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3
치료자는 여름 휴가 중에 한 중년 여성의 휴대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에서 그 부인은 “선생님 저를 아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치료자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 부인은 “2년 전에 우울증 심리치료를 받았던 xxx 씨 부인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 동안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부인은 “저는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데 남편 때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남편이 아직도 7년 동안 외도를 한 그 술집 마담과 계속해서 통화를 하고 한번씩 만나는 것 같은데 저의 남편이 심리치료를 받도록 해주세요”라고 요청을 했다. 치료자는 남편이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는 의향이 있으면 남편으로 하여금 치료자에게 전화를 해 달라고 요구를 했다.
남편은 치료자에게 1주일에 1회씩 1회기당 2시간씩 6개월 48 시간의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기로 계약을 하고 남편 B씨의 분석 치료가 시작 되었다.
남편 B의 어린 시절: 남편 B씨는 부인 A씨 보다(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3 참조) 어려운 환경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구구절절 한 사연들을 틀어 놓았다. B씨의 아버지는 40대 초반에 첫 부인의 사망으로 재혼을 하게 되었다. 첫 째 부인으로부터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4학년 딸이 있었다. 아버지가 재혼을 한 둘째 부인이 바로 남편 B씨의 어머니였다. B씨의 어머니는 18살에 22살이나 많은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게 된 것이었다. 남편 B씨의 어머니의 부모님은 초혼인 딸이 40대의 중년인 두 번째 부인으로 시집을 가는 것을 극구 말렸으나 남편 B씨의 어머니가 스스로 지원을 해서 시집을 가겠다고 원했기 때문에 시집을 오게 되었다고 어머니의 말을 인용해서 남편 B씨가 술회를 했다.
남편 B씨의 어머니는 둘 째 부인으로 시집을 와서 두 명의 전처의 자식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주었다. 첫 째 아들과 둘 째 딸에게 계모라는 편견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 남편 B씨의 어머니는 그녀로부터 태어난 5명의 자녀들보다 전처의 자식들에게 사랑을 더 많이 쏟았다, 그러나 두 명의 전처의 자식들은 계모인 남편 B씨의 어머니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괴롭히고 애를 먹이는 바람에 남편 B씨의 어머니는 골병이 들었다고 술회를 했다고 했다. 큰 아들과 둘 때 딸을 결혼을 시켜서 독립시켜 내 보내고 나서 정작 자신이 낳은 5명의 아들들에게는 에너지 소진으로 돌보아줄 에너지 고갈로 그리고 아버지의 무능력으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행상으로 5명의 자녀들을 돌보아주어야 했다고 술회를 했다. 그러나 평생 동안 어머니는 남편을 원망하거나 전처의 자식들을 미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처의 자식들은 결혼 후에는 남편 B씨의 가족들과 관계를 끊어버렸고 소식이 없었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처의 큰 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빚을 지게 되어 남편 B씨의 부모님과 가족들은 집을 빼앗기로 결국은 대 도시의 변두리에 방도 하나뿐인 하꼬방(판잣집의 사투리)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살림을 궁핍해져 극도로 가난해졌다고 했다. 남편 B씨의 2살 위의 형님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집을 나가버렸고 둘째 아들인 남편 B씨가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다고 술회를 했다.
아버지는 남편 B씨의 기억으로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다 준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서 대문 앞에 앉아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남편 B씨는 마음 속으로 “저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저런 아버지를 둔 적이 없다”라고 탄식으로 미워하고 원망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남편 B씨는 머리에 물건을 이고 팔려 다니는 어머니가 한없이 불쌍하고 애처로워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한번도 불평을 해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이러한 감정 억압과 분노를 참고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는 결국 우울증에다 치매로 7년 동안 고통을 겪게 됨을 나중에 다시 설명).
남편B씨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서 초등학교 5학년부터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스스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는 학교를 그만 두고 어떤 병원과 약국 들에 심부름을 해주는 사환(심부름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 직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에 5학년과 6학년 때는 학교에 등교를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졸업장은 전달이 되어서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편 B씨는 머리가 영리하고 IQ가 높은 명석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환으로 생활을 하게 되면 평생 노동자로 살 수 밖에 없다고 판단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찾은 곳이 무료로 야간에 중학교 공부를 가르쳐주는 야간 공민학교(정식 허가가 나지 않은 무료로 공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남편 B씨는 미래에 부인 될 A씨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두 사람 다 공부를 잘했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단지 돈이 없어서 정규 중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서 야간 공민 학교에 들어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 당시에는 서로 얼굴만 알고 이야기를 하는 친구 사이가 아니고 그냥 학급 동료로만 알고 지냈다고 했다.
남편 A씨는 야간 공민학교를 졸업하고 정식으로 xxx 야간 상업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낮에는 사환으로써 심부름을 도 맡아서 하고 야간에는 상업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성적은 최우수였다. 그는 군대를 복무하면서 군대에서 몇몇 일류대학 선임으로부터 영어, 회계학 등 공부를 배워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제대와 동시에 그는 xx 은행 시험에 합격해서 은행원으로 첫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은행원은 최고의 엘리트 직업이었다. 은행 시험에 합격해서 생계 문제가 해결되는가? 했을 때 운명의 장난인지 행운의 시샘인지 그 때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쓰러지고 만 것이었다. 어머니를 병수발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3명의 남동생들은 이제 초, 중, 고등학교 학생이었고 그들을 돌보아줄 시간가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잠깐 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해서 집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움직이지 않아서 집안의 청소와 정리가 되지 않고 식사도 제대로 챙겨먹을 수가 없었다. 남편 B씨는 매일 아침 정장으로 넥타이와 양복을 입고 가는 것도 힘들어서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찾아오는 것도 힘겨웠다.
이 시점에서 군 제대 후에 길거리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던 야간 중학교 동기생인 미래의 부인 A씨가 머리에 떠 올랐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좀 도와달라고 애걸을 하게 된 것이었다. 미래의 부인 A씨는 그 때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3개월간 쉬고 있던 차여서 용돈을 벌어 볼까 해서 자원해서 스스로(A씨의 어머니는 극구 말렸으나) 자진해서 A씨의 집에 와서 보고 기겁을 했다고 했다.
온 집안이 뒤죽박죽이었고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움직이지 않고 제대로 먹지 않아서 영양 실조가 되어있었고 남동생들은 식사를 굶고 다니는 형국이었다고 술회를 했다. 미래의 부인 A씨는 그 집에서 1주일을 지내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그 집 식구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도저히 그대로 무시하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B씨의 어머니는 미래의 부인 A씨를 며느리로 간주하고 떠나지 못하게 했고 그대로 눌러 앉아서 결혼으로 연결되었다고 했다.
남편B씨와 부인 A씨의 결혼 생활: 남편 B씨는 은행원으로써 출발을 했을 때 그 당시에 최고의 엘리트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사 혹은 같은 은행원들의 청혼이 여러 건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이 B씨의 가정 환경을 알면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갈 것이라고 예견을 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거나 교재를 하려고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한 여유도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일을 도와주고 살림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A씨를 며느리 감으로 점을 찍어 놓고 결혼을 하라고 재촉을 했고 B씨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고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부부가 될 수 있었다.
남편 B씨는 모든 집안 문제들 즉 어머니의 우울증과 남동생들의 돌봄과 가사 일들 등을 부인 A씨에게 맡기고 은행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름없는 xx 야간 상고 출신이었기 때문에 쟁쟁한 이름 난 학교 출신과 백이 단단한 선배들 사이에서 돈과 백과 출신 배경이 없는 즉 학력과 인맥이 없는 자신을 모습을 보면서 이곳에서 살아 남는 길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열심히 해서 상사들의 신임을 얻는 길 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다른 은행원들 보다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일을 하는 쪽으로 직장 일을 했다고 술회를 했다.
어머니는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치매에 걸려서 7년 동안 고통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리고 3명의 남동생들은 결혼으로 독립해서 떠나고 이제 40대가 된 남편 B씨와 부인 A씨와 그리고 두 명의 아들만 남게 된 것이었다. 어려움에서 벗어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핵 가족으로 생활을 하게 될 시쯤에서 또 다시 운명의 장난처럼 남편의 외도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남편 B씨의 승진과 출세: IMF가 터졌다. 수 많은 은행원들이 구조 조정으로 회사를 떠나갔지만 평소에 다른 동료들보다 두 배 이상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잘리지는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선배들보다 먼저 승진을 해서 먼 한지에 새로 설립된 xx 은행의 지점장으로 발령이 나서 승진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승진은 남편 B씨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곳은 먼 지역이고 새로 설립이 된 은행 지점으로써 그곳에 첫 번째 xx 지점장인 선배는 실적을 올리지 못해서 옷을 벗었다는 흠지(어려운 지역)에 해당되는 곳으로 결국은 지점장 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뿐이고 사실상 퇴출로 이어지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운명을 원망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느 듯 세월이 흘러서 남편 B씨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40대 초반에서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회사에서 쫓겨나는 지역으로 그 나이에 한창 일을 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면 이제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올라가는 두 명의 아들의 학비와 생계 비용이 막막했다.
승진의 기쁨은 잠깐뿐이고 그 곳에 부임을 해 보니 헐렁한 사무실에 달랑 여직원 한 사람뿐이고 거래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골목 시장의 중소 상인들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적어도 1년 안에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눈앞에 캄캄했다고 회상을 했다. 그곳에 전임 지점장은 실적 미비로 옷을 벗었다는 것을 남편 B씨는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부인 A씨와 아들들은 이곳에 이사를 올 수가 없고 주말 부부가 되어야 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남편 B씨는 어떻게 실적을 올릴 수 있는가? 에 골몰하게 되었다. 은행에서 나오는 판공비는 겨우 30만원 정도였고 그 돈으로 새로운 고객들을 끌어들이기에는 매월 들어가야 하는 술값에도 턱 없이 부족했다. 부임 몇 일 만에 xxx 은행의 후원 회장 되는 작은 기업의 사장 한 분이 남편 B씨를 찾아와서 같이 인근에 있는 고급 술집인 요정으로 가서 술을 마시면서 그 술집 마담을 소개를 받아서 만나게 되었다.
남편 B씨는 그곳에 부임 첫 날에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굴지의 대기업인 xxx 회사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저 대기업 안으로 은행 점포를 옮길 수만 있다면 앞으로 쫓겨나지 않고 승승장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대기업 안에서는 이미 그 기업의 설립 초반기에 우리나라에서 이름 있는 중앙에서 이름 난 xxx 은행이 들어가서 은행 점포를 가지고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탄식을 했다. 어떻게 그 대기업에 그 안에서 은행 업무를 하고 있는 xx 은행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리고 어떻게 그 대기업에 협조를 얻어서 그 기업 안으로 점포를 열수 잇는가? 하는 것에 골몰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남편 B씨는 얼마 전에 소개를 받은 술집 마담이 생각이 났고 그곳에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술집 마담은 그곳에서 요정을 운명했기 때문에 그곳의 실정들을 잘 알고 있고 바로 그 대기업을 직원들과 간부들이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성격과 인물의 특징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 술집 마담에서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나는 별볼일 없는 xx 지점장으로 승진을 했지만 이곳에서 실적을 내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학연과 지연도 백도 없는 가난한 은행원 출신으로 나를 좀 도와 주세요” 라고 하소연을 했다. 나에게 거래를 위해서 혹은 대출을 위해서 오시는 손님들을 내가 이 요정으로 모시고 올 터이니 나에게 술값을 싸게 활인을 해 주세요 라고 애걸을 했다. 한 달에 판공비로 약 30만원 정도가 나오는데 이것은 점심 값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봉급에서 돈을 인출해서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도와줄 것을 요청을 했다. 물론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옆에 있는 xxx 대기업의 안에 은행 점포를 개설하는 것이 꿈인데 이곳에 드나드는 xx 대기업 간부들과 누가 실권을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조언을 요청을 했다.
요정의 마담인 C씨는 흔쾌히 수용을 해주었다. 서로가 공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남편 B씨는 은행의 고객들을 그 술집으로 모시고 와서 매상을 올려줄 수 있고 그리고 그 대가로 xx 대기업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그 대기업의 간부들과 접촉해서 그들을 이곳으로 모시고 오게 되면 서로서로 공생 관계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시점으로부터 두 사람은 술집의 매상을 올리는 것과 그리고 남편 B씨의 xx 은행 점포가 xxx대기업의 회사 안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데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관계를 하기 시작을 했다.
마담 C씨는 xxx 대 기업은 현재 사장이 내년에 임가 만료로 물어나기 때문에 실권이 부사장이 쥐고 있기 때문에 부사장과 그리고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총무를 만나서 그들의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IMF 직후에 xx 은행은 은행의 최고 자리인 은행장을 외부 인사로 영입을 하게 되었고 그 xxx 은행장으로 새로 부임을 한 사장이 바로 xx 대학 법대 출신으로 대기업의 부사장과 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해 연초에 은행장의 연초 순시 때 업무 보고 프레젠테이션에서 남편 B씨는 그의 사업 계획을 이야기를 하면서 인근에 있는 xxx 대기업의 안으로 점포를 이동시키겠다는 계획을 이야기를 하면서 은행장의 도움을 요청을 했다. 연초 업무 보고 프레젠테이션에서 다른 지점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칭찬을 듣게 되었고 바로 인근에 있는 xxx 지점의 지점장은 보고가 미흡하다고 다시 업무 보고를 하라는 질책을 받게 되었다.
남편 B씨는 용기 백배해서 은행장에게 직접 xxx대기업의 부사장이 내년에 사장으로 승진을 할 예정이라는 것과 그 부사장이 은행장과 xxx 법대 동문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은행장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을 했다. 은행장은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얼마 후에 은행장이 서울에서 xx 대기업 부사장인 후배를 만나게 되었으니 xxx 지점 장인 남편 B씨가 함께 참석을 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남편 B씨는 이것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두 사람에게 적당한 선물들을 준비를 해서 부라부라 서울의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세 사람이 만나서 xx 대기업 안에 조그만 장소만 빌려주면 그 다음에 모든 것은 xx 지점장이 알아서 처리를 하겠다고 읍소를 했다. Xx 대기업 부사장은 그가 사장이 되면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남편 B씨는 아직 그곳에 점포가 들어간 것이 아니고 그냥 고려해보겠다고 했기 때문에 마담 C씨의 조언으로 그곳에서 전체 업무에 밝은 그 지역 출신의 총무인 xx 를 접촉해서 그에게 그 기업 안에서 이미 업무를 보고 있는 기존의 xx 은행의 반대에 대한 사전 조율을 했다. 총무에게 지역 은행이 들어가야 민심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대기업 안에서 서로 경쟁을 해야 대기업 직원들이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으로 총무인 xx 를 잘 설득을 해 놓았다.
그 다음 해에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을 하면서 그 총무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대기업의 한 창고를 얻게 되었고 그곳에 xx 은행의 점포를 옮길 수가 있었다. 남편 B씨가 xx 은행 지점장으로 부임을 한지 약 6 개월이 지나가면서 대기업 안으로 은행의 점포를 개설할 수가 있게 된 큰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이었다.
그 술집은 그 동안에 많은 매상을 올릴 수가 있었고 남편 B씨는 xx 대 기업 안으로 점포를 옮긴 커다란 공적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이 시점에서 외도 사건으로 발전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남편 B씨의 외도의 시작과 내연 녀와 밀월 관계: 마담 C씨는 4대 중반으로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부인이 술집 마담으로 출발을 한지 약 10년이 흘러갔고 남편은 무능력자로 부부 사이게 감정적 이혼 상태에 있었다. 마담 C씨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서 모든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들을 좌지우지 하고 있었고 남편은 무능력자로 낙인 찍혀서 남편으로써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 B가 xxx 대기업에 입 점을 해서 분주하게 점포 정리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어느 날 마담의 집에서 손님 접대를 끝내고 12시경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마담 C씨가 종업원들을 일찍 내 보내고 나서 남편 B씨에게 다가와서 목을 끌어 안고 기습적 키스를 하면서 “사랑한다”라고 고백을 하면서 서로 열렬하게 키스와 포옹을 나누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남편 B씨는 싫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의 문이 열리고 감정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의 소망을 잘 읽고 있었다.
그 날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틀 후에 마담 C씨가 영업이 끝나고 나서 새벽 2시경에 남편 B씨의 아파트로 찾아오게 되었고 두 사람은 격렬한 사랑을 몸으로 나누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와 분석 상담 과정에서 남편 B씨는 부인 A씨로부터 느끼지 못했고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섹스의 쾌감을 맛볼 수 있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 시점이 두 사람이 공모를 해서 공동으로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공동작전을 세우고 계획을 시작한지 6개월 시점이었다고 했다.
이후에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거의 매일 밤에 마담 C씨가 찾아왔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승용차를 타고 두 사람의 밀월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내연 관계는 잘 진행이 되어져 갈 수 밖에 없었다. 남편 B씨의 부인 A씨는 주말 부부로 서로 교대로 올라오고 내려갔기 때문에 의심을 할 수가 없었고 남편은 주말에 연수, 특강, 혹은 출장 등의 핑계로 두 사람은 밀월 관계를 7년 동안 들통이 나지 않고 유지할 수가 있었다.
물론 남편 B씨는 2년 후에 대도시의 다른 은행 지점으로 승진으로 발령이 났고 그 지역을 떠났지만 서로 휴대폰으로 주말에 그리고 여름 휴가 시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피해서 밀월 여행을 다녔다고 술회를 했다.
부인 A씨는 2년 전에 치료자와 분석 상담에서 중간에 간혹 남편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을 했었다고 했다. 어느 날 부인이 주말에 남편의 아파트에 왔을 때 이상하게 여성의 머리카락을 발견을 했고 그리고 부인인 만든 음식이 아닌 음식들이 냉장고에 있는 것을 발견을 하고 다그치고 고백을 유도했지만 남편의 완강한 반대로 성공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남편 B씨가 화장실에 간 것을 보고 남편의 휴대폰을 살짝 열어 보고 나서 수십 장의 섹스관계 사진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사건이 폭발하게 된 것이었다.
외도사건이 터진 이후의 남편 B씨와 두 여성과 관계: 남편 B씨와 내연 녀인 마담 C씨와 7년 동안의 밀월 관계는 외도 사건이 터진 이후에 부인 A씨의 분노의 폭발로 잠시 주춤했다. 남편 B씨는 부인 A씨에게 내연 녀와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여러 번 각서를 썼고 맹세를 했지만 남편은 치료자와 분석 치료의 과정에서 부인 A씨 몰래 내연 녀인 마담 C씨와 자주 만났다고 실토를 했다.
부인 A씨는 남편의 휴대폰과 인터넷의 메일들을 거의 매일 같이 검사를 하면서 아직도 관계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남편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없다고 판단을 해서 자신의 우울증 치료 후에 2년 동안의 고심 끝에 남편 B씨를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의뢰하게 된 것이었다.
그 동안 외도 사건 이후에 4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마담 C씨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담 C씨는 돈을 모아서 술집을 청산하고 아파트를 사게 되었고 남편 B씨의 소개로써 xx 대기업에 물품을 조달해주는 납품 사업을 하게 되었고 마담 C씨의 큰 아들을 남편 B씨가 xx 대기업에 취직을 시켜주게 되었다. 그러나 마담 C씨는 사업이 번창하면서 그녀의 납품 사업을 크게 확장을 하기 위해서 미국에 있는 친척 조카에게 미국에서 물품을 구입해 달라고 2억 원을 송금을 했으나 그 조카가 돈을 먹고 잠적하는 바람에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전락했고 납품을 하는 일자리도 잃게 되었다고 남편 B씨가 귀 뜸을 해 주었다.
남편 B씨는 외도 사건 이후에 마담 C씨와 관계를 청산하려고 결심을 했으나 내연 녀인 마담 C씨의 여러 번의 SOS 전화로 만나게 되었고 만난 이후에 여러 번의 밀월 관계가 계속 되고 있었다고 실토를 했다. 내년 녀인 마담 C씨는 다시 사업의 재개를 위해서 은행의 대출을 받게 해 달라고 남편 B씨에게 그녀의 고민과 고통을 상담으로 하소연을 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자주 만나게 된 것이라고 남편 B씨가 실토를 했다.
남편 B씨의 핵심 문제들: 남편 B씨가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된 후에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위와 같은 남편의 과거의 역사와 부인과 내연 녀와의 관계들이 밝혀지면서 그 동안의 분석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은 남편의 핵심 문제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1.남편의 외도는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 받은 상처와 연결되어져 있었다. 남편은 은행에 취업이 되면서 은행원으로 출발을 한 시점에서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쓰러지게 되자 가족들을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서 중학교 시절에 알게 된 부인 A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결과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었다. 여기에서 남편 B씨는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인 A씨와 부부가 된 것이지 부인 A씨를 진심으로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어린 시절에 못다한 욕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남편은 치료자의 이러한 지적에 시인을 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사랑 타령”을 하는데 정작 자신은 평생 동안 사랑을 한번도 해 보지 못하고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사랑다운 열렬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고 인정을 했다. 지금의 부인 A씨는 자신이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니고 어머니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을 한 것이라고 실토를 했다.
남편 B씨는 은행원으로 근무할 때 몇몇 좋은 직장을 가진 여성들의 소개를 받았다고 했다. 여교사, 동료 여성 은행원 들의 구애를 받았으나 그들에게 관심을 줄 수가 없었다고 술회를 했다. 그 여성들이 B씨의 가정 환경을 알게 되면 기절초풍하고 도망을 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연애를 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동료 은행원들 중에서 여교사 혹은 여성 은행원들과 결혼으로 맞벌이를 하면서 아파트를 사고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항상 마음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했다고 실토를 했다. 그러한 어린 시절의 못 다한 욕구가 40대가 되면서 가정이 안정이 되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마담 C씨를 만나게 되었고 평생 동안 갈구해 오던 사랑을 하게 된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2.부인 A씨와 부부관계에서 오는 불만족이 외도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부부 관계에서는 섹스 문제와 은행 지점장의 부인으로써 자격 미달이라는 불만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부인 A씨와 섹스 관계에서 수동적이고 요소숙녀적인 태도(부인 A씨는 양반 가문의 후손으로 체면을 중시)와는 달리 마담 C씨와 섹스 관계는 환상적인 욕구 만족을 제공했다는 점을 외도의 원인으로 지적되자 남편 B씨는 스스로 인정을 했다. 40대 초반에 xxx 은행 지점장으로 승진이 되자 자주 모임을 가지게 되는 지점장 들과의 부부 동반 관계에서 부인 A씨가 싫어하고 빠지고 사교적인 관계에 미성숙한 점에서 항상 부인 A씨를 동반하게 동료들 앞에 나가게 되면 열등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점을 눈치챈 부인은 스스로 많은 책도 읽고 교양을 높이려고 시도를 했지만(치료자와 6개월 분석 치료 과정에서 부인 A씨는 대학원 졸업 정도의 지식 수순과 교양이 있었다) 부인 A씨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열등감은 숨길 수가 없었다. 부인 A씨는 부부 동반의 모임을 피했고 그리고 외도 사건이 터지고 나서 유방 확대 수술과 쌍가풀 수술 그리고 300만 원짜리 외제 고급 가방을 샀다고 시인을 한 것이 위의 분석의 증거로써 드러난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에 남편은 인정을 했다.
3.부모님에 대한 누적된 분노가 부인 A씨 한데로 흘러간 것이었다. 남편 B씨는 아버지를 원망을 했다. 한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남편 B씨의 기억 속에는 아버지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다 준 적이 없었다. 술에 취해서 대문 앞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저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다. 내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다!”라고 분노했다고 털어 놓았다. 남편 B씨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서 사환으로 심부름을 하게 될 시점에서 아버지는 이미 60대가 넘어가 있었다. 노동력의 상실로 그리고 일을 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마음이 없었다고 술회를 했다.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연민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 남편 B씨는 치료자의 지적에 대해서 아버지에 대한 적대 감정은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없다고 부인을 했다.
사랑과 미움은 두 개가 아니고 하나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흘러가야 하지만 미움도 흘러가야 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사랑과 미움을 쪼개서(쪼갬 방어-고통을 피하기 위한 자아의 보호막) 사랑은 흘러가는데 미움은 억압해 버리기 때문에 미움과 적대 감정은 내 마음 속에 누적되어져서 그것이 엉뚱한 다른 사람 한데도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수 없이 많이 보고 있지 않는가? 자식을 버리고 이혼으로 도망을 간 남편을 닮은 자식에 남편에 대한 미움이 흘러가서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사건들, 이혼한 부인에 대한 미움과 적대 감정이 부인을 닮은 자식에게 흘러가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을 보라! 미움과 적대 감정이 흘러가야 할 사람 한데로 흘러가지 않고 방향이 바뀌어서 흘러가는 것을 보라!
치료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남편의 마음 속에 억압되어져 있다는 지적에 남편은 펄쩍 뒤면서 부인을 했다. 치료자는 남편 B씨가 은행원으로 취업이 되었을 때 가장 기뻐할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한 남편 B씨의 술회를 증거로 제시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드러눕고 말았고 그 이후에 우울증으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하고 치매로 7년 동안 고생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탄식을 한 것을 지적을 했다. 평생 호강 한번 하지 못하고 아들이 성공해서 아들의 덕을 받지 못한 어머니가 한이 맺힌다고 실토를 한 점을 지적을 했을 때 그것을 인정을 했다. 어머니에게 여행 한번 시켜드리지 못한 아들, 용돈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한 아들의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남편 B씨는 통곡하면서 울었다. 어머니에 대한 연인과 불쌍함 뒤에 감추어진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는 남편 B씨가 말한 대목에서 잘 드러나 있었다.
치료자는 어머니의 우울증과 치매의 원인 무엇인지?를 지적을 했을 때 남편 B씨는 평생 동안 억울함과 고통과 운명을 가슴 속에 억압했기 때문에 가슴 속에 억압되어진 그 부정적 감정은 어머니의 자아를 공격해서 결국은 우울증으로 치매로 연결되었다고 시인을 했다. 어머니가 왜 남편 B씨가 은행에 취업을 한 시점에서 터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남편 B씨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는 그 이전에 이미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자식 때문에 표현을 하지 못하고 참고 견디면서 지내오다가 아들이 취업으로 이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을 보면서 그 동안 참아온 생명의 줄을 놓아버린 결과라고 분석을 해 주었을 때 인정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바보, 천치였습니다.” 전처의 두 명의 자식들을 키우면서 정작 어머니 자신이 낳은 5명의 자식들을 챙겨주지 못하고 친 형님은 일찍 집을 나가서 연락이 없고 B씨 자신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야간 공민 중학교(인가가 나지 않는)을 다니면서 어머니를 원망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지적을 했을 때 울면서 시인을 했다. 어머니는 한번도 남편이나 전처 자식들의 끝없는 말썽들에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팔자 운명 탓으로 돌리는 어머니를 보고 바보 같은 삶을 살았다고 늘 마음 속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고 시인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과 적대 감정은 치료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토해 놓고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실토를 했다. 이러한 분노, 미움, 적대 감정은 고스란히 부인 A씨 한데로 흘러간 것을 지적을 했을 때 남편 B씨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부인 A씨를 미워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증거로써 남편 B씨가 한 말에서 “나는 부인 A씨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니고 내 환경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을 한 것이다”라는 말을 그 증거로 지적을 했다. 남편 B씨는 평생 동안 사랑을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연애다운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마담 C씨와 불륜에 빠진 것은 부인 A씨에 대한 불만족이 아닌가? 그 불만족 뒤에 감추어진 감정을 보라! 부모님 때문에 내 환경 때문에 나는 내가 연애, 사랑을 할 수 없었다는 원망과 미움은 무엇인가? 내 어머니가 우울증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나는 부인 A씨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부인 A씨가 아닌 내가 사랑을 하는 사람과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을 것이고 나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은 어머니의 우울증 때문이다”라고 지적을 했을 때 그제서야 남편 B씨는 내면 속에 감추어진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과 적대 감정을 인정을 했다.
4.남편 B씨의 마음 속에는 부인 A씨를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망설이고 있기 때문에 마담 C씨의 유혹을 끊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을 분석으로 지적을 했을 때 남편 B씨는 시인을 했다. 남편은 7년 간의 외도 사건이 터지고 나서 마담 C씨와 관계를 청산을 하려고 했으나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막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외도 사건이 터지고 나서 4년의 세월이 흘러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번씩 비밀리에 만나고 있는 근본 원인을 지적을 했을 때 남편 B씨는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아직도 내가 내연 녀인 마담 C씨와의 사랑이 진실된 사랑인지 아니면 30년 동안 살아온 조강지처인 부인 A씨와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혼란스럽다고 실토를 했다.
남편 B씨는 치료자에게 6개월의 심리치료를 받고 나서 둘 사람 중에서 어느 여성을 진짜로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을 한 다음에 둘 중에 한 사람을 선택을 할 것이라고 실토를 했다.
5.만약에 남편 B씨가 마담 C씨와 결혼을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남편 B씨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면 미래는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을 했다. 한번도 마담 C씨와 결혼 후에 전개될 과정들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마담 C씨와 남편 B씨와의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들을 분석으로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어져 있는가?를 분석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남편 B씨가 치료자와 지금까지 약 3개월 동안의 분석 치료 과정에서 드러난 증거들을 바탕으로 분석을 한 것이다.
먼저 마담 C씨의 현재의 남편과의 관계를 분석으로 밝혀진 것은 마담 C씨는 남편이 사업 실패 때문에 그녀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서 술집을 운영하게 되었고 지금 현재 남편과 감정적 이혼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마담 C씨는 외향적 성격이고 말 솜씨가 뛰어나고 화술이 좋아서 사람들과 쉽게 친근해질 수 있는 장점을 남편 B씨가 이야기를 했다.
남편 B씨는 지금은 은행 지점장에서 퇴직을 해서 한 중소 기업에 자문으로 일하고 있고 xx 대학에 창업 강사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간혹 창업에 대한 젊은이들을 위한 특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게 되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올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 B씨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일자리를 얻기 어렵게 될 것이고 마담 C씨와 결혼을 하게 되면 C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을 했을 때 남편 B씨는 시인을 했다.
마담 C씨는 지금은 술집을 청산하고 xx 회사에 납품 일을 하다가 먼 친척에게 2억 원을 사기 당하고 아파트를 팔고 전세 집에서 살고 있어서 지금은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남편 B씨는 마담 C씨가 “부인 A씨와 이혼하고 팬티만 입고 오라”그러면 마담 C씨가 남편 B시를 먹여 살릴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을 해 왔다고 했다. 마담 C씨는 은행 대출을 받아서 헌 빌딩을 수리를 해서 원룸 혹은 고시텔을 운영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여러 번 남편 B씨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마담 C씨는 빈털터리가 아닌가? 은행 융자를 하려고 하면 남편 B씨가 은행 지점장 출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돈의 융자는 남편 B씨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사업이 실패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남편 B씨의 몫이 아닌가?라는 지적에 남편 B씨는 인정을 했다.
부인 A씨와 이혼을 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남편 B씨는 부인 A씨는 이혼을 하게 되면 “팬티만 입고 나가라!”라고 말을 해 왔고 남편 B씨도 부인 A씨와 이혼을 하게 되면 지금 두 채의 아파트와 일부 저금으로 있는 현금들을 부인 A씨에게 남기고 팬티만 입고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혼 후에 아들 두 사람과 아버지 관계를 질문을 했을 때 아들들은 어머니 편이어서 아버지가 외도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 결국 남편 B씨는 마담 C씨와 결혼을 하게 되면 부인 A씨와 두 아들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남편 B씨는 시인을 했다.
마담 C씨와 남편 B씨는 두 사람 다 60대의 나이로 사업에 성공을 할 확률을 이야기를 했을 때 지금 현재 두 사람이 40대 50대의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제 60대 후반으로 나이를 먹어가는 시점에서 사업을 해서 성공할 확률은 낮아진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더 붙여서 만약에 사업이 실패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마담 C씨와 남편 B씨 사이에 벌어질 것인지?를 물었을 때 한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마담 C씨와 그녀의 남편과 관계를 잘 보도록 했다. 남편의 경제력이 없어지면서 마담 C씨는 남편을 무기력하게 만든 장본인이 아닌가? 남편을 갈아 뭉개버리고 남편은 무능력한 남편으로 감정적으로 이혼하고 은행 지점장인 B씨와 재혼을 하려고 하고 있는 모습을 잘 보도록 했다. 마담 C씨와 남편 B씨의 재혼은 신혼기인 약 1년-2년 동안에는 밀월 관계처럼 지속될 수 있겠지만 사업 부인으로 남편 B씨가 경제력이 점점 줄어들어가는 마당에 부인이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전 남편에게 한 행동은 재혼 후에 남편 B씨의 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한 경우에는 똑 같이 반응행동을 할 것이 명약관화 하지 않는가?를 지적을 했을 때 남편 B씨는 깜짝 놀랬다. 마담 C씨가 지금의 남편의 경제적 상실로 남편에게 하고 있는 모습은 미래의 남편이 될 B씨에게도 똑 같이 적용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만약에 마담 C씨와 재혼에서 실패하면 남편 B씨는 부인 A씨에게 되돌아갈 수가 없다는 점 그리고 두 명의 아들들에게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부인 A씨와 이혼으로 결별하게 되면 부인 A씨는 그 충격으로 다시 우울증이 재발하거나 남편 B씨의 어머니(시어머니)처럼 치매가 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을 했다. 만약에 부인 A씨가 우울증 혹은 치매를 앓게 되면 두 명의 아들들이 요양원 혹은 간병을 해야 하는데 남편 B씨가 재혼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고 해도 30년 동안 같이 살아온 조강지처가 중병으로 어머니처럼 고통을 앓게 되는 것을 본다면 남편 B씨의 죄의식은 어떻게 감당을 할 것인가?를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과 부인 A씨에 대한 죄의식이 가중되어서 평생 동안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을 했을 때 그것을 인정을 했다.
6. 치료자가 남편 B씨에게 은행원으로 생활하면서 평생 동안 절약하고 저축하고 아끼면서 살아온 목적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남편 B씨는 자식들의 양육과 교육 그리고 부부가 노후에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라고 쉽게 대답을 했다.
만약에 이혼하고 나서 재혼 후에 실패하게 되면 남편 B씨의 노후는 부인 A씨도 잃고 아들 두 명도 잃고 그리고 마담 C씨로부터 학대 받고 천대받게 되면(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전 남편처럼 마담 C씨는 남편 B씨를 깔아 뭉개고 남편 대접을 해주지 않을 것) 갈 곳이 어디인가? 라는 지적에 남편 B씨는 시인을 하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60대와 70대에 재혼의 성공 비율이 낮다는 것은 이미 전문가들이 지적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년층들이 남편 B씨처럼 어린 시절에 자신의 한 맺힌 욕구 때문에 파트너와 이혼하고 재혼을 하는 사람들의 말로를 잘 보게 했다.
돈이 많은 남자 노인의 경우에 돈이 없는 여성은 재혼을 하지만 남자가 경제적인 면을 공동소유로 공유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은 부인은 남편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고 갈등의 씨앗이 된다. 또한 남편의 사망 후에는 자식들이 유산 문제로 재혼한 부인에게 소송을 재기해서 싸우는 수 많은 사건들을 보라! 돈이 많은 노 부인과 돈이 없는 남편이 재혼도 마찬가지다.
두 파트너가 돈이 많은 경우에 두 노인의 재혼은 행복할 것 같아 보이지만 두 사람은 경제적인 돈 문제는 각자가 개인 소유로 공동 공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돈 때문에 불신하는 경우가 많아서 친밀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최근에 인기 있는 MBN의 사건 사고 big 5와 JTBC의 사건 반장에서 등장하는 노 부부들의 재혼 후에 벌어지는 소송 사건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라는 지적에 남편 B씨는 지금까지 그러한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실토를 했다.
만역에 재혼으로 복잡한 위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면 평생 동안 살아온 노후가 갈등으로 치고 받고 싸우는 노년이 될 것이 뻔 하지 않는가? 노후에 조용하게 여유 있는 생활을 하려고 한 재혼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면 노후에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적으로 면역 기능이 약화된 상태에서 어느 장사가 버틸 수 있겠는가!
7.남편 B씨는 자신의 외도 사건이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는가? 이 질문에 남편 B씨는 깜짝 놀랬다. 자식들이 남편 B씨의 외도사실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인 A씨가 “너의 아버지가 술집 마담과 7년 동안 외도를 한 사실을 부인과 자식들에게 숨기로 비밀로 해 온 것이 들통이 났다.”라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했고 그리고 외도 사건이 터진 이후에 2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보고 그리고 아직도 외도를 끊지 못하고 부부 싸움을 벌리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를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을 했을 것인지?는 한번도 제대로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자식들은 부모의 눈치를 보고 상상 속에서 아버지의 외도를 왜곡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를 하고 잦은 부부 싸움에서 자식들이 무의식적으로 부모를 닮게 된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나중에 아들들이 40대 후반이 되면서 아버지처럼 외도 사건을 벌리고 부부 갈등과 이혼으로 아버지의 과거를 답습한다고 생각해 보도록 했다.
8.남편이 외도를 하면서 술집 마담 C씨와 섹스 관계 사진을 수 십장을 휴대폰에 저장해 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남편 B씨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왜 그러한 실수를 했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무의식적으로 남편이 사랑이 없는 결혼을 하게 된 부인 A씨에 대한 원망과 그것도 모르고 바보 같이 속고 있는 복수심이라고 지적을 했다.그 복수심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당하고도 바보 같이 삶을 망치고 폐인으로 죽었고 그리고 부인 A씨 역시 남편 B씨가 7년 동안 외도를 하면서 들통이 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바보 같은 부인 A씨에게 이제는 그 외도를 노출을 시켜서 부인 A씨와 관계를 정리를 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소망이 아닌가?라고 지적을 했을 때 일부분 그런 마음이 있었다고 시인을 했다.
외도를 하면서 부인 A와 관계를 청산하고 이제는 남편 B씨가 진실로 사랑하는 내연 녀인 마담 C씨와 행복한 결혼으로 삶의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털어 놓았다. 마담 C씨는 “사랑을 하지도 않는 부인 A씨와 이혼을 하고 팬티만 입고 나오라 내가 당신을 먹여 살 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해 온 것을 지적을 했을 때 남편 B씨는 시인을 했다. 마담 C씨는 시도때도 없이 우리가 언제까지 비밀리에 만나야 하는가? 이제 부인 A씨에게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해서 이혼으로 정리를 하고 뜻뜻하게 새 출발을 하자라고 수 없이 보채고 강요를 했다고 실토를 했다.
그러나 그냥 고백을 해서 이혼을 해 달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양심의 죄책감 때문에 할 수 없는 고백으로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고 그렀다고 마담 C씨가 부인 A씨에게 고백을 할 수도 없어서 고민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남편 B씨는 부인 A씨가 우울증와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7년 동안 봉양하고 3명의 남동생들을 출가시키고 남편 B씨의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 봉사를 해 온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결국은 휴대폰에 섹스 사진을 자신도 모르고 저장을 했고 그것이 탄로 나면서 사건이 자연스럽게 폭발한 것이었다.
남편 B씨는 사실은 치료자에게 부인 A씨의 우울증 치료를 부탁을 한 사람으로써 부인 A씨가 남편 외도의 근절을 위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도록 권유를 했을 때 부인 A씨에게 No라고 말을 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6개월의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래서 첫 치료 시작 후에 3개월 동안은 형식적으로 그냥 치료실에 시간만 때우는 형식적인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3개월 이후에 본격적인 어린 시절의 상처와 욕구 분석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되었고 분석 치료 시간이 기다려지고 진심으로 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다.
나머지 3개월의 분석 치료 과정에서 남편 B씨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 적대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따로 기술한 공간이 없어서 생략을 했다. 분석 치료에서는 반드시 내면 깊숙이 억압되어져 있는 감정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치료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남편 B씨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원망, 연민과 애정에 대한 감정들이 표현이 되어지지 않고 누적되어져서 그 분노, 미움, 적대 감정이 부인 A씨 한데로 미움이 흘러간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치료실에서 감정을 방출시켜야 부인 A씨에게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고 인정을 했다.
더 붙여서 치료자는 분석 치료 시간에 치료자와 나눈 이야기로 분석적인 내용을 집에 가서 부인과 같이 나누면서 의사 소통을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치료자는 남편 B씨의 어린 시절에 한 맺힌 욕구 불만족에 발목이 잡혀서 외도를 했고 그리고 7년간의 사랑을 경험을 해 보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한번 사랑다운 사랑, 연애다운 연애를 해 보고 나서 그가 얻은 결실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했을 때 이제 사랑은 원도 한도 없이 해 보았는데(7년 동안 경험) 그 결과 얻는 것은 부인 A씨와 자식들로부터 믿음의 상실과 그리고 불신을 더 붙여서 외도 후에 지난 4년간 부부갈등으로부터 받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얻은 것이 없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의 과정에서 남편 B씨는 이제 대학을 졸업한 큰 아들이 아버지의 은행에서 은행원으로써 시작을 하게 되었고 몇 달 후에 결혼을 하려고 약혼을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둘째는 이제 대학 수능 시험을 공부하고 있는데 부부 싸움으로 자식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 후회스럽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두 명의 아들에게 그 동안의 외도의 사실을 공개하고 아들들로부터 용서를 받도록 하는 치료의 과정을 다룬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남편 B씨는 6 개월의 분석 치료를 끝내면서 이제서야 자신의 내면의 자아의 움직임을 알게 되었다고 치료자에게 감사를 표현을 했고 이제는 마담 C씨와 관계를 확실하게 단절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 마담 C씨의 전화나 문자 메시지에 대해서 단호하게 No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의학,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5 (0) | 2016.03.13 |
---|---|
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4 (0) | 2016.03.05 |
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2 (0) | 2016.02.20 |
죽은 엄마 5 (0) | 2016.02.15 |
죽은 엄마 4 (0) | 2016.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