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도 죽은 엄마 Ⅳ
죽은 엄마 4 에서는 어린 시절에 엄마의 사랑의 박탈로 인하여 심리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성인이 된 후에 어떠한 어려움을 가지는지?를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의 사례로써 설명을 해 보고자 한다.
사례 4: 40대 초반의 한 전문직 여성 F씨는 남편과 이혼 후에 남편의 권유를 받아서 치료자를 찾아와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7년 동안 미국 유학 생활을 할 때부터 신경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고 그리고 7년 전 미국에서 학위 취득 후에 귀국하면서부터 그리고 2년 후에 결혼에 꼴인 할 때부터 신경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한 움큼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약물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열거 하면서 아무리 약물을 복용해도 그녀가 가진 증세들은 회복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신경 정신과 약물들은 치료제가 아닌 위기를 넘기는 컨트롤 제라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현재 핵심 문제는 미움, 분노, 충동 등의 노여움의 감정들이 잘 컨트롤되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혹은 상대방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잔인한 말들 즉 언어 폭력을 행사를 하고 나서는 늘 후회를 하는 스타일로써 하루에도 감정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왔다 갔다 하는 보드라인 성격장애라고 스스로 진단을 하고 있었다.
F씨는 미국 유학 시절에 목사님으로부터 목회 상담을 3년간 받은 적이 있다고 실토를 했다. 그녀는 그 이후에 귀국해서 이름난 xxx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약물을 처방 받아서 복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신경 정신과 의사의 소속으로 심리 상담을 하는 한 여성 상담 치료사에게 3년 정도 규칙적이 아니고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나면 중간 중간에 심리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어서 그만 두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녀는 각종 심리학, 정신 의학 등의 서적을 많이 읽어서 심리적인 증세들의 이름들과 증세들을 훤히 괘고 있었다.
그녀 자신의 핵심 문제는 우울증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보드라인 성격장애라고 스스로 진단을 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치료가 시작되면서 그녀의 어린 시절의 불후했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래와 같은 F씨의 상처 이벤트들은 물론 분석 치료 과정에서 하나씩 드러난 것을 요약할 것이다.
F씨의 부모님은 어린 시절에 맞벌이로 시작을 했다. F씨의 기억으로는 판자집 촌에서 자란 기억이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겨우 나온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구두닦이로부터 시작해서 자수 성가한 100억대의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F씨의 어린 시절에는 가난해서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야 했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부모님은 F씨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될 만큼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F씨의 부모님은 조용할 날이 없이 싸웠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되자 바람을 피우기 시작을 했다. 아버지의 외도에 어머니도 보복으로 외도를 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외간 남자와 모델에 있는 것을 아버지가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적발을 해서 머리채를 끌고 나온 적도 있었다. 부모의 끝없는 부부 싸움은 끝날 날이 없었다. 결국은 막내인 F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으로 갈라 섰다.
F씨는 위로는 6살 위의 큰 오빠가 한 사람 있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4살 위의 언니가 한 사람이 있고 그리고 F씨가 막내였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야 했기 때문에 큰 오빠는 출생 직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양육을 받았다. 큰 오빠는 7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집에 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 고로 큰 오빠는 조부모 손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오빠 스스로가 별명이 “황태자”로 불리 울 정도도 조부모 손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났다고 늘 자랑을 했다. 그러나 큰 오빠가 부모님 집에 와서 같이 생활 하면서 부모님의 부부 갈등 속에 살게 되면서 큰 오빠는 심리적인 상처를 많이 받게 된 것이 이후의 분석에서 밝혀지게 되었다.
언니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손에서 자라나면서 부모님의 갈등에 어린 시절부터 일찍 노출이 되어서 사춘기가 되면서 언니는 학교에 무단 결석 그리고 몇 번의 가출 등으로 불량 학생으로 부모님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 이후의 분석으로 밝혀졌다.
F씨는 오빠로부터 많은 폭력을 당했다. 오빠는 막내로써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것에 늘 질투심을 보였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늦게 집에 귀가 하는 것을 이용해서 오빠는 막내 동생인 F씨에게 이유 없이 꼬투리를 잡아서 신체적인 폭력을 행사를 했고 그러나 오빠의 위협 때문에 부모님에게 오빠의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항상 얼굴과 몸에 멍이 든 것을 넘어져서 다쳤다고 변명을 해야 했다.
F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어머니는 이혼으로 집을 떠나고 F씨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공부에 전념을 했다. F씨는 어린 시절부터 모범생이었고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언니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중학교 시절에 이미 가출이 잦아서 학교를 중퇴하고 어떤 남자와 동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집에 없었다. 큰 오빠는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불량 서클에 동료들과 어울려 술과 담배로 여러 번 폭력으로 입건이 되기도 했다.
F씨는 치료자에게 그녀가 사춘기인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심리적인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오로지 공부에 집중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공부가 좋아서 열심히 한 것이 아니고 단지 공부에 집중을 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심리적 고통들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첫 대입 시험에서 S 대학에 실패하고 3번의 재수를 했으나 S대학에 입학에는 실패를 했다. 그녀는 그 원인을 중간에 자주 어머니가 찾아와서 그녀에게 어머니의 고통을 하 소연을 하고 나면 1주일 혹은 2 주일 동안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것이 3년의 재수에서 실패한 근본 원인이라고 스스로 진단을 했다.
삼수를 해서 실패하고 난 후에 F씨는 SKY 대학 다음으로 이름 있는 대학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대학 1학년의 생활은 중, 교교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대인 공포증으로 동료들과 관계에서 어려움 때문에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학교 적응 실패로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학사 경고를 받게 되었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들의 지도 하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었기 때문에 동료들과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나 대학생이 되면서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서클에 가입해서 동료들과 관계로부터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자유롭게 동료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스스로 분석을 하면서 남아 있는 대학 생활에 대한 스케줄을 새로 만들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열심히 공부에 매달리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대학 2학년 때 F씨는 스스로 미국 유학을 목표를 정했다. 대학 1학년 때 동료들과 관계를 개선해 보려고 하다가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해서 실패한 전력을 잘 알고 아예 동료들과 관계를 포기하고 학교 성적에 매달렸다. 서클 활동을 접고 도서관에서 학교 공부에만 전념해서 매달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SKY 대학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 유학을 결심을 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그 시점에서 100억대의 돈을 모아서 F씨의 뒷바라지를 적극적으로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학교 성적은 잘 나왔다.
열심히 공부한 보람으로 학점이 잘 나오게 되었고 대학 4학년의 졸업 시에 미국에서 이름 있는 xx 대학에 유학 길을 떠나게 되었다. 유학 시에 아버지는 F씨를 데리고 같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 xx대학 인근에 원룸을 얻어주고 생활 비용까지 풍부하게 지급을 해 주고 1달 후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F씨의 외로운 대학 생활은 한국에서 대학 시절처럼 반복이었다. 동료들과 관계는 이미 포기한지가 오래되었다. 단지 도서관과 학교를 오고 가면서 학점에만 매달렸다.
그 시점에서부터 어린 시절에 받은 심리적인 상처 때문에 우울하거나 혹은 외로움, 외톨이로부터 받는 고통들은 다행히도 한 교회에 목사 님이 목회 상담사 자격을 가진 분으로부터 무료로 3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의 학교 성적은 걱정이 없게 되었다. 대신에 F씨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목사님의 도움으로 상당한 심리적인 안정을 얻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F씨는 독실한 기독교 교인이 되었다. 그것이 F씨에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 이라는 문제 때문에 아버지와 관계가 폭발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하면서 미국 생활에서 5년 째 되는 시점에서 아버지가 언니네 가족(언니는 일찍 결혼을 해서 2명의 유치원 생 자녀들을 가지고 있었다) 3명과 함께 여름 방학 시점에서 F씨가 있는 미국에 휴가 여행을 오게 되었다. 아버지, 언니, 그리고 언니의 자녀 2명 모두 4명의 식구들이 하필 토요일에 오게 되면서 그 다음 날인 일요일에 F씨가 교회에 나가게 되자 아버지가 노발대발 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4명의 가족 구성원들이 미국에 여행을 왔는데 F씨가 가족들을 무시하고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가겠다고 하는 것에 아버지는 분기탱천했다.
아버지는 F씨에게 가족 구성원들을 선택할 것인지? 혹은 교회를 선택할 것인지? 두 개 중에서 한 개를 선택하라고 최후의 통첩을 받게 되었다. F씨는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미국 생활에서 심리적인 어려움들을 교회의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서 잘 지내고 있다는 점으로 아버지를 설득을 했지만 분노한 아버지는 딸인 F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만약에 F씨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너와 가족 관계는 이것으로 끝이고 그리고 지금까지 해 오던 모든 경제적인 지원은 더 이상 해 줄 수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F씨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No라고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F씨는 한번도 아버지에게 No라고 직접적으로 반대를 한 적이 없었다. 늘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는 착한 모범적인 딸이었다. F씨는 특별히 미국 생활에서 약 5년간 생활을 하면서 독립심이 필요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No라고 말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가족이 중요하느냐, 너에게 종교가 더 중요하느냐? 선택을 하라고 최후의 통첩에서 F씨는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분기탱천해서 당장 4명의 가족 구성원들을 데리고 그 다음 날 비행기 표를 구해서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후부터 아버지의 경제적인 지원은 끊어졌다. 아버지와의 서신 교환은 물론 전화 통화 등도 모두 끊어졌다. F씨는 아르바이트로 경제적인 문제를 대신해야 했다. 다행히도 박사 과정이어서 지도 교수의 도움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졸업은 할 수 있었다. 박사 학위를 따고 나서 귀국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는 회복되어지지 않았다. F씨는 아버지가 늘 막내 딸인 F씨가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공부를 잘 했고 그리고 미국 유학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일한 가족들에 대한 자랑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졸업 후에 박사 학위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아버지의 덕분으로 학위를 딴 것이라고 아버지의 공이라고 칭찬을 하게 되고 졸업장과 박사 학위를 아버지에게 받치게 되면서 다시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이 되었다.
F씨는 귀국 후에 우리 나라의 최고의 기업인 xx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곳에서 책임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면서도 대학에서 교수 채용이 있는지?를 체크했다. 한번은 xx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본 아버지가 F씨를 데리고 그 대학에 채용에 응시를 하기도 했지만 은근히 엄청난 금액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포기를 했다. 몇 년 후에 xx 대학에 응시를 해서 전임 강사로 채용이 되었다.
대학에 전임 강사로 채용이 된 것은 좋았으나 문제는 대인공포증 때문에 동료들과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었다. F씨는 동료들과 관계를 피하려고 노력을 했다.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려고 했다. 고로 동료들 사이에서 항상 외톨이로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Xx 학과에는 모두 9명의 교수들이 근무를 하고 있는데 매주 마나 xx 학과 회의에 참가 하는 것도 고문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들과 함께 하면 눈맞추기를 피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항상 긴장 상태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이 이후의 분석에서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F씨는 미국에 있을 때에도 항상 복용을 했던 신경 정신과 약물들에 심하게 의존을 했다.
한국에 귀국 하면서 이름난 신경 정신과 의사인 xx 신경 정신과 의원에게 매주 마다 약물 처방을 받아서 약물로 위기를 모면을 하고 있었다. F씨는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될 시점에는 그녀의 말대로 한 움큼씩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약물의 이름을 저절로 외우게 되었다고 하면서 줄줄 약물의 이름을 외우면서 신경 안정제 xxx, 항 우울제 xxx, 충동 컨트롤제 xxx, 조울증인 xxx 그리고 수면제 xxx 등으로 그녀가 복용하고 있는 약물의 이름을 궤고 있었다.
이 시쯤에서 F씨를 좋아하는 이웃에 사는 한 청년의 구애를 받게 되었다. F씨는 사춘기 시절부터 부모님의 갈등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남자 친구들과 어떻게 사귀는지?를 몰라서 몇몇 그녀를 좋아하는 남학생들로부터 데이트 신청 혹은 쪽지를 받기도 했으나 일축하고 무시를 했다. 그녀는 아예 공부만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성 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몰랐다. 대학생 시절에는 아예 이성 관계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에 대학 내에서 캠퍼스 커플들을 보면 눈에 쌍심지가 돋아났다고 했다. 그들을 멸시하고 비웃고 아예 그들을 쳐다 보는 것 조차고 거부감을 일으켰다고 털어 놓았다. 30대 초반이 넘어가는 나이에 그녀는 뜻밖에 한 청년으로부터 결혼 신청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눈길을 주거나 관심을 가진 몇몇 남자들이 있었지만 결혼을 포기했기 때문에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이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 오르면서 몇 번 그 사람과 데이트를 가졌다. 그녀의 이웃에 살고 있는 젊은이로 대 기업에 다니고 있는 신체 건강한 젊은이로 보였다.
미국에 유학 해서 박사 학위를 가진 대학 교수라는 직업 때문에 F씨는 그 청년으로부터 집중적인 사랑의 구애를 받게 되면서 그를 아버지에게 소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첫 눈에 반대를 했다. 그 청년의 가정이 돈이 없다는 것 그리고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외동 아들이라는 점 그리고 학력이 대졸 이라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점 등을 들어서 아버지는 반대를 했다. 아버지는 딸이 F 씨가 적어도 대학 교수 급이거나 혹은 아버지 정도의 재난을 가진 재벌의 자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를 하면서 이런 결혼의 기회가 다시 없을 것이라는 위기 의식 때문에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결혼을 하게 해 달라고 호소를 했지만 아버지는 또 다시 외고집을 드러냈다. 만약에 F씨가 그와 결혼을 하게 되면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는 끝난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번에도 F씨는 아버지에게 No라고 했다. 결혼 문제만큼은 딸인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하소연을 했지만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F씨는 혼자서 결혼을 강행하기로 했다.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 가족들 그리고 언니네 가족들에게 통고를 했다. 결혼 식 몇 일 전에 오빠가 찾아 와서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라고 종용을 했다. F씨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강압을 했던 가족 구성원들과 관계를 끊는 한이 있다고 해도 결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을 했다.
결혼 식 날에는 아버지도 오빠네 가족들도 그리고 언니 네 가족들도 결혼 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참석을 한 사람이 어머니였다. F씨는 결혼 후에 아버지, 오빠 그리고 언니와는 자연스럽게 관계가 단절이 되었다. 단지 어머니와는 귀국 후에 같이 1년 정도 살다가 어머니는 혼자서 살고 있었다. F씨는 결혼 후에 1년 정도는 신혼 기간으로 그런대로 잘 보냈지만 부부 관계에서 갈등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결혼 후에 남편은 하나뿐인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와 갈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남편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 어머니 밑에서 외동 아들로 자란 사람으로 결혼 후에도 지나치게 어머니 한데 마마 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결혼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F씨가 빨리 손자를 출산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임신을 학수 고대했다. 그러나 F씨는 자녀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부부 싸움을 보면서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던 것과 그리고 만약에 결혼을 한다고 해도 자녀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를 했기 때문에 임신을 요구하는 시어머니와 남편과 갈등이 점점 커지게 되면서 부부 생활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여기에다 F씨는 결혼 후에 섹스 관계를 거부 했다. 자녀를 낳지 않으려고 결심을 했기 때문에 섹스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 F씨의 지론이었다. 섹스를 자녀를 낳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완고했다.
이후에 분석 과정에서 F씨가 자녀 출산을 반대한 것은 위와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14년 동안 정신과 약물 복용으로 태어나게 될 자식에 걱정 때문에 임신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라는 지적에 솔직하게 시인을 했다. 그녀는 매일같이 한 움큼씩 복용하고 잇는 약물 때문에 이미 그녀의 자궁에 영향을 있을 것이라고 예견을 하고 있었다고 실토를 했다.
결혼 후에 2년 쯤이 되면서 F씨가 집을 나와서 약 6개월간 혼자서 지내다가 남편이 와서 달래고 어르는 것에 할 수 없이 다시 재 결합을 하게 되었으나 갈등은 계속되었다. 결국은 결혼 생활 5년이 넘어가지 않아서 이혼으로 결말이 났다. 이 시점에서 남편은 인터넷에서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홈페이지를 보고 부인인 F씨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아보라고 권유를 하게 된 것이 F씨가 치료자를 찾아오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때 마침 F씨는 대학에 근무를 한지 7년이 되는 안식년의 해로 F씨는 대학에 강의를 하지 않고 1년간 쉬면서 봉급을 받는 혜택을 받게 되면서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그녀의 1년 간을 치료를 받는데 올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치료자는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F씨의 마음 속에 억압된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을 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을 하도록 하는데 치료의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치료의 초반기에 F씨에게 이야기를 했다. 고로 위와 같은 F씨의 어린 시절의 과정에서 부모님의 폭력의 장면들 그리고 오빠로부터 구타 그리고 언니의 가출과 무단 결석 등으로 부모님의 화풀이가 된 장면들을 하나씩 재연을 하면서 그 시점에서 F씨의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는 훈련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말로써 표현을 하는 능력을 배양을 하는데 치료의 초반기 초점을 맞추었다.
F씨는 강의가 없고 1년간을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1주일에 5회로 월, 화, 수, 목, 금에 매일 같이 하루에 1회씩 치료 회기를 가지게 되었고 1회기 마다 2시간씩 1주일에 10시간의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안식년의 1년을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받아서 그녀의 심리적인 문제에서 해방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털어 놓으면서 분석적인 심리치료가 시작되었다.
물론 치료자는 F씨에게 지금까지 복용하고 있는 모든 약물을 중지하도록 했다. F씨는 약물을 당장 끊어버리게 되면 심리적인 고통을 어떻게 감당을 할 수 있는가? 혹시 돌 아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치료자는 매일 같이 치료 회기를 가지기 때문에 치료실에 와서 약물의 중단으로 생기는 부작용들을 말로써 토해내고 자아의 힘으로 컨트롤 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함을 강조를 했을 때 F씨는 수용을 했다.
일주일에 10시간씩 분석이 진행이 되면서 위에게 기술을 한 F씨의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이벤트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위와 같은 상처들이 다루어지면서 약 50 시간의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한가지씩 그 상처 이벤트들이 치료실에서 재연되어지면서 그 시쯤에서 상처받은 감정들이 말로써 표현이 되어지면서 F씨의 내면에 지금까지 억압되어져 온 분노들이 빠져 나가게 되면서 F씨의 과도한 긴장 누적으로 인한 신체적인 증세들이 하나씩 사라지게 되면서 F씨는 치료자의 심리치료에 확실한 신뢰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의 과민성 대장염과 국소성 소장염(크론 질병)이 사라진 것이었다. Xx 대학 병원에서 X-선 촬영 결과 고질 병으로 치유 불가라는 크론 질병이 사라진 것에 담당 의사가 깜짝 놀랜 것에서 F씨가 심리치료의 효과를 인정하게 된 것이었다.
분석의 과정에서 F씨와 아버지 관계가 분석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F씨를 막내 딸로써 과잉 보호를 해 왔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은 딸이 항상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공부를 잘 했고 그리고 유학에서 박사 학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친지들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No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경 실색을 했다. 아버지가 자수성가를 해서 100억대의 재산을 모으게 되면서 오빠네 가족들과 언니네 가족들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항상 생활 비용이 떨어지면 아버지에게 의존을 했다. 아버지에게 No라고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아버지게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No라는 말을 하고 나면 아버지의 분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고로 오빠와 언니는 아버지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고 독립심이 부족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오빠는 아버지가 처음 사업을 할 때 xx 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것을 물러 받아서 계속하고 있지만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 아버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니는 지금도 아버지가 운영하는 xx 회사에서 경리를 맡아서 생활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남편이 몇 번 사업을 했다가 실패를 한 것 등이 분석으로 밝혀지면서 아버지와 자녀들과 관계가 하나씩 분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아버지가 F씨의 결혼에 반대를 하면서 오빠네와 언니네가 결혼식에 참석을 하지 않는 것도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아버지의 경제적인 지원을 두려워한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F씨가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에게 Yes 맨 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F씨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미국 유학을 떠날 때 아버지와 F씨를 대동하고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서 원룸과 생활 필수품들을 마련해 주고 귀국을 한 것을 분석을 할 때 F씨는 그녀가 미국 행 비행기를 탈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기분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가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 식에 가는 딸처럼 딸을 데리고 비행기를 다고 미국에 가서 방과 생활 필수품을 준비해 준 것이 바로 그러한 기분과 똑 같았다고 실토를 했다.
즉 아버지는 F씨가 미국 유학을 갈 때 20대 후반의 나이로 성인이 된 딸을 지금도 딸이 초등학교 학생이 된 것처럼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 자신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고로 딸인 F씨는 30세가 되어가는 시쯤에서도 아버지 앞에서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행동을 하라고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강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30대가 되어가는 딸이 유치원 생으로 초등학교 학생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고로 F씨는 아버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아버지 앞에서는 유치원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독립적이고 자치적이 되면 아버지는 노발대발해서 그것을 허용해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로 F씨는 동료들과 나이에 알맞은 심리적인 성장이 훼손되어 동료들과 관계가 어렵다는 점이다. 즉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 유치원 수준에서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수준에서 성장이 중지 된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치료자는 F씨의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성장이 중지된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걸 맞는 자아로 성장을 시키기 위해서는 내 자아의 목소리를 찾아야 하고 의사 소통을 통해서 상대방을 설득 시킬 수 있어야 하고 내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을 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을 함으로서 신체적 긴장을 방출시켜서 긴장의 수준을 낮추어야 하고 순종적인 그리고 복종적인 자아에서 자치적인 자아로 바뀌어야 한다는 치료자의 지적에 동의를 했다.
치료자는 F씨가 미국 생활에서 5년 이상 생활을 할 이후에 아버지와 언니네 가족이 방문을 했을 때 일요일에 방문한 가족 구성원들을 버리고 교회 예배를 선택할 때 마음 속에서 어떤 느낌과 생각 때문에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No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를 질문을 했을 때 F씨는 미국 생활에서 배운 것이 내 목소리를 내는 자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생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No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에게 No라고 하면 틀림없이 아버지가 노발대발해서 아버지의 도움과 관계가 끊어질 것을 예상을 하고 아버지에게 No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F씨의 자아 찾기를 칭찬을 해 주었다. 아버지로부터 스스로 독립을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지적을 했다.
분석의 과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F씨는 아버지의 눈치, 비위를 맞추게 되었고 그 결과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복종적인 자아가 된 것을 시인을 하고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 자아를 성장을 시킬지?는 스스로 모르고 있다고 시인을 했다. 치료자는 내 목소리를 내어야 함을 강조를 했다. 상대방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불쾌한 감정들 즉 짜증, 강압, 화, 노여움 등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고 F씨는 적극적으로 실천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F씨는 대학에서 7년 동안 생활을 하면서 같은 학과의 교수들과 관계가 분석되어지면서 9명의 학과 교수들이 대부분이 50대 이상이어서 나이가 제일 적은 F씨가 매주 월요일 마다 열리는 교수 회의에서 커피를 만들어서 대접을 하는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눈치, 비위를 맞추고 갈등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스스로 봉사를 하면서도 그녀는 항상 그녀가 커피를 만들고 학과 심부름과 학과 업무들을 도 맞아서 하는 일들이 마치 그 학과 교수들에게 식모, 심부름 꾼으로 인식이 되어 분노하고 있고 폭발 직전에 있다는 것도 분석 치료 과정에서 드러났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그들 앞에서는 불평, 불만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는 잠 자는 폭발 직전의 화산 같다고 스스로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나이 많은 원로 교수들 앞에서는 눈치, 비위를 맞추고 시키는 대로 복종을 하고 있는 F씨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비굴한 자신의 모습이 바로 지금까지 아버지 앞에서 No라고 표현을 하지 못하고 복종, 순종으로 착한 딸로써 살아온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지 않는가?라는 지적에 스스로 깜짝 놀라면서 시인을 했다. 문제는 교수들과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바로 잡느냐?라고 질문을 했다. 치료자는 치료 회기 시간에 그들과 관계를 재연해서 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내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말로써 조용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많이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그러한 과정이 치료에서 다루어질 것이라고 지적을 했다.
치료 회기 시간이 50 시간이 넘어가면서 끊어진 가족들과 관계를 하나씩 회복해 가면서 그들에게 억압된 감정들을 말로써 풀어 내면서 갈등 관계를 다루는 작업이 하나씩 진행이 되어갔다.
먼저 56 시간 쯤에 큰 오빠와 만나서 그 동안에 오빠에게 화나고 서운하고 분노한 느낌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F씨는 처음부터 오빠, 아버지, 어머니, 언니 들과 관계를 하지 않으려고 했고 지금까지 7년 동안 가족 관계를 완전히 차단했던 것은 그들과는 대화 자체가 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나만 몇 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안 것이 갈등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가족 구성원들을 바꾸는 것이 치료가 아니고 치료에 나오는 내가 바뀌어야 함을 강조를 했다. 가족 구성원들을 치료를 받으려고 치료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치료실에 나오는 것은 F씨 자신이 아닌가? 치료실에 찾아왔을 때 F씨 자신이 바뀌기 위해서 심리치료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라는 지적에 동의를 했다.
물론 큰 오빠를 만나기 전에 치료 회기에서 오빠에 대한 지금까지의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한 갈등들, 분노들, 짜증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면서 그러한 감정들의 찌꺼기 들이 표현되어지는 과정에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고 긴장이 방출되고 신체적으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빠져 나가고 내 자신의 내면의 상상과 느낌과 생각과 감각과 지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어지고 그 결과 자아가 성장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도록 했다.
치료 시작 후에 55시간쯤에서 F씨는 이제는 오빠를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F씨가 지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오빠의 도움이 필요하니 만나줄 것을 요청을 했고 오빠의 약속을 얻어냈다. F씨는 커피 숍 혹은 음식점에서 만나려고 했다. 치료자는 커피 숍 혹은 음식점은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기 때문에 오빠네 집에서 단 둘이 일대일로 대면을 해서 지금까지 오빠에게 하고 싶었던 느낌, 생각, 상상, 감각, 지각들을 소상하게 표현을 할 것을 주문을 했고 F씨가 기꺼이 동의를 했다.
첫 오빠와 만남은 5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F씨 스스로 자기 평가를 했다. 첫 만남 이후에 몇 번의 만남을 통해서 F씨는 오빠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들은 F씨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오빠에게 어린 시절에 오빠의 폭력으로 받은 상처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 오빠에 항의를 했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 당해서 이빨이 부러진 것 그리고 결혼 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 등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오빠는 어린 시절의 폭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생에게 화풀이를 했다고 인정을 하고 사과를 했다.
오빠와 몇 번의 만남에서 오빠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폭력과 상처들을 스스로 F씨에게 털어 놓았다. 오빠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황태자로 자라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과 합류하면서 받은 상처를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모처럼 소시지 반찬을 만들어준 것에 너무 맛있다고 숟가락에 소시지 두 개를 얹어 먹었을 때 아버지가 “너는 왜 그렇게 욕심이 많으냐?”라고 하면서 밥상을 엎어버린 상처를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로부터 신발로 얻어맞는 오빠를 여러 번 본 것을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부등 켜 안고 통곡을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렀다. 오빠는 F씨로부터 스스로 치료를 받은 것 같다고 털어 놓으면서 그 동안에 서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나누고 나서 F씨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 있는 오빠의 이미지 즉 오빠의 괴물 인간 모습은 내가 스스로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소통을 하고 보니 오빠는 그러한 괴물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오빠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의 피해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부모님에 대한 어린 시절의 상처들과 갈등들의 재연으로 감정의 표현과 의사 소통과 그리고 자아 표현 훈련에 속도가 붙게 되었다. F씨는 스스로 그러한 치료의 효과를 시인하고 즐거워했다.
72 시간의 치료 회기 시쯤에서 드디어 아버지를 만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아버지를 만나기로 했다. 물론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치료 회기에서 아버지와 어린 시절의 갈등들, 대학 입학 시에 유치원 생으로 취급되어 자아가 무시된 점, 아버지 앞에서는 어린이가 된다는 점, 아버지의 비위, 눈치 때문에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No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복종적인 인간으로 비굴하고 노예처럼 행동하고 있는 자신의 자아의 한심한 느낌들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점,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자식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와 관계가 지금 현재 F씨의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의 이야기들을 치료 회기 과정에서 다루어지고 소통 훈련이 이어지면서 누전노, 노랭이, 돈 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이미지, 그리고 독재자, 폭력적인 아버지 등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 등이 다루어진 후에 드디어 원수처럼 7년 동안 관계를 끊었던 아버지와 첫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F씨와 아버지의 첫 만남은 10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F씨는 첫 만남에서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아버지게 대화 다운 대화를 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이제는 지금까지 못다한 아버지에 대한 섭섭한, 서운한, 분노적인, 갈등적인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는 그냥 들어주시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서 조용하게 위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특별히 아버지가 자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아버지에게 순종하도록 복종을 강요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도 중간 중간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갈등들과 고통들을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딸 사이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가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No라고 두 번 이야기를 했다가 관계가 단절되고 서로가 적대 관계가 된 것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직장에서 원로 교수들과 관계가 아버지의 관계와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스스로 그러한 문제를 시인을 하고 눈물로 사과를 했다. 아버지는 딸이 자신처럼 불행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딸을 배려하려고 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한 결과가 딸인 F씨에게 불행한 결과로 나타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특이한 점은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에 오빠에게 폭력을 당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오빠로부터 F씨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비밀로 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정말로 그러한 오빠의 폭력적인 행동을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아버지는 그것을 그 때 잘 알고 있었다고 한 대답에 대경 실색을 했다. 왜 아버지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고 모르는 체 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아버지는 “나는 어린 시절에 조폭이었던 둘 째 형님으로부터 혁대로 그리고 몽둥이로 얻어맞았는데 오빠가 몇 차례 때린 것이 뭐가 그렇게 대수냐?”라는 말을 듣고 통곡을 했다고 실토를 했다.
F씨는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오빠로부터 상습적 구타와 폭력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써 치료를 받아야 하는 성격 장애로 등장을 했고 그것 때문에 어른이 된 지금도 폭력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결혼 후에 남편과 관계가 망가지고 엉뚱하게 남편으로 분노가 흘러간 것을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할까 봐 두려움으로 방어를 한 것이 분석치료의 결과로 드러나게 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낸 것을 이야기를 했다.
이후에 아버지와 몇 번의 만남으로 아버지와 갈등은 해소 되었고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아버지에게 F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고 F씨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지원을 해 줄 것을 당부하는 말을 잊지 않았고 이후에 몇 번의 만남에서 이제 성인이 된 딸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해주는 분위기로 바뀌어가는 것을 기뻐했다.
치료 시간이 120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머니와 만남이 이루어졌다. 어머니와 관계는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궁금한 이야기들은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속을 털어 놓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와 만남은 12시간 동안 계속 하면서 서로 지루하거나 긴장되거나 혹은 불편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털어 놓았다. F씨는 어머니와 만남에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크다란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 후에 막내인 F씨를 낳기 1년 전에 어머니의 친 언니(어머니는 이복 형제가 2명, 친언니가 1명)가 시골에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시부모님과 갈등으로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비밀로 숨겨왔던 것을 털어 놓고 서로 부등 켜 안고 통곡을 한 것을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그러한 상처를 남편인 아버지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지금까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었고 소통을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가슴 속에 묻어둔 응어리였다고 실토를 했다.
이러한 가족들의 비밀들이 밝혀지고 가슴 속에 쌓인 응어리가 풀리면서 F씨와 어머니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을 했다. 자신의 고통들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자녀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배려에서 혼자서 참고 견디어 온 어머니를 F씨가 이해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어머니의 상처와 고통이 1년 후에 태어난 F씨의 출생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이후에 계속해서 분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또 한가지 분석으로 밝혀진 것은 F씨가 화장실에서 대소변 후에 변기통에서 물이 흘러내려가는 싸악! 하는 소리에 소름이 끼친다는 이야기를 미국에서 목회 상담자에게 했을 때 유아기 때 어머니와 관계에서 유산과 관계 있지 않는가? 라는 이야기를 듣고 의심했는데 이번에 어머니와 만남에서 대화 도중에 F씨가 변기통에서 물이 흘러내려나는 소리에 소름이 돋는데 혹시 어머니가 F씨를 임신을 했을 때를 정말로 임신을 하고 싶어서 했는지?를 질문을 했을 때 어머니는 솔직하게 그 때 언니의 자살로 심란해진 어머니가 세 번째 아기를 임신으로 출산을 해서 기울 자신이 없어서 유산을 하려고 시도를 했던 것을 털어 놓았다. F씨는 원하지 않았던 아이였다는 것에 대해서 이후에 치료 과정에서 통곡하고 분노한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에 F씨의 마음 속에 늘 자주 떠 올랐던 상처의 기억들 즉 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황혼에서 울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 저녁 놀을 보면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들, 그리고 변기 통에서 씻어내려 가는 싸악! 하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소름이 끼치는 것들 등의 궁금증이 풀리고 마음 속에서 응어리들의 수수께끼가 풀려지면서 F의 마음 속에서 평화가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언니와 만남이 이루어졌고 언니에게 서운한 이야기들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서로 화해가 이루어지고 언니의 고통과 어려움들이 터져 나오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를 하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이러한 가족 관계의 단절과 소통 부족으로 스스로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가족들의 자아 이미지 상들이 바로 잡히고 서로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쏟아 놓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바로 신체적 긴장이 풀리고 감정이 흘러가고 의사 소통을 나누는 자아의 능력이 개발이 되고 그 결과 서로 오해가 풀리고 관계가 좋아지고 우울함, 분노, 짜증이 흘러가고 기분이 좋아지고 갈등이 사라지면서 자아가 성장을 하게 된다는 것을 F씨가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 큰 소득임을 잘 알고 있었다.
치료 시간이 200시간이 넘어가면서 가족들과 관계는 서로 소통이 되고 좋아지게 되면서 가족 구성원들이 몇 개월 마다 한번씩 만나서 회식을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개선되어지게 되었다. 부모님은 서로 남남으로 살고 있지만 서로 자주 만나게 되고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행사 때가 되면 같이 부부로 행동을 하고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직장에서 9명의 동료들과의 관계였다.
치료자와 F씨는 9명의 직장 동료 교수들의 성격과 출신과 행동 특징들을 분석해서 한 사람씩 직면으로 직접 만나서 뚫고 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먼저 F씨가 숨겨왔던 자신의 비밀스러운 수치심들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 앞에서 긴장과 불편 함들을 제거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단점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과도하게 긴장하고 그 결과 신체적으로 참을 수 있는 긴장의 한계점을 넘어가면서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나서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서 지금까지의 F씨의 감추어온 비밀들을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첫 번째는 F씨가 이혼을 했다는 것 그리고 혼자서 그녀 자신의 대학 연구실에서 비밀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이혼 후에 자살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 보겠다는 심정으로 흥청망청 돈을 마구 썼기 때문에 빚이 1억이 된다는 점, 동료들 중에서 가장 허름한 모닝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동료들은 대부분이 외제 승용차 때문에 열등감으로 주차장에 주차를 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슬그머니 주차해 온 것에 대한 고백), 저녁 무렵이면 모자를 뒤집어 쓰고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혹시 자신의 실체가 들통이 나지 않도록 변장을 한다는 것 그리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들과 갈등들을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동료들과 갈등 관계를 해결을 시작한지 1주일 만에 하루에 한 사람씩 만나서 2시간-3시간씩 이야기를 하면서 9명과 만나서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소통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단점과 결함들을 이야기를 했을 때 동료 교수들은 그녀를 이해하고 지원해주고 격려를 해주었던 것에 새삼스럽게 놀랬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들에게 단점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꼬투리가 잡혀서 그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을 것이라고 비밀로 꽁꽁 숨겨온 것이 그녀의 자아의 올가미가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들에게 솔직하게 지금까지 매주일 학과 회의 때마다 커피를 심부름을 하면서 느낀 밥 순이(식모)처럼 모욕감을 느낀 것을 실토하게 되면서 당장 모임에서 커피 심부름은 커피 자판기로 바뀌게 되었고 아버지로부터 순종과 복종이 원로 교수님들 앞에서 눈치, 비위 맞추기로 변한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낼 때 이해와 지원을 약속을 받았다.
F씨는 그 직후에 학교 연구실 생활에서 나와서 원룸으로 이동을 했다. 학교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당당하게 이혼을 했다고 실토를 하고 숨기로 비밀로 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문을 열고 당당하게 나올 수가 있게 되어갔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 속에 응어리들이 풀리고 가족구성원들과 동료들과 갈등이 해결이 되면서 그들과 직면하고 서로 소통을 하게 되면서 F씨의 대인공포증, 우울증, 그리고 보드라인 성격장애들은 눈에 띄게 한 가지씩 완화가 되어가는 것을 스스로 실토를 했다. 물론 치료자에게 치료를 시작하면서 약 14년 동안 복용하던 약물을 끊어버리고 대신에 모든 것을 자아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함은 치료 초반기에 강조를 했고 그러한 치료의 과정을 수용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어린 시절에 성장이 중지된 자아의 재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이미 여러 번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직도 F씨는 항상 꿈을 꾸면 등장하는 꿈을 이야기를 하면서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를 했다. 늘 자주 꾸는 꿈 속에서 F씨는 4살 된 어린이가 울면서 해가 저물어 가는 황혼을 쳐다 보고 있는 장면을 분석을 요청을 했다. 그리고 F씨는 낙 옆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우울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 가는 황혼을 쳐다보면 외로움이 엄습하게 되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짜증 그리고 슬픔에 휩싸인다고 그들의 분석을 요청을 했다.
다시 어린 시절의 기억의 회상으로 되돌아갔다. 어머니와 여러 번 만난 이후에 F씨가 출생 직후부터 기억을 하지 못하는 3살까지의 성장 과정이 밝혀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막내로 태어난 F씨를 큰 어머니 집에 맡겨야 했고 3살 정도가 되면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면서 어머니가 F씨를 공장에 일하는 곳에 데리고 가서 놀이 방에서 동료들과 어울리게 하려고 했을 때 F씨가 싫어했고 혼자서 집에서 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간단한 음식과 물과 장난감을 두고 어머니는 공장에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빠와 여러 번 만남에서 F씨의 어린 시절의 행동의 특징이 장난감을 한 개 주면 하루 종일 그것에 매달려서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 그리고 항상 혼자서 놀고 있는 특이한 행동들이 이번에 다시 이해가 된 것이었다. F씨는 3세-5세 사이에 반응행동 성 애착 장애임이 밝혀졌다. 동료들과 어울리는데 어려움이 발생을 한 것은 큰 엄마 밑에서 3살까지 생활을 하면서 먹는 것, 대소변, 질병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환경 탐색에서 주변 환경을 컨트롤하는 것을 습득하지 못한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F씨는 항상 어머니가 아침에 출근을 하면 철제 대문을 잠그면서 내가 집을 지키겠다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이 났다. 3살-4살 된 어린이가 엄마를 보호하겠다는 방어 기재임이 분명했다. 여기에서 황혼, 저녁 놀을 보면 서글퍼지고 우울해지는가? 하는 것은 F씨가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항상 저녁에 해가지면 엄마가 돌아 온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고 스스로 시인을 했다. F씨는 하루 종일 해가 지면 엄마가 돌아 온다는 것을 학수고대 했음 의 기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꿈 속에서 뺨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울고 있는 장면은 엄마를 잃어버리고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어린 시절의 모습임을 깨닫게 되면서 F씨는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드디어 F씨는 용기를 내어 그녀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xx동 달동네를 방문하고 과거의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회상하고 그녀가 살았던 그곳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해 나갔다. 그곳은 지금은 과거의 흔적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조그만 시멘트 터널로 된 다리만 남아 있었다. 그러한 곳을 찾아 다니면서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들을 토해내고 어린 시절의 자아의 상처들을 쓰다듬고 위로하고 달래어 나갈 수가 있었다. 과거의 상처를 피하지 않고 직면해서 상상 속에서 반복되는 상처를 씻어낼 수가 있었다.
치료가 350 시간이 되었을 때 F씨는 이제 한가지 남은 것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혼자 사는 외로움임이 남아있다고 고백을 했다. 이것은 실존에 대한 두려움이고 삶의 마지막에 누구나 가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임을 스스로 알고 남아 있는 2%의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고쳐나가기로 하고 치료를 종결을 했다. 그녀는 취미 생활로 자동차를 타고 전국을 여행을 하는 것 그리고 해외 여행을 하는 것 그리고 애완 동물을 키우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외로움을 달래기고 하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끝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F씨는 치료자와 1년 6개월의 집중적인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약물을 복용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자아의 힘으로 우울증과 보드라인, 외상 수 스트레서 장애를 극복하게 된 것을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지고 최면에 걸려서 지낸 온 것처름 느껴진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약물이 없이도 자아의 힘으로 생활해 오면서 즐겁고 보람있는 하루하루를 살아 온 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상처 받은 자아임을 깨닫고 치료의 과정에서 변화된 바뀐 자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함을 강조를 했다. 만약에 과거의 자아의 행동 패턴으로 되돌아가면 재발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치료가 끝난 후에 1년이 지나면서 F씨는 치료자에게 안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금까지 잘 진행이 되고 가고 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치료자가 F씨의 치료 사례를 소상하게 소개를 한 것은 어린 시절에 박탈 당한 사랑의 부족과 애착 결함이 어른이 되어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부모님들과 문제를 가진 본인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기 위함에서 였다. F씨의 아버지는 딸을 과잉 보호를 해서 의존적, 복종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처음에 소개를 한 부모의 과잉 보호에 해당되는 것이고 두 번째 어머니는 F씨를 직접 양육하지 않았고 큰 어머니에게 양육을 맡기면서 사랑을 박탈했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서 F씨는 먹고 대소변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도움을 받았지만 정작 중요한 엄마와 대화, 자신의 환경 탐색으로 엄마와 나누고자 했던 의사 소통 들의 성장이 중지된 것에 더 붙여서 어머니 자신의 언니의 죽음에 대한 심리적 상처들이 누적되면서 부부 갈등으로 서로가 외도로 보복으로 발전하면서 자녀들이 영향을 받아서 평생 동안 상처를 안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을 지적하고자 하기 위함에서 이다.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보통은 일주일에 1회로 1회기 당 2시간으로 치료를 하는데 F씨의 경우에는1년간 안식년으로 강의 시간이 면제되고 1년 동안 휴식을 가지는 기간이 주어지는 혜택을 누리게 되어 외국 연수를 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 결과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해서 집중적으로 350시간으로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상적으로 1주일에 1회 2시간으로 치료를 한 것과 비교를 하면 약 3년 6개월- 4년 동안 치료를 받은 셈이 된 것이다.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갈등 관계를 피해서 도망을 가는 것을 막고 그 갈등들을 직면해서 서로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대인관계를 풀어내고 관계를 바로 세우고 그들에 대한 분노, 적대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면서 신체적인 긴장을 풀어내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긍심을 높이게 되면서 지금까지 약물로 다루어왔던 삶에서 문제들을 자아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임을 치료 사례를 통해서 알게 하기 위함에서 이다.
모든 인간 관계는 대화로써 말로써 표현하고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과정이 아닌가! 고로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서로 마주 보고 편안하게 앉아서 2시간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생각, 느낌, 상상, 지각, 감각, 사고 등을 마음대로 표현을 하는 과정에 4년-5년으로 지속되면 저절로 의사 소통 능력이 배양되고 갈등 해결 능력이 증진되고 감정이 누적되어지지 않고 모든 문제들을 자아의 힘으로 해결 해 나가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죽은 엄마의 5부에서는 어린 시절에 엄마와 아기 관계의 중요성을 지금까지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와 치료의 사례들을 통해서 소개가 될 것이다.
'의학,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2 (0) | 2016.02.20 |
---|---|
죽은 엄마 5 (0) | 2016.02.15 |
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1: 아들 살해 후 시신 훼손 부모의 심층 분석 (0) | 2016.01.23 |
죽은 엄마 3 (0) | 2016.01.21 |
죽은 엄마 2 (0) | 2016.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