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어려움 2: 우울증으로 2
관계의 어려움으로부터 2: 우울증으로 2에서 21세의 H양의 정신분석 치료 회기가 시리즈로 계속되어지고 있다.
대상: 20대 초반의 전직 간호사인 H양
증세: 우울증, 불안증, 대인 공포증
접촉: H양은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후에 여러 치료 사례들을 읽고 나서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메일로 여러번 연락이 왔으나 직장에서 사표를 쓰고 나서 퇴직금이 나오지 않아서 치료자와 첫 연락 후에 1달이 지나고 나서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 기간: 2차 6개월 96시간의 치료 계약이 끝나고 다시 6개월 48시간의 치료 계약을 하고 치료를 계속하고 있음
아래의 분석은 세 번째 치료 계약 후에(1년 6개월) 1주일에 1회 2시간의 치료 회기로 4시간이(총 100 시간) 지나면서 분석되어진 H 양의 치료 과정을 정리한 것임.
제 50 회 치료 회기의 과정
H양이 새로운 직장에서 근무한지 2달 정도가 지나가면서 H양은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동료들과 갈등은 그녀가 첫 직장에서 1달 동안에 직면을 해야 했던 가장 큰 문제점들이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자아(ego)가 관찰을 하면서 고통스러워했다.
동료들이 그녀 자신이 일을 빨리 익숙하게 배우라고 그녀를 주시해서 보는 것이 제일 싫다고 했다. 동료들이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서 옆에서 일을 가르쳐주고 나서 그녀를 관찰하는 것이 그녀 자신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 같아서 그녀의 자아(ego)가 그녀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과 맞물려서 고통스러워했다. 치료자는 자아(ego)가 관찰하는 하는 행동은 자신의 자율신경 조직을 컨트롤 하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그녀 자신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을 알도록 했다. H양의 행동에 대한 동료들의 지적이나 일을 도와주려는 행동은 감사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일을 알려주고 난 후에 H양이 일에 빨리 익숙하지 못하자 여러 번의 지적에 대해서 H양은 자신을 질책하는 행동이 많았다. "내가 왜 이렇게 일을 빨리 배우지 못할까? 다른 사람들은 잘 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와 같은 H양 자신이 마음 속으로 하는 말들이 그녀 자신의 자아를 처벌하는 질책임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 그녀는 한 개의 실수나 한번 배운 것에 대한 숙달의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녹초가 되거나 거의 에너지가 바닥이 나서 쓰러질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다. 하루 하루의 생활들이 긴장과 피를 말리는 연속된 나날 들이라고 고통을 호소를 했다.
치료자는 H양이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실수 혹은 잘못들에 대해서 H양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가?하고 미만해서 어쩔줄 몰라는 것을 하나씩 찾아내서 그녀 자신을 지나치게 질책하고 처벌하는 것을 줄여나가는데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예를 들어서 직장에서 청소가 잘못되었나 혹은 병원에 오는 환자들 한데서 동료들의 불친절함 등에 대해서 H양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자아를 관찰하고 자아를 처벌하는 것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의식을 하는 것들을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어서 진료실과 대기실에 청소는 청소 당번이 정해서 있어서 서로 교대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 청소가 아닌데도 그녀는 청소가 미진하면 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닌가? 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또 진료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에게 동료들이 상냥하게 대하지 못하면 그녀가 손님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등 등이었다. 특별히 원장 선생님이 간호사들에게 지적을 하면 H양 자신이 잘못한 것으로 확대 해석해서 쥐 구멍이라도 찾고 싶어하는 그녀의 과도한 예민함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H양의 이러한 과도한 예민 반응은 그녀가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과 관계가 있었다. H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의 죽음으로 가족들 즉 아버지, 장애인 남동생을 돌보고 집안 일을 돌보느라 정작 H양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또한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늘 집안 청소, 심부름, 장애인인 남동생의 관리 등에 지적을 받아서 늘 아버지로부터 처벌과 직책과 꾸쭝을 들어왔음을 실토를 했다. 한가지 특이한 기억은 아버지는 직장에서 집에 돌아오면 항상 H양이 하루에 정해진 일과 즉 청소, 식사, 빨래, 개와 고양이 돌보기 등을 따졌다. 청소가 깨끗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깨끗하지 않는 미진한 부분만 청소를 시키는 것이 아니고 청소를 한 부분까지 다 포함해서 모두 끄집어 흩트려서 처음부터 다시 새로 청소를 하도록 시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을 했다. 옷장이 정리되어있지 않으면 옷장의 옷을 전부 끄집어 내서 흩으려 놓고 처음부터 다시 하도록 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잘못된 버릇 때문에 그녀는 울면서 모든 일을 처음부터 새로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은 다 해 놓았던 일들을 처음부터 새로 다시 하는 것 때문에 늘 불안하고 잘못된 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습관들이 H양의 몸에 베어서 직장에서도 원장 선생님이 간호사들에게 질책을 하거나 지시를 하는 일들은 직접 그녀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잘못한 것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그녀가 잘 한 일에 대해서도 모두가 그녀의 잘못된 행동으로 생각한다는 것과 연결 시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직장에서 동료들의 지적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마음이 불안해서 지시를 한 일들이나 한번 배웠던 일들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고 어리둥절해진다고 마음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동료들의 여러 번의 지시에도 자주 실수를 하는 것을 그녀의 자아는 그녀가 특별히 머리가 나쁘고 어떤 것을 잘 배우지 못하는 그녀 자신이 두뇌 때문으로 생각하고 그녀 자신을 항상 "멍청한 사람", "바보 같은 사람"으로 질책하고 있음이 분석되어졌다. 치료자는 인간이란 누구든지 불안한 순간은 들었던 기억이 연결이 잘 되지 않고 배운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도록 했다. 그녀가 머리가 나쁜, 바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당황하거나 혹은 안절부절 못하게 되면 즉 마음의 안정을 잃어 버리면 누구나 그 순간은 기억의 연결이 되지 않고 심하면 머리 속이 하얗게 된다는 것을 알도록 했다. 잘못된 실수에 너무 과민 반응을 하지 말고 처음에 이곳에 왔기 때문에 적어도 적응을 하는데 3개월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라고 자아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동료들에게도 H양 자신이 불안해서 금방 시키고 가르친 것에 대해서 잘 잊어 버리고 머리가 하얗게 되어 어쩔 줄 모른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다른 사람들보다 어떤 것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이야기를 하게 했다.
평소에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그녀 자신이 행동하고 있다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녀가 처음에 간호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xxx 치과 의원에서 3개월 동안 일을 배울 때 원장 선생님이나 선배 간호사들이 시키는 일에 그녀가 자신이 없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잘 하지 못해서 그냥 그녀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을 하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 일은 해 보지 않아서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 자신을 발견했다. 누가 이것을 해라고 시키면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해보지도 않는 일들을 하는 체 하다가 질책, 망신을 당한 일들을 하나씩 회상을 하면서 그녀 자신이 왜 그렇게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니 다시 가르쳐 주세요"라는 말들을 그녀가 자연스럽게 할 수 없는지 궁금하게 생각을 했다. xxx 치과 의원에서 원장 선생님이 환자의 입 안에 물로 씻어내는 작업을 하라는 말을 듣고 한번도 해 보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다가 그 환자의 얼굴에 물이 팅겨서 초보의 망신을 당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모른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시키는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그녀의 잘못 된 생각은 역시 그녀의 과거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과 관계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를 잃었기 때문에 그녀는 옆에서 누가 그녀에게 일을 가르쳐주고 일을 배우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직장에 나갔기 때문에 옆에 늘 없었고 남동생은 나이가 어려워 집안 일들은 늘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일을 할 때 순서도 없고 그냥 이 일을 벌려 놓았다가 다시 저 일을 손을 대고 일을 제대로 마무리는 하는 일이 없는 그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항상 일을 시작하다가 그냥 두고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그녀 자신의 모습을 지금 직장에서도 반복하고 있음을 그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집에서도 한가지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늘어 놓는다고 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설거지를 하지 않고 그대로 널어 놓거나, 아침에 6시 경에 눈이 뜨이고 잠을 깨어서 몸이 피곤하고 일어나기 귀찮아져서 그대로 7시까지 뒹굴다가 시간이 지체되면서 출근 시간이 임박해 오자 침대에 자고 난 이불을 제대로 정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빠져 나와서 시간이 촉박해서 부라부라 서둘러서 아침에 출근을 하기 직전에 화장을 하고 화장 품들을 그대로 늘어 놓아두고 출근한 그녀 자신의 모습을 그녀가 직장에서 퇴근 후에 집에 들어오면 어질러 놓고 정리가 되자 않고 늘려져 있는 집안 일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녀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그리고 할 일들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기운이 빠지고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집에 오면 침대에 쓰러져서 일을 할 에너지가 소진된다고 했다.
H양의 일상 생활이 뒤죽박죽이어서 질서가 없고 뒤엉킨 일상의 일들은 어린 시절에 그녀가 옆에서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었던 과거의 일 처리 들과 관계가 있었다.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데 금방 옆에서 누가 저 일을 하라고 하면 그녀가 하던 일들을 그만 두고 시키는 저 일을 하고 있고 그리고 또 이 일을 하다가 조금 전에 깜빡한 저 일이 생각이 나서 저 일을 다시 하고 있는 그녀 자신의 모습을 재 발견을 했다. 그것은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 지금까지 습관화된 그녀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그녀 자신이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습관들이 그녀가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일의 시급성에 순서가 없고 조직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을 일들을 해 왔으면서도 항상 일감은 주변에 널려 있고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일 속에서 파묻혀서 사는 것으로 보여서 그녀 자신을 피곤하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에 스스로 질리게 하는 것임을 알 게 했다.
하루의 시작 때부터 일을 한가지씩 마무리를 하도록 했다. 설거지는 즉각 그 때 그때 하고 자고 나면 침대들 빨리 정리는 하고 그리고 출근 직전에 화장을 하고 나서 간단하게 정리를 하도록 했다. 직장에서도 일을 할 때 한가지씩 마무리를 하고 누가 시키면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일을 끝내고 즉각 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말로 표현을 하게 했다. 해보지 않았거나 자신이 없는 일을 시키면 "제가 잘 모르겠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그녀는 직장에서 원장님이 환자들을 진료를 하는데 환자들의 손이나 몸을 만지는 것을 옆에서 간호사로써 지켜보고 있자면 원장 선생님이 변태성욕 자처럼 보여서 원장님이 더럽게 보이고 매스꺼워 보여서 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또 그녀 자신이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혈압을 재거나 혈액을 수취를 할 때 성적인 수치심을 느낀다고 고통스러움을 하소연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그녀가 어린 시절에 성적이 수치심을 당한 적이 있는지 회상을 해 보게 했다.
그러자 H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일종의 성추행을 당한 기억을 이야기를 했다. 화장실 청소 당번이어서 그녀가 화장실의 벽면을 닦고 있는데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나타나서 H양의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화장실 벽에 먼지를 닦아야 한다면서 H양의 몸을 껴안고 몸을 높이 들어 올리면서 그녀의 엉덩이와 하복부를 만졌던 기억들을 회상을 했다. 그러한 성추행은 여러 번이 있었고 그 당시에 그녀는 선생님이 내 몸을 일부러 만지고 있구나 하고 불쾌하게 생각을 했으나 선생님에게 화를 내거나 거부의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한 과거의 성추행의 경험이 지금 병원의 원장 선생님과 연결된 점을 찾아보게 했다. 그녀는 50대 후반의 원장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을 했다. 두 사람이 다 비슷한 나이이고 그리고 또 한가지는 두 사람이 머리가 벗겨진 대머리임을 밝혀냈다. 걷는 모습도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원장 선생님은 한쪽 발을 절음거리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 환자였다고 이야기를 했다. 고로 지금의 원장 선생님이 그녀의 몸을 만지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으로 진료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 인식이 되고 있음을 알 게 했다. 청소년들의 몸을 만지는 진료 행위가 섹스적인 자극으로 느껴져서 그녀가 청소년들을 섹스적인 대상으로 연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했다.
또 한가지는 아버지가 H양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고 화장실에서 몸을 씻거나 대소변을 볼 때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자신의 몸을 노출시키는 것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해 왔으나 아버지에게 직접 그렇게 하니 불쾌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어린 유아기 때부터 부모님의 몸을 만지거나 보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 자신의 몸 특히 하복부(성기와 항문을 포함)를 자녀들에게 노출하는 것을 예사로운 일로 생각하지만 3세-5세의 오디팔 기간부터는 부모님의 성기, 부모님의 성행위 장면이 자녀들에게 노출이 되면 자녀들의 오디팔 기간의 섹스 욕구를 자극해서 어른이 되어서 변태성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H양은 그녀가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의 죽음 이후에 아버지가 이웃 빌라에 사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와 바람이 나서 외도를 하는 바람에 그 부인의 남편이 식칼을 들고 그녀의 아파트로 찾아와서 죽이겠다고 소동을 부린 적이 있어서 성인이 된 지금도 창문이 열려 있거나, 창문에 커텐이 열려 있으면 누군가가 집에 침입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들어 두렵다고 했다. 또한 무심코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가 아버지가 그 유부녀가 옷을 벗고 섹스 관계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울러 H양이 엄마의 사망 후에 이웃에 살고 있던 고모 집에 가서 잠을 자다가 고모와 고모의 남자 친구가 옆 방에서 섹스를 하면서 내는 신음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이러한 섹스적인 자극으로 상처를 받은 것들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치료자는 그녀의 초경의 시쯤을 회상이 되는지 물어 보았다. 그녀는 초경이 초등학교 6학년 혹은 중학교 1학년 시쯤이라고 말을 하면서 명확하게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초경을 경험을 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이야기할 친구도 가족이나 친척도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의 초경을 숨기려고 휴지나 화장지로 생리를 처리했고 매점에서 생리대를 사는 것이 부끄러워서 제대로 생리대를 살 수가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생리를 하는 학급 동료들로부터 생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그 시쯤에서 학급 동료들로부터 일종의 왕따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생리의 이야기나 생리에 대한 뒤처리 등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H양은 엄마의 부재로 항상 집안 일을 처리하느라고 자기 자신을 챙기지 못해서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동료들로부터 "냄새가 나는 더러운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상점에서 생리대를 사가지고 부끄러워서 점원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뛰쳐나왔던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를 했다. 한번은 이웃 집 아주머니가 생리대를 사서 아버지를 통해서 그녀에게 전달을 했던 기획을 회상하면서 씁쓰레 했다. 치료자가 그녀의 생리 일자를 물었을 때 성인이 된 지금도 그녀는 그녀의 생리가 정확하게 며칠인지를 알고 있지 않았다. 생리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더러운 일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식을 시키고 그녀 자신의 생리 일자를 정확하게 체크를 하고 그리고 생리가 규칙적인지 불규칙 적인지를 체크해 볼 것을 이야기를 했다.
다시 그녀의 병원에서 원장님이 변태성욕으로 보이는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환자들을 섹스적인 대상으로 보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게 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산부인과 남자 의사 선생님들은 여성 환자들의 진료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피부 비뇨기과에 근무하는 여자 의사 선생님들은 남자 환자들을 어떻게 진료하고 치료를 할 것인가? 간호사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환자들은 병을 가진 환자들로 보아야지 섹스의 대상으로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했다.
이러한 분석 이후에 H양은 원장 선생님이 변태적으로 보이는 문제는 이 이상 떠오르지 않았고 그리고 청소년들을 진료할 때 그들의 몸이나 엉덩이를 보는 것에 거부감이 많이 감소되었다고 기뻐했다.
H양이 xxx 내과 의원에 근무를 시작한지 약 3개월이 지나가면서 그녀의 직장 생활의 긴장 정도는 많이 감소되어졌고 직장에서 하는 일들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고 그리고 동료 간호사 언니들과 사이도 점점 개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직장에 나가는 것을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아직도 나이 제일 많은 40대 후반의 노처녀 간호사 언니에게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그 노처녀 언니는 다른 동료들 한데서도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있다는 말들을 다른 언니 간호사들로부터 들으면서 그 언니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면서 동료들과 큰 마찰이나 갈등을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치료자는 이 시쯤에서 직장에서 갈등 문제로부터 그녀의 어린 시절의 상처로 치료의 초점을 돌리기도 했다. 최근에 그녀는 치료자에게 1주일에 1회 혹은 2회씩 e-메일로 그녀의 복잡한 심경들을 하소연 하면서 정작 그녀가 치료 회기 시간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산더미 같은 말들이 사라지고 할 이야기가 없어진다고 e-메일에서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그녀가 너무 치료 시간에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치료 초반기에 치료자의 권유를 강박적으로 시행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을 했다. 이제는 치료자에게 올 때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박이 되면 정작 이야기 시간에는 해야 할 이야기들이 연결이 되지 않고 머리가 텅 비어 버려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내용들이 생각이 나지 않게 된다는 인간의 마음의 원리를 깨닫게 했다. 그냥 편안하게 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올 것임을 알 게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많은 신체적 폭력, 언어 폭력, 처벌, 학대를 받아 왔음을 처음으로 치료자에게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H양이 어린 시절에 엄마를 잃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어린 딸에게 측은지심으로 아버지의 주의 관심을 받아서 동정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잘못된 오산이었음을 알 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가 받는 스트레스들을 어린 딸인 H양에게 풀어 왔음을 알 게 되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퇴근 시간이 되면 늘 습관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청소는 잘 했느냐? 집안 정리를 해 놓았느냐? 숙제는 다 해 놓았느나?"라고 확인 전화를 해 왔다고 했다. 그녀는 청소를 잘 못한 날이면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는 그 시간에 초초해지고 불안해지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아버지의 승용차가 주차를 하는 소리를 들으면 오늘 또 어떤 처벌을 받을 것인지를 늘 생각하면서 불안해서 두려워 떨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자 말자 청소가 잘못된 지역을 꼬투리를 잡아서 "오늘 매 타작을 해야 하겠다"라고 말을 하면서 평소에 만들어 놓은 싸리 나무로 된 회초리를 가져 오게 했다. H양을 무릎을 꿇리고 그리고 손 바닥을 내밀도록 하고 얼마나 세게 때렸든지 손 바닥에 줄무늬 표시가 나서 울었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싸리 나무 회초리로 손 바닥을 때리거나 혹은 주먹으로 그녀의 머리를 때리거나 혹은 발로 차고 지지밟거나 무차별하게 그녀를 때리는 일들은 너무나 흔했다. 그녀는 그러한 일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그 이전에 초등학교 2학년-4학년 때 까지도 있었던 것 같으나 기억이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처벌, 구타, 동생과 싸우면 둘 다 똑같이 처벌을 받는 것이 일상화 되었고 한번 두 번의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고 회상을 했다.
이제 H양의 그러한 과거의 아버지로부터 학대의 경험들은 이제 단추가 열려졌다. 앞으로 치료에서는 직장에서 갈등들과 어린 시절의 학대 받은 상처 경험들이 교대로 다루어질 것임을 예고하면서 그녀는 눈물을 딲고 다음 치료 시간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치료 회기 시간을 떠났다. 치료자는 이제부터 H양의 치료가 본격적으로 과거의 상처를 다루는 괘도로 들어서고 있음을 앞으로 치료의 예진(예측 진단)의 좋은 징조로 보였다.
다음의 치료 회기에서는H양이120시간(치료 시작 1년 3개월 정도)이 지나가면서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직장에서 즐겁게 생활을 하고 있고 일상 생활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 60 회 치료 회기의 과정
H양은 이제 직장에 취직을 한지 3개월 이후에 취직 후에 매주 마다 1회 혹은 2회씩 e-메일로 치료자에게 하소연을 해 오던 e-메일이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직장에서 고통스러움이 이제는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이제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즐거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어진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덜 쓰이고 이제는 마음에 안정을 가져 오는 것으로 보였다.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한지 약 4월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주일의 치료 회기에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이야기를 해 놓고 이번 주일 치료 회기에서는 즐거웠다고 생각이 나면 반드시 그 다음에는 즐거움이 고통으로 변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좋은 일이 생기면 반드시 그 좋은 일은 좋지 않는 것으로 변해 버린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녀가 직장에서 지난 주일에 즐거웠다는 말을 했는데 이번 주일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즐겁느냐? 즐겁지 않느냐?를 스스로 체크를 하지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녀는 즐거운지를 그녀 스스로 체크를 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 즐거움을 연장을 하려고 하고 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즐거움은 지나가고 나서 느끼는 것이지 스스로 즐겁느냐를 체크를 하면 그 순간은 내 행동을 컨트롤하고 있고 내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고통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 게 했다.
우리가 비가 오고 난 다음에 보이는 무지개를 보고 그 무지개가 어디에 있느냐고 아무리 쫓아가서 보아도 무지개는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행복하냐?, 내가 지금 즐거우냐?를 스스로 찾아 본다면 우리는 그 즐거움이나 행복함을 찾을 수가 없고 오히려 고통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알 게 했다. 행복함, 즐거움은 지나가고 나서 느끼는 것으로 그 순간으로 느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스스로 행복하고 있느냐? 스스로 즐거우냐? 를 체크를 하지 말 것을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이 즐거웠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끝내는 것이지 그것을 그 순간에 즐거운지 행복한지를 찾으려고 하지 말 것을 당부를 했다. 행복함이나 즐거움은 그 순간을 지나서 느끼는 것으로 그것으로 충분하지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지 말 것을 주문을 했다.
이러한 분석 이후에 그녀는 한층 더 편안해하고 그녀의 직장에서 잘 적응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한 마디로 해서 그녀의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치료자에게 치료 회기에 오는 모습에서 과거보다 한층 더 편안해 보이고 말을 하는 것에서 자연스러움이 느껴지고 있는 것을 치료자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녀는 집을 옮기게 되었다. 원 룸에 있는 것이 편리한데 방세가 많이 들어가고 그리고 남자 친구로부터 지원이 끊어져서 혼자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녀는 방세가 싼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방은 크지만 오래 된 방이어서 깨끗하지 못하다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돈이 적게 들어가고 그녀가 받는 월급에서 조금이라도 생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녀 스스로 내린 결단이었다. 그녀는 지금의 근무지와 가까운 곳에 방을 구해서 며칠 만에 혼자서 방을 옮길 수 있었다. 방을 구하고 계약을 하고 짊은 꾸리고 그리고 짊을 옮기는 일들은 그녀 스스로 혼자서 해 낼 수 있었다. 치료자는 그녀의 독립적인 힘을 칭찬해 주었다. 조금씩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우치고 배워가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그녀는 집을 옮기고 일단 경제적인 면에서 안정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받는 월급에서 매달 마다 심리치료 비용을 제외하면 그렇게 남는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절약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결심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경제적인 부담을 줄일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원룸에서 받은 계약금의 일부를 그녀가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 xxx 만원을 되돌려 주고 이제 남자 친구와 모든 점에서 관계를 정리를 하게 되었다. 그 남자 친구는 그녀에게 몇 번을 그녀 집에 찾아와서 그녀와 계속해서 사귀자고 하소연을 하면서 매달렸으나 그녀는 단호하게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이제 그녀 자신의 문제 하나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그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 그녀가 바로 자신 있게 설 수 있게 될 때 남자 친구를 사귀도록 전략을 바꾸었다. 그녀가 남자 친구를 만났던 것은 그녀가 한참 어려울 시점에서 우울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귄 것이지 그녀가 자신 있게 그녀에게 적당한 남자 친구를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 친구는 그녀의 삶에서 그녀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녀 자신의 문제로 힘들어 하는 시점에서 남자 친구의 문제까지 짊은 지고 힘들어 하지 말고 그녀 자신의 문제가 일차적으로 해결이 되고 나서 그 다음에 남자 친구를 사귀도록 했다. 사실 남자 친구는 한 달에 월세 20만원의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돈을 빌미로 언제나 그녀의 집에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빨래와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계약을 하지 않는 일종의 동거 생활이었다.
남자 친구는 말이 별로 없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대화가 별로 없었다. H양은 치료자의 도움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미주알 고주알 하려고 하지만 남자 친구는 말이 없고 그냥 같이 있으면 TV를 보거나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기에다 그녀가 식사와 남자 친구의 빨래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겨우 한 달에 20만원으로 남자 친구와 동거생활을 하는 것에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그녀는 앞으로 그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그녀는 50대 50이라고 했다. 적당한 남자가 없으니 남자 친구와 사귀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 자신이 앞으로 남자 친구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어 했다. 만약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해서 한 평생 같이 산다고 가상을 해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끔찍하다고 했다. 치료자는 현재의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남자 친구가 덤으로 한 사람 더 첨가되어 그녀의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으니 남자 친구를 정리를 하고 이 다음에 그녀가 그녀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녀 자신이 자기 자아를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으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을 시켰다. 고로 먼저 그녀 자신의 자아를 일으켜 세우고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나가게 될 때 그녀의 우울증, 불안증을 막기 위한 방어로써 남자 친구에게 의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녀가 의존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 친구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상호 의존으로 대등한 자격으로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대응한 관계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시작되어야 함을 그녀가 깨닫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 남자 친구와 결별을 하고 나서 H양은 상당히 힘들어했다. 일요일에는 외롭고 우울하고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남자 친구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하고 싶은 욕구들이 생각이 자주 났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혼자서 외로움, 우울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을 하면 그 사람에게 노예가 되어 그 사람의 비위, 눈치를 맞추는 주인과 노예 관계로 변하게 됨을 강조를 했다. 내가 남자 친구에게 의존하기 위해서 파트너를 선택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를 했다. 내가 내 자신을 바로 세우고 스스로 자신감을 키우고 외로움에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혼자 있으면 취미 생활을 살리고 혼자서 외로움을 이겨나가야 함을 강조 했다. 내가 스스로 내 자아를 달래고 외로움, 우울함, 불안을 이겨 나갈 수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당하게 내 삶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을 때 내가 원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고 그러한 남자를 선택할 수 있음을 강조를 했다. 남자 친구와 만남은 앞으로 이성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많은 단체들 예를 들어서 xxx, ooo 등을 이용해서 등록을 하고 내가 원하는 남자의 스타일과 특징들을 열거해서 그러한 남자를 선택해서 데이트를 해 보고 서로 마음을 열고 사귈 수 있어야 함을 강조 했다.
몇 개월이 지나가면서 그녀는 외롭거나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사라졌다. 남자 친구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지난 주일에 여름 휴가를 얻었다고 기뻐했다. 원장 선생님과 모든 직원들이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3일은 병원이 문을 닫고 쉬기로 했다고 했다. 그녀와 모든 직원들이 여름 휴가 비를 받고 휴가를 간다고 기뻐했다. 같이 근무를 하고 있던 1년 선배가 H양에게 "네가 휴가 비를 받았으니 동료들에게 한턱 내는 것이 어떡하냐?"라고 해서 그녀는 노심초사하고 저녁에 가서 어떤 음식 자료를 사가지고 내일 아침에 그 간식을 만들어서 갈 것인지?에 고민하고 그날 저녁에 그 음식 자료를 사거 저녁에 만들어서 그날 아침에 그 간식을 만들어서 직장에 가지고 가서 그날 점심 후에 적당한 시간에 그녀가 만든 간식을 내어 놓고 동료들을 대접을 했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녀의 선배에게 무조건 복종하지 말 것을 주문을 했다. 휴가비용을 지불을 받은 것을 H양만 받은 것이 아니고 모든 직원들이 똑 같이 받았는데 그 선배로 휴가비를 받았으면서도 왜 H양에게 휴가비를 받았으니 한턱 내라고 한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했다. H양이 그 말을 100% 수용을 해서 그날 저녁에 간식 자료를 슈퍼에 가서 사고 그리고 저녁에 간식을 만들고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그 간식을 가지고 가서 점심 식사 때에 내 놓지 않고 망설이다가 오후 3시-4시 경에 동료들 앞에 내 놓았다는 것에 그녀가 그 간식에 대해서 받은 스트레스를 돈으로 환산해 보도록 했다. 얼마나 그 문제로 노심초사를 했는가?를 알 게 했다. 만약에 그 선배가 그러한 질투적인 말을 했을 때 "선배 언니도 휴가비용을 타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하고 같이 가서 앞에 있는 슈퍼에서 간식을 사와서 같이 동료들에게 대접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을 하고 당장 슈퍼에 가서 간식을 사서 대접을 재치있게 했더라면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임을 지적을 했다. 상대의 요구를 내가 생각해 보고 내 자아가 부당하다고 생각이 나면 당당하게 내 주장을 하도록 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3일간의 휴가 동안에 어떻게 휴가를 보낼 것인지 계획이 세워져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 같은 것을 세워보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자신의 일주일의 일과 혹은 적어도 하루 일과는 계획을 세워서 그 계획에 따라서 진행을 하도록 했다. 그래야 지나고 나면 후회가 없는 삶이 되고 그러한 삶이 계속해서 쌓이면 생활이 즐거워지고 하는 일들에 보람이 느껴질 것임을 강조를 했다.
그 다음 주일에 그녀는 그녀의 휴가 첫날에 남동생을 데리고 모처럼 나들이를 했다고 했다. 아버지 집에 가서 가족들과 만나고 남동생을 데리 나들이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20만원을 주면서 같이 나가서 놀다가 오라고 격려를 해주어서 남동생을 데리고 모처럼 xx에 있는 롯데 백화점을 구경을 하기로 했다. 남동생이 가방을 하나 사고 싶다고 해서 그 가방을 살 겸에 겸사 겸사해서 롯데 백화점을 둘러 보면서 아이 쇼핑을 (eyes shopping)하기로 했다. 과거에는 백화점의 매점에 가서 물건들로 제대로 물어보거나 만져보는 것에 미안해 했고 부끄러워서 물어보지도 못하고 점원들과 눈을 맞출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물건값을 물어보고 동생의 가방을 사기 위해서 여러 곳에 가방 상점에 들어가서 이것 저것 만져 보기도 하고 동생에게 가방을 짊어지게 해 보기도 하면서 동생이 마음에 들어 하는 가방을 하나 사고 옷 가계에 들여서 옷들도 입어 보고 만져 보고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치료자에게 털어 놓았다.
두 번째 휴일에는 이제 혼자서도 영화를 보는 것에 두렵지 않게 되었고 영화 관에 들어가서 혼자서 영화를 보는 것에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대견해 했다. 오후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센텀 신세계 백화점을 둘러 보고 서점에 들려서 그곳에 앉아서 수시간 동안 이 책 저 책을 읽어보고 그곳에서 앉아 놀면서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엄청나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그녀 혼자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왜 과거에는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고 했다. 이렇게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왜 내가 그렇게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쫓기듯이 행동을 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얼마 전에 그녀가 취직이 되어서 첫 날에 직장에 입고 갈 옷에 대한 신경이 쓰여서 그녀의 여자 친구 N양에게 부탁을 해서 입을 옷을 구입하려 상점에 들리게 되었는데 백화점도 아니고(그 시점에서는 백화점이나 홈플러스에 있는 옷 점에는 들릴 자신감이 없었다) 길거리에 파는 옷으로 그냥 한번 입어 보지도 않고 친구인 N 양이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이라는 재촉 때문에 옷을 입어 보지도 않고 그냥 덜렁 사가지고 집에 와서 입어 보니 옷이 작아서 입지 못하게 되었고 그 옷 가계에서 영수증을 발급 받지 않아서 옷을 다시 되 물릴 수도 없어서 난감해하는 그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대비가 되면서 그녀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최근에 직장에서 긴장, 두려움, 껄끄러움은 거의 사라진 것 같아 보였다. 최근에는 어떤 점이 어려운 문제인가를 물었을 때 그녀는 최근에 "역류성 식도염"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금의 근무지 병원의 원장 님으로부터 두 번이나 진료를 받고 약물 처방을 받아서 약물을 복용하는 둥 마는 둥으로 약물을 먹고 있지만 한번씩 씬 물이 올라오는 역류성 식도염은 근절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치료자가 2년 전에 다리 골절로 역류성 식도염을 가진 경험을 이야기를 하면서 병원에 다리 골절로 6주간 입원으로 병원의 식사 시간에 맞추다 보니까 평소에 내가 식사 시간의 규칙성이 깨어지면서 역류성 식도염이 걸렸던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 주는 4개-5개의 약물 중에서 한달 두 달 정도 지나가면서 가장 효과가 좋은 약물을 선택해서 1년 정도 규칙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그리고 식사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결과 지금은 깨끗하게 해결된 것을 경험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역류성 식도염이 위의 염산이 식도로 올라와서 식도가 강한 산으로 상처를 입어서 생기는 병으로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을 해서 반복하게 되면 그것이 몇 년을 계속하게 되면 위 암이나 위궤양으로 심한 중병으로 옮겨가게 될 수 있음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에게 식사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아침을 거의 먹지 않고 그리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밥과 반찬 몇 가지가 고작이고 그리고 저녁은 몇 개의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식단을 영양분을 고려해서 식단을 짜도록 했다. 혼자서 살아가면서 먹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함을 강조를 했다. 치료자가 미국에서 혼자 공부를 하면서 건강에 신경을 써서 식사 메뉴를 짜서 생활하면서 건강이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좋아진 것을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금도 치료자는 아침에 1시간 운동을 하고 그리고 아침 식사로 현미 밥과 만두 국 그리고 달걀 1개를 밥에 넣어 김치와 함께 먹고 그리고 식시 후에 사과 1개를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감자 혹은 고구마를 삶아서 1개와 두유 1개를 먹고 간간히 토스트 빵을 1개 혹은 2개를 먹고 저녁으로는 5시-6시 경에 현미밥과 소고기 혹은 돼지 삽겹살 혹은 카레 소스를 밥에 넣어서 김치와 함께 먹고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면서 우유 1 컵을 콘프레이크에 섞어서 바나나 1개를 썰어 넣어서 섞어 먹고 그리고 빵을 한 개 혹은 두 개 조각을 먹고 틈틈이 낮에는 과일들 즉 오렌지 1개 토마토 1개 혹은 참외 1개 등으로 건강을 스스로 관리를 하고 있음을 일러 주었다.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매일 같이 운동을 30분에서 1시간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식단을 짜서 영양식으로 골고루 단백질과 채소 등을 고려해서 균형 식사를 해야 함을 일러 주었다. 그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신체적 건강과 심리적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고 소중하게 관리를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이야기를 했다.
건강하다는 개념은 병원에 가지 않으면 건강한 것이고 병에 걸리면 건강하지 않다는 개념은 잘못된 것임을 알도록 했다. 건강하다는 개념은 평소에 건강을 잘 관리를 해서 운동과 식사와 영양식을 고려해서 열심히 관리를 해야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 병원에 간다는 것을 평소에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아서 이미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도록 했다.
H양은 이제 정신적 건강에서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음식을 관리하고 일주일의 일과를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이 흘러가고 있음을 예견을 했다. 아직도 그녀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우울함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고 이제는 일상 생활을 잘 운영을 해서 하루하루 즐겁고 보람 있는 생활이 되도록 하는데 열성을 보이고 있다.
아래의 치료 회기에서는H양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지금 현재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치료 회기 시간에 분석이 되어져서 어린 시절의 고통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었다. 다음은 H양이 세 번째 치료 계약에서 19회 치료 회기 38시간으로 총 138 시간의 치료에서 밝혀진 내용들에 분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제 69 회 치료 회기의 과정
H양은 치료실에 들어와서 눈문을 글썽이며 울기 시작을 했다. 치료자가 그녀에게 무엇이 그녀를 슬프게 만들었는가?를 소상하게 말로써 표현해 보게 했다. 그녀는 오늘 근무를 하면서 있었던 이벤트들과 그녀의 느낌들을 차례대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을 했다.
병원에 원장님은 환자를 진료를 할 때 환자에게 혈액 검사, 대소변 검사, 갑상선 검사, 위 내시경 검사, 대장 내시경 검사 등등 어떤 검사를 해야 할 때 진료 기록 표에 어떤 검사를 적을 때 H양은 옆에 서서 각각의 검사들이 검사를 한 후에 며칠 만에 결과를 볼 수 있는가?를 알아내서 환자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원장님은 어떤 검사들을 검진 기록부에 적을 때 xxx 검사라고 적어 놓고 즉각 그녀에게 xxx 검사의 결과를 며칠 후에 나오는가?를 H양에게 물어 볼 때 그녀가 즉각 대답을 못하게 되면 그리고 그 검사 결과를 알 게 되면 날짜를 검진 기록부가 간호사인 H양이 적어 넣는데 실수를 해서 결과를 알 수 있는 날짜를 잘못 기재를 하는 경우에는 그녀 자신이 한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아직도 이것도 한 개 제대로 못하고 있는가?를 질책을 하면서 자신이 한심해 진다고 자아에게 분노하고 그리고 원장 선생님에게도 너무 빨리 물어 보기 때문에 대답을 잘못하면 원장 선생님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고 했다. xxx 소아과 의원에서 일을 한지 7개월이 지나가면서 아직도 검사 결과 날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인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 치료자는 그러한 검사 결과는 한 개 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를 검사 날짜가 다 다른 것을 어떻게 사람이 7개월-8개월 만에 다 외울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컴퓨터가 하는 일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위로해 주었다. 고로 기억을 할 수 있는 것은 제외하고 잘 기억이 되지 않는 것은 그녀의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고 기계적인 외움으로 외우려고 하면 잘 기억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뇌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잘 외워지지 않는 것을 노트에다 적어서 간호복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원장님이 xxx 검사라고 하면 그것을 꺼내보고 대답을 하거나 진료 기록부에 적어 넣을 것을 주문을 했다.
또 한가지는 원장님은 그러한 일들을 30년-40년을 했기 때문에(원장님은 현재 나이가 60대) 그것을 일일이 외울 수가 있겠지만 H양은 그곳에서 그러한 일을 하지가 불과 6개월-7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외우려고 하지 말고 노트에 적어 다닐 것을 주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원장님이 너무 빨리 진도가 나가면 원장님에게 "원장 선생님 너무 빨리 진도가 나가서 내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잠간 기다리세요. 내가 체크한 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 원장님이 H양의 진도에 맞추도록 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원장님의 진도에 맞추어야지 어떻게 간호사의 진도에 원장님이 맞추어야 하는가? 반문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임을 치료자가 H양에게 설명을 다음과 같이 했다.
원장님은 간호사들에게 돈을 적게 지불하기 위해서 최저 임금으로 간호사들을 쓰고 있었다. H양은 한달 월급이 100만원에다 점심값은 스스로 해결해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기 때문에 점심값 10만원으로 총 110만원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종합 병원에서 근무한 3년 정도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또 그곳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모두 4명이고 나머지 한 명은 토요일 날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는 사람으로 그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간호사가 40대 중반의 올드미스 언니로 히스테리칼 하고 독신으로 병원에서 보고 난 날짜가 지난 신문들을 모아 집에 가지고 가서 폐품으로 처리를 하는 구두쇠적인 사람이고 그녀의 어머니는 노점상을 하는 사람으로 생활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H양으로부터 들었다. 거기에다 그 올드 미스 히스테리칼 한 간호사 언니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그녀가 그 xxx 내과와 청소년 의원의 경리를 맡아서 처리를 해 주고 있는데 그곳에서 근무 경력이 20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녀는 경리 일을 맡아서 경리와 간호사 일을 두 개를 하면서도 실제 월급은 14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H양이 얼핏 봉급 명세서를 보고 치료자에게 한 말이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이벤트는 지난 추석에 그 원장님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그 xxx의원을 방문해서 과일 상자를 세 상자를 가지고 와서 간호사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부탁을 하고 인사차 다녀가고 난 후에 그 원장 선생님은 그 과일 상자들을 원장님의 승용차의 트렁크에 실어두라고 해서 집으로 싣고 가져 갔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매번 추석, 설날에 원장님의 어머니가 그곳에서 일을 하는 간호사들에게 주라고 과일 박스를 보내면 원장님이 그것을 아까워해서 그것을 그의 집으로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다른 간호사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원장님은 그 만큼 구두쇠로 이름이 그곳에서 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에게 소문이 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원장님은 병원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간호사들에게 최저 임금을 지불하고 있고 그리고 20년 이상 그의 병원에서 일을 해 온 노처녀 간호사에게 고작 140만-150만원의 봉급을 지불하고 그리고 H양의 종합 병원 근무 경력 3년을 인정하지 않았고 겨우 10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보면 그곳에서 2년-3년 정도 근무한 젊은 간호사는 그녀와 1년 선배인 27세의 작년에 결혼한 간호사 언니가 한 명 뿐이고 나머지 3명은 모두 40대 이상으로 나이 많은 간호사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보다 3살 많은 27세의 간호사는 임신으로 내년 2월 달에 그만 둔다는 이야기를 원장 선생님에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H양은 젊은 간호사들은 xxx 의원은 시설이 노후해서 깨끗하지 못하고 근무하는 간호사들도 40대 이상이기 때문에 그곳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나이 많은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고 병원의 수입도 좋지 않다고 귀띔해 주었다.
또 하나의 이벤트는 병원 출입구 전구가 깨져서 새로 구입을 해야 하는데 원장님은 새로운 최근에 나온 새로운 전구를 사서 끼우면 몇 분 안에 해결이 될 것을 볼구 전구를 사다 한다면서 이웃 홈 플러스에 가서 찾아 보았으나 그 볼구 전구는 옛날에 나온 전구로써 지금은 나오지 않아서 구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인터넷을 뒤져서 결국은 그 볼구 전구를 찾아 먼 거리에서 그것을 주문을 하는 바람에 결국은 우송비가 전구 가격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종합해 보면 원장님은 비용 절감으로 최저 임금을 사용하니 젊은 간호사들은 모두 대우가 좋지 않고 시설이 노후해서 그곳에 오래 근무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푸념으로 이야기를 했다. 고로 원장 선생님이 돈을 아끼니까 좋은 실력이 있는 젊은 간호사들은 떠나고 신출내기 들만 그곳에 와 있다가 경험이 쌓이면 다시 대우가 좋은 시설이 좋은 곳으로 떠나가기 때문에 원장님이 간호사들을 자신의 요구가 맞추려고 하지 않고 H 간호사의 진도에 맞추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틀린 말을 아님을 강조를 했다. 그 병원 원장 선생님의 경영 스타일 때문에 질이 좋은 간호사를 놓치고 있으니 자연히 간호사들이 그의 진도에 맞추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치료자는 H양에게 당당하게 그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을 시켰다. H양도 이러한 치료자의 논리에 찬성을 했다. 원장님의 진도에 맞출 간호사는 없다는 것이다. 고로 원장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책임은 원장님이 책임을 져야 하고 원장님이 간호사의 진도에 맞추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H양은 그곳에서 평생 동안 근무를 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홀대로 취급을 받고 있는 그 간호사 언니들을 보면서 그녀는 앞으로 그녀도 그곳에서 주저 앉아서 미래를 보지 못하면 평생 동안 대우도 받지 못하고 실력도 쌓지 못하고 언니들처럼 살 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녀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자신감이 생기로 경험을 쌓게 되면 시설이 좋고 대우가 좋은 다른 곳으로 내면 쯤이면 옮기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했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H양이 동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그곳에 신경이 쓰이고 동료들이 그녀가 없을 때 그녀의 뒷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신경이 쓰여져서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그녀 자신을 발견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치료자에게 하소연을 해 왔다. 그러한 주의 집중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분산됨으로써 그녀는 실수를 많이 하게 되고 결국은 자신을 처벌하는 쪽으로 연결되어 버린다고 고통스러워했다.
치료자는 H양의 이러한 문제들을 어린 시절로 거슬려 올라가서 그러한 경험이 있는지를 회상해 보도록 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의 경험들을 찾으려고 한 것이었다.
첫 번째 이벤트: H양은 어머니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외갓집에서 외사촌들과 놀다가 이층 계단에서 떨어져서 머리에 혹이 났고 그것을 본 외숙모가 놀래서 H양을 안고 병원에 달려가서 피를 빼 내고 수술을 해서 봉합을 했는데 그곳에 붕대를 감고 놀다가 동네 아이들로부터 외계인 같다고는 놀림을 받았고 그 후에 가을 학기가 되면서 학교에 돌아왔을 때 학급 동료들이 그녀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것을 호기심으로 "땜빵"(땜질의 비속어)으로 별명을 붙여 주었고 이후에 초등학교 시절에 그곳에 머리카락이 나지 않고 흉터로 남아 있어서 항상 그곳에 신경을 썼고 그리고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으나 한번도 그들에게 대응을 하거나 그 고통스러움을 친구나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두 번째 이벤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H양은 집에서 집안 청소나 설거지 그리고 아버지와 남동생의 돌봄을 그녀가 대신해야 했다. 저녁 때 아버지의 밥상을 준비하고 동생의 학교 등교를 준비시키고 집안 청소들을 모두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학교에서 과제물을 제대로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더 붙여서 그녀는 늘 깨끗한 옷을 입고 갈 여유도 없고 깨끗한 새 옷도 없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챙길 시간적 여유도 없고 그녀 자신을 돌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워야 했고 아버지를 돌보아주는 역할에다 동생을 돌보는 역할 즉 1인 3역을 해야 했다. 고로 그녀 자신을 돌볼 수가 없었다. 옆 자리에 친구들은 H양이 용의가 불결하고 옷차림이 깨끗하지 못하고 냄새가 난다고 싫어했고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동료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고로 항상 옆 자리에서 그녀를 험담하고 뒷담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공부 시간에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주변의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에 신경이 쏠렸다.
세 번째 이벤트: H양은 장애인으로 태어난 남동생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학교에서 동료들에게 비웃음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 아침에 학교에 갈 때마다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하루는 동생을 데리고 나가다가 슬그머니 혼자서 먼저 학교에 가 버렸다. 학교에서 동생의 담임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한 학생이 H양의 반에 와서 H양에게 왜 오늘은 남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어왔고 얼마 후에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아버지와 동거 생활을 했던 아주머니가 학교에 와서 H양을 팔을 끌고 교실 밖으로 나가서 왜 남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고 질책을 한은 바람에 쉬는 시간이 많은 학생들이 그 장면에 떼를 지어서 빙 둘러 싸고 그들을 구경을 하던 고통스런 장면이 지금도 회상이 된다고 했다. 둘러싸고 있는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학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없는 줄 알고 있는데 저 아주머니가 그녀의 어머니인가?"라고 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H양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네 번째 이벤트: H양은 초등학교를 그렇게 졸업을 했다. 학교 공부를 집에서 복습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그것이 그녀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그녀 자신을 돌볼 여유도 돌 보아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녀가 하고 있는 일 자체도 그것이 그녀의 운명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녀는 학급 동료들에게 어머니가 없는 불쌍한 아이, 용의가 불결한 냄새 나는 아이, 말이 없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서 동료들을 피하면서 초등학교를 보냈다. 그리고 중학교에 갔다. 중학교에 가면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없고 새로운 친구들로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새로운 낯선 친구들을 만날 것이라고 학수고대 했다. 중학교에 갔을 때 초등학교에서 한 반을 했던 2명의 학생들이 그녀를 놀리고 비웃으면서 그녀에 대한 나쁜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H양은 중학교 때 그녀가 좋아 했던 한 남학생이 그녀의 뒤에 앉아 있었을 때 하필 초등학교에서 동급생이면 두 명의 남학생이 그녀의 옆 뒷자리에 앉아서 그녀의 머리에 상처로 머리카락이 나지 않아서 다른 머리카락으로 그 상처를 숨기고 있는 것을 뒤지어서 그 흉터를 친구들에게 까발려서 "땜방"이라고 그녀의 별명을 부르면서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에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이것을 직면하지 못했고 피해만 다녔다.
과거의 상처의 반복: 그녀는 그러한 고통을 지금 현재에서도 직장에서 똑 같이 되풀이를 하고 있는 그 자신의 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치료자가 이것을 지적을 하면서 그녀의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다루기로 했다. 다시 치료 회기 시간에 그것을 재연해서 다루기로 했다. 그녀의 고통을 말로써 직면 표현을 하고 그녀를 괴롭히는 악당들에게 직면 직면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에게 분노의 표현: H양에게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물어 보았다. 그녀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많은 분노가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H양에게 엄마에 대한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부모님에게 사랑도 있지만 분노도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는 분노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 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너무 미워집니다. 왜 어머니는 우리만 남겨 놓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나요? 어머니가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생기지 못하고 내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나요? 나는 그 때 그것이 어머니에게 그렇게 나쁜 것인 줄을 몰랐습니다. 결국 남동생이 장애인으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병을 얻어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원망스럽습니다. 어머니 책임을지지 못할 것 같았으면 우리를 낳지 말아야지요? 왜 우리를 낳아 놓고 떠나셨나요? 우리는 어머니의 보호 망을 잃어 버리고 너무나 고통 속에 살아왔습니다. 나는 집에서 엄마의 역할을 내가 맡아서 아버지에게 밥상을 챙기고 동생은 챙기고 학교에 보내고 집안 청소 때문에 나는 정작 나를 잃어 버렸습니다. 나는 나를 내 자아를 챙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나는 숙제를 할 시간도 없고 내 몸을 씻고 내 옷을 씻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을 시간 조차 없었습니다. 동료들에게 냄새 나는 아이, 숙제를 해 오지 않는 아이로 손가락질을 머리에 땜방을 한 머리카락이 한 부분이 없는 아이로 낙인이 찍히고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습니다. 남동생은 장애인으로 비웃음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없는 빈 자리가 나에게 이렇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고 나는 미쳐 몰랐습니다." H양은 통곡하면서 울었다.
그녀를 괴롭히는 악당들에게 이야기를 말로써 표현하고 도망가지 않고 직면하는 연습을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보살펴주고 사람들은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 함을 배웠다. 그러나 정작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아 한다. 동물들을 보라, 동물들로 약하면 모두가 그 약자를 쪼아대고 못살 게 군다. 그 약자에게 인정을 베풀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가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짓밟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깨닫게 했다. 고로 피하지 말고 직면해서 그것을 뚫고 나가야 함을 강조했다.
외계인이라고 놀리던 어린이들에게: 내가 이층에서 떨어져서 머리가 터져 머리를 꿰맨 것을 너희들은 그것을 외계인이라고 놀리는데 정말 고통스럽고 괴롭다. 제발 그렇게 나를 놀리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고통스런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돌보아주는 것이 정말로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냐! 너희들은 정말로 나쁜 사람들이야! 아픈 곳을 후벼 파는 악당들이야! 생각해 보아! 너도 나처럼 언제 이런 부상을 당할지 모른다. 네가 고통을 당하고 나서 깨닫는다면 너무 멍청하지 않니? 제발 이다음에 나에게 외개인으로 놀리지 말고 나를 괴롭히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초등학교 동료들에게: 내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아버지와 동생의 밥을 챙겨주고 식사 준비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그리고 장애인 남동생을 학교에 데리고 다녀야 한단다. 너희들은 부모님의 따뜻한 보호 속에서 특히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공부만 하면 되지 않니? 나는 숙제를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를 챙길 시간이 없다. 목욕을 할 시간도 없고 깨끗한 옷을 가라 입을 시간도 없다. 너희들은 나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숙제를 해 오지 않는 게으름뱅이로 냄새 나는 더러운 아이로 나를 보지 말아줘! 만약 내가 너희들의 입장이라면 나도 목욕을 자주 하고 숙제를 빠짐없이 해 오고 옷을 깨끗하게 입고 다닐 수 있어! 너희들은 부모임의 보호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공부는 나보다 못하지 않아! 나는 그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중 상위 권은 유지를 하고 있어요. 나는 공부 시간에 선생님의 가르침만으로도 중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 않니?
중학교에서 그녀를 괴롭히는 남학생들에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을 하면서 중학교에 오면 나를 괴롭히는 동료들이 없을 것이라고 바랬는데 너희 두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악당이 되었다. 너는 나의 약점을 잡아서 나를 동료들에게 고자질하고 나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 나있는 너의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나를 괴롭히니까 재미가 었니! 야! 이 악당들아! 너희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친구를 도와주고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은 어디로 갔니? 너희들이야 말로 아픈 사람의 상처를 후벼 파서 고통을 주게 만들고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로써 바로 놀부 같은 놈이 아닌가? 너희들은 앞으로 그 죄값은 받을 것이야! 너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고통을 받은 후에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를 하는 멍텅구리 같은 놈들이야! 야! 앞으로 내 한데 계속해서 아픈 곳을 찔러서 고통을 더 커지게 하는 행동을 하면 너희들을 폭력으로 선생님에게 고발하고 그래도 안 되면 왕따를 시키는 사람으로 경찰서에 고발을 할 것이다. 요즘 학교 폭력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 줄 너희들로 다 잘 알 것이다. 이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담임 선생님에게 하소연: 선생님 저는 어머니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했던 집안 일, 남동생 돌보아주기, 아버지에게 식사 준비 그리고 가족들의 식사 후에 설거지 등으로 1인 3역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집에 가서 숙제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몸을 깨끗하게 할 시간적 여유도 그리고 옷을 자루 갈아 입을 시간도 옷도 없습니다. 동료들은 나를 냄새 난다고 놀리고 깨끗하지 못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놀립니다. 내가 이층에서 떨어져서 머리에 상처로 머리카락이 나지 않는 것을 숨기고 다른 머리카락으로 캄퓨라쥐를 하고 다니는데 나쁜 친구들이 그것을 동료들에게 머리를 들추어내서 땜빵이라고 나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나를 모욕을 줍니다. 나는 학교에 오기가 싫어집니다. 학교에 오면 동료들이 무섭습니다. 선생님이 동료들에게 야단을 쳐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세요.
H양은 2시간 치료 시간 내내 통곡하고 울었다. 실토록 자신의 내면에 쌓인 분노와 우울함을 토해 내도록 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러한 고통을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친구들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이것을 이제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그리고 앞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숨기지 말고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이야기를 하지 않고 마음 속에 묻어 두면 그것이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되고 이것을 더욱더 숨기게 됨을 알도록 했다. 이것을 이야기를 하고 토해 내고 다른 사람들에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마음 속에 쌓인 수치심과 부끄러움과 분노는 힘을 잃게 되고 에너지를 상실하게 되어 점점 감소되어질 것이라는 심리적인 원리를 알 게 했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고통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친구들과 관계가 좋아지고 친밀관계가 형성되고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구절 즉 "즐거움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을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말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이 치료 회기 이후에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고 이제는 주변의 동료들의 뒷담에 신경을 덜 쓰게 되었고 마음의 평정을 얻었고 자신감이 생겨서 직장생활에 잘 적응을 해 나가고 있었다.
치료자는 현재 직장 생활에서 동료들과의 관계가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음을 확신을 하고 이제 그녀의 어린 시절의 3살-6세까지의 유아기를 다루기로 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엄마와 관계를 다루면서 그녀는 또 다시 자신의 건강을 소홀히 한 엄마, 자식을 낳아놓고 무책임하게 세상을 먼저 떠난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쏟아져 나오게 해서 내면에 쌓인 분노, 미움 들을 토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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