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강박증을 정신분석에서는 어떻게 치료 하나요?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7. 7. 26. 05:33

강박증을 정신분석에서는 어떻게 치료를 하나요? 1

 

 

강박증은 19세기 말에 등장을 했다. 그 이전에는 강박증이 없었다. 강박증의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정신분석에서 강박증을 어떻게 치료를 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강박증은 주로 약물로 치료를 하고 있고 심리치료에서도 효과가 미미해서 분석가들도 치료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불안장애 중에서 가장 치료하기가 어려운 장애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치료자가 강박증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치료를 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강박증은 고대, 중세, 근대에는 없었던 장애이다. 강박증은 산업 사회의 부산물도 등장하게 되었다. 1848년의 영국에서 산업 혁명으로 시작해서 기계들의 등장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도시에 공장들이 들어서게 되었을 때 노동력의 부족으로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면서 도시 인구가 늘어나고 생산량이 늘어나고 교통, 통신이 발달하게 되면서 대도시화가 되면서 그리고 또 프랑스 혁명 이후 귀족 계급의 몰락으로 등장하게 된 중산계급인 부르주아 계급에 맞먹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계급(노동자, 농민)이 등장하게 되면서 1870년 경에 새롭게 신경쇠약증(neurasthenia)이 등장하게 되었다(Ellenberger, 1970).


이 신경쇠약증은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정신병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신병으로 비교 대조가 되었다. 히스테리아는 중세 시대에 귀신, 영혼, 악마, 악령, 마녀 등에 의해서 귀신에 사로 잡힌 사람으로 인식되어져서 귀신을 쫓는 굿으로 치유를 했던 사만(shaman, 무당)들에 의해서 퇴마의식이 유행했다가 계몽주의 시대의 영향으로 미신, 무지,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과학, 이성, 합리주의 정신으로 깨어나면서 귀신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 정신병으로 그 병의 이름이 히스테리아로(히스테리아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만든 정신병의 이름으로 존재)의 재등장으로 그 정신병을 치료를 하는 자석 치료를 고안했던 의사였던 메즈머(Mesmer)에 의해서 등장해서 100년 후에 이것이 최면학으로 바뀌면서 19세기 말까지 유행을 하고 있었다.


히스테리아는 몽유병, 기억 상실, 무감각, 외계인이라는 망상적 사고, 환각, 환청과 이중 성격과 다중 성격 등의 특징을 보이는 정신질병인 대신에 신경쇠약증은 에너지 고갈, 피로함, 삶에서 의욕 상실, 불면증, 식욕 상실, 우울함 등의 특징을 보이는 신종 정신병으로 19세기 말에 과학주의, 실증주의에 힘입어서 인기가 있었던 신경학자들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히스테리아는 주로 여성들이 많이 걸리는 반면에 신경쇠약증은 남자들 특별히 노동자, 농민들이 많이 걸리는 정신병으로 구분이 되어지게 되었다. 신경쇠약증은 미국의 의사인 죠지 비어드(George Beard)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서 유럽에 확산된 정신병이었다. 히스테리아의 치료는 최면 치료였지만 신경쇠약증의 치료는 충분한 휴식, 영양 공급, 마사지, 목욕, 요양원에서 쉬는 휴양 등으로 치료를 하는 것이 인기가 있었다.


이 시점에서 새롭게 등장한 정신 질병이 강박증으로 이후에 등장하게 된 강박 행동과 유사성 때문에 20세기 초반기에 강박사고 강박행동(obsessive-compulsive)라는 신경증으로 이름이 통합으로 불리게 되었다. 강박 사고는 통제할 수 없는 이상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 침투를 하는 것으로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자아의 힘으로 멈추어지지 않는 신경증이고 강박행동은 병균의 감염으로 불안해지게 되면서 손과 발을 씻거나 도둑의 침범으로 창문을 체크를 하거나 가스 오븐이 열려 있다고 불안하게 되면서 체크를 하는 것 등과 같은 반복된 행동으로 불안이 완화 된다는 강박사고 때문에 끝없는 반복행동을 하게 됨으로써 일상의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정신장애로 정의가 되고 있다. 보통은 강박증으로 부르고 있다.


강박증은 신경쇠약증과 완전이 달라서 휴식과 영양 공급 혹은 에너지 보충 등의 치료로써는 효과가 없는 신종 정신병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이후에 그 원인이 불안으로 나타나는 장애로 알려지게 되면서 1980년에 미국의 정신의학 학회에서 10년마다 재 분류되어 지는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 지침서인 DSM-Ⅲ에서 불안장애 속에 포함되어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로 분류되어져 오다가 2013년에 5번째 재 분류된 DSM-Ⅴ에서 불안장애에서 독립된 분류로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로 분류되어지게 되었다.


이제 강박증의 치료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불안 신경증의 치료는 정신분석학을 창안한 프로이트에 의해서 본인이 모르는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는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들이 억압되어져서 잊혀져 있다가 자아(ego)의 억압의 힘이 약화되어 충분하지 못할 때 무의식 속의 상처들과 유사한 상처들의 영향으로 뚫고 나오려는 힘과 억압의 힘이 타협으로 증세로 등장한 것으로 설명이 되어졌다. 고로 증세는 그 자체가 타협에 의해서 생산된 변종이기 때문에 증세 자체를 다루면 이후에 다른 변장된 증세로써 다시 재 등장하게 된다는 이론이 정신분석학에서 프로이트의 신경증이론이다. 타협에 실패해서 오리지널 상처 그 자체가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으로 뚫고 나오게 된 것이 정신증 환자들의 증세로써 예를 들어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이상한 괴상한 행동들은 꿈과 현실의 구분이 없는 괴상한 행동들이 아닌가!로 설명이 되고 있다.


 최근에 실험 심리학의 영향으로 등장한 행동 치료의 유행으로 강박증을 증세 그 자체를 직면으로 완화 시키려고 하는 치료 기법들이 유행을 하게 되었다. 감각박탈 치료(과도하게 예민한 불안을 완화) 혹은 혐오자극 치료(감염 오염을 두려워해서 손을 씻는 환자들을 직접 더러움 물건을 만지게 해서 오염되지 않음을 인식)등이 유행을 해서 다소 도움이 되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근절에는 불만족함의 불평을 환자들로부터 듣게 된다.


치료자는 행동주의 치료 기법을 사용하다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실망을 해서 정신분석적인 기법의 프로이트 이론을 바탕으로 한 최근의 대상관계 치료 이론으로 강박증을 치료하게 되면서 만족할만한 치료 효과를 얻고 있음을 소개하면서 강박증의 근본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치료자가 아래에서 소개하게 되는 3명의 강박증 환자들은 그들의 의지로써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멈추어지지 않고 침투해오는 강박적인 노래 가사 혹은 이상한 생각들 즉 1 + 1 = 2 는 왜 3이 아니고 4가 아니고 2인가? 세차(자동차의 물청소)와 새 차(새로운 차)가 어떻게 다른가? 원과 공이 어떻게 다른가? 등의 이상한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계속 침투(치료자가 한번 기록을 해 보라고 했을 때 약 30여개가 하루 동안에 머리 속에서 떠 올라와서 공부에 주의 집중이 되지 않음)를 해서 주의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 중학교 2학년 학생 그리고 이상한 노래 가사가 머리 속에 침투한다고 불평을 하는 21세의 청년과 하루에 오줌을 20-30회를 누면서 뇨도 감염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3개월에 한번씩 비뇨기과 병원을 찾는 27세의 젊은이의 강박증을 치료를 하면서 강박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 기법을 찾게 된 것이다.


치료자는 최근에 등장한 대상관계 이론에 근거를 해서 강박증의 원인에 도전을 했고 그것이 과거의 이론들과는 많이 다른 점을 발견을 하게 되었다. 핵심은 정신분석학에 근거를 두고 가족들과 관계와 어린 시절에 엄마와 관계 등에서 어린 시절에 심리적 상처에 근거한 프로이트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증세를 가진 사람들은 심리적 상처에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방어 이론이다. 즉 자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어기재들을 사용해서 보호막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시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 방어기재는 오히려 자아에 방해물이 된다는 프로이트의 방어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쉽게 이야기를 하면 강박증의 증세들은 증세 그 자체가 핵심 문제가 아니고 근본 문제들은 대인관계가 어렵거나, 주의 집중이 되지 않거나, 학업에서 어려움, 이성관계의 어려움, 섹스 문제에 어려움 등으로 그들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을 할 것인지를 조언해주거나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막연하게 될 때 자아가 불안해서 소멸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노래 가사의 침투, 소변의 빈도수, 이상한 논리적인 문제들의 등장으로 그들의 근본 문제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변의 문제는 오줌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노래 가사의 침투는 노래 가사가 침투를 막으면 당장에 해결이 되는 것이다. 이상한 단어들이 머리 속에 침투하는 그 논리적인 문제는 그 문제의 답만 알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즉 그들은 한가지 눈에 보이는 해결책만 제거되면 강박증이 해결된다는 믿음 때문에 그 눈에 보이는 해결책에만 매달리게 된다. 강박증은 불안장애에 소속된 장애로써 핵심은 어떤 강박증적인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불안을 감소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체크와 손 씻기 등을 반복하게 되면 불안이 감소되어지는 것을 느낀다고 본인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이 실수를 했기 때문에 불안이 등장한 것으로 오인해서 그들은 완벽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그 대신에 긴장이 증가해서 과도한 불안을 만들고 있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음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감정이 없는 기계적인 완벽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강박증은 안순환이 되어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하고 강박증적인 행동에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고 감추어진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과 그리고 자아가 피하고 있는 핵심 문제들의 대응 기능을 개발하고 직면하게 해서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도록 치료를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정작 그들의 핵심 문제인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아무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단지 친구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말만 듣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식은 부모님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직접 해결하는 방식을 눈에 보이게 도와주지 않는다. 고로 대인관계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면 유령과 싸우는 격이 되어버리게 된다. 실체가 없는 유령과 어떻게 싸울 수가 있는가? 유령과 싸운다는 것은 불안을 극대화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어떻게 주의 집중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거나 알려주어서 성적의 하락을 멈출 수 있도록 그 방안을 도와주는 의사들은 없었다. 직장을 가지고 돈 문제를 해결하도록 실제로 어떻게 동료들과 관계를 하고 상사와 부하들과 관계를 하는지?를 아무도 가르쳐주거나 보여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강박 증세는 소변 문제만 해결하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27세의 C군의 경우). 노래 가사만 막으면 그들의 문제는 하루 아침에 모두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닌가? (21세의 B군의 경우)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강박 증세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인관계도, 일자리도, 주의집중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미래의 문제(전문직의 선택)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지금은 그 강박증세만 해결되면 이러한 문제들, 대인관계, 일자리 문제, 그리고 공부의 집중 정도를 회복해서 원래의 성적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 강박증 증세 그 자체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우리 인간의 자아가 얼마나 교모 하게 우리 자신의 의식을 속이고 감추고 타협을 하고 있는지?를 본인들은 정작 모르고 자아의 방어의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는 것을 깨닫게 도와준다. 즉 증세를 보지 말고 핵심 문제를 보게 만들어준다. 프로이트가 이것을 이미 100년 전에 방어는 자아의 속임수 이고 자아가 그 속임수에 속아서 끝없이 반복으로 증세들을 재 등장시키고 있다고 공언을 한 바가 있다.


치료자가 그들에게 자아의 속임수를 이야기를 하면서 예를 들어서 그들에게 자문자답을 하도록 유도를 한다. 즉 그들에게 하루 아침에 소변 문제, 노래 가사, 이상한 논리가 해결 된다고 가정할 때 대인관계, 일자리 문제, 하지 않고 미룬 공부, 미래의 장래 문제가 한번에 해결될 수 있겠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실토를 하게 된다. 고로 실제로 그들은 그 증세 자체를 해결하기 위해서 1년 동안(첫 번째 중학생의 경우), 2년 동안(21세의 청년의 경우) 그리고 14년 동안(24세의 뇨도 감염 강박증의 청년) 매달려서 비뇨기과 의사, 신경정신과 의사, 한의원 그리고 심리상담 사 한데서 온갖 약물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제는 해결되어지지 않았다.


치료자는 먼저 그 환자의 강박증 증세들을 어린 시절의 그 환자의 역사들을 분석하고 그리고 발달 단계들을 분석해서 어디에서 고착이 일어났는지(그 자아의 성장이 중지되거나 발달 지연이 된 것) 밝혀내면서 그 고착을 해결해서 자아가 다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를 하면서 그들의 강박증을 성공적으로 치료를 해서 완전히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난 치료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치료자는 강박증의 그 증세 자체를 다루지 않는다. 그 증세가 상징하는 근본 문제들을 분석으로 찾아내서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그 증세를 완화시키고 사라지게 하는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아래의 강박증 치료 사례들을 읽어주기 바란다.


더 붙여서 5년 동안 치료자에게 강박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C군의 자아를 분석해 오면서 강박증의 특징들과 그들이 어떻게 정신분석적으로 치료 되어지고 있는지?를 좀 더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치료자는 강박증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해 오면서 초반기부터 강박증 증세들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감정이 없고 기계적이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이 강박증 증세들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는 것을 수 없이 많이 분석가들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즉 그들은 기계화된 컴퓨터로 유추될 수 있다.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인간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박에 없고 실수를 하는 것이 인간으로 실수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실수를 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끝나는 건강한 사람들과 달리 강박증 환자들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기계적으로 행동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긴장이 올라가서 더욱 더 불안해지고 그 결과 더욱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치료자가 최근에 영국의 신경과 의사로써 프로이트 밑에서 40년 동안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치료를 해 온 영국의 신경과 의사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이 쓴 프로이트의 전기(傳記)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프로이트가 강박증에 대해서 이미 1900년 이전에 연구한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초반기 불안 신경증과 강박 신경증 그리고 히스테리아 신경증과 신경쇠약증 등의 원인과 치료 기법을 연구 하면서 특별히 강박 신경증에 대해서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자아가 감정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감정들을 전환으로 다른 것으로 바꾸어서 아이디어들로 바꾸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강박 신경증에 대한 프로이트의 연구는 이후에 분석가들에 의해서 강박증 환자들은 감정이 없고 기계적이고 그리고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하려고 함으로써 불안에 대처해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말과 일치 되었다. 프로이트는 이미 100년 전에 강박증의 핵심을 알고 있었다. 이것을 지금 5년 동안 치료자로부터 뇨도 오염 강박증으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C군의 사례와 연결 시켜서 강박증의 치료의 핵심 과정을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C군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올라가려고 하는 시쯤에서 음주 운전으로 갑자기 사망을 한 아버지가 원인이 되어서 3학년 초반기부터 누가 입에 독약을 넣어서 죽이려고 한다는 강박사고 때문에 입을 다물어버렸고 음식은 쇠고기, 돼지 고기, 닭고기 등은 목에 결려서 죽을 것이라고 먹지 않아서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는 몸무게가 14kg이 줄어들었고 밤에 소화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에 어머니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언니네 아파트에서 2년간 같이 살면서 언니가 하는 슈퍼마겟에서 도우미로 일을 하다가 보험업, 화장품 판매업 등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고 아침에 나가면 저녁 11시경에야 들어왔기 때문에 C군은 항상 불안했고 어머니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면서 전자오락에 빠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말이 없어진 C군을 보고 미술 치료사에게 치료를 받게 했으나 몇 개월 후에 그 미술 치료사가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그 이후에 심리치료는 없었다. 어머니의 말로는 C군이 치료사와 만나는 것 그 자체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게 할 수 없었다고 토로 했다. C군이 군복무를 끝내고 그가 고교 시절에 읽었던 미국의 저명한 분석가가 쓴 통증의 혁명이라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심리치료의 절실함을 느꼈고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자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한다는 것을 알고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그의 강박증의 치료가 시작되었고 지금은 5년째 치료자에게 그의 뇨도 오염 강박증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자는 C군의 강박증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C군이 초등학교 3학년-중학교 1학년까지는 독약이 입어 들와서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다물어버렸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외톨이로 전자 오락에 (4,5,6학년 동안 하루에 최하 5시간-10시간씩 투자, 여기에 심한 자위행위가 있었음) 빠졌다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기 오염 강박증으로 강박증의 핵심이 바뀌게 되어서 지금까지 뇨도 감염 강박증이 되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특별히 C군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자신의 소화기관의 부실(6년 동안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함)과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식사를 할 때 100번씩 씹어 먹는 것을 4년 동안 계속했기 때문에(군 입대로 100번씩 씹어먹는 행동은 중단) 소화기관이 회복되면서 음식을 먹는 것은 회복이 되었고 이 시쯤에서 독약을 입에 넣는다는 편집증에서 뇨도 감염 강박증으로 증세의 핵심이 바뀐 것을 노트할 수 있었다.


 C군은 지금도 길거리에서 오염된 하수구, 공중 변소의 화장실, 수영을 하면서 샤워장에서 몸을 씻을 때 옆 사람의 물이 틔어오는 경우 등에서 자신의 성기가 오염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그러한 일이 있을 때에는 팬티를 갈아 입거나 심한 경우에는 팬티를 버리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치료자의 심리치료 이전에는 3개월마다 한번씩 비뇨기과에 찾아가서 뇨도 감염을 검사를 받고 있었다.


치료자는 치료 초반기부터 강박증 증세들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C군이 강박증 증세로써 감추어서 피하고 있는 대인관계, 학업, 일자리(경제적인 능력), 미래에 대한 계획, 이성관계 등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C군을 분석하면서 C군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입을 다물어버린 것을 분석하면서 그가 아버지의 사망 직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C군의 죽음 공포가 상징) C군의 자아가 교묘하게 이것을 독약이 입에 들어와서 죽을 것이라는 한가지 아이디어 즉 생각으로 바꾼 것으로 해석해 주면서 C군이 이것을 깨닫게 했다.


 그 증거로써 C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 수업 시간 혹은 일상의 생활에서 자신의 에너지의 95% 이상이 입에 독약이 들어올까 봐서 입을 다물고 주변의 상황들을 관찰하는데 모두 소비해버렸고 정작 공부에 집중은 단지 5 % 뿐이었다는 그의 고백을 들었고 지금까지 그 5%의 에너지가 일상생활 그리고 학업, 일자리, 미래의 불안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등에 투자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가 있었다.


치료자는 C군의 자아가 대인관계, 학업, 일자리, 미래의 삶 등에 대해서 직면해서 감당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불안을 뇨도 강박에 집중하게 된 것을 지적을 하면서 뇨됴 강박은 자아가 감당할 수 없는 실제 문제의 분석과 개선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아가 성장을 개발을 중지해 버린 감정의 표현으로 치료의 초점을 맞추면서 5년간 강박증 치료를 해 오면서 C군의 대인관계와 일자리로 경제적인 문제, 학업(기술적인 능력의 배양), 미래의 삶을 기획하고 계획 등에 초점을 맞추어서 치료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치료의 효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그는 2016년에는 은행 보안원으로 처음으로 6개월 가량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직후에부터 올해 5월 달까지 약 8개월 동안 한 일자리에서 견디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10개월 동안 비뇨기과를 찾지 않았고 또 2개월, 3개월마다 감기로 고통을 받았으나 지금은 약 10개월 동안 감기를 앓지 않았다. 이것을 치료자는 불안의 감소와 긴장의 방출로 인한 면역 기능의 강화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을 했고 C군도 이것을 시인을 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대인관계에서 의사 소통 능력이 많이 개선되어져서 그 스스로 대인관계가 약 60%로 좋아졌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에 들어와서 과거에는 동료들과 관계를 피해 다녔으나 올해부터는 그룹 모임에 참석해서 자신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대화에 참가하려고 몇 번씩 시도를 한 것 등은 치료의 효과로서 본인도 스스로 인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뇨도 감염으로 소변을 하루에 20-30회를 화장실을 드나드는 행동은 변함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치료자는 C군의 불안의 량은 별로 변함이 없기 때문에 즉 대인관계, 일자리로 경제적 능력, 미래의 불확실함(전문직장의 확보) 그리고 공부로써 능력의 배양 등에 대한 불안이 감소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의 불안은 아직도 소변으로 집중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C군의 자아를 분석하면서 최근에 알게 된 새로운 실마리를 분석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C군은 3-4세 사이에 부모님의 맞벌이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1년간 양육을 받았고 할머니가 C군을 감당하지 못해서 C군을 영아원에 1년 동안 보냈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C군은 할머니 집에서 살았던 기억은 희미하게 있었지만 영아원에 맡겨진 기억은 없었다. 어머니가 우연히 그 영아원에 찾아가 보았을 때 아들 C군은 스파르타 식 영아원으로 어린이들을 마음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리가 된 유아실을 보고 저것이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고 느꼈지만 그 영아원 운영자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최근에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C군은 할머니 집에서 그리고 영아원에서 주변환경을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환경 탐색을 하는 2-5세 사이에 주변 환경을 어지럽히고 주변을 엉망으로 엉클어버리고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유아들의 특징을 부모님 혹은 조부모 혹은 영아원에서 통제하고 처벌을 했기 때문에 C군은 환경 탐색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서 그 시쯤에서 자아 결함이 어른이 된 지금 그대로 그 때의 자아가 성장을 하지 못하고 지금 현재에 작동하고 있음을 해석해 주었다.


  C군이 얼마 전에 길거리를 다가가 공사를 하고 있는 공사장에서 먼지와 분진들이 몸에 흡수되어 뇨도 감염이 될 것이다(모든 것이 뇨됴 감정이 특징) 또는 몇 주일 전에 길거리에서 죽은 쥐를 보고 그 쥐에서 병균이 오염되어져서 C군 자신의 성기 오염으로 죽을지 모른다. 혹은 카페에 갔다가 화장실에서 불결한 화장실에서 물이 내려올 때 그 물이 튀어서 성기에 오염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침투를 해서 집에 와서 팬티를 버리거나 혹은 그 팬티를 여러 번 빨아서 그리고 샤워를 몇 번이나 되풀이를 했다고 치료 회기에서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C군의 행동이 2-4, 5세에 어린이들이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부딪치면 울면서 저놈이 나를 해코지를 했다고 어머니에게 호소하는 어린이들의 자아를 지적을 하면서 C군은 유아기의 자아가 성장하지 못하고 지금 현재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즉 그 시점에서 C군의 자아는 신체적 자아로써 모든 사물들이 살아 있어서 자신을 해코지 하려고 한다는 그 신체적 자아가 자아를 달래는 자아 기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신체적 자아(body images)로 고착되어 남아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지금도 더러움, 불쾌감, 공포, 위기 등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신체적 자아가 작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 증거로써 C군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환경 탐색의 불안을 부모가 흡수해서 자아를 달래주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항상 혼자서 자신의 자아를 달랠 수 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증거들을 지적을 할 수 있었다. 한가지 예를 들어서 아버지의 사망 후에 C군이 학교에서 동료들의 침 혹은 먼지 혹은 제스처들이 자신의 입에 독약을 넣으려고 한다는 두려움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고 처벌을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말을 하면 이상한 돌 아이 취급을 당한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멸시, 조롱을 당한다고 말을 하지 못하게 C군의 입을 막아버린 것을 C군이 이야기를 한 것을 지적을 했다. 어머니는 C군의 불안을 흡수해서 말로써 두려움을 표현하도록 도와주어서 C군이 자아의 달램 기능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러한 자아가 공포, 두려움, 죽음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편리하게 입만 다물어버리는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래서 결과적으로 살아 남았지만 그는 평생토록 편집증(누가 입에 독약을 넣어서 죽이려고 한다는 끝없는 생각들의 침투)과 뇨도 감염 강박들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번 주일 치료 회기에서 C군은 꿈을 보고를 했다. C군은 지금까지 심리치료 5년 동안 한번도 꿈을 보고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 꿈 속에서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죽은 쥐가 몇 마리 썩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샤워기로 샤워만 하고 나오는데 두 사람이 목욕탕에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들에게 한마디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나오면서 목욕탕 주인에게 분노, 짜증,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참고 그 목욕탕을 나왔다고 꿈을 보고를 했다.

치료자는 최근에 그 꿈을 꾸도록 자극 요인이 있었는지? 물었고 C군이 지난 주일에 수영장에 수영을 하러 가면서(C군은 올해부터 운동으로 수영을 하고 있음) 길거리에 죽은 쥐가 보였는데 혹시 성기에 오염이 되는 것이 아닌가?해서 자신의 팬티를 여러 번 씻었고 샤워를 몇 번 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이 꿈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죽은 쥐를 보고 그것에 대한 불쾌한 감정들 즉 짜증, 분노, , 그리고 메스꺼움, 구토, 위가 뒤틀리려고 하는 더러움 등의 감정들을 목욕을 하러 온 두 명에게 그리고 목욕탕 주인에게 한마디도 말로써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 감정들 대신에 뇨도 오염 생각으로 바꾸어버린 자아의 방어를 지적을 하면서 그 감정들을 동료들, 목욕탕 주인과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로써 표현을 하는 훈련을 하면서 자아의 속임수를 깨닫게 하는 치료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환자가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증세가 심각한 것으로 해석을 한다. 치료의 과정에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 환자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치료의 효과를 증명하는 것으로 강조를 하고 있는 분석가들의 연구 내용을 지적을 하면서 C군의 감정이 해빙이 되어 조금씩 표면으로 등장하고 있는 좋은 증거로써 지적을 해 주었다.

C군의 치료 과정을 상세하고 알고 싶은 분들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대상: 군복무 후에 복학을 준비하는 대학생 C


증세: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소변이 너무 잦아서 스스로 빈뇨 증(구취증, 빈뇨증은 C군이 스스로 붙인 이름)


접촉: 어떤 학자가 쓴 통증 혁명(심인성 질환)"이라는 서적에 감동되어 자신의 문제점이 심인성 질환으로 확신하고 인터넷에서 치료자정신분석 심리치료심인성질환 홈페이지를 접하고 전화로 치료 문의를 해 왔음


진단: 일반화된 불안장애, 대인공포증, 심인성질환(구취증, 빈뇨증), 회피적 성격장애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으로 6개월간의 치료 계약을 맺고 치료를 시작을 했음. 아래의 치료는 제 2 회 치료회기의 총 4시간의 치료 과정에서 B군의 심리적인 증세들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C군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서 올 해 2월 달에 전역을 한 후에 1년을 휴학으로 쉬면서 실종 아동 찾아주기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으며 내면 3월 달에 대학 2학년에 복학할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으로 xxx 대학에서 경영 정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어떤 학자가 쓴 "심인성 질환"이라는 책을 읽고 자신의 심리적인 증세들이 심인성 질환이 틀림없다고 확신을 한 후에 인터넷에서 심인성 질환이라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휴대 전화로 연락을 해서 첫 시간부터 심리치료를 계약하고 6개월간의 심리치료에 들어가게 되었다.


 심리치료를 하려면 그 개인의 발달의 역사, 즉 성장 배경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그의 양육의 역사, 그와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학교 시절에 동료들과의 관계, 지금 현재의 문제점(그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증세들), 그의 미래에 대한 비젼 즉 그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하는 기대, 소망들을 샅샅이 살펴 보아야 한다.


C군의 성장 배경: C군은 외아들로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이전에는 큰 문제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의 유치원 시절에 대한 기억은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유치원 시절에 활동을 활발하게 잘 했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서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었고 친구네 집에서 자주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에는 학교에 가기를 좋아했고 친구 관계도 좋았다고 했다. 현재의 모든 문제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그가 털어 놓았다.


아버지가 교통 사고로 사망: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느날 그와 어머니는 밤 중에 전화 벨 소리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 경찰관으로부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 갔을 때 병원의 영안실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음주 운전을 하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리게 되자 도망을 하게 되었고 경찰 순찰차의 추격으로 쫓기다가 과속으로 충돌 사고로 즉석에서 사망했다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전부였다. 사고 직전에 아버지는 이모와 이모부가 운영하는 슈퍼마겟을 인수해서 8개월간 운영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약 3분의 2 정도 매각이 진행된 상태에서 술을 잡수시고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리게 되자 도망치다가 운전 부주의의 사고로 사망을 했다는 것이었다. 더 붙여서 C군은 아버지가 사망 1주일 전에 둘 째 큰 아버지와 승용차를 바꾸어서 운전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에 대해서 어머니가 둘 째 큰 아버지와 대판 싸움을 벌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둘 째 큰 아버지와는 그 앙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대소사에는 서로 큰 갈등은 없다고 했다.


 C군은 아버지의 사망 후에 슈퍼마겟는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하고 전업 주부였던 어머니가 일을 하게 되면서 이모네 집에서 같이 살 게 되었다.이모부와 이모는 C군의 부모님에게 그들이 운영하던 슈퍼마겟을 매각하고 다른 슈퍼마겟을 시작해서 지금도 슈퍼마겟을 운명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망 후에 C군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극심한 공포증을 가졌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입에다 독약을 넣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극구 싫어하고 사람들을 피했다고 했다. 그는 이모네 가족 구성원들을 피했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자신의 음식에 독약을 넣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고 했다. 심한 대인 기피증 때문에 어머니는 이모 가족과 1 6개월간 같이 살다가 집을 얻어서 C군과 함께 독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는 어머니가 죽지 않을까?두려움 속에 살았다고 했다.

 ​치료자가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여러 번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가는데 C군이 뒤에서 따라 가는 꿈들이었는데 꿈 속에서는 아버지가 반가웠으나 꿈을 깨고 난 다음에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저승으로 가는 저승 사자처럼 느껴져서 아버지를 따라가면 저승으로 가는 것일 지로 모른다고 두려워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C군과의 관계를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C군은 아버지와의 갈등 관계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갈등 관계는 한번은 통 닭을 사 가지고 왔을 때 아버지가 통 닭을 먹기 전에 C군이 먼저 통 닭을 먹었다고 아버지는 그를 도어 문을 열고 내 쫓았다고 했다. 때리지는 않았는데 집 밖으로 내 쫓았다는 것을 기억을 했다. 그 당시에 그는 얼마나 그가 잘못했는지를 몰랐다고 했다. 두 번째 C 군이 맛있는 생선 요리에 너무 과식으로 음식을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해서 토해내고 있는데 아버지는 전혀 무관심으로 일관해서 섭섭해 했다고 했다. 그 두 개의 이벤트 이외에는 아버지와 갈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외에는 아버지는 C군에게 좋은 이미지로 항상 C군에 잘 대해 주었던 아버지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C군은 주변의 사람들이 두려워지고 자신에게 독약을 넣지 않을까? 두려워했다는 그 공포증 이외에도 4학년 쯤에서 한 친구가 자신에게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그는 그의 구취증(그가 붙인 증세 이름)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시쯤에서 그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위와장이 약해서 위와 장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은 탓으로 냄새가 날 것이라고 해서 육류(소고기 돼지 고기 증 찔긴 음식)는 초, , 고등학교 때까지 먹지 않고 있다고 지금은 육류는 잘 먹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점에서 소화 불량으로 힘들어지면서 그는 어머니가 소개한 놀이 치료를 10개월 정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놀이 치료 선생님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 버리는 바람에 그는 놀이 치료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는 놀이 치료가 그에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놀이 치료가 약간 효과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소변이 잦은 빈뇨증(그가 붙인 증세 이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 고등학교 시절에는 빈 뇨증이 심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하루에 몇 번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냐? 물었을 때 그는 하루에 7-8회 정도 드나든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종합 검사를 했을 때 신체적인 이상이 없다는 말에 그는 빈 뇨증의 원인이 그의 심한 자위행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빈 뇨증은 지금도 심하다고 했다.

 입에서 심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관계를 일부러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로 친한 친구 관계가 끊어지면서 대인 공포증이 생겼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연히 친구들과 만나면 끌끄러워지면서 친구들을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부는 이러한 증세들 때문에 주의 집중에 잘 되지 않아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많은데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못해서 대학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들이 그에게 그가 공부를 하는 시간에 비추어서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해 준 친구가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전업 주부로 있다가 일을 시작했고 보험 세일즈 혹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은 역술학을 공부를 해서 역술인으로써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심리치료에 대해서 어머니께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C군은 어머니는 심리치료 보다는 약물 치료를 선호하고 있으나 C군은 약물 치료보다는 심리치료를 선호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C군이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치료 비용을 부담해 주셨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놀이 치료 이외에 정신과 치료나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라는 물음에 C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신경 정신과에 갔었으나 신경 정신과 선생님은 간단한 5분 정도의 이야기로 약물 치료를 처방해 주어서 약물을 약간 복용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이후에 인근에서 심리치료 센터에 가서 심리치료를 3개월 정도 받았으나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심리 치료사가 그의 병명이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는 물음에 병명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50분씩 상담만 하다가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군 복무 시에는 큰 어려움들은 없었으나 그가 근무를 하고 있던 해안 경비대에서 근무를 하면서 동료들과의 큰 어려움이 있었느냐?라는 치료자의 물음에 동료들과는 큰 어려움들은 없었다고 했다.


 C군은 자신은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그가 3- 4살 사이에 1년 동안 할아버지, 할어머니 집에서 1년간 같이 살았다고 어머니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더 붙여서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어머니가 일을 하러 갔을 때 저녁 늦게 오시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해서 어머니로부터 심한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공작 시간에 공작을 만들면서 그는 동료들이 만든 공작물이나 자신이 만든 공작들이 자신의 목구멍에 걸려서 혹시 질식해 죽는 것이 아니냐! 하는 두려움으로 떨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생선이나 뼈가 있는 음식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했다. 고개 뼈가 목에 걸려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외의 신체적 증세들은 없다고 했다. , , 고등학교 시절에 소화가 잘 안되어서 소화 불량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소화제를 매일 저녁 마다 한 알씩 먹었다고 했다. 소변 잦은 이외에는 다른 신체적 증세들은 없었다고 했다.


 가족 관계와 친척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외가 쪽에는 외할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외할머니는 전업 주부로 살림만 했으며 큰 외삼촌은 대학 시절에 법대을 졸업했으나 고시에 실패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지금은 직업도 없기 은퇴한 외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어머니의 언니인 이모 내외가 슈퍼마겟을 운명하며 살고 있고 어머니의 남동생인 외삼촌은 수재로써 국비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을 간 후에 외숙모는 같이 독일에 유학을 가지 못하고 이모네에 C군 가족이 살 때 같이 살았으면 이후에 C군의 가족이 독립해서 살 때 3개월 정도 같이 외숙모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외숙모와 C군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고 했다. 친족 관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따로 살고 있고 큰 아버지는 대학에서 행정적으로 근무하고 있고 작은 큰 아버지 내외가 있고 아버지의 사망 직전에 작은 큰 아버지가 승용자를 바꾼 것 때문에 어머니와 작은 큰 아버지가 대판 싸운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고 시집을 간 고모가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 큰집에 어느 쪽에 간 기억이 많으냐고 했을 때 외갓집에 자주 간 기억이 많다고 했다.


 현재까지의 증세들: 구취증(입 안에서 냄새가 난다는 공포증), 빈 뇨증(소변이 너무 잦아서 고통스럽다)은 지금 현재 그가 가장 해결하고 싶은 증세들이고 나머지 대인 공포증, 학습에 주의 집중 정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구취증에 대서 살펴 보자. 구취증이라는 증세의 이름은 C군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몸이 기형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많은 쓰는 증세를 가진 장애가 있다. 정신의학에서 이것을 신체 기형 공포증이라고 불리운다. 치료자가 치료를 한 경험으로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자신의 항문에서 구린내(똥 냄새)가 난다는 아가씨로 대인 관계를 아예 피하고 두문불출하는 여성으로 그녀는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된 사람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얼굴이 기형이라고 수십차례 수술을 받아서 심한 기형적인 얼굴이 되어 TV에서 소개된 "선풍기 아주머니"와 같은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정신분열증으로 자신의 신체에 기형에 집착하게된 심한 환자에 속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C군은 심한 신체적 기형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약 투입에 대한 공포 때문에 대인관계를 피했다는 점은 심한 불안증으로 일반화된 불안 장애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한데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증세는 신체 기형 공포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C군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입에 독약을 넣거나 음식에 독약을 탈 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대인관계를 피하게 된 것은 편집증(다른 사람을 심하게 의심)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는 성향은 아닌 것으로 보아서 편집증으로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고 본다.


이론적 근거: 치료자는 C군에게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여러 개의 증세가 시작된 것으로 볼 때 C군 자신은 증세들은 무엇 때문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증세는 심한 불안증으로 그가 인정을 하고 있었지만 무엇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다른 사람을 피하고 소화 불량으로 매일 저녁마다 소화제를 한 알씩 6학년 때까지 복용을 했으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소변이 잦아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그 자신도 유추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C군과의 2시간 인터뷰 상담에서 아버지와 C군과의 관계를 찾았으나 유치원 시절 혹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점에까지는 특별한 상처 경험이나 결함들을 발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왜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여러가기 증세가 폭발을 했는가?를 분석하면서 한가지 실마니를 찾을 수 있었다. 분명히 C군은 아버지와 죽음과 자신의 증세 발발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C군도 시인을 했고 누가 보아도 분명히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증세 발발은 관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치료자는 그의 한 말 중에서 그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3-4살 사이에 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1년간 아버지와 어머니와 떨어서 살았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분리 불안으로 작동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C군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특별히 C군에게 잘 보살펴주고 사랑을 주었다는 기억은 확실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분리에서 불안 심하게 가진 것은 분명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어머니가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C군이 저녁에 어머니를 집에 빨리 돌아오라고 보채는 것에서 볼 수 있다.

 C군이 심하게 어머니에게 집에 빨리 오라고 보채는 것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처벌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한 것에서 그가 분리 불안을 심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옆에 없어서 심하게 불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 분리 불안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심하게 나타났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C군의 분리 불안을 막아주고 있다가 아버지가 사라지자 그 분리 불안이 C군을 엄습한 것이었다. 고로 어머니가 일을 하러 나갔을 때 C군은 불안에 휩싸여 공포 속에서 살 게 된 것이었다. 심리학자 듀폰(DuPont, 1982)은 공포증을 "어른의 분리불안"으로 보고 있다. C군은 아버지로부터 분리 불안으로 공포증(독살될지 모른다는 공포증) 속에 휩쓸려 가족, 친지들과 관계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족, 친지들 한데 왜 편집증적인 의심으로 독약을 넣어서 죽이게 할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가족들과의 관계를 피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친족과 관계에서 작은 큰 아버지가 아버지와 자동자를 바꾼 이후에 아버지가 음주와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고 어머니가 작은 큰 아버지와 대판 싸운 것에서 친가 가족 쪽에 분노와 원망이 있다는 것을 C군이 감지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 있고 그리고 두 번째 이모와 이모부가 운명하는 슈퍼마겟을 인수를 받아서 8개월간 운명을 하다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음주로 사고나 나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가 인수를 받은 그 슈퍼마겟이 잘 운명이 되었으면 왜 8개월 후에 매각하려고 시도를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슈퍼마겟이 잘 되지 않아서 다시 팔겠다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술을 마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쾌감 화가 나서 술을 마셨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찰 순찰차에 걸리자 아버지는 도망을 쳤고 음주에다 아버지의 내면에 쌓인 분노는 그 경찰관들에 대한 분노로 방향이 바뀌어서 경찰관들에게 분노가 흘러가면서 도망과 "붙잡으려면 붙잡아보아라"라는 분노의 표현으로 방향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C 군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것을 감지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는 친가와 외가쪽 가족 구성원들에게 감정 지원과 관계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어머니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어머니의 내면의 마음이 C군에게 반사되어 흘러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서 C군이 아버지에 대한 죽음에 애도를 하지 못하고 내면의 마음 속에 갇힌 감정들이 소화 기관 쪽으로 흘러가서 심한 위와 장에 소화불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C군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무런 감정의 표현이 거의 없었다는 말을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애도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했다. 이 애통이 내면 마음 속에서 쌓여서 위와 장으로 흘러갔고 분노, 적대 감정이 가족 구성원들 친족 들 한데로 흘러가서 그들의 접촉을 막아 버린 것으로 보인다. C군은 아버지와 관계가 아버지의 죽음 이전까지는 좋았다는 점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물론 이것은 C군의 첫 2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치료자가 분석한 것으로 이것은 이후에 치료에서 그것이 확실한지 아니면 다른 원인으로 나타날 것인지는 분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날 것이다. 치료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이 하나씩 밝혀질 것이다. 치료의 과정에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부분이 바로 그 애도의 과정을 다시 거치게 하고 마음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분노(가족을 버리고 먼저 떠나간 것에 대한 분노)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C군은 이후에 분석에서 심한 공포증임이 밝혀졌다. 그의 증세들은 그의 내면의 공포감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자아 소멸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의 증세들을 개발한 것으로 분석이 되었다. 그의 상세한 분석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