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외로움(Lonely), 고독(孤獨)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8. 4. 22. 07:28

외로움(Lonely), 고독(孤獨)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특별히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로움이 우울증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 널이 잘 알려져 있는 상식이다. 고로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에게 외로움은 연구의 대상이 된지 오래이고 그들이 펴낸 많은 외로움에 대한 서적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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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자연의 한 일부분이었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소속되어져 있었다. 원시시대에는 자연은 인간처럼 똑 같이 생명을 가진 인격체로써 숭배되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범신론이다. 자연의 웅장한 모든 생물들과 무생물들은 인격을 가진 한 개의 대상으로 존경을 받았다. 깊고 높은 산에는 산신(山神)이 살고 있고, 넓은 땅에는 지신(地神), 거대한 바위에는 석신(石神), 거대한 나무에는 목신(木神)이 살고 있는 것으로 인간은 그들을 숭배하고 그들을 함부로 파괴하거나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원시시대에서 인간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문화 인류학자들은 세계의 곳곳에서 아직도 이러한 흔적들을 보고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인디언 족 혹은 아프리카의 일부 종족들은 그들이 동물들을 사냥을 할 때는 반드시 신에게 제사를 먼저 올리고 그들이 필요한 만큼의 사냥할 것이라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한 만큼의 식량의 공급 안에서 그들을 사냥을 했다 고로 먹이 감이 부족한 경우는 없었다. 일반적인 식량들은 자연 속에서 지천으로 늘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먹고 살 걱정들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같이 모여서 축제로써 북치고 춤추고 즐겁게 사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고로 그들 중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 역동적 정신 의학자들은 지적을 하고 있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소외되어 갔다. 과학 문명의 등장으로 인간은 더욱더 편리해졌고 그리고 과학적인 사고 속에서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시켰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의 자아로부터 소외되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자아 안에서 소외 즉 자아 분열이다, 자아의 경험들 안에서 서로 소외와 분리가 되어지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역동적 정신의학자들은 보고 하고 있다. 즉 다양한 신경증들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기로 본다. 강박 신경증, 불안 신경증, 신경 쇠약 신경증 등이 그들이다.


20세기에 과속화 된 과학 문명의 발달은 드디어 인간의 자아 속에서 소외인 자아분열을 등장하게 했고 그리고 그것의 극심한 경우가 정신분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정신분열증(조현병)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899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크레펠린(Kraepeline)이 조발성 치매(처음 정신분열증의 이름)로 보고한 것에서 등장해서 그 용어가 1911년에 유럽의 최초의 대학정신 병원인 스위스의 쥬리히의 부르고졸리 대학정신 병원의 총장인 유지 블루러(Eugene Bleuler) 15년 동안 조발성 치매 환자를 연구한 끝에 젊은이들의 치매 현상이 아니고 정신의 분열로써 사고의 분열, 연상의 분열, 감정과 사고의 분열, 양면 감정의 분열, 내면 자폐 속으로 철회 등으로 자아가 분열된 것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외부 세계의 실망에 대한 분리와 소외로써 자신의 내면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의 내면의 세계 역시 분열과 소외가 된 정신장애의 이름이 정신분열증이 아닌가?(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에 정신분열증에서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뀜(위키피아에서 인용).


인간의 소외 즉 외로움으로 되돌아가 보자,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느낌을 말한다. 옆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 고독(다음 국어사전의 정의)이고 이러한 고독을 느끼는 것이 외로움이다(위키피아 백과 사전의 정의). 산 속에 혼자서 살고 있다면 주변이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고독하고 그리고 쓸쓸한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같이 생활하고 있으면서 외로움을 느낀다. 얼마나 모순되는가? 1950년에 미국의 하버드 대학 교수인 데이비트 레이즈멘(David Reisman)은 그의 저서인 군중 속의 고독”(Lonely Crowd)이라는 책으로 현대인들의 모순을 지적을 했다. 그는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하버드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을 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그리고 정신분석가인 에릭 프롬(Erick Fromm)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는 인간이 내면적인 자아 유형으로부터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해서 외부적 유형으로 변해가는 것으로 우리는 점차로 다른 사람들의 눈치, 비위에 맞추려고 하는 외형적 자아 유형에서 고독과 외로움이 확대된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유아기에 어린이들은 자아 중심으로 감정이 자유롭다(1-2살에 나르시즘이 피크를 이룬다.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가 된다), 타인들의 감정에 구애 없이 마음대로 욕구들을 표현하고 자유롭게 행동한다, 고로 유아기에는 우울증이 없다고 분석가들을 밝히고 있다. 점차로 초자아 즉 양심이 발달하게 되면서 어린이들을 부모의 기대에 부모의 처벌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눈치, 비위를 맞추고 타인들에게 의존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시점에서 자아 중심으로부터 대상의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대상의 사랑에 의존하게 되고 대상의 칭찬과 찬사와 격려에 매달리게 된다. 이것이 심하게 되어 자아의 위협으로 방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 어린이 정신증 이다.


옆에 대상이 없으면 불안하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고 이것이 추상화된 것이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자신을 외면하고 자신을 피하고 싫어하고 떠나간다고 호소한다. 과도한 외로움은 속이 텅 빈 느낌, 감정이 빠져 나가버린 느낌 그리고 쓸쓸하고 의지할 곳이 없는 허허벌판에 홀로선 느낌을 토로 한다.


21세기가 된 오늘날 소외와 고립과 고독으로 인한 외로움은 정신건강에 엄청난 위력을 떨치게 될 것으로 본다. 한가지 예를 들어서 휴대폰이 그것이다. 휴대폰이 편리한 것을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지하철 혹은 버스 안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글을 읽거나 자료를 찾고 있다. 휴대폰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잘못 사용하면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과 불은 인간에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화재와 홍수는 인간에게 재난을 안겨다 준다, 마찬가지로 부부가 같이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직접 대화 대신에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로 주고 받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살 혹은 4살 된 어린이와 함께 지하철을 단 엄마가 그 어린이는 옆에서 멍하니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고 엄마는 휴대폰을 열심히 조작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본다. 아기와 엄마 사이에 대화의 기회가 그 만큼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3살 혹은 4살의 어린이들도 휴대폰으로 개임을 놀이를 하는 것의 심각함을 호소하는 엄마들이 많다.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한 30대 후반의 부인이 그녀의 6살 된 아들이 게임에 빠져서 심각함을 호소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들을 표현하는 대화가 점점 줄어들고 휴대폰 혹은 게임들이 대화를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시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 가 보자. 외로움에 대한 세계적인 대가로 스텐포드 의과대학에서 정신과 교수로 그리고 행동학자로 이름 난 데이비드 번(David Burns, 1985: 주㈜: 참고)은 그의 저서 친밀함의 연결이라는 책 속에서 외로움에 대한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심리학 잡지인 심리학 투데이(Psychology, Today, 1979, 10) 잡지사가 미국 전역에 살고 있는 40,0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 연구에서 외로움을 측정을 한 결과 50%가 때때로 혹은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대답을 했다. 특별히 나이 젊은 층이 노인들보다 더 외로움이 많았다. 18세 이하가 79%, 25-34세가 69%, 54세 이상은 37%였다. 데이비드 번 교수는 외로움을 연구 하면서 이것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을 했다.


니체는 인간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배우자를 찾는다고 했다. 혼자 있는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고로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배우자와 함께 살려고 한다면 부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외로움이 적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데이비드 번은 이것을 연구해 보기로 했다. 그는 연인을 찾고 가까운 친구들을 만들기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외로움 측정 심리검사지를 개발을 했다.


이 외로움 심리검사지를 사용해서 그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데이톤(Dayton)으로부터 모든 나이의 연령 층에 해당하는 독신 남녀들과 결혼한 남녀들 272명에게 외로움 측정 감사지를 주고 검사를 한 결과 평균 점수가 온건한 외로움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느낌이고 주변이 사람이 없는 고독한 상황을 대변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혼자인 독신자들, 미망인과 홀아비, 별거, 이혼을 한 사람이 외로움을 많이 탈 것이라고 생각을 했으나 그의 연구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다. 즉 결혼한 부부들이 혼자 사는 사람들만큼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고 때때로 그들보다 더 외로움의 경험이 많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부부 사이에 소통의 부족과 결함이 부부 사이에 외로움의 결정적인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의 연구의 결과로써 외로움은 진실로 혼자 있다는 것이 원인이 아니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진다는 것이 외로움의 치유의 길이 아님을 경고 하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과 느끼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자신감(self-esteem), 자긍심(self-effective), 자아 존경심(self-respect)에서 찾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자아 속에서 찾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그는 정신분석가가 아니고 행동학자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자신을 존경하는 것을 배우라고 권유하고 있다. 우울증의 핵심은 자아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자아를 처벌하고 심한 경우에는 자해(자살)로서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의 저서 친밀함의 연결에서 만약에 당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자신을 이해한다면 다른 사람도 역사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강조하면서 그렇게 되면 외로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존이 높은 사람들이고 이 의존에서 오는 좌절과 거부와 버림받음으로 인한 실망으로써 외로움이 가속화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시키고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존 먀살(John Marshall, 1994: 주㈜: 참고)은 그의 저서 대인 공포증에서 외로움을 자아의 결함에서 생기는 불쾌감으로 정의를 했다. 외로움은 다양한 문제들 즉 우울증, 사춘기 가출, 행동 문제, 실업자, 자살들로 연결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외로움의 연구는 역시 대상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대상의 의존해서 그들의 칭찬과 찬사에 의존해 있는 자아의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옆에 대상이 없으면 외롭고 우울하고 아무도 없는 이 세상에 혼자가 된 자신을 자아가 관찰하고 의식하고 자아 비판으로 비난으로 이어지게 됨을 지적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외로움의 해결로 되돌아가보자. 하버드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모델(Model,1988,1990,1993:주㈜: 참고)은 그의 저서 사적인 자아에서 시간의 개념을 물리학적인 개념과 사이클 적인 개념으로 구분하고 있다. 물리학적인 개념으로 보면 과거 즉 어제까지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내일은 아직도 오지 않는 미래로써 우리는 현재의 시간에 살고 있다. 어제는 되돌아갈 수 없고 내일을 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클 적인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이미 100전에 무의식의 이론에서 밝힌바 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고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들과 그리고 나쁜 불쾌한 기억들로 언제든지 상상 속에서 과거의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희망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은 물리학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상상적인 사이클 적인 개념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수 많은 자아들의 경험들이 집합으로 모여있는 자아들이 있다. 유아기 자아, 초등학교 저학년 자아, 중학년 자아, 고학년 자아, 사춘기 자아, 청년기 자아 등등 수 많은 자아들이 있다. 아버지의 이미지, 어머니의 이미지. 친구들의 이미지 등등의 집합이 된 수 많은 자아 경험들과 대화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는가?


물리학적인 개념으로 혼자 있지만 사이클 적인 시간 개념으로 바꾸면 우리는 결과 혼자가 아니다. 혼자 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수 많은 자아들과 대화하고 그들과 관계를 하고 있지 않는가?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움으로 고립으로 그리고 고독으로 고통으로 경험하는 것을 혼자 있을 때 자아가 원하는 것을 자아가 좋아하는 것을 자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창의적인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자아의 독립심을 기르고 그리고 대상에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지름길이 된다. 자아의 독립심은 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심리치료 즉 행동주의 치료와 인지치료 혹은 모든 최근의 심리치료와 그리고 정신분석적인 치료들이 공통 분모로써 주장을 하는 것이 자아 주장이다. 자기 주장 훈련이다(assertive training)이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느낌을 말로써 표현하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 자아를 이해하고 내 자아의 갈등을 풀어나가면서 내 자아를 사랑하게 만들고 그리고 자아와 대화를 통해서 내 자신을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아 결함 혹은 자아의 성장이 중지된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를 통한 자아의 성장의 장애물, 걸림돌을 제거해서 계속해서 자아가 나이에 걸맞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정신분석의 치료의 핵심이다.


이제 이론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30대 후반의 젊은이의 정신분석 치료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치료자에게 11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젊은이 이다. 그에 대한 사례들은 앞의 글에서 몇 번 소개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유치원 시절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많았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 99 cm로 키가 제일 작아서 땅꼬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의 몸집보다 더 크게 보이는 가방을 매고 다니는 것을 보고 동료들이 가방을 끌어 당기거나 가방에 돌멩이를 넣어 괴롭히는 장난들이 자자 지면서 그는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괴롭히면서 고통스럽다고 호소를 했다. 그렇게 호소를 했을 때 어머니는 돈을 주면서 괴롭히는 어린이들에게 과자를 사주면서 달래라고 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그들에게 과자를 사 주었을 때 초반기에는 괴롭히는 몇몇 친구들이 보호를 해주다가 점점 더 과자를 많이 요구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하는 바람에 그만 포기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항상 감기 몸살 등의 질병으로 출석일수 보다 결석일수가 많았다고 회고를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이렇게 하다가 공부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석을 하지 않으려고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그리고 중학교 시절 내내 그는 학교 생활은 고역, 고통 그 자체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호소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동료들을 무시하라고 했다. 아무리 무시해도 괴롭히는 동료들에게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더 이상 방법이 없게 되자 한숨을 푹푹 쉬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몸이 약하고 질병이 잦아지면서 어머니는 그를 종합 병원에 데리고 가서 종합 검진을 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 때부터 어머니가 기독교에서 캐토릭으로 개종을 하고 안수기도 혹은 교회의 기도 모임에 데리고 가다가 효과가 없자 그 때부터 정신과 의사, 한의사에게 데리고 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했으나 효과가 없게 되자 부적을 몸에 지니게 하거나, 이름난 점술가, 무당 한데 데리고 다녀 보았으나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고 아예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가 키가 크지 않은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최고의 xx 대학 종합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키가 크는 호르몬 주사를 맞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맞기 시작한 호르몬 주사를 지금도 4-5개월에 한번씩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 그 당시는 호르몬 주사는 의료 보험에 적용되지 않았다. 고로 어머니는 그 때마다 아들에게 너는 돈 먹는 기계이다” “우리 집 돈을 네가 다 축내고 있다” “너는 내 앞에서 절대로 돈을 요구하지 말라” “너는 우리 집의 기둥 뿌리를 흔들어서 돈을 축내는 불효자이다라고 호통을 치고 처벌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는 아들을 앉혀 놓고 세 명의 여동생들(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생, 3살 된 어린이)을 불러 모아서 너의 오빠는 어른이 되면 혼자 살아가기 어려우니 너희들이 오빠를 도와주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가 깜짝 놀랬다고 회고를 했다. 그러한 사건이 몇 번이나 전개되면서 그 때부터 그는 어른이 되면 거지가 될 것이다 라는 거지 공포증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어른이 되면 혼자 살아가기 어려우니 거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를 유심히 살펴 보면서 어떻게 거지들이 동냥을 하는지?를 스스로 유심히 관찰을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는 밤만 되면 거지 공포증”(그가 불인 이름)으로 밤에 고통스러워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맞벌이였기 때문에 그는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자면서 할머니에게 거지 공포증에 대해서 이야기를 몇 번 했으나 할머니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렸고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밤마다 거지 공포증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분석 치료 초반기에 수없이 고통을 호소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학교 동료들 때문에 고통을 호소 했을 때 어머니는 한숨을 쉬면서 방으로 들어가서 돌아누워버렸고 아버지는 신문을 보고 있으면서 너의 엄마에게 가서 말을 해라라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울면서 서 있는 것을 할머니가 보고 달래주면서 데리고 갔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에게 언어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 학교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되자 그는 늘 혼자서 외톨이 등교와 하교를 했다. 집에 와서 책을 읽거나 혹은 혼자서 장난을 치고 있으면 어머니는 이 썩어빠질 놈의 새끼야! 너는 허구한날 방안에 처박혀 혼자 있느냐?”, “너의 동료들은 모두가 밖에서 어울려서 놀고 있는데 너는 방 안에 처박혀서 혼자서 쓸데없는 짓거리만 하고 있느냐?” “이 썩어 빠질 놈아! 방 안에 있지 말고 밖을 나가서 같이 어울려 놀아라라고 호통을 칠 때마다 그는 방으로부터 쫓겨 나갔다. 그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뒷동산에 올라가서 보이지 않는 풀 숲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다고 호소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앞에서 몇 마리의 병아리(부화장에서 부화시킨 병든 병아리들)를 팔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 병아리 세 마리를 사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주고 키웠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병아리들을 안고 그 병아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안고 놀았다. 그의 정성 어린 돌봄으로 그들 중에 2 마리가 어른 닭이 되어서 달걀을 낳아 주었다. 어느 날 인근에 살고 있던 고모네 집 할머니가 와서 토종 닭이 맛이 있으니 잡아 먹자고 어머니에게 졸라서 어머니가 그에게 5천원을 던져 주면서 그 닭은 잡아먹기로 했다고 일방 통보를 했다. 그는 울면서 호소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의 호소를 무시하고 그 닭의 목을 비틀어서 털을 벗기고 솥에 넣어 삼기 직전에 빨래 줄에 매달라 놓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그는 닭죽 혹은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닭과 관계된 음식은 그에게 금기가 되었고 알레르기가 되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오줌을 쌌다고 토로 했다. 오줌싸개였던 그에게 어머니는 더 이상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 밤에는 담요를 깔고 잠을 잦고 오줌을 싼 그대로 옷을 입고 가야 했다.


어머니는 세 명의 딸들에게는 관대했다. 아들인 그와 똑 같이 관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차별에 혹시 어머니가 계모가 아닌가? 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호적 등본을 때어보았다 그러나 계모는 아니었다. 차리리 계모였다면 혹은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였다면 받아들이기가 쉬웠을 것이라고 호소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어머니는 그에게 한 달에 용돈으로 2천원을 주었다. 그 돈으로 그는 껌을 하나 사서 씹고 있었다. 우연히 그것을 본 어머니가 그에게 껌이 어디에서 나왔느냐?라고 물었고 그는 용돈에서 샀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폭언이 따라왔다. “이 썩어빠질 새끼야! 땅을 파보아라, 돈 십 원이 나오느냐?” “너는 돈을 아낄 줄 모른다라고 폭언을 사용하면서 그에게 준 용돈을 빼앗아 갔다.


고교 3학년이 되면서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밤 10시경에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방에서 늘어져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잠을 자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어머니를 죽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고 했다. 6개월 동안 잠들어 있는 어머니만 보면 타올로 입을 막아 줄일까? 목을 졸라 죽일까? 칼로 찔러 죽일까? 등등으로 어머니를 죽일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저녁 야자가 늦게 끝나면 아버지가 승용차로 학교에서 그를 데리고 인근에서 야자를 하고 있는 첫째 여동생의 태우고 나기 위해서 그녀의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아버지의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어머니가 뒷좌석에 타고 있는 그를 뒤돌아 보고 20-30분 동안 설교 아닌 처벌을 했다. “어제 네가 첫 째 여동생 한데 말대꾸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왜 너는 눈치, 코치가 없느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여동생이 너를 부모님처럼 돌보아줄 것인데 여동생에게 잘 보여야 나중에 네가 도움을 받을 것인데 네가 여동생에게 미운 털이 밖이면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훈시와 처벌을 수 없이 들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가 고 3시절에 장애인 특별 전형이 새로 생겼을 때 어머니는 다짜고짜 그의 손목을 끌고 장애인들이 줄을 서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장애인 심사관 앞으로 끌고 갔다. 100m나 되는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 심사관 앞에서 어머니는 아들이 장애인이니 판정을 내려 달라고 했다. 그 심사관은 이 학생은 장애인이 아닌데 장애인으로 판정을 해 줄 수 없다고 거부했으나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장애인이라고 우기고 결국은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그는 억울하고 모욕감을 느꼈으나 어머니의 말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발하거나 거부하면 몇 십 배의 처벌이 따라온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호통과 처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애인의 판정으로 xx 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러나 그는 경영학에 관심도 없었고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그는 만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학교 만화 동아리에 가압을 했다. 그러나 만화 동아리의 선배들은 새로 가입한 그에게 그 당시 대학생들의 독재 정부의 항의 투쟁의 시대여서 선동적인 만화를 그려야 한다고 강압을 했다. 그는 학교 만화 동아리를 탈퇴하고 여름 방학 때 만화 학원에 등록을 해서 열심히 만화를 그렸다. 그 때부터 대학 3학년 때까지 만화 학원에 열심히 다녔고 만화 그리기에 몰입을 했다.


처음에 여름 방학에 만화를 그릴 때 어머니는 찬성을 했다. 무엇이든지 배우면 도움이 된다고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 2학년이 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극구 반대를 했다.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상위 1%의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 나야 하는데 너는 미대를 나오지 않고 그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되면 밥 먹고 살아갈 수가 없으니 포기하고 공무원 혹은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 되어야 한다고 강압을 했다. 그러나 포기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만화를 그리게 되자 본격적인 반대가 시작되었다. 고교 시절에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아버지는 할머니의 반대로 그림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림을 그리면 먹고 살 수가 없다고 강조를 했다. 어머니는 늘 그에게 이 썩어 빠질 놈아!(어머니의 상투적인 표현), 허구한날 방구석에 처박혀 하는 일이라고는 쓸데없는 짓거리만 하는구나!” “책상에 앉아서 공부는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고 있느냐?”라고 호통과 처벌을 했다.

 

대학 3학년 시점에서 어머니가 어느 날 신문에 대한 만화 학회에서 청 소년을 위한 만화 교실을 문을 열고 1년의 교육 기간으로 만화 지망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어머니가 그에게 해 볼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고 그는 즉각 지원을 했다. 그 동안에 그린 그림을 보냈으나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불합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 않았느냐?라고 전화가 온 것이었다. 그는 합격 통지서를 받지 못했다고 했을 때 내일부터 학교가 시작되었으니 참석하라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수 백만 원의 1년 분 학비는 다행히도 어머니가 지원을 해 주었다.


그는 그 시절을 가장 행복한 시절로 회상을 했다. 6명의 교수들은 모두가 혼자서 그림을 공부해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각각 교수들은 맡은 과목들이 달랐다. 인체를 부분을 당당한 교수, 해부학적인 부분을, 스토리를 담당하는 사람,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입체적인 부분을, 얼굴 표정을 담당, 명암 부분 등등으로 그는 1년 동안 열심히 배웠다. 그 교수들은 그림을 그리는 분야에서 만화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만화는 영화 감독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영화 감독은 각 부분들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부분들을 모두 통합을 하면 되지만 만화가는 한 사람이 모든 부분들, 스토리, 인간의 표정과 해부학, 높은 곳에서 보는 것과 낮은 곳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모든 부분을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예술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강의를 했다.

 

졸업 작품전으로 첫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는 약 25장면 정도를 스토리로 그림을 그렸다. 보름달에 뜨면 늑대가 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가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서로 좋아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보름달에 뜨면서 늑대가 되는 것이 탄로 나면서 그녀가 놀라서 도망을 가버리고 그는 충격으로 그녀를 따라다니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지도 교수는 스토리는 좋았으나 손과 표정에 약간 디테일 한 점이 단점이라고 지적을 해주었다.

대형 화지에 25편의 이야기를 연결해서 전시회 출품작을 만드는데 부모님에게 돈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 했다가 어머니가 이 썩어 빠질 놈아! 너 때문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데 너는 나에게 돈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고로 나에게 돈을 요구하지 말라라는 폭언을 듣고 그 이후에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했다. 고로 그는 다른 학생들은 그들의 만화 그림들을 표구점에 가서 십만여 원을 지불하고 제작을 하는데 그는 스티로폴을 잘라서 그 위에 그림을 붙이고 비닐로 덮어서 전시회에 그림을 제출해서 첫 전시회를 한 회고를 했다. 동료들은 모두가 부모님과 친구들과 친지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축화를 해 주었으나 그는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을 보고 처벌을 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때 그가 느낀 외로움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불쌍한 자신의 자아의 모습을 감추려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그의 그림이 걸린 벽면을 쳐다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를 했다.


그가 대학 4학년이 되면서 다른 학생들은 일자리를 걱정해서 죽자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너는 쓸데없는 짓만 하고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고 호통을 쳤다. 그는 어머니의 등살에 할 수 없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그 동안에 그린 만화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다. 취업을 하라는 부모님의 등쌀에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린 만화들을 들고 하루 종일 만화 출판사를 찾아 다녔다. 몇 군데에서 만화가 괜찮으니 그들의 지도를 받으면 되겠다고 해서 몇 번 지도를 받았으나 그 출판사는 부도가 나서 문을 받고 사라졌다. 몇 군데를 그렇게 해서 지도를 약속 했으나 결국은 그들도 문을 닫고 말았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출판사를 찾아 다니다가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그를 보고 욕설을 퍼 부었다. “이 썩 발이 자식아! 너는 눈치, 코치도 없으냐! 너의 재능이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들이 너를 보고 얼마나 한심하다고 욕을 하는지도 모르고 돌아 다니느냐?”라고 폭언을 했다.  어머니는 그를 옆에 끌어 앉게 하고 그림은 1%의 타고난 천재들이 하는 것인데 내 앞에서 Yes No로 대답을 하라”, “네가 1%의 천재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없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다그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는 쪽으로 말을 해도 그는 처벌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의 천재적인 능력이 있다고 Yes라고 대답을 하면 그러면 왜 출판사에서 당장 취업을 하지 못하는가?라고 처벌할 것이고 No라고 대답을 하면 왜 당장 그만두고 포기를 하지 못하느냐?라고 처벌을 받을 것이 뻔하지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폭언을 들어면서 성장을 했다. 그는 졸업 후에 마침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업을 했다. 10개월 동안 다니다가 결국은 그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직장에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그는 그 회사에서 받은 월급과 그의 장애인 수당으로 한 달에 약 50만원의 수입을 저축을 했다. 300만원이 모인 것이었다. 그는 자살을 결심을 했다. 자살을 결함하고 죽으려고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자신이 죽고 나면 300백만 원의 돈이 구설수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서 방안을 찾고 있던 도중에 서점에서 치료자가 쓴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책을 보고 눈에 번쩍 뛰었고 그 책을 읽고 나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심리치료들의 사례들과 치료의 과정을 읽어 보았다. 그래서 그 남은 돈으로 6개월 간 치료 계약을 하고 심리치료를 받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그를 치료하게 되면서 그가 부모님 특별히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로 집에서 독립해서 나올 것을 권유를 했고 그는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자아가 유아기 시절에서부터 성장이 멈추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독립해서 나오겠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6개월 동안 자아 표현과 그의 마음 속에 억압된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는 치료가 시작되었다. 부모님의 평가가 어린이의 자아가 된다는 대인관계 정신분석 창설자인 셀리번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아 찾기가 시작되었다. 치료실에서 의사 소통과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과 유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가슴 속에 박혀 있는 대못들을 빼내기 시작을 했다. 드디어 그가 부모님에게 독립해서 따라 나가서 살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를 했다. 혼자 나가서 살 능력이 없는데 굶어 죽을 것이 아닌가?라고 한심하다고 했다.


여기에서 잠깐 치료자의 정신분석 치료에 언급해 보고자 한다. 치료자는 위의 젊은이(Z)들을 수 없이 치료를 해 보았다. 치료실에서 그들을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자아의 표현 능력을 기르고 자신감을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1회 치료 회기를 2시간으로 열심히 치료를 해서 집으로 가면 가족 구성원들에 의한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치료실에서 자신감을 들어 올리게 하고 나면 집에 가서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하게 되면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고등학교 학생 이상인 경우에는 집에서 나와서 혼자서 생활하도록 하는 치료 전락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 하고 부모의 의존에서 독립심을 길러야 하는 것이 삶의 과정이 아닌가? 치료자는 지금까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사람들의 95%가 모두 집에서 나와서 부모님의 간섭과 과잉 보호와 의존에서 벗어나게 했고 그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Z씨는 부모님에게 혼자서 독립된 생활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돈을 지원해주지 않았다. 원룸을 얻어달라고 했을 때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할 수 없이 고시방으로 나오도록 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당시에 한 달에 35만원 정도이면 밥과 김치와 달걀은 고시원에서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약간의 부식비만 조달하면 한달 용돈정도면 생활 할 수가 있었다.


다행히도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려 오기 직전에 아버지는 Z씨에게 그의 대인관계 결함으로 사회 생활에 어려움을 알고 그에게 성당에서 청년들의 모임인 xxx의 그룹에 나가면 매달 180만원을 Z씨의 통장에 넣어주겠다는 제의에 동의를 해서 성당 청년부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모임도 별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이 2개월-3개월에 한번씩 회식으로 식사를 같이 할 때마다 그리고 피정(성당의 젊은이들이 1 2일로 성지 혹은 야회 놀이에 참가)의 그들이 모임의 자리는 대인관계에 결함을 가진 Z씨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서 긴장과 불안의 증가로 일종의 고문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저녁 식사 자리는 거의 대부분이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술로써 채웠고 2, 3차까지 참석을 거부하지 못했기 때문에(No라고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모임이 Z씨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의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예견해서 노후 준비로 부동산과 백화점에 투자를 해서 매월 180만원 정도의 월세가 Z씨의 통장에 들어오게 해주었다. 그는 6개월의 치료 계약이 끝나고 지금까지 11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그 돈의 일부를 치료 비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그의 연급과 집세 등으로 그리고 그의 생활비용으로 빠듯하게 사용할 수게 있게 된 것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11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데 치료실에서 1 1회로 2시간씩 치료를 진행해 나가는데 무슨 할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가? 라고 궁금해할 것이다. 그러나 4분의 3은 지난 시간에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4분의 1은 항상 지금까지 다루지 못한 새로운 이벤트들이 등장하는 것에 치료자 자신도 깜짝깜짝 놀랠 때가 많다. 치료자는 프로이트가 100전에 말을 한 유명한 명언이 떠 오를 때가 많다. 심리적인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자아(ego)의 힘이 약할 때 ego가 억압의 힘이 약해지면 다른 증세들로써 변장되어 분석을 받는 사람이 그 상처를 의식하지 못하게 자아의 증세로써 괴롭히게 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특별히 치료자가 프로이트의 천재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Z씨의 어린 시절부터 받은 언어 폭력으로 심리적인 상처들을 수 없이 다루면서 자주 등장한 과거의 상처 이벤트들은 등장의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과 항상 다루지 못한 새로운 상처들이 샘물이 솟아나오듯이 등장하는 것을 실감을 했다. 이것은 마음이 상처가 치유되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치유되어지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유사한 자극에 끝없이 시달리게 되고 그 살아 있는 증인이 바로 Z씨가 아닌가?

정신분석 심리치료가 왜 장기 치료 인가?하는 것을 여러 번의 블로그 글에서 밝혔다. 여기에서 치료의 효과를 잠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Z씨가 처음에 치료자를 찾았을 때 그는 1주일 동안 내내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과거의 상처의 기억들과 생각에 빨려 들어가서 잠을 잘 수 없는 불면증과 숙면을 하지 못해서 늘 피곤하고 에너지 고갈을 느꼈다. 치료자는 Z씨가 좋아하는 그의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도록 했다. 그는 부모님의 집으로부터 독립해 나왔다 그러나 부모님과 관계를 끊는 것이고 치료는 부모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갈등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부모님과 관계의 단절이 아니다. 부모님에 대한 분노는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관계 단절)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내 자아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내 생각과 느낌과 상상과 사고와 이미지 들을 말로써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치료의 과정이 포함되어있다. 그는 6개월의 치료 시간이 지나가면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어갔다.


처음에 고시원으로 나왔을 때 부모님은 1개월-2개월 정도면 집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러나 치료자는 혼자 나오면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서 건강을 챙기고 식단을 짜서 영양가를 고려하게 하고 그의 일과를 조정해서 그림을 그리고 습작을 해서 일상 생활에서 리듬을 잡도록 도와주었다.


그가 6개월이 지나가면서 한번 고시원을 이동을 했다. 그러나 치료자는 심리치료실 밖에서는 절대로 도와주지 않음을 천명을 했다. 치료실에서 배운 행동들은 치료실 밖에서 혼자서 직면해서 뚫고 나가면서 관계의 갈등과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경험들이 머리 속에 입력이 되면서 그는 혼자서 독립적으로 자아가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자아의 힘을 길러 나가는 것이 치료의 핵심임을 강조했고 Z씨는 치료실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의사 소통의 훈련으로 자아 표현을 스스로 습득하도록 했다. 그 결과 그는 부동산 중개소를 스스로 찾아가서 가격에 적당한 고시원을 찾았고 혼자서 스스로 이사를 했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


아들이 독립을 한지 6개월 그리고 1년이 지나가면서 건강이 오히려 좋아지고 혈색이 돌아오고 긴장이 풀리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이 안심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 독립을 했다고 해도 Z씨는 부모님의 생일과 기제사 등에 참석하기 때문에 평균 2개월마다 한번씩 부모님과 만나서 이제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치료가 6년 정도 지나가면서 회복의 증세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되었다. 5개월 혹은 6개월 마다 Z씨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지금은 보험처리) 종합 검진을 해 오는데 4년 전에 그의 신체 검사 결과를 본 그의 담당 의사가 깜짝 놀랬다. 그의 혈압, 호르몬 수치, 콜레스테롤의 수치, 갑상선의 수치 등이 모두 정상으로 회복된 것이었다. 더구나 그의 몸무게가 8 kg이 늘어난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Z씨는 홀쭉이고 너무 약해서 매번 식사 때 마다 어머니가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 계속 밥과 반찬을 그의 밥그릇에 담아 주었기 때문에 그는 화장실에 가서 포만으로 구토를 하고 그리고 다시 먹었다고 술회 했다(No라고 말을 못했기 때문). 몸무게가 늘어나지 않아서 평생 동안 어머니가 고민을 한 것이 독립된 생활의 6년 후에 몸무게뿐만 아니라 모든 신체적인 조건이 정상으로 회복된 것이었다.


Z씨가 이 건강 상황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부모님은 기뻐했다. 특별히 어머니가 Z씨에게 네가 몸무게가 너무 늘어나서 이제는 살을 빼야 하겠다는 말을 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토로 했다.


그의 치료 과정을 다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한가지는 작년 2월 달에 Z씨의 심리치료 10년 만에 부모님이 치료자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사실은 Z씨의 치료 2개월 정도 되었을 때 혹시 사이비에게 사기를 당하는 것이 아닌가?의심을 했던 어머니는 치료자와 2시간 컨설팅을 요청했고 Z씨의 치료 과정의 이야기를 듣고 간 이후에 처음으로 부모님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내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10년 동안 심리치료 명목으로 치료 비용을 지불 했는데 변화가 거의 없고 돈만 날렸으니 사기꾼이 아닌가? 돈을 물러 내라고 항의를 하거나 혹은 의심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핵심은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와 그리고 부부 갈등이 핵심으로 치료자에게 컨설팅을 요청한 것을 치료자가 Z씨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치료자는 부부를 같이 치료하지 않는다. 첫 만남에서 약 10분 동안 인사를 나누고 나서 어머니가 치료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아버지와 1시간 동안 컨설팅이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아버지에게 첫 질문으로 아들 Z씨가 치료자에게 10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버지가 Z씨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아버지는 치료사에게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제 아들의 눈빛이 생가가 나고 정상으로 회복되어서 눈을 감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이 한 마디로 10년의 치료 효과는 입증이 되었다. 1시간의 컨설팅을 2시간을 넘어갔다. 그 동안의 치료 과정들과 Z씨의 변화된 이야기를 그리고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아버지는 70대 중반으로 퇴직한지 10년이 넘었다) 등을 이야기를 하면서 2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컨설팅이 끝나면서 밖에게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가 들어와서 아버지와 교대를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에게 물어 보았다. “아들 Z씨가 10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어머니께서 느낌을 이야기를 해 보세요.”라고 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정신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도 좋아졌다고 시인을 했다. 치료자는 아들의 건장이 좋아진 이유를 슬쩍 물어 보았을 때 어머니는 확실하게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라고 심리치료의 효과를 인정해 주었다.


아버지의 알코올 문제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싸움 문제는 다른 곳에서 다시 분석으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에서 Z씨의 외로움과 고독함의 문제로 이야기의 초점을 돌려보기로 한다.


지난 주일에 둘 째 여동생의 새로 이사간 집들이 때문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참고로 세 명의 여동생들은 다 결혼을 해서 자녀들이 있고 분가해서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Z씨는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어머니와 닮은 여성을 버스 혹은 지하철에서 만나면 심장이 뛰고 불안해지고 두려워서 도망을 간다는 것은 치료 회기에서 수 없이 다루었다. 그는 심리치료 초반기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10년의 치료 과정이 지나가면서 그는 대인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의사 소통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감정과 상상과 지각과 감각을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를 배웠기 때문에 그리고 매주 수요일 마다 xx 동양화 학원에 나가서 3시간 동안 동양과 그림을 배운지가 5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 학원에서 공부를 끝내고 같이 지하철을 하고 귀가하는 한 30대 초반의 부인과 대화를 하면서 이제는 편안하게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그녀와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집에 와서 그녀의 그림을 지도해 달라는 초대를 받기도 했다. 그녀가 만약에 유부녀가 아니면 그녀와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독신남자로부터 자신을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여성과는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독신으로 남아있다.


그 둘 째 여동생의 집들이 모임에서 식사 후에 아버지가 Z씨에게 결혼하지 안고 혼자 살게 되면 노후에 외로워서 고독해져서 어떻게 살겠느냐?라고 비판을 했다. 어머니도 덩달아서 결혼하지 않으면 외로움으로 노후를 보낼 수 없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가 부모님 말씀을 들어 보니 그들이 말이 맞은 것 같다고 계속해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Z씨는 치료사에게 1주일에 한번씩 2시간으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항상 부모님의 집을 방문하거나 어머니의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과거의 상처들로 인해서 그의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 내느라고 고군분투를 해 왔다. 이번에도 부모님과 만나고 나서 독신으로 지내다가 혼자 되면 노후에 외로움으로 어떻게 살겠느냐?라는 대못을 한 개 가슴에 박아서 치료자를 찾아 와서 호소를 하게 된 것이었다.


결혼 문제는 이미 수 차례 등장을 했다. 부모님은 우리나라 여성이 없으면 연변 중국 동포들 혹은 이웃의 가계에서 일하는 장애인 여성과 선을 보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Z씨는 자신의 자아도 다루기 힘든데 장애인, 혹은 연변 동포 여성(언어와 풍습이 똑 같이 않는)과 결혼을 하면 한 사람의 문제가 두 사람의 문제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서 나중에 이혼을 당하거나 헤어지게 되면 그들의 위자료 비용은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자녀들의 양육에서 또 다시 자신의 전철을 당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자녀 양육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키면 저절로 다 성장한다는 부모님의 사고 방식에서 분노하고 노여워했다. 결혼 이후에 노후에 외롭지 않다고 말을 한 것에 대해서 부모님에게 물어 보고 싶다고 치료실에서 토로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부 싸움이 그칠 날이 없고 아버지는 화풀이로 술로 어머니에게 복수를 하고 있고 그 결과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그들의 노후는 이미 분석 치료 과정에서 수 없이 분석으로 다루어진 것을 회상하면서 노후에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이 되었으나(경제적으로 부모님은 어려움이 없다) 부부싸움으로 노후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지옥으로 변한 것에 대해서 묻고 싶다고 토로 했다.


여기에서 지난 주일에 외로움, 고독에 대해서 어떻게 치료 과정에서 다루어지게 되면서 그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길 해보기로 한다.


먼저 노후에 걱정이 되는 것을 이야기 해 보도록 했다. 한 가지씩 분석해 나가기로 했다. 먼저 노후 경제적인 걱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아버지가 한 달에 180만원을 통장으로 들어오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걱정이 없는 노년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치료자는 지금 연급을 넣고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국민연금은 의무 적으로 넣고 있고 그리고 다른 연금을 넣고 있다고 했다. 그 연금이 노후가 되면 70만원 정도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180만원에다 70만원을 합치면 250만원 정도가 확보되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 다음에 그는 지금 하고 있는 그림을 그리는데 앞으로 고객들이 그림을 사주지 않으면 밥 굶어 죽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앞으로 그림을 계속해서 그릴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동안에 무엇을 느끼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모든 세상의 걱정 근심 염려 불안이 사라지고 오로지 그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약 15년간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치료자가 잘 알고 있다. 누가 그림을 사주지 않으면 굶어 죽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연급과 월 180만원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겸연쩍어서 머리를 긁었다. 최근에 지난 달에 동양화 반 전시회에서 자신의 그림을 전시했을 때 한 노인과 몇몇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 마음이 포근하고 안정됨을 느낀다고 그 그림을 사고 싶다고 했을 때(그가 그날 일찍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당번으로 그림에 적힌 비매품의 표지) 그 그림이 비매 품으로 했기 때문에 그들은 살 수가 없이 돌아갔다고 했다.


왜 그가 비매품으로 기재를 했는지?에 대서 이미 치료 회기에서 다루었다. 다른 사람들은 250만원 혹은 150만원으로 가격표를 붙였을 때 그들에게 물어 보았을 때 싸게 해서 팔리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비싸게 가격표를 붙이면 팔리지 않아도 비쌌기 때문에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위안이 된다는 말을 듣고 그는 아예 가격표를 붙이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에 가격표를 붙였다면 얼마나 붙였을 것인가?라고 했을 때 수고 비용과 표구 작품비용 그리고 팔렸을 때 자신의 자아의 일부가 팔리는 것으로 모두 합쳐서 약 70만원을 적었을 것이라고 했다. 13명 정도가 전시회에 참가를 했는데 한 사람이 2-3점씩 그림을 제출했는데 Z씨는 2점을 전시를 했고 그 중에 한 개가 몇 명이 다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13명 중에서 가격을 물어보거나 팔린 작품은 한 점도 없었다. 그는 최근에 인터넷에 올린 그의 작품들을 보고 어떤 출판사에서 광고로 몇 점을 2-3일 이내에 그려줄 수 있는가?를 문의를 받았으나 자신이 그린 그림에서 이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느냐?”라는 말을 들을까 봐서 망설이다가 놓친 사건이 몇 개가 있었다. 고로 앞으로 계속해서 습작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의 그림이 팔릴 때가 올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 다음에 건강에 대해서 물었을 때 신체적인 건강은 매일 같이 운동으로 그리고 영양가를 고려한 식단으로 11년 동안 건강이 졌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만 한가지는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서 집중적인 분석에 들어갔다. 즉 자아와 대화의 문제로 들어가게 되었다.


자아와 대화에서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할 때 두 가지 특징적인 방법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가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를 관찰하고 평가를 한다. 내 한쪽 자아가 나의 행동을 보고 관찰을 하고 있다. 나는 친구가 없다, 외롭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나를 지지하고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가 나를 돌 아이 취급을 하고 나를 피하고 외면하고 나를 싫어한다.”라고 관찰자아가 나를 평가하고 처벌하고 비판하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목소리, 친구들, 동료들로부터 받은 평가임을 분석으로 밝혀내면서 그 자아가 관찰을 하지 못하도록 브레이크를 걸도록 했다. 즉 우리는 승용차를 타고 나가가 장애물을 만나면 브레이크를 걸어서 충돌을 막는다. 내 자아 역시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자아들이 반기를 들고 내 자아에 항의와 반대를 할 때 그들에게 브레이크를 걸면서 내가 너희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얼마나 낭패를 모욕과 수치심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는데 이제는 내가 너희들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지를 알았기 때문에 너희들의 목소리에 끌려들어가지 않는다. 너희들의 달콤한 목소리에 넘어가지 않는다 라고 브레이크를 걸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되 그들을 달래고 화를 내기 않도록 위로와 대응을 하도록 훈련을 했다.

두 번째는 자아의 움직임을 내가 하는 외부의 행사로 집중을 해서 그 일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의 집중을 해서 그 일에 몰두하게 되면 자아 관찰적인 제 3 장의 입장이 아니고 내와 내 자아들이 응집력이 생겨서 통합되어져서 한 개의 자아로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집중함으로써 그 순간을 잊어버리고 일에 몰두하게 된다. 여기에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부, 명예, 성공, 출세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즐거움이 우선이고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것은 10년 동안 계속해서 수업이 다루어왔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즐거움 이론이다. 삶에서 제 1 차 목적은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일은 즐거워서 하면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고로 부, 명예, 성공과 출세는 제 2 차적이어서 따라오게 된다.


Z씨는 하루에 해야 하는 일들이 이미 그 전날에 자아가 계획을 세워져서 실행을 하고 있고 그리고 미래의 삶의 기획은 이미 세워져 놓았기 때문에 그날 그날에 주어진 일을 즐겁게 실행을 해 나가면 노하우는 쌓이기 때문에 과거는 충실해지게 되고 현재는 주의 집중으로 그 일에 몰두해서 걱정, 근심, 염려 들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미래는 기획대로 실천으로 실행되어지기를 기다리는 셈이니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고 과거의 후회로 시간 강박에서 해방될 수 있음 다시 분석으로 다루어졌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사람은 어차피 죽을 때 혼자서 죽는다. 부부가 같이 죽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노년기에 등장하는 것이 특징인데 삶을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죽음 공포가 거의 없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어진 것을 소개를 해 주었다. 짝이 옆에 있어서 외롭지 않다는 것은 이미 학자들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배우자와 함께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잔다고 해도 잠을 자는 것은 혼자이고 꿈을 꾸는 것도 혼자이다. 어차피 우리는 혼자여서 자신의 고립, 외로움, 외톨이, 고독을 배우자 혹은 친구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말고 내 자아의 대화를 통해서 내 자신감을 들어 올리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충만 된 삶을 살아간다면 외로움이 끼어들 틈새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즉 내 하루는 내 자아와 약속으로 내 자아가 결정을 한 일들을 하고 있고 그 일을 할 때 주의 집중으로 몰입하게 되면 걱정, 근심, 염려는 사라지게 되고 나는 그 일로부터 성취감과 하루하루 쌓이는 노하우가 내 삶의 발자국으로 따라오면서 과거는 충실하게 그리고 현재는 즐겁게 그리고 미래는 기획되어진 내 자아의 그림에 따라서 살아가면 더 이상 외로움과 고독은 끼어들어올 틈이 없지 않는가!

이 삶의 심리학적인 원리를 깨닫고 그는 지난 주일 치료 회기에서 집에 갔을 때 외로움과 고독은 깨끗이 사라졌다고 기뻐했다. 그는 평소의 안정된 마음을 회복하고 화구 전문점에 가서 그 동안 미루어왔던 수채화 그림을 그리려고 화구 값을 물어 보니 12만원이라고 해서 좀 비싼 것 같아서 다른 상점에서 8만원으로 활인 판매를 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사서 동양화를 계속하면서 집에서 혼자서 초반기에 하다가 그만둔 수채화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즉 자아가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치료자로부터 칭찬을 듣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갔다.


일반 사람은 Z씨가 11년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았다고 했는데 과연 언제까지 치료가 필요한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하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치료실 안에서 도와주지만 밖에서는 혼자서 해 나가면서 실천으로 머리 속에 경험이 쌓이게 되면서 자아가 자신감이 생기고 현실 사회에서 직면을 해가는 능력이 생겨난다고 이미 이야기를 했었다. 치료자는 지팡이와 같다. 그 지팡이가 필요 없이 혼자서 해 나갈 수 있게 되면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끝이 나게 된다. Z씨는 이미 부모님들로부터 그러한 질문을 수  차례 받았고 그리고 치료자도 역시 받았고 그리고 Z씨 자신으로부터도 그러한 질문을 치료자가 받았고 그 이유를 그에게 설명을 하고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지금 현재 Z씨는 자신이 그린 그림의 작품들을 보고 전문가들은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하고 그려 달라고 주문을 자주 받는데 Z씨 자신은 그 그림을 보면서 이것을 그림으로 그렸느냐?” “부끄럽지도 않는가?”라는 사람들이 비판과 비난과 비웃음, 멸시, 조롱 때문에 자신이 그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로 남아 있다. 그의 내면의 비판적인 처벌적인 자아는 바로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부모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분석을 통해서 그가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바로 잡고 자신감의 길러서 자신의 그림을 인정하고 신뢰감을 기르는 것에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그러나 치료자는 강압을 하거나 숙제를 내서 강제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가 자라나서 스스로 그러한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Z씨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지금 Z씨는 부모님과 일반적인 대화가 질문에 그리고 집안 이들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와 부부 싸움들에 호출을 받아서 집으러 달려가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받은 어머니의 언어 폭력과 아버지의 비판과 비난에 대한 목소리는 치료실 안에서는 잘 표현하고 반박하고 거부하지만 아직도 어머니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의 과거의 언어 폭력으로 상처받은 이야기들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만약에 부모님에게 그러한 말을 했다가 부모님의 분노의 폭발로써 한 달에 180만원의 지원금을 받지 못할까 봐서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수 차례 이야기를 한 바가 있다. 치료자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강압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의 자아가 그 말을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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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엘렌버그(Ellenberger, 1970)의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

             : 데이비드 번(David Burns, 1985)의 친밀함의 연결

             : 존 마샬(John Marshall, 1994)의 대인공포증

             : 아놀드 모델(Arnold Model, 1993)의 사적인 자아(1993)

다른 시간과 다른 현실(1990), 새로운 심리사회적 환경 안에서 정신분석(1988)

위의 서적들은 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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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번 주일에 Z씨의 제 190(실제 463) 926 시간의 치료 회기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심하게 불안한 39세의 남자 Z


증세: 불안해서 물건을 사기 어렵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고 특히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 머리 속에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새벽 2-3시까지 잠을 잘 잘 수가 없음(처음 인터뷰 시에).  최근에 지난 주일에 찍은 단체 사진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책 속에다 꽂아 놓아 보이지 않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소연


접촉: 치료자의 저서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보고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겠다고 연락이 옴


진단명: 심한 불안장애, 대인공포증, 자아가 너무 약한 자아 장애(첫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의 그의 진단), 회피적 성격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 2시간씩 11년째 치료를 시작했음. 190(실제 463) ( 926 시간)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2018년 설날에 본가를 방문 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치매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기억력이 좋아졌으니 아버지에게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술을 절제하고 무분별하게 마시지 않는데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고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아서 답답하게 하루 종일 집에 틀어 박혀서 줄 담배만 피운다고 불평을 했다. Z씨는 어머니에게 제발 아버지를 끍어서 화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아버지의 기분을 들어 올려서 기분을 좋게 해 주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의 과정

 이번 주일에 Z씨는 수채화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물감을 알아 보았더니 12만원인 것을 알고 8만원으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른 화구 점에서 8만원으로 팔고 있는 것을 알고 8만원으로 수채화 물감을 사서 그림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동양화는 먹으로 주로 그리는데 Z씨는 동양화 물감을 사서 지금까지 동양화를 먹과 물감으로 그려왔는데 수채화는 동양화 물감과 달라서 새로 구입하게 되었다고 했다.

 

  Z씨는 다음 주일에 할머니 제삿날이 돌아 오는데 지난 번에 삼촌이 부탁을 한 호랑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용맹하고 험상 굿은 호랑이를 그려야 하는데 웃는 모습과 어린이 같은 호랑이를 그리게 되면서 그 그림을 삼촌이 좋아하질 모르겠다고 여러 번 스케치를 했다고 아직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호랑이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있는데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고 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때는 그림을 그려 보겠다고 했을 때 어떤 것이든지 열심히 해 보라고 했는데 겨울 방학 때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반대를 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 했는데 어머니는 Z씨에게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다고 했는데 너는 부모님 말씀을 왜 듣지 않는가?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상위 1%만이 천제적인 사람들 만이 밥을 먹고 사는데 너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데 만화를 해서 밥 먹고 살 수 없다고 부모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느냐?라고 질책을 했다.


 계속해서 만화를 그리게 되자 어머니는 어느 날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성공한 사람을 보았느냐?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다그쳤다. Z씨를 꿇어 앉히고 네가 상위 1%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 Yes No로 대답하라고 다그쳤다. Z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Yes라고 하면 네가 상위 1%에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공격을 할 것이고 그리고 No라고 말을 하면 그렇다면 당장 손을 떼고 그만주지 않느냐? 어느 쪽으로 해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다그치는 바람에 대학 4학년 때 만화 그림을 가지고 몇몇 출판사에 찾아 다니면서 만화의 취업을 주문을 했다. 한 출판사에서는 그림을 그려 가지고 오라서 해서 몇 번을 그려갔었는데 조금한 손을 쓰면 되겠다고 했다. 몇 번을 찾아 갔는데 그 회사가 부도가 나서 문을 닫았고 다른 만화 출판사에도 약속을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 회사 역시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Z씨에게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느냐?라는 물음에 그림을 가지고 출판사를 방문하고 온다고 했을 때 한숨을 폭푹 쉬면서 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Z씨가 들으라고 하는 말로 "너는 언제 철이 들겠느냐?" "출판사의 만화가의 편집인이 너의 그림을 보고 즉각 채용을 해야 하는데 전화 번호를 적어 놓고 연락하겠다고 하는 것을 그것이 재능이 없다는 말인데 그 사람이 너를 보고 얼마나 한심한 놈이라고 말을 하겠느냐? 그것을 모르고 너는 눈치, 코치도 없이 아직도 이곳 저곳으로 돌아 다니는가?"라고 호통을 했다.


 너는 재능이 없는 사람인데 일찍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서 가능성이 있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만화를 그린다고 하면서 그것에 매달려 있으니 다른 사람이 비웃고 욕하는지도 모른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1 6개월 동안 만화 출판사에 취업을 하기 위해서 돌아 다니다가 저녁에 파김치가 되어 집에 왔을 때 부모님이 외출하고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들어와서 "썩을 놈의 새끼야! 일을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밥만 축내고 있느냐?"라고 호통을 쳤다.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올 궁리늘 하지 않고 밥만 먹으려고 하느냐?"라고 밖으로 쫓아냈다.


 이러한 어머니의 공격에 Z씨는 자신감이 풍선에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내려 앉았다. 절망 속에서 불안해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안이 가속화 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과거에 그려 놓은 그림들을 손질하면서 2년을 우울함으로 보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길길이 뛰었다. 그림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왜 구석에 처박혀 어머니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가? 라고 다그쳤다. 어머니는 한 숨을 쉬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아들 때문에 미치겠다라고 울먹이면서 이야기를 했다. 만화를 그린다고 해서 그것만 붙들고 있는데 속이 시커멓게 타서 죽을 지경이라고 아들 Z씨가 들으라고 온갖 언어 폭력을 연발했다.


 오늘 이야기한 내용은 11년의 심리치료 시간 동안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언어 폭력이었다. 이것을 말로써 그 분노와 감정을 표현하게 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일자리를 구하라고 해서 만화 그림과 이력서를 들고 하루 종일 출판사를 찾아 다니면서 신고식을 했는데 칭찬을 해주지 못하고 거꾸로 나를 호통치고 내 자신감을 깔아 뭉개려고 합니까? 내가 만난 만화 편집장들은 내 만화가 괜찮다고 조금만 손을 보면 되겠다고 습작을 돌보아주겠다고 했는데 그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일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격력하고 용기를 주지 못하고 나를 오히려 상위 1%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내 자존심을 깔아 뭉게고 나를 처벌해서 자신감이 풍선의 바람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어머니! 한석봉의 어머니는 습작을 해서 노력을 하면 된다고 해서 아들에게 밤에 불을 끄고 글씨 쓰기와 어머니의 떡 쓸기를 비교했을 대 어머니는 깜깜한 밤에 쓴 떡은 고루고루 잘 썰어졌는데 석봉이의 글씨는 삐뚤어져서 엉망이 된 것을 보고 아들에게 엄마를 보고 싶다고 오려고 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 불을 끄고도 글씨를 잘 쓸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격려해서 그 결과  석봉이가 열심히 공부를 해서 명필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옵니다.


 에디슨을 1%의 머리와 99%의 노력으로 성공을 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격려를 해주지 않고 아예 하지 말라고 내 자신감에 초를 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배속에서 때어나면서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 보다 몇 배로 열심히 10년 혹은 20년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데 왜 어머니는 천재만 고집을 하십니까?


 예능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밥을 먹지 못했지만 김연아, 박지성, 그리고 박찬호 들은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고 봉급 생활자보다 몇 십 배 연봉을 받고 있는데 예체능을 하는 사람들로 이제는 열심히 노력하면 밥을 굷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새로운 시대를 에측 하지 못하고 과거의 조선 시대 사고 방식으로 사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 만화 학과가 생기고 야구 학과가 생기고 다양한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들의 부모님은 자녀들이 하고 싶어 하는 재능을 뒤에서 밀어주려고 하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고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까?


 나는 어머니와 어버지가 말하는 취업 시험에 합력해서 공무원이 된다고 해도 조직 생활에서 대인관계가 어린 시절부터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릴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만화 혹은 그림을 그려서 내가 혼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 15년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어머니,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너는 재능이 없다, 그것을 그림이라고 그렸느냐?"라는 말이 내 머리 속에 각인이 되어서 나를 괴롭힙니다. 그림 전문가들이 내 그림을 보고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하고 주문을 하는데 나는 내 그림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나에 대한 평가였음을 알 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