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등장한 21세기의 정신장애들 4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최근에 정신건강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아 장애 혹은 보드라인 장애 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에 의해서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수년 동안의 반복되는 죽은 느낌의 고질병적인 우울증으로 반복해서 병원에 입원 혹은 폭발적인 충동으로 칼로 손목을 끗는 자해 소동 혹은 환청과 환각을 동반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반복되는 자살 시도 혹은 대인관계의 단절로 방안에서 나오지 않고 밤과 낮이 꺼꾸로 된 올빼미 족들 혹은 로봇처럼 말이 없고 차가운 기계적인 모습의 무감각 환자들이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공황 장애 등으로 진단된 약물 치료로부터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게 되면서였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감정이 왔다 갔다 하는 여러 번의 반복되는 병원에 입원 환자, 감정이 없어 보이는 내면의 죽음을 호소하는 기계적인 환자들에 신경정신과적인 약물이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되자 이런 환자들이 신경정신과 의사들로부터 이름 있는 정신분석가들에게로 이첩이 되어지면서 그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어지게 되었다. 이들을 치료를 하는 정신분석가들은 이 장애들이 분명히 신경증에 소속된 장애가 아니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게 되면서였다.
이러한 자아 장애가 최초로 학계의 관심거리고 등장한 것은 1938년의 싸르트르의 구토라는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신분석 학계에서는 이미 1년 전에 1937년에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아돌프 스턴(Adolph Stern)이 늘 치료를 하는 신경증 치료 이론으로써는 치료가 어려운 새로운 장애들의 등장을 학계에 보고한 것이 보드라인 장애이다. 보드라인 이라는 말은 신경증 보다 심각하고 정신증보다 약한 장애로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계선에 속한다는 뜻이다.
프로이트 시대에는 신경증 치료가 대세였다. 그러나 과학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서 정신과적인 문제들도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함에 따라서 이들에 대한 치료 이론들이 정신과 문제들을 따라잡지 못하게 되면서 수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새롭게 등장한 신경증과 유사하면서도 분명히 치료가 어려운 장애들에 대해서 연구와 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학자들에 의해서 정신분석학을 수정 변경해서 이들 환자들의 치료 이론으로 등장 한 치료 기법과 이론이 바로 대상관계(Object Relation theory) 치료이다.
대상관계는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에 의해서 탄생을 했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제자인 항가리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샌도르 프렌치 밑에서 13년 동안 정신분석을 연구를 했다 이후에 독일 정신분석 학회 회장인 칼 아브라함 밑에서 3년을 연구했던 정신분석가로써 그녀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신경증 치료에만 국한해야 한다는 강조를 거부하고 정신증적인 어린이들 치료에 뛰어들어서 놀이 치료를 최초로 고안한 정신분석의 개척자이다. 그녀는 유아들의 정신분석 치료인 소아 정신분석학의 개척자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영국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어네스트 존의 초대를 받아서 영국을 방문했고 이후에 영국에 귀화한 비엔나 출신의 정신분석가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와 꿈 분석이 어린이들과 유아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치료 이론으로 놀이 치료를 고안해서 엄마와 아기의 상호관계 이론을 바탕으로 한 대상관계 이론을 창조했다(크레인의 전기를 쓴 한나 세갈의 저서 크레인을 보라, Segal, 1989: 주㈜: 참고).
대상(object)이라는 말은 내(self)가 아닌 너(object)를 지칭한다. 자아인 나는 너(엄마)에 의해서 탄생이 된다. 나는 네가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가 없다. 내 이름은 부모인 너(대상)가 제공한 것이고 내가 부르는 것이 아니고 너(대상)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대상이라는 말은 나보다 너의 관계가 우선한다는 말로써 너와의 관계 지칭하는 의미 깊은 말이다. 크레인은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을 정신분석이라는 현미경으로 들어다 본 정신분석의 개척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녀의 이론들은 그녀의 제자들에 의해서 유아 정신증, 자폐증의 치료 이론, 정신분열증(조현병)의 치료 이론으로 확대되어 번창하게 된다.
초반기 그녀의 이론은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페비안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페비안은 신생아는 태어나면서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상으로 향한다는 프로이트 이론을 거부하고 인간은 출생 직후에 대상(엄마)으로 향한다. 욕구 만족 때문에 엄마를 찾는 것이 아니라고 살아남기 위해서 관계를 찾는다 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크레인의 이론과 연합을 해서 대상관계 이론으로 탄생하게 된다. 크레인의 제자로써 그녀 밑에서 그녀의 이론을 정신증 치료 이론에 연구를 시작한 3인 방 연구팀의 정신분석가들이 바로 세갈(Segal), 로젠필드(Rosenfeld: 주㈜: 참고) 그리고 비용(Bion)이다. 그들 이외에도 그녀의 이론을 확대시킨 위니코트, 컨버그 그리고 자아 심리학을 탄생시킨 코호트 등의 수많은 분석가들이 있다.
여기에서 자아의 등장으로 돌아가보자. 자아(self)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신경학자인 휴글 잭슨(Hughing Jackson)으로 그는 자아를 단일한 한 개가 아닌 두 개로 구분을 했다. 의식을 경험하는 현실적인 자아 그리고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사적인 자아로 구분을 했다. 내면의 자아인 사적인 자아는 마음의 눈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것으로 정의를 했다. 그의 자아 이론은 이후에 비엔나의 프로이트, 프랑스의 해리 장애의 대가인 피에느 장(Pierre Janet) 그리고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로 연결된다. 이 자아라는 말은 그 이후에 융(Jung)과 위니코트와 코호트 등에 의해서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 이론으로 개발되어지게 된다.
프로이트는 자아(self)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프로이트의 독일어 정신분석학을 영어로 번역을 하면서 자아라는 말인 독일어인 나(Ich)를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제임즈 스트라치(James Strachey)가 ego로 번역해서 사용한 것이 정신분석의 정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여러 차례 밝혔다. 프로이트는 self라는 말을 알고 있었지만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은 ego는 과학적인 용어로써 기술이 가능하지만 self는 과학적인 용어로 기술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피하게 되었다고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모델(Model)(주㈜: 참고)이 밝히고 있다. Ego는 적응기능, 방어기능, 학습기능, 조정기능, 보호 기능 등의 다양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후에 자아라는 두 개의 영어 용어가 ego와 self로 사용되어지게 되자 혼란을 일으키면서 이것을 1939년에 정신분석가인 하트만(Hartamann)이 나와 너를 대표 하는 자아로써 self로 그리고 ego는 자아 안에서 행정기구로 기능을 하는 것으로 구분해서 정의를 함으로서 정리를 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와 크레인 그리고 에릭슨과 몰러(Mahler) 등의 정신분석가들이 ego 쪽으로 개발하고 응용한 치료들과 대조적으로 self를 중심으로 치료 이론을 개발한 피에르 장, 융(Jung), 위니코트와 코호트, 칼 로저서(Carl Rogers) 들이 대조가 된다.
이제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 이론으로 되돌아 가보자. 이 두 개의 자아는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암 제임즈에 의해서 휴글 잭스의 두 개의 자아 이론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제임즈는 의식을 흐름으로 보았다. 의식은 정지된 고착된 상황이 아니라 계속해서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입하고 교환을 하는 흐름으로 보았다. 동시에 주체는 변함이 없다고 보았다. 한번 형성된 주체는 확고한 자아 의식으로 외부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고 변함이 없다는 것에서 모순이 생긴 것이다. 끊임없이 흐르는 의식과 변함이 없는 주체가 모순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문제는 이후에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제랄드 에델만(Gerald Edelman, 2002, 2004: 주㈜: 참고)에 의해서 생물학적인 자아로 해결이 되었다. 에델만은 신경세포의 적자생존으로 다윈의 진화 이론을 신경세포의 자연도태 이론으로 주장한 학자로써 생물학적인 자아로 설명하고 있다. 뇌 안에 자아가 소속된 것으로 신체는 자체균형유지(homeostasis)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체는 변함이 없이 외부의 정보를 끊임없이 수용해서 수정과 보완을 거치면서 자아가 성장과 발전을 함께 한다는 이론으로 해결이 되었다(하버드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모델의 사적인 자아의 저서를 보라)(Model, 1993: 주㈜: 참고).
융(Jung)은 외부에 보이기 위한 자아 즉 외형적인 자아를 페르소나(persona)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용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무대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한다. 가면 혹은 무대에서 보여 주는 공적인 자아로써 융은 이것을 페르소나(독일어), 퍼스나(영어)로 불렀다. 이것이 바로 공적인 자아(public self)이다. 우리는 모두가 외부에 보이는 자아와 개인적인 사적인 자아의 두 개의 이중 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 외출을 해서 사람들과 관계를 할 때 좋게 보이려고 하고 장점을 내 보이려고 치장을 하고 화장을 하고 단장을 하는 자아를 말한다. 반대로 사적인 자아는 개인적으로 집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적인 비밀과 개인적인 모습을 지칭하는 자아로 구분해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공적인 자아는 외부 대상들과 관계를 하는 자아로 항상 잘 보이려고 하고 장점을 보이려고 하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자아이다. 반대로 집에 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사생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하고 싶지 않는 나만의 개인적인 비밀들을 가진 자아가 바로 사적인 자아이다.
공적인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알려져 있는 장점을 내 보이는 과식적인 나 자신이지만 사적인 자아는 내가 숨기로 싶고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사생활의 자아, 엄밀한 자아, 단점을 가진 자아를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
프로이트는 자아를 3가지 구성 요소로 의인화 시켰다. 본능적인 자아인 원초자아, 그리고 양심으로 불리는 부모의 목소리인 초자아 그리고 현실에서 적응과 학습과 자아 보호와 방어를 기능을 가지고 사춘기를 거치면서 확고하게 내 자아의 주인공이 되는 ego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3두 마차가 신경증 치료에서는 효과가 있었지만 심각한 신경증적인 고질병에는 효과가 반감 된다는 정신분석가 들에 의해서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 이론이 응용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치료자는 36년 동안 심리치료를 연구하고 치료를 해 오면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핵심 문제가 대인관계가 잘 되지 않고 경직되고 껄끄럽고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움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관계를 하지 않고 피하는 대인관계 공포증으로 이것이 다시 더욱 더 확대되어 회피적 자아로 확산 되면서 모든 정신과적인 장애들 안에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깔려 있다고 여러 차례의 글들에서 밝힌바 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의 이론에서 한 단계 업 그레이드 된 것이 바로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 이론이다. 이 이론은 심각한 정신과적인 장애의 치료에 도움을 위한 학자들의 응용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벙어리가 아닌 일반 인들은 부모님과 관계 혹은 직장에서 상사들 혹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친밀한 관계를 제외하면 외형적인 관계는 큰 문제가 없다. 즉 어른들이 시키면 부응하고 순종하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요구에 부응을 하는 정도의 관계는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즉 대인공포증 혹은 회피적 자아 장애를 가진 사람들 혹은 보드라인, 정신증을 가진 사람들도 친밀한 관계를 제외하면 공적인 자아는 크게 문제가 없다. 문제는 사적인 자아 즉 동료들과 관계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할지? 몰라서 불편하고 껄끄러워지고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이것이 바로 사적인 자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신분석가들이 발견을 하게 된 것이다.
사적인 문제는 바로 내 개인적인 비밀과 사생활에 관계된 자아가 아닌가? 우리는 내 개인적인 비밀, 사생활의 비밀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그들이 나를 무가치한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나를 버릴 것이다 혹은 나를 평가절하하고 나를 비판하고 나를 돌 아이로 취급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나를 숨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좋게 보이려고 하면 나는 긴장을 해야 하고 그 긴장이 과도하게 과중 되어지면 나는 긴장이 쌓이게 되어 불편해서 고통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피하거나 관계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대인공포증이라는 것을 치료자는 여러 개의 글들에서 수 없이 밝혀왔다.
이 사적인 자아가 어떻게 결함으로 등장했는지 그리고 치료에서는 이 사적이 자아의 개발이 어떻게 치료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는가?를 살펴 보기로 하자.
21세기에 문제로 등장하게 된 이 사적인 자아는 과학 문명의 급속한 진전과 관계가 있다. 농경시대에는 대가족으로 형제들이 많아서 관계에서 갈등과 어려움들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양육은 어머니와 누나들이 전담을 했고 아기들을 엎고 안고 키웠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그리고 21세기로 들어 오면서 부부의 맞벌이로 자녀들은 유아원, 영아원으로 조부모의 손으로 이동을 했다. 자녀는 1명 혹은 2명으로 제한되었고 자녀들을 먹이는 것과 입히는 것과 대소변을 해결해 주는 쪽으로 변하게 되었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영아원, 보육원에서 한 보모가 7명-8명의 유아들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부응하고 순응하고 요구하는 것에 따라가게 되었다. 양육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대소변 갈아주고 질병과 사고로부터 보호받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양육에서 부모님의 욕구에 부응하고 순응하고 쪽으로 양육이 흘러가게 된 것과 관계가 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유치원과 학동기가 시작되면서 자녀들은 동료들과 관계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할지를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적인 자아는 너의 요구에 부응해서 응답하는 일반적인 대화로써 벙어리가 아닌 이상 큰 문제가 없는데 비해서 사적인 자아가 개발이 되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제임즈 볼드인(James Baldwin)의 주장으로 시작해서 이후에 많은 학자들은 어린 시절에 놀이 문화가 사라진 것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Meares, 2005: 주㈜: 참고).
다시 유아기로 되돌아 가보자. 부모님의 몸으로부터 분신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출생 초기에 자아가 없다.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최초로 등장하는 자아는 엄마의 얼굴이다. 생후 7개월-9개월 정도가 되면 엄마의 얼굴을 구분한다. 낯가림이다. 엄마의 이미지가 마음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어린이가 1.5세-2세가 되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여러 번 글에서 밝혔다. 이것이 공적인 자아가 된다. 공적인 자아는 2세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적인 자아는 언제 등장하는 것인가?
학자들이 많은 실험을 했다. 호주의 시드니 의과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로써 고질병의 정신과적인 치료에 대가로 알려진 미아레(Meares)는 3.5세에서 6.5세의 어린이들을 40명을 대상으로 윌리(남자 어린이)의 귀에 속삭이는 셀리(여자 어린이)의 A4 용지 크기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 그림이 무엇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물었을 때 나이 많은 어린이들은 비밀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술을 했다. 비밀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라고 대답을 했다. 비밀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어린이들의 평균 나이가 4살이었다. 여기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나이가 비슷한 나이로 평균 5세 정도가 되었다. 이들을 실험한 연구팀들은 비밀과 거짓말을 사용하는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모르는 자신 만의 비밀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Meares, 2005 : (주㈜: 참고).
사적인 자아가 평균 4살과 5살의 나이 시쯤에서 개발되어진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어린이들을 언어의 사용이 활발하게 된다. 여기에서 놀이가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지금의 어린이들도 놀이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어린이들의 놀이와 지금 현재의 어린이들의 놀이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학자들이 밝혀냈다.
과거에 엄마들이 양육을 전담했을 때 그 시대에 놀이는 엄마가 아기의 눈 높이에 맞추어서 엄마가 아기와 함께 놀이를 했다. 이것을 영국의 정신분석 학자인 위니코트는 엄마와 아기가 함께 추는 춤으로 표현을 했다. 여기에서 핵심 문제는 놀이를 하는데 엄마가 주도하는 놀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놀이의 주도는 아기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기가 스스로가 장난감을 선택하고 스스로 그 장난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그러한 아기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 참가자, 지원자, 보조자가 된다. 그러한 놀이 안에서 아기는 현실 세계 즉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구분이 없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하나가 된다. 혼자서 너와 내가 이야기를 한다. 놀이 치료를 강조하는 위니코트와 미아레(Meares)는 강조를 하기를 이러한 놀이 치료 그 자체는 아기 혼자의 세계도 아니고 엄마 혼자의 세계로 아닌아기와 엄마가 같이 창조하는 함께 하는 공간이 된다. 즉 교집합(수학)이 된다. 이것이 바로 사적인 공간이 된다. 사적인 공간 안에서 사적인 자아가 탄생하고 사적인 자아가 자라나기 시작한다고 본다. 아기가 놀이에서 사용하는 언어들과 이야기들은 내면적인 비밀스런 전지전능한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루게 된다.
더 붙여서 에릭슨은 0세-1세 때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무릎에서 내려 오가 시작하면서 아기는 기고 뒤집기를 한다. 일어서기 위해서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옆에 엄마가 지원을 해주는가?를 확인하면서 주변 환경의 탐색에 몰두 할 때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생명을 가진 물활론으로 보게 된다. 주변 환경의 탐색에서 두려움과 장애물을 만나면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도 아기가 엄마를 부르면 항상 엄마가 달려올 수 있는 것에서 어린이는 엄마에 대한 확고한 신뢰감과 믿음이 형성된다고 이론화 하고 이것을 믿음의 형성, 신뢰감의 형성으로 보았다.
더욱 더 나아가서 애착 이론가들은 엄마의 낮 가림으로 등장하는 분리 불안과 낯선 사람 불안 시점인 7개월-9개월 사이에 불안한 애착을 가진 어린이들은 엄마의 분리에 두려움과 불안으로 엄마에게 그림자처럼 매달리는 것을 밝혔다. 여기에서 애착 이론가들 역시 아기의 마음 속에 새겨진 엄마의 이미지가 아기의 애착 형성에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는가? 혹은 불안한 애착이 형성 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을 한다.
불안한 애착을 형성한 어린이들은 안정된 애착을 가진 어린이들의 장난감 놀이와는 전혀 다르게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는 것을 밝혀냈다. 불안한 애착을 가진 어린이들은 장난감을 안고 있거나 특정한 장난감을 엄마의 대리 대상으로 쥐고 위안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을 밝혀냈다. 불안한 어린이들은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엄마를 그림자처럼 찾았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게 되면서 어린이들은 유아원, 영아원으로 맡겨지거나 혹은 조부모 혹은 친척들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여기에서 놀이가 실종되어져 가고 있다고 강조를 한다. 오늘 날의 어린이들에게 장난감은 과거의 어린이들보다 량으로 엄청나게 많이 제공된다. 그러나 그 장난감에 엄마와 아기가 함께 창조하는 창의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보모나 조부모 혹은 친척의 양육자들은 장난감을 어린이들 손에 쥐어주면서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한다. 아니면 TV에서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놀게 한다. 이러한 어린이들은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만 여기에서 창의적으로 지원하는 엄마가 없기 때문에 그냥 호기심으로 장난감을 만지고 가지고 노는 것이지 이 장난감으로 대화를 하거나 자신의 세계 안에서 창의적인 공간을 창조하지 못하고 그냥 장난감을 이것 저것으로 놀이를 하다가 지루해서 다른 장난감으로 대체하는 놀이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사적인 자아의 핵심은 비밀스러운 사생활이고 개인적인 내면의 감추어진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수치심적인 부끄러워하는 자아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친밀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적인 자아를 서로 많이 알고 서로 나누는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로 속내를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많이 알고 있을수록 우리가 친밀한 사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친밀감을 나누는 사적인 자아는 그것이 바로 공감이 아닌가? 공감은 내가 너의 사적인 비밀의 자아 속으로 들어가서 내가 너의 내면의 현상들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공감과 친밀감은 사적인 자아의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환청을 가진 21세의 A군은 어린 시절에 전업 주부인 엄마의 손에서 자라났다. 첫 시간에 그의 첫 마디는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불평을 했다. 어떤 내용인지 상세하게 그의 불평이 밝혀지면서 그는 유아기 때 그리고 어린 시절에 어머니에 달려 가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어머니는 시큰둥해서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시부모와 갈등으로 엄마는 결혼 초반기에 고통 속에 살았음이 밝혀졌다). 처음 2시간의 컨설팅 시간에 어머니는 간단하게 메모를 한 노트 쪽지를 들고 치료자에게 아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아들이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건성으로 듣는다”라고 불평을 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들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어주지 않아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둔다고 불평을 했다. 분석이 30시간 이상으로 진행 되면서 엄마가 A군의 유아기와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사적인 자아가 개발되어지지 않고 성장이 중지된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TV와 이야기를 하고 욕설을 하는 30세의 B군은 정신병원에서 1개월 입원을 하고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불만족으로 그리고 거액을 지불하고 3개월 특수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받았으나 증세가 재발하는 바람에 치료자를 찾게 되었다. 그는 지방의 소 도시에서 그 지역의 유지로 존경 받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할아버지 덕분에 장손자로 태어나서 조부모와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귀여움을 받았다고 자부를 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B군이 출생 이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양육을 전담을 하고 2살 때까지 양육을 해 주었다.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할머니는 2명의 손자와 손녀를 양육할 수 없으니 분가를 하라고 해서 부모님은 독립된 생활에서 어머니가 1년 동안 휴직으로 쉬다가 B군이 4살이 되면서 어머니는 직장으로 복귀를 했다.
B군은 조부모와 부모님의 돌봄에 순응하고 부응하는 착한 손자와 아들로 성장을 했다. 전통적인 유교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B군은 부모님의 지시, 지적에 순응하고 부응하는 어린이로 자라났다. 사적인 자아가 개발이 되지 않아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료들과 관계가 되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동료들과 그리고 후배들과 갈등 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 분석의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는 동료들과 관계에서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모방행동으로 그들에게 소속감을 얻으려고 하고 어울리려고 하면서 불량 청소년들로부터 나쁜 행동을 따라 하면서 그들 속에서 소속감을 얻으려고 하다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27세의 C군은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치원 시절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터넷 게임에 빠져들어서 하루 종일 게임에 매달려 있었다고 실토를 했다. 왜 게임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초등학교 입학 후에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되면서 외로움과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 게임에 빠져들었다고 고백을 했다. 사적인 자아가 개발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C군은 외모 즉 얼굴 성형수술(눈과 코)로써 그리고 값비싼 외제 옷들로써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대신하려고 한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그는 관계가 어렵다는 것이 소통과 공감과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사적인 자아의 힘이라는 것을 모르고 신체적인 외모로 대인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사적인 자아의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치료자에게 지금까지 심리치료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적인 자아를 개발하지 못해서 개인의 비밀스런 혹은 사생활들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항상 장점을 내 보이고 좋게 보이려고 하는 과시적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로써 너에게 의존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공적인 자아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부응하고 동료들과 피상적인 관계에서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혹은 고교 시절에 자퇴로 검정 고시를 한다는 명목으로 자퇴해서 대입수능에서 실패한 사람들 혹은 대학에 입학해서 1년 동안 다니다가 휴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치료의 과정에서 어떻게 사적인 자아의 개발로 대인관계를 회복하고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에서 긴장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대인관계의 대화가 즐겁고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고 친밀감이 형성되는가? 쪽으로 방향을 돌려 보기로 하자. 물론 사적인 자아의 형성 하나만으로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다. 관계에서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안정을 얻은 후에 부모님과 관계에서 사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리고 나아가서 동료들과 친구들과 관계로 점점 사적인 자아를 확대해서 개발해 나간다. 여기에서 과거의 상처들을 다시 치료 회기 시간에 재연해서 상처를 닦아 내고 씻어내고 치유의 과정을 거친다. 현실에 직접 직면으로 갈등 관계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자아의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하고 그리고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말로써 표현하는 기능의 개발로 그리고 의사 소통에서 자신의 의견과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자아의 능력을 고양시키는 치료들이 숨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어떻게 사적인 자아의 개발로써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시작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치료자는 최근에 유행으로 번지고 있는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치료를 하지 않는다. 3개월 혹은 4개월 치료 프로그램은 치료의 단계들과 진행의 과정들이 미리 정해져 있다. 치료사는 그 정해진 치료 프로그램을 따라간다. 이것은 정신분석 심리치료에 적합하지 않다. 고로 치료자는 따로 정해진 치료 프로그램이 없다. 치료자는 6개월 치료 계약으로 6개월 치료 비용을 먼저 받고 나서 치료를 시작한다. 그 이유는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어린 시절부터 발달 단계들을 거치면서 자아의 결함을 찾아내고 마음의 상처들을 찾아내고 갈등의 해결 방법을 분석해 내고 그리고 의 사 소통의 방식을 찾아내고 감정의 표현 방식을 분석으로 찾아내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고쳐 나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6개월의 치료 과정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과 치료자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경우에 매 시간마다 치료 비용을 받는 치료사의 경우에는 치료를 받는 사람이 치료사에게 화가 나거나 분노, 짜증, 노여움이 생기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차단시키기 위함에서 6개월의 치료 비용을 먼저 받는다. 매 시간 마다 치료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치료사와 갈등이 생기면 치료를 그만두면 손해가 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치료에 나오지 않게 된다. 내가 치료사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지 않고 다른 치료사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치료는 중단된다. 치료자의 경우에는 6개월 치료 비용을 미리 받았고 그리고 환불 불가라는 조건을 내 걸었기 때문에 치료자와 갈등의 경우에 치료를 받는 사람은 몇 번 결석을 한다고 해도 치료에 나오게 되고 왜 결석을 했는가?라고 물었을 때 치료사 선생님에게 화가 나서 결석을 했다는 말이 나오게 되고 그렇다면 왜 화가 났는가?를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화를 풀어 내고 치료자가 사과를 하고 서로의 갈등 관계를 분석해서 다시 치료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피하지 말고 그것을 해결하는 기술과 방법을 습득하기 위해서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데 치료사와 치료를 받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그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과 방법을 습득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치료자가 반드시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치료 비용을 미리 받고 나서 치료가 시작된다는 글은 여러 차례 밝혔었다.
첫 치료 회기 시작 때 치료자는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반드시 한다. 2시간의 치료 회기 시간 동안에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곳에서는 예의, 도덕, 존경 등의 단어는 없습니다. 일부러 예의를 지키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하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말을 잘 하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나오는 대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세요. 하기 싫거나 비밀을 지키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한 개인적인 1급 비밀들은 나중에 하고 싶을 때 하면 됩니다. 치료자는 이야기를 할 때 눈을 잘 감고 이야기를 듣습니다(물론 2시간 동안 모두 다 눈을 감는 것이 아니고 눈을 감고 듣다가 다시 눈을 뜨고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눈을 감고 듣는다). 이러한 치료자의 태도를 혹시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인가? 라고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눈을 감고 듣는 이유는 손님(치료자는 환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치료사를 방문한 손님으로 호칭)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가자뿐만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 서로 이야기의 연결을 해서 실마리를 찾아내고 서로의 실마리들을 연결해서 갈등의 원인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머리 속에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님께서도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해도 됩니다 그리고 비스듬히 누워서 이야기를 해도 됩니다. 혹은 편안하게 누워서 해도 됩니다(치료자는 신경정신과 의사들처럼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카우치를 사용한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서 대화가 시작된다.
여기에서 특별히 치료자는 일반 심리치료사들 혹은 상담사들처럼 치료 회기 시간을 40분 혹은 50분으로 1시간을 치료 회기를 사용하지 않고 2시간을 사용한다. 이러한 이유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50분으로 치료 회기를 사용하면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도 못하고 핵심을 빼먹고 50분을 지나가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시간 당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하고 싶은 핵심적인 문제를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손님들이 불평을 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그리고 2시간 동안에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을 풀어 내기 위한 제 1차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야기는 핵심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자유롭게 흘러가면서 이야기는 흘러가도록 하기 위함에서 이다. 물론 2시간의 치료 회기 시간에 하는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중복되어져서 금방 했던 이야기들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야기를 하는 손님이 지루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면서 편안하게 긴장을 풀어내기 위한 것이 제 1차적 치료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님들이 모르고 있는 제 2 차적인 목적은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가는 치료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는 반복되면서도 단계별로 정해진 스케줄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 가면서 이야기의 내용에 관심 보다는 조그만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최면의 효과처럼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이야기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손님은 모른다. 다시 말해서 이야기들이 반복으로 이어지면서 조그만 실마리들이 서로 이어지게 되면서 최면의 상태로 연결되어지게 된다. 최면을 걸어서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조그만 단계들의 이야기들이 순서 없이 진행됨으로써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인식을 하지 못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내용에 심취하게 되는 것이다. 최면의 특징이 조그만 단계로 이야기를 이어가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그 속에 빠져들어가는 효과가 2시간의 치료 회기 속에 포함되어져 있다.
치료자는 치료가 시작될 때마다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항상 “그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라고 질문을 한다고 미리 일러 준다. 매 시간 치료 시작 때마다 1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 물론 보통은 1주일에 1회 치료 회기로 2시간 분석 상담을 진행을 한다. 그러나 휴학이나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1주일에 2회 혹은 3회 혹은 5회까지도 치료 회기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치료를 받는 사람과 치료를 하는 사람 사이에 서로 조정으로 만들어진다. 치료자는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치료 회기가 끝나고 그 다음 치료 회기가 시작되는 그 기간에 새로운 이벤트 혹은 다른 사람들 특별히 가족 구성원들과 갈등 혹은 좋은 일 혹은 나쁜 일 등을 이야기를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치료를 시작한다. 더 붙여서 치료 회기 시간에 하지 못한 궁금한 질문들 혹은 치료 회기가 끝나고 새롭게 머리 속에 등장한 아이디어들 등을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이러한 치료 과정을 사용하는 이유는 치료를 받는 사람이 치료 회기를 주도해 나가도록 하는 숨은 비밀이 담겨있다. 어떤 내용이든지 치료를 주도 하는 사람은 치료를 받는 사람이 된다. 만약에 치료를 받는 사람이 “이번 주일에는 아버지와 대화를 했는데 잘 진행이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치료자는 그 문제를 한번 분석해 봅시다 로써 치료 회기가 진행이 된다. 혹은 이번 주일에는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라고 하면 그 꿈을 한번 분석해 봅시다 로써 치료가 진행이 된다는 말이다.
치료를 받는 사람은 치료 회기 시간에 어떤 이야기를 해도 치료는 진행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만약에 지난 주일에 치료 회기가 끝나고 오늘 치료 회기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치료자는 그렇다면 지난 주일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치료 회기를 진행하게 된다. 여기에서 강조점은 치료를 받는 사람은 어떤 내용의 이야기든지 혹은 어떤 대화를 해도 치료에서는 어려움이 없이 진행이 되어간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고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별도로 해야 하겠다는 초반기 이야기들을 다 하고 나면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오늘은 무엇을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없어지고 그냥 와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하면 된다는 인식이 손님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는 내용과 주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냥 와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부담감이 없고 대화는 항상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대인공포증의 핵심이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과 걱정과 근심이 아닌가? 이러한 치료 회기가 50시간 혹은 100시간이 지나가면서 대화는 어떤 것도 가능하다라는 생각에서 긴장하지 않게 되고 어떤 내용의 이야기도 사적인 대화는 가능하다는 것을 손님은 자신도 모르게 몸으로 배양이 되는 것이다.
치료가 약 10시간 정도의 치료 회기를 거치면서 치료자는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슬쩍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 동안 약 10시간 정도의 치료 회기를 거치면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2시간의 치료 회기 동안에 껄끄러움, 불편함 혹은 부자연스러움을 느낍니까? 이것은 100% , 50%, 0%로 대답을 해 보세요 즉 도저히 불편해서 앉아 있을 수 없다면 100%로 반반 이면 50% 그리고 전혀 불편함이 없다면 0%로 대답해주세요 라고 질문을 한다. 이러한 질문에서 대부분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선생님과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면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2시간이 마치 30분처럼 빨리 지나갑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고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겠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지금까지 치료자와 치료 회기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이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한 사람이 최고는 30% 정도라고 이야기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치료자는 앞으로 치료가 30회 혹은 40회로 진행이 되면 더욱 더 불편함이 없어지고 편안해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손님이 지금 치료자에게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전혀 불편함이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 우리가 서로 나누고 있는 이야기들이 주로 어떤 이야기들입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라고 이야기를 하면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것들은 모두가 내 고민, 갈등, 그리고 고통스런 이야기들입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치료자는 정확하다고 칭찬을 하면서 손님은 이러한 고통, 고민, 갈등과 괴로움들을 지금 치료사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해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어 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비밀들을 이야기를 한 것이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치료자에게 한 이야기를 100%로 본다면 손님은 어머니에게 몇 % 그리고 아버지에게 몇 %를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어 본다. 그러한 질문에 대부분의 손님들은 아버지에게 30% 정도 그리고 어머니에게 20% 정도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님이 선생님에게 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30% 혹은 20% 정도 밖에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까?라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이것은 손님과 어머니 사이에 불편함을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대화가 조금 많다는 것을 뜻한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는 손님들이 어머니와 관계가 더 어렵다고 이야기를 한 사람들의 90% 이상이 정신분열증(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치료자는 손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부모님인데 부모님에게 고민 갈등 고통 괴로움들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라고 물어 보았을 때 27세의 D군은 중학교 1학년 때 하루는 어머니에게 울면서 어머니 학교 가기 싫습니다, 동료들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가 “너만 괴로우냐? 나도 미칠 지경이다.” “그러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 “이를 악물고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라고 역정을 내면서 짜증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말에 기가 질려서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 고민, 고통, 갈등, 괴로움을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맞벌이 부부) 부모님 자신의 문제 때문에 자녀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시간이 없다는 이유들을 내 세운다.
지금까지의 치료 회기 과정은 치료자가 마음대로 지어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마음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치료자는 수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평생 동안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쓴 저서들과 논문들을 읽으면서 그들의 치료 방법과 치료 기술을 연구해서 나온 효과적인 치료 이론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인 모델(Model, 2002, 2004: 주㈜: 참고)의 저서 “사적인 자아”에서 그리고 호주의 시드니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미아레(Meares, 2005: 주㈜: 참고)의 저서 “놀이의 은유”에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적인 자아의 고착을 다시 성장 발달 시키는데 초점을 준 치료를 하고 있다. 특별히 미아레 교수는 놀이 치료를 강조하는 학자로 고질적인 반복되는 정신장애들의 치료로 세계적인 대가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다. 그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 사이에 치료 회기는 장난감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를 하고 있지만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의 주고 받는 대화는 놀이에 비유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놀이처럼 즐겁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대화의 주도권은 분석을 받는 사람이 쥐고 있다. 분석가가 치료 회기를 주도 해서 이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치료 프로그램의 운영자는 치료사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간다) 분석을 받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대화의 주제는 항상 분석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분석을 받는 사람은 2시간 동안에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이 풀리고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고 시간이 지나가는 줄을 모른다는 것에서 사적인 대화가 동료들과 관계에서 후배들과 관계에서 이야기의 핵심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특별히 미아레 교수는 4세-5세부터 시작되는 놀이의 본질을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에게 비유를 한다. 놀이를 하는 어린이는 두 사람이 함께 한다. 어머니가 놀이의 지원자이고 보조자이고 참가자가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어린이가 놀이를 주도 하는 것이다. 대화는 너와 내가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어린이는 나와 네가 없이 서로가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해 나간다. 어머니는 보조 도우미가 된다. 어린이는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전지전능하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하게 되고 어머니는 이것을 수용하고 받아주고 지원을 해 준다. 여기에서 사적인 자아가 개발되고 성장하고 발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사적인 자아의 개발은 이후에 동료들과 관계에서 사적인 자아가 작동해서 수 많은 비밀스런 개인적인 상상과 생각들이 흘러가게 된다.
치료 회기에서 치료를 받는 손님은 자신의 사적인 개인적인 비밀 이야기를 주도해 나간다. 치료사는 지원자가 되고 보조자가 되고 도우미가 된다. 손님이 하는 이야기는 황당하고 전지전능할 수도 있고 그리고 논리가 맞지 않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횡설수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분석가는 이것을 수용해주고 받아주고 지원해주고 얼마든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도와준다. 대화는 끝이 없이 계속된다. 대화는 어린이들이 하는 놀이처럼 장난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대화 자체가 그 대화를 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고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해도 즐겁고 재미있고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에는 반드시 두 사람 즉 너와 내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놀이에서는 어린이와 함께 하는 엄마가 있다. 치료 회기 안에서는 대화의 놀이에는 반드시 분석을 받는 사람과 함께 하는 분석가가 있다.
여기에서 한가지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혼자서 상상 속에서 사는 백일몽 혹은 전자 오락에 빠져 있는 개임 중독자들의 대화와는 어떻게 다른가? 게임 속에서 혹은 백일몽의 상상 속에서 빠져서 즐거움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혼자가 아닌가? 거기에는 같은 동료로써 서로 연결되어진 너(네)가 있지만 그들은 엄마도 아니고 분석가도 아니다. 그들은 똑 같은 게임 중독자이고 백일몽처럼 상상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상상 속에서 게임 속에서 나오면 현실은 시궁창이다. 게임 자체가 그리고 백일몽 그 자체가 상상의 세계가 아닌가!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왜곡되어지고 현실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어린이들의 놀이에는 엄마가 참가자가 된다. 치료 회기 안에서는 분석가가 참가자가 있다. 그들은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분석가인 융(Jung)은 분석가가 된 어른 시절에 어린 시절의 자신의 발짝 증세를 분석으로 치료를 하면서 그의 꿈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그것을 분석해 나감으로써 6년 동안의 치료 회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발짝 증세를 치료를 한 것을 자서전에서 그리고 제자들에게 밝히고 있다. 그는 환자들이 자신의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면서 분석을 할 때 반드시 현실에 발을 담그고 분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현실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상상 속에서 점점 빠져들어가 그것이 결국은 환청이 되고 환각으로 왜곡되어짐을 경고를 했다.
치료사 라는 현재의 인물이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치료자(분석가)가 분석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고 지지해주고 있다. 손님은 혼자서 지껄이는 것이 아니고 분석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상상 속에서 혼자서 대화를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서 특별히 강조를 하는 것은 손님이 2시간의 치료 회기 시간에 나누는 대화는 손님 혼자의 100%의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다(상상 속에서 게임 혹은 백일몽 속에 사는 사람들은 100% 혼자만의 세계이다) 그리고 분석가 혼자 만의 100%의 세계도 아니다. 이것은 분석을 받는 사람과 분석가의 상호주관 즉 교집합으로 생긴 새로운 창조의 대화, 창조의 공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상호작용의 주관이 함께 모여 같이 창조한 두 사람의 공통된 창조의 공간이라고 강조를 한다. 상호주관의 이론은 최근에 세계적인 정신분석가로 이름난 학자들 특별이 영국의 외과 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윌프레드 비용(Wilfred Bion)의 이론에서 그리고 영국의 소아과 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도날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t)의 이론에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의과대학의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5: 주㈜: 참고)의 이론에서 치료자가 흡수해서 따온 치료 기법과 이론이다.
치료자는 치료 회기 시간에 있었던 대화를 집에 가서 어머니와 대화를 하도록 장려한다.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머니가 아닌가? 저녁에 최근 후에 혹은 조용한 시간에 어머니에게 대화를 요청해야 한다. 어머니에게 대화를 요청할 때 치료사 선생님이 심리치료 시간에 했던 이야기들을 어머니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해 주세요. 절대로 중간에 내 이야기를 가로막지 말아 주세요. 내 이야기가 끝나면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할 시간을 드릴 터이니 끝까지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어만 주세요 라고 이야기를 하도록 대화 훈련을 치료 회기 시간에 가르쳐주고 훈련을 시킨다.
자녀가 이야기를 할 때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은 바로 어린이가 놀이를 할 때 어떤 내용의 이야기라도 옆에서 들어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고 치료 회기 시간에 치료자가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100% 지지하는 지원자가 있다는 것에서 이것이 가족구성원 한데로 확대가 된 것이 아닌가? 어머니가 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시간을 준다고 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들어줄 수 있고 자녀는 마음대로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과 사적인 이야기들 고통, 고민, 갈등, 분노, 짜증을 이야기를 하게 되고 어머니가 이것을 들어주고 이해하는 공동의 창조적인 상호주관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몰론 어머니는 지금까지 몰랐던 자녀의 비밀스런 고통, 고민, 갈등, 짜증, 분노를 알게 되고 자녀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가 있게 됨으로써 자녀의 이해가 높아지고 같이 고민을 나눌 수가 있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음은 물론이다.
치료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어머니와 대화가 진행되어져 가면서 이번에는 아버지와 일대 일의 대화가 계속되어진다. 이것이 확대되어져서 가족 구성원들이 끝나게 되면 계속해서 친구들과 동료들 쪽으로 확대되어지게 된다.
이러한 치료 과정에서 분석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의 눈치와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에 자신감이 생기고 대화의 범위가 점점 넓어져가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내용의 이야기라도 상대방으로부터 들어 달라고 요구를 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점점 대화에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치료적인 효과는 앞에서 소개한 B군의 사례에서 눈에 띄게 드러났다. B군은 TV와 대화를 하고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를 쏘아서 생각을 교란시킨다고 불평을 했던 어머니와 컨설팅 시간에 치료자가 들었던 30세의 청년이었다. 치료가 약 10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머니는 B군의 대화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기뻐했다. 치료가 30시간이 지나가면서 별도로 3시간 30분의 컨설팅 브리핑에서 어머니는 아들 B군이 이제는 약물을 더 이상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어머니 스스로가 이야기를 했다.
27세의 대학 3학년 휴학생인 C군의 경우에 어머니는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들의 얼굴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서 심리치료의 효과가 눈에 띈다고 이 모든 것은 치료사 선생님 공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물론 치료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치료 효과가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 몇몇 사람들은 치료시간에 가진 치료 회기에서 배운 것들을 가족 구성원들과 이야기로 뚫고 나가는 과정에서 몇 번의 좌절에 침몰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들은 치료 시간에 배운 것을 일차적으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할 때 부모님의 반응 때문에 좌절로써 분기탱천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A군의 경우에는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서 치료 회기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네가 지금 20세의 나이로써 유치원 어린이들이 하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인가? 너의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로 공부를 하거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노심초사 하고 있는데 너는 지금 하는 이야기들이 마치 유치원 어린이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정신 좀 차려라 하고 고성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졌다고 아버지와 대화에서 갈등을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의 그러한 행동에 A군이 어떻게 반응을 했는가?라고 물어 보았을 때 A군은 아버지이게 화를 벌컥 내면서 분노로써 아버지! 내가 지금 유치원 시절에 고착된 내 자아를 성장시킨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내 이야기를 수용하고 지지해 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지금 나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막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내 이야기를 차단하고 막았기 때문에 사적인 자아가 자라나지 않았습니다 라고 울면서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A군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100%의 치료 효과를 넘어가서 130%의 치료 효과로써 30% 보너스를 준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A군은 이러한 치료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치료 포기를 선언했다. 치료자는 이러한 장애물들이 앞으로 수 없이 많을 것임을 예고하면서 이 장애물들에 직면하면 이것을 다시 분석해서 다시 새롭게 끝임 없이 도전을 해 나가면서 사적인 자아를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치료를 계속할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치료자는 반드시 부모님을 초대를 해서 2시간 컨설팅을 가지고 그 동안에 치료 과정과 앞으로 치료 진행을 브리핑을 해주면서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지지하고 지원해 주어야 치료가 계속되고 사적인 자아가 개발되고 성장을 하는 것을 이해시키게 된다. A군의 아버지는 치료사에서 3시간 30분의 컨설팅 과정에서 A군의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과 자아 결함을 설명해주었을 때 아버지는 이제 이해가 된다고 사과를 하고 아들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지원해줄 것을 다짐을 했다.
치료자는 A군과 같은 불평들이 따라온 것이라고 미리 예고를 한다. 이러한 장애물에 부딪치게 되었을 때 좌절에 굴복하지 못하면 치료는 요원하다고 이야기를 해준다면서 다시 시작하도록 깨우침을 준다.
30대 후반의 F군의 경우에는 더욱 더 심각한 경우이다. F군의 부모님은 70대 중반으로 노년의 부모님들이다. 특별히 어머니는 F 군에게 “과거에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순종하고 부응을 했는데 심리치료 이후에 왜 너의 목소리가 커지고 부모님의 이야기에 순종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다고 했는데 너는 부모님 이야기를 따르지 않고 너의 고집 대로 하려고 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네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잘 되는지? 두고 보겠다”라고 F군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았다. F군의 어머니는 “너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렇게 심약한가?”라고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호소를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의 말에 부응하고 순종하고 복종해서 그 결과가 자아가 없는 사적인 자아가 개발되어지지 않고 있었던 지난 날들을 회상시키면서 끝없이 내 목소리를 내고 내 주관을 굽히지 않고 내 자아를 키워나가야 함을 강조를 하면서 어머니의 그러한 말에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하고 씻어내고 방출시키는데 10년의 치료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수 많은 정신분석가들은 병든 자아를 치료 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결함 자아와 개발되어지지 않는 자아들의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 글의 초반기에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암 제임즈가 강조한 유명한 경구로써 의식은 흐름이다. 끊임없이 정보가 들어오고 나간다. 의식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동시에 주체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라는 말에서 치료자는 자아의 목소리는 항상 굽히지 않고 내 주장을 하도록 장려한다. 즉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이야기에 굴복해서 내 주장을 버리고 상대방의 주장으로 흡수되어버리게 되면 나는 상대방에게 의존하게 되고 내 자아는 상대방에게 복종하거나 의존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를 한다. 내 주장을 하면서도 그것은 내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가능한 동시에 상대방의 의견도 상대방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의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서로가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보라,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제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고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을 하는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해도 내가 가치가 있고 내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내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반대가 된다고 해도 또 다른 나와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좌절하지 말고 내 의견과 가치를 유지해서 내 자아가 굴복 당하고 무시당하고 무가치로 매도 당하는 것을 내 자신이 스스로 내 자아를 보호하고 지원하고 주장할 것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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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에델만(Edelman)의 의식과 우주: 물질이 어떻게 의식이 되는가?(2002), 하늘 보다 더 넓은
의식 세계(2004)
:오가덴(Odgen)의 몽상과 해석: 대상관계 이론과 정신분석 대화(1997), 경험의 벼랑 끝 지점(1989), 상상, 마음의 모체(1986), 정신분석의 예술(2005), 꿈의 전선에서 대화(2006), 투사동일시와 심리치료 기법(1982), 분석의 주체(1996).
: 미아레(Meares, 2005)의 놀이의 은유
: 세갈(Sega)의 메라니 크레인1979), 꿈, 상상과 예술(1996)
: 로젠필스(Herbert Rosenfeld, 1987), 치료의 제자리 걸음과 해석
: 모델(Model)의 사적인 자아(1993), 다른 시간 다른 현실(1996), 맥락 안에서 정신분석(2001), 상상과 의미 깊은 뇌(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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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치료자가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페이지에서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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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회기는 치료자에게 2시간 컨설팅을 받는 환청이 들리는 27세의 대학생으로 그는 검은 손이 그를 아파트 베란다로 불러 내어 따라가게 되었다고 토로 했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27세의 대학 4학년 학생 A군
증세: A군은 2011년 2월 달부터 환청과 환각 현상을 경험을 하기 시작했고 약 1년 후에 이것이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진단: 유사 정신분열증, 주체성 혼란 장애(방향 감각의 상실)
연결: A 군은 처음에는 그의 환청과 환각 현상을 "신의 계시"라고(그는 기독교 신자) 생각하고 가족들에게 비밀로 해서 일체 알리지 않다가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고 이후에 그의 현상을 부모님에게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서 어머니와 함께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다.
치료 결과: 아래의 분석은 A군이 치료자에게 인터뷰 신청을 했고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함께 치료자를 방문해서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한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를 한 것이다. 그는 치료를 계속해서 받을 것인지를 그 2시간의 인터뷰 이후에 아버지와 의논을 해서 치료를 받을 것인지를 알려 주기로 했다.
치료의 과정
A군은 전화로 치료자와 인터뷰를 신청한 후에 약속 시간에 예고없이 어머니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치료자는 주로 첫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치료자를 방문한 경우에는 가족들과 함께 2시간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치료자의 분석 치료는 50분으로 하는 일반 치료사들과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50분으로 치료 시간을 했을 때 대부분의 방문자들은 충분히 자신의 생각, 느낌, 지각, 상상, 사고 등을 상세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50분이 훌쩍 지나간다는 것을 치료자가 알고 치료자에게 자신의 생각, 느낌, 상상 들을 충분히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치료자는 분석 치료 시간을 2시간을 고수하고 있다.
2시간의 분석 치료를 사용을 하면서 치료자는 여러 가지 이점들을 발견을 하게 되었다.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환자들은 50분으로 할 때 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쉽게 안정이 되고 긴장이 빨리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치료자와 쉽게 치료 동맹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들과 느낌, 상상들을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긴장 이완과 마음의 안정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로는 치료자는 분석 치료 시간을 반드시 2시간으로 고수해 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치료 초반기에는 2시간-3시간의 긴 시간을 인터뷰 시간으로 하는 학자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가족 치료사들은 전 가족을 한 장소에 모아서 서로 대화를 하게 하고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해서 대화에서 결함들을 분석해는데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들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가족들을 같이 치료를 시도를 해 보았으나 부모님 앞에서 자녀들이 적나나 하게 부모님에 대한 불평 불만을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고 부모님이 문제를 가진 자녀의 핵심 문제들을 상세하게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본 치료자는 부모님이나 가족을 동반했을 때는 부모님이나 보호자들은 간단하게 20분-30분 정도로 문제를 가진 자녀 앞에서 혹은 자녀를 배제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먼저 이야기를 하게 하고 나서 남은 시간에 문제를 가진 자녀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2시간 중에 나머지 20분 혹은 30분 정도를 문제를 가진 환자와 이야기를 한 내용과 치료의 방향, 문제의 핵심 원인 등을 치료자와 부모님과 환자가 같이 앉아서 최종으로 정리를 하는 치료의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A군은 어머니가 나가고 난 다음에 그의 증세들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는 2011년 2월 달에 첫 증세의 시작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2010년 12월에 그는 겨울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일자리를 구했는데 사진을 취급하는 전문점이었다. 그곳에서 메니저의 일을 맞게 되었으나 그 일이 너무 전문적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사실 그는 사진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 일을 그만 두고 편의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약 1달 정도 일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어느 날 사장이 그의 선임에게 하는 말을 진열대의 물건을 수시로 보충을 하면서 엿 듣게 된 것이었다. 그의 사장이 선임 아르바이트 생에게 "A군은 내성적이고 말이 별로 없으니 자네가 좀 교육을 시켜주었으면 한다. 그는 친철하지 못하고 말이 별로 없으니 자네가 교육을 시켜달라"라는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고 심한 마음 속에 상처를 받았다. 그는 기분이 나빠서 그 선임 아르바이트 생에게 자신은 다른 곳에 좀더 편안 곳에 일자리를 찾았으니 곧 그만 둘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그 다음 날에 그 선임 아르바이트 생이 그 편의점 사장에게 A군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이 되어 그 사장이 반기는 얼굴 표정으로 "네가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같이 계속해서 일을 함께 하지 못해서 섭섭하다"라는 말을 했으나 사장은 A군이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얼굴 표정과 태도에 심하게 마음이 상했다. 일자리를 그만 둔 그날 저녁에 아버지에게 소상하게 편의점에서 일자리를 그만 두게 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A군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고 두려움을 함께 이야기를 했다.
그는 현재 xxx 대학교 국문과에 재학중인 4학년 학생으로 그는 미래의 희망이 문학 평론가가되는 것이라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한후에 아버지가 아무런 대답이 없이 자기 방으로들어가 버리는 것에 불쾌해서 거실에서 혼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손발이 뒤틀리고 온 몸이 경직됨을 느끼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가족들이 발견을 하고는 즉각 응급실로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고 주사를 맞고 응급 처치를 받은 후에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 온 이후부터 TV에서 그에게 명령을 하는 환청 현상을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는 TV에서 아나운서가 그에게 그냥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착각을 했으나 이것이 그냥 TV 속에서 등장 인물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고 A군 자신에게 하는 명령임을 알 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신의 계시라고 믿고 천기를 누설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일체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따고 했다. 그 시즘에서 대학의 학점이 좋지 않아서 학사 경고의 위기를 맞아서 1년간 학교를 휴학계를 내고 쉬는 기간에서 아래의 이벤트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그가 자주 TV에서 환청을 듣는 것 이외에도 TV의 어떤 색깔이 보이면 그 색깔에 관계된 이야기들이 그에게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안 돼지!"라는 이야기를 그에게 하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혹은 어떤 경우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이야기를 하는 말 소리가 들리고 그들을 쳐다 보면 그들은 그가 쳐다 보는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버리는 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즉 그가 옆 사람을 쳐바보면 그 사람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 버리고 또 다른 옆 사람을 쳐다 보면 그 사람도 역시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똑 같은 현상이 그가 사람들을 쳐다 볼 때마다 연결되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고 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어느 날 그가 그의 방 안에서 있는데 갑자기 창문으로 검은 손이 하나 들어 오더니 그에게 따라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을 보고 그 검은 손을 따라서 도어 문을 열고 베란다로 따라 가게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가 아파트의 베란다에 나와서 아파트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 충격을 받았고 그 시점에서 그의 머리 속에 환청과 환각들의 이야기들을 부모님에게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A군을 종합 병원에 데리고 가서 심리 검사를 한 후에 약물 처방으로 약물을 한 달 가량 먹다가 지금은 더 이상 약물을 복용을 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가 2011년 2월 달에 처음으로 증세 현상을 경험하지 이전의 기간에 특별한 이상한 경험이나 증세의 전조 현상 증세 이전의 A군의 심리적인 이상함을 물어 보았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크게 왕따를 당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동료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회고를 했다. 친한 친구들은 한 두명 정도였으나 속내를 털어 놓고 서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국문과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 시절에 작품을 쓰는 창작가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미래가 불투명해서 항상 불안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를 했다. 군대 생활에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으나 그는 그가 졸병 시절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후임병들이 들어오고 그가 선임 병으로 진급이 되면서 힘들어지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후임병들을 지도하는 리더쉽의 부재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했다.
이후에 제대를 해서 학교에 복학을 하기 전에 호주로 6개월간 연수를 떠났고 호주에서 6개월의 연수를 할 때 미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고 뚜렷한 미래의 비젼의 부족으로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지 못했고 학교에 2학년에 복학을 해서 2년 간 공부를 하면서도 공부에 주의 집중이 어려워지고 학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학사 경고의 위험 때문에 2012년 3월 달에 학교를 1년간 휴학을 하고 나서 2월 달에서부터 환청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고 그리고 이후에 연속해서 환각과 환청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다가 6월 7월 경에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고 종합 병원에서 처방 약물로 몇 개월 지내다가 환청, 환각이 사라지면서 지금까지 지내오다가 2012년 3월에 다시 대학에 복학을 했고 1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 기간에 치료자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A군은 군 복무 이후에 대학 생활을 해 오면서 대학 내의 써클 활동이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 써클에 가입을 해서 지금까지 활동을 해 오고 있다고 했다. 그 써클은 창작 활동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그 써클을 지도하는 지도자 선생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써 말고 행동이 일치되는 모델적인 선생님으로 그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면서 자연히 기독교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독실한 불고 신자이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서 한번씩 절에 가는 정도로 독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아버지와 정 반대로 독식한 기독교 신자라고 강조를 했다. 그는 어떤 교회에 참가해서 열심히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에 심취된 것은 아니고 그냥 그 써클 선생님이 지도 하는 기독교 교리 모임에 참가를 해서 기독교 공부를 해 왔고 지금도 어떤 특정 교회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써클 선생님의 교리 강좌에 회원들과 함께 참가하고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회원들이 몇 명이나 되느냐? 치료자의 물음에 그는 7명-8명 정도로 그 회원들 중에서 그가 막내로써 인정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가 초반기에 환청이 들리는 것을 하느님의 계시로 믿고 천기를 누설할까! 두려워서 일체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가 써클 지도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한 결과 그 선생님이 정신의학 서적을 소개를 해서 그 책을 보면서 하느님의 계시가 아니고 정신장애임을 깨닫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치료자의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 심리치료 라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증세들을 읽어보고 자신의 증세와 유사해서 그의 증세가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치료자에게 인터뷰를 신청하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두시간 동안의 분석 상담 결과의 분석
A군은 증세를 경험하게 이전에 이미 자신의 미래의 진로 문제로 고민과 갈등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그는 군 복무를 끝내고 대학에 복학하기 전에 이미 호주에 6개월간 연수 중에 그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비젼 때문에 고민을 한 것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 친한 친구들이 없었고 서로의 미래에 대한 의견이나 전문직업 선택에 대해서 동료들과 고민이나 미래이 진로에 해서 논의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혼자서 괴로워하고 자신을지도해줄 맨토를 찾다가 우연히 독서 지도와 창작 써클에 가입을 했고 거기에서 그 리더 선생님 한데서 상당한 지도를 받아서 복학 후에 2년 동안 그런대로 잘 뻐티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써클의 회원들이나 그 써클의 지도자 선생님은 구체적으로 그의 미래에 대해서 심층에 문제들을 상당하고 지도를 해줄 만한 정신적인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그 써클에 가입 후에 2년 동안에 대학의 학과 성적이 하향 곡선으로 학사 경고의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고로 그는 1년간 휴학을 했고 그 휴학 기간에 환청과 환각이 시작된 것을 보면 그는 그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혼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어느 누구와도 그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써클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옆에서 지도를 하는 사람이지 그의 고민이나 문제들을 직접 표현하게 도와주고 같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주는 심리치료사는 아니었고 심리적인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가 증세를 가졌을 때 이것을 전해 듣고 그 써클 선생님이 한권의 정신의학 서적을 소개를 해준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그 써클 지도 선생님한데서 실망을 느꼈지만 자신을 지도해 줄 다른 마땅한 사람을 발견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TV에서 A군에에 명령으로 "---를 해서는 안 되지!"라는 하지 말라는 말들이 그의 귀에 들린 것은 A군의 심층에는 그 써클에 대한 불만족함을 직접 표현을 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투사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는 치료자와 2시간 동안의 이야기 도중에 그가 그 써클에서 7명-8명의 회원 중에 막내로써 그는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었고 그가 대등하게 같이 이야기를 하는 입장이 아니었다고 여러번 강조를 한 것에서 볼 수 있다.
2시간 동안의 초반기에 치료자는 그가 대학내의 써클 활동을 하고 있는 줄 알고 후배들이 들어와서 이제 4학년이 된 그가 그 써클의 회원들을 지도하는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아니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대학내의 대학생들의 써클이 아니고 일반인들의 써클로써 가입자들이 늘어나지 않아서 그가 맨 막내라고 강조를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군 복무 시절에 졸병 때는 어려움이 적었으나 고참 병이 되면서 점점 힘들어졌고 그리고 리더쉽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그이 말에서 그리고 그가 사진 전문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그가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부담이 되어 아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그 전문 직종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편의점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 말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대학의 4학년으로써 학교 성적이 좋지 못해서 심하게 불안하고 있고 졸업 후에 사회 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서 자신감이 없어 불아하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군은 처음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간 첫 이벤트가 아버지에게 그의 편의점에서 해고된 이야기와 그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고 난 후에 아버지의 반응에 실망해서 그의 긴장이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경직되어 몸이 한계점을 넘어가서 경직을 일으켜서 순간적으로 몸이 마비 된 것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몸에 쥐가 내려서 꼼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어떤 속 시원한 대답과 격려를 기대를 했었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는 A군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냥 아무 말이 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방으로 가 버리자 그는 마음 속에서 엄청난 불안이 증가하고 폭발을 해서 그에게 위로나 달램을 주지 못하고 그를 방치해서 두려움의 구렁텅이로떨어지게 한 아버자에게 실망과 분노를 치료자가 분석해 낼 수 있었다.
만약에 그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해서 그의 불안을 완화시켜주었더라면 그는 몸에 쥐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의 말과 다리가 뒤틀리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깜짝 놀랬고 가족들에 의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데서 그의 내면의 고민과 갈등을 이야기를 한 후에 아버지로부터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없게 되자 그 순간에 마비를 보였고 그 자신의 불안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된 후에 기독교에서 구원을 기대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하느님이 그에게 계시를 내려주어서 그가 미래에 확실한 비젼을 가지도록 도와줄 것을 내심 마음 속으로 기대를 했다. 이러한 기대가 환청을 불러 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 TV에서 나오는 명령들이 하느님의 계시로 착각을 하고 그것을 천기 누설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부모님에게 일체 알리지 않았다는 것에 그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고민과 갈등을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해답을 줄 것으로 기대를 한 것이었다. 그 자신이 그 해답을 동료들과 전문가들과 의논을 해서 그 스스로 그것을 찾고 방향을 잡아 가야 하나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즉 그는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젼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등을 고민하고 갈고 닦아 나가는 자아의 주체성 감각이 희미해서 그가 미래에 그리고 현재의 학업의 문제에서 생긴 현재의 학과 성적 문제, 공부에 주의 집중 문제 등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서 이러한 갈등 속에서 압도되어 이 문제이 해결을 기독교에 심취해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해줄 심층의 구원자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그는 치료자에게 현재의 문제점은 그의 가슴에 감정이 없다고 불평을 했다. 감정이 없는 로봇 같은 느낌과 공허감 그리고 대인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등이 치료를 받게 되면 해결되어져야 할 문제라고 치료자에게 호소를 했다. 이러한 그의 불평들은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관계에서 갈등의 매듭을 풀어갈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2시간동안에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해 나가면서 자주 되풀이 하는 말이 과거에는 즉 군입대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를 간파해서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 증세 발발 이후에는 대인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입에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말들이 그침없이 튀어나오고 그래서 말이 앞뒤로 맞지 않아서 그 순간에 당황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상하게 비친다고 이제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여러 번 강족를 했다. 이것은 A군이 대인관계에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고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마음 대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을 하는 것에 강박이 되어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분석 상담의 결과를 바탕으로 A군의 증세 진단
치료자는 A군을 정신분열증이 아닌 "유사 정신분열증"의 진단으로 어머니와 A군에게 인터뷰의 마지막 20분 동안에 소상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A군이 환청과 환각을 가진 정신분열증은 분명했다, 그러나 발병 이후에 4개월-5개월 만에 A군은 두 번이나 병원의 응급 처치와 약물로 환각과 환청은 사라지고 지금은 환청과 환각이 약물을 복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정신분열증의 진단은 환청과 환각이 6개월 이상 지속이 되어야만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한다"고 미국 정신 장애와 통계 분류 지침서인 DSM-Ⅳ(1994)에 명시되어 있는 것을 참고로 한 것이다.
또 한가지 치료에 낙관적인 것은 A군이 치료자의 정신분열증 홈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열증이라고 확신을 했고 그리고 정신분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제발로 걸어서 치료자를 찾아 왔다는 점이다. A군이 처음에 기독교 신자로써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가족들에게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환청과 환각을 무의식적으로 선호하고 그 쪽을 받아들이고 선호했기 때문에 이후에 점점 더 환청과 환각이 심해진 반면에 그가 치료자의 홈페이지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읽고 자신의 장애를 신의 계시가 아닌 병으로 인식하고 고치려고 마음을 먹고 자신의 장애를 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장애가 6개월 이상 지속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서 빨리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앞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정신분열증으로 확대되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와 A군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치료의 방향
치료를 받게 되면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해야 하고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는 이유는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는 증세 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A군이 이야기를 하면서 강조를 한 "감정이 없는 공허감을 제거"하기 위해서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과 "미래의 확고한 비젼을 세우고" "삶을 살아가는데 자신감을 기르고" "대인관계에서 대화를 어떻게 하는가?" 에 대한 것을 알고 "내면에 쌓인 불안감과 긴장감을 해소하는 정상적인 채널"을 찾고 그리고 "건강한 취미 생활을 발견"해서 삶을 살아가면서 "일을 할 수 있고" 그리고 "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과정으로 치료의 가 흘러갈 것임을 이야기를 하면서 A군은 적어도 위와 같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수정을 하려면 최하 6개월 이상의 치료 기간이 걸린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인터뷰 시간을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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