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심인성 질환 알아 보기 6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9. 3. 16. 06:55

심인성 질환 알아보기 6  


심인성질환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심리적인 원인으로 생기는 질병으로 해석이 된다. 심리치료,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인 원인으로 생기는 병 즉 정신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모두 심인성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고로 심리치료사들이 심인성질환을 치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라고 오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필자는 지금까지 심인성질환에 대해서 글을 5를 썼고 지금은 6번째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심인성질환이라는 말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정신과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다. 옛날부터 신체적인 병들을 질병, 질환이라고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정신과적인 병을 정신질환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 상식이 되었다. 고로 일반 사람들은 당연히 정신질환, 정신병으로 이름을 붙이게 된다. 그러나 심리학 전공이나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심인성질환과 신경증의 구분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전문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글자 그대로 보면 애매모호하다. 심인성질환에 대한 이해는 정신과 적인 장애들의 핵심을 파악하는 약방의 감초라는 말에 비유가 된다. 그만큼 많이 사용하면서도 이 장애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과 연구의 역사들은 완전이 계통이 다르게 발달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과 관계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심인성질환의 용어부터 정의를 해 보기로 한다. 심인성질환과 신경증은 천지 차이이다. 보통 심리치료사들이 치료를 하는 정신 장애들은 신경증이다. 신경증은 영어로 neurosis 이다. 신경이라는 영어의 neuron(신경세포)이라는 말에다 병이라는 is가 접미어로 붙어서 신경증으로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독일어로 하면 노이로제라는 상식적인 용어가 바로 신경증이라는 용어로써 독일어로 노이로제로 발음(영어로는 뉴로시스)이 되기 때문이다. 신경증을 가진 사람들은 심리적인 고통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된다. 병원에서 종합 검사를 하게 되면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통보 받게 된다.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고로 정신과를 찾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신경증은 병원에서 종합 검사 결과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심리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심인성 질환은 심리적인 고통 때문에 병원에서 종합 검사결과 신체적인 이상이 발견이 된다. 즉 고혈압은 혈압이 실제로 올라간다. 혹은 위궤양은 위에 궤양이 나타난다. 습진은 몸이 가렵다, 대장염은 대장에 염증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질병(신체적인 병)은 약물로 잘 치료가 되지 않는 그리고 특별히 지금까지 그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질병들로 고질병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질병들이다. 이러한 질병의 원인이 심리적인 것으로 밝혀졌고 그리고 심리치료로써 그 심리적인 원인이 제거되었을 때 질병이 완치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심인성질환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심인성질환의 영어의 이름은 psychosomatic 이라는 말로써 심리라는 그리스어의 psych와 몸, 신체라는 그리스어의 soma 라는 말과 병이라는 그리스어의 i(illness)가 합성으로 psychosomatic 이라는 용어인 심리신체 질병 혹은 심인성질환이라는 글자가 된 것이다. 고로 심인성질환 혹은 심리신체질병 이라는 말은 신체적인 고질병들이 심리적인 원인으로 발병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된 이 질병의 역사적인 고찰과 그리고 심인성질환이 최근에 정신과의 치료에서 자주 등장하게 된다는 것과 심인성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먼저 신경증과 정신증과 심인성질환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신경증은 19세기 후반기에 등장을 했다. 신경증이라는 말은 19세기에 등장한 신경학에서 기원한 것이다. 의학 안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경학 즉 neurology는 새로운 의학으로 의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프로이트는 비엔나 의과 대학에서 신경학을 전공한 의사이다. 프로이트의 스승인 최면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가르코트 역시 신경과 의사이고,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영국의 의사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역시 신경학을 전공한 의사이다. 자아(self)라는 말을 의학적 용어로 처음으로 사용한 영국인 휴글 잭슨(Hughlings Jackson)역시 신경학을 전공한 의사이다. 그들의 신경학은 신경증의 등장과 때를 같이 한다. 신경증이라는 병은 고대, 중세에는 없었다. 1760년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1840년대에 전유럽으로, 전세계로 확대가 된 산업혁명의 부산물로 등장한 신경증이라는 장애에서 신경증이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최초로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치료 기법으로 치료를 한 것이 불안장애, 강박장애, 히스테리아 장애 그리고 신경쇠약이라는 장애들이었다. 이들 장애들이 19세기 후반기에서부터 등장하게 되었고 이것에 대한 연구와 치료가 19세기 후반기에 시작되었다. 이 장애의 특징인 신경증은 병원에서 종합 검사를 하면 신체적인 이상이 없다, 그렇게 때문에 신경증이 심리치료 즉 정신과 의사들의 치료로써 특별히 약물의 치료와 더불어 그 심리학적인 원인과 치료를 전담하는 역동적 정신의학의 핵심 치료가 된 것이다.


반대적인 용어로 정신증 역시 신체적인 종합 검사결과 신체적인 이상이 없는 정신장애로 심각한 장애들이기 때문에 결혼생활, 직장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이 어려워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 심각한 정신과적인 장애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정신증 즉 psychosis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신경증을 가진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을 할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이 통원치료로 그리고 결혼생활, 직장 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지만 심리적 고통 때문에 정신과 의사 혹은 심리치료사를 찾게 된다.


정신증이라는 장애도 19세기 말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정신증심각한 정신장애들의 집합을 한 마디로 총칭한 것이다. 정신분열증(2013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조현병으로 개칭)은 공식적으로 1911년에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편집증은 1899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크레펠린(Kraepeline)편집증과 조발성치매(정신분열증의 초반기 이름)에서 분리시켜 독립된 정신장애로 등장했고 양극성 장애(일반적으로 조울증으로 불린다 조울증 = 우울증 + 조증)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존재를 했다. 이들을 모두 모아서 정신증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1937년에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새롭게 등장한 종래의 신경증 보다 심각하고 정신증 보다는 심각하지 않는 양쪽의 어느 편에도 들지 않는 새로운 정신적인 장애가 등장을 했다.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의과 대학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가 다시 정신분석학교에서 3 5년의 공부를 하고 나서 정신분석가의 자격을 가진 의사들)인 아돌프 스턴(Adolph Stern)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를 하면서 신경증과 정신증 사이에 있는 장애라는 이름으로 근처에 있다 혹은 경계선에 있다는 용어로써 보드라인(borderline), 경계선 장애 라는 말을 사용해서 보드라인 장애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이 장애는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의 신경증 환자들의 치료에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신경증이 성격장애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신경증 치료에서 효과가 미미해서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 기법인 정신분석학을 개조하고 응용해서 새로운 정신분석 심리치료 혹은 역동적 정신치료라는 이름으로 개칭을 해서 보드라인 장애의 치료에 사용해 오게 되었다. 공식적인 분류는 1967년에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뉴욕 코넬 의과대학의 교수였던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 1967, 주㈜: 참고)가 정신장애를 크게 종래의 2 개의 그룹으로부터 3 개의 그룹으로 구분을 하면서 신경증 그룹, 보드라인 그룹, 정신증 그룹으로 구분을 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교수로써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컨드선(Gunderson. 1978: 주㈜: 참고) 15년 동안 보드라인 장애들의 치료와 연구를 통해서 다양한 종류들의 이름을 성격장애로 구분하고 10개의 성격장애들이 1980년의 DSM-(미국 정신의학 학회에서 약 10년 마다 한번씩 새롭게 등장하는 정신장애들을 재 분류 하는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지침서의 3번째 지침서)에서 공식적으로 성격장애로 등장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성격장애의 일반적인 용어보다 주로 자아 장애로 많이 불리게 되었다.


신경증, 보드라인, 정신증의 그룹에는 심인성질환이라는 낱말이 없다. 그것은 그들의 분류가 다르게 분류되어지고 그리고 다른 역사적인 계통으로 연결되어져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이제 심인성질환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프로이트는 최면학에서 최면 치료의 신비가 벗겨지면서 최면 치료의 효율성에 도전을 해서 새로운 치료 기법으로 정신분석을 창안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의 글에서 밝혔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치료를 신경증의 치료에 국한 시켰다. 그 이유로 정신증과 성격장애는 전이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경증에만 제한을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고 응용하면서 정신증들과 보드라인 장애들에 치료에서 성공적인 치료 결과들이 보고되어지면서 점점 정신분석이 확대되어 사용되어지게 되었다. 심리신체 질병 혹은 심인성질환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도 19세가 말에 신경증이 등장하고 나서 정신분석의 신경증 치료에 불만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등장을 했다.


유럽에서 최초의 정신증 치료 즉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의 초반기 이름)의 병원으로 처음으로 설립되어진 대학 정신병원이 바로 스위스의 쥬리히에 1870년에 세워진 부르고졸리(Burgholzli)대학 정신병원이다. 이 병원의 다섯 번째 총장인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는 그 병원에서 30년 동안 원장으로 있으면서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15년 동안 조발성치매에 대한 연구 결과가 1911년에 조발성치매는 잘못된 병명으로 이 병의 이름은 정신분열증이라고 명명을 했다.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인 schizophrenia 라는 말은 schizo라는 그리스어의 분열과 phren이라는 정신이라는 낱말과 ia라는 병의 이름이 종합이 된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다.


그는 이 병의 특징을 4개의 A라는 글자를 따서 4 A로서 진단 특징으로 기술을 했다. 연상의 분열(기억의 분열), 감정의 분열(양면 감정의 분열), 사고의 분열(생각들의 분열), 자폐적인 분열(내면의 세계로 철수)의 이 특징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Ellenberger, 1970). 그는 정신분열증의 다양한 종류들을 처음으로 기술했고 그리고 이 병의 치료의 비율을 60%, 나머지 22%는 병원에서 평생 동안 그리고 18%는 병원 입원을 반복하는 것으로 분류한 것은 1966년 에 윙(Wing) 40명의 여성 정신분열증 환자들 30년 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 67%가 회복, 7%가 병원에서 평생을 그리고 26%가 병원에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다는 정신분열증의 실험적인 통계 연구와 거의 일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신조어 이외에도 자아분열(schizoid), 자폐증(autism), 심층 심리학(depth psychology)라는 용어들을 신조어로 사용한 장본인이다(위키피아, 2019, 3, 9).


그는 가르코트의 최면 학교 그리고 낸시의 최면 학교를 방문하고 최면학을 배웠고 그리고 그들과 교류를 했다. (Jung)의 소개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알게 되었고 융과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학회에 가입을 했고 정신분석학을 부르고졸리 대학병원의 전체 의사들에게 3년 동안 학습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신분석이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으로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융과 함께 정신분석 학회에서 탈퇴를 했다. 프로이트의 너무 독선적인 그리고 절대적인 카리스마에 실망한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이트와 인간적인 관계는 유지를 했다. 블루러는 프로이트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을 했다.


그와 함께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어네스트 존과 함께 그리고 프랑스의 최면 학교인 낸시 학교의 대표자였던 의과대학 내과 교수인 베른헤임(Bernheim)과 함께 1910, 8월에 처음으로 심리신체 질병이라는 심이성질환 의학회를 창설을 했고 1912년에 쥬리히에서 국제 심리신체의학 학회의 첫 모임의 사회자로 등장을 했다. 베른헤임은 프로이트가 가르코트를 1885 10월에 6개월 동안 유학을 갔고 그리고 4년 후에 다시 1889년에 파리의 낸시 학교의 베른헤임을 방문했다. 그가 최면 이후에 환자에게 몇 가지 실마리를 통해서 최면상태의 기억을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최면과 유사한 방법으로 최면에 걸리지 않는 환자들을 정신분석으로 치료를 하게 된 이야기는 여러 번 소개를 했다(Ellenberger, 1970; Ernest Jones, 1953, 1955, 1958: 주㈜: 참고).


베른헤임은 만연에 최면을 포기하고 심리치료를 한 최초의 심리치료사로 인정을 받고 있다. 위의 세 사람 즉 블루러와 존과 그리고 배른헤임이 중심이 되어 최초의 심리신체질병과 이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심리신체 의학 혹은 심인성질환 의학이 개발되어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질병은 신체와 심리를 분리해서 치료를 하는 것보다 심리와 신체를 통합해서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감지한 선구자들이다.


다시 심리와 신체와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보자. 심리학이 탄생하게 된 것은 유럽에서 만연하고 유행을 했던 몽유병과 빙의 현상에 대한 과학자들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고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가인 엘렌버그(Ellenberger, 1970)가 노트를 하고 있다. 빙의 현상은 귀신에 사로잡힌 귀신병, 악령,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을 해서 샤만 즉 무당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상실한 영혼을 되찾는 퇴마의식이 유행을 했다. 물론 고대 그리스 시대는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이것을 자궁이 돌아다니면서 병을 일으킨다(여성들의 질병)는 뜻으로 히스테리아(hysteria)라고 이름(hyster은 그리스어로 자궁의 뜻)을 붙여서 치료를 해 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중세의 기독교 시대가 도래하면서 마음, 정신은 영혼으로 바뀌고 귀신과 악마, 악령, 마녀들이 등장을 했다.


정신병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등장을 했기 때문에 고대와 중세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전과 다른 성격으로 돌변한 것을 다른 사람의 영혼이 머리 속에 침범해서 점령한 것으로 보게 된 것은 현상학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빙의 현상은 14, 15, 16세기에 절정에 달했다. 유럽을 휩쓸었던 마녀 사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귀신에 사로 잡힌 여성들(대부분이 여성들)을 악마, 마녀라고 불렀고 그들을 불태워 죽이는 화형식이 유행을 했다. 이 시점에서 유럽에서 10만 명의 여성들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희생이 되었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18세기에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학교가 세워지고 과학이 등장하면서 물리학, 생물학 더불어 전기, 자장 이론이 등장하면서 의사인 메즈머가 귀신의 장난이 아니고 정신병이라는 이름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히스테리아가 병으로 그리고 치료로써 자석 치료가 등장하게 된 것은 이미 여러 차례 글에서 밝혔다.


첫 자석 치료 등장 후 50년 만에 영국의 외과 의사인 브레이트(Braid)에 의해서 1843년에 최면학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치료를 하는 사람도 최면사로 바뀌면서 프랑스에서 의과대학의 교수였던 가로코트의 히스테리아의 최면 치료의 세계적인 명사로 그리고 낸시 학교의 대표자인 베른헤임이 최면 치료의 대가로써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최면을 통해서 어린 시절에 신체적 학대, 섹스학대, 감정적 학대가 히스테리아의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최면의 상태의 현상에서 프로이트의 유명한 무의식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최면에 걸린 환자들이 최면에서 깨어났을 때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관찰했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는 의식과 기억을 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를 이론화 한 것이다.


20세기 초반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4명의 역동적 정신의학자들은 모두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로써 그들 자신을 스스로를 심리학자로 불렀다. 프로이트는 비엔나 의과 대학의 신경학 전공이고, (Jung)은 스위스의 바셀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이고 에들러(Adler)는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에르 장(Pierre Janet)은 고교 철학 교사로 있다가 늦깎이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된 사람으로 가르코트의 살페트리에(Salpetriere) 병원에서 가르코트의 특별 배려로 실험실에서 9년 동안 최면 치료를 한 장본인이다. 그는 1902년에 파리의 솔본 대학에서 심리학을 강의를 했다. 이후에 그는 파리 대학에서 실험 심리학과 비교 심리학 학과장으로 근무를 했다.


프로이트는 그 자신을 심리학자로 불렀다. 그는 실험심리학과 대조적으로 1896년에 처음으로 정신분석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닌 큰 심리학(meta-psychology)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어서 그는 1910년에 자신의 논문들을 큰 심리학으로 분류를 했다.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정신분석과 구분되는 자신의 치료 이론을 분석 심리학(Analytic Psychology)으로 이름을 붙였다. 에들러 역시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의 치료 이론을 개인 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으로 이름을 붙였다. 모두가 스스로 심리학자로 지칭을 했다(Ellenberger, 1970).


그러나 심리학자들이 모두가 치료 심리학자들은 아니다. 심리과학은 1879년에 독일의 라이프지그(Leipzig)대학에서 3대에 걸쳐서 실험실에서 분트(Wundt)에 의해서 태어나게 된다. 분트의 스승인 구스타브 페커너(Gustave Fechner)는 철저한 실험 물리학자로 심리물리학이라는 저서를 쓴 심리물리학자이고 그의 스승인 웨버(Weber) 역시 심리생물학이라는 책을 쓴 심리생물학자였다. 세 사람은 모두가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로써 의사 직업을 포기하고 대학에서 교수가 된 사람들이다. 분트는 실험실에서 감각과 지각이라는 분야를 연구해서 마음을 수학적으로 측정한 사람으로써 심리학을 과학으로 끌어 올린 장본인이다.


물론 그의 이론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실험실에서 수학과 물리학과 생물학과 대등한 입장에서 실험하고 증명을 하는 실험 심리학이 되었다. 미국의 심리학회의 소속으로 등록된 심리학자들의 60%는 상담과 치료를 하는 심리학자들이고 30%는 실험실에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로 이들은 순수 심리학자로 그리고 상담과 치료를 하는 심리학자들은 응용 심리학자로 분류하고 있다.


순수 심리학에서 세계적인 대가가 바로 하버드 대학에서 실험 심리학자인 비에프 스키너(B.F. Skinner)이다. 그는 대학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시를 낭독한 유명한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고교 영어 교과서에 실린 눈 오는 날 저녁에 숲 속에 서서라는 시)에게 자신의 시를 보내서 자신이 시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조언을 요청을 했다. 프로스트로부터 그는 당신은 시인이 되는 것 보다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좋겠다는 편지를 받고 시인의 길을 포기하고 심리학을 전공해서 실험실에서 비둘기, 원숭이, 실험 쥐 등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을 연구해서 강화 이론을 창설한 장본인이다.


다시 심리신체 질병 혹은 심인성질환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인 정신분석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을 해서 자아장애 치료(성격장애) 혹은 신체적 질병을 치료하게 된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일반 질병들 중에서 고질병으로 원인과 치료가 알려지지 않는 질병들의 치료에 정신분석이 응용되어지게 되면서 심인성질환 의학 혹은 심리신체 의학이라는 학문의 탄생으로 연결된다.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미국으로 그리고 남아메리카로 흩어지게 되면서 정신분석의 복음의 씨앗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유럽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정신분석가 된 멜리타 스펠링(Melitta Sperling)은 뉴욕 대학에서 심인성질환을 강의하고 치료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유아들의 아토피, 습진, 소화성 장애 등을 어린이들의 부모님의 치료를 통해서 부모님과 어린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치료를 하면서 심리신체 의학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시도를 했다. 그녀의 스타디 그룹으로 시작되어 나중에 뉴욕의 심리신체 의학학회 혹은 심인성질환 학회가 설립이 되었다.


컬럼비아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컬럽비아 의과대학부설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필립 윌슨(Philip Wilson), 뉴욕 의과대학 교수이자 컬럼비아 의과대학부설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알라 민처(Ira Mintz),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교수이자 컬럼비아 의과대학 부설 정신분석 학교 교수인 찰스 호간(Charles Hogan), 뉴욕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뉴저지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세실리아 케롤(Cecilia Karol),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은퇴 후에 보스톤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인 세실 무사트(Cecil Mushatt)가 공동작으로 심인성질환 의학과 증세들을 출판을 했다(Wilson et al., 1989: 주㈜: 참고).


또 다른 한 개의 학파가 프로이트의 제자로써 시카고에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시카고 대학에서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가 된 프란츠 알렉산더(Franz Alexander)가 있다. 그는 만년에 L.A.의 남가주 의과대학 교수로써 남가주 정신분석학교를 창설했다. 그의 제자들인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교수들의 그룹으로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부학장인 토마스 프렌치(Thomas French), 시카고 미첼 리스 병원의 학과장으로 이후에 시카고 의과대학 정신과 학장이 된 로이 그린크(Roy Grinker), 필라델피아의 템플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레오 사울(Leo Saul), 켄사스의 메닝거(Menninger 재단의 메닝거 형제들인 칼(Karl) 메닝거, 윌리암(William) 메닝거 등의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심인성질환 의학의 가장 흔히 등장하는 7개의 질병을 시카고 세븐이라고 불렀다. 고질병으로 알려진 루마치스 관절염, 습진인 아토피, 천식, 비염, 본태성 고혈압, 편두통, 소화성 궤양들(십이지장 궤양, 급성 국소성 소장염인 크론 질병, 과민성 대장염, 그레이브 질병(갑상선과다증으로 눈알이 튀어 나오는 바세도시 병) 등의 질병들을 정신분석치료 기법으로 치료를 했다. 그들의 논문을 모아서 1957년에 심인성질환 의학이라는 저서를 출판을 했다(Alexander et al., 1957: 주㈜: 참고).


이들의 치료는 심리치료를 처음으로 신체 질병 치료에 응용한 선구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론과 치료는 실험실에서 나온 치료 이론이 아니고 실험을 할 수 없는 정신분석학에서 나온 큰 심리학의 뿌리이기 때문에 과학계로부터 멸시, 천대,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1950년 대에 등장한 스트레스 이론의 창시자인 한스 셀리(Hans Seyle, 1956: 주㈜: 참고)에 의해서 삶의 스트레스 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실험실 의학들에 의해서 심인성 질환의 심리치료의 과학적인 증거가 등장하게 된다. 한스 셀리는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체코의 프레이그 의과대학에서 내분비 의학을 전공을 했다. 그는 이후에 미국의 존 홉킨즈 의과대학 실험실에서 그가 의대 학생 시절에 눈여겨 보았던 실험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을 했다. 이후에 그는 캐나다에 귀화해서 캐나다의 몬트리올 의과대학 실험실에서 그의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실험 쥐에 전기 쇼크를 제공하면 위궤양으로 변하는 것을 관찰로써 실험을 통해서 그의 유명한 스트레스라는 신조어를 창조했다.


지금까지 질병은 외부의 침범자들인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에 의해서 생긴 질병들이었으나 과학의 발달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 내부에서 이 스트레스를 담당하는 부진피질 호르몬인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과대 방출하게 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실험실의 쥐들을 통해서 입증을 했다. 즉 인체는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체 방어용으로 부신(신장의 옆에 붙어있는 삼각형 모양)에서 아드레날린 이라는 호르몬을 방출하게 되면 우리의 몸에 비상이 걸리게 된다. 그는 이러한 생리학적인 과정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소상하게 설명을 했다. 극 뇌가 위기를 직감하게 되면 뇌 안에 위기 통제센터인 시상하부가 신호를 보내서 우리 몸의 호르몬을 관리하는 센터인 뇌하수체에 명령으로 부신피질자극 호르몬을 방출하게 되고 이 호르몬에 의해서 부신피질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코르티숀, 코르티졸 등의 속칭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대량으로 방출되면서 이 호르몬이 가슴샘인 흉선 호르몬 샘과 위장와 임파구 세포들(B세포, T 세포)을 자극하게 되면서 우리 몸 전체에 비상이 걸리게 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을 했다.


계속된 스트레스의 장기적인 방출로써 결국은 몸에서 염증이 생기게 되고 이것을 치료 하기 위해서 몸은 자체 항-염증부신피질호르몬과 이것을 중화 시키는 친-염증부신피질호르몬을 방출하게 되는데 이것을 염증에 대한 저항 단계라고 불렀다. 이러한 저항단계가 계속 누적되어 길어지게 되면 인체 조직은 소멸 단계로 조직이 망가지게 된다고 경고를 했다.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장기화 되면 인체가 자신의 몸 안에서 생긴 염증들을 자연치료를 하는 과정이 결국은 조직에 죽음으로 연결되어 질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가 면역 질병인 심인성질병들 즉 루마치스 관절염, 아토피 습진 등의 질병이 된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증명을 했다. 그는 스트레스는 반드시 부정적인 자극들만이 아니고 즐거움도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즉 승진, 결혼, 콘테스트에서 우승 등도 스트레스로써 신체적인 흥분 상태가 작동하는 호르몬 조직은 같다. 고로 즐거움 역시 호르몬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활력소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것을 야트와 닷슨이라는 학자들이 수학 공식으로 야트와 닷슨의 법칙으로 내 놓았다.


아래의 그림에서 정상 분포 곡선을 보라, U 형 커브를 거꾸로 X대와 Y대에 걸쳐 놓은 모양을 보면 일의 능률을 올리는 Y대와 스트레스를 표시하는 X 대에 그래프를 보면 일의 능률이 0가 되는 것은 스트레스가 최하일 때이다. 즉 스트레스가 없으면 일을 능률이 없다는 것이다. 일의 능률이 최대가 되는 점은 스트레스가 중간 지점일 때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최고가 되면 일을 능률은 0가 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일의 능률에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일의 능률을 방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쉽게 이야기를 하면 삶에서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계속되는 스트레스 혹은 과도한 스트레스가 장기화 되면 몸에 호르몬 변화를 초대해서 몸의 조직이 파괴된다.


셀리는 외부의 박테리아 혹은 바이러스의 침범으로 생기는 질병보다 인체 내부에서 자체 방어로써 과잉방어가 오히려 자체의 자가 면역으로 병을 일으키는 것은 치료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가 면역 즉 우리의 신체가 서로 커뮤니케이션의 오판으로 자신의 자체의 면역을 적으로 오인해서 공격해서 생기는 질병이 바로 암이라는 질병이라고 강조를 했다. 암은 아직도 치료 약이 없다. 조기에 치료를 해서 빨리 발견을 하는 방법이 최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질병들이 바로 심인성질환으로 이들의 치료는 과도한 긴장을 줄이는 치료 요법으로 그는 정신분석을 추천하고 있고 그의 저서에서 제 13 장은 심인성질환에 대해서 노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평소에 몸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누적되어지지 않도록 하는 스트레스 해소 운동들을 추천을 했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스트레스 이론에 더 붙여서 심리신체 질병을 지지해주는 새로운 과학이 컴퓨터의 등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면역학(immunology)이다. 박테리아와 바이르서가 몸에 침범하면 우리 몸의 비상 사태가 어떻게 선포되어지는가?의 셀리(Seyle)의 호르몬 조직의 설명에 더 붙여서 이번에는 신경 세포들의 구체적인 이동과 외부 병원체들의 공격과 방어들이 소장하게 밝혀지게 된 것이다.

 

시카고의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의 세계적인 면역학의 대가인 패터슨(Patterson)의 제자들이 면역학을 미국의 각 의과대학으로 전파를 시켰다. 1972년도에 제 7판으로 페터슨의 알레르기 질병의 저서(Grammer& Greenberger, 2009: 주㈜: 참고)에서 63명의 그의 제자들이 제 각각의 논문들을 모아서 면역질병인 알레르기 질병들에 대한 저서를 출판을 했다. 그 책을 통해서 우리 몸 안에서 어떻게 면역 조직이 외부와 내부의 적들을 소탕하고 잡아먹고 몸을 보호하는가? 하는 것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핵심을 요약하고자 한다.


고대인들 즉 고대 이집트인들과 중국의 의술인 들은 한번 병에 걸리면 그 다음에는 그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시신의 기증으로 다른 사람의 몸의 조직을 자신의 몸으로 이식을 시키면 살아남을 수 없지만 자신의 몸의 일부를 자신의 몸으로 이식을 시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몸은 3 단계의 방어조직을 가지고 있다. 1 차 방어 조직은 자연스러운 몸의 방어 조직으로 피부, 피부의 점막, 성기의 주변의 축축한 약한 산성, 그리고 위액의 pH 4의 강산성 등은 외부의 적들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다. 


2 차 방어 조직은 외부에서 미생물이 침범을 했을 때 즉각적인 행동들이 최근에 밝혀졌다. 세포의 염색체 안에서 미생물의 세계의 이해가 밝혀지게 되었다. 외부와 내부의 세포막 위에 수용돌기 세트들(PRRs)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주인 세포에 다른 외부 미생물이 침범해서 그 세포가 파괴되거나, 오염되거나, 감염된 세포들을 식별한다. 세포와 세포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인 시토카인(세포들 사이에 신호전달 단백질 인자)이라는 통신망을 통해서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즉각 그들을 파괴해서 잡아 먹은 식세포들이 출동을 한다. 식세포들은 그들의 내부에 고속도로처럼 톨게이트들과 유사한 톨 수용돌기(TLR 1,TLR 2,TLR 3-------TLR 11)을 몸의 곳곳에 설치해서 적들이 통과할 때 그들을 검문하고 검색을 한다. 다양한 11개 종류의 톨 수용돌기들이 외부 세포로부터 도착하는 자극을 탐색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


3 의 면역 조직은 좀더 구체적이다. 병원체에 감염되어 오염 혹은 조직에 이상이 생긴 세포들을 인식패턴 수용돌기(PRRs) 들이 포착해서 시토카인으로 신호를 감지하면 즉각 기동타격대인 T 임파구(T세포)들이 출동을 해서 그들을 포위하고 그들을 둘러싸고 더 이상의 감염을 막는다. T 임파구의 표면에 수용돌기들인 CD 3,CD 4,CD 4 ----CD 7 그리고 TH 1, TH 2---TH 8 등이 감염되고 변질된 세포들을 둘러싸고 조각조작으로 불리 시켜서 그들을 용해시키고 식세로로 하여금 잡아먹게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의 힘으로 부족하다고 인식되면 이번에는 B임파구(B세포)가 출동을 한다, 전면전을 벌리는 것이다. B 임파구는 골수에서 생산되어져서 가슴샘, 즉 흉선으로 이동을 해서 그곳에서 상주하면서 일부는 T 임파구로 바뀐다. 직접적으로 파괴된 감염된 세포들을 처리 한다. 그리고 또 살해 세포인 K와 자연살해 세포인 NK 들이 수시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병균들과 오염된 자기 세포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 몸에서 B 임파구와 T 임파구들은 최소 1천만 개에서 1억 개로써 한번 몸에 침범한 바이러스 혹은 박테리아들을 기억을 해서 식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가 항원들을 보호하고 외부의 항원들을 공격하고 파괴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외부의 항원들 즉 침범자들을 식별하는 세포 조직인 면역글로불린 A D(Ig A, Ig D), 그리고 1967년에 이시자카((Ishizaka)가 면역글로불린 E(Ig E)를 발견해서 이 면역글로불린들이 결정적으로 병균에 대항하는 인자임을 밝혀냈다. 그 외에도 Ig G, Ig M 등이 밝혀졌다. 몸 속에 면역글로불린 E(Ig E)의 비율이 높을 수록 아토피 습진, 비염, 천식의 발병 비율이 높았다. 과도하게 예민함을 반영하는 감각 세포로 알려졌다. 이들은 인두, 편두, 기관지 복막 등에 거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와 같은 면역 조직은 양날의 칼로 비유가 된다. 외부와 내부의 적들을 파괴 시키지만 자신의 조직을 적으로 오판해서 아군을 적군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가 면역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해롭지 않는 것을 해로운 것으로 오인해서 과민반응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다. 1902년에 파상풍과 티프테리아 예방약을 연구를 하고 있던 리체(Richet)와 포러티에(Portie)가 개에게 말미잘을 그리고 말에게 말미잘을 항원을 주사한 결과 즉각적인 과민반응으로 사망을 한 것에서 예방약이 오히려 급성 과민알레르기 반응을 생산했다는 그리스의 글자를 따와서 아나필락시스(Anaphylacsis)라는 이름으로 아나, Ana는 그리스어로 뒤로라는 뜻이고 필락시스(phylacsis)라는 보호이라는 뜻으로 예방의 그리스어이다.


예방이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라켓은 이 연구로의 공로로 1913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또한 1987년에 프랑스의 기념 우표로 발행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Mcgath, 2009). 아나필락시스는 알레르기 질병 중에서 가장 위험한 급작성 과민증으로 불리고 있다. 아나필락시스는 70%가 호흡불평으로 사망하고 24%가 심장혈관 실패로 사망한다고 밝혀졌다(Mcgath, 2009).


아나필락시스는 그 이후에 몇 편의 연구 논문들이 이어져 오다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연구 논문들이 출판되어지게 되었다. 1991년에서 2004년까지 영국의 일반 병원에서 입원한 아나필락시스 환자들 수는 700%로 증가했다. 매년마다 아나필락시스의 환자들 수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식과 아토피를 가진 환자들은 아나필락시스의 발생 빈도수가 증가했다.


언론매체들에 간혹 보도되고 있는 벌에 쏘여 사망한 사람들 혹은 어떤 음식을 먹고 급작성 발짝 사망 혹은 마취 주사를 맞고 호흡 중단으로 사망 혹은 마취 주사 후에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 등의 보도들이 바로 급작성 과민증인 아나필락시스로 사망한 사람들로 보인다.


알레르기 질병이 면역 기능의 과잉 과민반응으로 나타나는 면역질병으로 밝혀지면서 면역과 심리학과 연결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학문으로 등장을 했다. 이들이 바로 1975년에 뉴욕 로체스트 의과대학의 면역학자 니콜라스 코헨(Nicholas Cohen) 교수와 심리학자인 로버트 아더(Robert Ader)가 공동 연구로써 새로운 신조어로써 만든 PNI라는 학문으로 심리-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 àpsychoneuroimmunology)이다. 인간의 마음인 심리학과 신경학은 이미 앞에서 논의가 되었다 여기에서 면역학이 첨부되면서 심인성질환, 심리신체 의학의 핵심 지지자가 등장한 것이다 


더 붙여서 1981년에 인디아나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펠턴(David Felten)이 혈관으로뿐만 아니라 면역조직으로 연결되는 신경세포의 그물망을 발견을 했다. 그와 동료 연구진은 임파구, 식세포, 마스트 세포의 군집 근처에서 가슴샘, 흉선과 비장의 신경들도 면역 기능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발견을 했다. 이 발견이 심리와 신경과 면역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최초의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에 의해서 시카고 세븐은 면역질병으로 확정이 되었고 그들의 치료는 정신분석 치료로써 긴장과 스트레스를 줄이면 자연적으로 면역 기능을 증가시킬 수 있고 알레르기 질병들은 면역 기능을 높임으로써 치료가 된다는 것이 실험실의 과학으로 증명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스텐포드 의과대학의 웨이너(Weiner, 1977: 주㈜: 참고)의 생리심리학과 인간의 질병의 책을 읽고 습진이 바로 아토피라는 것을 알고 나서 알레르기 질병들의 핵심인 아토피 습진, 비염, 천식, 그리고 꽃가루 알레르기가 가져오는 알레르기 질병에 대한 더욱 더 연구를 위해서 영국의 노팅험 의과대학 피부학 교수인 윌리엄(William, 2000: 주㈜: 참고)이 유럽의 저명한 의과대학의 23명의 피부학 교수들의 논문을 모은 아토피 피부염의 저서를 구입해서 정독을 해서 아토피, 비염, 천식의 홈 페이지를 만들어 놓았다(필요한 사람들은 아토피 피부염, 비염, 천식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지금까지 심리신체 혹은 심인성 질환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와 치료의 진화 과정들을 살펴보았다. 치료자는 이들의 지식과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위의 심리신체 질병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치료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있던 상담 교사와 그녀의 내담자인 학생의 아토피의 치료 과정을 졸업 논문을 지도하면서 두 사람의 성공적인 아토피 치료와 그리고 6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B부인의 편두통의 성공적인 치료 그리고 27세의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3년째의 여학생으로 치료자로부터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루마치스 관절염의 성공적인 치료 그리고 3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소화성 장애들을 해결한 30대 중반의 회사원 그리고 1 6개월 동안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원형 탈모증을 그리고 27세의 대학 4학년으로 치료자에게 2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대학생의 원형 탈모증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사례를 그리고 2시간 컨설팅을 받으면서 8년 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효과를 보지 못한 심각한 소화성 궤양의 치료의 브리핑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은 위의 심리신체 장애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 아니고 신경정신과 의사의 치료 결과에 불만족해서 치료자를 찾아온 우울증, 불안증, 자아 장애, 강박증 등을 치료를 받으면서 위와 같은 증세들이 밝혀진 것이다. 지금까지 치료자를 찾아온 손님(치료자는 환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치료자를 방문한 손님으로 호칭)들은 정신과에서 진단한 우울증 불안증, 조울증, 조현병 등등의 장애들을 한가지만 가진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이 진단된 병명 이외에 두통, 설사, 변비, 과민성 대장염, 아토피, 비염, 천식 등을 한 개 혹은 두 가지씩 증세들을 가지고 있었다. 치료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진단되어진 장애 이외에 6개월 이상의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긴장의 완화와 운동으로(치료자는 심리치료에 더 붙여서 반드시 하루에 1시간씩 운동을 권유한다) 마음과 몸을 함께 다루는 과정으로 이들의 이름을 페키지 치료라고 명명을 했다.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부수적으로 두통, 위궤양, 아토피, 비염 등을 함께 해결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페키지 치료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페키지 치료에 들어가 보세요).


첫 번째 치료 사례로써 현직 교사로써 교육 대학원에서 교육 상담을 공부하고 있던 A 교사가 2년 동안의 학업을 수료하면서 졸업 논문으로 그녀가 담임을 하고 있던 반의 학생들 중에서 1명 혹은 2명의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학생들을 선택을 해서 4개월 동안 1주일에 3회 혹은 4회로 1회기당 40-50분 상담으로 그들의 행동을 수정하는 치료 실습을 하면서 마지막 졸업 논문을 준비하는 상담 실습 과목을 지도 교수로써 치료자가 담당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반에서 아토피가 있는 한 여학생을 선정을 했고 더 붙여서 상담 교사인 그녀 자신도 아토피를 가지고 있었다. 아토피는 면역 기능의 질병으로 약물로 치료가 되는 피부병이 아니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도한 긴장과 예민함을 감각 박탈의 행동 수정 기법으로 학 학기 동안 치료자의 슈퍼비젼으로 1주일에 1회씩 치료자에게 상담 과정을 보고하고 치료자의 감독과 지도로써 그 내담자 학생이 받는 스트레스와 과중한 학업 부담을 들어 주도록 학부모와 따로 상담을 가지도록 지도한 결과 4개월 후에 그 학생의 아토피가 사라졌고 그리고 그 상담자인 교사의 아토피도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사례의 결과를 졸업 논문으로 써서 통과를 받았다.


두 번째는 B부인이 결혼 전에 4년 동안 치료자로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았을 때 그녀는 심각한 편두통을 호소를 했다. 편두통은 눈의 시야가 흐려지는 전구 증세를 느끼면서 심한 두통과 함께 메스꺼움과 구토가 나오고 잇달아서 대변이 나오고 현기증을 느낀다고 했다. 편두통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팽창된 혈관의 근육 수축 때 확장된 혈관이 해소되면서 따라오는 통증으로 학계에 보고가 되어있다. 그녀의 문제들을 분석하면서 그녀가 심각한 갈등과 대인관계에서 고통 이후에 편두통이 따라 온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내면서 그러한 편두통의 전구 증세를 느낄 때 내면에 쌓인 분노와 짜증을 말로써 표현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한 결과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녀가 심각한 편두통의 고통을 조금씩 완화 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4년 동안 치료자에게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으면서 간간히 편두통을 함께 다루어나갔다. 결혼 후에 임신 7개월까지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다가 출산으로 자녀 양육을 위해서 심리치료를 중단을 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후에 2년 전에 그녀의 아들은 5세 딸은 3세로 두 명의 자녀들이 유치원과 유아원으로 가게 되면서 그녀는 다시 일자리를 얻어서 심리치료가 재게 되어 지금까지 2년 정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의 대인관계는 많이 개선되어 직장에서 어려움들은 해소가 되었다. 치료를 재게 하면서 그녀의 편두통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간간히 편두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녀가 스트레스를 대응해 나가는 대응 능력의 개선으로 전구 증세를 느끼고 약간의 시야가 흐려지는 수준으로 약간의 메스꺼움을 느끼는 수준에서 편두통을 멈출 수 있도록 컨트롤할 수가 있게 되었다. 최근에 그녀는 남편과 부부 관계가 좋아지고 그리고 자녀들이 잘 성장을 해서 동료들과 유치원에서 잘 지내고 있고 그리고 자녀들을 잘 양육을 했다는 자부심 등으로 직장에서 동료들과 큰 갈등이 없이 그녀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편두통의 호소는 거의 사라졌다. 최근의 몇 개월 동안은 편두통이 증세가 등장하지 않았다.

 

세 번째의 사례는 27세의 대학원 여성으로 그녀는 결혼 후에 남편의 지원으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심각한 부부 사이에 갈등으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요청하게 되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그녀는 이미 10년 전에 외고 2학년 때 심각한 난독증과 불안증으로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그녀와 유사한 치료 사례를 보고 아버지에게 심리치료의 지원을 요청하려고 했으나 아버지와 갈등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로써 하지 못하고 4장의 A4 용지에 그녀의 증세들과 고통을 호소 했지만 아버지는 치료자가 사이비라고 판단을 해서 다른 심리 상담자에 치료를 받게 했다. 그녀는 2년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위기는 넘길 수 있었지만 중간에 자주 결석을 하게 되면서 불만족한 상태로 대학에 진학으로 치료를 포기를 했다.


그리고 세월이 10년이 흘러가면서 결국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갈등과 동료들과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억압되어 누적된 분노들이 지금의 남편에게로 흘러간다는 것을 밝혀졌다. 치료의 과정에서 그녀는 대학원의 연구 조교들과 한 학기의 종강 마무리 회식 때 식사를 하다가 턱 관절이 갑자기 뚝 하는 소리에 놀래서 그 다음 날에 병원에서 X-선 검사 결과 루마치스 관절염으로 턱 관절 뼈가 녹이 내리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의사의 처방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만 계속된 정기 검사인 X-선 촬영은 계속해서 악화되어지고 있다고 걱정을 했다. 치료자는 그녀의 내면 속에 억압되어져 있는 부모님에 대한 분노 그리고 대학원의 지도 교수의 강압적인 갑질에 살인 분노 그리고 남편으로 방향이 바뀌어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내고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하도록 하는 치료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루마치스 관절염은 내면에 쌓인 분노와 노여움이 관절로 흘러 들어가서 관절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는 것을 치료자가 잘 알고 있었다.


30 시간의 치료 회기를 거치면서 그녀는 xx 대학병원에서 턱 뼈의 X-선 정기 검진에서 주치의가 깜짝 놀래면서 뼈의 녹아 내림이 멈추면서 거꾸로 새로운 성장으로 나타난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30시간 정도의 치료 회기에서 뼈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지? 치료자의 분노의 방출이 뼈를 멈추게 했다는 분석에 의문을 표시를 했다. 치료자는 뼈가 멈추고 새로운 성장을 했다는 것은 충분하다고 그 배경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몇 년 전에 치료자가 회전 의자에 올라가서 벽장에서 물건을 내리다가 의자의 바퀴가 구르는 바람에 방바닥에 팽개쳐져서 골반 뼈가 골절이 되어 정형외과 병원에서 입원을 해서 수술을 받았는데 뼈의 접목과 회복이 6주일이 걸린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3주일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철제로 고정된 부착물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어 대소변을 받아냈지만 3주일 때 몸에 부착된 고착 물을 제거할 수 있었고 휠체어로 이동 그리고 6주일 만에 목발로 퇴원을 했고 8주일에 완전히 회복으로 걸음걸이와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30시간이면 1주일에 2시간으로 1개월이면 8시간으로 4개월의 기간에 뼈가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그녀는 인정을 했다.


네 번째 사례는 대학 2학년의 남학생으로 그가 군복무 후에 복학을 하면서 심한 난독증으로 공부에 어려움과 그리고 비염으로 코 수술 때문에 학교를 휴학하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요청을 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치료자의 심리학 강의를 듣고 나서 심한 불안으로 고통을 받아왔다고 호소를 했다. 비염의 수술 이후에 그는 수술 전과 후에 차이가 별로 없다고 불평을 했다. 코의 문제와 난독증의 문제가 겹치면서 복학 후에 중간 고사의 실패로 1년간 휴학계를 내고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요청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난독증은 과도한 불안으로 뇌의 회전 능력이 감소하면서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난독증을 생리적인 신체적인 결함이 아닌 과도한 불안으로 주의 집중력이 훼손되어 기억의 연결이 끊어지는 현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심하게 불안한 상황에서는 머리에 입력이 잘 안되고 금방 들었던 것을 잊어버리는 현상((치료자의 난독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은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능률이 최하가 된다는 와트와 닷슨의 법칙을 인용하면서 너무 과도한 긴장은 뇌의 회전 능력을 감소 시키고 기억의 연상이 끊어지는 해리현상으로 설명을 했다. 고로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연상으로 학습을 하면 주의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치료의 과정에서 한 단계씩 뚫고 나가게 했다. 치료가 1년이 지나가면서 그는 복학을 할 수 있었고 미리 예습으로 과도한 시험 부담을 줄이면서 자신감을 울리고 무조건 외우려고 하지 말고 연상으로 학습을 하도록 한 결과 그는 1학기의 학점을 올 A 학점으로 난독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동시에 비염은 긴장의 완화로 인한 면역기능의 상승으로 1 6개월의 치료 결과 더 비염은 이상 그의 코를 괴롭히지 않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다섯 번째는 23세의 간호사로써 우울증으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잃어버렸고 아버지가 재혼을 미루는 바람에 그녀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식사와 빨래 등을 도맡아서 그리고 간질병을 앓고 있는 남동생을 돌보느라고 소녀 가장으로 자신을 희생하게 된 결과 심한 우울증으로 고교 졸업 후에 1년 기간의 간호조무사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게 되면서 사회생활에 내던져졌다는 것이 분석의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녀는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xx 종합 병원에서 2 6개월간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면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대인 기피증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우울증에 빠져서 두문불출하게 되었다. 그녀의 우울증 치료의 과정에서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뒷머리에 5백 원짜리 동전 모양의 원형 탈모증이 있었고 지금까지 10년 동안 그녀의 열등감으로 동료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호소를 했다.


그녀는 고3 인 남동생은 친척 이모가 6세까지 돌보아 주다가 더 이상 그를 컨트롤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그리고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같이 살게 되면서 그녀의 남동생 돌봄의 책임이 맡겨졌다. 그는 간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조기에 치료를 하지 않아서 심각한 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간질병은 어린 시절에 약물을 복용하고 잘 돌보아주었다면 규칙적으로 약물 복용으로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장애인데 방치해서 누나가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 남동생을 돌보아주었는데 사춘기가 다가 오면서 누나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얻어 맞고 있고 그의 분노의 화풀이 대상이 된 지 오래되어 도저히 그를 감당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 여성과 재혼을 해서 동거 생활을 했다가 그녀의 전 남편이 찾아와서 괴롭히는 바람에 갈등으로 가족들에게 상처만 주고 헤어지고 난 이후에는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여동생인 30대 초반의 고모가 아버지의 동거 여성이 떠나고 나서 그녀의 집 근처에서 살면서 그녀와 남동생을 돌보아주는 것에 고마워했으나 그 고모는 동거 남자와 공모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된 승용차와 여러 개의 카드를 만들어서 은행 대출금을 챙겨서 야간 도주를 간 바람에 전기 기사인 아버지의 봉급은 압류를 받아서 월급이 거의 전부 빚을 갚는데 그리고 살고 있었던 빌라는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가 다시 큰 고모의 이름 다시 그 집을 낙찰 받았다.


최근에 고모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생활보호 대상자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 빌라의 등기의 주인이 되어 있어서 생활 보호대상자에서 제외가 되었으니 그 빌라를 가져 가라고 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할 수 없어 딸의 이름으로 등기를 해야 하는데 세금이 약 300만원이 나올 것이라고 해서 아버지는 그 일을 방치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두 개 혹은 간혹 3개의 일을 하면서 초 죽음이 된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치료자는 그녀로 하여금 세무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그 집을 그녀의 이름으로 재 등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나서 아버지에게 그녀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고 300만원의 세금을 물도록 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모가 진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리면서 전화가 오면 욕설과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7년 동안이나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양이가 16마리와 개를 2마리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서 키운 것이 아니고 도둑 고양이를 돌보아주었더니 점점 새끼를 낳아서 16마리가 되었고 그리고 고모가 이사를 가면서 개는 데리고 가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에 버리고 간 2마리의 개까지 합쳐서 그녀의 온 집안은 고양이와 개 들이 같이 살면서 대소변을 가지리 못해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4마리를 가방에 넣어서 아버지가 내다 버렸는데 아직도 12마리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녀가 집안일과 남동생의 컨트롤과 빚으로 짊을 진 경제적인 문제들과 고양이와 개들로 뒤얽혀 있었다. 아버지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었다. 뒤죽박죽이 된 가정사를 정리해서 살아갈 능력이 없어 보였다. 그냥 참고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 역시 아버지의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것을 대물림 한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치료자는 먼저 그녀의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컨트롤을 맡기고 집에서 독립해서 나오게 했다.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 자신의 삶으로 그녀가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서 허락을 받아서 고시원을 얻어서 그녀는 독립해서 생활 할 수가 있게 되어갔다. 고양이는 컨트롤할 수 있는 1마리만 데리고 나오고 나머지는 아버지에게 처분을 하도록 맡기게 했다. 그 시점에서 아버지는 지인의 소개로 한 이혼 여성과 재혼을 할 수가 있었고 아버지가 남동생을 떠 맞을 수가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받은 고통과 자신에게 지워진 소녀 가장으로써의 짊을 진 고통들에 대한 분노와 아버지의 이름으로 돈을 대출을 해서 도망을 가버린 고모와 고모의 남자친구(고모는 그 남자 친구와 결별하고 혼자서 살고 있었다)에게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도록 하는 치료의 과정을 진행해 나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 후에 알코올 중독과 흡연과 암으로 그녀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어린 시절 즉 0-6세 때까지 어머니의 돌봄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말로써 표현하게 되면서 그녀의 내면에 쌓인 누적된 분노는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규칙적인 생활로써 치료 시작 후 약 6개월의 치료 시간이 지나가면서 밤과 낮이 거꾸로 된 그녀의 생활이 질서를 잡아나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녀는 어머니의 일을 도맡아 하면서 빨래와 가족들의 식사 준비에 발목이 잡혀서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지만 그런대로 성적은 중간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집안 일 때문에 용의가 불결해서 동료들이 그녀의 몸과 옷에서 냄새가 난다고 불평을 하고 피하는 바람에 심한 따돌림과 대인관계의 갈등으로 고통을 받은 것들이 밝혀졌다. 장애인 남동생을 학교에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동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한 수치심들이 하나씩 치료 회기에서 다루어지고 의사소통의 훈련이 진행되면서 그녀는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동료들과 어떻게 관계를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등이 다루어지면서 생활은 안정이 되고 2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우울증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다른 사람들의 치료 사례들과 그녀 자신의 치료 사례들을 끝임 없이 비교 대조를 해서 자신의 내면의 자아를 직면하고 어떻게 그녀가 23년을 살아왔는가?를 스스로 관찰하고 자아 수정에 적극적이 되어서 내면의 사적인 자아가 자라나서 동료들과 관계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형편이 비슷한 편부모 밑에서 자라난 몇몇의 친구들과 다시 연결을 함으로써 친구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었다. 내면에 억압된 분노가 말로써 방출 되어지면서 신체적 긴장이 해소되고 자신감을 회복해서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오면서 그녀의 원형 탈모는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여섯 번째의 사례는 27세의 대학 4학년 학생이 동성애 치료를 요청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분석 치료가 1 6개월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그의 동성애 섹스 관계는 완전히 중단이 되었다. 더 붙여서 그는 상상 속에서 이성에 대한 흥분과 자위행위를 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그의 머리의 뒷부분에 500원짜리 동전만한 원형 탈모가 새롭게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심리신체 질환인 원형탈모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기로 한다.


새롭게 등장한 원형 탈모 때문에 동성애 치료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는 과거의 회상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원형 탈모가 처음으로 잠깐 등장한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의 하루 일과를 분석해 본 결과 그는 매일 같이 거울을 쳐다 보면서 원형 탈모가 대머리로 이어질 것이 아닌가? 라고 체크를 하는 것이 거의 습관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치료자는 그가 거울을 쳐다 보면서 걱정과 불안 속에 휩쓸리면서 과도한 긴장으로 아드레날린인 스트레스 호르몬의 과도한 방출이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메일 같이 거울을 들려다 보고 원형탈모의 체크를 하는 불안한 행동이 오히려 거꾸로 원형 탈모를 악화 시키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치료자는 그의 어린 시절을 분석 하면서 그가 유치원 시절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피아노 학원의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아서 약 10년간 피아노를 쳤다는 사실을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술 학원에 몇 년간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그는 중학교 3학년 시점에서 어머니에게 전공을 피아노를 하겠다고 요청을 했을 때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께서 극구 반대를 했다. 피아노와 같은 예술은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전공하는 것으로 그 중에서 1%만 성공하는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허락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피아노를 포기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그는 대학 4학년 졸업을 한해 연기하고 인턴 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귀가하면 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원형탈모의 진행의 정도를 매일 같이 체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자는 피아노를 10년 동안 배우고 있을 때 부모님 특별이 어머니가 피아노의 진행 과정을 체크를 하고 피아노 경연 대회에 출전한 경험을 물어 보았을 때 그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는 피아노를 배우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피아노 공부는 순수하게 그가 좋아서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 단계로써 특별한 취미 생활이 없다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치료자는 그에게 피아노를 취미 생활로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다시 시작하도록 권유를 했을 때 그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직장에서 퇴근 후에 그는 1주일에 1회로 피아노 학원의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다시 배우게 되었고 미술 학원에 등록을 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을 했다. 치료자는 그의 과도한 불안과 긴장을 낮추기 위해서 피아노를 칠 때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순수한 즐거움으로 몰입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었다. 어떤 경연 대회에 참가가 아닌 그냥 순수하게 즐거움으로 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 일에 몰입과 긴장 방출이 따라온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을 이후에 그에게 설명을 했다. 그는 흔쾌히 수용을 하고 스스로 피아노와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10개월 후에 그의 원형 탈모는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그의 탈모 자리에는 머리카락이 자라나서 정상으로 회복되어질 수 있었다.


치료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그는 매일 같이 거울을 들려다 보고 자신의 원형탈모를 관찰하고 진행 과정을 체크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치료자는 그의 내면의 사적인 자아가 그 자신의 신체적 자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긴장과 불안이 악순환으로 원형탈모가 악화 되다는 것에서 사적인 자아를 내면의 신체적인 자아로부터 주의 관심을 외부의 대상으로 이동을 시키기로 한 것이다. 몸을 체크하고 관찰하는 것 대신에 피아노와 그림으로 주의 관심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이것이 약 10개월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신체적인 긴장과 과도한 불안을 정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그 결과 원형 탈모는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었다는 것을 그가 깨닫게 된 것이었다.


여덟 번째 사례는 지난 주일에 치료자의 한 지인으로부터 소화기 장애 즉 위와 장의 심각한 장애 때문에 치료사에게 이첩이 된 48세의 한 미혼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2시간 컨설팅을 요청해서 어머니에게 이끌려서 할 수 없이 치료자를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의 시작에서 치료자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딸 앞에서 이야기를 하기가 곤란하다면 딸을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하고 간단하게 10-20분 동안 이야기를 하고 나서 1시간 30분 동안은 딸과 인터뷰 상담을 하고 나서 나머지 30분 동안은 어머니와 딸이 함께 한 자리에서 1시간 30분 동안 분석으로 밝혀진 문제의 원인의 진단과 앞으로 치료 계획을 브리핑을 하게 된다고 설명을 했을 때 어머니는 딸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약 20분 동안 간단하게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딸의 소화성 장애 때문에 지금까지 치료 비용으로 약 2천만 원이 소비되었고 더 이상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다고 눈물로 호소를 했다. 치료의 방법이 있다면 어머니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불 속에 뛰어들어가고 싶다고 호소를 했다. 한의사들의 치료와 공황장애로 병원에 1달간 입원해서 정신과 치료와 그리고 위와 장의 내시경 종합 검사 결과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딸은 이곳 저곳으로 한의사의 쇼핑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와 간단한 인터뷰가 끝나고 따님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이곳은 예의범절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과 논리적으로 말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순서 없이 편안하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머니가 가자고 해서 따라왔을 뿐이라고 시큰둥하게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지금 현재 심리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소화가 안 되고 그리고 위와 장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8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때부터 한의사로부터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가 작년부터 심각해져서 한의사에게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서 너무 강한 약물을 사용해서인지 그것 때문에 공황 장애로 작년 11월 달에 xx 종합병원에서 1달 가량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전무하다고 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올해 초에 xx 내과 위원에 10일 동안 입원으로 링거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Xx 종합병원에서 위내시경과 장 내시경을 받았지만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분석에서 그녀는 대학 시절에는 독일어를 전공했지만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졸업장은 받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한 때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xxx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가 빠져왔지만 그 시점에서 한 남성과 갈등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었다. 그 남자가 결혼을 하자고 그녀를 감금하고 손목을 긋는 사태가 발생해서 그와 헤어졌지만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실토를 했다. 이후에는 동양 철학을 공부를 하게 되었고 10년 전에 xx 동양 철학관을 윤영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사업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열심히 만 하면 손해는 가지 않겠지만 최근에는 몸이 아파서 너무 결근을 하는 바람에 매월 월세만 45만원이 지불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것을 그만 두고 싶은데 어머니는 지금까지 투자를 한 것 때문에 그리고 지금 그 직업을 그만 두면 이 나이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암으로 6개월 시한 부 삶을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15년 동안 연장해서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올인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의 목사님에게는 미신으로 치부되어지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치료자가 또 다른 고민이나 갈등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이 이야기는 어머니가 모르고 있으니 절대로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약속을 요구를 했다. 치료자는 O.K.라고 약속을 하면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어머니가 지금까지 그녀의 위와 장의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서 2천만 원의 돈을 지불했는데 그것 말고도 3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데 1달에 이자가 1백만 원이 넘어간다고 했다. 이것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가 기절 할 것이라고 하면서 절대로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8년 전부터 위와 장의 문제로 한의사들과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아왔는데 심리치료 혹은 심리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쪽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한번씩 눈에 귀신이 보인다고 했다. 어떤 귀신인지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머리를 풀어 헤친 소복을 입은 귀신이 마음이 허약할 때 자주 등장한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조상 귀신이 해코지를 한다고 해서 몇 번의 무당의 굿과 천도제를 지냈다고 고백을 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지금까지 위와 장의 문제를 약물로 해결하기 위해서 특별히 한의사들과 그리고 공황장애로 병원에 입원해서 1달간 신경정신과 약물 치료에 전념을 해서 위와 장의 문제가 해결되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올인 해서 재개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렇지 않는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그녀는 시인을 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위와 장의 문제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의 과도한 방출로써 몸에 이상이 생긴 스트레스 질병인데(한스 셀리의 적응장애로 표현을 참고) 몸의 장애를 먼저 해결하려고 시도를 하는 것은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이 된 것이 아닌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그녀도 그것이 스트레스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어떤 스트레스가 그녀의 몸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가?를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그녀에게 어머니에게 3천만 원을 비밀로 하면서 치료자에게 48시간의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그 빚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효과가 없을 것이니 그녀가 말을 못하면 치료자의 입을 빌려서 오늘 30분 브리핑 시간에 어머니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완강하게 반대를 하다가 약 20분간의 치료사와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마지 못해서 허락을 했다.


2시간의 컨설팅 시간이 오버해서 지나갔지만 치료자는 어머니를 오라고 연락해서 어머니와 딸과 함께 하는 1시간 동안의 브리핑을 통해서 2시간 동안의 문제의 핵심분석과 앞으로 치료 계획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따님의 소화성 장애는 심리신체질병으로 생긴 것으로 동양철학관을 운명하면서 이 사업을 포기하고 싶은데 이것을 포기하려고 하니 지금까지 10년 동안 어머니의 투자가 허사로 돌아간다는 생각과 앞으로 어떤 직업으로 먹고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4년 전부터(아버지의 사망 이후) 교회에 올인 하게 되었는데 목사님에게 이것을 이야기를 하면 미신으로 멸시 조롱을 받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더 붙여서 어머니에게 말을 하지 못한 3천만 원의 빚 때문에 한 달에 1백만 원의 이자를 물고 있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신체적인 위와 장의 장애로 등장한 것인데 따님은 지금까지 약 8년 동안 위와 장의 문제만 해결이 되면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신체적 치료에 올인 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진단을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3천만 원의 빚은 따님이 숨기고 비밀로 하면 그 문제가 점점 커져서 폭발하게 될 것이니(그녀는 사채업자에게 27% 의 이자를 물고 있다고 실토로 그리고 치료자가 이 비밀을 어머니에게 밝혔을 때 어머니가 울면서 노발대발로 딸과 언쟁이 심각했었다) 이것을 어머니가 가족구성원들과 의논을 해서 이 빚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치료사에게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제의를 했다. 그녀는 자아에 상처를 받아서 한쪽으로 생각들이 치우치는 바람에 교회를 통한 믿음 치료와 한의사에 약물 치료 그리고 퇴마의식의 치료에 제한되어진 것은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로 인해서 자아의 연결이 끊어진 해리장애(귀신의 환각)의 요소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고로 장기간의 자아 치료가 병행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따님에게 동양철학에다 심리과학과 정신 의학의 지식들을 치료자로부터 치료를 받으면서 첨가하게 되면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운영해오던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과 교회의 목사님에게는 심리과학과 정신의학의 접목해서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화로써 목사님을 이해를 시킨다면 그 문제는 어려울 것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의 눈이 번쩍 띄는 모습과 어머니가 치료자의 제의에 100% 찬성을 하면서 3시간의 컨설팅을 마무리를 했다. 그 다음 주일에 어머니는 딸의 3천만 원의 빚을 변제해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6개월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계약을 하고 다음 주일부터 치료에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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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역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발달

            :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Ⅰ 권(1953), 제 Ⅱ 권(1955), 제 Ⅲ 권(1957)

            : 김종만(1999): (정신분서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위의 저서들은 우리 나라 말로 번역 되어 치료자가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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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치료자로부터 3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는 30대 초반의 한 남성의 치료사례로서 마지막 치료 종결 시점에서 치료 회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30대 초반의 회사원 D


증세: 지난 7년 동안에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아오면서 약물로써 견디어 오다가 초반기에 약물 효과에 비해서 점점 약물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약물은 내구성이 있기 때문에 초반기에 사용량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초반기 약물 효가가 줄어들 게 되어 약물을 지속해서 사용하게되면 약물의 양을 높여야 똑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신경 정신과 의사에게 이야기를 했으나 약물 과다 복용의 부작용을 우려해서 인지 신경을 써주지 않았음. 그래서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복용 중에 있음


접촉: 인터넷에 우울증 홈페이지에서 치료자우울증에 대한 설명과 치료 사례를 읽고 종합적 심리 검사인 프로파일링을 요청해서 심리 검사에서 심한 우울증으로 먼저 자신의 분석을 해 보고 나서 치료를 결심 하게 됨

진단: 심한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 기간: 네 번째 6개월 계약 후에 2주일에 1회 치료 회기가 3주일로 그리고 4주일에 1회로 바뀌면서 우울증이 4번째 재발하게 됨. 대인관계는 잘 해결해 나가고 있으나 혼자 있을 때 사고 패턴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분석 되어져서 약 1년 동안 2주일에 1회기 그리고 그 중에서 약 6개월은 3주일 혹은 4주일의 인터벌이 길어지면서 우울증의 사고 패턴이 과거로 회기 되어짐이 분석되어 다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 1주일에 1회씩 치료 회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함.

치료 결과: 네 번째 6개월 계약 후 제 16 33 시간( 89 회 치료 회기로 총 179시간)에서 토요일 석, 박사 강의가 학내 분규로 무기 연기 됨에 따라서 강의를 취소하고 D씨와 1주일에 1회씩 치료 회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음. 치료가 5 3일에서 4개월간 끊어 졌다가 9 8일에 휴가 여행을 가다가 들렸다면서 치료자에게 2시간 동안 치료를 받게 되었음

 

치료의 과정 

 D씨는 지난 5 3(일요일) 치료 회기를 끝으로 더 이상 치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연락이 두절 되었고 치료자는 치료를 종료한 것으로 알고 치료 종결을 했었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9 8일에 느닷없이 치료를 오후 2시에 오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치료자는 놀랬지만 O.K.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오후 2 30분에 도착을 해서 휴가 여행을 하다가 지나치면서 들리게 되었다고 2시간 동안 분석 상담을 시작을 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라고 물었을 때 D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고 부서장이 바뀌어서 그 여자 선배는 다른 부서로 가고 과거에 그에게 심리 검사 일을 시키고 빨리 데이터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그에게 심리 검사 데이터지를 D씨가 보는 앞에서 찢어 버린 그 선배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선배는 지난 치료 회기를 종료하고 4개월 쉬기 전에 회식 자리에서 부두 찌개를 숫가락으로 먼저 떠 먹었다고 더러워서 같이 먹을 수 없다면서 가방을 들고 나가 버린 그 선배였다고 털어 놓았다. 그 선배가 한번씩 버럭 화를 내면서 D씨에게 안면 몰수를 하는 통에 그에게 "선배! 그렇게 화를 버럭 내면 내가 과거에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한 상처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게 되어 갑자기 혼란스러우니 말로써 표현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여러 번 문자 메지시를 보낸 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두 번째는 그의 손위 처남이 2-3일마다 한번씩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간섭을 하는 바람에 그의 손위 처남에게 형님이 그렇게 전화를 걸어서 가족 구성원들 끼리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것은 좋은데 결혼을 해서 독립된 가정을 가진 사람에게 그렇게 전화를 자주 걸어서 간섭을 하는 것에 화가 납니다. 너무 자주 전화를 하니까 내가 자치심이 손상을 입는 것 같아서 너무 자주 전화를 하는 것을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손위 처남이 이해를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고 털어 놓았다.


 D씨는 손위 처남이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잘못된 것이 없고 D씨가 한 일은 모든 것이 잘못 되었다고 하는 약간의 나르시즘적인 스타일이 있는데 한번씩 D씨가 손위 처남에게 "같이 개여울에 가서 고기도 잡고 가족 끼리 휴가를 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곳에 가서 뭐가 재미가 있겠는가?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막상 그곳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재미있게 놀아 놓고도 절대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것과같은 일들이 몇 번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잘못된 것을 사과하거나 시인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한 당부를 몇 번 한 후에는 전화가 오는 빈도수가 많이 완화 되었지만 전화를 하는 것은 여전해서 말을 해도 효과가 없고 괜히 그런 말을 해서 자손심만 상했다는 느낌이 들고 부인에게 오빠가 너무 자주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부인은 왜 오빠가 서로 친밀해지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것을 나쁘게 생각을 하느냐?라고 오히려 D씨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역시 부인과는 의사 소통이 되지 않구나!하고 절망을 느꼈다고 말을 했다.


 세 번째는 후배들이 강압과 위협을 하는 선배와는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내면서 D씨 한데는 다가 오지 않고 피하는 것 같아서 서글프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 선배는 D씨가 입사 초반기에 회식 자리에서 먼저 떠났다고 해서 D씨의 빰을 때린 그 선배라고 했다. 그 선배가 최근에 후배들에게 다그치고 강압을 해서 후배들이 그에게 굽실거리고 다가가서 인사를 하면서도 D씨에게는 먼저 와서 인사나 관계를 요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역시 나는 힘이 없고 특이한 재능이 없어서 후배들이 나를 무시하고 피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power가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재능이 없는 것에 자신의 자아가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까지 4개월간은 큰 사건이 없이 조용하게 지냈지만 자신감이 없어지고 에너지가 소진되어져서 살아갈 의욕이 없고 매사에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그 동안 왜 4개월 동안에 소식이 없다가 오늘 치료 회기에 오겠다고 해서 왔는지? 그 이유를 물어 보았을 때 D씨는 치료를 끝내려고 했지만 휴가를 얻어서 이곳을 지나가다가 과거에 4시간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우울하고 속이 답답해서 선생님에게 찾아오고 싶어서 찾아 왔다고 털어 놓았다. D씨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내면의 자아를 분석에 줄 것을 요청을 했다.


 치료자는 치료자와 치료 회기를 중단한지 4개월 동안에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을 칭찬을 하면서 손위 처남과 부서장인 선배에게 썹썹하고 갈등적인 이야기를 한 것은 잘한 것으로 잘 대처해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문제는 자신의 자아 한데 모든 것을 잘못한다고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고 지적을 하면서 계속해서 분석을 해서 그 원인을 찾아 내 보기로 했다.


 먼저 손위 처남 한데 너무 간섭이 심해서 자치심이 훼손 당한다는 느낌을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 손위 처남이 D씨를 공격을 했을 때 어떤 느낌들이 들었는지?에 대해서 소상하게 내 자아의 움직임을 이야기를 해 달라고 요청을 했을 때 D씨는 손위 처남이 그에게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왜 문제가되지 않는 가족 구성원들끼리 친밀하고 더 좋게 느껴지게 만들려고 하는 나의 의도를 모르고 별난 사람처럼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라고 비난, 비판을 듣게 되는 그 순간에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구나! 괜히 이런 말을 해 가지고 긁어서 부스럼이 되었구나!" 라고 자아 비난과 비판이 따라와서 우울하게 된다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 부서장 선배가 버럭 화를 내면서 갑자기 명렬 쪼로 이야기를 했을 때 화를 내지 말고 말로써 조용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여러 번 보냈는데 그 반응 이후에 그 선배가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그리고 D씨의 자아가 어떤 느낌이었는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 선배는 미안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행동을 보였는데 자신의 단점을 인정을 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평생 동안 이렇게 이런 선배와 함께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지고 에너지 고갈을 느끼면서 살고 실은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위의 두 개의 사건에서 D씨는 상대 방의 비난과 처벌이 따라오면 즉각 D씨의 자아는 "내 잘못으로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게 된다"는 자아 처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히면서 그러한 D씨의 자아가 자기 자신의 비난으로 가게 되는 원형은 바로 D씨의 부모님이 D씨기 자기 주장을 한 경우에는 항상 "네 잘못이다"라는 비난과 처벌이 아버지로부터 따라왔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D씨도 시인을 했다. D씨는 한번도 아버지에게 자신의 주장을 한 적이 없고 아버지가 명령이나 지시를 하면서 강압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하라고 시킨 어머니를 회상을 시키면서 아직도 D씨의 어린 시절에 명령, 지시 그리고 처벌적인 비난이 상대로부터 오게 되면 모든 것이 내 잘못으로 몰아가는 D씨의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자아를 보도록 했다.


 치료자는 손위 처남과 부서장 선배가 D씨의 주장에 그즉석에서는 강력하게 D씨를 비난하고 비판을 해서 인정을 하지 않았지만 그 우후에 그들의 행동은 빈도수가 줄어진 것을 지적을 하면서 그들의 비판 비판고 100% 중에 1%-2%는 일말의 진실이 들어 있기 때문에 맞는 말로 들여서 D씨가 그들의 비판을 자신의 잘못됨으로 수용을 해서 자아 비난으로 흘러 갔는데 그러나 반대로 그들도 그후에 D씨의 주장에서 그들의행동의 비난 빈도수가 줄어든 것은 D씨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라는 치료자의 지적에 동의를 했다.


 치료자는 D씨가 조금 전에 스스로 한 이야기 "즉 저 선배는 몇 번 이야기를 해도 바뀔 사람이 아니구나! 앞으로 저런 선배와 평생을 이 직장에서 근무를 해야하니 내가 너무나 비참하고 한심하게 느껴지는구나!"라고 자기 비난과 자신의 잘못으로 비판적인 자아가 작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을 했다. 그러한 순간에 비판적인 모든 것이 내 잘못 이라는 그 자아가 작동을 하는 순간에 "아니야! 저 선배는 항상 자신의 자아 결함, 성격 결함을 내 탓으로 돌리고 있는거야!" "오늘 무엇인가? 잘못되어 불쾌한 감정을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야!"라고 해서 내 잘못을 그의 성격적인 문제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연결하지 않고 그냥 속수무책으로 비난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자아를 지적을 했다.

 사실은 D씨 자신도 그 선배 혹은 그의 손위 처남이 성격적으로 그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시인을 하고 인정을 하고 있다는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해 놓고도 그러한 비난을 받는 그 순간에 D씨의 자아는 그것을 수용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했다.


 치료자가 심리치료 과정에서 여러번 강조를 한 것처럼 D씨는 그 선배 혹은 손위 처남을 변화 시키기 위해서 이곳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D씨 자신이 스스로 변화 되기 위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아까 선배에게 몇 번 이야기를 해도 그 선배를 변화지 않는 사람으로 느끼고 미래가 암울하고 절망으로 느끼고 무엇인가? 내가 잘못해서 그런 비판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적을 하면서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자아가 아직도 비난, 비판에서는 꼼짝 못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비난, 비판을 스스로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도록 했다.


 선배가 비난을 하는 그 순간에 내 자아에게 "버럭 화를 내는 것은 저 선배의 성격 문제이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야!"라고 내 자아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선배가 버럭 화를 내면서 갑자기 정색을 하고 처벌 쪼로 D씨에게 화를 낸 경우에는 "어디에서 당하고 여기에서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구나!"라고 내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선배 미안합니다"라고 그 순간을 넘기고 내 잘못이 아니고 저 선배의 성격 탓이야!"라고 받아 넘기면서 이후에 조용해지면 "선배의 버럭 화를 내는 성격을 좀 고치면 더 좋은 선배가 될 것입니다"라고 지적을 해 주게 되면 비난을 받는 그 순간에는 내 자신의 처벌이 없어지고 나는 그 선배의 버럭 화를 내는 것에 동요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것을 지적을 해 주었을 때 D씨는 시인을 하고 이해가 된다고 했다.


 두 번째의 하소연 문제에서 그러면 후배들에 대한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물었다.이 질문에 대해서 치료자는 D씨에게 후배들에게 D씨가 어떻게 관계를 하고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D씨는 그가 후배들에게 다가 가지 않고 후배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인사도 하고 존경을 표하지 않고 피하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했다.치료자는 D씨는 부서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직책을 맞은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먼저 하고 챙기는 것은 당연한데 직책이 없는 D씨에게 후배들이 먼저 와서 인사를 하고 존경을 표현하는 것을 기대를 하고 있는 D씨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했다. D씨 자신이 먼저 다가가지 않고 그들의 와서 인사를 청하고 존경을 표현하도록 기대를 하고 있다가 그 기대에 부응을 하지 않는 후배들을 보고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자아의 모습을 보도록 했다.


  이러한 치료자의 지적에 D씨는 얼마 전에 후배 2 사람과 같이 저녁 식사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보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데 후배들은 평소에는 자신에게 오지 않고 그 강압적인 선배 앞에서 꼬리를 치고 아양을 떠는 광경을 보면서 power가 없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보리고 무시당하는 느낌들을 느끼면서 우울해지고 살 맛이없어진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D씨가 매일 같이 직장에 오면 후배들과 선배들이 D씨에게 인사를 건네는지? 혹은 친절하게 대하는지?에 대해서 눈과 귀를 열어 놓고 반응을 관찰하고 있는 D씨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부서에게 큰 갈등이 없이 조용하게 지나가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자신의 하는 일에 열중해서 다른 사람들 한데 신경을 쓰지 않는데 D씨는 선배와 후배들이 D씨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을 하는지? 늘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의 그러한 관계 스타일은 이미 중학교 시절에 늘 친구들이 서로 모여서 몰려 다니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power가 없어서 특기나 장기가 없어서 거부당하고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자신을 지적하고 비난하고 자책을 했떤 그의 어린 시절의 관계 스타일이 아직도 작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도록 했다.


 D씨는 여기에서 치료자에게 모든 사람들이 다 D씨처럼 직장에 가면 후배들, 선배들에게 귀를 나팔통처럼 열어 놓고 그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그들의 그에게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을 했을 때 치료자는 만약에 그렇게 생각이 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직장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 보면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뜸을 해 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다른 D씨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과 같다고 지적을 했다. 자신과 갈등이 생기거나 마찰이 생긴 경우에는 신경을 쓰지 일반적인 경우에는 모두가 자신의 하는 일에 열중하지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신경을 쓰는 것은 D씨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매일 같이 학교에 가면 동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분석하고 관찰하고 있었던 그 당시에 D씨가 자신에게 늘 했던 것처럼 "나는 power가 없으니 힘이 없고 재능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나를 떠나고 나를 무시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 지나온 것이 지금도 D씨는 매일 같이 직장에가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도록 했다.


 또 한가지는 그 강압적이고 처벌적인 선배 한데는 후배들이 굽실거리고 아양을 떠는 것을 보니 후배들이 밉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그 선배처럼 강압을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는가?라고 생각이 침투를 한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러한 관계 방식을 그 선배가 부서장 직책에서 제외되면 power를 잃게 되면 존경과 무시는 멸시 조롱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은 이미 그가과거에 같이 일을 했떤 그 차장님 한데서 똑똑하게 보지 않았느냐? 고로 그런 폭력과 강압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나쁜 관계 방식임으로 배우지 말도록 했다.


 D씨는 2시간의 분석 치료에서 이번에도 많은 것을 깨닫고 이해가 되었다고 기뻐했다. 이 시점에서 치료자는 D씨가 치료를 불신하고 있다는 점을 과거에도 몇 번 지적을 했었는데 이번에 강력하게 지적을 했다. D씨가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초반기에 D씨는 치료자를 신뢰하고 분석 치료 과정에서 치료자가 하는 말과 분석을 스폰치처럼 수용을 해서 효과가 그대로 나타났는데 분석 치료 1년이 지나가면서 두 번째. 세 번째 우울증이 재발했을 때부터 치료자를 불신하고 심리치료에 대해서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을 지적을 했다.


 치료자는 그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생각나는 데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했을 때 D씨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치료자는 D씨와 가장 가까운 어머니가 D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외도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때부터 어머니를 불신하게 된 것이 그 시발점이 된 것을 지적을 했다. 그러한 지적에 D씨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몇몇 친구들과 처음에 신뢰 관계였다가 나중에 적대적 관계로 변한 것을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D씨가 중학교 시절에 단짝 이었던 J군과 관계, 그리고 대학 시절에 동거 생활을 했던 그 여학생과 관계 그리고 지금 치료자와의 관계가 처음에는 돈독한 신뢰 관계에서 나중에 불신으로 변한 것을 지적을 했다.


 그런데 치료자와의 심리치료 과정에서 D씨는 두 번이나 "선생님 심리치료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서 치료자가 어떤 불만족한 것이 있는지? 치료자에게 대해서 화를 내야 하고 그것을 분석해서 갈등을 해소 시키면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에서 D씨는 치료자에 대한 불평 불만을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치료자는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하게 되면서 관계는 지속될 수 있었는데 앞으로 D씨가 선후배 관계에서 치료자 한데서 배우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적용을 해서 관계를 적으로 만들지 말고 아군으로 만들어야 함을 지적을 했다.


 심리 치료의 과정에서 D씨가 화를 냈을 때 만약에 치료자가 거꾸로 D씨에게 화를 내게 되면 반 전이로 치료가 변질되면 치료는 불신으로 끝이 났을 것이라고 지적을 했다. 만약에 치료자가 화를 내게 되면 그런 관계는 부모님과 D씨의 관계가 반복되어지는 것으로 D씨가 몇몇 친구들과 관계, 그리고 친했던 J군과 관계, 그리고 대학 시절에 동거를 했던 그 여학생과 관계에서 D씨는 부모님과 관계를 반복한 것임을 깨닫게 했다. 치료자와 D씨의 관계에서 갈등과 불신의 관계는 서로 갈등을 풀고 화를 마음대로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관계가 반복되지 않고 계속되어 왔음을 알고 이러한 치료자와 D씨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반화 시켜야 하기 때문에 정신분석 심리치료가 특별히 성격장애에서는 최소한 5 -7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이유라고 설명을 했다.


 치료자는 D씨가 지금까지 약 3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처음에 D씨의 문제들 중에서 절반은 해결이 된 것으로 보이는데 나머지 절반은 오늘 우리가 D씨의 문제를 분석해서 알 게 된 것처럼 계속해서 내 자아가 어떻게 움지이고 어떤 순간에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 가면서 성장이 중지된 자아를 성장시켜 나가는데는 시간이많이 걸린다는 성격장애 치료에 대한 치료 사례를 낸 하버드 대학 의과 대학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 학자기 쓴 치료 사례에서 성격장애 환자들의 평균 치료 기간이 6년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치료자는 다시 D씨의 내면에 살고 있는 여러 개의 자아 문제로 되돌아갔다. D씨가 기분이 좋을 때에는 자아들이 서로 통합이 잘 되어 있어서 별문제가 없는데 D씨가 스트레스에 휩싸이게 되면 그 순간에 여러개의 자아들이 분열이 되어서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에 D씨를 좌지우지 한 비판에 취약한 모든 것이 내 잘못 이라는 자아가 힘을 얻어서 D씨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동료,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그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존경과 경의를 표하가?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는 중, 고등학교 시절의 내 자아의 좌지우지가 아직도 힘을 얻어서 강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는 데 그러한 경우에는 내 통합된 자아가 힘이 없어지고 우울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면서 자아와 대화 훈련을 해 보도록 했다.


 "xx! 네가 선배나 손위 처남에게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들이 비판, 비난, 공격에서 너는 항상 어린 시절의 부모님의 비난과 비판으로 인식을 하게 되어서 모든 것이 내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그 자아를 잘 보아라! 그러한 순간에 너는 "이것은 내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 관계에서 성장한 자아야! 선배나 처남은 그들의 성격 탓으로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야! 내 잘못이 아니야! 지금은 참고 있다가 나중에 그러한 성격을 좀 고치면 더 좋은 관계를 할 것이라는 말을 해야 해! 그리고 그들의 비난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네가 한 말을 틀린 말이 아니냐! 그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시인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러한 말을 던져만 주게 되면 그들이 나중에 생각을 해 보고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되어 있어요!


 "xx ! 너는 직장에 가면 후배들과 선배들을 주시하고 관찰하고 그들이 너에게 와서 인사를 하고 존경을 표하는지?에 대해서 골몰하고 있는데 그것은 네가 중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power와 재능이 없어서 너는 무시당하고 멸시 천대 조롱을 받고 있다는 자아가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매사에 그 자아가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라!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고 내가 하는 일에 열중하고 그리고 하루하루 갈등이 없이 조용하게 지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 대신에 너의 취미를 살려서 직장 일이 끝나고 나면 취미 생활을 개발해서 적극적으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후배들과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 가서 인사를 하고 그들의 챙기로 돌보아 주면 그들도 반응을 하게 되어 있는데 너는 그들이 먼저 와서 너를 챙겨주고 반응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수동적으로 학수고대 하고 있는 너의 모습을 보라. 세상은 네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만들어지도록 기다리고 있는 너의 모습을 잘 보아라!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이렇게 어린 시절에 성장이 중지된 자아들을 고치고 수정하고 계속해서 성장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 자아가 성장을 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한 것이야! 세상은 네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세상이 너를 만들어 달라고 기대라고 학수고대하고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너의 모습을 잘 보아라! 세상은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서 즐겁게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운명이나 팔자 타령을 하면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너의 희망과 기대와 네가 진실로 원하는 삶을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임을 명심하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증세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너의 자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작동을 하고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성장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너는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처음에는 신뢰 관계로써 시작하는데 계속되는 관계에서 내가 실망과 믿음이 줄어들면서 그와 적대 관계가 되어가고 있는 너의 자아를 잘 보아라! 어린시절에 네가 살아 남기 위해서 방어로써 내가 선택한 관계 스타일이 지금은 너에게 족쇄가된 것을 잘 보아야 한다. 치료자와 너와 관계에서 불신을 여러번 해결해 온 것을 네가 일반화 시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갈등과 불신을 분석으로 찾아내고 관계를 바르게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네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가장 어려운 차장과 관계를 바루고 신뢰 관계로 만들지 않았으냐? 앞으로 이것이 네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로서 너의 성격을 고치는 즉 자아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증거임을 네가 깨달아야 한다.

 치료자의 2시간 동안의 분석에서 D씨는 자아가 조금씩 성장하고 자라는 것은 느껴지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에 참을 성이 없어서 그것이 문제로 느끼진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치료 회기를 끝내면서 도어 문을 나서면서 과거에 자신의 부서장 이었던 차석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그 차석이 "지금은 power가 없는 자신을 챙겨주여서 고맙다"라는 칭찬을 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털어 놓았다. 더 붙여서 그는 치료자와 이렇게 2시간 분석 치료를 받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인정한다고 시인을 하면서 앞으로 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연락하겠다고 하면서 치료실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