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Freud)와 융(Jung)의 엇갈린 운명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상담 심리학이나 치료 심리학(의학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프로이트(Freud)와 융(Jung)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융은 프로이트의 수(秀)제자로써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가 프로이트가 과도하게 섹스에 대한 강조 때문에 갈등이 생겨서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융은 독립적으로 분석 심리학(Analytic Psychology)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쓰는 치료자(필자) 역시 그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치료자가 2016년에 약 1000페이지의 “무의식의 역사”라는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주㈜: 참고)의 저서와 2017년에 영국의 신경과 의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프로이트의 전기(傳記))”제 Ⅰ 권(1953), 제 Ⅱ 권(1955), 제 Ⅲ 권(1957): 참고(주㈜: 1963년에 이 3권의 저서는 13판을 출판)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프로이트와 삶과 융의 삶을 상세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에 좀더 프로이트의 삶과 융의 삶을 상세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프로이트는 첫째 부인의 사별로 인해서 40대 중반의 나이로써 두 번째 결혼을 한 아버지가 21살의 프로이트의 어머니와 결혼해서 첫 번째 아들로 프로이트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첫 번째 부인 한데서 태어난 아들인 엠마누엘이 23세로 결혼을 해서 1살 된 존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둘 째 아들이 17살로 필립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가족 구성원들 때문에 프로이트는 이복 형님인 엠마누엘을 무의식 속에서 아버지처럼 어머니의 경쟁자로 생각을 했고 모라비아 근처(지금의 체코슬라바키아)에 살던 프로이트가 3살이 되었을 때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로 이사를 올 때쯤에 이웃 집에서 살던 엠마누엘 가족과 필립은 영국의 만체스트로 이사를 가면서 헤어 졌지만 평생 동안 프로이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프로이트는 항상 영국에 살고 있는 이복 형님들을 부러워했다. 만년에 1938년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프로이트가 영국으로 망명을 했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프로이트의 복잡한 가족 구성원들이 프로이트의 대명사인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이론을 탄생시켰다고 존(Jones)은 프로이트의 전기에서 밝히고 있다.
융(Jung)과 프로이트는 둘 다 낭만주의 정신의학의 후손이었지만 프로이트는 그리스의 비극 작가들, 섹스피어, 괴테, 입센 등의 작가들의 직관을 통한 인간의 영혼의 과학주의, 실증주의 그리고 다윈주의에 기초한 마음의 연구에 바탕을 두었지만 융은 종교와 자연주의 철학의 중간에서 인간의 영혼을 과학적으로 탐구한 사람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Ellenberger, 1970).
융의 할아버지는 그 지역 사회에서 명망 있는 의사로써 바셀 대학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었고 만연에 정박아 아동을 위해서 수용 시설을 운영을 했다. 융은 할아버지를 동일시를 해서 할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물러 받아서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의 삶은 시골 장로 교회 목사의 아들로써 아버지의 종교적인 질문에 대한 확실한 의문에 대한 불만 때문에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이후에 신경증 치료사로 변신한 후에 만연에는 종교와 철학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그가 남긴 유명한 경구 “노인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라는 말로 노후의 현명한 사람의 화신이 되었다(Ellenberger, 1970).
융은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융은 프로이트 보다 19살 연하이고 에들러 보다 4살 연하이다. 아버지가 목회 활동을 하는 시골의 교회 인근에는 정신 요양소(정신병원의 전신)가 있었기 때문에 융은 어린 시절부터 정신병 환자들을 많이 보면서 자라났다. 프로이트는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고 7명의 형제들 중에서 장남으로 어린 시절에 총명해서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피아노를 프로이트가 공부를 하는데 여동생들의 피아노 레슨이 방해가 된다고 팔아버리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프로이트의 여동생이 쓴 자서전에서 오빠인 프로이트가 황제처럼 군림했다는 기록을 존(Jones)이 노트하고 있다. 대신에 융은 아버지와 갈등으로 아버지가 지나치게 종교적인 교육을 강요했기 때문에 목회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소년 시절에는 불행하게 보냈고 그는 아버지가 아들 융의 장래를 걱정할 정도로 심하게 불안했다고 엘렌버그는 융의 어린 시절을 노트하고 있다.
융(Jung)은 11살 때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한 친구로부터 폭력으로 기절, 졸도를 한 이후부터 학교에 적응이 어려워서 방황을 했다. 그는 약 6개월간 학교를 잘 다니지 못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상상, 백일몽과 신비주의적인 생각에 빠졌던 것을 알고 목사인 아버지가 친구에게 아들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억지로 학교에 출석을 했다. 이 어린 시절의 이벤트는 융이 어른이 된 후에 그의 삶에서 신비주의과 초능력에 대한 흥미와 연구로 이어지게 된다.
프로이트가 골목 대장으로 항상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반면에 융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항상 혼자서 외톨이로 생활을 했다. 융은 중학교 저학년 시절에 한 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서 기절한 사건 때문에 청소년기를 방황과 갈등 속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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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융은 둘 다 신경증들을 가지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스스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프로이트는 친구들과 서신 왕래에서 얼핏 기차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고 또 다른 신경증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실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신경증들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존(Jones) 조차도 밝혀내지 못했다. 1909년에 프로이트와 융이 미국의 클라크 대학 20주년 기념식에 초청 강연을 받고 같이 워싱턴 호라는 기선을 타고 미국으로 가면서 기선 안에서 술을 마시고 융 앞에서 기절을 한 사건과 이후에 또 한번 융 앞에서 기절을 해서 융의 보호를 받았다는 기록을 존이 노트를 하고 있다. 반면에 융 역시 한번씩 정신을 잃어버리고 환각 증세로 기절을 자주 하는 신경증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러한 신경증들을 스스로 자아-분석으로 치료를 함으로써 프로이트는 4년 동안 자신의 꿈들을 분석해서 자신의 신경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프로이트의 자아-분석은 1900년에 “꿈들의 해석”이라는 저서를 출판함으로써 그의 무의식 이론과 리비도 이론과 섹스 이론으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그의 자아-분석은 이후에 0세-3세의 잊어버린 기억을 꿈을 통해서 분석하게 되면서 정신분석의 심층 분석의 바탕이 된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프로이트와 갈등 때문에 융은 1914년에 프로이트와 완전 결별을 했다. 국제 정신분석 학회의 회장 직책과 스위스 정신분석 학회 해산 그리고 정신분석 논문집의 편집장의 자리를 사퇴하고 정신분석 학회 회원으로부터 탈퇴를 했다. 그리고 6년 동안 칩거 생활로 들어갔다. 그는 이 6년 동안 그 자신의 꿈들의 분석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의 환각들의 근원을 찾아내어 그의 신경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스스로 노트를 하고 있다. 즉 융 역시 자아-분석의 6년 기간을 통해서 그가 성격의 유형으로 외향성과 내향성 그리고 직관과 감성의 성격의 유형을 연구해서 발표하면서 다시 정신분석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그의 분석 심리학의 기초가 단단해지기 시작을 했다.
프로이트와 융은 둘 다 의과대학 출신이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비엔나 의과 대학에서 신경학과를 졸업하고 신경과 의사가 되었다. 반면에 융은 스위스 사람으로 바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비엔나 의과대학 종합 병원에서 4년간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끝내고 신경과 의사로 출발했으나 그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보호자 역할을 한 브로이어(Breuer)로부터 안나 오(Anna O)라는 히스테리아 환자를 소개 받고 그녀가 생리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5가지의 증세들을 가진 여성임을 알게 되면서 브로이어가 그녀를 2년 동안 최면으로 치료를 한 것을 알고 최면을 공부하기 위해서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적인 최면학자인 의과대학 내과 교수인 가르코트를 방문해서 4개월 동안 프랑스 유학 생활에서 신경과 의사로써 삶이 최면 치료사로써 그리고 정신분석을 탄생시키는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융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의 길을 밟기 위해서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학 부설로 설립된 부르고졸리(Burgholzli)대학 정신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의 생활을 하면서 9년 동안 치료 국장으로 정신병 환자들을 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부르고졸리 대학정신병원의 총장인 유진 블루러(Eugne Bleuler)는 정신의학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그 당시 그 병원의 환자들인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 환자의 이전 이름, 오늘날 조현병) 환자들을 주로 수용을 했던 병원으로 20년 동안 그들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그들의 병이 조발성 치매(청년들이 치매에 걸린다는 뜻)가 아니고 정신이 분열된 환자라는 이름인 정신분열증(schizophrenia)라는 이름을 신조어로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리스 어로 schiz라는 말은 분열, 쪼갬 이라는 뜻이고 phren이라는 말은 정신, 마음 이라는 뜻이고 ia라는 말은 병이라는 말로써 정신이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된 병이라는 것을 1911년에 저서를 통해서 밝혀냈다. 그의 4 A는 연상의 분열(association)(사고의 분열), 감정의 분열(affection), 양면성의 분열(ambivalences) 그리고 자폐적(autistic)으로 내면의 세계로 철수는 지금도 간이 정신분열증의 진단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융(Jung)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이라는 책을 통해서 무의식의 세계와 꿈을 통한 심층의 분석을 알게 되었고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보냄으로써 1904년부터 프로이트와 잘 알고 지냈다. 융의 소개로 부르고졸리의 총장인 블루러의 지시로 전 스텝들이 3년 동안 정신분석 이론들을 공부하는 치료에 응용하는 유명한 소동을 엘렌버그가 기록을 하고 있다. 그는 1907년에 프로이트를 방문하고 정신분석 학회 회원이 되었고 이 후에 창설된 국제정신분석 학회의 회장으로 3년 동안 일을 했고 1909년에 미국의 클라크 대학의 총장인 스탠리 홀(미국에서 심리학 박사 1호)의 초대로 프로이트와 융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후 5년 동안 프로이트와 융은 사이가 좋았다. 프로이트는 융을 후계자로 지목을 하고 그를 수 제자로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해주었다.
그러나 융은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 밑에서 그들의 이론을 공부하는 것 보다 그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겠다는 마음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이트 밑에서 평생 동안 정신분석학자들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 생각이 없었다. 프로이트를 만나기 이전에 그는 이미 자신만의 심리학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었다고 엘렌버그가 융의 전기를 쓰면서 노트하고 있다.
치료자는 왜 융이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몇 가지 이유를 들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융은 정신분열증 환자 즉 조현병 환자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9년 동안 블루러 밑에서 연구를 하면서 단어, 낱말 연상법으로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찾아내는 실험 심리학 쪽을 연구를 하다가 무의식의 탐색과 심층 심리학에는 실험심리학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언을 했다. 그는 실험 심리학을 포기 했고 정신분석을 공부해서 정신분열증의 치료에 매진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정신분석학은 신경증 치료에는 도움이 되는데 정신분열증, 조현병을 치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을 했다. 프로이트 역시 정신분석학은 신경증 치료에만 국한 시킨다고 선포를 했었다. 융의 지도 교수인 블루러 역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도입을 해서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에 전념을 했으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을 했다.
그 증거로써 융과 블루러는 정신분석 학회 회원으로 제 3 획 국제정신분석 학회의 회원으로 가입해서 정신분석 총회에 참석을 했으나 두 사람은 이후에 정신분석 학회를 탈퇴하게 된다. 또 하나의 증거로써 제 2회 국제 정신분석학 총회가 바이마르(Weimar)에서 개최 되었을 때 융은 “조발성 치매에 대해서”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조발성 치매의 원인은 심리적 독극물에 의해서 생긴 생리적 상처로써 설명을 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조발성 치매의 원인을 출생 직후에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단계(autoerotic) 단계를 연구해 보라고 조언을 했지만 융은 듣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게 된 것으로 존(Jones)은 노트를 하고 있다. 즉 프로이트는 조발성 치매의 원인을 심리적인 것으로 본 반면에 융은 생리조직의 상처로 본 것이었다.
융은 조발성 치매에 정신분석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정신분열증 치료를 포기한 것이었다. 생리 조직의 상처로 보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치료가 될 수 없다고 단정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융의 이후의 연구들은 신화, 전설과 상징주의의 연구로 방향이 바뀌는 것에서 세 번째 증거를 들 수 있다. 융이 1907년에 정신분석 학회 회원이 되고 나서 그의 연구 논문들은 상징주의에 대해서 혹은 신화의 연구에 대해서 그리고 종교적인 것에 대한 심리학적인 연구로 방향이 바뀐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융은 오디프스 콤플렉스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프로이트와 제자들이 강조한 섹스에 초점을 맞춘 오디프스 콤플렉스를 융은 마지 못해서 수용을 하면서 오디프스 콤플렉스를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게 되면서 갈등의 폭이 커졌다. 그리고 융은 프로이트와 함께 클라크 대학 초청 연사로 초대를 받아서 미국을 방문하면서 프로이트에게 지나치게 섹스를 강조하지 말 것을 이야기를 했었다. 여기에다 프로이트의 유아 섹스 이론과 리비도 이론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과 분로를 불러 일으켰고 프로이트와 정신분석가들을 프르노, 변태성욕자, 도덕을 부패시키고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것으로 매도를 당했다. 이러한 사회적 비난과 좋지 못한 시각 때문에 융은 프로이트의 섹스에 초점이 맞춘 이론을 반대를 했다. 프로이트는 이미 1905년에 섹스 이론에 대한 3개의 소 논문으로 유아 섹스 이론을 확고하게 바탕을 닦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융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존(Jones)의 이야기를 듣고 오디프스와 유아 섹스 이론을 강의를 했다.
이후에 융은 미국으로부터 몇 차례 초대를 받아서 강연을 하면서 섹스 이론에 대한 강연을 하지 않고서도 정신분석을 미국에 소개를 절찬리에 할 수 있었다고 프로이트에게 미국 방문의 보고를 했으나 프로이트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더구나 1912년의 국제 정신분석 학회가 융의 두 번째 미국 방문으로 열리지 않게 된 것도 프로이트와 융의 갈등의 불씨가 커지게 되었다고 노트되어지고 있다.
융은 신화, 전설, 상징주의로 확대되어지면서 정신분석의 범위가 섹스에 초점이 맞추어진 프로이트의 이론의 범위를 넘어가면서 프로이트의 제자들로부터 불평이 쌓이게 되었고 그의 정신분석 학회 의장을 직책을 소홀이 한다는 반대파들에 의해서 프로이트와 융은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었고 융은 정신분석 학회의 스위스 지부를 해체하고 학회 회장직을 사퇴하고 회원으로부터 탈퇴를 해서 정신분석으로부터 완전히 결별을 했다.
융은 이후에 무의식과 꿈의 심층 분식의 연구는 계속을 했다. 그의 연구는 주로 신화, 전설 그리고 상징주의 등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만년에는 전 세계로 강연과 여행을 하면서 원시시대부터 유전적으로 인간의 핵심 무의식으로 계통발생학적인(대물림의 심리학) 연구로써 큰 무의식의 유형을 집합 무의식(Archetypes)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고로 그의 심리학은 치료적인 심리학 의학 심리학에서 벗어나서 철학적인 심리학으로 변질이 되어간 것으로 엘렌버그는 기술을 하고 있다.
이후에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에 국한 되었던 정신분석 학은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 과 페비안(Fairbarin)의 대상관계 이론의 등장과 크레인 밑에서 정신분열증과 편집증과 조울증의 연구를 한 한나 세갈(Hanna Segal:주㈜: 참고), 로젠필드(Herbart Rosenfeld: 주㈜: 참고) 그리고 윌프레드 비용(Wilfred Bion) 등의 3인 방과 미국의 신 프로이트 학파의 체스트낫 롯지(Chestnut Lodge)에서 프롬-레이크만(Fromm-Reichmann), 하놀드 실(Harlod Seares: 주㈜: 참고) 등에 의해서 정신분열증의 치료와 연구로 그리고 1950년에 정신분열증의 해석을 쓴 살비노 아르에티(Salvano Arieti: 주㈜: 참고) 등에 의해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주㈜: 참고)과 브라이스 보이어(Bryce Boyer:주㈜: 참고) 등에 의해서 정신분석학이 정신분열증과 편집증과 조울증의 치료에서 응용되어져서 성공적인 치료로 확대되어지게 되는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면서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연구와 개발에 평생을 받쳤고 그의 정신분석 치료 이론과 기법은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왜 융(Jung)이 정신과 의사로써 출발해서 정신분열증 즉 조현병 환자들의 연구에 평생을 바치면서 심리치료적인 기법과 이론을 개발 하는데 평생을 바치지 않고 신화, 전설, 상징주의, 종교 등의 심리 과학적인 연구로 철학적인 방향으로 바뀐 것에 대해서 필자는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그가 조현병의 원인을 생리적인 근거에서 찾았기 때문에 약물 치료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단정하게 됨으로써 정신과 의사로써 조현병의 연구에 평생을 바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안타깝게 생각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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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엘렌버그의 무의식의 역사, 어네스트 존의 프로이트 1, 2, 3권 그리고 한나 세갈의 3권, 살비노 아르에티의 2권, 토마스 오가덴의 5권, 브라이트 보이어의 3권, 하놀드 실의 2권, 로젠필트의 1권 등의 저서들은 우리 나라말로 번역되어져서 치료자가 보관을 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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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출생 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발달의 단계가 있다. 프로이드는 어린 시절의 발달이 성격 형성의 골격을 이룬다고 주장하고 0세-1세를 입, 입술, 혀가 중심이 되는 구순기 단계, 1세-3세를 대, 소변 훈련과 몸의 컨트롤과 주변 환경의 탐색 기간으로 여기에 에너지가 집중되는 기간으로 항문기로 그리고 3세-5세 사이를 아버지의 등장으로 세 사람 관계가 정립되는 기간으로 이 시기의 특징이 남녀의 성의 구분이 이루어지고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성 주체성이 확립되는 기간과 성 욕구가 표면화 되는 기간이 중심이 되는 남근기(phallic stage) 혹은 오피팔 기간으로 불렀다. 오디팔 기간은 오디스프 콤프렉스가 중심이 되는 기간으로 간단하게 오디팔 기간으로 주로 불리운다. 각 발달의 기간에는 통과해야 하는 과업들이 있다. 이 과업들은 주로 양육자에 의해서 충족이 되는데 충분한 양육이 주어지면 건강한 성격으로 충분하지 못한 양육이 주어진 건강하지 못한 성격으로 형성이 된다. 즉 부모의 양육의 스타일이 어린이의 성격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후에 어른이 되어 각종 정신적인 문제나 성격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본다. 정신분석학에서 강조하는 각 발달 단계를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전문서적 안내 198번을 보라)에서 인용하고자 한다(김종만, 1999, 127p - 236p).
제 3 장 단계 이론
구순기
마음
성적인 욕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발달해 가며 이것이 구체적으로 성격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정신분석학의 핵심 이론으로 들어가 보자. 많은 학자들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정신분석 학자,발달 심리 학자,신경 생리 학자 들의 공통된 견해는 “No”라고 대답한다. 처음부터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출생 직후 유아들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아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음은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본다. 즉 양육의 과정에서 타고 난 재능의 유전과 부모의 양육인 환경에 의해서 형성되어 진다. 그 중에서도 정신분석 학자들은 유아기 때의 “감각적 즐거움”이 마음의 형성에 기본 핵심 바탕이 된다는 것에는 다양한 갈래로 나누어진 정신분석 학자들도 모두 일치된 동의를 보인다.
유방
20세기 초반에 심리학의 발달이 초기 걸음마 단계에 있을 때 학자들은,“갓 태어난 신생아의 마음은 어떠한 상태에 있을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신생아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또 머리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기 때문에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심리학을 강의한 윌리엄 제임즈를 비롯한 많은 심리학자들은 갓 태어난 신생아는 “혼란한 마음” 즉 “chaos 상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생각은 달랐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태어나자 마자 “스스로 즐거움을 느낀다” 즉 “autoerotic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신생아는 입과 입술 그리고 혀를 통해서 엄마의 유방을 빨아서 스스로 감각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입과 입술에서 시작되어 온 몸으로 감각적 즐거움이 확대되어 사춘기 때 성적인 욕구로 초점이 모아진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이러한 프로이드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너무 성적인 강조 때문에 프로이드의 수석 제자이었던 에들러(Adler),융(Jung)으로 부터도 결별을 당했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이러한 이론은 20세기 중반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컴퓨터의 도움으로 인간의 뇌.신체 등의 내면을 들여야 보고 측정할 수 있는 각종 첨단 기기들의 도움을 받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이해서 하나씩 입증되고 있어서 프로이드의 천재성이 드러나고 있다.
입, 입술, 혀
프로이드는 입과 입술,혀로써 엄마의 유방을 빨아서 즐거움을 느끼는 기간 즉 유아가 젖을 먹는 1살 때까지의 기간을 구순기(oral stage)라고 부른다. 이 구순기에 엄마의 기능은 유아에게 우유를 제공하여 배고픔을 가소 시키는 기능보다 유방에 신체의 접촉을 통해서 감각적 즐거움을 충분히 제공해 주는 것이 아기의 마음의 발달에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최근의 발달 심리학,신경 생리학,정신분석학과 연결되어 어떻게 설명되어 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최근의 정신분석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재조명해 본다.
오디팔 단계에서 표면화되는 성적 즐거움은 태어나면서 느끼는 감각적 즐거움에서 시작된다. 유아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 외부 환경과 접촉한다. 이 감각 기능은 인간의 다섯 가지의 감각 즉 오감이고 외부 환경은 엄마의 유방이다. 갓 출생한 유아는 살아 남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그러나 잇발이 없어서 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빠는(sucking) 행동이 가장 강렬하다. 따라서 입과 입술이 초기 감각 지역의 핵심이 된다. 출생 후에 가장 민감한 부분이 입과 입술,혀이고 제일 먼저 발달하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여기에서 유아가 태어나자 마자 입을 통해서 감각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실이고 확실한가? 이것을 입증하려면 우선 신생아는 출생 직후에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을 느낄 수 있고 구분할 수 있는가? 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근에 컴퓨터의 도움으로 발달 심리학자들이 실험한 내용을 살펴본다(Yussen,Santrock,1984).
실험 1: 신생아들은 맛을 구분할 수 있다. 유아는 혀의 맛 봉오리가 어린이나 어른들보다 더 많이 더 넓게 분포되어 있다(Pick,1961). 신생아는 강한 맛에 예민하고 설탕물,레몬,소금물,키니네 등을 구분할 수 있었다(Pick,1961). 신생아는 단맛을 좋아해서 각종 신생아 실험 반응에 강화를 주기 위해서 설탕물이 사용되고 있다(Lipsitt,1969). 생후 2일 때 신생아는 설탕물,소금물,쓴물 중 설탕물을 가장 깊게 많이 빨았다(Nowilis,Kersen,1976).
실험 2: 유아는 모유와 우유를 구분할 수 있고 모유를 더 좋아한다. 생후 2일 때 신생아에게 모유,우유,설탕물,물을 우유병에 넣어서 신생아에게 주었을 때 모유를 가장 깊게 가장 오래,가장 많이 빨았다(MacFarlane,1979).
실험 3: 신생아는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생후 2일 째 신생아는 강한 냄새 즉 암모니아,양파 냄새에 예민하여 머리를 재빨리 돌렸다(Lipsitt,1963). 반복된 냄새에 적응을 보였다. 생후 2일 째 달콤한 냄새를 솜에 묻혀서 아기 코에 가까이했을 때 고개를 그 쪽으로 돌렸다. 그 때 심장 박동과 호흡의 비율이 느렸다. 그러나 신 냄새,산성 냄새는 고개를 돌려서 피했다. 그 때 심장 박동과 호흡의 비율이 증가했다(Hilgard,Artkinson,1979). 생후 6-7일 경에 엄마의 유방 냄새를 알 수 있었다(MacFarlane,1979).
실험 4: 신생아는 들을 수 있다. 출산 시에 양수가 터진 후 태아가 나오기 직전에 자궁 속에다 마이크로 폰을 넣어서 태아의 귀 가까이 놓고 산모의 복부 근처에 큰 소리를 내었더니 태아의 심장 박동이 증가하였다(MacFarlane,1978),또 출생 직후 엄마의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른 사람보다 엄마의 목소리를 더 좋아했다(MarFarlane,1978). 신생아는 왼쪽에서 오는 소리와 오른쪽에서 오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Rower,1974). 3개월 된 유아는 엄마 목소리를 다양하게 왜곡한 녹음 테이프를 듣고 엄마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 또 9개월 된 유아는 엄마의 목소리와 낮선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Turnune,1969). 신생아는 다양한 유사 자음 즉 b,d,p,t,g 와 같은 자음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Eimas,1975).
실험 5: 신생아는 촉감에 예민하다. 각종 선천적인 반사 작용이 이것을 입증한다. 발바닥을 간질이면 어른들은 발가락을 아래로 오므리지만 신생아는 위로 편파. 이것을 바빈스키(Babinski reflex) 반사라고 부른다. 입 근처를 간질면 입을 벌리고 자극 쪽으로 머리를 향한다,이것을 루팅(Rooting reflex) 반사라고 부른다. 복부를 받치면 등이 뻣뻣해지고 팔을 벋친다,이것을 모로 반사(Moro reflex)라고 부른다(Yussen,Santrock,1984).
실험 6: 출생 직후 신생아는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나 어른들보다는 폭이 좁다. 시각의 예민함을 측정하는 수치로 가장 잘 볼 수 있는 정상 어른들은 20/20(snellen 측정자) 이지만 신생아는 20/150 정도로 정확성이 약하다. 출생 때 두 눈의 협력이 잘 안된다(Banks,1981). 신생아는 눈에 초점이 없다.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는 것은 초점이 잘 안 잡힌다(Banks,1981). 시각은 출생 후 3개월-4개월이 지나면서 초점이 잡히고 급격히 발달한다. 신생아는 붉은 색,녹색보다 푸른 색을 더 좋아한다. 다양한 색채 카드를 사용했을 때 푸른색 카드를 가장 오래 쳐다보았다(Stirnimaner,1944). 생후 2주일 때 유아는 정지된 물체보다 움직이는 물체를 더 좋아한다(Fants,Nivis,1967). 밝은 패턴을 어두운 패턴보다 더 좋아한다(Hershenson,1964). 흑과 백의 대조에 반응한다.
과거에는 신생아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누워서 하루 종일 그냥 먹고 잠자는 것만 되풀이하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최근에 신생아에 대한 각종 실험 연구들이 발표되면서 이러한 생각들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신생아는 능동적으로 환경을 탐색하고 있으며 각종 감각을 통해서 느끼고 배우고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눈,코,입,귀,피부 등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서 태어나자 마자 원시적이긴 하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러한 감각 기관은 출생 후 불과 몇 개월 안에 성숙하게 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갓 태어난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핏 덩어리가 아니고 오감을 통해서 감각을 느끼고 그것들이 즐거운지 불쾌한지를 알고 울음으로 표현한다는 프로이드의 주장이 다시 스포트 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엄마
아기는 왜 엄마를 좋아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제공해 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기능이 아기에게 젖을 제공해 주는 것이 전부라면 아기에게 먹는 것만 잘 제공해 주면 엄마가 없어도 좋단 말인가?
실험 7: 자연 상태의 동물들 즉 원숭이,사자,곰,호랑이,개--등 모든 동물의 새끼들이 출생 후에 엄마 품에 안기고 엄마 품을 파고 들어가고 엄마 등에 매달리는 것을 본다. 엄마 품에 파고 들어가는 것은 젖을 먹을 때뿐만 아니라 젖을 먹지 않을 때에도 주둥이를 엄마 품에 대고 품 안으로 밀고 들어가거나 새끼들끼리 서로 밀치고 당기고 하는 것을 본다. 원숭이의 새끼는 엄마 등에 타고 가거나 꼬리에 새끼가 매달리거나 엄마의 배에 붙어 다닌다. 병아리의 경우를 보자,병아리들은 태어나자 마자 스스로 먹이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마리의 병아리들이 어미 닭의 뒤를 줄줄이 따라 다니고 엄마가 앉아 있을 때 날개나 품 속에 들어가거나 등에 올라가기도 한다. 엄마의 기능이 단순히 food만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기능이 있다는 의미이다.
실험 8: 엄마의 기능 중 또 다른 기능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실험 연구가 바로 인공 엄마의 실험이다. 위스콘신 대학의 동물 실험 심리학자인 하알로우(Harlow,1970)는 갓 태어난 원숭이 새끼를 실험 대상으로 두 개의 엄마를 만들었다. 하나는 철사로 엄마를 만들고 우유병을 달아 놓았다. 이것을 철사 엄마라고 불렀다. 두 번째는 헝겊으로 엄마를 만들고 이것을 헝겊 엄마라고 불렀다. 새끼 원숭이는 제왕절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실제 엄마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이 새끼 원숭이를 두 개의 엄마 사이에다 놓아두었다. 만약 젖을 주는 food의 기능이 더 중요하다면 새끼 원숭이는 우유병이 달린 철사 엄마 한데로 갈 것이다. 그러나 새끼 원숭이는 폭신폭신한 헝겊 엄마 한데서 놀았다. 헝겊 엄마에게 안기고,매달리고,몸을 비비고,옆에 붙어 있었다. 단지 배고플 때만 철사 엄마 한데로 가서 우유병의 우유를 빨아먹었다. 실험의 결과는 분명해졌다. 유아에게 엄마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food인 젖만 제공해 주기 때문이 아니고 엄마 품에 안기고 엄마 등에 업히고 엄마에게 매달리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랑
안기고,매달리고,업힌다는 것은 엄마와의 신체적 접촉을 의미한다. 즉 아기에게 엄마의 신체 접촉 기능이 food 기능인 젖을 주는 기능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신체적 접촉은 엄마와 아기의 피부가 서로 접촉하는 피부 접촉뿐만 아니라 눈길 주기,눈 맞추기 등도 포함된다. 엄마가 아기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만져주고,볼을 마주 대고 비비고,눈을 마주 쳐다보고 어루는 엄마와 아기 사이의 모든 행동들을 포함한다. 아기가 왜 이러한 행동들을 좋아할까? 그것은 바로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을 때 추상적으로 “서로 좋아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어떻게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이 막힌다. 사랑이란 단순히 말로만 “I love you”라는 말로써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신체적 접촉 즉 피부 접촉을 통해서 진실한 따뜻한 감정이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엄마는 품에 아기를 안고 있을 때 손으로 등을 쓰다듬어 주고,머리를 만져 주고,배를 쓰다듬어 주고,볼을 만져 주고,눈길을 마주하는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사랑을 아기에게 전달한다. 앞서 발달 심리학자들의 실험에서 입증된 것처럼 아기는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없지만 엄마의 손길을 통해서,엄마의 등에 업혀 있을 때,엄마의 품에 안겨 있을 때,엄마의 젖을 빨고 있을 때,엄마로부터 사랑을 전달받고 느끼게 된다. 성인들의 사랑,연인들 사이의 사랑을 생각해 보라,연인들이 서로 사랑할 때 손을 마주 잡거나,키스를 하거나,몸을 껴안거나,볼을 서로 비비거나,눈길을 통해서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는가!
모유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 때 자연적으로 아기는 엄마의 유방과 접촉하게 되어 있다. 아기의 온 몸은 엄마와 신체적 접촉을 하게 된다. 엄마는 젖을 물고 있는 아기의 눈길을 마주하게 되고 손으로 얼굴을,머리를,엉덩이를 쓰다듬어 주게 된다. 엄마는 모유를 먹이게 될 때 아기와 신체적 접촉이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우유는 어떠한가? 우유병에 우유를 넣어서 주게 되니까 안고 먹이는 경우보다 편안한 이불 위에 누운 체 혹은 유모차에 누워서 엄마가 우유병을 잡고 먹이거나 아기가 스스로 우유병을 두 손으로 잡고 먹는 경우가 많다. 우유병은 엄마의 유방처럼 엄마의 피부가 아니다. 우유병에 우유를 넣어서 아기에게 주는 것은 배고픔을 면하게 해 주는 food의 기능밖에 제공할 수가 없다. 아기에게 중요한 것은 food의 기능보다 신체적 접촉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고로 모유 즉 유방은 food의 기능과 피부 접촉의 기능을 동시에 제공해 주지만 우유병은 food의 기능밖에 제공할 수가 없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우리 조상들의 자녀 양육 방식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얼마나 과학적이었나를 알 수 있다. 과거에 우리는 어릴 때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 때는 우유를 구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들판에서 일을 할 때도 엄마의 등에 업혀 있었고 물동이로 물을 길러 갈 때도 등에 매달려 있었고 논 밭에서 김을 멜 때도 품안에 안기거나 혹은 등에 업혀 있었고 시장에 갈 때도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고되고 힘들었겠지만 아기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보다도 더 좋은 양육은 없었다. 엄마와 더 많은 피부 접촉은 엄마의 더 많은 사랑을 의미하니까!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즉 우리 부모의 세대 때까지는 정신 이상자들이 드물었다. 엄마가 직접 업고 다니지 못할 때는 언니,오빠,누나,형이 대신해 주었다. 가족들은 산아 제한이 없었고 피임이 없었기 때문에 7명-10명의 가족 구성원들로써 서로 사랑하고 싸우면서도 감정을 충분히 나누고 살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정신 이상자가 드물었다.
오늘날 과학 문명이 발달할 수록 정신 이상자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이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 점은 있지만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옛날에는 부모들이 나들이를 갈 때도 아기를 등에 업고 가거나 품에 안고 갔고 차를 탈 때도 아기를 업고,안고 탔다. 그러나 오늘날 자가용의 등장으로 편리해졌다. 나들이 때는 유모차에 태우고 가고,버스보다는 자가용으로 다니기 때문에 아기는 옆 좌석에 안전 벨트가 달린 바구니 속에 앉혀진다. 또 오늘날 어머니들은 모유보다 우유를 더 좋아한다. 일하는 엄마들은 그렇다 치고 집에서 살림하는 엄마들까지도 우유를 선호하고 모유를 먹이면 구시대의 엄마로 취급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보건사회 연구원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생후 6개월을 기준으로 엄마의 젖을 먹고 잇는 비율이 28.8%로써 지난 20년 사이에 1/3이하로 떨어졌다고 보고되었다. 그러나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은 80-90%를 모유가 차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실험 9: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잣 태어난 아기 7명을 나란히 눕혀 놓고 규칙적으로 우유를 제공하면서 인간이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어떤 말을 하는가를 알아보려고 했다,그러나 그 아기들은 한 사람씩 특별한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죽어 갔고 결국 실험은 중단되고 말았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왜 그 실험에서 아기가 죽어 갔을까? 에 대한 유력한 해답으로 엄마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아기는 사랑이 없이 먹을 것 즉 food만 제공한다면 인간으로 자날 수가 없다,유방은 엄마와 아기 사이의 사랑의 대화를 제고해 주는 매개체이다”(Klein,1975). 컴퓨터 시대인 오늘날 아기들을 일렬로 눕혀 놓고 기계적으로 우유를 제공할 수 있도록 스위치를 장치해서 스위치를 누르면 우유병이 저절로 내려와 우유를 주고 대,소변이 나오면 기계적으로 신호가 가서 저절로 기저귀가 갈아지는 첨단 시절로 인간을 키운다면 과연 감정이 원만한 건강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겠는가? 대답은 No 이다.
사례 56: 한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자기 학교 옆에 큰 고아원이 있어서 한 학급에 2-3명씩 고아들이 섞여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운동장에서 일반 학생들과 섞여서 놀고 있는 고아원 출신 아이들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얼굴에 표가 난다고 했다,그러나 영양분의 부족은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요즈음은 6.25 전쟁 고아들과 달라서 고아원에도 영양사,요리사들이 하루의 영양,칼로리 등을 계산해서 메뉴를 짜고 시에서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영양은 충분히 공급되고 있으며 옷도 평준화되어 꿰매고 떨어진 옷을 입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고아원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얼굴이 눈에 띄게 달라져 보였을까? 바로 사랑의 부족 때문이다. 고아원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배고프지 않도록 정해진 시간에 우유를 공급해 주는 즉 food의 기능은 충분히 제공받고 있다,그러나 일반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처럼 원장,보모들이 업고,안고,키우지는 않는다. 울면 한번 안아 주는 정도일 테이니 신체 접촉을 통한 사랑의 부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실험 10: 제 2 차 세계 대전 때 영국 런던은 독일로부터 대륙간 유도탄을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정신분석 학자들은 그 때의 포격으로 유아들이 틀림없이 놀랐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심리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 때 자란 아기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엄마 품에서 자란 아기 그룹과 고아원에서 자란 아기 그룹으로 나누어서 다양한 심리적 문제점을 분석해 본 결과 엄마 품에서 자란 아기들은 아무런 문제점이 없었고 고아원에서 자란 즉 엄마 품에서 자라지 않은 아기들은 불안증,신경증 등 심리적인 문제점이 많았음을 밝히고 있다.
유아들에게 엄마의 품은 안식처이다. 아무리 태풍이 불고,포탄이 떨어지고,비바람이 불어도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 아기들은 새록새록 잠이 든다. 아기들에게 엄마의 등은 아기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이다. 그러나 자동차와는 달리 따뜻한 엄마의 체온이 느껴지고 사랑이 흘러간다. 아기에게 엄마의 손은 약손이다,배가 거북하거나 아플 때 엄마의 손이 스쳐 지나가면 아픔이 사라진다. 아기는 온 몸을 통해서 사랑을 흡수한다. 엄마의 품,엄마의 등,엄마의 손,엄마의 눈 등을 통해서 마음의 영양소를 흡수한다. 엄마의 유방의 두 가지 기능 중 한가지 기능인 food의 기능을 통해서 아기는 몸에 필요한 신체적 영양분을 흡수하고 다른 한가지 기능인 유방의 피부 접촉 기능 즉 빠는 즐거움을 통해서 마음의 영양분인 사랑을 흡수한다. 그래서 건강한 몸과 마음이 발달한다.
사례 57: 수사 반장이 어떤 일간 신문에 “옛날에는 주로 가난한 집 자녀들이 베고픔,용돈의 부족으로 범죄에 많이 빠졌으나 요즈음은 청소년 범죄의 대부분은 중 상류층 자녀들이고 그들의 부모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들이어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것을 한번 분석해 보자.
대표적인 케이스가 백억 대의 재벌이었던 한약상인 부모를 살해한 P군과 마약에 연루된 오렌지 족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류층 가정의 부인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자녀를 키울 때 엄마의 등에 업고,안고,엄마의 젖을 먹이면서 아기의 똥,오줌을 만지면서 키웠겠는가? 주로 유모,가정부를 돈을 주고 고용해서 아기를 맡기고 자신들은 사교 생활,사회 생활을 하는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한 엄마들이 주로 하는 일이란 아기에게 고급 우유를 사 먹이는 일이나,외제 기저귀를 사주어서 대,소변을 제 때에 갈아주고 있는지,우유를 제 때에 먹이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일일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을 풍족하게 제공하는 것이 사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유모와 가정부가 아기를 키우면서 자기 아이 키우듯이 자기 젖을 먹이고,업고,안고,키우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에 알맞게 우유를 제공한다든지 기저귀를 제 시간에 갈아준다든지 하는 food의 기능에 신경을 쓸 것이다. 출생 직후부터 양육의 가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또 중류 가정의 어머니들 중에 직장 생활을 하는 어머니들은 자녀를 친 할머니,외 할머니에게 맡기거나 아니면 가정부에게 맡겨야 한다. 전자의 경우는 좀 나은 편이다,후자의 경우는 아기만 돌보는 것이 아니고 집안 청소,식사 준비 등으로 가정 일까지 돌보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피곤해서 아기를 신체적으로 접촉할 시간은 그 만큼 줄어 들 수밖에 없다. 결국은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만 자녀에게 흘러가는 사랑은 말로만 “I love you”를 되풀이하는 것이 된다. 이들의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면 값비싼 학용품,용돈을 풍부하게 주는 것이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P군의 경우를 보자,P군을 담당한 기소 검사는 P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점인 올 “수”를 받고 단 한번 부모로부터 칭찬으로 비디오를 선물 받은 후로는 13년 동안 단 한차례도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고 구박과 멸시만 받아 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P군은 한 달에 수백 만원의 용돈을 뿌리고 다녔고 미국 유학 중에 라스베가스에서 도박으로 거액을 탕진했고,부모로부터 받은 비디오에 병적인 집착을 보인 것도,이 비디오로부터 범죄를 배운 것도 부모로부터 온 것임을 담당 기소 검사는 밝히고 있다(일간 신문,1995).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마음 속에 사랑이 있었겠는가! 부모로부터 받은 천대와 멸시가 무의식 속에서 증오로 싹이 터서 차곡차곡 자라면서 일정한 한계선을 넘으면서 부모에게로 폭발하여 흘러간 것이다. 이것은 P군이 부모를 40-50 군제를 찔러서 살해한 후에 방화를 하고 난 다음 기억이 없다는 말이 이것을 말해 주고 있다.
어릴 때 주지 못한 사랑을 돈으로 보상해 줄 수 있겠는가! 돈은 물질적인 것이지 정신적인 사랑은 아니다. 오렌지 족들이 한 달에 수백 만원의 용돈을 쓴다는 것은 부모들이 어릴 때 주지 못한 사랑을 돈으로 보상해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어릴 때 받지 못한 정신적 즐거움을 돈으로 사게 된다. 음주,마약,섹스에 빠지게 되고 계속해서 그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자극제가 필요하다. 결국 자녀는 범죄인이 된 것이다. 그들이 범죄자가 된 배후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미 초기 양육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례 58: 어느 전문직에 종사하는 30대의 부인 H씨는 직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기를 돌 보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친정,시가의 할머니들이 돌보아 줄 수 없게 되자 20대의 가정부를 두게 되었다. 어느 날 부인 H씨는 집에 돌아와서 아기가 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전에는 그러한 일이 없었는데 아기가 계속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 다음 날도 아기가 계속해서 자는 것을 보고 수상하게 여긴 부인 H씨는 그 다음 날에는 일부러 조퇴를 하고 직장에서 일찍 집에 돌아왔다. 깜짝 놀란 것은 가정부가 아기의 젖병에 수면제를 넣고 있는 것을 적발한 것이다. 당장 가정부를 해고해서 내 보낸 것은 물론이다. 가정부에게는 아기가 귀찮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기가 울면 업고 있으면 다른 일들 즉 방 청소,부식 준비 등을 하기가 힘들 것이고 아기가 잠들어 있으면 얼마나 편한가!
실험 11: 하알로우 박사는 두 번째 실험을 했다(Hilgard,Artkinson,1979). 인공 엄마 품에서 자라 성인이 된 원숭이에게 섹스 파트너를 붙여 주어서 정상적으로 어미 품에서 자란 성인 원숭이와 어떻게 다른지를 실험해 보았다. 인공 엄마 품에서 자란 원숭이는 즉 엄마 품에서 자라나지 못한 원숭이는 섹스 파트너인 원숭이를 물거나,활키거나,공격을 해 귀찮게 쫓아 다녔다. 그 대신에 정상적인 엄마 품에서 자란 원숭이는 섹스 파트너를 쓰다듬고,어루만지고 붙어 다니고 섹스를 나누고 다정하게 지냈다. 이 실험으로 엄마 품에서 자라지 못한 원숭이는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를 몰랐다. 어릴 때 사랑을 나누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가 없다. 우리가 엄마 품에서 신체 접촉을 통해서 받은 사랑은 성인들이 사랑을 할 때 서로 나누는 사랑이고 성인들이 사랑하여 결혼을 해서 나누는 섹스 행위가 바로 엄마 품에서 피부 접촉을 통해서 배운 사랑이 아닌가!
애무(愛舞)
섹스란 남,여의 성기가 두개 결합하는 단순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섹스는 성기가 결합되기 전에 남,여가 나누는 사랑의 행동인 전희,애무 즉 영어로 foreplay까지 포함한다. 옷을 벗고,알몸으로 서로를 껴안고 핥고,빨고,온 몸의 감각을 통해서 나누는 사랑의 춤,즉 사랑의 전달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섹스가 아닌가! 동물의 세계를 보라,동물들이 섹스를 가지기 전에 구애 행동을 한다. 학(鶴)은 서로 머리와 목을 감아서 춤을 춘다. 이 구애 행동은 인간에게는 사랑의 춤 즉 애무(愛舞)이다. 그래서 섹스는 몸으로 하는 대화라고 말한다.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서로가 사랑을 전달하고 사랑을 인정받는 사랑의 확인 과정이 바로 섹스이다. 고로 애무는 오르가즘보다 더 중요하다. 오르가즘은 사랑의 감정이 전달되는 극치의 마지막 순간에 연속 오르가즘을 가지는 여성에게는 불과 몇 분,남성에게는 불과 몇 초만에 가지는 마지막 즐거움이지만 애무는 적어도 30분 이상 가질 수 있다. 충분한 애무의 시간을 가진 후에 오르가즘을 가져야 순서이다.
성숙한 성인의 사랑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컨버그(1989)박사는 말한다. 첫 번째 요소는 감미롭고 부드러운 달콤한 사랑의 감정 즉 신체 접촉을 통해서 전달되는 사랑의 감정인 tenderous love이다. 이것은 출생 후 우리가 엄마의 품안에서 유방을 빨면서 느끼고 배우는 사랑이다. 두 번째 요소는 사랑을 하게 될 때 축적된 섹스 에너지의 방출로써 느끼는 극치감인 오르가즘이다. 후자는 사춘기 때에 성의 성숙과 함께 온다. 사춘기를 거쳐서 성인으로 변모해 가면서 이 두 요소가 서로 통합되어 한층 더 성숙한 성인의 사랑으로 발전한다. 하루 밤에 만나서 섹스 관계를 나누는 정사(情事)나 매춘부 한데서 섹스 욕구를 방출하는 사람은 두 번째 요소인 사정할 때 느끼는 오르가즘 밖에 얻을 수 없고 불감증을 가진 여성들은 첫 번째 요소인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느끼는 감미로운 사랑의 감정을 얻을 수 없고 두 번째 요소인 극치감인 오르가즘도 얻을 수 없다.
사례 59: 섹스 이론과 섹스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마스트(Master) 박사와 존슨(Johnson, 1982)은 불감증,조루,임포 등의 섹스 장애를 치료할 때 섹스 테크닉을 가르치기 전에 부부가 서로 성행위가 금지된 상태에서 서로 몸을 통해서 감각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감각 집중(sensational focus)훈련을 반드시 거치도록 강조한다. 부부가 서로의 입,혀,입술을 통한 감각을 개발한다. 입술,귀,목,가슴,복부,엉덩이,허벅지 등 온 몸뚱이를 부드럽게 핥고,빪으로써 그리고 손으로 마사지하듯이 부드럽게 만짐으로써 감각적 즐거움을 개발하고 몸의 성감대의 감각을 개발을 하는 것이다. 불감증 환자에게는 이것이 충분하게 개발되면 그 다음 프로그램인 혼자서 자위행위를 하도록 하게 한다. 이 과정이 성공해야 마지막으로 부부가 섹스에 들어가도록 치료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다.
감각 집중 훈련은 어릴 때 엄마 품에서 개발되지 못한 신체적 접촉을 성인이 되어서 다시 치료로써 피부 접촉 감각을 통한 감각적 즐거움을 개발하는 것이다. 어릴 때 어떤 부분의 발달이 중지되거나 발달이 지연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치료되어 수정되지 않으면 그 부분은 어릴 시절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어릴 때 엄마와의 피부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개발하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 성숙한 사랑을 할 수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례 60: 40대 후반의 중년 부인 M씨. 지금까지 남편과의 섹스에서 오르가즘이 없다. 섹스 불감증으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어떻게 부부 관계를 나누느냐고 물었을 때 섹스 시에 “불을 끄고 잠 옷을 입은 채로 단추 구멍 사이로 성기를 내 보내서 이불 속에서 섹스를 가진다고 했다. 치료자는 옷을 벗고 자신의 몸을 자주 거울에 비추어 보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한번도 그런 일은 없었으며 목욕탕에 가서도 부끄러워서 타올로 성기를 가리고 빨리 나오거나 탕 속에 들어가며 목욕탕의 거울 앞에서도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신체적 자아 감각이 너무 낮아서 자신의 몸매에 자신이 없다는 의미이다. 먼저 자신감을 높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 후 자신의 나체를 거울에 비추어 보는 훈련이 이어졌고 그 다음에 섹스 관계에서 옷을 전부 벗고 나체 상태에서 남편의 나체를 부드럽게 손,입,혀,입술로 마시지 하면서 감각을 느끼도록 했다. 다음에 교대로 남편으로부터 자신의 몸의 어느 부분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지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진행하도록 했고,온몸으로 충분히 감각적 흥분을 느꼈을 때 침실에 들어가되 이불 위에서 섹스를 가지되 섹스 시에 자신의 감정,느낌,생각을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훈련했다. 이러한 훈련은 단 시일 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먼저 마음 속에 있는 섹스에 대한 부정적 생각,태도 등이 수정되어져야 한다. 여성들은 생리적으로 남성과 다르다. 섹스 생리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은 오르가즘을 사정 때 단 한번 만 가질 수 있지만 여성은 연속해서 여러 번의 오르가즘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을 연속 오르가즘 혹은 多오르가즘(multiple orgasm)이라고 부른다(Wilson,et al,1980).
치료가 시작된지 1년 정도 지나서 부인 M씨는 남편과의 섹스 관계에서 연속해서 여러 번의 오르가즘을 느낄 수가 있게 되었고 섹스가 그렇게 황홀감을 주는 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고 또 섹스가 남편과 부인 관계를 그렇게 가깝게 느끼게 할 줄 몰랐었다고 즐거워하면서 지나보낸 세월을 아쉬워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능력 즉 창조주가 사용하라고 부여한 능력을 묻어버리고 평생토록 모르고 자나 간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부부 사이에 사소한 갈등은 섹스 관계를 가진 후에 대부분이 해소된다는 말들을 한 것은 섹스가 몸을 통한 부부간의 대화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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