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사실 2
다시 읽은 프로이트(Freud)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프로이트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신경학 전공의 의사로써 그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그를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보호자 역할을 했던 브로이어(Breuer)로부터 그가 한 여성 환자인 안나 오(Anna O)를 소개 받게 되면서 그리고 그녀의 병이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것과 2년 동안 그녀를 최면으로 치료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에 의해서 최면학과 히스테리아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것들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 그 때 마침 운이 좋게도 비엔나 의과대학 부설 비엔나 종합 병원의 6년간의 레지던트 과정을 끝낼 시점에서 그 대학에서 우수한 레지던트 졸업생에게 처음으로 주어지는 3명의 학생들에게 6개월의 해외 유학 장학금을 지원하겠다는 소식을 얻고 응시를 해서 그 장학금을 받아서 그 당시에 히스테리아의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던 프랑스 파리의 최면학자로 “히스테리아의 황제”라는 별명을 가진 가르코트(Charcot)를 방문하게 되면서 프로이트의 삶과 인생이 신경과 의사로써 심리학자로 그리고 정신분석이라는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학문의 탄생의 길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 몰랐던 것들을 프로이트의 전기(傳記)를 쓴 영국의 신경과 의사로써 프로이트의 제자로 40년 동안 프로이트와 생사고락을 같이 한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이 프로이트의 사후에 쓴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The Life and Work of Sigmund Freud)(1953년에 출판 시에 3판, 1963년에 18 판: N.Y: Basic Books 출판사)에서 프로이트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사실들을 연재 형식으로 필자가 쓰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를 하면서 시리즈 2를 전개 하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그의 아버지가 40대 초반에 두 번째 결혼(Ellenberger(1970)의 “무의식의 탐색”이라는 저서에서는 아버지가 세 번째 결혼으로 노트)으로 20 살이던 처녀와 결혼을 함으로써 첫 아들로 탄생한 것이 프로이트였다. 고로 프로이트가 17 살의 나이로 의과 대학에 입학을 했을 때 아버지는 70대의 노인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늙은 노인이었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가난해 허덕이는 대학생활을 했다. 그는 많은 좋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도움과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쓰는 형태로 공부를 했다.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아드리해의 해변에 생긴 비엔나 의과대학의 카라우스(Claus)교수의 동물학 연구소(해양 동물)의 연구 조교 채용에 1번으로 시작해서 6개월 동안 그 교수 밑에서 처음으로 1주일에 10시간 이상씩 철저한 현미경 탐색 연구원으로 출발 해서 그의 첫 번째 연구 논문이 “장어의 성기 구조”(고환의 구조)(400마리의 장어의 해부 실험)였다는 것은 시리지 1부에서 상세하게 밝혔다. 그 해 후반기에 20세의 나이로써 프로이트는 부케(Brucke) 교수의 생리학 연구실에 연구 조교로 들어가서 6년 동안(그 당시 의과 대학은 5년제) 연구를 도와주면서 의과 대학 8년을 무사히 끝낼 수가 있었다.
그 시쯤에서 프로이트는 미래의 부인이 될 프로이트보다 4살 어린 처녀 마샤 베르나이(Martha Bernays)를 만나게 된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마샤를 만나게 된 동기는 마샤의 여동생인 미나(Mina)가 프로이트의 첫 번째 여동생인 안나(Anna)와 서로 오래 전부터 친한 친구로써 안나의 초대로 마샤가 프로이트의 집에 놀러 오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그의 집에 있는 복 층의 베란다 끝에 조그만 방이 프로이트의 공부방으로 가족들에게는 그의 연구실로 통했던 그 방으로 그가 학교에서 공부를 끝내고 나면 그 복 층의 그의 연구실로 직행을 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프로이트는 어머니의 첫째 아들로써 어머니의 눈에 애플(사과: 귀염둥이로 사랑을 독점)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의 프로이트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것을 알고 아들의 모든 요구들을 들어 주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시집을 올 때 가지고 온 헌 피아노가 한 대 있었는데 여동생들이 피아노 연습으로 사용하던 전통적인 유산을 프로이트가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불평에 그 피아노를 없애버렸다는 일화들을 후일에 프로이트의 여동생인 안나(Anna)가 쓴 자서전에서 밝혀진 일화이다. 프로이트는 5명의 여동생과 2명의 남동생을 두고 있었다.
여동생 안나는 마샤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서 다과를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프로이트가 대학 3학년으로 부케 해부학 연구실 조교로 있으면서 그날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여동생과 함께 앉아 있는 마샤를 얼핏 보고 나서 첫 눈에 반해버린 것이었다. 그들의 초대에 같이 앉아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 프로이트가 본격적으로 마샤에게 장미 꽃 한 송이를 매일마다 보내면서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되었고 첫 만남 후에 1달 만에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후에 4년 6개월 동안 긴 약혼 시간에 실제로 3년 동안은 떨어져 살았다. 프로이트는 일기 형식으로 마샤에게 연애 편지(프로이트는 후일에 정신분석가가 된 이후에 작가로써 인정을 받아서 괴테(Goethe) 상을 수상했음)를 썼고 그가 그녀에게 보낸 연애 편지들은 900통이 넘었다. 그 편지에서 제일 짧게 쓴 편지가 4페이지였고 길게 쓴 편지는 14페이지가 넘었다. 프로이트의 연애 편지는 부인 마샤가 없애버리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으나 막내 딸인 안나(Anna)의 만류로 보관되어져 오다가 프로이트의 사망(1939년) 이후 12년 후에 마샤의 사망(1951년) 이후에 공개가 되었고 그 편지들이 어네스트 존에게 전달되어 프로이트의 전기를 쓰는데 공헌을 하게 된 것을 존(Jones)이 밝히고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프로이트의 첫째 여동생 안나(Anna)가 마샤의 오빠 엘리(Eli)와 프로이트의 약혼 이후에 서로 약혼을 하게 되었고 그들이 먼저 결혼을 함으로써 프로이트 가문은 마샤의 가문과 쌍 사돈이 되었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는 사실이다.
마샤는 유태인 가문의 명망 있는 핏줄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으로 프로이트가 3살 때 비엔나로 이사를 온 것과 마샤가 8살 때 비엔나로 이사를 와서 두 사람은 철저한 비엔나 인이었다. 말투, 매너, 그리소 스타일 등에서 철저한 비에나 인으로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마샤의 여동생인 미나(Mina)는 프로이트의 친한 단짝 친구인 스콘베르그(Schonberg)와 약혼을 했다가 결혼 직전에 스콘베르그가 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미나는 평생 동안 독신으로 지냈고 이후에 프로이트가 개업 의사가 되고 나서 프로이트 집에서 자녀들을 돌보아주고 가사 일을 돌보아주면서 평생토록 같이 살았다. 미나는 지적인 여성으로 독서와 학문을 좋아해서 프로이트를 따랐고 프로이트를 도와준 비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 프로이트는 부인 마샤가 연휴 혹은 휴가 때 같이 가지 못할 경우에는 미나와 함께 휴가를 떠나는 일이 종종 있었고 그것이 일반 사람들에게 부인 먀사를 대신해서 부인 대역을 했다는 프로이트의 외도 소문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존(Jones)은 밝히고 있다.
오래 전에 필자가 어느 신문 보도에서 프로이트와 미나가 함께 묶었던 호텔의 출입자 명부가 보관되어져 온 것을 프로이트가 사망 이후에 100년이 넘어서 공개되었을 때 프로이트와 미나가 한 호텔에서 묶었다는 기록으로 프로이트의 외도로써 일반인에게 공개된 기사를 보았을 때 놀랬는데 그와 미나와 관계는 프로이트의 전기에서 소상하게 밝혀져 있었다.
다시 프로이트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프로이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분석학자로 그리고 심리학자로 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는 의과 대학생 시절에 철저한 현미경 해부학으로 시작해서 실험 해부학과 뇌 조직신경 학자로써 길을 20년 동안 걸어온 사실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1880년부터 1900년까지 20년 동안의 그 동안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프로이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의 첫 연구 주제는 해양 생물학 연구소에서 하등 동물들의 신경조직들에 대한 연구였다. 장어의 연구 다음으로 그는 가재, 왕새우들을 연구를 하면서 하등 동물들의 세포의 조직들이 고등동물의 세포들로 진화해 갔다는 것을 실험적인 증거들로써 논증을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하등 동물, 물고기의 그 척추 코드 안에서 일부 신비스러운 세포들이 감각 뿌리 섬유들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서 고등동물 한데서 유사하게 후방의 뿌리 신경 뭉치로 들어갔다. 그는 역시 하등 동물의 양쪽 축 세포들과 고등 동물의 한쪽 축 세포들 사이에 계속됨을 즉 신경 섬유들은 한 개의 그물 같은 물질로써 그 신경 세포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증명으로 논증을 했다. 이것들은 진화의 원인들의 증거로써 주춧돌이 되었다.
이후에 척추 코드로부터 뒤쪽으로 올라가면서 그 다음에 그는 숨 뇌 수질의 미세한 연구를 했다. 발달적인 기법을 특별히 사용을 해서 그것의 복잡함 들을 밝혔다. 눈에 띄는 결과들은 그 척추 코트의 후방 기둥과 청각 신경의 뿌리 그리고 대뇌 사이에 연결들을 논리적으로 증명을 했다. 더욱 더 나아가서 감각 두개골 신경의 그 뿌리들은 척추 코드의 그것들과 동질적이다. 다시 진화 이론의 중요하게 결론이 내려졌다.
그 다음에 그는 부케(Brucke) 생리학 연구실에서 6년 동안 연구 조교로써 대학 졸업을 하게 되면서 그는 개업 의사보다는 교수의 길을 원했다. 그는 부케 연구소에서 숨 뇌의 수질에 대한 연구로 3 편의 연구 논문을 출판을 했다. 그는 고양이 새끼들의 뇌들과 강아지 새끼들의 뇌들을 처음에 탐색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태아들과 유아들의 뇌들을 연구를 했다. 그 시점에서 그는 철저한 해부학적인 조직학적인 연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10년 선배인 엑스너(Exner)가 부케의 후임으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의 프레이첼(Fleishl)이 뻐티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 교수인 부케는 프로이트에게 졸업 후에 개업 의사로 추천을 해 주었다. 그는 비엔나 의과대학 부족 비엔나 종합 병원에서 내과 의사인 노트나젤(Nothnagel) 교수 밑에서 6년 동안 레지던트 수련을 하고 그리고 뇌 신경학 연구소의 메이네트 교수 밑에서 신경과 의사로써 철저한 뇌 신경학자로 변신하게 된다. 메이너트 교수는 헤몰츠 학파들의 후예로써 철저한 뇌 신경조직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의 지도 교수 밑에서 프로이트가가 연구한 세 번째 연구가 실어증에 대한 연구였다. 실어증은 크게 4가지로 연구되어져 분류되어져 있었다. 뇌의 회백질의 지역에서 브로카(Broca) 지역과 웨네카 지역으로 브로카 지역에서 상처는 운동 실어증(Motor aphasia)으로 웨네카의 지역은 감각 실어증(Sensory aphasia)으로 알려져 있었다. 운동 실어증은 이마엽에 위치한 지역으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뇌의 명령으로 말을 생산 할 수가 없다. 말을 하는 조직 기관이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었다. 감각 실어증은 관자엽(측면엽)에 위치한 지역으로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말을 듣고 이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모두가 뇌의 신경학적인 연구로써 뇌의 회백질의 분포를 지역으로 연결시켜서 그들의 상처들이 이러한 실어증의 원인으로 밝혀져 있었다. 여기에 더 붙여서 활모양다발 실어증으로 실어증은 운동 지역과 감각 지역을 연결하는 활 모양의 지역으로 활모양다발 실어증은 듣는 것과 말하는 것에 둘 다 관계된 실어증으로 분류되어져 있었다. 여기에다 전체 실어증은 감각 지역, 운동지역 그리고 그들을 연결하는 활모양다발 지역 모두가 혼합된 실어증으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전체 실어증으로 분류되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너무 복잡한 실어증들에 대한 도전을 하게 되었다. 뇌의 회백질의 지역 분포들에 따라서 분류된 것이 복잡다난 해서 천문학에서 포톨레이의 복잡한 이론들을 일목요연하게 단순화 시킨 케플러의 이론을 모델로 삼아서 프로이트가 실어증 들을 연구한 결과 보는 것(뇌 회백질의 시신경과 연결된 난독증(alexia))과 듣는 것(감각 실어증)과 말하는 것(운동 실어증)으로 분류되어지는 것은 그가 이전에 연구한 청각신경 조직의 뿌리들의 연구들에 의거해서 이전의 이러한 기계론적인 뇌 회백질의 분포에 따른 분류들은 실제로 이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은 인식불가로 결론으로 지으면서 이것은 마음의 어떤 기관에서 기능적으로 생긴 것으로 정의를 해서 처음으로 심리학적인 결론으로 정의를 내렸다. 이러한 연구의 결론은 실증적 학문의 뿌리를 따르는 메이네트(Meynert) 교수에 기계론적인 뇌의 조직학적인 신경학에 정면 도전을 의미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미 가르코트의 최면학과 히스테리아의 연구에 매료되어 이미 뇌 신경조직 학자로써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 다음에 그가 뇌 조직 신경학자로써 연구한 부분이 어린이들의 반쪽 마비, 반쪽 장님에 대한 연구였다. 그 시쯤에서 그는 개업 의사로써 일을 하면서 카소위츠(Kassowitz) 어린이 연구소에서 어린이들의 마비(중퐁)들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측면 눈 떨림의 증세 그리고 한 점으로 향하는 동공 내 사시의 교대, 시각 신경 위축, 단조롭고 그리고 요모조모 뜯어보는 언어 표현, 활동의 목적적인 떨림 그리고 그 다리의 경직적 연약함 등 특별히 흩어지는 경화증 즉 파종 경화증에 대한 그의 연구는 첫 번째 9개의 논문으로 어린 시절 초반기에 반신 맹인, 반 장님의 연구는 1891년에 출판되었다. 220 페이지들의 한 개의 거대한 논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린이들의 양쪽 마비들로써 개개의 견해로부터 독점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35 개의 개인적인 사례들은 개인적인 증세들, 병리학적인 해부학, 다른 진단들 그리고 치료의 한 개의 분석이 따라왔다. 그것은 한 개의 일급 치료적인 연구였다.그것은 168 페이지로 53 개의 치료 사례들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제목이“어린이들에 마비들에 대해서”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나 그 당시에 빛을 보지 못했지만 최근에 저명한 스위스 신경학자인 브룬(Brun)은 그의 논평에서 “프로이트의 논문은 가장 철저하다. 그리고 완전한 해석과 설명으로써 어린이들의 뇌 마비들에 대해서 쓰여진 적이 없는 글들이다. 한 개의 훌륭한 성취이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프로이트의 이름이 치료적인 신경학 안에서 불멸의 위치를 자치할 만큼 충분하다”라고 극찬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는 그 동안 20년 동안의 현미경학자, 실험 해부학자 그리고 뇌 신경조직 학자의 길에서 벗어나서 파리의 가르코트는 방문 한 후에 심리학자로 가는 징금 다리가 되는 정신병리학자(psychopathologist)로써 길을 걷게 된다.
시리즈 제 3부는 다음 장에서 소개되어질 것이다. 아래의 글은 필자의 정신분석학의 홈페이지에서 뇌의 부분에 대한 글을 인용한 것이다.
환자는 말 대신에 증세로써 하소연을 하고 있다. 환자의 증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분석해서 환자가 증세 대신에 말로써 표현을 하게 도와주면 증세는 사라진다
---프로이드의 대화치료(talking cure)에서---
정신분석은 마음 속의 생각, 느낌, 지각, 사고, 상상들을 자유롭게 연결 시켜서 잊어 버린 기억들을 표면에 떠오르게 하는 치료 기법인 자유연상(free association) 법을 창안한 프로이드에 의해서 1895년에 태어났다. 프로이드는 이 자유연상 기법을 사용해서 의식 깊숙히 억압되어 묻혀있는 무의식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이 자유연상 기법을 원활화 하기 위해서 위의 사진처럼 카우치를 사용했다. 정통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아직도 자유연상법을 위해서 카우치를 사용하고 있으나 분석가와 환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의자에 앉아서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대화를 해 나가는 방법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
뇌는 경험에 의해서 변한다, 뇌는 경험에 의해서 복잡한 뇌 신경 조직의 회로망이 프로그램화 된다
신생아는 출생 시에 1000억 개의 뇌 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 중에서 대뇌(큰 골)의 비중이 가장 크다. 대뇌는 알코올에 담갔을 때 회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뇌 회백질이라고 부르며 이 부분은 6층으로 되어있고 이 부분을 사고의 뇌, 생각의 뇌, 이성의 뇌라고 불리우는데 전체 뇌의 3분의 1의 뇌 세포를 차지하는 300억개의 세포로 구성되어져 있다. 뇌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에 와서 컴퓨터의 등장으로 본격화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뇌는 출생 후에 별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었다. 1960년대에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신경 생리학 연구진에 의해서 밝혀진 쥐의 실험에서 실험 그룹의 12마리의 쥐들이 장난감을 많이 넣어준 쥐와 그렇지 못한 통제 그룹의 쥐들의 뇌 신경 세포들을 카운트해 본 결과 출생 후에 장난감을 많이 넣어준 실험 쥐의 그룹들이 통제 그룹의 쥐들보다 약 20%-30%의 뇌 신경 세포가 더 많은 것으로 밝혀 지면서였다.
이 연구의 결과는 뇌도 자극을 주면 뇌 세포가 더욱 활성화 된다는 것으로 이후에 인간에게도 실험을 한 결과 좋은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나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 보다 뇌 신경 세포가 25%정도 더 많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뇌는 경험에 의해서 변한다"는 이론으로 등장하게 되어 확정된 이론으로 등장하게 되었다(Diamond, 1999). 뇌 신경 세포는 0세-6세의 어린이들의 뇌 세포가 어른 뇌 세포 보다 3배-4배 정도 더 많다는 것도 밝혀냈다. 3세-4세 경에 이 신경 세포들은 자극을 서로 받지 않으면 스스로 가지 치기 즉 신경 세포의 전정을 사용해서 제거해 버린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을 "신경 세포의 가지치기"라고 부른다. 인간의 뇌는 평생을 써도 다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론이 여기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사춘기 시절에 하루에 사라지는 뇌 신경 세포는 약 200만개-300만개에 이르고 성인이 된 후에 하루에 10만개 이상의 세포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밝혀지면서였다.
1960년대 이래 컴퓨터의 등장으로 뇌 신경 생리학의 분야가 광대하게 발전하여 이제는 신경 생리학이라는 말 대신에 뇌 과학 즉 neuro science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뇌 과학자들은 태아의 임신 중에 이미 뇌 신경 세포들은 서로 자극을 주고 받으면서 신경 세포의 회로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밝혀졌다. 서로 자극을 주고 받을 때 "타다닥, 탁 탁" "타다락 타락 탁, 탁" 등의 소리를 주고 받으면서 호박 등굴처럼 서로 싹을 내여 연결 시켜 뇌 회로 망을 만들어간다는 것도 밝혀졌다. 뇌 과학자들은 뇌 신경 세포들이 어떤 회로를 형성하느냐? 하는 것은 양육자가 어떤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서 뇌 회로의 모양이 형성된다고 공통된 주장을 하고 있다. 즉 뇌가 어떻게 형성되느냐 하는 것은 임신에서부터 시작되어 출생 후에 양육자가 어떤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서 뇌의 모양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인간으로 양육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양육자의 양육 방식에 따라서 뇌의 모양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출생 시에 뇌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처럼 자극을 흡수하도록 모든 준비는 완료되어있다.
어떤 무늬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느냐 하는 것은 어떤 프로그램을 입력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양육자가 어떤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서 그림을 그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입력하느냐 하는 것 즉 소프트웨어를 어떤 것으로 만들어 입력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양육자의 손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뇌 과학자들은 뇌는 한마디로 말해서 "재단사의 가위 끝" 이나 "조각가의 칼 끝"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뇌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은 재단사나 조각가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즉 양육자와 아기 사이에 상호작용의 결과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최근의 뇌 과학자들의 발견은 100년에 이미 프로이드가 이야기한 정신분석학의 주장과 일치 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어린이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0세-5세내지 6세 사이에 양육자인 엄마와 아기 사이에 상호작용에 의해서 마음의 구조가 형성된다고 주장해 왔다.
프로이드는 일찍이 3세-5세 사이에 오디팔 기간에 마음의 구조와 골격의 뼈대가 형성된다고 주장을 해 왔다. 이후에 정신분석 학자들은 오디팔 기간에 형성되는 자아의 구조는 이미 그 이전인 0세-3세의 양육자와 아기와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0세-3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멜라니 크레인(Melani Klein)를 중심으로 한 대상관계 이론가들에 의해서 이론이 정립되어졌다. 이후에 컴퓨터의 등장으로 이러한 이론들이 실험 심리학과 발달 심리학에서 입증이 되어 이제는 정신분석학과 뇌 과학과 발달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이론들이 한 개의 공통점으로 통합되어지게 되었다. 뇌 과학자들은 5세 때 어린이들의 뇌의 발달은 어른의 뇌의 90%로, 7세 때 어른 뇌의 95%, 10세 때 어른 뇌의 97%로 발달이 거의 10세 경에 완료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결과는 정신분석학에서 주장하는 0세-5세 사이에 마음의 구조는 거의 뼈대가 형성된다는 이론과 일치 된다. 원초 자아는 0세부터 발달하기 시작하고 에고(ego)인 자아는 1세-3세 사이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초자아인 슈퍼에고(superego)는 3세-5세 사이에 등장해서 선과 악의 구분과 양심이 등장해서 사물의 잘, 잘못을 구분하게 된다는 주장으로 마음의 구조인 3두 마차 즉 원초자아, 자아, 초자아는 5세-6세 때가 되면 구조가 확실해져서 거의 발달이 완료된다는 주장은 뇌 과학자들의 주장이 일치 된다는 점이다(Eliot, 1999). 섹스 후에 생리가 없으면 이미 임신 1개월이 경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이미 뇌의 전뇌, 중뇌, 후뇌가 형성되고 심장이 박동을 하고 있다. 뇌는 3층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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