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재발하는 고질병 2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7. 4. 21. 14:34

재발하는 고질병들 Ⅰ


  질병을 크게 분류를 하면 신체적 질병과 정신적 질병으로 나눌 수 있다. 신체적인 질병은 몸에서 생기는 질병들로써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을 총칭한다. 우리 나라의 의학 수준은 선진국 수준이어서 해외에서도 우리 나라에서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서 외국 사람들이 관광을 겸해서 치료를 받으러 온다는 소식들은 이미 신문, TV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해서 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신적 질병은 신체적 질병과 나란히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 질병 혹은 정신 질환 등의 용어들은 1980년에 미국의 정신의학 학회에서 매년 10년 마다 새로 등장하는 정신적인 문제들 혹은 사라져 가는 정신적인 문제들을 종합해서 재 분류를 하고 있는 DSM-Ⅲ의 세 번째 개정 분류 지침서에서 정신병 혹은 정신 질병, 정신 질환 등의 용어들이 정신장애, 정신이상, 정신 혼란이라는 말로 바뀌어져서 사용되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이 바뀌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정신장애들은 신체적인 종합 검사를 하면 그 결과가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기 때문에 질병이라는 말이 빠지고 장애, 이상, 혼란이라는 말로 대체되어진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정신병, 정신질환 등의 용어들을 사용해서 정신적인 문제와 신체적인 질병과 혼돈해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조금씩 이런 용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동안에 유럽에서 한 때 유행을 했던 최면에서 시작되었다. 메즈머가 최면을 발견을 해 놓고도 그는 그가 새로운 발견을 한 것을 모르고 죽었다고 정신의학의 역사가들이 기술을 하고 있다. 자신이 위대한 발견을 해 놓고 정작 자기 자신은 그것이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은 역사적인 인물이 두 사람이 있다고 소개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최면학을 발견하고서도 그것이 새로운 학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었던 메즈머(Mesmer)이고 또 한 사람은 아메리카라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을 해 놓고도 모르고 죽은 콜럼버스가 있다. 이후에 아메리코 베스풋치가 콜럼버스가 발견한 대륙이 인도가 아니고 신대륙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역사에서 기록이 되어져 있다(Ellenberger, 1975).


메즈머는 18세기의 계몽주의의 아들로써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을 그리고 법률가 되기 위해서 법학을 나아가서 철학을 공부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그는 의사로써 그 당시에 유행을 했던 신부님이 신부 복장을 하고 성격 책을 들고 십자가로써 귀신에 씌인 사람들 혹은 악령에 사로 잡힌 사람들을 치료를 하는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 퇴마의식을 보고 나서 신부복장, 십자가, 성경책 등이 없이 손가락 하나로 똑 같은 귀신을 쫓아 내는 현상을 하겠다고 장담을 하면서 실제로 그가 사람들에게 퇴마의식과 똑 같은 현상을 재연해 냄으로써 인기가 하늘로 치솟게 되었다. 그는 의사로써 그의 이론들과 과정들을 책으로 논문으로 출판을 했다. 그의 설명이 바로 동물 자장이론, 자석 치료였다. 귀신에 홀린, 악령에 사로 잡힌 것을 정신병이라는 개념인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 정신병을 치료 하는 치료 기법으로 자석 치료가 등장하게 된 것은 계몽주의 발달에 따른 시대 정신의 산물이라고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Ellenberger, 1975).


그 당시에 메즈머가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에 펴져나갔다. 프랑스 혁명의 전후 시대에 사회적 불안과 혼란으로 어려운 시대에 메즈머의 이론이 쉽게 먹혀 들어간 것이었다. 계몽주의는 무지, 미신, 맹목적인 종교적인 믿음의 중세 시대로부터 인간이 지식적으로 깨어나는 이성의 시대로 과학의 시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즉 중세의 귀신 이론으로부터 정신병이라는 치료의 개념으로 바뀌게 된 시발점이 메즈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메즈머는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로써 자신의 연구들을 이론화 해서 책을 출판하고 군중들 앞에서 귀신에 흘린 사람들을 직접 치료를 하는 시범을 보여주는 자석 치료를 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었다(Ellenberger, 1975).

 

이후에 메즈머의 제자들이 자석으로 치료를 하는 원리가 자석 때문이 아니고 잠과 유사하지만 잠과는 달리 환자와 자석 치료사가 서로 말을 주고 받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과 깨어나서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인공 몽유병 혹은 인공잠 이라는 용어로써 사용되어 오다가 1843년에 영국의 외과 의사인 브레이트(Braid)가 잠과 유사하지만 잠이 아니라는 용어로 최면(hypnosis)라는 신조어를 등장시켰고 자석 치료는 최면 치료로 바뀌게 되었다. 최면의 용어인 hypno는 그리스의 잠의 여신에다 i라는 그리스의 illness 질병, 병이라는 용어가 합쳐져서 잠을 자는 것과 유사한 병을 치료 한다는 용어가 된 것이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최면학을 과학으로 의학으로 인정을 해 주지 않고 있었다. 세 번이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신청을 해 왔으나 거부당하다가 의과 대학의 내과 교수이나 왕의 주치의였던 가르코트(Charcot)1883년에 네 번째의 신청이 수용되어져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최면학을 통한 몽유병 환자의 치료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된 이후에 10년 동안 가르코트는 히스테리아라는 정신병을 최면으로 치료를 하는 세계적인 대가로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가르코트는 히스테리아의 황태자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최면학이 의과대학에서 강의 되어지고 교과서로 출판되어지고 치료의 이론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1885년에 히스테리아라는 병을(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병) 최면으로 치료를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프로이트가 카르코트의 학교(최면 치료 학교)에 유학을 가게 되어 이후에 무의식 이론과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창안해 냈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1890년에 심리학의 원리라는 책을 출판해서 세계적인 명사로써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가 된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가 카르코트를 방문해서 가르코트로부터 최면학을 배워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19세기 말기에 최면 치료는 많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에 의해서 잠을 효과가 아니고 과거의 상처의 재연으로 카타르시스 효과라는 것이 밝혀졌고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치료 되어질 수 없는 반쪽 치료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프로이트가 최면을 사용하지 않고 최면과 유사한 방법으로 무의식의 기억을 의식으로 끌어 올려서 카타르시스 적인 감정 방출과 감정 표현 방법(감정 정화 방법)을 고안해 내서 1895년에 히스테리아의 연구라는 책을 출판하게 됨으로써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게 된 것은 정신분석의 역사에 기록되어져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적인 문제들 즉 히스테리아 이후에 신경증의 문제에만 국한 해서 연구를 해서 치료 기법으로 최면이 아닌 정신분석 치료를 고안해낸 것이다. 프로이트는 신체적인 현상으로부터 심리적 현상을 분리 시켰다. 심리적 현상과 신체적 현상은 서로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그는 심리적 현상들은 신체적으로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을 했지만 심리적 현상을 다루면 신체적 현상들이 따라 오는 것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1차적으로 중요시했다. 그는 몸의 주인은 마음 즉 자아임을 강조를 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이성의 나체를 상상을 하면 즉각 1초 만에 성기가 발기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놀래면 심장이 벌떡거리고 눈이 동그래지고 얼굴이 빨갛게 혹은 새파랗게 질리고 홍당무가 되는 현상들은 마음이 몸에 직접적으로 즉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러한 현상들의 연구에 집중해서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신경증 이론과 신체적인 질병의 교집합 즉 상호작용으로 겹치는 부분들의 질병(신체적 질병)들을 연구하게 되면서 심인성 질환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신체적인 질병에 그 원인이 심리적인 것이어서 심리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재발이 되고 결국은 고질병이 된다는 것이다. 신체적인 질병들은 약물로 치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약물을 복용해도 완치가 되지 않고 위기가 지나가면 재등장하는 질병들을 정신분석가 들이 치료를 하면서 그 질병의 심리적인 면들을 제거하면 몸의 질병이 완치가 된다는 것을 발견을 하게 되면서 그것의 이름을 심인정질환 즉 심리적인 원인으로 질병이 생기는 것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50년에 시카고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정신분석가로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프란츠 알렉산더(Franz Alexander)가 시카고 세번(Chicago seven, 7)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7개의 신체 질병들의 원인이 대부분이 심리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었다. 신경증 두통, 기관지 천식, 루마티스 관절염, 소화성 궤양들, 과민성대장염, 신경증피부염들, 본태성 고혈압이 바로 심인성 질환에 해당되는 질병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항가리 태생의 의사로써 캐나다에 귀화한 한스 셀리(Hans Seyle)가 스트레스 이론을 발표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전기 쇼크로 고통을 받은 실험 쥐들이 위궤양을 개발하는 것을 의대 실험실에서 관찰하고 나서 그 문제를 연구해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장기간 받게 되면 신체적인 호르몬 변화로써 질병이 발생한다는 스트레스 이론을 내 놓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이제 스트레스가 질병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질병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든 질병 들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 나라에서도 일반화가 되었다. 암 질병, 심장 혈관 질병, 당뇨병에 스트레스가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현대 사회는 스트레스로 과중화 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 되었다. 스트레스라는 말 자체가 심리적인 용어가 아닌가? 심리적인 요인들이 신체적인 질병의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입증이 된 것이 아닌가? 신체적인 질병을 다루는 의사 선생님들은 약물을 처방해 주면서 되도록 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더 붙여서 1960년대부터 새로운 학문의 등장이 바로 면역학이다. 현대 의학의 특징인 컴퓨터의 등장으로 의학계에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뇌의 작동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MRI(자기 공명 영상 기법), PET(양전자 단층 촬영 기법)등이 등장하고 여기에다 면역 조직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병균이 몸에 침입을 하면 우리 몸의 세균 감지 작동 기능들과 퇴치 기능들이 작동을 하는 원리와 과정들이 하나씩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면서 심리 치료와 정신분석에 또 하나의 힘이 실리게 되었다. PIN(심리신경면역학)이라는 연계된 학문이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1967년에 뉴욕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 치료자인 아들러(Adler)가 심리신경면역학이라는 신조어를 등장시켰다. 그는 면역 기능들이 심리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기술을 함으로써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의학 심리학(medical psychology), 행동 의학(behavioral medicine), 심리 의학(psychological medicine) 등의 용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부신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로이드가 방출되어지고 이 호르몬이 과도하게 지속적이 되면 면역 기능이 떨어져서 신체적 질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러한 원리들이 최근에 등장한 고질병들에 적용이 되어지게 되었다.   아토피, 천식, 비염 등의 알레르기 질병들이 약물의 치료로써 완치가 어렵다는 인식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에는 일반 의사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가 실망을 하게 되자 한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실망한 환자들이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절망감에서 사이비 의술들에 현혹되어 질병들 가중시키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TV 신문 등에 등장하고 있는 뉴스를 보면서 치료자가 이들에게 심리적인 치료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치료자는 사람들이 심리적인 면들을 너무 모르고 있고 심리적인 문제들을 병(장애)이 아니라고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심리적인 면들의 중요성을 알리는 마음의 전도사가 되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해게 된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요악하면 심인성 질환의 등장에다 스트레스 이론과 면역학의 이론들이 접목이 되어져서 심리적인 요소들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어져 가면서 신체적 질병의 치료에서 고질병을 치료되어질 수 없는 질병으로 알려진 질병들이 심리치료, 정신분석 치료 등으로 새로운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치료자(필자)는 이미 30년 전에 미국에서 대학에서 심리치료학과 대학원에서 가족치료 학에서 그리고 인턴 과정에서 정신분석학을 접하게 되면서 신경증 치료와 정신분열증 치료 그리고 성격장애 치료와 심인정질환 치료 등으로 범위를 넓혀 가면서 35년 동안 심리치료의 이론과 치료기법의 연구로써 치료를 소상하게 알 수 있는 한가지 방법으로 직접 치료를 한 환자들의 치료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심리치료 치료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27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C


증세: 5년 동안 시달려 온 에이즈(AIDS) 공포증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음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분석 치료 과정에서 심인성질환통풍과 위가 쓰리고 아파서 몇 년 동안 위궤양 약물을 중학교 때 복용한 사실이 드러났음---불안 장애, 강박사고 장애,심인성질환 증세 보유자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 씩 1주일에 1회로 6개월간 치료를 받았음

치료의 결과: 6개월 후에 C씨의 본인이 에이즈 공포증은 95%로 사라졌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일상에서 에이즈 공포증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서 어린 시절부터 습관화 되어온 과도한 신체적 긴장을 해소하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예상했으나 본인이 치료를 종결했음.


치료의 과정

C씨는 6년 전에 우연히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유흥가에 갔다가 매춘부와 섹스를 가진 후에 혹시 에이즈(AIDS)가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서 즉각 병원에 가서 에이즈 검사를 했고 몇 주일 후에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음"으로 나왔으나 이후부터 계속해서 에이즈(AIDS)가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약 3개월마다 1회씩 5년 동안 에이즈(AIDS) 검사를 해 오고 있었다. C씨는 본인이 에이즈(AIDS)에 걸린 것이 아님이 확실하게 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계속해서 머리 속에 침투에 들어오는 에이즈(AIDS) 공포증 때문에 병원에 달려가서 에이즈(AIDS) 감사를 하지 않으면 불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에이즈(AIDS) 검사를 받는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에이즈(AIDS) 공포증으로 시작된 강박 사고 장애로 드러났다. 강박 사고 장애는 불안증에 소속되어있다. 치료자는 C씨의 어린 시절의 양육 과정을 체크해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분석: C씨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음식점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손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고 먼 친척의 아주머니 손에서 주로 자랐다. 위로는 누나가 3명이 있었다. 누나들은 나이가 많아서 C씨와 놀아주지도 않았고 C씨를 보살펴주지 않았다. 막내 누나가 C씨와 6살 정도 나이 차이가 있었다. 누나들은 C씨가 어린이 시절에 학교 학생들이어서 학교 생활에 바쁘고 자신의 동료들과 어울려 놀았고 C씨와는 별로 접촉이 없었다. C씨는 초등학교 시절 이전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늘 혼자였고 외톨이었음을 회상을 했다. 늘 혼자서 전자 오락실이나 주변의 몇몇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으나 친구별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식당 운영으로 늘 바빠서 C씨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없었고 늘 어린 C군에게 돈을 손에 쥐어 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우연히 학원에 공부를 하러 가지 않고 전자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다가 이 소식이 부모님에게 전달되어 부모님에게 길거리에서 죽도록 얻어 맞고 옷이 찢어진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유사한 부모로부터 처벌을 받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번은 엄마가 손에 쥐어준 1만원짜리 지폐를 바꾸어서 전자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다가 5천원을 뒤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잃어 버린 사건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다가 태권도 티로 죽도록 얻어맞은 기억을 회상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는 학원에 주로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유행이 되고 있었던 컴퓨터 교육의 필요성을 알고 어머니가 컴퓨터 학원에 보내주었으나 나이 어린 C군은 컴퓨터 학원에 가기 싫어서 전자 오락실에서 놀다가 어머니에게 적발이 되어 죽도록 얻어 맞게 된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 동안 어머니는 영어 학원에 보내주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 특히 엄마가 시키는 것을 거부하면 어떤 처벌이 따라온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 C씨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말로써 "No"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린이가 되었었다. 하기 싫은 영어 공부를 3년 동안 하면서 그 시간에 학원 교실에 앉아서 다른 상상 속에서 살았다. C씨는 3년 동안이나 영어를 공부를 했지만 영어에 진전은 하나도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얼마나 진전이 없었든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장 선생님이 기차 찬다는 눈초리로 C군을 바라보던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씁쓸해 했다. 아무리 배워도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회상을 했다. 어머니는 컴퓨터와 영어가 중요하니 일찍부터 배워두어야 한다고 어린 C군에게 강요를 했다. 그러나 사실은 엄마가 어린 아들을 돌보고 양육을 할 수 없어서 학원에 보내면 학원에서 C군을 공부를 가르치면서 돌보아주게 되니까 C군을 학원에 맞긴 셈이었다.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C씨는 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항상 손에는 엄마가 준 1만원의 돈이 있어서 친구들이 그 돈 때문에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과자와 학용품을 사면 친구들이 하나씩 달라고 해서 아낌없이 주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으나 대화가 별로 없고 친구들 집에 놀러 가거나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은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그냥 그져 그런 친구들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한 친구에게 심하게 얻어 맞아서 입술이 터지고 온 몸에 멍이 들었으나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평소에 자신의 군 것질을 얻으먹으면서 먹을 때는 친하게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았으나 정작 돈이 떨어지면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서 이용을 당하는 것 같아서 좋지 않는 소리를 한 것이 화끈이 되어 심하게 폭력을 당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어머니는 인근에 있는 명문대학 학생을 과외 교사로 많은 돈을 지불하고 3년 동안 수학을 공부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배워도 수학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 공부에서 수학 과목은 늘 성적이 하위를 맴돌았다. 그 당시까지 그는 자신의 머리가 좋지 않아서 공부를 배워도 진전이 없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에 재수를 하면서 C씨는 혼자서 몇몇 친한 동료들과 어울려 공부를 하게 되었고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면서 공부를 하는데 즐거움을 느끼게 되어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되어 재수 학원에서 늘 1등을 하게 되면서 대학에 들어가서 교살로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심인성질환의 분석: C씨는 중학교 때 늘 위가 더부룰하고 쓰리고 아파서 병원에가서 진찰을 받았으나 별다른 신체적 증세가 없고 그냥 신경성으로 나타났다. 위궤양의 약물을 약 3년 동안 복용을 했으나 위가 쓰리고 찌르는 아픈 증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통풍이 오게 되었다. 통풍이 오면서 한의사에게 가서 한약을 복용하면서 통풍의 증센은 약간 수그러들었으나 통풍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C씨를 괴롭혀왔다. 분석의 과정에서 또 밝혀진 심인성질환적 증세는 C씨는 초등학교 저학년시절부터 눈썹에 신경이 곤두써 있었다. 자신의 눈썹이 너무 희미하고 눈썹이 없는 것 같아서 자기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는 늘 동료들 관계나 여학생들 앞에서는 자신감이 없었다. 눈썹이 진하고 예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열등감으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그러한 눈썹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누나에게 얼핏 자신의 눈썹을 이야기를 하면서 반응을 떠 보았으나 누나는 눈썹에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 결국 C씨는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눈썹을 심은 수술을 받았다. 처음에 인근의 지방의 대학 병원 의사에게 눈썹을 심는 수술을 받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서울에 있는 이름난 대학 병원의 의사에게 다시 눈썹을 심은 수술을 다시 받아서 마음에서 눈썹에 대한 열등감이 사라진 것은 에이즈(AIDS)가 등장하기 얼마전이었음이 분석되어졌다.


현재의 문제점: C씨의 현재의 문제점을 둘러싼 여러 가지 심리적인 문제점들이 분석이 진행되어가면서 분석되어졌다. 현재의 가장 심각한 증세는 에이즈(AIDS) 강박증이지만 이 문제 이외에도 다른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분석되어졌다. C씨는 2년 전에 자신이 열열히 사랑했던 한 여성과 결혼 직전에서 파경으로 끝난 러브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와는 직장 생활의 시작 때 만나서 결혼을 서로 약속하고 지냈으나 그녀의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C씨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C씨가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따님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빌었으나 결혼을 해 주겠다고 희미한 약속을 해 놓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 버렸다. C씨가 그 결혼에서 한가지 마음에 걸린 열등감은 C씨의 어머니가 가진 부채 때문에 C씨는 결혼 후에 독립해서 살 수가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고 어머니와의 며느리의 갈등을 해결할 자신감이 없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음이 드러났다. C씨는 자신의 봉급 즉 월급이 거의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채무 변제로 날아가 버리고 봉급 때만 되면 우울해진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그 문제가 분석되어졌다. 아버지는 C씨가 직장을 가지기 몇 개월 전에 심한 병으로 고생하다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중병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남편을 병 간호를 거의 하지 않았고 막내 딸이 아버지의 병 간호를 맡아서 했다고 어머니에게 분노했다. 어머니는 음식점을 하고 있다는 핑계를 댔으나 사실은 음식점은 거의 적자로 허덕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돈의 씀씀이에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해서 돈을 끌어다가 썼다. 사금융에서 돈을 빌려서 이것 저것으로 쓰고 감당을 할 수 없게 되는 꼴을 C씨가 보면서 직접 어머니의 음식점에 개입을 하게 되었고 C씨가 자신의 월급으로 어머니의 이자돈을 갚다가 보니까 자신의 봉급에서 한달에 용돈으로 20만원을 제외하면서 모두 이자돈으로 날아가고 돈이 거의 남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결혼할 여자 친구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고 혼자서 끙끙앓고 있다는 것이 분석되어졌다.


C씨와 어머니와 사이에서 얽힌 갈등은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였다. 어머니는 C씨가 경제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면 항상 고개를 돌려 버리고 외면을 했다. 듣기 싫다는 제스처였다. C씨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무절제 하게 돈을 있는대로 끌어다 썼다. 대부분이 사 금융에서 빌린 돈으로 이자 비율이 높았다. 고로 그것을 막기 위해서 C씨가 그 돈을 갚아주고 은행 돈으로 이자 비율이 낮게 바꾸어주어왔다는 것이 분석되어졌다. 이제 남은 아파트는 어머니 이름으로 되어있으나 그 아파트를 지금 당장 팔아도 빚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이 2천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이제 빚 잔치를 하고 어머니의 음식점을 접고 어머니와 C씨 두 사람이 단간 월세 방으로 나오느냐 계속해서 이대로 유지하느냐의 고민 속에 있음을 분석으로 알 게 되었다. 그는 희망이 없다고 절망해 했다. 어느 여성이 빚더미 속에 앉아 있는 C씨를 알 게 되면 시집을 올 수 있는 여성이 있겠느냐로 절망적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음이 밝혀졌다.


문제의 해결 과정: 치료자는 C씨의 에이즈(AIDS) 강박증은 바로 직접 자신의 현실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계속 누적된 자신의 감정을 에이즈(AIDS) 강박증으로 방출하고 있음을 분석해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해결되어지지 않는 문제들을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서 그 문제를 덮어 두고 매춘부 집에서 섹스를 가진 죄의식으로 그 갈등을 돌려 버리고 에이즈(AIDS)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즈(AIDS)에 걸리면 치료 약이 없이 죽음으로 연결된다. 지금 현재까지 에이즈(AIDS)는 치료 약물이 없는 불치병임을 C씨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 쌓이 갈등은 에이즈(AIDS)처럼 풀어 낼 수 없는 갈등임을 C씨 자신이 스스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음을 분석의 과정에서 치료자가 알 게 되었다. C씨는 "나의 문제는 불치 병인 에이즈(AIDS)처럼 고칠 수 없는 난마처럼 얽힌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내 문제를 풀면 내 에이즈(AIDS) 강박증은 풀리게 될 것입니다. 내 핵심 문제는 에이즈(AIDS)처럼 내가 풀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무의식적으로 에이즈(AIDS) 증세를 가지고 하소연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에이즈(AIDS)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병이나 에이즈(AIDS)처럼 해결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에이즈(AIDS)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자라면 내 문제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무의식적으로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을 커뮤니케이션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치료자는 에이즈(AIDS) 강박증을 직접 치료를 하지 않고 C씨의 내면에 쌓이 분노와 엄마와 관계를 해결하기로 했다. 먼제 C씨와 엄마 관계를 분석하면서 어머니와 C씨는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음을 포착했다. C씨와 부모님 즉 아버지와 어머니 관계가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지기 시작했다. C씨는 아버지와 닮은 유사점이 많았다. 아버지는 결혼 초반기부터 어머니와 갈등이 심각했다. C씨가 태어나서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버지는 다른 여성과 외도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발각되어 큰 딸을 데리고 어머니가 아버지가 외도를 하는 장소에 찾아가서 현장을 급습했다가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 맞은 사실들을 큰 누나를 통해서 듣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C씨의 기억에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음식점을 해서 상당히 많은 돈을 모았으나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받지 못해서 아버지의 죽음 직전에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술과 외도로 그리고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임이 밝혀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경제적 관념이 부족해서 돈을 모으고 돈을 불리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돈을 있으면 쓰는 것이고 돈을 쓰면 돈을 저절로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 때 많은 돈을 만졌으나 지금은 적자 생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머니는 씀씀이가 크고 사치적이고 돈에 관념이 없고 돈이 부족하면 그대로 빌릴 수 있으면 어떤 돈이든지 관심이 없이 빌려서 쓰는 스타일의 경제적 관념을 가진 것이 드러났다. C씨 역시 분석 치료를 받기 전에 돈에 대해서 별로 경제적 관념이 없었다. 고로 돈이 부족하면 빌려서 쓰고 지금 현재의 어려움은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서 매꾸어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C씨는 분석 과정에서 월급 때만 되면 우울해지고 절망적이 된다고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이 점을 분석한 결과 봉급 때만 되면 다른 곳에 이자돈으로 다 떼어나가고 남는 돈이 2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분석해 낼 결과 C씨의 경제 관념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분석가의 해석에 깜짝 놀라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또한 C씨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엄마를 닮았다는 분석가의 해석에 무릎을 첬다.


 C씨는 어려운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를 내면 속에 쌓아 두고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는 스타일이 엄마를 빼 닮았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불쾌한 부정적인 감정을 이야기를 하면 고래를 돌려 버리고 그 문제를 회피해 왔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정작 지금도 C 씨는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 속에 억압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치료는 C씨의 어린 시절부터 쌓인 갈등을 직접다루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어졌다. C씨는 어린 시절에 갈등을 풀 수 없어서 억압된 감정을 눈썹으로 주의 집중을 해서 그 갈등을 잊어 버렸다는 것과 통풍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집중에서 직접 동료들과의 갈등에서 오는 분노를 억압했음을 알 게 되었다. 그 문제를 재연해서 직접 다루기로 했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게 되면서 점차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의 갈등을 관계에서 표현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치료가 4개월 정도 진행이 되면서 직접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그 동료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갔다. 또한 어머니와 직접 담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수입과 지출과 어머니의 음식점에서 운영되는 수입과 지출을 일목 요연하게 명세표를 만들어서 이것을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게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피하고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막고 이야기를 듣게 했다. 이렇게 직면하게 되면서 C씨가 놀란 것은 난공불락으로 어머니와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는 개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듣지 않으러고 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태도가 변화가 감지 되었다. C씨는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어머니의 마음을 염려해서 자신의 고민을 일체 이야기하지 않았던 태도를 바꾸고 어머니에게 어린 시절부터 쌓인 고통의 감정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가면서 에이즈( AIDS)의 문제는 의식에서 떠오르는 빈도수가 점점 감소되어감을 알 게 되었다. 치료 5개월 쯤에 이르게 되었을 때 에이즈(AIDS)로 침투적인 생각들은 거의 자치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C씨의 내면 갈등을 표현하고 억압된 감정을 방출하는 과정은 아직도 해결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 했다. C씨는 자신의 내면에 쌓인 갈등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에이즈(AIDS) 갈등을 해소하는 길임을 확신을 하게 되었다.


치료가 5개월 정도 진행이 되어가면서 C씨는 자신의 감정 표현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풀리면서 직무 연수차 1주일간 교육을 받으러 가서 당당하게 자신의 그 연수원에성 반장을 자청했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친밀관계로 이어지면서 대인관계에서 갈등들이 줄어들어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증가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경제적인 문제의 고리가 풀리게 되면서 어머니의 씀씀이를 줄이게 되고 경제 계획을 세우게 되면서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을 시즘에서 한 개의 사건이 발발했다. 어머니가 자신의 경제적인 발목을 죄는 아들에게 분노해서 직접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둘째 딸에게 하소연을 하게 되면서 둘 째 누나와 C씨가 서로 격돌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둘 째 누나가 C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머니를 음식점을 문 닫게 하고 폐지를 줍도록 종용했다고 누나가 분노해서 노발대발로 욕질부질하게 되면서 서로 충돌을 한 것이었다. C씨는 분노해서 어쩔줄 몰라서 어째가 절리고 가슴이 쿵쿵거리고 참을 수 없어서 실내 야구 연습장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야구 공을 치면서 분노를 풀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스트레스 이벤트에서 에이즈(AIDS)의 생각은 침투를 하지 않았다. C씨는 에이즈(AIDS)의 침투 과정을 치료자와 함께 분석하면서 어떤 스트레스 이벤트 이후에 반드시 에이즈(AIDS) 침투 강박증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이미 이 사건 이전에 알 게 되었다. 자신의 갈등을 덮어 버리는 자아 보호 장치로써 에이즈(AIDS) 감염 침투 강박 사고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게 된 것이었다. 에이즈(AIDS)에 모든 마음의 에너지를 집중함으로써 다른 고민들과 갈등들을 잊어 버리고 있다는 것을 분석에서 알 게 되었다. 누나와의 이벤트의 결과는 갈등을 직면하면 에이즈(AIDS) 침투 강박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 셈이었다. C씨는 누나와 자형을 직접 찾아가서 자신의 수입과 지출과 어머니의 음식점의 수입과 지출 명세서를 보여주면서 누나와 자형에게 자신의 문제를 소상하게 이야기하고 어머니가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알 게 했다.


C씨는 지금까지 C씨 자기 자신도 엄마처럼 어떤 분노한 감정이나 갈등들을 직접 직면해서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acting out을 해 왔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화나가면 멱살잡이로 욕질부질하거나 말이 없이 관계를 단절하거나 분노를 폭발해서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아니면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문제를 피하지 말고 직접 그 문제의 갈등들을 직면해서 한가지씩 풀어나가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직접 다루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해서 희망적이 되어가면서 에이즈(AIDS) 강박증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치료의 결과: C씨는 치료가 5개월 말로 접어 들면서 자신의 입으로 이제 5년 동안 싸워왔던 에이즈(AIDS) 문제는 95% 정도는 해결이 되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5년 동안 이 문제에 시달리면서 정신과 의사에게 약물 치료를 받았으나 해결되지 못했공 한 의사에게 한약 처방을 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고 무속인에게 가서 부적을 50만원 짜리를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으나 일시적 효과 뿐이었으나 치료자에게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고마워했다. 그러나 C씨의 문제는 아직도 치료자가 보기에는 핵심 문제는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와 대화 문제는 앞으로도 많은 갈등을 예고하고 있고 자신의 신체적인 긴장을 풀어내는 긴장 해소가 습관적으로 갈등에서 오는 긴장을 내면의 신체에 쌓아 놓지 않고 즉각 적으로 풀어 내는 감정 방출을 습관화 해야 함을 이야기했으나 C씨는 치료 비용이 지금 현재의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누적되어왔고 또 머무 먼 거리에서 치료를 받으러 오는 시간 상의 어려움 때문에 6개월로 치료를 중단 하기로 하고 이 다음에 다시 경제적 어려움이 완화되면 다시 치료를 재개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면서 치료를 종결 했다.

교수님께.<input type="TEXT" value="교수님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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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날짜

2009 7 31일 금요일, 오후 23 46 19 +0900

 

 

<jongmankim@hanmail.net>

 

안녕하십니까 xxx 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사정으로 인해 더이상 교수님에게 상담을 받을 수 없게 되었기에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그동안 교수님에게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과거를 재경험했고 재편성했으며 이제는 하루하루를 창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제가 기대했던데로 제가 왜 건강(에이즈)을 염려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확한 의사표현과 감정표현으로 더이상 상대가 저에게 같은 반응으로 저에게 상처주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아직까지 저에게는 퍼내야 할 분노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그것은 저 몫으로 이겨내야 할 숙제이고 교수님의 역할을 해줄 반려자를 하루빨리 만나야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교수님과의 만남은 일단락 되었지만 제게는 세상에게 가장 의미있는 시간 중에 하나였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교수님을 존경하는 xx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