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에 천국과 지옥이 뒤바뀐 두 남자
치료자(필자)가 소개를 하려고 하는 두 사람의 남자는 60대에서 70대의 남자들로써 노후에 접어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에는 남부럽지 않는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가족 구성원들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치료자가 그들을 소개하려고 하는 이유는 인간의 내면의 심리적인 면들이 얼마나 미묘한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아를 모를 때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 를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좋은 일이나 불행한 일들이 닥치면 그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행운 혹은 불행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이러한 주장으로 인간의 내면의 심리적인 상황들을 마음의 눈이라는 현미경으로 내면의 심리를 파 해쳐서 그것을 밝혀낸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의 결정론(determinism)(주㈜: 모든 이벤트들은 이전에 존재 했던 원인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2018, 10, 27, 위키피아에서 참고)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제 치료를 하면서 36년 동안 그의 길을 따라가면서 이 두 사람의 심리적인 면들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치료자가 위의 두 사람을 잘 알게 된 것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인 A씨는 70대 중반으로 그의 장남인 30대 후반의 아들인 Z씨를 11년 동안 심리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에(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인 B씨는 60대 중반으로 그의 차녀인 C 부인이 결혼 전에 4년 6개월 그리고 결혼 후에 5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치료를 재개 해서 2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다) 그들을 통해서 그들의 부모님의 삶의 과정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족들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그 사람이 가족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관계를 끊어버렸다고 해도 그는 마음 속에서 이미 가족 관계의 이미지상 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어린 시절부터 양육의 과정에서 머리 속에 입력된 가족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의 관계는 내가 살아왔고 그리고 살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은 가족 관계가 단절되거나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은 아니다.
Z씨와 C부인은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들이 치료실에 오면 치료자는 반드시 1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라고 질문을 한다. 치료자는 이미 치료 시작 때 치료 회기가 시작되면 그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는데 그러한 질문은 1주일 동안에 있었던 좋은 일, 나쁜 일 혹은 새롭게 생각이 났던 일들 그리고 궁금한 일들 그리고 사람들과의 갈등들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자유연상). 그 이유는 현재의 문제를 먼저 다루고 그리고 과거의 문제들을 다룬다는 치료의 원리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현재의 문제도 과거의 경험들과 연결되어져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경우에는 지난 시간에 우리가 다룬 어린 시절의 상처들과 관계들 다루는 방식으로 치료를 진행을 해 나간다. 정신분석에서는 과거를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자아를 다루기 때문이다. 지금 내 자아는 과거의 경험의 총합이 아닌가? 즉 자아는 확고한 나의 주체성으로 현재의 내 존재를 유지하고 있고 그리고 나의 현재를 결정하고,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치료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부모님에 대해서 치료자가 소상하게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미국에서 심리치료 분야에서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인턴 과정을 미국에서 마쳤다. 치료자가 대학원과 인턴 때까지 가족 치료를 전공했다. 치료자는 가족 치료가 증세들을 치료 하는 데는 효과가 있는데 문제의 근본 뿌리를 제거하는 데는 2%의 부족함의 느낌 때문에 정신분석으로 전공을 바꾼 사람이다. 가족 치료의 과정에서 치료실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의 기분을 들어 올리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어서 긴장을 풀어 내서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구성원들과 상호관계에서 가족들의 몇 마디가 그 사람의 기분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수 없이 경험을 하면서 가족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오는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시키기 위해서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를 제외한 대학생 이상의 사람들은 부모님의 영향에서 나와서 독립된 생활을 하도록 권유를 한다. 어차피 건강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부모님의 품에서 나와서 독립된 생활을 해 나가야 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치료자는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95%를 집으로부터 나와서 혼자서 독립심을 기르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는 다시 부모님 집으로 되돌아간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성공적이었다.
Z씨는 치료의 시작 때부터 부모님과 관계를 통해서 Z씨가 너무 많은 부정적인 영향력 때문에 치료자가 부모님 집으로부터 나와서 독립할 것을 권유를 했고 치료 시작 4개월 만에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서 고시원에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 Z씨는 가족들로부터 독립해서 나와서 살고 있지만 항상 추석과 설 그리고 부모님의 생일 그리고 기 제사 등에 참가하게 된다. 그들과 관계를 하고 나서 고시원으로 돌아오면 부모님과의 상호관계가 Z씨에게 미친 영향 때문에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밤과 낮이 뒤바뀐 것 때문에 자연히 부모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알게 된 것이었다. C부인 역시 치료 시작 때 치료자의 권유로 독립해서 나왔고 그 후에 결혼으로 자연히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명절과 부모님의 생일 등의 경우에는 방문이나 서로 연락을 통해서 부모님에 대해서 치료자가 소상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의 부모님인 70대 중반의 A씨와 60대 중반의 B씨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A씨는 옛날에 사범학교 출신으로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당시에 교사 생활이 박봉인 것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쳐서 고급 공무원으로 출발한 사람이었다. 그는 40대 중반에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4층짜리 집을 소유했던 사람이고 그리고 지하층에 있던 가내 수공업을 하는 사장의 경리 사원이 돈을 인출해서 잠적하는 바람에 그 사장이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간 수공업을 운영하다가 실패하고 그 집을 처분하고 2층 슬라브 집을 설계하고 손수 건축한 사람으로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장남인 Z씨와 3명의 딸을 둔 가장이었다. 40대 중반에 의사의 권유로 술과 담배를 끊었고 국기도라는 체육관에서 10년 이상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같이 이빨을 칫솔뿐만 아니라 치실으로 이빨 사이를 닦아 내는 사람으로 70대 중반까지 이빨이 한 개를 제외하고 건강한 이빨을 유지한 사람으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인인 Z씨의 어머니는 맞벌이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으로 IMF 이후에 직장 생활을 그만 두고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노후 걱정을 준비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업도록 철저하게 노후 준비를 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에서 정년 퇴직을 하고 그가 젊은 시절에 공무원을 하면서 쌓아온 전문적인 지식으로 xx관리사의 자격증을 얻어서 10년 동안 4명의 직원을 두고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은퇴하고 나서 노후를 맞이하게 된 사람이었다.
이 때까지는 A씨의 삶은 그야 말로 어려움이 없는 완벽한 삶이었다. A씨가 직장에서 은퇴해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던 시점에서 아들 Z씨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Z씨의 어린 시절의 삶의 과정과 발달 단계를 다루면서 A씨의 삶의 과정을 치료자가 소상하게 알게 된 것이었다.
A씨는 30대 40대의 젊은 시절에 그가 고교 시절에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희망을 했다가 A씨의 아버지가 일찍 작고하는 바람에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공무원으로 출발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면 밥 먹고 살기 어렵다는 하소연에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에 Z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토요일 오후(그 당시에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근무) 혹은 일요일에 아들 Z씨와 부인과 그리고 3명의 딸들을 데리고 화구들을 가지고 교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고 Z씨가 회상을 했다. 아들 Z씨와 여동생들은 들판에서 이리저리 뛰어 놀면서 아버지가 그리는 그림들을 구경을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을 했다.
그러나 A씨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포기를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한가지 A씨의 습관이 저녁 퇴근 시에는 늘 탁주 2병을 사가지고 와서 저녁에 혼자서 직장에서 있었던 상사들에게 욕설로 화풀이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습관을 Z씨가 지켜 보았던 것을 회상을 했다. Z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러한 습관에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탁주 이외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지금도 아버지는 탁주를 항상 2명을 마시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술은 입에 데지 않는다. 아버지는 늘 언제나 기본적으로 탁주를 2병을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술을 마시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아들 Z씨를 불러서 술 심부름을 시켰다. 인근에 상점에 가서 탁주 2병 사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러한 술 심부름을 하면서 Z씨는 아버지를 지켜 보면서 성장을 했다. 아버지는 점점 술을 밤새도록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때는 아침에 출근을 할 때 일요일에 마신 술이 들 깬 상태로 직장에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40대 중반에 의사의 권유로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고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소개를 했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아버지는 그림 그리기를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결국은 그 취미 생활을 다시 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Z씨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그림을 그리면 밥 먹고 살기 어려우니 공무원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압, 처벌에도 불구하고 Z씨는 지금은 만화를 포기하고 14년 동안 지금도 동화 책에 필요한 삽화 그림을 그리고 있다.
Z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의 노후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것뿐만 아니라 아들 Z씨가 대인관계가 어려워서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원룸과 백화점에 투자를 해서 점포 세를 받아서 한 달에 180만원씩의 월세를 받아서 Z씨가 그 돈으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었기 때문에 Z씨는 일을 하지 않고서도 180만원으로 각종 세금과 연금들을 지불하고 치료자에게 매달 xxx 원의 치료 비용과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아버지가 준비를 해준 덕분에 큰 어려움이 없이 Z씨는 xxx 동양화 학원에서 6년 동안 다니면서 삽화 그림을 응용한 공부를 하고 있고 그리고 지금도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
문제는 아버지가 정년 퇴직 이후에 10년 동안 운영했던 개인 사무실을 접고 집에서 지내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아버지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쉽게 잠을 잘 수 없다는 어려움 때문에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어머니가 Z씨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10년 동안에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술은 하루에 탁주 2병을 주로 저녁 시간에 마셨다 그리고 담배는 하루에 1.5갑으로 매일 같이 피우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가 시작된 것은 Z씨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시작한 후에 약 5년 전쯤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모든 일에서 은퇴한지 5년 정도 되면서 술과 담배의 시작으로 문제가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하루에 1.5갑을 피우게 되면서 이웃 사람들의 원성을 듣게 된 것이었다. 이웃 사람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담배를 삼가 해주세요 라고 광고문을 붙이고 아파트 입구에 금연이라는 인쇄물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이웃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 어머니가 아버지의 담배를 피우는 것에 제동을 걸게 되었다. 이러한 부부의 갈등 관계가 시작되면서 아버지가 홧김에 술을 더욱 더 많이 마시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의 잔 소리에 아버지는 보복으로 평균 2병의 탁주가 4병으로 6병으로 마시면서 부부 사이에 문제가 확대 되어진 것이었다.
A씨의 부부 사이에 문제는 치료자가 Z씨를 통해서 분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Z씨는 본가의 집을 방문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눈으로 보고 듣고 그리고 그들로부터 받는 심리적인 영향력을 치료 회기 시작에 토해 내면서 치료자가 저절로 분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A씨의 부부 문제가 노후에 재등장 하게 됨으로써 모든 일에서 은퇴하기 이전에는 완벽했던 A씨가 노후로 은퇴하게 되면서 앞으로 A씨가 어떠한 어려움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분석으로 기술되어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A씨의 문제는 잠깐 접어 두고 60대 초반의 B씨의 경우로 돌아가보자. B씨는 9명의 가족 구성원(형제들이 7명)인 가족들로부터 막내로 태어난 자수 성가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그 지역 사회에서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봉사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과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결혼을 해서 3명의 딸과 아들을 둔 가장 이었다.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된 C 부인은 차녀로써 성장을 했다. 그녀가 치료자에게 어린 시절의 발달 단계를 다루게 되면서 아버지와 관계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B씨는 40대 후반에 부인의 사망으로 재혼을 하게 되었고 이 시점에서 몇 년 후에 C 부인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C 부인의 형제들은 막내 남동생을 제외하고 모두 결혼을 해서 분가를 했다. B씨의 재혼한 부인 역시 전 남편의 딸과 아들은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한 상태에서 B씨와 재혼을 하게 되었다. B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런대로 사회적인 존경과 인정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두 번째로 재혼한 부부 관계 때문에 노후에 핵심 문제가 된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것이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부부는 우연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정신분석에서 널리 알려진 분석가들의 부부 치료에서 이미 잘 드러나 있다. 이것에 대한 프로이트의 결정론은 이미 이 글의 초반기에 언급을 했다. 몇 차례의 다른 글들에서 부부 사이에 공모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것들이 있다. 그 글들에서 밝힌 것처럼 부부의 만남은 서로의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에서 등장한 욕구들의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지면서 부부가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치료자 역시 많은 부부 문제들을 다루면서 부부가 만나는 것을 정말 우연으로 보이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우연이 아니다 라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외형적인 외모만 가지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학력, 경력, 직장과 가족구성원들을 고려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주의 관심을 가지는 욕구들이 있다. 물론 이것은 무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인은 모른다. 우리는 흔히 그러한 경우들의 배우자 선택에서 “제 눈에 안경”혹은 “눈에 씐 콩깍지”로 표현을 한다.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경우들을 이야기를 한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된 대학 4학년인 24세의 K군은 키도 크고 핸섬하고 동료 여학생들로부터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보통 동갑 내기 혹은 한 두 살 어린 여성들에게는 별로 흥미가 생기기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구애와 애정 공세에는 관심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가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는 그 보다 10살 정도가 많은 30대의 중반의 여성으로 연상의 여인이라고 했다. 그녀와 4년간 사귀면서 그녀가 이제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K군을 기다릴 수 없으니 선택을 하라고 K군에게 압력이 들어온 것이었다. K군은 난감했다. 나이가 24세로 아직도 군 복무를 하지 않았고 그리고 직장이 없다는 것과 그리고 시골에 살고 있는 공무원인 아버지가 그의 결혼을 승낙해줄 수가 없다는 고민 때문에 치료자를 찾은 것이었다. 치료자는 그가 좋아하는 여성이 어떤 점에서 매력이 있는가?라고 질문을 했을 때 그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포근하고 따뜻하고 감미로움 때문이라고 했다. 치료자가 그의 어린 시절을 분석하면서 K군이 어린 시절인 3세에서 6세 사이에 어머니가 병원을 들락거리는 바람에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두 번째 H양은 25세의 여성으로 좋은 직장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으로 치료자를 찾아와서 분석을 요청을 했다. 그녀는 이미 대학을 졸업했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용모 덕분에 데이트 신청이 많이 들어 온다고 했다. 회사의 간부 혹은 미래가 보이는 청년들이 구혼이 쇄도한다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호소를 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가 그들을 거부하는 것에 깜짝 놀래서 그렇게 좋은 배우자들을 거부하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한다고 토로 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어떤 남성이 매력적인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40대 중반의 로맨스 그레이(Romance gray) 들이 매력이 끌린다고 했다. 어떤 점에서 매력이 끌리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40대 중반의 머리카락이 희긋희긋 한 중년 남자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으로 그들에게 매달려서 애교를 떨면 어떤 것이라고 다 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만약에 그들을 좋아서 결혼을 하게 되면 그들의 부인과 이혼을 해야 하고 그들을 가로채야 하는 죄의식에다 만약에 그녀가 중년이 되면 남편은 노년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걱정하는 친구들의 등쌀에 치료자를 찾아 오게 되었고 고백을 했다. 치료자는 그녀의 어린 시절의 발달 단계를 분석하면서 그녀가 3살 때 아버지를 사별한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위의 두 젊은이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결혼을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겠다는 욕구를 지적하면서 그렇게 해서 결혼을 하게 되면 그것이 함정이라고 지적을 하면서 만약에 K군이 그 여성과 헤어지고 이후에 다른 여성을 만난다고 해도 비슷한 연상의 여인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면서 K군이 치료를 받게 되었다.
위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욕구를 사전에 알고 치료를 받아서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혼에서 파경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를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는 한 부부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P씨의 부부는 40대 초반으로 부부 갈등으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다. 부인과 남편은 사흘이 멀다라고 부부 싸움을 해서 난장판이 된다고 호소를 했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지만 부인은 이혼을 절대로 해 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다. 치료자가 두 사람이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를 분석하면서 그들의 갈등의 원인이 밝혀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연애로 결혼을 했고 결혼 당시에는 두 양가 가문에서 결혼을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두 사람은 사랑의 승리를 외치면서 5년 동안 열애로 결혼하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부인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학교에 부임한 새내기 교사가 바로 남편이었다. 그녀는 한 눈에 그 선생님에게 반했다고 털어 놓았다. 물리학 교사인데 시를 읊고 가슴이 따뜻한 선생님을 그녀가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부인은 여고 1학년으로 미인 이였고 교사인 선생님은 그녀 보다 10살의 연상인 선생님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5년간 열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에 3년 동안은 단꿈과 같은 신혼 생활이었지만 이후에 두 사람은 부부 싸움이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1주일에 1회씩 부부가 따로따로 치료 회기를 가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분석해 나갔다. 부인의 어린 시절을 다루면서 부인이 1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하면서 부인은 엄마를 잃었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났고 부인이 4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재혼으로 4명의 이복 동생이 태어났다고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스스로 가슴이 따뜻한 남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이야기를 했다.
왜 이러한 부부들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가?를 알아 보기로 하자. 사랑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 다음의 글은 치료자의 부부의 홈 페이지와 가족 치료의 홈 페이지에서 인용한 글이다.
사랑을 연구한 학자들은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보고 하고 있다. 부부, 연인 사이에 사랑과 부모와 자식과의 사이에 사랑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부, 연인 사이에 사랑은 에로스(eros) 적인 사랑이라고 부르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을 에카페(ecape) 적인 사랑이라고 부른다(Steven-Long & Cobb, 1983).
먼저 부부, 연인 사이에 사랑인 에로스(eros)적인 사랑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자. 부부, 연인 사이에 사랑은 수평적인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부부, 연인 사이에 사랑은 남편과 부인의 파우워(power)가 대등하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부부의 power는 남편: 부인이 50: 50으로 대등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결혼 초기에는 남편: 부인의 power가 60: 40 정도이고 중년기를 넘어가면 남편: 부인의 power가 40: 60으로 거꾸로 바뀌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부부는 평등하다는 개념에 따른 것이다. 의사 결정을 할 때 두 사람은 같이 어떤 결정을 할 때 참여하게 된다. 고로 나중에 부부가 내린 결정이 실패를 한다고 해도 불평은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같이 참여를 했기 때문이다.
더 붙여서 에로스(eros)적인 사랑은 주는 것만큼 받아야 한다. 고로 give & take 사랑이라고 부른다. 결혼 기념일에 남편에게 선물을 한 부인은 혹은 연인 사이에서 는 반드시 서로가 평등하게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따지게 된다. 그녀의 생일날에 남편이 선물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따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당신 한데 선물을 했는데 당신은 나에게 왜 선물을 하지 않느냐?"라고 따지는 것이 서로 주고 받은 것이 평등해야 함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서로 평등한 관계가 아니면 상대방을 의심을 하게 된다. "이제는 사랑이 식었나?"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가?" 라고 항상 의심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짝 사랑"의 경우에는 한쪽이 열렬히 사랑을 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사랑을 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이 된다. 서로 간에 평등의 원칙이 깨어진 것이 짝 사랑이 아닌가? 고로 짝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평등하게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로 사랑이 성립될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위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정신분석 학자인 융(Jung)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의 양면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 시절에 3세 -5세 의 오디팔 기간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남자인지 여자 인지를 인식을 시켜주게 되고 남자는 남자답게 씩씩하게 자라나기를 기대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온순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기를 기대를 한다. 그 결과 남자들은 자신의 내면 속에 남성다움을 강화시키게 되고 여성다움을 억압하게 된다. 여성은 남성다움을 억제하고 여성다움을 강화 시키게 된다.
생리학자들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다. 사춘기가 되고 성인기가 되어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것이 중년기로 넘어가게 되면 남녀의 생리적인 호르몬의 감소가 따라오게 된다. 즉 남자의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되어져서 남자다움은 감소되고 여성다움이 남게 된다 동시에 여성들은 중년기로 넘어가면 여성 호르몬이 감소되고 남성 호르몬만 남게 되어 남성은 여성화가 되고 여성은 남성화가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우리는 자주 사춘기에 여자이면서 남자와 같은 행동과 성격을 가진 여성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톰 보이(Tom boy)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딸 부자로 아들이 없자 그 중에 한 명의 딸을 아들을 대신해서 아들처럼 양육을 강조했기 때문에 딸이 남성적이 된 경우이다. 이것을 보면 어린 시절에 양육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카페(ecape)적인 사랑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으로 자식은 부모에 의존적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은 수직적 사랑 혹은 내리 사랑이라고도 부른다. 결정권은 부모가 내린다. 출생 직후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power는 부모: 자녀는 100: 0이 된다. 이후에 자녀가 자라나게 되면서 사춘기 시절에는 독립심과 자치심으로 조금씩 자녀에게 power가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자녀가 사춘기를 넘어서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자녀는 법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미성숙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은 헌신적 사랑이고 희생적인 사랑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희들이 내가 사랑한 만큼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물어 보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지 않는가! 부모는 자연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자식을 위해서 희생을 한다. 고로 부부 사이의 사랑과는 엄연히 다르다. 주고 받은 사랑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보아 준다. 대신에 부모가 노년이 되어 생활 능력이 상실했을 때 자녀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돌보아주는 관계가 바로 위와 같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자식을 돌보아주게 되고 부모가 노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 생활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자녀들이 부모를 돌보아주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랑의 스타일이 만약에 부부 사이에 사랑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처럼 에카페적인 사랑이 되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이 에로스적인 사랑이 된다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가족 치료학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치료를 한다. 즉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경제적인 수장으로써의 아버지의 역할, 가족 구성원들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호자의 역할, 가족의 질서의 유지자로써의 역할, 위계 질서의 책임자로써의 역할 등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써 본다.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들의 양육, 가사 돌봄 그리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살림을 책임진 사람으로써 자녀들의 따뜻한 보금자리 역할을 책임지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평가를 한다. 자녀들의 경우에는 형님으로써의 역할을 동생으로써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누나로써의 역할, 언니로써의 역할, 장남, 장녀로써의 역할 등에 대해서 분석하고 연구를 한다(주㈜: 참고: 치료자의 가족 치료 홈 페이지에서 인용).
물론 위에서 언급한 역할들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른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의 역할에 근거해서 열거해 본 것이다. 세대가 21세기로 바뀌고 여성의 직장 진출로써 맞벌이가 대세인 오늘 날에는 주어진 전통적인 방식에서 많이 벗어나서 남녀의 구분된 역할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에 가족 전문가들은 동의를 한다. 그러나 가정이라는 사회 생활의 최소의 단위 안에서 행하여 지고 있는 각자의 역할은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가정이라는 단위가 있는 한 어느 정도의 역할은 바뀔 수가 없다고 보고 있다.
앞 장에서 언급을 한 결혼을 한 부부의 생활에서 남편과 부인의 Power는 대등하고 의사 결정에 서로 참여하고 합의를 도출하고 그리고 사랑의 스타일도 give& take로써 주는 것만큼 받아야 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을 했다. 반대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은 아카페(ecape) 사랑으로 자식은 부모에게 의존해 있고 의사 결정권은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100% 부모에게 있다.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형님, 누나, 동생들 보다 덜 사랑한다고 사랑의 부족을 불평할 수가 있지만 부모는 10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는 손가락 없다는 말로써 똑 같이 사랑을 고루 나누어주고 있다고 믿고 있고 그리고 부모 자신이 준 만큼 사랑을 되돌려 받고 있는지 자식들 한데 물어 보는 부모는 없다고 지적을 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사랑이(eros 사랑) 부모 자식 사이에 사랑(ecape 사랑)가는 다르다! 라고 지적을 했었다(주㈜: 참고: 치료자의 가족 치료 홈 페이지에서 인용).
그런데 부부 사이에 사랑이 에카페 사랑(ecape love)이 되면 어떤 현상이 생기게 될까? 이러한 부부들이 있는가? 이러한 분석과 연구들이 실제로 부부 사이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하고 있다. 부부 사이에 사랑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으로 바뀌어 흘러가게 되면 그 부부는 갈등과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 가족 치료나 부부 치료에서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부부 사이에 역할이 거꾸로 된 부부가 에카페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부부들이다. 이들 부부들은 경제권을 어머니인 부인이 쥐고 있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력자 이다. 실직으로, 명퇴로 일자리를 잃은 기간이 너무 오래 되어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로써 모든 것을 부인에게 의존해 있고 용돈을 타서 쓰는 남편들이다. 이들이 사춘기 시까지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쓰고 그리고 결정권을 어머니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머니에게 의존한 아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이들이 서로의 이러한 역할을 받아들이고 끝없이 부인에게 의존해 있으면서도 불평을 하지 않으면 부인이 좌지우지하는 가족 구조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경제적인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남편으로써 가장으로써의 권위를 내 세우려고 하는 경우에는 부부 싸움으로 변하게 된다. 즉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아버지로써의 권위적인 power를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끝임 없는 부부 싸움으로 지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과 부인은 각 방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부부 사이에 몸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섹스 관계는 이미 수년 전에 단절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머니와 아들(남편)이 함께 살고 있는 에카페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60대의 할머니가 치료자를 찾아와서 남편을 분석해 보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남편과 부인을 번갈아 교대로 1주일에 2시간씩 약 6개월간 분석 치료를 했었다. 그 결과 남편은 이름 있는 법대를 나온 사람으로 고시 준비로 젊음을 한 때 보냈던 경력이 있고 결혼 이후에 지금까지 한번도 월급을 타서 부인에게 월급 봉투를 건넨 적이 없는 사람으로 일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끝없는 사업 실패로 아버지는 경제력을 잃어 버렸고 어머니는 결혼 후에 피아노 교습으로 생활 비용을 충당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부인이 남편을 무시하고 존경하지 않는다고 사흘이 멀다 하고 부부 싸움을 했다. 집에 있는 물건 중에 집어 던지지 않는 것이 없어서 성한 물건이 없다고 할머니는 불평을 했다. 전화기, 전기 밥통, 재떨이, TV 리모콘 등을 화가 나서 남편은 집어 던졌다. 외출 할 때 1-2만원씩 타서 외출하고는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 해서 남편을 "발새 떼만큼 무시하고 평가절하 한다"고 노발대발 했다. 치료의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남편인 할아버지는 나르시즘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고 부인은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억압하고 표현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편이 부인의 분노를 대신 표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버지는 잃어 버린 경제력을 가장 이라는 권위로써 보상받으려고 한 것이 분석되었다.
최근 들어서 연상의 여인과 결혼을 하는 연하의 남자들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경우가 많다고 부부 학자들과 가족 치료 학자들이 보고를 하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력이 강력해지게 되면서 엄마와 같이 보살펴 주고 경제적인 확신을 제공해주는 부인을 찾아서 연상의 여인 혹은 연하의 남자들을 찾아서 결혼을 하는 커플들이 최근 들어서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들이 있다(여자 연상 부부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0.3%p)추세라고 합니다. 여자 연상 부부 비중은 모든 연령차에서 증가하고 있답니다:통계청 보고서).
여기에서 연상의 여성 연하의 남성의 스타일을 잘 살펴 보면 연상의 여성들은 주로 장녀 출신으로 동생들을 보살펴 주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 혹은 소녀 가장으로 일찍이 생활 전선에서 뛰어들어서 경제력을 키운 여성들이 많다. 반대로 남성들은 어머니 밑에서 과잉 보호로 의존심이 높은 사람들로 자신을 돌보아주고 따뜻하게 엄마처럼 돌보아줄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남성들은 결혼 후에 늘 부인 한데서 어머니와 같은 따뜻함을 찾는 사람들로 의존적인 경우가 많았고 이들은 홀로서기가 어려운 의존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머니처럼 나이가 많은 여성들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이러한 유행이 우리 나라에서보다 몇 십 년 전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연상, 연하의 커플들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데 그들의 핵심 문제점이 남편은 의존적이어서 모든 것을 부인에게 의존해서 부인이 질식을 느끼고 거리감을 두려고 하는 과정에서 매달리려고 하는 남편과 불화가 종종 보고 되고 있다.
정반대의 경우에는 부부 관계가 부인이 남편과 같이 사는 것 보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부부의 나이 차이가 10살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경제적인 능력이 좋은 돈이 많은 남편이지만 재혼으로 혹은 사별로 결혼을 하면서 나이 적은 젊은 부인과 결혼한 나이 많은 남편의 경우가 많았다. 모든 결정권인 power는 남편이 아버지처럼 행사를 하고 있고 그리고 부인은 딸처럼 명품들을 사 달라고 애교를 떨거나 아양을 떨면서 남편의 팔짱을 끼고 매달리는 딸처럼 행동을 하는 부부들이 많았다. 이들은 항상 결혼 초반기 신혼 기간의 3년-5년의 기간 동안은 별 문제가 없이 사랑이 효과를 발휘를 해서 큰 문제가 없는데 그 이후부터는 부부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든지 간에 이러한 에카페 사랑이 부부 사이에 에로스적은 사랑을 대신하게 되면 한쪽은 power의 전권을 행사하게 되고 한쪽은 의존적이 된다. 사랑은 give & take가 아니고 끝없이 사랑을 주어야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이 되어 버린다. 어린이가 부모님에게 사랑에 의존해 있는 것처럼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하게 된다. 대부분이 이러한 부부들은 부인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사랑을 상실해서 남편으로부터 부모 한데서 받지 못한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은 이러한 사랑은 한쪽은 끝없이 주어야 하고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는 보채는 사랑의 요구 때문에 질려 버리고 질식을 느끼게 되고 의존적인 보챔 때문에 거리감을 두려고 하고 도망을 가려고 하는 쪽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남편(딸처럼 사는 부인)이 될 수도 있고 엄마(아들처럼 사는 남편)가 될 수도 있다. 다른 한쪽 즉 매달리는 쪽은 아무리 채워 넣어도 부족함으로 결국은 도망가는 배우자를 쫓아 가는 추적자가 된다. 두 사람은 물고 물리는 끝없는 싸움에 휩쓸리게 된다.
부부 사이에 사랑은 에카페적인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되어야 한다, 잘못된 사랑은 잘못된 결과를 낳게 되고 결국은 병든 부부가 된다. 그 속에서 자라라는 자녀들은 역시 병든 자녀들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모의 잘못된 관계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되고 자녀들도 역시 이후에 그러한 잘못된 관계 패턴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부부가 에카페적인 사랑이 되면 이것이 결과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에 상대방 배우자가 부응하게 되면서 서로가 물고 물리는 관계가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분석가들이 지적을 하고 있다. 이것을 정신분석적인 전문 용어로써 투사 동일시하고 부른다. 투사 동일시는 대상관계 이론의 정신분석을 창안한 메라니 크레인의 논문에서 등장하게 되면서 이것이 정신분석가들 사이에서 일반화 되어지게 된 것이다. 유아들은 엄마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살아 남을 수가 있다. 자연스럽게 엄마의 기대와 소망과 희망은 유아에게 반사되어져서 아기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서 성장하게 된다. 엄마가 요구하는 것에 아기가 부응하고 순응하게 되는 과정을 투사 동일시라고 부른다. 이러한 관계는 아기가 성장하게 되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유지된다. 물론 이러한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신분석 이라는 마음의 현미경을 통해서 분석으로 밝혀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결혼을 해서 살아갈 때도 역시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욕구, 기대, 소망들을 상대 배우자에게 무의식적으로 투사를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면서 부부관계가 진화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은 같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것들이 서로 충돌해서 해결되어지지 않으면 두 사람은 이혼으로 해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A씨의 부부의 문제로 되돌아 가 보자. 치료자가 A씨의 부부들의 상호관계를 Z씨의 분석 치료에서 밝혀내게 되었다.
A씨는 특별히 부부 싸움을 할 때 지금까지 한 번도 부인에게 손찌검 혹은 폭력을 사용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A씨는 화가 나면 부인에게 화풀이로 술을 마심으로써 보복을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A씨는 위의 부부 관계에서 밝힌 것처럼 외형적으로는 남편과 부인으로 관계를 하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엄마와 아들 관계의 부부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간섭과 처벌에 분노한 청소년들이 부모님에게 폭력으로 똑 같이 대응할 수가 없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부모님에게 화풀이를 할 수는 있다. 폭력으로 화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취약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즉 부모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골라서 하는 것이다. 우등생이던 자녀가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공부를 외면하고 나쁜 행동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은 이러한 비행 행동을 통해서 자녀는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함으로써 부모님을 처벌하고 있지 않는가!
A씨의 부인의 행동을 잠깐 들어다 보기로 하자. Z씨의 어머니인 A씨의 부인은 남편에게 일일이 간섭하고 이것 저것을 참견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어머니가 유치원 자녀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자녀들에게는 적당한 행동일수 있지만 70대가 된 남편에게 이러한 행동으로 간섭을 하는 것을 바로 “당신은 유치원 어린이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혹은 “성장을 하지 말라”라는 무의식적인 요구가 아닌가?” 물론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지만 부인은 남편인 A씨에게 일일이 따라 다니면서 간섭을 하고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 Z씨의 이야기를 통해서 분석이 되어졌다. 겉으로 보면 정당한 간섭처럼 보인다. 남편이 하루에 1.5갑의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건강에 해롭다 혹은 이웃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이유를 대고 남편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 술을 마시게 되면 치매가 급격하게 빨라진다는 의사의 요구에 민감해서 부인은 남편으로 하여금 술을 한 방울이라고 마시면 치매가 급속도로 진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 때문에 부인은 남편을 데리고 종합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게 하고 이제 치매가 곧 진행된다는 결과를 들어서 절대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증폭 되어져 갔다.
여기에 남편인 A씨는 나를 간섭하지 말라, 나는 자유롭고 쉽다, 나를 강압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부인이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술에 매달리게 되었다. 부인이 집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남편은 집 밖에서 술을 과도하게 마시고 취해서 인사 불성이 되는 경우가 잦아지게 되었다. 술을 마시면 길거리에 누워서 잠을 자거나 혹은 취해서 골목 구석에 숨어서 잠을 자게 되었다. 부인의 잔소리와 간섭에 분노해서 그는 밖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고 화가 나면 날수록 술을 많이 마시고 부인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을 치료자가 이미 Z씨의 아버지인 A씨가 술을 마시면서 부부 문제가 심각해지는 초반기에 Z의 분석을 통해서 밝혀냈었다. Z씨는 초반기에 치료자의 이러한 분석을 수용하지 않았다. 치료자가 Z씨에게 Z씨의 부모님은 남편과 부인으로 살고 있지만 부인이 엄마 역할을 하고 남편이 아들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치료자의 분석을 몇 퍼센트를 수용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Z씨는 80%만 수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A씨와 부인과 관계가 점점 더 악화 되어져 갔다. A씨는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서 넘어져서 병원의 응급실에 4번이나 실려갔었고 크게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의 외상만 꿰매고 나서 몇 시간 후에 퇴원을 하는 것이 지금까지 약 5년 동안에 4번이나 반복되어졌다.
다시 B씨의 부부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B씨의 경우에는 눈에 띄는 술이나 담배의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C부인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면서 결혼한 C 부인이 한번씩 친정에서 친정 식구들과 결혼한 이복 형제들이 다 같이 모이게 되면 서로 화합이 되지 않고 불편함을 느낀다고 호소를 하게 되면서 B씨의 부부의 문제가 분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C부인은 아버지가 양모와 함께 있거나 결혼한 양가의 자녀들이 함께 있을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양모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아버지의 power가 점점 작아져 간다고 불평을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저렇게 해야 한다 가 되면서 부부 사이에 power의 균형이 양모 쪽으로 쏠리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가 안쓰러워 보인다고 천정을 방문하고 나면 치료자에게 호소를 했다. 이후에 B시는 50대 후반에 점점 더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보이게 되면서 매해 마다 새해 초반기에는 심한 불안증으로 병원에 반복해서 1달 정도 입원을 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경제적인 능력이 점차로 줄어들어서 이러한 병원 입원이 있을 때마다 출가한 자녀들이 돈을 모아서 아버지의 병원 입원 비용을 부담하는 일들이 잦아 지면서 C 부인의 불평으로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에 치료자가 B씨를 분석으로 잘 알게 되었다.
Z씨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Z씨의 어머니가 치료 초반기에 한번 치료자와 컨설팅을 가졌다. 이후에 1년 10개월 전에 Z씨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Z씨가 심리치료 10년이 되었던 해에 치료자를 방문하게 되었고 치료자가 Z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로 따로 면담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1시간 동안 치료자에서 면담을 하면서 첫 마디로 아들 Z씨가 좋아져서 이제는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를 표현을 했다. 어머니 역시 2시간의 치료 시간을 가지면서 아들의 심리상황이 좋아져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 이후에 아버지의 계속된 음주 문제 때문에 Z씨가 어머니에게 특별 부탁을 해서 Z씨의 어머니와 첫 번째 결혼한 딸이 같이 치료자를 방문해서 아버지의 음주 문제를 컨설팅을 받게 되었다. 고로 A씨의 부인은 치료자와 지금까지 모두 3번이나 방문을 해서 1회기 당 2시간으로 6시간의 컨설팅을 받게 되었다.
B씨 역시 심한 불안장애 때문에 C 부인이 아버지의 컨설팅 비용을 부담을 해서 아버지와 양모가 함께 치료자를 2시간 컨설팅을 했고 그 결과 아버지가 심한 공황 장애로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를 했다. 아버지의 경제적인 능력 때문에 C부인이 형제들에게 모금을 해서 6개월 치료 비용(치료자는 6개월 이하의 치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으로 xxx 원을 준비를 해서 아버지가 치료를 받도록 주선을 해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고 수용하지 않았다.
다시 A씨의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A씨와 부인과 관계가 점점 더 악화 되어져 갔다. Z씨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외출을 하면 술을 무제한으로 마시기 때문에 절대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아버지의 바지 자락을 잡고 울면서 매달리고 애걸복걸을 했다. 즉시 자녀들에게 전화를 해서 특별히 Z씨가 집에 호출을 받고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부인과 그리고 자녀들에게 호통을 쳤다. 내가 이때까지 열심히 일을 해서 노후 준비를 해 왔고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도록 해 놓았는데 몇 천원 하는 탁주도 마시지 못하게 하는가? 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는 늘 탁주를 마시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는 내 가계가 술을 좋아하는 약주를 마시는 집 안인데 내가 탁주 2병도 내 마음대로 마시지 못한단 말인가? 라고 탄식을 했다. 아버지는 탁주는 술이 아니고 음료수와 같다. 곡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몸에 해롭지 않다고 강변을 했다. 아버지는 나는 너의 엄마가 이래라 저래라 하고 나에게 지시 명령을 하는 것에는 참을 수가 없다. 너의 엄마와 너희들이 아무리 나에게 강압을 해도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맞섰다.
치료자는 부모님의 부부 갈등을 호소하는 Z씨의 요청에 의해서 Z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분석을 해서 내 놓았다. 아버지는 지금 현재로 알코올 중독으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만약에 아버지가 계속해서 어머니와 갈등으로 술을 마시게 되면 아버지가 언젠가는 머리를 다쳐서 불구자가 되거나 혹은 팔다리를 골절해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고로 아버지가 자진해서 심리치료를 받든지 아니면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알코올 중독을 치료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내 놓았다. 여기에서 아버지보다 더 심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 Z씨의 어머니임을 지적을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하루에 2병의 탁주를 마시도록 허용해서 간섭하지 않게 되면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스스로 탁주 2병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문제는 어머니가 간섭하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 때문에 아버지가 보복으로 술로써 어머니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즉 남편과 부인의 물고 물리는 뒤엉킴이 핵심 문제임을 지적을 했다. 해결책은 두 사람의 심리적 공간에 산소를 공급하는 일이라고 여러 번 제안을 했다.
치료자는 Z씨의 어머니가 Z씨와 딸들을 호출을 해서 가족 회의를 하면서 이제는 아버지를 더 이상 어머니가 컨트롤할 수 없으니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가족 회의에서 아버지를 강제로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키기로 합의를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계속 실행을 미루게 되면서 이것이 약 1년 이상을 넘어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울면서 아버지를 잡고 외출을 허용해주지 않게 되면서 점점 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었고 아버지는 이제는 주로 저녁 때 탁주 2병을 마시던 것을 이제는 밤중에도 새벽 2시 3시 4시에도 탁주를 마시게 되었다. 편의점들이 들어 서면서 24시간 영업을 하게 된 것도 한 몫 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A씨의 부부가 노후의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지금은 모든 일에서 두 사람이 은퇴를 해서 여행을 다니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고 그리고 취미 생활을 해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할 시간만 남았는데 지금의 A씨의 부부가 하고 있는 형세를 보면 이것이 노후가 천국이 아니고 지옥이 아닌가? 라고 Z씨에게 지적을 했을 때 Z씨는 인정을 했다. Z씨가 아버지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을 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 문제로 치료자에게 2시간 컨설팅을 받도록 간청을 해서 어머니가 수용을 해서 첫 번째 여동생을 대동하고 치료자가 1년 10개월 전에 만나게 되었다. 치료자가 30대 후반에 결혼한 첫 번째 여동생을 동반하도록 요청을 한 것은 어머니는 구식이고 옛날 사람이어서 심리치료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30대 후반의 결혼한 딸은 신세대 여성으로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알고 어머니를 설득시켜서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함에서 였다.
Z씨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치료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남편과 부인의 부부 관계가 아니고 엄마와 아들 관계 임을 지적을 했다. 그 증거로써 남편인 A씨는 부인에게 지금까지 한번도 손찌검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점과 그리고 청소년들이 부모님에게 분노해서 청개구리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에게(부인) 항의와 분노로 술을 마심으로써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 증거로써 화가 나면 아버지가 탁주 2병에서 4병으로 그리고 6병으로 무질서하게 마시고 24시간 술을 마심으로써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어머니가 시인을 했다. 치료자는 노후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노년이 이제 행복한 천국이 되도록 준비를 해 놓고 지금은 거의 매일 같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것은 서로가 물고 물리는 물귀신 작전으로 서로를 놓아주지 않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호관계가 문제가 된 것이니 이것을 풀어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노년이 더욱 더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를 했다. 그래서 4가지 방안을 제시를 했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치료자에게 6개월 이상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 관계(Z씨의 할머니)를 분석으로 풀어 내서 지금의 부인과의 관계에서 엄마와 아들의 역할을 풀어서 아버지가 독립심을 키우는 것에 있다는 것을 설명을 했다. 두 번째는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가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분석해서 어머니가 지금의 남편과 밀착관계를 풀어내서 스스로 물고 물리는 관계에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다.세 번째 방안은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것이다. 이미 Z씨가 주변에 이름 있고 시설이 좋은 xxx 알코올 중독 병원을 인터넷으로 알아 보았고 어머니와 결혼한 딸들이 가족 회의에서 이미 그 병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회복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을 해 주었다.
알코올 중독 병원은 3개월 프로그램으로 3개월 동안 입원해서 외출 금지와 초반기 가족 면회 금지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고 미술치료, 음악치료, 가족 치료 등의 프로그램과 알코올 중독 강연회 참석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어머니와 가족 구성원들이 다 잘 알고 있었다. 네 번째 방안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제안이 수용되어지지 않는다면 어머니를 아버지와 분리 시키고 어머니가 근처에 혼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에서 3개월 동안 지내도록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물고 물리는 관계를 떼어내어서 분리 시키고 아버지를 혼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독립심을 기르게 한다는 조건이었다. 어머니의 빈 자리는 Z씨가 본가에 들어와서 어머니 대신에 아버지를 3개월 동안 보조 치료사의 역할을 하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해 나가면서 아버지가 어머니 없이도 혼자서 생활을 하도록 지원하면 약 3 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아버지가 어머니와 아들의 도움이 없이도 혼자서 식사를 챙기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치료자가 이전에 아버지와 컨설팅 시간에 이 조건을 제시를 하면서 전기 밥통에 자동으로 밥 문제를 해결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첫 번째 딸이 저녁 때 퇴근할 때 부식을 사서 아버지의 집에 냉장고에 넣어 두도록 해서 식사 시간에 아버지가 밥과 반찬을 챙 켜서 먹도록 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취미인 신문 보기와 책 읽기를 하면서 하도 싶은 취미 생활을 하도록 권유를 했을 때 아버지는 O.K.라고 승낙을 한 것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 주면서 핵심 문제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어린이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아버지가 혼자서 식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 주고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떨어져서 혼자서 여행도 가고 취미 생활을 하도록 서로 밀착된 관계를 떼어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를 하면서 네 번째 제안을 설명을 해 주었다.
어머니와 딸은 치료자의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치료자는 Z씨와 협력 하에서 아버지로부터 1주일에 1회씩 심리치료를 받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 날에 아버지가 이빨 때문에 치과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바람에 치료자와 심리치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다음 날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전격적으로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킴으로써 3개월 치료 프로그램은 실시해 보지도 못하고 무산되어서 끝이 났다.
Z씨가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입원 1주일 후에 병문안을 갔다 와서 치료자에게 아버지의 상황을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자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입원이 앞으로 태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예견을 했다. 아버지는 순순하게 어머니의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수용을 했다. 입원 수속을 하면서 남자 간호사가 아버지의 소지품들을 보관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담배를 몰수를 했다. 병원의 규정에 의해서 하루에 1개비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모든 담배와 소지품을 압수를 한 것에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병원의 규칙을 지키기 않으면 강압과 처벌이 온다는 것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서 병원의 강압에 반기를 들게 되면서 병원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청개구리 모양으로 거꾸로 한다는 것을 Z씨가 아버지의 병문안을 하면서 치료자가 알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아버지가 병원의 치료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예견을 했다. 집에서 어머니가 일일이 간섭을 하든 것이 병원에서는 남자 간호사가 어머니 대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코올 중독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견을 했다.
치료자의 예견은 적중을 했다. 아버지는 병원 프로그램에 따라가지 않았다. 벌거벗고 병원을 걸어 다니거나 옷에 오줌을 싸서 병원 측이 가족들에게 아버지를 따로 목욕을 시키라는 전달이 오면서 아버지의 행동은 점점 악화 되어져 갔다. 물론 술은 마시지 않지만 아버지의 행동은 병원에서 컨트롤할 수가 없게 되면서 입원 2개월 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Z씨에게 아버지가 퇴원을 하면 부인에게 복수로 24시간 술을 달고 살게 될 것이라고 예견을 했다. 치료자의 예견을 100% 적중을 했다. 아버지는 이제는 더욱 더 술에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밤중에도 새벽에도 아침에도 술을 달고 살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는 아버지를 인근에 있는 또 다른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 가지였다. 2개월 후에 다시 병원에서 퇴출되어 집으로 귀가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어머니와 딸들이 의존을 해서 건강 요양원에 입원을 시키기로 했다. 암 환자들 혹은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입원을 하는 곳으로 강압이 없고 술과 담배를 박탈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해서 어머니가 두 번째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나오자 말자 그곳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나서 온 가족들이 그곳에 모여서 아버지가 그곳에서 마음을 편하게 먹고 휴식을 하도록 했다. 축하 파티를 마치고 가족들이 떠나고 나서 어머니가 짐을 챙겨서 나오면서 뒤를 돌아 보니 아버지가 짐을 싸 들고 혼자서 걸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모든 것이 수포로 되돌아가버린 것을 알고 어머니가 포기하고 아버지와 함께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A씨가 4년 전부터 부부 싸움으로 탁주 2병을 마시면서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혹독하게 더운 이번 여름에 터지게 되었다.
다시 B씨의 경우로 되돌아가보자. B씨는 불안이 점점 심해저가는 것을 옆에서 지며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C 부인을 분석 치료를 하면서 치료자는 아버지가 은퇴를 하도록 하고 조용한 기도원에서 쉬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를 했다.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써 심리치료를 받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은 이미 자녀들이 6개월 치료 비용을 만들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권유를 했지만 거부한 것에서 잘 나타나있다 고로 아버지가 어머니와 떨어진 기도원에서 혼자서 독립심을 기르면서 부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것을 제시한 것이다. 옆에서 어머니가 감 놓아라 배놓아라 하고 간섭으로 아버지는 점점 더 자치심을 잃어버리고 어린이가 되어가면서 옆에서 보호가 필요한 사람으로 변질되어간다는 것을 C 부인이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수단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분리 시키고 아버지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C부인은 100% 찬성을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은퇴를 했지만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번에는 양모가 아버지의 자격증을 획득을 해서 아버지 대신에 아버지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아버지는 밀려나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하고 있는 사회 사업은 계승되어져서 좋은 현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아버지는 무능한 불안한 사람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으로 혼자서 어떤 것을 하지 못하고 옆에서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로 전력하게 된 것을 옆에서 가족 구성원으로써 C 부인이 보게 되면서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2년 전부터 아버지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렸다고 C 부인이 한탄을 했다. 친정에 들렸을 때 손님이 집을 방문을 했을 때 아버지는 뒷방으로 쫓겨나고 양모가 손님을 배웅하는 것을 보면서 C 부인이 분노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변해 가는 대신에 양모가 모든 것을 처리하고 지시하고 지적하는 것을 이미 재혼 후부터 C부인을 그것을 지켜 보면서 치료자에게 호소를 한 것에서 B씨가 점점 무능력한 어린이로 변해 간다는 것을 분석으로 알게 되었다.
올해 초게 B씨는 요양 병원에 입원을 했다. 요양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는 이제는 혼자서 일어날 수도 없고 식사를 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간병인에게 의존해서 아버지의 오줌 똥을 받아 내는 것이 된 것이었다. C부인이 면화를 갔을 때 아버지는 24시간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서 이제 아버지는 가망성이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양모가 C부인에게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도록 연락을 했고 모든 자녀들이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내는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요양 병원에서 1개월을 보낸 후에 요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요양원은 새로 신축한 관계로 비용이 저렴하다고 깨끗한 곳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부인과 1달 가량 떨어져 있으면서 이제는 혼자서 일어날 수 있고 그리고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고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으로 많이 좋아진 것을 C 부인이 아버지의 소식을 언니와 여동생으로부터 듣게 된 것이었다. C 부인이 치료실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에 대해서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에서 치료자는 C부인이 아버지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으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를 해 주면서 위로를 해 주었는데 몇 주일 전에 C부인의 치료 회기에서 아버지가 재생으로 활기를 되찾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는 이제 몸이 완쾌 되었으니 집으로 보내달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어린 아기처럼 이야기를 되풀이 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랬다.
치료자는 아버지가 부인과 1달 가량 떨어져 생활 한 것이 옆에서 간섭과 지시, 명령과 강압에서 해방된 것이 아버지를 다시 살아나게 한 근본적인 임을 지적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부인 한데 귀가 하겠다는 것을 극구 말려야 한다고 C 부인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방문해서 아버지가 부인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게 요양원에서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부인으로부터 혼자서 독립적으로 생활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소상하게 설명을 해서 이것을 부인이 이해하고 나서 C부인은 추석 이후에 당장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요양원에서는 아버지가 혼자서 일어날 수 있고 식사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C부인이 눈으로 확신을 할 수 있었다. B씨의 부인인 C부인의 양모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버지가 집에 귀가하면 뒷치닥 거리를 해야 하고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아버지를 보호하고 간병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양모는 자신의 친 딸과 아들들과 가족 회의를 해서 아버지를 요양원에 남도록 계획을 세우고 요양원 측에 절대로 퇴원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는 것을 알고 C 부인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치료자는 C부인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귀가 하려고 하는 것은 아버지의 딸들에게 병원 비용 부담 때문에 아버지가 하루라도 귀가를 빨리 하려고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다음과 같은 것을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이미 딸들이 힘을 합쳐서 2년 전부터 아버지에게 매달 80만원의 치료 비용을 부담하게 된 것이 이미 양모의 생활 비용이 되어버린 것을 이야기를 했대 그 때 그것을 들었던 아버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C부인은 그 돈에 약간만 더 첨가를 하면 아버지가 이 요양원에서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돈을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되돌아가지 말고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도록 종용을 했다.
C부인은 아버지가 어머니 한데 되돌아가면 아버지는 어린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일일이 간섭하고 이것 저것 지시하고 지적하는 것을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는 시인을 하면서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C부인은 아버지가 간병인을 쓰게 된 지난 달의 요양병원에서 치료 비용 보다 간병인 비용이 더 많이 나와서 350만원의 간병비용을 자식들이 할 수 없이 부담을 해서 어려운 살림살이에 휘청거린다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혼자 일어날 수 있도록 독립심을 길러야 이제 겨우 밥 먹고 살아가는 자식들을 살려주는 것임을 지적을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매일 같이 운동을 하고 식사를 제 때에 하고 요양원에서 혼자서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하면 노후를 행복하게 마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고 귀가할 수 있었다.
다시 A씨의 부부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어머니는 2층 슬라브 주책을 매매를 해서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또 경제적으로 매달 마다 들어오는 연금과 어머니가 따로 가계에 투자를 해서 월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약 10억 정도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Z씨가 독신으로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을 해서 지금 고시원에서 열악하게 살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 약 25평 정도 되는 아파트를 사 주겠다고 호언하면서 그러한 아파트가 있는지 알아 보라고 1년 전부터 아들 Z씨에게 이야기를 해 왔지만 Z씨는 거부를 했다. 만약에 Z씨는 그곳에 입주하게 되면 어머니의 간섭과 시도 때도 없이 방문을 해서 자신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Z씨는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지시 명령과 처벌 때문에 Z씨 자신의 자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치료자의 심리치료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어머니의 간섭과 지시를 거부하고 독립심을 키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인근에 28평의 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가 그것을 매입하게 되면서 Z씨의 부모님의 문제가 터지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 Z씨가 28평의 아파트에 입주를 거부하기 때문에 아버지로 하여금 그곳에 거주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28평의 아파트는 맨 위층으로 복 층 아파트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그곳에 살게 되면 이웃 사람들로부터 흡연으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어머니가 지금의 45평의 아파트를 팔고 28평으로 이사를 간다는 문제에 골몰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45평의 아파트에 있는 집기 들을 모두 패기 처분하고 이사를 간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 것이 이후에 분석으로 밝혀졌다. 어머니는 아들 Z씨와 둘 째 딸에게 본가 있는 자신들을 물건들을 처분하고 이사를 갈 준비를 하라고 통보를 했다. Z씨는 본가의 45평의 아파트를 팔고 28평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쪼그라든 살림살이와 왜소한 공간 때문에 어머니가 우울해질 것이고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45평의 아파트를 팔지 말고 28평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아버지가 그곳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분리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을 치료자로부터 듣고 어머니에게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게 됨으로써 45평의 아파트는 팔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이 시쯤에서 어머니가 28평짜리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이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을 때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어머니가 하소연을 한 그 다음 날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판 부부 싸움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집 밖으로 나아서 탁주 2병을 사가지고 왔다. 어머니가 그것들을 빼앗아서 그 술들을 모두 부엌의 싱크대로 쏟아 버렸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다시 밖으로 나가서 탁주 2병을 사가지고 왔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그것을 빼앗아서 그 탁주들을 싱크대에 쏟아버렸다. 아버지는 분기 탱천해서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따라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분노에 차서 술을 퍼 마셨다 술에 과도하게 취해서 아버지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치게 되었다. 이웃 사람들이 보고 119에 연락을 했고 아버지가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고 Z씨가 xx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달려 갔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5번째 머리를 꿰매는 수술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심각했다. 과거에는 머리를 몇 바늘 꿰매고 그냥 퇴원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뇌를 크게 다쳐서 수술을 대기 중이라고 했다.
이후에 아버지는 뇌의 수술을 받았고 뇌에 피가 고여서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아버지는 의식이 없는 수준으로 산소 호흡기를 코에 대고 그리고 음식을 호스로 지급하는 반쯤 의식이 없는 상황으로 변화된 것을 Z씨가 아버지의 병원 방문을 통해서 소상하게 알게 된 것이었다.
Z씨와 어머니는 아버지의 주치의로부터 3개월 정도 기다려 보아야 한다고 했던 이야기가 지난 주일에 그 주치의가 앞으로 1년을 더 기다려 보아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적이 되었다고 토로 했다. 아버지는 오줌과 똥을 가지지 못하고 음식도 호스를 통해서 공급을 해야 하고 호흡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아버지는 뇌의 상처 때문에 항문이 열려 있어서 코의 호스를 통해서 미음으로 공급하는 음식이 소화가 되어서 그대로 줄줄 흘러내리기 때문에 대변을 닦아 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을 지켜보는 Z씨는 분기탱천으로 그리고 절망적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Z씨의 삼촌이 아버지의 병실을 방문하고 왜 형님이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는가?를 어머니로부터 설명을 듣고 나서 형님과 형수가 따로 떨어져서 분리시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어머니가 아들 Z씨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1년 10개월 전에 심리치료사 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통탄을 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노후에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 24시간 전문 간병인의 도움으로 하루에 10만원씩의 간병 비용으로 한 달에 3백만 원과 병원 비용을 합치면 한 달에 5백만 원씩 돈이 나가기 때문에 이제 돈 걱정을 하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하는 어머니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토로 했다.
이제 정리를 해 보자 A씨는 완벽하게 노후 준비를 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노후를 만들어 놓고 이제 은퇴해서 노후의 기간 동안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여행이나 다니고 그리고 젊은 시절에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 행복한 노후가 지옥으로 변화 된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치료자는 이미 4년 전에 부모님이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로 두 사람이 붕괴될 것이라고 예견을 한 것을 Z씨에게 지적을 했을 때 Z씨는 치료자의 분석에 100% 동의를 하면서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앞으로 아버지의 행동이 어떻게 변화될 것이라는 치료자의 분석이 너무나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Z씨 자신도 깜짝 놀랬다고 실토를 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노후를 100% 준비를 해 놓고도 그것을 만끽하지 못하고 비참한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어 노후가 지옥으로 변한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노후 준비가 미비한 탓에 결국은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똥오줌을 받아내는 간병인 신세를 졌지만 부인으로부터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 때문에 간신히 스스로 일어나서 건강을 회복해서 노후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게 된 두 사람의 노년을 비교해 보면서 치료쟈는 정신분석 이라는 치료와 학문을 창조해 낸 프로이트를 비롯한 분석가들의 일생을 바쳐서 인류를 위해서 평생을 바친 그들의 노고와 그들의 업적에 탄복하면서 이러한 인간의 내면 심리적인 상황들을 일반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자신의 자아의 움직임들을 통해서 불행을 미리 막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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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치료자의 부부 치료 홈 페이지에서 인용
: 치료자의 가족 치료 홈 페이지에서 인용
위의 홈 페이지에는 부부 문제들과 부부들의 무의식적인 만남들과 그리고 가족 치료에서 아들과 같이 사는 부인과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는 딸의 부부들의 치료 사례들이 포함되어져 있으니 치료 사례들이 포함되어져 있다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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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폭력으로 희생된 자녀로써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되어서 그 폭력의 상처 때문에 치료자에서 1년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한 엘리트 회사원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38세의 남자 B씨
증세: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면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꽉 조이고 숨이 막히고 호흡이 가파지고 말을 할 때 버벅거리면서 말을 더듬고 목소리가 거칠 게 나오는 증세 때문에 20년동안 고통속에 살아온 B씨
접촉: 정신과 의사에게 약물 치료를 받아보었으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6년 전에 한 정신과 의사가 운영하는 집단 치료 프로그램인 "인지 행동 치료"를 80만원의 큰 돈을 주고 12주 동안 받아 보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음, 이후에 몇 번의 심리치료를 받았으나 실패했음. 그 후에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정신 의학적 서적을 탐독하면서 라깡의 정신분석,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불교 서적, 각종 정신 의학 서적 들을 탐독하면서 자신의 문제 해결을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음.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 왔음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씩 1주일에 1회 치료 회기로 6개월 동안 치료 계약을 하고 지금 현재 1.5개월 째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치료 1.5개월 만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제의 핵심 원인이 분석되어졌음. 이 분석에 대해서 B 씨는 100% 치료자의 분석이 정확하다고 확신을 한다고 동의를 했다.
치료의 과정
제 1 회 치료 회기: B씨는 치료자를 만나자 말자 당당하게 그가 명문 대학의 명문 학과 출신이라고 소개를 했다. 외모로 보아서 키도 크고 미남이었다. 직장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외국인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엘리트 사원으로써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자신의 업무에 따라서 스스로 출퇴근을 조정해서 한다고 자랑을 했다. B씨는 자기 자신도 자기가 어디에 내 놓아도 꿀리는 것이 없는 당당한 엘리트 출신이라고 자부 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그만 문제 즉 큰 문제도 아닌 "조그만 문제"(그가 여러 번 강조함) 때문에 자신이 만신창이가 되어왔다고 한탄 쪼로 말을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만 되면 가슴이 조여오고 손에 땀이 나고 호흡이 가파지고 현기증이 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말을 버벅거리고 목이 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더욱 더 나아가서 이제는 그러한 상황이 예상되면 공포적이 되고 겁부터 먼저 난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러한 증세가 시작되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처음 시작된 것은 대학교 1학년 써클 활동 때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지방의 소도시에서 성장한 지방 출신으로 중,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1등 2등을 다투었고 늘 반장 부반장을 해서 여러 동료들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 증세가 시작된 대학 1학년 때의 그 치명적인 그 이벤트 이전에는 발표 문제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강조를 했다. 그 이벤트가 어떤 이벤트이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소상하게 이야기를 했다. xx 대학교 1학년 때 그 당시에는 한창 데모가 유행이었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길거리로 가두 행진을 했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는 학생 이념 써클에 가입해서 사회주의 이론들과 계급 투쟁 이념 서적들을 탐독하였다고 했다. 자신이 가입한 써클은 데모 시에 다른 학생들을 선동하는 노래 패 써클로써 여러 명이 역할을 분담하였는데 B씨는 그 때 노래를 부르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했다. 연습 시에 다른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오고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자 동료들이 깔깔 거리며 웃었던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 때 그는 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동료들이 그것에 대해서 그 당시에 웃었던 것밖에 없었으나 그는 그 이벤트에 대해서 치명적으로 모욕감, 수치심에 치를 떨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그는 여러 사람들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는 것에 신경이 쓰이게 되었고 대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각종 연구 발표나 세미나 등에서 그룹으로 연구를 해서 발표를 할 때면 항상 B씨 자신은 직접 발표를 하는 것을 피하고 동료들에게 발표를 하는 것을 맡기고 B 씨 자신은 슬라이드 등을 조작하거나 발표 이외의 자료 수집 등의 역할을 도맡아서 옆에서 도와주는 일을 의도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10년 이상을 엘리트 사원으로써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모든 면에서는 남에게 꿀리는 것이 없는데 단지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이러한 조그만, 별 것도 아닌 일에서 자신의 콧대 높은 자존심이 꺽이는 것에 분해서 못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제 2 회 치료 회기: 치료자는 B씨의 증세 발생에 관계해서 좀더 소상하게 그 증세와 관련된 과거의 역사들을 탐색하기로 하고 B 씨에게 그 증세와 관계되어 지금까지 어려웠던 경험들을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노래 패의 써클 행사 공연 연습장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서 겸연쩍어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된 이후에 이것을 커다란 망신으로 체면 손상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후에 동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하고 도망을 다녔다고 했다. 자신의 약점이 다른 사람에게 발각 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했다. 대학 3학년, 4학년이 되면서 그룹 연구 조사나 세미나 등에서 자신이 발표를 하는 것을 피하고 다른 그룹 참가자로 하여금 발표를 하도록 하고 자신은 자료들을 챙기거나 시청각 기구들을 조작하는 일들을 일부러 맡아서 발표를 피해왔다고 했다.
회사에 입사 후에 얼마되지 않아서 어느 날 직장의 상사가 자신에게 어떤 인쇄된 유인물을 자신에게 주면서 읽어 달라고 요청을 받고 그 인쇄 내용물을 읽으면서 또 망신을 당했다고 부끄러워했다. 그것을 읽는데 목소리가 떨리고 더듬거리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초등학생처럼 부자연스러웠다고 했다. 그 때 상사가 B씨가 인쇄물을 읽는 것을 듣고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이상하게 보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 이후에 직접 발표를 하는 일은 의식적으로 빠지고 동료들에게 미루어왔으나 지점장의 명령으로 자신이 발표를 직접 하게 되어 피할 수 없었던 때가 회사 입사 후에 약 6년 쯤에 있었다고 했다. 그 때 그의 회사의 직원들과 간부들이 약 130 여명이 모인 대 강당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고 사전에 많은 연구들을 해서 풍부한 자료 수집으로 모든 준비를 완료 한 후에 정작 그 발표 시에는 준비한 자료들을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하고 버벅거리고 머리 속이 햐얗게 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겨우 발표를 끝마쳤으나 동료들과 상사들이 다음에 더욱 잘하면 된다는 격려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망신을 당하고 수치심으로 고통스러웠다고 그 때를 치욕으로 회상을 했다.
최근에 3개월 전에 지점장을 뽑는 지점장 채용 시험에 응시를 했으나 인터뷰 시에 말을 더듬거리고 목소리가 떨려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약 30여명이 응시한 시험에서 떨어진 경험을 이야기를 했다.
지난 주일에는 새해 업무 보고에서 약 8명의 간부들이 지점장과 함께 타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슬라이드로 준비한 약 15페이지의 내용물들을 각자가 발표를 하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손에 땀이 나고 긴장되어 부자연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역시----"라는 한탄 쪼의 목소리가 입 속에서 맴돌았다고 했다.
그리고 더욱 최근에 지점장이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같이 근무를 했던 사원들이 각 부서별로 비디오 촬영을 해서 그것을 떠나는 지점장에서 선물로 주게 되어 B씨 자기 차례가 왔을 때 비디오 촬영을 하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또다시 말을 버벅거리고 손에 땀이 나고 목소리가 거칠 게 나와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몇 일 전에는 동료들과 모여서 스크린 골프를 치면서 1000원 차리 내가 골프를 장난으로 칠 때에 B씨는 자신이 그의 자아에게 마음 속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보다 더욱 잘해야 해, 멋지게 해서 친구들을 능가해야 해"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꽉 조여오고 호흡이 거칠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것을 느꼈다고 실토를 하면서 자신의 머리 속에는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이 작동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떤 것을 동료들 앞에서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예견 불안이 오고 그 다음에 손에 땀이 나고 그 다음에 호흡이 가파지고 가슴이 조여오는 순서가 그대로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짜여져서 B씨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대로 작동이 되는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제는 신임 지점장이 오셨는데 깐깐하고 일일이 하나씩 따지는 성격으로 혹시 자신에게 엄무 보고나 앞으로 그 지점장과 대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고민으로 고통스럽다고 했다.
제 3회 치료 회기: 치료자는 B씨의 어린 시절의 가족 환경을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너무나 경제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대학 때 학생 회장을 했던 사람으로 키가 180cm가 넘은 호인으로 성격도 호탕하고 친구가 많았고 운동을 했던 체질로 단단한 근육형이었으며 대학 때 학생 회장을 했었던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아버지가 대학 시절에는 학생 회장을 "학도 호국단 단장"이라고 호칭을 했으며 그 때에 학생회의 활동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 지금까지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B씨가 유치원 시절에 처음으로 사업을 했는데 그 사업이 스마일 벳지(smile badge) 사업으로 스마일 마크를 만들어 가슴에 달고 다니는 장식물 사업이었으나 그 사업이 실패하고 두 번째로 동료와 동업으로 아버지가 아이디어를 내서 친구와 동업으로 크다란 백화점을 개업을 했는데 친구가 그 사업을 자신이 독차지 하면서 아버지에게는 그 백화점에 딸린 점포를 몇 개를 주면서 발을 빼라고 한 것에 격분해서 그 친구를 폭행했다가 6개월간 감옥에 갔었던 이후에 다시는 사업 실패에서 재기를 하지 못하고 결국은 45세의 나이로 간 암으로 별세하기까지 아버지는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에 친가에서 앞으로 큰을 할 인물이 태어났다고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기대를 했던 인물로써 각광을 받았으나 결혼 후에 사업 실패의 연속으로 한 번도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고 늘 신세 한탄과 음주와 부부 싸움으로 조용한 날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B씨가 대학 1학년 2학기 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뵈었을 때는 아버지는 간암 말기로 피골이 상접해서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몇 일 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에서 죽음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무능력한 모습, 빌빌대며,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슬렁 거리면서 세월을 사신 아버지에 대한 평소에 느꼈던 분노, 적대 감정에 괴로워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은행원 출신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난 딸로서 외할아버지가 은행 지점장을 마지막으로 은퇴해서 지방에서 엄청나게 큰 과수원을 하게 되면서 시골의 B씨의 아버지가 사는 지역 인근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결혼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만나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소상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백화점 사업의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어머니가 일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다고 했다.
B씨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을 해 왔으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의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일이 잘 되면서 B씨의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대로 큰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B씨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어려움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B씨가 대학에 입학할 시점에는 어머니의 사업의 완전한 실패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었고 입학 등록금을 다른 친척이 부담을 했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했다. 그 시기에 B씨가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B씨는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부담하게 되었다고 대학 시절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이후에 어머니는 지금까지 각종 다양한 사업들을 시도했으나 결국은 실패를 거듭하고 B씨가 회사에 입사해서 셀러리 맨으로 모아 저축한 돈들을 사업을 한다고 빌려간 후에 한번도 제대로 돈을 갚아준 적이 없이 약 2억원의 돈을 빌려갔으나 한푼도 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분노했다. 어머니는 매번마다 눈물로 호소를 하는 바람에 2천만원, 3천만원, 4천만원 등으로 돈을 빌려가서 봉급 생활로써 푼푼이 모아두었던 돈들이 날아가 버리고 B씨 자신은 정작 10여년간 돈을 저축해 왔으나 지금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분개 했다. 친구들은 모아서 저축한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와 부동산들이 10억이 넘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B씨 자신은 정작 모아둔 돈도 없고 내 세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고통스러워했다.
형제로는 2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으나 그는 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의 속을 썩이게 만든 동생으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말썽만 피워온 동생으로 몇 번 사업을 한다고 형인 B씨에게 모두 7천여만원을 빌려 갔으나 사업에 성공을 하지 못하고 지금은 서로 연락이 잘 되지 않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남동생은 중학교 시절에 군에서 운영하는 항공 정비 고교 교장 선생님이 아버지의 대학 때 친한 친구로써 원서만 내면 합격할 수 있도록 손을 써 놓았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동생에게 응시 원서를 내라고 종용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권고를 무시하고 공부는 뒷전으로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처벌을 받은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 당시 항공 정비 학교는 국비로써 그 학교에 들어갔었다면 비행기 정비 기술자로 군에서 장기 복무자로 하사관(부사관)으로 복부하면서 크게 어려움이 없이 정비 기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B씨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한번도 체벌을 당한적이 없었고 부모님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자랐다고 했다.
제 4회 치료 회기: 치료자는 B씨에게 증세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더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탐색을 해 보기로 하고 B씨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B씨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유치원 때는 거의 기억이 없었다. 유치원 때 찍었던 사진이나 생일 파티 기억들, 친한 친구의 기억, 유치원 모습, 유치원 선생님들의 기억이 있는지 또 유치원 때 재롱 잔치 등의 기억이나 사진들이 있는지 물어 보았으나 그러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잦은 이사로 유치원 때 찍은 사진들로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유치원 시절의 기억은 완전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유치원 시절에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억압해서 무의식으로 억압해 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에 기억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담임 선생님에게 정확하게 어떤 쌍욕인지는 기억이 아니 않으나 쌍욕(개 새끼, 씨발년과 같은 심한 욕설)을 한 것 때문에 이후에 동료들과 학교 선생님들에게 소문이 났을까봐서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수년간을 교무실을 쳐다볼 수 없었고 동료들에게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살았던 고통스런 기억을 떠 올렸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업드려서 자고 있었는데 그 때 누가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씨발놈" 혹은 "씨발"이라는 욕설을 하면서 머리를 처들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쳐다보고 황당해 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그 희미한 기억이 정확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B씨의 성격상 선생님에게 쌍욕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친구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오인하고 욕을 하고 보니 선생님이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그 때 부끄러움과 수치심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5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중, 고등학교 시절에까지 그 상처가 따라다녔고 지금까지 머리 속에 남아서 괴롭히고 있다고 했다. 이후에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그가 동료를 공부를 못한다고 놀리고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가족들이 이사를 간다고 해서 간 그 집이 그가 놀리고 괴롭히던 그 친구의 집에 세를 들어서 그 친구 집에 들어가게 된 자신을 보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B씨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는 그런대로 잘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갈등이 많았던 것 같고 싸움이 잦았던 것 같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사업이 잘 되어서 경제적으로 좀 나아졌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해서 반에서 1등-2등을 하고 그리고 반장과 부반장을 해서 동료들에게 인기도 있었다고 했다.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몇가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학급 동료들을 지도하면서 중학교 1학년 때는 한 동료와 싸움이 터져서 B씨가 그 친구를 두들겨 패서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그 동료의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서 B 씨를 퇴학 시키겠다고 하는 것을 담임 선생님이 극구 말리고 달래서 무마되었던 기억이 있고 또 중학교 3학년 쯤에 한 동료와 갈등으로 그 급우를 걸상으로 내리 찍으려고 할 때 옆에 동료들이 말리는 바람에 큰 사건으로 터지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 두 개의 사건에서 한번도 부모님에게 그 사건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즉 B씨 자신의 고통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자신의 괴로움과 갈등을 마음 속에 억압해 온 것이 밝혀졌다. 이후에 대학 1학년 2학기 때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사업 실패 때문에 그리고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이 겹치면서 그는 대학 1학년 2학기 때가 가장 어려운 시점으로 그 때 6개월간 심한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앓았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1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내고 군에 입대해서 3년 간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2학년으로 복학을 해서 졸업을 할 때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했다. 군에서 복학한 이후에는 1학년 때 몰두했던 이념 써클이나 학생 운동에는 손을 때고 공부에 올인했고 졸업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외국인 회사에 입사를 했다고 했다. 그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절 즉 초등학교 시절과 대학 1학년 시절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동료들과 갈등으로 그리고 대학 1학년 시절에는 자신의 증세의 등장과 우울증, 공황 장애로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고 회상을 했다. 자신의 어려움이 경제적인 것과 연결되었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제 5회 치료 회기: 치료자는 B씨에게 어린 시절의 가족들과 상호관계와 가족 구성원들과 의사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탐색을 하기로 했다. B씨가 어떻게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과의 어린 시절의 관계가 대인관계로 연결되었는지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B씨의 아버지는 그가 암으로 죽을 때까지 어머니와 늘 티격태격으로 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쯤에 한번은 어머니가 B씨를 불러서 아버지를 데리려 가자고 해서 따라 갔었더니 아버지가 어떤 술집 홀에서 종업원들을 때려서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자주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B씨와 동생을 돌보아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고 B씨는 지금도 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목에 집의 열쇠를 걸고 다녔던 기억을 회상했다. 어머니는 6살 때 6.25사변으로 가족들이 방공호에 숨어 있다고 조용해지자 밖으로 나갔다고 폭격으로 사망했고 이후에 그녀의 아버지(외할아버지)의 재혼으로 양모 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여기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감정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양모는 어머니에게 잘해주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어머니가 말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양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자신의 욕구 표현과 감정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이것을 지적해주고 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B씨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거나 B 씨 자신의 감정을 솔찍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분노와 적대 감정을 마음 속에 쌓아두었과 유치원 시절의 엄마와 관계의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 등이 B씨의 감정의 표현의 어려움의 원인이 된 것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아버지 역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사람으로 동업 친구와 갈등에서 폭력으로 감옥을 6개월 갔었고 술집에서 종업원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어머니에게 폭력을 사용한 점 등이 이것을 증명해주었다. 어머니는 B씨에게 여러 번씩 몇 천만원을 빌려가면서도 빌려갈 때마다 자기 합리화로 "내가 혼자서 잘먹고 잘 살려고 했느냐? 내가 말못한 것이 뭐가 있느냐 나도 잘살아 볼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냐?"라고 자기 변명으로 일관되게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서 B 씨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서 쌍욕을 했다고 했다. 즉 씨발년아! 개년! 등으로 분노를 언어 폭력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죄의식으로 자신을 처벌한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불효 자식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어머니가 요구하는 돈을 보내 달라는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즉 어머니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언어 폭력으로 사용해서 화풀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죄의식으로 어머니에게 거부를 하지 못하고 돈을 빌려주었고 이것이 되풀이 되면서 지금까지 약 2억원의 돈이 어머니 사업 자금으로 날라갔다고 했다. 동생의 행동을 보면 동생 역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부모님에게 분노를 말로써 표현한 것이 아니고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반대로 함으로써 부모님을 처벌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반장 부반장으로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으나 그는 한번도 친구들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사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숨기고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중학교 때 우연히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그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그 돈 대신에 다방을 물러 받아서 사업을 해서 제법 다방이 잘 되어서 몇 개의 다방을 함께 운영을 했으나 이후에 그 사업의 실패로 고통을 받게 된 때가 B씨의 대학 1학년 시절이었다고 했다. B씨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 어머니가 다방을 경영한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부끄럽게 생각해서 한반도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의 환경 조사서에도 어머니가 사업을 한다고 적었지만 다방업을 한다고 적지 않았다고 했다. 다방은 유흥업소로써 다방 마담이나 다방 여종업 원들의 품행 때문에 자랑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또 아버지께서도 어머니가 다방을 운영하는 것 때문에 남자들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그 문제로 자주 다투었다는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제 6회 치료 회기: B씨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계속 분석에서 밝혀졌다. 그는 결혼을 한지 1년이 되었고 부인은 프랑스에서 10년동안 유학을 한 여성으로 이후에 한국에서 프랑스 계통의 사업을 하는 프랑스인 사장의 여비서로 근무하다가 결혼으로 물러나서 지금은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부인과 결혼을 하기 전에 약 7년 동안 사귀던 여성이 있었고 그 여성은 7년 동안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해서 공부를 했던 여성으로 B씨가 학원 비용이나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임용 고시에 합격을 해서 지금은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와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서로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서로 흥미가 사라져서 B씨가 그녀를 보내주기로 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B씨는 7년 동안 사귀던 결혼을 약속한 여성이나 결혼을 한 지금의 부인에게 한번도 자신이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한 이러한 자신의 고통과 수친심, 모욕감에 대해서는 일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어떤 친구들에게나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에게 쌍욕을 한 사건은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대학 1학년 때 수행 공포증과 우울증, 공황 장애 등을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한번은 7년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가 어느 날 "지금까지 오빠를 사귀어 오면서도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B씨의 수행 공포증의 증세를 세밀하게 분석해 보기로 했다. B씨에게 수행 공포증의 증세의 과정을 빠짐없이 소상하게 재연해 보라고 요구를 했다. B씨는 어떤 것을 발표를 할 때가 되면 마음 속에서 "예측 불안" 혹은 "예견 불안"이 온다고 했다.
그는 정신 의학에 서적들을 많이 읽어서 대부분의 정신의학이나 정신분석의 전문 용어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식으로 이해를 하면 자신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질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수행 공포증이 어떤 것인지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를 알 게 되었으나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즉 정신분석적인 전문 용어로써 지식화의 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식으로 많이 알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어질 것으로 생각해서 이론적 무장을 해 보았으나 결국은 문제를 덮어 버리는 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론적 무장을 하느라고 치료의 시기가 그 만큼 늦어지고 그 고통이 점점 커지게 되어 할 수 없이 치료자를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지식화 방어는 자신의 불안을 일시적으로 감소 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신분석에서는 방어로 보고 있다. 이 방어를 사용할 때는 지식으로 무장하면 그 문제가 풀릴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마음 속의 고통을 줄어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시적으로 고통을 피하기 위한 다른 방어기재들과 똑 같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고 있다. 고로 치료의 시기가 지연되고 고통은 연장이 되는 것이다.
예견 불안이 오면 이미 마음 속에서 자신의 문제가 예상이 되고 피할 수 없다는 듯이 목에 힘이 들어가고 "음" "에" 으으"라는 말들이 나오면서 말을 하면서 드듬거리고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고 껄끄러워지고 손에 땀이 나고 호흠이 가파지고 가슴이 조여오고 심하면 머리에 현기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입사 6년 쯤에 130여명의 회사원과 간부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그 때는 많은 준비와 연구를 해서 사전에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머리 속이 하얂게 되면서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을 기억을 했다.
최근에 년초 엄무 보고에서도 15페이지 정도의 유인물을 스라이드로 보여주면서 달걀형 타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발표를 하는데도 머리 속이 하앟게 되지는 않았으나 말을 하면서 "음음" "에" 으어" 등으로 말을 더벅거리고 초등학교 시절에 글을 잘 읽을 줄 모르는 어린이처럼 목소리가 떨리고 발음이 유창하지 못해서 동료들이나 자신이 실망을 한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마음 속에 만들어진 고정된 프로그램이 작동을 해서 아무리 그가 그것을 수정하려고 해도 그대로 작동이 되는 컴퓨터와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것 때문에 대학 시절에는 웅변학원이나 말더듬이 학원에도 다녀 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B씨는 과거의 수치심, 모욕감으로 얼룩진 고통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씹는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에게 결정적인 단서가 포착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는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옛날의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상하면서 "그것도 못하는 바보가 어디있어!"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동차의 커락숀을 빵빵 울리다가 옆 자동차의 운전자가 깜짝 놀래서 자신을 처다보도 욕을 하는 수모를 여러번 겪었고,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하는 말들을 하지 못하는 바보야! 이 거지 같은 놈아!"라고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와서 옆에 걸어가던 사람이 그에게 욕을 하는 것으로 오인해서 항의로 비시를 걸어와서 극구 변명을 하면서 무마했던 기억들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그 담인인 여선생님에에게 한 쌍욕에 대한 수치심과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노래패 써클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망신을 당한 그 상처와 그리고 6년 전에 회사의 전 사원들 앞에서 당한 부끄러움, 수치심과 3 개월 전에 지점장 승진 시험에서 말을 더듬거리고 버벅거리든 그 상처, 그리고 최근에 동료들과 장난으로 내가 골프를 치면서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조여오던 그 부끄러움 그리고 최근에 연초 업무 보고 때 더듬거리고 말 소리가 부자연스러웠던 그 일등 등을 하루에도 여러번 되풀이 반추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그 수치심의 이벤트들을 하루에도 수 십번씩 깨씹고 반추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처벌하고 있다는 B씨의 사고 과정 즉 정신분석적인 말로 그의 자아의 사고 하는 인지 구조가 밝혀지게 되었다.
만약에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를 하면 계속해서 앞으로 유사한 문제들이 늘어나서 계속 쌓이게 되고 그러한 상처와 자아 처벌은 누적되어져 산더미처럼 많아져서 앞으로는 더욱더 자아 처벌이 늘어나고 삶은 고통스러워질 것임을 지적하자 그것 때문에 더 이상 그 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문제를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단계 즉 한계점에 왔다는 것을 그가 판단했다고 했다.
B씨는 지난 주일에 부인이 딸을 순산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그 딸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회상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딸을 보면서 만약에 B씨의 감정 표현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고그대로 남아 있다면 딸에게 그 문제가 대물림이 될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것이 걱정이 된다고 했다. B씨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문제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정신적인 문제는 그것이 본인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대물림이 된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에 B씨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고통 즉 모요감, 수치심을 절대로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또 다른 사람이 그 감정을 알게되면 큰일 날 것이라고 마음 속에 꼭꼭 숨겨서 비밀로 지켜왔다고 했다. 그러면 B씨의 누적된 감정적인 홍수는 대학 1학년 때 증세로써 터져 나왔으나 그 이후에도 역시 꼭꼭 숨겨서 마음 속에 억압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마음 속에서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또 한가지의 B씨의 습관적 행동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그는 작년에 결혼 한 이후에도 1주일에 3회-4회 정도는 소주 반병 정도로 술을 혼자서 마신다고 했다. 그는 혼자서 마시는 것 이외에도 고등학교 때 친구나 대학 친구들을 만나서 한 달에 2회 3회 정도로 동료들과 같이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고 했다. B씨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고 무의 도식하면서 술을 비교적 많이 먹었던 편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사망 원인은 간암 이었다는 것을 알고 치료자가 술과 간암 과의 관계를 연결 시킬려고 했으나 그는 아버지는 평소에 간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간염이 간암으로 간으로 술과 연결을 피하려고 했다. 치료자는 B씨의 술을 마시는 습관이 언제부터 인지 탐색을 해 보았을 때 그가 입사 후 지금까지 2년-3년전까지만 해도 술을 하루에 빠짐없이 그의 소주 반병 정도를 마셔왔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업 자금으로 자신의 봉급의 저축을 밑도 끝도 없이 뜯기면서 분노해서 우울증으로 심하게 고생을 해 왔으며 어머니에 대한 분노, 적대감정 때문에 자살을 해 버릴까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그가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이 연결 되면서 자신의 내면에 쌓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술로써 완화 시켜온 것임을 지적했을 때 스스로 인정을 했다. 술은 불쾌한 감정을 완화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에 지적에 스스로 동의를 했다.
또 한가지 B씨의 사고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B씨가 어떤 고통스러운 일에 직면하거나 자손심을 상하는 일에 직면하게 되면 그는 그 자아에게 스스로 "사법고시 수석합격!"이라고 마음 속에서 외친다는 것이었다. 사법 고시 수석합격 할 것이다 이냐? 혹은 사법 고시 수삭합격을 했다는 것이냐? 어느 쪽이냐고 질문을 했을 때 그는 그냥 "사법 고시 수석 합격!"이라고 해서 그 말 뿐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사법고시 수석 합격을 했다!"고 말을 하면 그것은 자아가 거짓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아 수치심에 더 클 것이라고 지적을 했다. 만약에 아직 사법고시를 공부를 한 적도 없고 공부를 할 예정이 아니기 때문에 "사법 고시 수석 합력을 할 것이다"라고 하면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같이 보이지만 역시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됨으로 자아에 처벌, 양심에 처벌을 받게 된다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사법 고시 수석 합격!"이라는 말만 한다고 했다.
자아가 얼마나 교모하게 이러한 약점을 피하고 있는지을 분석하면서 무의식적인 면의 지혜에 감탄을 했다. 여기에서 B씨는 자신의 자손심을 들어 올리는 방어기재를 사용해서 자신의 감정적 불쾌감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즉 라이벌의 상대에게 혹은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자아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서 자신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즉 라이벌에게 "나는 사법 고시 수석합격을 한 사람이다, 당신과는 다른 사람이다. 당신과 같은 사람은 내 적수가 아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무의식적인 자아 칭찬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자는 B씨에게 사법 고시를 꿈꾼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대학 입학 시에 법대를 가려고 했으나 성적이 미치지 못해서 경영학과에 갔다고 했다. 사법 고시를 하려고 시도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언제부터 인지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말들을 자신의 자아에게 하고 있다고 의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수집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문제의 원인을 분석
B씨는 한번도 자신의 수치심과 모욕감에 해당되는 고통들을 말로써 다른 사람에게 표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즉 그는 부모님에게도 7년 동안 사귀오던 여자 친구에게도 그리고 지금의 부인에게도 자신의 수치심과 모욕감의 상처에 관련된 이벤트 들에 대해서 한번도 이야기를 해보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치료자의 지적에 대해서 맞장구를 쳤다. 그는 1년 전에 부인과 결혼을 한 이후에 자신의 책꽂이 꽂혀 있는 정신 의학 서적들의 표지들을 부인이 보지 못하게 책을 거꾸로 꽂아 그 책들의 제목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반대로 꽂아 놓았다고 했다. 부인이 자신의 문제점을 알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씨발놈, 깨새끼" 등의 심한 욕설을 한 것에 대해서 깜짝 놀라서 그것을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욕설은 그의 머리를 때린 사람이 학급 동료인 것으로 오인해서 그렇게 욕을 하게 되었고 정작 선생님에게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선생님이나 동료들에게 말로써 해명을 하지 못하고 그 부끄러움을 평생도록 십자가로 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그는 그의 그러한 해명을 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부모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스타일을 보면 알 수 있다. 부모님에게 자신의 감정을 소상하게 말로써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 역시 그들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한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표현을 한 것임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고로 이후에 자라면서 B 씨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에 결함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고통, 수치심, 모욕감 등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즉 한마디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장애는 성격장애의 핵심으로 떠 올라서 최근에 미국에서 이 장애를 alexythymia라고 부른다. 라틴어로 A는 없다. 못한다는 뜻이고 lexy는 언어, 말이는 뜻이고 thymia라는 말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병 이라는 그리스 말의 복합어로 탄생되었다.
B씨의 마음 속의 자아는 어린 시절 즉 유아기 때부터 엄마가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결함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의 감정 표현 결함 때문에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자아는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을 정신분석적인 용어로써는 "고착"이라고 부른다. 어떤 욕구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린 것으로 이것을 성장이 중지되거나 성장의 지연으로 부른다. 우리가 성인 어른들 한데서 다른 부분들은 정상적인 어른의 모습인데 어떤 특이한 점이 유아적이어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 "당신의 xx 는 어린 아이처럼 미성숙하다"라는 말을 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변태성욕자들의 변태성욕 행동들은 모두가 어른들이 하고 있는 어린 유아들의 행동이 아닌가! 다른 사람의 섹스 행위를 보려고 남의 집을 침범하는 행동인 관음증이나 자신의 성기를 다른 사람에게 내 보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노출증 이나 자신의 성기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게 상대에게 요구를 하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마소키즘적 섹스 행동들을 보면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행동 들이 아닌가! 변태 성욕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이러한 행동들은 상처를 받았던 그 당시에 욕구들이 그 자리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린 것으로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고착"으로 부른다. 고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분은 다음의 홈페지에 들어가 보세요.
B씨가 처음으로 상처를 받았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에게 한 욕설(씨발년 혹은 개쌔기)과 B씨가 증세로써 처음 등장한 대학 1학년 때 소래 써클에서 소리를 부르다가 모욕을 당한 것 들은 모두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관련되어있지 않는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바로 감정을 말과 리듬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B 씨는 이후에 이것이 확대 증폭 되면서 이것이 인지 구조로 습관화가 된 것이었다. 여기에다 그는 과거의 상처들을 되씹어 자아 처벌을 하고 있는 것을 하루에도 여러번씩 되풀이 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B씨는 자신의 감정 처리에 고착이 되어서 어린 시절부터 고통스런 감정을 마음 속에 억압해 온 것으로 이러한 불쾌감, 부정적인 감정이 누적이 되어 마음 속에서 갇혀 있어서 이 고통스러운 부정적 감정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한계점에 다가가면서 한쪽이 터진 것이 대학 1학년 때의 최초의 증세의 등장으로 나타난 것임을 B씨에게 인식을 시켰다. 그는 한번도 고통스러운 감정을 부모나 부인이나 7년 동안 사귀어왔던 여자 친구에게 말로써 표현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결국 B씨의 수행 공포증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에 결함이 표면으로 나온 것이며 내면에는 불쾌감, 부정적 감정들이 저수지처럼 고여 있어서 누적된 감정에 두려움, 공포를 느끼고 있고 이들 감정들이 터져나올까봐서 전전 긍긍하고 있는 것이 증세로써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수행 공포증은 불안증, 불안장애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불안증이라는 장애 그 자체가 내면 마음 속에서 자아가 감정을 통제하기 못해서 생기는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가!
치료자는 여기에서 B씨의 어린 시절에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무의식속에서 고통스럽게 신음을 하고 있는 감정을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자아를 성장을 시켜서 어른의 자아와 통합을 하는 것임을 설명을 했을 때 B씨는 "선생님의 말이 100% 맞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무릎을 쳤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B씨의 질문에 치료자는 어린 시절의 상처 기억들을 전무 끄집어 내어서 다시 재연해서 그 때 표현하지 못하고 막혀 있는 감정 표현 자아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감정을 새로 표현하는 것을 치료자 한데서 배우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 과정이 될 것입을 지적을 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해 본 기억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치료자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맞장구를 치면서 자신은 자신의 자아에게 "그것도 못하느냐 이 바보야, 그것은 유치원 아이들도 다 하는 것이야!"라고 질책을 하면서도 그것을 정작 실현을 하려고 하면 입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경험이 많이 있다고 했다. 즉 그는 한번도 입 밖에서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표현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행을 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행, 수행 공포증이 아닌가!
B씨에게 치료자는 B씨의 증세인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손에 땀이 나고 말이 더듬거리고 가슴이 꽉 조이고 호흡이 막히면서 말을 자연스럽게 나오지 못하는 공연, 혹은 수행 공포증은 그 행동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어린 시절에 고착된 감정의 표현이 성숙해지면 그 문제가 저절로 해결이 되이질 것임을 확인 시키면서 앞으로 치료의 결과를 지켜 보기로 하고 다음 치료 회기부터는 어린 시절의 감정 표현에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질 것임을 예고 했다.
B씨의 6개월 치료 과정에서 그 동안에 드러나지 않은 더욱 세부적인 많은 것들이 분석되어졌다. B씨는 6개월의 치료 과정을 끝내고 다시 6개월의 치료를 재 계약을 한 후에 7개월 째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B씨의 첫 2개월 이후의 치료 과정을 상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