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

사랑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사람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들 2018. 3. 11. 06:30

사랑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사람 Ⅰ

 

프로이트가 세계적인 명사가 된 것은 1900년에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나서 하루 아침에 프로이트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 책 속에는 무의식의 이론과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이 포함되어져 있다. 프로이트가 이미 1895년에 쓴 히스테리아 대한 연구들이라는 저서에서최면 치료를 포기하고 자유연상의 기법을 도입을 했고 이것이 정신분석의 탄생이라는 것을 앞의 글들에서 여러 번 밝혔다.


그는 이 자유연상이라는 기법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 속에 깊이 묻혀서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무의식의 기억들을 찾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저항을 다루는 무기로서 사용했다. 환자들의 꿈들을 그리고 자신의 꿈들을 분석을 통해서 꿈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지는가? 그리고 이것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꿈을 어떻게 조합하고 퍼즐을 맞추어서 해석 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의 무의식적인 감추어져 있는 비밀적인 자아에 접근하는가?를 소상하게 설명함으로써 그 당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 때문에 세계적인 명사가 된 것이다.


이 책의 출판으로 프로이트는 에들러(Adler)와 융(Jung)으로부터 편지들을 받게 되었고 서로 서신 왕래를 하다가 프로이트가 만든 수요일 모임에 그들이 참가하게 되면서 이것이 비엔나 정신분석 학회가 되고 이것이 드디어 국제 정신분석 학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꿈 해석이 출판된 1900부터 1910년까지 10년 동안에 세계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신분석 이론은 이미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서 유럽뿐만 아니고 미국으로 퍼져 나가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증거로써 1907년에 미국의 클라크 대학 20주년 기념식에 초대를 받았고 1910년에 이미 제 2 회 국제정신분석 학회 연차 총회가 독일의 누렘베르그(Nuremberg)에서 열려서 전 세계에서 그 총회에 참석한 정신분석가 들로써 붐비게 되어 본격적으로 정신분석의 번창기가 시작 되었다고 그의 전기를 쓴 영국의 신경과 의사인 어네스트 존(Jones, 1953, 1955, 1957:(: 참고)이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 시점에서 많은 학자들이 프로이트에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다시 말해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라고 질문을 했을 때 프로이트는 망설이지 않고 사랑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했다. 프로이트의 이 유명한 경구는 그 당시에는 그냥 평범한 말로써 이해되어졌다. 이 세상에 누구나 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리고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인간 인데 그것이 무엇 때문에 특별히 따로 의미하는 바가 있는가? 그냥 누구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말이라고 생각을 했다. 평생 동안 인간의 마음을 연구한 세계적인 대가가 지극이 평범한 진부한 말을 하는 것에 실망을 했을 것이다.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일을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고 별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후에 오늘 날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물론 독신자들이 모두가 다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 속에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사실) 그리고 일을 할 수 없는 사람,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 일을 하다가 동료들 혹은 상사들과 좌우충돌 때문에 이 일 저 일을 전전 긍긍하면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방안에 콕이라는 일본 말로 하키코모리)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에 대해서 정신분석학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이미 그가 연구한 나르시즘 적인 성격에 대해서 나르시즘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을 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신경증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하면서 그는 이미 나르시즘적인 사람을 정의를 해서 그들의 핵심 문제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못을 박아 놓았었다. 그는 건강한 나르시즘과 병적인 나르시즘을 구분해 놓았다. 인간인 태어났을 때 최초에는 인간의 자아는 내면 속에 갇혀 있다. 병아리가 달걀 안에서 부화되어지기 이전에 그 자신의 영양분으로 껍질 안에서 숨을 쉬고 살아 있는 것에 비유를 했다. 인간은 태어나서 최초의 엄마의 유방을 빨기 이전의 기간을 자폐적인 기간(병적인 기간이 아닌 건강한 기간)으로 자아 속에 갇힌 기간을 오토에로틱(Autoerotic)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욕구 만족 속에 있다가 외부에서 엄마의 유방을 통해서 욕구 만족이 외부에서 온다는 것이 감각으로 흔적을 남기게 됨으로써 외부의 대상을 향하게 된다고 가설화 했다. 이후에 프로이트는 라는 ego가 나타나게 되면서 ego쪽으로 에너지가 흘러가서 이것이 자아 이상으로 자신감에 기여하게 된다고 마음의 구조이론에서 밝혔다.


외부 대상으로 에너지가 흘러가지 않고 차단되어져서 Ego에 에너지가 과도하게 흘러가서 이 나르시즘적인 사람, 자기애(自己愛)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 된다고 가설화 한 것에서 시작해서 이후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나르시즘적인 성격의 자아, 나르시즘적인 자아가 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오토에로틱(autoerotic) 적인 자기 만족의 감각의 기간은 이후에 프로이트의 제자인 메라니 크레인의 대상관계 이론에 근거해서 프란시스 투스틴에 의해서 병적인 자폐아의 연구와 치료로 연결되어 발전하게 된다.


투스틴은 외부 대상 한데서 실망해서 스스로 자아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이 바로 자폐아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자폐아들이 뇌의 상처 혹은 생리학적인 이상이 없는 심리적인 자폐아들(실제 자폐아들의 90%가 심리적 자폐아들)은 외부 대상에 대한 실망 때문에 5 감각들이 통합되어지지 못하고 분열되어져서 5감각의 분열 때문에 자폐아가 된다고 기술을 했다. 그녀는 평생 동안 자폐아의 연구에 헌신해서 세계적인 자폐아 치료와 이론의 대가가 된 사람이다(Tustin, 1972, 1986: 주㈜: 참고).


그녀는 자폐아들은 감각적인 통합의 실패 때문에 감각들이 제 각각이 분열되어져 있어서 어떤 특정한 자폐아들은 수학적 계산에 천재적인 사람(영화 레인맨의 경우) 혹은 운동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말아톤의 자폐아 영화) 등에서 보는 것처럼 5개의 감각이 따로따로 분열되어 통합되어지지 못한 사람들로써 그들은 몸의 주인이 될, 몸의 보호자가 될 자아(ego 혹은 self)가 개발되어지지 못한 사람으로 마음의 블랙홀이 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자신의 몸의 내장 기관들 즉 신체적인 몸을 보호하는 그릇의 역할을 하는 자아가 없기 때문에 이 내면의 장기들이 밖으로 흩어져 분산되어져 버릴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특정한 딱딱한 물건에 집착해서 그 물건(자아를 대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그들이 어떤 딱딱한 물건들을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않고 그들을 빼앗으려고 하면 성질을 부리거나 발짝을 하는 것이라고 가설화 했다(Tustin, 1972, 1986: 주㈜: 참고).


 그녀의 이론은 이후에 자폐아의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서 치료 효과로써 증명이 되었다. 그녀는 자폐아들이 자아를 대신 하는 물건으로 그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아의 발달이 그 자리에서 고착이 되어 더 이상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치료의 과정에서는 5감각을 통합하는 치료 과정을 고안해 했다. 즉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눈길 주고 신체적인 감각을 심어주는 감각 초점 맞추기 훈련을 통해서 감각의 지각을 머리 속에 심어주어야 하는 치료의 과정을 수년간 계속함으로써 특정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포기하고 자아가 개발되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자폐아를 치료를 하는데 성공한 치료 사례들을 통해서 세계적인 자폐아 치료의 대가가 되었다(Tustin, 1972, 1986: 주㈜: 참고).


자폐아들은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그들이 말을 하는 것이 언어 소통의 용어들이 아니고 그냥 메아리처럼 반복하는 앵무새의 낱말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감각의 느낌에서 만들어진 낱말이 아니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언어를 배우려고 하면 감각의 과정들이 통합되어져서 감각이 지각으로 변하고 난 그 다음에 그 지각이 다시 언어로 표현되어져서 이 콘크리트 한 언어들이 발달을 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상징어가 되고 그 다음에 그 한 단계 위의 추상적인 의미를 가진 언어의 소통으로 발전해 가는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고려해 보면 그들은 감각의 통합의 첫 번째 단계에서 발달의 중지가 일어난 것이 이해되어질 것이다(Tustin, 1972, 1986: 주㈜: 참고).


특별히 자폐아들은 안아주기, 쓰다듬어 주기, 눈길주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신생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각적인 접촉들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다. 신생아들은 안아주기, 눈길주기, 쓰다듬어 주기와 같은 신체 접촉들을 통해서 통합된 감각들의 경험을 통해서 지각의 경험들이 머리 속에 심어져서 통합되어 언어의 표현으로 이것이 다시 3-5세의 발달 과정에서 상징적인 언어의 표현으로 연결되어져서 마침내 추상적인 연어의 구사 능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정상 발달이 아닌가? (Tustin, 1972, 1986: 주㈜: 참고)


다시 사랑을 할 수 없는 나르시즘적인 자아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나르시즘 이라는 이 용어는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우스의 이야기에서 프로이트가 따 온 용어이다. 나르시우스의 이야기를 인용하고자 한다(김종만, 1999,“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431-432)


나르시우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요정의 사랑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를 떠나기를 거부하다 결국 꽃이 되었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숲의 요정인 헤리오프(Heriope)의 아들 나르시우스는 16세 때 실연 당한 남녀들이 우글거리는 숲 속을 지나가다가 요정인 에코(Echo)의 눈에 띄었다. 에코 요정은 제우스 신의 부인인 헤라의 노여움으로 처벌을 받아서 목소리를 잃고 남의 목소리를 흉내만 내는 메아리로 변한 요정이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첩을 둔 것을 알고 그 첩을 붙잡아서 처벌을 하려고 하고 있을 때 말 솜씨가 뛰어난 에코와 이야기를 나누다 에코의 말 솜씨에 매료되어 첩이 달아난 것을 뒤늦게 알고 에코의 속임수로 첩이 달아난 것으로 생각한 헤라는 대노하여 에코의 목소리를 없애 버린 것이었다.


 나르시우스가 숲 속에서 길을 읽어버리고근처에 누구 없어요?”라고 도움을 요청하자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나르시우스를 뒤 쫓아가던 에코는 반가워서근처에라며 나르시우스를 포옹하려 했을 때 나르시우스는 냉담하게당신이 나와 함께 하는 것보다는 내가 죽는 편이 낫다며 거절하고 달아나는 것을 에코는나와 함께를 외치며 애통해 했다. 나르시우스는 사라졌고 에코는 일생을 나르시우스를 따라 다녔으나 끝내 사랑을 얻지 못했고 목소리만 남겼다(Chessik,1985: 주㈜: 참고).


 또 하나의 작품인 오비드(Ovid)에는 나르시우스를 끝까지 연모한 아메니우스는 나르시우스의 단검을 빼어 들고 나르시우스 앞에서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 대고 사랑을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위협했으나 나르시우스의 냉담한 태도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신에게 복수를 외치며 자살하자 아르테미스가 이 탄원을 듣고 사랑을 부인하는 나르시우스를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약속을 맹세했다. 어느 날 숲 속을 헤매다 목이 마른 나르시우스가 샘물을 찾던 중 거울처럼 맑은 샘물을 발견하고 물을 마시려다 물 속에 비친 아름다운 소년을 사랑하여 껴안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모습임을 알고 비친 모습에 도취되어 떠날 줄 몰랐다. 그가 가슴을 단검으로 찌르고 피를 흘리며 죽어 갈 때 에코는 나르시우스 옆에서 나르시우스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인! !”만 연발하며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가지고 싶어하는 애통함이 자신을 파괴시켰지만 자신의 다른 자아가 자신에게 남아 있음을 알고 그 고통을 즐거워했다고 신화를 옮긴 작가는 덧붙였다(Chessik,1985). 그의 피가 땅을 적시고 그 곳에 흰 꽃이 피어났고 그 꽃을 나르시우스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 혹은 나르시우스의 꽃(Narcotic flower)이라고 불렀다. 이 꽃은 우리말로 아편 꽃, 일명 양귀비 꽃으로 불리며 이 꽃에서 나오는 기름이 아편 유()이다. 아편 꽃의 꽃말인 잠, 죽음, 평화는 이 꽃이 마약성, 중독성이 있음을 말해 준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나르시우스의 옹고집적인 자만, 다른 사람에 대한 거만한 행동, 비 공감적인 적대감, 자신의 다른 자아에 대한 일차적 몰두 등이 나르시즘의 특징이다. 거울에 비친 자아의 다른 면은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났던 간에 자신에게 충실히 남아 있다(Chessik,1985: 주㈜: 참고).


이 나르시우스의 신화 속에는 이미 나르시즘의 특징들이 요약되어져 있다. 에코가 사랑을 호소하면서 평생을 따라다녔으나 나르시우스는 사랑을 허용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수용할 공감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대상일 뿐이다 즉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봉사하는 똘만이로 취급하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붕괴된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자신이 최고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어디에 가서든지 간에 자기가 최고가 되지 않으면 갱판을 친다 즉 관계를 깨어버린다. 항상 일등인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그 생각은 자신의 내면의 속에서 단단한 자신감이 빈 공허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채워 넣으려고 하기 때문임을 분석가들은 지적을 하고 있다. 자아의 껍질을 극단적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서 외부의 자극이 들어오지 못하게 강철같이 단단하게 무장을 하는 것은 내면의 자아가 허약하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 예들로써 갑각류들 즉 소라, 고등, 대개 등은 껍질들이 단단하지만 그 곳에 포함된 연한 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 치료를 신경증 환자들의 치료에만 국한 시켰다. 그 이유를 정신증(조울증, 편집증 그리고 정신분열증(조현병))과 성격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 한데서는 전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이후에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정신증 환자들에게도 정신분석의 이론의 수정을 통해서 전이가 형설 되어질 수 있다는 이론들이 발표되어지면서 점차적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수정을 거쳐서 성격장애와 정신증의 치료로 확대되어져 갔다.


나르시즘이 이론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정신분석가가 코호트(Kohut) 이다. 그는 독일에서 의과대학 4학년 때 프로이트가 나치에서 추방되어 기차를 타고 파리를 지나갈 때 모자를 흔들면서 프로이트를 마중을 나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이후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에서 교수로 나르시점 성격장애의 치료 이론과 치료 기법으로 정신분석학의 한 갈래인 자아 심리학을 창설한 장본인이다(Wolf, 1988: 주㈜: 참고).


그는 나르시즘적인 성격을 가진 환자들을 자아 심리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성공적인 치료를 통해서 주목을 끌었다. 그는 공감적인 과정을 통해서 나르시즘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과 공감을 통한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의 마음을 수용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들을 직면하도록 함으로써 나르시즘 환자들의 특징인 공감 능력 결함과 자신이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한다 과대과장 적인 자아 결함을 수정하도록 하는 치료 기법을 개발해 냈다.


다시 코호트의 나르시즘 성격의 원인을 찾아 보자. 생후 7개월-9개월 때 어린이들은 엄마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을 낯가림이라고 부른다. 이 시점에서 엄마는 우주의 중심이 되고 아기는 엄마에게 분리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에 매달리게 된다. 아기에게 엄마는 우주의 중심이 된다. 엄마와 아기 사이에 하나된 욕구는 거울처럼 반사되어져서 아기의 자아의 싹이 자라나게 된다. 이 시점에서 1살에서 3세 사이에 아기는 엄마, 아빠의 사랑과 돌봄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가 된다아기는 엄마, 아빠에게 이것 저것을 요구해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하늘이 떠 있는 달을 따 달라라고 한다.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를 따 달라라고 한다.

 즉 자신의 요구들과 욕구들은 엄마, 아빠를 통해서 충족되어지면서 엄마, 아빠는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이상화된 사람이 된다. 뒤집기를 통해서 그리고 기어감을 통해서 그리고 걷게 되면서 아기는 부모님의 욕구 충족에서 자신이 스스로 하겠다는 ego의 발달로써 스스로 환경을 조작하고 컨트롤하기 위해서 주변 환경의 탐색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좌절에 휩싸이게 되고 소망 충족이 뒤로 밀리게 됨에 대한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자라나게 되면서 좌절에 참을성이 생기게 되고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자아의 알맹이가 단단하게 되면서 자신감을 기르고 손수 직접 만지고 조작을 통해서 세상을 컨트롤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자신감으로 지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미래의 이상으로 자아가 형성되어져 가는 것이 건강한 자아의 발달 과정이다.


그런데 1-3세 사이에 이러한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라는 욕구 충족에서 고착이 일어나서 상처를 받게 되면 어린이는 부모 즉 양육자로부터 욕구 충족에 실망해서 내 자신이 스스로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의 욕구를 스스로 충족하려고 하는 상처 받은 자아가 바로 나르시즘 자아라고 코호트가 이론화 했다. 다른 사람이 채워주지 못한 상처를 어린 자아가 너무 일찍 실망으로 다른 사람을 불신해서 그들을 믿지 않고 스스로 그것을 채워 넣으려고 하는 것이 나르시즘 환자로 정의를 했다. 너무 일찍 알아서 그것을 스스로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충족하려고 하지만 그것을 밑 빠진 독을 물을 붙는 것처럼 채워도 채워 넣어도 끝이 없는 것이 반복되는 것 때문에 인간 관계가 파괴되고 삶이 피폐해저 버린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로 치료는 그들의 공감적 결함을 수용하고 인정하고 이해를 통해서 그 결함 자아 즉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그 결함 자아를 브레이크를 걸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자아 심리학의 코호트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치료자의 홈체이지 코호트의 나르시즘에 들어가 보세요.


또 한가지 나르시즘의 이론과 치료로써 이름 난 사람이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모델(Model, 1993:주㈜: 참고)이다. 그는 심리적인 상처는 박탈로 인한 욕구의 결함 모델이 있고 그리고 과도한 욕구 충족으로 좌절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때 결국은 자아 결함이 된다고 보았다. 즉 발달의 과정에서 좌절을 통해서 자아가 스스로 그것을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의 개발이 바로 자아의 성장과 발달임을 지적하고 있다. 자아는 부모님의 돌봄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나서 스스로 욕구 충족의 개발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너무 과도한 충족으로 자아의 개발이 불필요하게 되어 자아 개발에 역시 결함이 된 것을 지적하고 있다. 고로 최고 적합한 좌절을 경험하도록 해서 그 스스로 과대과장의 자아를 현실에 적당한 자아의 능력으로 개발하는 과정을 나르시즘의 치료로 이론화 했다. 동양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로써 너무 많은 것은 부족한 것 보다 못하다 즉 과도한 욕구 만족은 병이 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좌절에 참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충동적이고 그리고 자신의 좌절을 다른 사람 탓으로 투사해서 대상을 적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결과 관계는 파괴되어 단절되어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결과는 외톨이로 혼자서 최고가 되어 독불장군이 된다. 동양에서 부하가 없는 자기 혼자만의 장군이 된다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혼자서 최고라고 외치고 자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아닌가? 나르시즘적인 사람은 결혼을 해고 직장을 가진다고 해도 인간 관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갈등과 파괴적인 관계로 고통 속에 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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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1 :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Ⅰ 권(1953), 제 Ⅱ권(1955), 제 Ⅲ 권(1957)

                : 모델(Model, 1993), 사적인 자아와 맥락적인 관점에서 본 정신분석(2001)

                : 체싱크(Chessik, 1985)의 자아 심리학과 나르시즘의 치료

                : 울프(Wolf, 1988)의 자아의 치료

                : 투스틴의 저서 자폐증과 어린 시절의 정신증(Tustin, 1972), 신경증 안에서 자폐증적인 장벽들(Tustin, 1988)

위의 책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져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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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의 실제 치료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는 32녀의 미혼 여성으로 이상적인 한 남성을 채팅 방에서 알게 되면서 열렬하게 사랑을 하게 되었고 고백을 했지만 그것은 허무한 사이버 사랑으로 끝이 났다. 실제로 그 남성을 만나서 대화를 전개해 나갈 수가 없었고 좌절에 실망해서 참을 수 있는 능력의 결여로써 몇 년 동안 사이버 상의 관계는 한 방으로 끝이 났다. 관계 단절 이후에 8년 동안 상상 속에서 살다가 고통 때문에 참을 수가 없어 치료자의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표면적으로는 대단한 공감적인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대상에 대한 공감적인 능력을 전달할 수 없는 자아 결함(의사 소통의 결함)을 가진 사람으로 그녀 자신의 이상적인 상상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를 한 그녀 자신 만의 과대과장적인 성격적 특징의 사랑임을 분석을 통해서 밝혀지게 되었다.


 

 

대상: 사이버 사랑의 허무한 종말을 맞은 32세의 여성 L


증세: 인터넷 동호회 채팅 방에서 만난 오빠를 열렬히사랑했으나 현실의 만남에서 버림받음으로 끝났음


접촉: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음


진단:  자아 분열 성격 장애, 회피적 성격장애, 대인공포증

치료 기간: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한 후에 주 1회 치료에 3시간씩 2개월 째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의 과정

 L양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간호사로 큰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같이 근무를 하는 A 간호사와 B 간호사 사이에 갈등에 L양이 참지를 못하고 스스로 그 병원을 그만두고 나와서 다른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결국은 그 병원도 그만두고 지금은 지방에서 혼자서 근무를 하는 일자리를 구해서 혼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L양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로 얼굴이 익혀지게 되고 친밀감이 생기려고 하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해아리고 다른 사람들의 비위, 눈치를 맞추는데는 전문가였다. 치료자한데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치료자의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그리고 다른 사람의 비위, 눈치는 하늘 같이 해아리면서 정작 그녀 자신의 마음 즉 자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비하해서 그 열등감 때문에 자신의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몇 회 치료 회기를 지나면서 분석할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고 보낸 e-메일과 두 번째 치료 시간 약속을 하면서 치료자에게 보낸 e-메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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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지금 이 시간...교수님께 글을 적지 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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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날짜

2009 11 20일 금요일, 오전 04 02 19 +0900

 

보낸이 ) -->

 

 

받는이

<jongmankim@hanmail.net>

 

 

 

 

 

 

초면에 죄송합니다. 무작정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김종만교수님 되시죠? 인터넷에서 회피성성격장애를 검색해보다가 이틀전에 교수님 사이트를 알게되었습니다.

거리만 가깝다면 당장 교수님께 달려가 상담을 받아보고 싶더군요..

사이트에 정리된 글들을 읽으며 교수님이라면....교수님이라면......옳은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서른둘의 미혼인 여성입니다. 잦은 이직과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 가보았습니다.

테스트결과 회피성성격장애와 우울증진단을 받았습니다. 항우울제처방을 받았으나 심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주일간만 복용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 성격장애와 성폭련관련해서 상담치료를 받고싶다고 말씀드려서 전문심리상담선생님과 주1 50분간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4번째 상담을 다녀온 상황이고요, 그런데.......절박해서 찾아가긴했지만, 너무 이른 판단이긴 하지만 상담선생님이 절 불편해하는 것

같고 저또한 전적으로 의지가 되지가 않습니다.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너무 일찍 제 깊은 가슴속을 밖으로 억지로 들여내려는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화요일에 처음으로 성폭력에 대한 구체적 정황들을 설명해야만 했거든요...

제가 말문을 열기전 그냥 저 혼자 알고만 있으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얘기를 했는데 약간은 꾸짖듯 또 회피하려고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그 때 제 마음이 경직된 듯합니다물론 그 선생님은 경력도 20여년이상 되시고 성폭력피해자상담도 전담으로 많이 하셨지요..

그래서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었지요...이것이 그 선생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저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선생님방식으로만 상담을 이끄시는 것만 같아 제 마음의 문이 닫히려합니다.

이 시점에 교수님사이트의 여러 글들을 읽다보니 배경음악 때문일까요.....위로가 되었고.....많이 울었습니다. 소리내어 오랫만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고 언제 한 번 꼭 찾아뵙고 상담을 받고 싶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상담받고 있는 선생님께서는 1년여 정도를 함께 지속적으로 상담해나가자고 하십니다.

저도 상담치료는 꾸준히 받을 계획입니다. 그 선생님을 폄하하거나 부정할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한 분야의 전문가라하더라도 분명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기에 심정적으로 마음이 편하고 의지가 되는 상대는 따로 있을 수 있다고생각됩니다.

상담자입장에서나 치료자입장에서나요...

바쁘실 것 같아 짧게 쓰고 싶은데...누군가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지금은 불가능하기에 친구든..가족이든...

더욱이나..새벽인 이 시간에는...포장된 목소리라도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네요...

교수님...가능하다면.....물론 비효과적일테고 무의미할 수 도 있지만...

교수님...가능하다면....저에게 이메일로나마 상담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전화상담또한 정해진 시간내에서, 기본적으로는 불가하며 위급시에만 가능하다는 내용의 글을 봤습니다.

저는 지금 전주에 있습니다. 서울이나 부산은 못해도 3시간, 상담소까지 직접 찾아가려면 그 이상이기에 주1회 찾아뵙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2~3주에 한 번 찾아뵙는 방법을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 또한 지속적인 상담은 어려울 것 같고요...

너무 염치없고 무례한 말씀을 드리고 있다는 것 저또한 잘 압니다.

지금 이 곳에서 길을 모색하고 현재 상담선생님과의 상담에 더 집중하고 믿어야 함을 또 압니다.

언제고 한 번은 찾아뵙고 싶습니다... 교수님이 명확하게 저의 본마음과 속사람을 끄집어내 주실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너무 추상적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위장하려는 저를 부끄러워 하지 않은 채로 교수님에게 객관적인 진단과 설명을 들어 보고싶습니다.

저는 말로 저의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하는데 많이 서툽니다. 그나마 이렇게 글을 쓰는게 제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수단이지요..

눈으로 보이니까 안정이 되고 지웠다 쓸 수 있으니까 안심이 되는 그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압니다. 이메일상담이라니...어렵겠지요...?

교수님얼굴을 직접뵙고 눈을 마주하고 얘기를 할 자신이 현재로서는 있습니다.

혹시라도 허락하신다면 상담소를 직접 찾아가 일회성상담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 죄송합니다...이런 이메일도 한두통 받으시는 게 아닐텐데.....

교수님얼굴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답장을 못하셔도 홈피 자주 가서 글도 다시 찬찬히 보고 힘을 내볼께요..

언제고 교수님께 정식으로 상담받을 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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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만교수님 두번째 보내는 메일이예요<input type="TEXT" value="김종만교수님 두번째 보내는 메일이예요" /> <input type="hidden" value="김종만교수님*두번째*보내는*메일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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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날짜

2010 2 27일 토요일, 오전 01 19 30 +0900

 

보낸이 ) -->

 

 

"김종만" < jongmankim@hanmail.net>

 

 제 첫번째 메일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방금 전에 교수님이 주셨던 답장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11월에서 2월말

불과 석달전인데 그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지네요

교수님께 심리치료를 받고 싶어서 준비 중인데

다행히 일을 시작했고 이제 일주일이 지나면 만 두달째가 됩니다.

첫 한달간은 일 새로 익히느라 긴장한 탓에 제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다시금 불안한 제 자아가 얼굴을 내미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조금을 두려운 마음이 들어 교수님께 메일이나마 써봅니다.

소개해주신 교수님의 책 ''는 그 당시에 바로 인터넷직거래로 구할 수 있어서 매일

읽어보았습니다. ...! 이래서 내가 그렇구나 라고 깨치게 하는 내용도 있었고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데..라는 내용도 있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나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제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었어요

정식으로 치료를 받으면 될 것 같은데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네요

다른 무엇보다도 내 정신, 마음, 자아가 중요하고 치료가 우선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려해요

제대로 하루라도 온전히 자유롭게 나답게 살고싶으니까요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새로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밝고 아무 걱정없는 나로 보이려 애쓰게 돼요

그래서 더 깊은 곳의 진짜 나는 너무 외롭습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제 자신이 너무 가엾습니다.

진짜 나는 정말 일곱살 어린꼬마얘 같은데 서른 셋, 성인으로 살아가려니 너무 벅차요...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겠어요..

철없다..너만 힘든 거 아니다..인생이 다 그렇다...

살면서 누군들 우여곡절 없었겠니..

누군들 아픔이 없겠니...

스스로 이겨내야하고 감내해야한다...전 아직 세상에 나올 준비가 안 됐는데...아직 걸을 준비가 안 되었는데

연극을 하듯......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너무....안 됐습니다..

얼굴을 모르는 교수님께 이 밤에 겨우 메일로 이렇게 제 안을 조금이나마 열어내

답답함을 풀어봅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몸짓하나 손짓하나에

의미없는 말 한마디에, 목소리톤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불안해하고 감정이 복잡해지고

다 벗어나서 안전하게 나 혼자인 곳, 혼자인 시간만을 원하게 되는 나를

이제는 바꿔놓고 싶습니다.

이렇게 뒤죽박죽...겨우겨우 한 달, 1년을 버티며 사는 것을 멈추고 싶습니다.

내가 나를 껴안고 당당히 눈을 마주치고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그렇게 진짜 나로 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세상에 적응하는 유전자가 저에게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사람과의 어울림을 즐기려는 욕구, 만족감, 행복감이 저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난 왜 다른 게 눈에 보일까요? 다른 게 귀에 들릴까요? 왜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요?

저의 관심사는, 저의 가치관은 왜 많은 사람들과 다를까요...

가장 큰 문제이면서 근본된 문제는 불안한 제 자아인 것 같습니다.

한번도 진짜 나를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글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사람으로 외롭다는 느낌도 아닌 길가의 작은 돌멩이같은 외로움이랄까요..

저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지금 이순간 절실 한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이 나의 엄마이거나 아빠이거나 가장 가까운 친구이거나

그도 아님 내가 믿지 않는 신이거나...그들 중 하나였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 누구도 아닌 교수님뿐이네요...

다음주나 그 다음주

3 4일이나 11일 목요일에 혹시 교수님을 서울에서 뵐 수 있을까요?

2시간정도 일회성 상담을 혹시 허락해주실 수 있는지요?

제가 목요일에 쉬거든요..급작스럽게 말씀드리게 되어서 어렵겠지만

가능하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마음을 다잡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길, 그 방법을 교수님이 좀 도와주세요...

그 어떤 말씀이라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양은 그녀가 지금까지 만난 남성들 가운데서 그녀를 좋아해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 4-5명의 남성들 중에서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진실로 좋아하거나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다른 남자들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녀가 사귀게 되었지만 결국은 그녀 스스로 그들을 포기했다. 그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진실로 사랑한 사람은 그녀보다 6살 많은 남자로써 K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녀와 K와의 사랑은 사이버 사랑이라는 것을 치료자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알 게 되었다.


 L K씨의 사이버 사랑 관계는 K씨가 만든 인터넷 음악 동호회에 L양이 가입을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L양은 그 음악 동호회에서 듣는 음악들이 좋았다. 그 음악 동호회에서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 채팅을 할 수 있어서 그녀가 그 음악 동호회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동호회의 멤버들은 모두 약 20여명이 되었으나 정기 모임에 참석을 하는 멤버들은 6-7명 정도가 되었다. 그들 중에 그 음악 동호회를 만든 K씨가 그녀와 나누게 된 채팅에서 L양은 K씨를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L양은 동호회의 채팅 방에서 개인적으로 비밀스러운 일대 일의 대화방에서 다른 멤버들이 그들의 대화를 듣거나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 제일 좋았다.


 L양은 초, , 고등학교 시절에 대인관계가 전혀 되지 않고 마음의 문을 꼭 닫아 버리고 살아왔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속 마음을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감정이 없는 돌맹이"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아무런 감정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정이 없는 무감각의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고 그녀 자신이 실토를 했다. 그러던 그녀가 K씨를 만나고 그와 인터넷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가 처음으로 이성으로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 아름다음 사랑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불과 2개월 동안에 나눈 사랑이었음을 치료자가 알 게 되었다. 실제로 그녀와 K씨가 인터넷 음악 동호회에서 서로 안면을 나누게 된 것은 약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K씨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그녀 자신의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이 불과 2개월 정도였다는 것을 치료자가 알 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L양은 학교 수업 시간에는 혼자서 상상 속에 빠지곤 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한 작가는 헤르만 헤세로써 그의 작품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의 작품들만 집중해서 읽었다고 했다. 헤세의 작품들은 L양의 이야기를 빌리면 이상화, 이상적인 상상의 세계가 특징이라고 했다. 특히 헤세의 작품 중에 "싯탈다" 즉 부처님의 젊은 시절을 그린 작품에 빠져서 청년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녀는 그 작품 속에 주인공인 부처님을 그녀가 사귀던 오빠인 K씨에게 투사를 해고 그 투사된 이상적인 인물을 동일시를 했다는 것을 그녀의 분석을 통해서 치료자가 알 게 되었다.


 K씨와 그녀가 서로 인터넷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나중에는 전화로써 서로 연결이 되어서 L양은 K씨와 거의 매일 같이 하루에 몇 번씩 늦은 저녁 시간에 서로 2시간-3시간씩 통화를 했다고 했다. 어떤 내용들을 통화를 했느냐는 치료자의 물음에 그녀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했다. 그것이 서로 인터넷에서 만나서 약 5개월을 지난 시점이었다. 그녀는 오빠 K씨와 전화를 하는 그 시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태어나서 그렇게 행복한 시절이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L양은 K씨가 그 당시 대학 4학년 졸업반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그가 취업 인터뷰를 하려고 서울에서 충청도에 내려 온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지방에서 비행기를 처음으로 타고 용감하게 청주 공항에 마중을 나가게 되었고 공항에서 만나서 처음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인터넷 음악 동호회에서 사진으로 K씨의 얼굴을 보았지만 실제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K씨를 키도 작고 얼굴도 잘 생긴 미남은 아니고 보통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K씨는 헤세의 작품 속에 나오는 부처의 모습처럼 이 세상에 태나나서 그런 멎진 오빠는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오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스스름없이 마음이 넓고 따뜻하고 모든 것을 배려해주고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다른 남자들로부터 K씨처럼 그녀에게 위로와 따뜻함과 배려를 해 준 남자가 없었다고 했다. 분석에서 알 게 되었지만 L양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은 그녀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 그녀의 소망이었음을 나중에 알 게 되었다. K씨의 이러한 이 배려, 따뜻함, 주의 관심을 그녀에게 집중하는 것 등이 L양의 심층에 소망을 일께우게 된 것이었다.


 K씨가 입사 인터뷰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그녀는 K씨를 회사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 시험이 끝난 후에 K씨와 L양은 고속 버스를 타고 서울로 함께 올라오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는 그 음악 동호회의 전국 멤버들이 서로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치료자는 그녀와 K씨가 고속버스를 약 3시간 정도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를 물어보았다. L양은 그 오빠를 만나기 전에는 전화로 2시간-3시간씩 온갖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으나 그러나 실제 K씨와 만난 후에는 서로 이야기가 별로 없었고 서울로 올라오는 3시간 동안 고속버스 안에서 서로가 너무 껄끄러웠다고 실토를 했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몇 마디 인사 정도만 하고 그냥 별로 말이 없이 올라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에 그 음악 동호회의 멤버들이 6명정도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눈 후에 저녁 시간에 모두들 K씨의 하숙방에 같이 가기로 했다고 했다. L양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은 서로 화기애애 하게 의사 소통이 잘 되었으나 L양은 그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고 껄끄러워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무 늦어서 모두들 K씨의 하숙방(원 룸)에게 잠을 자기로 했다. L양은 멤버들이 모여서 그날 저녁에 맥주 파티를 했는데 그녀는 맥주를 한잔 정도 마시고 잠이 와서 일찍 잠자리게 들었다고 했다. 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음을 알고 외톨이가 됨을 느끼고 있었다.


 그 다음 날에 그녀는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 다음 날 저녁에 K씨를 만나려 저녁 때 K씨의 원룸으로 찾아갔다. 그녀가 찾아가도 좋겠느냐는 요구에 K씨는 좋다고 했다. 정작 저녁 때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났으나 두 사람 사이에는 껄끄러움, 불편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오빠와 같이 그 날 밤을 자고 가고 싶다고 요구를 했다. K씨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L양은 서울에서 음악 동호회의 첫 실제 만남에서 그 동아리의 멤버들이 모드 L양이 K씨를 좋하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모두들 L양이 K씨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L양이 서울에서 멤버들을 만났을 때 그 멤버들 중에 나이 많은 한 남자분이 L양에게 슬쩍 K씨는 L양이 이성으로 여성으로 보이지 않고 그냥 친한 친구로만 보인다는 말을 슬쩍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L양에게는 별로 귀담아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K씨를 이상적인 신과 같은 인물로 보였고 K씨가 그녀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간에 그 시점에서 그것은 그녀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K씨와 L양의 단독으로 저녁에 만났을 때 L양은 K씨를 끌어 안고 얼굴에 키스를 했다. 그러나 K씨는 반응이 별로 없었다. 기습적으로 키스를 당했지만 K씨는 L양에게 그냥 편안하게 잠을 자라고 했을 뿐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을 그렇게 보낸 후에 L양은 집으로 쓸쓸하게 귀향을 하게 되었다. K씨의 마음은 나이 많은 한 멤버가 전해준 것처럼 그녀를 여성으로 좋아하지 않고 그냥 친한 여동생처럼 이성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 이후에 몇 번 K씨를 잠깐 만나고 편지로 혹은 메일로 K씨에게 결혼을 하고 싶다, 혹은 K씨의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등으로 메시지를 보냈지만 K씨의 반응은 실제 만남 이후에는 다정다감한 따뜻한 배려나 돌보아주는 느낌이 없다는 것을  L양이 터득하고 깨달은 이후에는 서로 간에 전화나 메일은 점점 줄어들어갔다. 그 이후에 K씨의 마음을 알고 나서 L양은 홧김에 그녀의 전화 번호와 휴대폰을 모두 바꾸어 버렸다. 물론 인터넷 음악 동호회의 멤버들과 소식을 주고 받는 것을 차단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후에 서로간에 연락이나 소식은 듣지 못하고 6년의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L양은 33가 되었고 그녀의 첫사랑의 추억은 그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을 해 보았던 첫 사랑이었고 그 이후에는 어떤 남자들과도 사랑을 해보지 않았고 앞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치료자에게 그녀도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e-메일 메시지를 보낸 것이 기억이 났다.


이론적 근거

 L양은 사실 혼자서 짝 사랑을 한 것이었다. 그녀가 K씨를 마음 속에 새겨둔 이상적인 남성 인물에 투사를 해서 그 이상적 인물을 동일시한 것이 드러났다. 그녀는 사춘기 때 이성 관계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늘 헤르만 헤세의 작품 속의 시탈타 즉 부처의 이미지를 이상적인 이성, 이상적 남성으로 그려 놓았을 뿐 실제 남성들과 교제나 이성관계가 전혀 없었다. 그 이상적 인물에 K씨를 동일시 시켜주 맞춘 것이었다. 현실에서 대인관계에 갈등들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서 빠질 때 현실에서 고통이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것은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정신분석 전문가들이 밝혀낸 것이다.

 

 실제 K씨는 외모나, 키 등으로 볼 때 보통 이상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녀가 매력을 느낀 것은 K씨의 배려, 따뜻함, 돌보아주는 느낌들 등에 매혹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그 음악 동아리 멤버들은 모두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반응을 해주었고 격려를 해주었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처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러한 관심, 배려, 따뜻함을 느끼고 그녀의 마음의 문에 열린 것이었다. 그러나 것이 전부일 뿐 실제 K씨는 처음 전화로 서로 하루에 몇 번씩 2시간-3시간씩 이야기를 한 시점에서는 서로 마음이 통해서 사랑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였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연 것은 분명했다. 만약에 그 시점에서 K씨의 마음의 문에 열리지 않았다면 K씨가 L양에게 2시간 혹은 3 시간씩 전화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던 것은 사실로 보였다.


그러한 그 사랑이 "사이버 사랑"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이버 사랑은 실제 만나서 얼굴을 서로 맞대고 하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고 채팅으로 e-메일로만 주고 받는 대화이기 때문에 특히 대인관계가 잘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실물을 직접 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껄끄러움이 없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상상으로 실제 인물을 첨가하고 이상화로 만드는데 안성마춤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따뜻한 배려, 따뜻한 돌봄은 L양의 마음 속에 있는 이상적 인물 즉 이상화된 상상의 인물인 싯탈다 즉 부처의 이미지를 K씨에게 씌우기 쉬웠다. 인터넷 중독에서 영(Young) 박사가 지적을 한 것들이 이점을 분명하게 해 준다.

 

 다음은 치료자의 인터넷 중독 홈 페이지 에서 영(Young) 박사가 한 말들을 인용을 한 것이다.


사이버 공간의 안전한 천국에서는 당신은 당신의 깊은 느낌들을 나눌 수 있다. 자신의 강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현실 세계에서 보다 더욱 더 열린 마음으로 한층 더 공개적으로 빨리 사람들에게 접근을 한다. 이 만들어진 믿음의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볼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하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당신이 원하는 행동을 어떤 것이든지 할 수 있다. 만약에 당신이 현실에서 부끄러움을 탄다면 당신은 인터넷에 들어가면 외향적이 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현실에서 재미가 없다면 당신은 사이버 공간에서는 위트와 유머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여성이 설명을 했던 것처럼 “나는 현실 생활에서는 말문이 막힙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Young, 1998).


만약에 당신이 인터넷의 채팅 방에 상륙을 하면 일시적인 감정적 이익이 당신을 더욱 더 깊은 애착으로 유혹을 한다. 당신이 채팅 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감정 지원, 돌봄 그리고 용기를 제공한다. 당신이 현실의 생활에서 개발하는데 수년이 걸리는 것을 즉각 제공해준다(Young, 1998).


당신이 당신의 컴퓨터 스크린에서 주고 받는 말로써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의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불러 모아 상상들을 만들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누구인지를 자유롭게 이미지들을 불러 모을 수가 있다. 만약에 그가 그 자신을 좋은 인물로 보이게 기술을 한다면 당신은 유명 배우를 상상한다. 만약에 그가 정직하게 보이고 그리고 온 라인 안에서 달콤한 말을 한다면 당신은 유명 남자 배우인 톰 행크스를 상징을 한다. 그의 목소리의 톤, 그의 눈동자의 응시, 그가 당신의 손을 잡은 방법, 당신은 당신의 마음 속에서 모아서 만든 상상들을 상세하게 그 인물에게 공급을 할 수 있다. 당신은 그에게 당신이 인간으로 만나는 초반기 체크 점수를 자동적으로 통과하는 점수들을 준다(Young, 1998)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종종 당신을 조용하게 혹은 즐겁게 만들기 때문에 당신은 자연적으로 이상적인 사람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생활의 친구들 혹은 잠재력이 있는 메이트들이 거의 당신의 이상적인 기대에 들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 직접 노출이 되었을 때 인터넷 접촉이 완벽함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이다(Young, 1998).


 갑자기 당신의 이상적인 인물과 얼굴을 현실에서 직접 마주 대하게 될 때 우리 앞에 서 있는 인간적인 흠과 불완전함에 조정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비록 우리가 실제로 이 사이버 영웅이나 사이버 여걸을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아직도 다른 컴퓨터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그들의 주체성, 노여움 혹은 상실을 당기는 실질적인 사람들보다 오히려 우리가 창조한 그 사람과 관계됨을  우리의 온 라인 관계에서 오는 상상적인 즐거움들을 선호하고 원하게 된다(Young, 1998).


 L양은 현실에서는 대인관계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친밀관계를 만들 수가 없었다. 고로 인터넷에서는 그러한 대인관계, 친밀관계의 자아 의식이 필요없었다. 그녀가 하고 싶고 소망하고 원하는 말들을 다음대로 할 수 있었다. 고로 자연스럽게 인터넷, 전화 상으로는 자연스럽게 친밀관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접 K씨를 만났을 때는 대인관계 문제가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친밀관계가 잘 되었으나 현실에 K씨와 대면에서는 현실적인 문제가 표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현실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서로 직접 만났을 때 껄끄러움, 불편한 관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 결과 K씨는 L양의 현실적인 문제를 보게 된 것이었고 서로 간에 불편한 껄끄러움은 그대로 남아서 서로에게 장애물로 현실에서 친밀관계를 막아 버리게 된 것이었다.


 L양은 상상 속의 이상적 이미지를 K씨에게 씌워서 K씨를 그녀의 직접 표현대로 "K씨는 그녀에게 신과 같은 인물",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완벽한 남성"으로 존재했다고 회상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직접 직면한 이후로는 K씨는 L양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고 L양이 스스로 혼자서 이상적 인물로 만들고 채색을 하고 혼자서 상상 속에서 좋아한 이상적 연애였다는 것을 분석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사이버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대인관계는 현실에서 실물을 직접 만나서 서로의 감정 소통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넷 중독에서 영(Young) 박사가 여러번 강조한 것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갈등에 직면하게 되고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이러한 고통, 어려움, 갈등을 피해서 도망을 하는 수단으로써 인터넷 사랑, 단말기 사랑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제 해결 과정

 L양은 이제 이 문제를 직면, 대면하고 현실적인 대인관계, 마음을 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치료자에게 1주일에 1 3시간씩 (보통은 2시간이지만 L양은 너무 먼 곳에서 이곳에 치료를 받으러 오기 때문에 3시간으로 조정을 한 것임)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어디에서 그녀가 결함이 생긴 것인가? 에 대해서 알고 가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모든 갈등, 고통, 어려움들을 혼자서 삭이고 혼자서 억압해 왔음이 드러났다. 그녀는 친밀관계, 대인관계를 하는 방법을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는 것을, 그리고 타인을 배려고하고 우선적으로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우선적으로 내 자아를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자아를 키우는 과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고통, 갈등, 괴로움 등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써 상대에게 소상하게 표현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어서 내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상대가 내 이야기에 주의 관심을 가져주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내 자아가 자라게 되고 내 자신감이 커지게됨을 알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나의 이야기가 상대에게 가치있게 받아들려지고 소중하게 다루어짐을 느낄 때 나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피드백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 아기와 엄마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영(Young) 박사가 인터넷 중독에서 강조한 것처럼 많은 시간이 걸린다. L양은 이제 이러한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고 먼 거리에서 1주일에 1회에 3시간 씩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즐거워하게 되어가고 있다. 그녀는 치료자와 3시간의 치료 시간이 마치 30분 정도로 느끼지고 치료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그녀의 느낌들을 이야기하고 치료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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