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새롭게 등장한 21세기 정신장애들 2 왜 자아 장애이냐?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8. 9. 2. 09:04

새롭게 등장한 21세기 정신장애들 Ⅱ


왜 자아 장애이냐?

 

치료자(필자)가 치료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 유학을 떠날 때까지도 치료자는자아라는 말을 알지 못했었다. 그 당시에 유행을 했던 영화(1979) 퀸터 글라스(Gunter Grass)양철북”(The Tin Drum)(주㈜: 1999년 노벨 문학상: 〈양철북〉은 독일의 과거사, 나치즘의 잔인성, 야만성을 다룬 소설로, 3살의 나이로 더 자라기를 거부한 신체장애자 오스카르의 어리석고 비정상적인 시각을 통해 1930~50년 독일의 운명을 환기시킨 작품이다: 다음 백과 참고)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마지막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이 내 자아가 이제 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라는 말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아라는 말은 분명히 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한데 내 자아가 즉 내가 성장을 한다? 나는 이미 성인으로 성장해 있는데 또 내가 성장을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붙여서 어떤 소설 작품의 평론에서 그 소설의 테마가 작품의 주인공이 자신의자아를 찾아 간다라는 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아”(self) 혹은 자아의 성장혹은 자아를 찾아서등의 용어들은 내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롱비치)에서 심리학을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앤젤리스 대학원에서 치료 심리학을 그리고 캘리포니아 가족 치료 대학원에서 인턴 과정을 밟으면서도 심리학 소개의 책들에서 프로이트에 대해서 읽으면서 간단하게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몰랐다. 내가 5년 동안 가족 치료학을 공부하고 나서 가족 치료학이 가족 구조와 다양한 정신장애들을 치료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증세를 넘어서 본격적인 인간의 장애 자체를 연구하는 데는 2%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턴을 끝낼 무렵에서 정신분석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때부터 정신분석학의 심층 연구에 몰두하게 되면서 자아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자아라는 말의 의미와 자아의 성장과 자아를 찾는다 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치료자는 1999년에 치료자의 저서 ”: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이라는 책에서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기술했다. 2012년에 21세기의 정신장애의 유형이라는 글을 치료자의 심리치료 홈 페이지에서 그리고 앞의 블로그 글들에서 자아의 성장과 발달 Ⅰ과 Ⅱ의 글, 그리고 참 자아와 거짓자아 Ⅰ과 Ⅱ에서, 신체자아 이미지의 왜곡 Ⅰ, , , , Ⅴ에서, 자아를 찾아서 Ⅰ과 Ⅱ 그리고 자아 주체성, 자아 분열, 자아 해체와 자아 소멸, 그리고 자아의 탐색, 그리고 분열된 자아 등등으로 온통 자아라는 말로 도배가 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자아에서 시작해서 자아에서 끝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료자는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정신과 의사, 정신분석가, 심리치료사와 심리 상담사, 사회복지 치료사 등) TV 혹은 그들의 저서들에서 자아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고로 나아가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생소한 용어가 될 것임이 틀림이 없다는 뜻에서 자아를 소개하려고 한다. 앞서서 치료자는 21세기의 정신장애들 Ⅰ의 글에서 21세기는 자아 장애의 시대라고 예고를 했다. 앞으로 자아라는 말이 홍수처럼 등장하게 될 것임을 지금 쓰고 있는 글들에서 소개하면서 21세기를 자아 장애의 시대라고 부르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치료자가 미국 유학을 떠날 때가 1982년의 83일이었다. 치료자는 미국 유학을 위해서 10년 동안 준비를 했었다. 그 당시에 AFKN이라는 주한 미국 TV 방송에서 그들의 프로그램들 하나하나를 거의 빠지지 않고 열심히 보고 있었고 AFKN의 뉴스 방송을 잠을 자면서 듣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사회 문화에 쇼크를 줄이기 위해서였고 듣기의 능력과 읽기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해서 미국 생활을 하면서 치료자가 본 미국은 30년 후의 지금의 우리 나라의 생활과 똑 같았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승용차로 1주일 혹은 2주일 분의 식료품들을 사와서 대형 냉장고에 저장,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의 사용, 원 룸의 유행, 대형버스의 전면 머리인 이마 부분에 커다란 전자 문자로 광고(L.A.공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대형버스의 머리인 이마 부분에 큰 글자의 전자 문자 광고)였다. 무엇보다도 그 때 내가 본 가장 특이한 것은 오늘 날 우리 나라의 맞벌이 부부를 위한 유아방, 영아방 등의 아기들을 돌보아주는 사업체들 그리고 밤에 도둑을 지켜주는 전자 방범 사업체(예를 들어서 세콤: 그 당시에는 공무원들은 밤에 야간 당직을 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내가 보기에는 미국은 우리 나라보다 문화적으로 60년 정도 앞서가고 있다는 점과 일본이 우리 나라보다 30년 정도 앞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회 문화 적인 관점에서 본 정신장애들의 등장을 소개하려고 하기 위함이다. 미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가족 부양의 전적인 책임에서 역부족으로 인해서 여성들이 과거의 자녀들의 양육에서 벗어나서 맞벌이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게 된 시발점이 제 2 차 세계 대전의 발발이었다고 앞서의 글에서 여러 번 소개를 했다. 미국의 남성들이 징집 되면서 그 일자리를 여성들이 메우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여성들이 직장 생활에 참여하게 된 것과 1950년대 이후에 등장한 컴퓨터의 일상화가 첨가 되면서 정신과적인 장애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것은 1939 9 1일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한 것과 1941 12 7일에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독일-이태리-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 연합군 측에 가담하면서 전면전에서 시작되었다. 1941년에 미국이 전면전에 뛰어들면서 남자들이 전쟁터로 떠나간 자리에 여성들이 대신하게 되면서 자녀들은 조부모 혹은 친척들 혹은 그 때 등장하기 시작한 유아방, 영아방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그 때 태어난 아기가 3세 정도의 나이에서 1943년에 존 홉킨즈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인 캐너(Kanner) 박사에 의해서 11명의 이상한 어린이라는 논문으로 자폐증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에 컴퓨터의 등장으로 사회 문화들이 급속하게 바뀌면서 그때 태어난 어린이들이 40세가 되는 1980년에 세 번째 개정된 미국 정신장애의 진단과 통계 분류 지침서인 DSM-Ⅲ 안에 불안장애 속에 대인공포증,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 광장 공포증, 특수 공포증, 일반화된 불안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등이 등장을 했다. 여기에다 또한 10개의 성격장애들이 본격적으로 등장 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그 이후에 수 차례 개정된 DSM-(2015, 5, 18)에는 새로운 정신장애들의 첨가가 거의 없고 장애들의 내용에도 큰 변동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 2 차 세계 대전 시쯤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40세가 될 무렵에 그들이 겪었던 삶에서 오늘날 정신과 장애들의 거의 다 등장을 했다는 말이 아닌가?


 왕따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등장할 시점인 1999년에 중앙일보 사설에서 1995년에 일본에서 한해 57천 건의 왕따 사례들과 10명의 자살사건을 보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한 해에 4천 건의 왕따 사례가 발생해서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했다는 보도를 인용하면서 치료자가 왕따 홈 페이지를 만들어 보고한 글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학교 폭력으로 연결되어 지금은 학교폭력 위원회가 각 학교 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그 때 이후에 약 20년의 세월이 흘러가 것이 아닌가?


 일본에서 히키코모리(주㈜: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장기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나 그 상태를 일컫는 말. 1970년대부터 일본 사회에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1990년대 초부터 심각한 사회적 증상으로 발전했다. 2005년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가 히키코모리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을 통해 이들에 대한 의학적 진단을 내렸다. 일본어 사전인 고지엔 2008년판에 ‘히키코모리’라는 말이 수록되었고, 한국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다음백과 참고)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다, 그리고 최근의 소식에 의하면 일본에서 히키코모리가 100만 명이 넘어간다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여성 가족부의 발표에 28만 명의 학생들이 중, 고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발표를 했다(2015 5 12일 화요일, EBS 저녁뉴스 인용).


 2014년 채널 A 뉴스에서 화장실에서 밥 먹는 대학생이라는 제목으로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 뉴스에서 기자가 직접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대학생의 인터뷰와 도시락의 사진을 찍어서 올려놓은 것을 보여주면서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미 일본에서는 2008년에 도교 대학교에서 화장실에서 밥을 먹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붙여놓은 것이 신문에 대서 특필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보도 하고 있다. 일본 NHK의 보도에 따르면 한 대학 교수가 500명의 대학생들을 인터뷰를 해서 10명의 대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미치무라 씨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부모의 과잉보호나 휴대폰 중독 등을 이유로 친구와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대인관계 능력이 저하되었다. 상담을 통해서 속내를 솔직히 털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전했다는 것을 인용보도를 했다(치료자의 홈 페이지 참고).


 이제 자아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치료자가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자아라는 낱말이 들어간 세계적인 정신분석가들의 저서들을 수 없이 접하게 되었다. 스텐포드 대학의 석좌 교수가 된 론로 메이(Rono May)의 자아의 탐색(1953), 콜롬비아 대학의 마스트슨(Masterson)의 자아 장애 치료(1989), 참 자아를 찾아서(1988), 시키고 대학의 체싱크(Chessick, 1985)의 자아 심리학과 나르시즘의 치료, 몬타나 대학 왓트킨(Watkin, 1997)의 자아 상황 치료, 하버드 대학의 센필드(Seinfeld)의 자아의 핵심이 텅 빈 자아(1991), 시카고 대학의 울프(Wolf)의 자아 치료(1988), 코넬 의과 대학의 컨버그(Kernberg)의 보드라인 자아(1975) 그리고 시카고 대학의 코호트(Kohut)의 나르시즘 자아(1971)등으로 자아라는 말이 들어간 저서들만 해도 이름을 다 될 수 없을 정도인 것을 보면서 자아라는 시대의 도래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책들을 읽고 치료에 직접 응용하면서 자아의 시대를 체감으로 느꼈기 때문이다(주(주): 위의 모든 저서들에 대한 참고를 보라).


 미국에서는 이미 1980년에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건트슨(Gunderson)의 하버드 대학 멜클린 정신병원(정신과 의사들과, 정신분석가들 그리고 심리치료사들이 모두 200명이 근무)에서 20년 동안 보드라인 환자들의 연구와 치료를 통한 그의 저서 보드라인 성격장애: 치료 안내서에서 21세기는 자아 장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고를 했다(1980년의 DSM-Ⅲ의 성격장애의 10개의 분류는 그의 연구에 기초).


 정신분석의 시작은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에서 시작되었다. 이후에 100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수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수정 보완하고 응용을 해서 신경증 보다는 심각하고 정신증 보다는 약한 보드라인 장애의 치료로 발전되어 갔다. 신경증의 핵심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이다. 불안증과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장애 한 개만 가진 것이 아니고 성격적인 문제가 같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기 때문에 신경증의 치료 자체 만으로 효과가 미흡해서 여기에 성격적인 치료 과정으로 진화가 된 것이다.


이러한 연구와 치료의 결과로써 등장한 것이 1950년대 에릭슨의 자아 주체성 이론이고 그리고 1970년대의 코호트의 자아 심리학(self psychology)이다. 이제는 기존의 정신분석의 갈래에서 분리되어 정신분석은 정통파 정신분석(순수 프로이트 학파), ego 심리학(안나 프로이트와 마가레트 몰러와 하트만 학파), 대상관계 정신분석(메라니 크레인과 페비안과 건튜립의 학파), 대인관계 정신분석(셀리번 학파) 그리고 자아 심리학(코호트 학파)으로 5개의 학파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보드라인 장애는 정신증에 소속되지 않고 신경증에도 소속되어지지 않는 성격장애들을 지칭을 한다. 그러나 성격장애의 치료에서는 세분화 된 몇몇 성격장애들 예를 들어서 자아분열, 회피적 성격장애, 편집증 성격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냥 성격장애들을 모두 합쳐서 자아 장애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이제 21세기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자아 장애 시대가 우리나라에도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자아의 치료가 급선문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그 등장의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자아의 등장의 이유로 들어가보자.


우리 나라가 농경시대에서 산업 사회로 이동하게 된 것은 약 50년 정도라고 본다. 지금 70대의 치료자는 어린 시절에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치료자는 대도시로 나왔기 때문에 직접 농사를 짓는 일에는 관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농경 시대는 생활이 단순했었다. 직업은 농꾼(농사꾼의 약자)이 되는 것이 전부였다(어촌에서는 어부). 농사꾼이 되는 것은 힘이 세고 부지런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농경행사 때는 큰 깃발에 농사는 천하지 대본(農事天下之 大本)”이라는 글자를 쓴 현수막을 자주 본다. 농경시대에는 먹고 사는 쌀 농사, 혹은 보리 농사가 주된 삶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부락 단위로 모여 살았고 최하 2(2 가구) 혹은 3호 그러나 주로 10호 혹은 동네가 큰 마을의 경우에는 20-30호 정도의 가구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살았다. 결혼 때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하면서 도와주고 축하를 해 주었다. 부모가 사망 한 경우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꽃 상여를 만들고 산에 매장을 하도록 장례 절차들을 진행하면서 서로서로 도와주었다(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이 시대에는 남자들은 신체 건강하고 힘이 센 사람 그리고 부지런한 사람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이런 전통은 씨름 대회에서 그래도 남아 있다. 씨름 대회에서 가장 힘이 센 남자가 가장 최고의 남자로써 인기가 있었고 상품으로 황소를 선물 받았다. 황소 혹은 소는 농사를 짓는 데 가장 필수적인 농가의 자본이었다. 농사 철에는 농꾼들은 소와 쟁기를 사용해서 논을 갈고 밭을 갈아서 일을 했고 그리고 소를 다루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남자들은 지게를 지고 짐을 지거나 쌀 가마를 옮기고 지고 다니는 것과 그리고 소를 다룰 줄 하는 것이 농사일의 전부였기 때문에 배워야 할 큰 기술이 없었고 농사일은 지연적으로 부모님 밑에서 일을 하면서 배울 수가 있었다. 농사 일이 끝나거나 돈이 급한 경우에는 농가에서는 소를 팔아서 자본으로 사용을 했다(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여성들은 골반이 큰 부잣집 맡며느리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자녀들을 많이 낳고 그리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신체 건강한 여성들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여성들은 바느질 혹은 자수를 놓는 손재수가 있는 여성들이 인기가 있었다. 특별히 홀쭉이들 혹은 골반이 작은 여성들을 시집가기가 어려웠다. 시집을 가서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면 여성의 책임으로 위자료도 없이 쫓겨 가거나 혹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구박을 받았다. 우리 조상들의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씨받이혹은 꼬마 신랑이 이러한 농경 시대의 우리 조상들의 풍습들을 보여준다(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부부 생활에서 산아 제한 혹은 피임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에서는 자녀들의 수가 7명에서 10명이었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자신의 복을 하늘에서 타고 나기 때문에 낳아서 양육을 해서 자라나게 되면 먹고 사는 것은 자신의 복을 달고 온다고 해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형제들이 많았기 때문에 누나가 동생들을 돌보아주거나 오빠가 여동생들을 보호해주었다. 고로 자녀들은 서로 부딪치면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들을 스스로 터득을 했다. 동료들과 힘겨루기를 통해서 서열의 순서가 정해지고 서로 갈등을 하고 싸움을 하면서도 서로 놀리거나 괴롭히는 것은 장난으로 그냥 쉽게 넘어갔고 그리고 갈등들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들을 터득했기 때문에 왕따와 같은 문제는 거의 없었다. 심한 경우에는 형님과 누나들이 동생들을 보호해주었고 부모가 학교에 연락으로 선생님이 개입해서 쉽게 해결하고 스스로 잘 대처해 나갈 수가 있었다. 부모님은 자식이 많을수록 복을 받은 사람으로 부러워했다. 농경시대에는 일손의 부족으로 가족의 구성원들이 많을수록 남의 일손을 빌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자녀 숫자가 농사일에는 크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나이가 차서 시집 혹은 장가를 들 나이가 되면 부모들이 알아서 나아가 찬 결혼 적령기의 자녀들을 이웃 동네 혹은 친척들의 소개로 서로 만나서 결혼을 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건강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살게 되면 저절로 자녀가 생기고 그리고 정이 든다고 이야기를 해 왔고 그리고 그것이 전통이 되었다. 고로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는 데는 그 혹은 그녀가 장애인이 아니라면 결혼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결혼 후에는 부모님의 전답인 논과 밭을 몇 마지기(평수)를 얻어서 혹은 소작인으로 농사를 짓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면서 쌀과 보리 등을 돈 대신으로 받았기 때문에 먹고 살아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동료들 혹은 이웃 사람들과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죽마고우(竹馬故友): 대나무 말을 타면서 놀았던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 소통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 사람의 성장 과정을 꿰뚫고 있어서 서로 고민이 없이 털어 놓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내면의 마음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따라서 비밀이 없었고 숨길 것이 거의 없었다.


 이제 산업사회, 특별히 후기 산업사회인 21기로 돌아가 보자. 맨 먼저 부모님의 맞벌이가 대세가 되었다. 이것은 남편의 수입 만으로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고로 부인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면서 자녀들의 양육은 조부모 혹은 친척들 혹은 영아원, 유아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영아원, 유아원은 한 보모가 7-10명 정도의 어린이들을 돌보기 때문에 대소변, 수유 그리고 병에 대한 관리 등을 해주는 자녀들을 돌보아주는 곳이지 양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에 엄마와 대화를 하는 것을 통해서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느낌, 생각, 상상, 지각, 감각 등을 말로써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에서 자아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내 주장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내가 주변 환경을 마음대로 탐색하면서 주변 환경을 컨트롤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는 것을 배우게 된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유아원, 영아원으로 옮겨지면서 어른들의 돌봄의 손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자연히 어린이들은 돌보아주는 돌봄이 의 눈치, 비위를 맞추게 된다. 보모나 유치원의 교사들은 아기들,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주변 환경을 찢고 부시고 어질고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다루기 쉬운 어린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자연적으로 보모의 기대에 부응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눈치, 비위를 맞추게 되어있다. 오늘날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같이 터져 나오는 유아원에서 보모의 유아 학대 사건들을 보라(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부모님은 직장에서 돌아와서 자녀와 함께 하지만 이미 지쳐서 유아원, 영아원에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을 충분히 보상해주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고 집안 일들에 바쁘게 쫓기면서 자녀들과 놀이를 하고 눈높이를 낮추어서 자녀들과 대화하고 같이 놀아줄 시간이 부족하고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면서 대화는 줄어들고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자연히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지시, 명령, 부응, 복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욕구, 의사, 요구를 겨우 전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자신의 생각들과 느낌들을 마음대로 표현하고 부모님 앞에서 부모님의 눈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모님으로부터 말로써 표현하는 능력의 개발 보다 충동적인, 폭발적인, 그리고 울고 보채는 행동으로 즉각적인 욕구 만족에서 머물게 된다.


 자녀의 수는 자연적으로 1명 혹은 2명으로 제한되어진다. 부모님은 대소변, 먹는 것 그리고 장난감들을 사주고 다양한 재능의 개발에 그리고 특수한 학원들과 학교에 보내주는 것이 부모의 임무를 다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즉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들이 원하는 장난감, 특수한 기술들, 영어, 음악, 미술, 태권도, 각종 예능 개발 등에 집중이 되면서 이웃 자녀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각종 학원에 등록해서 자녀들을 배우게 하는 것으로 자녀들은 학습에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게 되면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해서 피하도록 한다. 스스로 갈등을 해결 하는 것을 배우기에는 의사 소통의 기술이 미흡해서 충동적이고 폭력적이 되기 쉽다. 충동욕구들이 순화되어서 말로써 표현하는 언어 표현은 TV 보기로 대체되어버린다. TV의 만화, 애니메이션의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TV 앞에 앉아서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충동이 생기면 부모님들은 서로 고소 고발을 해서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버리게 됨으로써 화해하고 소통하는 것을 배울 기회는 점점 줄어 들게 된다.


자녀들은 유치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면 피하거나 고립되기 쉽다. 자녀들은 모든 문제들을 혼자서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부모님은 직장에 있기 때문에 항상 옆에 없다, 고로 혼자 있거나 혹은 어떤 부모님은 자녀들을 저녁 늦게까지 학원에서 지내게 하거나 학원에 떠밀어 넣어서 부모가 없을 때 우선 집에 혼자 있게 하기 보다는 학원이 자녀를 관리하고 돌보아주고 그리고 배움도 함께 하도록 하고 있다. 자녀들은 저녁에 부모님이 돌아오는 시각에 맞추어 학원에서 귀가하는 숫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녀들은 방과 후에 학원에서 저녁 때까지 보내다 보니 학원에서는 조용하게 학습하고 배우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까 자녀들은 어떻게 동료들과 관계를 하는가? 어떻게 대화를 하는가?를 부모님으로부터 혹은 학원으로부터도 배우지 못한다. 언제나 조용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에다 한층 더 기본적인 것은 부모님의 부부 갈등에서 소통을 하는 것을 자녀들이 보고 듣고 무의식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모델을 보여주는 부모님이 서로 갈등으로 인한 냉전 상황들을 자녀들은 일상에서 보고 배우 수 밖에 없다. 감정은 말로써 표현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감정은 위험한 것으로 배우게 된다. 부모님의 부부 싸움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부모님 한데서 자란 어린이들은 감정이 위험한 것으로 억압해버리게 된다.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자녀들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삐쳐서 아예 몇 일 동안 말을 하지 않거나, 문을 닫아걸고 두문불출 하거나, 눈길을 피하거나,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하고 무반응을 하거나, 아예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부모님들의 의사 소통을 보고 자녀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대로 배우게 된다(김종만, 1999.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부모님의 일자리의 이동으로 자녀들은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친한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터넷의 등장하고 혼자서 게임에 빠지면서 상상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 게임은 상상의 세계이지 현실의 세계가 아니다. 고로 게임 속에서 나오게 되면 현실의 어려움들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혼자서 외롭게 지내면서 고통 속에서 사는 것 보다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재미를 붙이면 게임 속에 빠져서 중독처럼 하루에 10시간씩 밤과 낮이 바뀌고 학교에 가면 밤에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가르침은 뒷전으로 밀리고 기초 학습이 부족하게 되면서 공부에 점점 담을 쌓게 된다.


 자녀가 자라나서 청년으로 변모해 가면서 수천 개의 직업 중에서 어떤 것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지를 혼자서 결정을 해야 한다. 여자 친구와 사귀는 것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결혼을 할 때 배우자를 찾는 것도 혼자서 해야 한다. 부모나 친구의 소개를 받는다고 해도 결정은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한다.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면 혼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떻게 친밀감을 형성하고 어떻게 내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매일 같이 쏟아서 나오는 수 많은 정보들 중에서 모두가 다 필수적인 지식으로 보인다. 어느 것을 선택하고 어느 것을 선호해야 하는지? 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이것을 내가 혼자서 선택해야 한다. 공자 말도 맞고, 맹자 말도 맞고, 순자 말도 맞고, 노자 말도 맞는데 내가 어느 쪽으로 해야 할지 헛갈린다. 내가 원하는 것을 두 개를 다 한꺼번에 선택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A 대학과 B대학은 결국 두 대학에 함께 갈 수가 없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고로 자녀들은 선택하고 결정하고 판단을 하는 능력을 어린 시절부터 습득을 해야 하는데 보고 배울 데가 없으니 어디에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를 모른다.


 아파트 문화가 대세가 되면서 이웃 사촌이라는 말은 옛날 말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못하면 따돌림을 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단점을 철저히 숨기게 된다. 자신의 단점을 보이게 되면 동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고 자신을 피할 것이라고 생각되면서 자신의 숨기고 없는 것을 과대 포장해서 있는 것으로 좋게 보이려고 한다(이것의 심한 습관화가 과대망상, 박해망상, 에로틱 망상상이 된다). 상대방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 한다.


 자아가 약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한다. 의존하다 보니까 자신을 보호해주고 안내해주던 강자가 나중에 자신을 이용하고 자신을 강압하는 것으로 발전해서 결국은 그 대상의 노예가 되어버리게 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빨리 알아서 비위를 맞추는 것에 천재적이 되어버린다. 아첨을 떨고 내숭을 떨고 아부를 자는 자아로 변해간다. 내 자아가 약하면 보호를 받을 의존할 대상을 찾다가 보니까?  내 감정을 억압하고 비위를 맞추다가 보니까? , 혹은 내 자아의 존재 가치가 무가치하고 무기력하고 무능해 보이게 되고 자아 감각은 낮아지고 자신감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이 모든 것에서 보듯이 21세기는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내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제는 과거와 달리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해결하는 자아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자아가 연역하거나 자신감이 없으면 강자의 노예가 된다. 타인에게 내 삶을 의존하고 내 자아의 보호를 맡겨야 한다. 고로 결국은 상대방의 눈치 비위를 맞추고 내 욕구는 무시되고 내 목소리를 작아지고 내가 없는 사람이 된다. 내 존재가 없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해결하고 내 취미와 내 삶을 설계하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자아가 중심이 되고 내 목소리를 내고 내 삶이 주체가 되는 데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아의 개발과 자아의 성장이 21세기에 핵심이 되어버린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느끼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리고 내 주장을 하고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나를 찾는 것이 우선이 된 사회가 된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데 내가 상대를 어떻게 알게 되겠는가? 다시 말해서 자아의 능력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장과 발달을 통해서 자아도 같이 나이에 맞게 성장과 발달을 해야 하는데 부모님과 자녀의 상호작용은 현재는 과학 시대로 21세로 살고 있는데부모님과 자녀의 양육 방식은 농경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양육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부모는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그리고 대소변을 갈아주고 그리고 장난감과 원하는 다양한 특수한 기술들을 많이 배우게 하고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에 그리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아의 발달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자녀들은 성장을 하면서 일자리도 내가 찾아야 하는데 직업도 수천 개가 되니 어느 것이 나에게 적당한가? 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여자 친구도 내가 만들어가야 하고 친밀감도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내 힘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내가 결혼을 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내가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자아--—내가---결국은 내가 아닌가? 즉 내 자아가 아닌가? 먼저 내가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존경해야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가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시대가 바로 21세기가 된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의존을 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면 할수록 나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노예가 되기 쉽다는 것들이 문제점으로 이미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에 등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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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누가 가르쳐 주는가? 부모님은 먹고 살기에 바빠서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매달라게 된다. 자녀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고 배워가야 하는데 어디에서 이것을 배운단 말인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편리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정작 나는 내 자아는 너무나 해야 할 일들, 배워야 할 일, 해결 해 할 들 때문에 고민 속에 빠지게 된다. 혼자서 해결해 나갈 수 없는 수 많은 위와 같은 문제들이 홍수를 이루게 되면서 자아가 위기에 빠지게 되고 상상 속에서 혹은 게임 속에서 갇혀 살게 되면서 고통스런 외부 세계와 단절하고 혼자 만의 상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이것이 바로 히키코모리이고 은둔 외톨이가 된다. 과거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상한 정신장애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21세기 이다.


자녀가 게임 중독에 빠지나, 은둔 외톨이(히키코모리)로 방안에 처박혀서 밤과 낮이 꺼꾸로 바뀌거나, 조현병(정신분열증), 조울증, 우울증, 불안증 등으로 사회 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하게 되는 젊은이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면서 이제 이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너무 문제가 심각해서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자녀들은 1명 혹은 2명으로 맞벌이로 경제적인 문제는 크게 문제가 없는데 이제 자녀들이 학교에 등교 거부 혹은 충동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으로써 부모님에게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이 눈앞에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급변해 가는데 부모님의 사고 방식은 농경시대의 자신들의 부모님의 사고 방식을 대물림 해서 그대로 가지고 있다. 자녀 양육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다른 어린이들처럼 각종 장난감을 사주고 그리고 특수 교육을 받게 해서 다른 자녀들보다 뒤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녀들의 특수 교육비와 이름난 학교에 보내는 것이 부모의 욕심이고 부모의 임무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모의 마음대로 내 자식을 내가 원하는 대로 키운다고 노력을 했는데 자녀들이 중, , 대학생이 되면서 문제가 생길 때 부모님은 신경정신과 약물 치료를 받게 되면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신경정신과에 데리고 간다,

 ​아니면 자녀들이 문제가 생겼다고 호소를 할 때 부모님은 그것도 참지 못하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라고 참고 견디라고 압력을 넣는다. 그런데 정신과 약물을 복용해서 처음에는 자녀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듯이 보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문제가 커져 가는 것을 느끼면서 부모님들이 놀라게 된다. 어떤 부모님들은 정신과 약물들이 감기약처럼 모든 정신과적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고 자녀들의 고통스런 문제들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자녀들의 호소를 묵살하고 무시하는 부모님을 많이 본다. 이런 부모님은 세상은 변해서 편리한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데 사고방식은 옛날의 부모님이 대물림 해준 농경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치료자는 이러한 글을 통해서 21세기의 정산장애들은 자아 장애로써 단순히 약물로써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우리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서구화 되면서 등장하는 각종 정신과적인 장애들이 이제 홍수처럼 밀려 오고 있다. 모든 정신장애들은 자아의 결함, 자아의 미성숙함, 자아의 연약함에서 생긴 것으로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에 대응하고 치료하고 적응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여기에 대응하려는 정신적인 마음 가짐이 미흡하고 더구나 이러한 선진국에서 등장하고 있는 이러한 정신장애들에 대해서 속수무책으로 그리고 무지로 모르고 있음을 깨우치게 하기 위함이다.


이제 지금까지 치료자가 위의 자아 장애자들을 36년 동안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느낀 것들과 부모님들의 치료의 협조 혹은 거부 그리고 무시, 방치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A군은 부모님의 맞벌이로 전형적으로 0-5, 6세까지 유아방, 영아원에 맡겨지고 그리고 유치원에 맡겨진 21세의 청년이었다. 부모님은 둘 다 대학을 졸업하고 화이트칼라 직업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돌봄이 들 혹은 부모님이 조용하게 앉아서 TV 를 보는 것에 부응해서 항상 조용하게 있는 것에 습관화 되어버린 청년이었다(물론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분석 치료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면 그냥 하라는 대로 따라가고 다른 동료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는 것이 전부였다. 갈등을 싫어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피하고 말이 없이 참고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사춘기의 시작 때 자위행위를 어떻게 하는지를 몰랐다. 동료들에게 물어보거나 동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섹스적인 이야기를 피하고 그들을 불량 학생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는 20세가 될 때까지 자위행위를 몰랐다. 한 달에 1회 혹은 2회로 몽정을 했지만 자위행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은 아파트에 살면서 3개의 방이 있었지만 2살 아래의 여동생과 A군이 부모님과 함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잤다는 말에 치료자가 대경실색을 했다. 부모님은 사춘기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자녀들이 섹스적인 욕구가 생기가 자위행위를 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섹스에 대한 고민들을 동료들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고 동료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비밀로 했다 그들이 자신의 고민을 알면 그들이 그를 비웃고 이상한 아이로 보고 그를 피할 것이라고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 A군은 자신보다 힘이 센 친구에게 의존해서 그가 A군을 친구들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을 빌미로 A군에게 자신의 돌만이 가 되도록 강요를 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해야 했다. 학교 등교 하교 때 그의 책가방을 들어주거나 생일 날에 금품을 요구했다. 그러나 A군은 No라고 말을 할 수 없이 복종을 하다가 결국은 폭발해서 폭력으로 변질되고 결국은 그를 피해 다녀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지방에서 서울 과학공원에 참관 학습 여행을 갔다가 소변을 하기 위해서 화장실에 갔다가 옆에서 오줌을 주는 한 동료의 성기를 보고 깜짝 놀랬다. 그의 성기가 발기된 것을 보고 A군 자신의 성기나 너무 작고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그 사건 이후에 동료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고 남자들이 서서 보는 소변기를 이용하지 않고 대변을 하는 대변실에서 혼자서 소변을 해야 했다. 성기에 대한 열등감은 결국은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몇 개월 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비뇨기과 의사로부터 성기 확대 수술을 받았다고 고백을 했다.

 ​그 의사에게 성기 확대 수술 후에 불안해진 A군은 굳지 성기 확대 수술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를 이야기를 했다가 그 비뇨기과 의사가 내가 의사 경력이 얼마인데 내 실력을 의심하는가?”라고 질책을 하는 것에 놀래서 그 다음 날에 다른 비뇨기과 의사에게 가서 자신의 성기에 대한 고민과 섹스 문제의 고민을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비뇨기과 의사가 정자 검사 검사를 해보자고 하면서 컵을 주면서 화장실에 가서 자위행위를 해서 정액을 받아오라고 한 것에 깜짝 놀랬다. A군은 지금까지 20세가 되도록 자위행위를 어떻게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창피해서 고백하지 못하고 다음에 오겠다고 말을 하고 도망치듯이 서울에서 집으로 귀향을 했다. 이후에 그 고민을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3개월 간 끙끙거리다가 스스로 성기를 마사지를 하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 후 3개월 후에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섹스 문제 때문에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계약하고 6개월간 정신분석 치료에 들어가면서 위와 같은 고민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A군은 고교 1학년 때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동료들과 갈등을 피해서 자퇴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집 인근에서 xx 종합 병원에서 상담 치료를 4개월 동안 받다가 필리핀 유학으로 6개월 간 유학을 갔다가 1개월도 되지 않아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다시 귀국해서 4년이 흘러갔고 섹스 문제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된 것이 분석의 과정에서 밝혀지게 된다. 그는 치료자에게 오기 전에 어머니에게 6개월의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호소를 했을 때 어머니는 치료를 받으러 가는 시간이 왕복 4시간 정도 걸린다는 이유로 A군의 집 인근에 있는 과거에 4개월간 심리치료를 받았던 종합 병원에 가라고 조언을 했으나 그는 과거에 4개월간 심리상담을 받을 때 여자 상담사였기 때문에 사실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소변 문제와 섹스 문제를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고백을 했다. 그는 그러한 사실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A군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표현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친구들과 자신의 고민과 고통을 서로 소통을 하는 자아가 개발되어지지 못하고 유아기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그는 시인을 했다. 그는 항상 조용하게 착하게 시키는 대로 부응해서 조용하게 있는 것이 그의 행동의 특징이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증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다룬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는 치료자와 2시간 분석 상담에서 마음대로 자신의 느낌들과 어린 시절의 발달과정과 친구들과 갈등 관계 등을 재연해서 다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표현을 하는 자아 개발로서 시작되었다. A군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 자신의 생각, 느낌, 상상, 사고, 감각, 이미지 등등을 마음대로 치료자에게 표현하고 자신의 내면을 밝혀나가는 치료가 진행 되면서 치료자와 대화를 하는 것이 껄끄럽지 않고 편안하고 2시간 대화 후에는 불안이 감소한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자신의 섹스적인 욕구와 자위행위는 정상적인 것으로 모든 남자들은 99 %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고 섹스의 욕구는 자연스런 것으로 결혼을 할 때인 30(평균 결혼 연령)까지 우리가 우리의 섹스 욕구를 컨트롤하는 것이 바로 자위행위라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되었다. 그는 편도 2시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치료를 받아서 치료 시간이 즐겁고 자아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어떤 문제든지 이야기를 하도록 하면서 점점 조금씩 자아가 성장을 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스스로 토로 했다. 치료자와 2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에 경직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오고 자신감이 생기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대화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즐거움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러한 미세한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이런 미세한 부분들은 부모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부모님에게 소상하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치료자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어머니, 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고백 후에 따라오는 수치심과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자신의 단점들과 부끄러움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감각이 무디어지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열심히 치료를 받아서 밤에 잠을 자는 것이 숙면으로 그리고 집에서 자신감이 생겨나서 이웃에 도서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책을 읽기 시작 했다.


치료자는 A군에게 치료실 안에서 대화 훈련을 하도록 한다. 치료실 안에서 치료자와 2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따로따로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부모님 앞에서 스스로 자아 표현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A군이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였다. 부모님은 과거에 아들이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응하고 수긍하는 자세에서 이제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쪽으로 자아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에게 스스로 시인을 했다. A군이 이제는 스스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갔다.


그런데 1주일에 2시간씩 정신분석 심리치료가 6개월의 48시간이 다가오면서 계속해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A군은 계속해서 몇 년 이라도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고 어머니에게 치료를 계속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어머니는 거부를 했다. 너무 많은 비용에다 눈에 띄게 확실한 치료 효과가 없다고 불평을 했다. 아들이 과거보다 부모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정을 하면서도 6개월 정도되면 치료가 완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A군이 수 차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어머니는 거부했다. 치료자는 A군에게 치료가 40시간을 넘어가면서 어머니가 치료자를 방문해서 그 동안 40시간의 치료 과정과 앞으로 치료의 핵심들과 정신분석은 자아의 성장과 자아 결함과 자아의 미성숙함을 개발하고 고착된 자아를 다시 성장하게 한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충분히 이해하도록 치료자를 방문하도록 요청을 했으나 결국 어머니는 치료자의 방문 요청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A군이 군대 입영 영장을 받게 되었고 군대에 가야 하는 것 때문에 치료가 계속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A군과 같은 경우는 몇 년의 분석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치료자가 지적을 했을 때 A군도 인정을 하고 치료를 받고 싶어했지만 군대 복무 이후에 다시 일자리를 구해서 스스로 치료자를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치료가 종결된 것이었다.


B군은 3년 전에 xx 정신병원에 1개월간 입원한 경험이 있는 30대의 청년으로 1주일에 1회로 50분씩 약 1년간 상담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어서 그 다음에 다시 xx 치료센터에서 3개월간 집중적인 개인치료와 그룹 치료를 받아서 상당한 효과를 보았고 그 후에 직장에서 2년간 일을 하다가 재발해서 다시 그 치료사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으나 그 선생님은 약물 치료를 하라고 해서 어머니가 깜짝 놀랬다. 3개월 동안 집중치료에서 약물이 없이 치료를 해서 치료가 종결 되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약물을 복용하라고 하는 것은 치료사가 치료에 자신이 없어서 거부한 것이라고 인식해서 어머니가 분노해서 그 치료사 선생님을 포기하고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6개월간 요청한 것이었다.


B군은 지방의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맞벌이 부부로 할머니가 B군을 양육을 했다. 할아버지가 지방의 유지로써 재력가로써 개인의 돈으로 소방차를 사서 기증한 사람으로 그 지역에서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 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B군을 출산 후에 직장에 복귀를 했다, 할머니가 손자를 양육을 해 주겠다고 직장에 나가라고 허락을 해 주었다. B군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났다고 스스로 이야기를 했다. 1살 차이로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할머니는 2명의 자녀를 양육을 할 수 없으니 분가해서 독립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함께 대가족으로 살기를 원했지만 할머니의 권유로 B군의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어머니는 1년 동안 휴식을 한 후에 다시 직장에 복귀하게 되었다. 4살 된 B군은 이후에 영아원, 유아원으로 맡겨지게 되었다. 그는 4 5살 때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었다.


B군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점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돈을 얼마나 훔쳤느냐?라는 질문에 B군은 조금씩 모아서 7만원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B군은 그 돈으로 친구들에게 선심을 쓰는데 사용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의 도벽은 중학교 때까지 계속되어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내서 어떤 때는 40만원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그 돈은 전부 친구들과 사귀는데 사용을 했다고 실토를 했다. 부모님은 아들 B군이 도벽을 한다는 것을 알고 아들의 나쁜 버릇을 고치려고만 한 것이었다. 슈퍼마켓에서 고급 장난감을 훔친 것을 알고 아버지가 B군을 데리고 경찰서에 가서 유치장을 보여주면서 앞으로 계속해서 도벽을 하면 감옥에 간다고 위협을 했다.


B군은 중학교 시절부터 불량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공부는 뒷전이고 담배를 피우고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들을 골라서 했다. 아버지는 B군을 엽총으로 위협하거나 손과 발을 묶고 위협을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B군은 초, 중학교 시절에 돈으로 사귄 친구들이 지금은 몇 명이나 친하게 지내고 있느냐? 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한 사람도 남은 사람이 없다고 서운해 했다.


B군은 치료자에게 1주일에 2회씩 1회당 2시간으로 1 주일에 4시간의 분석치료를 지금까지 10시간 정도 받으면서 위와 같은 문제점들이 밝혀진 것이다. 그는 자주 TV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욕질부질 한다고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와 할머니가 싫어한다고 고백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뒷담을 한다고 시비를 걸려고 하고 지나가는 사람과 몸싸움을 하려고 하다가 아버지에 이끌려 xx 정신병원에 입원을 1달 가량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B군의 핵심 문제는 동료들과 친밀한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전형적인 농경시대의 사람으로써 B군을 손자로써 귀여워하고 예뻐한 것은 틀림없으나 B군의 자아를 개발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자신 표현을 하도록 도와주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잘 듣고 착하게 행동하고 나쁜 행동을 하지 않고 부모님의 기대대로 부응하도록 양육을 한 것이었다. B군을 애지중지 하고 과잉보호로써 조부모가 다 해 주었기 때문에 B군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양육의 방식은 21세의 자아 개발 양육 방식이 아닌 착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부응적인 시키는 것을 잘 따라 하는 자녀로 양육을 했기 때문에 B군은 동료들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몰라서 돈으로 동료들을 컨트롤하게 된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쯤에서 동료들과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B군은 돈을 훔쳐서 돈의 힘으로 동료들과 관계를 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B군은 동료들과 관계가 되지 않아서 돈으로 친구들을 자신의 원하는 대로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자아가 위기에 몰리면서 자아가 살아 남기 위해서 스스로가 만들어낸 일종의 자아방어였다는 것을 부모님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B군의 도벽을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처벌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처벌은 B군의 도벽을 막지 못했다. 아버지는 B군이 자신이 어려운 즉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행동문제 즉 도벽이라는 문제를 일으켜서 전문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처벌은 행동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을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심리적인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B군에게 가해진 아버지의 처벌은 B군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싫어하는 행동을 골라 함으로써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써 부모님을 처벌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치료자가 B군에게 조부모와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30년의 지금의 시쯤에서 뒤돌아 보았을 때 유치원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과 지금까지의 30세의 나이까지 전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 언제인가?라고 물었을 때 B군은 행복하게 보낸 시절이 한번도 없었다고 고백을 했다.


B군은 조부모와 부모님의 농경시대의 울타리 안에서 자아가 성장을 하지 못하고 유치원 시절에서 성장이 중진 된 것을 지적을 했을 때 스스로 시인을 했다.


10시간의 치료 과정에서 B군은 TV와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욕질부질 하는 행동은 중지가 되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과 시비를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B군을 뒷담을 한다고 예민해지는 것이 거의 없어졌다고 스스로 기뻐했다. 치료자와 2시간의 분석 상담 시간에 긴장과 불편함 그리고 껄끄러움을 몇 % 정도 느끼는가?라고 물었을 때 0 % 라고 대답을 했다. 치료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겁고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B군은 2주일에 한번씩 지역 정신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처방약물을 받아오는데 이제는 긴장과 불안이 많이 감소되고 잠을 잘 자고 있으니 약물을 약하게 해 달라는 B군의 호소에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B군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기분이 나쁘다고 호소를 했다. 그런데 같이 살고 있는 아버지가 그 병원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아버지가 승용차로 B군을 태우고 그 병원에 가서 그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약물을 강하게 처방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B군의 요구가 묵살 당했다고 분노했다.

지금까지 증세 재발 이후에 5회 정도의 신경정신과 약물 처방 때마다 아버지가 30세의 B군을 대동하고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옆에서 지켜본다는 B군의 호소를 들으면서 아버지가 B군을 어린 시절에 어떻게 양육을 했는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B군을 시키는 대로 따라 하게 하고 부모의 말에 부응하고 복종하게 한다는 것을 아버지의 지금의 행동에서 입증된 것이라고 지적을 했을 때 B군이 시인을 했다. 그는 아버지의 과도한 보호망 속에서 스스로 자취권을 잃어버리고 자아가 아버지의 농경시대의 사고 방식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모습을 분석과정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치료자는 앞으로 40시간 정도가 지나가면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B군의 문제의 핵심과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자아의 미성숙을 이해시키고 B군을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원룸으로 나오는 방향으로 치료를 하도록 하면 B군의 문제는 해결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B군의 적극적인 찬성과 동의를 받아서 아버지로 하여금 B군을 아버지의 품에서 해방시키는 쪽으로 진행하기로 약속을 했다. 물론 치료 회기의 과정에서 B군의 자기 주장과 자아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훈련과 의사 표현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될 것임을 강조를 했다.


24세의 대학 2학년 휴학을 한 C군 역시 부모님이 맞벌이 때문에 4살 때까지 외할머니가 집에 와서 C군을 돌보아주었고 외할머니는 토, 일요일에는 본가게 귀가 했다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C군을 양육을 했다. 5-6살 때는 이웃의 아주머니에게 맡겨졌고 C군은 식사를 하고 나면 아파트의 자신의 방으로 와서 늘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서 놀았다고 했다. C군이 증세가 등장하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방과 후에 귀가 하면서 늘 익숙하던 친구가 갑자기 껄끄럽게 보이고 불편하게 보이면서 가슴이 뛰고 호흡이 막히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에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불편해서 눈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는 이웃에 있는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방문을 해서 심리검사 후에 불안증으로 약물을 처방 받았다. 그러나 그 약물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형 종합 병원인 xxx 병원에 신경정신과 과장님에게 달려 가서 처방 약물을 요청을 해서 아침에 5알 저녁에 4알의 약물을 복용하지 시작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불안 때문에 동료들과 눈맞춤을 피하기 위해서 입학식에 참가지 않았다고 토로 했다.


그러나 약물의 복용은 100% 문제 해결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C 군은 각종 심리학 서적들 예를 들어서 자신감을 기르는 10가지 방법 혹은 처세술을 위한 기술 등등의 서적들을 읽어 보고 그 책 속에서 약 300개의 경구들을 뽑아내서 외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그는 친구들과 관계를 할 때는 유머를 사용하고 그리고 뒤꽁무니로 빠지지 않고 분위기를 리더 하고 주도해야 한다는 등등의 경구들이었다. 그러한 경구들을 사용하면서 상당한 효과를 경험하게 되었다. 즉 친구들이 C군을 좋아하고 그의 농담과 유머를 좋아하고 사교성이 있다고 칭찬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상승을 했다.


그런데 약물과 적극적인 대응의 효과로써도 C 군은 40%의 효과밖에 얻을 수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는 실제로 60%의 자아가 작동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고 혼자 고립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나갔다. 여기에 더 붙여서 대학 1학년 때 MT, O.T. 때는 그 모임 직전에 소수를 1병 정도 마시고 참석을 했다. 술의 힘을 빌리게 된 것이 이후에 C군의 주량이 점점 증가해서 소주 2병이 보통이고 4병까지도 자주 마신다고 했다. 즉 술과 약물과 경구의 도움으로 7년의 세월이 흘러갔다(C군은 치료자의 분석에서 미국인 전문가의 관점으로 보면 알코올 중독 2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 자주 블랙아웃- 술 마실 때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현상). 그런데 7년의 마지막 달인 11월과 12월에 그는 99%로 붕괴 되었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단지 1%만 작동을 하는 상황으로 악화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는 xx대형 종합 병원과 쌍벽을 이루는 우리 나라에서 최고 대형 병원인 xxx 종합 병원에 달려가서 신경정신과 과장님에게 7년 동안의 약물 복용이 40%의 효과 밖에 없이 7년 동안 지속되어오다가 7년의 마지막 달에 99%로 붕괴되었다고 호소를 하고 정신과 과장님이 직접 상담 치료를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 과장님은 그 병원에서 1시간씩 상담 치료를 하는 의사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곳에서 1시간 10만원 내고 참석한 후에 그 의사 선생님이30대 중반의 전공의 레지던트임을 알고 실망해서 포기하고 다시 정신과 과장님에게 호소한 결과 그 병원에서 근무하다 개인 개업으로 상담치료를 병행한다는 의사를 소개받고 그 의사 선생님에게 달려 가서 약물을 처방 받으면서 1주일에 1회로 50분간 상담 치료를 병행을 하기로 했다. C군은 시간당 20만원을 내고 50분씩 4개월을 받았다. 그러나 효과가 전혀 없었다. 실망으로 정신분석을 찾아 보았다. 강남에서 xxx 정신분석가를 찾아가서 50분에 10만원을 내고 분석 치료를 받아보았으나 상담 진행 방법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해 보라는 말만 해서 유사해서 실망을 했다.


그 시점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C군은 치료자에게 문자 메시지로 나는 몇 년간 우울증으로 약물 치료를 받았고 심리상담 치료를 4개월간 받았고 그리고 정신분석 치료를 받아보았는데 실망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방식으로 치료를 하는지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치료자는 "증세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치료해서 자아 결함과 미성숙한 자아들을 분석으로 어린 시절부터 분석에서 발달 단계에서 통과하지 못한 미성숙한 자아 결함들을 수리하고 보충하고 새로 배우는 과정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입니다 고로 나는 6개월 이하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라고 했을 때 C군이 2시간 컨설팅을 받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2시간 컨설팅 후에 즉각 6개월 48시간의 치료 계약으로 1주일에 2회씩 1회기 당 2시간으로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분석의 과정에서 C군은 대인관계의 불편함으로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관찰해서 잘 하고 있는가?를 순간적으로 의식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재빨리 읽고 이것에 맞추어서 대응을 해나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에 술을 사용해서 분위기를 만들어서 술의 힘을 빌린다는 것들이 밝혀졌다.

 

이러한 자아 의식과 자아 관찰은 초반기에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40%가 작동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7년 후에 왜 1%의 작동으로 붕괴 되었는가?라는 것은 자율신경조직이 원리를 몰랐기 때문임을 지적을 했을 때 C군이 무릎을 쳤다. C군은 자신의 단점을 숨기려고 응급 처치로써 유머와 순간적인 껄끄러움을 이기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분위기 메이커로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의 핵심은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스로 긴장을 하지 않게 될 때 불편함이 감소되고 긴장이 풀리는데 거꾸로 의식적으로 자아 관찰을 함으로써 자신의 자동적인 자율신경 조직을 가동시켜서 긴장을 들어 올리고 불안이 상승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서 깨닫게 했을 때 C군은 왜 자신이 과도하게 제스처를 쓰고 술을 마시고 그리고 있는 유머와 농담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은 그 순간의 불편함을 감추기 위해서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긴장이 완화 되는 것이 아니고 긴장이 증가해서 99%의 자아 붕괴로 휴식이 없어지게 된 것을 분석으로 밝혀냄으로써 C군은 3개월(1주일에 1회는 6개월이지만 1주일에 2회로 48시간이 3개월 만에 완료)만에 80%의 자아 작동으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렇게 자아가 작동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다.


문제는 다시 6개월의 계약을 하고 분석 치료를 연장해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가 등장을 한 것이었다. C군은 스스로 치료를 계속해서 받기를 원했다. 고로 치료자가 부모님을 초대를 해서 지금까지 48시간의 치료 과정과 C군의 핵심 문제들을 브리핑을 하고 앞으로 치료의 계획과 방향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치료 연장을 거부했다. 어머니는 치료 효과는 인정하는데 한 자녀에게만 투자를 집중할 수 없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C군의 여동생을 소홀이 하고 오빠에게만 투자하는 것을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치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C군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돈올 모아서 치료를 받으러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아쉬운 치료 종결을 하게 되었다.


D군은 27세의 대학 3학년 휴학생으로 어머니에 의해서 치료자에게 이첩이 된 특별한 사례였다. 어머니는 D군의 여동생이 중학교 2학년 때 왕따를 당해서 치료자에게 6개월 동안 48시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의뢰를 했고 48 시간이 지나가면서 더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그 정도로 하면 혼자서 잘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치료를 종결했었다. 그 후에 5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지난 6월 말에 어머니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해서 아직도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지? 문의를 했고 금천구 독산동으로부터 이사를 해서 지금은 구로구 오류동에서 치료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아들 때문에 치료를 부탁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따님은 잘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딸은 그 이후에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대인관계도 좋아서 지금은 우리 나라의 최고의 여성 명문 대학인 xxx 대학에서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치료자를 신뢰해서 이번에는 아들을 이첩한 것이었다. 치료자가 어머니에게 아드님의 문제가 어떤 것인가? 어떤 문제로 아들 D군을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한 것인지?를 물어 보았을 때 아드님은 항상 행복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신사(젠틀맨)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2 4시간씩 1회당 2시간으로 월요일과 목요일에 정신분석 치료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30시간의 치료 회기를 진행하고 있다.


D군은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약 1년 정도 했을 때 직장 동료들과 큰 갈등은 없었다. 문제는 마음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게임을 많이 했고 지금도 바람의 나라라는 게임을 자주 한다고 했지만 중독 정도는 아니었다. 대인관계는 외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친밀관계를 만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큰 안경(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게임에서 온 것(D군 스스로 추측)으로 시력 때문에 안경을 착용)과 여드름과 심한 곱슬 머리카락 때문에 심한 열등감에 시달렸기 때문에 특별히 여자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학원에서 그가 관심이 있는 여학생들이 뒷담을 한다고 신경을 쓰다 보니 몇 가지 틱 문제(눈 깜박이, 코를 실룩거리기, 흐흠하고 한숨 쉬기)가 있었다.


고교 시절에는 스파르타 학원장의 도움으로 전교에서 1등을 그리고 20등 이내를 유지하면서 반에서는 1, 2등을 했다, 그러나 그는 대입 수능에서 실패해서 다시 1년간 재수를 해서 죽기살기로 공부를 했지만 그가 원하는 연고대를 갈 수가 없었다. 서울에 있는 xx 대학에 진학해서 입학 기념으로 라식 수술로 눈의 시력은 회복되었다. 군 복무를 끝내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D군은 남성용 화장품과 고급 의류와 신발 등을 구입해서 이것들을 몇 개월 입고 다시 되팔아서 5% 정도의 손해를 보는 방법을 선택해서 수백만 원짜리 옷과 신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 친구를 소개 받아서 몇 번씩 만났다가 퇴짜를 맞은 사례들을 이야기를 하면서 대인관계에서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할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너무 긴장되고 부자연스러움으로 몇 번 만난 후에 여자친구들이 모두가 떠난다고 토로 했다.


D군은 유치원 때부터 자위행위를 해서 자신의 긴장을 해소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자위행위를 해서 자신의 긴장을 해소하고 있고 대학 1학년 때 기말고사에서 마지막 한문제가 5점짜리고 당황해서 스스로 사정(정액 방출)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D군은 대인관계를 통해서 서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이 풀리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간접적으로 배우고 항상 피드백으로 자신의 자아를 수정하고 배우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생각, 느낌, 감각, 사고, 상상, 이미지 등등을 이야기를 하면서 친밀관계를 쌓아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치료자와 6개월 치료 계약 하면서 이미 4년 전부터 코 성형 수술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로 저축을 해서 400만원 정도를 모아 놓고 있었다. 치료 시작 때 강남에서 제일 잘한다는 xx 성형외과에서 330만원을 주고 코 형성 수술을 받았다. 친구들이 그의 코를 복 코라고 해서 예쁘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코를 수술하면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 후에 쌍꺼풀 수술도 계획하고 있다고 실토를 했다. 그는 외형적인 모습을 치중하면 이성관계가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정작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외형적인 모습을 지금까지 신경을 써 왔지만 무엇인가? 자신에게 2%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아의 결함과 자신감과 자아 존경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치료자로부터 깨닫고 이제를 그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최근에 밝혀진 또 하나의 증세는 소변이 너무 잦아서 30분마다 화장실에 들락거린다는 것과 전혀 모르는 사람의 경우에는 관계가 없는데 안면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안절부절 못해서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과도하게 자율신경조직을 컨트롤하려고 한다(외형적으로 잘 보이려고 하는 것과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려고 한다는 것)는 것과 위기, 긴장, 불안의 신경인 교감신경조직이 너무 과도하게 발달해서 휴식이 없고 자위행위로 몸의 긴장을 방출하고 있다는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과도하게 누적된 신체적인 긴장을 풀어낼 것인가? 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스스로 긴장이 많이 감소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와 2시간씩 분석 치료를 받고 있을 동안에 긴장, 불안으로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이 몇 %나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전혀 불안하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대화를 하는 것이 즐겁다라는 것을 느끼면서 0 % 라고 대답을 했다.


치료자는 치료자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D군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들 즉 좌절, 긴장, 열등감, 소외감, 우울함 등등의 자신의 단점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대답을 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D군이 다른 사람들 즉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단점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한번도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내 단점을 털어 놓으면 내가 숨길 것이 없고 방어할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긴장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심리적인 원리를 설명해주면서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는 것은 수치심, 모욕, 멸시, 조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이것을 계속해서 다루게 되면 감각 박탈이 되어 이야기를 하기 쉬워지면서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감소하게 된다는 심리치료의 원리를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치료실 안에서 모델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이 전부가 아니기 치료실 밖의 실제 상황에서는 친구들과 만나서 치료실에서 배운 심리적인 원리를 스스로 사용해서 직면으로 뚫고 나가면서 머리에 한 개씩 경험이 쌓이게 되면서 대인관계의 어려움들이 즐거움으로 갈등의 회피에서 도망가지 말고 갈등을 해결하고 직면해서 관계를 복원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D군은 지난 주 일요일에 자신이 스스로 가장 친하다고 자부하는 P 라는 친구와 만나서 6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 친구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라고 질문을 했을 때 D군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6개월 계약으로 시작했다는 것과 자신이 지금까지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의 단점을 숨겨온 것과 외형적인 신체적인 면과 화장과 외모로써 대인관계를 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이제는 마음의 열과 자아를 개발하고 자신감을 쌓아가면서 이성관계를 진실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생후 처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친구인 P군 역시 지금까지 서로 소통이 단절되고 잠수를 탔던 이유들을 서로 밝히면서 많이 가까워진 느낌을 이야기를 했다.


D군은 분석 치료를 통해서 내면의 혼란한 불안들이 마음 속에서 새로운 분류로 정리가 되어지면서 마음이 안정이 되고 주변 환경이 안전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생후 처음으로 서로 마음을 열고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 신뢰감과 친밀감을 쌓아가면 삶은 전쟁터가 아니고 삶이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이제 왜 자신이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죽자고 공부를 했지만 성적이 올라간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려간 이유를 알 것 같다고 고백을 했다. 과도한 불안에서 뇌의 회전이 저하되고 연상으로 기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무조건 외우려고 한 것에서 나타난 현상임을 알고 이제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루에 1시간씩 하고 있고 그리고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통해서 긴장을 풀고 서로 피드백으로 자아를 성장시켜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이러한 현상은 즉각 나타났다. 며칠 전에 D군의 어머니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아들이 특별히 여성들에 대한 미움과 특별히 페미니스트들에게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고 또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치료자는 분석에서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30시간을 통과하면서 어머니가 본 아들의 지금 현재의 상황을 물어 보았을 때 어머니는 아들이 많이 변화되었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얼굴 표정에서 불안해하는 것이 완화 되었고 마음이 자유로워져서 가족 관계가 많이 부드러워지고 삶에 대해서 자신감을 보여준다고 치료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치료자는 D군이 40시간을 넘어갈 시점에서 어머니를 초대해서 그 동안의 치료 과정과 D군의 핵심 문제와 그리고 앞으로 치료를 계획 등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에 위의 4명의 젊은이들의 심리치료를 하면서 치료자가 스스로 느끼게 된 것은 평생 동안 자신의 연구와 치료에 헌신한 정신분석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이 연구하고 치료를 한 심리학과 정신 의학의 원리들을 치료자가 응용하고 치료하면서 그들의 문제들이 증세로 표현된 것은 자아가 견딜 수 없는 자아 소멸과 자아 해체에 직면해서 스스로 자아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낸 것임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증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자아 결함과 자아의 미성숙함을 찾아내고 자아가 다시 성정을 재개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의 정신과적인 장애들의 핵심은 유아기 때부터 시작된 부모님과 자녀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서 머리 속에 입력된 자아 혼란과 자아의 발달의 과정에서 자녀가 통과 해야 할 발달 과업에서 생긴 자아 결함이 그 원인이다 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치료의 성공과 실패는 21세기의 자아의 중요성에 대한 가족들의 이해 부족과 자녀의 문제 해결에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핵심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치료 비용은 부모님 특별히 어머니가 쥐고 있기 때문에 A군과 C군처럼 좀 더 치료를 받기를 간절해 바라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치료 비용 지불 거부와 심리치료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고 자녀의 증세를 근본적으로 자아의 문제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때문에 치료가 지속되어지지 못하고 치료의 단절로 이어졌다. 대신에 B군과 D군은 어머니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자녀들을 설득해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했고 치료가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어가고 자녀의 심리적인 원리의 이해가 빠르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어떻게 해서라도 치료를 받아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치료를 받는 사람의 결심과 치료 의지이다. 심리치료는 천차만별이다. 한 곳에서 치료 실패로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적당한 심리치료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성서에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의 명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는 치료자와 치료를 받는 사람의 상호관계로 이것이 바로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에서 레포, 라포(rapport)의 형성 즉 치료 동맹의 형성이다. 치료자는 이것을 우리 나라의 고유의 창을 하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어주는 고수(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에 비유를 한다. “제비 보러 나간다”(꿍짜작 꿍짝)의 한숨을 돌리는 창을 하는 사람의 호흡을 들어 쉬는 그 순간의 박자가 서로 일치되어야 노래를 부르는, 창을 하는 사람은 신명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박자를 맞추는 사람은 북으로 호흡에 일치되게 박자를 맞추어주는 상호작용에 비유를 한다. 고로 치료자는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기 전에 2시간의 컨설팅을 받고 보고 서로 호흡이 일치 되는가? 치료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가?를 확인해 보고 결정을 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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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롤로 메이(Rono May)의 자아의 탐색(1953)

            :제임즈 마스트슨(James Masterson)의 자아 장애 치료(1989), 참 자아를 찾아서(1988)

            : 체싱크(Chessick) 자아 심리학과 나르시즘의 치료

            : 와트킨(Watkin, 1997)의 자아 상황 치료

            : 센필트(Seinfeld, 1991))의 자아의 핵심이 텅 빈 자아

            : 울프(Wolf, 1988)의 자아 치료

            :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 1975)의 보드라인 자아

위의 저서들은 우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치료자가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페이지인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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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대학 3학년 여학생 P양으로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1년 동안 학교에 가지 않고 만화방에서 만화와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 1학기 성적표를 보고 전과목이 F학점이 나온 것에서 부모님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2학기에도 똑 같이 만화방에서 보냈기 때문에 모두 F 학점이 나오면서 어머니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의뢰해 온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대학교 3학년 여자 학생 P


증세: 학교에 가기 싫어해서 어머니가 학교에 차로 태워다 주지만 학교에 들어가서는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음


접촉: 담당 교수님이 P양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치료자의 전화 번호를 주어서 어머니가 치료자에게 찾아오게 됨

진단명: 우울증, 대인공포증, 회피적 성격장애


치료 기간: 2회씩 1회 상담에 2시간씩 9개월 째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고 삶에서 원기를 회복해 가고 있음

 

치료의 과정

 P양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받기 싫은 심리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P양을 본 순간 치료자는 비만에다 얼굴 표정이 우울해서 문제가 심각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P양은 대학 3학년을 새 학기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문제는 P양이 1학년, 2학년을 정상적으로 다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머니가 P양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해 주었다. P양은 동물들을 치료하는 수의과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성적이 미달이어서 할 수 없이 집에서 3시간 정도 통학을 해야 하는 대학에 수학 교육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해 친지들의 소개로 중국에 가서 한의학(중국에서는 중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가 되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수능 직후인 12월부터 어머니의 권유로 중국어 어학원에 2개월간 다녔고 그 다음 해에 봄인 3월에 중국 남경에 건너가서 그곳에서 중국어 어학원을 1달 가량 다니다가 다니기 싫어져서 집에서 편안하게 놀 게 되었고 부모님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P양이 전염병인 샤스 때문에 일시 귀국하게 되었을 때 몸무게가 비만인 것을 수상하게 여긴 부모님에게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결국 유학은 포기되었다. 그 다음 해에 대학에 복학을 하려고 했으나 대학 측에서는 2학년에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1학년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2학년이 된 것이었다. 2학년 1학기 때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중간 고사를 쳤으나 성적이 기대대로 나오지 않자 부모님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고 집에서는 학교에 간다고 나간 다음에 만화방에서 하루 종일 보내거나 전자 오락실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고 학기 말에 성적표를 받아본 부모님이 P양이 학교에 제대로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이었다. 2학기에는 어머니가 P양을 대동하고 직접 학교에 데려다 주었으나 P양은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고 이것을 알게된 어머니가 학과 담당 교수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하소연한 결과 겨우 학점은 나오게 되었으나 두 번이나 학사 경고를 받아서 한번만 더 학사 경고를 받으면 제적이 된다는 경고를 받은 것이었다.


 P양은  대학교 교수인 아버지와 고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그리고 이번에 의과대학에 입학한 남동생이 있었다. 심리분석 과정에서 P양은 아버지의 스트레스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P양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해서 P양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잔소리 하고 처벌해 온 것이었다. P양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가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년 때부터였다고 했다. 그 때 반 남학생들이 P양을 찝적거리고 귀찮게 했으나 P양은 아무말도 못했고 당하고만 있었다고 했다. 부모님에게도 말을 못했고 담임 선생님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6학년 2학기 11월 달에 다행이도 P은 중학교 배정 문제로 좋은 학군에 가기 위해서 전학을 가게 되었고 따돌림을 시키던 짖굿은 남학생들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점차로 만화와 판타지 소설에 몰입하게 되었고 이후부터 성적이 떨어지게 되면서 아버지의 스트레스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이론적 근거

 P양의 근본 문제는 대인 공포증으로 동료들과의 관계를 피하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관계가 껄끄러우면 말이 없이 피해다니는 것이 P양의 행동 특성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문제가 점점 커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래도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P양은 동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들과의 대화가 모두 부모님의 명령에 따르는 형식이었고 가족 구성원들이 한 곳에 모여서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P양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공부를 잘 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감도 높았는데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대인관계가 어려워지고 동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지를 가족 관계 특히 부모님과의 대화 스타일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하는 말들이 늘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왜 이것은 안했니? 등으로 명령형의 대화 스타일 때문에 친구 동료들과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배우지 못해서 문제가 누적되게 된 것이었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문제가 노출되는 것을 싫어했고 자신들의 단점을 이야기하지 않는 스타일이었고 특히 아버지는 자기 딸이 공부를 못하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잘 안되는 것에 분노해서 딸만 보면 잔소리, 처벌, 분노가 흘러갔다는 것이 분석 되었다.


 P양은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진급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미국의 콜로라도 주에 있는 대학에 교환 교수로 1년 동안 가게 되었고 P양과 가족들이 함께 가게 되었다. P양은 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부모님이 함께 일년가량 미국에 체류하게 됨에 따라서 할 수 없이 가게 되었고 미국의 중학교 3학년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미국의 학제가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미 3월달에는 한 학기가 지난 뒤였다. 입학후 한 학기가 지난 뒤 9월 달에 미국의 고등학교에 올라간 것이었다.

  미국에서 생활은 어려움이 많았으나 외국인 친구들이 많아서 서로 비슷한 문제 때문에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한국에 귀국해서 P은 새로 생긴 국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국제 고등학교는 외국에서 장기 체류하다가 온 부모들의 자녀들로써 다들 영어에 능통했으나 P양은 1년간 체류한 것과 대조적이어서 학교 생활에 적응이 어려워져갔다. 국제 고등학교는 몇 해 전에 신설된 학교로써 외국어에 능통한 학생들을 길러 내기 위해서 시()에서 특별이 만든 학교였다. P양의 의지와 상관 없이 부모님의 생각에 끌려서 그 학교에 들어갔다. P양은 지금까지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이 제대로 없었다. 모두가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길로 P양이 끌리어 다닌 흔적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P양의 손등에는 시퍼런 피멍이 제법 오백원짜리 동전 두 개 크기로 나 있었다. P양은 7년 전에 아버지로부터 식사 도중에 식사 매너가 나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리모콘으로 손등을 맞은 자국이 남아있다고 울먹였다. 피멍이 든 것은 적어도 2개월-3개월이면 자연 치유가 되어 사라지는데 P양의 경우에는 7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어서 속이 상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알고 계시느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대충 알고 계시고 아버지는 언젠가 한번 너의 손에 피멍이 웬일이냐고 물었고 P양이 아버지가 리모콘으로 손등을 때려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는 했으나 그 다음에 아버지의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그 후에 P양은 손등이 아픈 것도 아니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지금까지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P양의 손등에 피멍이 든 것이 왜 7년이나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가?에 대해서는 피부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라고 했다. 치료자가 볼 때 심인성 질환으로 P양의 마음 속에 맺힌 마음의 피멍이 바로 손등이 피멍으로 상징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에 P양도 동조를 했다.


 P양은 자아가 없었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입에 맞지 않으면 하다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대학에 갔고 전공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졸업후 교사로 직장을 가지기 용이해서 인기가 있다는 부모님의 판단 때문에 갔다고 했다. 항상 끌려 다닌 결과였다. 스스로 판단을 내릴 줄도 모르고 심지어 대학 3학년인 대학생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치료자의 치료실에 오는 것도 각종 핑계를 동원하여 어머니가 자동차로 싫어주지 않으면 결석을 하기 일 수 였다.

 먹는 것을 입에 달고 있어서 몸무게가 비만이었다. 보기 싫을정도로 심한 비만이었다. P양의 말로는 몸무게가 68Kg이라고 했다. P양의 비만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계속 먹게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P양은 언제나 과자나 단 음식을 사가지고 다니면서 먹고 있었다. 심지어는 치료 시간에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과자나 떡을 가져와서 먹으면서 치료를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치료자는 P양의 이러한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이유는 치료자와의 대면이 불안해서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할지 어떻게 이야기를해야 할찌를 몰라서 불안에서 오는 행동으로 점차로 치료자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면 해소되어질 것으로 보고 간섭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론적 근거를 더욱 상세히 알고 싶은 분은 스트레스 크리닉에 들어가서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병을 보세요.


해결 과정

 아버지와 갈등 관계를 분석해 본 결과 P양이 아버지의 분노를 당기는 스트레스 해소 도구로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집밖에 나가면 무골호인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그러나 집에 들어오면 부인과 딸에게 폭력을 행사는 폭군으로 행사하고 있었다. 부인은 참아 오다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대들기 시작하면서 남편의 폭력은 최근에는 줄어들었다고 했다.

 대신에 부인에게로 가던 폭력과 스트레스는 그 만큼 P양에게로 많이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P양이 문제를 도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치료실에 오는 시간이 11시에 도착하여 1시에 끝나는데 P양은 12 40분에 치료실에 들어선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각종 변명을 갖다댄다. 치료자가 느끼는 감정은 그 순간에 분노가 폭발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이 때 치료자는 치료자가 아버지처럼 P양에게 분노로 처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은 P양이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에게 하는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어머니가 바빠서 P양을 치료실에 차로 대려다 주지 못하게 되어 혼자서 찾아가라고 약속을 한 다음에 치료실에 도착 시간 쯤에 어머니가 P양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치료를 받으러 가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P은 치료실에 오지 않고 집에서 지금 치료자인 선생님과 이야기 중이니 전화를 끊어달라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P양이 치료실에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는 줄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P양이 거짓말을 한 것을 알 게 되면서 P양에게 분노, 노여움이 처벌로 흘러간다는 것이 다반사였다. 부모님과 P과의 사이에 상호관계가 전부 서로를 처벌하는 행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부모님은 P양을 때리거나 용돈을 주지 않거나 P양이 원하는 것을 조건을 걸어서 어떤 것을 하면 P양의 요구를 들어주는 식이었고 P양은 부모님이 조금만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하면 부모님이 원하는 행동과는 거꾸로 행동을 한다는 점이었다. 아버지가 제일 중요시 하는 것은 공부였다.


 P양은 기분이 나쁘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핵심에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었지만 어린시절부터 부모님과의 상호관계가 그런식으로 변질되어 동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P양의 문제를 분석해 나가면서 P양과 부모님과의 상호작용 관계가 너무 밀착되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P양을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서 혼자서 자취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P양과 관계에 얽혀있는 스트레스를 차단 시켜 놓고 P양을 다루는 것이 효과가 훨씬 빠르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치료 결과

 P양이 1주일에 2회씩 1회에 2시간씩 상담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가면서 얼굴에 생기가 돌고 P양의 행동이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석가 탄생일에 독실한 불교 신자인 P양의 가족들이 절을 찾아 평소에 설법을 듣는 스님 앞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스님께서 P양의 얼굴에 생동감이 살아난다고 했다.

 부모님의 집을 나와서 혼자서 생활한지 4개월이 지나면서 혼자서 식사를 준비하고 집의 가구를 정리하고 자고 일어나는 일상 생활을 규칙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치료 시작 6개월 때 부모님에게 P양에게 금지 시켜 놓았던 컴퓨터를 되돌려 주고 P양에게 매일 같이 필요한 돈만 주었던 것을 용돈으로 한달에 모아서 주도록 했다.


 P양은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으로 15만원을 받게 되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고 컴퓨터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접할 수가 있었다. 그 만큼 부모님의 감시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치료 초반기에 매번마다 치료실에 들어서서 치료를 시작하면 머리가 아프다, 몸이 아프다, 위가 안 좋다. 감기에 걸려서 약물을 복용했더니 피곤하다는 불평 불만으로 치료 시간에 이야기를 하지 싫어했었는데 6개월 후에는 머리가 아프다, 몸이 아프다는 말은 일제히 사라졌다.


 P양은 아버지에대한 분노, 그리고 가족들에대한 분노를 지난 한달 동안 토해내면서 2시간 치료 시간 내내 통곡하고 울었다. 감정이 폭포수처럼 토해져 방출 되어감에 따라 P양은 얼굴에 살이 많이 빠지고 몸무게가 2Kg이나 감소 되었다고 기뻐했다. 몇 주전에 외할아버지의 별세로 장례식에 참석하여 아버지로부터 비난을 받고 나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분노를 참지 못해서 울분을 토해냈다.

 ​지난 주에는 부모님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자신이 이사를 나올 때 고양이를 데리고 나왔으면 고양이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통곡을 하며서 2주일을 보냈다. 이제 고양이에 대해서 울먹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P양의 마음 속에 갇혀 있는 분노와 적대감정, 수치심, 모욕이 많이 쌓여 있어서 이것을 빼내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이제 P양은 자신이 감정을 방출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무게가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되어 치료에 빠지거나 도망가는 일이 없어졌다. 앞으로는 치료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의 사례와 다른 사례이지만 남자 친구와 갈등 때문에 서로 친밀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헤어질 위기에 처한 한 직장 여성으로부터 받은 메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왜 그런것인지 알아서 치료하고 싶습니다

보낸날짜

2004 03 17일 수요일, 새벽 01 15 14 +0900

보낸이

수신거부에 추가    주소록에 추가

받는이

jongmankim@hanmail.net

 

저는 만난지 5년되어오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습니다.

저는 대학병원 간호사이고 그는 정신과 전문의 입니다.

5년동안 부모님의 반대도 상당히 심하고, 제가 간호사라는 이유로여....

그래서 결혼을 미루어 왔던것도 있습니다.

그는 저를 만나는 5년동안 근래에 알게 된것이지만 저와 만나면서도 3년간 결혼을 전제로 만나온 의대생 여자가 있었고, 최근에 만난지 1년된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여자도 있다는걸 알게 됬습니다.

물론 처음 알고 사귀면서도 수많은 여자들과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와의 사귐과 잠자리, 이리저리 만난 여자들과의 성관계.등등 많은  사실을 그동안 알아왔지만 워낙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깨끗이 정리하지 못하는 것일거라며 저 스스로를 위로 했었습니다. 근데 이제는 도가 지나칩니다. 근래에 알게된 금융기관에 근무한다는 여자와는 동거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6개월 째라고 하더군요.. 그여자에게 들은 이야기 입니다.

믿음이 없는데도 제가 왜 그 친구에게 자꾸 매달리게 되는건지........

또 그는 왜 하염없이 여자들과의 양다리 세다리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말 이해하려고 하다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늘 하는 말이 자기는 원래 매정하지 못해서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했기에 방관자적인 자세로 있었을 뿐이라며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합니다. 그리고 추궁당하는 것, 의심받는것이 너무 싫다며, 자꾸 의심받을수록 자신은 더 오버할거라며 합리화 합니다....

동갑이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이제는 그가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수많은 여자들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채로 저에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또 받아줍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슨 무의식이 있기에 저 역시도 그에게 매다리게 되는 것이며 그 역시도 정신과를 전공했다는 사람이

일반인들보다 더 지저분하고 올바르지 않게 자꾸 거짓말만 하는 것일까요?

그 여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뭐가 진실인지 정말 알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제나이 32이고 그 친구도 32입니다.

전 여지껏 그런 그를 용서하면서도 받아주려 하였고, 이 나이가 되도록 어린나이 때 부터 그를 기다려왔다는 것이 억울합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그의 심리는 무엇인지?정말 궁금합니다. 도와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