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인성 질환 알아보기 3
일반적으로 심인성 질환이란 글자 그대로 심리적인 원인으로 생기는 질병으로 인식되어져 있는데 이것을 잘못된 인식이다. 몸의 병을 질환, 질병으로 마음의 병 즉 심리적인 병을 정신질환, 정신병으로 알고 있는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정신질환, 정신병들은 병원에서 종합 검사 결과 신체적인 이상이 발견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미국 정신의학 학회에서는 1980년에 제 3차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과 분류 통계 지침서인 DSM-Ⅲ에서 정신질환 정신병이라는 말을 제거하고 정신이상, 정신장애, 정신 혼란이라는 말로 대체 시켰다.
정신장애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를 한다. 신경증과 정신증이다. 신경증은 일상생활, 결혼 생활, 사회 생활(직장)이 가능하고 주로 통원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포함되는 장애들로 영어로는 뉴로시스(neurosis)이고 독일어로는 노이로제를 말하는데 불안증과 우울증이 여기에 포함된다. 정신증은 일상생활, 결혼생활, 직장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로써 정신병원에 입원이 불가피한 정신분열증, 조울증, 편집증, 망상증 등이 포함된다.
프로이트가 고안한 정신분석 치료는 신경증 치료를 위해서 고안된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은 신경증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확대, 개선, 수정을 해서 정신증 환자들을 치료를 할 수 있게 고안을 했다. 그런데 신경증보다는 심각하고 정신증 보다는 덜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분류하기 위해서 보드라인이라는 말이 1938년에 정신분석가 아돌프 스턴(Adolf Stern)에 의해서 학계에 보고 되어졌다. 보드라인(borderline)이라는 말은 신경증도 아니고 정신증도 아닌 중간에 해당되는 모든 정신장애들을 포함한다는 의미를 가진 낱말로써 정신분석가들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모든 정신장애들을 다 포함한다는 의미로 정신장애의 쓰레기통이라고 별칭을 붙였다.
1960년대에 뉴욕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컨버그(Kernberg)가 정신장애를 세가지로 분류를 했다. 신경증, 보드라인 그리고 정신증으로 분류를 했다. 그러나 보드라인이라는 말에 신경증과 정신증 양쪽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정신장애들을 다 포함하기 때문에 너무나 범위가 넓고 종류가 다양하다는 반론들이 등장하면서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건드선(Gunderson)이 성격장애라는 말로써 12개의 성격 장애로 세분화 시키면서 이제 보드라인 장애는 보드라인 성격장애 속에 포함되어지게 되었고 1980년 제 3 차 개정판인 DSM-Ⅲ에서 12개의 성격장애가 포함된 성격장애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Weiner, 1977).
간단하게 정신장애의 역사를 정의를 한 것이다. 이제 심인성 질환의 의미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심인성 질환은 심리적인 원인으로 생기는 질병, 질환을 의미한다. 본태성 고혈압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고혈압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혈압이 올라간다. 십이지장 궤양은 십이지장에 궤양이 생기는 질병이다. 루마치스 관절염은 관절에 이상이 생긴다. 이들 질병들은 약물로는 치료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고질병이라고 부르는 질병들이다. 정신분석가들이 이들 질병들을 정신분석 치료로써 치료를 한 결과 완치가 된다는 것이 학계에 보고되어지면서 심리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기는 질병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 질병들을 심인성질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심인성 질환은 영어로 psychosomatic 이라고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심리신체 질병 혹은 정신신체 질병으로 불린다. 종합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신경증과는 다르게 신체적인 이상이 발견되기 때문에 심인성질환 즉 심리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기는 질병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심인성 질환은 1940년대부터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미국에서 두 개의 학파로 등장하게 된다. 뉴욕학파와 시카코 학파가 그들이다. 뉴욕 학파는 뉴욕 정신분석가 협의와 뉴욕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메틸타 스페링(Metilda Sperling)에 의해서 시작되어 그녀의 제자들의 그룹이 심인정질환의 치료와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컬럼비아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필립윌슨({Philp Wilson}과 뉴저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이라 민츠(Ira Mintz)가 중심이 된 그룹이다. 두 번째 학파는 시카고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프란츠 알렉산더(Franz Alexander)가 세운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 학파이다.
알렉산더는 항가리 부다페스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베르린 의과 대학 그리고 영국의 켐브리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분석을 공부한 의사 겸 정신분석가로 시카고에 와서 시카고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L.A에 남가주 정신분석학교와 남가주(USC)의과대학 교수로 만년을 보낸 사람으로 심인성 질환의 7개의 질병을 연구발표 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따서 시카고 세븐(seven)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Wilson et al, 1989).
참고로 시카고 세븐(7개)은 신경성 두통과 편두통, 본태성 고혈압, 기관치 천식, 신경성 피부염(아토피 습진), 소화성 궤양(십이지장 궤양), 과민성 대장염(크론 병(Crohn’s disease)포함), 루마치스 관절염이다.
심인성 질환에 대한 연구의 뿌리는 이미 18세기 때부터 역동적 정신의학의 발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동적 정신의학은 과학의 등장으로 마음의 연구가 시작된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려 올라간다. 몽유병과 히스테리아의 최면 치료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의사인 메즈머(Mesmer)가 자석치료 기법을 고안해서 자석 치료, 자장 치료, 유체이론을 들고 나와서 중세 때부터 귀신 이론으로 귀신들린 사람들 한데서 에소시즘(Exorcism) 즉 퇴마의식으로 귀신을 쫓는 굿을 행하여 왔던 것에서 귀신이 아닌 병에 걸린 사람으로 치료를 하는 기법으로 고안해 낸 것이 메즈머의 제자들에 의해서 최면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즉 게몽주의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무지, 미신,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이성, 과학, 깨달음으로 바뀌면서 귀신 이론이 히스테리아라는 병으로 치료 기법으로 최면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후에 학자들에 의해서 최면의 본질이 제시와 긴장 방출의 효과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짐에 따라서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와 관계된 감정이 신체적인 질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발견으로 마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본 괘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Ellenberger, 1970).
제 1 회 국제 심리학 총회가 1889년에 파리에서 개최되었을 때 심리학회 회장이 가르코트(Charcot)였고 정신분석의 창설자인 프로이트와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즈(William James)가 참석을 했다. 가르코트는 최면학을 의과 대학에 도입해서 히스테리아의 치료로 확대시킨 장본인으로 그의 영향력 때문에 제 1 회 국제 심리학회는 생리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개체 되었다. 그러나 심리 과학은 이미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분트(Wundt)에 의해서 10년 전에 실험실에서 1879년에 설립이 되었다.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한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가 12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1890년에 심리학의 원리라는 심리학 개론의 서적을 출판했고 그리고 1895년에 프로이트가 히스테리아에 대한 연구라는 책을 출판해서 정신분석학의 탄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Ellenberger, 1970).
1892년에 런던에서 열린 제 2 회 국제 심리학 총회에서 명실 공히 심리학은 과학으로써 독립된 학문으로 개체 되었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주장을 한 사람은 독일의 엘린겐 대학(Erlangen University)의 부총장으로 선출된 아돌프 스톰펠(Adolf Strumpell, 1892)의 취임 연설문이었다. “마음의 이미지 상들을 통해서 질병들을 치료하는 것과 질병의 원인들의 근원을 밝힘”이라는 연설문이 1892년 11월 4일에 취임 연설에서 강연을 한 것이었다(Ellenberger, 1970).
이 연설에서 그는 고대시대부터 인간의 질병에 대한 심리적인 효과는 인정을 받아왔다. 질병에 대한 약물의 효과는 그 환자가 그 약물에 대한 믿음의 효과(플래시보 효과)가 치료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최면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인정을 받고 있다. 젊은 의사들이 심리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최면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의과 대학생들이 교육과정에서 생리학이 필수과목으로 되어있는 것처럼 앞으로 심리학이 필수과목으로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 라는 유명한 연설로써 20세기의 심리 과학과 심리치료의 등장을 예언을 했다는 점이었다(Ellenberger, 1970).
마음의 핵심 요소인 감정이 질병에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나라의 일반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즉 상사병과 향수병 울화병, 화병 등이 그것을 말해준다. 심한 경우에는 사망할 수도 있다.
면역학이 등장하게 되면서 심리적인 원인의 질병인 심인성 질환이 급 스피드로 발전하게 된다. 1962년에 뉴욕 의과대학 메디칼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아드(Robert Ader)가 마음과 신경 호르몬 조직과 면역학의 상호작용 관계를 신조어로 만든 심리신경면역학(Psychneuroimmunology)(PNI)이 등장하면서 심인성 질환 의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Weiner, 1977).
지금은 심인성 질환 의학, 메디칼 심리학, 행동 의학, 심리신체 의학, 심리사회 의학 등의 이름으로 통용되어지고 있다.
1950년대에 등장한 스트레스 이론이 심인성질환 의학의 발달에 한몫을 했다. 항가리 의과대학 졸업생인 한스 셀리(Hans Syles)가 캐나다의 몬트리올 의과대학에서 1936년부터 신체 실험 생리학 연구실에서 20년 간의 연구 끝에 1956년에 출판한 삶의 스트레스 라는 책에서 스트레스가 어떻게 신체 질병을 일으키는가?를 실험으로 밝히게 됨으로써 마음과 감정이 질병을 일으키는 과정이 실험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셀리는 의과대학생 시절부터 동물들에 독극물을 주사를 할 때마다 그 동물의 부신 호르몬 샘이 커지고 임파구가 수축된다는 것 그리고 스트레스가 계속될 때 그 동물의 위와 장에 궤양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스트레스 이론으로 1949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인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기 반응(인체 조직에 경고)을 일으키고 이것이 장기화 되면 저항 반응(만성화로 적응)으로 그리고 마침내 조직 파괴(질병)로 연결된다는 일반적인 적응 증후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Weiner, 1977).
감정을 전달하는 신경조직이 자율신경 조직이고 위기 상황에서는 교감신경조직이 작동을 해서 심장이 빨리 뛰면서 혈압이 올라가고 아드레날 호르몬이 혈관을 수축하고 심장 박동을 증가시켜서 에너지인 혈당을 뼈 근육 조직으로 평소보다 300배-400배로 빨리 이동을 시키게 되면서 소화기능과 섹스 기능이 약화된다는 위기 조직의 과정을 생리학적으로 밝혀졌다. 위기가 끝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소화기관과 섹스 기관으로 에너지가 회복되면서 평상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면역 기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스트레스가 상승하게 되면 면역 기능이 감소하고 면역 기능의 감소로서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면역 조직에 의해서 밝혀진 면역 질병이 바로 알레르기 질병으로 아토피 습진, 비염, 천식은 서로 사촌간으로 인체에 외부 물질인 항원이 침입하게 되면 몸 안에서 이것을 감지하는 백혈구 조직들 즉 T세포와 B세로, 식세포들 그리고 자연살해 세포 들이 동원되어 외부에서 침입한 병균들을 둘러싸고 파괴시키고 잡아먹게 되는데 이러한 면역 조직이 인체에 무해한 특수한 항원들을 적으로 간주해서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긴 질병이 자가 면역 질병으로 대표적인 질병이 루마치스 관절염이고 면역조직 세포가 악성으로 변한 것이 백혈병이고 외부의 바이러스에 의해서 면역 세포가 파괴되는 질병이 에이즈(AIDS)로 밝혀지게 되었다(Weiner, 1970).
요약해서 정리를 해보자. 감정들 분노, 짜증, 미움, 화, 노여움, 적대 감정들이 지속적으로 쌓이게 되면서 신체적 긴장이 올라가고 긴장의 방출구가 막히게 되면서 장기화 되어 신체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 심인성 질환이고 아직도 신체적인 이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신경증이고 신경증 보다 좀더 심각한 장애가 자아 장애(성격장애)이고 아주 심각한 장애가 정신증(정신분열증, 조울증, 편집증, 망상증)이 아닌가!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 이후에 다양한 장애들 즉 성격장애, 정신증 그리고 심인성 질환을 치료하는 핵심 치료 기법으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미개척 분야로 남아 있다.
치료자는 35년 동안 정신의학과 심리과학의 연구와 치료를 해 오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한 개의 장애 즉 우울증, 불안증, 성격장애 혹은 정신증이라는 이름을 신경정신과로부터 달고 오지만 분석 치료의 과정에서 두통, 비염, 천식, 아토피 습진, 십이지장 궤양 등의 소화성 질환들 중에서 한 개 혹은 두 개를 함께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사람이 한 개의 장애만 가지고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고로 치료자는 이들의 이름을 페키지 치료라는 이름을 붙였다. 불안증을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불안증을 치료를 하면서 소화성 문제, 아토피 습진과 같은 알레르기 질병들과 심인성 질환들을 함께 치료를 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여러 개의 장애들을 한 번의 심리치료를 통해서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점에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대상: 27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C씨
증세: 5년 동안 시달려 온 에이즈(AIDS) 공포증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음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분석 치료 과정에서 심인성질환인 통풍과 위가 쓰리고 아파서 몇 년 동안 위궤양 약물을 중학교 때 복용한 사실이 드러났음---불안 장애, 강박사고 장애, 심인성질환 증세 보유자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 씩 1주일에 1회로 6개월간 치료를 받았음
치료의 결과: 6개월 후에 C씨의 본인이 에이즈 공포증은 95%로 사라졌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일상에서 에이즈 공포증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서 어린 시절부터 습관화 되어온 과도한 신체적 긴장을 해소하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예상했으나 본인이 치료를 종결했음.
치료의 과정
C씨는 6년 전에 우연히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유흥가에 갔다가 매춘부와 섹스를 가진 후에 혹시 에이즈(AIDS)가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서 즉각 병원에 가서 에이즈 검사를 했고 몇 주일 후에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음"으로 나왔으나 이후부터 계속해서 에이즈(AIDS)가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약 3개월마다 1회씩 5년 동안 에이즈(AIDS) 검사를 해 오고 있었다.
C씨는 본인이 에이즈(AIDS)에 걸린 것이 아님이 확실하게 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계속해서 머리 속에 침투에 들어오는 에이즈(AIDS) 공포증 때문에 병원에 달려가서 에이즈(AIDS) 감사를 하지 않으면 불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에이즈(AIDS) 검사를 받는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에이즈(AIDS) 공포증으로 시작된 강박 사고 장애로 드러났다. 강박 사고 장애는 불안증에 소속되어있다. 치료자는 C씨의 어린 시절의 양육 과정을 체크해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분석: C씨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음식점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손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고 먼 친척의 아주머니 손에서 주로 자랐다. 위로는 누나가 3명이 있었다. 누나들은 나이가 많아서 C씨와 놀아주지도 않았고 C씨를 보살펴주지 않았다. 막내 누나가 C씨와 6살 정도 나이 차이가 있었다. 누나들은 C씨가 어린이 시절에 학교 학생들이어서 학교 생활에 바쁘고 자신의 동료들과 어울려 놀았고 C씨와는 별로 접촉이 없었다.
C씨는 초등학교 시절 이전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늘 혼자였고 외톨이었음을 회상을 했다. 늘 혼자서 전자 오락실이나 주변의 몇몇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으나 친구별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식당 운영으로 늘 바빠서 C씨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없었고 늘 어린 C군에게 돈을 손에 쥐어 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우연히 학원에 공부를 하러 가지 않고 전자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다가 이 소식이 부모님에게 전달되어 부모님에게 길거리에서 죽도록 얻어 맞고 옷이 찢어진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로부터 처벌을 받은 유사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번은 엄마가 손에 쥐어준 1만 원짜리 지폐를 바꾸어서 전자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다가 5천원을 뒤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잃어 버린 사건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다가 태권도 티로 죽도록 얻어맞은 기억을 회상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는 학원에 주로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유행이 되고 있었던 컴퓨터 교육의 필요성을 알고 어머니가 컴퓨터 학원에 보내주었으나 나이 어린 C군은 컴퓨터 학원에 가기 싫어서 전자 오락실에서 놀다가 어머니에게 적발이 되어 죽도록 얻어 맞게 된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 동안 어머니는 영어 학원에 보내주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 특히 엄마가 시키는 것을 거부하면 어떤 처벌이 따라온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 C씨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말로써 "No"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린이가 되었었다. 하기 싫은 영어 공부를 3년 동안 하면서 그 시간에 학원 교실에 앉아서 다른 상상 속에서 살았다. C씨는 3년 동안이나 영어를 공부를 했지만 영어에 진전은 하나도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얼마나 진전이 없었든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장 선생님이 기차 찬다는 눈초리로 C군을 바라보던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씁쓸해 했다.
아무리 배워도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회상을 했다. 어머니는 컴퓨터와 영어가 중요하니 일찍부터 배워두어야 한다고 어린 C군에게 강요를 했다. 그러나 사실은 엄마가 어린 아들을 돌보고 양육을 할 수 없어서 학원에 보내면 학원에서 C군을 공부를 가르치면서 돌보아주게 되니까 C군을 학원에 맞긴 셈이었다.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C씨는 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항상 손에는 엄마가 준 1만원의 돈이 있어서 친구들이 그 돈 때문에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과자와 학용품을 사면 친구들이 하나씩 달라고 해서 아낌없이 주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으나 대화가 별로 없고 친구들 집에 놀러 가거나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은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그냥 그저 그런 친구들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한 친구에게 심하게 얻어 맞아서 입술이 터지고 온 몸에 멍이 들었으나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평소에 자신의 군것질을 얻으 먹으면서 먹을 때는 친하게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았으나 정작 돈이 떨어지면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용을 당하는 것 같아서 좋지 않는 소리를 한 것이 화끈이 되어 심하게 폭력을 당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어머니는 인근에 있는 명문대학 학생을 과외 교사로 많은 돈을 지불하고 3년 동안 수학을 공부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배워도 수학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 공부에서 수학 과목은 늘 성적이 하위를 맴돌았다. 그 당시까지 그는 자신의 머리가 좋지 않아서 공부를 배워도 진전이 없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에 재수를 하면서 C씨는 혼자서 몇몇 친한 동료들과 어울려 공부를 하게 되었고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면서 공부를 하는데 즐거움을 느끼게 되어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되어 재수 학원에서 늘 1등을 하게 되면서 대학에 들어가서 교살로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심인성질환의 분석: C씨는 중학교 때 늘 위가 더부룩하고 쓰리고 아파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으나 별다른 신체적 증세가 없고 그냥 신경성으로 나타났다. 위궤양의 약물을 약 3년 동안 복용을 했으나 위가 쓰리고 찌르는 아픈 증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통풍이 오게 되었다. 통풍이 오면서 한의사에게 가서 한약을 복용하면서 통풍의 증세는 약간 수그러들었으나 통풍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C씨를 괴롭혀왔다.
분석의 과정에서 또 밝혀진 심인성질환적 증세는 C씨는 초등학교 저학년시절부터 눈썹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자신의 눈썹이 너무 희미하고 눈썹이 없는 것 같아서 자기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는 늘 동료들 관계나 여학생들 앞에서는 자신감이 없었다. 눈썹이 진하고 예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열등감으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그러한 눈썹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누나에게 얼핏 자신의 눈썹을 이야기를 하면서 반응을 떠 보았으나 누나는 눈썹에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 결국 C씨는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눈썹을 심은 수술을 받았다. 처음에 인근의 지방의 대학 병원 의사에게 눈썹을 심는 수술을 받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서울에 있는 이름난 대학 병원의 의사에게 다시 눈썹을 심은 수술을 다시 받아서 마음에서 눈썹에 대한 열등감이 사라진 것은 에이즈(AIDS)가 등장하기 얼마 전이었음이 분석되어졌다.
현재의 문제점: C씨의 현재의 문제점을 둘러싼 여러 가지 심리적인 문제점들이 분석이 진행되어가면서 분석되어졌다. 현재의 가장 심각한 증세는 에이즈(AIDS) 강박증이지만 이 문제 이외에도 다른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분석되어졌다.
C씨는 2년 전에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한 여성과 결혼 직전에서 파경으로 끝난 러브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와는 직장 생활의 시작 때 만나서 결혼을 서로 약속하고 지냈으나 그녀의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C씨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C씨가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따님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빌었으나 결혼을 해 주겠다고 희미한 약속을 해 놓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 버렸다.
C씨가 그 결혼에서 한가지 마음에 걸린 열등감은 C씨의 어머니가 가진 부채 때문에 C씨는 결혼 후에 독립해서 살 수가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고 어머니와의 며느리의 갈등을 해결할 자신감이 없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음이 드러났다. C씨는 자신의 봉급 즉 월급이 거의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채무 변제로 날아가 버리고 봉급 때만 되면 우울해진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그 문제가 분석되어졌다.
아버지는 C씨가 직장을 가지기 몇 개월 전에 심한 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중병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남편을 병 간호를 거의 하지 않았고 막내 딸이 아버지의 병 간호를 맡아서 했다고 어머니에게 분노했다. 어머니는 음식점을 하고 있다는 핑계를 댔으나 사실은 음식점은 거의 적자로 허덕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돈의 씀씀이에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해서 돈을 끌어다가 썼다. 사 금융에서 돈을 빌려서 이것 저것으로 쓰고 감당을 할 수 없게 되는 꼴을 C씨가 보면서 직접 어머니의 음식점에 개입을 하게 되었고 C씨가 자신의 월급으로 어머니의 이자 돈을 갚다가 보니까 자신의 봉급에서 한 달에 용돈으로 20만원을 제외하면서 모두 이자 돈으로 날아가고 돈이 거의 남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결혼할 여자 친구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는 것이 분석되어졌다.
C씨와 어머니와 사이에서 얽힌 갈등은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였다. 어머니는 C씨가 경제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면 항상 고개를 돌려 버리고 외면을 했다. 듣기 싫다는 제스처였다. C씨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무절제 하게 돈을 있는 대로 끌어다 썼다. 대부분이 사 금융에서 빌린 돈으로 이자 비율이 높았다. 고로 그것을 막기 위해서 C씨가 그 돈을 갚아주고 은행 돈으로 이자 비율이 낮게 바꾸어 주어왔다는 것이 분석되어졌다.
이제 남은 아파트는 어머니 이름으로 되어있으나 그 아파트를 지금 당장 팔아도 빚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이 2천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이제 빚 잔치를 하고 어머니의 음식점을 접고 어머니와 C씨 두 사람이 단간 월세 방으로 나오느냐 계속해서 이대로 유지하느냐의 고민 속에 있음을 분석으로 알 게 되었다. 그는 희망이 없다고 절망해 했다. 어느 여성이 빚더미 속에 앉아 있는 C씨를 알 게 되면 시집을 올 수 있는 여성이 있겠느냐?로 절망적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음이 밝혀졌다.
문제의 해결 과정: 치료자는 C씨의 에이즈(AIDS) 강박증은 바로 직접 자신의 현실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계속 누적된 자신의 감정을 에이즈(AIDS) 강박증으로 방출하고 있음을 분석해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해결되어지지 않는 문제들을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서 그 문제를 덮어 두고 매춘부 집에서 섹스를 가진 죄의식으로 그 갈등을 돌려 버리고 에이즈(AIDS)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즈(AIDS)에 걸리면 치료 약이 없이 죽음으로 연결된다. 지금 현재까지 에이즈(AIDS)는 치료 약물이 없는 불치병임을 C씨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 쌓인 갈등은 에이즈(AIDS)처럼 풀어 낼 수 없는 갈등임을 C씨 자신이 스스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음을 분석의 과정에서 치료자가 알 게 되었다.
C씨는 "나의 문제는 불치 병인 에이즈(AIDS)처럼 고칠 수 없는 난마처럼 얽힌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내 문제를 풀면 내 에이즈(AIDS) 강박증은 풀리게 될 것입니다. 내 핵심 문제는 에이즈(AIDS)처럼 내가 풀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무의식적으로 에이즈(AIDS) 증세를 가지고 하소연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에이즈(AIDS)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병이나 에이즈(AIDS)처럼 해결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에이즈(AIDS)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자라면 내 문제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무의식적으로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을 커뮤니케이션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치료자는 에이즈(AIDS) 강박증을 직접 치료를 하지 않고 C씨의 내면에 쌓이 분노와 엄마와 관계를 해결하기로 했다. 먼저 C씨와 엄마 관계를 분석하면서 어머니와 C씨는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음을 포착했다. C씨와 부모님 즉 아버지와 어머니 관계가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지기 시작했다.
C씨는 아버지와 닮은 유사점이 많았다. 아버지는 결혼 초반기부터 어머니와 갈등이 심각했다. C씨가 태어나서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버지는 다른 여성과 외도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발각되어 큰 딸을 데리고 어머니가 아버지가 외도를 하는 장소에 찾아가서 현장을 급습했다가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 맞은 사실들을 큰 누나를 통해서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C씨의 기억에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음식점을 해서 상당히 많은 돈을 모았으나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받지 못해서 아버지의 죽음 직전에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술과 외도로 그리고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임이 밝혀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경제적 관념이 부족해서 돈을 모으고 돈을 불리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돈을 있으면 쓰는 것이고 돈을 쓰면 돈을 저절로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 때 많은 돈을 만졌으나 지금은 적자 생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머니는 씀씀이가 크고 사치적이고 돈에 관념이 없고 돈이 부족하면 그대로 빌릴 수 있으면 어떤 돈이든지 관심이 없이 빌려서 쓰는 스타일의 경제적 관념을 가진 것이 드러났다.
C씨 역시 분석 치료를 받기 전에 돈에 대해서 별로 경제적 관념이 없었다. 고로 돈이 부족하면 빌려서 쓰고 지금 현재의 어려움은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서 메꾸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C씨는 분석 과정에서 월급 때만 되면 우울해지고 절망적이 된다고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이 점을 분석한 결과 봉급 때만 되면 다른 곳에 이자 돈으로 다 떼어나가고 남는 돈이 2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분석해 낼 결과 C씨의 경제 관념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분석가의 해석에 깜짝 놀라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또한 C씨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엄마를 닮았다는 분석가의 해석에 무릎을 쳤다. C씨는 어려운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를 내면 속에 쌓아 두고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는 스타일이 엄마를 빼 닮았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불쾌한 부정적인 감정을 이야기를 하면 고래를 돌려 버리고 그 문제를 회피해 왔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정작 지금도 C 씨는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 속에 억압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치료는 C씨의 어린 시절부터 쌓인 갈등을 직접 다루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어졌다. C씨는 어린 시절에 갈등을 풀 수 없어서 억압된 감정을 눈썹으로 주의 집중을 해서 그 갈등을 잊어 버렸다는 것과 통풍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집중에서 직접 동료들과의 갈등에서 오는 분노를 억압했음을 알 게 되었다. 그 문제를 재연해서 직접 다루기로 했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게 되면서 점차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의 갈등을 관계에서 표현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치료가 4개월 정도 진행이 되면서 직접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그 동료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갔다. 또한 어머니와 직접 담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수입과 지출과 어머니의 음식점에서 운영되는 수입과 지출을 일목요연하게 명세표를 만들어서 이것을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게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피하고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막고 이야기를 듣게 했다. 이렇게 직면하게 되면서 C씨가 놀란 것은 난공불락으로 어머니와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는 개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듣지 않으려고 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태도가 변화가 감지 되었다.
C씨는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어머니의 마음을 염려해서 자신의 고민을 일체 이야기하지 않았던 태도를 바꾸고 어머니에게 어린 시절부터 쌓인 고통의 감정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가면서 에이즈( AIDS)의 문제는 의식에서 떠오르는 빈도수가 점점 감소되어감을 알 게 되었다. 치료 5개월쯤에 이르게 되었을 때 에이즈(AIDS)로 침투적인 생각들은 거의 자치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C씨의 내면 갈등을 표현하고 억압된 감정을 방출하는 과정은 아직도 해결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 했다. C씨는 자신의 내면에 쌓인 갈등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에이즈(AIDS) 갈등을 해소하는 길임을 확신을 하게 되었다.
치료가 5개월 정도 진행이 되어가면서 C씨는 자신의 감정 표현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풀리면서 직무 연수 차 1주일간 교육을 받으러 가서 당당하게 자신의 그 연수원에서 반장을 자청했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친밀관계로 이어지면서 대인관계에서 갈등들이 줄어들어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증가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경제적인 문제의 고리가 풀리게 되면서 어머니의 씀씀이를 줄이게 되고 경제 계획을 세우게 되면서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을 시쯤에서 한 개의 사건이 발발했다. 어머니가 자신의 경제적인 발목을 죄는 아들에게 분노해서 직접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둘째 딸에게 하소연을 하게 되면서 둘 째 누나와 C씨가 서로 격돌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둘 째 누나가 C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머니를 음식점을 문 닫게 하고 폐지를 줍도록 종용했다고 누나가 분노해서 노발대발로 욕질부질 하게 되면서 서로 충돌을 한 것이었다. C씨는 분노해서 어쩔 줄 몰라서 어째가 절리고 가슴이 쿵쿵거리고 참을 수 없어서 실내 야구 연습장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야구 공을 치면서 분노를 풀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스트레스 이벤트에서 에이즈(AIDS)의 생각은 침투를 하지 않았다.
C씨는 에이즈(AIDS)의 침투 과정을 치료자와 함께 분석하면서 어떤 스트레스 이벤트 이후에 반드시 에이즈(AIDS) 침투 강박증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이미 이 사건 이전에 알 게 되었다. 자신의 갈등을 덮어 버리는 자아 보호 장치로써 에이즈(AIDS) 감염 침투 강박 사고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게 된 것이었다.
에이즈(AIDS)에 모든 마음의 에너지를 집중함으로써 다른 고민들과 갈등들을 잊어 버리고 있다는 것을 분석에서 알 게 되었다. 누나와의 이벤트의 결과는 갈등을 직면하면 에이즈(AIDS) 침투 강박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 셈이었다. C씨는 누나와 자형(매형)을 직접 찾아가서 자신의 수입과 지출과 어머니의 음식점의 수입과 지출 명세서를 보여주면서 누나와 자형에게 자신의 문제를 소상하게 이야기하고 어머니가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알 게 했다.
C씨는 지금까지 C씨 자기 자신도 엄마처럼 어떤 분노한 감정이나 갈등들을 직접 직면해서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acting out을 해 왔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화나가면 멱살잡이로 욕질부질 하거나 말이 없이 관계를 단절하거나 분노를 폭발해서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아니면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문제를 피하지 말고 직접 그 문제의 갈등들을 직면해서 한가지씩 풀어나가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직접 다루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해서 희망적이 되어가면서 에이즈(AIDS) 강박증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치료의 결과: C씨는 치료가 5개월 말로 접어 들면서 자신의 입으로 이제 5년 동안 싸워왔던 에이즈(AIDS) 문제는 95% 정도는 해결이 되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5년 동안 이 문제에 시달리면서 정신과 의사에게 약물 치료를 받았으나 해결되지 못했고 한 의사에게 한약 처방을 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고 무속인에게 가서 부적을 50만원 짜리를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으나 일시적 효과 뿐이었으나 치료자에게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고마워했다.
그러나 C씨의 문제는 아직도 치료자가 보기에는 핵심 문제는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와 대화 문제는 앞으로도 많은 갈등을 예고하고 있고 자신의 신체적인 긴장을 풀어내는 긴장 해소가 습관적으로 갈등에서 오는 긴장을 내면의 신체에 쌓아 놓지 않고 즉각 적으로 풀어 내는 감정 방출을 습관화 해야 함을 이야기했으나 C씨는 치료 비용이 지금 현재의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누적되어왔고 또 너무 먼 거리에서 치료를 받으러 오는 시간 상의 어려움 때문에 6개월로 치료를 중단 하기로 하고 이 다음에 다시 경제적 어려움이 완화되면 다시 치료를 재개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면서 치료를 종결 했다.
교수님께. |
| 보낸날짜 |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오후 23시 46분 19초 +0900 |
| 답장받는주소 | > |
| 받는이 | <jongmankim@hanmail.net> | |
|
'의학,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격 길들이기 3 (0) | 2017.01.24 |
---|---|
불안 달래기 7: 일반화된 불안장애(범 불안장애) 7 (0) | 2017.01.21 |
게임 중독 다스리기 3 (0) | 2017.01.19 |
성격 길들이기 2 (0) | 2017.01.17 |
성적인 문제(변태성욕) 가면 벗기기 2 (0) | 2017.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