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천상천하의 유아독존의 정신분석적 해석 1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7. 7. 29. 09:31

천상천하의 유아독존의 정신분석적 해석 1

 

천상천하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은 석가모니가 한 말로써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혼자이다 라는 말로써 정신분석에서 이 세상에서 나는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이다 라는 자아 이론과 일맥상통 하다는 점에서 이 말의 정신분석적인 의미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천상천하의 유아독존이라는 말의 원래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석가가 태어났을 때 외쳤다고 하는 탄생게(誕生偈): 석가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외쳤다는 탄생게로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라고 풀이된다.


이 말은 경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데, 《전등록(傳燈錄)》에는 "석가모니불이 태어나자마자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사방을 둘러보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고 말하였다(釋迦牟尼佛初生 一手指天 一手指地 周行七步 目顧四方曰 天上天下唯我獨尊)"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에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하였고,

《서응경(瑞應經)》에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뿐인데 무엇이 즐겁겠는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何可樂者)?"라고 하였으며,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의 전법륜품(轉法輪品)에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가장 뛰어나다(天上天下 唯我最勝)."라고 기록되어 있어 표현의 차이를 보이지만 의미는 같다.

삼계(三界)란 천상·인간·지옥계를 말하며, 일곱 걸음을 걸어갔다는 것은 지옥도·아귀도·축생도·수라도·인간도·천상도 등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유아독존' ''석가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개개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한다. 석가가 이 땅에 온 뜻은 바로 이를 깨우쳐 고통 속에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고 인간 본래의 성품인 '참된 나(眞我)'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2017, 7, 29, 두산 백과에서 인용)(굵은 글자는 필자의 첨가).


위에서 인용한 대로 치료자는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석가모니가 보리수 밑에서 수행 후에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얻은 말로 본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귀하다. 이 우주의 중심 즉 이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이다 라는 말로 해석할 수가 있다. 이 말은 우리가 늘 듣는 말로써 내가 없는 이 세상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세상을 얻는다고 해도 나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등의 의미로써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는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라는 자아의 존재로부터 시작된다는 말로써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라고 본다.


이 말은 바로 정신분석에서 자아(自我)라는 말과 그리고 자아주체성(自我主體性)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Erikson, 1963. 주㈜: 참고). 자아라는 말은 내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써 자아의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 자신이라는 존재는 내가 내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사실은 내가 내 자신을 안다는 것은 부처가 평생토록 삶의 의미 즉 삶과 죽음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 수행한 결과 얻는 고귀한 의미를 가졌다는 점에서 내가 나를 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본다. 나가 내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유일한 것이고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거울이라는 물건을 통해서 본 내 허상이다. 즉 거울이 왜곡이 되면 내 모습이 왜곡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은 제 1 차적으로 엄마이고 그리고 제 2 차적으로 아빠이고 그리고 제 3 차적으로 주변 환경(가족구성원, 친척들 그리고 동료들)이다. 그들에 의해서 내 자아가 형성되고 내가 나를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1999, 김종만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서문에서 인용).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창조를 하면서 그는 일찍이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명언인우리 자신의 자아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감추어져 있다. 즉 모든 보물들 중에서 우리 자신의 것이 파해쳐져야 할 마지막 보물이다.”이라는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자아 찾기(정신분석의 시작)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Jones, 1963,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에서 인용:주㈜:).


이 말은 성서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말 즉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에 대들보는 보이 못한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닌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 즉 는 비교적 정확하게 보지만 를 안다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직접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으로 되돌아가서 즉 내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어져가는가?를 살펴 보자. 인간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 10개월이 성장과정을 통해서 태어난다. 태어났을 때 인간은 백지상태와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출생 직후에 인간의 신생아(출생 후에 1일 혹은 2일된 아기)는 먹고자고 먹고자고 를 반복하는 핏덩어리로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그렇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50년 이후에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발달 학자들이 신생아를 연구해보면서 신생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어리가 아니고 주변의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스스로 적응해 나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출생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엄마의 뱃속에 10개월 동안 태아의 상황에서 발달 학자들이 알게 된 사실들을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섹스 후에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 나팔관에서 이루어져서 수정난이 되어서 4일 후에 자궁에 착상이 되어 10개월 동안 자라나게 된다. 여성이 섹스 후에 생리가 없으면 이미 임신 1개월이 지나가는 것이다. 임신 1.5개월 때 찍은 태아의 사진을 보면 이미 눈과 머리(전뇌, 중뇌, 후뇌의 형성)와 손과 발이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는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그 시쯤에서 병원이 없었기 때문에 임신의 유추를 섹스 이후에 매달 있는 생리가 없는 경우에 임신으로 그리고 입듯을 하는 것을 보고 임신을 추측을 했다. 어떤 음심의 냄새에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구토, 메스꺼움을 느낄 때 임신으로 보았다, 최근에 밝혀진 것은 이것은 태반 호르몬의 영향으로 태아가 자궁에 잘 착상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3개월이 되면 인체의 장기가 다 생긴 것으로 본다. 미국에서는 3개월 이전은 인간으로 보지 않지만 임신 3개월을 인간으로 본다. 고로 병원에서 낙퇴 수술을 불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이 기간에 인체의 모든 장기들이 생기는 기간으로 보기 때문에 여성들이 이 기간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기형아 출산이 7배 높은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임신 7개월 정도가 되면 태아는 엄마의 목소리를 알 수 있고 엄마의 심장 박동소리를 익숙하게 듣는다. 이 시점에서 엄마와 아기가 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최근에 등장한 각종 장난감들이 임신 7 개월 이상이 된 엄마가 장난감을 엄마의 배에 대고 아기와 대화를 하는 것 그리고 태명을 지어주어서 태아와 대화를 하도록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가 아닌가? 발달 학자들이 실험을 한 것을 보면 임신 7개월 때 엄마가 아기에서 들려주는 목소리들을 녹음을 해서 출산 직후에 신생아에게 들려주었을 때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 말과 다르게 반응을 했다. 즉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심장 박동과 호흡이 빨리 안정되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Eliot, 1999: 주㈜: 참고).


하버드 의과대학과 피치버그 의과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한 프로젝트에서 과거에는 지능이 타고 나는 것으로 보았지만 엄마의 자궁 안에서 환경이 49%의 영향이 미치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이것은 1960년대에 컴퓨터의 등장으로 버클리 생리학 연구실에서 쥐들을 장남감이 많은 환경과 열악한 환경에서 양육을 했을 때 장난감이 많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쥐들의 놰 세포가 24%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과 보고되면서 인간에 뇌 세포의 연구로 확대되면서 위와 같은 연구들이 쏱아져 나오게 되었다. 이후에 인간 역시 좋은 환경과 나쁜 고아원에서 자란 어린이들의 뇌 세포가 25%가 차이가 났다는 연구결과들이 뇌 세포도 역시 환경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Diamond, 1999: 주㈜: 참고).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임신 한 여성은 초상집 혹은 상가집에 출입을 금지시키고 음식물(족발의 금지)들을 가려서 먹었던 태교들은 입증이 되었다. 출생 후에 새끼줄을 대나무에 걸어서 아무나 집에 드나들지 못하게 한 것(전염병)은 이러한 이유 때문임을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것이 아닌가?


출생 직후에 신생아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는 없지만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신생아들에게 마분지로 인간의 얼굴의 모양들 즉 눈, , , 귀의 그림들을 보여주었을 때 눈, 입을 가장 많이 보았다는 것으로 보아서 신생아는 부분 대상들로 시작해서 대상들의 통합으로 간다는 것이 밝혀졌다.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눈, 그리고 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에 출생 3개월이 되면 눈, , , 귀 등이 통합된 대상으로써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었다. 이것은 출생 후에 100일 사진을 찍는 것과 관계가 있다. 아기는 인간의 모습 즉 엄마의 웃는 얼굴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으로 이 시쯤에서 아기는 방긋방긋 웃을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아주면 좋아하고 누구에게 든지 잘 안긴다.


출생 후 3개월의 시쯤에서 아기는 두 눈에 초점이 잡히고 사물을 깊이 지각을 인지하는 것으로즉 사물을 입체적(눈의 기능이 가장 좋은 때가 20/20으로 신생아의 경우에는 20/125로 밝혀졌다)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3개월 된 아기를 두개의 테이블로 가운데를 거리감을 두게 해서 그 위에 두꺼운 유리를 덮어서 그 위에게 아기를 앉혀 놓았을 때 3개월 이후의 아기들은 유리에 비찬 낭뜨러지를 두려워했지만 3개월 이전의 아기들은 그것을 지각하지 못한 실험들의 사진들이 심리학 개론 교과서에 소개되어있다.


신생아들은 5감각을 타고 난다. 신생아는 엄마의 젖과 우유를 구분할 수 있었다. 실험에서 엄마의 모유, 우유, 물을 탄 젖병을 신생가에게 주었을 때 모유를 가장 깊게 많이 빨았다. 신생아의 맛 봉오리는 어른들보다 3배 혹은 4개가 많았다. 그리고 신생아는 단맛을 좋아한다 라는 등의 실험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을 했다.


출생 7개월- 9개월 시쯤이 되면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알아본다. 엄마의 이미지가 생겼다는 증거로 본다. 아기는 처음으로 엄마의 얼굴을 인식하고 엄마에게 매달리고 엄마가 아닌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피하게 된다. 이것을 낯가림으로 낯선 사람들에 대한 불안으로 본다. 최초로 정신 장애의 등장을 분리불안으로 본다. 여기에서 보면 인간이 최초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엄마의 얼굴이다라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기가 자신의 자아를 알게 되는 것은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고 나서 1 6개월에서 - 2년의 시점에서 아기는 자신의 자아의 이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아기의 본능적인 자아 즉 원초자아(id)는 타고 나는 것으로 먹고, 마시고, 대소변의 욕구 불만족인 불쾌감을 울음으로 표현을 하는 것에서 0-1세를 구순기의 욕구 만족으로 표현을 했다. 그런데 자아(ego)가 생기는 것은 1- 3세로 항문기로 보았다. 이 시쯤에서 아기는 엄마의 품에서 분리되어 기고 서고 걷기를 배우면서 환경을 컨트롤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내가 먹겠다.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 내가 대소변을 마음대로 내 몸을 컨트롤 하겠다 등등에서 즉 자아가 등장하는 것으로 이론화 했다. 프로이트의 이런 이론들은 실험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증주의 과학자들로부터 소설적이라고 외면을 당했다.


이후에 컴퓨터의 등장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이 실험으로 증명이 되었다. 정신분석 발달 학자인 브레즐턴의 실험은 아기가 자신의 자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아기가 1살이 되었을 때 그의 쪼끼에 조그만 막대기에 꼽고 그 위에 모자를 씌워서 거울 앞에서 거닐께 했을 때 아기는 그 거울에 비친 모자를 쓴 모습이 움직일 때 마다 그 모자를 쓴 아기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자신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것은 인식을 했다. 그러나 그의 코에 루즈를 칠해서 거울 앞에 세웠을 때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그의 코에 이상한 루즈를 알아체지 못했는데 1.5 - 2세된 어린이들은 자신의 코에 루즈가 칠한 것을 알아보고 자신의 코를 만지는 것에서 아기 자신의 이미지가 정확하게 마음 속에 생겼다는 인식을 할 수 있었다는 연구를 보고를 했다. 발달 학자들은 생후 1.5-2세 때 자아가 등장하는 것으로 확정을 했다(Lovette, 1988: 주㈜: 참고).


이것은 아기 자신의 자아 이미지 보다 엄마의 이미지가 먼저 생긴다는 것을 지적을 하고 있다. 아기는 엄마의 분신이고 엄마의 몸을 빌려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고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면서 신생아에게는 엄마가 이 우주의 전부이고 엄마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고 엄마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으로 아기는 엄마의 손과 엄마의 품과 엄마의 목소리가 아기에서 천국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이것이 위에서 인용한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한 존재이고 내가 이 우주의 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형태 변화가 바뀌는 데는 엄천난 고통과 갈등과 모험의 과정이 부처가 평생을 수행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고 정신분석에서 핵심인 자아 찾기 즉 자아주체성의 형성 과정리는 것을 강조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임을 알리고자 한다. 


엄마에 대한 정신분석학에서 실험들은 유명한 것들이 많다.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무차별 폭격으로 포탄 소리에 놀랬거나 혹은 전쟁 고아들이 많이 생겨 나면서 전쟁이 아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즉 공포증, 불안증 등이 많을 것으로 가설화 하고 고아원에서 자란 아기들과 엄마 품에서 자란 아기들의 성장과 발달 과정들을 연구한 결과 엄마 품에서 자난 아기들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폭탄이 터지고 천둥이 치고 벼락이 친다고 해도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들은 새록새록 잠든 것을 볼 수 있지 않는가?. 즉 엄마의 품은 아기에게 인식처가 되고 엄마의 손길은 약손이 되어서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있을 때는 이 세상의 근심걱정들이 다 사라진다는 아기에게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닌가?


정신분석에서는 아기의 마음에서 인간의 최초의 인식의 이미지가 엄마의 얼굴이기 땨문에 이 엄마의 얼굴이 아기에서 good으로 비치느냐? bad로 비치느냐?가 아기의 자아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아기는 태어나자 말자 자아가 없다. 엄마의 이미지가 즉 엄마의 얼굴 모습이 아기의 마음에 반사되어져서 엄마의 good 이미지는 아기의 good 자아가 되고 엄마의 bad 한 이미지는 아가의 bad 한 자아 된다고 본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것을 너와 나의 하나된 단계”(the symbiotic stege)(몰러(Mahler, 1975)의 분리 개인화 단계:주㈜ 참고)라고 부른다.


그런데 건강한 엄마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분신으로 태어난 아기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장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을 정상적이다. 만약 엄마가 원하는 결혼이 아닌 경우, 원하는 임신이 아닌 경우, 엄마에게 아기가 혹이 되는 상황에서 아기의 자아가 어떻게 형성이 되겠는가? 그 아기에게는 이미 엄마의 bad한 이미지가 아기의 마음 속에 바쳐 반사되어졌기 때문에 아기의 마음 속에는 엄마의 bad한 자아의 이미지가 새겨져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엄마의 마음에서 아기의 자아가 시자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물론 위와 같은 good bad의 이미지의 형성은 단순히 저절로 엄마의 얼굴 이미지가 자아의 이미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고 엄마와 아기의 상화작용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다. 1960년에의 뇌 과학자들(과거에 뇌 생리학자들이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게 되면서 이제는 뇌 과학자로)인간의 뇌는 조각가의 칼끝에 재단사의 가위 끝에 달려 있다고 말을 한다. 이 말은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는 준비되어져 있는데 어떤 프로그램을 입력을 하느냐? 하는 것은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입력이 되고 그 결과가 아기의 뇌의 경험이 되고 그것이 아기의 자아가 된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될 것이다(Kernberg, 1980: 주㈜: 참고).


다시 천상천하의 유아독존으로 되돌아가보자. 인간의 자아는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엄마의 이미지에서 시작되고 그리고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1.5-2세 사이에 자아가 태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고로 아기의 자아는 절대적으로 엄마 즉 부모와 환경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아기의 자아는 일차적으로 부모와 관계에서 등장하게 된다는 말로써 부모의 마음이 아기에게 반사되어지게 되어져 있음을 강조 한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과학을 따라가지 못해서 심리적인 문제가 확산되고 확대되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점점 관계들이 복잡해지고 점점 자아의 형성과정이 복잡하게 되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고로 청소년들의 자아 형성도 복잡해져가고 있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경제적인 능력이 약화 되면서 어머니가 맞벌이로 뛰어들면서 엄마와 아기 관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엄마는 아기를 유아원, 영아원에 맡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기는 엄마 품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유모차가 등장하고 자동차에서 안전 벨트가 등장하면서 아기는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나오는 빈도수가(과거에는 엄마 품에서 엄마 등에 업혀자랐다) 많아지면서 아기의 자아에는 점점 어려움이 가속화 되어고 있다.


어린이는 자아가 형성되어지는 과정에서 부모님은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을 잘 드는 착한 어린이로 자라기를 기대하고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자녀를 착한 자녀로 받아들인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을 들고 따라가지 않으면 자아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부모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아의 일부분인 초자아가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로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신의 부모님과 똑 같다고 생각해 왔고 자신의 부모님이 전부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어린이들의 유아기 자아는 점점 형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즉 유아기의 어린이 자아가 해체 되고 청소년기의 자아 즉 어른의 자아로 형태 변화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가 이제는 더 넓은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 가정이라는 부모님과의 주된 관계에서 친구들과 동료들이라는 관계에 접근하게 되면서 친구들의 부모님은 내 부모님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시점에서 가족 관계가 느슨해지고 친구들과 관계가 돈독해지고 초등학교 저학년 시쯤까니는 나들이를 갈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화목한 가정으로 여겼던 것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님 보다는 친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부모님의 가치와 판단과 태도들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비판하게 되고 동료들의 부모님과 비교를 하게 되면서 세상을 살아가게 된 그리고 자신이 처해진 세상의 가치들과 판단들이 부모님의 가치와 갈등이나 충돌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시쯤에서부터 자아 찾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부모님의 가치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부모님의 가치관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부모님들은 자신의 가치를 고집하고 자녀들의 가치와 충돌을 두려워하고 강압을 하게 되면서 이유업는 반항 혹은 도전적인 자녀 혹은 부모에게 말대꾸를 하는 자녀들로 매도를 하게 되면 청소년들의 문제는 확대 일로을 걷게 되고 청소년들은 혼란속에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자아 속에 갇히거나 혼돈 속에서 자아를 찾지 못하고 자아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오늘 날 정신장애들이 아닌가!


치료자가 강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자아는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의 가치와 판단과 태도들은 이미 자녀들의 청소년들이 되는 시기에는 20년 이상의 과거의 것들로 이미 20년이 지난 지금의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지금의 이 세상에 맞는 가치와 태도와 판단 들 즉 가치관과 자아관을 형성하는 과정이 앞으로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가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발생하는 각족 문제들에 비추어 볼 때 청년의 자아주체성의 형성 과정이 단순하지 않고 쉽지 않다는 것을 부모님이 알아야 하고 그리고 청년들 자신들도 이러한 가치를 스스로 찾아야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확고한 자아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부처가 수행과 고행을 하면서 찾아낸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한 사람이고 나와 똑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고 내가 존재해야 이 세상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말은 실존 철학의 핵심 이론이고 정신분석에서 왜 자아 주체성의 확립이 중요한지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내 삶을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내 삶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내가 만든 삶이고 내가 디자인 한 삶이 되어야 삶을 제대로 올바르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해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이 명제가 젊은 시절에 얼마나 내 삶을 앞으로 좌지우지하게 될 것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에서 이다.


치료자는 35년 동안 정신의학과 심리과학을 연구하고 정신적으로 혼란한 사람들을 치료를 해 오면서 모든 정신장애의 핵심 문제는 위와 같은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혼란함에 의해서 생간 것이고 치료의 목적은 증세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자아의 문제라는 점을 수 없이 강조를 해 왔다. 정신장애들의 문제는 바로 자아를 바로 세우고 자아를 고치고 자아를 수정하고 발달이 괘도하게 벗어난 혼란한 자아를 새로 발달 단계에 알맞도록 새롭게 성장과 발달을 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 보자, 자아는 엄마의 자아가 아기의 자아로 형태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 세상의 중심에 엄마가 있고 아기에께는 엄마가 이 세상의 전부이다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이 자아의 개념이 이 세상에서 중심은 나이고 나는 유일하게 단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고귀한 존재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자아의 형태 변화가 청년기에 자아 주체성의 형성으로 삶에서 내가 주체가 되고 내가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으로 변화를 격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것을 위해서 부처는 수 많은 고초의 고행을 경험했고 그리고 오늘 날 청소년들이 바로 이 문제로 얼마나 고통스런 인고의 세월과 갈등과 모순에서 나를 찾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역설적으로 논의를 한 것이다.

주㈜: 참고: 치료자가 위의 서적들의 번역 본들을 소장하고 있으니 개인적인 연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아래에서는 위와 유사한 청년들의 자아 문제들을 치료해 온 과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99%의 자아가 막혀서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 하는 24세의 V


증세: 8년 동안 약물을 하루에 4개씩 아침과 저녁으로 복용해 오다가 작년 11월 경에 완전히 붕괴되어 8개월 간 겨우 1%의 자아로 지탱해 왔다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함


진단: 대인 공포증, 우울증,  불면증, 심인성 질환(설사를 8년 동안 계속)


연결: 인터넷에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검색으로 찾아서 치료자에게 문자 메시지로 8년 동안 치료를 받아왔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SNS로 연락해서 찾아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처음에 컨설팅으로 2시간을 치료를 받아 보고 나서 약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싶으니 어머니에게 호소해서 설득하겠다고 했음.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그는 1주일에 월요일에 1-3시와 수요일에 1-3시로 1주일에 2회의 치료 회기를 가지기로 했음. 8 16 시간 (컨설팅을 합친 총 시간이 18 시간)의 치료회기를 가짐.


치료 결과: 치료 회기가 10시간이 지나가면서 V군은 이제 잠을 잘 자게 되었고 수면 시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이제는 왜 스위치가 끄지고 그리고 스위치가 켜지는지?를 분석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되면서 8년 동안 의도적으로 거짓 자아를 작동시켜서 자신이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스위치가 켜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거꾸로 8년 동안 의도적으로 강박적으로 한 행동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되돌아가서 내 참 자아의 개발을 해야함을 깨닫게 되었음

 

치료의 과정

 이번 주일 치료 회기에서 V군은 어제 화요일에 헬스 장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그 트레이너 형님이 초밥을 사준다고 음식점에 같이 갔었다. 같이 가면서 V군은 속으로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혼자서 마음 속으로 의식적으로 강박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 형님과 식사를 하면서 스위키가 켜진 것은 아니었고 그런대로 잘 보냈다고 했다.


 식사 후에 아버지의 친구인 고모부가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었다.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나갔는데 고모부의 친구가 한 사람 고모부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V군이 그 곳에 갔을 때 어머니가 그 곳에 와 있었다. 어머니는 그 학원의 교사들 중에 한 사람의 생일이 있어서 그곳에서 같이 식사를 한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교사들은 V군이 추천을 한 사람들이어서 그들과 안면이 있었다. V군은 양쪽에 왔다 갔다 하면서 관계를 해야 했다. 이후에 아버지가 와서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관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V군이 고모부와 그의 친구와 함께 있을 때부터 스위치가 켜졌다.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스위치가 켜진 상태오 어쩔줄 몰라했다.


그는 고모부와 친구가 마시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술의 힘으로 스위치를 꺼보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실패하고 아버지에게 먼저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어머니와 학원 교사들에게 먼저 간다고 인사를 하고 빨리 도망을 쳐 나와 버렸다.


 치료자가 고모부와 얼마 동안 같이 있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약 30분 동안 같이 있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월요일에 스위치를 꺼는 방법을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것이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물어 보았을 때 여름 휴가를 가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스위치를 꺼는 것을 할 수 있겠는데 고모부와 학원 교사들과의 관계는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에 스위치를 꺼는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V군은 스위치를 꺼는 것도 어느 정도 대화에서 정리 작업이 있고 나서 내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스위치가 작동을 해서 내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그리고 알절부절 못하고 실수를 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을 할 수 있겠는데 대화의 정리 작업이 안 된 상태에서 그러한 말을 끄집어 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대화를 위한 정지 작업 그 자체가 스위치를 켜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치료자는 V군이 항상 잘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스위치를 켜고 시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강박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분석으로 지적한 것을 정확한 분석으로 칭찬을 해 주었다.


 치료자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인사 말로써 "나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라는 인사말을 하는 것을 예를 들어서 V군에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할 때 인사말로써 간단하게 "나는 자주 부자연스러운 행동, 경직된 행동으로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니 이해를 해 주세요"라고 인사 말을 하는 것을 훈련을 하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행동이 껄끄러운 실수가 많은 사람이니 이해바랍니다."라고 인사를 하도록 하는 훈련을 했다.


 V군이 치료자에게 처음 치료실에 들어올 때 그리고 마치고 나갈 때 V군이 치료자에게 "불편하고 껄끄러운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이해 바랍니다"라고 인사를 하도록 약속을 했다.


 V군이 대한관계를 할 때 그렇게 인사를 하게 되면 스위치를 꺼 놓은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만약에 대화 도중에 스위치가 켜지면 그 순간에 바로 그 대상에게 "내가 지금 스위치가 켜지려고 합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 놓으면 스위치가 꺼질 것이라고 연습을 하도록 했다.


 V군은 이번 토요일에 4명의 아르바이트 동료들과 8 3, 4일에 같이 1 2일을 휴가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일요일에는 2명의 여자 친구들과 8 1일과 2일에 1 2일을 휴가를 가는데 그들에게 먼저 지금까지 치료자 한데서 배운 16시간의 치료 과정에서 드러난 V군의 자아 결함들을 솔직하게 약 2시간 혹은 3시간의 시간을 마련해서 고백을 하고 그들에게 스위치를 꺼는 훈련을 하도록 했다.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xx 친구들아! 내가 12일 동안같이 지내면서 너희들에게 부탁이있으니 내 말을 약 2시간 동안 잘 들어주어야 한다. 나를 살려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대인관계 때문에 고교 1학년 때부터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사고 때문에 300여개의 경구들을 외워서 적극적으로 관계를하고 그리고 유머를 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서 너희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이 40%의 효과를 발휘했는데 그것이 족쇄가 되어 지금 99%의 자아 붕괴로 관계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 선생님이 내 약점을 모두 너희들에게 밝히게 되면 나는 긴장하고 잘 보이려고 하지 않게 되어 스위치가 켜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너의 들에게 내 약점과 단점들을 모두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잘 보이려고 의식적으로 강박적으로 해야 한다라는 강압이 내 발몫을 잡아서 나를 오히려 스위치가 켜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알 게 되면서 내가 그냥 원래 나의 모습으로 가식이 없는 원래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치료자는 V군의 8년 동안 습관화 된 해야 한다. 잘 보여야 한다. 내 단점을 숨겨야 한다라는 것이 지금 부모님 한데서도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지는 것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숨기고 있는 것을 잘 보도록 했다. 앞으로 이 습관을 깨부수는데 치료의 에너지가 집중될 것이라고 깨닫게 했다

 V군은 늘 여자 친구를 생각하면서 후회와 미안함으로 생각이 빠져든다고 했다. 어느 정도 40%의 기능이 회복되면 과거의 어린 시절의 문제들을 분석으로 다루어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데 여자 친구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V군이 캐토릭 신자여서 죄의식으로 자아 처벌과 연결된 것임을 깨닫게 했다. 스스로 죄의식으로 고통을 받음으로써 여자 친구에게 죄의식을 줄이기 위해서 스스로 그러한 고통을 감수라고 도발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