내가 만든 특수한 날임을 내 자아에게 확신을 시킨다. 내가 정한 전문 서적을 스케줄로 만들어서 읽고 정리를 하고 글을 쓰고 자료를 수집하고 등등의 모든 삶의 내가 짜고 내가 실행을 하고 나를 위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프랭클이 말하는 내 삶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자아 심리학에서 자아를 찾아서 내 삶을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헤밍웨이의 해는 또 다시 떠 오른다 의 제목으로 다시 되돌아 가보자,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성공, 출세, 명예와 돈을 쫓다가 보면 정작 나를 위한 삶이 아니고 칭찬, 격려, 박수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나의 삶이 아니고 타인에 의해서 조건화 된 삶이 아닌가?  그 결과는 늘 하는 일에 어느 순간에 타성으로 젖어 들게 되고 나는 내 삶이 아니고 타성에 습관화가 되어버려서 삶이 의미가 없어지고 매일 같이 해다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고 변함이 없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매일 같이 똑 같이 되풀이 되고 있는 삶 속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무의미하고 삶에서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기 쉽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일찍이 인간과 동물의 본성인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찾는다속에서 살다가 보니 현대인들은 고통을 피하는데 익숙해져서 정작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강조한 말이나 니체가 말을 했던 유명한 경구인 당신이 심연을 들어다 보고 있을 때 심연 역시 당신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의미 깊은 말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말 속에는 내가 내 삶을 기획하고 내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살아 가고 있는 내 삶 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프랭클의 삶의 의미부여와 일치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실제로 전문직업들 중에서 가장 자살 비율이 높은 전문직이 정신과 의사와 치과 의사로 나와 있다. 치과 의사는 환자들의 아픈 이발을 고치는 직업이기 때문에 환자와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고 정신과 의사는 환자들의 고통을 매일 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환자들의 고통을 컨트롤하는 전문가라고 알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자신이 환자들의 고통에 컨트롤 당하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삶에서 즐거움을 상실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는 범죄 심리학을 다루는 범죄 심리전문가들은 3년 혹은 4년마다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도록 규정을 정해 놓았다고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저서를 쓴 FBI심리분석관인 로버트 레슬러(Robert Ressler, 1993,(): 참고)는 밝히고 있다. 범죄인들을 흉악한 장면을 제일 먼저 가서 보고 현장을 분석하는 범죄 심리분석가들이 계속해서 그러한 장면에 익수 해지면서 나중에 스스로가 우울해지고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지게 되는 것을 많이 보면서 반드시 3년 혹은 4년마다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점검해보고 심리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는 레슬러의 말에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호소를 한 21세의 젊은이의 치료는 물론 자아를 찾는 일에서 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자신의 과거의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을 분석으로 다루면서 통과해야 할 발달 과정에서 결함과 결손을 알고 결핍된 것을 새로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칭찬으로 기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고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내 삶을 내 자아를 위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치료자의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시간이 걸리고 많은 노력과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의 지적을 하면서 그러나 시간과 노력이 들어 가드라도 진실된 내 자아를 찾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남은 60년의 삶을(평균 수명을 80세로 볼 때 21세의 청년은 60년이 남아 있다!)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생각하면 투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닌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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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로버트 레슬러의 저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1993)”과 빅토 프랭클의 로고 치료법은 치료자가 우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소장하고 있으니 전문 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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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는 항상 치료자의 글 다음에 치료 사례들을 소개를 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 치료를 하면서 그들을 응용하고 기법을 개발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에서 이다.


 

대상: 57세의 남자 H


증세: 이혼 직전에 있는 부부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 사례들을 읽어본 부인의 권유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됨

접촉: 지금은 미국의 동부의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한국에 부모님을 방문하기 위해서 2주일간 귀국 동안에 부인의 권유로 치료자를 만나보고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받고 방문하게 되었음


진단명: 성격장애,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은 장애, 의사소통 장애.


치료 기간: H씨는 2시간 동안 컨설팅을 요청해서 비교적 자신의 마음의 문제들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설명


치료의 결과: 아래에서 소개가 된 H씨이 문제점은 H씨 자신이 스스로 분석을 요구하면서 밝힌 2시간 동안의 컨설팅의 내용들을 정리해서 분석한 내용

 

치료의 과정

 부부 문제로 57세의 한 남자인 H씨가 치료자에게 자신의 문제의 핵심을 분석해 달라고 컨설팅을 요청을 했다. 그는 미국의 B시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이번에 그의 고령의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서 2주일간 한국을 방문하는 길에 부인이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소개시켜주면서 한국에 가면 xx 치료자를 한번 만나보고 자신의 문제의 핵심을 분석에 보라는 권고 때문에 치료자를 찾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의 삶의 역사: H씨는 부부 문제로 결혼 초기부터 계속되는 갈등 때문에 고통스러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치료자는 우선 그에게 그와 부인이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그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을 해서 대학 3학년 때 군에 입대해서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에서 졸업 후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했다. 군복무 이전까지는 대학 생활에서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고 친구들과 자주 만나서 술도 한잔하고 같이 어울리는데 신경을 썼으나 졸업 후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나서 공부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단단한 결심을 하고 공부에 전념을 했다. 그 시점까지는 이성 관계에는 흥미와 관심이 없었고 대학 입학 후에 이성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성적이 좋아서 지도 교수가 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공부를 계속하라는 권유를 받고 그리고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생물학에 석사 학위를 얻고 나서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독일 xxx 대학교에서 생물 화학 즉 생화학을 전공해서 죽자고 공부를 해서 5년간 박사 학위를 딸 때까지 한국에 한번도 귀국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을 했다고 했다. 독일에서 4년을 공부를 하면서 한번도 귀국을 하지 않게 되자 4년 째 되던 해에 부모님이 독일에 찾아왔었다고 털어 놓았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H씨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름있는 대학에 연구원으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미국 동부의 xx 시에서 1년 후에 xxx학회 모임에서 자신보다 2살 연상 부인 P씨를 만나게 되었고 M씨는 35세로 그리고 부인 P씨는 37세의 나이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부인은 이미 미국에 온지 10년이 되었고 M씨는 독일에서 5년 그리고 미국에서 1년으로 외국 생활 6년이 된 커플이었다.


 부인 P씨는 4 1녀의 넷째 딸로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전출을 많이 다녀서 학교 전학을 많이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부인 P씨는 중학교 시절부터 혼자서 집을 나와서 자치를 해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동생을 데리고 같이 자취 생활을 하면서 돌보아주었기 때문에 독립심이 강하고 외향적이고 그리고 사람들을 잘 사귀는 편이고 남편인 H씨는 내성적이고 사람들을 사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스타일의 부부였다고 회고를 했다.


 부인 P씨는 언니가 한 분이 미국에서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면서 P씨를 초청을 해서 미국 유학을 오게 되었고 같은 생화학 분야로 미국에서 석사 박사를 가진 인텔리였다고 했다. 언니네 가족은 동부의 B시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중서부의 C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부인 P씨는 결혼 후에 딸이 태어나면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다가 자녀 양육으로 일을 하지 않고 딸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게 되면서 지금도 부부 싸움을 하게 되면 딸과 남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것에 대한 불평을 많이 한다고 했다.


 남편인 H씨는 3 2녀의 장남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70대 후반의 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인근에 동생 내와가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아드리고 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부부가 만났을 때 부인의 어떤 점이 매력으로 끌렸는가?를 물었을 때 H씨는 한참을 꼼꼼히 생각을 하드니 부인의 성격이 외향적이고 그리고 쉽게 사람들을 잘 사귀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부인 P씨는 남편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부인 P씨는 남편이 근면 성실하고 직업이 탄탄해서 남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H씨는 지금은 대학에서 생화학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데 앞으로 1-2년 후에는 한국에 영구 귀국해서 남은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고 토로 했다.


 결혼 후에 부부의 갈등이 시작된 것은 언제쯤인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H씨는 결혼 직전에 이미 결혼을 하기 위해서 2주일간 한국에 나와서 결혼식을 하려고 할 때 서로간에 갈등으로 비행기 안에서 말다툼으로 비행기에서 옆자리를 앉지 않고 서로 떨어져서 한국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 귀국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떤 것 때문에 서로 다투게 되었는지?를 물었을 때 H씨는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결혼 식을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고 부인 P씨는 부모님에게 요청을 할 것이 아니고 친구들에게 식장, 날짜 등의 도움을 요청하자는 말다툼으로 두 사람은 비행기 안에서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서 귀국을 했다고 했다.


 결혼식을 끝내고 부부는 제주도에 신혼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도 서로 갈등이 생겨나서 달콤한 신혼 여행이 아니고 티격태격 싸우는 신혼 여행으로 제대로 신혼 여행을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이 되어서 예정된 날짜보다 하루 더 연장을 해서 체류 한 것을 두고 평생 동안 그것을 후회하면서 다투어 왔다고 했다.


 남편 H씨에게 부인 P씨의 불평 불만이 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H씨는 부인은 남편 H씨가 지나치게 시어머니만 챙기고 부인은 무시한다고 불평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의기 소침하고 말이 없고 사교 성이 없다고 불평을 한다고 했다. 어떤 것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없고 부인을 리드해 나가는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불평을 한다고 했다.


 부인 P씨에 대한 남편 H씨의 불평 불만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H씨는 부인은 외향적이고 쉽게 다른 사람들을 잘 사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사람의 단점이 드러나면 그 사람을 비난, 비판적이 되고 쉽게 헤어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녀의 오빠 가족과는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하다고 비난을 해서 서로 관계가 단절된 지가 오래되었다고 했다. 유일하게 미국에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는 언니네 가족들과도 서로 도와주고 다독거려주는 것은 좋은데 항상 자신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늘 다투고 싸우게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라고 했을 때 여성 형제들이 서로 도와주고 서로 보살펴주려고 하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하다가 보면 서로 싸우게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서 지난 달에 부인 P씨가 대학생이 된 딸을 데리고 미국의 중서부 지역인 C시에 살고 있는 언니네 댁을 4 5일 일정으로 방문을 했는데 2일 후에 남편 H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언니와 싸우고 나서 빨리 귀가 하고 싶으니 비행기 표를 알아 보아달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 예매된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새로 구입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취소한 것을 한 개의 예로 들었다.


 구체적으로 언니 즉 이모가 H씨의 딸인 조카에게 용돈을 듬뿍 주는 것을 보고 그리고 오래간 만에 왔으니 대접을 한다고 돈을 쓰는 것을 보고 부인 P씨가 언니는 미국에 와서 이제 나이가 들어서 고령이 된 되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을 하고 있으면서 왜 함부로 돈을 많이 낭비를 하느냐? 조금이라도 저축을 많이 해서 노후 준비를 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 라고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서 언니가 내가 좋아서 도와주는 것에 화를 내면서 왜 불평을 하느냐?라고 대응을 하자 부인 P씨가 언니는 내가 좋은 쪽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데 왜 거부하고 불만족 하느냐?라는 것이 발달이 되어서 결국은 싸움으로 번져나간다고 부인과 싸움의 갈등을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결혼 후에 딸이 태어나면서 늘 부부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H씨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몇 번의 심리상담과 심리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실패를 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미국에서는 이름 있는 전문가들이 많아서 부부 갈등이나 성격 문제 등에 대해서 상담하고 치료를 할 수 는 미국인 전문가들이 많았을 떠 인데 치료를 받아 보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부인의 권유로 2번 정도 상담을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 치료자는 미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의사 자격증과 정신과 자격증을 가진 사람으로 몇 회 치료를 받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룹 상담에도 나가서 상담을 받아 보았으나 그 그룹의 멤버들이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를 가진 거친 사람들이어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부인 P씨 역시 한국계 미국인에게 몇 번의 심리치료를 받아 보다가 그 치료사가 부인 P씨의 단점을 지적 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 사람의 능력을 의심하면서 치료를 중단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부인 P씨는 항상 자신의 단점을 지적을 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을 하면 불 같이 화를 내고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것이 부인 P씨의 결함이라고 지적을 했다.


 미국에서 결혼 후에 부부 생활을 한지가 22년이 되어가는데 그들의 결혼 생활을 조용할 날이 없이 지금까지 덜커덩 거리면서 살아 온 것 같다고 회고를 했다. 초반기에 부인이 이혼을 하자고 먼저 이야기를 했으나 자녀인 딸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게 되었는데 작년에 딸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집을 떠나고 부부만 남게 되었다고 했다.


 9개월 전에 심하게 싸운 이후에는 서로 방을 따로 사용하면서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같이 살면서도 남남처럼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 H씨는 22년 동안 같이 살아 오면서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 남편인 자신이 부처님이 되어버리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집에 오면 말을 하지 않고 반응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직면을 하지 않으니까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남편 H씨는 부인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어떤 요구를 하게 되면 부인 P씨가 그것을 트집을 잡아서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공격을 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입을 닫아버리고 벙어리가 되어버리면 조용하고 갈등이 생기기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달에 남편 H씨가 요구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부인 P씨는 딸을 데리고 2주일 동안 한국에 있는 시어머니(남편 H씨의 어머니)의 병환을 간호를 해드리고 귀국을 해서 시어머니에 대한 2주일 동안 힘들었던 것은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시 동생 내외가 시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분노했다고 털어 놓았다. 시 어머니가 치매 증세가 있어서 시 동생 내외가 시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낼 계획을 하고 있다고 비판, 비난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남편 H씨는 일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고 했다. 동생 내외를 두둔 하거나 부인 P씨를 비난하게 되면 부부 싸움으로 번질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듣기만 했지 일체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결과 때문인지 9개월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남남으로 지냈던 부인이 슬그머니 다른 방으로 가져갔던 침대를 도로 남편이 있는 큰 방으로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 H씨에게 이번에 2주일간 한국에 어머니를 간호하려고 귀국을 하거든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부부 문제를 읽어보고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아 보고 오라는 말을 듣게 치료자를 찾아 오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남편 H씨에게 부인과 22년 동안을 함께 살아 오면서 어떻게 부부 싸움을 했는지 그것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 보도록 했다. 그 이유는 부부의 문제는 한 사람, 한쪽 배우자의 100% 과실, 결함이 아니고 서로 쌍방 관계로 물고 물려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 상호관계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보통 부부들이 치료자를 찾아와서 분석 상담을 요구할 때 항상 치료자를 방문한 배우자는 모든 문제를 상대방 배우자의 탓으로 돌리면서 그 사람을 치료를 해 줄 것을 당부를 하는 대신에 그 상대방 배우자는 반대로 모든 문제들을 그 배우자 탓으로 돌리면서 서로가 상대 방 탓으로 배우자를 잘못 선택한, 잘못 만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을 예를 들어서 쌍방 관계의 상호작용의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를 했다.


 남편 H씨는 몇 번의 부부 싸움을 이야기를 하기가 창피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몇 개의 이벤트를 이야기를 했다.


 첫 번째 엄청난 이벤트는 결혼 후에 자녀가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을 시점에서 어느 날 부인이 요리를 해서 밥상을 차려와서 남편에게 식사를 하자고 하면서 식사를 하려고 할 때 부인이 요리 솜씨가 미진해서 맛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남편 H씨가 요리 솜씨가 부족하면 요리 학원에 가서 배우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이야기를 한 것에 노발대발해서 부인 P씨가 밥상을 뒤집어 엎어버렸다. 부인은 고함을 지르고 밥그릇을 집어 던져 박살을 냈고 남편이 부인의 머리를 때리고 몸싸움이 있었다. 부인은 분노해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고 경찰이 출동을 했다. 경찰은 남편 H씨를 수갑을 채우고 폭행 혐의로 유치장에 감금을 시켰다.

 경찰서에 가서 남편 H씨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일방적인 남편의 폭행이 아니고 쌍방 폭행임을 주장을 했다. 그 경찰관은 그렇다면 쌍방 고소를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남편 H씨는 딸 때문에 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취소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인이 고소를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첫 번째 사건이었다.


 두 번째 엄청난 사건은 다음과 같았다. 두 사람이 말다툼으로 번지면서 남편 H씨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고 부인의 반응에 대응을 하지 않게 되자 부인 P씨가 남편 H씨의 머기를 때리고 쥐어 박자 남편 H씨가 방어를 하기 위해서 부인의 손을 붙잡고 밀치는 몸 싸움으로 변질 되면서 부인이 접시를 집어 던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칼을 들고 덤비는 바람에 남편이 놀래서 이웃 집으로 도망을 가서 이번에는 남편이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고 경찰이 출동을 했다. 경찰은 부인을 체포 하려고 문을 열고 들어오자 부인이 딸을 데리고 화장실에 들어 가서 문을 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고 숨어버렸다. 남편 H씨는 할 수 없이 경찰을 물러가게 하고 사건을 수습을 했다.


 남편 H씨는 이제는 이혼을 원하면 이혼을 해주고 혼자서 조용히 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부인 P씨가 최근에는 이혼을 원하지 않고 부부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쪽으로 남편을 한국에 가거든 xx 정신분석 심리치료사에게 상담을 해 보라고 권유를 했다는 것이었다.


 남편 H씨는 치료를 받아서 부인과 화해를 하고 같이 오순도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냥 말을 하지 않고 거리감을 두고 일체 반응을 하지 않고 조용히 부처님처럼 살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 H씨는 심리 검사를 한번 받아 보고 나서 자신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고 싶다고 했다. 치료자는 2시간 컨설팅을 마치면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있는 다양한 심리 검사지를 완성해서 다음 치료 회기 시간에 가져 오도록 했다. 심리 검사지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그리고 2시간 컨설팅을 한 것을 종합해서 분석을 하게 되면 남편 H씨의 핵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치료자는 남편이 57세 부인이 57세로 황혼의 나이로 접어 들어가는데 이혼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22년 동안 살아온 삶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는 점 그리고 딸이 성인으로써 결혼을 앞 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두 사람이 서로 갈등의 고리를 풀고 문제가 어떻게 서로 뒤엉켜 있는지를 알게 되면 서로 화목하게 일꼬 부부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하도록 해서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도록 하는 것이 비용도 절약되고(미국에서 이혼은 남편의 연금과 재산의 3분의 2를 잃게 된다는 점) 노후에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주면서 심리 검사 결과가 나오면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아 올 것을 권유를 했다.


치료자는 부부 문제를 한 사람의 일방적인 결함으로 그리고 배우자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 아니고 어린 시절의 서로의 욕구와 갈등이 맞물려서 부부의 공모로 뒤엉켜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분석으로 밝혀내고 서로의 욕구와 갈등에 엉켜들 지 않도록 내 자신이 먼저 관계의 패턴을 변화 시키면 상대방의 욕구 갈등에 걸려들지 않게 되면 부부 싸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부부 문제는 상대방 파트너를 바꾸려고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고 치료를 받으러 오는 파트너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갈등을 이해하고 서로 뒤엉켜 있는 욕구들의 매듭을 알게 되면 상대방의 갈고리를 피할 수 있게 되고 내가 관계 패턴을 변화 시키게 되면 상대방 역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는데 있다. 즉 내가 먼저 변화게 되면 쌍방 관계, 상호관계의 패턴을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데 치료의 초점이 있다.


 치료자는 H씨의 부부는 부인 P씨가 남편 H씨의 분노를 대신해서 화를 내어 주는 부부 사이에 공모로 분석을 했다. 그 이유는 남편 H씨는 화를 내지 못하는 감정을 잘 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멕시미아(alexithymia) a는 없다는 말이고 lexi는 말로 표현이라고는 그리스어 이고 thymia는 감정이라는 말로써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으로 분석이 되었다. 그 증거로써 남편은 35세의 결혼 이전에 연애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이성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감미로운 에로틱한 감정이 부족한 사람으로 싸울 때는 항상 부인이 노발대발해서 화를 벌컥벌컥 내고 있다는 점 등을 그 증거로 보고 있다.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없는 파트너는 감정을 대신 표현해 줄 수 있는 배우자를 선택한다. 그래서 상대 배우자가 자신의 감정을 두 배로 표현을 해 주도록 무의식적으로 요구를 하고 있고 그 요구에 부응해서 부인 P씨는 평소에 남편이 내지 못하는 감정을 자신의 분노와 합쳐서 두 개의 분노를 대신 표현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치료에서는 이러한 부부 관계를 분석해서 남편 H씨로 하여금 분노를 표현하게 하고 부인 P씨로 하여금 남편의 분노를 대신 내어주로록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책임 지도록 해 주어서 서로 뒤엉켜서 대신 분노를 표현해 줌으로써 부인 P씨는 남편 대신에 분노를 표현해줌으로써 남편은 찬사가 되고 부인은 악마가 되는 것임을 서로 알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