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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하기 가장 어려운 정신장애는 ?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22. 5. 8. 15:31

치료하기 가장 어려운 정신장애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의 사람들 특별히 치료사와 상담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조현병(정신분열증)이라고 대답을 한다. 그 이유는 치료사가 환자를 다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은 자기 스스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족구성원들에 의해서 떠 밀려서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정작 조현병 환자, 본인들은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돌아이가 아니다 라고 말을 한다. 가장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본인들은 스스로 문제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이 정신장애의 특징이다.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정신병이 있다고 말을 하면 자아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프로이트의 방어이론).

이러한 조현병 환자를 치료를 하면서 대부분의 치료사와 상담사들은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치료를 해야 유능한 치료사와 상담사이다 라고 생각한다. 치료자(필자) 역시 그렇게 지금까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최근 2년 동안에는 그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은 조현병, 편집증, 조울증과 같은 정신증 장애보다 불안증과 우울증과 같은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더욱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정신증 환자를 치료하기 보다 어려운가?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가? 그리고 여기에다 최근에 치료자가 정신장애로 분류되어 지지 않고 DSM(미국 정신장애들의 통계와 진단 지침서)에는 그러한 장애들의 분류 항목이 없다.

체적인 질병으로 분류되어 일반 의사들 즉 내과의사, 신경외과, 피부과 의사, 이비인후과 등의 의사들을 찾는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들 즉 이명(귀에서 앵하는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병), 다한증(손에 땀이 나는 질병), 난독증(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질병), 수전증(손이 떨리는 병) 그리고 대장염(잦은 설사병)과 소장염(천공이라고 불리는 위가 구멍이 뚫리는 국소성 소장염이라는 병)을 가진 환자들이다. 일반 의사들의 약물 처방을 받고 약물을 복용하지만 효과가 없기 때문에 고질병(치료되어 지지 않는 질병)으로 포기하고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이런 환자들(신경증)의 심리 치료의 성공사례들의 이야기가 이 블로그의 주제이다.

먼저 왜 지금까지 조현병이 가장 치료 회기 어려운 질명으로 치료자 역시 2년전까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치료를 왜 왔는가? 라는 이유를 먼저 살펴보자.

고교 1학년 때 부모님에 의해서 떠밀려서 미국 유학을 갔던 A군은 뉴욕에서 4년간 고교생활을 했으나 졸업을 하지 못하고 조현병으로 귀국을 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3개월 입원한 후에 지금까지 10년 동안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A군이 10년 동안 약물 치료로써 환청이 들리지 않고 조용해졌기 때문에 치료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30세가 넘어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고 강압을 했다. 그래서 창고에서 일을 하는 곳에서 3명의 40대 후반과 50대의 어른들과 함께 노동일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3개월 후에 해고로 쫓겨나게 되었다. 대인관계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계속해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A군의 아버지가 치료자의 정신분열증(조현병)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20세라고 말을 했는데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30세였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그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고 했다. 언제 유학을 갔는가? 라고 물었을 때 고 1학년 때 유학 열풍에 자의반 타의반(자신이 30%, 부모님 70%) 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 입학 후에 학교생활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그러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였다. 한국에서 학교 생활에 대해서 물었을 때 몇 마디 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단답형이었다.

하도 딱해서 그렇다면 오늘 아침 식사로 어떤 음식을 먹고 왔는가? 라고 했을 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역시 기억이 아니 않습니다였다. 그가 일부러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조현병의 특징이 생각이 너무 많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약물을 복용하면서 생각과 감정을 억압해버린 것이었다. 여기에다 평소에 언어 사용이 콘크리트해서 대화가 빈약하고 은유와 상징어의 사용이과 추상적인 용어의 사용이 빈약한 것도 포함되어져 있다.

그런데 그들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생각과 감정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위와 같은 20년 혹은 30년 된 약물 복용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를 하면서 약물을 단절하고 순수한 대화의 기법으로 성공적으로 치료한 정신과의사, 정신분석가로써 예일 의과대학 정신과 그리고 영국 타비스톡(Tavistock Clinic) 정신분석과 심리치료 대학(1920년에 창설: 현재 2천명의 재학생들: 의학심리학)에서 교수로 2년 동안 재직하면서 영국에서 대상관계 이론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정신분열증 치료의 세계적인 대가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5: 주㈜: 참고)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교수로 은퇴 이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고급정신증 환자 치료센터를 운명하면서 감정과 생각이 없는 로봇과 같은 환자들을 생각과 느낌을 회복하는 치료의 과정을 소개한 그의 4 단계 치료 기법 즉 제 1 단계로 무감각과 무감정을 되살려내는 과정 제 2 단계로 환청과 환각이 나타나는 단계 제 3 단계로 신경증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단계 제 4 단계로 성격의 수정과정을 거치는 단계이다 이것을 연구하고 치료한 경험에 치료자가 따른 것이다.(Thomas Ogden의 저서들을 보라).

또 한 사람은 최근에 28세의 B군으로 10년 동안 2번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치료사의 홈 페이지를 본 형님에 의해서 치료를 받으러 왔다. 대화를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A군과 달리 공격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치료자가 질문을 했을 때 제가 몇 번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 내가 또 치료 시간에 똑 같은 말을 계속해서 되풀이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몇 번째입니다. 치료사 선생님은 치료 시간만 때우고 한 시간이 지나가면 치료 비용을 받겠지만 나는 고통입니다. 효과도 없는 것을 왜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까? 말을 해도 효과가 없는 것을 왜 반복해서 계속 받아야 합니까?

위의 A군과 B군과 같은 조현병 환자들은 1시간 혹은 2시간(필자는 120분이다)을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은 치료사에게 고통스럽다. 고로 원로 치료사들은 조현병 환자를 한번에 여려 명을 치료를 하지 말하고 조언을 한다. 위와 같은 환자들을 6개월(치료자는 6개월 이하는 수용하지 않는다. 치료 비용은 선물이고 환불하지 않는다 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동안 이끌고 내화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대화를 싫어하고 콘크리트한 환자를 치료하는 기법은 이 블로그를 넘어간다. 이후에 대화를 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치료 기법의 블로그를 보라).

그들을 치료를 하고 나면 치료사는 자신감이 바닥을 치게 된다 치료자의 능력이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환자들이 치료 효과가 개선되어 지지 않으면 치료사는 절망적이 된다. 전문직업 중에서 가장 자살비율이 높은 전문직은 정신건강 전문가와 치과의사이다 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렇다고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를 하면 치료 비용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시간당 치료 비용은 누구나 똑 같다. 어떤 환자들은 효과가 없는데 왜 치료 비용을 많이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약물을 제공하는 것도 아닌데 말로써 이야기를 하고 나서 돈을 내야 하는가? 라고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조현병 환자를 1사람 치료하는 것이 스스로 심리 치료를 받으러 찾아온 환자들을 치료하기 보다 10배 어렵다고 말을 한다. 왜 돈을 똑 같이 받으면서 10배나 치료하기 어려운 사람을 치료를 해야 하는가? 라고 조현병 치료를 회피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치료 비용은 사실은 치료를 한 대가로 받는 비용이 아니고 전문가의 시간을 1시간 사용을 했기 때문에 시간을 사용한 시간사용료를 받는 것이다 고로 누구든지 시간의 사용료는 똑 같다. 치료가 성공한 사람은 돈을 많이 받고 치료가 실패한 사람은 돈을 적게 받는 것이 아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사실은 정신증(조현병, 편집증, 조울증)은 20세기에 등장한 정신장애이다 그런데 신경증(불안장애, 우울증)은 19세기 후반기에 등장 하게 된다. 신경증이 정신증보다 50년 먼저 등장을 했다. 고로 정신증의 아버지가 신경증이다. 신경증의 아들이 정신증이다.

여기에다 또 한가지는 치료자가 40년 동안(필자는 1982년에 미국유학으로 시작 - 지금 2022년까지) 심리치료를 하면서 최근에 5년 동안 조현병 환자를 7명의 치료를 했다 그 중에 6명은 마지막으로 약물을 중단하고 성공적으로 치료한 경험이 있다. 1명은 초반기 약물 중단으로 1년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2번이나 중단한 후에 약물 복용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실패한 사례이다.

그들의 평균 치료 기간이 1년이었다. 물론 조현병 환자들이 정신분석에서 요구하는 자아의 수정의 수준까지 도발하려고 하면 7년에서 10년 정도가 기간이 걸린다 그러나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다. 환자 자신과 가족구성원들이 약물을 중단하고 환청, 환각이 사라지고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단계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치료를 종결하게 된다.

반면에 신경증 환자들(불안증, 우울증)은 지금까지 치료자에게 1, 16개월, 2, 3, 4, 5, 6 그리고 13년 동안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이 있다(치료자의 환자들은 정신증이거나 신경증이거나 모두가 6개월은 기본이다).

정신증 환자들은 직장생활, 결혼생활, 사회생활이 어렵다 그리고 가족들과 관계가 어렵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들은 직장생활, 결혼생활,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고 있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치료를 계속하거나 중단하거나 하는 것은 전적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의 선택이고 몫이다. 치료자가 최면을 걸어서 일부러 치료를 연장하거나 받도록 종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사회생활 직장생활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증 환자보다 왜 장기간 치료를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래의 글에서 계속해서 소개되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먼저 신경증의 등장과 정신증의 등장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에 치료사도 역시 전문용어와 내용을 암기하는데 몰두를 했었다 즉 내용과 용어들의 외우기에 급급했다.

특별히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들이 반에서 1등, 2등을 하는 우수한 학생들로써 컴퓨터처럼 기계적으로 외우는 공부방식이 초반기에는 성공하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공부를 많이 할수록 성적이 내려가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미래가 암울해져서 혼란을 경험하게 되면서 치료를 찾는 사례들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컴퓨터 식으로 외우는 방식은 뇌의 기억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뇌는 의미단위로 음의 단위로 기억이 된다 다시 말해서 연상으로 기억을 하면 한번에 기억이 된다 고로 역사적으로 연결해서 공부를 하면 한번에 입력이 되기 때문에 시대상황과 역사적 상황으로 기술하게 된 것이 치료사의 스타일이 된 것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정신장애와 반대이다 라는 것은 여러 번 블로그에서 밝혔다. 과학 문명은 편리함과 풍요로움과 삶의 질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신장애는 과학문명과 상극으로 오히려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정신병이 많아지고 치료하기 어려운 정신병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역사적인 과정을 살펴보자.

조금 전에 정신증은 20세기의 산물이고 신경증은 19세기 후반기의 산물이라고 노트를 했다 그렇다면 19세기 이전에는 신경증이 없었다 라는 말인가? 라는 질문에 Yes(그렇다)이다. 그렇다면 왜 19세기에 무엇이 신경증의 분수령이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산업혁명의 등장이다. 산업 혁명은 계몽주의의 산물이다. 산업 혁명이 농업 사회공업 사회분 수령이 된 것이다. 계몽주의 이전의 사회는 농경사회 즉 농업 사회(목축, 수산업)였다. 물론 우울증과 조증은 그리스시대부터 있었다. 그것을 제회한 모든 신경증들은 19세기 후반에 등장하게 된다.

먼저 농업사회를 생각해보자, 필자는 초, 중학교 시절에는 농촌에서 살았다 고교시절에 대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농경사회는 주로 부락단위로 살았다. 김씨 집성촌 혹은 이씨 집성촌으로 3촌, 4촌, 5촌 형제들이 부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웃사촌으로 한 마을의 사람들은 형제처럼 서로서로 도와주고 살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즉 결혼 혹은 장례 때는 모두가 서로 함께 참석해서 도와주면서 살아왔다. 농사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오늘날은 영농과학으로 많은 배움과 기술이 필요하다).

젊음이들은 일자리 걱정이 없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관찰하고 보고 배웠다. 나이가 들어가서 자녀를 출산할 나이가 되면 이웃 동네 혹은 친지들의 소개로 결혼을 했다. 농사 일에는 힘이 세고 소와 쟁기를 다루고 지게로 짐을 질 수 있는 것이 그의 전부였다. 나이가 들어서 성장하게 되면 결혼을 했다(사춘기, 청년기가 없었다. 사춘기, 청년기는 20세기에 등장한다. 아래를 보라)

우리나라의 경우에 신라시대부터 남자는 힘이 세고, 섹시한 남자(섹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통)로 씨름을 잘하는 남자가 인기가 최고였다. 씨름에서 일등 상으로 황소가 주어졌다. 여성들은 골반이 큰 부잣집 맏며느리가 인기가 있었다. 자녀들을 많이 낳을 수 있고 일을 잘하는 힘이 센 몸집이 있는 여성이 최고였다. 남성들은 씨름이 그리고 여성들은 그네 타기널 뛰기가 유행을 했다. 그네와 널뛰기는 골반이 크야 그네를 밀어 올리는 힘널 뛰기에서 엉덩이의 힘이 발로 연결되어 힘차게 누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어업은 어선과 고기잡이, 목축은 소와 양들).

(토지)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집에서 일을 해주고 곡식을 받아서 살아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서로 잘 알고 그들의 집을 내 집처럼 자주 놀려가고 드나들었기 때문에 그 집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서로가 어려움들을 토로하고 호소해서 친밀한 관계가 어려움이 없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과제물이 없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놀았다(오늘날 어린이들은 놀이 문화가 상실). 지금도 한 동네에서 같이 성장한 7명의 남자 친구들이 3개월한 한번씩 계모임으로 만난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돈과 지식과 직업에 차이가 있지만 정신적인 문제점은 없다는 것이다. 한 가족의 구성원들이 7-10명등르로 형제들이 많았다(산아제한이 없고 의사들이 없었다). 고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스스로 배울 수가 있었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없었다. 이러란 농경사회에서는 정신적인 문제가 거의 없었다.

정신의학자들이 미국의 외딴 곳에서 살고 있는 인디언의 마을에 직접 참가를 해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의 과정을 연구를 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에릭 에릭슨(Eri Erikson)과 브라이스 보이어(Bryce Boyer이다. 브라이스 보이어(Bryce Boyer, 1999: 주㈜: 참고)는 어린시절에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속에서 성장을 했다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로써 평생동안 약물없이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를 했다. 보이어는 인디언 마을에 들어가서 문화 인류학적으로 연구를 했다.

인디언들은 자연속에서 살면서 먹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자연 속에 지천으로 늘려 있는 과일들과 약초들을 재배하고 농사를 짖고 고기가 필요할 때 사냥을 했다. 들소 혹은 산양, 사슴들을 사냥을 할 때 산의 신(산신령)에게 먼저 제사를 지내고 꼭 필요한 량의 고기를 취하기 위해서 사냥을 했기 대문에 자연과 잘 조화를 해서 살고 있었다고 노트를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이민들이 증가하면서 스포츠로 사냥이 유행하면서 그들이 들소와 산양과 사슴들을 마주잡이로 총질로써 살해하는 살상의 과정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인디언들을 노트하고 있다.

그들은 정신병이 거의 없었다. 간혹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추장 혹은 샤만들이 치유를 했다. 비록 그들이 과학 문명으로부터 멀어져 살고 있었지만 풍부한 자연속에서 살면서 따뜻한 인간애로 살아가고 있었다 라고 노트를 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그의 저서 문명과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1930)에서 과학문명의 발달이 정신장애를 양산할 것이라고 약 100년 전에 예고를 했다. 고조선의 8조 금법과 신라시대의 세속 5계 (원광법사)는 화랑도의 가르침으로 국사에서 배운 것이 기억이 난다(다음 백과 참고). 옛날에는 5개와 8개의 금지 법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매년마다 많은 법들이 국회를 통과한다, 최근에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10원 벌금, 애완동물들의 목줄과 분비물을 하지 않으면 벌금 등등으로 수많은 금지들이 등장하면서 현실적 자아(ego)는 그러한 누적되는 금지와 처벌에 컨트롤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고로 과학 문명은 개개인의 욕구를 억압하고 규칙과 절재를 감당하는 ego의 몫이 점점 커지기 때문에 어려움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아래의 글에서 불안의 장애들의 원인들을 보라).

위와 같은 농경사회에서는 굶주림과 배고픔은 있었지만 정신이상자는 거의 없었다. 풍요롭지 못했지만 갈등은 적었다, 감정이 풍부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개인들은 자연을 따르고 신을 존경하면서 개개인은 자연의 일부로서 큰 불만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과학문명의 발달로 되돌아가보자.

농경사회의 반대가 산업사회로 공업사회이다. 산업사회의 등장은 산업혁명에서 그리고 산업혁명을 낳은 계몽주의부터 시작해 보자.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역사가들은 1715년에 사망한 프랑스의 루이 14세(Louis ⅩⅣ)의 죽음으로 시작되었고 그리고 칸트(Kant)의 죽음으로(1805년에 사망)끝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1700년부터 1800년의 100년 동안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 지식의 혁명과학의 혁명이 등장하게 된다.

지식의 혁명에는 우리가 늘 들어서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유명인들 즉 영국의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1776), 독일의 칸트(Kant)의 순수이성 비판(1781), 프랑스의 루소(Rousseau)의 사회 계약설(1762), 프랑스의 몽테스큐(Montesquieu)의 법의 정신(1748)(미국 독립선언서의 작가들에게 영향), 그리고 프랑스의 데카르트(Descartes)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1637) 등이다.

더 붙여서 과학 혁명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수학과 교수인 뉴턴(Newton)의 만유인력(1687)으로 물리학이 등장하고 이어서 자석과 자장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계몽주의 시대의 큰 사건이 바로 프랑스 혁명(1789)이고 그리고 미국의 독립(1776)이다. 중세 1000년의 무지와 미신과 맹목적인 종교에서 벗어나서 이성과 합리주의 그리고 개인의 행복 추구로 깨어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공립학교가 등장하게 된다, 최초의 공립학교는 교회의 복음교육에서 시작된 교구 학교에서 어린이들의 교육으로 시작된다. 물론 대학은 이미 오래전에 등장을 했었다. 옥스포드 대학(1906), 파리 대학(솔본대학 전신)(1150), 캠브리지 대학(1209),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1365),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1386) 등이 등장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대학이었다(2022, 4, 16: 위키피아). 일반 대중을 위한 공립학교는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하게 된다.

공업사회가 등장하게 된 산업 혁명(Industrial Revolution)은 하루 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계몽주의 시대의 100년이 뿌린 씨앗이 싹이 튼 생산물이 바로 산업혁명이다. 역사가들은 산업 혁명이 1760년부터 1840년가지 100년의 기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늘 교과서에서 배운 제임스 왓슨(James Watt)의 증기 기차이다. 왓슨은 주전자의 뚜껑이 수증기의 힘으로 밀어 올리는 것을 보고 열의 힘의 아이디어로 이후에 증기 기차를 발명을 했다. 증기 기차가 등장하고 기계로 옷을 짜는 방직 공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게 되면서 대도시가 생겨나게 되고 도시의 빈민간들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서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게 되면서 부르주아 계급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1848년에 칼 마르크스(Karl Max)와 프리드리히 엔젤(Friedrich Engels)의 공산주의 선언서로 노동자 농민 혁명을 부르짖게 되었다.

산업 혁명이 몰고 온 100 년 기간 동안에 커다란 사건이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남북 전쟁이었다. 필자는 학부에서 미국의 역사와 미국의 정치학을 필수과목으로 이수를 했다 그리고 유학 이전에 미국 공보원 도서관에서 회원으로 등록해서 많은 책들을 읽었다 특별히 독해력을 위해서 읽은 책들 중에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전기 6권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인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는 이 책으로 퓰리처(Pulitzer)상을 받았다. 2권은 초원의 시절의 링컨의 어린시절 그리고 나머지 4권의 전쟁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지금도 생생한 것은 1860년 링컨이 대통령이 된 1년 후남군이 북구의 진지인 포터 샘터(Port Sumter)에 포격을 함으로 1861, 4, 12에 남복전쟁이 시작되었다. 노예를 찬성하는 버지니아주가 중심이 된 남부의 13미국 연맹매사추세츠 주가 중심이 된 북부의 34미국 연합4년 동안에 걸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노예 문제로 싸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근본적인 원인은 북부의 공업사회남부의 농업 사회의 전쟁이었다. 북부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노예가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남부는 거대한 농장의 지역으로 노동력으로 노예가 필수적이었다. 노예의 해방은 그들의 손과 발을 잘라내는 것과 같았다. 고로 남부는 격렬하게 반대를 했다. 당장 노동력이 사라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은 노예들이 자산이고 부()의 원천이었다. 남군의 발표로 시작된 전생에서 남군의 총사령관인 로버트 리(Robert E. Lee)장군은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전쟁 이전에 이미 자신의 집에 있는 노예들을 전부 해방시키고 자신은 노예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고향인 버지니아주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운다고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북군의 총사령관인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은 역시 웨스트 포인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군으로 두 사람의 미국이 배출한 똑 같은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서로 싸우게 되었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온 청교도의 나라이다. 똑 같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한 쪽은 노예 해방을 보호해달라고 그리고 다른 한쪽은 노예를 해방하는 자신들을 도와 달라똑 같은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는 남군과 북군의 군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전쟁은 초반기에 남군이 우세 했으나 후반기로 가면서 점점 열세로 기울어지면서 마지막으로 게티스버그(Gettysburg) 전투에서 북군의 승리는 이후의 계속된 전쟁에서 남군의 우세를 꺾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이 전쟁에서 링컨의 유명한 케티스버그 연설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명연설은 지금까지 명언으로 인구에 회자되어 인용되어지고 있다. 남북 전쟁은 1865, 5, 9일에 4년 27일 만에 끝이 났다. 이 전쟁으로 남군 290,000명과 북군 365,000명 총 65만5천명이 전사를 했다. 농업사회와 공업사회의 싸움은 공업사회의 승리였다. 전쟁에 승리한 그랜트 장군은 이후에 18대 미국 대통령으로 50달러싸리 화폐에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2022, 4, 16: 위키피아).

치료자가 남복 전쟁을 소상하게 기술한 것은 이 전쟁의 결과로 신경증의 병명 이름들이 등장하게 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신경증의 등장으로 돌아가보자. 도시의 공장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10시간씩 혹은 그 이상으로 일을 하게 됨으로써 잦은 이사와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과로 등으로 인해서 등장한 정신 장애가 바로 신경증이다. 20세기의 역동적 정신의학의 4명의 대가시그문드 프로이트(Sigmund Freud), 피에르 장(Pierre Janet), 알프레드 에들러(Alfred Adler) 그리고 구스타브 융(Gustav Jung)이다.

에들러는 그의 초반기 논문 사회적 질병(social illness)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천막 속에서 일하는 재봉공장을 직접 방문을 하고 그들의 노동현장에서 질병이 발생한다는 사회적 질병이론을 처음으로 내 놓았다. 봉제공장에서 바느질로 손가락이 찔리고 공기가 잘 소통되지 않는 천막속에서 하루에 10시간씩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노동자를 위해서 그는 노동조건의 개선과 노동시간의 제한을 주장최초의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였다.

그에 의해서 등장한 사회적 환경이 질병의 커다란 원인이 될 수 있다 라는 그의 주장은 프로이트와 결별 이후에 개인심리학으로 정신분석 학파를 형성해서 사회심리학의 선구자가 된다(Ellenberger, 1970: Alfred Adler의 전기를 보라).

미국의 남북 전쟁 이후에 급격한 사회적 발달은 1869년에 미국의 신경과 의사조지 비어드 (George Beard)에 의해서 신경쇠약증(neurasthenia)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이 병이 에너지 고갈, 피로감, 불면증, 흥미상실, 입맛 상실, 섹스 욕구가 고갈, 잠을 자지만 숙면이 안 된다 등으로 기술하면서 전 세계로 펴져갔다. 그는 신경쇠약의 치료를 위해서 충분한 휴식, 충분한 영양 공급, 에너지 충전, 위로와 격려 등으로 치료를 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신경 에너지 고갈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어 지지 못하게 되면서 신경쇠약의 용어는 neuro(신경) + ashrenia(쇠약증)에서 쇠약증이 제거되고 신경증(neurosis)으로 남게 된다. 이 용어는 1980년의 DSM-Ⅲ에서 신경쇠약증의 용어는 사라지게 된다. 신경증은 대조적인 정신 장애가 정신증(psychosis)이다(Ellenberger, 1970: 역동학적 정신의학의 역사와 진화를 보라).

또 한가지는 남복 전쟁 중에 군의관으로 복무를 한 다코스타(Dacosta)가 남북전쟁의 군인들 중에서 약 300이 전쟁 도중에 울거나 기절하거나 졸도하거나 호흡이 곤란하고, 질식상태로 벌벌 떨게 되는 증세들을 관찰하고 이러한 증세가 심장과 관계된 감정장애로 기술하면서 심장이 화가 났다, 심장이 짜증났다 라고 기술하고 심장발작증으로 명명을 했다. 이후에 제 1 차 세계대전과 그리고 제 2 차 세계대전에서 이러한 군인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이 증세를 포탄 쇼크(Shell shock)로 이름을 붙였다.

군인들이 대포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비겁하게 도망치려 하거나, 용기가 없어서 어린이처럼 벌벌 떨고 울음을 터뜨린다 라고 생각해서 정신을 차리라고 체벌을 하거나 처벌을 했다. 제 1 차 세계 대전에서 이러한 군인들을 꾀병 환자로 취급해서 비겁한 겁쟁이로 전기 쇼크를 주어 치료를 했다. 반대로 프로이트는 이들을 환자로 취급해서 소리에 민감하고, 불면증으로 입맛의 상실, 에너지 고갈로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정신분석 치료전기 쇼크 치료대립을 하게 된다.

제 1 차 세계 대전 이후에 비엔나에서 전기 쇼크 치료를 받은 육군 소위가 전기쇼크로 충격을 받았다는 손해배상으로 고소를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전쟁 신경증 환자를 전기 쇼크 치료 이론으로 정신을 차리게 한 이론을 주장한 사람의 대표적인 정신과 의사가 바로 비엔나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로 프로이트의 후배인 와거너 조레그(Wanger-Jauregg)이다. 그는 말라리아 치료의 공로로 정신과의사로 첫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다(Ellenberger, 1970).

대신에 프로이트는 그들이 환자이기 때문에 도망가는 사람의 뒤에서 총질을 할 것이 아니고 환자로써 정신분석 치료를 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대표한 사람이었다. 수사 위원회의 회장인 비엔나의 명망 있는 변호사인 알렉산더 로플러(Alexander Loffler) 교수가 사회를 했다. 모든 비엔나 신경과 의사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참석을 했다. 그리고 언론이 역시 초대되었다. 이 소송은 비엔나의 정신과의 대표적인 두 사람이 법정에서 맞붙은 소송으로 조레그 쪽에서 전기 쇼크 치료를 한 제자가 2 사람 그리고 프로이트의 제자로 정신분석 치료를 한 제자 2사람의 법정에서 중인으로 서게 되었다(Ernest Jones, 1957,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을 보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효과가 없었다 라는 반대편의 주장에서 한 제자가 시인을 했다 짧은 시간에 그리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군대들은 여러 나라 군대들 즉 체코, 불가리아 등의 다양한 군대들이 자국 언어들의 문제로 소통의 어려움장기 치료가 효과가 미흡한 부분을 인정하면서 그 소송은 기각되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짧은 시간이 전생신경증에 효과가 미미하다는 타격을 받게 된다(Ernest Jones, 1957).

그러나 이후에 2 차 세계 대전에서 전쟁 신경증에 정신분석의 효과들이 인정을 받게 된다. 정신분석 안에서 전쟁 신경증 치료가 활기를 띄게 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로 프로이트 밑에서 2년 동안 정신분석을 공부한 아브라함 가디너(Abram Kardiner)가 1941년에 쓴 전쟁의 상처 신경증은 유명한 정신분석으로 신경증을 치료하는 저서로 유명하다(하버드 대학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주디스 허만(Judith Herman, 1984)의 저서 상처와 치료를 보라).

좀더 구체석으로 이러한 전쟁 신경증의 증세는 제 1 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의사인 루이스(Lewis)에 의해서 그리고 제 2 차 세계 대전 때 코엔(1954)에 의해서 그리고 로스(Roth, 1959, 1960)의 의해서 신경순환쇠약증, 심장박동항진증, 혈관움직임신경증 등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이러한 증세들을 총칭해서 전시에 등장한 증세라는 이름으로 전쟁 신경증으로 이름이 붙게 된다. 다양한 이름들은 한가지식 정리가 된다.

전쟁과 관계없이 일반인들에게도 일어나는 심장박동항진증, 신경순환쇠약증 등은 실제 심장과 관계된 것이 아니고 감정 때문이다 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덤불 속에서 살다가 사람을 놀라게 해서 기절시키거나 사망하게 하는 (God)의 이름페닉(Panic)의 이름을 따서 공황장애(panic) 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전쟁 신경증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이름이 1980년 DSM-Ⅲ에서 최종적으로 정리가 되어진다(뉴욕 의과대학 교수로 불안장애 치료센터 소장인 David Barlow, 1988, 불안장애와 공포증을 보라).

공장장애의 진화의 과정에서 심장발작증, 심장박동항진증, 신경순환쇠약증 등의 용어들이 등장해서 혼란스러운 시점에서 프로이트가 이런 증세들을 불안공격의 결과로써 정의를 하고 불안증이라는 용어를 등장시키게 된다(Barlow, 1988).

프로이트는 최면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정신분석을 개발하면서 제일 먼저 치료를 한 것이 공포증 치료였다. 그는 1909년에 비엔나에서 5세 소년의 말 공포증으로 말이 무서워서 외출을 하지 못하는 소년의 공포증 치료 사례인 리틀 한스(Little Hans)를 출판을 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흑사병으로 쥐가 병균을 옮긴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쥐에 대한 공포 때문에 치료를 받게 된 쥐인간(Ratman)(1909) 치료사례가 등장하게 된다.

1911년에 독일 연방대법원 판사가 정신병원에 2회에 걸쳐서 입원한 자서전 나의 신경증 질병의 회고록에서(편집증 조발성 치매) 그의 회고록을 분석해서 처음으로 편집증이 동성애가 원인이다 라는 논물을 발표하게 된다. 1913년강박사고 신경증 치료 사례, 1918년에 러시아의 귀족인 젊은이가 5마리-6마리의 늑대 공포증에 시달리면서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받게 된 늑대 인간(Wolfman, 1918)의 치료 사례를 발표를 했다. 1920년에 한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의 사례 그리고 1923년악마 신경증(Haizman)치료 사례 등을 발표를 했다. 1927년페티시즘(대물애욕증) 그리고 섹스에 대한 치료와 논문이 17 으로 프로이트가 주로 치료를 한 것은 공포증과 강박증, 그리고 섹스 신경증을 치료를 했다.

이 치료사례들은 불안증, 불안장애에 소속이 된다 즉 프로이트는 불안증의 치료 이론과 치료 기법에 헌신을 하게 된다. 우울증에 대한 최초의 정신분석 논문은 프로이트의 제자로써 베를린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칼 아브라함(Karl Abraham)이 1911년 발표한 우울증의 정신분석 치료이다(뉴욕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아르에티(Arieti)의 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을 보라, Arieti, 1979: 주㈜: 참고).

프로이트는 불안증의 치료에 전념을 하다가 1917년 유명한 애도와 멜랑꼴리아(mourning and melancholia)의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오가덴(Ogden, 2005: 주㈜: 참고)은 그의 저서 정신분석의 예술에서 애도와 멜랑꼴리아는 우울증의 논문의 최고의 백미로써 이 논문안에서 대상관계의 첫 용어가 등장한다고 노트하면서 지금까지 우울증에 치료이론과 기법으로 프로이트의 우울증과 조증의 분석을 능가하는 이론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격찬을 했다.

애도 가벼운 우울증이고 멜랑꼴리아 심각한 우울증이다. 둘 다 어떤 대상을 상실에 따른 반응행동으로 보았다 즉 사랑하는 연인을 상실 혹은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들의 상실, 소중한 물건의 상실 혹은 무형의 소중한 가치 즉 희망, 가치관, 목표의 상실 등을 겪었을 때 상실에 따른 심리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반응행동으로 애도와 멜랑꼴리아가 유사하다고 설명을 한다. 상실의 아픔 때문에 생기마음의 상처로써 에너지 고갈, 입맛의 상실, 흥미와 취미의 상실, 불면증,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외부 세계에 대한 흥미와 관심의 상실, 모든 활동의 억제, 자아-존경심이 바닥을 친다, 피곤하다, 잠만 잔다. 세상에 다한 흥미와 관심을 상실을 보인다 자아 비난망상적 기대최고조에 이른다(Ogden, 2005).

쉽게 말해서 소금에 절여 놓은 파김치와 같다. 소금에 절여 놓기 전에는 싱싱하고 생기가 넘치는 파와 김치가 소금에 절려 놓으면 생기가 없고 축 늘어져서 에너지 고갈에 따른 활동의 상실에다 행동으로는 두문불출하게 된다 즉 움직이지 않게 되고 활동을 하지 않게 된다. 잠만 잔다 에너지 고갈에 움직이기조차 싫어한다. 심지어 먹는 것조차 싫어 한다. 무기력, 무가치, 무능력을 한탄만 한다. 여기까지는 애도와 멜랑꼴리아가 똑 같다 라고 프로이트는 설명을 한다.

그런데 애도외부 대상의 상실이기 때문에 ego는 손상이 없다 고로 상실한 외부 대상을 그리워하면서 울고 불고 애통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약 2년의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대상으로 애착이 형성되고 상실한 대상을 대신해서 그 대상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대상에 애착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애도의 정상적 기간이 2년으로 본다) 이것이 건강한 사람으로 애도는 2년이 넘어가는 경우에 병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반대로 멜랑꼴리아(심각한 우울증)는 외부의 상실에 대해서 ego가 상처를 받아서 박살이 난 것이다 즉 분열된 것이다. Ego는 출생시에는 ego가 없다.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과정에서 ego가 나타나게 된다(프로이트는 항문기에 ego가 나타난다고 가설화 했다).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자아에 비쳐져서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마음이 된다.

7개월-9개월의 시점에서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인식하게 되고 엄마와 아기가 다르다 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아기의 ego가 나타나게 된다. 엄마가 없으면 불안하게 되고 엄마에 애착으로 매달리게 된다 이것이 분리불안이다. 항문기인 1세-3세 사이에 아가의 ego는 진화하고 발달하게 된다. 먼저 신체를 컨트롤하는 것을 배운다. 대소변의 컨트롤로 괄약근육의 컨트롤 그리고 주변 환경의 컨트롤을 배우게 된다. 만지고 찢고 부수면서 주변의 환경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컨트롤감각을 얻게 된다

모든 주변의 사물들이 생명이 있는 것으로 물활론(animism)으로 두려워하고 그들에 방해받거나 받치게 되면 울면서 엄마에게 호소하게 된다 그러한 단계를 거치면서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 구분을 하게 되고 ego가 마스터 감각을 습득하게 된다(L.A. 정신분석학교를 설립한 오토 페니첼(Otto Fenichel의 신경증의 정신분석학적인 이론을 보라).

3세-5세의 오디팔 단계에서 어린이는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스스로 하는 일들이 제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신에 부모님은 전지전능하게 보이게 된다 특별히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페니스가 없다는 것을 보고 자신의 페니스가 거세될 것이라고 두려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세불안이다.

아버지의 처벌을 두려워하게 된다. 딸의 경우에는 남근 질투(penis envy)로 페니스가 있는 아버지를 더 좋아하게 된다. 엄마는 페니스가 있는 아들딸은 페니스가 있는 아버지과 더욱 더 가깝게 된다. 이 단계에서 아들은 아버지처럼 훌륭한 남자가 되겠다 딸은 어머니처럼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보상심리가 아들을 아버지를 동일시해서 남자다움으로 딸은 어머니처럼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여성다움으로 성장과 발달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에서 부모의 처벌이 두려움이 초자아 즉 선과 악을 구분하는 양심이 등장하게 된다. 처벌적인 두려움의 양심에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훌륭한 전지전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인 ego 이상(미래의 희망과 야심)초자아에 합병되어지면서 거칠고 처벌적인 초자아는 온건한 초자아가 된다. 이러한 성장과 발달 과정에서 문제가 셍기게 된 것이 신경증이다(Fenichel, 1945: 주㈜: 참고).

여기에서 외부의 대상의 상실 때문에 ego가 박살이 나게 되면서 ego는 분열로 쪼개지게 된다. 고로 ego는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즉 엄마와 너와나의 하나된 관계가 된다 그 결과로 상실한 대상인 엄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외부의 상실한 대상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건강한 애도처럼 새로운 대상에 애착으로 상실한 대상을 잊어버릴 필요가 없게 된다. 여기에다 초자아에서 ego 이상이 분리되어지면서 초자아는 거칠고 처벌적이 되면서 ego를 공격하게 된다. 고로 모든 것이 내 잘못으로 ego는 자신감이 없어지고 무능한, 무기력한, 무능력한 사람이 된다. 이것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멜랑꼴리아가 된다. 즉 우울한 상실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다.

여기에서 조증의 경우를 보자. 외부 대상과 싸움에서 ego가 패배한 경우가 멜랑꼴리아이다. Ego의 손상이 있고 외부 대상은 손상이 없다 그런데 반대로 외부 대상의 상실과 싸워서 ego가 승리한 경우조증이다. 이것을 복권에 당선된 것으로 비유를 한다. 즉 복권에 당선되어 하루 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사람은 모든 문제가 한방으로 해결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상속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에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현실의 삶에서 마스터 감각으로 자신감이 올라간 것이 아니고 상상 속에서 한 방에 불멸의 인간이 된 것이다 고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하루 아침에 신이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고 전지전능한 불멸의 인간으로 신이 된 것이 조증이다 조증은 심각한 우울증과 정반대이다. 잠이 거의 없다 하루에 1시간-2시간의 잠을 자도 에너지가 흘러 넘친다, 말이 없고 말하기조차 싫어하는 에너지 고갈과 정반대로 에너지가 흘러 넘쳐서 말잔치가 된다.

새벽 1시-2시에 친구나 친지에서 전화를 걸어서 횡설수설하는 것에서 정신이 돌았다 라고 상대가 인식하게 된다. 걸거리에서 혼자서 말을 하고 다닌다 이것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혼자서 지껄이고 다니는 미친 사람들이 바로 조증 환자들이다. 그들이 하루 아침에 사업을 한다고 시도를 한다 어떤 사람은 세계 최고의 발명을 했기 때문에 청와대에 전화를 해서 자신의 발명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조증 환자의 행동을 방해하면 벼락같이 화를 낸다.

조증은 우울증의 반대행동으로 본다는 것을 그리스이래 학자들이 조증과 우울증은 한 개의 뿌리로 하나로 본다. 조증과 우울증을 분리해서 치료하지 않는다. 정신분석에서는 우울증의 치료를 통해서 조증을 치료하게 된다. 이것이 서로 교대로 반복되어지는 것이 바로 조울증(양극성장애)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교대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이 길고 조증은 짧은 것으로 그리고 봄과 여름에는 우울증이 우세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조증이 우세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Cancro, 1988: 주㈜: 참고).

우울증 상태에서는 치료를 받으러 오지만 조증은 자신의 신이고 자신의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는다.

치료자(필자)는 위의 이론을 통해서 멜랑꼴리아조증 환자를 각각 치료한 경험이 있다. 그들이 위의 프로이트의 애도와 멜랑꼴리아의 이론에 정확하게 일치됨을 실감을 했다.

40대 초반의 전문직 여성 C씨는 그녀가 우울증으로 치료자를 찾아왔다. 그녀는 대학 시설에 연인과 열렬한 사랑을 했다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태어난 아기의 이름까지 지어 놓았다. 만약에 전쟁으로 서로 헤어지면 매년 1월 1일에 xxx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4년 동안 열애를 하다가 어느 날 그녀가 그 남자 친구를 피해서 잠적을 했다.

남자 친구의 어머니가 C양를 찾아와서 왜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사랑하다가 잠적했는가? 아들이 지금 병으로 드러누워서 식음을 전폐하고 죽으려고 하니 그 이유라도 묻고 싶다고 했다. C양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결연을 선포를 했다.

그 직후에 그녀는 상실의 아픔으로 목적지가 없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남자 친구와 닮은 사람과 만나서 그의 요구로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산을 거부했다. 사실은 그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남자 친구를 잊어버리기 위해서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이었다. 지금은 남편과 이혼을 요구하고 있지만 남편은 거부하고 서로 별거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가 왜 서로 그렇게 사랑한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를 물었을 때 그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이유를 분석 치료를 통해서 밝혀내 달라고 했다.

그녀의 어린시절의 분석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무너졌다. 처음부터 무능한 아버지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다. 어머니는 기술이 없었다. 아버지의 경제력의 상실과 어머니의 무능력 때문에 3살위의 언니가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언니는 고교 1학년으로 그리고 C양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다.

C양은 초등학교 시절에 가난해서 달동네에서 살았다.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똑똑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방과 후에 동료들과 귀가할 때 그녀의 살고 있는 집을 보여주기 않기 위해서 일부러 잘 사는 집들의 근처를 돌아서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혼자서 귀가를 했다고 실토를 했다.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온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나 그녀를 친구들의 초대에 응해서 잘 사는 친구네 집에 들리곤 했지만 말이다.

그 시점에서 원조 교제가 유행을 하게 되었다 일본의 한 기업인이 그녀의 언니와 원조교제를 하면서 한 달에 1번 혹은 2달에 한번으로 한국에 와서 언니와 원조교제로 생활비용을 지원해주게 된 것이었다.

C양은 한번씩 40대 중반의 그 일본인이 오면 온 가족이 리무진 승용차(호텔에서 귀빈용으로 사용)를 타고 선탠(밖에서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한)을 했기 때문에 외부의 사람들은 승용차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고로 C양과 가족구성원들은 언니 덕분에 최고의 고급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의 호화로움 음식을 맞보면서 스스로 즐겼다고 털어 놓았다. 리무진 승용차 안에서 그녀는 바깥의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스스로 공주처럼 으쓱하고 기분이 좋았다고 실토를 했다.

C양은 중, 고교를 졸업하고 언니의 덕분에 명문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이후에 지방의 이름있는 대학 교수가 된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언니와 일본 기업인의 원조교제는 끝이 났고 언니는 지금 결혼을 해서 자녀를 출산하고 큰 어려움이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C양이 자신의 그러한 과거의 비밀들을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치료자가 C양의 어린시절의 상처들을 남자 친구에게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에 결혼으로 그 비밀이 밝혀질 것이라고 두려웠기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이 아닌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세월은 흘러갔다. 그녀가 이제 40대 초반의 중년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그녀는 그 남자 친구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추억 속에서 남자 친구를 내보내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매일 같이 그 남자 친구를 생각하고 있다고 실토를 했다.

위에서 언급한 오가덴의 프로이트의 애도와 멜랑꼴리아에서 그 대상은 바로 언니라는 점이다. C양은 초중고대학 시절에 부모님이 무능력했기 때문에 언니가 부모의 대역을 한 것이었다 라고 지적을 했을 때 그녀는 시인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토해내도록 했다, C양은 언니의 몸을 팔아서 자신이 대학을 졸업하고 성공을 했다 라는 것에 대한 초자아의 처벌이었다. 그녀는 더러움과 수치심과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도 연인과 대학시절에 데이터를 하면서 함께 선물로 주고받은 호두를 서로 2개씩 나눈 것을 설합속에 넣어두고 꺼내 본다고 했다. 그 당시에 호두 2개를 한 손 안에 쥐고 누르면 달그락 소리가 하는 것 때문에 호두가 유행을 한 것을 그녀와 남자 친구가 그것을 사가지고 즐겼던 것을 회상을 하면서 그녀는 남자 친구의 흔적을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가 혹시 대학 교수가 된 것이 아닌가? 해서 전국의 대학들을 뒤져서 혹시 그 남자 친구의 전화 번호를 알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실토를 했다. 그런데 그들의 대학 시절에 그 남자 친구의 누나가 미국유학 중이었다. C 양(지금은 C부인)은 그 남자 친구의 누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누나는 귀국 후에 명문 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번화 번호를 알고 있지만 전화를 걸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이 전화를 하면 그 때 헤어진 이유를 말을 할 수가 없고 그녀에게 그녀 자신의 전화번호를 제공할 수가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C부인에게 지금 남자 친구를 찾아낸다고 해도 그는 이미 결혼을 해서 자녀들이 있을 것이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 사람과 연결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녀에게 되돌아올 수 없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 포기하고 그 대상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에 그녀는 그 남자 친구를 지우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 상실이었다. 그녀는 우울증 속에서 그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삶의 즐거움이라고 치료를 종결을 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유이한 즐거움은 매일 같이 그 남자 친구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두 번째 치료 사레는 조증 환자의 치료 사례이다. 29세의 간호사 D양이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의 분석에서 그녀는 초중학교 시절에 반에서 1등 2등을 한 재원이었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 때 전교에서 3등을 한 것을 어머니에게 자랑하다가 호되게 처벌을 받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친구의 집의 딸은 1등을 했는데 너는 왜 3등밖에 하지 못했는가? 하는 처벌에 분노했다.

어머니는 치맛바람으로 학교를 들락날락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이러한 행동에 분노했다. 조용하게 살림만 하면 되면 왜 학교에 들락거리고 유사한 학부모들과 만나서 집 밖에서 살림을 무시하고 돌아다니는가? 라고 질책하는 것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의 부부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어머니는 D양이 중학교 2학년 시점에서 가출로 집을 떠나버렸다. 이후에 어머니는 되돌아오지 않고 별거가 되었다. 어머니는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버지는 거부를 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후에 어머니의 몫이 D양이 감당을 해야 했다. 그녀가 식사 준비와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하면서 성적이 떨어지고 스트레스 속에서 공부에 집중도가 떨어지게 된다. 결국 D양은 대학은 그녀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었지만 대인관계 문제로 파트 타임으로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분노, 그리고 아버지가 그녀를 엄마의 대역으로 취급한 것에 대한 부당함에 분노와 노여움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조증이 발생한 것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교인이었던 D양은 어느 날 하느님이 그녀에게 과거에 교회에서 짝 사랑한 한 오빠를 찾아가라는 계시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오빠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탄 것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지방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그곳에 내려서 엉뚱한 곳으로 왔다는 것을 알고 택시를 타고 오빠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이름을 택시 기사에게 말을 했을 때 그 기사가 D양의 정신이상을 눈치 채고 아버지의 전화 번호를 물어서 아버지가 딸을 아버지의 집으로 데리고 오라는 부탁에 다행히도 D양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D양의 조증 증세는 악화되었다 그녀는 xxx날에 휴거를 해서 하늘 나라로 올라간다고 사람들에게 xx날에 세상의 종말이 오니 회개하고 피해야 한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을 남동생과 아버지가 그녀를 외출을 하지 못하게 아파트 도어문을 잠가버렸다. 여기에서 D양이 탈출을 위해서 아파트 3층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골절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대학병원에 폐쇄 병동에 입원을 해서 골절치료를 위해서 기부스를 하고 3개월 동안 입원후에 골절 치료 이후에 다시 심리치료를 받아서 회복되었다.

그려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2년 6개월 후에 풀타임으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성공적인 조증의 치료를 종결할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경증의 아들이 정신증이라고 했다. 정신증의 아버지가 신경증이라고 했으니 정신증의 등장으로 되돌아가보자. 정신증은 20세기인 산물이라고 했기 때문에 20세기어 어떻게 정신증이 등장했는가? 를 명확하게 말아야 왜 신경증이 정신증보다 치료하기가 어려운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증의 등장은 독일의 정신과의사인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에 의해서 1896년에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조울증조발성 치매구분을 했다. 조울증은 감정장애 그리고 조발성 치매는 사고 장애뇌의 질병으로 치료의 확률이 2% 라고 보고를 했다.

그러나 실제로 조발성 치매의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신경학자, 정신과 의사베네틱 오그스트 모넬(Benedict Augustin Morel)이다. 그는 프랑스의 가르코트(Charcot)밑에서 최면을 연구를 했다. 이후에 정신요양원 원장으로 정신의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그가 1853년에 조발성 치매(demence precoce)라는 신조어사용 했으나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는 퇴화 이론으로 정신병의 심리적 기능의 저하를 연구를 한 최초의 정신과 의사로 그의 이론은 기질적인 선천적인 유전적으로 치료되어질 수 없는 것으로 기술을 했다. 그의 이론이 이태리의 범죄 심리학자롬부로조(Lombroso)에게 영향을 미쳐서 인류학적인 범죄인의 기질적 연구로 이어지게 된다(2022, 4, 17: 위키피아).

조발성 치매에서 조발성은 젊은이의 뜻이고 치매는 뇌의 질병의 뜻인데 우리나라 사전에서 치매로 번역한 것이다. 조발성 치매는 16년 동안 이 질병을 신경정신의힉과 역동정신의학의 연구를 통합한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정신병원으로 등장한 스위스의 부르고졸리(Burgholzli) 대학정신병원의 5대총장으로 20년 동안 이 병원을 세계 최고의 정신병의 이론과 치료를 연구한 세계적인 대가인 유진 불루러(Eugen Bleuler)에 의해서 뇌의 질병이 아니고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라는 이름으로 1916년에 등장을 하게 된다.

그는 정신분열증이 한 개의 종류가 아니고 편집증 정신분열증, 긴장성(균열성) 정신분열증, 사춘기형 정신분열증, 그리고 여기에 속하지 않는 특수 정신분열증으로 4가지 종류로 구분을 했다. 그는 뇌의 질병이 아니고 정신의 분열 증 양면 감정의 분열(사랑과 미움의 분열), 감정과 사고의 분열, 연상의 분열(생각들의 연결들이 분열) 그리고 내면의 세계로 철수(내폐증)으로 이들의 첫 글자를 따서 4A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의 진단은 지금도 기초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크레펠린의 2% 치료 비율을 수정해서 60%가 회복될 수 있다 그리고 18%가 회복과 재발의 반복 그리고 22%는 회복불능으로 정신병원에 평생 입원해야 한다고 발표를 했다. 그의 연구는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Wing)에 의해서 40명의 여성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의 과정40년 동안 추적 연구를 한 결과 67%가 회복되었고, 26%가 재발과 회복으로 정신병원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나머지 7%가 평생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연구 보고서를 발표를 했다(컬럼비아 대학 정신과 교수, 정신분석가인 스톤(Stone, 1983)의 저서 정신분열증치료: 분석적인 치료 접근을 보라).

미국에서 정신분열증(우리나라에서 조현병으로 개칭)은 스위스의 쥬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미국에 이민을 온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이다. 그는 영국의 신경과 의사인 휴글 젝슨(Hughlings Jackson)(자아(self)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 그리고 카르코트(Charcot) 밑에서 최면학을 연구를 했다 그 이후에 그는 미국에 이민을 와서 존 홉킨스 의과대학 정신과를 창설을 하고 존 홉킨스 대학의 헨리 필립 치료병원(Henry Phipps Psychiatric Clinic)을 설립했다. 그가 1926년-1927년에 미국정신의학회 회장을 역임을 했다.

그는 정신분열증이 뇌의 질병이 아니고 생리학, 심리학 그리고 환경에 의해서 생기는 질병으로 특별히 환경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서 반응행동성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다. 메이어는 초반기 미국 정신의학의 대모(代母)로써 미국의 정신의학자들의 소통을 위해서 DSM를 만들게 된다. 1952년에 등장한 DSM-에서 반응행동적 정신분열증이로 사용되어졌다. 이 용어는 1968년에 뉴욕 의과대학 정신과 학과장인 캔코르(Cancro)의 주도에 의해서 주도된 DSM_Ⅱ에서 반응행동 정신분열증으로 사용하다가 컬럼비아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로버트 스피츠(Robert Spitz)의 주도에 의해서 DSM-Ⅲ에서 정신분열증으로 수정되었다.

여기에서 초반기에 모넬과 크레펠린이 dementia praecox라는 용어에서 dementia라는 젊은이의 뇌 질병으로 왜 젊은이가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젊은이들의 질병이라는 말은 정신분열증의 발병의 기간이 15세-27세까지 젊은이들이 걸린다는 것이다(최근에는 13세부터 46세까지 확대). 여기에서 사춘기, 청소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다.

19세기에는 사춘기, 청소년이라는 말이 없었다. 처음으로 청소년(Adolescence)이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이 바로 미국의 하버드 대학 심리학 박사 1호인 스텐리 홀(Stanly Hall)이다. 그는 미국의 초대 심리학회 회장으로 1888년에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클라크(Clark)대학 총장으로 20년 동안 혁신적인 학교를 운명하면서 1909년프로이트와 융(Jung)의 클라크 대학 20주년 기념식초대를 해서 프로이트가 첫 미국의 방문을 하고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홀이 1904년에 청소년(Adolescence)라는 용어를 신조어로 사용하면서 사춘기(puberty)와 청소년이라는 용어가 학계에 등장하게 된다. 그는 이후에 약 10편의 청소년에 대한 연구를 했다. 청소년기를 질풍 노도(Strom and Stress)라는 말로서 표현한 장본인이다.

이후에 버클리대학에서 진 맥파인(Jean Macfarlane) 교수의 주도로 1927년에 인간발달 연구소를 설립하고 250명의 어린이들을 평생 연구로써 어린이와 청소년 연구로 이어지게 된다. 그녀는 1984년에 청소년 연구학회를 조직해서 청소년의 심리연구에 평생을 보내게 된다. 1967년에 미국의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양육과정을 관찰하고 연구한 에릭슨(Erikson, 1967: 주㈜: 참고)에 의해서 청소년의 위기와 주체성의 용어가 등장하고 청소년기가 삶에서 독립된 자아 주체성의 형성기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여기에서 사춘기(puberty)라는 용어와 청소년(adolescence)라는 용어는 사춘기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음모라는 말로써 음모가 나오는 시기라는 뜻으로 고환호르몬의 작동으로 음모와 나오고 고환이 커지고 근육과 골격이 어른스럽게 강해지고 섹스 욕구가 생기고 정액과 정사의 생산으로 몽정을 하게 되는 사춘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소녀의 경우에는 골반이 커지고 음순과 음모가 나오기 시작하고 유방이 커지고 생리를 시작하게 된다. 즉 신체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청소년의 초반기 시점을 의미한다 청소년은 사춘기부터 성인이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나이로 보면 틴 에이지(teenage)라는 말로써 표현되는 13세(thirteenth)로부터 19세(nineteenth)까지의 나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생리와 몽정의 시각은 11.5-12.5부터 시작되는 몸의 변화로써 나이와 몸의 변화는 일치되어 지지 않는다. 농경시대에는 여성의 생리가 17, 19였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즐거 불렀던 대중 가요 속에서 17곱의 순정, 낭랑 18, 당신만 아세요 19이에요 등등의 용어에서 농경시대에는 사춘기가 17-19였다.

그런데 산업 사회로 이동하면서 사춘기가 4살로 다운되었다. 지금 11.5세 혹은 124세-5세로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대신에 결혼의 연령은 늦어지고 있다. 최근에 통계청의 젊은이들의 결혼 평균연령은 남자가 32세 여자가 30로 12세-31세까지는 29년의 기간청소년의 기간이 된다. 과거에 13세-19세의 6년이 왜 29년으로 연장되고 그리고 또 계속해서 청소년이 빨라지고 늦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사춘기시골보다 도시의 소년소녀들이 빨리 온다. 영양식사회문화적 자극 즉 섹스 자극이 원인으로 본다. 동시에 왜 늦어지는가? 청소년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산업사회로 옮겨오면서 어른들이 일자리가 부족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더욱 더 많은 기술을 배우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결혼을 할 시점에는 남자의 평균 결혼 연령이 26세 여자는 21세 정도였다 그런데 10마다 1살씩 뒤로 밀려났다. 치료자가 지금 70세로 4살이(44년 동안에) 늦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생리와 몽정의 시작 그리고 결혼 비율이 비슷하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부양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출산한 자녀들을 먹여 살릴 능력이 우선이다. 필자의 젊은 시절인 1970년대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일자리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원을 졸업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사회는 점점 젊은이들에게 더욱 더 많은 기술과 배움을 요구한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기술과 지식을 요구하게 되고 젊은이들은 청소년기가 길어지면서 청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하 기간이 늘어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춘기, 청소년 전기. 청소년 중기, 청소년 후기 그리고 성인 초기로 나누고 있다 각각 단계들의 특징이 구분이 되어진다.

정신분열증(조현병)의 등장이 왜 하필 청소년기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 직장을 가지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수많은 일자리 중에서 자신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를 결정을 해야 한다. 동료들과 관계 뿐만 아니라 이성과 친밀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자신의 섹스 욕구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갑자기 변화하는 신체적인 변화에 청소년들이 놀라고 혼란하게 된다.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삶의 설계를 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하는 과정들이 청소년들이 직면하는 바로 내가 누구인가? Who am I?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에릭슨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의 질문을 스스로 찾아서 그 답을 찾아야 하는 기간이 바로 청소녀의 기간으로 이 기간을 주체성 혼란으로 정의를 했다.

청소년들마다 이 과정을 통화하는데 개개인적으로 다 다르다. 그러나 고통과 혼란과 어려움을 경험을 하는 것은 유사하다 이것을 주체성 위기로 표현을 했다. 프로이트는 어린시절에 ego가 적당하게 발달을 해서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 즉 외부의 환경적인 자극에 ego가 마스터의 능력이 잘 발달해서 오디팔 기간의 과정(엄마, 아빠, 그리고 나의 세 사람의 삼각관계)을 잘 통과한 젊은이는 청소녀의 혼란기를 잘 통과할 수 있는데 어린시절에 ego가 약하거나 상처를 받거나 과잉 보호로 자아를 개발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사춘기이 혼란에 휩쓸리게 된다 라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지적한 오디팔 기간의 통과를 하면서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갈등이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즉 부모님은 자녀들이 1-2명을 출산하게 되면서 자녀들을 부모님이 기대를 했던 대로 부모님의 희망대로 양육을 하려고 자녀들을 간섭하게 된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통과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부모의 기대와 자녀의 소망이 부딪치면서 파열음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치료자가 심리적인 문제를 도와주면서 특별히 느끼는 것은 자녀들의 소망과 고통과 고민을 들어주고 지원해주기 보다 부모님이 원하는 자녀(의사, 변호사)가 되라고 강압을 하는 것이 자녀들의 소망과 갈등으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자녀들은 혼자가 감당을 하기도 어려운데 부모들의 기대와 간섭으로 갈등이 문재를 확대시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정신분열증(조현병)이 등장하면서 치료에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정신분열증(조현병)보다 더 치료하기 어려운 장애가 등장하게 된다. 비엔나에서 태어난 유태인 레오 캐너(Leo Kanner)가 베를린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이민으로 아돌프 메이어 밑에서 수련을 끝내고 존 홉킨스 의과대학에서 소아정신과 교수로 어린이들을 치료를 하면서 1943년11명의 이상한 어린이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자폐증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11명의 어린이들의 어머니들의 공통점이 지적으로 뛰어난 엄마들이 감정이 없는 차가운 엄마로 그는 “냉장고 엄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사한 보고서가 1944년 비엔나의대 소아 정신과 교수인 한스 아스퍼그(Hans Asperger)에 의해서 아스퍼그 증후군으로 등장하게 된다. 아스퍼그는 어린이들의 증세를 사고에는 어려움이 없는데 애착이 되지 않는다 라고 기술을 하고 있다.

야스퍼그 증후군은 DSM-Ⅳ(1994)에 자폐증의 한 종류로 포함되었지만 DSM-Ⅴ(2013)는 삭제되었다. 아스퍼그 증후군은의 애착의 어려움은 이미 DSM-Ⅲ-R(1987)에서 등장한 반응행동성 애착장애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아스퍼그 증후군이 배제된 것이었다. 미국의 DSM-Ⅲ에서는 어린이들의 장애들과 어른들의 장애들을 구분해서(예: 어린이 불안장애)로 구분을 했지만 DSM-Ⅳ(1994)에서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구분장애는 사라지게 된다. 반응행동성 애착장애는 DSM-Ⅴ에서는 어린이 발달장애 분류에서 불안장애로 항목으로 이동하게 된다.

아스퍼그 증후군으로 어린시절에 아스퍼그로부터 치료를 받은 어린이로써 어른이 되어 200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프레드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가 있다. 그녀의 소설인 피아노 교사(Piano Teacher)는 우리나라 말로 피아노를 치는 여자로 번역되어 필자가 대학 학생들에게 그 책을 읽을 읽어보고 주인공의 심리분석으로 기말시험을 필기시험을 원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A4 용지 글자 크기 10으로 10페이 이상 15페이 이하로 연구물을 작성해서 제출한 적이 있다. 만약에 그 책이 2004년에 노벨문학상이 아니었다면 학생들에게 틀림없이 섹스 포르노 작품이라고 고발을 당했을 것이다.

이 책은 독일의 대학원에서 연구 교재로 사용한다는 번역자의 노트처럼 정신분석이 아니면 해석할 수가 없는 작품이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30대 후반의 피아노 교사는 나이가 10살이나 어린 공과 대학 4학년과 연인관계로 사귀면서 결국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그리고 정상적인 섹스를 나눌 수 없는 변태성욕자로 무려 4개의 변태성욕들의 행동들이 연인과 섹스에서 혹은 혼자서 섹스 욕구의 만족위해서 새디즘, 마소키즘, 관음증, 노출증, 페티시즘 등의 섹스 변태행동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연인한데서 버림받고 칼로써 자신의 어깨를 찌르고 울면서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오는 현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엘리네크는 노벨상 수상식에 나타날 수 없었다. 그녀는 심각한 광장공포증(넓은 공간에 나갈 수가 없다), 대인기피증(사람들과 만남을 피한다), 그리고 편집증으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여 대신에 영상으로 참가를 대신했다(2022, 4, 17: 위키 피아).

자폐증이 왜 1943년에 등장하게 되었는가? 이 장애의 등장은 2 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1939년 12월에 미국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제 2 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게 되면서 징집으로 남자들이 떠난 일자리를 여성들이 메우게 되면서 자녀들이 엄마의 품을 떠나서 영아원, 유아원으로 맡겨지게 되면서 그 때 출생한 어린이들이 3-4이 되는 시점에서 자폐아가 등장하게 된 것으로 추론되어진다.

자폐증은 정신과의사들이 치료할 수 없는 장애로 등장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엄마와 접촉을 싫어하게 된다. 유아가 제일 좋아하는 안아주기, 눈길주기, 신체접촉을 거부하고 안기거나 피부접촉을 싫어하고 하루 종일 혼자서 딱딱한 물건을 손에 쥐거나 혹은 안락의자에 흔들면서 딱딱한 한가지 물건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후에 학자들에 의해서 자폐증의 원인과 치료가 등장하게 된다. 세계적인 자폐증의 대가로 영국의 프란시스 투스틴(Frances Tustin, 1975: 주㈜: 참고)이 정신분석가로써 2권의 책을 저술을 했다. 1975년에 자폐증과 어린이 정신증 그리고 1986년에 신경증에서 자폐증적 장애물에서 자폐증 어린이들은 5감각의 분열로 마음이 없는 블랙홀로써 기술하고 있다.

자아가 없기 때문에 몸의 내용물이 밖으로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딱딱한 물건을 쥐고 자신의 보호하려고 한다. 그녀는 자폐아가 싫어하는 감각의 통합을 위해서 안아주기, 쓰다듬어 주기, 신체 접촉을 통해서 감각을 통합하는 치료를 통해서 70%의 자폐아들의 치료의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하버드 대학과 예일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후에 조지 워싱턴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가 된 스탠리 그린스펜(Stanley Greenspan, 1997: 주㈜: 참고)이 투스틴과 같은 방법으로 어린이들의 신체접촉으로 5감각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70%의 치료의 성공을 보고하고 있다(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83세으할아버지를 포함해서 모든 정신장애를 심리치료를 한 경험이 있지만 자폐아는 연구는 했지만 치료는 제외).

투스틴과 그린스펜의 저서를 읽고 연구를 하면서 치료자(필자)가 어린시절에 읽었던 헬렌 켈러(Helen Keller)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장님, 귀머거리를 교육한 앤 셀리번(Anne Sullivan) 선생님이 생각이 나서 위키피아에 찾아보았다.

켈러는 1.5세 때 열병으로 눈과 귀와 말을 잃어버렸다. 부모는 켈러가 7살 때 인근에 맹아 학교를 찾아가서 켈러의 가정교사를 요청했다 그 때 맹아 고교를 졸업한 20세의 셀리번이 가정교사로 들어와서 켈러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셀리번은 한쪽 눈을 실명한 소녀로 맹아 고교를 졸업하고 이후에 양쪽 눈을 상실한 장님이 된다. 켈러는 셀리번 선생님을 만났을 때 마음의 빛을 느꼈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셀리번과 켈리는 평생의 동반자로 친구로 보호자로 평생을 함께 했다.

셀리번의 가르침은 5감각의 통한 교육이었다. 그녀는 켈러의 손에 물건을 쥐여주고 직접 감각으로 느끼게 하면서 모든 사물들을 직접 접촉하고 만지고 느끼고 표현하게 하는 방법자폐증 치료와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이후에 켈러는 1888년에 맹아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맹아학교를 졸업하고 1900년에 하버드 자매학교인 래드클리프(Radcliffe) 대학을 졸업한 첫번째 장님이 되었다. 그녀는 학사 학위 후에1903년에 나의 삶의 이야기라는 자서전을 썼다

그녀의 자서전은 이후에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녀는 1904년부터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통해서 맹아학교의 설립에 평생을 바쳤다. 셀리번 선생님이 사망했을 때 켈러가 임종을 했다. 켈러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녀는 89세로 사망했을 때 화장으로 셀리번 선생님 옆에 영원이 묻히게 된다.

치료자는 켈러가 자폐아가 아닌가? 하고 궁금했지만 그녀는 자폐아는 아니었다. 장애인과 자폐아는 다른 점이 있다. 장애인들은 애착이 있기 때문에 안기고 매달리고 신체접촉은 정상적인 어린이와 똑 같다. 신체적으로 장애 혹은 지능의 저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폐아는 신체적인 발달은 정상적으로 외모는 핸섬하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음이 없다, 애착이 없고 인간적인 신체접촉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그대로 방치하면 벙어리가 될 수 있다.

1세-4세의 발달 기간에 방치되면 언어기능, 운동기능 감각기능 등의 기능의 문이 닫히게 된다는 점이다. 자폐아를 치료하고 교육하기가 장애인 보다 어렵다는 말이다(아크돌레와 굳윈(Acredolee & Goodwyn, 2000). 유아의 마음을 보라).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전문가가 아닌 부모님이 자폐아를 치료한 사례들이 언론과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셀리번 선생님이 한 것처럼 5감각을 통해서 만지고 접촉하고 느끼게 하고 자아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한 자폐아는 아버지가 또 다른 자폐아는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두고 셀리번처럼 자폐가 자녀에게 매달려서 성공적인 치료로 대학에 입학을 했다는 신문의 보고가 몇 개의 사레가 보고되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욱더 치료하기 어려운 정신장애가 등장한다는 것은 여기에서 정리를 하기로 한다.

치료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신경증 이론으로 되돌아가 보자.

1980년에 미국의 정신장애의 연구들이 통합되어지면서 정신장애의 분류들이 정리가 완료된다. DSM-Ⅲ(1980)에서 분류가 된 것은 그 이후에 2013년에 DSM-Ⅴ까지 신경증의 분류 항목에는 큰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울증가벼운 우울증, 심각한 우울증(멜랑꼴리아), 조증이 핵심이다. 이 분류에 순환 우울증, 계절성 우울증 양극성 우울증(조울증)이 있지만 가벼운 우울증, 심각한 우울증, 조증이 중심이 된다. 조울증우울증과 조증혼합이다.

성격장애에서는 10가지가 있지만 역동적 정신의학에서 그리고 정신분석에서 주요 사용하는 성격장애는 보드라인 성격장애, 나르시즘 성격장애 그리고 자아분열 성격장애가 중심이 되고 있다.

정신증에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이다. 정신분열증이 편집증 정신분열증, 긴장성(균열성) 정신분열증, 사춘기형 정신분열증으로 나눠지지만 DSM-Ⅴ(2013)에서는 정신분열증 한가지로 통일이 되었다. 조현병의 약물을 도파민 감소시키는 약 23종의 약물들이 전부이기 때문에 4가지로 조현병을 분류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불안장애(불안증)에서는 거대한 장애들이 7로 가장 많다. 공포증에는 일반 공포증(뱀공포증 등)과 특수공포증(고공 공포증, 폐쇄 공포증 등), 광장 공포증(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넓은 공간에 나갈 수가 없다), 대인공포증(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피한다, 혼자 있으려고 한다), 공황장애(혼자 되지 않는다, 기절, 졸도를 막기 위해서 옆에 다른 사람과 함께), 강박사고, 강압행동장애(두개는 서로 다른 별도의 장애이지만 같은 분류로 모았다. 강박사고를 생각의 반추로 되풀이, 강박행동은 행동의 반복을 되풀이),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성폭행, 재난과 자연재해로 심리적 상처). 고로 불안장애는 거대한 항목의 7가지가 소속 되어있다.

2013년 DSM-Ⅴ에서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너무 많은 환자들의 등장으로 범위가 넓어져서 각각 불안장애에서 독립된 분류로써 분리되었다.

프로이트경증(불안증과 우울증)의 치료에 평생을 물두해서 이론과 치료기법을 연구하고 개발한 이유가 이해가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로이는 공포증 치료에서 시작을 했다 그가 불안공격이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장본인으로 불안증신조어로 만든 장본인이다(Barlow, 2001, 불안과 불안장애를 보라).

 

불안의 그 차체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원시시대 유인원들은 사자 호랑이 등의 맹수들의 위험을 피해서 동굴 속에서 살았다 이후에 불과 무기의 개발을 하면서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불안과 두려움을 다르다. 두려움은 대상이 있다 그 대상만 피하면 된다(예: 뱀 공포증). 그런데 불안은 대상이 없다. 환자는 왜 자신이 불안한가? 모른다.

프로이트는 불안의 종류를 언급을 했다. 분리불안(최고의 불안으로 엄마의 얼굴을 인식해서 엄마와 다른 사람의 얼굴을 구분), 예견 불안(ego가 외부 자극에 압도되어 놀래서 컨트롤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것에 지각이 상처로 남아서 언제 등장할지 모른다), 신호불안(과거의 상처에 놀란 ego가 유사한 자극을 두려워해서 피하게 되는 불안), 기대불안(부모님의 기대와 미래의 희망과 이상에 대한 불안), 수행불안(다른 사람 앞에서 공연을 두려워하는 것) 등으로 다양한 불안들이 있다.

불안과 우울증의 차이점은 우울증은 에너지 고갈이다, 잠만 잔다, 숙면의 어려움 때문에 잠을 잔다고 해도 피로가 회복되지 않는다. 그 원인을 찾아내서 제거를 해서 회복시킨다 그런데 불안증은 긴장의 방출이 되지 않고 과도한 긴장속에 살게 된다. 프로이트의 유명한 명언으로 신비가 해결되고 주술이 풀이지 않으면 그 개인은 휴식을 가질 수 없다. 다시 원문(치료자의 불안장애 홈 페이지에서 인용한다) “이해되어 지지 못한 것들은 개인에게 불가피하게 반복해서 유령처럼 다시 등장한다 신비가 해결이 되고 주술이 풀릴 때가지 개인을 휴식을 가질 수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신장애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어진다. 신경증과 정신증이다. 역동학적인 정신의학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경증과 정신증의 차이를 구분하는데 두 그룹의 학자들로 나눠진다. 첫 번째 그룹신경증과 정신증은 질적으로 다르다. 즉 아무리 신경증이 만성이고 심각하다고 해도 정신증의 핵심이 되는 조현병이 되지는 않는다 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 그룹신경증과 정신증은 양적인 차이일 뿐이다. 신경증이 장기적으로 그리고 여러 개의 상처 이벤트들이 겹치게 되면 조현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라고 주장을 한다. 치료자(필자)는 40년간의 경험으로 후자의 의견에 동의를 한다.

신경증의 핵심이 되는 긴장과 불안의 누적이 장기화되면서 초반기에 시작된 불안과 긴장의 누적이 여러 불행한 사건으로 이어지면 이후에 가장 심각한 조현병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치료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서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불안과 긴장이 장기화되면 조현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응하는 ego의 기능이 어느 정도 발달된 사람의 경우에는 조현병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ego의 기능에 심각한 결함의 경우에는 여러 개의 불행들이 겹치게 되면 조현병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한 한 개의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가 바로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미술가에드와르 몽크이다(Edvard Munch)이다. 그의 삶을 분석하면서 그의 내면의 세계를 파헤친 뉴욕 코넬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제임즈 마스턴(James Masterson, 1989: 주㈜: 참고)의 저서 참자아를 찾아서(1989)에서 인용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최근에 그의 대표작인 비명, 절규(Scream)에 대한 뉴스를 소개한다(Scream의 사진)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작가 에드바르 몽크(1863-1944)의 대표작 파트텔화 작품이 201252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1992250말로(1355억원)에 낙찰되었다. 예상 낙찰 가력의 8000만 달러를 크게 뛰어넘은 것이다. 이날 경매에 나온 몽크의 절규라는 이름으로 그림 회화 4 점 가운데 1895년의 작품이다. 파스텔로 그린 이 작품은 페테로 올센이 소장해 왔다. 올센은 몽크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토마스 올센의 아들이다. 이 작품은 이날 경매에서 시작해서 낙찰자 7명의 경쟁 속에서 12분 만에 낙찰이 되었다. 몽크의 절규, 비명은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묘사한 작품으로 1892년에 경험한 공황 발작을 토대로 그림 작품이다(2012, 6, 10. 한국경제).

에드바르 몽크(Edvard Munck)(1863-1944): 공황, 공포증, 우울증의 화가.

에드바르 몽크(Edvard Munch)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 5명의 자녀들 중에 둘 째였다. 그의 누나는 1살 위였다. 군의관인 그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보나 나이가 두배가 많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에드바르(Edvard)를 낳았을 때 이미 폐결핵으로 병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몽크(Munch)가 5살 때 죽었다.

그 어머니의 여동생 이모가 그 어린이들을 돌보아주고 가사를 돌보기 위해서 그의 집에 왔다. 에드바르(Edvard)는 종종 병약한 어린이였다. 그는 그의 누나와 대단히 가까웠다. 그러나 그의 누나는 에드바르(Edvard)15살 때 폐결핵으로 죽었다.

이러한 그의 어린시절은 그의 성격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여성들에 대한 느낌들과 그의 지각들 그리고 그의 예술을 통해서 그의 참자아를 창조하려는 그의 욕구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참 자아는 그가 어렸을 때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의 분리 불안과 버림받음의 우울증은 그의 그림을 통한 초상화 들로부터 그리고 그가 그의 삶에서 그가 개인적인 관계에서 가졌던 어려움 들로부터 원인이 된 것이었다.

그는 한 사람의 보드라인 성격장애자”였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의 엄마와 누나의 죽음을 애도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미친 한 개의 이미 보드라인 성격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때문이었다.”

81살의 긴 생애 속에서 몽크(Munch)50, 000장의 그림과 스케치들을 생산을 했다. 참 자아를 탐색을 위한 천재적인 시각적인 노력이었다. 몽크(Munch)는 완전히 그림 속에서 묻혀서 방황하는 방랑자 생활을 했다. 우울증, 외로움,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건강 휴양지로 빈번하게 여행을 했다.

그러나 그의 문제점들을 치유를 하지 못했다. 그의 삶을 통해서 그는 한 여성과 장기적인 관계를 그 스스로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의 대부분은 툴라 라르센(Tulla Larsen)과의 2년 동안의 생활을 제외하면 빈약하고 단발적이고 에피소드적이었다. 그러나 툴라(Tulla)가 결혼을 제의를 했을 때 몽크(Munch)는 글자 그래도 탈주해서 도망을 가 버렸다.

그는 여성들이 그의 진실한 예술적인 자아-표현의 잠재력을 실행을 하는데 방해물이 된다고 합리화를 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여성들이 참자아의 발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참자아를 위한 그의 예술적인 요구는 너무나 연약했다 그는 그것을 그것에 노출을 하지 못하고 관계의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의 그림들은 분리, 공황, 버림받음의 우울증, 죽음 그리고 애통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표현을 가장 잘 한 시각 예술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유명한 그림인 비명, 절규(The Scream)무기력함과 분리의 공황의 한 개의 드라마틱한 유발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반복해서 상실의 느낌들을 그리고 죽음의 버림받음을 두고두고 반복해서 그렸다.

그 자신의 고통에 찌들린 그의 어린시절의 기억들과 어린시절에 엄마와 누나의 죽음이 그러란 그림들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죽음의 침대 옆에서(1893), 병실에서 죽음(1893-1894), 병든 어린이(1885-1886), 멜랑꼴리(1891), 헬렘(배의 조타실)에서 죽음(1893), 죽은 엄마(1895) 그리고 죽은 엄마와 어린이(1897-1895)등이 그들이다.

여성들을 지각하고 이해를 하는데 몽크(Munch)위 어려움들은 다음과 같은 그의 그림 안에서 묘사되어져 있다. 마돈나(1895), 흡혈기(1893-1894), 그 여성(스핑크스)(1893-1894), 질투심(1898), 그리고 그의 작품의 제목인 분리(1894-1896)는 그 버림받음의 우울증의 한 개의 핵심 테마를 메아리 친다.

그는 말을 하기를 나는 결코 사람들을 사랑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산에 올라갈 수 있는 그 열정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열정을 경험을 했습니다 - 그 열정은 심장을 찢어 놓고 그리고 사람의 피를 마십니다 – 그러나 거기에는 내가 다음과 같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여성들이여! 내가 사랑을 한 사람은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모든 것의 전부입니다(Woman! It is you I love – You are my all).

45세의 나이에 그의 알코올 중독은 악화되었다 그는 박해망상들 그리고 환각들을 개발을 했다. 그는 8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다. “내 조건은 미침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그는 단언을 했다.

그는 한 개의 보드라인(경계선 장애) 조건 안에서 한 개의 분리 정신증을 경험을 하고 있었다. 혹은 그의 조건은 한 개의 정신증 악화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생산적인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회복을 했다.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방출을 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그리고 그의 예술을 통해서 그의 참자아를 활동시키기 위한 그의 능력은 그로 하여금 더 좋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성격 구조는 변화되지 않았다(Masterson, 1989 참자아를 찾아서를 보라).

몽크의 사례 분석처럼 몽크는 자신의 느낌들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출구가 있었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입원으로 평생을 보내지 않았다어려운 환경에 적응을 해 나갈 수 있는 ego의 기능의 정도가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우울증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사람들이 정신건강 의학과(약물치료) 그리고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사를 찾는 것이 일상화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치료자가 40년 동안 연구와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비록 우울증은 정신의학의 감기라고 부르지만, 모든 문제들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우울하게 된다. 그 심각성의 정도는 그 문제의 양과 질에 달려 있다 라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하는 대상들(사람들, 동물들 그리고 애착 물건들)의 상실로 경험하는 애도는 2년 동안에는 정상적인 것으로 본다. 2년이 경과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울증은 긴장방출의 차단과 욕구 불만족의 누적으로 인한 결과물로 본다는 점이다.

고로 우울증보다 심각한 것은 프로이트가 평생을 연구한 신경증의 핵심인 불안증이다. 불안증은 긴장이 방출되어 지지 않아서 휴식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장기간 휴식을 가질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되면 그 개인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자살을 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진단은 종종 삶에 의욕을 상실한 우울증으로 결론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고로 정신의학에서 자살 비율이 높은 장애가 우울증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의 심각함이 어느 정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는 시점에서 자살할 수 있는 에너지가 회복되면서 자살을 감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는 불안으로 인한 과도한 긴장이 방출이 되지 않고 누적되어지면서 몸이 휴식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치료자가 2년 전에 우울증으로 약 6년 동안 한의사의 약물 치료 그리고 3년 전에 정신건강 의학과의 의사의 치료와 진단으로 1개월동안 종합병원에서 입원으로 공황장애 약물의 복용으로 실패한 48세의 한 독신 여성 M씨의 경우이다.

그녀는 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로부터 치료에 실패하면서 그녀가 약 10년 동안 운영하고 있던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하고 지금 4개월 때 집에 누워서 하루 종일 쉬면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호소를 했다. 이러한 절망적인 시점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친구에게 딸이 정신병으로 집에서 외출을 하지 못하고 정신의학과 한의학의 치료에 실패하고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고민을 듣게 된 그녀의 엄마의 친구가 그녀의 오빠의 친구가 미국에서 심리치료학을 공부하고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는 말에 소개를 받아서 치료자와 통화를 하게 되면서 M양이 치료를 받게 된 것이었다.

M양의 분석 과정에서 그녀는 여고시절의 수학 여행에서 춤과 노래로 동료들의 인기를 얻게 되면서 그녀가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그녀가 대학에 입학 후에 그녀의 인기는 절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한 여자 선배와 몇몇 동료들(이후에 그녀가 그들이 계획적으로 접근할 것을 인지하게 되었음)에게 소개를 받고 xxx 종교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 지역의 대표자로 그 종교의 교주와 접촉하게 되면서 그 교주의 눈에 들어서 황은(신의 은총의 의미)을 입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황은이 무엇인가? 라는 말에 섹스를 의미한다고 실토를 했다.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가면 리무진으로 마중을 받고 4년 동안 그 종교에 심취했다가 M양은 그와 유사한 신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몸부림 끝에 4년만에 빠져나오게 된 것이었다(그 교주는 다른 신도들에 의해서 고발되어 10년간 감옥살이 후에 최근에 석방).

그 후에 2년 만에 한 남자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와 2년 동안 스토커로 그에게 끌려디니면서 폭력과 학대를 당한 것이었다. 그를 처음 만남 때 서울의 이름있는 체육대학에 다닌다는 것이 사귀면서 모두가 거짓말로 들통이 났다, 그의 아버지가 조폭의 우두머리로 그가 고교 중퇴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피해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결국은 2년 만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이후에 삶에서 어려움을 연속해서 당하게 되었다. 지금은 48세의 미혼으로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사무실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고 호소를 했다. 현재 그녀는 8년 전부터 시작된 소화성 문제와 대장염 문제로 6년 전부터 복용해 오던 한의약물이 효과가 없게 되면서 더 강한 약물을 요구해서 복용을 하고 있지만 초반기에 효과가 있었던 약물이 지금은 효과가 없어서 복용을 중단하고 있고 그리고 정신과의 공황장애 약물도 복용을 하다가 중지하고 얼마 전에는 1주일간 개인의료원에 입원해서 링거(수액주사)를 받고 퇴원을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먼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24시간 잠을 자기 위해서 누워있지만 머리 속에서 이명(귀에서 윙 하게 들리는 소리) 때문에 그리고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두 번째는 음식을 먹게 되면 토해재고 음식을 섭취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약 10시간 정도의 분석 과정에서 위와 같은 문제점들이 분석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M양은 교주의 성폭행과 남자친구로부터 2년동안 스토커와 폭력과 학대를 당하면서 끌려 다닌 상처들을 가족구성원들과 동료들이 이야기를 했는가? 를 물어보았을 때 종교 교주와 성폭행 관계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남자 친구와 2년 동안 소동들은 어머니는 약 10% 정도는 알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내면의 고민과 갈등과 분노와 미움들이 누적되어 신체적 긴장이 방출되어 지지 않고 휴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냈다.

이 시점에서 치료 회기 시간을 그녀의 동의를 얻어서 정규적인 2시간 치료 회기에서 3시간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4간으로 연장을 했다. 이야기를 통해서 내면의 긴장을 방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M양의 내면에 쌓인 긴장의 방출에 초점을 모았다. 물론 과거의 상처들이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표현되어지고 그녀의 어린시절의 양육과정에서 받은 부모님과 관계들이 연결되어지면서 그녀의 문제의 핵심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너무 과도하게 불안과 긴장으로 자율신경의 교감 신경조직이 과도하게 작동을 해서 소화기능이 약화되어(교감신경 조직은 위와 장에 에너지 공급이 감소시키고 뼈근육과 위기 상황의 대처를 위해서 몸의 에너지가 뼈와 근육으로 이동한다) 음식을 먹게 되면 토해낸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수면과 소화 기능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고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치료 시간에 내면의 상처들을 토해낸 후에 긴장이 풀이고 기분이 좋다는 것을 M양이 스스로 인식하도록 했다.

집에 가면 잠을 자려고 하지 말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M양이 성서의 구절들을 노트에 쓰도록 필사성경을 하도록 했다. 그 이유는 성경의 내용의 이해보다 성경의 구절들을 노트에 쓰면서 M양의 주의관심을 위와 장으로부터 외부로 돌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치료실에서 4시간씩 토해내고 그리고 집에 가서 필사성경에 몰두하게 되면서 20시간의 치료 회기에서 그녀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에너지가 회복되면서 잠을 자려고 잠과 싸우면 백전백패이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뇌를 쉬게 하도록 게임과 오락을 금지(그녀는 과거에 취미로 게임과 전자오락을 즐겼다) 잠자기 2시간 전에 재미있는 TV 프로그램 혹은 재미있는 책이나 영화들을 금지시켰다. 뇌의 활동을 줄이기 위해서 조용한 음악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도록 했다. 40시간의 치료 회기에서 그녀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그녀의 사무실에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치료자는 M양의 치료에서 긴장의 방출이 차단되면서 뇌가 휴식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 고갈로 그리고 공황 장애(과도한 긴장의 누적) 진단된 것을 재 확신할 수 있었다.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았지만 핵심은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과도한 긴장의 누적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를 하고자 한다.

이제 왜 이러한 문제들이 등장하는가? 하는 이유를 정신분석학에서 어린시절의 정신분석 발달이론으로 돌아가보자. 정신분석은 어린시절에 발달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어른의 정신과적인 문제에 치명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위와 같은 ego 결함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3가지로 구분되어 노트 되어진다.

첫 번째는 위에서 소개한 몽크처럼 어린시절에 엄마의 상실로 인한 박탈이다. 6세 이전에 엄마의 상실은 치명적으로 본다. 물론 엄마의 대리인으로 할머니 혹은 친척의 지극정성의 돌봄이 대신할 수 있다.

두 번째가 어머니의 과잉보호이다. 과잉보호는 어머니가 너무 과도하게 자녀를 위험에 노출을 두려워해서 애지중지 양육을 하는 것을 말한다. 어머니는 애지중지를 사랑으로 오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보호는 어린이를 스스로 주변의 환경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현실적 자아(ego)의 능력을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박탈로 이한 주변 환경의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이나 과잉보호로 인해서 주변 환경을 탐색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그 결과는 똑 같다. 자아 심리학의 대가인 코호트(Kohut, 1971: 주㈜: 참고)는 최고 적합한 좌절을 어린이가 경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너무 과도한 자극은 ego가 놀래서 피하게 된다 대신에 자극이 제공되지 않으면 ego는 마스터의 능력을 습득할 수 없다 고로 그 어린이에게 적당한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자극에 의해서 어린이는 ego의 마스터 능력을 습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어머니의 과도한 불안이 어린이에게 반사되어 어린이가 과도하게 불안해지게 되는 것이다. 출생 직후에 계속해서 보채는 약물치료에서 효과가 별로 없는 어린이, 특별히 신체적인 문제들 구토, 설사, 복통, 피부질환으로 계속해서 보채는 1-2세의 어린이들은 심리치료를 할 수가 없다.

뉴욕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메틸다 스펠링(Melitta Sperling, 1978: 주㈜: 참고)은 유아들 대신에 엄마를 엄마의 불안이 어린 유아에게 반사되어 흘러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엄마를 치료를 한 것이 심리신체 장애의 치료가 시작이 되었다(아래에서 심리신체 장애를 보라).

이제 과도한 불안으로 인한 긴장의 누적이 휴식의 부족으로 신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흔적들을 찾아보기로 하자. 프로이트불안 공격(1917년)으로 처음으로 학계에서 보고한 증세들이 불안증이라는 용어로 등장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불안장애의 핵심들은 공포증(일반 공포증(벰 공포증), 특수공포증(고공공포증, 폐쇄공포증), 광장공포증, 대인공포증, 공황장애, 강박사고, 강박행동장애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성폭행과 자연재해, 전쟁 신경증 등)의 공통된 특징들은 프로이트가 불안공격으로 발표한 것과 일치된다.

불안 공격은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는 느낌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어떤 연결되는 연상되는 아이디어가 없다. 해석을 동반하지 않는다. 삶의 소멸 혹은 한 개의 뇌졸증 혹은 미침의 위협에 가깝다. 불안의 느낌은 신체 기능의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혼란과 연결 되어있다. 예를 들어서 호흡 곤란, 심장 박동의 항진, 혈관 운동 신경 같은 혹은 내 분비 호르몬 활동 등 이런 혼합으로부터 그 환자는 지금 또 다른 요소를 끄집어 지적을 한다, 심장의 경련을 불평을 한다, 호흡하기가 어렵다, 땀이 난다, 그의 기술 안에서 불안의 느낌들은 종종 뒤 배경 안으로 들어가버린다"(Freud, 1898/1940: Barlow의 1988의 불안과 불안장애, 2001). 프로이트의 불안 공격은 공황장애와 유사하다.

2013, DSM-Ⅴ에서 공황장애의 리스트에서 노트 되어진14개의 항목을 소개한다.

 

1. 호흡이 짧다(호흡 곤란) 흑은 질식적인 감각들

2. 질식을 느낀다. 목에 걸린 것 같은 느낌

3. 심장의 박동이 뛴다. 혹은 심장 박동이 가속화된다(심장 항진증)

4. 가슴에 통증 혹은 불쾌감

5. 땀이 난다

6. 현기증

7. 어지러움, 머리가 가벼워진다

8. 구토 메스꺼움, 혹은 복부 불쾌감

9. 내가 아닌 것처럼 느끼는 것,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것

10. 무감각 혹은 감각의 마비, 따끔따끔 혹은 얼얼한 느낌

11. 얼굴이 붉어짐 혹은 오한이 난다

12. 부들부들 떨림, 흔들림

13. 돌 아이가 된다는 두려움, 혹은 컨트롤 상실에 대한 두려움

14. 죽어가는 두려움,

불안장애에서 7개의 항목들은 분리되어지는 항목들은 다르지만 신체적으로 경험되어지는 내면적인 심리적인 느낌은 위의 14개의 신호들과 유사하다.

 

위에서 언급되어 지지 않는 과도한 긴장의 신호들을 노트해보기로 한다.

 

 

1.어린이들이 유치원시절과 초등학교 시절에 병원에 자주 들락거리는 어린이들(위와 장의 문제, 아토피, 비염, 천식 등). 치료자에게 13년동안 치료를 받은 A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출석보다 결식이 많았다 그는 늘 약물을 달고 살았다.

2.변소에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들(전립선비대증은 제외). B군은 4년 동안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는 늘 소변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공부시간이 끝나면 10분 휴식 때 화장실에 가서 소년을 보는데 소변이 빨리 나오지 않아서 결국 소변을 보지 못하고 다시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왔다. 너무 과도하게 긴장해서 소변을 참고 견디어야 했기 때문에 방광이 빨리 풀리지 않게 된 것이다.

3.학습에 주의집중이 어려운 사람들. C군은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학습에 주의집중에 안된다. 고교 2학년 때 대입 준비를 하기 위해서 부모님에게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공부가 시작되면 잡념이 심하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4. 충동적인 사람들, 좌절에 참을 수 없는 사람들(주의력결핍 과대행동 장애인 ADHD를 포함). 조그만 이벤트에 발칵 화를 내거나 충동적인 사람들은 긴장이 높아서 참을 수 없기 때문에 과잉반응을 하는 것이다.

5. 대인관계를 싫어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 대인관계에 불편함 때문에 혼자 있게 되는 사람들은 혼자됨의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휴대폰과 전자오락을 좋아하게 된다. 전자오락은 게임을 할 때 뇌의 회전비율이 300배로 빨라진다 고로 혼자됨의 편안함이 거꾸로 뇌의 작동을 과속화 시켜서 휴식을 가질 수 없게 된다.

6. 과도하게 담배와 술을 마시는 사람들, D군은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하루에 담배를 2값씩 피운다. 그는 120분의 치료 회기 동안에 중간에 허락을 받아서 치료실 밖으로 나가서 5분 동안 담배를 피우게 요청해서 1년 동안 치료 회기 안에서 담배를 피워야 했다. E군은 과도한 음주로 이미 가족구성원들로부터 불평을 듣고 있었다. 그는 24세로 이미 음주 후에 몇 번이나 블랙 아웃을 경험하고 있다. 음주 후에 지갑과 소지품을 상실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7. 과도한 자위행위를 한다. F군은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자위행위 강박증을 호소를 했다 그는 자위행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분석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그의 자위행위는 초등학교 4학년의 시점에서 시작된 것으로 긴장의 방출을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8. 염려,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늘 걱정과 근심을 달고 살고 있기 때문에 생각의 연속이 뇌를 쉬지 못하게 활동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G양은 과도한 염려, 근심, 걱정으로 인해서(그녀 자신의 표면) 초, 중, 고교 2학년까지 반에서 1등, 2들을 했으나 고 3학년 때 주의집중에 실패해서 지방명문 대학의 원하는 사범대학 영문과가 아닌 일반대학 영문과에 진학했으나 동료들과 관계의 실패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8. 감기에 잘 걸리거나 코피가 자주 나거나 혹은 입술의 주변이 자주 가렵고 물집이 생긴다.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스트레스와 불안은 정의가 다르지만 생리적 반응을 똑 같다.

불안은 내면의 마음 속에서 갈등으로 생긴다. 스트레스의 외부 환경에서 그 개인에게 가해진 압력이다 그러나 생리적으로 느끼는 것은 똑 같다(위의 불안 공격(공황공격)을 보라). 50대의 H씨는 1년 동안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최근에 그의 회사가 대기업으로 흡수 통합되어지면서 새로운 환경의 적응에서 오는 불안과 긴장으로 코피가 잦아지고 입술이 물집이 생기고 가렵다고 호소를 하고 있다.

9. 마약중독, 섹스 중독, 도박 중독들이다. 중독 증세들은 과도하게 집착해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마약, 도박 중독자, 섹스 중독자들은 중독 행동에 집착해서 신체적인 긴장을 그것을 통해서 방출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본인들은 모른다.

그들이 도박을 할 때 일말의 위기와 성취의 순간에 함성을 지르면서 쾌감과 극적인 긴장의 방출을 느끼는 것이다 섹스 중독자들이 바로 변태성욕자들이다. 변태성욕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UCLA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로버트 스톨러(Robert Stoller, 1979: 주㈜: 참고)와 존 홉킨스 외과대학 정신과 교수인 존 만이(John Money, 1983: 주㈜: 참고)는 변태성욕자들이 어린시절에 섹스상처를 섹스놀이로써 바꿈으로써 과거의 고통을 승리로 바꾼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다.

10. 시끄러운 소리 등의 주변의 상황에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들 지나치게 청결,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늘 예민해서 조그만 소리에 예민하다(층간 소음)는 것은 늘 긴장하고 긴장이 누적된 사람들이다 본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11. 어떤 일에 집착해서 너무 과도하게 성취 지향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도하게 자아에 짐을 지워서 자아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문에 보도된 한 1타 강사가 과도한 성취에 집착해서 성공제일주의로 달리다가 붕괴되어 자아를 찾는 사람을 소개한다.

깎는 노력은 반드시 실패 대치동 1타강사의 고백,

(이지영 강사. /유튜브 '세바시 강연' 영상)

(문지연 기자, 입력 2022.04.06 01:18)

뼈를 깎는 노력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스스로를 아껴주세요.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사회탐구 영역 ‘일타 강사’ 이지영(39)씨는 죽음의 고비를 맞았던 2018 봄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생 치열하고 독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이를 증명하듯 대치동에서 가장 유명한 강사가 됐고 수백 억대 연봉을 자랑할 있게 됐다. 하지만 이씨는 어째서인지 그렇게 지나온 시간을 가장 어리석었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이씨는 5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을 통해 이유를 밝혔다. 이야기의 시작은 2017 7. 당시 그는 급성 충수염으로 맹장이 터져 병원에 실려 갔다. 배가 아팠지만 바쁜 일이 많았고 통증을 3 넘게 방치했다.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도착한 이씨에게 의사는 “살다 살다 이런 환자는 처음 봤다”고 핀잔을 줬다. 그리고는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길래 몸을 이렇게 가혹하게 다루냐”고 물었다.

다들 성공을 위해서라면 정도의 위험 신호쯤이야 무시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이씨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이씨 머릿속엔 마감을 앞둔 강의 교재 원고가 아른댔고 기한 끝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이씨는 일주일을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 말을 흘린 조기 퇴원을 감행했다.

그해 일정은 빠듯했다. 강의도 그렇듯 인기 만점이었다. 매일 24시간이 모자란 하루를 보냈고 업계에서도 훌륭한 평가 받았다. 쉬는 시간은 없었다. 당시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된 탓에 유일한 연말 휴가조차 누리지 못했다. 건강은 점점 나빠졌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이씨는 강연 화면에 59억원 219억원 39억원’이라는 숫자를 나란히 띄웠다. 2017 기록한 매출이다. 그는 “여러분은 돈이라면 몸을 갈아서라도 일할 있겠다는 생각이 드나. 지금의 저라면 억만금을 준다 해도 절대로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때까지 만해도 저의 독함이 모두의 표본이 되고 성공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고 고백했다.

이씨는 이듬해인 2018 4 죽음의 문턱 앞에 섰다. 숟가락 하나 들기도 어려웠고 음식물을 씹을 힘조차 없었다. 그는 턱 끝까지 죽음의 공포가 올라왔고 모든 신체 수치는 죽음을 향하고 있었다. 복귀는 불투명했고 강의 중단으로 인해 배상해야 금액은 매우 컸다? 라면서 “무슨 죄를 지은 걸까 싶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열심히 하고, 분야에서 성공하라고 성공을 위해 깎는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더라”고 회상했다.

그때의 좌절을 통해 이씨는 깨달았다고 한다. 전까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자신이 어떤 실수 했는지. 그는 “피곤에 지친 수험생에게 하루에 3시간 자도 죽지 않는다 죽을 각오로 공부하라’고 다그쳤다”며 “쉬어가면서 공부하라고 ,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고 . 너무 늦어버린 그제서야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 두달 휴식과 깊은 잠은 기적적인 회복을 가져다 줬다. 지난 삶에서 스스로에게 잠깐의 휴식을 줬다면 이런 고비는 없었을 거다. 생각을 하니 제가 어리석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세상에는 아직도 독함을 강요하고 성공의 중요한 키워드를 ‘부단한 노력’이라고 주장하는 동기부여식 강의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책한다”며 “하지만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선물이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성취도 자기 혹사를 위한 변명이 뿐”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채찍질하는 동안 저는 진짜 중요한 잊었더라. 가장 중요한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며 “자신을 아껴 달라. 자신에게 좋은 것을 베풀어 달라.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진짜 귀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위의 1타 강사는 과도한 긴장으로 휴식을 가지지 못한 자아가 궁지에 내몰린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취동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불행속에서 휴식에 실패한 경우들을 자주 보게 된다. 몇일 전에 TV와 언론에 보도된 취임 2년의 새내기 검사의 자살 사건이 생각이 난다.

12. 새벽 4시까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새벽 4시가 되면 잠들게 된다. G군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새벽 4시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새벽 4시 혹은 5시가 되면 잠이 들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그것이 불면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잠자기 위해서 잠과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잠과 씨름을 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뇌를 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뇌가 오히려 긴장하기 때문이다,

13. 숙면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10시간을 잠을 자는데도 피곤하고 깨운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수면을 취할 때 긴장이 풀리고 뇌가 휴식을 해서 에너지가 충전되어지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잠을 잘 때에도 의식적으로 우리는 잠을 자고 있지만 무의식은 잠을 자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적 자아인 ego는 잠을 자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꿈들이다. 프로이트는 꿈은 잠을 보호한다고 했다. 꿈을 꿀 때 ego가 활동하는 것을 우리는 활동사진처럼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잠을 깨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악몽, 가위눌린 꿈을 자주 꾼다. Ego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악몽을 꾸는 것이다 라고 프로이트가 노트를 했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수면의 문제로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가? 한 영국인 기자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불면증 문제를 다룬 신문기자를 소개한다(세계일보 2022, 4, 7일).

수면제 중독 10만명. 수면산업 규모 3조원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 사회변화 필요"(한국인의 수면장애를 집중 조명한 영국 BBC 방송 뉴스. 트위터 캡처)

한국은 그렇게 자는 사람이 많을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이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영국 BBC 방송이 이런 제목의 기사에서 ‘잠 드는 한국 사회 집중 조명해 눈길을 끈다. BBC 한국이 경험한 고도의 압축적 경제성장을 근본 원인으로 제시하며 “그 결과 한국인들은 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잠이 부족해졌다”고 진단한다.

BBC 먼저 서울 강남의 수면 클릭닉에서 일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A씨와 인터뷰했다. 그는 BBC 하룻밤에 수면제를 20알까지 복용하는 고객도 종종 본다”며 “보통 잠이 드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국인들은 정말 빨리 자고 싶어하기 때문에 약을 먹는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이가 잠결에 걷는다”며 “서울 도심에서 몽유병 환자가 일으킨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일반인 가운데 BBC 만난 29 여성 B씨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홍보 업무 담당자인 그는 “평균적으로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어떤 날은 새벽 3시까지 퇴근하지 못한 적도 있다”며 “직장 상사가 가끔 한밤중에도 전화를 걸어 ‘즉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는 통에 편하게 잠을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B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요즘은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한다고 한다.

다른 여성 C 역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장애를 앓게 경우다. 마음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는 고민 끝에 서울 근교의 불교 사찰을 찾아갔다. 이곳은 템플스테이 수련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명상을 하면 잠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몰려든 직장인들로 붐빈다. C씨는 “명상을 통해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점을 배웠다”며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감당할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영국 BBC 방송은 ‘한국인이 직장에서 받는 과도한 스트레스 탓에 수면장애를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BBC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10만명의 한국인이 수면제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침대 시트, 베개, 한방 보약 이른바 ‘수면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2019 기준으로 시장 규모가 무려 25억달러( 3400억원) 이른다”고 소개했다.

도대체 한국인은 그토록 잠을 이루는 걸까. BBC 한국의 역사에서 답을 찾았다. 보도는 “불과 몇십 만에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들 하나로 성장했다”며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에 한국인은 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잠이 부족해졌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수면장애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의 구조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인 만큼 사회와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특히 비판적인 평론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과다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수면 부족의 해결책을 개인더러 찾으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명상이나 짧은 휴식 같은 것은 근본적 해법이 없고,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위의 수면부족과 충분한 수면에서도 숙면(피로가 회복되지 않는)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과도한 긴장으로 인한 신체적 긴장방출의 부족으로 긴장이 누적되어져서 충분한 휴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14. 일을 할 때 실수가 잦고 금방 배운 것을 잊어버리고 까먹거나 쉬운 일을 잘 배우지 못한다고 비난을 받는 사람이다. I 군은 군에 입대해서 고참들로부터 쉬운 일들을 잘 배우지 못한다고 고문관(어리버리한 군인들의 속어)으로 취급 받아서 기압을 받거나 처벌로 시달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경고와 주의에 지적을 받으면 받을수록 실수가 잦아지고 비난을 더 받게 되는 악순환을 당했다. 전역 이후에 치료사에게 1년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 불안으로 과도하게 긴장하면 뇌의 기능이 떨어지고 실수를 하게 된다. 불안이 심하게 되면 뇌의 회전 능력이 감소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14. 고질병(치료되지 않는 질병들)으로 피부과, 내과, 이비인후과 그리고 신경외과 등의 진단으로 약물에 별로 효과가 없는 사람들이명(귀가 윙윙 울리는), 손 떨림, 수전증, 다한증(심하게 손에 땀이 난다), 난독증(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소장염과 대장염들(소화문제, 설사 문제와 변비 문제들), 피부 가려움증아토피 그리고 아토피와 사촌기간인 비염, 천식 등의 질병들(아토피와 비염과 천식은 관계가 깊어서 서로 교대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위의 고질병은 앞에서 여러 번 언급을 했지만 다시 정리를 해보자. 이들 고질병들은 DSM에 장애의 항목으로 분류되어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체적인 질병으로 분류되어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장애들을 가진 사람들은 심리치료사와 상담자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치료사들도 그들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오는 증세들은 우울증, 대인공포증, 공황장애 그리고 경계선 성격장애(신경증보다 심각하고 정신증은 아닌 경계선에 있는 장애로 보드라인이로 명명)등으로 그들의 장애를 제거를 요구한다. 그러나 고질병들은 일반 의사들내과의사들(소화성장애들), 피부과 의사들(다한증, 아토피(습진) 손 떨림, 수전증), 이비인후과(이명(귀가 앵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과 비염) 그리고 신경외과(과도한 지각이상으로 지진이 난 것처럼 땅과 건물이 흔들린다) 그리고 안과 의사(안경을 쓰지만 음식점에서 호출기가 올리고 화면에 큰 글자가 흔들리고 그리고 물체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위와 같은 장애들 때문에 일반 의사들을 찾는 환자들은 그들의 약물 처방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급한 경우에 병원을 찾지만 처방 약물을 복용하다가 그만 두거나 방치하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들이다. 정신과에서도 포함되어 지지 않고 일반의사들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고질병 환자들은 평생동안 회복을 포기하고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병으로 고통속에서 살게 된다.

위와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부르고졸리 5대 총장으로 20년 동안 대학정신병원을 세계에서 최초로 정신분열증(조현병)치료의 과학적인 연구와 치료를 시작해서 1911년에 젊은이의 뇌의 질병(조발성 치매)이 아니고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을 신조어를 만들어 발표한 유진 블루어(Eugen Bleuler),

프로이트의 삶과 전기를 쓴 영국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에네스트 존(Ernest Jones)

그리고 프랑스의 가르코트(Charcot)의 최면학교와 쌍벽으로 의과대학 내과교수로써 낸시라는 지역에 라보(Ambroise-Auquste Liebeault)라는 괴짜 의사가 일반 질병을 원하는 환자들은 치료 비용을 받고 치료를 해주고 이상한 치료(최면)를 하면 무료로 치료를 해 준다는 소문에 그 괴짜 의사를 방문하고 나서 최면에 매혹해서 최면학 교과서를 출판하고 라보와 함께 낸시 학교(Nancy School)를 공동으로 설립히포리테 베른헤임(Hippolyte Bernheim)이다.

베른헤임은 최면은 제시의 효과라는 것을 밝혀냈다. 프로이트가 1889년에 베른헤임을 방문하고 그가 최면을 걸어서 깨어난 환자에게 몇 가지 실마리를 제공했을 때 최면 상태를 기억회복을 하는 것을 보고 프로이트가 최면을 포기하고 자유연상을 고안해 냈다 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베른헤임은 최초의 심리치료사로써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다(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역사를 보라).

블루러, 존, 그리고 베른헤임이 함께 모여서 1910년 8월에 브랏셀에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제 메디컬 심리학회심리신체 학회(심인성질환 의학)를 조직하게 된다. 1913년에 쥬리히에서 국제 메디컬 심리학회인 심리신체 의학회의 총회가 개최되었다. 블루어가 회장으로 베른헤임이 부회장으로 그리고 존이 총무를 맡게 된다(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을 보라).

이후에 심리신체의학인 메디컬 심리학은 헝가리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베를린 의과대학 그리고 영국의 캠브리지 의과대학에서 훈련을 받고 그리고 정신분석가가 된 프란츠 알렉산더(Franz Alexander)가 미국에 이민을 와서 1930년에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그리고 1931년에 보스턴 정신분석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1950년에 L.A. 정신분석학교를 설립하고 남가주 의과대학(USC) 정신과 교수로써 정신분석학을 미국 전역에 확대시킨 장본인이다

그가 일리노이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카고 7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즉 고질병인 신체적 질병들 중에서 약물로 치료 되어 지지 않는 7개의 질병들은 정신분석으로 치료 되어진다는 사례들을 발표를 했다.

루마치스 관절염(뼈들이 녹아내리는 질병), 본태성 고혈압, 편두통(관자놀이에서 시작되는 심각한 두통), 기관지 천식(호흡 곤란), 신경증 피부염(아토피(습진)), 소화성 궤양들 십이지 궤양, 국소성 소장염(천공으로 위에 구멍이 뚫림), 대장염들(과민성 대장염, 궤양성대장염)이다(Alexander, 1949: 주㈜: 참고).

그를 중심으로 한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의 학파들이 조직한 심인성 질환(psychosomatics) 의학회이다.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토마스 프렌치(Thomas French), 시카고 의과대학 정신과 학과장 그리고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로이 크린커(Roy Grinker), 필라델피아 템플 의과대학 교수인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레온 사울(Leon Saul). 캔사스 토페카 매닝거 정신의학 학교의 재단 사무총장이자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가인 월리암 메닝거(William Menninger)과 그의 형님인 칼 메닝거(Karl Menninger) 등이다.

이들은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학파들로 체계적으로 심인성 질환 의학을 분류별로 정리를 해서 구분을 지었다. 이들이 체계적으로 정리한 심인성 질환 의학시카고 세븐(Chicago Seven)이라고 부른다. 즉 위와 장의 질환의 유형, 심장과 혈관의 질병의 유형, 호흡기 질환 유형, 피부과 질환 유형, 뼈와 관절의 질병 유형, 내분비와 신진대사의 질환의 유형 그리고 기타(신경증 두통, 편두통 요통 등)의 유형으로 7가지로 분리를 했다(스탠포드 의과대학 교수인 웨이너(Weiner, 1977심리생리학과 인간의 질병을 보라: 주㈜: 참고).

또 한 사람이 뉴욕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메틸다 스펠링(Melitta Sperling)이다. 그녀는 1950년대에 1세-2세의 유아들의 보챔과 울음의 치료를 그 유아의 엄마를 치료함으로써 엄마의 과도한 불안을 감소시켜 유아의 긴장방출을 유도한 장본인으로 뉴욕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제자들이 모여서 1960년대부터 그들의 연구논문이 출판되어 지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필립 월슨(Philip Wilson), 뉴저지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일라 민츠(Ira Mintz), 뉴욕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인 찰스 호간(Charles Hogan) 그들이 공동으로 편집한 심인성질환 증세들의 저서(Wilson, Mints & Hogan, 1989: 주㈜: 참고)가 있다.

그들을 중심으로 한 뉴욕 의과대학원의 정신분석학교컬럼비아 의대대학원의 정신분석학교의 교수들이 바로 뉴욕학파들이다. 뉴욕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뉴저지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세실리아 케롤(Cecilia Karol),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은퇴 후에 보스턴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있는 정신분석가인 세실 무샤트(Cecil Mushatt), 뉴욕 의과 대학원 부설 정신분석학과 교수인 마틴 실버멘(Martin Silverman), 뉴욕 의과 대학원 부설 정신분석학교 교수이자 뉴욕 정신분석 학회 전 회장이었던 로버트 샤비트(Robert Savitt), 콜롬비아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콜롬비아 대학교 부설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찰스 사로노트(Charles Sarnoff), 콜롬비아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뉴욕 의과 대학 메디컬 센트 정신분석학 교수인 하워드 웰시(Howard Welsh), 뉴욕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뉴욕 의과 대학원 부설 정신분석학 교수인 제달드 프리맨(Gerald Freiman) 등이 있다.

그들이 조직한 뉴욕 심리신체의학심인성질환 의학회는 이후에 미국정신의학 학회의 제 30회 분과심리신체 의학회로 등록을 하고 신체적인 질병에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으로 치료가 확대되어 지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40년 동안 심리치료를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위의 학자들의 저서들을 구입해서 고질병 환자들을 치료를 하면서 성공적으로 치료를 한 결과들을 노트하고자 한다.

먼저 정신적인 문제들을 가진 환자들을 분석하면서 그들의 신체적인 불평들을 이야기를 하라고 유도하면서 그들이 일반의사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가 없는 고질병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치료는 두가지 방법이 혼합으로 사용한다. 첫 번째와 매일 같이 1시간 이상을 운동을 반드시 하도록 권유한다. 운동에는 운동선수들이 주로 하는 근육강화 훈련과 그리고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긴장 이완 운동이 있다. 이들의 운동을 교대로 하도록 권유한다. 운동은 3개월 이상 매일 같이 1시간 이상을 하게 되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필자는 10년 동안 미국 유학 이후에 귀국해서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30년 이상 매일 같이 가벼운 조깅과 걷기 그리고 팔과 다리 목운동 그리고 허리 운동을 필수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음식에서 영양분과 야채 그리고 단백질의 잘 조화된 영약식단을 미국 유학 10년 동안 건강보존을 위해서 사용한 방법으로 한국에서 보다 오히려 신체적 건강이 좋아져서 기숙한 경험에 의한 것이다.

 

두 번째는 대화의 치료에서 대화로써 긴장을 풀어내는 것이다. 고로 치료자는 치료 회기를 보통 45분 혹은 50분의 치료 회기를 사용하지 않고 120을 치료 회기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최면학의 핵심이 대화로 긴장을 방출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치료사는 첫 치료 회기 시간에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이곳에서는 치료 회기 시간에 예의범절에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이곳에는 도덕적인 예의가 없습니다. 말을 하거나 느낌을 표현할 때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나오는 데로 표현하세요.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순서 없이 하세요,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하세요”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치료 회기의 자세들은 치료가 끝날 때가지 계속된다.

치료의 핵심은 긴장을 풀어내는 것이고 휴식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제 1 차적 목표이다. 더 붙여서 영국의 소아과 의사로써 유명한 정신분석가 3명(제임즈 스트라취, 조안 리비에, 멜라니 크레인)으로부터 15년간 분석 훈련을 받은 후에 세계적인 정신분석의 대가가 된 도널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t)의 치료 기법인 놀이 치료기법으로 환자와 치료사가 치료 회기 동안에 환자가 치료의 방향을 이끌어가게 한다,

어떤 이야기 든지간에 환자는 마음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한다, 순서가 없다, 귀신 이야기 든지 환각 이야기 든지간에 하고 싶은 대로 순서 없이 이야기는 흘러간다. 웃다가 울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고로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환자이고 환자가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단지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되 acting out(감정을 행동으로 표현)은 하지 않도록 한다. 즉 충동적으로 욕설 혹은 저주(언어 폭력)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거나, 뒤집어 엎어버리거나, 묵언을 하거나, 눈맞추기를 피하거나, 뛰쳐나가거나 등)은 하지 못하게 한다 그 이외의 어떤 것들 수용해준다. 고로 환자가 하는 이야기는 100% 수용을 한다 고로 그는 치료 회기의 120분은 자신의 세계가 된다.

0세-3세의 어린이와 엄마의 놀이의 경우를 가상해 보라, 어린이가 하는 이야기는 어떤 것이든지 간에 엄마가 수용해준다, 아기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아기 된다. 공주이야기, 귀신이야기, 선녀이야기, 악마이야기 등등 어떤 것이든지 금기는 없다, 더 붙여서 아기의 감정 표현을 자유롭다 화를 내거나 엄마를 비판하거나 엄마를 때리거나 엄마에게 어떠한 신체적인 표현도 O.K.이다 화가 나면 아빠를 미워한다. 아빠는 옆에 오면 안돼, 엄마는 나빠, 미워 등등 어린이의 감정 표현은 숨김이 없고 거침이 없고 어떤 것도 허용이 되는 기간이 0세 3세의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에 어린이와 부모가 하는 일종의 놀이에는 100% 허용이 된다. 이 시점에서 어린이는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문제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분리 불안은 제외). 3세-5세의 기간에 선과 악을 구분하면서 부모가 싫어하나 금기하는 것을 하나씩 인식하고 배우게 되면서 부모가 싫어하는 말들을 억압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않고 도덕과 규칙을 지치게 되면서 ego는 규제와 규칙과 제한속에서 점점 하지 말아야 하는 규제가 늘어가고 사회적 규칙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위니코트의 치료 기법은 0세-3세사이에 어린이와 부모 사이에 놀이를 환자와 분석가 사이에 재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핵심 포인트가 있다. 환자와 치료사 두 사람의 상호작용무의식적으로 서로서로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관계이다. 이것은 환자와 분석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 세상에는 없는 독특한 공간이다 이것을 3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그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이 세상에는 똑 같은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 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서로서로 물리고 물려져 있기 때문에 어는 누구도 그들과 똑 같은 공간을 동일하게 만들어낼 수가 없다. 환자가 치료사에게 영향을 미치고 치료사가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상호주관의 세계 혹은 3의 공간이라고 부른다(Ogden, 2005, 정신분석의 예술, Stolorow, 1995, 상호주관의 치료, Bollas, 1987, 대상의 그림자를 보라).

여기에서는 환자가 자유롭고, 편안하게, 자연스러움으로 관계를 하는 것을 스스로 배우게 된다 지금까지 환자는 부모와 갈등, 동료들과 갈등, 사회적인 갈등 때문에 자신의 주관적인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대상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온 자아를 여기에서 자신의 주관을 만들고 마음대로 표현하고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120분의 치료를 환자 자신의 자유로운, 자연스러운, 자발적인 시간이 되는 것이다.

단 여기에서 환자 혹은 치료사는 어느 한 사람에 100% 죄지우지하지 않는다. 상호적으로 마음이 연결되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해서 좌지우지되어 지지 않는다.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서 서로가 존경하고 인정하고 인정을 받고 있는 세계가 된다.

그 결과 환자의 자아 즉 이 세상의 주인은 바로 나이다. 나의 주체성이 싹이 트고 자라나게 된다 고로 정신분석 심리치료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신경증 환자들은 이러한 핵심의 원리를 알고 치료를 받기 때문에 1, 2, 3, 4, 5, 6년간 치료를 받았고 최고 13년의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이 모두가 신경증 환자였다. 그들은 정신증과 달리 가족생활, 직장 생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그들이 치료 비용을 스스로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13년간 치료를 받은 젊은이는 부모가 치료 비용을 지원해주었다.

또 한가지는 치료자는 위에서 언급한 심리신체 질환 메디컬 심리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때문에 196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면역기능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의 세계적인 면역학자페트선(Patterson: 2009: 주㈜: 참고)이 쓴 알레르기 질병의 제 7 차 계정판을 2014년에 아마존으로부터 구입해서 연구와 치료에 응용을 하고 있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페트슨 교수가 미국에서 면역학 연구의 주도적 인물이 되어 그의 면역학의 알레르기 질병의 학문과 치료를 통해서 배출된 그의 제자들이 미국의 저명한 대학에 교수로써 면역학 교수들이 되어 면역학을 전파시킨 장본인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긴장면역 기능은 정반대가 된다.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몸의 면역 기능이 저하되고 질병에 쉽게 걸리게 된다.

인체는 외부의 적대적인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입하면 기동타격대인 T세포들이 그 병원체를 파악하고 몸에 열을 냄으로써 그들의 포위한다 그리고 적을 물리치는 주력부대인 B세포들그들을 감싸고 외부로 펴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서 그들을 죽인다 그리고 식세포들그들을 잡아먹고 몸은 회복이 된다. 우리 몸에는 항상 자연살해 세포들이 있어서 온 몸을 돌아다니면서 정찰을 하고 적들을 죽이고 그리고 상처받은 세포들을 수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간 긴장들은 면역의 기능에 적대적임을 배우게 된 것이다.

또 한가지는 치료자는 아토피가 습진과 동의어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은 스탠포드 의과대학 교수인 웨이너(Weiner)의 생리심리학과 인간의 질병(Weiner, 1977: 주㈜: 참고)이라는 책에서 그가 유아 습진 = 아토피라는 구절에 눈에 번쩍 띄게 되었다.

다행히도 2014년에 영국의 노팅험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인 윌리엄(Williams, 2000: 주㈜: 참고)교수가 유럽의 저명한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들의 아토피 연구 논물을 26편을 모아서 편집한 아토피 피부염의 서적을 아마존에서 구입해서 읽고 연구를 하고 치료에 응용하게 된 것이다(아토피 심리치료 라는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이제 고질병의 치료 사례로 들어가 보자, 치료자에게 자아분열 성격장애 즉 걸어 다니는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50대의 기혼 남자 J씨의 분석의 과정에서 그가 이명(귀에서 앵 소리가 들린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명 이외에도 그는 오십견(50대 이후에 등장하는 질병으로 손을 위로 들어올리기 어렵다), 지각 과민증(치료실이 있는 20층 건물의 출입구의 타일 바닥이 공간이 생긴 것에 발의 감각의 예민함이 지진으로 건물 전체가 지진으로 흔들리는 느낌 때문에 건물의 도어문을 박차고 나가서 20분 동안 놀람), 안경을 쓰지만 물체가 이상하게 보인다, 시각에 이상이 있다고 느낀다 즉 음식점에서 호출부자가 울리는데 전광판에 클 번호표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성욕이 저하되어 발기가 어렵다 등의 6개의 증세들이 있다고 호소를 했다. 분석의 과정에서 그는 가장 큰 문제가 이명이라고 호소를 했다

그가 공군 훈련소에서 사격훈련을 받을 때 소총 사격 때 이명이 등장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22세 때부터 등장해서 지금 50세로 30년간 이명을 달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전역 후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 그리고 신경외과에서 1년 동안 종합검사와 치료를 받았지만 이명의 치료에 실패를 했다.

그 다음에 그는 유명한 한의사에게 1년동안 침술과 약물로 치료를 받았으나 실패를 했다. 약물을 복용하다가 효과가 없는 것을 알고 포기하고 지금까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장애(alexithymia)를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이 밝혀졌다. 고로 부인이 J씨의 감정을 두배로 acting out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분석의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서는 자아분열의 치료 과정은 제외하고 이명의 치료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어린시절의 분석에서 부모님은 상점을 운명을 했다. 아버지는 물건을 주로 대도시로부터 대형 자전거로 물건을 조달라고 어머니가 물건을 주로 판매를 했다. 어머니는 첫째 아들이 5살 때 그리고 둘째 딸이 3살 때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 다음에 태어난 J씨를 애지중지로 과잉보호를 했다 모든 것을 엄마가 다 해주고 보호를 했다.

두명의 자녀의 상실에 엄마가 놀래서 J씨를 과잉보호로 양육을 한 것이었다. J씨는 초, 중학교 시절에는 영재로 반에서 1등 2등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영재로 읍내에 있는 한 학교에 모여서 과학영재 교육을 1주일에 1회씩 받았다 그러나 그가 대도시로 고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공부에 흥미보다는 영화와 TV에 빠져 들에 되었다 그는 1년 재수 후에 지역에서 최고의 대학에 입학해서 대학 2학년데 공군에 입대해서 사격훈련 때 이명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치료자는 J씨가 과도한 불안(엄마의 과잉보호)으로 보통사람들보다 불안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고교 시설에 영화와 TV와 음악으로 빠지게 된 원인이 상상 속에 빠져서(백일몽 대신에) 불안과 스트레스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6개월 동안 분석 치료 과정에서 밝혀낼 수 있었다. J씨는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과도하게 불안으로 인간 긴장의 신체적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다.

어린시절부터 초, 중, 고교 시절까지 과도한 불안에 긴장이 누적되어져서 신체의 기능들이 과도한 긴장에 익숙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생리학에서 자체균형유지향상성(homeostasis)이라고 부른다.

뉴턴의 물리학의 제 1 법칙이 바로 관성의 법칙이다 정지한 물체를 계속해서 정지하려고 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해서 운동을 하려고 한다 이것이 정지하고 있는 물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정신한 물체의 힘보다 큰 힘이 작동해야 한다 대신에 운동하고 있는 물체를 정지시키려고 하면 운동하고 있는 힘보다 더욱 더 큰 힘이 작동을 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것이 심리치료에 적용이 된다.

J씨의 특징은 그가 고교 시절부터 혼자서 영화 혹은 음악에 빠져서 지금까지 40년 동안 살아왔는데 그의 전공이나 직업에 그가 본 영화들(약 1000편)이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즉 그가 영화에 관계된 혹은 음악에 관계된 전공이나 직업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젊은이 시설에 영화와 음악에 빠진 것은 과도한 주변의 자극에 압도되어 스스로 상상 속으로 도피한 것이다. 이것을 분석으로 지적을 했을 때 그는 시인을 했다. 지금까지 그는 그러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가 그가 고교 시절부터 하숙으로 혼자 살면서 그가 본 영화와 음악을 수학적으로 계산을 해 보도록 했다. 하루에 1편의 영화는 1달에 241년에 240편이 된다 10년에 2400편이 되고 30년이면 7200편이 된다 그런데 이것을 바꾸려고 하면 7200번의 영화와 음악을 빈도수를 증가해야 고칠 수 있다는 물리학의 제 1 법칙의 응용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습관을 고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를 인시하고 영화 음악을 보는 욕구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이것을 생활 에너지 혹은 미래의 삶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또 한가지 치료자가 2년전부터 긴장을 방출하는 한가지 치료 기법으로 120분간이 치료 회기 도중에 카우치에 누워서 대화를 하다가 스스로 잠이 들에 하는 기법이다.

뇌가 쉬어야 잠이 온다는 원리이다. 불안과 긴장은 뇌를 쉬게 할 수가 없다. 고로 뇌는 계속해서 작동을 해야 한다 특별히 게임중독, 휴대폰 중독이 된 사람들은 게임, 전자오락을 할 때 뇌가 평소보다 300배 빨라진다 라는 것을 명심하게 한다 이 이론은 교감신경이 작동해서 위기시에 혈액 순환이 300배 빨라진다 라는 생리학자들의 실체 측정에 바탕을 둔 것으로 치료자가 뇌의 원리에 응용한 것이다 게임에서는 상대방과 싸움을 해서 이기기 위해서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뇌가 과도하게 예민해지기 때문에 수면을 취하기 어렵다. 이런 방법으로 2년전부터 게임 중독의 고 2학년 학생 2명을 성공적으로 게임에서 손을 떼게 한 치료 사례가 있다(블로그에서 2021, 11, 27일자 게임 중독 심리치료를 보라).

 

여기에서 치료 회기 때 카우치에서 대화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잠이 들게 해서 10분정도 잠을 자고 나서 머리가 깨끗해지고 신선해진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응용해서 자신의 긴장을 컨트롤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비슷한 방법이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이 10분동안 차를 멈추고 졸음을 해결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자는 고속 도로에서 10분간 졸고 나서 운전을 할 때 머리가 깨운 해지고 마음이 새롭게 된다는 체험담을 쓴 것이었다.

치료자는 이 방법을 개인의 학습에서 사용한다. 공부를 할 때 책상에서 10시간 정도 공부를 한다고 집중정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집중력은 3시간-4시간 정도가 한계이다 이 시간을 지나가면서 계속 공부를 하면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고 분산되어 잡념이 생기고 다른 곳으로 주의집중에 옮겨가게 된다.

치료자는 이 시점에서 눈을 감고 생각을 차단시킨다 그리고 약 10분정도 졸고 나면 머리가 깨끗해지고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3-4시간의 공부에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하루에 10시간씩 공부를 하고 있다, 이 방법을 치료 회기에서 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카우치 위에서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잠이 들려고 하면 걱정, 근심, 염려, 불안이 최소한계점으로 내려가야 한다 고로 치료실에서 갈등과 고민을 노출시키고 자신의 단점을 이야기를 하면서 48시간의 6개월의 치료 기간을 넘어서게 되면 스스로 뇌의 고도한 활동을 감소시킬 수가 있는 단계에 접근할 수가 있다.

치료자는 2년 전에 게임중독의 환청이 들리는 고교 2학년 학생을 위와 같은 카우치에서 잠을 자게 하는 기법으로 스스로 긴장을 컨트롤 하도록 도와주어서 그를 48시간에 조현병을 치료한 기록을 세운 바 있다(조현병의 평균 치료 기간은 1년이었다).

또한 환자로 하여금 스스로 얼마나 자신의 긴장의 수준이 어느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과도한 자아에 짐을 지우지 않도록 한다(위에서 소개한 1타 강사의 고백 참고) 그리고 그날 일상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미루지 말고 완료하게 한다. 식사를 위한 음식 준비 그리고 공과금 등을 미리 납부하고(어차피 내야할 것들 그리고 일상의 요리를 위해서 음식의 자료들을 그 때 그때 미리 구입해서 항상 미루는 일이 없을 때 즉 근심, 걱정, 염려, 불안이 없도록 하면 생각을 차단시키면 몇 분 안에 잠들 수가 있다.

J씨는 계속해서 이 방법을 시도를 했으나 실패를 했다 드디어 82시간 때(1년의 치료) 카우치 위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스스로 잠이들에 되었다 그 이후에 매주일 마다 10분 혹은 20분씩 치료 회기에서 잠이 들게 되었다. 혹자는 왜 아까운 심리치료 시간에 잠을 자야 하는가? 라고 깜짝 놀래는 경우가 있다(위에서 조현병 고교 2학년의 어머니). 치료자는 긴장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치료의 기법임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120분 동안에 10분-20분을 잠을 잔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

이 시점에서 J씨는 30년 동안 가지고 있는 이명이 신기하게 사라졌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이 것이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다. J씨는 30년 동안 이명을 등장시킨 신체적 긴장이 향상성의 원리에 위해서 습관화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의도적으로 긴장을 끌어내리는 훈련으로 익숙해지게 한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다한증(손에 땀이 나는 질병)을 가진 고교 2학년 학생이 1년동안 게임 중독과 공부에 집중력이 분산되어 공부를 하려고 하면 게임이나 휴대폰에 빠지게 된다는 문제 때문에 치료를 받게 되었다. 다른 문제들은 여기에서 생략을 하고 다한증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그는 48시간의 치료 회기를 끝내고 다시 6개월의 치료 계약해서 카우치에 누워서 이야기를 하다가 10분 동안 담을 자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

그는 6개월 동안 치료실에 오면 카우치에 누워서 2분-3분 만에 잠이 들어서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것을 치료자가 10분이 지나면 깨우게 된다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정수기에서 나온 물을 끓어서 식혀 놓은 물을 한 컵 마시고 치료 회기를 계속하면서 머리가 시원해지고 주의집중력이 올라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가 가진 다한증은 1년 치료 후에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세 번째는 난독증으로 치료자의 대학 강의를 들었던 대학생 K군이 군복무 이후에 복학을 했으나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아서 종간고사를 망치고 나서 휴학계를 내고 병원에서 체크를 했을 때 과도한 비염으로 코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해서 수술 후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요청을 한 것이었다. 그는 과도한 불안 때문에 긴장이 누적되어 뇌가 회전이 최소가 된다는 것을 분석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군대에서 선임병으로부터 심하게 갈굼을 당했다 그 때 그는 과도한 긴장으로 고참이 시키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한다고 비난과 처벌에 조그만 쉬운 일에도 잊어버리거나 실수를 연발에서 고문관(군대생활에서 어리버리한 병사의 속어)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토로했다.

치료자는 뇌는 긴장이 이완되어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어질 때 뇌의 회전능력이 최대가 된다(Bollas, 1987)라는 심리적 원리를 깨닫게 했다. 먼저 불안한 학생들은 시험시간에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서는 안된다.

평소에 미리미리 조금씩 공부를 해서 준비를 해 놓고 시험 날짜가 발표되면 그 때 마무리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치료 회기 시간에 대화로써 긴장을 풀어가는 방법으로 자신의 단점과 비밀들을 동료들에게 감추면 감출수록 긴장하고 조심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원리에다 대화로써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하도록 했다(K군이 치료는 20년 전의 치료 사례로써 카우치 위해서 잠을 자는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복학 수에 중간 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모두 A학점을 받고 성공적으로 난독증을 치료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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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이너(Weiner, 1977). 심리생리학과 인간의 질병

볼라서(Bollas). 대상의 그림자(1987), 한 인간으로써 존재(1992)

스톨로우(Stolorow). 상호주관의 맥락들(1992), 상호주관의 접근 위에서 정신분석 치료(1987), 경험의 세계들(2002), 정신분석 치료: 상호주관적 치료(1995). 구름속의 얼굴(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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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Herman, 1984). 상처와 회복

엘렌베르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탐색: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발달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Ⅰ권(1953), 제Ⅱ권(1955), 제Ⅲ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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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Stone, 1983). 정신분열증의 치료: 분석적인 치료 접근

투스틴(Tustin). 자폐증 어린이의 정신증(1975), 신경증 안에서 자폐증적인 장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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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Wilson et al., 1989). 심인성 질환 증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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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엄(William, 2000). 아토피 피부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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