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프로이트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더 사실 12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7. 10. 15. 04:18

프로이트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 12


-    정신분석에 반대파들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뼈대는 1900년에 출판된 꿈들의 해석에 잘 나타나있다. 핵심 이론들은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고 모든 신경증의 근본 원인들은 섹스의 상처로 인한 결과로써 리비도 이론으로 그리고 무의식은 인간의 심리적인 골격으로 전의식과 그리고 의식을 이루는 위계 이론이다.


프로이트는 1905년에 섹스 이론의 3개의 소 논문과 도라(Dora)의 분석에서 어린이들은 섹스 욕구를 본능으로 가지고 태어나고 3-5세 사이에 이성 부모를 통해서 섹스 욕구를 개발하게 되고 근친상간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사춘기를 통과 하면서 이성 부모를 포기하고 이성 부모를 닮은 이성으로 향하게 되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회 생활로 향하게 된다.


이러한 이론은 엄청난 사회적 풍파를 일으켰다. 프로이트 이론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변태성욕의 두목으로 정신분석가들을 변태성욕자로 그리고 섹스에 집착하는 편집증 환자로 강박증 환자로 매도를 했다. 정신분석은 인간의 도덕을 붕괴 시키는 위험분자들로 몰아갔다. 인간의 억압된 섹스 욕구가 신경증으로 그리고 섹스 욕구의 과도한 자극과 몰두는 변태성욕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흑백 사고를 동원해서 정신분석을 악의 세력으로 타도에 나섰다.


여기에서 정신분석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그룹을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정신분석에 흥미와 소개를 했다는 죄목으로 직책에서 해임되거나 경찰에 고소를 한다거나 사임을 강요 받았던 사건들이다.  그 첫 번째 사건은 보스톤에서 이상 심리학 논문집에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이 소개되자 말자 그 지역의 청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그 논문의 편집인을 경찰에 고소를 해서 입건되어질 위기에서 그 논문집의 편집인인 모르톤 프린스(Mortion Prince)가 경찰서의 높은 사람에게 조정을 해서 사건이 무마된 일이 있었다. 이후에 프린스는 프로이트의 논문들을 이상 심리학 논문집에 실어주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은 호주에서 장로교 목사인 도날드 프레이즈(Donald Frazer)가 정신분석에 흥미를 보였다는 이유로 목사 직에서 파면을 당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건은 1908년에 런던에서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이 환자들에게 섹스적인 탐색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런던의 신경학회에서 사임을 강요당했고 그의 섹스에 대한 논문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출판된 논문집이 취소되고 재 출판을 해야 했다. 1909년에 베를린에서 울프(Wulff)가 정신분석에 흥미가 있다는 이유로 한 기관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는 러시아에 가서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 베를린보다 러시아가 섹스에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다.

쥬리히에서 1911 1917년에 신부인 피스트(Pfister)가 정신분석가라는 이유로 그의 상사들과 트러블에다 구설수에 올라서 승직자 시험에서 곤란함을 당했으나 결국은 통과를 했다. 그는 이후에 스위스의 정신분석 학회가 융(Jung)을 따라서 정신분석 학회를 탈퇴하고 해산을 하고 나서 피스트가 중심이 되어 다시 스위스 정신분석 학회가 재 조직이 되었을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16년에 스웨덴에서 문헌 학자인 스페버(Sperber)가 언어 섹스에 대한 연구 때문에 왜래 교수 직책을 부인 당했다.


두 번째는 프로이트의 논문들과 이론들을 학회 혹은 총회에서 반대파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았던 사건들은 너무 많아서 존(Jones)이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에서 소개한 사건들을 일일이 소개할 수가 없다. 1900년대 할레(Heller)에서 개최된 중부 독일 신경과 의사들과 정신과 의사들의 총회에서 히스테리아의 원인에 대한 심포지엄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소개 조차 되어지지 않았다. 1910년 미국의 볼티모어 에서 열린 미국 심리학회 총회에서 보리스 시디스(Boris Sidis)는 프로이트 연구에 악의적인 공격을 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미국의 청교도 정신을 침범하는 프로이드주의를 미친 전염병으로 이것을 반대하는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어두운 중세로 되돌아가는 위선적인 섹스 주의자들에 의해서 감염되고 있다고 맹 비난을 했다.


1910, 3, 28일에 함부르그의 의학 학회의 한 모임에서 웨이그란트(Weygandt)는 프로이트의 해석들은 쓸모 없는 꿈들로 가득 찬 책이다. 그의 방법들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한 그의 환자들의 섹스적인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치료 방법은 성기 기관들의 마사지와 동등한 수준이라고 혹평을 퍼 부었다.


프로이트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1907년에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 의학 총회에서 프레딜랜드(Friedlander)에 의해서 발표 된 한 개의 논문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가들의 총계적 반대의 표상으로 요약되어질 수 있다(Ellenberger, 1970).


정신분석가들은 프로이트를 마치 코페르니쿠스, 뉴톤, 다윈과 같은 사람들과 동급으로 위대한 과학자로써 칭송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이성적으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과학적인 증거를 제출하라고 하면 경험으로부터 얻은 결과라고 우긴다. 정신분석은 과학이라고 말을 할 수 없고 소설적인 개인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다. 프로이트의 섹스 이론의 핵심인 리비도 이론은 비엔나라는 특정 지역에서 나온 이론으로 일반화가 어렵다. 왜냐하면 비엔나에서는 프로이트의 등장 이전에 1886년에 크라프트-어빙(Kraft-Ebing)에 의해서 섹스의 정신병리학(변태성욕의 이론 서적)1903년에 웨이닝그(Weininger)의 섹스와 성격이라는 서적들이 출판되어 베스트 셀러가 됨으로써 비엔나 사람들이 섹스에 일찍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이론에 관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이트인 들의 분석가들은 섹스에 과도한 억압이 히스테리아 신경증이고 섹스에 과도한 자극이 변태성욕으로 이분법적인 사고로 몰고 가고 있다.


정신분석가들은 마치 히스테리아가 정신분석에 의해서 만이 치료되어질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히스테리아는 정신분석이 등장하기 이전에 치료되어지고 있었고 심리치료에 의해서 지금도 치료되어지고 있다. 정신분석의 아이디어 그 자체는 천재적이지만 통계적 데이터가 부족하다.


세 번째로써는 정신분석가들 사이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불만족해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다.


첫 번째가 에들러(Adler)와 스타켈(Stekel)이다. 이 두 사람은 초반기 수요일 저녁 모임의 초기 멤버들이었지만 계속해서 동료들과 갈등의 근원이 된 사람들로써 한마디로 싸움 닭들이었다.


에들러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지지해주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의 신경증 이론인 열등감 컴플렉스에 매달려 남성다움의 열등감의 항의로써 신경증의 원인을 설명을 했다. 그리고 공격 본능으로 기인되는 이론으로 일관되게 주장을 했다. 유태인인 그는 프로이트가 외지인 출신인 비 유태인인 융(Jung)을 국제 정신분석 학회의 회장으로 임명한 것에 반대를 해서 스타켈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프로이트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독재자로 몰아 부쳤다. 프로이트는 국제 정신분석 학회의 회장은 유태인이 아닌 중립적인 사람으로 융(Jung)를 밀어준 것에 대한 에들러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 에들러를 비엔나 정신분석 학회 회장으로 스타겔을 부회장으로 그리고 두 사람은 정신분석 정기 출판물의 한 개의 창간호에 공동 편집인으로 초반기에 불만이 무마가 되었으나 결국은 폭발해서 1911년에 자신 탈퇴하고 정신분석 학회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어린 시절의 동료들과 관계를 강조 함으로써 오디프스 콤플렉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에 그는 심리사회적 정신분석의 개척자가 되었다. 그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의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부인은 러시아 사람으로 러시아 혁명가들과 친했다. 특별히 러시아의 혁명가인 트로츠키와 친한 친구였다. 에들러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전임 정치가 혹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프로이트가 에들러를 강제로 퇴임 시켜 쫓아낸 것이 아니고 정신분석 위원회에서 그들이 정신분석의 자유 투쟁 조직을 학회 안에서 만든 불법에 대해서 한가지를 선택하라는 선택권과 방어권이 주어졌고 서로 결렬한 찬성과 반대의 토론 이후에 11 5로 통과 됨으로써 에들러는 그의 추종자들을 10여명을 이끌고 스스로 정신분석 학회를 탈퇴했다.


두 번째 스타켈(Stekel)이다, 스타켈은 에들러와 달리 무의식에 대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초반기에는 정신분석에 공헌을 인정 받았으나 그는 신문 기자적인 일에 관심이 많아서 동료들과 공동 연구들에 소홀해서 동료들의 불평과 불만이 많았다. 그는 몇몇 신문에 문예란에 고정 기고가로 일부 생계를 유지하는 사소한 일들에 관심이 많은 심리학자였으나 과학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따돌림으로 1912년에 스스로 학회를 탈퇴를 한 것이 아니고 동료 분석가인 토우스트(Taust)와 갈등에서 그가 편집장으로 있는 정신분석 논문집에 토우스트의 글을 한 글자도 실어주지 않는다는 고집이 확대되어져서 동료들의 원성을 사게 되면서 위원회가 소집되고 정신분석 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추방되었다.


세 번째가 융(Jung)이다. (Jung)은 에들러의 피상적인 이론과는 달리 프로이트에게 이론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Jung) 1907년부터 1910년까지는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과 꿈 분석에 매혹되어 프로이트에 절대적으로 충성을 했다. 그러나 1909년에 미국의 클라크 대학의 총장인 스텔리 홀(Stanley Hall)로부터 프로이트와 공동으로 강연에 초대를 받으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이 너무 섹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프로이트에게 미국에서 강연은 꿈 이론으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제의를 했지만 거부당한 시점에서 두 사람의 불화가 시작된 것으로 존(Jones)은 보고 있다.


이후에 융(Jung)은 국제 정신분석 학회의 회장으로써 직책을 수행하면서 몇 번의 미국의 강연의 초대를 받고 정신분석 학회 총회를 19113월 개체를 9월 달로 미루고 우선적으로 방문함으로써 불만을 초래했다. 그리고 1912년의 총회가 융(Jung)의 미국 방문으로 회장의 부재로 개최되지 못했다. (Jung)은 미국 방문 이후에 프로이트에게 보고를 하면서 계속해서 유아기 섹스에 대한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강조가 과학계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섹스 이론을 강조하지 않고서도 미국에서 정신분석학을 확대 시킬 수 있었다고 은근히 자랑을 함으로써 프로이트의 미움을 샀다.


특별히 1910년 살츠부르그(Salzburg) 총회에서 융(Jung)은 그의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의 초반기이름)의 원인이라는 그의 논문 발표에서 프로이트가 암시를 준 출생 초기에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단계(autoerotic 기간)에서 고착이 일어난 제의를 거부하고 조발성 치매의 원인을 심리적 독극물이 뇌의 조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뇌의 생리적 원인으로 본 것이 심리적 원인을 강조한 프로이트의 의견에 반대한 것으로 두 사람의 결정적 파열음의 신호로 이미 등장을 했었다.


프로이트는 융(Jung)을 후계자로 선정을 하고 여러 번 후계자의 암시를 하는 발언들을 했다. 프로이트 자신은 리더적인 자질이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유태인이 아닌 융(Jung)을 국제 정신분석 학회 회장으로 임명을 해서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리더가 되어 학회들 사이에서 각종 섭외를 총괄하고 갈등을 수습하고 조화를 하도록 하는 업무를 맡겼으나 융(Jung)은 미국을 몇 번 방문 하면서 직무에 충실하지 못했고 리더적인 자질이 부족한 면들이 속속 드러나게 되면서 회원들의 불평과 불만을 사게 되었다.


또 한가지는 스위스의 쥬리히에서는 정신분석에 대한 반대 운동이 극심해서 정신분석의 도덕을 파괴하는 오염 물질로 매도하는 각종 신문 기사들에 의해서 지탄의 대상이 됨으로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도마 위에 올라와 있었다는 점이었다. (Jung)은 오디프스 콤플렉스를 인정하지 않았고 유아 성욕 이론을 상징적 해석으로 우회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도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사실은 융(Jung)은 자신의 이론적 뼈대를 신화의 연구와 신비주의적인 쪽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프로이트 밑에서 용의 꼬리가 되기 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결심을 초반기부터 하고 있었다고 무의식의 탐색이라는 저서에서 정신분석가인 엘렌버그(Ellenberg)가 지적을 하고 있다.


결국은 1914 3월에 융(Jung)이 국제 정신분석 학회 회장 직책을 사임했고 그리고 정신분석 학회 지의 논문집의 편집장 직책에서 사임을 하고 정신분석 학회의 회원으로부터 탈퇴를 함으로써 스위스의 정신분석 학회의 지부가 해산 됨으로써 스위스의 멤버들은 모두 융(Jung)를 따라서 모두가 탈퇴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치료자가 1999년에 쓴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1999, 김종만, 서울: 한림 미디어, p 19 - 102)에서 욕구 이론 일부를 인용해서 소개한 것이다.




 

프로이드의 욕구 이론은 구조 이론의 등장으로 치료의 과정에서 치료 기법으로 등장한 것으로 구조 이론 중에서 원초 자아에 속하는 부분이다. 심리적 욕구(drives)들은 출생 시에 타고 나는 것으로 이 욕구들이 양육의 과정에서 충족이 되면 건강한 자아로 성장을 하게 되고 충족이 되지 않으면 고착이 되면 성장하여 어른이 된 뒤에 그것에 매달리게 되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1). 욕구의 정의

욕구는 영어로 drives라고 표현이 된다. 이 욕구와 유사한 말로 needs가 있는데 drives는 심리적 욕구를 강조하고 needs는 생리적 욕구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은 몸 즉 육체과 마음 즉 정신으로 되어있다. 욕구는 에너지로써 몸과 마음을 연결되는 도구로 본다. 몸에서 필요한 것은 욕구가 생겨서 이것을 충족해주는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본다. 욕구는 즉각 충족이 되어야 한다. 출생 시에 아기는 젖을 주지 않으면 울음으로 표현을 한다. 오줌과 똥을 싸면 즉각 갈아주어야 한다. 배가 고프면 즉각 먹을 것을 요구한다. 아기가 점점 자라나면서 욕구를 참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확대되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즉각 충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참고 기다리는 것을 배우게 되고 어떤 욕구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양육의 과정에서 이런 욕구들이 어린 시절에 어떻게 충족이 되어졌느냐? 에 따라서 인간의 자아 형성 즉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 정신분석의 설명이다.

 ​반 사회적 성격장애들이나 변태성욕자들 즉 범죄자들이나 폭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에 참을성이 없다. 자신의 욕구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공격적이고 말로써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쉽게 말하면 이것을 통제하는 초자아의 힘히 부족해서 욕구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단점들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양육의 부족 즉 사랑의 부족으로 분노, 미움, 적대 감정이 충분한 사랑으로 중화되지 못하고 심층에 많이 억압되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욕구들이 대인 관계에서 방향이 바뀌거나 투사되어 자신도 모르게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반면에 신경증 환자들은 너무 도덕적이고 완벽주의적이고 착한 사람들이어서 즉 너무 욕구 컨트롤이 심해서 아예 욕구를 억압해서 나타나지 않거나 (섹스 욕구) 자신의 행동에 자아 처벌적이 되거나 자아 학대적이 되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이러한 욕구에 대한 심리학에서 실험을 한번 보자.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피실험자로 해서 실험자가 일면경(한쪽만 볼 수 있는 거울을 단 실험실)을 통해서 피실험자에게 맛있는 과자를 주면서 이 과자를 먹지 않고 가지고 있는 어린들은 나중에 실험이 끝나고 나서 똑 같은 과자를 한 개씩 더 주겠다고 했다. 실험이 끝난 후에 과자를 먹은 어린이들과 먹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어린이들을 20년 후에 그들의 행동을 조사해 보았더니 과자를 먹지 않고 그대로 참고 가지고 있었던 어린이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을 하거나 사회생활에서 대인관계가 훨씬 뛰어나고 성공 비율이 높았다. 이유는 어떤 충동에 참을성이 있는 사람들이 성공 비율이 높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2). 욕구의 종류

욕구는 다양하게 분류된다. 욕구에 대한 동양의 분류와 서양의 분류는 종류에서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욕구는 공통된다. 동양에서는 5 7정을 들고 있다. 5개의 욕구를 말한다. 식욕, 성욕, 명예욕, ()에 대한 욕구, 수면욕으로 다섯 개로 분류된다. 서양에서는 식욕, 성욕, 사랑에 대한 욕구, 돈에 대한 욕구는 동양과 같다. 그 이외에는 성취 욕구, 소속감에 대한 욕구, 안전(safety)에 대한 욕구, 안정(comfortable)에 대한 욕구, 보고 싶은 욕구, 보이고 싶은 욕구(인정받고 싶은 욕구), 성취 욕구 등으로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욕구를 18개로 분류하고 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마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욕구가 층으로 되어있다고 가설화해서 욕구 위계설을 내 놓았다. 인간은 7개의 욕구의 층으로 구분하고 상위 욕구와 하위 욕구로 구분을 했다. 기본 욕구는 하위욕구이고 하위 욕구가 충족이 되어야 상위 욕구로 올라갈 수 있지만 충족이 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로 올라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본 욕구인 하위 욕구는 식욕, 성욕이고 그 다음에 안전과 안정의 욕구, 그리고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 그리고 중간에 해당되는 중위 욕구로써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존경의 욕구, 상위에 해당되는 상위욕구로는지식에 대한 욕구,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그리고 최상위에는 자아 실현의 욕구로써 7단계로 나누었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나면 상위 욕구로 올라가는데 상위 욕구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어서 자아 실현, 자아 성취를 하는 사람들은 극 소수의 사람들로 이순신, 아인슈타인, 슈바이쳐, 간디 등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는 이 욕구 위계설을 주장하면서 삼각형으로 설명을 했다. 삼각형의 최하위에는 식욕, 성욕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수가 점점 작아지고 최종 욕구인 자아 실현은 삼각형의 꼭지점으로 이것을 성취하는 사람의 수가 적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욕구 위계설은 동양에서 우리가 말하는 의. , 주는 서양에서 말하는 기본 욕구에 해당된다. 식욕, 성욕은 식에 해당되고 안전, 안정는 의()과 주()에 해당이 된다.


 행복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욕구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행복한가? 라는 연구에서 기본 특징이 인간의 기본 욕구의 충족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적어도 최소한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그 이후에는 돈과 행복과의 관계는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즉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사랑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가족들이 거주할 장소가 있어야 하고 의식주가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의 지도자들은 대부분이 기본적인 욕구 충족이 해결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위 욕구인 존경을 받고 싶어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국회 의원들의 평균 재산이 약 10억대 이상인 것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사한 이론으로 엘겔 지수는 못사는 사람일수록 먹는 것에 식비에 지출이 많고 잘사는 사람일수록 문화 예술에 지출이 많다는 것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문명, 문화가 발달할수록 문화 예술의 발달이 이것을 말해준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문화, 예술이 찬란했던 것과 우리나라에서 신라 시대의 문화 예술이 찬란했던 것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에너지 이론

 욕구는 에너지이고 이것이 누적되면 마음 속에 긴장이 증가하게 된다. 이 긴장의 증가는 불쾌감을 초래한다. 쌓인 욕구가 충족되면 긴장의 방출로 즐거움이 되고 방출이 없이 계속해서 누적이 되어 욕구가 어떤 한계점을 넘어서면 고착이 되어 병이된다는 가설이 프로이드의 욕구 이론의 핵심이다. 실제로 몸에 어떤 에너지가 부족하면 욕구로써 마음에 전달이 되는가? 여기에서 여러 가지 실험들을 한 것을 보도록 하자.


실험 1. 피실험자들을 1주일 동안 물만 제공하고 굶긴다음에는 꿈에서 진수성찬으로 먹는 꿈을 많이 꾸었다. 또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금식으로 장기간 굶은 경우에는 먹는 꿈이 많았다.


실험 2. 당뇨 환자들은 인슈린의 부족으로 당분이 흡수가 되지 않아서 몸 밖으로 당분이 배출되어 몸에 영양분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당뇨 환자들은 혈당이 올라갈수록 당분이 많은 식품, 음료수를 많이 먹고 싶어했다. 당분이 많은 음식은 혈당 수치를 올라가게 해서 위험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몸에 흡수가 적어서 양양분의 결핍으로 더욱 많은 당분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것은 우리 몸에서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하면 마음 속에 그것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우리는 그 욕구에 매달리게 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욕구의 누적으로 긴장이 증가했다가 이것이 방출되면 즐거움을 준다는 가설에서 프로이드의 즐거움의 이론이 등장했다. 프로이드가 욕구와 감정을 연결 시켜서 물리학, 화학적으로 설명을 한 것이다. 또한 프로이드의 즐거움 이론은 욕구 충족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정신분석학에서 발달 이론과 맞물려 있다. 구순기에 입, , 입술이 핵심 활동으로 에너지가 여기에 집중이 되는데 이 때에 충분한 욕구가 양육자에 의해서 잘 충족이 되면 어른이 되어서 원만한 성격으로 욕구에 집착이 적어진다. 그러나 불충분한 욕구 충족은 그 욕구에 고착이 일어나서 입과 관계된 욕구에 집착하게 된다. 이것은 한마디로 유아는 욕구의 충족이 양육자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양육자가 충분한 사랑으로 유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과 관계된다.

 ​항문기에는 대, 소변 훈련으로 그리고 아기가 걸어다니는 활동으로 에너지가 집중하게 된다. 이 시기에 이러한 활동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항문기적 성격을 형성하고 오디팔 기에는 남녀의 성 주체성이 형성되는데 에너지기 집중된다. 남녀의 신체적 구분에 흥미와 남녀의 역할 구분에 흥미 등에 혼란이나 상처가 생기면 즉 남근기에 고착이 생기면 변태성욕의 위험을 달고 다니게 된다. 각 발달 단계에서 욕구의 충족이 건강한 성격의 성격에 기본 바탕이 된다. 더욱더 상세하게 욕구 이론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3) 즐거움 이론

프로이드는 모든 활동은 즐거워한다그 즐거움은 긴장의 방출로써 오게 된다고 했다.

실험 1. 청룡 열차의 예를 들어보자. 360도를 회전하는 청룡 열차는 처음 출발할 때 천천이 움직일 때는 약간 긴장한 상태로 불안이 따라온다. 원형의 중간 정도 되었을 때 긴장이 누적이 되어 두려움이 된다. 원의 중심에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는 두려움이 누적이 되어 공포가 된다. 이 시점에서 급 스피드로 하강할 때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거나 비명을 지르게 된다. 완전히 하강해서 원위치로 돌아왔을 때 사람드은 하하-휴유하고 한 숨을 쉬면서 깔깔거리고 웃게 된다. 여기에서 그 과정을 살펴보자.

 ​긴장이 쌓이면 불쾌감이되고 불쾌감이 정도를 넘어서면 불안감이 되고 불안감이 강도를 더하면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이 강도를 더하게 되면 공포가 된다. 이 공포가 누적이 되면 테러가 지속이 되면 병이 된다. 이것은 고착 이론에서 다시 거론하겠다. 이 공포, 테러는 긴장이 과도하게 누적되어 생리적으로 한계점에 온 것을 말한다. 이 공포적인 두려움이 급 스피드로 방출하게 되면 긴장의 방출에서 오는 즐거움이 된다. 고로 청룡 열차에서 급 스피드로 하강할 때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고함을 지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약에 그 청룡 열차가 천천히 하강하거나 정지되어있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긴장이 방출되지 않기 때문에 불쾌감으로 그대로 남게 된다.


실험 2. 자위행위를 하는 과정도 위와 비슷하다. 긴장이 쌓이고 사정을 할 때 오르가즘이라는 즐거움을 느낀다. 긴장의 방출은 사정으로 나타난다. 사정할 때 섹스 에너지가 방출된다. 고로 불안한 사람들은 자위행위를 많이하는 이유가 긴장을 방출시키는 탈출구로 이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위행위의 사정 직전에 가족들의 등장이나 어떤 방해물 때문에 자위행위를 스톱하거나 부부 사이에 섹스 시에 상대방의 거부로 흥분이 고조된 단계에서 섹스의 거부를 받은 파트너는 불쾌해서 짜증이나 화를 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쌓인 긴장이 방출되지 않으면 짜증으로 불쾌감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진감래,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옛날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고진감래라는 말은 고생끝이 낙이 온다, 또는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라는 말들은 고생, 고통을 참고 견디며 노력을 하면 그 결과는 성공으로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연결된다는 말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 역시 긴장이 누적되어 불쾌감이 되고 이것의 방출이 즐거움을 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등산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타는 것이나 고시원에서 몇 년 동안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 합격을 했을 때 긴장의 방출로써 느끼는 즐거움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위험을 많이 동반할 때 긴장의 방출로써 느끼는 즐거움은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태성욕자들이 남을 집을 침범하는 위험 속에서 위험 부담이 높을수록 오르가즘은 커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신 바람, 신명나게 살기 운동

몇몇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신 바람" 특강을 한다는 현수막 광고들을 본 적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신 바람, 즉 신명나게 일하는 것에 대한 주장들은 하는 일이 즐거우면 즉 즐겁게 일을 하면 능률도 올라가고 건강에도 좋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직장에서 매일 같이 늘 즐겁게 일하면 건강에도 좋고 일의 능률에도 좋으니 신명나게 살자는 취지의 강연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한번쯤 신명나게 일을 하자고 해서 신명나게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저절도 신명이 나자고 해서 나는 것은 아니다. 매일 같이 신명 나게 즐겁게 일을 하려고 하면  여기에는 중요한 심리적 요소가 수반되어야 한다. 매일 같이 신나게 신명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핵심에 필수적 심리적요소가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내가 누구이냐? Who am I ?

그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내가 누구냐? (Who am I?)하는 것을 먼저 찾아야 한다. 내가 누구이냐 하는 질문을 제일 먼서 사용한 사람은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이었다. 그는 만년에 자살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다가 문득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라는 문제에 부디쳐서 그 대답을 찾으려고 시도를 하다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내가 누구인가의 대답을 얻게 되었다. 그는 이후에 자신의 그림의 제목을 "사람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고 붙이고 "내가 누구이냐?"하는 책을 저술했다.

 ​이것을 정신분석 학자인 에릭슨(Erikson) 이 따 가지고 와서 "내가 누구이냐?"라고 하는 자아 주체성 이론(identity theory)을 만들었다. 에릭슨은 프로이드의 주장과 달리 사회적인 환경을 중요시 해서 발달의 단계를 "관계의 단계"로 바꾸어서 프로이드의 0-1세까지의 구순기 단계를 믿음(trust) (vs) 불신(distrust)의 단계로 바꾸었다. 엄마와 아기의 관계에서 양육의 질이 아기에서 엄마에 대한 "믿음" "불신"을 지각시키고 이것이 성장 후에 대인관계에서 믿음과 불신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춘기 단계에 가서 프로이드의 성기기 라는 발달 단계 대신에 그는 "주체성 형성"(identity formation) (vs) "주체성 혼미"(identity disfusion)로 나누었다.


주체성 형성 대 주체성 혼미

주체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누구이냐?(Who am I)를 찾아야 한다. 에릭슨은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 인디언들의 마을에 들어가 서 그들이 아기를 양육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들과 함께 보냈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은 농경시대에는 한 부락에 20-30호의 사람들이 모여살았다. 그 때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성격과 가족 구성원들 등을 훤히 알고 있어서 저절로 서로를 알고 인정을 하고 인정을 받아서 별로 문제가 없었다.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하는 일들이 단순해서 농사를 짓는 방법이나, 어업으로 고기를 잡는 방법 등 그 지역 사회애서 필요한 일만 터덕하면 별로 문제가 없었다. 사춘기는 어른이 되는 준비의 기간이었다. 어른들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었다.

 ​따라서 농경 시대에서는 사춘기는 질풍 노도의 기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후기 산업 사회에서는 잦은 이사과 직장의 이동으로 한 곳에 정착해서 살기 어렵게 되었고 그래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모래알 처럼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나는 고독하고 외롭고 외톨이로 느낀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내 이름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수 많은 직업 중에서 어떤 것이 나에게 알맞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 고로 내가 정말로 내 자아를 정립해 나가지 않으면 나는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내 자신을 찾아야 한다. 내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나는 "내가 누구인지?(Who am I?)"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내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알아야 한다 (Where am I going ?). 이것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이 걸리거나 평생 걸리는 수도 있다.

 ​먼저 내가 누구이냐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하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어떤 일을 하면 즐거운지를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자아와 경쟁을 한다. 내가 그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는가?에 즐거움을 얻는가예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 일을 찾으려면 부(), 명예, 성공(成功) 출세 보다는 즐거움이 우선해야 한다. 일을 하는데 즐거우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 즐겁게 일을 하다가 보면 그 일에 저절로 전문가가 된다. 그는 삶에서 에너지가 넘치고 활력이 넘치고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하루하루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 명예, 성공이 따라오게 된다. 반대로 주체성이 혼미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부, 명예, 성공, 출세를 우선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끝없는 경쟁을 하는 사람들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일을 하면 일단 그 목적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또 그일을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한계선 즉 자신의 성공 목표가 달성되면 그 이상은 올라가기 어렵다. 의사, 법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되기 어렵다.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 일을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기 때문에 싫어지게 된다. 그 결과 삶에서 즐거움이 없고 왜 사느냐?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살아있으면서도 자아가 죽은 사람이 되기 쉽다 (Living dead), 외로움, 공허감, 우울함으로 심하면 자아 소멸, 자아 해체로 갈 수도 있다. 전자는 창조적인 삶이되고 후자는 반복적인 다람쥐 채바퀴를 도는 반복적인 의미없는 일상생활로 바뀌어 버린다.


1940년 대에 프랑스의 유명한 실존 철학자이자 작가인 싸르뜨르는 실존의 뜻을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그대로"란 뜻으로 being in the world라고 불렀다. 그는 " 존재하고 있는 것" "존재하고 있는 것의 인식", "존재의 깨달음사이에는 공허감, 허무 빈 공간이라고 했다. 그는 그 개인이 이 공허감과 빈 공간을 채워넣어야 한다.이것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수많은 삶에서 취사 선택을 해서 그것을 채워넣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싸르트르는 그의 작품 "구토"에서 현대인들의 자아 분열, 자아 장애를 반 세기 전에 예언을 했다. 자아 해체, 자아 소멸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아가 방향 감각을 잃어 버린 사람들로써 현재의 자기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늘 익숙한 주변의 사물들이 낯설 게 느껴지거나 공허하고 메스껍고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자아 분열의 증세들을 구토라는 작품에서 기술하고 있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치료자인 필자에게 대인관계가 안 되어서 치료를 받고 있던 한 공과대학 여학생이 어느 날 치료자에게 "선생님 저는 인문 사회 과학을 싫어합니다. 저는 수학이 좋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치료자는 그래! 사람들이 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드니 그 여학생이 "선생님 저는 사람들이 왜 인문, 사회 과학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인문, 사회 과학에는 정답이 없던데요? 공자 말도 맞고, 맹자 말도 맞고, 노자 말도 맞고, 순자 말도 맞아서 어느 것이 정답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닙니까? 그러나 수학에는 정답이 하나 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수학을 좋아합니다." 이 말에 치료자는 깜짝 놀랐다. "그래 자네가 정말 말을 멋지게 했어요!" "그런데 자네는 왜 나에게 도움을 받으러 왔나요?" 그러자 그 여학생이 "저는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왔습니다"라고 했다.

 ​치료자는 "바로 그것이야! 자네는 인문 사회 과학을 등한시 했기 때문에 지금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일세! 인문 사회 과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가 아닌가? 인간에 대한 연구가 아닌가!" "한 개의 작품 속에는 한 사람의 삶이,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려져있지 않는가?"  공자의 말씀도 틀린 것이 아니고, 맹자의 말씀도 틀린 것이 아니고, 순자의 말씀도 , 노자의 말씀도 다 틀린 것은 아니다, 왜 그들이 각가가 하는 말이 다 다른가? 그것은 그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가 달랐고 그들이 태어나서 양육되어진 과정이 다 달랐기 때문에 그들이 가르침 역시 다 다른 것이기 때문이지요. 다른 것이 바로 옳은 것이 아닌가요? 문제는 바로 그녀의 사고 방식에 있었다는 것을 그녀가 깨닫게 해 주었다. 그녀는 삶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한 것이 드러났다. 공자의 말대로 살아가려고 했다가 스스로에게 맞지 않음을 발견했고 또 맹자가 말한 그대로 살아가려고 시도를 했더니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모방하려고 한 것이었다.


내 삶을 디자인 하라

그녀는 어떤 사람의 삶을 똑 같이 모방하려고 한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처럼 살려고 하면 그 사람의 모방이고, 그 사람의 복사이지,  자신의 진실된 삶은 아니다. 자신의 진실된 삶은 수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취사선택해서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수 많은 가치, 수 많은 직업들, 수 많은 삶들 중에서 자신이 취사선택해서 진정한 자기 자신 만의 삶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닌 자신의 진실한 삶이 되는 것이다. 에릭슨의 자아 주체성 이론이나 싸르트르의 실존에서 존재의 지각, 존재의 깨달음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 만의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이 말에 그녀는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위의 여성 환자의 치료 사례를 상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4) 고착 이론

에너지의 누적으로 긴장이 증가하고 불쾌감이 쌓이게 되어 이것이 장기화 되면 병이 된다. 프로이드는 이것을 고착이라고 불렀다. 고착은 생물학에서 따온 말로써 모든 살아 잇는 생물체는 발달해 가면서 진전(progress)을 해 나가거나 아니면 과거로 되돌아가는 퇴행(regress)을 하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정지되어 발달이 중지(fixation)되어 버린다는 것에서 프로이드가 따와서 자신의 이론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식물들은 싱싱하게 잘 자라는 반면에 어떤 식물들은 너무 수분이 많거나 모자라는 경우에 노랗게 변해가면서 성장이 거꾸로 쪼그라들어가는 현상 즉 퇴행을 볼 수 있다. 또 식물들이 성장이 지속되지고 않고 퇴행하지도 않는 성장이 그 자리에 중지된 식물들은 나무의 삭정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무에서 죽은 가지들이 그들이다. 그 죽은 가지들은 상장도 없고 퇴행도 없고 그 자리에서 고착된 식물들이 아닌가? 고착이라는 말은 식물에서는 변화가 없는 변화가 중지된 식물로써 죽은 삭정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삭정이가 있다고 해서 그 식물이 전체가 다 죽은 것은 아니다. 마찬 가지로 사람도 어떤 욕구 부분이 성장이 중지되어 고착되어 버린 것은 어른이 되어도 그 욕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오디팔 기간에 섹스 욕구에 상처를 입어서 고착이 되어 버린 변태성욕자들을 보라, 그들의 섹스 행동이 바로 어린이들의 행동처럼 유치하지 않는가? 그 자리에서 욕구의 발달이 중지되거나 지연되는 것은 그대로 남게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해서 그 욕구를 수리하려고 하려 하게 되고 그 욕구에 에너지가 우선시 되어 그 욕구 때문에 파멸하게 된다. 즉 고착이 일어난 부분은 어른이 되어서 그 부분이 암처럼 모든 에너지를 빨아 먹어 다른 욕구들에 우선하게 된다. 그 부분에 집착하게 되어 다른 욕구들을 배제시켜 버린다.


 우리 조상들이 이야기하는 한()이 맺힌다는 말은 서양에서 말하는 고착을 의미한다. 한이 맺히면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못하고 억울해서 구천을 떠돌아 다닌다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는 죽어서 까지 풀리지 않는다는 말이 이것을 의미한다.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귀신 이야기들을 모두 한이 맺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여기에서 귀신이 있다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이 맺히면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아 다니가다 그 한이 풀리면 저승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바로 고착 이론을 뜻한다. 프로이드는 고착이 된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 그 욕구에 집착해서 그 상처를 수리하려고 끝없이 반복을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붙기처럼 채워넣어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그것 때문에 결국은 파멸하게 된다고 했다.


사례 1. 사랑의 욕구에 고착이 된 사람들

사람이 어린 시절에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면 어른이 되어서 그 받지 못한 사랑에 목을 메고 매달리게 된다. 이것이 결국 파멸로 가게된 치료 사례를 기술한 다음의 홈 페이지들어가 보세요.


사례 2. 지식에 고착된 사람들

공부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공부를 강요해서 생긴 문제들을 치료한 사례에 들어가 보세요.


아카데미 상에 빛나는 영화 "샤인"(Shine)은 지식에 고착된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로써 실화를 영화한 것이다. 샤인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호주에서 태어난 천재 피아니스트로써 어린 시절에 아버지 피터의 음악에 고착 때문에 결국은 정신병원에서 젊음을 보내게 된 실제 이야기로써 어떻게 데이비드가 정신적으로 병들 게 되었고 어떻게 회복되어가는가를 분석한 "영화 속에 주인공의 심리분석"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사례 3. 돈에 고착이 된 사람들

돈에 한()이 맺혀서 어른이 되어서 돈에 집착해서 결국은 성공을 했으나 돈 때문에 파멸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김종만, 1999, p110 -112 p)에서 인용하고자 한다.


사례 51: 돈에 대한 욕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의 성장과 파멸의 과정을 그린 영화 죽음 전의 키스는 그 좋은 사례이다. 주인공 A는 어려서부터 돈 때문에 부모들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는 가정에서 자라난다. 소년 A군이 5-6세 때 아버지는 어머니의 돈 타령에 못 이겨 가출을 했고 그 후에는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는 A군에게 어서 커서 돈을 많이 벌어 오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A군은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는 칼슨이라는 재벌의 광산물 운반 기차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면서 자신이 어른이 되면 칼슨 회사의 사장 딸과 결혼하여 그 재벌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공상 속에서 자란다. 다행히도 머리가 좋아서 명문 법대에 진학을 했고 어릴 때부터 칼슨 회사에 관한 신문 기사들을 스크랩해온 덕택에 그 집 사장 딸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정보를 알아내고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큰 딸과 사귀게 되었다.

 ​큰 딸은 이미 연인이 있고 임신했음이 밝혀져 실망한 A군은 둘째 딸이 뉴욕에서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불량 청소년들을 돕는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아내고 자신도 그 일에 동참하여 둘째 딸과 가까워지자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날까 두려워해서 안면이 있는 큰 딸을 유인해서 자필 유서를 쓰게 한 후에 빌딩 옥상으로 유인하여 떠밀어 자살로 가장한 살인을 하게 된다. 그 후 둘째 딸의 환심을 산 후에 결혼을 하게 되고 사장인 장인의 비서가 되어 앞으로 회사를 물러 받기로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언니의 앨범에서 남편의 사진을 발견한 부인은 언니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가까웠던 언니 친구들을 탐문해 나가는 과정에서 핵심 정보를 가진 언니의 친구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고 마침내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남편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남편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심지어 고향에 살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3년 전에 교통 사고로 죽었다고 사망 신고까지 되어 있고 자신은 죽은 사람의 신분을 도용하여 살고 있음을 알아냈다.

 ​부인은 남편의 고향 집에 찾아가서 죽은 아들의 친구라고 속이고 남편이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방에서 죽은 언니가 쓰던 칼슨 회사 상표가 새겨진 라이터와 신문 스크랩을 찾아내고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 남편은 눈치를 채고 자신의 고향 집에 간 부인을 뒤쫓아 와서 부인을 죽이려고 추격하는 과정에서 도망하던 부인이 남편에게 붙잡히기 직전에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선로를 넘어 피하자 남편은 맞은 편에서 오던 기차를 미쳐 보지 못하고 기차에 치여 사망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남편을 치여 죽인 그 기차는 바로 칼슨 회사의 광산물을 운반하고 있는 기차였다. 돈 때문에 한이 맺혔고 돈 때문에 성공을 했으나 돈의 욕심에 짓눌려 자신을 파멸시킨 한 인간의 밑바닥에는 어릴 때 상처받은 욕구가 문제의 핵심에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사례 52: 문민 정부 출범 초기에 한참 사정 한파가 절정기에 있을 때 C씨가 탈세,뇌물 제공,비자금 제공,정치 자금 제공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고 그후 신문에 자주 오르내렸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C씨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돈이 없어서 학업을 중단하고 그 후 빠징꼬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서 현금 동원 능력은 우리 나라의 대 재벌 보다 높아서 당장이라도 현금 4조원 정도를 동원할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었다. C씨는 사회 활동도 많이 해서 여러 개의 후원회장,복지 단체의 회장 직함에다 정치 자금까지 제공할 정도로 사회적 인사가 되었다. C씨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카지노 업계에 진출을 시도하다가 결국 부정,비리에 연루되어 쇠고랑을 찾고 매스컴에 보도되어 패가망신을 당했다. C씨의 경우에 고등학교를 돈이 없어서 다닐 수 없다는 점으로 보아서 돈에 대한 욕구에 상처를 입었고 그후 돈을 모아서 돈 때문에 성공을 했지만 결국 돈 때문에 감옥에 가야했다. 만약에 C씨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모았으나 그쯤에서 만족하고 지역 유지로써 사회 복지 활동으로 그쳤더라면 파멸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C씨가 원하는 대로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더라면 어느 선에서 만족할 수 있었을까? 정신분석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끝이 없다. 끝없는 집착 때문에 결국은 어디까지 가서 파멸하든지 파멸하게 되어 있다.


사례 53: 국회 위원이었다가 비리 혐의로 물러난 B씨도 유사한 사례에 해당한다. B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다 돈이 없어서 학업을 중단하고 가구점 점원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일해서 그 가구점 사원이 되었고 조금씩 확장시켜서 지역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재산가가 되었다. 그후 그는 그 지방 대학까지 인수하여 이사장이 되었고 국회에까지 진출했으나 그 대학 입시,부정 비리에 연루되어 국회 위원직을 사퇴하고 구속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인수한 대학에 몇 년 동안 한푼의 돈도 지원하지 않았음이 밝혀져 돈만 아는 사람으로 신문에 보도되어 낙인이 찍혔다. 돈으로 고통을 받아서 한이 맺혔고 돈을 악착 같이 모아서 돈으로 성공을 했고 명성을 얻었지만 더 많은 돈을 원했다가 스스로 파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