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해운대 고급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누나와 조카 살해후 투신한 사건의 심층 해부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5. 6. 12. 11:23

몇일 전에 해운대 고급 아파트 51 층에서 투신한 38세의 K씨의 호주머니에서 xxx동 xxx호에서 살해된 시신이 있으니 수습해 달라는 쪽지와 비밀 번호가 있었고 경찰이 조사결과 부모님과 누나와 조카가 살해된 체 나란히 누워있었고 그리고 아버지와 살해자인 아들의 유서가 발견 되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이들에 대한 몇가지 보고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죽음을 당한 아버지는 67세, 어머니는 64세 그리고 누나는 41세, 조카는 8세 그리고 살해자인 K씨는 38세였다. 해운대에서 가장 고급 아파트 51층에 3000만원 짜리 보증금으로 한 달에 월세를 170만원이나 지불하는 아파트이고 누나가 음악으로 레슨비를 벌어 들이는 것 이외에는 수입이 없는 가족이었다. 그 아파트의 계약자의 이름은 매형으로 되어 있었으나 매형은 이혼으로 집을 떠나고 없었다. 이 가족은 승용차를 세대나 가지고 있었다.

더 붙여서 밝혀진 것은 가족들이 수입이 없어서 최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3000만원을 다 까먹고 월세를 낼 수 없고 그리고 매월 관리비 조차 낼 수 없어서 몇 개월 밀려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집 주인으로부터 5월 15일까지 집을 비워달다 라는 법원의 최후의 통첩을 받은 날짜 이틀 전에 왜? 집단 자살로 생을 마감을 했는지? 를 분석해 보자.

아버지의 1장 정도 되는 유서에는 "내가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 "아들아 마지막으로 너에게 부탁한다" "우리 가족들을 화장 해서 같이 묻어 주세요"라는 귀절들이 아버지의 유서에게 발견이 되었다. 그리고 2장 정도 되는 아들의 유서에는 "가족 구성원 들의 시신을 정리하면서 새벽이 지옥처럼 기다려진다" 라는 구절들이 발견이 되었다. 그가 가족들을 살해하고 시신들을 정리하고 새벽이 오면서 스스로 51층에서 뛰어내려서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라는 결심을 하고 계획적으로 유서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위와 같은 정보를 모아 보았을 때 아버지와 아들이 가족 구성원들의 집단 자살을 공모를 했고 그리고 아들이 일가족을 목졸라 살해하고 스스로 투신해서 목슴을 끊었다는 경찰의 수사 보고서와 연결해서 이들의 심층의 자살 심리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분명히 이들은 심리적인 문제들을 가진 가족이었고 그 결과 스스로 집단 자살을 한 가족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다.

위의 여러 가지 자료들을 모아서 서로 연결해 보았을 때 이 가족의 살해 사건은 몇 개월 전에 서초동 세 모녀 살해 사건의 심리적인 이유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서초동 사건은 남편이 가족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가족들을 살해한 점이고 해운대 일가족 살해 사건은 아버지와 아들이 공모해서 아버지의 요청으로 집단 자살을 한 점이라는 것이다. 아버지 이외에 어머니와 누나가 가족의 집단 자살을 동조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들의 방에 집단 자살 전에 술병 들이 이리저리 모여 있는 것을 볼 때 온 가족이 동의 하에 집단 자살을 한 것으로 보였다.

이 가족들은 분명히 정신적인 문제점을 가진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분명히 유서에서 "내가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라고 후회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41살 누나는 이혼을 했다는 점, 그리고 38세의 아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직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위가 아파트 계약자로 등록되어 있었다는 것은 사위가 처음 그 아파트에 들어왔을 때는 돈이 있었다는 것인데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했다는 것 그리고 아들도 몇 차래 사업에서 실패를 했다는 신문의 보고를 보고 두 사람은 사업을 했지만 실패를 했다는 점이다.

67세의 아버지는 평생 동안 삶을 살면서 거주지가 없고 빈 털털이 라는 점은 아버지의 삶과 아들의 삶이 유사하다는 점 그리고 누나는 겨우 음악 레슨 아르바이트로 조금의 수입만 있었다는 점 그리고 한달에 170만원의 월세를 까먹어 가면서도 집을 나오지 않고 관리비 조차 낼 수 없으면서도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낌새를 보이지 않고 구차하기 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이 가족들의 심리적인 장애는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딸 세 사람은 "나르시즘 성격장애"임이 분명해 보였다. 나르시즘 성격장애에 대해서 더욱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나르시즘 성격장애는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 삶에서 부(富), 명예, 출세, 성공이 삶의 목표이고 공감 능력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내 똘만이로 생각하는 사람들로써 자존감 즉 자신감이 인플레 된 사람들로써 자신들이 최고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지시, 명령을 받으면서 봉급 생활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아버지가 나르시즘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녀들도 아버지를 닮아서 나르시즘적인 성격장애가 된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사업을 해도 실패하게 되어있다. 그 이유는 나르시즘 장애라는 것 자체가 자아 결함으로 자아가 분열이되어져서 경험들이 잘 통합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으로 배울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업을 할 때 모든 취약점들을 통합을 해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건강한 자아가 아니고 어떤 일부분만 특별히 생각해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사업을 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대상관계 이론이 등장하면서 성격장애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왔다. 성격장애는 이제 자아 장애로 부르고 있다. 내면의 삶의 경험이 자아이고 이 자아가 어떻게 작동하고 관계하고 조정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가? 하는 자아의 성장과 결함과 관계들을 연구하게 되면서 등장한 이론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유아기 자아, 초등학교 시절의 자아, 그리고 사춘기 시절의 자아, 성인기 시절의 자아, 노년기 시절의 자아 등의 여러개의 자아들이 서로 잘 통합이 되어서 한 개의 자아로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개의 자아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실제로 우리는 뇌는 좌뇌와 우뇌 두 개이고 그리고 뇌를 세로로 가로 질러서 보면 즉 단면도로 보면 뇌는 3개로 구성되어져 있다. 파충류 시대의 뇌, 포유동물 시대의 뇌, 고등동물 시대이 뇌로 3층으로 되어 있다.

또한 프로이트가 인간의 마음을 원초 자아, ego(자아), 초자아의 세 개로 되어있다고 의인화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는가? 고로 자아 이론가들은 우리의 자아가 적어도 세 개 이상으로 구성되어져 있다는 이론으로 발전을 시킨 것이다. 자아 장애들 즉 성격장애의 자아의 결함은 과거의 경험들이 잘 통합이되지 않고 쪼개져서 서로 연결이 끊어져 있기 때문에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 강조되어지고 있다. 자아 결함은 심리적인 상처로써 그 부분의 자아가 성장을 하지 못하고 결함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수정하고 고치고 치유되어지지 않으면 반복해서 '끝임없이 반복적으로 등장을 한다는 이론이다.

다시 위의 가족들의 집단 자살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매형이 처음에는 최고급 아파트에 입주를 했을 당시에는 돈이 있었지만 사업 실패로 더 이상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 떠나자고 했을 때 누나가 반대를 한 것으로 보인다. 누나는 그 아파트에서 계속해서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리고 남편은 더 이상 계속해서 산다는 것을 결국은 파산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갈등으로 이혼으로 집을 떠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사위는 온 가족들이 자기 한 사람만 보고 돈을 물 쓰듯이 하고 있고 사위인 자기 한 사람 만이 온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에 분노해서 이혼으로 집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로써 K씨의 온 가족들이 사위가 떠난 이후에도 서로 한 집에서 계속해서 살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월세를 까 먹으면서도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부모님과 아들이 그 아파트에 언제부터 왜? 합류를 했는지?는 분명해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부모님과 자식들이 독립을 하지 못하고 똘똘 뭉쳐서 합께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는 점이 누나와 아들이 자라면서 부모님의 과잉 보호로 혼자서 독립을 하는 자치심을 키우지 못했다는 점이 눈에 띄고 그리고 그렇게 돈이 없으면서도 아버지, 딸 그리고 아들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는 점 등이 나르시즘 성격장애자 들이었다는 점을 지지 해 준다.

나르시즘 성격장애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들은 자신들의 고민이나 단점 들을 절대로 수용하지 않고 그리고 그들의 문제점들을 스스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제나 완벽해 보여야 하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들의 단점을 털어 놓지 않는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급 승용자, 해운대에서 최고급 아파트, 월세가 170만원이나 되는 최고급 아파트 등으로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돈이 많은 사업가 가족으로 행세를 한 점 등이 이러한 장애를 뒤받침해 주고 있다. 이런 점은 사초동의 일류 대학 출신자로 해고 되고 나서도 가족 구성원들에게 해고를 알리지 않고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회사에 계속해서 출근을 하는 것처럼 원룸을 얻어놓고 그리고 은행 융자로 한달에 4백만원씩 월급으로 부인에게 지불 한 것과 유사하지 않는가? 그는 주식으로 돈을 잃고 은행 빚에 시달리면서도 절대로 자신의 고통과 약점을 부인에게 조차 밝히지 않고 마지막까지 숨기고 최후의 순간에 벼랑 끝에 왔을 때 가족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슴을 끊었다는 점과 일치 된다. 서초동 세 모녀 살해 사건에 대해서 상세하고 알고 싶은 분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이들은 마지막으로 삶에서 코너에 몰리자 그들 스스로 쫓겨서 나서 갈곳이 없어서 남의 도움이나 다른 사람 밑에서 구차하게 사는 것 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아버지도 요즈음 구청에서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알르바이트를 하면 적어도 용돈 정도는 벌 수 있고 어머니도 위기 시에 식당에서 일을 한다면(3 D 직업으로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니 연변 동포들이 주로하고 있는 일자리) 그리고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누나의 알르바이트 비용을 합친다면 먹고 살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가족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남의 밑에서 구차하게 비굴하게 복종적으로 사는 것보다 차라지 깨끗하게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나르시즘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적인 사고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경제적 환경과 최후의 통첩으로 집을 비워달라 라는 집 주인의 법적인 독촉장, 그리고 얼마 후에는 집을 쫓겨나서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거짓된 삶의 고통스러운 거짓 삶이, 나아가서 그들의 허세와 허풍으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가족들의 밑바닥 비밀들이 들통이 날 것을 두려워하고 숨기고 절대로 어려움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살아 왔던 겉 치례 때문에 자신들을 약점들이 드러나는 것 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닌가! 이것이 나르시즘적인 성격장애라는 점을 뒤받침해주고 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무능력한 자식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고 마지막에 시인을 했지만 아버지 스스로 혹은 자식들이 심리치료를 찾아서 성격을 바꾸고 건강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그러한 것을 알았다고 해도 문제 해결을 찾거나 혹은 심리치료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르시즘 성격장애자 들은 자신이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죽기 보다 싫어하기 때문에 차리리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문제점을 수용할 수 없었고 자신들의 삶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볼 수가 없는 정신적인 불구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양육에서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아버지의 고백) 이미 때가 늦었고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실패한 삶에서 배우지 못하고 자신들의 실패를 덮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했기 때문에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고 스스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은 팔자를 잘못 타고난 것일 뿐 그들의 삶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스스로 보고 깨닫고 고쳐 나가려는 마음 가짐에 문제가 있는 자아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삶에서 살아 가면서 계속되는 실패만 반복되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것만 탓하면서 "온 가족이 저 세상으로 가서 천국에서 함께 살자"라는 생각은 유언으로 남기면서 삶에서 고통과 모욕, 수치심, 조롱, 멸시(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패한 것을 볼 때)를 당하는 것보다 차리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결정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 틀림이 없었다.

이들이 나르시즘 성격장애자가 된 것은 어린 시절의 양육에서 자아에 결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르시즘 성격장애 이론의 세계적인 대가인 시카고 의과 대학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코호트(Kohut)는 나르시즘 성격장애를 1세-3세 사이에 내가 최고라는 유아들의 욕구에 상처를 입은 결과로써 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유아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의 욕구를 표출하게 된다. 건강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존재로 수용하고 인정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왜냐하면 엄마의 배 속에서 나온 내 자녀가 사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하고 갑지고 귀중한 존재가 아닌가! 고로 그러한 욕구들은 엄마, 아빠의 사랑 속에서 충족이 되고 3세 이후부터는 아기의 자아의 나르시즘적인 욕구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주변의 물건들을 만지고 부수고 조정을 해 나가는 환경 탐색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은 전지전능해 보이는데 아기 자신은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최하 라는 인식으로 연결되면서 주변 세상을 탐색하고 조정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을 배우면서 자신이 최고라는 욕구는 작아지면서 연마되고 단단해지면서 자신감으로 통합이 되어져서 건강한 자아로 다듬어지게 된다.

그런데 나르시즘 장애자들은 이러한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욕구가 상처를 받아서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하는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그 욕구를 내 스스로 채우겠다는 결함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 욕구가 그대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 머물러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파괴되고 사회 적응이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라고 코호트(Kohut)는 설명을 하고 있다. 코호트(Kohut)의 나르시즘 성격장애 이론으로 들어가 보세요.

위의 가족들의 비극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하는 점은 삶에서 실패를 반복하게 되거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운명 탓으로 팔자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자아를 되돌아 보고 자아 결함을 찾아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번의 실패를 실수로 어쩌다가 운이 좋지 않아서 실패한 것으로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은 어린 시절의 자아의 상처는 반드시 고치고 수정해서 수리되어지지 않으면 평생 동안 반복해서 재 등장 한다는 마음의 상처의 본질을 밝혀냈다.

정신분석에서는 과거와 유아기 시절의 상처들과 발달 단계들을 중요시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과거는 살아 있다". "우리는 과거를 잊고 있지만 과거는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과거가 지금 현재를 결정하고 미래를 결정한다"라고 강조를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자아는 과거의 경험들의 총 집합이 아닌가! 과거의 경험의 집합인 자아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행동을 결정하고 내일을 계획하고 실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패는 우리의 자아의 결함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말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혹한 운명, 타고난 팔자 때문에 실패가 반복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한번의 실수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실패는 수정이 되지 않고 평생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어지게 되어있다. 자신의 자아가 어디에서 결함이 있는지?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는 내 자아가 결함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나에게 경고 하는 발신 신호"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실패가 입사 시험이든지, 결혼이든지, 혹은 사업이든지, 대인관계 든지 간에 그 속에는 내 자아의 결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 신호임을 깨달아야 한다. 실패는 내 자신을 바로 알아라 라고 하면서 내 자신의 자아 결함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나르시즘 성격을 가진 자아 결함 환자들은 그러한 자신의 단점, 결함, 실패를 수치심, 부끄러움, 모욕, 멸시, 조롱으로 생각해서 덮어 버리고 자신을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계속된 삶에서 실패가 결국은 운명 탓으로 팔자 탓으로 생각을 해서 죽음으로써 생을 만감하는 결과를 선택한 것이다.

"너 자신을 알아라!" 라고 그리스 시대에 소크라테스가 말을 하지 않았는가? "전화위복", "새옹지마", "위기"(위기는 위험 + 기회)라는 말은 위험 속에 기회가 있다. 화 속에는 복이 있다 라는 말들이 바로 내 실패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게 되면 그 실패가 바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우리 조상들의 금언 속에 숨이있었지만 정작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내 실수, 내 고통을 숨기려고 하고 덮어 버리려고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잘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