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프로이트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더 사실 13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7. 10. 30. 03:58

프로이트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 13 


-    비밀 위원회 -

 

1911년에 에들러(Adler)의 탈퇴와 1912년에 스타켈(Stekel)의 추방 그리고 1914년에 융(Jung)을 대표하는 스위스 학회의 탈퇴 등으로 프로이트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도 이러한 국제 정신분석 학회의 조직으로부터 일탈을 예감한 프로이트가 고민에 빠져있다는 것을 감지한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은 프렌치(Frenczi)에게 논의를 해서 이러한 일탈들을 사전에 예방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이탈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조율하고 설득하고 그리고 프로이트의 핵심 정신분석적인 이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골라내서 추방을 시키는 일을 전담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을 해서 동의를 얻어냈다.


(Jones)은 프로이트에게 이러한 조직의 필요성을 알리고 허락을 얻어냈다. 프로이트가 이러한 갈등들과 분쟁에서 벗어나서 연구에만 신경을 쓰도록 한다는 취지를 설명을 했을 때 프로이트는 자신은 직접 관계하지 않고 중립적 위치에 있을 것이라는 허락도 받아내서 전적으로 존에게 일임을 허락해 주었다. 존은 프로이트의 핵심 제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물색을 했다. 가장 프로이트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프렌치와 의논을 해서 앞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에 충실히 따를 수 있는 사람들로 물색을 했다. 에네스트 존, 샌도르 프렌치, 칼 아브라함, 오토 랭크 그리고 한스 샤크가 선정이 되었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서 5인의 조직 위원회가 비밀리게 조직이 되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비밀 결사 조직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리에 활동을 하도록 요청을 했고 그 위원장으로 어네스터 존이 맡았다.


프로이트의 핵심 이론 즉 무의식 개념, 유아 섹스 개념 그리고 억압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경고와 주의를 주어서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핵심 이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프로이트는 완전히 이러한 분쟁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연구와 집필을 하도록 도와주는데 이 5인의 비밀 결사 조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명시를 했다. 프로이트는 이들의 5명에게 그리스어의 음각이 새겨진 금 반지를 선물했는데 그 금반지에는 쥬피트의 머리에 그리스-로마어로 음각이 새겨진 금반지를 선물한 것은 일화로 남아 있다. 7년 후에 이 조직에 가담을 한 사람이 맑스 에팅곤(Max Eitingon)으로 모두 6명의 비밀 위원회의 조직이 운영이 되었다.


위의 6명은 프로이트에게 평생 동안 충성과 신뢰를 할 수 있다고 사전에 프로이트의 허락을 받은 사람들로써 존(Jones)은 그 위원회의 6명의 사람들을 각각 한 사람씩 특징들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소개를 해 보고자 한다.


이들은 모두가 프로이트가 살고 있는 비엔나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다른 나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즉 프렌치는 항가리에, 존은 영국에, 아브라함은 베를린에, 오토 랭크는 비엔나에, 샤크는 스위스에, 에팅곤은 쥬리히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이들과 많은 서신들을 교환을 했다.  이러한 서신들은 이후에 어네스트 존이 수집을 해서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이라는 프로이트의 전기를 Ⅰ권(1953), Ⅱ권(1955), Ⅲ권(1957)으로 나누어서 출판을 하는데 사용이 되었고 존은 그 서신 들을 분석하면서 각각의 서신들을 그 개인에 따라서 서신의 내용이 완전히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나이별로는 프렌치(1873)가 나이가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이 아브라함(1877) 그 다음이 존(1879) 그리고 샤크(1881)와 랭크(1885) 순서였다. 정신분석 학회에 가입 연도를 보면 1906년에 오토 랭크, 1907년에 아브라함, 1908년에 프렌치와 존 그리고 1910년에 샤크 순서였다.


첫 번째가 샌도르 프렌치(Sandor Frenczi)이다. 그는 항가리 태생으로 항가리 정신분석 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프로이트의 수 제자로 점 찍었던 융(Jung)이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나서 프로이트가 모든 기획들과 조직들에 대한 모든 일들을 그에게 일임을 했다. 그는 명석하고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으로 프로이트가 아들처럼 대우를 해 준 사람이었다. 프렌치는 제 2 회 국제 정신분석 학회의 조직( 1 회는 첫 모임으로 의장도 총무도 재무도 없는 그냥 일반적인 모임으로 하루 만 개최)을 위임 받아서 그가 기획으로 체계적인 조직을 수행을 했다. 프렌치는 프로이트의 가족처럼 프로이트의 휴가 계획들을 만들고 그들의 가족에 참가를 해서 함께 휴가를 보낼 정도로 프로이트가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해서 한번씩 농담으로 아들이라고 호칭을 사용할 정도였다. 특별히 그는 프로이트와 서신 교환으로 1000통의 편지를 교환을 하면서 프로이트와 주로 정신분석의 과학적인 것들과 서로서로 사례들에 대한 것들의 논의와 토론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특징적인 것은 그들의 편지가 주로 사색적인 것들이었다.

두 번째가 칼 아브라함이다. 그는 베를린에서 거주하면서 독일의 정신분석 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써 출발해서 쥴리히에 있는 유럽 최초의 대학 정신병원인 부르고졸리(Burgolizi) 병원에서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의 초반기 이름)를 연구하면서 치료 국장인 융(Jung) 밑에서 4년간 근무를 했을 때 그 병원이 스위스 출신의 우대에 분노했고 특별히 융(Jung)과 갈등을 빚어서 국제 정신분석 학회 회장이었던 융(Jung)과 마찰이 많았다. 2회 국제 정신분석 학회 총회에서 아브라함은 조발성 치매에 정신분석학적인 영향력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제출한 반면에 융(Jung) 역시 조발성 치매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 즉 같은 조발성 치매에 대한 연구 논문을 제출 하면서 융(Jung)은 프로이트가 귀띔해준 조발성 치매에 대한 출생 직후의 스스로 즐거움(autoerotic) 단계(심리적인 원인)에서 고착됨의 원인을 무시하고 조발성 치매가 심리적인 독극물에 의한 신체 조직(생리적인 원인)에 대한 이론으로 방향이 바뀐 것에서 프로이트와 융(Jung)의 분열의 조짐을 보일 때 아브라함은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따라갔기 때문에 프로이트에 처음부터 충실했다고 존(Jones)이 노트를 하고 있다.


아브라함에 대한 프로이트의 신임은 연장자로써 지식적인 능력을 인정해 주었고 프렌치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내용에 반대해서 감정적으로 따뜻하고 심각한 객관적인 논의들이 많았다고 노트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새로운 이론을 소개를 했을 때 프랜치는 번개 같은 이해 능력을 보인 반면에 아브라함은 꼼꼼해서 이해와 소화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노트하고 있다.


어네스트 존에 대한 프로이트의 편지들은 다정 다감하고 특별히 미국과 영국에 대한 정신분석의 경향에 대해서 관심과 흥미들을 서로 교환을 했다. 존은 초반기에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정신분석학을 강의를 했고 이후에 뉴욕에서 중심을 잡고 정신분석을 소개를 한 브릴(Brill)과 달리 존은 보스톤에서 하버드 대학의 신경과 교수인 푸트남(Putnam)과 교우 그리고 보스톤의 미국의 이상 심리학 논문지의 편집장인 모르톤 프린스(Morton Prince)와 깊은 교우 그리고 볼티모어, 시카고, 워싱턴 등지에서 정신분석학의 확대를 위해서 노력하다가 후반기에 영국의 런던에서 영국 정신분석 학회 회장으로 활동을 했다.


존은 각 나라의 신경학회와 정신 의학회의 회원으로 가입을 해서 국제적인 소식들을 프로이트에게 전달한 공로로 프로이트의 총애와 신임을 받았다. 그는 미국 신경학회 회원, 미국 이상심리학회 회원, 영국 신경학회 회원, 실험 심리학회 회원, 독일 신경학회 회원, 국제 의학 심리학 학회의 조직 위원, 영국 정신분석 학회 회장 등등의 많은 국제적인 행사에 참가하는 활발한 활동으로 프로이트의 국제적인 귀의 역할을 했다. 이후에 나치의 박해로부터 프로이트 가족을 영국으로 망명하도록 도와준 일등 공신이었고 프로이트의 사망 당시에 프로이트 곁에서 임종을 지켜본 유일한 제자였다.


오토 랭크는 5명의 회원 중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프로이트가 대학 졸업장을 따도록 권유를 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개인 비서 역할을 했다. 프로이트의 심부름과 프린트와 논문들을 맡아서 처리를 했다. 프로이트가 랭크에서 생활 비용을 남몰래 지원을 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프로이트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게 비밀적으로 많은 환자들과 분석가들을 지원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는 따뜻함이 부족한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고 노트하고 있다. 그는 에너스트 존에게 개인분석을 받기 위해서 런던을 방문하려고 약속을 했으나 제 1 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비엔나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불발했다고 아쉬움을 노트하고 있다. 랭크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특별히 랭크는 꿈들, 신화들 과 전설들에 대한 근친상간적인 연구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서 많은 논문들을 제출을 했다. 이후에 랭크는 정신분석가의 자격을 얻어서 후반기에 파리에서 개업을 해서 성공을 거둔 것을 존이 노트를 하고 있다.


한스 샤크는 정신분석 학회에는 1910년에 가입한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지만 그는 프로이트가 비엔나 대학에서 외래 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을 때 그 강의를 처음부터 들었던 프로이트의 학생이었다. 첫 강의 때 7명의 학생 중에 한 사람으로 샤크는 그 강의를 같이 들었던 여학생과 이후에 결혼을 했다. 그는 유머가 넘치는 사람으로써 주로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이후에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정신분석에 충성적인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맑스 에팅곤(Max Eitngon)은 대학생 시절에 정신분석을 소개 받고 프로이트를 직접 방문해서 2주일 동안 프로이트의 집에서 머물면서 프로이트의 저녁 산책 시간에 프로이트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분석을 받는 최초의 분석가였다. 그는 과학적인 프로이트의 이론에 매료되어 평생을 프로이트에 충성을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프로이트가 편지에서 에팅곤에게 자네는 처음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에게 충성한 유일한 사람으로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의 독립국가가 설립된다는 것을 알고 이스라엘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나치의 박해로부터 일찍 피신한 사람이 되었다.


그 위원회가 조직되었을 그 당시에는 정신분석이 분석가로부터 개인적으로 분석을 받는 훈련이 없었다. 고로 어네스트 존은 프로이트가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프렌치에게 1913년에 몇 개월 동안 하루에 2시간 혹은 3시간으로 프렌치로부터 개인 분석을 받았다. 프렌치 역시 프로이트의 자아-분석의 이야기들을 듣고 스스로를 분석했던 이야기들과 제 1 차 세계 대전 당시에 1914, 1916년에 프렌치는 프로이트로부터 개인적인 분석을 자주 받았던 이야기들이 어네스트 존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노트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프로이트로부터 개인적인 분석을 받지 않았지만 그가 분석가로써 성공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존은 기술을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위의 6명의 위원회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어네스트 존이 유태인이 아니고 전부가 유태인들이었다는 점이다. 유태인 박해와 차별에 대한 그들의 예민함에도 불구하고 존을 그들과 큰 갈등이 없이 형제처럼 지낸 행복한 시절을 회고를 했다.


이 위원회는 그 이후에 10년 동안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다고 노트되어지고 있다. 학회에서 동의되어지지 않는 의견들, 학회의 사무직원들의 선발, 지역적 반대들에 대한 대응 등등으로 이들의 갈등들을 사전에 조율하고 정리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형제의 우정으로 관계를 했다고 존은 스스로 자평을 하고 있다.

 



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

 

오디팔 단계는 3 - 5세까지를 말합니다. 과거에는 남근기(phall stage)라고 불렀으나 여성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점에서 부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오디팔 기(oedipal stage)라고 불립니다. 오디팔 시기의 특징이 리비도인 섹스 에너지가 표면으로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어린이들은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게 됩니다, 성기를 만지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엄마 내가 어디로 나왔어?"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러한 어린이의 질문에 "엄마 배꼽에서 나왔다" 혹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혹은 "황새가 업고 왔다" 등으로 대답합니다.


이러한 대답은 어린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님의 말이 거짓말임을 알게 됩니다. 또 어린이들은 부모님이 성관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관계를 한다는 것은 모릅니다. 성기놀이를 자주 합니다. "배꼽놀이" "의사 놀이" 등으로 남자 어린이나 여자 어린이들이 상대의 성기를 보려고 치마를 들추거나 배꼽을 서로 맞대거나 인형의 옷을 벗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린이들의 행동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유사하고 이 시기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이 시기에 부모님의 어린이의 성교육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성적 욕구가 나타나기 때문에 어른이 유혹을 하게 되면 섹스 유혹에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성기를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보여주거나 만지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어야 합니다. 또 이 시기에 자녀들을 부모님의 방에서 따로 잠을 자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게 해야 합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성()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나 성()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되어 어린이들의 성적 표현 행동에 놀라거나 어른들의 섹스 행동으로 오인하게 되면 처벌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어린이들의 성적 욕구가 상처를 입게 되면 어린이들이 사춘기가 되어 2차 성적 징후들 즉 성기가 커지거나, 유방, 음모, 털이 나오거나, 성욕구가 생길 때 억제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하게 되면 2차 성적 징후가 늦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자위행위를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억압하게 됩니다. 이성 친구들을 섹스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진실된 이성 관계는 이성과 감정을 나누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중요한 관계 입니다. 부모님과 자녀 관계는 수직적 애정 관계이지만 이성 관계는 수평적 애정 관계입니다. 어린이들은 이러한 이성 관계를 통해서 서로 사랑을 주고 받고 감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성을 섹스의 대상으로 보면 이성 친구를 피하게 되고 동성 관계에서도 자신을 성적 욕구를 가진 나쁜 사람으로 자아를 싫어하게 되면 대인관계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사춘기에 들어가게 되면 가족 관계가 느즌해지고 동료들과의 관계, 이성관계가 돈독해져야 합니다. 이것을 가족 생활에서 사회생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반대로 부모님이 자녀들의 섹스 활동에 자극을 주거나 무관심으로 방치하게 되면 어린이들은 성추행, 성폭행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따라가게 됩니다. 부모님의 섹스 비디오, 섹스 잡지 등이 어린이들에게 노출이 되거나 부모님과 한 방에 잠을 자다가 부모님의 섹스 행동을 목격하게 되면 어린이들은 섹스 욕구가 자극이 됩니다. 결국 어린이들의 성적 욕구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사춘기 때 너무 일찍 섹스에 노출되어 난잡한 성관계에 빠지거나 이성을 섹스의 대상으로 생각해서 진실된 이성관계를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미혼모 임신, 가출, 성폭행을 당하거나 어른들의 섹스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변태성욕이발생하는 시기

 오디팔 단계에서 나타나는 성적 욕구에 대해서 부모님의 처벌이나 부모님의 무관심, 방치가 사춘기에 변태성욕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남자들이 변태성욕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0 - 3세까지의 발달은 정상적인데 비해서 3 - 5세 사이에 성() 욕구의 발달 과정에서 어려움으로 섹스 욕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변태성욕은 11개의 종류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세분화 된 구체적인 것은 섹스 크리닉을 참고 하세요.


정신분석학에서는 변태성욕을 섹스 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건강한 섹스는 사랑의 부산물입니다. 그러나 변태성욕은 섹스 행위가 아니고 미움, 분노가 에로틱하게 변한 것으로 봅니다. 오디팔 시기에 남자 어린이들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성기를 자랑하면서 자랍니다. 이 때 어머니가 아들의 성기 자랑을 처벌하게 되면 사춘기에 노출증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남성다움을 인정 받기 못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면서 여성들이 놀라는 것을 보고 자신이 남자임을 인정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출증 환자는 자신의 발기된 성기를 여러 명의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곳에 보여주는 사람으로 일명 "용팔이" 털털이" "아담" 등으로 불리 웁니다.


이들은 자신의 발기된 성기를 본 여성들이 놀랠 때 오르가즘을 느끼고 자위행위를 하게 됩니다. 상징적으로 자신을 남자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성기를 처벌한 엄마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출의 그 순간에는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기를 보고 여성들이 놀래는 것을 볼 때 남자로써의 자신감이 순간적으로 급상승하는 것입니다. 관음증 환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성관계에 노출되거나 부모님의 성관계를 보고 자란 경우는 사춘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성관계 장면을 보기 위해서 이웃집의 부부의 방을 기웃거리거나 섹스 시의 음란한 소리를 엿듣는 행동에 빠지게 되어 관음증 환자가 됩니다.


페티시즘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로 남성들이 여성의 팬티, 스타킹, 브라자, 구두, 부츠, 고무신 등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으로 이러한 물건을 보면 충동적으로 그 물건을 훔치거나 수집을 해서 혼자서 그 물건을 보고 자위행위를 합니다. 주로 이러한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혀서 절도죄로 유치장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패티시즘 환자를 우리말로 "대물 애욕증"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환자들에 따라서 특정한 물건 즉 어떤 사람은 구두, 어떤 사람은 부츠, 어떤 사람은 여성의 분비물이 묻는 팬티 등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마다 다 흥분을 주는 특정 물건이 다 다릅니다. 이들은 이성과의 직접 성관계에서는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디팔 기간에 엄마가 어린이들에게 나체로 노출이 되거나 엄마의 몸 즉 유방, 성기를 자주 보아온 어린이들은 스스로 성적 흥분을 하지 못하게 억압해 왔기 때문에 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이성의 나체를 보면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성기나 몸을 보고 흥분을 느끼는 것은 양심에 죄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나체를 보고도 성적 흥분을 하지 못하게 억압해 왔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어머니가 사용하던 물건을 보면 성적으로 흥분을 하게 됩니다.


위에서 소개한 특정 물건들은 어머니가 사용하던 물건들입니다. 그 물건이 엄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보고 흥분하는 것은 죄의식을 불러 일으킬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다가 부모님의 성관계를 하는 장면에 놀라서 "엄마 뭐하고 있어요?"라고 물으면 "아빠와 레슬링을 한다"고 대답하기 일 수 입니다. 자녀는 부모님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줄을 모릅니다. 단순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고 있고 어머니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폭행을 당해서 내는 소리인줄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사춘기가 되어 자녀는 이성과의 섹스 관계가 상대를 폭행하는 관계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새디즘 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섹스 시에 상대방을 물거나 할퀴거나 손발을 묶고 섹스를 하거나 목을 조르거나 폭행을 해서 상대가 공포에 비명을 지르면 오르가즘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합니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오디팔 기에 어린이들은 어린이 자신이 어머니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부재 중이거나 외국에 체류 중일 때 어머니가 외도를 하거나 바람을 피우게 되면  어머니가 저녁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들은 어머니가 다른 남자들과 만나서 외도를 하는 것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외도를 의심하게 되면 자녀들은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나쁜 사람으로 상상하고 섹스에서 처벌을 하게 됩니다. 자위행위 시에 어머니의 성관계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어른이 되어 섹스 시에 상대를 두들겨 패거나 목을 조르거나 할퀴어 피가 나게 하는 것 등은 상징적으로 엄마를 처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신을 배신한 엄마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결혼을 해도 정상적인 부부의 섹스 관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변태적인 행동에서 만이 섹스 오르가즘을 느끼게 됩니다.


오디프스 콤프렉스

오디프스라는 용어는 그리스의 신화인 오디프스(oedipus) 이야기에서 프로이드가 이론화 한 것입니다. 테베의 왕 라이우스는 예언자로부터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말을 듣고 아들이 태어나자 하인으로 하여금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인은 아기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칼로 발을 찌른 후에 산에다 버리고 왔고 지나가는 목동이 아이를 주워서 지역의 어느 지방 호족의 집 앞에 버렸고 그 주인이 버려진 아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오디프스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발이 퉁퉁 부은 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오디프스는 부모님이 생모인줄 알고 자랐습니다. 청년이 되자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자의 말에 집을 나와서 길을 가다가 한 노인과 말다툼을 벌리게 되었고 그 노인을 죽이고 스핑크스의 수수께기를 풀고 테베의 왕이 되었습니다. 오디프스는 왕비와 결혼을 했고 두 명의 자녀를 낳았고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이후에 나라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고통이 커지자 오디프스는 예언자를 찾아갔고 예언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는 말을 듣고 자신이 죽인 그 노인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이고 결혼한 왕비가 어머니 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디프스는 자신의 눈을 빼어버렸고 황야를 방황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프로이드는 오디프스의 이야기가 인간의 무의식적인 내면의 세계 속에 숨겨진 아들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운명에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사랑과 경쟁 관계를 의식화 시킨 표본으로 보았고 어머니를 사이에 둔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경쟁 관계로 묘사하게 된 것입니다.

 

오디프스와 유사한 그리스의 신화가 바로 제우스의 이야기 입니다. 하늘의 신은 지구의 신과 결혼하여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하늘의 신은 태어나는 자식들을 땅 속으로 모조리 보내버렸습니다. 이유는 태어난 자식들이 장성하여 자신을 제거하고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막내 아들을 숨겨서 키우게 되었고 그 아들이 자라 강자가 되어 아버지를 제거하고 자신이 왕이 되어 지구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의 자리를 넘어다 볼 것을 두려워해서 자신의 아들들을 잡아먹어버렸습니다. 이에 분개한 어머니가 막내 아들인 제우스를 숨겨 키우게 되었고 그 가 장성하여 아버지의 성기를 낫으로 거세 시켜 죽이고 자신이 최고의 신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이 신화의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power를 놓고 벌리는 경쟁 관계를 묘사한 이야기 입니다. 유사한 이야기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이론화한 프로이드의 문명의 진화인 저서 "토템과 타부"(Totem and taboo)에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원시인들이 동굴 밖으로 나와서 집단 생활을 할 시기에 그 집단의 최고 우두머리는 가장 힘이 센 아버지였습니다. 그 아버지가 그룹의 모든 여성들을 성적으로 독점했습니다. 아들들이 성적으로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면 거세시키고 그 집단에서 추방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노쇠하여 늙어가고 아들들은 장성하여 강자가 되어갔습니다. 아들 중에 강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를 잡아먹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아버지처럼 강자가 되겠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 그룹의 최고 강자가 된 아버지는 나이를 먹어갈 수록 자라나는 아들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 때문에 언제 장성한 자녀들이 자신을 죽일 것인지 불안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모아 놓고 최초로 사회 계약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들들을 다른 부족들과 결혼을 시켜 성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해 주는 대신에 어머니와 누이들을 넘보지 말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 계약이 포유동물 사이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근친상간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처럼 강자로 되겠다고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려 시대에 고려장이라는 것이 이와 유사한 이야기 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부모님이 늙어지면 산에다 갖다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지게에 노쇠한 어머니를 지고 아들의 손을 잡고 산에다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자 아들이 아버지에게 지게를 가지고 가지 않으냐고 물었고 아버지가 왜 지게를 가지고 가지 않느냐고 물었느냐고 묻자 아들은 아버지도 노쇠해지면 내가 그 지게로 아버지를 져다 버려야 할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아버지는 자녀도 똑 같이 아들에게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노쇠한 어머니를 다시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죽을 때까지 봉양했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자연상태에서 포유동물들이 어떻게 진화해 가는가?

 ? 이것이 인간 사회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최근에 등장한 하버드 대학의 윌슨(Wilson)을 중심으로 한 사회생물학(Sociobiology)입니다. 사회 생물학자들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동물들의 생활을 비디오로 촬영할 수 있게 되어 동물들의 집단 생활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식물들의 경우에는 눈으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농가월령가를 지어서 노래로 만들어서 식물들이 제 시기에 파종을 하지 않으면 결실을 잘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동물들의 경우에는 움직이기 때문에 쉽게 관찰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물 사회에서는 섹스의 우선권을 암놈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 놈이 발정을 내면 수놈들의 싸움이 시작되어 가장 강한 수 놈과 섹스가 이루어지고 암 놈은 가장 강한 수놈의 정자로써 후손을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왕인 사자 가족들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자는 모계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수놈이 태어나면 5살이 되면 수놈을 집단에서 쫓게 나게 됩니다. 가족들을 떠나사 모험의 길을 떠나서 장성하여 강자가 되어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돌아오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들은 암놈들만 모여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수놈은 가장 강한 아버지 수놈이 그룹을 통솔합니다. 암놈들이 팀을 이루어 협동으로 사냥을 합니다. 사냥을 하면 아버지 수놈이 제일 먼저 식사를 합니다. 그 다음에 암놈과 새끼들이 식사를 합니다. 그러면 수놈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아버지 수놈은 외부의 침입자들로부터 그룹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놈이 노쇠하여 힘이 약해지면 향상 강한 다른 수놈이 나타나서 노쇠한 수놈을 쫓아내고 자신이 그룹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사자의 경우에는 그룹의 리더로써 전성기가 2 6개월 정도였습니다. 사자의 암놈들은 강한 수놈이 자신의 집단을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침입자인 새로 나타난 다른 강자인 수놈은 사자 새끼를 모두 물어 죽여버렸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새끼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자의 어미들은 자신의 자식을 죽인 원수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아버지 수놈 밑에서는 자신의 자식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자 새끼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 사자였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었습니다.

 0세에서 3세까지는 아이는 엄마와 더 가깝습니다. 자녀들은 엄마의 배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엄마의 분신입니다. 엄마는 남편과의 관계보다도 자녀들의 양육 때문에 자녀들과 더 가깝게 되어 있습니다이 시기에 아버지와 딸 그리고 아들과 엄마의 밀접한 관계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됩니다. 이 시점에서 동생이 태어나게 됩니다. 자연히 엄마의 관심은 새로 태어난 자녀에게 쏠리게 되고 자녀들은 자기 방으로 쫓겨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엄마와 가장 가까운 줄 알고 있었으나 엄마는 아버지와 같이 자기 때문에 자신보다 엄마는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두려워하여 동일시하게 됩니다.


어린이들은 2살 때까지는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가 됩니다. 그러나 3살이 되면서 움직이고 걸어 다니게 되면서 자신이 스스로 만지고 부시고 하는 환경의 컨트롤에서 자신이 하는 일은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고 부모님이 하는 일은 마술처럼 잘 되는 것을 알게 되고 부모님을 최고로 존중하게 되고 부모님처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가장으로써의 아버지를 따르고 존경하게 됩니다. 오디프스의 비극은 아버지가 아들을 박해하여 죽이려고 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박해에서 살아나서 아버지를 죽이고 복수를 한 이야기에서 보듯이 오디프스의 비극을 극복해야 정상적인 인간으로써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으면 아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여 어머니를 포기하고 사춘기로 진입하면서 어머니와 닮은 여성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게 갈등 관계이거나 서로 미워하는 관계가 되면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아들과 밀착하게 됩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나는 너 하나나 보고 산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너의 아버지와 벌써 이혼했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에게 실망을 했다". "너의 아버지를 닮지 말아라" 등의 말로써 아들을 어머니 편으로 끌어들입니다. 오디프스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들은 엄마에게 밀착이 되어 사춘기가 되어서 더 넓은 사회생활로 나갈 준비를 하기 보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에 끌려들어가서 어머니와 아버지 문제에 집착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준비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부모님의 이혼이나 부모님의 싸움을 말리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게 됩니다. 심하면 아버지가 엄마 편인 아들을 미워하게 되고 부인에 대한 분노는 아들로 흘러가게 되고 아들을 박해하게 됩니다.


오디팔 기간 동안에 아들은 연약해서 아버지를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로마 법과 영국 법은 아버지의 절대 권력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사고 팔고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신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아들을 산꼭대기에 있는 제단으로 데라고 갔습니다. 아들을 죽여서 신의 제단에 바치려고 칼을 내려치려고 하자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너의 믿음을 알았으니 아들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라는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한 마리 양이 덤불에 뿔이 결려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잡아다가 제물로 받치게 되었고 이후부터 인간을 제물로 받치는 대신에 양을 제물로 받치는 속죄양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들의 생사여탈권은 아버지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위기 시에 아들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면 어머니가 아들의 보호에 나서게 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위협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게 되고 아들이 장성하게 되어 청년이 되면 아버지는 노쇠하여 늙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청년이 된 아들은 아버지의 박해와 위협으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게 됩니다.


사례: "아들에게 죄가 없습니다. 못난 부모 탓에 모범생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하고 많은 날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를 실수로 숨지게 했던 아들 대신 법의 심판을 받으러 했던 '단장(斷腸)의 모정(母情)'. 지난 4일 명문대 대학원인 L(26, S대 대학원)은 아버지(54, 무직)가 술에 취해 어머니 K(54)를 때리는 것을 말리다 어머니를 누나(27) 집으로 피신시켰다. 아들 L군은 다음날 오후 5 30분 쯤 "술 좀 그만 드시고 더 이상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달라"며 아버지를 설득하던 중 아버지가 "건방진 놈"이라며 폭행하자 순간적으로 아버지를 밀쳐버렸다. 아버지는 그만 전화기 받침대에 머리를 부딪쳐 숨지고 말았다. 아들의 연락을 받고 집에 온 K씨는 S병원으로 남편을 옮겼으나 숨진 것을 확인하고 아들의 장래를 걱정한 끝에 가족들에게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말을 맞춘 뒤 경찰에 자수했다. 그러나 경찰은 K씨가 때릴 대 사용했다는 안마기에 혈흔이 묻어있지 않은 점과 사건 정황에 대한 진술이 가족 간에 서로 다른 점으로 미뤄 아들 L군을 추궁한 끝에 7일 새벽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어머니 K씨는 경찰에서 "하숙을 치면서 어렵게 살았지만 아들은 우리 가족의 희망이었다" 며 아들이 매맞는 엄마를 걱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라고 호소 했다. 그러나 서울 서대문 경찰서는 7일 아들 L군을 존속살해치사 혐의로 구속했다(중앙일보, 98, 11,12).


 위의 사례는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위기에 처하면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되고 아들이 장성하게 청년이 되면 아버지의 위협으로부터 아들이 어머니를 보호하게 된다는 오디프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입니다. 유사한 사례들은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의 공통적인 말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입니다. 오디프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으로 흘러간 이야기 입니다.


 프로이드는 아버지로부터 처벌의 위협을 거세불안으로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거세시키려는 위협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되고 아버지처럼 강자가 되겠다고 아버지를 동일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디팔 기간에 아들은 아버지의 위협과 두려움 때문에 아버지를 닮아가는 동일시가 형성되고 근친상간과 어머니의 소유는 나쁘다는 초자아(superego) 즉 양심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장 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가진 power를 동경하게 되고 아들은 남자답게 장성하여 아버지처럼 강자가 되어 자신의 가족들을 거느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여자의 배속에서 나오게 되기 때문에 남성답게 되려면 강한 아버지의 모델이 필요하고 아버지를 동일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고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어머니를 동일시하게 되어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고 여성적으로 행동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현상을 호모섹스로 보았습니다. 최근의 정신분석 학자들은 거세 불안을 성적인 의미로 보기 보다는 아들이 취약한 시기인 오디팔 기간에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것을 거세불안으로 그리고 아버지가 노쇠하여 나이가 많아지면 아들의 눈치를 보며 아들을 두려워하는 것을 거세불안으로 봅니다. 어린 시절에 아들을 박해하고 처벌한 아버지 일수록 아버지는 늙어가고 힘이 쇠약해지면 장성하여 건장해지는 아들을 두려워하게 되고 아들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더 훌륭하게 자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성장하여 자신들의 부모보다도 더 잘 되고 싶어합니다. "나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꺼야" 나는 절대로 우리 어머니처럼 살지는 않을 꺼야" 그러나 자녀들은 성장해서 자신도 모르게 싫어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있거나 그렇지 살지 않으려고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상호 모순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보다 더 잘 되기를 바라면서도 아버지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것을 도전이나 반항으로 보게 됩니다. 아들은 성장하여 청년기가 되면 아버지의 모순점을 볼 수 있게 되고 아버지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게 됩니다. 자연히 아버지에게는 도전이나 반항으로 비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강요와 복종과 처벌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아들의 창의력을 꺾어 버린다는 것을 아버지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잘되게 되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경멸과 멸시를 받게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버지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을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천시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시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집합 무의식적인 요인 즉 아버지는 노쇠해가면서 언제 아들들의 반항과 도전과 반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바로 거세불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고 아버지를 위협하는 아들의 power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까? 훌륭한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물려주고 아들이 마음대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도록 전권을 위임하는 것이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역사를 보면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관계가 오디프스의 비극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이성계는 창업의 일등 공신인 이방원에게 장래의 왕의 자리를 약속했습니다. 이후에 이성계는 계비인 강비에게서 태어난 형제를 총애하여 방석을 왕 세자로 책봉하여 대통을 있게 하였습니다. 이성계가 건장할 당시에는 아들인 이방원은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강성할 때는 아들의 생사는 아버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노쇠하여 힘이 약해지고 이방원이 장성하여 힘이 강해지자 이방원은 세자인 방석 형제를 죽이는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결국 아버지를 거세 시키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성계는 더 이상 힘이 없어서 고향인 함경도 영흥으로 낙향하고 말았습니다. 이방원이 왕위를 이어받아서 태종이 되었고 이후에 처가의 득세를 거세 시키기 위해서 장인과 처남들을 역모로 몰아 죽이고 주변 환경을 제거한 후에 자신의 왕의 자리를 세 째 아들에게 물러주고 권좌에서 물러나서 아들이 전권을 행사하도록 하여 결국은 세종대왕이 나왔고 역사를 빛낸 역대 최고의 왕이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오디프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오디프스의 비극으로 끝난 이야기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영조는 자신의 자리를 아들이 넘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노쇠해간다는 열등감 때문에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어서 죽였습니다. 장성해서 힘이 강해지는 아들에 대한 두려움 즉 거세불안이 아닙니까? 세계 역사에서 이러한 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카토릭과 개신교의 관계가 바로 유사한 관계 입니다. 카토릭은 개신교가 등장할 때 이교도로 극심한 탄압을 했습니다. 프로테스턴트(Protestants)들 즉 청교도들을 반항자로 규정하고 학대하고 처벌하고 처형하였습니다. 결국 그러한 박해를 뚫고 나가서 아들이 아버지보다도 더 훌륭하게 되어 지금은 개신교가 더 확대되어 있지 않습니까?


영국과 미국과의 관계 역시 유사합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 였고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독립 전쟁을 했고 지금은 미국이 영국보다 더 강대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성장해서 아버지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강요와 복종과 존중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와 단절하거나 가출로 가족관계를 끊고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장애물을 극복해야 비로소 아버지를 능가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근 선망 혹은 남근 질투(penis envy)

 프로이드는 여성들에게는 오디프스가 아닌 일렉트라 콤프렉스(Electra complex)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스의 신화에서 프로이드가 따 온 것으로 미세네(Mycenae)의 왕 아가메몬이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게 되자 왕비인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는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왕의 동생과 놀아나게 되었다가 왕이 전쟁에서 돌아오게 되자 비밀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 해서 왕을 살해하고 왕의 동생과 결혼하게 되자 딸인 일렉트라가 이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복수하려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경쟁을 벌리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최근에 학자들은 여성들에게는 일렉트라 콤프렉스 보다는 남근 선망, 혹은 남근 질투(penis envy)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음으로써 성기가 없다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아들은 어머니를 통해서 성적 욕구를 개발하게 되고 딸은 아버지를 통해서 성적 욕구를 개발하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딸은 오디팔 시기가 되면 자신이 페니스를 가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원망하게 됩니다. "왜 엄마가 나를 딸로 낳았어!" 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딸은 아버지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페니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어머니보다 더 좋아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빠나 동생을 더 좋아하게 되면 딸은 자연히 자신은 페니스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딸이기 때문에 아들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상 받기 위해서 딸은 오빠나 남동생들보다도 더 공부나 행동을 잘 함으로서 칭찬을 얻으려고 경쟁을 하게 됩니다. 부모가 아들을 더 선호하게 되면 편애를 일으키게 되고 딸은 이러한 아들 선호에 분노하게 됩니다. 그 분노가 남동생이나 오빠가 달고 있는 페니스 때문으로 보고 남근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엄마에 대한 분노가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를 오염시키게 됩니다. 심하면 딸은 자라면서 페니스를 거세시키려 합니다. 아버지나 남편이나 남성을 거세 시키려고 합니다. 아버지와 같은 사랑의 대상인 이성에 분노, 공격이 집중됩니다. 남근에 도전적이 됩니다. 남성의 의존에 도전하기 위해서 남성과 지나치게 경쟁으로 남근을 부인하게 됩니다. 남근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 즉 남자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에 분노하게 됩니다. 남편이나 이성이 아버지처럼 그녀를 컨트롤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여 분노하게 됩니다. 여성인 자신을 불안전하게, 여인인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여자로써 당당하지 못하고 항상 자신이 없습니다. 이것이 더욱 심하게 된 여성의 경우에는 섹스로써 남성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난잡한 성행위를 하게 됩니다. 남근을 물어서 끊어버리겠다는 무의식적 소망 때문에 남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남성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타도 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되어 정복할 때 섹스의 power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섹스가 끝나면 사랑은 식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남자 저 남자로 난잡한 섹스 관계에 빠지게 됩니다. 남근에 대한 선망이 강할수록 부모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 클수록 여성의 질투심이 많다는 것이 연구결과 밝혀졌습니다. 질투심이 많은 여성일수록 남성을 무시하거나 도전하고 평가절하 하고 타도, 복수하려는 마음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선호하는 감정이 강할수록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게 되고 며느리를 학대하고 시집살이를 많이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는 이후에 자신도 엄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것입니다. 폭력이나 성폭행의 피해자는 이후에 자신이 폭력, 성폭행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들 선호 사상은 그 뒤에 어머니가 지나치게 아들을 좋아한다는 점이 숨어있고 시어머니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아들로 하여금 아들의 부인인 며느리를 시집살이를 시키거나 며느리를 학대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가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례: 부인 K는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결혼 3년 만에 헤어졌다가 2년 후에 다시 재 결합을 한 경우였습니다. 남편과 재결합을 한 후에 다시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치료자를 찾아 왔습니다. 5살 된 아들이 있고 부인은 학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공무원으로 첫 결혼 때는 모두가 부러워했다고 했습니다.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이 같이 근무하는 어떤 여성과 외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에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결국 이혼으로 파경이 되었다 아들 때문에 다시 재 결합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의존적이고 불안한 성격으로 스스로 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남편과 상담 후에 남편의 불만을 부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꼭 빼 닮아서 싫어진다고 했습니다. 매사에 이래라 저래라 하고 아이들 다루듯이 하는 것이 싫어져서 퇴근 후에 집에 들어오기가 싫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의 성장 과정을 분석해 보았을 때 부인은 언니가 둘이고 오빠가 한 사람으로 부모님의 지나친 아들 선호 때문에 막내인 딸이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부모의 기대에 분노하면서 자랐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공부를 잘 했고 오빠와 경쟁에서 항상 이겼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는 남학생들을 모욕주어서 무한하게 만드는 것이 취미였다고 했습니다. 남자 친구가 만나자고 쪽지가 오면 만나자고 해 놓고 만나서는 남자의 자존심을 공격해서 남자 학생이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을 보면 쾌감을 느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부인은 남편과 중매로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도 남편과 경쟁해서 매사에 이래라 저래라 로 간섭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남편은 "석두(石頭)" 즉 돌대가리 라고 매사에 놀렸으며 남편이 하는 일은 제대로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부인 자신의 의사대로 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주려고 해도 남편은 항상 우유부단해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인 자신의 의사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분석에서 남편은 어머니의 과잉보호로 의존적인 자녀 즉 "마마 보이"로 자랐습니다. 항상 어머니가 간섭을 해서 엄마 닮은 여성은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했습니다. 왜 두 사람이 결혼을 했을까요? 남편은 의존적인 사람으로 자랐기 때문에 겉으로는 엄마와 같은 여성은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의존할 수 있는 여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신이 의존적이 되어야 심리적 불안감을 감소 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부인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남성을 남편으로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자아가 강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남성을 부인에게는 남편감으로 좋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부인은 매사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자신의 자신감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거래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에 서로 갈등으로 해어졌다 가 다시 재혼으로 만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자식 때문에 다시 재결합 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디프스 기간은 남자와 여자의 성기의 차이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소년은 자신의 남근을 엄마에게 자랑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남근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남근의 자랑을 엄마와 나누고 싶어 합니다. 엄마를 보호해 주려는 작은 어른처럼 느끼기 시작합니다. 라이벌인 아버지를 밀어내고 엄마를 독점하고 싶어합니다. 소녀는 아버지가 자신 남근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남동생은 남근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생리적으로 불안전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엄마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자신에게는 없는 남근을 가진 아버지를 가끼히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위해 어머니와 라이벌 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소녀는 이 시기에 나는 커서 아버지와 결혼하겠다고 자주 이야기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성장해 가면서 부모가 자신에게 제한을 가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는 점차로 아들인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보다 무엇이든지 열등함을 느끼게 됩니다. 힘과 능력에서 자신이 최고로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생의 출생은 내가 최고에서 부모님의 관심이 동생에게로 향해 동생이 최고가 됩니다. 이 시기에 미움, 질투, 분노, 사랑 등의 감정이 구체화 됩니다. 동성의 부모와 동생이 없으면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다는 동성 부모의 죽음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소망 때문에 부모로부터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거세불안이 생기게 되고 부모님의 처벌을 두려워해서 부모님을 동일시하게 됩니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하고 딸은 어머니를 동일시하게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한 방에 계속자게 되고 자신들이 쫓겨나서 자신의 방에서 자게 되면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버지 임으로 아버지처럼 행동하게되면 어머니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아들은 아버지처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는 어머니처럼 행동을 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딸은 어머니처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오디프스의 비극은 오디팔 단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비극입니다. 오디프스를 극복하게 되면 자녀들은 더 넓은 사회생활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후에 청년기가 되어 부모님 곁을 떠나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오디프스의 비극은 부부의 갈등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좋으면 자녀들은 부모님의 관계에 끼어들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서 고민하고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부모님의 갈등에 자녀들이 끼어들게 되고 사회생활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갇히게 되는 것 즉 문제아가 되는 것이 오디프스의 비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