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21세기를 점령한 정신장애(경계선 장애)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9. 6. 15. 12:04

21세기를 점령한 정신장애(경계선 장애) 

 

정신장애는 시대의 산물이다. 인간의 발전에 따른 진화의 부산물로써 등장한 것이 정신장애이다. 인간의 마음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이것을 설명해준다. 진화 이론은 그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소멸된다는 다윈(Darwin)의 이론이다. 정신분석의 창설자인 프로이트는 철저한 진화 이론의 신봉자였다. 그의 첫 번째 실험연구가 의과대학 3학년 때 생물학 연구실에 연구조교로써 칠성장어의 성기구조로 400여 마리의 장어들을 현미경으로 연구한 논문에서 시작된다. 이후에 그는 왕새우, 집게 등의 연구에서 척추동물인 개와 고양이 새끼들의 신경연구로 그리고 인간의 신생아들의 연구로 이어지면서 그는 신경세포들의 기초적인 모양이 서로 일치된다는 것을 발견을 한 것(신경세포인 neuron이라는 신조어의 발표가 늦어서 최초의 발견자에서 한발 늦었던 천재성이 이미 대학생 때 드러났다는 것을 학자들이 노트)에서 이미 진화 이론의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Ellenberger, 1970, Ernest Jones, 1953, 1955, 1957: 주㈜: 참고).

 

진화 이론은 영국의 생물학자, 자연주의자, 지질학자였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이론이다. 그는 영국의 해양 탐사선인 비글호(Beagle)를 타고 남아메리카의 해안측정을 위해서 떠나는 선박에 5년 동안 탑승을 했다. 비글호가 물과 식량 공급을 위해서 갈라파고 섬에 정박 중에 그가 그 섬에 살고 있는 거북이들과 조류들과 화석들을 수집해서 영국으로 가져와서 15년 동안 연구를 해서 발표를 한 것이 1859년의 종의 기원이다. 그의 자연도태설은 이론적인 것을 떠나서 한 때 지구를 지배한 파충류 시대의 공룡들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모든 정신장애들 역시 새로운 환경에 부적응으로 적응부진이 바로 정신장애자가 된다는 것이 정신분석가들의 핵심 견해이다.


원시시대에는 정신장애가 드물었다. 과학이 발달 하면서 정신장애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는 것을 여러 차례 수없이 밝혔다. 20세기는 과학의 급속한 발달에 따른 새로운 장애가 프로이트 사망(1939) 1년 전에 새로운 장애로써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아돌프 스턴(Adolph Stern)에 의해서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 되었다. 그가 만든 신조어가 바로 경계선 장애(보드라인)이다. 그는 신경증 보다는 심각한 그러나 정신증(편집증, 조울증, 조현병(정신분열증)보다는 약한 새로운 장애의 등장을 학계에 보고를 했다. 바로 신경증보다는 심각하고 정신증보다는 약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가운데 있는 새로운 정신장애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것이 경계선 장애(영어로 borderline의 이름이 우리나라 말로 경계선으로 번역)이다. 1938년에 새롭게 탄생을 해서 이 장애가 1970-1990년대까지 정신분석가들, 역동적 정신의학자들의 연구와 치료에 핵심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장애의 진화 과정과 연구들과 증세들의 특징을 살펴 보고자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신경증 장애보다 경계선장애 즉 보드라인 장애의 치료가 대세가 되었고 이 장애가 21세기의 장애를 대표하는 양적이고 질적인 면에서 정신장애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논의하고자 한다.


다시 잠깐 인간의 사회적 현상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 사회의 급격한 발전은 산업혁명을 그 시발점으로 본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760(제임즈 왓트의 증기 기관차가 1776)년대부터 1880년대까지의 100년 사이(2019, 6, 1, 위키피아)에서 이 기간에 20세기의 정신장애들의 대부분이 등장하게 된다. 각종 기계들이 등장하면서 방직공장, 제철공장, 스팀엔진 등으로 대규모 공장들이 등장하면서 인력이 부족하게 되자 농민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어 인구 밀집현상으로 나타났다. 빈곤층이 형성되면서 기존의 프랑스 혁명으로 무너진 귀족 계급 대신에 부유한 상공인들이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중상류층)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노동자, 농민)계급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의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1848년의 맑스와 엥겔스가 노동자, 농민 계급을 위한 공산주의 선언이 등장하게 된다(Ellenberger, 1970).


이 시점에서 불안증이 등장하게 된다. 그 이전에는 불안증이 학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프로이트가 신경증들의 연구와 치료에서 시작된 것이 정신분석의 시작이 아닌가? 그 당시에 히스테이아 신경증, 불안 신경증, 신경쇠약 신경증, 멜랑꼴리아 신경증이 전부였다. 불안신경증에는 그 이후에 공포증(광장 공포증, 특수 공포증, 대인공포증으로 진화), 강박증(강박사고, 강박행동으로 진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전쟁, 자연재난, 성폭행, 사고), 공황장애 등으로 등장한 것이 1980년의 DSM-Ⅲ에서 지금의 모든 불안장애가 확정이 되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정신병이 있었고 멜랑꼴리아(심한 우울증)와 조울증이 전부였다. 중세에는 귀신들린 사람들이 빙의 현상으로 인식을 했고 퇴마의식(샤만,무당)으로 귀신을 쫓는 굿이 유행을 했다. 18세기(1700년대)에 등장한 계몽주의로 인간이 중세의 무지, 미신, 맹목적 신앙(기독교)의 틀 속에서 이성, 과학, 교육을 통해서 깨어남을 통해서 이것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이 등장하게 된다.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인 메즈머(Mesmer)가 빙의 현상은 정신병이고 자석치료(이후에 최면 치료)로써 치료를 시작한 것에서부터 현대의 역동적 정신의학(정신장애의 심리치료)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Ellenberger, 1970).


20세기가 시작되면서 1904 4월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의학 총회에서 러시아의 육군사관학교 생리학 교수인 파브로프(Pavlov)가 개 위에 구멍을 뚫어서 고기를 주면서 발생하는 침과 소화액의 연결로 자극과 배움의 관계를 실험실에서 증명한 실험이 바로 머리 속에서 학습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 바로 조건학습으로 이것이 1904년에 의학 총회에서 발표 되었다. 그는 그 공로로 노벨 의학상을 받는 러시아 최초의 생리학자가 되었다. 그의 조건 학습은 이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실험 심리학인 S-R 심리학(자극-반응)으로 발전되어 미국의 각 대학에서 실험 심리학이 심리학의 대세 되었다. 이후 1950년대까지 미국의 심리학 교실은 실험실에서 실험심리학이 점령을 했다. 눈의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는 비과학적이라고 평가절하 되었다. 마음을 치료하는 심리학은 정신분석가들, 심리치료사들에 의해서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프로이트는 최면학의 맹점을 보완해서 최면에 걸리지 않는 환자들을 위해서 자유연상을 통해서 최면 상태의 무의식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이것이 정신분석의 탄생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 번 밝혔다. 꿈의 분석과 말의 실수 등을 통해서 상처받아서 억압되어 의식 속에서 사라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환자가 깨닫게 하고 그 상처를 정화 시키는 치료작업을 한 것이 바로 정신분석의 핵심 치료였다. 프로이트는 모든 정신장애의 핵심이 3-5세의 오디팔 기간에서 섹스 욕구의 왜곡으로 섹스의 상처로써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의 치료의 초점은 원시적인 욕구 즉 섹스 욕구의 상처, 본능적인 욕구들 즉 식욕, 성욕, 사랑의 욕구들의 상처로써 등장한 욕구 이론이 주축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생물학적인 본능이 중심이 된 치료였다. 그는 의식, 무의식, 그리고 중간에 전의식으로 마음을 세 개의 위계로 구분했다. 프로이트의 초반이 이론은 무의식을 의식화 하는 것으로 의식의 세계를 확대 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후에 프로이트는 사회적 변화에 따른 시대적인 영향을 고려해서 그의 치료 이론이 변화하게 된다. 1923년에 ego와 원초자아의 논문으로 등장한 마음의 삼두마차 이론이다. 즉 타고 나는 본능의 원초자아(Id), 양심을 대표하는 초자아(Superego), 그리고 현실의 기능을 대표하는 현실적 자아(ego)몸을 끌고 가는 3 마리의 말에 비유를 했다. 몸은 마차이고 방향을 잡고 몸을 끌고 가는 것은 3마리의 말들로써 이 말()이 바로 자아(self)라고 이론화 했다. 생물학적인 이론의 중심에서 사회 환경의 중심으로 현실적 자아가 중심이 되는 ego (현실적 자아) 심리학이 등장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후계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1922년에 비엔나 정신분석 학회의 멤버로 백일몽과 매맞은 상상들이라는 논문으로 등장을 했다. 이후에 1936년에 그녀는 ego와 방어기재로 9개의 방어기재들의 저서를 통해서 ego 심리학의 핵심인 방어기재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자아가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서 즉 살아남기 위해서 자아 보호로써 방어기재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시점에서 살아남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이후의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갑옷이 성인이 된 시점에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방어가 자아의 속임수라는 것이 치료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나와 너를 대표하는 자아(self)와 현실적 자아(ego)의 구분으로(영어의 번역은 둘 사 자아로 혼란의 초래) ego의 기능을 강조한 동기를 제공한 헤인즈 하트만(Heinz Hartmann)이 함께 등장함으로써 프로이트의 이론은 ego 심리학이 대세가 되었다. 하트만은 비엔나 의과대학생 시절에 프로이트에 매혹되었고 이후에 프로이트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 그는 독일의 정신분석 학회 회장인 칼 아브라함(Karl Abraham)에게 개인분석을 받다가 그의 조기 사망으로 샌도르 라도(Snador Rado)의 개인분석을 받고 정신분석학자가 되었다. 이후에 뉴욕으로 건너가서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에서 라도와 함께 미국에서 최초로 종합대학 안에서 정신분석 학교를 설립(대부분의 정신분석학교는 대도시에 특수학교로 존재, 예를 들어서 남가주 정신분석학교: 주㈜: 참고)하는데 공헌한 사람으로 1950년에 국제정신분석학회 회장으로 수년간 봉사를 했다(2019, 6.1, 위키피아).


여기에서 또 한 사람인 에릭슨(Erik Erikson, 1950: 주㈜: 참고)이 등장한다. 그는 어머니가 임신 중에 이혼으로 실제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났다. 그가 7살에 한 소아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다가 어머니가 그 소아과 의사와 재혼을 하는 바람에 9살에 그는 양아버지에 의해서 입양이 되었다. 어머니는 에릭슨의 실제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양부가 실제 아버지라고 이야기를 해준 것 때문에 그는 주체성 혼란을 경험을 했다(Coles, 1970). 고교 졸업 후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에릭슨에게 고교 시절에 그의 그림과 글씨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학교의 보조 교사로써 일할 의향이 있는지? 편지를 보냈다. 그가 교사 도우미로 일을 하게 된 곳이 프로이트가 신경증 치료에서 세계적인 명사가 되면서 전 세계의 부유층 부인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 비엔나로 몰려들었을 때(신경증은 정신분석에서 보통 3-5녀의 치료기간 때문에) 그들이 데리고 온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미니 초등학교였다. 에릭슨은 부지런해서 몬테소리 교사 자격증을 획득을 했고 정식 교사가 되었다. 그는 그의 학교 인근에 세워진 정신분석학교에 흥미와 관심을 보였다.


에릭슨의 재능을 인정한 안나 프로이트가 에릭슨에게 정신분석 학교에 입학을 권유를 했고 그는 수석으로 졸업을 하고 4년간 안나 프로이트 한데서 수련을 받았다, 그가 수련 과정을 끝냈을 때 그의 자격 심의 위원회가 만장 일치로 수련 과정을 졸업한 그 날짜로 소아정신분석과 성인 정신분석가의 자격이 주어졌다. 그는 하버드 대학, 예일 대학, 그리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을 했다. 그는 스스로 그가 사춘기 시절에 신경증과 정신증의 중간에서 방황했다고 노트를 했다. 그는 고교 졸업장으로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으로 이후에 하버드 대학에서 종신 교수가 된 사람이었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 278-297). 그는 2002년에 심리학 논문들 중에서 가장 인용을 많이 받는 12번째의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2019, 6,2, 위키피아).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활에 직접 참가해서 그들의 자녀 양육을 관찰하고 응용한 이론을 정신분석에 접목을 해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생물학적인 이론으로 폭이 좁다는 비판에 사회학적인 이론을 첨가하게 되어 1950년에 어린이와 사회라는 저서를 출판해서 정신분석을 본능이론인 생물학 중심(psycho-sexual)이론에서 사회학 중심이론(psycho-social)으로 확대 시켰다. 프로이트는 섹스심리학의 발달 단계를 구순기(0-1), 항문기(1-3), 오디팔기(3-5) 잠재기(6-12) 그리고 성기기(13-19)로 구분을 했다. 에릭슨은 여기에다 사회학적인 요소를 첨가해서 인간의 발달은 본능적인 것 보다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인 현상들의 가치들의 갈등의 정반합(변증법)으로 보았다. 갈등들의 통합은 더 큰 정신적 성숙으로 그러나 통합의 실패는 정신장애로 정의를 했다. 유아는 출생 직후에 엄마와 쌍방 관계를 통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관계가 형성된다고 가설화 했다. 유아가 엄마 품에서 엄마에 대한 믿음이 대인관계의 가장 중요한 신뢰감의 형성으로 보고 0-1세를 대인관계의 핵심 기초인 믿음 대 불신(Trust vs Distrust)으서 프로이트의 구순기를 대체 시켰다. 프로이트의 항문기(1-3)를 자아의 자치심의 시발점인 자치심(autonomy) (vs) 수치심(shame)으로 구분을 했다. 건강한 발달은 두 개의 갈등을 통합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자아의 힘인 자치심으로 발달로 간다, 이것에 상처, 실패는 부끄러움, 수치심으로 다른 사람의 뒤에 숨어버리는 대인관계의 형성으로 정의를 했다.


그는 인간의 발달을 8단계로 확대시켜서 노년기까지 포함을 시켰다(상세한 것은 에릭슨의 8단계 이론으로 들어가 보라). 그는 프로이트의 핵심 이론, 3-5세의 오디프스 컴프렉스에 더 붙여서 사춘기인 청소년들의 문제의 대명사질풍 노도의 첨가로 자아 주체성이론을 내 놓았다. 에릭스은 관계 이론가이면서도 안나 프로이트와 하트만을 중심으로 한 ego 심리학자로 분류되어진다. 그들은 ego의 기능과 사회적 적응에서 자신감을 고양(self-esteem, self-respect)하는데 치료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삼두마차 이론에서 사회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ego 가 중심이 된 것은 사회적인 발달에 따른 문화 환경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Coles, 1970: 주㈜: 참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맹점인 상상과 무의식의 연구와 치료는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빛을 보게 된다. 1950년대에 정신분석의 반격이 시작된다. 1950년에 뉴욕의 마스트 어린이 센터를 창설한 항가리 의과대학 출신의 여성 분석가인 마가레트 몰러(Margaret Mahler,1975) 4명의 분석가들과 함께 5명의 유아들을 데리고 실험실을 만들었다. 자연스런 일반 주택으로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 0-3세까지 4년간 연구한 데이터를 15년 동안 연구결과로 1975년에 인간 유아의 마음의 탄생을 저서로 출판하게 되었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실험실에서 증명이 된 것을 강조하면서 본능적인 욕구를 바탕으로 해서 자아의 자치심 즉 엄마로부터 분리와 개인화가 되어가는 사회성에 강조를 해서 분리 개인화 이론을 창안해서 정신분석의 신경증 치료 중심에서 신경증보다 심각한 경계선 장애와 정신증조현병과 편집증의 치료에 핵심 응용으로 공헌을 했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내 놓았다. 그녀는 유아와 어린이들의 심각한 문제들에 프로이트의 이론이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을 했다. 프로이트의 이론과 치료는 성인 어른들의 과거의 상처 이론들로 기억의 회상으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무의식 속에서 찾아내는 자유연상과 꿈 분석으로 무의식의 세계에 접근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크레인은 유아들과 어린이들을 치료 하면서 놀이치료를 고안해 낸 최초의 분석가로 소아 정신분석을 창조한 분석가이다.


그녀는 놀이를 꿈 대신으로 사용을 했다. 놀이를 하면서 상징적인 면들을 해석으로 치료의 핵심 도구로 놀이를 이용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유아들과 어린이들의 분석에서 현실자아인 ego의 발달을 프로이트와 완전히 다르게 개발을 했다. 그녀는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정신분석가인 페비안(Fairbairn)과 함께 인간은 태어날 때 부분적으로 지각을 한다(쪼갬 방어), 즉 아기가 태어나자 말자 엄마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한다. 엄마의 눈, , 입으로 분리되어 지각되면서 이것이 4개월 5개월에 인간 얼굴로 통합되고 7개월-9개월에 엄마의 전체 얼굴로 지각되고 인식되면서 분리불안이 탄생한다. 이 시점에서 엄마가 아닌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다. 사랑과 미움은 모순으로 아기들에게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두 개를 쪼개서 100% 사랑과 100% 미움으로 쪼개서 엄마가 한 사람으로 지각되지 않고 두 사람으로 나누어 관계를 하다가(좋은 때는 엄마가 100% 좋은 천사 엄마, 처벌로 화가 날 때는 엄마를 100% 나쁜 마귀 엄마가 된다) 3세-5에서 엄마는 두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이라는 쪼갬의 방어가 통합되는 것이다.


그녀는 유아들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쪼갬 방어들, 그리고 원시적인 방어들을 사용해서 이런 방어들이 사랑과 돌봄을 통해서 점점 더 통합되어지면서 성숙한 방어들로 진화 한다는 것을 이론화 했다. 그런데 유아들이 충분한 사랑과 양육에 결함과 처벌과 학대와 상처들이 이러한 통합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서 자아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폐증, 편집증,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된다는 이론화 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자아 보호의 원시적 방어기재들전지전능함, 이상화, 평가절하, 고립, 외로움, 폭력적 충동의 방어들이 특징이라는 것을 기술을 했다. 그녀가 사회적 발달과 진화에 따른 새로운 치료 이론으로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 theory)이론을 내 놓았다.


다시 말해서 신생아들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의 양육의 과정에서 자아소멸의 방어인 원시적인 갑옷을 버리고 현실에 적합한 ego 기능이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옆에 엄마가 없어도 머리 속에 엄마의 이미지들이 그리고 아빠의 보호적인 안전함과 안정됨 엄마와 아빠를 대신하는 자아의 기능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는 성장의 과정에서 부모의 보호 대신에 자아의 성숙한 ego 기능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기능으로 진화 한다는 것이 대상관계 이론의 핵심이다. 그런데 심한 심리적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자아의 기능이 연약하고 스스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불안과 분노와 노여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외부 대상에게 의존하게 된다.


1951년에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존 볼비(John Bowlby)가 엄마의 돌봄과 정신건강 이라는 저서로써 유아와 어린이는 친밀하고 따뜻한 지속적인 엄마의 손길로부터 욕구만족과 감각적인 즐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애착 이론의 첫 번째 작품을 선을 보였다. 그는 이미 1946년에 제 2 차 세계 대전 이후에 어린 시절에 엄마를 잃어버린 범죄 청소년들의 분석 치료인 44명의 청소년 도둑들이라는 논물을 출판을 했었다. 어린 시절의 엄마의 돌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여기에 대한 연구가 애착 이론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 애착 이론이 실험실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그가 바로 위스콘신 대학의 동물심리학자인 하알로우(Harlow)이다. 그는 태어나자 말자 눈을 가려서 엄마를 보지 못한 신생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일반 적으로 아기는 왜 얼마를 좋아하는가? 에 대한 상식적인 대답은 엄마가 유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기는 엄마로 향하게 된다에 대한 실험이었다. 그런데 정신분석가들은 모유보다 아기와 엄마의 상호작용인 신체접촉, 안아주기, 눈맞추기로서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관계(너와 나의 하나됨)를 더 중요시한다(자아의 형성에 핵심)는 것을 하알로우가 수용을 해서 이것을 실험실에서 직접 실험을 하게 된 것이다. 하알로우는 철사 엄마와 헝겊 엄마를 만들었다. 모유와 안아주기를 분리시키기 위해서 철사 엄마에게는 우유병을 매달아 놓았다, 대신에 헝겊 엄마에게는 폭신폭신한 부드러운 천으로 엄마를 만들었다. 신생 원숭이는 철사 엄마가 아닌 헝겊 엄마에게 갔다, 헝겊 엄마에게 매달리고, 안기고, 눈맞추기, 눈길 주기 등의 신체 접촉을 더 좋아했지만 단지 배가 고플 때만 철사 엄마 한데 가서 젖을 빨아 먹었다. 특별히 시끄러운 소리, 위험한 동물들(고양이, )의 접근에서 깜짝 놀래거나 두려울 때는 헝겊 엄마의 품에 매달리고 안기면서 안정과 불안을 달랬다.

 

위의 실험에서 유아들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대소변을 갈아주는 것보다 엄마 품에 안기고, 매달리고, 업히고, 눈맞추기로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중요한가? 가 실험실에서 입증이 되었다. 하알로우는 이 실험을 통해서 사랑의 정의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피부접촉을 통한 몸으로 전달하는 것을 사랑으로 정의를 해서 1958년 미국 심리학 연차 총회에서 사랑의 본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를 했다. 이후에 그의 사랑의 정의는 애착으로 바뀌었다.


내면의 주관적 세계에 대한 미국 심리학계의 냉대에 맞서는 정신분석가들의 맹공이 하나씩 등장하게 된다. 그 동안 주관적 경험들은 실험실에서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히 무의식 이론은 시대적인 고물로 취급 받았다. 시카고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존 홉킨스 대학의 심리학 학과장을 하고 있던 존 비 왓트슨(John B. Watson) 1913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한 행동주의자가 본 심리학이라는 강연에서 행동주의가 등장하게 된다(2019,6, 8, 위키피아). 이 행동주의가 이후에 미국에서 행동주의 심리학이 대세가 되면서 주관적인 마음의 심리학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도처에서 들려왔다. 그 해에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뉴욕의 세계 박람회에서는 무기전시와 예술품의 전시가 특징이었다. 예술품들은 주로 기계의 우선이었다. 인간이 한 개의 기계가 되어간다는 것을 묘사한 예술품들이 시대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국의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역사가, 작가로써 분석 철학의 창설한 사람으로 노벨상을 받은 버틀란트 럿셀(Bertrand Russell)이 내 안에서 생각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존재가 비인간적이고 그리고 기계적으로 나를 대신한 기계가 좌우하고 있다고 비판을 했다. 1949년에 영국의 철학자인 길버트 릴레(Gilbert Ryle)가 마음의 개념이라는 저서에서 내면의 삶이 파괴되고 상상과 마음의 눈인 은유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비판을 했다(Meares, 2012). 같은 해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월리암 제임즈(William James)의 후임으로 등장한 윌리엄 멕도박(William McDugall)이 유기체 정신과 의사들(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정신과적인 질병을 모두 신체적인 질병으로 우선시 하는 과정에서 기능적인 신경증은 겨우 피에르 장(Pierre Janet)와 모르톤 프린스(Morton Prince)에 의해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어서 걱정스럽다고 취임 연설을 했다.


드디어 1967년에 코넬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학자인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 1975, 1976, 1984, 1989, 1999: 주㈜: 참고)가 미국 정신의학학회에서 종래의 신경증과 정신증으로 분리되어진 정신과의 질병을 여기에 경계선 장애를 포함시켜서 신경증 그룹, 경계선 그룹(보드라인 그룹), 정신증 그룹으로 분류를 해서 3가지 유형으로 재분류를 하면서 경계선 장애를 공식화 했다. 본격적인 경계선 장애의 연구는 이후에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미 1968년부터 시작된 미국과 프랑스의 대학생들의 반전운동이 시작되면서 미국 내에서 민권운동과 인간존중의 물결이 시작되면서 인본(人本)의 본성의 회복의 부활이 시작되었다. 기계론적인 심리학에 강조가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심리학으로 이 시점에서 프로이트의 제자였지만 프로이트와 결별한 알프레드 에들러(Alfred Adler)의 영향을 받은 마슬로우(Maslow)와 역시 프로이트의 제자인 오트 랭크(Otto Rank)의 제자인 칼 로저스(Carl Rogers)에 의해서 인본주의 심리학이 태동하게 된다. 더 붙여서 이후부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힘을 얻게 되었다.


1968년에 시카고 대학의 정신의학과 학과장이 된 로이 크린크(Roy Grinker)가 경계선장애의 실체에 도전을 했다. 기존의 정신분석가들의 일대 일의 치료 사례에서 벗어나서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도입해서 조직적인 연구가 등장하게 된다. 크린크는 이미 시카고 대학 졸업 후에 의사가 되어 유럽에 있던 프로이트 밑에서 개인분석과 정신분석학을 공부를 한 사람으로 정신분석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귀국 후에 새롭게 등장한 정신과의 장애로써 경계선 장애를 조직적으로 연구한 후에 그 장애의 핵심을 부모의 양육 결함으로 자아의 성장이 중지되어 이후의 발달에서 동화와 확대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핵심 원인으로 기술을 했다. 자아의 성숙의 실패로 보았다. 독립심이 연약해서 의존적이고 자아의 존경심 즉 자신감의 저하로 기술을 했다. 그는 1968년의 그의 저서인 경계선 증후군에서 경계선 장애주체성의 연약함, 왜곡된 대인관계, 외로움에 근거한 우울증, 그리고 분노의 표현이 우세라고 보고하면서 경계선 장애를 20세기의 사회문화적 부산물이라는 경구로 노트를 했다(Gunderson, 2001).


20세기를 대표하는 역동적 정신의학자들로써 프로이트(Freud), 피에르 장(Pierre Janet), 에들러(Adler), (Jung)의 연구와 삶을 12년 동안 추적 연구를 해서 한 사람의 힘으로 900페이지가 넘는 대 저서로 무의식의 발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라는 책을 출판한 스위스 태생으로 프랑스인이 된 헨리 엘렌버그(Henri Ellenberger, 1970)의 저서가 1970년에 출판 됨으로써 후배들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그는 위의 4명의 분석가들에 관계된 논문들과 저서들을 수집을 해서 총 2557 권의 참고 문헌을 노트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정신의학을 공부를 했고 장자크 라깡(Jacques Lacan)과 함께 성 안나(Sainte-Anne) 병원에서 정신의학의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스위스의 프로이트의 제자로써 유일한 신부인 오스카 피스터(Oskar Pfister)로부터 4년간 정신분석의 개인 분석을 받고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으로 그는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가로 등장을 했다. 이후에 그는 캐나다의 몬트리올 대학에서 정신과 교수로써 그리고 범법자와 피해자 사이에 범죄 피해자의 역동적 심리학의 개척자가 되었다(2019, 6, 8, 위키피아).


1975년에 경계선 정신장애의 새로운 연구의 개척자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가 된 건드슨(Gunderson, 1984, 2001: 주㈜: 참고)이다,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경계선 장애를 눈겨워보고 있었다. 그가 하버드 의과대학 부속 병원인 멕클린(McLean)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들, 정신분석가들, 치료 심리학자들, 임상 사회복지사들, 정신건강 간호사들로 구성된 200여명의 정신건강 전문가들과 협력해서 10년 동안 경계선 장애를 추적 연구해서 1975년에 경계선 장애의 7 개의 진단 기준표를 만들어 냈다. 그의 연구의 결과는 이후에 경계선 성격장애의 표준으로 그리고 그는 경계선 장애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고 그의 표준 긴단 기준은 이후에 1980년에 미국 정신의학회의 인정을 받게 된다.


1979년에 경계선 장애에 대한 실험 연구가 스피츠(Spitz et al., 1979)와 동료 연구진에 의해서 808명의 경계선 장애 환자 그룹 Ⅰ과 그리고 808명의 경계선 장애 환자 그룹 Ⅱ로 나누어져서 그들의 공통된 특징들을 연구한 결과 그룹 Ⅰ를 경계선 장애(보드라인 성격장애)로 명명이 붙여지고 그룹 Ⅱ는 자아분열 장애(자아분열 성격장애)로 이름이 붙여졌다(Meares, 1999, 2001, 2012a, 2012b: 주㈜: 참고).

드디어 경계선 성격자애의 공식적인 등장이 완료된다. 1980 DSM-( 3 차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 지침서)에서 미국 정신의학 학회에서 공식적으로 경계선 장애가 성격장애로써 등장하게 되었다. 이 기준 진단 표준은 건드슨의 연구를 공식화 해서 그의 기준진단이 표준으로 사용이 되었다.


건드슨은 그의 저서 보드라인 성격장애: 치료적인 안내서에서 1968년부터(컨버그의 분류) 1990년 사이에 경계선 연구에 대한 학자들의 논문들과 저서들이 폭발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치료 보고서가 실험실 논문보다 10배가 많았다고 노트하고 있다. 그는 1995년에서 1999년 사이에 5년 동안 경계선 장애에 대한 연구논문과 저서들을 분석해본 결과 이전의 기간 보다 23%의 감소를 노트하면서 이제 경계선장애에 대한 연구가 나올 만큼 나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경계선 장애의 특징을 정신증과 우울증(무드 장애와 구분)과는 다르다, 유전적 요인보다 환경적 요인이 우세하다, 가족 환경이 충동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성장환경, 섹스 학대의 빈도가 높았다고 요약을 했다. 경계선 장애의 연구결과들은 20세기 후반기에서 21세기의 정신장애들의 핵심 문제와 치료의 골격을 역동적 정신의학에서는 두 가지고 요약을 하고 있다. 첫 번째가 대인관계의 문제(사람들과 관계 결함) 그리고 두 번째가 의사소통의 문제(대화의 결함)로 모든 치료의 초점이 모두 여기에 집중이 되고 있다.


경계선 장애에 대해서 세계적인 대가가 3명이 있다. 그들은 바로 뉴욕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코넬 의과대학의 오토 컨버그(Otto Kernber), 하버드 대학의 존 건드슨(John Gunderson) 그리고 코넬 의과대학의 제임즈 마스트슨(James F. Masterson)이다.  컨버그는 비엔나 출신의 유태인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남아메리카의 칠레로 이민을 가서 칠레 의과대학과 칠레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귀화한 사람으로 캔사스에 있는 칼 메닝거 정신의학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가 이후에 코넬 의과대학에서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의 창시자인 크레인(Klein)의 이론과 ego 심리학을 통합해서 현대적인 대상관계 이론을 확립한 최고의 이론가이자 치료사로써 그는 평생 동안 경계선 장애의 치료와 연구에 헌신한 사람이다. 두 번째는 하버드 대학의 존 건드슨으로 그는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경계선장애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의 연구의 결과들은 10개의 성격장애 이론으로 DSM-Ⅲ에서 성격장애의 표준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제임즈 마스트슨(James Masterson, 1976, 1985,1981, 1988:주㈜: 참고)으로 그는 뉴욕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로써 그는 1950년에부터 청소년의 정신분석에서 신경증보다 심각한 경계선 장애 즉 보드라인 장애의 저서를 연달아서 출판한 사람으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1977년에 정신분석 심리치를 위한 마스트슨 연구소를 건립하고 평생토록 경계선장애와 나르시즘 장애의 치료를 위해서 후배의 양성에 헌신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20세기 후반에 정신의학에서 새롭게 등장한 경계선 장애에 대해서 역사적인 진화 그리고 학자들의 연구들을 살펴 보았다. 전 세계적으로 이 장애에 대한 연구와 저서들이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TV 채널들 혹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입에서 경계선 장애(보드라인)라는 말을 들어보는 것이 드물다. 이제 겨우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 의사들의 입에서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말이 유통되고 있음을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요청한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과거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경계선 장애로 진단을 받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 전부이다.


선진국의 경계선 장애의 치료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신경정신과 의사들에 의해서 경계선 장애들이 우울증(심하게 우울한 상황)으로, 조울증(감정의 기복), 조현병(정신분열증), 공황장애(공허감의 벼량끝 느낌)로 진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을 하고 있다. 2009년에 영국 국립정신건강 연구소(NICE)에서 경계선 장애자들이 주고 복용하고 있는 약물들인 항우울제는 경계선 장애에는 효과가 없다, 항정신증 약물은 인지-지각의 완화에 약간 효과가 있다 그리고 기분 안정제(무드장애 약물)는 적대적 공격에 일부 효과가 있다고 발표를 하면서 약물 치료의 무용론을 발표를 했다. 이러한 진단과 처방의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초반기에는 약물을 신뢰해서 열심히 규칙적으로 복용하다가 세월이 지나가면서 약물이 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약물을 불신하고 치료를 중단해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2019, 6, 4, 조현병 환자의 역주행으로 그 자신과 3살 아들 그리고 부딪친 마주한 승용차의 예비신부 사망, 그 환자는 최근에 약물 복용 포기했다고 부인이 신고). 약물은 위기 극복에는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Meares, 1999, 2001, 2012a, 2012b).


아래에서는 경계선 장애들의 증세의 특징들과 치료의 과정을 면밀히 분석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가 혼자 있는 외로움에 참을 수 없어한다는 점이다. 형체가 없는 두려움, 외로, 고립감정에 참을 수 없다, 공허감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는 고통블랙홀로써 표현하고 있다. 삶에서 연결들이 끊어진 느낌으로, 삶이 산산조각이 난, 그리고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고립을 호소를 한다.


우리 보다 먼저 선진국에 들어선 일본에서는 이미 20년 전에 히키코모리(은둔 외톨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는 정신과 장애로써 세월이 20년이 흘러가고 나서 여전히 방에 콕 처박혀서 두문불출하고 사회적 고립으로 혼자서 외톨이로 살고 있는 자녀들이 지금은 40대-50가 되어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고하고 있다. 히키코모리의 사회적인 문제가 최근에 자주 폭발한다는 뉴스와 TV이 기사들을 본다. 히키코모리가 바로 경계선 장애이다. 며칠 전에 신문과 인터넷에서 소개가 된 일본의 공무원(차관급)인 아버지가 은퇴한 이후에도 아직도 아들이 히키코모리로 무위도식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분노해서 칼로 아들을 살해한 사건이 보도 되었다.


지난 1 일본 도쿄에서 76살의 아버지가 44 아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사건이 발생했다인근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를 내는 아들을 꾸짖다가 싸움으로 커지면서 사달이 났다 사건은 아버지 구마자와 히데아키가 농림수산성 차관까지 지낸 인물이어서  화제를 모았다직업이 없던 아들은 부모 신용카드로 매달 40만엔( 430만원)가량을 온라인게임을 하는  사용했다어머니를 마구 때리기도 했다오랫동안 아들 문제로 고민해  노년의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흉기로 찔렀다(2019, 6, 4. 국민일보).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3년째 받고 있는 28세의 K군이 작년에 갑작스럽게 오른쪽 귀의 뒷부분에 등장한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원형탈모 때문에 약 10개월 동안 그 문제 해결에 집중을 했다. 다행히도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서 원형탈모는 사라졌다. 이후에 약 4개월이 지난 후에 최근에 새로운 원형탈모가 다른 곳에서 등장했다고 호소를 했다. 다시 그 문제에 분석이 시작되었다. 그는 직장에서 일을 할 때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퇴근해서 집에 오면 혼자 있은 것에 불안해지고 의식이 된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 어떤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 오르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는 내가 오늘 일을 하면서 후배에게 농담을 했는데 그 농담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 “혹시 그 친구가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는가?” “내가 너무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면서 자꾸 그 생각 속에 빠진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청년이 1주일 전부터 치료 예약 시간을 자주 바꾸면서 불안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의 호소에서 치료자가 그에게 지난 화요일에 2시간 치료 회기가 끝난 후에 목요일에 다시 문자 메시지로 저녁 11시에 치료 회기를 가질 수 있는지? (보통은 1주일에 1회로 2시간 분석상담을 하는데 K군은 1주일에 2회를 요청)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나서 치료자가 11시에 치료실에 도착하면 1시간(치료자는 반드시 2시간 치료 회기를 가진다) 정도면 지하철이 끊어지는 것을 감안을 해서 No라고 이야기를 한 것과 그리고 지난 월요일에 문자 메시지로 월요일 아침 9시에 치료 회기를 가질 수 있는지? 라는 문자 메시지에 치료자가 토, 일요일에 부산에서 치료를 하고 아침 일찍 KTX를 타고 서울의 사무실에 도착을 하면 9 40분으로 아침 10시에는 치료 회기를 가질 수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 문자 메시지 이후에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이후에 그는 화요일 저녁 5-7시로 치료 예약을 했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자는 K군이 불안함이 증가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작년의 원형탈모가 재발한 것을 확인을 시켜주었다. K군은 혼자 있을 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마음 속에서 조그만 불편함에 참을 수가 없어서 낮에 직장에서 후배와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친 것을 찾아내서 혹시 조그만 잘못이 그 후배와 관계가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재발한 심한 불안은 바로 실수가 없이 완벽하게 행동을 하게 되면 불안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완벽주의 생각에서 기인된 것을 지적을 했다.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행동을 하면 불안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거꾸로 그러한 사소한 생각들에 집중을 하고 낮이 있었던 그의 실수가 혹시라는 생각에 빠져들어가게 되면 불안이 증폭되어 긴장을 들어 올리게 된다고 지적을 했다.


이것을 호수 시드니 대학의 정신과 교수로써 정신분석학자인 미아레(Meares, 2001)가 그의 저서인 해리장애와 치료에서 자극의 덫에 걸린사람으로 표현을 했다. 즉 일상생활의 너무 사소한 일들에 주의집중으로 마음의 에너지가 흘러가는 바람에 핵심적인 일을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치료자는 치료의 과정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길거리에 죽은 쥐를 보고 혹시 그의 더러움, 병균이 먼지를 타고 내 손과 입으로 들어와서 내 요도가 감염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강의실에서 그 생각 때문에 85%-90%가 그 생각에 쏠려서 강의내용은 실제로 10% 정도 밖에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호소를 하는 25세의 강박증 청년을 5년 동안 치료를 하면서 일상의 너무 사소한 자극에 포로가 된 것을 실감을 할 수 있었다. 다시 K군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이러한 분석은 이미 작년에 원형탈모의 분석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작년에 성공적인 분석은 K군의 내면의 심리적인 상황에 대한 분석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 다시 똑 같은 문제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관계는 어려웠지만 그런대로 진행이 되어갔다. 그런데 집에 오면 혼자 있게 되면 그날 혹은 전날 혹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떠 올라서 K군의 마음 속에 점령을 해서 계속해서 불안을 들어올리게 된다는 것을 분석해 내고 그 해결 방안으로 K군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즐거웠던 일들 중에서 K군이 유치원 시절부터 배운 피아노와 미술 학원에 다닌 것을 찾아 냈다. 피아노는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계속해서 약 10년 동안 피아노를 쳤다고 했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피아노 치는 것이 중단되었다고 했다. 고교 시절에 전공으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완강이 반대를 했다, 예능인은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밥 먹고 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 이후에 피아노와 그림 그리기는 고교시절에 대입준비 때문에 포기된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치료자가 K군에게 피아노를 10년 동안 배우면서 어머니가 진도를 일일이 체크하고 간섭하거나 경연 대회에 나가거나 혹은 피아노를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죽기살기고 피아노를 쳤는지? 를 분석해 보았을 때 K군은 부모님이 그의 피아노는 일체 간섭하지 않았고 경연대회에 나간 적이 없었다고 했다. 순수하게 좋아하고 즐거웠다고 대답을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가 퇴근 후에 피아노 레슨을 재개하는 것을 권유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피아노를 칠 때는 경쟁하거나 경연대회 때문에 피아노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고 순수한 취미 그리고 피아노를 질 때 즐거움이 우선하기 때문에 27(작년)가 된 지금에 다시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 퇴근 이후에 자아를 들여다 보고 실수를 찾아내서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계속해서 불안이 증가하게 되는 것을 차단시킬 수 있다는 심리적인 원리를 이야기를 하면서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 자아의 밖으로 자아의 주의 관심을 이동시키게 되면 즉 취미생활에 그리고 피아노를 칠 때 즐거움 때문에 긴장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했을 때 K군이 무릎을 쳤다.


원형탈모의 등장 4 개월 만에 마지막으로 분석에서 성공하면서 K군은 퇴근 이후에 피아노를 치면서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배우게 되면서 이후에 10개월 만에 원형탈모(과도한 긴장과 불안이 신체적인 호르몬 작용을 불러 일으킨 것)는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 바로 작년이었다.


그런데 왜 또 재발을 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K군은 원형탈모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그의 핵심 문제(원형탈모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원형탈모는 치료 2년 시쯤에서 등장)는 아직도 그것의 해결을 위해서 자아와 투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가 재발로 연결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좀더 심리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치료자는 이 시점에서 뉴톤의 물리학의 제 1 법칙을 자주 인용을 한다. 만유인력의 발견자인 뉴톤이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해서 움직이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해서 정지하려고 한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치료자가 중학교 1학년 때 물상(그 때는 물리학이 아니고 물상) 시간에 배운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후에 치료사가 미국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면서 그 경구의 뜻을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정지한 물건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에너지 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운동하는 물체를 정지시키려고 하면 그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정신분석에서 물리학의 이론이 등장하는 것은 정지한 물체 그리고 운동하는 물체는 바로 자신의 현재 현상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이것을 생물학에서는 homeostasis 라는 용어로써 향산성(늘 지속하려고 하는 힘), 혹은 자체균형유지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습관화 된 행동으로 본다. 습관을 깬다는 것이 늘 해오던 습관적인 행동에 소요되는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을 하면서 K군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27세까지 습관적으로 행동을 해 오던 것을 바꾼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에너지 즉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해주었을 때 K군이 이해를 하게 되었다.

 

지난 주일에 재발한 원형탈모 문제는 K군이 다시 그의 과거의 습관의 등장문제로 일단락이 되면서 K군은 새롭게 자신이 평소에 어떻게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면서 그 이후에 퇴근 후에 그의 취미 생활의 활발한 활동으로 자아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않고 자아의 밖으로 주의 관심을 돌리는 것으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여기에서 다시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외롭고 두려움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 경계선 장애의 특징으로 기술을 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K군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맞벌이로 생후 1년 동안 아주머니에게 맡겨졌다. 그 아주머니가 K군을 목욕을 시킬 때 잘못해서 K군이 중이염이 생기는 바람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맡아서 키우게 되면서 4살 때까지 주중에는 조부모님 손에서 주 말에는 부모님의 손에서 성장하게 된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4세 이후에는 조부모님 집 인근에 살게 되면서 저녁 때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기 때문에 K군의 애착 형성에서 옆에서 어머니의 부재와 안전과 안정에 결함으로 과도한 불안이 등장하게 된 것을 분석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정신과 교수로, 정신분석가로써 많은 저서를 출판한 아놀드 모델(Arnold Model, 1984, 1993, 1999a, 1999b, 2006: 주㈜: 참고 )은 그의 저서인 사적인 자아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자신의 자아를 흡수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유명한 경구를 노트했다. 동시에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가의 창설자인 한 사람인 컨트립(Guntrip, 1993: 주㈜: 참고)의 유명한 경구인 친밀감에서 나를 잃지 않고 그리고 자치심에서 너를 잃지 않는다 라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위의 두 명의 유명인들은 공통점이 자아를 잃어버리려는 안 된다 즉 자아의 목소리를 내라 하는 치료자의 치료의 핵심과 연결 된다.


두 번째 경계선 장애의 특징이 자아 주체성이 연약하다 이다. 자아의 힘이 약해서 조그만 좌절과 고통에 참을 수 없어한다. 즉 자신감이 약하다. 자신감의 디플레이션(deflation) 현상이 특징이다. 반대도 자신감이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된 사람이 바로 나르시즘 장애이다. 나르시즘 장애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고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똘만이가 되어야 한다 가 된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깽판을 친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정반대로 경계선 장애(보드라인 장애)모든 것이 내 잘못으로 내가 죄인이다가 된다. 자신감이 연약해서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그리고 자기 주장이 없다, Yes 맨이 된다.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경계선 장애들을 우울증으로 진단해서 우울증 약물을 처방하는 빈도수가 높게 나타나는 이유가 된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내 약점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비웃는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읽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내 약점을 숨기고 감추고 좋게 보이려고 하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이들은 긴장하게 된다. 과도한 긴장은 뇌의 연상과 연결을 파괴 시킨다. 이것이 바로 해리(dissociation)로써 우리가 배움인 새로운 것과 연결되는 뇌의 연결 현상인 연상(association)의 반대가 된다. 프로이트가 과거에 상처받아서 연결이 끊어진 것을 다시 연결을 해서 기억의 회상으로 의식 세계를 확대시키는 치료 기법으로 내세운 자유 연상(free association)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21세의 고교 자퇴생 B군은 혼자서 외출을 할 수가 없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속을 꿰뚫어본다는 두려움, 자신의 속 마음을 읽는다는 두려움과 불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을 비난하고 있다는 공포감,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승객들이 자신을 비웃고 욕설을 한다는 느낌이 들면서 지하철을 타고 치료실에 올 수가 없어서 1시간 30분의 거리에 택시를 타고 왔다. 그는 시선 공포증으로 치료자에게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치료를 받게 되었다.


24세의 대학 1학년 휴학생인 C군도 비슷한 사례이다. 보통 일반적인 경우에는 치료의 첫 시간에 부모님을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료자가 사이비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 안심하고 치료자에게 자녀를 맡길 수 있는가? 라는 생각에서 보호자를 동반을 한다. 그는 첫 컨설팅 시간에 어머니를 동반을 했다. 그런데 치료가 6회 정도 진해되면서 치료자는 C 군이 어머니를 대동하고 같이 와서 어머니는 2시간의 치료 시간이 끝날 때까지 1층 커피숍에서 기다렸다가 2시간 분석 치료가 끝나면 어머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랬다. 고통스럽지만 혼자서 치료실까지 오는 것도 치료의 하나임을 지적하고 나서는 C 군은 이후에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고 자신에게 아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원인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말에 부응해서 착하게 자란 사람들이 많다. 착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부모님이 어린이들의 의견과 생각과 상상들을 그대로 수용해서 지지해주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말에 과도하게 순종하도록 만들어서 복종적으로 강압을 했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점에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눈을 부릅뜨고 부모님에게 말대꾸를 한다, 혹은 부모님에게 도전한다, 부모님의 말을 무시하고 반항적이다 라는 관점 때문에 자녀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게 된다. 불안한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자신의 의견과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그들의 의견과 불일치에서 갈등을 느끼게 되면서 불안하게 된다,


갈등이 없으면 불안이 없다 고로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항상 어른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다”, “부모님의 말은 언제나 옳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을 해 보았을 때 부모님의 말씀은 언제가 결과적으로 옳았다””부모님은 다 너희들 잘 되라고 너희들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등등의 이러한 강조와 강압으로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순종하게 된다. 부모님은 착한 아들, 딸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러한 양육에서 자녀들은 부모님의 눈치, 비위에 과도하게 예민하게 된다. 부모님의 의견에 일치시키려고 노력을 한다. 부모님의 부부 관계가 조화로운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부모님이 갈등하고 부부싸움이 잦은 경우에 자녀들은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부모님의 마음에 신경을 쓰게 되고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살피는 가족 환경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이후에 사회에 나와서 동료들과 관계 혹은 상사들과의 관계에서 눈치, 비위를 맞추는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경향이 높다.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주장이 적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잘 따라간다. 다른 사람의 의견들과 자신의 의견들이 다른 경우에는 자신의 의견이 틀린 것으로 수용해서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일치시키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갈등이 없어지고 관계가 순조롭게 흘러가서 서로 좋은 관계가 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반대로 부모님의 지나친 간섭과 강압으로 성장한 자녀들은 옹고집적인 자아가 되기 쉽다. 무조건 부모님의 의견 혹은 상사의 의견 혹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발하고 반대하는 반(反骨)이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게 된다. 상대방의 의견의 타당한가? 모순이 되는가? 내 의견과 일치 되는가? 등등을 고려해서 그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거나. 동의를 하거나, 해야 하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강압과 억압에 무조건 반기를 들게 된 결과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견이 상대방과 반대가 되면 갈등을 불러 일으켜서 불안이 증가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은 억압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가서 순종하게 된다 그런데 내면에서 반대하는 불평불만이 내면 안에서 쌓이게 되면 그는 결국 이것들이 모여서 어떤 결정적인 시점에서 폭발해서 그 관계가 단절되고 그 사람과 관계가 원수지간 이 되어버린다. 치료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자아의 형성 과정이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 상호관계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이러한 관계 패턴을 분석해서 자아를 키우고 자아의 힘을 실어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하는 문제가 바로 투쟁과 싸움으로 변질되는 문제이다, 내면에 쌓인 분노가 짜증과 화가 쌓인 상태에서 상대 방에게 반대 의견을 이야기를 할 때 적대적인 말투와 언쟁적인 대화 스타일이 두 사람의 말 다툼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문제이다.


치료자가 미국에서 대학 1학년 때 반드시 필수과목으로 토론학을 수강하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과목은 첫 시간에 교수가 강의 계획서를 설명하면서 이 과목은 필기시험으로 이론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6-7명이 1개 조가 되어 20-30명의 한 과목 수강생들 앞에서 서로 반대적인 논제로 토론을 해서 그 결과를 점수화로 학점을 준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과목에서 강의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다음 시간부터 토론이 실제로 반에서 진해되었다. 치료자의 그룹의 차례가 왔다. 지도 교수는 미리 논제를 1달 전에 제공해서 각각의 학생들이 서로 반대되는 주제의 제목에 따라서 참고 문헌들을 읽고 공부를 해 와야 한다는 것을 첫 시간에 강조를 했었다. 치료자는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던 습관대로 미국에서 미국 학생들과 조를 짜서 토론을 할 때 적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의 틈새에 섞여서 찬성합니다. 혹은 반대 합니다 를 말을(영어로) 하게 되면 통과될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을 한 것이 탈이었다. 그 때 치료자의 그룹에 주어진 제목이 진화론과 창조론이었다. 6명의 학생들이 두 개의 그룹으로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찬성파와 반대파들이 서로 논쟁을 벌리는 것으로 뒤에는 그 과목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토론을 지켜보면서 관찰을 하고 참관을 하고 있었다. 그 그룹의 토론이 끝나면 이후에 뒤에서 관찰자들이 질문을 하고 대답을 진행하는 것으로 한 학기에 토론의 회수가 3-4회의 기회가 돌아왔다.


치료자의 첫 번째 토론은 끝이 났다. 토론이 끝나자 말자 지도 교수는 토론 참가자 6명의 채점표를 나누어주었다. 치료자의 채점표에는 0 점이 나왔다. 치료자가 놀래서 지도 교수에게 점수가 왜 0점인가라고 물어 보았을 때 지도 교수는 자네는 토론을 하지 않고 남의 의견에 그렇다 혹은 아니다 라고 편승을 한 것을 토론으로 점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미국에서 공부가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것을 실감을 하고 그 다음 토론에서는 지도 교수의 참고 문헌을 꼼꼼하게 공부를 하고 상대방 학생들의 눈치, 비위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내 주장을 참고 문헌을 인용해서 토론을 하고 났을 때 지도 교수는 나에게 최고의 점수를 주면서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내가 이 토론 과목의 경험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후에 내가 심리치료를 공부하게 되면서 점점 학년이 올라가고 대학원 학생이 되면서 그 지도 교수의 명언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가치, 사회적인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토론은 내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내 생각과 느낌과 상상과 지각과 사고들을 논리적으로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소통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라는 유명한 문장을 지금도 나는 머리 속에서 외우고 있다.


다시 부모님과 자녀들의 대화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논쟁은 필수적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는데 하물며 친구들 그리고 부부 사이에서도 갈등은 없앨 수가 없다. 에릭슨이 각 발달 단계에서 갈등의 해결은 통합으로 자아의 성장으로 그리고 갈등의 미해결은 장애로 이어진다는 유명한 그의 이론에서 우리는 논쟁은 싸움이 아니토론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고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그리고 상대의 의견을 들어 보고 그의 의견과 아이디어 옳다면 내가 수용하고 받아들여서 내 자아를 성장하게 하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자는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점들을 이야기를 하면서 내 자아의 목소리를 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풀고 해결해 나가는 치료 기법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최근에 치료에서 핵심으로 등장한 의사소통의 기법들 중에 하나이다.


이 의사 소통의 기법을 치료실 안에서 훈련으로 익숙하게 만들어가게 된다. 그냥 설명으로 이해시키는 것으로는 부족함을 수없이 느꼈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서 정확하게 입력된 경험이 바로 실제 생활에서 내 피와 살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자녀들에게 이러한 대화 훈련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자녀들은 십중팔구가 치료사 선생님이 말을 하는 대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나는 맞아 죽습니다. 부모님에게 한 마디를 하게 되면 말대꾸를 한다고 한 마디 말에 열 마디가 따라오기 때문에 그냥 참는 것이 제일입니다. 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속에서 울화통이 부글부글 끓어도 참고 견디어야 후유증이 없습니다 라고 난색을 표현을 한다. 치료자는 그의 의견을 수용해서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손님(환자라는 말 대신에 치료자는 손님으로 호칭)은 지금까지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 때문에 순간적으로 갈등은 없었지만 의사 소통 능력을 끊임없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능력에 결함이 생긴 것입니다. 고로 손님은 부모님과 유사한 사람들 즉 직장의 상사 혹은 동료들로부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속에서 넣어두고 눈치, 코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추고 있지 않는가요? 라고 이야기를 하면 시인을 한다.


내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상상과 지각과 사고와 감각들을 자유스럽게 표현하면서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금의 이 치료 회기 시간을 보세요. 손님은 지금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나한 데서 얼마나 불편함과 긴장을 느끼고 있나요? 라고 물어 보면 대부분은 선생님과 관계에서 느끼는 긴장과 불평함은 최대라고 이야기를 한 사람이 30% 이고 최하가 0% 였다. 치료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지금 손님과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주로 어떤 이야기들입니까? 라고 물어 보면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내 마음 속에 고통, 갈등, 상처들로써 나의 부정적인 느낌들입니다. 내 마음 속에 썩어빠진, 누적된 이야기들입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치료자는 내 자신의 부정적인 단점들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내가 그것을 지금까지 감추고 숨기고 좋게 보이려고 얼마나 긴장을 했습니까?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그러한 단점과 약점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내면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손님께서는 숨길 것이, 감출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긴장하고 경계하고 좋게 보이려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이 인정을 하고 깨닫게 된다.


그런데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은 심리치료사이기 때문에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상처와 비밀을 이야기를 할 때 순조롭게 스스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핵심은 지금까지 묻어둔 내 상처와 고통을 끊임없이 48시간 동안에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감정들에 상처가 점점 무디어지고 예민함 들이 조금씩 약해지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속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게 되면서 치료자의 주장을 수용하게 된다. 여기에서 핵심은 이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너무 예민해서 조그만 자극에도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유아기 시절에 부모님이 그 유아의 불안과 두려움을 흡수해서 유아의 마음이 편안하게 안정과 안전으로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유아는 스스로 자아의 보호를 위해서 예민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정신분석적인 원리가 깔려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핵심은 수치심, 모욕, 멸시, 조롱의 상처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치료 회기 시간에 그들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상처들이 조금씩 아물고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감소되어지기 때문이다. 에릭슨이 1-3세 사이에 자치심 대(vs) 수치심이라는 말을 위해서 언급을 했다. 심리적 상처의 핵심은 수치심과 모욕감이다. 이것을 감소시키는 방법이 그 상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게 되면 점점 그 감각이 무디어지게 된다는 치료 이론이다. 이 치료 이론은 행동학, 인지학에서는 점진적인 감각 박탈 혹은 체계적 둔감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로 공포증 치료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엄격하게 이야기를 하면 역동적 정신의학에서 상처를 다루는 목적이 그 상처를 이야기를 하게 되면 예민함의 감각이 감소하게 되고 그러한 상처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줄어들어가면서 사회생활에서 자극에 갇히는 비율이 감소하게 된다는 말고 일맥 상통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치료를 받는 손님에게 치료자와 치료 회기 시간에 대화를 하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느끼고 안정을 느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대화의 원리를 치료자가 모델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 이것을 발판으로 사회 생활에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내야 함을 강조를 한다.


부모님 혹은 친구들 혹은 상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는 절대로 그냥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대화의 원리를 이야기를 해 준다. 일반적인 대화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상대방이 끼어들면서 그것이 아니고 오해 때문이다라고 말을 하게 되면 내가 하는 이야기가 중간에서 차단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내 이야기의 초점이 흔들리게 된다, 그 다음에 상대방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다시 내가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면 뒤죽박죽이 되어 말이 앞뒤가 안 맞고, 뒤엉키고, 엉망이 되어버리게 된다. 이후에 치료 회기 시간에 그들이 치료실에 와서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 패가망신했습니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더욱 더 그 상황을 어렵게 더욱 더 나빠지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하소연을 하는 것을 수 없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대화를 할 때 반드시 듣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중간에서 가로 막지 말고 들어 주세요. 내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충분히 이야기를 할 시간을 드릴 터이니 절대로 중간에서 가로막지 말아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해서 동의를 얻고 나서 대화를 하도록 했다. 여기에 약방감초 격으로 더 붙이는 것은 내가 이렇게 심리적으로 혼란을 경험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부모님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나치게 부모님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내가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누가 들어주겠습니까? 부모님이 내 이야기를 들어 준다면 지금 내가 얼마나 내 마음 속이 껌게 탔는지?  내 가슴 속이 얼마나 곪아터졌는지를 알게 될 것이 아닙니까? 나는 지금까지 부모님에게 이러한 마음 속의 고통을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부모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나는 집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치료사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이러한 호소에 반응하지 않는 부모님은 지금까지 없었다. 단 여기에 조건이 붙어있다. 저녁 혹은 한가한 시간에 부모님이 바쁘지 않는 시간에 이러한 대화를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자가 맨 먼저 부모님과의 소통을 다루는 이유들이 있다. 그것을 소개하자면 치료자 한데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고(치료자는 6개월 이하는 치료 요청을 수용하지 않는다) 1주일에 1 2시간씩 분석 치료를 진행해 나가게 된다. 손님(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그 자신의 고통과 갈등과 상처들을 이야기를 하게 되고 치료사는 그들의 경청하고 그 상처들이 어떻게 자아의 미성숙과 고착(성장이 중지)이 되었는지?를 분석으로 연결 시키면서 마음 속에서 그들의 성장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의 분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치료를 계속하면서 치료가 약 10시간 정도를 통과 하게 될 시점에서 치료자는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넌지시 질문을 하게 된다. 손님이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100%로 추정을 한다면 손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이들 이야기들 중에 몇 % 정도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라고 물어 보면 대부분의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어머니는 약 30%, 아버지는 약 20% 정도라고 대답을 한다. 친구들에게는 몇 % 인지를 물어 보면 0%라고 대답한다. 지금까지 치료를 한 사람들 중에서 최하의 퍼센트를 이야기한 21살의 여대생은 어머니가 3%, 그리고 아버지가 0%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깜짝 놀랜 적이 있다. 몇몇 사람들은 아버지가 30%, 어머니가 20%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즉 어머니와 관계가 아버지보다 더욱 더 나쁘다는 말이 아닌가? 대부분이 우리는 아버지와 관계가 불편하지만 어머니의 관계는 그런대로 편안한 경우가 많은데 거꾸로 된 경우에는 그 사람의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부모님이 내 마음 속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데 누가 내 마음 속의 고통을 이야기를 이해하고 들어줄 사람이 있겠는가?  치료자가 부모님과 대화를 첫 번째 단계로 지적을 하는 것은 부모님은 핏줄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제 1 차적으로 들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나 동료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부모님 관계의 소통이 어느 정도 흘러가면 그 다음 단계로써 동료들과 관계에서 의사 소통이 다루어지게 된다. 인간관계는 출생의 순간부터 부모님과 상호관계에서 시작되는 대화로써 시작되고 삶의 끝나는 순간에 대화는 끝이 난다. 인간 관계 자체가 대화로써 이어지는 소통의 관계 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20세기의 역동적 정신의학의 대가로써 프랑스의 피에르 장(Pierre Janet)대화가 인간성을 창조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21세기의 심리치료에서 왜 소통의 문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치료에서 핵심으로 등장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위의 대화 기법은 성공적이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자신의 곪아터진 속내를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때서야 부모님이 자녀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자녀의 목소리가 점점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자아의 감각이 성장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강조점은 말을 하지 않으면, 대화로써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방을 내면을 모른다는 점이다.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가 내 고통을 몰라준다 라고 분기탱천하는 사람들에게 치료자는 눈치, 코치. 비위를 맞추게 되면서 그들이 내 고통을 무시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노발대발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다. 그 대상에게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을 말로써 표현을 하고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것이 제 1 차적임을 강조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데는 한번으로 무사통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손님들의 대화 패턴이 치료 회기 과정에서 분석되어지고 그리고 그 다음에 마음 속의 억압된 억울함과 상처들이 터져 나오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마지막으로 의사소통 문제로 연결되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아가 약해서 쉽게 다른 사람에게 흔들리고 자신의 주장이 없고 자신의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적이다, 다시 말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부모님에게 의존이 이후에 그들은 어른이 되어서 의존할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찾게 된다는 것을 본인들은 모르고 있다. 고로 그들은 비위를 맞추고 그들의 의견에 의존하면서 모든 것을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다가 갈등이 생기면 갈등을 참고 해결하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버리기 때문에 버림받게 되기 쉽다. 경제선 장애의 세 번째 특징이 바로 버림받음에 참을 수가 없다 이다. 의존적인 관계는 매달리는 관계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갈등이 없이 좋은 관계로 보인다. 그러나 매사에 상대방에게 매달리고 보채기 때문에 상대방은 질식하게 된다. 이것은 3-5세의 어린이들이 금방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라고 보채면 짜증과 화가 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경계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부응해온 자아이기 때문에 무조건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100% 상대방을 좋아하고 상대방을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으로 이상화 한다. 이것이 네 번째 경계선 장애의 특징으로 이상화평가절하의 왔다 갔다 하는 특징이다. 이상화하는 것을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에게 내 느낌과 감정들을 이해시키는 소통의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계에서 가장 쉬운 것이 상대방을 이상화하는 것이다. 즉 네가 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관계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나를 거부하고 싫어하지 않고 좋아할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쉬운가. 그런데 이것이 점점 관계가 이어지면서 어느 한 순간을 넘어가게 되면서 경계선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은 상대방을 위해서 100% 참고 모든 것을 다 비위를 맞추면서 기분을 좋게 해주었는데 상대방은 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가? 라는 불공평함을 감지라고 불평과 불만이 쌓이게 되고 결국은 그들은 폭발해서 관계는 반대로 평가절하가 된다, 즉 상대방은 100% 나쁘게 된다.


100% good과 100% bad가 양분되어 감정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왔다 갔다 한. , 분노, 짜증, 적대감정을 말로써 표현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야 하는데 그러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화가 나면 폭발로써 상대방을 악인, 악질, 악마로 밀어붙이는 것이 얼마나 쉽고 편리한가? 제일 쉬운 것은 그 사람과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것이다. 너와 같은 인간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너와 같은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다 가 된다. 얼마나 편리한가?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일일이 설명하고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어려움을 한방에 해결해버리는 것이 바로 단계 단절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관계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결국은 그 사람 자신이 외톨이가 되어서 견딜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외로움과 불안이 다시 엄습하게 된다. 고로 이후에 다시 상대방에게 의존적이고 매달리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의 대인관계 패턴이 반복되어 계속된다는 것이 정신분석가들이 증세 자체에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자아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이다.


이것 때문에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경계선 장애를 조울증으로 진단하고 조울증 약물을 처방해주는 빈도수가 높다. 그런데 조울증과 경계선 장애의 증세는 완전히 구분이 된다. 조울증은 3개월 혹은 4개월 동안 우울증이 계속되다가 이후에 조증으로 2개원 혹은 3개월이 반복하는 것이 특징인데 경계선 장애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국과 지옥이 교체 된다는 점이 다르다. 결국은 이것에 놀란 상대방은 놀래서 그 사람을 떠나게 된다.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사람에게 놀래서 상대방이 떠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버림받음에 깜짝 놀란 경계선 장애자가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해코지 하거나 상대방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내 모든 것을 받쳐서 너를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너는 내 진실된 100%의 사랑을 몰라주고 나를 떠나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 나는 배신자는 용서할 수 없다가 된다. “이 세상에서 내만큼 너를 사랑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내만큼 너를 사랑하고 내 열정을 모두 받쳐서 너를 사랑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는 너를 위해서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를 사랑하려고 했는데 너는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스토커들의 특징).


오늘날 사흘이 멀다 하고 신문과 TV에서 보도 되고 있는 사건과 사고들을 보라. 아래의 사례들은 TV와 신문에 보도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술김에 다툰 애인 살해 20 자수 "다른 남자한테서 전화와서"(2018, 12, 3, 연합뉴스): 경남 김해중부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김모(21)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3 밝혔다.  씨는 전날 오전 0 30분께 김해시  모텔에서 애인(31) 목졸라 숨지게  혐의를 받는다. 씨는 사건 당일 새벽 4 30분께 사람을 죽였다며 스스로 경찰 지구대를 찾아와 자수했다.그는 "함께 술을 마시다 다른 남자한테서 애인에게 전화가   때문에 다투다 목을 졸랐다" 경찰에 진술했다.


두 번째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올린 글이다(2018, 11, 3, 한국일보). 글쓴이의 딸 A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1128분쯤 강원 춘천시 후평동의 한 주택에서 남자친구 B(27)씨에게 살해 당했다. B씨는 목을 졸라 A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충격을 줬다. B씨는 지난달 27일 구속 수감됐다.  피해자의 부모는 청원글에서 “대기업에 입사한 딸은 결혼 후에도 회사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가해자는 자신의 거주지와 일터인 춘천의 식당 2층 옥탑을 개조한 집에서만 신혼살림을 하기를 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건 당일 살인마는 딸에게 춘천으로 와 달라고 했지만, 딸은 회사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 시험공부로 못 간다는 의사표시를 여러 차례 했다”며 “가해자의 계속된 권유에 마지못해 퇴근 후 찾아갔다가 처참히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청원인은 혼수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살해당했다는 언론보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견례 사흘 전이라 혼수, 예단 문제는 거론된 적도 없는 데 가해자의 말에 의존한 기사로 인해 제 가족과 딸이 또 한 번의 억울함과 슬픔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특히 “여자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것도 모자라 엽기적으로 시신을 훼손한 가해자의 범행은 누가 보아도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잔인무도한 범행”이라고 주장하며 사회에서 격리하는 강력한 처벌과 가해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다섯 번째가 감정적 충동 조절에 어려움이다. 학자들이 경계선 장애의 특징의 핵심을 3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 번째가 자아의 연약함이다, 두 번째가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이다. 위의 두 가지는 이미 위에서 상세하게 설명과 치료 과정이 소개되었다. 세 번째가 바로 충동조절의 결함이다. 쉽게 폭발하고 폭언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acting out으로 방어기재로 설명을 한다. 우리가 주로 상식적으로 사용을 많이 하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주먹이 나간다 라는 경구가 이것을 설명해준다. 말로써 상대방에게 이해를 시키는 의사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쉬운 것은 상대방을 폭력으로 위협으로 말을 듣게 만드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사용하는 것이 주먹질이다. 사람들이 소통을 할 때 말로써 서로 소통이 되면 오해가 풀리고 서로의 이해로 연결되어 갈등의 해결로 이어진다. 그런데 경계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말로써 표현하는 대화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말이 막히거나 논리적으로 밀리거나 비판, 비난을 받게 되면 감정의 억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행동으로 감정을 폭발해서 폭언, 폭력으로 쉽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acting out이라고 부른다. 충동을 참지 못하고 직접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자아가 고통을 참지 못해서 그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방어로써 주먹, 위협, 공갈, 협박을 사용하면서 상대를 쉽게 굴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치료사에게 5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27세의 D군은 초등학교 2학년 말에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청년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누가 입에 독약을 넣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 때문에 입을 닫아버렸다. 친구들의 입에서 침이 튀거나 혹은 교실에서 연필을 깎을 때 혹은 공기 속의 먼지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입을 닫아버리고 입 안에서 침이 고이면 그것을 삼키지 못하고 뱉어 내면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생활을 하다가 몸무게가 14kg이 빠지고 해골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뼈가 있거나 질진 고기를 피하고 음식에서 미국산 쇠고리(광우병), 일본의 수산물(원자력발전소 피해)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붕괴 직전에 죽음을 직감하고 음식을 먹을 때 100번씩 씹어먹는 것으로 쇠퇴한 소화기능을 다행히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특별히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에 결함이 밝혀졌다. 그는 대화 기술의 빈곤으로 화가 난 경우에는 쌍욕으로 폭력으로 반응행동을 했다. 예를 들어서 어머니와 갈등으로 화가 폭발하면 “xxx , xx”등으로 쌍욕을 해서 어머니로부터 너는 어머니에게 그러한 쌍욕을 할 수 있느냐?”라는 질책을 많이 많았다, 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노트북을 집어 던져서 박살을 내었다, 그리고 화가 치밀어서 손으로 책상을 치거나 혹은 주먹으로 벽을 쳐서 손을 다치기도 했다는 것을 실토를 했다.


치료자에게 약 300시간의 치료( 3)를 받았던 E씨는 42세로 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부인에게 이혼을 당한 후에 치료자에게 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대학에서 제공하는 안식년 제도(7년을 근무하면 1년의 휴가를 제공) 때문에 치료자에게 1주일에 월-금요일까지 5일 동안 1회에 2시간씩 1주일에 10시간씩 집중적 심리치료를 1 6개월 동안 받았다. 그는 안식년 제도를 이용해서 심리치료에 올인 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고교 1학년 때 부모님의 이론으로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 2학년 때 3살 위의 형님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몸싸움으로 치고 받고 싸움이 벌어져서 이빨이 5개가 부러졌다. 그는 미국에서 7년 동안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가진 엘리트였다. 그는 결혼식 때 아버지의 반대로 형님과 누나의 가족들이 참가하지 않고 어머니만 혼자 참가를 했다. 그가 결혼식 날에 주례 앞에서 성혼선서를 할 때 형님이 나타나서 깽판을 치는 것에 서로 몸싸움이 일어나서 치고 받는 싸움으로 결혼식이 난장판이 되었다. 결혼 후에 친가 가족과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결혼 7년 후에 그의 폭력과 폭언과 강압 때문에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그는 대학의 같은 학과의 11명의 교수들과 대인관계가 최악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경계선장애였다.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21세의 정신장애의 등장이라는 글을 보고 부인의 권고로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분석 치료에서는 acting out를 금기시 한다. 절대로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한다. 물론 강압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해와 깨달음으로 그들의 삶의 과정과 양육의 과정을 분석으로 밝혀내면서 충동 조절 장애를 찾아내서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말로써 표현하는 의사소통을 치료 회기 시간에 훈련과 연습으로 더 붙여지게 된다.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를 이해하고 깨닫게 한다. 삐치는 것, 말을 하지 않는 것, 눈맞추기를 피하는 것, 욕설을 하는 것, 폭력으로 표현하는 것, 두문불출하는 것, 문을 꽝하고 닫아버리는 것, 응시하는 것(꼴시보는 것). 무언으로 상대를 멸시하는 것 등등이다. 이러한 행동은 분노한 것을 상대방으로 눈치, 코치로 전달해서 상대방을 처벌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말로써 표현하도록 하는 훈련을 병행하게 된다. 유아기 시절부터 부모님이 자녀들의 생각과 의견과 상상들을 수용해서 마음대로 표현을 해주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을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는 순둥이가 된다. 그런데 화를 내면 부모님이 싫어하기 때문에 행동으로 부모님에게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달램을 원한다는 것이다. 동료들과 관계에서 혹은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대화의 스타일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이 외에의 방법은 배우지 못했고 머리 속에 경험으로 저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이 아닌 말로써 표현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인관계의 최대의 장애물 이다는 것을 이해시킨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고통을 들어주게 만들어야 한다는 대화 소통이 핵심은 위에서 기술을 했다. E씨는 약 300시간의 치료를 받으면서 40 시간의 시쯤에서 형님을 만나서 치료 회기 시간에 배운 말로써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형님과 갈등을 해결하고 70시간의 시쯤에서 아버지와 갈등관계를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100시간의 시쯤에서 어머니와 관계를 회복하고 150시간의 시쯤에서 대학에서 동료들과 관계를 회복하고 200시간의 시쯤에서 전처와 자녀와 관계의 회복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자아의 성장과 갈등으로 혼자 서서 외롭지 않고 스스로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일어서는 치료를 통해서 스스로 2%의 부족함을 느낀다고 하면서 치료를 종결을 했다.


30세의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2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가 재발해서 마지막으로 치료자를 찾아온 F군은 치료자와의 분석 과정에서 부모님의 맞벌이로 친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4살까지 양육을 받다가 여동생의 출생으로 할머니가 도저히 2 손자와 손녀를 키울 수가 없으니 부모님에게 분가해서 독립해 나가라는 말에 할 수 없이 유아원에 맡겨지게 되었다. F군은 학교 시절에 동료들과 관계가 어려웠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그는 조부모 혹은 부모님과 관계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시키는 일을 하고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동료들과의 관계였다. 대부분의 경계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호소를 한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돈을 훔치기 시작을 했다. 이후에 F군이 초등학교 6학년의 시점에서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서 2층 집을 지어서 조부모(1)와 부모님(2)이 함께 살게 되었지만 F군의 도벽은 계속되었다. 부모님은 갈등으로 F군이 중학교 3학년 때 이혼을 해서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 부모님은 F군의 도벽의 버릇을 고치려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F군을 처벌을 했지만 도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F군은 중학교 3학년 시점에서 할아버지의 지갑의약 30만원의 돈 중에서 7만원을 훔쳤고 그것을 알게 된 할아버지가 손자의 도벽을 고치라고 아버지에게 야단을 쳐서 아버지가 F군을 승용차에 태우고 강변으로 가서 F군의 손과 발을 묶고 같이 물에 빠져 죽자고 목을 조이면서 위협을 했고 F군을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빌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물론 아버지가 F군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고 버릇고치기를 취해서 처벌).

 

이러한 상처들은 이후에 F군의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1개월간 입원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퇴원 후에 심리치료를 1년간 받았으나 효과가 없어 다시 3개월 프로그램으로 집중적 심리치료를 받았다. 이후에 일자리를 얻어서 일을 하다가 2년 후에 재발이 되었고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왜 F군이 돈을 훔치게 되었는가?를 분석하기 위해서 F군이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F군은 그 돈으로 친구들에게 사귀는데 사용했다고 털어 놓았다. 즉 대인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F군은 그 돈으로 친구들의 환심을 사서 대인관계를 하려고 한 것을 분석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것은 일부러 대인관계를 하기 위해서 F군이 목적으로 돈을 훔친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F군은 돈으로써 친구들을 마음대로 조작을 하게 된 것이었다. 단지 부모님이 이것을 모르고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처벌을 한 것이 문제였다. 부모님은 자녀들의 손버릇 혹은 오줌싸개 혹은 신체적인 장애들, 비염, 아토피, 천식, 두통, 위와 장의 문제들을 약물로 치료를 하거나 혹은 처벌로써 버릇을 고치려고 하는데 이것은 자녀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들을 행동으로 혹은 신체적인 증세들로써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F군은 대인관계에서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청년이었다. 즉 대화하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치료 회기에서 의사 소통의 훈련이 분석에 첨가되어졌다. 그는 치료자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의 양육의 과정에서 사건과 사고들을 이야기를 마음대로 표현을 하도록 하는 치료의 과정에서 치료가 1달을 지나가면서 어머니가 약물 복용을 중단해도 될 만큼 소통능력이 향상되었다고 약물 복용의 중단을 요청을 했다. 그 후에 동료들과 관계를 복원하고 의사소통이 원활해 지면서 치료 직전에 혼자서 TV와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에 기를 넣어서 조종을 한다는 불평들과 그리소 혼자서 지껄이는 욕설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F군은 착하고 정직한 청년이었다. 조부모에게 부응과 부모님에게 순종으로 동료들과 관계 패턴과 소통능력을 개발하지 못한 것이 그의 약점이었다. 그는 치료사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아서 지난 달에 치료가 종결되었다. 아직도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치료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필요하면 이후에 또 치료를 재개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여섯 번째가 내가 아닌 사람처럼 느끼진다(이인정)는 것과 익숙해져있던 현실이 이상하게 보이고 낯설게 보이게 되면서(이현증) 자신이 돌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놀래서 불안하게 되는 것이 경계선성격장애의 특징이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자아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호소를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기억의 연결들이 과도한 장기적인 불안으로 연결들이 끊어지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분석가들을 설명을 한다. 이것을 해리 장애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배우는 것은 연상(association)을 통해서 이다.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이 연결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과도한 불안과 상처들이 쌓이게 되면 이러한 뇌의 연결 회로들이 끊어지고 단절이 되면서 과거의 경험들과 단절이 되면서 과거의 내 얼굴과 내 주변의 환경들이 이상하게 보이게 되는 현상들이다.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 1890년에 심리학의 원리라는 저서에서 의식은 쉴새 없이 흘러가는 흐름으로 정의를 했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정보를 48시간(수면의 시간에도 자아는 활동) 360도에서(사방팔방) 자극을 받아들이고 분류하고 통합을 한다. 고로 그러한 자극들과 반응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아가 커지고 성장을 하고 발달을 한다. 그런데 심한 상처를 받아서 놀래서나 두려움에 쌓이거나 불안한 사람들은 과도한 자극에 견딜 수가 없어서 자아 보호로써 연결을 끊어버리게 된다, 상처를 받아서 그 상처에 연결된 감정들과 사고들과 감각들과 지각들이 끊어지는 것을 연상(association)의 반대로 해리(dissociation)이라고 부른다. 해리 상황에서 의식은 흐름이 아니다. 삶이 정지되는 것이다. 영화는 정지된 사진들을 연결 시켜서 사진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게 만든 활동 사진이라고 불리지 않는가?  활동 사진의 영화가 움직임이 중지가 되면 화면이 정지한 상태가 된다. 영화로써 움직임은 끝이 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흐름에서 벗어남은 삶의 중지된 것이다. 움직임이 없는 삶은 무감각으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은 느낌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무감각은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흐름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여기에서 한 작가의 글을 소개를 하고자 한다. 그녀는 글 속에서 한 개를 전체로 볼 수가 없습니다, 조각조각으로 깨어져서 보입니다. 색깔들의 잡동사니로 색조와 윤곽이 연결되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조각들로 보입니다(Meares, 2012).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플로리다 의대에서 정신과 교수로, 정신분석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스테인베르그(Steinberg, 2000: 주㈜: 참고)는 그의 저서 거울 속의 낯선 사람에서 경계선 성격장애자들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선 사람으로 보인다고 호소를 하는 것을 노트하고 있다. 즉 이인증이다. 아래의 글은 그의 저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누군지 모른다. 빈 공간을 쳐다보고 있거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모른다거나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거나 나인지 너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 즉 내가 아닌 것처럼 느끼는 장애, 자신의 삶이 영화처럼 느껴지는 사람, 무감각, 기억이 없는 경험을 한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나 늘 익숙해 있던 주변 세계가 실제처럼 보이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해리성 장애(기억 상실증)에 해당한다.


해리는 스트레스와 상처 경험에 대한 보편적인 대응 기재이다. 히스테리아가 프로이드 시대에 유행이었다면 우울증이 20세기 후반에 유행하였고 21세기는 해리장애가 유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의 한 통계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들 중에 여성 성인 3명중 1, 남성 5명 중 1명이 어린 시절에 신체적 학대를 당하거나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7천만명 이상이 해리 증세나 해리장애에 취약한 것으로 보고 되었다. 실제로 해리 장애를 다른 장애로 진단되는 경우도 많다. 해리(dissociation)라는 용어는 심층에 묻혀있는 기억과 감정의 단절을 나타내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라면 해체되어 분리된 자아를 말한다. 우리 자아에 감추어진 부분을 말한다. 내면에 해체되어 분리되어 있는 자아가 독립해서 작동한다. 내 자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내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있다거나 한 사람이 성격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에 해당. 해리장애는 전문가들의 잘못된 진단으로 조울증, 공황장애,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 등으로 진단 되기도 한다(Steinberg, 2000).


이 이인증(depersonalization)과 인현증(derealization)1964년에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프랑스의 실존 철학자, 소설가, 극작가, 비평가인 장폴 싸르트르(Jean-Paul Sartre)1938년에 쓴 구토(La nausea)라는 책에서 주인공 R군이 어지럽게 현기증을 느끼면서 비틀거리면서 그가 늘 가던 익숙해진 그 카페에 들어섰을 때 늘 그가 드나들었던 그 카페가 그날 따라 낯설게 느껴지고(이현증) 그리고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면서(이인증),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삶이 텅 빈 공허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존재의 허무를, 살아 있음을 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느끼는 내용이 소개되어져 있다(Wolf, 1988: 주㈜: 참고). 갑자기 자신의 얼굴이 이상하게 보이고 늘 가던 다방이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면서 메스꺼움과 구토가 나오고 현기증이 느껴져서 그 다방에서 도망쳐 나오는 장면들을 분석가들이 노트를 하면서 이것이 바로 작가로써 첫 경계선 장애를 기술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정신분석가로써는 아돌프 스턴). 과거의 신경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정신장애를 싸르트르가 기술한 것을 인용하고 있다.


치료자는 종종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저녁 늦게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면서 갑자기 익숙해졌던 주변 상황이 이상하게 낯설게 보이면서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다가 겨우 집에 도착해서 몸져누워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허깨비에게 흘려서 끌려 다닌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린 시절에 많이 들었다. 그 이후에 그 노인은 그 경험에 놀래서 외출을 삼가하고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사람이 한번 심하게 놀래면 그 다음부터 정신이 이상해져서 죽음이나 치매에 치명적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극도의 불안한 상황에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의 연결이 단절된 해리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치료자 역시 한번씩 지하철을 타고 늘 익숙한 지역을 지나치면서 한번씩 방향 감각이 혼란해지면서 혼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보면 꺼꾸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즉 어떤 생각에 골몰하게 빠져 있을 때 주변의 환경에 연결이 끊어지면서 낯설게 보이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경계선 장애들의 특징이 이런 현상에서 놀래서 이후에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놀래고 불안해지고 공포에 사로 잡히기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은 과도한 불안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지면서 자아가 과도한 자극을 차단하게 되면서 생긴 현상임을 치료의 과정에서 이해하고 안정을 되찾고 자아의 평상심을 회복하는 과정이 치료의 과정이다.


여덟 번째가 자해 자살 소동들을 일으키는 것이 경계선 장애의 특징이다. 자해로써 주로 면도날로 손목을 긋는 것 혹은 담뱃불로 자신의 몸을 찌지는 것 혹은 송곳 혹은 바늘. 침으로 자신의 몸을 찌르는 것 등이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는 것은 그러한 통증에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무감각하다는 것을 자주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으로 G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그녀는 할머니 집에서 지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재혼을 한다는 말에 밧줄에 목을 메어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할머니가 제지를 해서 막을 수가 있었다. 이후에 그녀는 자살 시도는 없었지만 자주 커터 칼로 그녀의 손목을 그었다, 그녀는 그 사건을 이야기를 하면서 아프기는 했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한 35세의 기혼 여성은 그녀의 손가락을 담뱃불로 찌지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고통에 대한 반응이 없었다고 토로 했다. 면도날로 손목을 그은 적이 있다는 24세의 H군은 면도날로 손목을 그었을 때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대부분이 이런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하다고 말을 한다. 거꾸로 마음이 안정되고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세계적인 대가의 한 사람인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밴드 콜크(Van der Kolk et al., 1996: 주㈜: 참고)  마음의 상처 스트레스: 몸과 마음에 가해진 압도적인 스트레스의 상처 경험의 결과들 이라는 저서에서 최근에 실험실에서 밝혀진 것으로 몸에 자해를 가할 때 우리의 인체는 그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앤돌핀(인체 내부 호르몬과 모르핀의 조합어로 엔도르몰핀의 뜻)이라는 자연 마취제가 16mg이 방출된다는 것을 생리학적으로 밝혀냈다. 자해로써 피가 흘러내리거나, 담뱃불로 찌질 때 고통이 아닌 무감각으로 느끼는 것은 인체내부의 마취제 때문이고 그리고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것은 평소에 죽음의 무감각에서 피를 보거나 고통을 통해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 붙여서 자해를 하는 그 행동 자체는 자신의 마음 속에 억압되어져 있는 노여움과 적대 감정과 분노에 대한 처벌로써 부모님에 대한 분노가 자아 쪽으로 흘러간 것으로 본다 고로 그 자신은 자해로써 자신을 처벌했기 때문에 죄의식이 감소되고 반대로 외부의 대상에게 주의 관심을 끌어내어 동정심과 측은지심을 유도하는 이중의 포석이 깔려 있다고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치료의 과정은 그 사람의 내면에 깔려 있는 그 분노, 적대감정, 노여움, 짜증들의 좌절 공격들을 구두어라는 말을 통해서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말로써 풀어 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분노를 표현하는 건강한 방법을 다시 습득을 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위에서 기술한 의사 소통의 방식을 동원해서 말로써 분노를 표현하게 되면 신체적 긴장이 풀리고 긴장과 분노를 몸이 밖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는 마음의 원리를 깨닫게 해준다.


아홉 번째는 현실 검증 능력은 존재한다. 완전히 현실 검정 능력이 없고 현실과 상상을 구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꿈과 현실을 구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신증으로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들이다. 그러나 경계선 장애는 꿈과 현실, 상상과 현실을 구분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경계선 장애자들이 정신분열증(조현병)에 가깝지만 걸어 다닐 수 있고 가벼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정신분열증 이라고 불렀다. 걸어 다니는 정신분열증은 약한 정신분열증을 지칭한다. 통원 치료로써 분석 치료가 가능한 사람들을 통틀어서 지칭을 했다. 지금은 걸어 다니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는 1980년에 DSM-Ⅲ 이후에 사라졌다. 대신에 경계선 장애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자아의 현실 검정 능력은 존재하지만 자아가 연약해서 조그만 좌절에서 참을 수 없어서 폭발하거나 좌절에 참을 수 없어 조그만 장애물에도 치료를 그만 두고 떠나는 빈도수가 많다.


치료자로부터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은 조현병 혹은 경계선 장애자들은 6개월의 치료 계약에서 40시간을 넘어가면 성공적인 치료를 예진을 하게 된다. 그런데 40시간 가까이 가면 조그만 좌절에 굴복해서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들을 흔히 보게 된다. 치료자는 앞에서 소개를 한 것처럼 약 20시간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이 치료 회기 시간에 다루어지면서 제일 먼저 어머니와 소통을 하도록 한다. 치료실에서 치료자와 나눈 대화들을 어머니에게 그대로 전달해서 어머니와 관계를 좀더 가깝게 하고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털어 놓고 소통을 하도록 한다. 그 다음에 아버지와 관계를 바로 세운다. 그런데 어머니를 통과하고 아버지와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소통을 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서로 갈등으로 폭발하게 되면서 그 좌절에 굴복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L군은 21세로 대학 1학년 휴학생으로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가 부모님의 소개로 치료자를 찾아왔다. 어머니와 의사 소통을 성공적으로 통과를 했다. 이후에 아버지와 관계에서 L군은 늘 아버지가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무감각해 보인다 혹은 L군에게 무관심하다라고 불평을 해왔었다. 치료 시간이 30시간이 지나가면서 치료실에서 의사소통 연습 후에 아버지와 대화를 요청을 했고 아버지와 2시간 정도 소통에서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할아버지)의 사망으로 8살 때 혼자서 독립하기 위해서 도시로 나와서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실을 처음으로 들게 되었고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살아 남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 남기 위해서 감정을 참고 분노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아버지의 실토를 처음으로 듣고 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을 하고 울었다고 실토를 했다. 성공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의 감정에 놀래서 치료를 중단을 하고 절에 가서 마음 수양을 받겠다고 치료를 떠나가버렸다. 그는 치료자에게 이러한 어려운 관계를 부딪치면서 너무 힘들고 치료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좌절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를 했다.

 

21세의 M 양은 대학 1학년을 휴학을 하고 1년간 심리치료를 받다가 효과가 미미해서 치료자를 찾아왔다. 치료 회기가 40시간의 가까워 오면서 어머니와 대화를 가지려고 하는 것에 놀래서 치료를 중단하고 말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맞벌이로써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부모님은 M양을 전적으로 외할머니 손에 완전히 맡겨두고 경제적인 지원만을 해주었다. 겨우 토요일에 어머니가 한번 와서 M양을 만나고 생활비와 부식을 장만해주고 가버린 것이 밝혀졌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때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M양은 부모님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지만 직접 M양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직접 다가가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어느 정도 치료자와 대화를 하는 내용이 쌓이면서 충분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어머니와 그리고 아버지와 직면해서 대화를 하도록 도와준다. 직면이 없이는 소통의 문제는 뚫고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를 하면서 어머니를 초대를 해서 지금까지 약 35시간의 M양의 문제의 핵심을 이야기를 하자고 약속을 했지만 M양은 그 직전에 치료에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열 번째는 게임 중독이 경계선 장애의 특징이다. 모든 게임 중독자들이 다 경계선 장애는 아니다 그러나 경계선 장애는 반드시 게임 중독이 등장한다는 것이 치료자가 37년 동안 심리치료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과거에 게임 중독 대신에 백일몽을 주로 다루었다. 그런데 1950년 이후에 컴퓨터가 등장을 하면서 백일몽으로 혼자서 상상 속에서 즐거움을 얻는 대신에 편리하게 컴퓨터의 게임이 등장해서 대신해주게 된 것이다. 게임에 빠지는 젊은이들은 혼자 있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심심하지 않고 게임의 세계 속에서는 자신이 왕이고 왕자이고 대통령이 될 수가 있다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치료자에게 털어 놓았다.


그들은 게임 속에 들어가면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하루에 10시간씩 게임을 하게 되면서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게임을 하다가 낮에는 학교에 가서는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졸면서 공부에는 흥미가 없게 되어 공부와 담을 쌓게 된다.  그들은 한결 같이 게임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그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면 대인관계에 도움을 주지 않는가? 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채팅 혹은 문자 메시지로 대화를 하는 것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의 기술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잘 모른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서로 눈을 맞추고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대인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시선 공포증으로 눈을 맞추기 어렵다. 그리고 상대방의 얼굴 표정에서 기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에게 거부감, 불편함을 피드백으로 인지하게 된다. 그들은 상대방의 눈치, 비위에 천재적인 예민함에 귀신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표정어를 읽으면서 대화를 하는 것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로써 상대방의 얼굴 표정에서 그 자신의 마음이 피드백으로 반사되어진다는 것을 모른다. 그 자신의 마음이 상대방에게 반사되어 상대방이 자신에게 그의 감정의 표현을 비추어준다는 것을 모르고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 밝지 않거나 표정이 일그르지게 되면 상대방이 그를 거부하는 것으로 그리고 어떻게 그것에 대화를 진행해 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피하게 되고 도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그러한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인터넷 게임에서 빠져 나오면 현실은 시궁창으로 그들이 하는 전문 용어로 현시창이 된다고 한다. 게임은 가상 현실이고 상상의 세계이지 현실이 아니다. 결국 그들은 게임이 편하고 그곳에서 자신감이 올라가고 즐거움을 제공하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 자신감은 거짓 자신감으로 개임 속에서만 자신감이 상승하지만 현실에서 적용이 되지 않는. 고로 백일몽에 빠져서 자신의 자아를 과대망상으로 상상 혹에서 살았던 과거의 정신증 환자들이 지금은 게임 속에 빠져서 현실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세계 보건 기구인 (WHO)에서 인터넷 게임을 중독병으로 인정을 했다는 TV와 언론 보도를 소개하고자 한다(MBC, 2019, 5, 26. 이필희 기자).


세계보건기구는 게임을 얼마나 오래하고 자주 하는지 자신의 의지로 멈출  있는지를 게임 중독 기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게임에 대한 통제 능력이 손상되고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태가 1 이상 계속되면 게임중독이라는 겁니다.특히 증상이 심각하면 1 이내라도 게임중독 판정을 내릴  있다고 봤습니다 같은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에 따라 우리 보건당국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10개의 진단 기준은 한 사람이 모두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5 개 이상을 가진 경우에는 경계선 장애로 진단을 한다(DSM -). 경계선 장애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의자이자 정신분석가인 건드선은 경계선 장애라는 것이 신경증보다는 심각하고 정신증 보다는 덜 심각한 사람들의 모든 장애자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정신장애의 쓰레기 통으로 통하고 있다는 말로써 21세기에는 경계선 장애 혹은 영어의 글자 그대로 보드라인 장애로 불리는 것 보다 자아의 장애 인격장애, 성격장애로 불리어야 마땅하다고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치료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21세기에 등장한 정신 장애로써 자아 장애 혹은 보드라인 장애 혹은 보드라인 성격장애 등의 이름으로 많은 글들과 홈 페이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번에는 경계선 장애라는 우리나라 말로써 이 장애에 대한 역사와 증세들의 특징과 치료의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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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남가주 정신분석학교의 주소:

 Southerrn Calfornia Psychoanalytic Institute,

9024 Olymphic Blvd.

 Beverly Hills, Ca. 90211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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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Coles, 1970). 에릭슨: 그의 연구의 성장

몰러(Mahler, 1975). 인간 유아의 마음의 탄생

컨버그(Kernberg). 보드라인 성격장애 치료(1999),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 대상관계의 응용(1980), 전이 중심 정신분석 심리치료(1998), 보드라인 조건과 병적인 나르시즘(1975), 심한 성격장애들(1984), 대상관계 이론과 임상적 정신분석(1976)

마스트슨(Masterson). 보드라인 어른의 심리치료(1976), 참 자아를 찾아서(1988), 나르시즘과 보드라인 장애(1981), 청소년의 정신의학적 딜레마(1967), 자아 장애들(1995)

건드슨(Gunderson). 보드라인 성격장애(1984), 보드라인 성격장애: 치료 안내서(2001)

모델(Model). 사적인 자아(1996), 다른 시간, 다른 현실(1996), 새로운 맥락의 안에서 정신분석(1984), 상상과 의미 깊은 뇌(2006)

건튜립(Gruntrip,1993). 자아분열: 대상관계와 자아

밴드 콜크(Van der Kolk et al., 1996). 심리적인 상처 스트레스: 몸과 마음에 가해진 과도한 압도적인 경험들의 결과들

스테인버그(Streinberg, 2000). 거울 속에 낯선 사람

울프(Wolf, 1988). 치료되는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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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치료자가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정신분석 심리치료 홈 페이지에서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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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경계선 장애의 전형적인 치료 사례로써 대인관계가 어렵고 인터넷에서 채팅으로 만나서 전화와 인터넷 채팅으로 3시간-4시간씩 열렬하게 사랑한 23세의 한 젊은 여성이 그 대상을 만나서 몇 시간 만에 대화와 소통의 결함 때문에 헤어진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사이버 사랑의 허무한 종말을 맞은 23세의 여성 L


증세: 인터넷 동호회 채팅 방에서 만난 오빠를 열렬히사랑했으나 현실의 만남에서 버림받음으로 끝났음


접촉: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음


진단:  경계선 성격장애, 회피적 성격장애, 대인공포증


치료 기간: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한 후에 주 1회 치료에 3시간씩 2개월 째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의 과정

 L양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간호사로 큰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같이 근무를 하는 A 간호사와 B 간호사 사이에 갈등에 L양이 참지를 못하고 스스로 그 병원을 그만두고 나와서 다른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결국은 그 병원도 그만두고 지금은 지방에서 혼자서 근무를 하는 일자리를 구해서 혼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L양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로 얼굴이 익혀지게 되고 친밀감이 생기려고 하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해아리고 다른 사람들의 비위, 눈치를 맞추는데는 전문가였다. 치료자한데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치료자의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그리고 다른 사람의 비위, 눈치는 하늘 같이 해아리면서 정작 그녀 자신의 마음 즉 자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비하해서 그 열등감 때문에 자신의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몇 회 치료 회기를 지나면서 분석할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고 보낸 e-메일과 두 번째 치료 시간 약속을 하면서 치료자에게 보낸 e-메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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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지금 이 시간...교수님께 글을 적지 않을 수 없네요

 

 

보낸날짜

2009 11 20일 금요일, 오전 04 02 19 +0900

 

보낸이 https://t1.daumcdn.net/mail_image_src/08mail/i_minus.gif

 

 

받는이

<jongmankim@hanmail.net>

 

 

 

초면에 죄송합니다. 무작정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김종만교수님 되시죠? 인터넷에서 회피성성격장애를 검색해보다가 이틀전에 교수님 사이트를 알게되었습니다.

거리만 가깝다면 당장 교수님께 달려가 상담을 받아보고 싶더군요..

사이트에 정리된 글들을 읽으며 교수님이라면....교수님이라면......옳은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서른둘의 미혼인 여성입니다. 잦은 이직과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 가보았습니다.

테스트결과 회피성성격장애와 우울증진단을 받았습니다. 항우울제처방을 받았으나 심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주일간만 복용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 성격장애와 성폭련관련해서 상담치료를 받고싶다고 말씀드려서 전문심리상담선생님과 주1 50분간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4번째 상담을 다녀온 상황이고요, 그런데.......절박해서 찾아가긴했지만, 너무 이른 판단이긴 하지만 상담선생님이 절 불편해하는 것

같고 저또한 전적으로 의지가 되지가 않습니다.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너무 일찍 제 깊은 가슴속을 밖으로 억지로 들여내려는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화요일에 처음으로 성폭력에 대한 구체적 정황들을 설명해야만 했거든요...

제가 말문을 열기전 그냥 저 혼자 알고만 있으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얘기를 했는데 약간은 꾸짖듯 또 회피하려고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그 때 제 마음이 경직된 듯합니다물론 그 선생님은 경력도 20여년이상 되시고 성폭력피해자상담도 전담으로 많이 하셨지요..

그래서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었지요...이것이 그 선생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저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선생님방식으로만 상담을 이끄시는 것만 같아 제 마음의 문이 닫히려합니다.

이 시점에 교수님사이트의 여러 글들을 읽다보니 배경음악 때문일까요.....위로가 되었고.....많이 울었습니다. 소리내어 오랫만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고 언제 한 번 꼭 찾아뵙고 상담을 받고 싶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상담받고 있는 선생님께서는 1년여 정도를 함께 지속적으로 상담해나가자고 하십니다.

저도 상담치료는 꾸준히 받을 계획입니다. 그 선생님을 폄하하거나 부정할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한 분야의 전문가라하더라도 분명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기에 심정적으로 마음이 편하고 의지가 되는 상대는 따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상담자입장에서나 치료자입장에서나요...

바쁘실 것 같아 짧게 쓰고 싶은데...누군가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지금은 불가능하기에 친구든..가족이든...

더욱이나..새벽인 이 시간에는...포장된 목소리라도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네요...

교수님...가능하다면.....물론 비효과적일테고 무의미할 수 도 있지만...

교수님...가능하다면....저에게 이메일로나마 상담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전화상담또한 정해진 시간내에서, 기본적으로는 불가하며 위급시에만 가능하다는 내용의 글을 봤습니다.

저는 지금 전주에 있습니다. 서울이나 부산은 못해도 3시간, 상담소까지 직접 찾아가려면 그 이상이기에 주1회 찾아뵙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2~3주에 한 번 찾아뵙는 방법을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 또한 지속적인 상담은 어려울 것 같고요...

너무 염치없고 무례한 말씀을 드리고 있다는 것 저또한 잘 압니다.

지금 이 곳에서 길을 모색하고 현재 상담선생님과의 상담에 더 집중하고 믿어야 함을 또 압니다.

언제고 한 번은 찾아뵙고 싶습니다... 교수님이 명확하게 저의 본마음과 속사람을 끄집어내 주실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너무 추상적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위장하려는 저를 부끄러워 하지 않은 채로 교수님에게 객관적인 진단과 설명을 들어 보고싶습니다.

저는 말로 저의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하는데 많이 서툽니다. 그나마 이렇게 글을 쓰는게 제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수단이지요..

눈으로 보이니까 안정이 되고 지웠다 쓸 수 있으니까 안심이 되는 그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압니다. 이메일상담이라니...어렵겠지요...?

교수님얼굴을 직접뵙고 눈을 마주하고 얘기를 할 자신이 현재로서는 있습니다.

혹시라도 허락하신다면 상담소를 직접 찾아가 일회성상담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 죄송합니다...이런 이메일도 한두통 받으시는 게 아닐텐데.....

교수님얼굴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답장을 못하셔도 홈피 자주 가서 글도 다시 찬찬히 보고 힘을 내볼께요..

언제고 교수님께 정식으로 상담받을 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건강하십시요..!

 

별 표시하기

김종만교수님 두번째 보내는 메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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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날짜

2010 2 27일 토요일, 오전 01 19 30 +0900

 

보낸이 https://t1.daumcdn.net/mail_image_src/08mail/i_minus.gif

 

 

받는이

"김종만" < jongmankim@hanmail.net>

 

 제 첫번째 메일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방금 전에 교수님이 주셨던 답장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11월에서 2월말

불과 석달전인데 그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지네요

교수님께 심리치료를 받고 싶어서 준비 중인데

다행히 일을 시작했고 이제 일주일이 지나면 만 두달째가 됩니다.

첫 한달간은 일 새로 익히느라 긴장한 탓에 제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다시금 불안한 제 자아가 얼굴을 내미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조금을 두려운 마음이 들어 교수님께 메일이나마 써봅니다.

소개해주신 교수님의 책 ''는 그 당시에 바로 인터넷직거래로 구할 수 있어서 매일

읽어보았습니다. ...! 이래서 내가 그렇구나 라고 깨치게 하는 내용도 있었고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데..라는 내용도 있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나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제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었어요

정식으로 치료를 받으면 될 것 같은데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네요

다른 무엇보다도 내 정신, 마음, 자아가 중요하고 치료가 우선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려해요

제대로 하루라도 온전히 자유롭게 나답게 살고싶으니까요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새로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밝고 아무 걱정없는 나로 보이려 애쓰게 돼요

그래서 더 깊은 곳의 진짜 나는 너무 외롭습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제 자신이 너무 가엾습니다.

진짜 나는 정말 일곱살 어린꼬마얘 같은데 서른 셋, 성인으로 살아가려니 너무 벅차요...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겠어요..

철없다..너만 힘든 거 아니다..인생이 다 그렇다...

살면서 누군들 우여곡절 없었겠니...

누군들 아픔이 없겠니..

스스로 이겨내야하고 감내해야한다..

전 아직 세상에 나올 준비가 안 됐는데 전 아직 걸을 준비가 안 되었는데

연극을 하듯......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너무....안 됐습니다.

얼굴을 모르는 교수님께 이 밤에 겨우 메일로 이렇게 제 안을 조금이나마 열어내

답답함을 풀어봅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몸짓하나 손짓하나에

의미없는 말 한마디에, 목소리톤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불안해하고 감정이 복잡해지고

다 벗어나서 안전하게 나 혼자인 곳, 혼자인 시간만을 원하게 되는 나를

이제는 바꿔놓고 싶습니다.

이렇게 뒤죽박죽...겨우겨우 한 달, 1년을 버티며 사는 것을 멈추고 싶습니다.

내가 나를 껴안고 당당히 눈을 마주치고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그렇게 진짜 나로 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세상에 적응하는 유전자가 저에게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사람과의 어울림을 즐기려는 욕구, 만족감, 행복감이 저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난 왜 다른 게 눈에 보일까요? 다른 게 귀에 들릴까요? 왜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요?

저의 관심사는, 저의 가치관은 왜 많은 사람들과 다를까요..

가장 큰 문제이면서 근본된 문제는 불안한 제 자아인 것 같습니다.

한번도 진짜 나를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글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사람으로 외롭다는 느낌도 아닌 길가의 작은 돌멩이같은 외로움이랄까요.

저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지금 이순간 절실 한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이 나의 엄마이거나 아빠이거나 가장 가까운 친구이거나

그도 아님 내가 믿지 않는 신이거나...그들 중 하나였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 누구도 아닌 교수님뿐이네요...

다음주나 그 다음주

3 4일이나 11일 목요일에 혹시 교수님을 서울에서 뵐 수 있을까요?

2시간정도 일회성 상담을 혹시 허락해주실 수 있는지요?

제가 목요일에 쉬거든요..급작스럽게 말씀드리게 되어서 어렵겠지만

가능하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마음을 다잡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길, 그 방법을 교수님이 좀 도와주세요...

그 어떤 말씀이라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양은 그녀가 지금까지 만난 남성들 가운데서 그녀를 좋아해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 4-5명의 남성들 중에서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진실로 좋아하거나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다른 남자들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녀가 사귀게 되었지만 결국은 그녀 스스로 그들을 포기했다. 그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진실로 사랑한 사람은 그녀보다 6살 많은 남자로써 K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녀와 K와의 사랑은 사이버 사랑이라는 것을 치료자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알 게 되었다.


 L K씨의 사이버 사랑 관계는 K씨가 만든 인터넷 음악 동호회에 L양이 가입을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L양은 그 음악 동호회에서 듣는 음악들이 좋았다. 그 음악 동호회에서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 채팅을 할 수 있어서 그녀가 그 음악 동호회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동호회의 멤버들은 모두 약 20여명이 되었으나 정기 모임에 참석을 하는 멤버들은 6-7명 정도가 되었다. 그들 중에 그 음악 동호회를 만든 K씨가 그녀와 나누게 된 채팅에서 L양은 K씨를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L양은 동호회의 채팅 방에서 개인적으로 비밀스러운 일대 일의 대화방에서 다른 멤버들이 그들의 대화를 듣거나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 제일 좋았다.


 L양은 초, , 고등학교 시절에 대인관계가 전혀 되지 않고 마음의 문을 꼭 닫아 버리고 살아왔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속 마음을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감정이 없는 돌맹이"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아무런 감정을 느낄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정이 없는 무감각의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고 그녀 자신이 실토를 했다. 그러던 그녀가 K씨를 만나고 그와 인터넷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가 처음으로 이성으로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 아름다음 사랑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불과 2개월 동안에 나눈 사랑이었음을 치료자가 알 게 되었다. 실제로 그녀와 K씨가 인터넷 음악 동호회에서 서로 안면을 나누게 된 것은 약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K씨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그녀 자신의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이 불과 2개월 정도였다는 것을 치료자가 알 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L양은 학교 수업 시간에는 혼자서 상상 속에 빠지곤 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한 작가는 헤르만 헤세로써 그의 작품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의 작품들만 집중해서 읽었다고 했다. 헤세의 작품들은 L양의 이야기를 빌리면 이상화, 이상적인 상상의 세계가 특징이라고 했다. 특히 헤세의 작품 중에 "싯탈다" 즉 부처님의 젊은 시절을 그린 작품에 빠져서 청년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녀는 그 작품 속에 주인공인 부처님을 그녀가 사귀던 오빠인 K씨에게 투사를 해고 그 투사된 이상적인 인물을 동일시를 했다는 것을 그녀의 분석을 통해서 치료자가 알 게 되었다.


 K씨와 그녀가 서로 인터넷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나중에는 전화로써 서로 연결이 되어서 L양은 K씨와 거의 매일 같이 하루에 몇 번씩 늦은 저녁 시간에 서로 2시간-3시간씩 통화를 했다고 했다. 어떤 내용들을 통화를 했느냐는 치료자의 물음에 그녀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했다. 그것이 서로 인터넷에서 만나서 약 5개월을 지난 시점이었다. 그녀는 오빠 K씨와 전화를 하는 그 시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태어나서 그렇게 행복한 시절이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L양은 K씨가 그 당시 대학 4학년 졸업반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그가 취업 인터뷰를 하려고 서울에서 충청도에 내려 온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지방에서 비행기를 처음으로 타고 용감하게 청주 공항에 마중을 나가게 되었고 공항에서 만나서 처음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인터넷 음악 동호회에서 사진으로 K씨의 얼굴을 보았지만 실제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K씨를 키도 작고 얼굴도 잘 생긴 미남은 아니고 보통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K씨는 헤세의 작품 속에 나오는 부처의 모습처럼 이 세상에 태나나서 그런 멎진 오빠는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오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스스름없이 마음이 넓고 따뜻하고 모든 것을 배려해주고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다른 남자들로부터 K씨처럼 그녀에게 위로와 따뜻함과 배려를 해 준 남자가 없었다고 했다. 분석에서 알 게 되었지만 L양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은 그녀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 그녀의 소망이었음을 나중에 알 게 되었다. K씨의 이러한 이 배려, 따뜻함, 주의 관심을 그녀에게 집중하는 것 등이 L양의 심층에 소망을 일께우게 된 것이었다.


 K씨가 입사 인터뷰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그녀는 K씨를 회사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 시험이 끝난 후에 K씨와 L양은 고속 버스를 타고 서울로 함께 올라오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는 그 음악 동호회의 전국 멤버들이 서로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치료자는 그녀와 K씨가 고속버스를 약 3시간 정도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를 물어보았다. L양은 그 오빠를 만나기 전에는 전화로 2시간-3시간씩 온갖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으나 그러나 실제 K씨와 만난 후에는 서로 이야기가 별로 없었고 서울로 올라오는 3시간 동안 고속버스 안에서 서로가 너무 껄끄러웠다고 실토를 했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몇 마디 인사 정도만 하고 그냥 별로 말이 없이 올라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에 그 음악 동호회의 멤버들이 6명정도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눈 후에 저녁 시간에 모두들 K씨의 하숙방에 같이 가기로 했다고 했다. L양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은 서로 화기애애 하게 의사 소통이 잘 되었으나 L양은 그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고 껄끄러워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무 늦어서 모두들 K씨의 하숙방(원 룸)에게 잠을 자기로 했다. L양은 멤버들이 모여서 그날 저녁에 맥주 파티를 했는데 그녀는 맥주를 한잔 정도 마시고 잠이 와서 일찍 잠자리게 들었다고 했다. 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음을 알고 외톨이가 됨을 느끼고 있었다.

 

 그 다음 날에 그녀는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 다음 날 저녁에 K씨를 만나려 저녁 때 K씨의 원룸으로 찾아갔다. 그녀가 찾아가도 좋겠느냐는 요구에 K씨는 좋다고 했다. 정작 저녁 때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났으나 두 사람 사이에는 껄끄러움, 불편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오빠와 같이 그 날 밤을 자고 가고 싶다고 요구를 했다. K씨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L양은 서울에서 음악 동호회의 첫 실제 만남에서 그 동아리의 멤버들이 모드 L양이 K씨를 좋하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모두들 L양이 K씨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L양이 서울에서 멤버들을 만났을 때 그 멤버들 중에 나이 많은 한 남자분이 L양에게 슬쩍 K씨는 L양이 이성으로 여성으로 보이지 않고 그냥 친한 친구로만 보인다는 말을 슬쩍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L양에게는 별로 귀담아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K씨를 이상적인 신과 같은 인물로 보였고 K씨가 그녀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간에 그 시점에서 그것은 그녀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K씨와 L양의 단독으로 저녁에 만났을 때 L양은 K씨를 끌어 안고 얼굴에 키스를 했다. 그러나 K씨는 반응이 별로 없었다. 기습적으로 키스를 당했지만 K씨는 L양에게 그냥 편안하게 잠을 자라고 했을 뿐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을 그렇게 보낸 후에 L양은 집으로 쓸쓸하게 귀향을 하게 되었다. K씨의 마음은 나이 많은 한 멤버가 전해준 것처럼 그녀를 여성으로 좋아하지 않고 그냥 친한 여동생처럼 이성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 이후에 몇 번 K씨를 잠깐 만나고 편지로 혹은 메일로 K씨에게 결혼을 하고 싶다, 혹은 K씨의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등으로 메시지를 보냈지만 K씨의 반응은 실제 만남 이후에는 다정다감한 따뜻한 배려나 돌보아주는 느낌이 없다는 것을  L양이 터득하고 깨달은 이후에는 서로 간에 전화나 메일은 점점 줄어들어갔다. 그 이후에 K씨의 마음을 알고 나서 L양은 홧김에 그녀의 전화 번호와 휴대폰을 모두 바꾸어 버렸다. 물론 인터넷 음악 동호회의 멤버들과 소식을 주고 받는 것을 차단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후에 서로간에 연락이나 소식은 듣지 못하고 6년의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L양은 33가 되었고 그녀의 첫사랑의 추억은 그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을 해 보았던 첫 사랑이었고 그 이후에는 어떤 남자들과도 사랑을 해보지 않았고 앞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치료자에게 그녀도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e-메일 메시지를 보낸 것이 기억이 났다.


이론적 근거

 L양은 사실 혼자서 짝 사랑을 한 것이었다. 그녀가 K씨를 마음 속에 새겨둔 이상적인 남성 인물에 투사를 해서 그 이상적 인물을 동일시한 것이 드러났다. 그녀는 사춘기 때 이성 관계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늘 헤르만 헤세의 작품 속의 시탈타 즉 부처의 이미지를 이상적인 이성, 이상적 남성으로 그려 놓았을 뿐 실제 남성들과 교제나 이성관계가 전혀 없었다. 그 이상적 인물에 K씨를 동일시 시켜주 맞춘 것이었다. 현실에서 대인관계에 갈등들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서 빠질 때 현실에서 고통이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것은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정신분석 전문가들이 밝혀낸 것이다.


 실제 K씨는 외모나, 키 등으로 볼 때 보통 이상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녀가 매력을 느낀 것은 K씨의 배려, 따뜻함, 돌보아주는 느낌들 등에 매혹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그 음악 동아리 멤버들은 모두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반응을 해주었고 격려를 해주었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처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러한 관심, 배려, 따뜻함을 느끼고 그녀의 마음의 문에 열린 것이었다. 그러나 것이 전부일 뿐 실제 K씨는 처음 전화로 서로 하루에 몇 번씩 2시간-3시간씩 이야기를 한 시점에서는 서로 마음이 통해서 사랑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였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연 것은 분명했다. 만약에 그 시점에서 K씨의 마음의 문에 열리지 않았다면 K씨가 L양에게 2시간 혹은 3 시간씩 전화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던 것은 사실로 보였다.


그러한 그 사랑이 "사이버 사랑"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이버 사랑은 실제 만나서 얼굴을 서로 맞대고 하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고 채팅으로 e-메일로만 주고 받는 대화이기 때문에 특히 대인관계가 잘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실물을 직접 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껄끄러움이 없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상상으로 실제 인물을 첨가하고 이상화로 만드는데 안성마춤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따뜻한 배려, 따뜻한 돌봄은 L양의 마음 속에 있는 이상적 인물 즉 이상화된 상상의 인물인 싯탈다 즉 부처의 이미지를 K씨에게 씌우기 쉬웠다. 인터넷 중독에서 영(Young) 박사가 지적을 한 것들이 이점을 분명하게 해 준다.


 다음은 인터넷 중독에서 영(Young) 박사가 한 말들을 인용을 한 것이다.

사이버 공간의 안전한 천국에서는 당신은 당신의 깊은 느낌들을 나눌 수 있다. 자신의 강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현실 세계에서 보다 더욱 더 열린 마음으로 한층 더 공개적으로 빨리 사람들에게 접근을 한다. 이 만들어진 믿음의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볼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하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당신이 원하는 행동을 어떤 것이든지 할 수 있다. 만약에 당신이 현실에서 부끄러움을 탄다면 당신은 인터넷에 들어가면 외향적이 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현실에서 재미가 없다면 당신은 사이버 공간에서는 위트와 유머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여성이 설명을 했던 것처럼 “나는 현실 생활에서는 말문이 막힙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Young, 1998).


만약에 당신이 인터넷의 채팅 방에 상륙을 하면 일시적인 감정적 이익이 당신을 더욱 더 깊은 애착으로 유혹을 한다. 당신이 채팅 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감정 지원, 돌봄 그리고 용기를 제공한다. 당신이 현실의 생활에서 개발하는데 수년이 걸리는 것을 즉각 제공해준다(Young, 1998).


당신이 당신의 컴퓨터 스크린에서 주고 받는 말로써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의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불러 모아 상상들을 만들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누구인지를 자유롭게 이미지들을 불러 모을 수가 있다. 만약에 그가 그 자신을 좋은 인물로 보이게 기술을 한다면 당신은 유명 배우를 상상한다. 만약에 그가 정직하게 보이고 그리고 온 라인 안에서 달콤한 말을 한다면 당신은 유명 남자 배우인 톰 행크스를 상징을 한다. 그의 목소리의 톤, 그의 눈동자의 응시, 그가 당신의 손을 잡은 방법, 당신은 당신의 마음 속에서 모아서 만든 상상들을 상세하게 그 인물에게 공급을 할 수 있다. 당신은 그에게 당신이 인간으로 만나는 초반기 체크 점수를 자동적으로 통과하는 점수들을 준다(Young, 1998)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종종 당신을 조용하게 혹은 즐겁게 만들기 때문에 당신은 자연적으로 이상적인 사람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생활의 친구들 혹은 잠재력이 있는 메이트들이 거의 당신의 이상적인 기대에 들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 직접 노출이 되었을 때 인터넷 접촉이 완벽함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이다(Young, 1998).


 갑자기 당신의 이상적인 인물과 얼굴을 현실에서 직접 마주 대하게 될 때 우리 앞에 서 있는 인간적인 흠과 불완전함에 조정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비록 우리가 실제로 이 사이버 영웅이나 사이버 여걸을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아직도 다른 컴퓨터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그들의 주체성, 노여움 혹은 상실을 당기는 실질적인 사람들보다 오히려 우리가 창조한 그 사람과 관계됨을  우리의 온 라인 관계에서 오는 상상적인 즐거움들을 선호하고 원하게 된다(Young, 1998).


 L양은 현실에서는 대인관계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친밀관계를 만들 수가 없었다. 고로 인터넷에서는 그러한 대인관계, 친밀관계의 자아 의식이 필요없었다. 그녀가 하고 싶고 소망하고 원하는 말들을 다음대로 할 수 있었다. 고로 자연스럽게 인터넷, 전화 상으로는 자연스럽게 친밀관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접 K씨를 만났을 때는 대인관계 문제가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친밀관계가 잘 되었으나 현실에 K씨와 대면에서는 현실적인 문제가 표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현실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서로 직접 만났을 때 껄끄러움, 불편한 관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 결과 K씨는 L양의 현실적인 문제를 보게 된 것이었고 서로 간에 불편한 껄끄러움은 그대로 남아서 서로에게 장애물로 현실에서 친밀관계를 막아 버리게 된 것이었다.


 L양은 상상 속의 이상적 이미지를 K씨에게 씌워서 K씨를 그녀의 직접 표현대로 "K씨는 그녀에게 신과 같은 인물",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완벽한 남성"으로 존재했다고 회상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직접 직면한 이후로는 K씨는 L양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고 L양이 스스로 혼자서 이상적 인물로 만들고 채색을 하고 혼자서 상상 속에서 좋아한 이상적 연애였다는 것을 분석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사이버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대인관계는 현실에서 실물을 직접 만나서 서로의 감정 소통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넷 중독에서 영(Young) 박사가 여러번 강조한 것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갈등에 직면하게 되고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이러한 고통, 어려움, 갈등을 피해서 도망을 하는 수단으로써 인터넷 사랑, 단말기 사랑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제 해결 과정

 L양은 이제 이 문제를 직면, 대면하고 현실적인 대인관계, 마음을 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치료자에게 1주일에 1 3시간씩 (보통은 2시간이지만 L양은 너무 먼 곳에서 이곳에 치료를 받으러 오기 때문에 3시간으로 조정을 한 것임)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어디에서 그녀가 결함이 생긴 것인가? 에 대해서 알고 가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모든 갈등, 고통, 어려움들을 혼자서 삭이고 혼자서 억압해 왔음이 드러났다. 그녀는 친밀관계, 대인관계를 하는 방법을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는 것을, 그리고 타인을 배려고하고 우선적으로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우선적으로 내 자아를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자아를 키우는 과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고통, 갈등, 괴로움 등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써 상대에게 소상하게 표현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어서 내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상대가 내 이야기에 주의 관심을 가져주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내 자아가 자라게 되고 내 자신감이 커지게됨을 알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나의 이야기가 상대에게 가치있게 받아들려지고 소중하게 다루어짐을 느낄 때 나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피드백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 아기와 엄마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영(Young) 박사가 인터넷 중독에서 강조한 것처럼 많은 시간이 걸린다. L양은 이제 이러한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고 먼 거리에서 1주일에 1회에 3시간 씩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즐거워하게 되어가고 있다. 그녀는 치료자와 3시간의 치료 시간이 마치 30분 정도로 느끼지고 치료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그녀의 느낌들을 이야기하고 치료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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