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동성애 치료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실마리 3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8. 8. 12. 03:49

동성애 치료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실마리 3

선천적이냐? 혹은 후천적이냐?


동성애의 연구와 치료는 정신분석의 단골 메뉴였다. 프로이트는 신경과 의사로써 시작했으나 그의 스승이자, 선배이자, 후원자이자, 동료였던 14살 위의 브로이어(Breuer)로부터 21세의 안나 오(Anna O)양을 소개받고 그녀가 유태인 백만장자의 무남독녀로 5개 국어 즉 독일어, 영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히브류어를 유창하게 하는 인텔리전트 한 아가씨로써 그녀의 손가락이 5개의 머리를 가진 뱀(환각)으로, 오른쪽 손이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바늘로 찔러도 무감각한)(감각 마비 증), 한번씩 모국어인 독일어를 할 수 없어 영어로 소통(실어증), 한번씩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으로(신경증적 장님), 오랜지 주스를 마시지 못하는(알레르기 증세) 등의 이상한 다양한 장애들을 가졌지만 병원의 종합 검진 결과는 신체적으로는 전혀 이상이 없는 환자로써 브로이어가 2년 동안 그녀를 치료를 해왔는데 그녀의 병의 이름이 히스테리아 이고 그녀를 최면으로 치료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최면의 연구를 위해서 프랑스에 최면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가르코트(Charcot)에게 6개월간 연수를 위해서 유학을 간 것이 프로이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의 글들에서 밝혔다.


프로이트가 히스테리아를 연구하고 최면학으로 치료를 하면서 최면이 충분하지 못한 치료기법으로 실망해서 정신분석학을 탄생시켰다는 것도 역시 여러 번 밝혔다. 히스테리아의 치료는 이후에 불안 신경증으로, 강박 신경증으로 그리고 신경쇠약 신경증으로 확대되어지면서 프로이트는 최면학을 버리고 정신분석 기법으로 그들을 연구를 하면서 모든 신경증들의 핵심 원인은 어린 시절에 섹스 상처가 그 원인이고 그 상처의 치료가 기본이다라는 유아성욕 이론과 오디프스 콤플렉스를 들고 나오면서 수 많은 과학자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먼저 브로이어로부터 냉대와 결별을 당했다. 이후에 그의 제자들 중에서 에들러(Adler)와 융(Jung)이 그의 오디팔 이론의 반발로 결별해서 떨어져 나갔고 그의 의과대학 뇌 생리학 교수인 스승 메이너트(Meynert)로부터 버림받았다. 생리학자로 신경학자로 그리고 의사로써 물리, 화학, 수학과 생물학으로 무장을 해서 과학자로 성장한 과학자가 최면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는 반쯤 미신(그 당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적인 이상한 것에 미쳐버린 제자라고 벽안 시 당했다(Ellenberger, 1970, Jones, 1953, 1955, 1957: 주㈜: 참고).


실증주의와 과학주의를 강조하는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을 하지 못하는 단지 프로이트 자신의 머리 속에서 나온 소설로써 매도를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창조한 정신분석 이론과 치료를 개발해 나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실험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들은 하나씩 실험실에서 혹은 현실에서 사실이다 라는 것이 증명되어져 가면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이론과 치료 기법들은 그의 정신분석이 탄생한지 100년이 지나가면서 드디어 1999 3월에 세계적인 시사 잡지 TIME사가 세계의 석학들에게 20세기 100(1900-1999)년 동안 우리 인간에서 가장 훌륭한 공적은 남긴 100명의 인물들을 선정해서 설문조사를 한 연구에서 1위가 프로이트, 2위가 아인슈타인으로 TIME 잡지 표지에 프로이트가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인슈타인을 풍자 만화로 싣게 되었다(1999, 3, 29 TIME 잡지 표지: : 참고).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연구와 치료를 하면서 변태성욕들을 신경증이 거꾸로 된 것으로 보았다. 신경증 환자들은 어린 시절에 섹스의 상처로써 섹스 욕구에 놀라서 섹스 욕구를 억압하고 두려워하게 된 반면에 변태성욕 역시 어린 시절에 섹스 상처를 받은 사람들로 보았다. 어린이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시기에 과도하게 섹스 상처를 받아서 그 상처에 압도되어 섹스 욕구에 좌지우지 되는 사람들로 보았다. 정신분석에서는 전자는 섹스 욕구를 차단하고 억압해서 섹스 욕구에 놀라서 도망간 사람들이고 후자는섹스 욕구에 과도하게 컨트롤 당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섹스에 노예가 된 불쌍한 사람들로 표현을 하고 있다.


이제 동성애에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어보자. 프로이트는 동성애는 3-5세의 남자 어린이가 아버지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 적대감정(미움이 습관화 된 것)으로 아버지를 동일시하지 않고 어머니를 동일시한 사람으로 동일시가 거꾸로 일어난 사람으로 보았다. 이것은 이후에 정신분석학자들의 동성애자들의 치료와 연구로써 하나씩 확고 한 이론으로 굳어져갔다. 특별히 프로이트는 섹스 욕구는 본능으로 타고 나지만 섹스 행동과 파트너의 선택은 배운 행동으로 후천적으로 보았다. 후천적이기 때문에 치료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변태성욕의 치료와 연구에 세계적인 대가인 UCLA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로버트 스톨러(Robert Stoller)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발달의 긴 여정에서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서 벗어나서 일탈한 사람들이 변태성욕이라는 것을 그의 연구와 치료를 통해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을 했다. 소년은 장기간 동안에 남성다워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갈등 그리고 부부 사이에 소통 단절과 별거와 이혼 들과 어머니와 아들의 상호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관계 등에서 정상적인 발달의 괘도에서 벗어나면서 섹스 심리학의 발달 과정에서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자아가 만들어낸 피난처가 동성애로 정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신분석학자들의 치료 사례의 연구에서 밝혀진 것으로 과학자들은 별로 신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인간과 접촉이 단절되어 살고 있는 지구 상의 외딴 오지에 문명과 단절되어 살고 있는 원시인들을 방문해서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삶과 문화, 그들의 행동과 생각들, 그들의 풍습들의 특이한 점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의 삶을 소개하는 인류학자들의 등장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이 역시 검증을 받게 된 것이다. 앞에서 기술한 인간의 문명 세계와 동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듣고 기술하는 사람들이 바로 인류학자들이다. 그들 가운데서 원시인들의 문화적인 면들을 주된 목적으로 참가하고 보고 관찰해서 보고하는 학자들이 문화 인류학자들이고 이들 중에서도 특별이 사람들에 관계된 것을 연구하고 보고하는 학자들이 인종학자들이다. 이 인종학자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그 원시인들의 한 개개인의 특이한 행동과 이상 행동들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특이한 행동들을 참가하고 관찰하는 사람들이 바로 치료 인종학자들이라고 부른다. 인류학이 다양하게 세분화 되어져 간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개발되어 전문화 되어져 간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치료자가 동성애에 대한 선천적 혹은 후천적이냐?라는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한 인종학자가 쓴 치료 인종학을 소개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종족은 소년들의 성장 과정에서 동성애의 에로틱함으로 동성애 섹스가 소년의 발달의 핵심 과정으로 양육되어지고 있는 한 부족을 인종학자가 그곳에서 5년 동안 같이 생활하고 그들의 생활에 참가하고 그리고 관찰한 인종학적인 보고서를 통해서 동성애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 보고자 한다.


그는 시카고 대학의 인간발달 연구소의 교수로인 길버트 헤르드트(Gilbert Herdt)이다. 그는 파푸아 뉴기니아의 외딴 곳에 삼비아라는 2300명 정도의 한 부족들이 광범위한 숲의 지역 속에서 모여 사는 수 많은 작은 부락들 속에서 처음 2년간 그들과 생활을 했다(그의 박사 연구 논문) 귀국에서 UCLA의 로버트 스톨러의 에로틱함과 성별 주체성의 연구에 매료되어서 2년간 UCLA에서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연구해서 다시 삼비아로 되돌아가서 3년 동안 그 부족들과 함께 생활 하면서 그 삼비아 족들 가운데서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골라서 개별적으로 치료적인 정신분석적인 상담을 하게 되었고 그의 연구의 말미에 로버트 스톨러가 그와 합류해서 약 10일 동안 머물면서 헤르드트의 연구의 치료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서 인터뷰을 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그들이 공동작으로 1990년에 친밀감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연구와 에로틱함의 연구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저서를 읽고 동성애와 관련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Stoller & Herdt, 1990: 주㈜: 참고).


삼비아의 사람들은 소년은 7세가 되면 부모와 분리되어 남자의 집으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남자다워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청년으로 성인으로 성장해간다. 소녀는 초경이 시작되면 부모와 결별하고 여성의 집으로 보내져서 결혼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게 된다. 삼비아 족의 여성들은 초경이 17-19세에 나온다(과거 우리 부모님 낭랑 18, 19살의 순정, 당신만 아세요, 17살이에요 대중 가요), 남성우월주의의 부계사회(과거의 우리 조상), 출산이 없으면 다른 몇 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외도, 씨받이 등), 일부다처(능력 있는 남자는 여러 명의 부인을 허용), 특별히 결혼 후에 출산을 한 경우에는 2 6개월 동안 섹스의 금기가 있다. 이 기간 동안에 남성들은 주로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을 얻어서 섹스 욕구를 해결한다.


가장 특이한 것은 소년들이 7세에서 부모와 결별하고 소년의 집에서 살면서 6단계의 입단식 예식을 거행하는 의식을 통해서 각 단계를 통과해서 성인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삼비아 원시인들은 유아는 모유를 통해서 성장해 가고 소년은 나이 많은 소년들의 정액을 마심으로써 청년으로 성인으로 성장해간다는 것이다. 모유는 어린이의 성장에 필수적인 반면에 정액은 소년들의 근육, 골격, 몸과 신체와 힘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 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정액의 고갈은 남자다움의 위협(조선시대 남자들의 욕설 중에 가장 큰 욕설이 고자(鼓子)자식(무정자)으로 정액은 남성다움과 힘의 핵심으로 가장 중요시되어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소년들은 6 단계의 입단식을 통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1 단계는 7-10세까지로 입단식을 끝내고 나면 소년들은 나이 많은 소년들, 선배 소년들로부터 남자 성기를 빨아서 정액을 마신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제 2 단계인 11-13세의 두 번째 입단식의 예식과정의 의식을 거치면서 청년의 준비 과정을 거친다 제 3 단계인 14-17살은 독신과정과 청년기를 통과 하는데(정액 방출) 지역 군대의 전사로써 부락의 방어 임무를 맡게 된다. 지역군대의 구성원이 된다. 4 단계는 18세 이후로 한 여성과 결혼 준비를 하게 되는데 나이 많은 여성으로부터 섹스 기술을 교육 받는다(특별히 삼비아 인들은 유아 약혼식으로 부모가 서로 유아 때 이미 결혼 약속) 5 단계 입단식에서는 초경이 나온 여성과 결혼을 한다. 6 단계는 결혼 후에 첫 출산으로 26개월 동안 섹스 금기를 거치는 과정이다.


삼비아 사회는 철저한 남성의 사회로 남성들은 여성들의 분비물을 두려워한다, 여성의 생리, 애액(섹스 흥분의 윤활유)를 두려워해서 사정 이후에 빨리 철수해버린다. 삼비아 남자들은 몽정이 없고 자위행위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춘기 직전에 남자들의 집에 집단 생활을 하면서 동성애 에로틱함으로 섹스 요구를 개발해 간다 그리고 결혼 이전의 성인 남자들로부터 남근을 빨아서 정액을 마신다는 것이다. 이 정액은 그의 신체적, 근육, 힘과 성기의 발달과 성욕구의 발달에 필수적인 것으로 믿고 있고 그리고 결혼 이전에는 여성과 섹스가 금기기 되어져 있다.

대신에 정액이 방출되면 남자로써 인정을 받고 후배 소년들에게 남근을 빨리면서 정액을 제공해주는 봉사를 해야 한다 고로 자위행위가 필요 없고 몽정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후배 소년들에게 남근을 빨리기를 하고 나면 정액 고갈을 두려워해서 그들은 판다누스 나무 열매를 따먹는다 그리고 나무들의 수액을 마신다(정액의 보충). 결혼 후에는 부인이 남편의 정액을 독점한다. 남편의 정액은 부인의 자궁에 저장되고 그리고 아기의 탄생에 기여한다, 아기의 몸과 뼈가 된다고 믿고 있다. 정액은 상품이고 가치이고 힘이 원천이고 모유보다 더 중요시 여긴다. 모유는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에 기여하지만 정액은 평생 동안 공헌을 한다. 소년이 되어가는 기간에 정액을 마시고 그리고 청년이 되면(정액 방출) 어린 소년들에게 정액을 제공하고 어른으로 결혼하면 부인에게 정액을 제공하고(부인의 남자의 남근을 빨아서 정액을 마신다) 그리고 출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삼비아 사람들은 정액을 가장 중요시한다. 정액 고갈은 남자로써 실패, 힘이 없는 남자는 정액의 부족으로 간주된다.


삼비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남자들은 정액이 흘러 넘치는 섹스 욕구가 강하 남성, 전사로써 용맹한 남성, 용기가 있고 전쟁에서 상처를 많이 가진 남자가 리더가 되고 부족을 이끌어간다. 부인을 여러 명 가지고 있는 남자, 체격이 좋고 우람한 남자, 힘이 세고 사냥을 잘 하는 남자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이것은 농경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섹시하고 힘이 세고(씨름에서 힘겨루기와 상으로 황소), 자식이 많은 남자, 첩을 여러 명 거느리고(조선 시대 양반들은 중, 상류, 성공과 출세한 남자로 첩을 1명 혹은 2명씩 두었다) 살았던 조선시대 우리 조상과 닮은 점이 많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주㈜: 참고).


여성들은 자녀를 많이 낳고 텃밭 가꾸기를 잘 하는 정숙한 여성이 인기가 있었다. 난잡한 섹스를 가진 여성들은 폐각추방 되었다. 조선시대에 부잣집 맏며느리가 인기가 있었다. 골반이 크고 자녀를 잘 낳을 수 있고 몸이 튼튼해서 일을 잘 하는 부잣집 맏며느리가 인기가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주㈜: 참고).


소년의 입 모양이 특별히 에로틱한 부분으로 매력의 포인트이고 부부 간의 섹스에서 애무(愛舞)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비아 인들을 적들과 자주 전쟁을 했다. 다른 부족들과 전쟁은 치열하고 자주 일어났다. 적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잔인하게 죽이고 강간하고 약탈이 허용되어져 있었다. 고로 적을 방어하고 살아 남기 위해서 청년들은 전사가 되는 것이 첫 번째이고 가족의 보호가 용맹과 훈련으로 무장과 사냥을 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첫 번째 임무였다. 여성들은 텃밭 가꾸기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으로 감자, 토란이 주식이었다. 가끔 사냥으로 짐승들의 고기를 먹어서 단백질을 보충을 하는 것이었다.


결혼 한 후에 부부 생활은 부부싸움, 질투심, 논쟁, 주술의 두려움들, 부인 매질, 자살 등이 빈번했다. 보통은 결혼 후에 2-3일 만에 한번씩 섹스를 가지는 것이 정상이고 최하로 2주일-3주일 마다 섹스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출산이 강조되고 만약에 자녀가 없으면 여성들의 탓으로 첩이나 외도를 묵인 해주는 것이 풍습으로 볼 때 섹스는 자녀 출산의 수단으로 가장 중요시되었다.


이제 동성애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삼비아 사람들은 사춘기 직전에 나이 많은 소년들로부터 남근을 빨아서 정액을 마시는 에로틱한 동성애적인 행동이 남자로써 성장과 발달을 해 나가는데 필수 코스였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어서 동성애 사회가 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동성애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사회 문화의 기본 룰이 동성애를 배척하고 금기시 한다는 것이었다. 동성애 에로틱의 과정은 소년이 청년으로 변화를 하는데 섹스 욕구의 개발에 필수적인 것이지 동성애의 생산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예로써 7세의 소년들은 그의 성기에서 정액이 생산되어 나올 때까지는 나이 많은 남자들의 성기를 빨아서 정액을 마시는 것이 발달의 필수과정으로 허용되어져 있지만 그 거꾸로는 허용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나이 많은 동성애가 나이 어린 소년에게 자신의 성기를 빨게 해서 오르가슴을 느끼고 나이 어린 소년이 남근 발기를 해서 섹스 오르가슴을 가지는 쌍방관계의 섹스는 허용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나이 많은 소년이 남근 빨리기를 할 때 자신의 정액을 나이 어린 소년에게 정액을 제공할 때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섹스의 흥분으로 연결되어지지 않고 그냥 한 개의 예식을 치를 때 통과 하는 의식으로만 느껴진다는 것이 개발 인터뷰 방식에서 헤르드트와 스롤러가 밝혀냈다.


삼비아 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상상들과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거나 자신의 개인 비밀들을 서로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었다. 이것 들을 개인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 사이에서 한 동성애 남자와 한 신경증적인 남자 그리고 전통적인 룰에서 벗어난 한 부인의 사례를 개인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이 생각하고 상상하고 감각하는 개인적인 비밀을 개인 인터뷰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남자가 칼루투라는 동성애 남자였다. 그는 사생아로써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여러 명의 남자와 난잡한 섹스 관계를 통해서 누가 아버지인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조선시대에 아비 없는 후레자식, 개새끼(누구의 자식인지 모르는 매춘부의 자식). 여성이 난잡한 섹스를 하는 사람을 창녀로써 낙인이 찍히고 그녀는 형제들 즉 오빠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매질을 당했다. 삼비아 사회는 혈족 사회로 형제들과 친구들의 중심의 혈연사회에서 배척은 폐각추방으로 이어졌다. 그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칼루투는 어린 시절에 7세의 입단식에 참개해서는 정상적인 코스를 제대로 당당하게 통과하지 못했다. 통과를 잘 하지 못하는 소년들에게 모욕과 매질과 처벌과 심한 경우에는 죽음으로 연결 되었다.

그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자신감에 상처를 주어서 주눅이 들고 용맹이 부족하고 별볼일 없는 남자로 자라났다. 정액이 방출된 이후부터는 소년들에게 자신의 정액을 제공하게 되었지만 소년들은 남자답지 못한 나이 많은 소년들로부터 정액 흡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결혼을 했지만 초야를 치르지 못하고 실패했다. 동성애였기 때문에 이성과 섹스에서 발기가 되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4번의 결혼에서 실패로 부인은 다른 남자들에게로 도망을 가 버렸다. 그는 부인이 없는 어른, 자녀가 없는 어른이 되었고 주변 사람으로부터 손가락 질을 받았다. 그는 소년들과 섹스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동성애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항상 고통과 소외와 멸시, 천대, 조롱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었다. 사회에서 소속감이 없고 이상한 남자로 매력이 없는 남자로 친구들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는 죽은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토로 했다.


두 번째 남자는 이만누라는 남자로 그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남자로써 여성적이고 가정적이고 자녀들 중심으로 부인의 텃밭 가꾸기를 돌보아주는 사람으로 서구인의 관점으로 볼 때는 이상적인 아버지와 남편으로 존경을 받는 남자이고 가장이고 아버지였지만 삼비아 사회에서는 일탈된 비정상으로 배척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삼비아는 여성적인 남성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예의가 바르고 도덕적인 남자는 여성스러운 남자로써 인기가 없었다. 힘이 세고 우락부락하고 거칠고 용맹스럽고 사냥을 잘하고 전사로써 싸움을 잘 하는 남자가 최고의 남자이고 아버지였다. 고로 이만누는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없었다. 여성들로 가정적인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일탈자로 변태적인 사람으로 존경하지 않고 비하하고 멸시를 했다.


세 번째 사람은 사꿀람베이라는 사람으로 그는 출생 때 남자인지 여자 인지가 분명하지 않는 암수동체, 양성적인 사람으로써 태어났다. 즉 성별이 약간 기형으로 남자인지, 여자 인지 확실하게 구분이 되지 않는 남자였다. 그의 부모는 남자로써 이름을 지어주고 양육을 했다. 그런데 그가 오줌을 눌 때 페니스 쪽의 튀어나온 부분에서 오줌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페니스 밑에 있는 구멍에서 오줌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성염색체로써 구분이 된다. 아들은 XY, 딸은 XX 이다 즉 사꿀람베이는 성염색체가 XX로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이상한 성기 모양 때문에 남자로써 양육되어져 자라난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열등감을 혼자서 달고 다녔다. 그것이 그의 신경증적인 문제였다. 그는 정상적인 남자로써 성장을 했다. 6개의 입단식을 거치고 남자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동료들로부터 남자 성기가 이상하고 작고 비정상적이라는 비아냥과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사꿀람베이의 아버지는 이름 난 전사로써 부인을 6명이나 데리고 살았고 자식들도 20명이 넘었다. 사꿀람베이는 5번 째 부인 한데서 3 번째로 태어난 어린이였다. 아버지는 기형적인 성기를 가지고 태어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가 5살 때 죽었다. 고로 그는 전사인 이름난 외삼촌 밑에서 외삼촌이 아버지의 대역을 하는 것을 통해서 사먄이었던 외삼촌으로부터 샤만의 기술을 전수 받아서 샤만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샤만의 기술은 그의 신체적 열등감을 보상해주었다.


사꿀람베이가 10살쯤에 한 독일인이 그곳에 사업차 왔다가 그의 성기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바지를 내리게 하고 사진을 찍어서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웃고 떠들었던 그 상처 기억을 치료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털어 놓고 분노했다. 그 남자는 그에게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의 페니스의 이상한 모양을 사진을 찍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을 천대하고 멸시 조롱을 했다고 분노한 적대감정을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었다. 그 인터뷰 이후에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결혼을 했으나 자녀가 없었다.


어떻게 샤만의 영혼이 그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무당이 되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서 스톨러가 그에게 최면을 걸어서 최면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그는 무당으로써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 조개 껍질로 된 장식 옷을 입고 머리에 깃을 꼽고 황홀함에 빠져들면 외삼촌의 영혼이 그의 머리 속에 들어와서 황홀함에서 외삼촌이 그의 입을 빌려서 무당의 역할을 하고 병에 걸린 그 환자와 대화를 하면서 그의 소망과 갈등을 서로 이야기를 한다고 털어 놓았다.


네 번째는 페니크위라는 30대 초반의 부인으로 그녀는 유아 약혼식을 하지 않고 어린 시절에부터 그녀의 이모부가 파푸아 뉴기니아 정부의 해안 경비국 소속으로 보수를 받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구 문화에 물이든 이모부를 존경하고 이모부 집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자라났다. 이모와 이모부는 삼비아의 유아 약혼식을 좋아하지 않고 비난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결혼을 하는 자유 결혼 주장을 하는 영향을 받아서 페니크위는 상상 속에서 소년과 사랑을 나누는 꿈을 키우면서 개방적인 소녀로 자라났다.

 

그녀가 사춘기 때 초경을 가지면서 여성의 집에서 여성들과 집단 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꿈을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녀가 그 소녀의 집을 탈출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이웃 동네의 젊은 청년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녀를 보쌈(천으로 얼굴을 뒤집어 씌우고 여성을 납치)으로 납치를 하고 그녀를 강간해서 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을 미워했지만 할 수 없이 같이 살고 있으면서 4명의 어린이들을 낳았다. 남편이 사냥을 나갔다가 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하반신과 골반이 파괴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간호하고 있는 부인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남편이 죽고 나면 그녀를 납치해서 데리고 갈 것이라고 벌써부터 몇 명의 남자들이 데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삶을 운명으로 팔자로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주변에서 사람들은 그녀가 유아 약혼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남편이 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곧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도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그녀의 상상들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상상 속에서 이상적인 소년과 사랑을 나누고 어른이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면서 행복한 생활을 꿈꾸어왔던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삼비아라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 삼비아의 문화와 사회에 부응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제 정리를 해 보자, 삼비아의 소년들은 남자다움의 과정을 통과 하면서 동성애에로티시즘으로 동성애 섹스를 통해서 남성다움을 개발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삼비아 사람들 한데서 동성애가 거의 없는 것은 삼비아의 사회와 문화의 표준들이 소년들에게 동성애를 금기시하고 이성애를 통해서 혈통을 이어가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 표준에서 이 룰들을 벗어날 때 사회적 처벌인 멸시, 조롱, 천대, 비하, 비판들이 삼비아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들의 정해진 표준에 부응해서 발달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회의 문화와 룰들이 그 사회의 질서를 창조하고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것에서 벗어날 때 그 일탈이 변태로 인식이 되고 그 변태에 따라오는 차별과 처벌의 고통을 때문에 자아가 살아 남기 위해서 만든 방어가 바로 변태성욕이라는 정신분석가들의 이론이 입증이 된 것이 아닌가?


동성애는 소년이 남자다워지는 과정에서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서 생긴 고통을 자아가 피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동일시 하지 않고 어머니를 동일시 하면서 여성스러움으로 개발을 해 나가다가 사춘기의 진입에서 동료들로부터 소속감에 결함으로 자아가 깜짝 놀랜 것이다. 사춘기의 특징이 이성 쪽으로 향하고 섹스 욕구가 등장하게 되면서 자아가 고통을 감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동료들의 남성다움(maleness)과 남자다움(manhood)에 소속감의 열등감을 느낀 동성애자들이 남자답고 남성적인 남자들에게 섹스 욕구를 느끼고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이 동성애 남자들의 특징이 아닌가!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남성답지 못하고 여성스럽다는 것에 열등감을 안고 있다. 그들이 어린 시절에 시시 보이(sissy boy) 즉 계집애 같은 소년이라고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받았던 상처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들은 남성답지 못하고 여성스럽다는 열등감에서 자아가 고착이 되어서 그곳에서 남성다움의 자아가 성장이 중지된 것이다, 고로 그들을 그 이상 더 발전을 할 수가 없이 계속해서 그 지점에서 반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 섹스를 가지게 되면 남성다움이 수혈되고 그리고 남자로써 자신감이 상승한다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공통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성으로 살지만 남성적이 되고 싶어하고 진정한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그의 상처를 치료 회기 위해서 그 고착된 지점을 자아가 통과하지 못해서 계속 반복적인 상처의 치유 과정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남자다움의 수혈로써 동성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자아가 잘못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상처의 반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써 동성애자의 파트너가 근육질의 남자다운 남성적인 섹시한 남자에게 섹스 흥분이 끌리는 것은 그가 그 파트너를 동일시하게 얻는 남성다움이 아닌가? 즉 동성섹스 이후에 가지는 자신감은 그 남자의 남성다움을 동일시해서 얻는 감정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을 허상임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순간적인 기분을 들어올리는 것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되지 않고 끝없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동성애자들은 여성을 두려워하고 여성의 음부인 버자이너를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섹스를 항문으로 하거나 혹은 남근 빨기를 통해서 섹스 긴장을 방출하고 흥분으로 오르가슴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없는 반복적인 욕구 방출이 아닌가? 매춘부를 찾아가는 남자들은 사랑이 없는 섹스 욕구의 방출이다. 동성애가 서로 친밀감의 애착이 없이 1회용 혹은 2회 용으로 서로 만나서 이름도 모르고 섹스 욕구를 방출하는 것이 매춘부와 만나서 섹스 욕구를 방출하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여기에 또 한가지는 동성애 욕구가 강해지는 것은 스트레스가 누적될 때 즉 신체적 긴장과 불안이 높아질 때 동성애적 섹스 욕구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성다움에서 가장 열등감이 높을 때 그 신체적 긴장을 동성애로써 방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자 한데서 치료를 받고 있는 많은 젊은 남자들은 그들이 과도한 불안으로 긴장의 누적이 한계점을 넘어가면 자위행위로 섹스 욕구를 방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들을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동성애의 원인은 섹스 행동과 파트너의 선택을 할 때 남자다움의 성장과 발달 과정에서 정상적인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일탈한 것으로 그 이유는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서 자아가 고통스러움 때문에 방어로써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동성애 쪽으로 일탈을 선택한 것이다. 고로 동성애 치료는 단순히 섹스 파트너를 교환하는 것에서 치료의 찾는다면 연목구어(나무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가 될 것이다.


인간은 남성으로 태어나도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고 여성으로 태어나도 남성으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위에서 사꿀람베이의 예에서 그리고 이미 현대사회에서도 사례들이 수 없이 많다. 존 홉킨스 의과대학의 소아정신의학 교수이자 섹스 학자로 성 주체성의 연구의 대가인 존 먼니(John Money)는 출생 시에 남녀의 구분이 애매한 유아에게 부모의 성별 부여가 그를 남자로써 성장하게 하거나 여자로써 성장하게 한다는 연구 논문으로 그리고 실제 사례들을 발표를 했었다. 더 붙여서 딸 부자인 부모가 딸 들 중에서 너는 전생에 아들인데 딸로 태어났으니 아들의 대역을 하라고 하는 기대를 딸에게 심어주면 그 딸은 아들로 성장해서 결국은 여성을 수술해서 남성으로 되돌아간다는 그리고 그 반대로 사실이다, 예들 즉 성 전화증 환자들이 부산의 동아대학 대학병원에 성전환 수술 전문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경남과 부산 지역에서 약 300명의 수술(남자 주체성 환자들과 여자 주체성 환자들을 포함해서)(남자가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여자가 남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3배가 많다는 것은 동서양에서 똑 같다)을 받으려고 대기 중이라는 신문기사가 오래 전에 소개되었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주㈜: 참고).


인간이 남자이냐 여자 이냐는 발달의 과정에서 부모의 양육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라는 것은 마음의 현미경인 정신분석학에서 지금까지 한가지씩 밝혀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고로 동성애의 치료는 섹스 파트너를 여성으로 바꾸려고 시도를 하면 백전백패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남성다움의 발달 과정에서 잘못된 자아 고착을 정상적인 발달 과정으로 되돌려서 남성다움의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 그 다음에 이성과 관계를 하는 발달 과정으로 통과 하도록 자아의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도와주어야 한다. 고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가 사춘기 직전에 또래 집단에서 남자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정상적인 남성들의 소속감에서 남자다움을 습득하고 나서 그 다음에 사춘기로 들어가면서 남성다움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 이성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하고 이성과 사랑을 나누어가는 과정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발달과정인데 이것은 동성 동료들과 관계를 먼저 마스터하고 이성관계로 진행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고로 동성애자 들은 동성 관계에서 일탈이 생긴 것으로 동성관계에서 남성다움을 통과하고 나서 이성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동성애 치료의 과정임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동성애는 1980년에 미국의 DSM-Ⅲ에서 변태성욕에서 제외시켜서 삶 스타일로 정의를 해서 섹스장애로부터 제외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의 문화와 룰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은 정신의학에서 동성애를 정상으로 돌려 놓았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시각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동성애 부부를 합법적인 부부로 인정해서 혼인 신고를 받아주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동성애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의 멸시, 조롱, 비난, 천대, 냉대를 견디어 살아갈 수 있는가? 동성애가 주는 고통을 평생 동안 어떻게 참고 이기고 견디어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동성애자들이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세상에 알리는 키밍아웃(coming out)이 아닌가! 아무쪼록 고통 속에서 혼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동성애자들이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아서 하루 빨리 고통 속에서 빠져나 오기를 바란다. 아직도 정말로 동성애가 치료가 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삼비아 족의 동성애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치료자가 지금 동성애 치료를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하면서 신문과 언론에 소개된 우리 나라의 동성애 커플의 고통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 1. "우리사회의 혼인이라 함은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는 남녀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의미합니다" 20년 넘게 살을 맞대고 동거동락해 온 두 여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로 부부 사이었는지를 가리기 위한 법정 공방까지 벌였으나 법원은 "우리의 사회 관념상이나 가족질서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동성(同性)간 사실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5 31일이 여자인 A(45)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B(47, )씨가 툭 하면 폭력을 휘두르고 부모를 무시해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며 인천 지법에 3 7 500만원의 사실혼 관계 해소로 인한 재산 분할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A씨와 B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80년 인천에 있는 한 택시 회사, 택시 기사로 일하던 B씨는 당시 경리 직원으로 일하던 A씨를 만나 서로 호감을 키우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임을 자처하는 B씨와 아내 역할의 A씨는 인천에서 서예 학원을 운영하는 등 틈틈이 돈을 모았다. 재산 관리는 B씨가 맡았으며 당초 금실이 좋았던 이들은 인천 서구 지역의 땅 3필지(757)을 매입하는 등 제법 재산도 모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둘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A씨는 "B씨가 자신이 늦게 귀가하거나 집을 비우면 이성(남자)을 사귀는 것으로 의심하고 손찌검을 했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A씨는 "더 이상의 동거생활이 어렵다"며 지난 해 "동업 관계 해소로 인한 청산금 청구 소송을 냈지만 지난 달 25일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A씨는 대법원 패소 판결에도 불구 "지난 20년간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이뤄져 왔다"고 사실혼 관계를 인정해달라는 취지의 재산 분활(1 7 5백만 원과 부동산 절반) 및 위자료 (2억 원) 청구 소송을 재기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인천 지방병원 제 2 가사부 이상인 판사는 27 "우리 사회의 혼인이라 함은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는 남녀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지 동성간 사실 혼은 인정할 수 없다." B씨를 상대한 한 A씨의 소송을 기각했다(연합 뉴스, 2004, 7,29).


사례 2. 전국 중, 고등학생의 7.9%가 성관계, 키스 등을 포함해 동성친구와 애정 표현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학생(12.2%)의 비율이 남학생(4.1%)의 세배에 달했다. 한국 청소년 상담원이 지난 5월 전국 중, 고등학교 학생 2 2 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3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동성과 애정 표현을 해 본 적이 있다고 밝힌 청소년 가운데 8.8%가 동성간 성관계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동성과 애정 표현이 있는 청소년 중 키스, 포옹을 해봤다는 응답이 38.5% "사랑해" 증의 말을 하며 지속적으로 교제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26.6%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전체 응답자 중에10명에 1명 정도(11%) "나는 동성애 성향이 있는 게 아닐까?"라며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동성애 성향을 고민하게 되는 계기는 "동성 친구에게 묘한 느낌과 감정의 동요가 있어서"라는 응답이 전체의 4분의 1오 가장 많았다. 이에 비해 응답자의 4분의 3 "징그럽다" 또는 "정신병, 변태"등과 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79%는 동성애 성향이 있는 친구에 대한 "말리거나, 피한다"고 답했다 (중앙일보, 200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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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헤르드트와 스톨러(Stoller & Herdt, 1990),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연구와 에로틱함

           :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역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

           :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Ⅰ권(1953), 제 Ⅱ권(1955), 제 Ⅲ 권(1957)

           : 김종만(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위의 저서들은 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인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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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LA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인 로버트스톨러(Robert Stoller)는 에로틱함과 성 주체성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대가이다, 그는 40년 동안 변태성욕의 연구와 치료를 해 온 사람으로 그가 쓴 5권의 저서들은 치료자가 번역해서 소장하고 이다.

1.  변태성욕:미움의 에로틱한 형태(1986)

2.  고통과 열정(1990)

3.  섹스의 흥분: 에로틱한 생활의 역동학(1979)

4.  쪼갬: 여성의 남성화 치료 사례(1997)

5.  친밀감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연구와 에로틱함의 연구(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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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동성애의 치료를 위해서 컨설팅(2 시간)을 받은 30대의 한 S군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동성애로 고민하는 30대의 남자 S


증세: 심한 동성애로 지금까지 살아 오다가 모태 신앙인 기독교 신자로써 믿음과 충돌, 갈등으로 고민에 빠지면서 치료를 호소함


진단: 진성 동성애, 가벼운 불안증, 가벼운 우울증


연결: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동성애 치료 사례의 과정을 지켜 보다가 동성애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로써 치료 되어질 수 있다는 확신으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처음에 컨설팅으로 2시간을 치료를 받아 보고 나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회기는 2시간 동안의 S군의 동성애의 시작과 역사를 요약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S군은  치료자에게 동성애 치료를 받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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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 치료의뢰


보낸사람

xxx< xxxxx@naver.com> 보낸날짜 : 17.11.01 00:42

받는사람

<jongmankim@hanmail.net> 주소추가

안녕하세요-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는 30살 남성입니다.
블로그에 나와있는 동성애치료자들의 내담내용이
매우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치료를 위해 내원해야하는 장소와
계약기간별 비용을 알고 싶습니다.

빠른시일내에 찾아뵙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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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자는 S군에게 치료자는 6개월 이하의 치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과 6개월 계약으로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과 그 이전에 컨설팅을 2시간 받아보고 나서(치료자는 반드시 2시간을 상담) 결정을 해도 된다는 것을 설명을 하면서 컨설팅 비용은 1시간당 xxx 원으로 2시간 xxx 원을 지불한다는 것과 미리 시간 예약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수칙을 e-메일로 전달하고 나서 xx요일 저녁 8-10까지 시간 예약을 했다. 그는 컨설팅 시작 직전에 폰 뱅킹으로 2시간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고 저녁 8시 정각에 치료실에 도착을 했다.


 S군은 키가 크고 홀쭉이로 미모의 매력 있는 남자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특별히 말을 말하는 달변가의 스타일로 그가 휴대폰에 자신의 어려운 문제들을 적어 저장해 와서 틈틈이 그 휴대폰을 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전개 해 나갔다.


 S군의 삶의 역사: S군은 시골에서 성장을 했고 중, 고등학교는 대도시에서 통근으로 학교를 다녔다. 대학은 서울로 올라와서 누나와 같이 생활을 했다. 61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3명의 누나들이 있고 큰 누나는 36세로 미혼으로 2살 터울로 셋째 누나가 먼저 결혼을 해서 자녀들이 두명이 있고 그 다음에 둘 째 누나가 결혼으로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방의 대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최근에 정년 퇴직으로 집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S군이 막내로 출생 전부터 티격태격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늘 어머니는 아버지를 평가절하고 이혼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누나가 지방의 대 도시에서 외고에 합격하면서 시골에서 가족이 대 도시로 이사를 와서 2년 동안 살 게 되었고 그 시점에서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어머니와 갈등이 심했는데 이후에 어머니의 아버지 평가절하가 더욱 더 심해졌다고 했다. 2년 후에 다시 시골로 내려가서 부모님은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S군이 대학 1학년을 끝내고 군대에 입대를 해서 2년 군복무를 하고 전역해서 복학으로 학교 생활을 하면서 약 4년 동안은 동성애를 일체 가지지 않았고 독실한 기독교 모태 신앙 속에서 자란 S군이 기독교의 믿음과 동성애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다가 대학 4학년 때 불안과 우울함으로 도저히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6개월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동성애라는 말을 부모님과 누나들고 모르고 있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S군은 이미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고민을 많이하게 되었고 서점에서 정신과 서적들을 20여권 사서 자신의 동성애가 어린 시절의 부모님의 원만하지 못한 갈등으로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병든 가족임을 깨닫게 되면서 6개월 휴학하고 고향에서 지내면서 하루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억눌린 고민을 털어 놓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자신이 고통속에 살아왔고 그리고 특별히 아버지가 S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것에 대한 분노가 심하다는 것을 호소연을 했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S군의 호소를 수용하고 사과를 했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아버지는 지금까지 아버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보호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해 왔는데 사실은 S군은 아버지기 이미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 자주 정신과에서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증세와 병명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데 그 시점에서 아버지가 자신이 어린 시절의 심리적 상처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 것에 깜짝 놀랬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로부터 마대(밀가루 등을 담는 큰 자루) 속에 집어 넣고 두들겨 패서 정신을 잃은 적이 있고 그리고 ㅏ아버지가 16-17살 경에 아버지가 따르고 좋아했던 모범생 형님이 인근의 기차 길에서 기차에 치여서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한 상처 경험을 이야기를 해 주면서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심리적 상처를 많이 받아서 정신과적인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토로 했다.


 휴학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아버지가 늘 자주 가는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간단하게 동성애적인 성향 때문에 지금의 문제가 원인이 된 것으로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동성애는 장애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고 치료를 해 줄 수가 없다는 말과 함께 심리검사 결과 불안으로 긴장도가 한계점을 넘었다는 진단으로 불안증약물과 우울증 약물을 처방해 주어서 3주일 정도 약물을 복용하면서 긴장이 많이 풀리고 잠을 잘 자게 되어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6개월 휴학 이후에 복학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성애의 역사: S군은 유치원 때와 초등학교 시절에는 여자 어린이들과 성기 놀이 장난을 하거나 혹은 여성들에 호기심으로 그리고 유치원 시절에는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게 좋아한다는 쪽지를 보낸 기억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시절에는 여자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고 정상적인 이성과의 관계였다고 토로 했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시절부터 동성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을 했고 6학년 시점에서 어머니의 화장품에서 루즈를 꺼내서 몰래 입술에 바르고 화장을 한 것을 어머니가 알고 누나들과 아버지가 참석한 자리에서 어머니가 S군에게 "사내 자식이 여자 화장품을 가지고 장난을 치느냐?"라고 호통을 치는 통에 미안해서 얼굴으 숙이고 모욕을 당했다고 털어 놓았다. 역시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 남자 나체의 동영상을 보는 것을 누나가 보았는데 누나가 자신이 동성애 기질을 눈치를 챘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동성애 동영상을 보게 되었고 자위행위를 본격적으로 하게되었다고 했다. 남녀 공학인 중학교 시절에 하루는 일찍 1시간 정도 빨리 학교에 가서 일찍 온 한 남학생과 S군이 적극적으로 끌어 안고 성기를 만지는 장난을 했고 그 남자 학생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했다. 그리고 중 2학년 때는 혼자 교실에서 쓰레기 통에 남자 친구를 생각하면서 자위 행위를 한 것을 고백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동료들이 S군을 동성애자로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친구들이 S군을 보고 게이라고 놀리기도 했다고 털언 놓았다.


 고교 1학년 때 S군이 수영복을 입는 섹스 걸들의 잡지를 보고 있는 것을 한 동료가 보가 그 친구가 "네가 여성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신기하다"라고 말을 해서 그 친구가 S군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었다고 토로 했다.


 고교 시절에는 동성애 동영상을 보고 자위행위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가 S군에게 언제 자신이 동성애자 임을 확실히 알 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이 동성애자 임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첫 동성애 섹스의 경험은 군에 입대 직전에 휴대폰 동성에 앱에서 동영상으로 서로 나체를 보여주면서 자위행위을 해 오다가 30대 중반의 한 남자를 만나서 그의 방에 가서 항문 섹스를 처음으로 하게 되면서 동성애 섹스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 후에 군에 입대를 해서 군복무 시설에는 동성애 섹스는 없었으나 이성애인 한 선임이 그를 장난으로 동성애적으로 올라타고 섹스 흉내를 내거나 서로 끌어 안고 뽀뽀를 하는 등의 섹스적인 장난에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토로 했다.


 군대 내에서는 동성애 섹스가 없었지만 휴기중에 혹은 외출해서 동성애 엡으로 동성애를 가졌다고 털어 놓았다. 주로 일회용으로 동성애자와 서로 연락을 해서 그의 원룸에서 항문으로 동성애를 했는데 주로 S군이 항문을 제공했고 그가 스스로 항문 섹스를 한 것은 몇 번밖에 되지 않는다고 토로 했다.


 전역 후에 대학 2학년에 복학해서 4년 동안은 동영상으로 동성애 자위행위는 했지만 직접 동성애는 없었다고 했다. 2년 전에 졸업 후에 취업을 하고 처음으로 직장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엡애서 만난 동성애자와 동성에 섹스로 성기를 빨아주거나 항문으로 섹스 관계를 2주일 정도 4-6회 정도를 가졌다고 고백을 했다. 1달 전까지는 그렇게 동성애를 해 왔는데 한 남자와 가장 많이 관계를 한 것이 2개월 이상 넘어간 적이 없다고 고백을 했다. 주로 한번으로 혹은 2 3회 만남으로 섹스를 가져왔다고 털어 놓았다. 몇 명의 여성들을 소개팅으로 만나면서 형식적으로 관계를 해 오다가 3주일 전에 군대에서 자신을 좋아해서 신체 접촉을 했더 이성애 선임이 한 여성을 소개를 해 주면서 그녀와 2번 정도 데이트를 가지게 되면서 동성애가 약해지고 동성에 섹스의 강력한 에로틱함에서 빠져 나오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그 여성 파트너에게 섹스 욕구와 애착을 느끼지 않는 중간 상태임을 고백을 했다.


 치료자는 S군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동성애라는 사실을 이야기를 해 본적이 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대학 시절에 교회의 청년부에서 만난 2명의 친구에게 S군이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읽어면서 한 남자가 신앙으로 동성애를 치유의 은혜를 받았다는 간증 수기를 읽고 독실한 믿음이 동성애를 구제할 수 있다는 결심에서 그 두 명으 청년부 동료에게 자신이 동성애 성향이 있다고 편지에게 약간의 동성애적인 이야기를 했고 그들의 이해를 구했으나 크게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고 털오 놓았다. 그 친구 한사람은 결혼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미혼으로 그가 며칠 전에 만나서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동성애의 치료를 언급했따고 틸어 놓았다.


 치료자가 S군이 초,, 고교 그리고 대학 시절에 친한 친구들이 몇 명정도 되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S군은 거의 없다고 털어 놓았다. 친밀한 친구가 거의 없고 고향의 친구들을 가끔 만나지만 자신이 동성애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들이 모른다고 했다. 대학 시설에 늘 혼자서 생활을 했고 2년 전에 취업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친밀한 친구가 아직도 없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3주일 전에 만나서 2번 데이트를 하고 있는 그 여성을 만나서 마음이 안정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 욕구가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를 해 주면서 S군이 취업으로 스트레스 상황이 가중 되면서 동성애가 급증 했다는 그의 말을 인용을 해서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부부관계에서 S군의 섹스 욕구가 왜곡된 것과 친한 남자 친구가 없었다는 것과 동성애가 자아의 소멸에서 자아 보호를 위해서 생겨난 섹스의 왜곡임을 지적을 하면서 6개월 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아서 동성애를 해결하도록 이야기를 했을 때 S군은 오래 전부터 동성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신앙의 힘으로 도움을 받고 있지만 동성애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치료자의 치료 사례를 읽어보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다음 주일부터 6개월 치료 계약으로 치료를 받겠다고 약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