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완전 정복 13
우울증은 미국의 정신의학 학회에서 발간되는 DSM-Ⅲ(1980년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 지침서 제 3차 수정본)에서부터 지금까지(2013년 제5차 수정본(DSM-Ⅴ)까지) 무드 장애(감정 장애)로 분류되어져 있다. 우울증은 감정 즉 기분이 다운되어 에너지 고갈, 의욕 상실, 의기소침, 두문불출, 입맛 상실, 잠만 자거나, 미래가 없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자살 생각, 죄의식에 사로 잡힘, 흥미와 취미의 상실, 무감각, 무능력, 무기력으로 소금에 절여 놓은 파김치처럼 에너지 고갈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삶에서 즐거움을 상실한 심리적 패배감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정신장애 중에서 사람의 정신을 시들어가게 만드는 가장 고약한 마음의 병이다.
우울증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Niobe)의 돌과 같은 표정의 얼굴에서 우울증의 기원을 지적하고 있다. 14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다고 아폴로의 어머니인 니토(Nito) 앞에서 자랑을 하다가 자녀가 2명뿐인 니토(Nito) 보복으로 자녀를 모두 잃어버리고 돌로 변한 니오베의 이야기에서 그 기원을 들고 있다(Georgaota & Cancro, 1988).
의학적 기록은 B.C. 4세기 그리스의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에 의해서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melancholia)를 쓸개 즙의 과다로 생긴 질병으로 진단을 하면서 의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Georgaota & Cancro, 1988).
우울증의 연구로 평생을 보낸 하버드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봄페드(Bemporad, 1978)와 그의 스승인 펜실바니아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로서 정신분열증 연구로 세계적인 명저를 남긴 “정신분열증의 해석”의 저자인 아르에티(Arieti)의 공동 저서인“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 심리치료적 접근”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심한 우울증은 생리적인 질병으로 고려했다. 1904년에 스위스의 의사로 미국에 이민을 간 미국의 정신 의학의 대가로 불리는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는 삶에서 심한 연속적인 이벤트들이 심한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았다. 생리적 원인으로 본 멜랑꼴리아에서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우울증으로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신체적 질병의 개념에서 정신장애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신체적인 요인으로써 보다 개인적 심리적인 요인이 우울증의 핵심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Arieti & Bemporad, 1978).
19세기 말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창설로써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서 프로이트의 제자인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이었던 칼 아브라함(Karl Abraham)이 1911년에 우울증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로 정신분석가들의 우울증에 대한 심층 연구가 시작되었다(Arieti & Bemporad, 1978).
불안증의 연구 때문에 뒤 늦게 연구를 시작한 우울증에 대해 프로이트가 1917년에 “애도와 멜랑꼴리아”(Mourning and Melancholia)라는 심층 분석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 우울증의 심층 연구 논문은 우울증의 연구의 백미로써 100년이 지난 지금도 수 많은 학자들의 부가적인 연구로 설명을 더 붙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명쾌한 이론적인 걸작으로 남아 있다고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5)은 극찬하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애도와 멜랑꼴리아의 차이점은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써 외부 세계가 공허한 반면에 심한 우울증은 내면의 세계가 공허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프로이트는 강조를 한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대상의 그림자가 ego 위에 떨어졌다”라고 표현을 했다. 이 경구는 우울증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을 하는 정신분석가들의 경구가 되었다.
쉽게 말해서 애도에서는 텅 빈 세계가 있다. 세상이 텅 비고 초라하고 빈약한 세상이 있다. 외부 세계가 텅 비고 초라 하지만 내면의 세계는 이상이 없다. 이것은 사랑 하는 대상(사람 혹은 물건)의 상실 이후에 애도의 기간을 거치는 정상적인 애도를 말한다. 정신 의학에서는 상실 이후에 약 2년 동안 대상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의 아픔을 거치는 자연 치유의 기간을 말한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에서는 텅 비고 초라한 자아(ego)가 있다. 내가 무가치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해서 어떤 것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 자아를 욕한다. 자아가 상처 받기를, 내동댕이쳐 던져지기를 기대한다. 자해, 자학으로 자아 비판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낮춘다. 어떤 사람과 연결된 것에 대해서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자기 자신과 관계를 불쌍하게 여긴다. 고로 정신 장애 중에서 가장 자살 비율이 높은 심각한 질병으로 치료를 요구하는 중병으로 본다(Ogden, 2005).
정신분석에서는 심한 우울증 속에다 조증을 포함시킨다. 조증과 우울증은 정 반대이다. 우울증의 과도한 수면, 두문불출, 에너지 고갈, 흥미 상실, 의기소침 등과 대조적으로 조증은 잠이 없는 불면, 에너지의 홍수, 과대 과장, 이상 행동 등을 보인다. 조증은 그 기원을 우울증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분노가 억압되어져서 내면 속에서 자아로 향한 것을 우울증으로 본다. 이 우울증이 자아 밖으로 나타난 것으로 우울증에 대한 방어가 조증으로 보고 있다. 조증은 그리스어로 분노라는 뜻이다. 즉 그리스어의 조증(mania)은 영어로 분노(wrath)라는 뜻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합쳐진 것이 조울증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교대로 나타나는데 우울증의 기간이 약간 긴 것이 특징으로 보고 되고 있다(Georgaota & Cancro, 1988).
우울증은 흔히 정신장애에 감기라고 표현을 한다. 그 만큼 모든 심리적인 사건 사고 들은 그 사건의 결과가 부정적일 때 사람은 우울하게 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Freud)은 인간의 마음을 정신분석 이라는 현미경(은유적 표현)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하면서 인간이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이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것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즐거움 보다는 고통스런 감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은 제 1차 우울증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 혹은 사고들의 결과로 생기는 우울증을 제 2차 우울증으로 본다. 성폭행의 결과로 우울해진 40대 중반의 부인 A씨, 고교를 자퇴하고 2년 동안 개인교수를 받아서 열심히 노력했으나 수능에서 9등급을 받은 B군, 7년 동안 남편의 외도를 모르고 있었던 부인 C씨, 연인으로부터 버림 받은 D양 등, 고교 시절에 선배들로부터 폭력의 대상이 된 E씨 등이 우울해진 것은 제 2 차 우울증으로 본다. 제 2차 우울증은 우울증 그 자체를 치료해서는 효과가 없다. 성폭행, 실패, 외도, 실연, 동료들의 폭행 등의 문제를 다루고 극복하게 될 때 우울증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우울증을 약물로써 치료하지 않는다. 약물의 치료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정신 장애에서 사람들이 약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위기적 상황 즉 기절, 졸도, 어지러움, 현기증, 심장마비 등의 공포적인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주로 사용한다고 토로 한다. 그러나 약물은 부작용뿐만 아니고 급박한 순간을 차단시키기 때문에 그 증세의 근본 뿌리를 드러나게 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고로 정신과적인 약물은 증세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증세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정신분석에서는 약물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붙여서 약물은 증세를 완화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자아의 취약점 자체를 수리해주지 못한다. 그 환자는 그 증세가 드러나기 이전에 이미 자아의 취약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자신감 결여, 의사 소통 결함, 감정 표현의 미성숙함, 갈등 해결의 회피 등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촉진 요인들에 의해서 증세가 표면화 된 것이다. 고로 그 촉진 요인들을 찾아내고 그 자극들에 대처해 나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자아의 결함을 수정 하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그래야 이후에 그 환자는 이전의 상처와 유사한 문제들을 피하지 않게 되고 혼자서 직면으로 뚫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즉 자아의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핵심이다.
아래의 우울증의 치료 사례들은 어떻게 우울증을 치료 하는가? 하는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우울증을 제거해 나가는 치료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들을 자아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지 않는가?
대상: 57세의 부인 D씨
증세: D씨는 2000년도에 환청으로 6개월 동안 xxx 신경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았고 7년 후 2007년에 환청이 다시 재발 xxx 종합 병원에서 1년 동안 약물 치료를 받고 호전되었으나 2008년에 다시 불면증으로 1.5개월 동안 xxx 종합 병원에 입원 후에 몇 개월 동안 안정되었으나 다시 한번 불면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음. 이후 지금까지 3년 동안 정신분열증,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약물을 계속 복용해 오고 있으나 최근에 불면증이 심해져서 불면증 약물 투여량을 증가시켜 복용하고 있으나 별로 효과가 없다고 했음
연결: D씨는 2년전에 결혼해서 분가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그녀의 아들이 불안증과 대인관계 때문에 치료자 한데서 6개월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으로 그 때 그가 그의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그의 어머니를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하려고 다짐을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지금까지 미루어 오다가 최근에 약물 치료에 크게 실망한 어머니를 설득해서 어머니가 스스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D씨는 첫 2 시간 인터뷰 이후에 1주일에 1회로 1회기 당 3시간씩 분석 치료를 하기로 했음.치료자는 보통 1주일에 1회로 1회기 당 2시간으로 치료를 하고 있으나 정신분열증의 경우는 보통 1주일에 1회로 하면 인터벌이 너무 길어서 환자가 참고 기다리기 어렵기 때문에 1주일에 3회 혹은 4회로 치료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xx 지역은 치료자가 1주일에 월요일만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시간을 내어줄 수가 없으므로 1회기 당 3시간으로 조정을 하기로 했음. 아래의 분석은 첫 2시간 인터뷰 후에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D씨의 문제점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치료자는 첫 인터뷰가 시작될 때 특별히 환자들에게 이곳 치료실에서는 나이나 예의 범절에 신경쓰지 말고, 말을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순서없이,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하라고 권유를 한다. 이유는 이곳에서 긴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에서 이다. 편안하게 앉아서 편한 자세로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 대로 하라고 유도를 하는 것이 첫 인터뷰에서 이야기가 시작될 때 치료자가 가장 신경을 쓰서 강조를 하는 말이다.
D씨가 치료자와 인터뷰 시작 때 제일 먼저 털어 놓은 말은 이곳에 온다고 어제 저녁에 시간 약속을 정하고 난 다음에 신경이 쓰여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했다. 수면제를 평소보다 한 알 더 먹었으나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어떤 생각이 들어서 잠을 자지 못했으나고 물었을 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벤트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올라서 밤새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D 부인의 증세 에피소드들
D씨는 나이 보다는 젊어보였다. 현재 나이는 57세로 정신분열증이 처음 발병을 했을 때가 2000년으로 지금은 2011년이니 벌써 11년이나 되었다고 한탄쪼로 말을 했다.
D씨는 환청으로 2000년에 6개월 동안 xxx신경 정신과에 통원 치료로써 6개월 동안 약물 복용으로 환청이 사라져서 D씨는 병이 완전히 나았다고 생각해서 약물을 중단했다. 이후 7년 후에 2007년에 다시 환청이 재발해서 1년 동안 xxx 종합병원에서 1년 동안 약물 복용으로 좋아졌으나 이후에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되어 다시 xxx 종합 병원에 반쯤 응급실로 실려가서 1.5개월 동안 입원 했고 이후에 퇴원을 해서 몇 개월 동안 좋아지는 듯 했으나 다시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게 되자 응급실에 실려가서 다시 항우울제와 항 불안증과 수면제를 투여 받았으나 잠이 오지 않자 병원에서 담당 의사 선생님이 더 이상 병원에서 투약을 할 수 있는 양의 수면제와 항우울증, 항불안제 등을 다 투여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최후의 통첩을 받고 병원에서 쫒겨 나와서 집에 되돌아와서 남편이 D부인의 팔과 몸을 쓰다듬어 주게 되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 3년 동안 xxx 종합 병원에서 약물을 계속해서 복용해 왔으나 최근에 다시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다시 수면제를 1.5알을 증액해서 복용해 오다가 며칠 전에 1알로 낮추어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고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D부인의 삶의 역사
D부인은 4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얼굴이나 모습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D부인을 외할머니에 맡겨두고 재혼으로 떠났다. D부인은 외할머니와 11살 때까지 같이 살다가 다시 어머니의 가족으로 되돌아갔다. 어머니는 재혼으로 D부인이 그 가족 구성원이 되었을 때 4살되는 여동생이 있었고 이후에 3명의 배다른 동생들을 두게 되었다. D부인은 그녀 스스로 자신은 말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진단을 했다. 양아버지 역시 말이 없는 사람으로 그녀와 양 아버지 사이는 늘 서먹서먹했었다고 털어 놓았다. 밑으로 두명의 남동생과 두 명의 여동생들이 태어났고 특이 두 명의 남동생들을 D부인이 업고 다니면서 반쯤 키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한지 두 명의 남동생들은 D부인을 잘 따르고 좋아한다고 했다. 특별히 D부인의 바로 밑에 7살 아래인 여동생은 D부인이 엄마 집에 갔을 때 4살이었다고 했다. 엄마가 재혼해서 약 7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에 어머니가 남편에게 하소연을 해서 D부인을 같이 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었고 그 때 D부인은 11살 이었다. D부인이 엄마 집에 갔을 때 4살이던 여동생과는 7살 차이가 나는데도 항상 그녀는 여동생과 다툼에 늘 지는 경향이었다. 여동생은 언제나 언니 D와 싸움에서 지는 적이 없었다. 갈등이 생기면 7살 위인 언니는 늘 울었고 여동생이 이기는 편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후에 D부인은 23살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 부모님이 심성이 착하고 직업도 탄탄하다는 말에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한번도 직업이 무엇인지 혹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를 물어보지도 않고 덜컥 결혼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직업이 없었고 학력도 초등학교를 겨우 나온 사람이었다. 남편은 2살 때 친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가 재혼으로 양모 밑에서 자란 사람으로 밑으로 배다른 동생들이 6명이나 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누나가 한명이있고 그 누나는 남편의 친 어머니 한데서 태어난 사람으로 이후에 양모가 들어와서 다시 6명의 가족이 생기는 바람에 모두 가족이 8명이나 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양모의 여동생 즉 이모가 가진 배에 사무장으로 일하다가 이모가 배를 처분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했다. 직장이 없자 어머니가 사둔 땅에서 목축을 하기로 했다. D부인은 결혼 전에 목제소에 경리로 3년간 다녔고 시집가기 위해서 모아둔 돈으로 젖소를 2마리 사고 그리고 어머니가 젖소를 국가로부터 분양을 받아서 모두 10마리 정도로 목축을 시작했다.
결혼 후에 남편과 D부인은 젖소 목축에 전심전력을 다 쏳았다. 어머니는 젖소들이 늘어나자 일하는 인부들을 더 붙여주지 않았다. 착한 남편과 D부인은 말없이 죽으라고 열심히 일을 했다. 젖소들이 늘어났지만 양 아버지가 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는 바람에 늘 젖소들을 팔아서 그 밑천으로 들어갔다. 목축 사업으로 5년이 지나가면서 남편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D부인은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과 싸우고 싸웠다하면 주먹다짐에 피가 터져서 맞고 집에 돌아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결혼 후에 5년 만에 예비군 훈련을 갔던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고 인사불성이되어 피투성이가 되어 비틀러기면서 집에 돌아오는 꼴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에 치를 떨었으나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은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고 이것을 그녀는 이후에 알 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을 했으니 당연히 남편은 고등학교를 나왔을 것이라고 상상을 했으나 직접 물어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직업도 없는 무직으로 일자리가 없어서 어머니가 사 놓은 산지에 젖소를 사육하는 목축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부인 D씨와 남편은 죽도록 불평없이 어머니에게 충성으로 일을 했다. 어머니는 D씨와 남편이 정성들여서 양육을 한 젖소들을 한 마리씩 팔아서 양부가 실패한 밑천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미안해서 돈을 조금 모아서 산 산지에 더 크게 목축을 하려는 개획을 세우면서 땅을 사게 되어 D씨의 남편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려고 했으나 D씨가 미안해서 D씨의 어머니의 이름으로 하자고 우겨서 어머니의 이름으로 등기를 했고 어머니는 이 땅을 팔 때 절반으로 서로 나누자고 약속을 했다. 목축을 한지 7년이 지나가는 어느날 새로 옮긴 목축장이 매매가 되었으니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연실색을 했다. 몇 개월 전에 이야기를 해서 옮길 곳과 살 곳을 준비를 해 놓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더욱 대경실색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는 D부인에게 돈을 쥐어 주면서 집을 나가라고 했다. D부인은 울면서 매매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안된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그런 것이 어디있느냐고 하소연을 하자 어머니는 D부인에게 언어 폭력을 퍼부었다. "xxx 년아! 벼락 맞아 죽어라",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여죽을 것"이다. 등등으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쏟아냈다. 울면서 짐을 싸고 있는데 이번에는 양부가 다시 계산이 잘못 되었으니 새로 계산을 해야 한다면서 D부인에게 요구를 했다. 이예 격분한 D씨의 어머니가 죽은다면서 목을 멘다고 산으로 올라가서 D부인이 남편을 시켜서 어머니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어머니는 양부가 다시 계산을 해야 한다면서 새로 계산을 해서 돈을 더 빼앗아 가려는 것에 분노해서 자살 소동을 일으켰고 양부는 더 이상 그 문제를 끄집어 내지 않았다고 했다. D부인은 분노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인근 소도시에서 대 도시로 이사를 와야 했다. 팔린 목장 근처에서 목축을 하려고 시도를 해 보았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서 실패를 하고 목축을 포기하고 대 도시로 나오게 되었다. 남편은 개인 택시를 하게 되었고 첫 5년 동안은 어려운 생활을 해 왔다고 했다. 이제는 남편은 택시 회사 소속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조금은 나아졌으나 부인 D씨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 후에 그리고 지금까지 쌓인 한이 맺힌 것들을 쌓아두고 마음 속에서 곪아터지고 있었던 것을 모르고 있었다.
첫 번째 정신분열증 발발: 2000년 xx월 xx일에 그녀는 첫 환청을 가졌다. 그녀는 그 시점에서 처음으로 환청을 가졌을 때 정말로 그녀의 머리 속에서 두 사람이 싸움을 하고 다투는 것으로 느꼈다. 그들의 말들은 10년이 지나가서 지금은 정확하게 그녀의 머리 속에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대충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그녀의 환청을 다음과 같이 기술을 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 두 사람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은 두 번째 사람에게 말을 하기를 "친모가 양모가 된다--- 양부가 된다---연인인 대학 교수가 그녀에게 화장을 예쁘게 해야 한다고 말을 하니 그녀가 화장을 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한쪽으로 그렇게 하면 넘어어진다--그래서 그녀가 넘어졌다.---그녀가 울 때 울지 마세요 라고 한쪽 사람이 이야기를 했다". 등등 이었다. 대충 환청의 내용은 유추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집 근처에 있는 xxx 신경 정신과에 가서 약물을 복용을 했고 6개월 후에 환청은 사라졌다. 그 시즘에서 그녀는 그녀의 머리 속에서 들리는 말들이 환청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이후에 그녀는 별일 없이 7년의 세월이 흘러가게 된 것이었다.
두 번째 정신분열증의 재발: 2007년 xx월 xx일에 그녀는 두 번째 환청을 가졌다. 이번에는 그녀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 가진 첫 사랑의 군인이 환각으로 직접 눈에 보였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 목제소에서 경리로 근무를 하고 있을 때 한 군인 장교를 알 게 되었고 1년간 사귀게 되었다. 서로 편지를 교환했고 그 군인 장교가 더욱 열성적이었다. 그는 D부인의 어머니를 찾아와서 1년 정도 기다려 주면 결혼을 하겠다고 했으나 어머니가 1년을 기다려줄 수 없다고 거절을 했고 두 사람은 결별을 했다. D씨는 그 군인과 결혼을 하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반대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군인이 환각으로 눈에 보였고 환각 속에서 그녀는 그 군인과 데이트를 하면서 극장에서 본 외국 영화의 주제곡을 그녀가 부르고 있었다고 했다. 낮에 자다가 일어나서 환각 상태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가족들이 붙잡아 들여왔다고 회상을 했다. 그리고 "그 군인이 죽었는데 너(D부인) 때문이야" 하는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군 장교가 죽었는지는 그녀 자신이 지금도 모르고 있었다. 결국 가족들에 의해서 xxx 종합 병원으로 입원을 했다.
D부인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외할머니와 함께 7년 동안 살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외할머니 역시 첫 결혼 후에 남편과 사별하고 딸인 엄마를 데리고 재혼을 했으나 두 번째 결혼에서 두 명의 아들이 태어났으나 몇 살 되지 않아 죽어 버리는 바람에 자식을 더 이상 가질 수가 없었고 딸인 어머니가 재혼으로 집을 떠난 후에 외손녀인 4살된 D부인을 데리고 7년을 같이 살 게 되었다고 했다. 재혼한 엄마의 가족 품으로 되돌아 가기 전에 외할머니는 시골의 5일 장만 되면 빠짐없이 시장에 갔다가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와서는 죽은 아들들의 무덤을 찾아가서 통곡을 하면서 우는 버릇이 있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러할 때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D부인이 부엌에 들어가서 죽을 끓여서 외할머니를 돌보아주었던 시절을 회고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으로 그 시절에는 D부인이 외할머니를 돌보아주면서 외할머니의 집안 살림을 살았었다고 회고를 했다. 외할머니가 재혼으로 낳은 두 명의 아들들을 몇 살이 되기도 전에 잃어 버리자 그 상실 때문에 외할머니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본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가 술을 마시도록 권유해서 이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시장에 가서 술을 마시는 술버릇이 생겼다고 외할머니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외할머니를 돌보아주면서 살던 외 손녀는 11살이 되면서 그렇게 외할머니를 뒤에 남겨두고 새 아버지의 집으로 어머니를 따라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D부인은 재혼한 어머니 집에서 살면서 방학 때가 되거나 시간이 나면 자주 외할머니 집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집을 가기 직전에 외할머니 집 동네 근처에 살던 생부(D부인의 친 아버지)의 동생(작은 아버지)의 딸이 그녀를 찾아와서 생부의 사진이 있는데 가져 가겠느냐로 물어왔으나 D부인은 그냥 웃고 말았다고 기억을 회고를 했다. 한번씩 외할머니의 동네를 방문하면 그 작은 아버지의 딸을 한번씩 만났는데 그녀가 D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회상을 했다. 지금 그녀는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왜 그 때 친어버지의 사진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하고 후회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D부인은 그녀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양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와 양부는 부부 금슬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양아버지는 술 집 바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가였다고 했다. 어머니가 준비한 집을 지어서 파는 사업을 다 마련해 놓으면 양부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귀가 얇아서 팔아 버리는 바람에 손해가 나게 되고 늘 이것을 두고 두 사람은 끄칠 날이 없이 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양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D부인이 결혼 후에 기르게된 목축에서 젖소들이 자라면 그 젖소들을 팔아서 양부의 실패한 돈들을 메꾸어 넣어온 것을 회상을 하면서 쓸쓸해 했다. 이러한 부모 사이에 갈등들을 보고 사춘기를 보내면서 D부인은 가족 분위기 때문에 그녀의 감정을 억압해 온 것이었다. 늘 어머니에게는 미안하고 양부에게는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추어 왔다고 시인을 했다.
분석의 결과
23세에 결혼을 해서 33년이 흐른 지금 그녀의 쌓인 분노와 적대 감정과 불신, 배신감 등이 누적이 되어 한계점을 넘어간 것이 처음 정신분열증의 발발의 신호탄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그리고 양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감정이 쪼개져서 좋은 긍정적인 말들은 할 수 있었으나 부정적인 말들은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결혼에서 7년 동안 노예처럼 일을 해서 열심히 일을 했으나 어머니는 딸 가족을 내 쫓아낼 때 처음으로 D씨는 어머니에게 대들면서 하고 싶은 몇 마디의 말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몇 배 더 크게 분노로 땡깡을 부리면서 저주의 말들을 퍼부었다. "벼락을 맞아죽을 것"이라느니 혹은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어죽어 버려라" 하는 저주의 언어 폭력을 퍼부었다. 한번은 D씨의 딸이 덤프 트럭에 치일 뻔한 일이 있어서 어머니의 그 저주가 딸에게 일어난 것이 아닌가? 의아스럽게 생각을 했다고 했다.
첫 번째 정신분열증 에피소드 폭발 때 친정 어머니가 D씨를 방문해서 D씨가 죽을지 모른다고 걱정을 하면서 통곡하고 울면서 사위(D씨의 남편)를 보고 욕을 퍼부우면서 "멀쩡한 내 딸을 데리고 가서 이렇게 불치병에 걸리게 했으니 내 놈이 물어내라!"고 호통을 치면서 난리를 쳤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러나 남편은 장모 님에게 이런 욕설을 바가지로 덮어 쓰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한쪽 부모를 잃어 버린 경우에 그것이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D 씨와 남편은 둘 다 부정적인 말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없었고 그 이유는 이것이 설명을 해주고 있다. 첫 번째 정신분열증 발발 에피소드의 환청 속에는 그녀와 남편이 어머니에게 당했던 한스러움이 그대로 맺혀 있었다. 어머니에게 노예처럼 일해서 어머니의 소득을 증가 시켜주었으나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근처에 땅을 더 사면서 남편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려고 했으나 D부인이 미안에서 어머니의 이름으로 하자고 할 때 어머니는 팔 때 50대 50으로 공평하게 하자고 약속을 했으나 어머니는 그녀 스스로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 그녀가 계약서를 보자고 했을 때 어머니는 계약서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사를 가려고 하면 미리 1개월-2개월 전에 이야기를 해서 이사를 갈 준비를 하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어머니는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런 욕심에 더 붙여서 양아버지는 그 돈을 더 받아내려고 했다. 어머니의 계산이 잘못되었다면서 다시 계산을 해야 한다고 D부인에게 덤벼들었던 것이다. 지금 그녀는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는 땅만 계산해서 돈을 받았지 살아 있는 젖소들을 계산하지 못했었다면서 "왜 내가 그 때 젖소들을 계산하지 못했는지"라고 한탄 쪼로 이야기를 했다. 친 어머니와 양 아버지에게 그녀는 "소처럼 부려먹고는 개처럼 쫓아내 버린 것"을 D부인 스스로가 마음 속에 한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그 썹썹함을 말로써 표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을 자아가 알고 이것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된 것었다.
또한 남편의 첫 술 주사를 한 것도 5년까지는 남편은 마음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편은 어린 시절에 친 엄마를 2살 때 잃었기 때문에 계모의 눈치를 보면서 자란 사람이었다. 고로 남편 역시 자신의 생각, 느낌, 지각, 상상, 아이디어들을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표현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 다 자신의 마음 속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5년이 지나가면서 남편도 마음 속에서 장모가 해도해도 너무 한다고 그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을 한 것이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들과 시비를 벌려서 죽도록 얻어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술 주사를 보이게 된 것이다. 이후에 남편을 동료들과 만나면 술에 취해서 시비를 벌려서 신체가 약하고 체구가 작은 남편은 항상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을 괴롭혔다. 그러한 행동 방식이 남편의 감정 표현 스타일이 된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가슴 속에 맺힌 한은 응어리로 남아서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이것이 한계점을 넘어서 폭발한 것이 첫 번째 정신분열증의 등장이었다.
두 번째 정신분열증 에피소드는 D부인의 첫 사랑인 그 군인 장교의 얼굴이 보이고 둘이서 데이트를 했던 그 영화관에서 본 영화의 주제곡을 그녀가 부르고 있었고 "그 군인 장교가 죽은 것은 너(D씨) 때문이야"라는 말이 그녀의 귀에 들렸다. 그녀가 그 군 장교를 사랑했으면서도 그녀가 한마디도 그 장교나 그녀의 어머니에게 좋아해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을 평생 동안 후회하고 있다는 그녀의 마음이 그 환각과 환청에서 그대로 나타나있었다.
치료자는 D씨의 배다른 동생들 즉 두명의 여동생과 두 명의 남동생들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들은 다들 별일없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D부인처럼 정신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특히 바로 밑의 여동생은 결혼 후에도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다 친정이나 시가에서 틀어 놓는 것을 보고 인상적이었다고 털어 놓앗다. 남동생들은 다 잘 살고 있고 유독 D씨만 정신분열증으로 11년 동안 고통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D씨가 알도록 했다. 그녀는 동생들과 달리 그녀의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을 했을 때 그녀가 왜 자신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치료자의 지적에 시인을 했다.
D부인과 남편은 어린 시절에 배다른 동생들을 가진 한 쪽 부모의 상실을 겪은 상처받은 사람들로써 서로 부부가 된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늘 하는 말인 "배우자와 물은 서로 유사한 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서로 배우자로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건강한 한쪽이 상처받은 다른 한쪽을 보상을 해주면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배우자는 그 보상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다 상처받은 경우에는 문제는 더욱 더 크지게 된다는 말이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고통, 괴로움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다. 남편은 술 주사로 표현을 하고 부인은 참고 견디는 스타일로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스타일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고로 남편은 술 주사로 풀 수 있었기 때문에 정신분열증은 면할 수 있었지만 부인은 그것 조차할 수 없는 사람으로 결국 정신분열증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들의 생활은 결혼에서도 나타났다. 결혼을 할 때 그녀는 남편에게 그녀 자신에 대한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으나 남편은 철처히 그 자신을 비밀로 했고 이후에 남편이 초등학교 졸업에다 직업이 없다는 것 때문에 남편에 대한 배신감, 속임수, 거짓말 등에 참을 수 없었으나 말을 제대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들은 그녀의 마음 속에 남아서 억압되어 있다가 자아가 약해진 틈을 타서 이것들이 표면화 되면서 그녀의 귀에 하고 싶은 말들로써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들리게 된 것이다. 즉 그녀의 귀에 들리는 환청들은 그녀가 하고 싶었던 그녀의 내면 속의 말들, 비밀들이었고 이러한 생각, 상상, 사실들이 뒤 범벅이 되어 현실과 상상들이 뒤죽박죽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머리 속은 마치 이러한 상처의 기억들이 뒤범벅이 되어 혼란해져 있다. 그녀는 과거의 상처 기억을을 잊어 버리지 않고 두고 두고 회상으로 재 등장을 반복하면서도 그 말들을 토해내고 애통으로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뒤범덕이 되어서 어느 것이 현실인지 어느 것이 상상인지 혼돈을 가져온 것이다.
고로 치료에서는 이런 것들을 토해내고 어린 시절의 상처 경험들을 말로써 적당하게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머리 속에서 다시 차곡차곡 정리를 해 나가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행동으로 표현을 하지 말고 말로써 적당한 언어로써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적당한 감정적 언어 표현을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그녀는 첫 치료 인터뷰의 마지막 시간에 "선생님! 왜 내가 말이 적은 사람이 되었을까요?"라고 의문스럽게 물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어린 시절에 자신의 생각, 느낌, 감정, 지각, 아이디어들을 미주알고주알 표현을 하는 능력에 결함이 생긴 것으로 치료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경험을 새로 배우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더 붙여서 치료에서는 이러한 노여움, 분노, 적대 감정들을 표현을 하게 하고 누적된 감정들을 방출시키고 그녀의 자신의 자아와 대화를 새로 나누게 하고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대인관계에서 자기 주장을 하게 하고 섭섭한 것들을 눈치를 보지 말고 그것을 표현하게 하는 쪽으로 치료의 방향이 잡혀질 것이다.
다행히도 그녀는 스스로 문제를 찾으려고 하고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첫 만남에서 그녀가 자기 표현이 없어서 말을 많이 하지 못하고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걱정을 했다. 그러나 치료자와 대화에서 그녀는 자기 표현을 그런대로 잘 할 수 있었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점을 찾으려고 하는 동기가 강해서 충분히 정신분열증을 극복할 것으로 확신이 들었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D부인은 그 다음 치료 회기 시간에 와서 지난 주일에는 집에 가서 편안하게 잠을 잘자게 되었다고 신기해 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약물 복용으로 이제 환청은 없어나 침투해서 떠 오르는 생각들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나 이번 주일 동안 내내는 잠을 잘 자고 있다고 했다. D부인이 5시간 째 그녀의 내면 속에 갇혀있는 분노, 미움, 배신감, 적대 감정을 토해낸 치료 회기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분은 다음의 치료 회기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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